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27 12:14:10
영화로 듣는 오아시스
내한 공연 티켓팅 성공 기원 !

올해 깜짝 재결합 소식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던 밴드 '오아시스'가 내년 10월 한국을 찾습니다.
내한 공연 티켓팅도 벌써 이번 주로 성큼 다가왔다고 하는데요!
오아시스를 사랑하는 씨네픽 구독자 여러분을 위한 티켓팅 성공 기원 콘텐츠를 준비했습니다.
오아시스의 노래가 삽입된 영화 보고 함께 행운의 기운을 모아보아요!

줄거리
불같은 성격이지만 유쾌하고 당당한 엄마 '디안'은 거칠지만 사랑스러운 사고뭉치 아들 '스티브'가 보호시설에서 사고를 쳐 쫓겨나자 홈스쿨링을 시작한다. 엄마가 행복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들 스티브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꿈꾸는 디안. 하지만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불안정한 성격의 스티브를 돌보기란 쉽지 않다. 이때 이들 앞에 나타난 이웃집 여인 '카일라'. 카일라의 등장으로 세 사람은 유일하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작은 행복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디안 앞으로 한 장의 편지가 날아오는데…….
억척스럽지만 정 많고 속 깊은 엄마 '디안'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유별난 사고뭉치 아들 '스티브’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누구보다 따뜻한 그녀 ‘카일라’. 결핍으로 가득 찬 세 사람이 만나 하나의 소우주를 구성할 때, 그들의 세상은 비로소 시작된다.

줄거리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 카오스 이론
끔찍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지닌 에반. 그에게 남은 것은 기억의 파편들과 상처 입은 친구들. 에반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어릴 적부터 매일매일 꼼꼼하게 일기를 쓴다.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예전의 일기를 꺼내 읽다가 일기장을 통해 시공간 이동의 통로를 발견하게 되는 에반. 그것을 통해 과거로 되돌아가 미치도록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첫사랑 켈리와의 돌이키고 싶은 과거,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닥친 끔찍한 불행들을 고쳐 나간다.
그러나 과거를 바꿀수록 더욱 충격적인 현실만이 그를 기다릴 뿐, 현재는 전혀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는데...
과연 그는 과거를 바꿔 그가 원하는 현재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불행한 현재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인가?

줄거리
내 이름은 터키쉬. 영국 이름치곤 깬다. 비행기 사고 때 부모님도 사고를 쳐 나란 놈이 태어났다. 그 비행기 이름을 따 내 이름을 지었다. 쟤는 타미다. 총 이름을 땄다지만, 그건 순 뻥이고, 19세기 유명한 발레 댄서 이름이다. 나와는 배꼽 친구로 지금은 작업 동료다. 수컷끼리 뽀뽀하는 그런 사인 아니다. 까놓고 얘기하면 녀석은 또라이 짓을 잘한다. 방지하는 차원에서 팍팍 갈궈주고 있다. 우정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다이아몬드? 난 권투중개인이다. 권투에 울고 권투에 웃던 내가 다이아몬드가 뭔지 알게 뭔가? 벨기에산 똘삐던가?
다이아몬드 도둑인 네 손가락 프랭키(Franky Four Fingers: 베니치오 델 토로 분)는 자신이 훔친 어마어마한 크기의 다이아몬드를 뉴욕에 있는 보스 아비(Cousin Avi: 데니스 파리나 분)에게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우선 다른 자잘한 보석들을 런던에 있는 보석 장물아비 더그(Doug The Head: 마이크 레이드 분)에게 넘겨줘야 하는 프랭키에게 아비는 절대 도박에 손대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허나 프랭키가 무허가 도박 권투에 돈을 걸면서 다이아몬드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간다.
한편, 풋내기 무허가 권투 프로모터인 터키쉬(Turkish: 제이슨 스테텀 분)와 토미(Tommy: 스티븐 그레이엄 분)는 돼지 농장 경영주이자 마피아 두목인 브릭 탑(Brick Top: 알란 포드 분)과 함께 사기도박을 해서 건수를 올릴 계획이다. 하지만 4회에 무너지기로 예정되었던 권투 선수가 아일래드 집시인 원 펀치 미키(One Punch' Mickey ONeil: 브래드 피트 분)의 주먹에 쓰려지자, 그들은 미키를 임시방편으로 링에 올린다. 4회에 무너져야 한다는 약속을 받고서...
그러나 미키는 약속과는 정반대로 4회에 상대 선수를 기절시키고 만다. 터키쉬와 토미는 브릭 탑의 처절한 보복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브릭 탑은 이 두 명의 어설픈 갱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한다. 터키쉬와 토미는 이번에도 실수하면 잔혹한 살육이 기다리고 있음을 미키에게 인지시키고 또 인지시킨다. 도박 권투에 참가하기로 한 프랭키가 실종되자 사촌 아비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영국 런던행 비행기에 오른다. 아비는 그곳에서 전설적인 인물, 총알 이빨 토니(Bullet Tooth Tony: 비니 존스 분)에게 사건을 의뢰, 보석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불쌍한 프랭크는 시신으로 발견되는데...

줄거리
재정난에 허덕이는 해링톤 고등학교의 캠퍼스 분위기는 유난히 음침하고 을씨년스럽다. 학생들도 학업 따위엔 의욕이 없고 교사들도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러나 주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아메리칸 풋볼팀만이 기세가 등등하다. 물론 윌리스 코치(Coach Willis: 로버트 패트릭 분)의 위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패컬티에서 펼쳐질 희대의 사건은 윌리스 코치가 드레이크 교장(Principal Drake: 베비 누워스 분)을 무참하고 처참하게 살해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해링턴 고등학교엔 일곱 명의 아웃사이더가 있다. 치어리더이자 학보사 편집장으로서 언제나 특종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미모의 딜라일라(Delilah Proffitt: 조다나 브로스터 분),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기 싫어하여 레즈비언인 척 위장하는 중성적 외모의 스토클리(Stokely: 클리어 듀발 분), 부모가 교통사고로 죽자 애틀랜티스에서 전학 온 미모의 은발 메리베스(Marybeth: 로라 해리스 분), 스포츠카 광이며 차고에서 코카인을 제조하여 교내에서 비밀리에 유통하는가 하면 미모의 영어 교사에게 미묘한 눈길을 던지는 제키(Zeke: 조쉬 하트넷 분), 머리가 비상한 모범생이지만 항상 따돌림만 당하는 외톨이 케이시(Casey Connor: 일라이저 우드 분), 풋볼팀의 스타 쿼터백으로서 화려한 미래를 보장받고 있건만 부당하리만큼 차별적으로 우월한 대우를 받는 것이 싫어 풋볼팀을 탈퇴한 스탠(Stan: 숀 웨인 하토시 분). 이들 아웃사이더들은 교직원들 사이에서 불길하고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인다는 것을 눈치챈다.
교사들로부터 미움을 사던 드레이크 교장이 살해되고 나서, 교직원들이 하나씩 사라지거나 변사체로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결속력은 점점 강화된다. 그러나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이 서서히 파국의 조짐을 노출하기 시작하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단서를 잡지 못하던 아웃사이더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면서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생물 교사인 미스터 펄롱(Mr. Furlong: 존 스튜어트 분)이 죽던 날 자칭 6인의 전사들은 케이시가 풋볼 경기장에서 찾아온 증거물이 마을을 온통 피의 파티장으로 만들어버릴 충격적인 비극의 단서가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줄거리
MI6의 최고 암살자 세바스찬(마크 스트롱)에게는 형이 있다. 문제는 그 형 노비(사샤 바론 코헨)가 잉글랜드 그림즈비 출신의 축구 훌리건이라는 점이다. 노비는 그림즈비라는 가난한 어촌 마을에서 살면서 한 남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아홉 명의 자식들과 북잉글랜드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자친구(레벨 윌슨)다. 하지만 노비에게는 한 가지가 부족하다. 바로 어릴 때 헤어진 동생 세바스찬이다. 입양된 후 28년 동안 동생을 찾아다니던 노비는 드디어 동생의 행방을 알게 된다. 그는 곧장 동생을 만나러 떠나지만, 동생이 MI6 요원이라는 사실은 물론, 전 세계를 위협하는 음모를 막으려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동행하게 된다. 누명을 쓰고 도망치게 된 세바스찬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형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줄거리
다른 아이들처럼 산티아고 뮤네즈(쿠노 베커)도 큰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게는 그러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티아고의 이런 집념과 목표 의식은 엄청난 궁핍함과 개인적인 희생을 감내하고 고향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세계 최고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룰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능하게 했다. 열 살 나이에 산티아고가 미국 국경을 넘을 때, 수중에 가지고 있던 것은 단 두 가지, 축구공과 낡은 월드컵 사진이었다. 이후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성장한 산티아고가 관심을 쏟는 유일한 대상은 축구였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또 하나의 과제는 그의 아버지에게 그가 장래 유명한 축구 스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사람 좋은 전직 축구 선수이자 스카우트 담당인 영국인 글렌 포이 (스테판 딜레인)가 로스앤젤레스 지역 시합에서 산티아고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 클럽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찾고 있는, 뛰어난 재질과 기량 그리고 스피드와 대담함을 고루 갖춘 산티아고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이제 축구의 성지나 다름없는 뉴캐슬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 구장에서 어린 산티아고는 그의 기량을 입증해서 세계에서 가장 명망 있는 축구클럽과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게임을 앞두게 된다.
인간적 고뇌와 육체적 부상 그리고 성공에 따른 세속적인 유혹은 말할 것도 없고, 진흙 구장과 매서운 바람 그리고 팀 동료들로부터의 심리적 견제를 견뎌내야만 이 화려하고 가슴 벅찬 국제 축구 무대에서 산티아고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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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디의 피자가게> 리뷰 - 무섭지 않은 공포 영화 추천
스포일러 주의!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남동생을 잃은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여동생 애비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마이크 슈미트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자신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남동생이 납치를 당하는 사건을 겪고 난 후 어른이 된 마이크는 동생 또래의 아이가 어른에게 강제로 붙잡혀 가는 듯한 낌새만 보여도 곧장 달려들 만큼 폭력적인 성향이 되고 말았다. 결국 그러한 성향 때문에 마이크는 직장에서 해고당하게 되고 애비의 양육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마이크는 자신과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은 애비의 소망에 따라 어떻게든 양육권을 지켜내기 위해 유일하게 남은 직장인 '프레디의 피자가게'에서 경비원 일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따분하게 시간을 보내며 졸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형들이 이상한 낌새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자신과 지인을 해치려고까지 하자 마이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프레디와 인형들을 막고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는 과정을 그린 엠마 타미 감독의 호러 영화다.
만약 누군가가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재미있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잠깐 망설이고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한 가지 전제를 반드시 달고 말이다. 원작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 나 같은 경우에는 원작을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플레이하는 것을 즐겁게 시청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게임 속 존재들을 영화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원작을 좋아해야만 가능한 이야기일 뿐, 영화 자체로는 억지로라도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가장 큰 문제는 호러 영화로서의 완성도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일단 무섭지가 않다. 소위 무서운 영화로 꼽히는 <컨저링>, <유전> 같은 영화에는 어림도 없고 굳이 따지자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보다는 아주 살짝 나은 정도의 호러다. (근데 이건 애초에 호러 영화가 아닌지라...) 애비와 폭시의 숨바꼭질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애초에 영화가 긴장감을 끌어올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찰나의 점프 스케어에만 의존한 채 관객이 깜짝 놀라기를 애타게 기다릴 뿐이다. 원작의 숨 막히는 긴장감 같은 건 도저히 느낄 수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이 영화가 어린이들도 볼 수 있는 호러 영화를 지향점으로 삼았음을 생각하면 이렇게 낮은 호러 강도는 의도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를 보게 되면 내용도 뻔하디뻔한 가족 드라마고, 선이 승리하고 악이 패하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이야기다. 중간에 인형들과 함께 테이블과 의자를 활용하여 간이집을 만드는 장면은 호러 영화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신나고 귀엽게 연출되었다. 다른 부분의 완성도는 낮은데 유독 인형 애니매트로닉스의 퀄리티만 신기하게 높은 것까지, 애초에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저연령층과 게임의 팬들을 주 타깃으로 삼았음을 대놓고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영화가 얄팍하게 만들어졌다는 평가는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저연령층과 팬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해서 작품의 질까지 낮으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마이크의 트라우마가 형상화되는 꿈 장면은 너무 많이 반복돼서 지루함을 준다. 프레디가 여성의 허리를 깨물어서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키는 장면이나 컵케이크에 의해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시체를 보여주는 장면은 저연령층을 노리겠다는 의도가 무색할 만큼 수위가 높다. 후반부에 스프링 보니를 등장시키는 선택은 오히려 프레디의 존재감을 옅어지게 만들고, 아이들을 납치하고 살해하고 그에 따른 원한이 생기는 전형적인 호러 영화의 흐름을 고스란히 반복하기에 썩 좋은 선택이라 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중반까지의 신선함마저 잃어버린 것 같았다. (어차피 3부작인데 이후에 나와도 괜찮지 않았을까?) 직업상담사인 스티브 래글런이 사실 모든 일의 원흉인 윌리엄 애프튼이라는 반전 역시 호러 장르에서 너무 많이 쓰인 트릭인데다가 초반 이후로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라 반전의 황당함은 더욱 커진다. 그나마 스프링 보니의 첫 등장 장면은 굉장히 강렬하게 연출된 덕분에 그나마 기억에 남는다는 게 위안거리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원작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그럭저럭 즐겁게 볼만한 작품이지만 그 외에 관객에게는 만족을 주기 힘든 영화다. 심지어 원작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도 호러의 약한 강도, 지루한 드라마, 뻔한 엔딩 등에서 불호를 느낄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약점이 많다.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었고 오히려 애정이 가는 지점도 있었으나 상업성에 눈이 먼 탓인지, 감독 고용을 잘못한 건지는 몰라도 결국 낮은 완성도로 무너진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더 재밌는 영화가 될 수 있는 소재였는데 여러모로 많이 아쉽고 아깝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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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의 날숨만큼 미미한 희망일지라도
희망은 마냥 좋기만 한 것일까? 현재의 어려움을 자신의 힘으로 돌파하려는 의지와 노력 없이 운, 신의 은총, 불가사의한 우주의 기운 같은 막연한 기대에 의지하는 희망은 오히려 맹독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영혼과 정신을 황폐화시킨다. 희망이 현실이 되려면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뭔가 해야 한다.
영화 <토리와 로키타>의 주인공 '토리'와 '로키타'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아프리카의 모국을 떠나 벨기에로 왔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는 벨기에에서도 두 사람은 한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암실처럼 어둡고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 공황 장애 때문에 약을 먹어야 하는 로키타와 로키타보다 더 어리지만 굉장히 셈에 밝고 긍정적인 토리는 낙담하고 주저앉아 타인의 도움이나 구원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토리에겐 로키타가, 로키타에겐 토리가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한 발 앞으로 내디딜 용기를 얻는다. 두 아이는 함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뛰어다닌다.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취약한 아이들은 강력한 자석과 같아서 못돼먹은 어른들을 끌어당긴다. 나쁜 어른들은 토리와 로키타에게 마약을 팔게 하고, 로키타의 성을 착취하며, 두 아이의 불안한 신분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둘을 더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영화 초반, 토리와 로키타가 함께 부르는 노래의 멜로디는 밝고 경쾌하지만 "아버지가 동전 2개로 산 생쥐를 잡아먹은 고양이를 문 개를 몽둥이로 때리는 사람"이라는 가사는 두 아이를 괴롭히는 어른들처럼 섬뜩하기 이를 데 없다.
영화의 끝이 가까워질수록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신뢰는 점점 아스러진다. 마침내 한 줌도 남지 않은 희망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 웅덩이의 물처럼 기화되어 모두 사라지려 할 때, 영화는 한 번의 날숨만큼 미미한 희망과 사람들 사이의 연대가 아직 우리 곁에 존재함을 보여준다. 우리의 부단한 관심과 보살핌 없이 희망은 그저 한갓 아지랑이에 불과하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끝)* 지난 5월 4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토리와 로키타> 시사회에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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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세계는 없지만, 각자의 세계에는 각자의 논리가
📽️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1987)
감독: 에릭 로메르
출연: 조엘 미쿠엘, 제시카 포드 외
프랑스 영화에는 대체적으로 감정에 솔직한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한다.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때때로 감정 기복이 심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블루아워를 놓친 레네트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규하고 비관한다. 낮에 파리에서 온 미라벨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여러 이야기를 신나하며 늘어놓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그런 레네트의 행동은 관객으로 하여금 당황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되려 그녀의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은 에릭 로메르 감독이 프랑스의 대표 영화 중 하나인 <녹색광선>을 촬영한 후에 즉흥적으로 만든 영화라고 한다. 그 덕분에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연출은 <녹색광선>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과 도시를 오가는 소담한 시나리오, 화면 가득 채우는 녹색의 푸르름, 빠른 템포로 쏟아지는 대화… 특히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에서 도드라지는 특징은 바로 침묵과 발화의 간극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라벨과 레네트는 각 요소를 맡아 침묵과 발화의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순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이 모순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네 번째 모험 ‘그림 팔기’에서다. 시골에서 파리로 올라온 레네트는 집세를 내지 못할 상황에 빠지고, 해결책으로 그림을 떠올린다. 그 과정에서 레네트는 그림이 영혼과 소통하는 창구라 좋다고 말하지만, 미라벨은 ‘그러나 너는 끊임없이 그림에 대해 설명하지 않냐’며 이의를 제기한다. 의미 없는 말싸움을 늘어놓던 둘은 결국 레네트가 다음날 하루동안 침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말이 옳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림을 팔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화방 주인은 레네트가 말을 하지 않자 이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그림을 사고자 한다. 지켜보던 미라벨이 견디다 못해 화방 주인에게 말로 그림을 더럽히지 말라고 일갈하고, 결국 레네트는 미라벨의 입을 빌려서야 제값을 주고 그림을 팔 수 있었다. 두 주인공의 귀여운 영화적 일화 속 침묵을 강조하기 위해 되려 말이 필요한 아이러니를 보고 있으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곰곰이 곱씹게 된다.
시골쥐와 도시쥐가 벌이는 네 가지의 일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 다르지만, 모든 에피소드 구석구석에 사랑스러움이 묻어있어 보고 나면 즐거움이 가볍게 내려앉아있다. 이 세상에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세계는 없지만, 각자의 세계는 고유의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 각자의 논리가 펼치는 핑퐁게임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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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아씨들> : 이 영화가 왜 다시 만들어져야 하는가?
루이자 메이 올콧의 명작 <작은 아씨들>은 그간 여러 차례 영화화된 작품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2019년의 <작은 아씨들>을 촬영하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을 영화화할 때의 압박감만이 아니라 이미 영화로 제작된 작품을 다시 창작한다는 고민 역시 가졌으리라고 예상된다. 나 역시 <작은 아씨들>(2019)에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아야겠다고 속단했었으나, 먼저 영화를 본 관객들의 후기에 다시 약간의 기대를 회복하고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결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고전의 재해석이었다. 어떤 영화를 찍을 때, 특히나 이미 만들어진 영화를 다시 만들 때는 이 영화가 대체 이 시대에 왜 필요한지를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그 질문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영화이다.
2019년 <작은 아씨들>의 가장 혁신적인 연출은 현재(1868년)를 배경으로 시작해 과거 회상을 삽입한다는 점일 것이다. 조의 뉴욕을 보여주는 현재와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를 배경으로 한 과거는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대조된다. 현재의 조가 베스의 소식을 듣고 콩코드로 돌아간 후에도 이 구분은 유지된다. 이미 다섯 번이나 영화화된 고전을 리메이크하면서 고민되는 지점은 '어떻게 해야 관객의 지루함을 덜면서 신박함을 더할 수 있을지'이다. 과거 삽입이라는 비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은 이미 고전을 아는 관객들이 뻔한 전개를 예상하며 영화를 보는 것을 방지하고 몇몇 장면에서는 과거와 현실의 대조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베스의 침대 옆에서 병구완을 하다 잠든 조가 침대가 텅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암스트롱의 <작은 아씨들>은 모두가 아는 <작은 아씨들> 작품의 전개를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시간상 한계로 중요한 포인트, 특히 베스와 로렌스 씨의 감정교류 장면을 배제해서 원작을 모르는 관객들은 왜 갑자기 로렌스 씨가 베스에게 피아노를 선물하며 진작 주었어야 했다고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반면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과감한 연출로 원작의 중요한 사건들을 놓치지 않았다.
<작은 아씨들>은 본질적으로 당시 시대상에서 여자가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사회적 참여를 추구하는 작품이다. 다만 1994년작의 여자주인공 조 마치는 그 한계로 결혼을 해야만 하고 로맨스를 찾아야만 하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2019년작의 조는 너무나도 외롭다고 외치더라도 그 결말이 결혼으로 이어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동시에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편집장의 요구로 결혼하지 않은 여자주인공은 죽거나 결혼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편집장 앞에서 비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꼿꼿한 사람이기도 하다. 94년작 <작은 아씨들>을 보기 시작했을 때 사실 초반부터 마미의 여성주의적 발언에 꽤 놀랐다. 암스트롱의 <작은 아씨들>의 마미는 로라 던이 연기한 마미보다 (최소한 말로는) 딸보다도 급진적인 사상가이며 더 오래된 작품인 94년작에서 19년작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 인권 문제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볼 수 있다. 마미가 딸들이 로리를 썰매개처럼 부리는 것을 보며 브룩 선생에게 여자 아이들을 근본적으로 남자 아이들과 신체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으며 성인 여자가 연약해지는 것은 사회가 그들을 코르셋을 입혀 집안에 가둬두기 때문이라고 대놓고 말한다거나(19년작이든 94년작이든 브룩 선생은 좀 구식으로 맨박스에 갇혀 있어서 이 캐릭터와 메그를 이어주는 올콧의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메그가 부자 친구의 집에 놀러가서 고급 드레스, 특히 면화 드레스를 사지 않는 이유로 흑인 아이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면화 농장은 아이들을 착취하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한다거나, 마치 가 아버지가 흑인 노예를 해방시켜야한다는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참전했다는 배경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장면이 그렇다. 반면 19년작 <작은 아씨들>은 이러한 직접적이지만 부수적인 무수한 표현 대신, 결말로써 조를 해방시킨다.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작가 조를 가장 강조하는 버전이다. 영화 초반부, 책 <작은 아씨들>의 표지가 등장하며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데, 사실 그 앞에도 조는 이미 등장해 살아 숨쉬고 있다. 책 표지 등장 전의 조 마치와, 책이 인쇄된 후의 조 마치의 등장은 조가 책 바깥의 작가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이 버전의 <작은 아씨들>은 앞에서도 언급했듯 '현재'로 시작해서 과거가 간헐적으로 플래시백되는 시간의 흐름을 가지는데, 즉 이 영화에서 중요한 시대는 따스하고 아름답고 네 자매가 모두 한 지붕 아래 살았던 행복한 과거가 아니라, 베스가 죽었고 자매는 뿔뿔이 흩어져 차가운 세상에 내던져졌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현재, 1868년이다. 1868년은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이 출간된 해이기도 하다.
<작은 아씨들>을 집필한 올콧-거윅-조는 남자 편집자 대시우드에게 미혼 여성 주인공은 결혼하든가 죽든가 해야한다(이영도라는 남작가가 쓴, 내가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 <폴라리스 랩소디>의 문장을 빌리자면, 어느 쪽이든 처녀는 죽는 것이다)는 강요에 가까운 조언을 받는다. 결국 작가 조(올콧)는 대시우드에게 '너 좋을대로 하라'는 여유를 보이며 작가로서 납득할 수 없는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성공을 위해 이 정도는 타협할 수 있다는 태도로 조와 베어 교수를 결혼시킨다. 한편 실제 루이자 메이 올콧은 <작은 아씨들>의 대성공으로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는데 성공해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살았다. 개봉한 직후에 영국에 있었기 때문에(이미 상영이 끝난 후였다) 극장에서 <작은 아씨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당시에 <작은 아씨들> 후기는 꽤 열심히 읽었었는데, 조가 베어와 이어진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는 소식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감상한 지금 내 의견을 말하자면, 비혼 엔딩이다. 극중 중절모를 쓴 작가 조의 입으로, 작가는 일관적인consistent한 주인공heroine을 쓰고 싶으며, 자신의 인물 조는 어렸을 때부터 로리의 청혼을 받은 순간까지 결혼하지 않으리라고 말했으니 결혼을 하지 않는 엔딩이 지당하고 마땅하다고 말한다. 대시우드, 즉 가부장적 헤테로 로맨틱 엔딩(a.k.a. 결혼)을 원하는 사회와 독자의 대변자는 독자들은 일관적인 여주인공이 아닌 결혼을 하는 여주인공을 원한다고 주장한다. 대시우드가 '왜 로리가 조와 결혼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표하는 대사에서 거윅의 또다른 올콧 해석이 강조되었다고 생각한다. 올콧은 소녀와 소년의 우정은 필연적으로 소꿉친구 헤테로 로맨스 결말을 봐야한다는 사회와 독자의 '압제에 저항'하기 위해 로리를 지조없이 자기가 좋아한다는 조의 동생인 에이미와 결혼해버리는 놈으로 만들어 소꿉친구 헤테로물을 외치는 독자에게 한방을 먹인 것이다. (내 상상일 뿐이다)
원작과 2019년도 작품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서 조는 베어와 결혼 엔딩을 보지만 조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요소 중 로맨스적 측면을 고찰할 때 로리라는 캐릭터를 떼어놓고 해석할 수는 없다. 우선 19년작과 94년작의 조와 로리 케미에 대해서 말하자면, 거윅 감독의 전작인 <레이디 버드>에서 시얼샤 로넌과 티모시 샬라메가 잠깐 동안 사귀는 사이였음에도 둘 사이에 낭만적 기류는 읽기 어려웠듯이, 2019년작은 1994년작보다 로맨스적 케미스트리가 훨씬 약하다고 생각한다. 거의 없다고 생각해도 된다. 이 차이는 로리 배역의 캐스팅에서 비롯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알려진 티모시 샬라메가 청초한 소년 이미지의 배우인 반면, 94년작의 로리 크리스천 베일은 <아메리칸 싸이코>나 <다크 나이트>를 찍기도 전이지만 확연히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배우이다. 샬라메가 1861년 과거 시점에서도, 1868년 현재 시점에서 방탕하게 사는 로리가 되었음에도 변함없이 가련미가 넘치는 소년이라면, 베일은 등장부터 곧 청년이 될 소년이라는 이미지이다. 헤테로 로맨스를 즐기는 주류 여성 관객들은 여주인공보다 아리땁고 가냘픈 남주인공을 원하지 않는다. (특수 니즈 제외, 보편론을 논하는 중) 헤테로 커플 키 차이는 몇 센티미터가 이상적이라느니 하는 헤테로 로맨스 롤플레잉에 적합한 구체적인 수치까지 존재하는 사회에서, 요약하자면 94년작 관객들은 매력적이고 케미 넘치는 처녀총각이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눈이 맞아야 한다는 '자연의 이치'를 거부하는 위노나-조에게 배신감을 느끼도록 유도되지만, 19년작의 관객은 커플적 전망을 보기 어려운 사이의 아름다운 청춘의 우정을 고백으로 파괴하는 샬라메-로리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로맨스물에서 여주인공이 잠시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홀랑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남주인공은 그 순간 실격이다. 허용되는 범위는 집안 사정으로 인해 강요된 약혼까지뿐, 그때는 네 말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이제 네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 네 동생에게 느끼는 사랑과 네게 느끼는 사랑은 다른 것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다르다는게 여주에게 느끼는 감정이 우정이고 여주 동생에게 느낀다는 감정이 사랑인 남자 캐릭터는 이미 로맨스 스토리의 남자 주인공이 아니라 여자 주인공의 과거의 장애물일 뿐이며 넘어야 할 흑역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상대가 막내동생인 에이미만 아니었더라면 할리우드 로맨스 기준으로는 허용일지도 모르겠지만, 조의 동생인 에이미에게 청혼한 순간 로리는 아웃이다. 차라리 마치 가에 편입되어 따스한 가정의 정을 느끼고 싶어서 몸부림치던 로리가 맏이 메그와 결혼했으면 눈살 한번 찌푸리고 말았겠지만, 네 자매 중 막내이며 가장 철이 없는 어린 아이로 나오는 에이미와 로리가 결합하는 전개는 소설이 출간되었을 당시에 많은 독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으리라고 짐작한다. (94년도 영화의 에이미는 심지어 아역과 성인 배우가 따로 있는데, 어린 에이미에게 그와 비교하면 거대한 성인처럼 보이는 로리가 나중에 크면 결혼해주겠다고 입맞춰주는 장면까지 나와서 이후의 전개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게 만든다.) 이 모든 점을 고려했을 때, 거윅은 올콧이 낸 결말을 표면 그대로 읽는 대신 올콧이 그렇게 밖에 결말을 쓸 수 없었던 배경까지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했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결말의 심볼인 디즈니마저도 2010년대 <겨울왕국>과 <말레피센트> 이후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작은 아씨들>의 책과 영화를 본 독자와 관객은 많을 것이나, 당시 루이자 메이 올콧이 어떤 이유로 작품의 결말을 수정했는지 혹은 어떤 이유로 캐릭터들의 결말이 선사되었는지를 각자 상상하는 것과 그 상상을 구체화해 하나의 작품으로 보는 것은 다른 경험일 것이다.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조의 운명을, 여자주인공의 결말을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재해석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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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을 괴롭게 하는 영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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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었어?
이렇게 인사를 건넨다. 한국인에게 밥이 가지는 어마무시한 메타포를, 오스트리아 출신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는 알지 못할 것이다.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는 다 알지만, 외국인의 눈에 이 먹보들은 불가해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2010년에 발매된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라는 노래는 이별 후에도 밥만 잘 먹더라는 스토리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힘들어 죽겠어도 '밥만 잘 먹으면' 괜찮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러니까 먹는 걸로 장난치면 뒈지게 혼나는 거다. 가정교육의 또다른 이름은 밥상머리 교육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클럽 제로>는 한국인들이 유전적으로 가진 어떤 버튼을 딸깍 누른다.
다행히도 영화를 볼 때 나는 공복이었다. 종일 먹은 거라고는 베이글 하나뿐이었는데, 정말이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술을 좀 마셨다. 영화 때문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 할머니랑 같이 보면 난리 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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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엘리트 학교에 영양교사로 온 노백이 아이들을 굶기는 이야기.
노백은 학부모 회의에서 추천받아 부임했다. '웹사이트'에서 추천했다는 걸로 보아, '안아키' 한의사와 비슷하다. '의식적으로 먹기'에서 시작하여 인간에게 음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극단적 논리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준다.
식사의 정치학
예시카 감독은 <클럽 제로>를 '통제'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렇다. 밥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어도 무방하다. 이를테면 옷을 통제한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날씨와 옷은 상관 없다고 시작하여 점퍼를 벗는다. 그리고 상의를 벗는다. 다음으로는 하의를 벗는다. 사실 인간은 옷 같은 건 필요 없는 존재다.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줄 안다. 옷이란 자본주의의 폐해이며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것이다.
그러나 통재의 소재가 '밥'인 것은 먹는 행위가 가장 원초적이기 때문이다. 원초적이어서 끔찍하고, 원초적이기에 인간의 모든 행동양태를 통제할 수 있다.
미성년자에게 보호자가 필요한 이유는 수십만 개가 되겠으나 그중 보호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아이를 '먹이는' 행위이다. 그러니 수많은 아동학대 중 밥 굶겼다는 항목에 공분한다. 먹이는 자와 얻어 먹는 자에게는 역학관계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밥을 굶길 수 있는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보다 우위를 점한다. 노백의 클래스에 모인 학생들이 점점 노백에게 종속되는 것처럼.
학생들의 식사를 통제할 수 있게 된 노백은 완전히 그들 위에 군림한다. 마치 사이비 종교 같다. 실제 영화에서 노백이 하는 짓거리들을 보면 사이비와 다름 없다. 정체불명의 '어머니'를 찾으며 계시를 내려 달라 애원하고, 명상하고, 마음 어쩌고를 찾는 것까지. 사이비 교주가 사이비 신도들을 꾀는 방법과 유사하다. 사이비 신도들이 절대적 믿음을 갖는 순간, 교주가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권력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이다. 사이비 종교를 다룬 무수한 콘텐츠들에서 발견되는 맥락과 같다.
접근 방식도 비슷하다. 각자의 약점과 결핍을 파고든다.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부모 같은 자애로운 사랑을, 특히 부모가 동생만 데리고 떠난 아이에게는 '너만이 내 특별한 아이'라는 환상을 심어 준다. 가난한 싱글맘을 가진 아이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자극하며, 체중 관리를 하는 아이에게는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역설한다.
문제되는 지점은 이들이 청소년이라는 사실이다. 교장 선생에게도 노백은 '의식적으로 먹기'를 설파하지만, 식사량을 줄이던 교장 선생은 '처음에는 좋았지만 힘들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다르다. 맹목적인 믿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논리적으로 격파하지 못한다. 종국에는 다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오직 노백의 말만 따른다.
미성년자-그중에서도 여학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프로아나'라는 용어가 있다. '아노렉시아(Anorexia)'를 찬성(Pro)한다는 이상한 용어인데, 이들에게도 별 희한한 '믿음'이 있다. 뼈만 보일 만큼 빼빼해지면 모두가 자기를 사랑할 거라는. 프로아나를 지향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정상 체중이다. 밥에도 미쳤지만 외모 강박에도 미쳐버린 대한민국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쪽에서는 먹방이 난리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프로아나가 난리다.
사실 제3자의 눈에는 이들이 빼빼마른 몸이 아니라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것이 훤히 보인다. 맹목적인 믿음에 빠진 그들만 모를 뿐이다. 사랑에도 정치가 있으니, 권력은 당연히 사랑을 주는 자에게 있다. 사랑받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할 만큼. 부모와 자식간에도, 연인간에도. 노백의 학생들은 노백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단식에 이른다. 부모나 친구로부터 생긴 구멍을 노백이 채워주므로.
노백이 처음에 주장한 '의식적으로 먹기'도 적당히 하면 중요하다. 식사를 통제하고, 의식적으로 액상과당과 탄수화물을 줄이고, 생활을 통제하고, 핸드폰 적게 하고. 우리는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입에 음식을 집어 넣는가. 입이 심심하니까.
노백의 학생들도 초반에는 몸이 가벼워지고, 능률이 오르고 일시적으로 당뇨가 호전되는 경험을 한다.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성인이라면 '적당히'를 안다. 이 정도 통제하면 되겠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통제가 극단으로 치닫는 까닭은 아마도 구멍 때문일 것이다. '결핍' 말이다.
내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면 내 구멍을 찾아야 한다. 외로움인지 슬픔인지 두려움인지 사랑인지. 프로아나 여학생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사랑'이기에 사랑을 받기 전까지는 몸이 걸레짝이 되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노백의 수업은 통제와 가스라이팅을 하려면 반드시 구멍이 있는 자를 찾아야 한다는, 그리고 그 구멍을 집요하게 파야 한다는 이상한 교훈을 안겨 준다.
밥 잘 챙겨 먹자. 맛있는 거 '의식적으로' 먹고,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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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제로(Club Zero)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
출연: 미아 와시코브스카
상영시간: 110분
주의: 역겨운 장면 있음. 저는 비위 약해서 눈 감고 봄.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대받아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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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의 가해자가 오늘의 피해자가 되다
어제의 가해자가 오늘의 피해자가 되다
영화 <유포자들> 리뷰
감독] 홍석구
출연] 박성훈, 김소은, 송진우
시놉시스] “핸드폰이 사라지고, 나는 N번째가 되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던 남자 도유빈. 자신의 오랜 친구 공상범의 유혹에 이끌려 클럽에서 잊지 못할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사라진 전날 밤의 기억과 핸드폰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수화기 너머 범인은 3천 3백만 원을 구해오지 않으면 그 영상을 세상에 공개하겠다고 한다. 오늘 밤, 숨기고 싶었던 모든 것이 잠금해제 된다.
몰카범의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영화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영화 <유포자들>이 비슷한 소재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걱정반 기대반으로 영화관을 찾아갔다. 사실 뻔한 내용이기에 이미 그동안 많이 접했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 어쩌나 내심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피해자의 성별을 교차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이질감을 전해주어서 새로웠던 작품이었다.
교사라는 직업이 가진 압박감을 표현하다
미래에 사회를 이끌어나갈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인 학교. 이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전담하는 이는 교사다. 그렇기에 모범을 보여야하고 위험한 행동을 해선 안되는 직업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전형적인 선생님의 상이 있기에 이에 벗어나면 시정 요청이 쉽게 들어오는 직업군 중 하나다. 그래서 일까? 몰카 유포와 관련된 다양한 영화들에서 피해자로서 종종 볼 수 있는 직업이 바로 교사였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피해자인 유빈의 직업이 고등학교 교사다.
교사로서 교단에 서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면서 유빈은 동영상이 언제 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동영상이 공개되는 망상을 겪기도 하고, 이로 인해 아이들이 자신을 비웃고 욕하는 것까지 상상을 하며 힘들어한다. 모범을 보여야하는 직업에서 스스로의 행동이 그렇지 못했다는 자책과 빠르게 자신의 행실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갈 수 있다는 집단이라는 공포감이 주는 압박이 굉장히 클 수밖에 없다는 직업군이라는 점이 이번 영화에서도 잘 표현이 되고 있었다.
피해자에는 성별이 없다
이제까지 많은 작품들에서 피해자는 여성, 가해자는 남성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사례를 보면 여성 피해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남성 피해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 <유포자들>에서 몰카 피해자로 남성과 여성 모두를 설정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성범죄의 피해자에는 성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또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이 작품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 방법이 바로 주인공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인물로 설정한 것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 유빈의 성적 취향은 관계를 가지면서 영상을 찍는 것이다. 그런 그의 취향을 알았던 친구 상범은 유빈의 핸드폰을 고쳐준다는 핑계를 가지고 유빈의 핸드폰에 있었던 동영상들을 불법 음란 사이트에 업로드했고, 여자친구는 이로인해 일상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그런 여자친구에게 유빈은 3,000만원이라는 돈을 내밀며 ‘우리 인간적으로 해결하자’라며 비인간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선생님이 된 유빈은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클럽에서 만난 여자들의 꼬임에 넘어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찍힌 몰카 동영상으로 인해 자신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된다. 과연 유빈은 남성으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이러한 몰카 동영상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흔들릴 것이라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까? 자신이 여자친구와의 관계 영상을 찍으면서 가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도, 절대 피해자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자신에게 닥친 이 상황에 더욱 멘탈이 붕괴되고 정상적인 해결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진범을 잡고 자신의 몰카를 유포한 이와 마주본 장면에서 ‘인간적으로 해결하자’는 말을 들으며 과거 자신이 했던 말과 똑같음을 깨달은 유빈은 얼굴이 일그러진다. 가해자의 얼굴에서 피해자인 자신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는 가해자 유빈과 피해자 유빈이 서로 마주보며 마무리된다. 그만큼 이 작품은 성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에는 정해진 성별이 없으며, 가해자 역시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잘 구현한 작품이었다.
영화 <유포자들>은 불법 촬영이라는 무거운 소재였지만 기존에 통용되던 성별을 역전시킴으로써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일인물로 설정함으로써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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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싱타는 여자들 리뷰 - 열둘, 열세 살 여공들의 울분에 대하여
*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2022년 1월 개봉예정인 작품 [미싱타는 여자들]의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1970년대 평화시장에는 가난해서 혹은 여자라서 공부 대신 미싱을 타며 `시다` 또는 `공순이`로 불린 소녀들이 있었다 저마다 가슴에 부푼 꿈을 품고 향했던 노동교실 그곳에서 소녀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노래를 하고, 희망을 키웠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청춘이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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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메이크 마이 데이> 공식 예고편
3월 1일, 가장 유쾌한 집사 면접 시작! #청년경찰 김주환 감독의 [멍뭉이] 1차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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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트로트는 인생이다> 메인 예고편
줄거리
트로트 가수 ‘신하’(김경진, 김동찬)는 최근 고민이 많다
아무리 신곡을 내고 홍보를 해도 그들을 찾는 무대는 없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이들은 신입 멤버를 영입해
시대에 맞는 트로트 혼성 그룹 ‘뉴-신하’를 결성하기로 한다
때마침, 연습생 기간만 6년… 이제는 희망을 잃은
아이돌 지망생 ‘지원’(장소영)이 운명처럼 나타나는데!
희망찬 내일을 꿈꾸는 이들의 좌충우돌 도전기!
우리들은 무대는 지금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