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1-04-11 23:15:36
세이프 - 안전(safe)과 안전하지 못한(unsafe), 아이러니의 연속
한국 영화 최초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수상한지 벌써 2년이 되었다. 한국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비교적 늦게 주목을 받았지만 초청받은 작품들 대부분이 수상하거나 무관이라도 좋은 평을 받았다. 이러한 경향은 장편 뿐만 아니라 단편에서도 보이는데, 단편 부문에서 한국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 뉴스도 많이 뜨고 인터뷰도 자주하고, 여러 영화제에도 초청받으면서 화제를 받은 걸로 아는데, 제작년에 기생충이 경쟁부문 황금종려상을 타면서 이 영화도 다시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필자는 이 영화를 상암 한국영상자료원의 영상도서관에서도 VOD로 관람하였다.
이 영화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주인공 민지는 돈을 번다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의 안정성(안전)을 추구하지만, 그 돈을 번다는 행위는 위험(안전하지 못한)하다. 애초에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본인도 인지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엔딩에서 극한에 다다르는데, 남자라는 위협을 피하기 위해 금고에서 돈을 빼내고, 자신이 그 금고에 숨는 행위를 통해 안전을 얻는다, 하지만 금고 안에서 핸드폰이 방전되고 금고 안에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상황까지 끌고온 요소인 '돈'의 요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볼 수 있다. 최후에는 돈의 위치를 인간이 차지하게 되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인간보다 더 가치있게 평가되는 것은 더 이상 드문일이 아니게 되었다.
영화는 1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사운드를 통해 관객들에게 강렬한 압박감을 주며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감독의 훌륭한 기교를 봄으로서 후속작을 기대하게 되는 부분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이 작품 이후로 문병곤 감독은 활동이 아예 없다. 2014년에 "문감독 예고편: 40 MIN"이 나오기는 했는데 이것은 세이프를 포함해 자신이 제작한 단편을 합쳐둔거라 새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세이프 이후로는 장편에 몰두하겠다고 인터뷰에서 답했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칸 영화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이라는 훌륭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감독이니, 분명 언젠가 장편, 아니 단편으로라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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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lab Curation]❣️
이번 주에는 아카데미 후보작 중 하나인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과 같이
음악가의 삶을 다룬 영화들을 큐레이션 해 드리려고 해요.
우리가 사랑한 가수들의 삶의 이면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배우들이 완벽히 재현해낸 그들의 모습을 만나러 가보실까요!🧡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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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 소녀의 성장기 : 메이의 새빨간 비밀
* 본 게시물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디즈니 플러스를 1달 무료 구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부지런히 로키를 보던 도중 최근 픽사의 신작 ‘메이의 새빨간 비밀’이 디즈니 플러스에서 오픈한 것을 보고 호기심에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화면 가득 채운 레서 판다가 귀여워서 무작정 누른 게 큽니다만 귀여운 레서 판다만큼이나 작중 인물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무척 즐겁게 본 애니메이션입니다.
픽사의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중국계 미국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메이라는 13살 사춘기 소녀입니다. 메이의 혈통에는 신비한 비밀이 한 가지 있는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레서판다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특별한 설정은 메이의 심리상태 그리고 13살이라는 사춘기 소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메이는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어머니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우선인 ‘착한 딸’의 역할을 철저하게 지켜왔습니다. 친구들이 함께 놀자고 하는 것도 뿌리치고 어머니와 함께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사당을 청소하러 가는 것처럼요.
하루는 자신이 그린 야한(?) 그림을 어머니에게 들키게 되고 어머니는 야한 그림의 대상에게 가서 메이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메이는 그간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쳐 잠이 드는데, 꿈으로 잠을 설치다 깨었을 때는 레서판다의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메이는 어머니에게 그 모습을 절대 들키지 않으려고 했고, 어머니는 그런 메이의 모습에 메이가 생리를 하게 된 것이라고 착각하죠. 결국 그 모습을 들켰지만 메이의 어머니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메이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어머니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메이는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판다를 봉인하려 합니다. 하지만 남은 기간은 약 한 달여. 그 한 달 동안 메이는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탈을 하며 자신의 새로운 모습에 눈을 뜹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공연에 꼭 참여하고 싶었던 메이와 친구들은 레서판다의 모습을 이용해 티켓을 살 돈을 모읍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된 메이지만 끝내 한 친구의 생일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흉포한 판다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자신이 저지른 일과 어머니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마음, 콘서트를 가지 못한다는 마음이 엉켜 무척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 사건 끝에 메이는 레서판다의 모습도 자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판다를 봉인하지 않는 선택을 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사춘기 소녀의 감정을 판다로 표현한 점이 무척 귀엽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요소였습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빨간색인 레서판다로 변신한 이유가 거짓말은 새빨간 것 그리고 생리가 시작되며 빨간색이라는 것과 연관을 지어서 캐릭터를 잡은 것은 아닐까 싶네요.
래서판다로 캐릭터를 구축한 이유가 무엇이든 판다라는 매개를 통해 어머니와 딸의 감정 갈등과 해소, 사춘기 소녀의 관심사와 감정을 정말 잘 표현해낸 것, 4공주(?) 친구들과 한 번쯤 해봤을 흑역사 생성이나 아이돌을 덕질과 같은 요소들은 ‘메이의 새빨간 비밀’이 풍성하게 만들어주며 주제의식도 분명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특히 귀여운 것을 보는 메이와 친구들의 눈이 잊히지가 않을 만큼 정말 귀여워요)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본다면 아이들보다 부모가 더 재미있게 볼 것 같은 애니메이션이네요. 별생각 없이 봤지만 먹던 밥까지 멈추게 하고 보게 할 만큼 즐겁고 유쾌했던 픽사의 작품이었습니다.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시는 분이시라면 꼭 보라고 추천드리고 싶네요.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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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가족 이야기, 영화 <위국일기>
<위국일기(違国日記)>는 갑작스럽게 함께 살게 된 이모와 조카가 서로를 이해하며 서서히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일본 영화입니다. 소설가 마키오는 소식을 끊고 지내던 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합니다. 그곳에서, 고아가 된 조카 아사를 두고 ‘버려진 대야 같은 신세’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을 본 마키오는 충동적으로 아사를 맡기로 결심합니다.
‘위국일기(違国日記)’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어긋난 나라의 일기’입니다. 이 제목은 이모와 조카의 태생적 거리감과 서로의 성격과 생활방식이 달라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을 상징합니다. 두 사람이 전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같은 제목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가족과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차분하게 돌아보게 합니다. 주연을 맡은 아라가키 유이(이모 역)와 하야세 이코이(조카 역), 카호(이모 친구 역)의 섬세한 연기는 마치 그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감독의 서정적인 연출 역시 이들의 일상을 조용히 담아냅니다.
씨네랩의 영화 크리에이터로 영화의 시사회에 초대받아 좋은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위국일기>는 일상 속에서 각자가 품고 있는 외로움과 상처를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모와 조카의 복잡한 감정선과 세대 간의 이해와 소통을 담아낸 이 영화는 관객에게 잔잔한 감동과 따뜻한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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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우리는 인연일까?’
선택은 하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버리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인생을 살며 다양한 선택을 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것을 버리거나 두고 온다. 때때로 미련이라는 게 남아 스스로 제쳐놨던 것들을 떠올리고, ‘만약’이라는 마법을 통해 상상으로 그 삶을 소환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인연이라는 소재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과 그 안에 자리 잡은 인물과 관계를 마주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다중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민자들을 마음을 대변한다.
나영이자 노라(그레타 리)는 12살에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 한국에서의 삶, 그 안에서 꽃피울 미래, 그리고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 해성(유태오)을 놔두고. 12년 후, 노라는 연극 극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중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해성의 메시지를 확인한다. 화상채팅으로 재회한 이들은 마치 어제 만난 친구처럼, 때론 연인처럼 연락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진다. 하지만 각자 처한 상황과 꿈이 달랐기에 이들은 잠시 연락을 멈춘다. 이후 노라는 예술인 레지던시에서 만난 유대인 남자 아서(존 마가로)와 가까워지고, 해성은 상하이 어학연수 중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그로부터 12년 후, 아서와 결혼을 한 노라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온 해성을 만난다.| 선택하지 않은 삶을 마주하다!
12살 때 그녀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지 않았더라면, 꿈을 잠시 멈추고 해성을 보기 위해 한국으로 갔더라면, 해성에게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고백했더라면 어떤 삶이 펼쳐졌을까? <패스트 라이브즈>는 노라가 선택한 삶보다 선택하지 않은 삶에 더 집중한다. 감독은 ‘만약’을 대동한 가능성의 문을 여는데, 이 의도는 첫 장면에서부터 잘 나타난다. 어느 바에 앉은 한 커플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노라와 해성, 그리고 아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노라와 해성을 남매로 보거나, 이들이 부부고 아서가 현지 가이드라고 말하는 등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마치 노라가 가지 않은 길을 대신 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그 모습은 달라지는데, 영화는 모든 만남과 헤어짐이 전생의 인연에서 비롯된다는 동양 사상을 가져와 느슨하지만 운명적인 관계를 만든다. 인연은 꼭 다시 만난다는 말처럼 24년 만에 만난 첫사랑 노라와 해성은 그 자체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주고받는다. 미국으로 와 극작가의 꿈을 키우고 결혼을 선택한 노라에게 지금은 잊힌 ‘나영’이라는 이름을 부르며 12살 시절의 순수한 감정을 지닌 해성은 그 자체로 순수했던 자신의 감정이자 과거를 향한 향수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기에 더 궁금하고 가까이하고 싶을 터. 감독은 자연스럽게 이 감정을 사랑의 동력으로 치환해 둘의 감정을 점진적으로 고조시키고, 선택에 따른 관계에 대한 생각을 깊게 가져간다.| 인연이 불러온 이별, 성숙한 성장
통속적인 멜로를 거부하듯 극 중 인연이란 카테고리는 노라와 해성은 물론 아서까지 확장한다. 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그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아서는 해성과의 만남 또한 몇백, 몇천 겁(劫, 헤아릴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의 선한 인연이 쌓였기에 이뤄졌다는 생각을 하고, 노라와 해성의 해후를 받아들인다. 이처럼 ‘인연’이라는 개념은 기존 멜로 장르와의 차별화 포인트인 동시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관계를 이해시키는 신비로운 힘으로 작용한다.
노라와 해성의 관계는 닿을 듯 말 듯한 이들의 거리만큼이나 절제와 담백, 여백의 미가 담겨 있다. 서로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언제나 한 발은 자신의 세계에 걸쳐놓는 것처럼,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다. 감정을 표출하기보다는 절제하고, 많은 말을 뱉기보다는 침묵이란 여백을 택한다. 그래서 더 애틋하면서도 아련한 감정이 밀려오는데, 특히 마지막 이별 장면은 극에 달한다. 그동안 끊어졌던 연이 다시 이어질 듯 하면서도 이어지지 않는 장면은 안타까움과 슬픔을 동시에 가져온다. 현재의 삶을 위해 아름다운 과거의 시간을 부여잡지 않고 떠나보내는 그 순간의 감정은 나라와 인종을 넘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경험했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한 걸음 더 성숙한 성장을 꾀한 세 사람의 모습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다중 정체성을 갖는 이민자의 고민
<패스트 라이브즈>는 심심하면서도 담백한 멜로 드라마이지만, 그 안엔 매번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이민자의 삶이 녹아져 있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셀린 송은 <넘버 3>의 송능한 감독 친딸로,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실제 이민자의 삶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이 작품에 녹여낸 감독은 노라로 하여금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 <미나리> 시리즈 <파친코> <성난 사람들> 등 다수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품이 나온 상황에서, 셀린 송은 이 작품들보다 이민자 개인의 깊은 내면적 고민을 다룬다.
한국이자 캐나다인, 그리고 미국인인 노라의 경우, 현재의 삶은 미국인이다. 한국, 캐나다의 삶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놓고 온 인생(또는 전생)이다. 노라가 해성을 만나 겪는 일련의 내면적 갈등은 자신이 미국인의 삶을 살기로 선택했지만, 그럼에도 서양 문화권에서 아웃사이더로 사는 한국인, 더 나아가 동양인들의 정체성 고민과 아픔이 녹아 있다.
“네가 기억하는 나영이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아. 근데 그 어린애는 존재했어. 네 앞에 앉아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야.”
셀린 송 감독은 해성에게 말하는 노라의 이 대사에 그 복잡한 심경을 내비친다. 그리고 슬프고도 힘겹게 해성과의 성숙한 이별로 마음속 존재했던 나영이와 작별을 고한다. 어느 인터뷰를 통해 감독은 자신은 캐나다인이라고 밝힌 것처럼, 노라 또한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현생의 삶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문어체 대사와 언어의 문제에 봉착하며, 섬세한 연기와 감정선이 종종 일탈하지만, 그럼에도 인연으로 묶인 이들의 관계는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가슴에 묻고 각자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들. 억겁의 시간이 지난 후 이들은 재회할 것이다. 이번 생은 선한 인연 중 하나였으니까.
사진제공: CJ ENM
평점: 3.5 / 5.0
한줄평: 이민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우리는 인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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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이야기를 담은 성장 영화 모음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성장 영화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모두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무기력하거나 지칠 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나가며 성장하는 주인공을 보며,
위로와 응원을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은 여러분들의 지친 일상을 다독여줄 영화 6편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성장 영화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썸머 필름을 타고! (2022)
It's a Summer Film
ⓒ 네이버 영화감독: 마츠모토 소우시
출연: 이토 마리카, 카네코 다이치 등
장르: 로맨스, SF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98분
관객들의 적극적인 수입 요청과 개봉 요청을 받은 작품
시대극 찐팬으로 영화 감독을 꿈꾸는 고교생 ‘맨발’. 영화 동아리에서 자신이 기획한 <무사의 청춘>이 탈락되자 직접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절친 ‘킥보드’, ‘블루 하와이’와 드림팀을 결성한다. 우연히 극장에서 만난 미래에서 온 의문의 소년 ‘린타로’를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한 ‘맨발’은 꿈에 그리던 촬영을 시작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지는데… 영화도, 꿈도, 사랑도 Ready Action! 최고의 청춘+로맨스x시대극÷SF 걸작이 온다!
ⓒ 네이버 영화
영화는 말야, 스크린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이어준다고 생각해.나도 내 영화를 통해 미래로 연결하고 싶어
ⓒ 네이버 영화
이번 여름엔 너희들의 청춘을 내가 좀 쓸게레이디 버드 (2018)
Lady Bird
ⓒ 네이버 영화감독: 그레타 거윅
출연: 시얼샤 로넌, 로리 멧칼프 등
장르: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4분
엄마와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
안녕 내 이름은 "레이디 버드"라고 해 다른 이름이 있지만, 내가 나에게 이름을 지어줬지 모두가 나에게 잘 살아보라고 충고로 위장한 잔소리를 해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이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 네이버 영화
옳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냐.진실한 게 중요한 거야.
ⓒ 네이버 영화
엄마가 날 좋아해 주면 좋겠어.널 사랑하는 거 알잖아.
나도 알아, 근데 좋아하냐고.
벌새 (2019)
House of Hummingbird
ⓒ 네이버 영화
감독: 김보라
출연: 박지후, 김새벽 등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38분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은희로부터
1994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살 ‘은희’의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의 이야기
ⓒ 네이버 영화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아.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 보려고 해.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하고.
ⓒ 네이버 영화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어느 날 알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인사이드 아웃 (2015)
Inside Out
ⓒ 네이버 영화
감독: 피트 닥터
출연: 에이미 포엘러, 필리스 스미스 등
장르: 애니메이션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02분
당신의 머릿속에 감정을 컨트롤 하는 존재가 있다면?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 그곳에서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감정들. 이사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라일리’를 위해 그 어느 때 보다 바쁘게 감정의 신호를 보내지만 우연한 실수로 ‘기쁨’과 ‘슬픔’이 본부를 이탈하게 되자 '라일리’의 마음 속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라일리'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기쁨’과 ‘슬픔’이 본부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엄청난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는 머릿속 세계에서 본부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한데… 과연, ‘라일리’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일! 하루에도 몇번씩 변하는 감정의 비밀이 밝혀진다!
ⓒ 네이버 영화
잘못된 일만 신경 쓰지 마.항상 되돌릴 방법이 있어!
ⓒ 네이버 영화
울음은 일생의 문제에너무 얽매이지 않고 진정하도록 도와줘
싱 스트리트 (2016)
Sing Street
ⓒ 네이버 영화감독: 존 카니
출연: 페리다 월시-필로, 루시 보인턴 등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6분
처음 만난 사랑, 처음 만든 음악!
‘코너’는 전학을 가게 된 학교에서 모델처럼 멋진 ‘라피나’를 보고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라피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덜컥 밴드를 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한 ‘코너’는 급기야 뮤직비디오 출연까지 제안하고 승낙을 얻는다.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도 잠시, ‘코너’는 어설픈 멤버들을 모아 ‘싱 스트리트’라는 밴드를 급 결성하고 ‘듀란듀란’, ‘아-하’, ‘더 클래쉬’ 등 집에 있는 음반들을 찾아가며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첫 노래를 시작으로 조금씩 ‘라피나’의 마음을 움직인 ‘코너’는 그녀를 위해 최고의 노래를 만들고 인생 첫 번째 콘서트를 준비하는데… 첫 눈에 반한 그녀를 위한 인생 첫 번째 노래! ‘싱 스트리트’의 가슴 설레는 사운드가 지금 시작된다!
ⓒ 네이버 영화
절대 적당히 해선 안 돼알아들었어?
ⓒ 네이버 영화
네게 기회가 찾아왔다면인생을 걸고 떠나.
기회란 금세 왔다 사라져.
눈 깜빡할 사이에.
족구왕 (2013)
The King of Jokgu
ⓒ 네이버 영화감독: 우문기
출연: 안재홍, 황승언, 정우식 등
장르: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4분
청춘영화, 사랑과 족구를 그대에게 바친다!
다시 읽어봐도 답 안 나오는 스펙의 주인공 만섭. 지금 당장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어도 모자랄 판에 캠퍼스 퀸 안나에게 첫눈에 반하질 않나, 총장과의 대화 시간에 족구장을 만들어달라고 하질 않나 아주 그냥 ‘족구 하는 소리’만 하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만섭과 함께 영어 수업을 듣는 캠퍼스 퀸 안나가 요즘 남자애들 같지 않은 만섭의 천연기념물급 매력에 관심을 보이고, 만섭은 급기야 안나의 ‘썸남’인 ‘전직 국대 축구선수’인 강민을 족구 한판으로 무릎 꿇리기에 이른다.
이 역사적 족구 경기를 촬영한 동영상이 교내로 퍼져 만섭은 ‘그저 그런 복학생’에서 순식간에 캠퍼스의 ‘슈퍼 복학생 히어로’가 되고, 취업 준비장 같이 지루하던 캠퍼스는 족구 열풍에 휩싸인다. 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관심 속에서 드디어 시작된 캠퍼스 족구대회! 누가 봐도 허술해 보이는 외인구단 만섭 팀은 복수심에 불타는 강민이 속한 최강 해병대 팀을 이기고 사랑과 족구 모두를 쟁취할 수 있을까?
ⓒ 네이버 영화
남들이 싫어한다고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같다고 생각해요
ⓒ 네이버 영화
너네 때는 즐거우면 장땡이야.이렇게 총 6편의 성장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앞으로 또 어떤 성장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을지 기대가 되는데요!
그럼 이번 주말은 씨네랩이 추천드린 영화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HIZ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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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함께 했던 영화는 환한 꽃이었어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나더러 '쟤는 아쉬운 애'라고 말할까? 이불킥 뻥뻥 흑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을 때, 누가 나더러 그런 이야기를 내 뒤에 했을까? 내가 아는 한 난 욕먹은 게 전부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가 모르는 재능이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공부하는 쪽으로. 공부머리가 좋으면 엄청 편할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살아본 결과 난 공부머리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는데 숙련도가 있다는 결론이다. 뭐 공부머리가 좋을 수는 있겠지만 이제까지의 삶을 반추했을 때 그렇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안다. 매일 두 편씩 쓰는 수기. 이 수기야 말로 나의 재능일지도 모른다. 누가 보면 성실한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근데 이런 글쓰기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라는 마음이 든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취향과 비슷한 수다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웃었고, 화가 났나 하는 일들이다. 주변인에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기엔 내가 봐도 쓸데없어서 싫을 것 같다. 이 잡듯 뒤져도 만나기 어려웠던 그 사람. 언젠가 나도 그를 위해 할 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르는 이방인처럼
여자는 누군가의 책방에 도착한다. 스카프를 꼼꼼하게 두르고 나타난 여자. 이 가게의 주인과 잘 아는 사이인 것 같다. 안에 있는 것들을 몇 번 뒤적거리다 밖의 테라스로 나온다. 전자담배를 피우는 여자. 가게 직원이 나와 ‘필요한 건 없나요?’라고 묻는다. 담배를 피우러 왔다고 대답하는 여자. 직원이 다시 가게로 들어서고 이곳의 주인이 나타난다. 언니! 두 여자는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 서로의 근황을 묻는 두 사람. 같은 직원이 어떤 사람이냐 묻는다. 동생이에요. 아는 동생. 아. 너 글은 쓰니? 아뇨. 아마 앞으로도 안 쓸 것 같아요. 너 살찐 것 같아. 맞아요. 저 10kg 쪘어요. 너무 쪄서 맞는 옷이 없네요. 그렇게 서로의 근황을 묻다 책 이야기로 향한다. 가게 주인은 손님에게 “얼마 전에 낸 책 읽었어요”라고 답한다. 그 질문을 듣고 본론을 물어보는 손님. “너, 왜 연락을 안 하니? 연락하는 게 부담스러웠어?”
책방 주인은 숨어 지내고 싶었나 보다.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웠던 주인. 주인은 손님이 어떻게 왔을까 궁금해졌다. 손님은 주인에게 ‘너 보러 왔다’고 답한다. 그렇게 솔직해진다. 솔직한 마음은 금세 책으로 옮겨간다. 이제 내가 읽고 싶은 것에 집중하게 됐다는 가게 주인. 세 사람의 대화는 직원의 수어로 이어진다. 날이 아직 밝지만, 날은 곧 저문다. 날이 좋을 때, 실컷 다녀보자. 금세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손님. 그렇게 우연처럼 만나 새로운 말을 배웠다.
저도 여기 처음 왔습니다
여자는 다시 이방인이 되어 전망대에 도착한다. 망원경으로 무언가를 관찰하는 여자. 갑자기 어떤 사람이 스윽 나타나서 인사를 한다. 저 모르세요? 영화감독이랑 같이 사는 사람. 우연 덕에 아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여자는 같이 사는 영화감독인 남자를 소개한다. 진짜 카리스마 있으세요. 뭔가 영혼이 없어 보이는 말 몇 마디를 한 후에 카페로 향한다. 저기서 뭐 마시도록 하죠. 손님은 영화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같이 온 여자는 감독의 영화가 달라졌다고 한다. 맑아졌다고 한다. 뭐가 맑아졌어요? 영화 만드는 마음이 달라졌어요. 그게 영화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제작에 대한 강박을 떨쳐냈다고 말하는 남자. 사는 태도를 고쳐야 영화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사는 걸 달라지게 한다라.. 말은 쉽지만 역시 어렵다.
감독은 여자가 썼던 소설을 가지고 영화로 만들고 싶었나 보다. 무기력하게 엎어졌던 지난 이야기를 꺼낸다. 왠지 모르게 영화 만드는 데 영화 외적인 것이 작동하는 것 같다. 이야기가 무르익고 남자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손님 준희. 준희는 카메라 작동법에 대해 배우고 직접 써보기까지 한다.
소설가가 만든 영화
일행은 밖으로 나온다. 어? 저 사람 누구였더라? 그 사람 아냐? 그 배우? 우연히 영화감독과 배우, 소설가와 감독의 부인이 만나고 있다. 여배우 길수와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중이다. 길수는 이제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나라 독립 영화 몇 편 나오다가 이제는 그 바닥을 떠나려고 하는 것 같다. 길수 씨가 아까워요. 감독은 한 명의 팬으로서 아쉬움을 토로한다. 길수 씨가 아까워요. 근데 준희는 감독의 이런 말이 듣기 싫었나 보다. “뭐가 아까운데요?” 답답해 돌아가실 것 같은 네 사람. 우연히 사람들을 만나 이상한 주제로 말싸움하고 있다. 이 꼴이 웃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죠.” 이죽거리는 답을 내놓자 두 사람은 후다닥 도망친다. 두 명만 남았다. 어색한 분위기의 두 사람. 한, 두 마디 대화를 하다 또 지인을 만난다. 그 사람은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준희와 길수는 경우와 영화를 만드려고 한다. 난 있는 그래도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럼 다큐멘터리가 되겠네요? 아니오. 그런 건 아니에요. 아. 그럼 뭘 만들지 기대가 되네요.
비스듬히 겹쳐 보이다
비교적 순한 맛의 홍상수다. ‘그 일’이 공개된 후의 홍상수는 매웠다. 아예 죽음이 소재였던 <강변 호텔>이나 <풀잎들>과는 다른 소재를 갖고 왔다. 그 소재는 창작론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하고 싶은 일’과 ‘어떻게 창작할 것인가’가 끝까지 반복된다. 소설가 준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으려고 하고 있다. 근데 갑자기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들면 그건 맞는 것 같다. 이 ‘소설가’라는 직업을 ‘영화감독’으로 치환하면 누가 봐도 홍상수 본인의 이야기다. 영화감독이나 소설가 둘 다 뭔가를 창작한다는 점이 이에 대한 근거다.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려고 하는 준희의 말이나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의 인물의 모습은 겹쳐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러닝타임의 1시간을 투영해서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한다. 나, 영화 만드는 방식을 달라지게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인위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자기의 모습을 극 안에 투영하기 시작한다. 이런 영화의 화법은 준희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감독은 길수에게 '아깝다'라고 답한다. 길수는 이에 대답한다. '시나리오는 들어오지만 그냥 독립영화 몇 편 나왔어요. 사람이 귀찮아서요.’ 이건 김민희 배우의 현재 입장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느덧 그녀가 홍상수 이외의 영화에 나온 지가 꽤 됐다. 김민희 배우는 <화차>와 <아가씨>로 만개했던 포텐을 뒤로 한지 오래다. 이런 나는 김민희 배우를 보며 솔직히 아깝다고 생각했다. 천우희 배우만큼이나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 자의 반 타의 반 이런저런 여론 때문에 복귀가 성사될 때 반응이 쉽게 예상이 된다. 전국적인 대스타가 되어 우리나라 충무로를 반으로 쪼개기 충분한 김민희 배우. 그녀의 현실은 평단의 호평과는 별개다.
그게 실패한 삶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닐 수도 있다. 적어도 홍상수는 이 연인의 처지와 입장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넌 재능이 있어. 근데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뿐이니까. 이런 위로 아닌 위로는 영화의 후반부로 향할수록 처연해진다.
단 한 명의 사람에게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생일. 뭐 그런 걸 소재로 영화로 만들 수도 있어요. 소설가는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준희는 생일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쭉 말한다. 길
수는 ‘저 진짜로 그런 일 있었어요’라고 답한다. 그리고 길수는 남편이랑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내면의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길수 부부는 더 이상 술자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 같다. 누가 봐도 소원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영화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이야기(<소설가의 영화>에서, 길수 부부가 내면의 이야기 '술자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제 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말과 유사하다. 그동안 포기할 수 없었던 내면의 욕망, 그러니까 세상이 허락하지 않았던 로맨스를 품고 작품을 찍어내던 예술가의 입장이다. 시간이 지나며 멀어질 수밖에 없어. 그런데 이젠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는다. 감독이 ‘준희’고 배우가 ‘길수’라고 가정하면 홍상수는 이제 외면하면 안 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비유가 성립된다.
이 비유는 사실 후반부로 갈수록 노골적이다. 간단하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누가 들어갈 수 있었음에도 관객은 단 한 명이다. 여배우 길수뿐이다. 또 다른 두 인물의 대화에서 ‘이 영화를 꼭 시간 지나고 나서 봐라’라고 말한다. 그니까 관객 길수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길 바란다’고 말하는 셈이다. 그리고 단 한 장면에서 흑백이던 색감이 컬러로 바뀐다. 꽃을 든 길수. 화장을 안 한 맨 얼굴로 렌즈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슬픈 음악과 함께 길수는 행인과 함께 길을 건넌다. 그렇게 영화 크레딧이 올라간다. 순서 상 단편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도 무방한데 이 영화 전체가 끝났다고 알린 셈이다. 자기가 하고 싶던 이야기가 끝이 났다. 준희는 자기의 작품 세계를 오롯이 반영한 영화를 끝냈다. 그리고 길수는 혼자가 됐다. 심지어 영화관 스태프와 가는 길마저 다르다. 카메라는 길수가 떠난 곳을 비춰준다. 같이 올라가지 않는다. 또 이 길수가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습까지 비쳐주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만든 영화가 끝나고 여배우는 혼자가 됐다. 영화는 그렇게 감독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제 정말 하고 싶었던 삶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니 길수는 혼자가 됐다. 우리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한 사람의 미래다. 이제 그녀는 인지도가 너무 높아졌다.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의 연애. 두 편의 영화에서 만개했던 연기력. 빼어난 미모까지. 우리나라 영화판이 만든 슈퍼스타인 그녀. 이 여배우는 다시 슈퍼스타로 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즐거웠던 일상이, 이젠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 마저 끝나 영화의 제작진 자막이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엔딩이 한번 더 나온다. 굳이 혼자가 된 길수를 조명하는 감독. 그는 이제 인정하는 것 같다. 내가 외면할 수 없는, 이 시간의 끝자락에 서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며 웃고 떠들던, 첫 만남의 술자리가 끝나가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속에서 너와 함께했던 시간은 꽃과 같이 웃는 얼굴이었다는 걸. 언젠가 날이 저무는 걸 맞이했을 때 이 영화를 봐달라는 것을. 네 삶은 절대 아까운 인생이 아니고, 나는 그런 너를 아름다운 색감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찾았고 이제야 보이는 것
영화는 홍상수의 창작론을 소재로 이끌어간다. 물론 홍상수가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 왔는지에 대해서도 공부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한 명의 연인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보는 것이다. 확실한 근거는 앞에서도 쓴 것들이다. 혼자서 보는 영화. 환하게 웃는 미소의 색감. '삶의 이야기'를 끝내고 올라가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 감독 홍상수는 이제야 예술가로서의 창의성이 넓어진 것 같다. 그리고 이 성장을 어두운 환경과 대비시키는 것이야 말로 그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사람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후반부에 있다고 보는 쪽이다. 환하게 웃는 얼굴.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물론 누군가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일이 절대 잘하는 짓을 아닐 것이다. 내가 뭐 제 3자의 입장이지만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는 나쁜 인간이다. 그는 머지 않아 상처준 사람에게 반성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연인에게 바치는 감사함의 표시는 큰 반향으로 남을 것 같았다. 이것이야 말로 감독 홍상수의 연출력이 아닐까? 잔잔히 집중하게 만들어 후반부의 터트리는 힘, 그게 그가 가진 장점이 집약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의 영화가 아니라 홍상수의 영화다. 이제 보내야 할 것에 대해 당신얼굴 앞에 대고 기억할, 그와 그의 연인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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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벌어 하루 살아도 행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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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4월이 되면 그녀는> 메인 예고편
“영원히 계속될 거라 생각했다 이 연애도, 사랑도, 모두” 사토 타케루 X 나가사와 마사미 X 모리 나나 최고의 배우진과 함께하는 로맨스 드라마˖◛⁺⑅♡ [4월이 되면 그녀는] 11월 13일 개봉 확정 아련한 메인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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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47 보스톤> 스페셜 예고편
우리의 이름으로 기록된 최초의 도전! 대-한민국 오늘의 함성이 있기까지 올 추석, 단 하나의 감동 실화 [1947 보스톤] 스페셜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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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에서 만난 가수의 삶 -7-
❣️[Cinelab Curation]❣️
이번 주에는 아카데미 후보작 중 하나인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과 같이
음악가의 삶을 다룬 영화들을 큐레이션 해 드리려고 해요.
우리가 사랑한 가수들의 삶의 이면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배우들이 완벽히 재현해낸 그들의 모습을 만나러 가보실까요!🧡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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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 소녀의 성장기 : 메이의 새빨간 비밀
* 본 게시물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디즈니 플러스를 1달 무료 구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부지런히 로키를 보던 도중 최근 픽사의 신작 ‘메이의 새빨간 비밀’이 디즈니 플러스에서 오픈한 것을 보고 호기심에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화면 가득 채운 레서 판다가 귀여워서 무작정 누른 게 큽니다만 귀여운 레서 판다만큼이나 작중 인물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무척 즐겁게 본 애니메이션입니다.
픽사의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중국계 미국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메이라는 13살 사춘기 소녀입니다. 메이의 혈통에는 신비한 비밀이 한 가지 있는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레서판다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특별한 설정은 메이의 심리상태 그리고 13살이라는 사춘기 소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메이는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어머니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우선인 ‘착한 딸’의 역할을 철저하게 지켜왔습니다. 친구들이 함께 놀자고 하는 것도 뿌리치고 어머니와 함께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사당을 청소하러 가는 것처럼요.
하루는 자신이 그린 야한(?) 그림을 어머니에게 들키게 되고 어머니는 야한 그림의 대상에게 가서 메이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메이는 그간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쳐 잠이 드는데, 꿈으로 잠을 설치다 깨었을 때는 레서판다의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메이는 어머니에게 그 모습을 절대 들키지 않으려고 했고, 어머니는 그런 메이의 모습에 메이가 생리를 하게 된 것이라고 착각하죠. 결국 그 모습을 들켰지만 메이의 어머니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메이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어머니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메이는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판다를 봉인하려 합니다. 하지만 남은 기간은 약 한 달여. 그 한 달 동안 메이는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탈을 하며 자신의 새로운 모습에 눈을 뜹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공연에 꼭 참여하고 싶었던 메이와 친구들은 레서판다의 모습을 이용해 티켓을 살 돈을 모읍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된 메이지만 끝내 한 친구의 생일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흉포한 판다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자신이 저지른 일과 어머니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마음, 콘서트를 가지 못한다는 마음이 엉켜 무척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 사건 끝에 메이는 레서판다의 모습도 자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판다를 봉인하지 않는 선택을 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사춘기 소녀의 감정을 판다로 표현한 점이 무척 귀엽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요소였습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빨간색인 레서판다로 변신한 이유가 거짓말은 새빨간 것 그리고 생리가 시작되며 빨간색이라는 것과 연관을 지어서 캐릭터를 잡은 것은 아닐까 싶네요.
래서판다로 캐릭터를 구축한 이유가 무엇이든 판다라는 매개를 통해 어머니와 딸의 감정 갈등과 해소, 사춘기 소녀의 관심사와 감정을 정말 잘 표현해낸 것, 4공주(?) 친구들과 한 번쯤 해봤을 흑역사 생성이나 아이돌을 덕질과 같은 요소들은 ‘메이의 새빨간 비밀’이 풍성하게 만들어주며 주제의식도 분명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특히 귀여운 것을 보는 메이와 친구들의 눈이 잊히지가 않을 만큼 정말 귀여워요)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본다면 아이들보다 부모가 더 재미있게 볼 것 같은 애니메이션이네요. 별생각 없이 봤지만 먹던 밥까지 멈추게 하고 보게 할 만큼 즐겁고 유쾌했던 픽사의 작품이었습니다.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시는 분이시라면 꼭 보라고 추천드리고 싶네요.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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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가족 이야기, 영화 <위국일기>
<위국일기(違国日記)>는 갑작스럽게 함께 살게 된 이모와 조카가 서로를 이해하며 서서히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일본 영화입니다. 소설가 마키오는 소식을 끊고 지내던 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합니다. 그곳에서, 고아가 된 조카 아사를 두고 ‘버려진 대야 같은 신세’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을 본 마키오는 충동적으로 아사를 맡기로 결심합니다.
‘위국일기(違国日記)’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어긋난 나라의 일기’입니다. 이 제목은 이모와 조카의 태생적 거리감과 서로의 성격과 생활방식이 달라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을 상징합니다. 두 사람이 전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같은 제목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가족과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차분하게 돌아보게 합니다. 주연을 맡은 아라가키 유이(이모 역)와 하야세 이코이(조카 역), 카호(이모 친구 역)의 섬세한 연기는 마치 그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감독의 서정적인 연출 역시 이들의 일상을 조용히 담아냅니다.
씨네랩의 영화 크리에이터로 영화의 시사회에 초대받아 좋은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위국일기>는 일상 속에서 각자가 품고 있는 외로움과 상처를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모와 조카의 복잡한 감정선과 세대 간의 이해와 소통을 담아낸 이 영화는 관객에게 잔잔한 감동과 따뜻한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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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우리는 인연일까?’
선택은 하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버리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인생을 살며 다양한 선택을 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것을 버리거나 두고 온다. 때때로 미련이라는 게 남아 스스로 제쳐놨던 것들을 떠올리고, ‘만약’이라는 마법을 통해 상상으로 그 삶을 소환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인연이라는 소재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과 그 안에 자리 잡은 인물과 관계를 마주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다중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민자들을 마음을 대변한다.
나영이자 노라(그레타 리)는 12살에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 한국에서의 삶, 그 안에서 꽃피울 미래, 그리고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 해성(유태오)을 놔두고. 12년 후, 노라는 연극 극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중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해성의 메시지를 확인한다. 화상채팅으로 재회한 이들은 마치 어제 만난 친구처럼, 때론 연인처럼 연락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진다. 하지만 각자 처한 상황과 꿈이 달랐기에 이들은 잠시 연락을 멈춘다. 이후 노라는 예술인 레지던시에서 만난 유대인 남자 아서(존 마가로)와 가까워지고, 해성은 상하이 어학연수 중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그로부터 12년 후, 아서와 결혼을 한 노라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온 해성을 만난다.| 선택하지 않은 삶을 마주하다!
12살 때 그녀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지 않았더라면, 꿈을 잠시 멈추고 해성을 보기 위해 한국으로 갔더라면, 해성에게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고백했더라면 어떤 삶이 펼쳐졌을까? <패스트 라이브즈>는 노라가 선택한 삶보다 선택하지 않은 삶에 더 집중한다. 감독은 ‘만약’을 대동한 가능성의 문을 여는데, 이 의도는 첫 장면에서부터 잘 나타난다. 어느 바에 앉은 한 커플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노라와 해성, 그리고 아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노라와 해성을 남매로 보거나, 이들이 부부고 아서가 현지 가이드라고 말하는 등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마치 노라가 가지 않은 길을 대신 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그 모습은 달라지는데, 영화는 모든 만남과 헤어짐이 전생의 인연에서 비롯된다는 동양 사상을 가져와 느슨하지만 운명적인 관계를 만든다. 인연은 꼭 다시 만난다는 말처럼 24년 만에 만난 첫사랑 노라와 해성은 그 자체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주고받는다. 미국으로 와 극작가의 꿈을 키우고 결혼을 선택한 노라에게 지금은 잊힌 ‘나영’이라는 이름을 부르며 12살 시절의 순수한 감정을 지닌 해성은 그 자체로 순수했던 자신의 감정이자 과거를 향한 향수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기에 더 궁금하고 가까이하고 싶을 터. 감독은 자연스럽게 이 감정을 사랑의 동력으로 치환해 둘의 감정을 점진적으로 고조시키고, 선택에 따른 관계에 대한 생각을 깊게 가져간다.| 인연이 불러온 이별, 성숙한 성장
통속적인 멜로를 거부하듯 극 중 인연이란 카테고리는 노라와 해성은 물론 아서까지 확장한다. 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그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아서는 해성과의 만남 또한 몇백, 몇천 겁(劫, 헤아릴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의 선한 인연이 쌓였기에 이뤄졌다는 생각을 하고, 노라와 해성의 해후를 받아들인다. 이처럼 ‘인연’이라는 개념은 기존 멜로 장르와의 차별화 포인트인 동시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관계를 이해시키는 신비로운 힘으로 작용한다.
노라와 해성의 관계는 닿을 듯 말 듯한 이들의 거리만큼이나 절제와 담백, 여백의 미가 담겨 있다. 서로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언제나 한 발은 자신의 세계에 걸쳐놓는 것처럼,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다. 감정을 표출하기보다는 절제하고, 많은 말을 뱉기보다는 침묵이란 여백을 택한다. 그래서 더 애틋하면서도 아련한 감정이 밀려오는데, 특히 마지막 이별 장면은 극에 달한다. 그동안 끊어졌던 연이 다시 이어질 듯 하면서도 이어지지 않는 장면은 안타까움과 슬픔을 동시에 가져온다. 현재의 삶을 위해 아름다운 과거의 시간을 부여잡지 않고 떠나보내는 그 순간의 감정은 나라와 인종을 넘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경험했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한 걸음 더 성숙한 성장을 꾀한 세 사람의 모습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다중 정체성을 갖는 이민자의 고민
<패스트 라이브즈>는 심심하면서도 담백한 멜로 드라마이지만, 그 안엔 매번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이민자의 삶이 녹아져 있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셀린 송은 <넘버 3>의 송능한 감독 친딸로,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실제 이민자의 삶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이 작품에 녹여낸 감독은 노라로 하여금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 <미나리> 시리즈 <파친코> <성난 사람들> 등 다수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품이 나온 상황에서, 셀린 송은 이 작품들보다 이민자 개인의 깊은 내면적 고민을 다룬다.
한국이자 캐나다인, 그리고 미국인인 노라의 경우, 현재의 삶은 미국인이다. 한국, 캐나다의 삶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놓고 온 인생(또는 전생)이다. 노라가 해성을 만나 겪는 일련의 내면적 갈등은 자신이 미국인의 삶을 살기로 선택했지만, 그럼에도 서양 문화권에서 아웃사이더로 사는 한국인, 더 나아가 동양인들의 정체성 고민과 아픔이 녹아 있다.
“네가 기억하는 나영이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아. 근데 그 어린애는 존재했어. 네 앞에 앉아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야.”
셀린 송 감독은 해성에게 말하는 노라의 이 대사에 그 복잡한 심경을 내비친다. 그리고 슬프고도 힘겹게 해성과의 성숙한 이별로 마음속 존재했던 나영이와 작별을 고한다. 어느 인터뷰를 통해 감독은 자신은 캐나다인이라고 밝힌 것처럼, 노라 또한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현생의 삶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문어체 대사와 언어의 문제에 봉착하며, 섬세한 연기와 감정선이 종종 일탈하지만, 그럼에도 인연으로 묶인 이들의 관계는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가슴에 묻고 각자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들. 억겁의 시간이 지난 후 이들은 재회할 것이다. 이번 생은 선한 인연 중 하나였으니까.
사진제공: CJ ENM
평점: 3.5 / 5.0
한줄평: 이민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우리는 인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