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1-04-11 23:15:36
세이프 - 안전(safe)과 안전하지 못한(unsafe), 아이러니의 연속
한국 영화 최초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수상한지 벌써 2년이 되었다. 한국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비교적 늦게 주목을 받았지만 초청받은 작품들 대부분이 수상하거나 무관이라도 좋은 평을 받았다. 이러한 경향은 장편 뿐만 아니라 단편에서도 보이는데, 단편 부문에서 한국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 뉴스도 많이 뜨고 인터뷰도 자주하고, 여러 영화제에도 초청받으면서 화제를 받은 걸로 아는데, 제작년에 기생충이 경쟁부문 황금종려상을 타면서 이 영화도 다시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필자는 이 영화를 상암 한국영상자료원의 영상도서관에서도 VOD로 관람하였다.
이 영화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주인공 민지는 돈을 번다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의 안정성(안전)을 추구하지만, 그 돈을 번다는 행위는 위험(안전하지 못한)하다. 애초에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본인도 인지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엔딩에서 극한에 다다르는데, 남자라는 위협을 피하기 위해 금고에서 돈을 빼내고, 자신이 그 금고에 숨는 행위를 통해 안전을 얻는다, 하지만 금고 안에서 핸드폰이 방전되고 금고 안에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상황까지 끌고온 요소인 '돈'의 요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볼 수 있다. 최후에는 돈의 위치를 인간이 차지하게 되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인간보다 더 가치있게 평가되는 것은 더 이상 드문일이 아니게 되었다.
영화는 1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사운드를 통해 관객들에게 강렬한 압박감을 주며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감독의 훌륭한 기교를 봄으로서 후속작을 기대하게 되는 부분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이 작품 이후로 문병곤 감독은 활동이 아예 없다. 2014년에 "문감독 예고편: 40 MIN"이 나오기는 했는데 이것은 세이프를 포함해 자신이 제작한 단편을 합쳐둔거라 새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세이프 이후로는 장편에 몰두하겠다고 인터뷰에서 답했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칸 영화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이라는 훌륭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감독이니, 분명 언젠가 장편, 아니 단편으로라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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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쿨하고 바르게 산화하는 혁명가의 찬란한 해방이라는 착각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취한 한 여성이 클럽 의자에 쓰러질 듯 앉아 있다. 제대로 몸조차 가누기 어려운 상황에 한 남성이 그에게 다가간다. 택시를 부를 휴대전화도 어디 있는지 모르는 여성에게 착한 사람이라 자부한 그는 집에 가는 길에 그를 내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여성은 차에 탔고, 남성은 자연스레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저항할 힘도 없어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여성을 침대에 눕혀 놓고 일을 벌이려는 순간, 조금 전까지 정신을 잃었던 여성은 그를 똑똑히 밑에서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그렇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었잖아?”
카산드라 토마스(캐리 멀리건)는 대학 시절 절친 니나 피셔의 성폭행 사실을 확인하고 진상 파악과 가해자 처벌을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끝내 사건은 흐지부지 묻히고 만다. 그의 이름처럼 ‘카산드라’는 현명한 여성의 예언을 믿어주지 않아 이후 닥친 불행을 막을 수 없는 카산드라 증후군에 빠진다.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명백한 진실을 간직한 채 니나와 캐시는 자퇴를 했고, 니나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의대에 입학할 만큼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던 두 사람의 삶은 폐허가 되었고, 캐시는 니나의 안타까운 삶을 대신 갚아 줄 비밀스러운 일을 꾸민다. 그는 동네 카페에서 일하며 밤이면 취한 척 연극을 하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성들이 원치 않는 성관계를 시도할 때마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그들을 놀라게 한다. 이는 니나의 강간 피해를 곁에서 지켜본 친구로서 도와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분노가 폭발한 계기는 가해자인 알렉산더 먼로(크리스 로웰)의 결혼 소식을 듣고 나서다. 피해자는 세상에서 사라졌는데 가해자는 유능한 사회의 일원으로 정상적인 삶을 꾸리기까지 한다는 전언에 캐시는 7년 전 자신들의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들을 찾아가 복수를 결심한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은 7년 전 절친의 성폭행 사건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주인공 캐시의 복수극이다.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90년대 팝송의 재해석과 힙한 연출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영화에는 치명적인 실수가 있고, 이는 영화가 위태롭게 유지한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캐시의 복수의 방법론에 드는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반추하다 결말에 이르렀을 때 관객은 여러 생각을 하게 되며, 굳이 내보이지 않아야 할 영화의 교묘한 속임수를 발견한다.
정기적으로 무방비 상태로 클럽에서 늦은 밤 만취 상태를 연기하는 캐시는 언제나 다음 날 아침 가족과의 식사에 참여한다. 불특정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연기에 필연적인 위험을 느낄 법도 한 캐시는 그에 개의치 않고 늘 같은 방법을 활용한다. 물론 영화 중반을 지나면 절친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분노를 동력 삼아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면서까지 채우고 싶은 그의 의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캐시의 협박에 나가떨어지는 남성들에 비해 캐시의 ‘복수’는 상대적으로 온건하다. 유부남이나 명망 있는 남성을 대상으로 한 영화 속 ‘사냥감’은 하나같이 유약하고 머뭇거리며 한심하며, 지질하고도 ‘무해하다’. 접근한 남자들은 언제나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고 포장하고, 속인 것을 알아차린 후에는 그에게 분노의 욕설 정도를 날리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된다. 이름도 나이도 모른 채 그저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남성의 아둔함을 강조하지만, 노트 한 권을 빼곡히 채울 정도로 많은 남자를 겁박한 그가 물리적 협박과 위해나 남성 커뮤니티의 가십거리 혹은 ‘복수’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게 오직 그 이유일 수는 없어 보인다. 아무리 캐시의 서늘한 아우라에 기가 눌린 남성들만 만났다 하더라도 수많은 남성과의 위험한 만남을 이어간다는 설정은 그에게 보호막이 드리워져 있지 않은 이상 우연을 넘어선 작위적 연출로 보인다. 물론 이것이 영화 전체에서 피해자의 복수를 이끄는 사회적 여성성의 전형이라면 관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흐름이다.
그렇다면 이 입만 산 남성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복수 활극으로 영화가 전개되는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캐시의 복수는 당한 대로 갚아주는, 폭력의 피로 흥건한 과거 마초적인 복수극의 패턴과 다르다. 직접적 혹은 간접적 가해자에게 죄책감과 두려움을 심어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방식은 전형성을 탈피한다. 필요 이상의 자극적인 장면을 삽입하여 불쾌감을 주는 비슷한 영화들에 비해 이 여성 복수극은 자극적인 앙갚음의 과정이 아닌 대사를 통해 끔찍한 상상을 불러일으켜 가해자를 고통받게 한다. 가해자의 변명은 한결같다. 촉망받는 한 청년의 삶을 지켜줘야 했고, 기억나지 않는다는 뻔한 거짓말에 입증할 증거는 부족했고, 술을 먹고 같이 놀러 간 피해자의 탓이 컸다는 말의 향연은 이들의 한심한 작태를 정면으로 비춘다. 대상화된 굴레를 퍼뜨려 입을 막고 주홍글씨를 남겼던 가해자에게 행하는 복수가 아쉬울 수 있겠으나 여성의 시각에서 이룩한 이 성과는 피해자의 고통을 전시하는 쪽보다는 훨씬 이성적이며 윤리적인 방법으로도 보인다.
응징은 세련되고 복수는 쿨한 캐시의 방법론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 내내 그의 안위를 걱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는 무해한 남성들을 응징하며 때로는 아파하고 혼란을 느끼는 현실적인 면모도 보여준다. 친구의 죽음 이후 자신을 가둔 죄책감과 슬픔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성장일기로 끝나는가 싶던 영화는 후반부에서 그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 버린다. 그리고 앞서 영화적 설정으로 넘어갈 수 있던 모든 것들은 한 방에 무너진다. 강간의 장본인인 알 먼로의 총각파티에 스트리퍼로 찾아간 캐시는 그에게 마지막 복수를 감행한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로 끝나고 캐시는 니나를 죽였던 바로 그에게 똑같이 죽임을 당한다. 그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일상을 포기하며 캐시가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캐시의 죽음으로 이 복수의 끝은 혼돈으로 가득 찼다. 클럽에서의 남자 사냥에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걸고 행했던 가해자를 향한 복수의 과정에서도 불안하지만 꽤 깔끔하게 해결하던 주인공은 이 계산된 복수의 방법론을 불쾌하고 황망하게 마무리한다. 3분이 넘는 롱테이크 신으로 강간 가해자로부터 죽어가는 여성의 모습을 관객에게 들이미는 이 잔인한 마무리는 그간 영화가 지켜 온 톤과 매너를 붕괴하고 과거 남성들이 자행한 폭력을 대물림한다.
캐시는 자기 죽음을 예상한 듯 속죄한 변호사에게 모든 증거를 남겼고, 알 먼로의 결혼식 날 마지막 복수가 이뤄진다. 그 과정을 목격한 방관자인 라이언에게 예약 문자로 ‘쿨하게’ 알리는 엔딩은 기괴하고 잔혹하다. 완벽히 통쾌한 복수는 없다는 사실은 10여 년 전 이금자의 처절한 속죄를 지켜보며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프라미싱 영 우먼〉이 죽음으로 모든 복수가 완성되는 결말을 의도했다면, 이제 관객은 캐시가 영화 전반에서 자초한 과거의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았는가가 아닌, ‘왜’ 살아남았는가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감독은 영화의 절정, 그러니까 깔끔하고 힙한 복수의 자기만족적인 완성을 위해 아껴놓고 캐시를 살려놓은 것이다. 영화는 피해자의 입장과 여성의 죽음이 갖는 의미는 차치한 채, 피해자의 복수를 위해 제 몸을 바치는 소꿉친구라는 진부한 설정을 두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며 파스텔 톤 색상과 펑키한 분위기의 영화적 오락성을 강조하는 패착을 저지른다. 우정을 위해 열렬히 복수하고 산화하는 삶을 애초에 블랙코미디로 상상했다면 피상적인 인식의 발로이자 얕은 위로에 불과하다. 이는 여성 혐오를 대처하는 캐시의 대사만큼이나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이다.
캐시라는 캐릭터는 하나의 인물로 기능한다기보다는 감독이 원했던 극의 주제의식을 의인화한 전형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여성의 비극과 복수를 연출하는 에머랄드 펜넬 감독의 스타일은 그가 참여했던 전작 드라마처럼 펑키하고 화려하다. 그 안에서 캐시의 장렬한 희생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니나에서 캐시로, 다시 점장 게일에게 전달되는 목걸이는 죽음으로 대물림하는 고통의 악순환이다. 고통받는 이들은 잊지 않기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캐시의 이름은 다르게 들린다. 여성의 이야기가 부정되고 사회로부터 침묵당하는 모습이 트로이 전쟁을 예측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못한 카산드라의 비극과 겹쳐 보였던 잠깐의 순간은 사라진다. 대신 윤리적이고 세련된 여성영화라는 외면에 이용당한 희생양인 캐시라는 인물이 '기꺼이' 적진으로 뛰어드는 트로이 목마로 전용되는 장면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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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의 전복, 통쾌한 복수
평소에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도 때론 그 속마음을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친분을 쌓으면서 같이 일도 하고 개인적인 여가를 같이 보내다 보면 상대방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을 거라 생각하고 내가 하는 생각과 판단에 많은 부분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가까운 사람들과는 더 끈끈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어떤 일이든 같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인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계기는 상대방과 같이 할 수 없게 만든다. 마치 그 일이 경계선이 되는 것처럼 얼마 전까지 완전히 믿을 수 있고 함께 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과 멀어지게 된다. 그것이 실제로 누군가의 마음이 바뀌거나 잘못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두 사람 각각의 실제 생각과 감정을 알기 전까지는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그래서 직접 대면하면서 이야기를 해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럴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멀어진다.
두 해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영화 <밀수>는 무척이나 가까웠던 해녀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멀어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바닷속에서 일하는 해녀들이 중심에 있다. 특히나 춘자와 진숙은 영화 초반부터 떨어질 수 없는 친구 사이로 보인다. 두 사람을 비롯한 다른 해녀들은 그들이 사는 군천 주변에 생긴 공장들로 인해 바닷속에서 건질 수 있는 생물들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바닷물이 오염된 해녀로서 일할 수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궁여지책으로 바닷속에 던진 밀수품을 건지는 일을 하게 된다.
그 일은 실제로 무척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배를 운영하고 있는 진숙의 아버지와 일꾼 장도리(박정민)가 일을 도우면서 춘자와 진숙을 비롯해 다른 해녀들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밀수품을 건지는 일이 불법이라는데 있었다. 해양경찰인 장춘(김종수)의 수사망에 걸려들게 된 그들은 결국 출동한 경찰에 덜미를 잡힌다. 그 과정에서 당황한 진숙의 아버지와 진숙의 남동생은 물에 빠져 목숨을 잃고 만다. 그리고 진숙은 경찰에 붙잡혀 감옥에 가고, 춘자는 배에 올라온 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친다.
영화는 이 초반 이야기를 보여주고 몇 년후로 시점을 돌려 그 사건 이후 각 인물들의 모습을 하나씩 보여준다. 경찰에 잡히지 않았던 춘자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 이후 그가 다시 군천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여주던 영화는 춘자와 진숙이 다시 대면하는 순간을 기점으로 이야기를 전환하여 극적 흥미를 높인다. 진숙은 춘자를 믿지 않는다. 아마도 계속 군천에 있었던 인물들 대부분은 춘자를 믿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과거 최악의 순간에 혼자 도망간 춘자가 진숙과 다른 사람들을 배신했다고 믿고 있었고 실제로 그런 소문은 무척 빠르게 주변으로 펴져 진숙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영화 <밀수>의 주요 등장인물인 춘자와 진숙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가 무척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 외에도 장도리와 해양경찰 장춘도 꽤 흥미로운 인물이다. 장도리는 진숙이 감옥에 가있는 동안 진숙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와 배의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에는 별 볼 일 없는 일꾼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인물이다. 해양경찰 장춘은 굉장히 윤리적이고 올바른 사람 같아 보이지만 그 역이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전복과 긴장
여기에 더해 한 명의 외지인이 더 등장한다. 바로 권상사(조인성)이다. 춘자를 협박하던 그는 춘자가 제안한 군천에서의 밀수 건을 진행시키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굉장히 악독한 조직의 보스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어서 그가 등장할 때마다 그를 상대하는 인물들은 무척 공포스러워한다.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권상사 역시 처음엔 완전히 악독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후반부에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 <밀수>는 이렇게 다양한 인물을 초중반에 소개한다. 하지만 주요 인물들이 처음에 보여줬던 모습과 후반부에 보여주는 모습은 차이가 있다. 그 변화를 드러내는 방식은 진숙처럼 평범하고 당연한 것처럼 보여지기도 하지만, 장도리처럼 극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춘자나 권상사 그리고 경찰 장춘은 실제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편에 설지 자꾸 의심하게 되는 캐릭터다. 그들의 실체가 드러날 때 영화 속에서는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긴장감이 높아진다.
관객들은 대체적으로 진숙의 생각과 감정에 좀 더 몰입하게 된다. 그래서 진숙과 가장 가까웠던 춘자가 등장할 때 관객도 동요하게 된다. 진숙과 춘자를 중심에 두고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이 가진 특성이 계속 전복되고 또 다른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각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중반까지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엄청나게 큰 에너지를 가진 액션이나 스릴러의 느낌을 주지는 않기 때문에 조금은 전개가 느슨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포인트가 된다.
이 영화는 춘자의 진짜 속마음이 드러났을 때, 다른 인물의 진짜 속마음이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방향이 바뀐다. 그러니까 춘자의 속마음을 알게 된 순간에 다른 인물의 속마음을 공개하면서 중반과는 다른 전개를 보인다. 이렇게 모든 캐릭터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 이후, 영화는 범죄 영화로서의 모습으로 전환되며 속도를 올린다. 춘자와 진숙 그리고 다방의 마담인 옥분(고민시)은 가지고 있는 것을 이용해 주변 인물들이 가진 진짜 생각과 음모를 알게 되고 그것을 활용해 그들만의 작전을 시도하는 모습이 무척 긴장감 넘치게 보여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마지막 바다에서 벌어지는 추격과 소동을 보여주면서 통쾌하게 전개된다.
재미있는 2023년 첫 텐트폴 영화
영화 <밀수>는 각 인물들의 진짜 속마음이 드러날 때 진짜 재미가 시작된다. 특히나 김혜수가 연기한 춘자는 엄청나게 밝고 활발한 에너지를 뿜어내지만 그의 진짜 속내는 감추어져 있다. 그래서 진숙과 재회하고 나누는 모습은 흥미롭다. 무엇보다 진숙이 춘자에게 실망한 상태지만 여전히 자신의 편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영화는 무척 재미있는 오락영화다. 여름에 시원한 극장에서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앞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중반부까지 영화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큰 이벤트나 사건이 없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소지가 있다. 또한 영화 속 배우들이 70년대 복장으로 70년대 풍의 연기를 하는데 특히나 김혜수가 연기한 춘자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좀 더 과장되 보인다. 감독과 배우의 선택이겠지만 조금은 과장되고 이상해 보이는 연기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또한 진행되는 전복과 반전도 한편으론 그렇게 어렵지 않게 예측이 가능하다. 상황에 대한 설명을 쉽게 하면서 또 반복적으로 해주기 때문에 영화의 이야기에 따라가기 쉽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범죄 영화로서 조금 밋밋하고 쉽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군함도>와 <모가디슈> 같은 힘 있게 전개되는 영화에 재능이 있었던 류승완 감독은 액션에 힘을 조금 빼고 다양한 캐릭터의 전복을 통해 과거 그가 연출했던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 중반에 호텔에서 벌어지는 근접액션과 후반부 근접액션에서 그의 액션 장기가 살짝 드러나지만, 무엇보다 후반부 수중에서 벌어지는 추격 액션은 박진감 넘치게 구성되어 있다.
영화 <밀수>는 진숙과 춘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들의 주변에는 여성 해녀들이 몇 명 더 있고, 다방 마담인 옥분도 힘을 거든다. 특히나 진숙과 춘자 그리고 옥분은 서로의 진짜 속마음을 완전히 알게 되면서 끈끈해진다. 그렇게 여성들이 연대하는 과정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들었다. 이 영화 속 마지막에 나란히 선 진숙과 춘자, 옥분이 나중에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들은 가까운 사람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그런 점이 이 영화를 더욱 통쾌하고 깔끔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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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송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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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주택가 골목부터 왕복 차선의 넓은 도로까지 무엇과도 충돌하지 않고 빠르게 질주하는 카체이싱 부터
폐차 직전의 올드카를 비롯해 국내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량으로 도심 곳곳을 누비는 기상천외한 드라이빙 테크닉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시원한 질주와 액션을 볼수있습니다.
짜릿한 걸크러쉬 범죄 오락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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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구찌 House of Gucci , 2021
북미, 영국 등 전 세계 18개국 박스오피스 1위
"하우스 오브 구찌"는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구찌 가문의 저주와 비극을 파헤친 책입니다.
구찌 왕조의 성장과 붕괴, 부활에 관해 다룬 격정적인 실화를 담았죠
저자 사라 게이 포든은 구찌 가문의 마지막 CEO 마우리치오 구찌의 충격적인 암살 장면을 시작으로
20세기 초반의 창업주 구찌오 구찌 시절부터 3대에 걸친 역사를 연대순으로 소설처럼 극화해 정리했습니다.
이 책을 원작으로 드디어 영화가 개봉을 하는데요.
2008년 스콧 감독이 안젤리나 졸리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제작을 추진했지만,
구찌 가문의 반대로 좌절됐었죠.
10여 년 기다림 끝에 레이디 가가, 아담 드라이버 주연으로 개봉을 합니다.
레이디 가가, 아담 드라이버, 자레드 레토, 알 파치노, 제레미 아이언스
톱스타 배우 캐스팅으로 구찌의 가문을 파헤치는
두번째 추천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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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 , 2021
스티븐 스필버그 첫 번째 뮤지컬 영화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자신을 가둔 환경과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을 꿈꾸는 마리아와 토니의 사랑과 용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1957년 브로드웨이 초연된 이후 현재까지도 명작으로 평가받는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는데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북미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미국영화연구소가 선정한 2021년 올해의 영화상을 수상하며 또 한 번 스필버그 신드롬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5년에 걸친 각본 작업, 1년간의 캐스팅! 스필버그 사단으로 탄생한 웰메이드 뮤지컬 영화!
세번째 추천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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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적니 青春的你 , Love Will Tear Us Apart , 2021
중국 자국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
영화 "청춘적니"는 고등학생 때부터 10년 동안 사랑을 키워오던 ‘친양’와 ‘이야오’가
결혼을 앞두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서로의 관계에 위기를 겪는 이야기를 그려낸 깊고 강렬한 여운의 청춘 로맨스입니다.
"청춘적니"는 “볼수록 눈물이 멈추지 않는 작품”이라며 중국의 대표 평점 및 리뷰 사이트 ‘도우반’에서 뜨거운 호평이 쏟아진 바 있는
웹 소설 '10년을 함께한 여자친구가 내일 결혼한다'를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원작자가 자신의 실제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해 연재 초반부터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 알게해주는 로맨스 영화!
네번째 추천영화 "청춘적니" 입니다.
예고편 보러가기▼
클리포드 더 빅 레드 독 Clifford the Big Red Dog , 2021
전 세계 1억 2,60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원작
"클리포드 더 빅 레드 독"은 동화 작가 ‘노먼 브리드웰’이 1963년에 첫선을 보여
지난 58년간 사랑받은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무려 60개 시리즈가 출판되며 영국, 뉴질랜드, 인도, 캐나다 등 13개 이상 언어로 번역되어 1억 2,60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베스트셀러입니다.
사랑받을수록 커지는 댕댕이 ‘클리포드’와 12살 소녀 ‘에밀리’가 운명처럼 만나면서 펼쳐지는 마법 같은 어드벤처이야기로 애니메이션을 거쳐 영화로 개봉을 합니다.
연출은 '앨빈과 슈퍼밴드: 악동 어드벤처'의 감독 월트 베커가,
각본은 '개구쟁이 스머프1, 2'를 함께 작업한 제이 쉐릭과 론 데이빗이 맡았고.
여기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2', '닥터 스트레인지' 등 마블 시리즈 제자진들까지 대거 참여해
마법같은 기적을 선물할 영화
다섯번째 추천영화 "클리포드 더 빅 레드 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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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벽은 문이다.
이 글은 2023년 11월 1일 개봉 예정인 영화 [앵그리 애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출처를 반드시 밝혀주세요.
말하기 힘든 것들을 입에 담아야 할 때가 있다. 게다가 그 주제가 금기에 가까워 혼잣말하는 것조차 천둥같이 울릴까 봐 움찔할 때가 있다.
영화 [앵그리 애니] 속 여성들의 고개도, 목소리도 한껏 바닥에서만 맴돌게 하는 그 "힘든 것"은 바로 낙태이다. 시행하지 않으면 현재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를 향한 암묵적인 동의에도 불구하고 쉽게 입술을 열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녀들에게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두꺼운 코트까지도 어깨 위에 하사한다.
그들의 굽은 어깨에 손을 얹어준 것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MLAC(임신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 단체였다. 뜨개질바늘로 이뤄진 애니의 이전 낙태가 잘못되었으며 안전하게 이뤄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다독여주는 통에. 애니는 걷잡을 수 없이 자신을 휘감던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따스한 손길에 마음을 녹인다.
여전히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두 번째 낙태 수술을 끝낸 애니는 안도감과 후련함을 담은 눈물을 흘리며 그제야 미소 짓는다. 마치 축배를 올리듯 MLAC운동가들이 건넨 물을 마시며.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는. 그리고 그 변화가 시작되는 계기가 자신처럼 임신 중절 수술을 받다 사망한 자신의 이웃 때문이라는 것도. 자칫 자신의 죽음일 수도 있었던 그녀의 죽음 앞에서, 황망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느꼈던 애니는 좌시하지 않기로 한다. 아직 두려워 완전히 쳐다볼 수는 없지만. 자신의 등 뒤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저 벽을.
애니, 벽을 바라보다
사진 출처:씨네랩/다음 영화애니는 고개를 빤히 들어 자신이 마주한 벽을 바라보았다. 등 뒤의 두려움을 몰아내고 온전히 벽을 쳐다보기 까지도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승리한다 했건만. 큰 용기를 가지고 마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벽은 바람 한 조각조차 통과하지 못할 것처럼 매정해 보였다.
자신이 직접, 그리고 혼자서 벽을 부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이 문에 잔뜩 끼어 있는 이끼라도 제거하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마치 자신이 중절 수술을 받을 때 손을 꼭 잡고 노래를 불러주었던 운동가처럼. 애니는 MLAC를 찾아오는 여성들의 불안한 마음에 자신의 투박한 손을 조용히 얹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임신 중절을 원하는 그녀들은 하나같이 임신이란 문제에 있어서 가장 불안한 주체였으며. 죄책감마저도 오롯이 홀로 짊어진 채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수많은 자기 검열을 뚫고 MLAC단체의 문턱을 어렵게 넘어섰다 해도, 그녀들은 최후의 순간에 종교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며 죄악이라 하거나, 그냥 낳겠다며 현장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애니는 그녀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겁쟁이라며 깎아내리지도 않았다. 이 모든 모습은 애니가 여성운동에 참여하기 전의 모습과도 정확하게 일치했고. 수없이 많은 여성들의 이런 모습이야 말로 자신이 마주해야 할 벽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이토록 간단하고 별 것 아니었냐는 말과 함께 수술 후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 여성을 보며. 애니는 깨닫는다.
결국 자신을 비롯한 모든 여성들을 떨게 했던 것은. 이 벽자체가 아니라 벽보다 더 큰 두려움을 자아내는 덕지덕지 붙은 이끼에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끼 따위 제거해서 무엇이나 할 수 있으려나.라는 일말의 의심마저도 말끔히 지운채. 애니는 이끼가 사라져 본모습을 볼 수 있게 된 문과 눈을 맞추며 되뇔 수 있었을 것이다.
바꿀 수 있다.라고.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해야만 할 때
사진 출처:씨네랩/다음 영화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벽을 똑바로 바라본다 하여 무너져 내린다면. 목표를 가로막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일 테니까.
무엇보다 영화 속 여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그녀들의 남편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묻지도, 그렇다고 알아채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지레짐작으로 새 모카포트를 선물하는 무심함. 자신의 아내를 감시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마음대로 휘두르려 하는 눈먼 강경함. 그녀들이 하는 일 따위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무시에 더불어 여전히 수술의 주체인 여성들이 조금은 논의에서 빠져있는 듯한 안일함까지.
출산과 더불어 또 한 번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수술 앞에 싸우면서도. 애니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양립할 수 없으면서 자신의 옆에 악착같이 붙어 존재하는 것들이 일으키는 마찰을 감당해야 했다.
비록 모두를 위한 최선의 결정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영화 속 애니의 선택에 대부분 박수를 보낼 수는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았으며, 욕심을 내지 않았다. 흔히 이런 상황에서 비유되곤 하는 "외줄 타기"같은 현실에서. 애니는 이 좁고 험난한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 위해 떨어뜨려야 할 것이 있다면 기꺼이 손에서 놓아버렸다. 자유낙하하며 자신과 멀어져 가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만을 마음속에 꼭 안은 채. 그녀는 다시 턱을 들어 길을 걸었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그녀는 알게 되었다. 손에 쥐어진 것이 불필요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잘만 이용한다면 자신의 위태로움을 좀 더 잘 들여다보고 자세를 바로 잡을 기회가 된다는 것을.
마치 벽이 와르르 무너지기만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문이 되어 기꺼이 열고 다음 세계로 입장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식사, 다른 마음.
사진출처:씨네랩/다음 영화
영화 속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다.
의무감에 불타올라 화염병을 던지지도 않고. 당장 국회로 뛰어들어가 감정으로 호소하며 큰소리치지도 않는다. 비장한 음악을 깔며 어떤 이의 희생 앞에 눈물을 짜내지도 않는다. 누군가를 신격화해서 그 사람의 이름이 지구 밖에서도 들릴 것처럼 칭송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자신의 생각을 용기 내어 남들 앞에서 꺼내 입 밖으로 내뱉는다.
또한 온전히 옳은 인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극의 중간중간 들어차 있는 토론들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반드시 존재하고. 그녀들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영화와 거리를 두게 되는 장면들도 있다. 옳음이라는 큰 갈래에서는 동의하지만, 소소한 것들에서 부딪치는 장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영화는 소위 "극적인"요소들을 배제함으로써 현실감을 더하고. 현실 속에서 극복해야 하는 진짜 문제들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인물들에 대한 미움이나 반감이 생기기보다, 완벽하지 않고 흔해 빠진 "애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현 문제에 대해 화낼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으며. 연대를 형성해 힘을 보탤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장면을 꼽으라 한다면. 임신 중절수술을 마친 후 함께 파스타를 나눠먹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언뜻 영화 [친절한 금자 씨]에서 거사 후(?) 케이크를 나눠먹는 장면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앵그리 애니의 식사 장면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큰 다른 점이라 한다면. 자율성과 음식을 먹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님은 그 장면이 제사 후에 음식을 나눠먹는 의식 같은 장면이라고(+그 케이크 혈액으로 만든 거 아님)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사에(?) 참여한 이들에게는 자율성이 조금은 배제되어 보였다. 약간은 입을 닫게 하기 위한 장치도 있었으며 분노를 쏟아내고 난 뒤에 다가온 식사에서도 살아남은 자 들을 기쁘게 하는 식사는 아니었다.(영화가 나쁘다는 게 아님.)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식사 장면은 누군가를 기리는 것이 아닌 앞으로 자신을 위해 든든한 한 끼를 함께 한다는 점. 그리고 자원한 사람들이 모여 이뤄져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희망적이고 든든한 식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파스타 자체는 맛없어 보였다. 제발 뭘 좀 많이 넣어서 먹으라고.)
아주 작고 힘없어 보이는 연대에서 시작된 그들의 웃음이. 조금 더 확대되어 더 많은 사람을 위한 길이 되기를 기대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마치면서
세이브 박지원 대표님, 씨네 21 김소미 기자님GV에서도 나온 이야기이지만.
나 역시 애니가 마지막으로 했던 선택을 바라보며 생각할 것이 많아졌다.
과연 정규 의료인(으로 추정)이 되는 길을 걷는 것이. 근본적으로 애니가 가지고 있던 불만이나 두려움, 혹은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될 가장 확실한 방법일까. 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물론 잘 해낼 것이다.
애니는 영화 속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며, 과격하지는 않지만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바꿔나가기를 주저하지 않은 인물이니까.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자전거 페달을 밟던 그녀는 온데간데없고, 이제 주위를 둘러보며 자전거를 타는 그녀를 보며 울컥하고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런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시작을 앞둔 애니가, 자신을 바꾸고 움직이게 만들었던 계기만큼은 영원히 잊지 않았으면 했다. 결국은 조금 더 장기적으로 옳은 선택을 조금 더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또 다른 애니들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되기를.
또한 애니에게도 그러했듯이.
1970년대와 비교했을 때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의 모든 벽들이 다시 한번 문이 되기를 빌어보았다.
[이 글의 TMI]
1. 토마토카레에 꽂혀서 토마토 멸종시키는 중
2. 군고구마도 덩달아 씨가 마르는 중
3. 파프리카, 당근도 코끼리처럼 먹어치우고 있다.
4.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저처럼.(걸렸잖아)
#앵그리애니 #블란딘르누아르 #로르칼라미 #프랑스영화 #영화리뷰 #최신영화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영화리뷰어 #씨네랩
이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영화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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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아날로그에 대한 헌사와 그리움
웨스 앤더슨 감독의 두 번째 이야기, 과거에 대한 헌사와 그리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서사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서사의 특징은, 어딘가가 결핍되어 있는 불완전한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에피소드를 그려내면서 그들이 성장하는 이야기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때 감독은 그들을 웃음거리로만 만들어 버리기보다는, 그들의 부족함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듯이 바라봅니다. 그렇기에 재밌으면서도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첫 번째 서사는 <로얄 테넌바움>, <다즐링 주식회사>, <문라이즈 킹덤>, 그리고 <개들의 섬> 같이 감독의 작품 중에서 주로 초중반 시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서사의 특징은, 첫 번째 서사와 유사하게 불완전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그들이 에피소드를 이끌어 나갑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서사는 그들의 불완전성을 비추고 있지 않습니다. 극중 등장하는 에피소드들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에피소드들을 한데 묶고 나면, 그들은 어느 큰 주제 하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주제라 함은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어떠한 아름다운 존재에 관하여 찬양하고,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그들을 그리워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영화 속 찬양의 대상을 직접 경험해 본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감독이 그려낸 대상의 아름다움에 본인도 모르게 감화가 되고, 자연스럽게 그리움이란 감정을 감독과 함께 공유하게 되는 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이러한 서사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며, <프렌치 디스패치> 또한 두 번째 서사로 이뤄져 있습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서사.
불완전한 인물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성장 이야기거나, 과거의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찬양과 그리움의 표출이거나.
잡지 형식과 유사한 옴니버스, 영리하고 아름다운 주제 선정
이전에 영화가 가진 이야기의 구조로서 내러티브와 옴니버스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둘의 차이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의 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러티브>
서로 관계가 없거나 있을지라도 그 정도가 약한 짧은 서사 여럿을 하나로 묶은 <옴니버스>
즉,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벨보이 제로와 지배인 구스타브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하는, 하나의 서사로 이뤄져 있는 내러티브 방식으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반면에 <프렌치 디스패치>는 주제가 완전히 다른 4개의 서사를 한 데 묶은, 옴니버스 방식으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주제가 다른데 어떻게 찬양과 그리움의 대상은 동일할 수 있는지 궁금하게 여겨질 만도 합니다.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찬양하고 있는 존재는 아날로그 시대의 활자로 이뤄진 정기간행물, 쉽게 말해 공통점 없는 4개의 주제들이 한 데 묶여있는 잡지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특정 주제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가 아닌, 여행•정치•음식과 같이 여러 주제들을 한 데 아우른 작은 마을에서 발행되는 지역 잡지를 찬양의 대상을 대표하는 매체로 선정했느냐라는 질문이 이어서 나올 법 합니다.
지역지에서 특정한 주제를 바탕으로 게재된 기획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대부분 그 독자들이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경험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기자의 서술과 묘사만으로 그 내용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타인의 서술을 통해 어떤 주제를 간접적으로 체험한 경우, 직접 경험했을 때보다 미화되고 아름답게 기억 속에 남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즉, 지역지 형식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한 데 모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그 지역지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심어줍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지역지가 발행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함으로써 과거에 멈춰 있게 된 그 지역지에 대한 그리움이란 감정을 생기게 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네 가지 주제를 서술한 기자들을 비롯하여 잡지사 직원들 모두가 사망한 편집장에 대한 헌사를 다 같이 작성하는 씬을 비춰줌으로써 극대화됩니다. 이토록 찬양과 그리움의 대상을 명확히 하고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써, 비슷한 주제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보다 <프렌치 디스패치>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도록 합니다. 하지만 장편소설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단편 모음집을 선호하는 사람들보다 많은 만큼, 단편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렌치 디스패치>를 장편 소설이라 할 수 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보다 더 좋아할 사람이 많을지는 의문입니다.
아날로그 매체에 대한 찬양과 그리움. 영리한 매체 선정과, 영리한 매체 묘사 방식을 통해.
잡지를 보는 듯한 연출, 그리고 앤더슨의 미장센
완벽한 좌우대칭,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카메라 워킹 등,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연출은 <문라이즈 킹덤>을 전후로 하여 강박에 가까운 느낌으로 변화했습니다. 분명히 입체 공간을 촬영하고 있음에도 마치 평면에 그림을 그린 듯한 느낌을 주는 감독의 스타일은 <프렌치 디스패치>의 이야기와 더욱 찰떡궁합입니다. 그리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뒤이어 자유자재로운 화면비의 전환과, 흑백과 컬러를 넘나드는 등의 연출들은 감독이 다루고 있는 잡지란 매체를 탁월하게 묘사해 냈습니다. 기자들의 내레이션은 본인이 작성한 글을 읽고 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프렌치 디스패치>의 진면목은 이러한 기사의 청각적 전달이 아니라, 기사의 시각적 전달에 있습니다.
잡지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여행 섹션에서는 흑백 화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하는 예술 섹션, 정치 섹션, 음식 섹션에서는 이따금씩 컬러 화면으로 등장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흑백 화면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어느 여행지의 배경과 풍경을 글로 설명하기보다는 그 모습을 직접 담은 컬러 사진들을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그 내용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과 정치, 음식의 경우에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들만 사진으로 전달해 주면 그만이며, 그들을 설명하기 위해 풀어쓴 글이 기사에서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즉, 2•3•4번째 섹션에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흑백 화면은 문자로 쓰인 글을, 이따금씩 등장하는 컬러 화면은 그 줄글이 설명하거나 묘사하고 있는 대상의 사진 혹은 삽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대표적으로 모세가 제작한 콘크리트화를 보여줄 때, 그리고 제피릴리를 필두로 한 혁명가들과 기득권 간의 대립 관계를 보여줄 때 화면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화면비가 전환되는 때를 확인해 보면 위의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빈틈 없이 꽉 들어찬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미장센들과 그들을 매끄럽게 연결해 준, <프렌치 디스패치>란 잡지의 편집장 웨스 앤더슨의 탁월한 연출은 이 영화에 푹 빠져들게 만듭니다.
글은 흑백으로, 사진은 컬러로. 읽는 행위와 보는 행위는 엄연히 다름에도, 읽는 행위를 보는 행위로 탁월하게 바꿔낸 웨스 앤더슨의 연출.
확실한 약점, 읽는 속도는 개개인별로 다르다
사람마다 글을 읽는 방식은 모두 다릅니다. 문장 하나하나별로 꼼꼼히 음미하면서 분석하거나, 전체적인 구성을 빠르게 훑으면서 맥락을 위주로 읽어나가거나 등등, 방식의 차이에 따라 글을 읽는 속도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렇기에 잡지를 읽는 속도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음에도, <프렌치 디스패치>는 모든 독자들에게 동일한 속도로 정보를 전달합니다. 이때 더 문제 되는 부분은 <프렌치 디스패치>의 정보 전달속도는 무척 빠르단 점입니다. 꽉 차 있는 미장센의 감상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빠른 속도로 전달되는 내레이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다고 보입니다. 연속성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영화임에도 일시정지를 누를 수밖에 없는 정보 전달의 양은 이 영화를 감상함에 있어 치명적인 요소입니다.
너무 많이 전달되는 정보. 영화는 흘러가고 있을 뿐이지만 개개인의 수용력은 모두 다르다.
여러 번을 반복하면서 영화가 가진 디테일을 음미하고 싶은 영화는 무척 오랜만이었습니다. 웨스 앤더슨 사단의 배우들을 포함하여 뉴페이스까지, 검증된 배우들의 연기는 꽉 찬 미장센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문라이즈 킹덤>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번 영화까지 쭉 함께 해온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OST 역시 <프렌치 디스패치>의 분위기를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정말 매혹적인 영화입니다. 위에서 이 영화의 치명적인 부분에 대해서 다뤘지만 개인적으로는 흠잡고 싶지 않은 영화입니다.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로 <문라이즈 킹덤>에서 새로운 영화로 바뀔 때가 왔습니다. 꼭 감상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그냥 의도적으로 쓴 것처럼 써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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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된 실패에도 다시 도전하기
삶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다. 단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수없이 실패를 거듭하고 다시 도전을 계속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목표를 포기하거나 수정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비슷하게 진행된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과제들이 주어지고 그것을 통해 각자는 레벨업을 하며 성장해 나간다. 책을 읽고, 몸을 움직이고,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자신 만의 지식을 습득하고 실제로 활용해 가면서 자기가 자기고 있는 힘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그 모든 과정은 성장을 위한 작은 계단들이다.
너무나 흔하지만 '실패'라는 일은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실패를 맞이하면 대부분은 주저앉아 절망한다. 그렇게 포기를 택하면 ‘실패’를 인정하고 더 이상 전진하지 않게 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일이 되는 선택이 바로 포기다. 만약 그것이 꼭 이루고 싶은 목표라면 사람들은 ‘실패’를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표에게 다가가기 위해 가장 많이 택한 실패 극복의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실패를 거듭하는 한 팀의 이야기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에는 실패를 거듭하는 한 팀이 나온다. 팀에 속한 에드긴(크리스 파인), 홀가(미셸 로드리게즈), 사이먼(저스티스 스미스) 그리고 도릭(소피아 릴리스)는 네버윈터의 영주인 포지(휴 그랜트)에 맞서 보물과 가족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에드긴을 중심으로 모인 이 팀에는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는다. 리더인 에드긴은 과거에 성스러운 일을 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아내를 잃고 딸을 혼자 기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때부터 에드긴은 수많은 실패를 하게 된다.
에드긴이 아내 없이 처음 맡은 임무인 육아에도 계속 실패하자, 우연히 그 광경을 본 홀가는 에드긴의 집에 같이 살며 남매 같은 사이가 되고 딸을 같이 키운다. 이후 에드긴과 홀가, 사이먼은 크고 작은 보물을 훔치며 생계를 유지한다. 아내를 살리기 위한 부활의 보물을 훔치기 위해 팀을 만들어 보물이 있는 장소에 가지만 그곳에서 에드긴과 홀가가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가장 큰 실패를 맞이한다. 몇 년 후 결국 감옥에서 다시 탈출하지만 이미 과거 동료였던 포지와 악의 위저드 소피나(데이지 헤드)가 에드긴의 딸을 볼모로 삼게 된다.
영화에는 에드긴의 팀이 포지의 보물과 에드긴의 딸을 구출하려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나 이 팀은 막강한 위저드의 마법에 대항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게 되는데, 깊은 던전에 숨겨둔 투구를 찾거나 마법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등의 다양한 모험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재미있는 건, 그 목표를 향해 선택하는 방법들에 확신이 있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리더인 에드긴의 계획에 따라 가지만 멤버들은 늘 벽에 막힌다. 또한 각 인물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타고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는 홀가를 제외하면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믿는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 찾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젊은 위저드 사이먼이다. 그는 자신의 마법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늘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가 동료들에게 하는 말들도 모두 자신 없는 말들 뿐이다. 그래도 그를 좀 더 도전할 수 있게 이끄는 건 실패 전문가 에드긴이다. 에드긴 역시 최고의 전사나 마법사가 아니다. 그는 아내를 잃고 딸을 빼앗기는 큰 실패를 계속 겪는 인물이다. 영화는 실패한 리더 에드긴이 자신의 최종 목표에 어떤 식으로 다가가는지를 무척이나 흥미롭게 전달한다.
에드긴이 선택한 길은 쉽지 않은 길이다. 어쩌면 불가능해보이는 그의 계획은 당연하게도 계속 실패한다. 영화가 다루는 에드긴의 실패는 절망적이지 않다. 이건 영화의 분위기가 밝은 톤이라서이기도 하지만 실패를 대하는 에드긴의 태도가 많은 영향을 준다. 영화 중반까지 관객의 입장에서 에드긴과 그의 팀이 성공할 거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우리 앞에 꽤 많은 실패가 먼저 보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하나하나 이루어갈 때 조금씩 긍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후반부 에드긴이 팀원들에게 실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그들이 맞이하는 모험의 끝이 나쁘지 않을 거란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팀원들은 실패의 순간에 목표를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에드긴은 실패 이후 어떤 식으로 상황을 대할 것인지 알려준다. '포기'를 택하는 순간 실패는 현실이 된다. 하지만 '포기' 대신 '다른 방법'을 택하면 그 목표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 방법이 안되면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고, 그것마저 안되면 다시 처음 방법으로 시도해 본다. '포기'를 선택하지 않는 삶, 그 태도가 리더인 에드긴이 살아온 삶이다.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사실 큰 기대를 받지 않았던 영화다. 오랜만에 제작된 판타지 영화이고, 과거 2000년에 한 번 영화화된 적 있는 영화는 롤플레잉 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2000년에 개봉했던 <던전 드래곤>은 명배우 제레미 아이언즈가 주연을 맡았지만 인상적인 이야기를 보여주지 못했고 그저 그런 판타지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리메이크된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꽤 잘 만들어진 오락 판타지 영화다.
무척 흥미로운 판타지 오락영화
과거 영화와 달리 이 영화에는 팀원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무엇보다 강력한 악의 위저드보다 부족해 보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서사가 흥미롭다. 주인공 에드긴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분위기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실패 전문가들이 결국 자신의 목표를 이뤄내는 과정이 경쾌한 호흡으로 이어진다.
에드긴 역을 맡은 크리스 파인은 과거 <스타트렉>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유쾌하지만 허술해 보이는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자신이 가장 잘하면서 잘 어울리는 역할을 맡았다. 여전사 홀가 역을 맡은 미셸 로드리게즈, 사이먼 역을 맡은 저스티스 스미스도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도릭 역을 맡은 소피아 릴리스의 매력이 돋보인다. 사기꾼 포지 역을 맡은 휴 그랜트는 능글맞은 이기적인 배신자역에 무척 잘 어울린다. 영화에는 이런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뚱뚱한 드래곤이나 다양한 마법 위저드들이 등장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마치 마블 시리즈의 초창기 영화들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경쾌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다. 다양한 방향의 이야기가 더 나올 수 있는 원작이 있기 때문에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한다면 다양한 시리즈로 다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삶에서 무수한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에드긴과 그의 팀이 앞으로 어떤 실패를 겪고 또 극복하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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