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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2024-11-28 18:18:41

광기에 사로잡힌

서브스턴스(2024)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 받는다.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하는데... 단 한 가지 규칙,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킬 것. 각각 7일간의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한다면 무엇이 잘못되겠는가?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서브스턴스> 줄거리

 

 

 

 

화려했던 시절을 지난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사람들이 원하는 어리고 아름다운 스타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행하던 쇼에서도 해고를 당한다. '어리고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다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싶은 엘리자베스는 약물에 의해 추구하는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낸다. 수는 단번에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며 규칙만 잘 지킨다면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더 누리길 원하는 수의 욕심으로 이 평화는 깨지고 만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수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달리 점점 추해져 가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극명하게 보인다. 

 

 

 

 

엘리자베스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 수를 증오하고 수는 집에 틀어박혀 엉망으로만 만드는 엘리자베스를 경멸한다. 하지만 그들은 몸이 두 개일 뿐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수'와 영광은 모두 과거에만 존재하는 늙은 '엘리자베스' 모두 나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서로에게 드러내는 경멸, 적대, 증오는 결국 자기혐오이다. 엘리자베스는 수의 욕심이 자신을 고립시킨다 여기지만 이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젊고 아름다운 수로 계속 존재하고 싶다는 엘리자베스의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엘리자베스는 다시 돌아가진 못하더라도 더 악화되기 전에 중단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고 있었으며 실제로 중단을 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수, 모두가 찾는 수가 없어지고 퇴물이 된 늙고 추해진 엘리자베스만 남는 것을 견딜 수 없기에 가장 원래의 버전인 엘리자베스를 포기한다.

 

 

 

 

노화에 대한 공포. 늙음에 대한 혐오는 현실의 사회에서도 만연하다. 이런 분위기가 단순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 하기에는 사람들은 위험한 수술이나 건강에 좋지 않은 약을 먹기도 하며 젊음을 유지하려 한다. 이렇게 모두가 갖고자 노력하는 젊음은 사실 젊음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엘리자베스는 더이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춰지지 않는 자신의 늙은 신체를 부끄럽게 생각하며 더 늙어갈수록 본인의 신체를 최대한 가라기 급급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더욱 아름다운 수를 포기하지 못한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서브스턴스> 속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허무맹랑한 것도 아니다. 영화에서 만든 이조차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약을 먹고 자신의 신체를 산산이 조각내고 일부를 도려내가는 모습은 우리가 과정을 보지 못해서 모를 뿐 실제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아름다움, 젊음을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들을 생생하게 눈에 담는다. 그럼 이제 이런 생각이 든다. 끔찍하고 괴기하며 자신을 망치는 행위를 끝내지 못하는 엘리자베스가 이해가지 않는다고. 서브스턴스의 진짜 의미는 이런 감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왜 엘리자베스는 고통을 감내해가면서까지 '수'를 원했는지, 왜 그들의 간단한 규칙은 지켜지지 않았는지, 왜 서로를 경멸했는지. 이제는 이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사회에서 요구되는 미의 기준은 끝도 없이 높다. 영화 속 엘리자베스에게도 이 기준은 잔인하게 적용되며 그저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내쳐진 그에게 다시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압박은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약을 사용할지 말지 중단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이 엘리자베스에게 주어진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게 현실이라며 팔짱을 낀 채 여성의 신체를 평가하고 탐닉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과 시선이 계속해서 엘리자베스의 선택을 종용한다. 아름다운 수를 모두가 사랑하고 원하고 있다는 달콤한 말은 엘리자베스가 그렇지 못한 자신을 파괴하게 만든다. <서브스턴스>는 이상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사회에 결국 망가져버린 한 사람의 피를 뿌리며 비난한다.

<서브스턴스>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아름다움을 충족하다 파괴되는 내면을 바디호러무비만의 그로테스크함으로 풀어낸다. 진짜 '나'와 이상적인 '나' 사이의 간극과 그로 인한 자기혐오를 드러내기 위해 실제로 두 신체로 분리하여 그들 간의 갈등으로 나타내며 종국엔 사회가 바라는 아름다움을 충족하다 자신의 내면이 황폐해지고 파괴되는 것을 정말 그들의 신체를 부서뜨리며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서브스턴스>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작성자 .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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