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7-23 11:28:05
뿌리라는 베이스 캠프
영화 <여덟 개의 산> 리뷰

이 영화의 주인공은 브루노와 피에트로. 브루노는 주민이 14명뿐인 작은 산골 마을에 살며 어엿한 일꾼으로 성장하고 있고, 피에트로는 여름이면 도시와 학교를 떠나 어머니와 함께 산골로 들어오곤 한다. 공교롭게도 동갑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브루노는 스스로를 “이 마을의 마지막 아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흔하지 않은 소개의 말이다. 어떤 기분일까? 유일하다는 것은.
이내 브루노는 또 하나의 유일함을 찾는다. 브루노와 피에트로는 서로 유일한 존재로서 친구가 된다. 대단하게 각 잡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쉽게 친구가 된다. 뛰고, 움직이고, 물을 튀기고, 서로의 말을 배우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있는 것이다. 우정이란 본디 그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마음이니까.

피에트로는 천천히 움직이고, 천천히 배우는 사람이다. 산에 오르자마자 이름을 체크하고 바로 다음 장소로 넘어가려는 아빠에게 “이제 막 왔다”고 말하는 피에트로는, 어쩌면 봉우리의 이름을 나누어 부르지 않는 산 사람들과 더 잘 맞는지도 모르겠다. 세 사람은 산 위쪽의 빙하까지 올라가고, 피에트로는 빙하를 “산이 우릴 위해 간직한 과거 먼 겨울의 추억”이라고 여긴다. 햇빛이 그토록 강해도 녹지 않는 눈은, 정말 추억과 많이 닮은 것도 같다.

영화는 피에트로와 브루노의 유년기부터 시작하여 긴 세월을 찬찬히 비춘다.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듯 보였던 십대 시절, 눈이 마주쳐도 별스러운 인사 없이 서로를 스쳤던 시절. 자기 자신이 되어가기 바빴던 어린 날들. 실상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 자기 자신임을 인정하기 어려워, 내가 답습한 부모의 면에 화를 내기도 했던 날들.
그 끝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그리고 과거의 회한을 하나씩 제거하듯이, 어린 시절과 비슷한 몸짓으로 그때는 할 수 없던 육체 노동을 하면서, 집을 지어 올리기 시작한다. 앙금 녹듯 눈이 녹으면 그 자리에 지어 올려야 하는 것은 집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따뜻하고 다정해 보이는 산의 풍광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얼핏 다시 시작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둘은 끊어진 적이 없었음을 우리는 이내 알게 된다. 피에트로는 아버지가 속해 있(다고 믿었)던, 공장으로 대표되는 차가운 세계를 거부했지만, 그 동안 피에트로가 풀지 못한 매듭을 대신 풀어주며 유사 가족처럼 관계를 맺은 것은 브루노였다. 브루노 또한 자신과 아버지 사이 관계에서 쌓인 회환을 푼 것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깍지 낀 손가락처럼 서로의 마음을 겹쳐 살고 있었다. 풀지 못한 매듭의 자리에 대신 서기도 하고, 못 다 전한 염원을 대신 전해주기도 하면서.
우정은 단순히 무료한 시간에 색깔을 더하는 정도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서로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관계는 얼핏 그 정도처럼 느껴지지만, 서로가 보일 때든 아니든 꾸준히 우정의 나무는 자라 오고 있었다. 서로의 회한이 회한으로만 남지 않게, 이따금 ‘금쪽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서로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손을 뻗기도 하고 그냥 이해하기도 하며… 존재 자체의 의의를 더하는 것이 우정이다.
묵묵히 할 일을 하다가도 이름 불러주는 친구 하나 있다면 산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다. 지금 가라고 등 떠밀어주는 사람이 그때 있었더라면, 어쩌면 마음의 어떤 골짜기가 그리 깊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에라도, 어린 시절과 비슷한 옷을 허리에 꾹 졸라매고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영화 도입부에는 키가 크고 이파리가 없는 두 그루 나무가 나온다. 우정이 나의 뿌리 내릴 곳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는 피에트로의 내레이션과 함께. 이 영화는 두 그루 마른 나무 같은 사람이, 서로에게 뿌리를 내리고, 회한을 무너뜨린 자리에 우정으로 베이스 캠프를 짓고, 각자의 산을 오르는 이야기이다. 나무 같은 존재가 산을 오른다니 이상한 비유 같지만, 결과적으로 나무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소는 산이다.
브루노는 산에서 옮겨 심어질 마음이 없는 나무, 피에트로는 잘 옮겨져 심기고 싶었던 나무였다. 그러나 같은 베이스 캠프에서 시작한 둘의 인생 여정은 너무나 달라 보인다. 너는 너의 산에, 나는 나의 산에. 그러나 산이라는 점에서 일견으로는 닮아 있다. 어쩌면 인생이 다 그런 것도 같다. 지도를 들고 길을 떠나는 순간, 등 뒤에 두고 온 자리는 자동으로 베이스 캠프가 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등이 되어주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평생 우정의 빚을 진다. 이런 빚이라면 아무리 많아도 파산하지 않는다.

언젠가 오랜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당시 내가 느끼던, 아주 유약하고 섬세한 불안까지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돌아선 길이었고, 집 방향이 같은 친구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친구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냥 즐겁게 이것저것 하면서 잘 지내니까, 그런 마음들이 있는지 몰랐다고.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내면 깊은 곳에 있던 감정이니 주변에서는 당연히 몰랐을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몰랐음을, 알게 되어 안심임을 말하는 친구의 다정한 말투에 고마움이 울컥 치솟았다.
오랜 친구라는 거, 참 좋구나. 구구절절 나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나를 너무 잘 아니까, 내가 어떤 변화를 휘청휘청 거쳐 왔는지도 다 보았으니까, 지금의 마음도 솔직히 말할 수 있고 그냥 온전히 그 모습 그대로 포용될 수 있다는 거 정말 행복한 일이구나. 그건 정말 따뜻하고 포근한 감각이어서, 앞으로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도 오랜 세월 다정하게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친구들을 많이 떠올렸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짤막한 편지를 썼다. 낯간지러워 부치지 않겠지만, 나 또한 그들의 베이스 캠프가 되어 그들의 삶에 뿌리가 되고 싶단 마음을 담아서.
살다 보면 우리 멀어질 날도 올지 몰라.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이 너와 물리적으로 먼 곳에 있을 때가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도 그 길에 나는 너에게 아주 많은 걸 빚졌어. 너는 나의 뿌리야. 서로 아름다운 안식처라는 기억을 뒤에 두고 걸음을 다시 걷자. 지도 위에 새로운 걸음을 덧그리자. 각자의 안에서 무언가 뚝 끊어지는 감정이 들 때에는 방향을 틀어 다시 네게로 갈게. 어떻게든, 우리 같은 지도에서 만나자.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는 2023년 9월 개봉합니다. 산의 풍광이 많이 아름답고, 가본 적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음악도 하나 같이 다 좋으며, 무엇보다 147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섬세하게 연출된 작품이니, 스크린 환경이 좋은 영화관에서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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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적: 도깨비 깃발> 발전적 계승이 돋보이는 리모델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자칭 고려 제일검이자 고려 무관 출신 의적단 두목 ‘무치(강하늘)'는 바다를 떠돌다가 ‘해랑(한효주)'과 그녀의 해적단에 의해 간신히 구조된다. 의도치 않게 한 배에서 동행하게 된 의적과 해적은 호랑이와 상어처럼 상극의 면모를 보이면서 항해를 이어간다. 어느 날, 이들은 함께 왜구선을 약탈하던 중 위화도 회군 당시 고려군 일부가 빼돌린 고려 왕실의 보물이 실존한다는 정보를 얻는다. 일확천금할 기대에 부픈 이들은 불기둥과 번개섬이 기다리는 모험을 떠난다. 한편 목적을 위해서라면 인명도 신경 쓰지 않는 ‘부흥수(권상우)'도 탐라국 왕을 두고 이방원과 거래를 하며 고려 왕실의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2013년 여름에 개봉했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액션 어드벤처 장르다운 유쾌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866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짜임새나 완성도로 인해 혹평을 받기도 했으며, 특히 역사를 과하게 왜곡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롤모델이라 할 만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역사적 사실과는 큰 관계가 없는 것과 달리, 조선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시각이 영화의 스토리의 중심축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화도 회군에 반대하는 고려군 무관 장사정(김남길)이 산적이 된 후 사라진 조선의 국새를 찾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보니, 영화에는 이성계를 일방적으로 찬탈자로 규정하고, 이성계의 4불가론을 악의적으로 묘사하거나 숭유억불 정책을 비판하는 묘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반면에 속편인 <해적: 도깨비 깃발>은 역사를 활용함에 있어 전편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전편과의 연결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차별화된 매력을 더하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이는 역사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동시에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적절히 각색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번 영화도 기본적인 시대적 배경은 전편과 동일하다. 위화도 회군 당시 이성계에 반대하는 고려군 일부가 고려 왕실의 보물을 훔쳐 달아나자 해적과 관군이 이를 뒤쫓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해적 2>의 역사관은 전편과 상극이다. 보물을 백성들과 나누겠다는 무치가 고려냐 조선이냐 보다도 백성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시대적 흐름에 맞춰 조선 왕조를 인정하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이는 전편의 역사왜곡 논란을 답습하는 대신, 이야기를 발전적으로 계승함과 동시에 속편으로서의 정체성도 챙겨가는 영리한 작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간 사극에서 두드러지지 않았던 한반도 본토와 탐라국의 이중적인 관계를 적절히 이야기에 녹인 결과 자칫 전편의 반복에 그칠 뻔했던 영화는 새로워지고, 악역인 부흥수도 평면적인 악역을 탈피한다. 본래 독립 국가였던 탐라국은 고려 중기에 복속되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세습 '성주'가 존재하며 일정 수준의 자치권이 허용되는 등 고려의 속국이자 동시에 독립국가인 이중적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고려 말 '목호의 난' 진행 과정에서도 목호 측과 고려 진압군 측 모두 명목상 탐라의 지배자인 탐라 성주를 회유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조선 태종 시기에 탐라국은 그간 고씨와 양씨가 세습한 탐라의 성주 및 왕자의 명칭을 조선 조정에 반납했고, 제주도로 명칭이 바뀜과 동시에 조선의 행정구역에 온전히 편입되었다. 영화는 이러한 관계의 변화를 고려의 보물을 찾아주는 대가로 태종 이방원에게 탐라국의 왕을 요구한 부흥수 모험의 성공 여부와 연관시키면서 부흥수라는 캐릭터와 전체적인 전개에 무게감을 불어넣는다. 이는 고려-조선 교체기가 안정되어 가는 과정을 영리하게 각색한 또 하나의 예시라 할 수 있다.
다만 상술한 변화 내용을 <해적: 도깨비 깃발>이 적절히 부각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이 문제가 전편의 단점이 개선되지 않은 결과라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욱 크다. 우선 완성도와 대중성 중 후자를 선택한 결과 <해적 2>에는 전반적인 이야기를 뒷받침할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이는 배우의 <런닝맨>에서의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해 유머를 전담한 '막이(이광수)'에 비해 눈에 띄게 적은 부흥수의 분량만 봐도 알 수 있다. 작중 부흥수가 탐라국의 왕위를 요구하는 이유나 당위성 등이 암시될 뿐 명시적으로 제시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타율 좋은 유머로 잡은 대중성마저 더 많은 잠재력을 희생시킨 결과물처럼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영화가 전체적으로 익숙한 형식과 장면들로 무장했다 보니 변화를 준 대목이 진부함에 가려지는 문제도 있다. 일부 주인공의 성별이 바뀐 것을 제외하면 1편과 2편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 거의 일 대 일로 똑같이 일치한다. 산적이었던 이들이 천신만고 끝에 해적에 합류하고, 하나 된 일행이 벽란도를 거쳐 본격적으로 모험에 나서는 등의 전반적인 흐름도 천편일률적이다. 이에 더해 거대한 물회오리를 뛰어난 선장의 역량으로 돌파하는 것이나 물에 잠긴 배가 솟구치는 것 등은 <캐리비안의 해적>과의 유사성이 두드러지는 대목으로, 시각에 따라 재해석 또는 빈약한 상상력의 현현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보물을 찾기 위해 또 다른 힌트를 먼저 찾아야 하는 식의 스토리는 새로운 캐릭터들에게 감정을 이입할 여지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과하게 빠른 영화 템포와 편집을 만나 영화의 이해를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적: 도깨비 깃발>은 싫어할 수 없는 영화다. 한국의 <캐리비안의 해적>을 표방하는 시리즈답게 액션 영화와 어드벤져물로서의 정체성이 확실해서 보는 재미만큼은 보장하기 때문이다. 액션의 경우 <300> 시리즈나 <안시성>에서 보았던 것처럼 슬로모션과 패스트 모션을 오가는 편집을 통해 맨몸 격투나 결투 장면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또한 전편과 달리 바다와 섬의 비중을 늘려서 '해적'이라는 콘셉트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대 이상의 재미를 주기도 한다. 일례로 덱스터 스튜디오의 CG 작업을 통해 탄생한 바다의 용을 연상케 하는 불기둥, 급작스럽게 폭풍우가 내려치는 번개섬 등에서 사투를 펼치는 해적선과 선원들의 모습은 단지 고질적인 음향 문제가 발목을 잡을 뿐, 충분히 훌륭한 스펙터클이다.
이에 더해 전편의 주인공들과 비교당할 수 있었던 새로운 캐릭터들을 '지도자'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어내면서 극의 중심을 확실하게 잡은 선택 역시 영리했다. 해적단의 단장인 해랑과 의적단의 두목인 무치가 한 배에 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만큼, 자연히 영화는 누가 해적선의 리더가 될 것인지를 다룰 수밖에 없다. 이때 영화는 세부적인 플롯들을 통해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죽을 수 있는 위기에서도 부하들을 포기하지 않는 해랑과 그녀를 마지막까지 따르는 해적들의 끈끈한 우애는 리더로서의 포용성을 강조한다. 또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도덕성과 인간성은 과거 고려군 소속으로 상사와 부하였던 무치와 부흥수 간 갈등과 두 리더의 차이를 부각할 기회가 된다. 심지어 늘 무시당하는 말단 부하였던 막이가 해적왕이 되는 과정은 다소 과할 수도 있었던 영화의 유머마저 지도자의 자질과 자연스럽게 이어 붙여 준다.
사실 설 명절을 앞두고 개봉하는 <해적: 도깨비 깃발>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작품이었다. 흥행은 성공적이었으나 호불호가 갈렸던 전편의 평가는 속편의 안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심지어 출연진이 전부 바뀌어 이야기의 연속성이 사라진 만큼 시리즈의 후광을 기대하기 힘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만나 본 <해적: 도깨비 깃발>은 충분히 기대 이상이라 할 만한 작품이었다. 여전히 완성도는 부족했지만, 장르 영화다운 쾌감을 즐기지 못할 장애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또 전편의 실수까지도 역이용해 시리즈로서의 연결성을 확보하며 색다른 재미와 감상 포인트를 선사하는 데 성공한 점 역시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해적: 도깨비 깃발>은 준수한 장르영화로서 오락의, 오락에 의한, 오락을 위한 출항 준비를 모두 끝마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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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cceptable, 무난함)
전편으로부터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 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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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이 전부인 영화 5선
스포주의 | 절대 잊혀지지 않는 영화 결말이 있나요?
오늘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라스트씬의 대사들을 선정해왔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는 어떤 대사들이 남아있나요?
전 세계가 사랑한 거장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그 위대한 꿈의 시작! 난생 처음 극장에서 스크린을 마주한 순간부터 영화와 사랑에 빠진 소년 ‘새미’(가브리엘 라벨). 아빠 ‘버트’(폴 다노)의 8mm 카메라를 들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담기 위해 열중하던 새미는 우연히 필름에 포착된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고 충격에 휩싸인다. 진실을 비추는 필름의 힘을 실감한 새미에게 크고 작은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엄마 ‘밋지’(미셸 윌리엄스)의 응원으로 영화를 향한 열정은 더욱 뜨거워져만 가는데…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 영화의 모든 순간과 사랑에 빠진다!
5년동안 무고하게 감옥에 있었던 빌리 브라운(Billy Brown: 빈센트 갈로 분)은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1만 불짜리 내기에 지는 바람에 그와 같은 쪽에 내기를 걸었던 사람들 대신 감옥에 들어갔다. 그는 냉혹하고 폭력적인 사내다. 그래서 자신의 불행을 내기 경기에서 진 스코트 우드(Scott Wood: 봅 왈 분) 탓으로 생각한다.
빌리는 한 가지 생각, 복수밖에 없다. 빌리는 부모에게 전화를 건다. 빌리의 부모는 그가 감옥에 있었던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들은 아들 빌리와 빌리가 편지에서 자랑했던 새신부 웬디(Wendy: 로산나 아케트 분)를 몹시 보고 싶어한다. 혼자 갈 핑계가 궁해진 빌리는 댄스 연습장에서 나오는 젊은 댄서 라일라를 발견한다.
그는 그녀를 잡아서 강제로 차로 밀어 넣은 다음 자신의 아내 노릇을 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한다. 이 우울하고도 낯선 남자에게 겁을 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매력을 느끼는 라일라는 그의 뜻에 따르기로 한다. 막상 집으로 갔으나 스포츠광인 어머니와, 잔인하고 우울증에 빠진 아버지는 빌리에게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반면 라일라는 빌리의 부모에게 즉각적으로 애정을 불러일으킨다. 라일라는 자신의 역할을 열정적으로 연기하면서 인질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잡는다. 빌리는 옛친구 군(Goon: 케빈 코리건 분)에게 전화하고 군은 스코트가 그 지역의 스트립쇼 극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빌리와 라일라는 부모의 집을 떠나 한 더러운 모텔에 투숙한다. 빌리가 아침이면 떠날 것을 아는 라일라는 그에게 함께 목욕하도록 설득한다.
그들은 서로의 품안에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밤을 보낸다. 다음 날 빌리는 스트립쇼 극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스코트를 찾는다. 빌리는 스코트가 한물 간 술주정뱅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자신처럼 외롭고 지친 사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빌리는 스트립쇼 극장에서 걸어나가면서 생애 처음으로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 라일라.
“나는 완벽했어요.” 새롭게 해석된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순수하고 가녀린 백조와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흑조, 1인 2역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프리마돈나 ‘니나’. 완벽을 향한 그녀의 욕망은 집착이 되어가고 모두 자신을 파괴할 것 같은 불안감이 깊어질수록 점차 어두운 내면이 드러나는데… 흑조를 탐한 백조의 핏빛 도발이 다시 시작된다.
트루먼 버뱅크는 작고 조용한 섬마을에 사는 평범한 세일즈맨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범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촬영용 조명등이 떨어지고, 어렸을 적 자신이 익사를 직접 목격했던 아버지가 살아오고, 또 누군가에 의해 끌려가는 등 상식 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나서부터였다. 평생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지냈던 일상이었지만 주변을 보니 이상한 일이 너무 많았다. 결국 자신이 특별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확신을 하게된 트루먼은 첫사랑 실비아의 모든 것이 다 거짓라는 말을 되새기며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결심하게 되는데...
모두가 기다리던 여름방학. 하지만 마사오는 전혀 즐겁지 않다. 할머니는 매일 일을 나가시느라 바쁘고 친구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다나 시골로 놀러 가버려 외톨이가 되었기 때문. 어느 날 먼 곳에 돈을 벌러 가셨다는 엄마의 주소를 발견한 마사오. 그림 일기장과 방학숙제를 배낭에 넣고 엄마를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친절한 이웃집 아줌마는 직업도 없이 빈둥거리는 전직 야쿠자 남편 기쿠지로를 마사오의 보호자로 동행시킨다. 왕복 600km의 여정. 그러나 그 여행은 마사오도 기쿠지로도 잊을 수 없는 생애 최고의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는데... 52세 철없는 어른과 9세 걱정많은 소년. 그들이 마침내 찾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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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하게' 유쾌한, 어떤 바다 위의 풍자극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해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그렇게 호평이 자자하던 <슬픔의 삼각형>을 보고 왔다. 이 영화는 정말이지 '지독하고' '통렬하며' '유쾌한' 풍자극이다. 여러 각도에서 인간 사회의 모순을 꼬집으면서 재미까지 모두 담보했다고나 할까. 한없이 가벼운듯하면서도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무겁다. 막이 내리면, 이 영화를 끝없이 곱씹게 되는데, 이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대단한 인상을 주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크루즈와 무인도 씬들은 무더운 여름날(이제 여름이나 다름없다!)에 보기에 아주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에서는 몇 가지 관람 포인트를 소개하겠다.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1. 변화무쌍한 주인공의 지위
주인공인 '칼'의 지위 변화는 정말이지 흥미롭다. 직장, 여자친구 앞, 크루즈, 그리고 섬에서 그는 모두 제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칼은 떵떵거렸다가 빌빌 기고, 빌빌 기다가도 큰 소리를 친다. 어라, 이런 남자, 이런 사람. 우리 주변에도 즐비하다.
그의 이러한 변화는 그가 처하는 환경에 기인한다. 그가 상대하는 다른 사람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들의 연결고리를 잘 살펴보는 것은 영화의 이해와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2. 대사에 주목하라: 말이 씨가 되는 법
이 영화 속의 대사와 장면 하나하나는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다. 가장 첫 장면부터 가장 마지막 장면까지! 촘촘하게 연결된 인간 사회에서 갑의 작은 진상짓은 처참한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키고, 그러한 나비효과는 이윽고 전복적인 결말에 이르곤 한다. 재미있는 것은, 갑들은 언제나 자신이 갑질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거다! 이 안의 다양한 '갑'들의 대사와 그들의 행위에 주목하라. 그리고 그들이 어떤 나비효과를 낳는지를 관찰해보라.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모순되었는지를 알아차려 보라!
3.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풍자적 비유들
소위 '갑'의 갑질로 의해 배가 뒤집힌다든가, 걸어가는 백인 부자 손님들이 등장한 바로 다음 씬에 바닥을 닦거나 '보이지 않는' 직원실에 숨어서 개미처럼 일하는 유색인종 직원들의 모습 등은 아주 효과적이고 알기 쉬운 방식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낸다. 이러한 장면적 연출들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리라.
아, 주의해야 할 것도 있다.
이 영화는 시원하면서도 지독하다. 문자 그대로, 아주 원초적인 방식으로 지저분한 씬들이 나오기 때문에, 비위가 많이 약한 사람이라면 몇몇 장면에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보러 가고 싶다. 여러분도 한바탕 크루즈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저 멀리, 바다의 한복판에서 우리 삶의 또다른 단면을 되돌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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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저튼>, 성(sex)에 무지한 우리들
성(sex)에 대한 의혹, 두려움, 거부감 이런 것은, 많은 작품 속에서 <나 자신 조차 내가 진정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모습>,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모습에 대해서는'진짜’가 아니라고 여기면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 등으로 나타나곤 한다.
결국 ‘성(sex)’에 대한 의혹이나 거부감, 두려움 등은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나는 나의 소망에 따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나의 선택은 내가 제대로 나의 소망을 보지 못하고, 제대로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등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래서, 성에 대한 의혹이나 두려움, 거부감 등을 가진 인물들은 작품속에서 종종 상대방과 계약관계를 맺거나, 가짜 연극 무대를 펼쳐 주변 사람들을 눈속임하려고 한다.
자기 자신 조차 스스로를 속이고 있거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들은 쉽게 '계약 결혼, 계약 연애', '~하는 척'하는 거짓 연극을 쉽게 시작한다.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
'성에 무지한 처녀'의 원형적 캐릭터를 간직한 여주인공 '다프네', 전형적 난봉꾼이자 잡놈의 캐릭터를 간직한 남주인공 '사이먼', 이 두 사람 간의 '계약연애'는 성에 무지하고 성에 대한 두려움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두 사람이, '성'을 매개로 진짜 자기 자신의 소망을 깨닫고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이먼과 다프네
<브리저튼>은 '성에 대한 의구심과 두려움의 극복, 성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곧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문제, 나의 진짜 소망을 왜곡없이 들여다보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이먼과 다프네의 관계가 '가짜'에서 시작하여 '진짜'가 되기까지, 이 작품은 ‘성(sex)'이 갖는 두 가지 측면, 즉 <착취와 억압의 매개가 되기도 하는 속성>과 <사랑과 생명의 근원이 되는 속성> 모두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이먼
사이먼은 ‘성(sex)'이 갖는 부정적 측면, 왜곡된 틀에 갇혀 있던 인물이다. 성을 착취와 억압의 도구로만 여긴다. 그것이 갖고 있는 생명근원적 힘, 사랑의 힘은 보지 못했다. 이 또한 성에 대한 두려움과 의구심, 의혹의 문제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누구보다 성(sex)을 잘 안다고 자부했을 잡놈같은 인물이었으나, 사실 그 누구보다 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성에 무지한 존재였다.
다프네
다프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성’에 대한 그녀의 무지, 두려움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선택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똑부러지고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으나, 정작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진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없었다. 그녀의 성에 대한 무지는 '가짜'를 '진짜'로 믿게 만든다.
성(sex)을 통해 성의 긍정적 속성을 새롭게 깨달아 나가는 두 사람
성에 대한 왜곡, 성에 대한 무지는, 사이먼과 다프네가 진짜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성에 대한 왜곡과 무지는 바로 이 성(sex)을 통해서만이 극복할 수 있었다.
유독 두 사람의 정사 장면이 화제가 된 <브리저튼>. 이는 두 사람 관계가 가짜에서 진짜가 되기 위한 필수 관문이었다. '성'에 대한 왜곡과 무지를 바로 잡을 수 있었던 시간. 가짜에서 진짜가 될 수 있었던 시간.
나 자신이 진짜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의 선택이 나의 소망에 따른 것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종종 그 소망은 ‘가짜‘, ‘거짓‘, ‘~하는 척'이기도 하다.
여러 작품 속 '계약 연애', '계약 결혼' 같은 설정이 종종 나온다. <브리저튼>도 그렇다. 계약연예로 시작한다. ~하는 척, 가짜로 시작한 관계이다. 이 '계약 관계(연기하기)'의 설정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실제 모습과 많이 닿아 있다. 진짜 나의 모습은 감추고, 진짜 나의 소망은 억누르고, 진짜 나의 모습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짜 소망이나 가짜 모습을 내세워서 관계를 맺는 것!
그러한 관계는 십중팔구 ‘지속'에 실패하게 된다. 결국 수많은 작품들은 말한다.
“내 안의 감추어진 소망이 드러나고, 나 스스로 그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한 진짜 인생은 시작될 수 없다고!"
수많은 작품 속에 '계약 연예', '계약 결혼' 또는 '~하는 척 하는 가짜 연극판' 같은 설정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단번에, 자신의 진짜 소망을 알아차리거나 받아들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자신 조차도 자신을 속이기가 쉽기에! 나 조차도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잘 모르기에!
다프네와 사이먼은,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하는 척'하는 '가짜 연극 무대'를 거치면서, “진짜”를 발견하게 된다. 그 지점에서부터 “진정한 관계의 지속”도 가능해진다! 더 이상 연극이 아닌! 진짜 자기 인생 속 진짜 관계가!
우리 모두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연기’하는 과정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단계일지도!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나의 진짜 소망을 안전하게 탐색할 수 있는 <가짜 판>, <연극무대>가 필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문학 행위 자체가 (문학을 감상하고 체험하고 생산하는 그 모든 행위가) 우리에게 일종의 안전한 <시뮬레이션> 판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남기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이야기를 교류하는 모든 행위가! 한결 안전하게 감추어진 나의 진짜 욕망, ‘진짜 나’의 모습을 탐색할 수 있는 판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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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웨일' 리뷰
마케팅은 영화의 성패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명한 감독이 연출했거나 스타 배우가 출연한 영화라면 마케팅 담당자들의 고민은 꽤 가벼워질 것이다. 영화 <더 웨일>은 독자적인 필모그래피를 구축해 온 세계적 거장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이름 대신 영화의 주연을 맡은 브렌든 프레이저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가 출연한 영화 <미이라>의 대성공 이후 많은 사람들이 '한물간 백인 꽃미남 스타 중 한 명'으로 기억하고 있는 브렌든 프레이저. '그의 연기가 대체 얼마나 놀랍길래 그를 중심으로 영화를 홍보하는 것일까?' 영화 <더 웨일> 개봉 소식과 홍보 포스터를 처음 접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더 웨일>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272kg의 거구로 세상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대학 강사 ‘찰리(브렌든 프레이저)’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느끼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10대 딸 ‘엘리(세이디 싱크)’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매일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초고도비만 캐릭터로 분장한 브렌든 프레이저로 가득 찬 포스터와 시놉시스를 보고 난 후에 이 영화는 주연의 연기가 실패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확신이 들었다. 조연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주인공 '찰리'의 1인극 성격이 강할 것이고, 공간의 변화가 거의 없어서 연극처럼 느껴질 것이고,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나 <맨 프럼 어스(The Man From Earth)> 같은 몇몇 실내극 영화가 보여 주었던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라면 관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한 상태에서 그의 마음을 조심스레 따라갈 수 있어야 영화적 체험을 했다고 느낄 것이 분명했다.
'엄청난 분장에 비해 브렌든 프레이저의 연기가 별로면 어떡하지?'라는 필자의 걱정이 기우로 판명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철까지 활용해 완성한 아주 사실적인 272kg의 거구 분장보다 브렌든 프레이저가 연기한 '찰리'의 커다란 두 눈동자에 바로 빨려 들었기 때문이다. 거구 캐릭터는 현대인의 수많은 정신적 장애 중 하나인 식이 장애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영화의 제목인 '고래(The Whale)'를 주인공의 신체를 통해 시각화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
실제 몸에 육중한 지방 덩어리들이 붙어 있는 것처럼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모습도 압도적이지만 적절한 시점에 흔들리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눈동자, 섬세한 오디오 감독이 조율한 듯 상황에 맞게 커지고 작아지는 성량 등 브렌든 프레이저는 '찰리'의 몸이 아니라 그의 눈과 표정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좋은 연기를 보여 준다. 덕분에 찰리와 엘리의 부녀 관계, 찰리와 리즈(홍 차우)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감정의 물결에 올라탈 수 있었다.
영화 <더 웨일>은 브렌든 프레이저의 빼어난 연기에 가려져서는 안 될 중요한 질문들을 품고 있다. 성경 구절과 함께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월트 휘트먼의 시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 등 미국 현대문학의 중추적 작품들이 언급되면서 '한 인간 혹은 종교가 누군가를 구원하는 것이 가능한가?', '창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함과 진실성인가?', '죽음 앞에서 우리가 세상에 남기고 갈 수 있는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등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관객에게 건넨다.
동명의 연극이 원작인 영화 <더 웨일>은 고전적인 4:3 비율의 화면 속에서 유려한 촬영과 편집, 고래 울음소리 같은 음악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문학이나 연극과 차별화된 영화만의 예술적 가치를 상기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전작 <블랙 스완>의 엔딩 신처럼 눈부신 하얀빛으로 채워진 <더 웨일>의 엔딩 신을 보고 난 뒤 주인공 '찰리'의 마지막 도약이 진짜처럼 느껴진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찰리'라는 고래의 아름다운 마지막 꿈을 진심으로 응원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이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지난 2월 23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진행된 <더 웨일>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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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 많은 소녀
죄 많은 소녀
충격적인 영화다. 주제, 배우의 연기, 감독의 연출 모두 예사롭지 않을 뿐 아니라 탁월하다. 저예산 독립영화의 작품 수준이 이 정도라면, 한국영화는 가능성과 희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해도 좋겠다.
여자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한 여학생의 자살 사건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살해하는가'에 관한 핍진한 관찰 기록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관객의 심리를 건드린다. 그것은 배우들의 연기 뿐 아니라 음악, 음향, 인물들이 놓여 있는 극단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도록 한다.
경민이 실종되고, 담임 선생과 형사들은 전날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를 불러 경민의 실종에 관해 묻는다. 학교에 오지 않은 경민의 부재를 보면서, 영희도 마음 속에 한가닥 불안함이 꿈틀거리는데, 담임과 형사는 경민의 실종에 영희가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질문한다.
영희는 억울하다. 형사는 영희와 친하게 지내는 한솔을 불러 영희와 대질 심문을 한다. 한솔은 영희가 경민에게 '죽을 용기도 없는 게...'라는 말을 했다고 말하면서 영희의 말이 경민의 실종 또는 자살을 부추기는 말을 했을 거라는 의미로 말한다.
영희는 사실을 말하지만, 이때까지 관객은 영희와 한솔의 진술 가운데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영희의 태도는 자칫 도도하고 건방져 보이기도 하고, 담임을 비롯한 학교의 선생과 경민의 부모는 경민이 아무 이유없이 실종되거나 자살할 아이가 아니라고 믿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가장 만만한 아이가 영희였다. 실종 전날 밤 늦게까지 함께 있었고, 경민의 가방과 신발이 발견된 장소 부근에 있는 CCTV를 모두 조사한 결과, 경민이 다른 누군가에게 해를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밝혀졌다. 그렇다면 경민과 마지막까지 있었던 영희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경민이 실종 또는 자살한 것일까를 선생들과 형사들은 구체적으로 알아야만 했다.
영화에서 경민은 자살한 것이 확실하다. 다만, 경민이 왜 자살했는가에 관한 이유나 암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아니, 나중에 경민의 시신이 발견되고, 모든 사람들 - 선생들, 형사들, 심지어 같은 반의 친구들도 - 이 영희를 의심과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면서, 영희도 억울함을 벗어나려고 자살을 기도한다.
영희가 병실에서 겨우 회복하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찾아와 경민의 집에서 유서를 발견했다고 알려준다. 즉, 경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유서를 쓰고 자살한 것이며, 영희가 함께 있었던 날은 우연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선생들과 같은 반 친구들은 - 그들 가운데는 영희의 집으로 쳐들어가 영희를 린치한 몇 명의 같은 반 친구들도 있었다 - 경민이 영희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상황이 분명해지는 순간 모두 태도를 바꾼다. 영희를 의심하고 비난하던 친구들이 다정한 태도로 영희의 건강을 걱정하고, 병문안을 오며, 기꺼이 어려운 일을 돕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같은 세대의 갈등은 봉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경민의 자살에 영희보다 더 책임이 있는 사람은 '한솔'이었다. 영희와 가까운 친구였지만, 영희가 경민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질투를 느끼고, 영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이다. 한솔은 영희가 병원에 있을 때 찾아가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사과한다. 영희도 한솔을 안아주고 입맞춤을 하는데, 이 영화에서 동성애 코드를 넣은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희와 한솔은 화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말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영희를 괴롭히는 또 한 사람은 경민의 엄마다. 경민이 자살한 직접적 원인은 알고 보면 그의 부모에게 있다. 경민의 부모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어떻게든 원인과 책임을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그래서 경민의 유서가 발견되었음에도 영희의 병실을 찾아와 영희를 괴롭힌다.
처음부터 영희의 말을 믿지 않았던 선생들과 형사들, 경민의 엄마는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경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물으려 하고, 없는 죄를 덮어 씌우려 했던 기성세대에게 영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는 '자신의 죽음'이다. 그래서 영희는 표백제를 먹고 자살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실패한 죽음 이후에도 영희는 끝없이 자살을 궁리한다. 이때 두번째 자살은 명백한 의도와 목적을 갖는다.
영희가 경민에게도 말했듯, 지금과 같은 의미 없는 삶이라면 사는 것과 죽는 것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고등학생은 가장 고통스러운 세대다. 이미 유치원,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에서는 암기식 수업을 해야 하고, 여러 개의 학원을 다니며 밤낮 없이 공부, 공부, 공부만 하는 지겹고 역겨운 나날이 무려 12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여기에 부모의 무관심(경민), 가난(영희)과 같은 외부적 환경까지 겹치면서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은 우울하고 괴로운 심리상태가 된다. 청소년들을 이렇게 망가뜨리고, 질식시킨 건 기성세대인데, 정작 그 기성세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영희는 그런 기성세대를 보면서 환멸과 증오의 감정이 차갑고도 날카롭게 솟아나는 걸 느낀다. 영희는 한솔과 함께 경민의 엄마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한다. 자기(영희)는 경민이 왜 죽었는지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경민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이면 내(영희)가 왜 죽었는지 사람들이 당신(경민 엄마)에게 물어볼 거다. 그때 내 죽음에 대한 이유나 잘 대답하길 바란다.
즉, 영희는 경민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추악한 책임전가를 그대로 경민 엄마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앞부분에서 경민의 죽음을 두고 선생들, 형사들, 경민 엄마는 영희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한솔은 그 장면을 보면서 침묵한다.
이제, 영희가 죽게 되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경민 엄마가 되고, 그 옆에 한솔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 드러난다. 형사와 사람들은 영희의 죽음에 대해 경민 엄마에게 물을 것이고, 한솔은 역시 침묵할 것이다. 경민 엄마는 당연히 영희의 죽음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을 것이며, 한솔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도 사과할 대상이 사라지고, 죄책감은 무겁게 그의 삶을 짓누를 것이다.
처음부터 경민의 죽음은 기성세대가 만든 원죄의 결과이며, 기성세대가 저지른 타살이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같은 세대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워 책임을 전가한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과 억울함이 기성세대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게 되고, 기성세대에 대한 복수는 자기 자신을 죽임으로써 완성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김의석 감독은 이 작품이 장편 데뷔작인데,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서 연출부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대부분이 여성이어서 여성의 심리, 세부적인 생활 모습을 보면서 여성 감독인 줄 알았는데, 남성 감독이어서 놀라웠다.
영희가 형사에게 추궁당하고, 마치 범인인양 낙인 찍히고 나와서 화장실에 앉아 생리대를 보는 장면은 영희의 심리와 이 영화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영희는 죽을 만큼 억울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것은 하혈인 것처럼 보이는 다량의 생리혈을 보여줌으로써, 영희가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는 걸 관객이 느끼게 한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굴다리를 향해 걸어가는 영희는 중간에 잠깐 멈추고, 뒤를 돌아볼 듯 하다 다시 걷는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굴다리 안쪽을 향해. 영희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게 있었을까. 성대를 다쳐 말을 하지 못하는 신세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뱉어내지 못한다. 그의 침묵은 죽음보다 무겁다.
배우 전여빈의 연기는 마치 '곡성'에서 어린이 배우 '김환희'의 연기와 비교할 수 있다. 그만큼 처절하고 극적이다. '영희'는 자존감도 있고, 자기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청소년이지만, 그 모습이 기성세대에게는 건방지고 불편하게 보인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신세대를 길들이려는 기성세대의 어리석은 모습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억울한 심정을 꾹꾹 눌러 참으며, 자신을 죽임으로써 기성세대에 복수하겠다는 영희의 태도는, 죽을지언정 기성세대에 굴복하거나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태도이며, 기성세대가 저지른 죄를 자신의 죽음으로 고발하겠다는 자기파괴적 행동이 극단적으로 보여도 그같은 방법 밖에는 가지지 못한 약자의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영희'는 기성세대가 키운 훌륭한 신세대지만, 결국 기성세대가 죽인 신세대이기도 하다. 아니, '영희'는 기성세대가 키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잘 큰 신세대였고, 그를 죽인 기성세대는 오만하고 건방지며, 비겁하고, 야비한 존재였음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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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위도우 #스칼렛요한슨 #어벤져스
2021. 07. 08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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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6 별점 및 한 줄 평
07:35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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