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READ2025-08-10 14:26:39
내일의 나를 위한 단 하나의 요리
영화 <아메리칸 셰프> 리뷰
영화 <아메리칸 셰프>
존 파브로 감독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 칼 캐스퍼는 레스토랑 오너에게 메뉴 결정권을 뺏긴 후 유명 음식 평론가의 혹평을 받자 홧김에 트위터로 욕설을 보낸다. 이들의 썰전은 온라인 핫이슈로 등극하고, 칼은 레스토랑을 그만두기에 이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는 쿠바 샌드위치 푸드트럭에 도전, 그동안 소원했던 아들과 미국 전역을 일주하던 중 문제의 평론가가 푸드트럭에 다시 찾아오는데! 과연 칼은 셰프로서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까?
요리로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고, 나도 거기서 힘을 얻어. - 칼 캐스퍼, <아메리칸 셰프> 중
언젠가 한 번쯤,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지치고 힘들더라도 이것만은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 다 포기하고 싶더라도 이것만 계속할 수 있다면 됐다고 생각할 만큼 나에게 소중한 것에 대해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 각자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존재가 있다. 때로는 가족이, 친구가, 혹은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그 당시 나에게는 '글'이 그런 존재였다. 글을 통해 내 세계를 다시금 매만져 나가는 일이 좋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더라도 그저 글만 계속 쓸 수 있다면 뭘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요리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어떤 운명에 처하더라도 그저 '요리'가 하고 싶을 뿐인 셰프, 칼 캐스퍼가 있다. 과거 유명했던 스타 셰프이자, 자신의 요리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남자. 그는 결코 완벽한 인물이 아니다. 이혼한 전 아내의 아들 퍼시와는 늘 '바쁘다'는 이유로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못하고, 레스토랑에서는 메뉴 선정을 사이에 두고 식당 오너와 갈등하다 충동적으로 주방을 나가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주방에서만큼은, 요리를 하는 순간만큼은 그는 완벽한 셰프의 모습을 추구한다.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어하는 욕구, 그리고 모두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 그것이 그의 셰프용 칼이 빠르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원동력인 셈이다.
그래서 독설 전문 음식 비평가, 램지 미첼이 그의 요리를 먹어본 뒤 혹평을 게재했을 때 그는 상처를 받는다. 한평생 요리에 바친 그의 시간이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한 그릇에 조심스레 올린 그의 인생과 자부심에, 몇 문장의 독설이 균열을 만든 셈이다. 그는 밤을 새 다시 레시피를 연구하고, 램지 미첼에게 '다시 찾아와 보라'고 선전포고를 던진다. 그리고 새로운 레시피를 준비해 그의 독설을 방어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램지 미첼의 독설이 아닌, 레스토랑 오너, 리바의 '메뉴를 유지하라'는 명령이다.
이 장면이 사실상 해당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다. 독창적인 요리, 새로운 시도, 도전적인 구성도 좋지만, 리바의 명은 그저 '원래대로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리바의 명령에는 납득 가능한 논리가 붙어 있다. 우리의 레스토랑을 찾아왔던 기존의 손님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그들이 '믿고 먹는' 원래의 요리를 하라는 것. 평소라면 고개를 끄덕였을 간단한 주문이지만, 적어도 오늘의 칼 캐스퍼에게는 아니다. 새로운 면을 보여줘야 하는, 독설 한 무더기를 들고 찾아올 램지 미첼의 예약이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그에게는 기존 손님들이 기대하는 맛보다도, 새로운 손님의 실망을 꺾는 '킥'이 더 중요했던 셈이다.
결국 칼 캐스퍼와 리바의 갈등 끝에 칼은 레스토랑을 벗어나고, 램지 미첼이 도착했을 때는 칼도, 새로운 요리도 없이 그저 혹평의 주인공이었던 '초콜릿 라바 케익'이 다시금 서빙되고 있을 뿐이었다.
램지 미첼은 칼이 '도망갔다'며 SNS를 통해 다시금 그를 도발하고, 결국 칼은 폭발해 레스토랑에 찾아가 그에게 소리를 지른다. 레스토랑에서도 잘리고,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 논란 때문에 그를 찾아주지 않는다. 램지의 독설 때문에 낮은 평가를 받았던 한 접시의 '초콜릿 라바 케이크'에서 나아가, 그 자신의 독설 때문에 그의 한평생의 인생이 부정적인 평가를 얻게 된 셈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요리를 하고 싶어한다. 한순간에 자신이 일구었던 모든 것들이 무너졌더라도, 자신이 셰프로 일했던 레스토랑에서 쫓겨났다고 하더라도. 보여주기식의 '스타 셰프 프로그램' 같은 곳이아니라, 모두가 진심으로, 열정적으로 일하는 주방에서.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는 차가운 시선의 외부인이 아닌, 어디서나 그를 응원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 서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그의 세계는 다시 시작된다. 영화의 2막은 레스토랑에 고용된 셰프 '칼 캐스퍼'가 아닌, 푸드트럭에서 쿠바 샌드위치를 파는 푸드트럭 주인 '칼 캐스퍼'에게 넘겨진다. 그의 전 아내는 그의 새로운 도약을 응원하고, 그의 아들은 그에게 요리를 배우며 그와 함께 장사를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가 떠난 주방에서 부주방장으로까지 승진했던 그의 동료, 마빈은 그가 푸드트럭 장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에 레스토랑을 관두고 달려온다. '형님이 있는 곳이라면!' 그를 향한 주변인들의 믿음을 불씨 삼아, 그의 열정은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다.
부정적인 여론을 딛고, 자신만의 작은 주방을 다시금 꾸려나가는 '진짜 셰프'의 이야기. 사실 현실은 이 영화보다 조금 더 차갑고 냉정할지도 모른다. 작은 푸드트럭에서 쿠바 샌드위치를 팔기 시작했다고 해서 영화 속 칼 캐스퍼의 푸드트럭처럼 마냥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고, SNS를 통해 홍보를 시작했다고 해서 모두가 그의 음식을 먹으러 찾아오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독설을 날렸던 비평가는 여전히 그의 요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새롭게 시작된 그의 삶을 오직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이끈다. 때때로 영화는 그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현실 위에 서 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위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현실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앞에는 이런 이야기가 펼쳐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포장해 건네는 셈이다. 그리고 우리의 눈앞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쿠바 샌드위치' 같은 맛있는 영화 한 편이 펼쳐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아무 갈등 없는 온전한 행복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더 큰 갈등이 있어야만 할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암흑 너머 이어지는 '칼 캐스퍼'의 삶에는 또 다른 갈등과 문제가 자리해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를 위로해줄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는 맛있는 요리, 멋있는 셰프, 사랑하는 이들만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칼과 함께 성장할 힘을 얻는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주변 사람들. 어떤 위로는 그저 그를 '받아들여주는' 것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주는 것만으로, 삶이 흔들려 고민하는 이에게는 최고의 위로를 선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로운 장을 시작할 힘을 건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삶이 막막하고 지칠지라도,다시 한 번 진심을 다해 달려갈 수만 있다면 새로운 장은 언제나 우릴 향해 준비되어 있다. 단순하지만 분명한 이 속삭임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만의 새로운 요리를 시작할 힘을 얻는다.
오늘, 어떤 요리 한 그릇을 만들어내고 싶은가? 어떤 레시피를 택해 내놓더라도, 당신의 옆에 당신의 요리를 함께 먹어줄, 그리고 '당신이 만든 게 더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워줄 이들이 있다면, 당신의 식탁 위는 이미 '맛있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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