M2024-11-14 10:45:57
정년이는 왜 금쪽이가 되었나
드라마 [정년이] 리뷰
이 글은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정년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3년. 드라마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국극 장르를 위해 소리부터 배우며 보낸 시간. 제아무리 다른 사람의 인생으로 사는 삶을 업으로 삼고 있다고 해도 쉽지는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극 속의 정년이가 그랬듯,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연습에 임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 덕에 극 중 가장 큰 시간을 할애한다고 봐도 무방할 국극 장면에서 립싱크(?)의 이질감 없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시청자의 입장에서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OTT다이어트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신규 작품들이 쏟아지는 이 시점에서,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고 가정한다 해도, 국극 장면을 제외한 이 드라마의 큰 줄기는 식상하다는 말조차도 먼지를 툴툴 털어내야 쓸 수 있을 만큼 낡아빠졌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식상하다는 이야기는 여태까지는 잘 “먹혔다”는 말이기도 한데, 어째서인지 이 엉뚱한 데다 국극밖에 모르는 주인공 정년이는 달갑거나 기특하기는커녕 금쪽이에 가깝게 느껴져 분통이 터질 때가 많다. 연기자들의 피땀눈물이 이렇게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시대가 변했다.
생각해 보면, 정년이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하늘이 내린 재능. 그리고 그 재능을 발휘하는 찰나에 정년이의 잠재력을 단박에 알아봐 준 사람들. 게다가 언제나 정년이를 믿고 도와줄 수 있는 주변인들. 게다가 알고 보니 출생의 비밀까지(?) 안성맞춤으로 갖추었다. 우리를 스쳐 지나간 다른 주인공들처럼. 정년이 역시 원석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 원석을 보석으로 세공하는 과정을 다루는 것이 보통 드라마의 여정이며, 최종회에서는 그것이 명성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심지어 사랑이든. 원하는 것을 손에 가득 쥔 채 웃는 주인공을 보며 박수를 치는 것이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러나 마치 동화 같은 정해진 결말인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의 저주는 중간의 모든 세공과정을 망쳐놓았다.
천방지축에 씩씩한 것이 정년이라는 인물을 감싸고 있는 가장 큰 골자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정년이는 그 발랄함, 혹은 무지에서 오는 열정이라 불리는 용기를 자신 앞에 다가온 힘든 고난들을 극복하는데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정년이는 시종일관 자신 앞의 장애물들에게 화를 나거나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냐고 떼쓴다. 덕분에 드라마의 모든 룰과 일부 등장인물들은 정년이의 민폐에 가까운 행동들을 커버해 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뒤처리가 깔끔하지 못해 ”주인공 버프“ 혹은 주인공 특혜라는 단어가 단박에 머릿속에서 떠올라버린다.
수많은 드라마에서의 여주인공들은 극이 진행되면서 결국에는 클리셰라는 지독히 두껍고 미끄러지지 않는 레드카펫을 밟을지언정 최소한 그 어떤 작은 벽이라도 넘어보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정년이는 소리 잘한다는 그 능력 하나만 내세워 모든 일에서 프리패스를 받아버린다. 주인공에게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천부적인 능력뿐만이 아니다.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동안 일어나는 일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그 간극 사이에서 발생하는 고뇌와 인간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년이에게서는 그 어떤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여성서사라고?
한창 “조폭영화”가 유행할 때가 있었다.
당연히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남자였고. 간혹 가다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은 그마저도 신나게 ”이용당하다 “ 죽거나 사라지곤 했다. 여성 서사.라는 말 자체가 현재에 들어서야 겨우 조금씩 나오고 있는 지금. 거의 모든 역을 여성들이 꿰차고 있는 이 드라마에도 여성 서사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그다지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물론 여성들이 애초에 “제대로 된 역으로”출연하는 작품들 자체가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여성들이 많이 나온다 해서. 또는 주요 인물로 나온다고 해서. 우리는 과연 그런 작품들을 여성 서사라는 이름을 붙여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유행했던 조폭영화들에서 다루려 노력했던 것이 “의리”라는 단어로 설명될 수 있다면, 드라마 [정년이]에서도 꽤나 비중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동성애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원작에 있는 부용이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삭제해 버림으로써 애초에 이 작품에서는 그에 대해 다루지 않거나. 겉만 핥고 지나가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물론 방대한 원작을 한정된 시간에 담아내려면 삭제해야 할 것들이 반드시 있어야 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다른 인물들도 아니고 부용 캐릭터를 삭제함으로 인해 드라마의 서사는 한 없이 헐거워지고. 채울 수 없이 늘어져버린 감정선과 공간들은 정년이의 금쪽이 쇼로 모조리 채워야만 했다. 그 덕에 정년이는 자기 지분 이상의 욕을 들어먹으며 금쪽력을 더 키우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여성들이 떼거지로 나오니 여성서사다.라는. 말을 붙이기보다는 여성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도 가감 없이 다룰 수 있는 작품에 그 단어를 뿌듯하게 붙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모든 서사가 아름다운 이야기만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과연 드라마 [정년이]는 나쁜 작품인가.
그렇다면 과연 드라마 [정년이]는 나쁜, 혹은 실패한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나는 전설이다]라는 작품을 떠올려보라고 말할 것이다.
영화가 먼저 떠오르는지, 책이 먼저 떠오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두 작품을 모두 감상한 사람이라면 절대 동명의 책과 영화가 “같은”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물론 나에게는 원작이 압승을 거두는 시시한 질문이다) 특히 영화의 경우, 미국에서 있었던 9.11 테러 이후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에서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골적으로 그라운드 제로라는 단어가 몇 번이고 반복된다. 그렇기에 주인공 윌 스미스는 그 누구보다 인류의 구호에 앞장서고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인다.
고로 한 번의 각색을 거친 작품이라면, 제2 창작물은 원작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다행히(?) 영화판 [나는 전설이다] 작품도 그다지 나쁜 오락영화는 아니었기에 두 작품에 대한 호불호 테스트정도는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원작과 창작물을 올려놓은 저울의 한쪽이 처참하게 망가진 경우라면 애초에 게임 자체가 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드라마 [정년이]는 내게는 후자에 속한다. 이 드라마를 위해 수많은 시도와 노력을 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 노고를 깎아내리겠다는 의도는 아니다. 그러나 더 이상 지금의 우리에게 “먹히는”이야기는 되지 못했다. 오늘도 나는 연습생 주제에 단체 연습도 말없이 나오지 않은 아이패드 속 정년이를 보며 이를 뿌득 뿌득 갈 뿐이다.
마치면서
다니엘 레드클리프가 해리포터 오디션장을 들어서자마자. 심사위원들이 무릎을 탁 쳤단다. 그래 바로 이 아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배우(와 스타일을 담당하시는 분들) 덕에 우리는 해리포터 시리즈 내내 마치 “책을 찢고 나온”것 같은 주인공을 보며 황홀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모든 원작에서 인물들이 “찢고 “ 나와야 하는 것은 싱크로율이 아니다. 그 인물이 전하려는 이야기(메시지) 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앞에 만화를 찢고 나타난 정년이는 너무도 변해버린 시대에, 단 하나도 발전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버렸고. 그 결과 원작을 사랑하는 이들의 애꿎은 마음만 벅벅 찢고 있다.
이 글의 TMI
1. 어휴, 영서야 니가 고생이 많다.
2. 요새 피티하느라 손바닥에 굳은살 박힘
3. 사워도우 오픈 샌드위치에 꽂혀가지고 아주 통장에 펑크날 때까지 이것만 만들어 먹는 중.
Relative contents
-
- 신선하고 발칙한 상상력,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오늘의 영화는 바로,
신선하고 발칙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입니다.
ⓒ 네이버 영화
정보
개요 드라마 | 한국 | 19분
감독 정가영
출연 정가영 등
줄거리
영화감독 가영은 조인성을 캐스팅하고 싶다. 아직 시나리오는 없지만.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의 T.M.I
ⓒ 다음 영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속 조인성 ?
조인성 배우가 캐스팅 된 과정은 영화와 비슷하다. 정가영 감독은 소속사에 시나리오를 보냈고,
조인성 배우가 직접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출연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게다가 조인성 배우는 영화에
노 개런티로 출연을 했다고 한다.
촬영 날 감독과 통화 하면서 음성을 동시 녹음을 했는데, 조인성 배우가 네 번의 테이크를 가면서 각 테이크마다
다른 애드립을 해줬다고 한다.
"신선하고 발칙한 상상력"
ⓒ 네이버 영화
연출자라면 누구나 꿈 꿔 봤을 상황. 그러한 상상이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이 영화로 실현이 되었을 때,
그 쾌감이 얼마나 컸을까.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정가영 감독의 신선한 상상력에 더해 발칙한 대사의 향연이 영화의 매력을 배로 늘렸다.
"한정적이지만"
ⓒ 네이버 영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를 보면 여러 방면에서 한정적인 요소가 많이 눈에 띄었다.
한정적인 공간, 한정적인 매개체, 한정적인 인물 등,
정가영 감독은 이러한 한정적인 요소에서도 다채로운 영화를 보여주었다.
19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 원 로케이션을 통해 한 사람의 이야기를 몰입감 높게 전개했다.
"자연스러움"
ⓒ 네이버 영화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러한 생각이 들곤 한다. '이거 진짜 연기인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대사, 그리고 그 대사를 하는 연기톤 모든 게 너무 실제 같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 제목처럼 조인성 배우에게 빠져들게 되겠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정가영 감독의 팬이 될 것이다.
정가영을 좋아하세요
"이런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 짧지만 강렬한 영화를 찾고 있다?
-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를 찾고 있다?
- 엄마 미소를 짓게 만드는 영화를 찾고 있다?
신선하고 발칙한 상상력이 가득했던!
지금까지 영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이였습니다.
-----------------------------------------------------------------------------------------------------------
씨네랩 에디터 ria
-
- 하이재킹 | 역사와 상상 사이에서 항로를 지켜내는 뚝심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69년, 동해 상공을 비행하던 공군 파일럿 '태인'(하정우)은 비상사태를 맞이한다. 남파 간첩이 납치한 한국 민항기가 휴전선을 넘기 직전이 되자 민항기를 사격해 엔진을 멈추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것. 하지만 그는 전역한 자기 사수가 파일럿임을 확인한 후, 승무원과 승객의 안전을 우려해 상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결국 비행기는 그대로 북한에 억류되고, 태인은 군복을 벗는다.
2년 후 민항기 부기장이 된 태인'(하정우)은 기장 '규식'(성동일)과 함께 속초 공항에서 김포행 비행에 나선다. 승무원 '옥순'(채수빈)의 안내에 따라 승객들이 탑승한 후 이륙한 비행기. 그러나 '용대'(여진구)가 사제폭탄을 터뜨리자 기내는 아수라장이 되고, 용대는 조종실을 장악한 후 북으로 기수를 돌리라 협박한다. 폭발 충격으로 규식마저 한쪽 시력을 잃은 가운데, 태인은 비행기와 승객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과거의 힘을 살린 항공영화
하이재킹. 운항 중인 항공기를 불법으로 납치하는 행위. 미 연방항공청에 따르면 하이재킹은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유난히 자주 발생했다. 5년간 325건에 달할 정도. <1987>의 김경찬 작가가 각본을 맡고, 당시 조감독이었던 김성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하이재킹>은 바로 그 시기에 발생한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1971년 1월, 속초공항발 김포공항행 여객기가 이륙 30분 만에 홍천 상공에서 납치범 김상태에게 납치당했고, 이강흔 기장과 전명세 조종사는 협박범의 요구대로 기수를 북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비행기는 강원도 고성 바닷가에 무사히 비상착륙했고, 승객도 전원 생존했다. 이강흔 기장이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를 북한의 미그기라고 속이는 기지를 발휘하고, 전명세 조종사가 폭탄을 몸으로 덮는 희생정신을 보여준 결과였다.
<하이재킹>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1987> 느낌이 물씬 나는 역사적 상상력이다. 사람보다 이념이 우선시되던 시대의 그림자와 과거라서 오히려 신선한 당시 시대상을 버무려 기존 항공 영화의 한계를 피하려 했다. 과하지 않게 감정선을 살짝 '넛지(Nudge)'하는 화법도 관객을 승객 중 하나로 만드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 덕분에 <하이재킹>은 난기류를 만나고도 목적지까지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역사의 것은 역사에게, 상상의 것은 상상에게
실화 사건을 다룬 작품의 관건은 각색의 정도와 방향성이다. 상상과 왜곡은 한 끗 차이니까. 그런데 <하이재킹>은 그 어려운 일을 비교적 잘 해냈다. 역사적 사실을 부각하는 대목과 상상력을 발휘할 대목을 철저히 분리한 선택이 장르적인 측면과 스토리텔링 양쪽에서 득이 됐다.
사실 항공 영화는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다. 시간대가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그렇다. 숱한 사고를 겪으면서 보안 규정이 나날이 철저해졌기 때문.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만 해도 '류진석'(임시완)이 비행기 표를 사는 첫 장면부터 기내에서 범죄를 저지를 때까지 전개가 어색하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하이재킹>은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 함정을 피했다. 항공 보안 관련 규정이 미비했던 70년대를 배경 삼아 자칫 억지스러울 상황을 납득시켰다. 선착순으로 비행기 자리를 고르거나 용대가 보안 검사를 뚫고 폭탄을 반입하는 장면은 신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역사의 빈틈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실제로는 없었던 민항기 격추 명령, 알려진 바 없는 범인의 범행 동기 등을 잘 짜 맞춰서 태인과 용대 사이에 진한 감정선을 불어넣었다. 그 덕분에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었던 이야기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는 '이한열'(강동원) 열사와 '이연희'(김태리) 사이의 가상 로맨스를 활용해 6월 민주 항쟁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한 <1987>의 장점과도 유사하다.
피해자 VS 피해자
그 덕분에 <하이재킹>은 단순한 항공기 납치 스릴러 이상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다. 전혀 접점이 없는 태인과 용대의 이야기는 대조될 때 함의가 드러나기 때문. 용대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전형이다. 6.25 전쟁 때 북한 인민군 장교가 된 형 때문에 반공분자로 몰려서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 사이에 어머니까지 죽은 그는 2년 전 납북 사건 주동자가 북한에서 영웅 대우를 받는다는 소식에 착안해 하이재킹 범죄를 저질렀다.
반면에 태인은 피해자이지만 가해자는 되지 않았다. 그는 2년 전 휴전선을 넘어가는 민항기의 엔진을 쏴서 착륙시키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군에서 사수였던 파일럿과 승무원, 승객 모두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 대가로 강제전역 당한 후에도 그는 군복을 벗긴 휴머니즘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전투기 사격을 피하고, 한쪽 손만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하면서 2년 전과는 달리 승객도, 승무원도, 자기 부사수도 지켜냈다.
이렇게 보면 두 주인공의 공통점과 차이는 분명하다. 국가 권력의 횡포로 인해 피해자가 됐지만 전혀 다른 답을 볼 수 있으니까. 용대는 피해의식과 정부를 향한 불신에 사로잡혀 자기 인생은 물론 무고한 이들의 인생까지 파괴하려 든다. 반면에 태인은 그 불이익을 오롯이 감내하면서 자기 신념을 증명해 보인다. 북한에서 송환을 거부한 파일럿 사수의 가족을 자기 자족처럼 돌보고, 부기장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그래서일까? 두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대면하는 순간은 <하이재킹>에서 볼 거라 예상한 장면과는 거리가 멀다. 자기처럼 피해자로서 고통받은 이를 마주한 후에야 가해자가 된 피해자는 마침내 자기 잘못을 깨닫는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던 용대는 자기처럼 무고한 피해자는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태인의 설득에 비로소 흔들린다. 여기에 다소 잔인한 과감한 연출이 더해지면 둘의 관계는 의외로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압축과 절제의 미학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사건에만 집중하는 구성도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담긴 감흥을 극대화한다. <하이재킹>은 압축과 절제의 미학을 살려 이야기를 러닝타임 100분 안에 눌러 담고, 빠른 템포로 전개하면서 사건과 주인공 둘에게만 시선이 쏠리게 한다.
사실 <하이재킹>의 구성은 자칫 익숙한 신파로 빠지기 십상이었다. 갑작스레 납치된 승객 하나하나의 사연을 풀어놓으면 눈물을 짜내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신혼여행 가는 부부, 아픈 딸 병간호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할머니 등. 하지만 영화는 승객에게 그다지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필요한 타이밍마다 장면 하나하나를 알뜰하게 활용하면서 분위기를 고조한다.
감정을 강요하는 대신, 관객이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상황만 조성하고 뒤로 물러나는 셈이다. 사법고시 붙은 아들과 어머니가 대표적이다. 검사가 된 아들이 자랑스러운 어머니와 수화 쓰는 어머니를 창피해하는 아들. 납북을 대비해 신분증을 파괴해야 상황에서 아들은 차마 검사 신분증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오히려 신분증을 찢으려 하고, 잘 찢어지지 않자 아예 삼켜 버린다.
부메랑이 된 상상력
다만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 상상력은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특히 과욕처럼 보이는 볼거리가 적지 않다. 물론 인상적인 대목도 있다. 용대가 폭탄을 터뜨려 조종실을 장악하는 장면은 마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속 뉴욕 타임스 스퀘어 장면을 연상시키는 슬로 모션 효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록 같은 퀄리티는 아닐지언정 한계를 극복하려는 대담한 시도 자체는 놀랍다.
하지만 비행 시퀀스로 서스펜스를 쌓는 장면은 다소 무리수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기체에 구멍이 나서 비행기가 급낙하 할 때나, 한국 공군이 민항기를 사격하고 이를 피하는 장면이나, 여객기가 배면비행을 보여주는 것까지. 영화적으로는 긴장감을 극대화하지만, 잠깐이라도 현실성을 따지는 순간에는 맥이 뚝 끊길 수 있는 상황이다. 마치 <비상선언>에서 항공자위대가 민항기에 위협사격을 가하는 순간처럼.
또 비행기 내부 전개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승객들이 용대를 덮치고, 부기장이 휴전선을 넘은 척 용대를 속이고, 어떻게든 난기류를 이용해 보려는 식으로 여러 사건을 만들어내고자 애쓴다. 하지만 결국 큰 틀에서는 겁에 질린 승객과 난폭한 납치범이라는 구도를 벗어날 변곡점이나 제3의 인물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중반부는 같은 장면이 반복되어서 비교적 지루할 수 있다.
배우들의 퍼포먼스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하정우와 성동일만이 이름값을 해냈다. 배우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극본의 한계가 드러난 지점에 가깝다. 여진구가 맡은 용대의 경우 태인과 대조되는 사연만 돋보일 뿐, 악역으로서의 카리스마나 매력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채수빈이 연기한 옥순은 단순히 시나리오의 도구에 불과하다. 없어도 이야기 전개에 문제가 없을 정도다.
이에 더해 <하이재킹>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기술적인 아쉬움도 크다. 대사가 잘 안 들리는 한국 영화의 고질병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비행기 외부 소음과 대사가 섞이거나 파일럿끼리 무전을 할 때는 OTT 자막 기능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국내 배급사가 아닌 컬럼비아 픽처스가 직접 배급하는 작품인데도 고쳐지지 않은 문제라 더욱 안타깝다.
Acceptable 무난함
실화에 상상을 더해 어찌어찌 목적지에는 착륙하다
-
- 제 인생은 '로맨스'입니다.
여전히 MZ세대들 사이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테스트는 '영화' 캐릭터 테스트로도 자주 활용되어 왔는데요! 이번에 오픈한 테스트는 꼬이고 얽힌 다양한 관계 속 유쾌한 케미 포텐이 터지는 영화 <장르만 로맨스>의 인생 장르 테스트입니다. <장르만 로맨스>는 평범하지 않은 로맨스로 얽힌 이들과 만나 일도 인생도 꼬여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버라이어티한 사생활을 그린 영화인데요!베스트셀러 작가 '현'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꼬여버린 관계를 다채롭고 감각적으로 담아낸 영화에서, 과연 이들 6인이 어떤 스토리로 얽히게 되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장르만 로맨스>에는 쿨내진동 이혼부부 '현'과 '미애', 일촉즉발 비밀커플 '미애'와 '순모', 주객전도 스승제자 '현'과 '유진', 알쏭달쏭 이웃사촌 '정원'과 '성경'까지! 작가 '현'을 둘러싼 관계가 버라이어티하게 등장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 <장르만 로맨스>의 '내 인생의 장르 테스트'는 누구나 직접 참여해 자신의 인생 장르를 탐색할 수 있어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공개된 테스트는 7년째 슬럼프에 빠져 한 글자도 못 쓰는 베스트셀러 작가 '현'의 사생활이 각 질문마다 유쾌하게 녹아들어 웃음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현' 몰래 달달한 비밀연애 중인 전 부인 '미애'와 절친 '순모'부터 이웃사촌 '정원'과 놀기 바쁜 사춘기 아들 '성경', 천재적인 재능으로 위기의식을 자극하는 제자 '유진'과의 관게까지, 관객들은 '현'의 다양한 상황에 이입하게 됩니다.
테스트를 마치면 코미디부터 로맨스, 드라마, 미스터리, 판타지까지 내 인생의 장르를 비롯해 <장르만 로맨스> 6인방 중 나와 딱 맞는 궁합이 누구인지 알 수 있어 흥미를 더하는데요. 게다가, 테스트 결과를 SNS에 인증하면 <장르맨 로맨스> 예매권과 굿즈를 증정하는 풍성한 이벤트까지 준비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매일 버라이어티한 우리들의 사생활
내 인생의 장르 테스트하러 가볼까요?
그럼, 오늘도 즐거운 테스트와 함께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TRANSLATE with xEnglishTRANSLATE withEnable collaborative features and customize widget: Bing Webmaster Portal
-
-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들, 이민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민자의 모습은 그렇게 좋지 않다. 대부분 막노동이나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이미지를 가진 그들은 한국 사회 안에서도 그렇게 높은 위치에 있지 않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이민자라고 하면 중국이나 동남아 국적을 가진 이들이 많이 떠오르는 반면, 미국에서는 아시아권과 남미의 이민자들이 많이 떠오른다. 워낙에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회를 구성한 국가의 특성상 한국보다는 좀 더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미국에서의 이민자들의 이미지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이민자들의 직업과 이미지는 그들에 좋지 않은 선입견을 덮어 씌운다. 그들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낮은 계급과 지위라는 두꺼운 필름이 덧붙여져 있다. 그건 개인의 문제라기 보단 사회의 문제다. 어느 국가에서건 그렇게 이민자들을 대하는 시선은 곱지 않다. 그들이 많이 하는 직종은 그 일이 이민자들이 많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하고 왠지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일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많은 이민자들도 그걸 알고 있지만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다음 삶의 미래를 꿈꾼다.
같은 삶과 터전에 살아가는 이민자의 모습
디즈니 플러스에 공개된 영화 <발렛>은 미국 내에서 주차 대행 서비스인 발렛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이민자를 화면에 담는다. 물론 이 영화가 발렛이라는 직업에 대해 자세히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 발렛일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하는 남미계 이민자 안토니오(에우헤니오 데르베스)를 중심인물로 한다. 그는 그저 평범한 이민자처럼 보인다. 일을 성실하게 하고 차분하고 조금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그는 동료들과 가족들이 모두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 자신은 원하지 않지만, 현재 그는 좀 더 큰 꿈을 꾸는 아내와는 별거 중이고 이혼을 앞두고 있다. 초반에 화면에 보이는 그의 삶은 무척 단순하다. 그는 발렛 일을 열심히 하고 집에서는 가족들을 챙기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가 지금 바라는 건 별거 중인 아내와 다시 합치는 것인데, 아내를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좀 더 일에 신경 쓴다. 하지만 그가 벌 수 있는 수입은 한계가 있어 그가 바라는 행복이 꽤 멀게만 느껴진다.
안토니오와 그의 주변 인물들은 미국 내 이민자들이다. 아마도 미국 사회 안에서 발렛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들 일 것 같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차를 맡기는 이들은 발렛 관리자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차 열쇠를 던진다. 그리고는 그저 스쳐지나 자신의 볼일을 보러 갈 뿐이다. 그런 무심한 시선에도 발렛 관리자들은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영화는 그런 안토니오와 이민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그들 중심으로 담는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영화들에서 발렛 관리자들은 스쳐 지나가는 존재들이었다. 카메라는 그들을 제대로 비추기보다는 화면 언저리에만 살짝 비출 뿐이었다. 하지만 영화 <발렛>에서는 그들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멋진 차를 맡기는 사람들은 화면에서 잘리거나 화면 언저리에 자리한다.
그리고 안토니오 본인뿐 아니라 그 가족들의 얼굴도 비춘다. 나이 든 어머니, 동생을 비롯한 이웃들이 화면의 중심에 서서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백인 여성과 유색 남성의 로맨틱한 사랑이야기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분명 영화의 중심 이야기는 인기 여배우인 올리비아(사마라 위빙)로부터 시작된다. 유부남과 바람을 피우고 있는 그는 파파라치에 자신과 유부남의 사진이 찍혀 공개되자 우연히 그 사진에 같이 찍힌 안토니오를 이용해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바로 가짜 연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얼떨결에 제안을 수락한 안토니오의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웃음을 유발하고 생각보다 순수하고 정직한 그의 모습을 통해 평범한 사람의 진심을 보여주며 따뜻함을 전달한다.
안토니오의 삶에 초대된 백인 여성, 그리고 따뜻함
안토니오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차분하게 잘 소화해 낸다. 그게 어색할지라도 그는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며 올리비아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식을 끝까지 고수한다. 그것이 때론 답답해 보이지만 그 정공법은 올리비아의 마음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올리비아는 안토니오의 삶과 공간 속으로 조금씩 들어간다. 안토니오가 일하는 공간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가짜 커플 연기는 안토니오의 집까지 이어지고, 그 주변의 공원까지 연결된다. 그 모든 공간은 이민자들이 일하고 살고 산책하는 공간이다. 백인 여성이 이민자의 공간으로 들어와 그들의 문화와 그들이 가진 이야기를 경험하고 마음을 여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중심 전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비슷한 영화는 많았지만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번 영화 <발렛>도 그렇게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민자들을 바라보는 태도만큼은 훌륭하다. 그들이 가진 직업과 가족 문화를 이질 감 없이 전달하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도 다르지 않다는 걸 끊임없이 보여준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구조로 시작하지만 이 영화 안에서 누군가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긴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무척 따뜻한 이야기의 결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발렛>은 2006년에 만들어진 동명 프랑스 영화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이다. 전작도 꽤 좋은 반응이 있었지만 이번에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된 리메이크 <발렛>이 좀 더 재치가 넘치고 유머러스하다. 여기에 이민자들의 삶과 태도를 영화의 중심에 넣으면서 무척 유쾌하고 따뜻한 영화로 재탄생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두 주인공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를 궁금해하기보다는 각 인물이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게 될지가 좀 더 궁금해지게 된다. 그만큼 영화는 이민자의 삶과 태도를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조금 다른 감정을 전달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IMDB]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구독 할인 행사 중입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https://rabbitgumi.stibee.com/
-
- 바깥은 죄다 비 내리는 전쟁통이지만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6년을 사귀었던 전 남자친구가 멋대로 들어와 있다. 게다가 자신이 실수로 친구를 죽였고 시체가 여기 있으니 도와 달라 청한다면 어떨까. 지수는 황당하고 무섭고 짜증난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미지수>의 규칙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녀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절박한 심정으로 이 일을 어쩌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미지수>는 이렇게 담담한 것 같으면서도 황당한 웃음을 자아내는 에피소드로 문을 연다. 사람을 죽여 놓고는 사건을 직면하기 두려워 여자친구의 집으로 도망쳐 온 남자, 배달원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어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미 포장을 마친 음식을 못 팔겠다며, 밑도 끝도 없는 고집을 부리는 남자와 기를 쓰고 그를 회유해 보려는 여자. 헛웃음도 나고, 이들이 왜 이런 고집을 부리는지 영문을 몰라 답답하기도 하다. 심지어 영화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지도 못하게, 욕조 안에서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죽어 있던 친구를 다시 살려내기도 하고 남자가 뜻밖의 인물을 또 다시 죽이는 황당한 사건을 늘어놓기도 한다. 지수는 언제 잠에 빠져들었는지 알 수도 없게, 꿈 같은 사건 사이사이에서 잠을 깨기만 한다. 그리고는 일을 수습하고 인물을 달래 가면서 조금씩 이유를 드러낸다. 꼼짝 않고 같은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아주 느리게 소화하듯이, 또 아주 천천히 진실과 조우할 준비를 하는 듯이.
<미지수>를 연출한 이돈구 감독은 이별과 상실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영화는 특이하게도 갑작스러운 사건, 폭발하는 감정, 그리고 이어지는 치유나 성장의 과정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관객은 이들이 겪은 이별, 지금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상실감과 죄책감 같은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정확한 전말을 아주 조금씩 알게 된다. 친절함과 편안함으로 무장한 작품에 자석처럼 이끌리는 동시대 관객들 앞에 내어 놓은 이 용감한 서술 방식은, 영화 후반부를 목격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앞선 장면들을 되짚어 보게 한다. 그리고 극장 밖까지 따라 나와 오래 기억에 남게 한다.
진실을 알게 되고 마침내 폭발하는 감정을 목격하고 나면 비로소 영화 초반의 갑작스러운 사건이 지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헤아리게 된다. 상실감에서 비롯된 환영은 자신이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순간을 만들어내서라도 만나고 싶은 욕망이자 염치 없고 구차해 보이더라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 그리고 못되게 굴었던 것을 속죄하기라도 하고 싶다는 지수의 소망이다. 또 죄다 전쟁통인 바깥으로 자식을 쫓아 낸 것만 같은 어머니의 절망이고,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매뉴얼은 작은 위반이 불러 온 사고에 대한 죄책감이다.
<미지수>는 지난 몇십 년 간 한국인들이 겪고 또 겪고 나서도 대가를 치르듯 또 겪는 그 모든 죽음과 이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죄책감, 충격, 통곡하는 이미지 같은 연출이 아니라 관객이 인물과 함께 꿈꾸게 함으로써 스스로 이야기를 되짚어 보게 한다는 점이 매력이자 영리함이다. 그렇게 영화는 극장 밖으로 관객을 따라 나와 우리 모두가 상실을 겪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결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흔 옆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음을 말한다. 또 터무니없이 완벽한 미래의 청사진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아주 작은 걸음을 내딛는다. 당신 없는, 이 전쟁통 같은 세상은 미지수이더라도 우리는 살고 또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이별한다. 그리고는 떠난 이의 책장에 남은 칼 세이건의 책이 그러하듯이, 그가 드넓은 우주를 모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제는 다시 한 번 살아가 볼까, 하고 중얼거린다.
-
- <트루먼쇼>
<트루먼쇼>
" 시간이 한참 지나 의미가 보이는 만큼 재미있어야 진짜 명작이다. "
<트루먼 쇼>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야할까. 짐 캐리의 명연기? 세간을 뒤흔든 신선한 소재? 곳곳에 숨은 미장센? 감독의 연출력? ... 이 모든 것이 한 데 어우러지면 이런 명작이 나오게 되는 걸까. 처음 <트루먼 쇼>를 봤던 날 느꼈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제 각기 살아가면서 한 번쯤 떠올려보는 '사실 내 삶이 조작된 게 아닐까?' 라는 가벼운 상상력이 이토록 멋진 영화로 연출되다니, 현대에도 신선한 이 영화, TV와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던 1998년도에는 얼마나 더 큰 파급력을 일으켰을지 말로 설명할수록 부족할 뿐이다. 방송학을 전공하거나, 미디어 관련 쪽의 강의를 한 번이라도 들어봤다면 이 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와 의미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여전히 명작으로 불리우는이유 중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재미있다'는 점이다. 개봉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만약 당신의 삶이 모두 거짓이었다면? 당신이 살아온 그 무수한 삶들이 사실은 조작된 것이었다면 당신은 어떨까. 허망할까, 아니면 분노하게 될까. 영화는 본질적인 존재 '당신'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생각해보자,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도 알고보니 배우였고 어린시절 당신을 힘들게 했던 트라우마도 각본이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던 말이 연기였을 뿐이고 사건은 시간에 맞게 적절히 맞춰 일어난 것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때마다 느꼈던 그 감정은 진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짜여진 대로 맞춰가야 했던 당신의 삶 속, 당신이 한 생각과 느낀 감정들이 과연 진짜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말했던 데카르트의 말처럼 트루먼(짐 캐리) 또한 거짓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신의 삶만이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적어도 영화 속 주인공의 생각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이야기가 굉장히 잘 짜맞춰져 있다보니 스토리를 놓칠 겨를 없이 보는 재미가 있다. 초중반부에서는 잔잔하게 이어지는 듯 하지만 중후반부로 갈수록 스토리에 속도가 붙기 때문에 한 눈 팔 새 없이 순신각에 몰입하게 된다. 밝고 명량한 분위기와 다르게 간혹 섬짓한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하는데 이런 장면들을 짜맞춰서 스토리를 읽어내는 것도 나름 큰 재미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스토리 자체가 촬영되고 있는 삶의 기록이기 때문에 꽤나 독특한 카메라 구도와 미장센의 연출을 보는데도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짐 캐리 특유의 유쾌한 연기와 배우들의 적절한 호흡이 영화와 잘 맞아 떨어지지 않나 생각이 든다. 스토리 흐름이 좀 억지스럽지 않나 느껴질수도 있지만 영화의 배경 자체가 만들어진 세상이다 보니 이것 또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다.
영화가 미디어 시대에 대한 경각심을 드러냈다는 의견도 많은 편이다. 1998년이라면 TV 미디어가 가진 파급력이 워낙 강했던 때였고 빅 브라더에 대한 경각심도 강조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 트루먼을 바라보던 인물들도 시청자였지만 스크린 밖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도 한 인간의 만들어진 삶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네 삶에 시청자들은 미디어의 편집과 각색으로 만들어진 삶에 살고있다. 미디어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치 우리네 삶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처럼 전파한다. 살인사건, 혐오전쟁, 전쟁, 테러 등 위험하고도 자극적인 뉴스가 방영되고 나면 우리네 삶을 위협하는 것 처럼 느껴지니까 말이다. 영화는 이러한 미디어가 만들어놓은 사회에서 벗어나 진짜 당신의 삶을 찾으라고 이야기한다. TV에서 고개를 돌리면 당신이 사랑하는 현실이 있고, 당신 스스로가 '당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삶에서 당신의 인생을 즐기라고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죽음을 무릅쓰고 화면에서 벗어난 것처럼 미디어와 멀어진 지금의 삶이 불편할지언정 당신 또한 그렇게 벗어나라고 말이다. 시대를 흘러 이 영화가 더욱 회자되는 이유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TV에서 발전해 스마트폰과 SNS 사회 속 작은 화면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인위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경고로 느껴질수도 있으니 말이다.
영화에서 주려는 메시지는 당신 스스로가 선택한 삶만이 오직 당신의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지금 세상이 조작된거야'라는 트루먼의 이야기에 부인, 동료, 친구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미쳤다라고 대답하고, 의구심에 못 이겨 여기저기 나서도 의도적으로 누군가 훼방을 놓는다. 여행을 가려해도, 도망치려 해도 마치 누군가 짠 것처럼 상황이 악화된다. 근데 왠지 모르게 이 상황이 묘하게 우리네 삶과 닮아있다. 당신이 무얼 도전하려고 했을 때 '미쳤다'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상황이 여의치 않아 주어진 기회를 포기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트루먼은 모든 것에 의구심을 품고 끈임없이 의심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부딪히고 또 부딪혔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떠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즉, 스스로의 가치관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넓은 세상에 거의 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며 고난을 겪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부정당할수도 있고, 실패할수도 있다. 그럼에도 당신의 삶은 여전히 당신의 것으로 남아있다. 타인을 제쳐두고 당신만이 선택할 수 있으며 당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 시간에 스스로를 믿는다면 당신 또한 '트루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 영화를 보지 않아도 이 대사와 장면 정도는 알고 있을것이다. 진짜가 아닐지도 모르는 세상으로 향하며 트루먼은 미소를 남긴채 떠난다. 자신을 고립시키고 조작된 삶을 살게한 PD를 분노하지도 않고, 자신의 삶을 그저 쇼 오락거리 정도로 봐왔던 사람들에게 원망하지도 않는다. 마치 진짜 드라마의 엔딩처럼 웃으며 작별을 고한다. 그의 마지막 대사가 무슨 의미였는지는 아직까진 나도 알 수가 없지만, 자신만이 살아온 자신 스스로의 삶은 진짜인 것처럼 작별을 고한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스스로의 인생의 주인공이다.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삶이 아니라면 더 이상 의심할 나위 없다. 진짜 세상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편안한 환경을 벗어나, 불안할지도 모르는 미래로 떠난 트루먼처럼 당신도 스스로 고립된 삶에서 벗어나 주인공처럼 웃으며 대사를 외칠 때가 되었다.
명작을 볼 때에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반영된다. 언제, 어느 시기에 보았는지에 따라 그 느낌이 천차만별이다. 어린 시절에는 TV속에서 탈출하겠단 의지를 가진 트루먼의 박진감과 짜릿함에 초점을 맞춰 보았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대중매체를 공부하며 미디어가 주는 억압과 편협된 세상에 초점을 맞춰 보았고, 최근에는 트루먼이 살았던 삶과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고 보았다.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해석할 필요 없이 내 감정과 환경에 이끌리는 대로 보았다. 보고싶은 대로 이런 저런 견해를 짜맞춰 가며 봤다는 이야기다. 트루먼은 이야기한다. 'but in my world, you have nothing to fear' , 당신의 세상에서 두려워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영화를 보는 당신도 어떻게 해석하든 자유다. 당신의 인생에서 어떻게 하든 그건 당신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The Truman Show> In Movie
-
- 【결말포함】K-좀비는 더이상 그만
#영화 #반도 #리뷰
액션, 드라마│한국│116분
감독 연상호│출연 강동원, 이정현전대미문의 재난 그 후 4년
폐허의 땅으로 다시 들어간다!
4년 전, 나라 전체를 휩쓸어버린
전대미문의 재난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던 ‘정석’(강동원).
바깥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반도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제한 시간 내에 지정된 트럭을 확보해
반도를 빠져 나와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던 중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와 4년 전보다
더욱 거세진 대규모 좀비 무리가 정석 일행을 습격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폐허가 된 땅에서 살아남은 ‘민정’(이정현) 가족의 도움으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고
이들과 함께 반도를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기로 한다.
되돌아온 자, 살아남은 자 그리고 미쳐버린 자
필사의 사투가 시작된다!#리뷰문의
adonai0919@gmail.com#트위치
https://www.twitch.tv/sura_chtr#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writer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Watch: https://youtu.be/pZzSq8WfsKo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
- [영화흥신소] 세상 둘도 없는 신박한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흥해라 이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 남자에 둘러싸여 일도 사랑도 제대로 못하는 주인공 보나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그녀의 눈에 들어온 비디오 '남자사용설명서'!! 이 비디오로 그녀의 인생은 조금씩 변해가는데...세상 둘도 없는 충격적인 비주얼로 다가 온 이 영화 흥해라!
-
- 영화 <탑건 : 매버릭> 극한 챌린지 예고편
'매버릭'마저 긴장시킨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도전! 상공 위에 몸을 맡기고 한계에 도전하는 #팀탑건?
-
- 영화 <광대 : 소리꾼> 30초 예고편
#광대_소리꾼 이 오늘 개봉이로구나!? 우리의 소리와 장단 구경하러 오지 않겠소? 극장에서 기다리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