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11-27 07:33:21
한국 여성 스포츠 영화의 유의미한 변곡점
영화 〈모래바람〉
근래 개봉한 한국의 여성 스포츠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야구소녀〉였다. 여성 야구 선수가 남성들이 절대 다수인 야구판에서 2군 프로 무대에 데뷔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영화다. 주인공 수인의 진심과 도전, 그녀를 ‘여성’이 아닌 ‘야구인’으로 대하는 소수의 남성 친구와 코치, 그들과 수인의 관계성 등이 매력적인 영화였다. 〈모래바람〉은 한국 여성 스포츠 영화 계보에서 또 하나의 유의미한 변곡점이 될 만한 영화다. 두 영화를 비교해보면 그사이 프로 여성 선수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념과 지향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다.
〈야구소녀〉에는 계보가 없다. 수인은 늘 최초고, 혼자다. 그러나 〈모래바람〉에는 계보가 있다. 20년간 여자 씨름 선수로 활약해온 선수가 있고(송송화), 모든 선수가 하나같이 ‘우상’, ‘전설’로 꼽는 절대적 강자(임수정)가 있다. 그리고 이들을 목표로 땀 흘리며 도전하는 후배 선수들(양윤서, 김다혜, 최희화)이 있다. 영화는 1999년 여자 씨름 선수 등록이 가능해진 이후부터 쌓여온 여자 씨름 선수의 계보를 담아낸다. 여성 스포츠 영화에서 계보는 대체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같은 예외적 선례가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여성 스포츠 영화는 계보가 없는 상태에서 사회의 편견과 자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에 몰두하는 선수 한 명에게 주로 카메라의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이제 여성들은 홀로 고군분투하지 않는다. 여성들에게도 롤 모델이 있다. 그것도 끝내주는 커리어를 가진 롤 모델이.
계보 ‘있음’은 땀 흘리는 여자들이 맺는 유대의 근거이기도 하다. 역시 〈야구소녀〉에는 없던 것이다. 동료인 동시에 라이벌인 여자 씨름 선수들은 서로를 격려하면서도 경쟁에는 모든 것을 건다. 다른 수많은 남성중심적 언어와 마찬가지로, 스포츠‘맨’십이라는 표현 역시 새로운 대체 용어를 고민해봐야 한다.
나이가 들어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선수들의 존재도 〈야구소녀〉에는 없고 〈모래바람〉에는 있다. 20년 동안 선수로 활약한 후 은퇴한 송송화는 현재 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심판과 코치에 도전하고 있다. 여자 씨름으로의 진입을 꿈꾸는 어린 여성에게 20년간 선수로 활동한 사람의 존재는 그 자체로 용기를 줄 수밖에 없다. 여자 씨름판의 GOAT인 임수정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언제나 당연히 1등이었던 임수정이 후배들의 도전에 왕좌를 빼앗기는 상황에서 그녀가 느끼는 부담과 좌절의 순간을 밀도 있게 담아낸다. 부상과 기량 하락의 악조건 앞에서도 관성에 젖어 운동하기를 거부하고 칠전팔기 끝에 마침내 정상에 다시 오르고 마는 그녀의 이야기는 송송화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여성 씨름인들이 꿈꿀 수 있는 다양한 미래의 가능성을 펼쳐낸다.
〈모래바람〉에 〈야구소녀〉에는 없는 요소가 있다는 말이 전자가 후자보다 낫다는 말은 아니다. 각자의 완성도를 갖춘 두 영화는, 다만 그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실감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핵심은 더는 ‘독고다이’할 필요가 없다는 것. 계보와 동료가 있는 여성 선수들은 서로에게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가늠해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의 고민을 나누며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최근 여성 생활 스포츠인이 크게 늘었다. 〈골 때리는 그녀들〉, 〈무쇠소녀단〉처럼 아마추어 여성 스포츠인들이 동료들과 함께 도전하는 방송도 잇따라 제작되었다. 그러니까, 〈야구소녀〉에서 〈모래바람〉으로의 여정은 여성 스포츠인, 나아가 모든 여성이 함께 만들어온 변화를 대변한다.
송송화는 씨름 선수인 동시에 주부, 엄마, 아내, 며느리였다. 임수정은 지금도 ‘시집은 언제 가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여성이자 씨름 선수로서 이들은 종종 모순된 요구를 동시에 받았지만 동료들과 함께 ‘씨름하며’ 자기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은 이제 모든 여성 씨름 선수의 길이 되었다. 〈모래바람〉은 씨름판에 카메라를 줌인하여 사회 변화의 커다란 흐름을 가늠케 해주는 영화다. 스포츠 영화의 쾌감과 시의성을 고루 갖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감각하게 해주는 영화인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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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책 한 권이 촉발한 사회적 패닉
사탄의 부름(Satan Wants You)
메리 고 라운드 부문
숀 홀러, 스티브 J. 아담스 감독
Canada/2023/90min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80년. 미국에서 《미셸은 기억한다(Michelle Remembers)》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미셸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어린 시절사탄 숭배자들에게서 14개월간 학대되었다는 게 요지였다. 동물을 잔인하게 도살하는 장면을 강제로 목격하게 하고, 죽은 태아를 숭배 의식에 활용하는 등 미셸의 폭로는 끔찍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책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미셸은 그녀의 상담가이자 책을 함께 쓴 로런스와 투어를 다니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억을 들려줬다. 아버지의 폭력과 방치에 지친 어머니가 사탄 숭배자였고, 미셸을 단체에 넘겼다는 사실은 이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러나 미셸의 폭로와 ‘성공’을 다루던 영화 〈사탄의 부름〉은 이내 방향을 튼다. 주지하다시피, 지금은 누구도 당시 미 전역을 들썩였던 사탄 숭배자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도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사탄 숭배 범죄는 실재했을까? 〈사탄의 부름〉을 따라가 보자.
미셸과 로런스가 화제가 되자 자신도 미셸과 같은 사탄 숭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심지어 한해 200만 명의 아동이 사탄 숭배자들에게 납치되어 희생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사탄 숭배 집단은 그만큼 핫한 이슈였다. 그러자 일부 상담가와 정신 건강 전문가들이 지금이 기회라는 듯 자신이야말로 사탄 숭배 전문가라고 나섰다. 사탄을 판별하는 ‘자격증’까지 생겨났다. 일부 경찰은 ‘주님의 경찰’을 자처하며 사탄 숭배 범죄를 소탕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즉, 사탄 숭배 퇴치는 거대한 시장, 문화적 현상이 되어 공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요컨대 미셸과 로런스의 ‘사탄 공포’ 장사는 ‘대박’을 쳤다.
사탄 몰이는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사탄 숭배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별 의심 없이 낙인찍었고, 사법체계 역시 이들을 재빠르게 처벌했다. 아동 학대 사건의 두터운 사회적 맥락은 소거된 채 모든 것이 사탄 숭배자 탓으로만 단순화됐다. 사탄 숭배자들의 범죄 증언에 조금이라도 비판적 시각을 보이는 사람은 ‘사탄 숭배자’가 아니냐며 추궁받았다. 사탄 숭배라는 압도적 진실은 그 어떤 의심도 허용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 모든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영화는 《미셸은 기억한다》 신드롬이 환자의 취약성과 상담사의 야심이 결탁한 결과, 그리고 이를 선정적으로 소비한 사회의 합작품이라고 말한다. 로런스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의사로만 남을 수는 없다고 고민하던 찰나 영화 〈악몽(Sybil)〉을 봤다. 어릴 적 끔찍한 학대의 경험으로 악몽을 꾸는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였다. 그러던 중 정신적 문제로 고통을 겪은 미셸을 소개받는다. 로런스의 머리가 번득인다. 로런스는 미셸의 고통과 자신의 야심을 교묘히 결탁해나간다. 미셸의 고통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씌워 이를 ‘사실’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미셸 역시 여기에 적극 동참한다. 정신적, 심리적 문제를 가진 환자에게는 의사의 관심과 흥미가 보상이다. 자신의 아픔을 인정받고 공감받고 싶은 환자는 의사들이 유도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기억을 왜곡할 수 있다. 둘 사이의 로맨스는 이 현상을 더 가속화했다. 이렇게 로런스와 미셸은 각각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과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을 교환해 시대를 풍미한 스캔들의 계기를 마련했다. 여기까지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 사건의 전모다.
〈사탄의 부름〉은 198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다룬다. 하지만 권한, 영향력, 돈을 갈망하는 사회적 관심 끌기의 문제는 당시 미국의 일만이 아니다. 《미셸은 기억한다》 유의 스캔들은 지금까지도 다른 형태로 수없이 반복되어왔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사람들의 감정이 어떻게 뭉치고 흩어지는지, 그 감정의 흐름이 기존의 권력 구조와 만났을 때 어떤 파괴적 효과를 자아내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통찰로 가득하다. 가톨릭교회는 이 사건을 사람들이 더는 신을 믿지 않는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활용하고자 했고, 언론은 그저 신이 나서 ‘사탄 숭배’ 보도를 이어갔으며, 공권력과 사법 체계는 극도로 무능하기만 했다. 사탄 숭배 비난이 보수적 도덕의 강화로 이어졌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단순히 과거의 흥밋거리를 다루는 것을 넘어 감정의 사회, 문화, 정치적 효과를 고민하게끔 하는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6월 29일부터 7월 9일까지 온오프라인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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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죽이는 나의 사랑, <피터 본 칸트>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터 본 칸트 Peter von Kant, 2022
프랑스, 드라마, 85분
감독: 프랑수아 오종
나를 죽이는 나의 사랑, <피터 본 칸트>
사랑은 난감하다. 입으로 소리 내어 발음하면 달콤한데,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땐 한없이 어렵다. 솔직한 만큼 씁쓸하다. 좋으면서도 아프고, 모르는 척해도 다 알 것만 같고, 낯설다가도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해진다. 영원한 사랑, 불멸의 사랑, 조건 없는 사랑, 헌신적인 사랑, 이기적인 사랑... 사람들은 틈만 나면 사랑에 조건을 붙인다. 그리고 누구나 사랑을 원한다. 사랑은 그 힘을 받아 스스로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변화해 인간의 외면은 물론 내면까지 바꿔 놓는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어 동시에 한계 없이 존재하는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이란 사실이다. 사랑은 개인의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 권력을 과시하고 무한한 힘을 발휘한다. 특별한 조건? 필요 없다, 나만 좋으면 된다. 그다음 당신도 좋다면, 난감해도 사랑이란 걸 할 수 있다.
결과는 각자 감당하면 되는 일이고.
<피터 본 칸트>엔 사랑이 쏟아진다. 말로, 눈으로, 손짓과 발짓을 포함한 몸짓은 물론이고 인물들의 침묵마저도 전부 사랑을 얘기한다. 무엇이 사랑이고, 사랑이 아닌지 구분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스토리가 품은 반전도 인물이 숨긴 배신도 아니다. 천재 감독, 피터의 파격적인 짝사랑과 절절한 외사랑, 그리고 모두를 죽이고 다시 피어날 끝사랑, 그야말로 '사랑'이다.
아주 사적인 피터만의 사랑, 영화 제목이 '피터 본 칸트'인 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얘기다.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다음)
쓰레기를 반복적으로 찍어내기 바쁜 할리우드(?)와는 다른 차원의 예술 작품을 만든다고 자부하는 영화감독 피터는 거대한 창이 세 개나 달린 저택에서 어시스턴트 칼을 두고 새 작품을 위해 대본을 집필 중이다. 하지만 그는 대본 집필에 열성적이지 않다. 자신의 성공을 질투해 끝나버린 사랑, 즉 이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층 예민해져 뭐든 듣고 보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칼에게 더 날카롭고 무례하게 이래라저래라 한다. 칼은 자신의 고용주를 남몰래 사랑한다. 피터를 향해 있는 칼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피터에겐 그냥 눈알 따위로 보이는 게 슬플 뿐이다. 해서 칼은 매일 무표정한 얼굴로 피터의 손과 발이 되어 집 안을 누빈다.
한때 자신의 뮤즈였던 시도니가 찾아오자 피터는 대본에 녹여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사랑에 대한 본인의 철학과 상념을 열정적으로 토해낸다.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술과 담배, 마약으로 본격적인 이야기 장을 만들고 각자의 사랑을 주고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너무나 개인적인 견해이자, 누군가의 생각으로 모두의 가슴에 와닿는 명언이 아니다. 딱 내뱉는 순간 흩어지는 물거품이다. 영양가 있고 포만감도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이 내쉬는 담배 연기만큼이나 가볍고 허하다. 마치 헛배가 부른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언제나 나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옳으며 진리라고 강조한다.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다음)
자신감 넘치는 시도니는 자부심까지 넘치는 피터에게 무명 배우 아미르를 소개한다. 방금 전까지 사랑을 험담했던 피터는 아미르를 보자 사랑에 빠진다. 이때의 카메라 동선이 흥미롭다. 피터와 아미르가 처음 만나 악수를 하는 장면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데, 그 찰나의 순간 피터의 눈이 반짝인다. <피터 본 칸트>는 아미르와 피터가 사랑에 빠지는 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선도 매우 간결하고, 무척 간단하다. 의미를 두지 않는 컷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래 음미하며 볼 컷도 아닌 것이다. 피터와 아미르의 사랑이 모두가 예상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미리 보여준 정도랄까.
피터는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 자존심, 자부심까지 전부 이용해 아미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감독과 연인의 위치를 능숙하게 바꿔가며 적재적소에 아미르에게 꿈과 사랑을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나의 차기작은 아름다운 너를 위한 영화이며 우린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정복도 할 수 있기에 반드시 함께 해야한다고 말한다. 무명 배우 아미르는 피터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아미르에게 요구되는 건 사랑뿐이고, 완벽하게도 그는 피터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었다. 그에게 사랑은 꿈을 위한 조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혼했고 아내가 호주에 살지만, 아직 세상에 자기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그에겐 가정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을뿐더러 최우선의 고민거리도 될 수 없었다. 반면 피터에게 아미르의 사랑은 삶의 연료로 필요했다. 전부와 일부의 줄다리기, 피터와 아미르의 사랑은 처음부터 다른 선상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길 위를 달린다.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다음)
먼저 식어버린 건 아미르다. 호텔 생활을 하는 아미르를 자기 집에 살게 한 피터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을이 된다. 아미르는 별다른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당연하게 갑이 됐다. 피터가 먼저 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미르는 피터의 헌신적인 사랑과 자신의 쌓여가는 업적으로 인해 소위 말해 버릇없는 애가 됐다. 자신이 모든 걸 조정할 수 있고, 뭐든 해도 괜찮다고 믿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귀중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된 것이다. 그와 같이 속물적이고 세속적이지만, 그보다 더한 것을 바라는 피터는 애원과 원망을 섞어가며 다시 아미르의 마음을 잡으려 한다.
아내를 만나러 가겠다는 아미르와 추잡스러운 몸싸움까지 벌인 피터는 자기 돈까지 건네며 흔한 연인의 사랑싸움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다시 그에게 이별, 아니 버림 이후의 시간이 온 것이다. 피터의 성공을 질투해 헤어지게 된 전 연인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피터는 늘 그런 유형의 사랑을 해 온 남자다.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상대의 일부만 갖는 그런 사랑. 그것이 자신의 예술을 돋보이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결국 피터는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집에 놀러 온 딸과 엄마 그리고 친구 시도니에게 분풀이하기 시작한다. 딸의 사랑을 콧방귀 뀌며 비웃고, 돈을 빨아먹는 기생충, 노력이란 걸 해본 적 없는 흉측한 늙다리 창녀, 할리우드 쓰레기나 찍는 배우라 욕하며 마지막까지 아미르의 전화를 기다리다 쓰러진다.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다음)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이 된 채 차라리 죽고 싶다며 오열하는 피터를 진정시키는 건 그의 엄마다.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아들을 가엽게 여기는 그녀의 손길에 피터는 아이처럼 안겨 운다. 사랑은 늘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엄마의 조언에 자신이 그동안 누리고 취했던 사랑이 잘못됐음을 시인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조건 없는 사랑이라면서 소유를 위한 사랑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까지 한다. 이후 그토록 기다렸던 아미르의 전화를, 감정이 배제된 냉철한 전 연인으로서 받는다. 꼭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엔 배움이 없다. 배움을 가장한 태움이 있을 뿐이다. 피터는 처음부터 자기 사랑에 대해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불신도 의심도 필요치 않았다. 그에게 사랑이란 자기 작품과 같고, 가장 열정적이며 아름다운 불꽃이다. 언제든 발화되어 주변의 것을 다 태우고 끝나는 삶이다. 따라서 피터에게 필요한 건 다른 불꽃이다. 그는 조건 없는 사랑을 원하는 척, 그 사랑을 줄 수 있는 척 칼에게 향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본 칼에게 진짜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너에 대해 말해달라고 속삭인다. 맹목적인 숭배를 받기 위해 아미르에게, 그 전의 아미르와 같았던 이들에게 썼던 방식을 또 답습하는 것이다.
칼은 대답으로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그리곤 지금까지 살았고 앞으로도 평생 살 것만 같았던 피터의 집에서 제 발로 떠난다. 미친 고용주를 견디지 못한 걸까? 드디어 한계가 온 걸까? 아니다, 칼이 원한 사랑이 아니었을 뿐이다. 피터의 엄마가 말한 사랑처럼, 피터의 딸이 처음 남자 친구에게 느끼는 사랑처럼, 본인만이 설명할 수 있기에 가장 솔직하게 원할 수 있는 '나'의 사랑과 다르기 때문이다.
감히 예상하건대, 칼이 원한 사랑엔 분명 '동등'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 <피터 본 칸트>(스틸컷, 다음)
텅 빈 집 안에서 홀로 아미르의 테스트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피터, 그는 자신을 죽이는 사랑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다. 몇 번이고 스스로를 죽이더라도, 자기가 바라는 아름다운 사랑을 또 꿈꿀 것이 분명하다.
그게 피터이자, <피터 본 칸트>다.
관객은 칼의 시선으로 피터를 열심히 관찰하다 나중에서야 제삼자로 그에게서 완전히 멀어진다. 아미르와 시도니에게서도 마찬가지다. 가까워졌다가, 찰나의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리를 둔다. 지독한 일인칭 이야기는 사실 수많은 예시 중 하나에 불과하고, 칼의 이탈에 명백한 이유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상 피터의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피터, 아미르, 시도니는 사랑에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야만 삶이 진행되는 인물들이다.)
"모든 이가 사랑하는 것을 죽이네."
시도니의 노래 중 한 구절이며, <피터 본 칸트> 속 세 사람의 사랑 해석본이다.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보자면,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은 반드시 사랑하는 것을 죽이면서 사랑을 한다.' 정도가 되겠다
이야기를 이끄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빨려들 수밖에 없는 음악이 본 영화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시도니를 보여주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피터에게 전화하라고 시킨 시도니의 모습은 <피터 본 칸트>가 유일하게 가져간 긴장감이자, 뼈 있는 반전이며 풍자의 대상을 끝까지, 정확하게 겨눈 한 방이다.
p.s <피터 본 칸트>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1972)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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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던 나는 정말 행복했었는지
새해가 지나고 더욱 내 자신의 앞길에 많은 고민이 들었었다. 지금은 누군가에게 말하기 창피하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영화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로 '성공한 덕후가 되고 싶다'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몇 안 되었고, 영화를 종종 찍기도 하는 배우였으니 꾸준히 이 업계에서 일을 하다보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회로 같은 거. 나는 그 단순한 동기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영화 업계에서 일을 해왔다.
하지만 코로나를 겪고, 일을 하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작품을 한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 보단 쉽지만 아무튼 그래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니 더 이상 일을 하기가 싫었다. 코로나로 인해 월급은 줄었는데 팀원도 줄어 일하기가 더욱 힘들었던 요즘, 나는 내 미래와 꿈에 대한 걱정이 너무나 많았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극에 치달았고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하고,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잠에 드는 그 순간까지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야근을 하고, 월급도 못받아가면서 영화를 개봉시키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게으르지만 내가 추구하는 성취감을 얻지 못하면 항상 구렁텅이로 빠지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굉장히 힘들었었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소울>은 그럴 때 보게 된 영화고, 정말로 적절한 타이밍에 날 찾아왔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학교의 재즈밴드 선생님이지만, 궁극적인 자신의 꿈은 '재즈 밴드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짓말 같이 유명한 재즈 뮤지션과 함께 공연을 하기로 한 날, 너무 들뜬 나머지 발 밑의 맨홀 뚜껑이 열린 것을 보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한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지구에 아직 태어나기 전인 영혼들이 머무르는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떨어진다.
다시 지구로 돌아가 재즈 공연을 해야하는 그는 마음이 급하지만, 무턱대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조는 아직 지구로 가지 못한 영혼 '22'의 멘토가 되기로 결심한다. 지구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지구 통행증을 발급 받으려면 영혼의 불꽃이 반드시 필요한데, 영혼 22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불꽃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조는 어떻게 해서든 22의 불꽃을 찾아주고, 대신 통행증을 받으려 한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놀란 것은, 픽사는 절대 뻔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무조건적으로 영화의 끝은 '조'가 자신의 몸에 다시 들어가고, 재즈 공연을 멋지게 성공시키며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조가 영화 초반부터 닳도록 외치던 꿈이었으니까. 그렇게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며, 찝찝함 없이 갈증을 해소시켜줄 것이라고 혼자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 갑작스럽게 조와 22는 지구로 떨어지게 된다. 제대로 몸을 찾은 것이 아니라, '조'의 몸에는 '22'의 영혼이 들어가고 그 옆에 있던 고양이의 몸에 '조'의 영혼이 들어간다. 지구 생활을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영혼이 성인의 몸을 제대로 다룰리가 없었다. 조는 22와 함께 필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이끌고 그 몸을 되찾기 위한 길을 떠난다. 이 순간부터 <소울>은 나, 그리고 우리가 짐작하던 스토리와는 별개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는 어느샌가부터 '꿈'에 집착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매체 및 미디어에서 특별한 '꿈'을 가진 사람들, 그 꿈을 이룬 사람들의 사연에 쉴 틈 없이 노출된다. 모두들 자연스럽게 꿈을 가지게 되고, 그 꿈을 이루려 부던히도 노력한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룬 이후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실 내가 가진 '꿈'과 그것을 이루는 것만 보통은 생각하지 꿈을 이룬 이후에 대해서는 대부분 관심이 없다.
이동진 평론가와 김이나 작사가의 <소울> GV 영상을 보고 공감한 부분인데, '꿈'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거치는 정류장 같은 것이지, 단순히 꿈은 인생의 '종착역'으로 바라보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삶, 인생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만 존재하면 안된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며 느끼는 맛있는 음식, 친구들과의 대화, 잠깐씩 느끼는 기분 좋은 바람. 이것들을 느끼는 하루하루가 소중한 인생이고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소울>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 '조'에 완전히 이입했었다. 꿈이라고 믿었던 재즈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았던 조. 나도 한때는 '영화 일만 하면 정말 행복할 거 같다'라고 굳게 믿었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막상 일을 해보니 좋은 순간들도 물론 있었지만, 아닌 적이 더 많았고 "왜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도 이렇게 불행할까?"라고 곱씹던 적이 많았다. 대학생 때부터 온갖 영화제 대외활동을 하며 영화계 일을 하는 그 순간을 꿈꿔왔지만, 현실은 그렇게 눈부시지 않았고 다른 직장인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내 꿈은 영화계에서 일해서 성덕이 되는 거야" 입 버릇처럼 말했지만 내가 영화계에 일한다고 해서 그 일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기쁜 순간에 비해 힘든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코로나가 찾아오면서 얼어붙은 영화계에 관객들은 발을 돌리기 시작했고 나는 더욱 더 일할 의미, 더 나아가 삶의 의미를 잃었던 것 같다.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영화 일을 하는거지? 사람들이 관심도 없고 보지도 않을 영화를 위해 내가 이 개고생을 왜 해야하는 거지? 라고 하루에 쉴 틈 없이 물음표를 떠올렸다. 그렇게 지쳐있던 내게 <소울>은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건네줬다. "네가 바랐던 꿈이 네 인생의 끝이 아니야"라고. 내가 겪는 모든 순간들이 인생의 일부분이며, 일상을 겪어내는 순간들이 내 인생 자체고 그것이 소중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눈물을 펑펑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지금 이렇게 힘들어도, 네가 틀리지 않았어. 괜찮아. " 그렇게 누군가 말해주길 바랐던 거 같다.
항상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이 업계 언젠가 떠야지"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좋은 영화를 보면 그랬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이런 영화로 마케팅하면 정말 재미있고 신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는 이 업계의 노예인가 라는 생각도 한다.
<소울>을 보고 나서도 딱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라고.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힐링'이 된다. '힐링'은 이제 너무나도 많이 쓰여 닳고 닳은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이렇게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어 아쉽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세계, 만나지 못할 캐릭터들이 내 마음을 울리는 보편적인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것들은 나를 가만히 토닥여준다. 그 어떤 사람과의 대화보다도 가끔은 영화 속 캐릭터들이, 그들의 행동이 내게 위안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나는 그래서 어쨌거나 한동안 계속 영화를 사랑할 예정이다. 끊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야근몬스터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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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3주만에 1위에 올라선 <탈주>!
7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와 분석 시작합니다
<탈주>가 7월 3주차 박스오피스에 1위에 올랐습니다. 개봉때부터 꾸준한 관객수를 기록하고 있는 <탈주>는 손익분기점이 200만명으로 누적관객수 190만명을 넘어서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설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5주 연속 주말 관객 수 1위를 유지해 온 <인사이드 아웃 2>이 2위로 내려왔습니다. 누적관객수 800만 명을 넘어서며 올여름 극장가의 흥행 강자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미에서는 역대급 토네이도와 정면승부를 하는 <트위스터스>가 1위에 올랐습니다.
<미나리>를 연출했던 한국계 미국인 감독 정이삭이 감독을 맡았으며 주말 8050만 달러를 벌어 들이며 흥행 돌풍을 몰고있습니다. <트위스터>의 흥행으로 인해 <슈퍼배드 4>가 2위, <인사이드 아웃 2>가 3위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 2>는 북미에서만 5억달러를 기록했고, <슈퍼배드 4>는 2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전주보다 관객수가 대폭 감소하며 10억달러를 돌파했던 전작에 비해 아쉬운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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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엔 의미 있는 ‘고·스톱’이 있었다?
1972년 9월 5일. 뮌헨 올림픽 기간 중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인질로 삼은 테러 사건은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스포츠 역사상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최악의 비극인 동시에 최초 생중계된 인질극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방송을 본 수는 전 세계 9억 명에 달했을 정도. 그렇다면 이 사건을 방송으로 담은 제작진들은 어떤 심정으로 이 사건을 방송했을까?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오롯이 테러 사건을 마주한 언론인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생중계에 도전한 미 ABC 방송국 스포츠팀은 총소리를 듣는다. 소리의 근원지는 100m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선수촌. 알고 보니 팔레스타인 테러 집단 ‘검은 9월단’이 선수촌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이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제프(존 마가로), 룬(피터 사스가드), 마빈(벤 채플린) 등 다수의 제작진은 익숙하지 않지만 스포츠 대신 사건을 생중계하기로 하고 자신의 위치에 맞게 방송을 준비한다. 어떻게든 보도를 이어가려는 이들은 여러 어려움을 맞이하고, 심지어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방송을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동일한 사건을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 <뮌헨>과 그 궤를 달리한다. <뮌헨>은 사건 이후 테러 조직을 소탕하는 이들의 모습과 고뇌에 집중했다면, 이번 영화는 당시 사건을 생생히 전한 중계팀에 집중한다. 이 사건을 단독으로 생중계하려는 순간 갖게 되는 떨림과 흥분, 그에 따른 무게감은 극 중 주 배경지인 스튜디오에 그득하다. 더욱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보도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 취재하고, 촬영한 필름을 빠르게 현상, 편집하고, 공중전화를 통해 생생한 보도를 하는 등 중계팀의 치열함은 곳곳에 묻어난다. 21세기에 필름을 현상하거나 일일이 수작업으로 자막을 입히는 생경한 작업 방식도 한몫 한다.
스포츠 중계처럼 다양한 카메라 워킹을 통해 인질극 생중계를 보여주는 영화의 진면모는 카메라 앞이 아닌 카메라 뒤에 있다. 초유의 사건을 단독 보도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속보가 중요하지만 오보를 내지 않기 위해 꼭 3명 이상의 정보원의 말이 동일해야 내보낼 수 있다는 원칙, 시청률을 높여야 하지만 이를 보도할 시 선수단의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절망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더불어 테러리스트도 보는 이 방송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야 할지 등등 제작진들은 매 상황마다 첨예한 대립각을 세운다. 격전지는 인질극이 벌어지는 선수촌뿐만 아니라 이를 방송하는 스튜디오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듯, 영화는 언론인이라면 겪어야 하는 이 딜레마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이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질 수밖에 없는 영화의 단점을 상쇄하듯 계속해서 긴장감을 부여하고, 생중계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언론인들의 이유 있는 고민과 행동을 밀도 있게 담는다.
자연스럽게 언론인들의 직업의식과 태도는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이는 <스포트라이트> <더 포스트>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등 여타 언론을 소재로 한 영화들과 그 궤를 같이하지만, 달리하는 것도 있다. 바로 스마트폰, 유튜브 등 기술의 발달로 인해 누구나 뉴스를 제작, 배포할 수 있는 시대 속에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은 되묻는 부분이다.
영화의 첫 시작은 인공위성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를 한다는 것을 내세우는 방송이다. 기술의 발달을 등에 없고, 생중계를 하는 당시의 언론인들을 괴롭힌 고민은 SNS를 켜고 라이브온을 하는 세상에서 의미 있게 다가온다. 과거에 비해 뉴스 생산자들은 많아졌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윤리의식을 가진 이들은 얼마나 되는지, 그런 고민 없이 자본의 흐름에 편중된 화면만 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1972년 사건을 지금의 시간으로 가져온 이유는 타당해 보인다. 제작을 맡은 숀 펜의 이유 제작, 팀 펠바움 감독의 연출과 각본은 빛을 발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도 각본상 후보에 이 영화를 올리며 그 의미에 힘을 싣는다. 팀 펠바움 감독은 “영화적 임팩트를 위해 스토리라인을 각색하는 등 역사적 사건을 왜곡하지 않았다. 당시 참사를 보도한 미디어의 관점을 그대로 따랐다”며 역사적 사실을 오롯이 전하면서 현시대의 문제점을 집어내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 생중계의 마지막은 비극이다.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은 모두 사망한다.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과 함께 영화의 말미는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전 세계 생중계된 인질극의 말로가 희망이 아닌 절망을 전한 제작진의 황망함. 그럼에도 다음 보도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제작진의 뒷모습은 긴 여운을 남긴다. 1972년도에도 2025년도에도 가치 있는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지금은 그 의미를 곱씹는 게 중요한 시기다.
사진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점: 4.0 /5.0
한줄평: 기술 발전이 언론에 끼친 영향을 곱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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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4주차, 최신 씨네뉴스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작 엠마스톤 X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재결합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오늘은 따끈따끈한 외신 뉴스들 같이 보아요
<마담 웹> 혹평 세례, 로튼 토마토 지수 13% 기록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4번째 영화 <마담 웹>이 관객들로부터 혹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는 매우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으며, 이로 인해 소니 픽처스는 “향후 10년간 <마담 웹> 시리즈를 제작하지 않을 것이다. 소니 픽처스는 다른 유형의 슈퍼 히어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봉준호 <미키 17> 내년 1월 개봉확정
워너 브라더스는 봉준호와 로버트 패틴슨의 기대작 <미키17> 개봉일을 2025년 1월로 연기했다고 밝혔습니다. 고질라 x 콩: 새로운 제국>을 2주 앞당겨 그 자리를 대신하며 2025년 1월 31일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토니 콜렛, 마크 러팔로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기대를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비틀스 멤버들 그린 영화 4편 제작, 샘 멘더스 감독 메가폰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틀즈’ 네 멤버를 각각 주인공으로 한 전기 영화 4편이 제작된다고 합니다.
<아메리칸 뷰티> <1917>을 연출하며 오스카 수상에 빛나는 샘 멘데스가 2027년도를 개봉을 목표로 네 편의 작품을 모두 연출한다고 합니다. 또한 감독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밴드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돼 영광이다.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방식으로 개봉할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엠마스톤 X 요르고스 란티모스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 협의중
영화 <가여운 것들>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엠마스톤은 한국 판타지 코미디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작을 욜고스 란티모스와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여름부터 영국과 뉴욕에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인 영화는 외계인으로 인해 지구가 곧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믿는 주인공이 사업가를 외계인으로 믿어 납치하고 고문하는 이야기를 담고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언젠가는 공포 영화를 만들고 싶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런던의 영국영화협회에서 열린 대담 행사장에서 공포 영화를 만들 생각이 있느냐는 관객의 질문에 “<오펜하이머>에는 그 주제와 걸맞다고 생각되는 공포 요소가 분명히 들어가 있습니다. 공포 영화는 매우 영화적 인 장치들에 의존하며, 사물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공포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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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감 낮은 남자의 진정한 매력 찾기! with 계약 여친
얼마전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러브하드는 공개된 이후 큰 반응없이 사라진 영화에요.
특히나 한국에서는 아주 빠르게 사라져갔죠.
하지만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가족, 애인과 함께 보기에 아주 좋은 영화입니다.
아주 뻔한 이야기이지만 따뜻하고 꽤 유머러스하거든요.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제 리뷰를 보고 영화를 찾아봐주세요!
그리고 따뜻한 연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 해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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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민스미트 작전> 1차 예고편
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꿀 단 한 번의 기회! 우리는 이 전쟁의 승기를 잡을 것이다! 사상 최대의 인명 피해를 낳은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과 추축군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교두보 시칠리아를 두고 팽팽한 대립을 펼친다. 하지만 추축군 독일의 위세가 상당해 시칠리아에는 이미 추축군 병력 무려 23만 명이 주둔해 있던 상황! 연합군은 해군 정보장교 ‘이웬 몬태규’와 ‘찰스 첨리’를 주축으로 전쟁의 승기를 잡을 단 한 번의 ‘민스미트 작전’을 계획하는데… 예상을 뛰어 넘는 위대한 작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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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티저 예고편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스즈'는 사고로 엄마를 잃은 후 더이상 노래할 수 없게 된다.
평범한 나날이 계속되던 중, 우연히 가상세계 U에 접속하게 된 '스즈'.
그는 그곳에서 신비로운 가수 '벨'로 다시 태어나 순식간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그런데 '벨'의 대규모 콘서트가 열리는 어느 날, '용'이라 불리는 의문의 존재가 나타난다.
큰 상처를 안고 있는 듯한 '용'에게 마음이 쓰이는 '벨', 그리고 현실의 '스즈'.
과연 '스즈'의 목소리는 그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까?
두 세계가 하나로 이어질 때, 기적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