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2-10 21:36:45
고요히 내려앉는 한 줌의 선의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리뷰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2024)
고요히 내려앉는 한 줌의 선의
개봉일 : 2024.12.11.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98분
감독 : 팀 밀란츠
출연 : 킬리언 머피, 에밀리 왓슨, 아일린 월시, 미셸 페어리, 클레어 던, 헬렌 비언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겨울은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차가운 계절이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겨울에도 따스함이 있다. 한낮에 머리 위로 내려앉는 햇빛, 빠르게 지는 해를 대신해 집안을 밝히는 전등의 색, 두꺼운 옷의 포근함과 유난히 반가운 누군가의 온기. 이렇게 차가워 보이는 계절에도 작은 따스함이 깃들어 있듯이 어둠만 가득해 보이는 현실에도 잘 찾아보면 작은 희망과 온기가 존재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 작고 소중한 온기를 조명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작가 클레이 키건의 동명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아일랜드 출신 배우인 킬리언 머피가 주연과 제작을 맡았다. 원작의 내용을 몰랐을 땐 그가 왜 이 소설을 선택한 걸까? 궁금했는데 소설을 읽고 나니 딱, 과연 킬리언 머피 다운 선택이었다 싶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엔 킬리언 머피였기에 가능했고, 완벽히 킬리언 머피라는 배우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 석탄 장수 빌 펄롱은 아내, 다섯 딸과 함께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돈 나갈 구석에 대한 고민을 놓을 순 없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빌은 생각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며 부쩍 추워진 날씨 덕에 석탄 주문이 밀려오고 빌은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석탄을 배달한다. 그는 불평 한 마디 없이 가족과 직원들을 위해 성실하게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도 주머니에서 짤락거리는 동전을 어린 이웃과 나누는 작은 선행도 잊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빌은 한 모녀의 심상치 않은 실랑이를 목격한다. 그래도 남의 가정일에 함부로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이니 그는 우선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 순간이 남긴 불편함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빌은 석탄가루로 까매진 손을 씻듯이 자신의 마음도 거칠게 벅벅 긁어내보지만 마음 깊이 낀 불편함이 사라지긴커녕 검은 물만 죽죽 흐를 뿐이다.
그렇게 불편함이 덕지덕지 낀 마음을 안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빌은 결국 용기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의 선택과 행동은 당장 세상을 바꿀 만큼 거대한 힘을 가지진 못했지만 그것이 주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시간적 배경만 크리스마스인 영화가 아닌 크리스마스에 담긴 은총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볼 수 있었던 진정한 크리스마스 영화였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두가 외면하는 그늘
이야기의 소재가 된 막달레나 수용소는 18세기-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은밀하게 운영되었던 여성 수용소다. 사람들은 교정 시설, 여성에게 거처를 제공한다는 겉포장에 속거나 수용소의 실체를 알면서도 쉬쉬했다. 그 때문에 막달레나 수용소는 다른 국가들의 유사 시설들 중 가장 오랜 시간 살았다고 한다. (마지막 수용소는 1996년까지 운영됐다.)
극 중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수녀원(수용소) 이야기를 회피하는 듯한 미운 모습이 나오는데 사실 이게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그냥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세탁소구나~하고 모르는 척 믿으면 모든 게 평소와 같이 평탄하게 흘러갈 텐데 굳이 그걸 파헤치려 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사람들은 수녀원을 애써 아무 의심 없이 믿고, 아름답게 바라보려 한다. 그들이 종교를 방패 삼아 어떤 일을 행하고 있는지, 그 뒤에 어떤 그늘이 따라붙어있는지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실체가 된 의심의 그림자
빌은 성실하고 선한 사람이다. 그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장이자 고용인들을 배려하는 고용주고 굶주린 아이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어른이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1985년 아일랜드다. 그 당시 아일랜드는 역대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경제 공황을 겪고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빌이 선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혼자가 된 어린 빌을 거두어준 윌슨 부인과 네드의 사랑 덕분이었다. 빌은 두 사람에게 받은 사랑을 그대로 품고 자라 어려운 아이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빌도 처음엔 마을 사람들처럼 수녀원을 모르는 척하려 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떠오르는 유년의 기억과 말간 얼굴로 식탁에 앉아있는 딸들을 보고 있으니 도저히 수녀원에서 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빌은 어린 빌 펄롱과 소녀를 생각하며 수녀원으로 돌아간다.
빌이 막 수녀원에 들어갔을 때까지만 해도 ‘수녀원에 갇힌 불행한 소녀’는 대략 옅은 그림자 정도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것. 그런데 저 건너편 어두운 방안에 있던 그림자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빌 앞으로 튀어나와 눈을 맞추며 말한다.
“저희 좀 도와주세요. 강까지 데려다주세요. 집으로 데려가 주면 뭐든 할게요.”. 이때 빌은 ‘수녀원에 갇힌 불행한 소녀’가 실존함을 알게 된다.
이때 소녀를 보며 느낀 놀라움과 불편함은 빌의 오래된 기억까지 헤집어 놓고, 그는 또 다른 진실을 보게 된다.
빌의 선택
빌이 머리를 자르지 않은 이유
빌이 아내 아일린에게 수녀원에서 본 것을 털어놓으며 우리 딸이었다면 어땠을지 물었을 때 아일린은 “우리 딸이 아니잖아.”,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르는척 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라는 차가운 답을 내놓는다. 이때 빌은 “윌슨 부인이 당신 같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윌슨 부인의 따뜻함을 한 번 더 상기한다.
빌은 소녀를 구해주고 싶다. 윌슨 부인과 네드처럼. 빌은 새벽에 수녀원으로 돌아가 소녀에게 자신의 코트를 입혀주고 함께 수녀원의 문을 두드린다. 빌의 의도를 눈치챈 원장수녀는 안은 따뜻하다며 빌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들인다. 그는 빌을 저지하기 위해 은근한 협박과 멸시의 눈초리를 보낸다. 빌은 원장수녀가 내민 돈과 카드를 들고 겨우 사무실을 나오면서도 끝까지 소녀에게 말을 걸고 서로의 이름을 남긴다.
그런데 이후 빌은 잠시 흔들린다. 너무 갑작스레 새로운 진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빌이 아내의 지적을 받으면서까지 주머니를 털어 아이들에게 동전을 나눠주고 수녀원과 척을 질 각오를 하면서도 소녀를 구하려고 했던 건 모두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
빌은 지금껏 윌슨 부인과 네드가 조건 없이 100% 선의로 자신을 보살펴 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억을 차근차근 되짚어가다보니 당시엔 느끼지 못했던 미묘하게 어색한 지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누가 봐도 네드와 닮은 빌의 얼굴, 창 너머로 봤던 어른들의 모습과 자신을 바라보던 네드의 눈빛. 빌은 어릴 적 어머니에게 물었던 아버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낸다.
무조건적인 선의라고 믿어왔던 것이 알고 보니 아들이었기에 받을 수 있었던 부정(父情)이었다니. 빌은 잠시 고민한다. 그리고 머리카락과 함께 소녀를 향한 의지를 잘라내기라도 하려는 듯 미용실에 앉아 검은 미용 가운을 두른다. 한순간 빌의 얼굴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고, 빌의 입술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린다.
그는 결국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미용실을 나와 다시 어머니와 같은 이름의 소녀, 세라에게로 향한다. 네드에게 받은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었든 타인의 무조건적인 선의였든 상관없이 어쨌든 그의 사랑이 빌을 키워냈으니 빌 또한 사랑을 나눠주는 어른이 되기로 한 듯 보인다.
빌은 세라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깨끗이 씻은 손을 세라에게 내민다. 이제 그의 손엔 검은 가루가, 그의 마음엔 불편한 때가 남아있지 않다.
불투명한 유리와 그늘을 향한 빛
빌 펄롱이 보여준 작은 온기와 용기
원래 타인의 불행과 사회의 어둠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빌이 아내를 위해 샀던 네이비 구두, 가방, 크리스마스 케이크같이 행복을 상징하는 것들은 남에게도 잘 보이는 유리 쇼케이스에 진열되는 게 보통이지만 소녀들을 향한 학대와 막달레나 수용소라는 사회의 어둠은 빛이 만든 그늘 어딘가에, 불투명한 유리 뒤(극 중 수녀원 입구의 유리도 불투명하게 표현된다)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입체적인 물체를 하나 두고 빛을 한줄기 쏘면 명과 암, 밝은 곳과 그늘진 곳이 생긴다. 이때 시선은 자연히 광원과 빛을 받은 곳을 향하게 된다. 이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일어난다. 항상 밝은 곳만 주목받고 그늘진 곳은 소외되고, 어둠은 우리 몰래 조용히 그늘진 곳을 노려 내려앉는다 이럴 때 그늘을 바라보고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빛을 비춰준다면 그늘을 없애는 것은 물론 그 안에 숨은 어둠도 찾아낼 수 있다.
빌 펄롱은 사회에 새로운 빛을 비춰주는 사람이다. 빌의 선택이 당장 마을과 사회를 모두 바꿔놓을 수 있을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세라의 인생은 변했으니 그만큼의 그늘이 줄어든 것이다. 사회엔 빌 펄롱 같은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곳에 빛을 비추고 작은 온기와 용기를 모아줄 사람.
혼란한 정세 속에서 이런 영화를 만나고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괜스레 마음이 일렁인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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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포터'를 볼 시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수능이 끝난 뒤 절망의 감정이 아직도 선명이 기억난다. 걱정했던 수학을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던 것도 잠시 4교시 외국어영역 마킹을 하며, 이십 번대부터 한 칸씩 미뤄 쓴 걸 알았을 때 이미 시험 종료가 임박했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을 들어 새 답안지를 요청했지만, 다시 처음부터 마킹을 하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잘 못 된 걸 알았지만, 고칠 시간이 없다는 것. 잘 못된 걸 안 채로 제출해야 하는 상황은 아쉬움보다는 자책감이 컸다. “내가 왜 그랬을까?”에서 시작해 “나는 왜 이럴까.” “나는 형편없어.”까지 자꾸 나를 몰아세웠다.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닫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냥 혼이 나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부모님께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답안지를 잘못 썼다는 것은 그냥 시험을 망친 아이의 변명 같이 느껴질 뿐이었으니까. 가채점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끝나버린 시험, 아니 끝나버린 인생인걸.이라는 심정이었달까.
입을 꾹 다물고, 40권이 지나서야 완결되는 만화책, 람세스나 로마인이야기 같은 호흡이 긴 소설책, 고2, 고3에 나온 비디오를 쌓아두고 보며, 현실 세상에서 멀리 떠나곤 했다.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현실은 잊혀졌고,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를 오래 떠돌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문득 우주 먼지 같이 작은 존재인 나의 고민이 하찮게 느껴져서 ‘아무렴 어때’라는 마음이 들었고, 무한한 시간 속에서 수능이라는 찰나가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되는 마법을 경험한 뒤, 힘든 마음이 찾아올 때, 무작정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은 아니지만, 수많은 인생의 날들 중에 컴퓨터를 열어 24시간 정도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괜찮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시리즈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는 것도 좋고, 취향도 중요하지만 이럴 때만큼은 가능하다면 현실과 접점이 없는 영화를 고른다. 세계관이 확실한 영화들. 나를 다른 곳,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스토리에 빠져들게 할 영화들이다. 최근에 새로 나온 시리즈들 중엔 디즈니플러스에서 <문나이트>나 <완다비전> <로키>도 즐겁게 보았지만, 그래도 역시 최애는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시리즈> 다.
반지의 제왕은 호흡도 길고 서사가 방대하여 오랜만에 보아도 다시 보이는 장면도 많고, 웅장한영상속에서 스토리에 빠지기가 좋고, 해리포터 시리즈는 내가 호그와트 재학생이 된 기분을 가지고 그 세계에 완전히 몰입해서 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랄까. (영화를 보며 주인공과 함께 마법 수업 속 주문을 외워야 함)
‘영어 답안 따위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초연해졌을 때, 부모님께 사실을 털어놓았다. 한참을 심각하게 듣고 계시던 아빠가 말씀하셨다. “4교시 끝날 때 알아서 다행이네. 1교시에 그랬으면 얼마나 마음이 더 힘들었겠냐. 운도 실력이다 생각하고 성적 맞춰서 일단 학교는 원하던 곳이 아니라도, 가고 싶은 과를 가서 배우고 싶었던 공부를 해봐. 그러고 나서 다음을 생각하렴.”
그렇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 별일 아니라는 말을 들으니, 별일 아닌 게 되었다. 학교의 이름보다는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나아가 보겠다는 다짐은, 그 후에도 좌절감이 생길 때마다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더없이 기쁜 결과라면 조금 더 행복감을 누리고, 아쉬움이 남는다면 걱정하거나, 내일을 생각하기에 앞서 우선 나를 쉬게 했으면 좋겠다. 나를 둘러싼 작은 공간에 레펠로 이니미쿰(Repello Inimicum)* 주문을 걸어 두고 ‘충분히 애썼어. 정말 수고했어.’ 나를 돌보는 시간을 보내길. 모든 수험생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레펠로 이니미쿰(Repello Inimicum)
어느 한 장소를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마법. 라틴어 Repello와 Inimicus(적)의 합성어로,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 2부에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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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 / Resident Evil: Welcome to Raccoon City, 2021
우리에게는 "월드컵 4강"으로 익숙한 2002년, 극장에도 하나의 시리즈가 시작했습니다.
17년 개봉한 6편 <파멸의 날>을 마지막으로 <레지던트 이블>는 "밀라 요보비치 - "폴 W.S. 앤더슨"의 커리어에 있어 대표작을 넘어 부부의 연까지 맺어준 고마운 작품입니다.
이외에도 "게임 원작의 영화는 흥행이 안된다"라는 공공연한 징크스도 깨버린 작품으로 이대로 재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6편 <파멸의 날>의 흥행은 제작비의 7배를 벌어들이는 수익과 최고 성적까지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웠을 겁니다.
근데, 돈 때문에 다시 만들려고 하니 뭔가 명분이 없어 보이지 않았을까요?물론, 명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밀라 요보비치 - 폴 W.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는 "앨리스"라는 오리지널 캐릭터로 게임에는 없는 이야기로 원작 팬들의 마음을 사지는 못했거든요.
이를 염두에 둔 "요하네스 로버츠 감독, <47 미터> 시리즈"의 "원작에 충실하겠다"라는 말은 걱정도 되었지만, 기대도 샀습니다.
그렇게, 먼저 북미에서 개봉한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박스오피스 5위와 함께 1000만 달러 미만의 시작을 알렸고 지금은 속편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에 있어 전문가 26%와 관객 52%의 평가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제 두 눈으로 보는 게 확실하고 빠르겠죠?
'과연,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어떤 작품이었는지?' - 감상을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모기업 "엠브렐러"의 지원하에 번영했던 "라쿤시티".
지금은 기업의 철수로 폐허로 변했고, 그곳을 향해 "클레어"는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비 오는 거리를 달리는 차량은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을 받아치지만 시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의문도 잠시, 도시에 이상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며 살기 위해서라도 발길을 옮기는데...좀비처럼 살아날까?
1. 게임을 해봤다면, 재밌을 거다!
앞서 말했듯이 이번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기존 시리즈와는 다른 작품으로 시리즈를 챙겨보지 않아도 됩니다.
이만하면, 일부러 찾아보려는 관객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고마운 영화로 비춰질겠지만 이번 영화를 연출한 감독의 "원작에 충실하겠다"라는 말은 부메랑처럼 돌아옵니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양조 주택"과 "라쿤시티 경찰서"는 게임의 1편과 2편의 주요 배경이거든요.
그렇기에 아는 사람들은 알아서 재밌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몰라서 몸을 뒤척일 겁니다.게임을 했어야 말이지...
떼거리로 몰려드는 좀비에 총알이 빗발치고 하나둘씩 쓰러지는 물량 전부터 머리가 날아가는 화끈함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 영화는 이럴 겁니다.
"밀라 요보비치 - 폴 W.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 역시 이런 액션적인 성향이 짙었다만 이번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반대로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신경 쓴 작품입니다.
극 중 경찰서의 좁은 통로에 몰려드는 좀비들부터 총기에서 나오는 불꽃으로 간간이 보이는 좀비들의 모습까지 제법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초창기 게임을 즐겨본 팬들이라면, 익숙한 시점이라 반가웠을 테니 그 포부가 결코 공수표는 아님을 보여줍니다.2. 근데, 이거 맞긴 해?
이렇게 본다면, "원작 게임 팬들은 만족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들이 나오겠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원작"이 있다면 피해 갈 수 없는 문제 "실사화", 즉 "싱크로율"이 있습니다.
이에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연기한 "클레어"는 그대로 나왔으며, "크리스"와 "웨스커"는 일부 달라진 점이 있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더군요.
그러나 "레온"과 "질"은 원작 팬들이 예상했던 모습과는 꽤 거리가 멉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아예 인종이 다릅니다?홍길동이 언제부터 흑인이었지?
원작 게임에서 보이는 "레온"은 금발에 백인으로 나오는 인물입니다.
하지민 이번 <라쿤시티>에서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흑발로 나와 아예 다른 인물로 등장하는데요.
"질", 역시 이전 <레지던트 이블 2>에서 보여준 실사화가 있기에 이번 <라쿤시티>에서의 모습이 납득되지 않았고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말했듯이 '하얀색 민소매 나시와 청바지, 그리고 콧수염만 있다고 해서 누구나 "프레디 머큐리"가 아니듯이' 그저, 이름만으로는 해당 캐릭터들을 그들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을뿐더러 몰입하기도 어려웠습니다.3. 분위기는 무서웠는데...
이외에도 원작 게임 팬들이라면, 두 장소에서 나올법한 악당의 후보군으로 "타일런트"와 "네메시스"를 기대했을 겁니다.
마지막 전투신을 제외하고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고, 끝까지 주인공 캐릭터들을 쫓아가기에 무섭기도 무서운 캐릭터들입니다.
특히, 최근 리메이크에서는 "중절모"를 씀으로 "김두한"이라는 친숙한 별명까지 얻어낸 캐릭터인 만큼 이들의 출연을 더 기대했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라쿤시티>의 악당은 생각보다 아쉬움이 많았습니다.그들의 불발도 있겠지만...
원하는 출연이 없다는 것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쌓아온 서사가 없는 게 더 큽니다. 앞서 말했듯이 '마지막 전투신을 제외하고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고, 끝까지 주인공 캐릭터들을 쫓아가' 무적의 이미지들로 무서운 캐릭터입니다.
이번에 나온 "윌리엄 버킨", 역시 이와 동일하나 무적의 이미지로 만들기에는 중간에 빼먹은 변이도 많았고, 그만큼의 서사도 빠져있습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로켓 런처"의 등장이 뭔가 눈치 없이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시리즈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무기라서...)
107분이라는 러닝 타임이 기존 "밀라 요보비치 - 폴 W.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을 포함해도 가장 긴 분량의 작품인데,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다는 건 아쉬웠습니다.
분명히, 무서웠는데...※ 이번 영화는 "롯데시네마 단독 상영작"입니다.
※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 한 개의 쿠키가 있습니다. (이 역시, 원작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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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행복"의 도시
PROGRAM NOTE.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최신작 〈폴른 리브스〉는 감독의 프롤레타리아 3부작[〈천국의 그림자〉(1986) 〈아리엘〉(1988) 〈성냥공장 소녀〉(1989)]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전해주는 라디오 외에는 세상과 단절된 여자와 우울한 일상을 알코올로 달래는 자칭 터프가이 남자는 헬싱키의 밤 거리에서 만나 호감을 느낀다. 이들의 조심스러운 로맨스는 몇 번의 우연과 몇 번의 불운을 거치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무미건조한 유머를 쉬이 납득하기 어렵더라도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순간이 있고, 삶에서 무수한 실패를 거듭해 온 주인공들의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을 조용히 응원하게 된다. 색다른 별미는 아니지만 진하게 끓여낸 김치찌개가 당기는 것처럼, 지난 40년간 인간의 외로움에 천착한 아키 카우리스마키 필모그래피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시네필이라면 브레송, 고다르, 자무쉬, 채플린 등 거장들에 대한 헌사를 발견하는 재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박가언/2023년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POINT.
✔️ 꼭 운명적으로 로맨틱하지 않아도 아기자기 귀엽고 러블리할 수 있지. 인생 뭐 있나! 보고 나면 기분이 산뜻해지는 로맨스 영화
✔️ 북유럽이랑 우리 정서 잘 안 맞지 않았나? 그런 줄 알았는데... 자꾸 피식피식 웃음이 나와요
✔️ 80년대부터 쭉 영화 작업을 해온 감독이 은퇴 선언을 뒤엎으며 들고 온 작품. 꾸준히 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노련한 힘이 엿보여요
✔️ '영화'라는 세계에 대한 애정이 반짝반짝 묻어나는 작품
✔️ 2023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 엄청 귀여운 연기천재 강아지가 나옵니다. 실제 감독이 키우는 개인데, 칸 영화제 출품작 중에서 가장 연기력이 훌륭한 개에게 수여되는 "팜 도그Palm Dog 상" 부문에서 심사위원상 수상작
✔️ 12월 20일 개봉! 연말에 따뜻하고 싱그러운 로맨스를 찾으신다면 추천해요
#"조용한 행복"의 도시
도시의 삶은 치열하다. 이 문장을 쓰고 나서 지울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이런 당연한 말 쓸 필요 있나? 이제는 용어조차 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N포 세대" 같은 단어들까지 굳이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삶을 헤엄치는 건 갈수록 녹록하지 않은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N포 세대"라는 용어에서 시의성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전에는 "N포"라는 표현 안에서 "포기"의 대상이었던 것들이 더 이상 포기할 대상조차 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K-드라마의 자장 안에서 유구하게 사랑받은 로맨스라는 장르 또한, 이 치열한 도시의 삶 속에서 빛깔을 달리해 왔다. 물론 변화는 다면적이고 그 기저에도 수많은 것들이 깔려 있으므로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는 없고, 동일한 장르의 동일한 변화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예전에 나왔다면 "너무 현실성이 없다"고 평가 받았을 설정들이 로맨스와 쏙쏙 접목되는 게 너무나 익숙해진 지금, 빙의/회귀/환생 등 다양한 방법으로 현실을 떠나서만 가능한 로맨스도 분명 존재한다. 지치고 초라한 현실을 잠시 떠났을 때 화려하게 열리는 세상이, 거기서만 로맨스에 이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는 분명히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우리에게 쑥 다가온다. 헬싱키의 "조용한 행복"을 담아서. 영화 속 두 인물의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렸다면 한국 인터넷 세상의 선생님들께 한소리 들었을 것이다. 너네가 지금 연애할 때니? 직업도 마땅치 않고, 그나마도 불안정하게 오락가락하는데. 심지어 상대는 이런 상황인데!
그러나 왜일까? 고요한 도시에서 그저 불을 켜고 끄면서 적당적당히 스쳐가는 하루하루 속, 크게 애틋하지도 대단하게 로맨틱하지도 않게 흘러가는 두 사람의 로맨스를 보고 있노라면,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쉬고 공과금 낼 돈을 헤아려 보고 라디오에서는 전쟁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이런 일상의 편린까지 함께 보고 있노라면, 그래 인생 뭐 별 거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 끝에 어쩐지 산뜻한 로맨스를 목격했다는 싱그러운 기분이 남는 것은 왜일까?
#정물, 음악, 그리고... 영화
영화가 보여주는 두 주인공의 현실은 역시나 녹록하지 않다. 어쩌면 당신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답답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마트 계산대에서 바코드 찍히는 소리와 함께 물건이 하나하나 빠져나가고, 바로 이어서 우리의 주인공 안사(알마 포위스티)가 매대에 물건을 채워넣는 장면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도시는 어쩌면 거대한 물건의 컨베이어 벨트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두 사람의 첫 일자리부터가 두 사람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안사가 일하는 마트에서는 폐기 물품 관련 원칙을 이유로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다. "오래된 건 치워야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관리자에게 "저도 오래됐다"고 응수하며, 당당하게 손 잡고 걸어나오는 안사와 동료들은 지혜로운 일꾼이자, 마트라는 공간을 굴러가게끔 하는 실질적 힘이었다. 노동자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곳들이 주제를 모르고, 의미를 상실한 원칙과 불합리한 조건을 들이댄다. 남자 주인공 훌라파(주시 바타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흡연 구역인 가스통 바로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업무 시간에 술을 훌훌 들이켜는 이쪽의 잘못도 있지만... 노동법전을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상황이 계속 펼쳐진다.
많은 사람들이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를 "프롤레탈리아적"이라고 말한다. 엄밀히 따져서 주인공이 노동자인 것은 한국의 오피스 로맨스 드라마들도 마찬가지다. <꽃보다 남자> 혹은 <상속자들>처럼 주인공이 재벌급이거나 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다 매한가지라는 소리다. 그런데 왜 유독 "프롤레탈리아적"이라고 평가를 받을까? 노동자로서 주인공의 위치가 흔들려서? 그렇다 한들 켄 로치 영화 같은 작품과도 분명 결이 다르다.
나는 어쩐지 이 영화에 "프롤레탈리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 않은데, 주인공의 직업이야 필요에 따라 교사가 될 수도 있고 수영선수가 될 수도 있고...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프롤레탈리아'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남다른 투쟁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그냥 돈이 필요하니 일을 하고, 일하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화도 내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뿐이다.
내겐 오히려 두 사람의 삶에서 풍기는 냄새가 예술의 냄새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물론 일상은 쉬이 남루해지고, 노동은 너무 쉽게 소도구 취급을 받으며, 세상의 분쟁 소식은 여기저기 쏟아진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도 전쟁과 닮은 것들이 있다. 그안에서 아직은 사랑이라 부르기 어려운 마음조차 여러 차례 어긋나고 불발되기도 한다. 어쩌면 마음 편할 날 하루 없는 치열하고 차가운 도시의 삶이, 우리 현실의 전부인지 모른다. 그러나 작은 기대, 눈빛, 그리움, 기다림, 사랑... 그런 말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일상에는 예술이 더해지고 분쟁의 소리는 아득하게 멀어진다.
정물 같은 방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분쟁 소식을 피해 음악으로 채널을 돌리는 여자. 꽁트 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술잔을 계속 비우는 남자. 누군가의 선곡 속에서 주고받은 눈빛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은 차츰 영화가 된다. 고전 영화처럼 음악이 대신 두 사람의 정서를 말하고, 그저 걷고 일하고 마시고 눕고 하는 일상의 행위들을 더없이 "영화스러운" 음악들이 감싼다. 그렇게 영화가 된다.
#시간이 가르치는 마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은 분명히 우리와 시간의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전쟁 소식이고, 안사가 일하러 간 공간에서는 급기야 2024년 달력까지 등장하지만, 영화의 소품이나 주인공들이 소통하는 방식은 넉넉하게 쳐도 80년대 이전의 것들처럼 보인다. 낡은 라디오와 레터나이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치 아이폰과 갤럭시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다. 두 사람은 옛날옛적 핸드폰이나 집 전화를 갖고 있으며, 그나마도 엇갈린다.
아날로그적인 기다림을 통해, 두 사람의 로맨스에는 아릿한 감정이 더해진다. 수북하게 쌓인 담배 꽁초 같은 것, 도시에서 실제로 마주했다면 그저 치워야 할 쓰레기(이자 도시를 침수하게 만드는 악의 축)에 지나지 않을 것들조차 아련한 감각을 부여받는다. 마치 반죽을 숙성시키듯 감정 또한 재워 놓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시간이 가르치는 마음이 있다. 81분이라는 산뜻한 러닝타임 동안 이 영화와 함께 도시를 걸으며 영화에 푹 잠기다 보면, 영화라는 장르가 오랜 세월 우리 안에 어떻게 스며 있었는지 향기로운 찻물처럼 배어 나온다. 고전 영화의 아름다운 감각이 일상의 편린을 자박자박 밟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다르처럼, 브레송처럼, 채플린처럼.
81분 동안 내가 걸은 도시는 <라라랜드>의 대척점에 놓인 것 같은 건조한 도시였다. 꿈과 춤으로 황홀한 사랑과 유쾌한 사람들의 도시가 아닌, 일과 술로 건조한 사람들의 고요한 도시. 그러나 여기에도 사랑스러운 색채와 귀여운 대사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가 있다. 정물처럼 놓이고 꽁트처럼 가볍게 흘러가는 일상 위에도. 때로는 그런 일상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건조함이 생을 긍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만큼은 치열한 도시를 잊고, 다 아무렴 어때 하고 무던하게 하루를 맺고 싶어진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의 초대를 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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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자ㅇ난감 | 색다른 외관에 못 미치는 깊이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대학생 '이탕'(최우식). 어느 날, 그는 편의점에 난입한 취객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퇴근길에 그들과 다시 마주쳤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급하게 자취방에 숨은 그는 미처 숨기지 못한 범행 도구를 떠올리며 불안해하면서도, 사망자가 악독한 범죄자였다는 뉴스를 보면서 묘한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안심도 잠시. 예상치 못한 목격자 '선여옥(정이서)이 등장하면서 이탕은 더 큰 난관에 봉착한다. '장난감'(손석구) 형사가 이끄는 수사망이 점점 그를 조여올 뿐만 아니라 여옥의 협박과 갈취도 그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 이에 자수와 도주를 두고 고심하던 이탕은 결단을 내린다. 모든 증거를 지우기 위해 살인자가 되어 살기로.
<살인자ㅇ난감>의 명암
한국 영화 시장에는 네 번의 성수기가 있다고들 한다. 여름 방학, 크리스마스, 추석과 설날 연휴. 하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특히 명절 연휴의 위력이 옛날 같지 않다. 작년 추석에는 <1947 보스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거미집>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지난 설 연휴에도 <도그 데이즈>, <데드맨>, <아가일> 모두 외면받았다.
대신 그 자리를 OTT가 채웠다. 특히 넷플릭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오징어 게임>, <수리남>처럼 명절 연휴를 겨냥한 대형 한국 콘텐츠가 연달아 흥행하는 중이다. <살인자ㅇ난감>도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공개된 후 3주 차가 되도록 국내외에서 넷플릭스 콘텐츠 순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는 한 몸인 법. <살인자ㅇ난감>에는 성적만으로 확인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한국 콘텐츠의 고질병, 부족한 뒷심이다. 에피소드 8개 중 앞선 절반은 환상적이다. 출연진 말마따나 '팝(pop)하다'라는 표현이 안성맞춤인 독특한 연출이 정주행을 결심하게 만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풍경이 부산으로 바뀐 후부터 각 캐릭터는 표류하고, 극은 동력을 상실한다.
살인자의 난감함을 꽃피우다
<살인자ㅇ난감>의 매력은 예상을 과감하게 벗어나는 이미지의 향연에서 비롯된다. 이탕은 선여옥을 죽이려 한다. 그녀의 거실에서 머리를 향해 망치를 휘두르는 탕. 그 순간 화면이 전환된다. 탕과 여옥은 거실에 있지 않다. 웬 꽃밭에 있다. 그곳에서 탕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여옥의 머리를 망치로 후려친다.
특히 이 장면을 슬로 모션으로, 그것도 순식간에, 빨간 피는 가능한 등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색다른 배경, 교차 편집, 짧고 담백한 묘사가 한 데 어우러지니 임팩트는 강렬하다. 잔혹함을 대신하는 상쾌한 이미지를 보면 '이 드라마는 다르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팝한' 연출의 힘은 휘발성이 아니다. 살인자의 난감함이 아름다운 화면과 대조를 이루며 더 명쾌하게 드러나기 때문.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른 이후 충격에 빠진 이탕. 그의 정신적 피로감과 죄책감은 그가 선여옥을 죽일 때만큼이나 독특하지만, 기묘한 환각으로 표현된다. 그 덕분에 그가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잃고 점점 살인에 빠져드게 되는 일련의 흐름도 더 설득력 있게, 직관적으로 제시된다.
평범해진 살인자
하지만 <살인자ㅇ난감>은 첫인상의 이점을 더 살리지 못했다. <살인자ㅇ난감>의 신선함은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비롯한다. 핵심은 발상의 전환이다. 살인을 잔인하지 않게 다루는 연출과 미장센이 돋보였다. 문제는 다른 부문에서 발상의 전환을 찾을 수 없다는 것. 즉, 살인의 외양만 바꿨을 뿐, 이야기의 본질은 색다르지 않다. 그 결과 <살인자ㅇ난감>의 초반과 후반은 괴리감이 극심하다.
캐릭터의 완성도가 그 방증이다. 주인공 이탕은 자기 직감대로 사람을 죽이고, 사망자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자기 살인을 정당화한다. 그러면서도 평범한 대학생의 면모도 지녔다. 살인 이후 극심한 악몽에 시달리고, 자수를 결심하며, 가족의 품을 그리워한다. 이처럼 살인이라는 거대한 충격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청년이 이탕이라는 캐릭터의 특성이었다.
그런데 배경이 부산으로 바뀐 후부터 이탕이라는 캐릭터는 평범해진다. 그는 노빈의 도움을 받아 자기 직감이 옳음을 확인한 뒤 범죄자를 처단한다. 마지막까지도 범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은 채 정의롭다고 믿는 살인을 저지른다. 이처럼 "죽어 마땅한 놈들은 죽어야 한다"는 신념을 거침없이 실천에 옮기는 그는 다크 히어로에 가깝다. 살인의 무게감 때문에 괴로워하던 전반부의 이탕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살인 장난감도, 살인자 난감도 찾을 수 없다
'송촌'(이희준)과 장난감 형사의 존재감도 덩달아 유명무실해진다. 송촌은 본래 이탕의 내적 고뇌를 드러내는 장치여야 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을 죽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명확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탕에게 "죽어야 할 놈을 판단하는 너 스스로를 믿을 수 있냐"라고 묻는다. 살인 대상의 범죄를 인지하고 죽이는 자신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윤리적으로 다르다는 지적에 이탕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런데 드라마는 윤리적 딜레마를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그들 간의 차이점은 논제가 던져지자마자 퇴장한다. 분위기만 잡은 후에 이탕을 정의의 사도로, 송촌을 그에 맞서는 마지막 빌런 정도로 간략히 묘사한다. 그러다 보니 '살인자'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줄 것 같았던 첫인상을 후반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장난감 형사의 문제는 더 크다. 그는 범죄자를 법의 범위 내에서 단죄해야 하고, 죽어야 할 사람을 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경찰 혹은 검사 캐릭터다. 자연히 그와 이탕의 대립은 익숙하다. 그 와중에 드라마가 은연중에 이탕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으니, 그와 이탕의 대립각은 날카로움이 부족하다.
이에 더해 평면적인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는 노력도 적다. 장난감과 아버지의 묘한 관계, 아버지와 송촌의 과거를 토대로 형사가 살인자가 되는 이야기를 쌓으려 한 시도는 엿보이나 역부족이다. 세 인물 간의 감춰진 이야기가 단순한 애증과 부조리로 귀결되기 때문. 손석구라는 배우의 독특한 마스크가 아니었다면 더 희미한 캐릭터였을지도 모른다.
반복돼서 더 아쉽다
사실 후반부가 맥 빠지는 현상은 <살인자ㅇ난감>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한국 콘텐츠에서 볼 수 있는 문제다. 피카레스크 성향의 원작을 영상화할 때 선인-악인, 가해자-피해자로 나눌 수 없는 캐릭터가 단순해지면서 뒷심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스크걸>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웹툰 원작의 경우, 흥행이나 편의성을 고려해 대중적인 플롯에 맞춰 각색이 자주 이뤄진다. <살인자ㅇ난감>의 후반부도 마찬가지다. 연결성과 흐름은 깨져도, 이탕 중심으로 구도를 간략화했다. 장점도 분명하다. 한정된 분량 내에서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에 보여준 색다른 연출을 고려하면 결말로 향하는 과정이 평범하다는 인상도 부정할 수는 없다.
기대감을 한껏 부풀린 나머지 용두사미가 된 셈이다. 객관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가능성과 잠재력을 스스로 옭아맨 <살인자ㅇ난감>이 유독 아쉬운 이유다.
Acceptable 무난함
또 하나의 뒷심 부족을 목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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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애니메이션들 사이에 묻히면 속상할 이 한국 영화
첫인상
“미소야, 인사 제대로 해야지!” 담임 선생님이 미소를 다그친다. “안미소.” 짧은 답변만 툭 내던진다.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미소. 미소는 제주의 어느 초등학교에 전학 왔다. 낯을 엄청 가리는 미소. 사실 그 이전에 뭐만 하면 전학 가던 탓에 학교에 가는 일이 좀 귀찮게 느껴졌다. 어쩔 줄 몰라하는 미소. 수업 첫날에 엄마를 뒤로하고 갑자기 도망쳐 버린다. 그 짧은 순간에 눈이 마주쳤던 건 원래 짝꿍이 될 예정이었던 하은이었다.
오늘 하은이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 쟤는 뭘까? 처음 내뱉었던 미소의 인사는 하은이에게 큰 인상을 남기기 충분했다. 집에 가는 길. 길지 않은 시간을 들여 집에 도착했다. 하은이 가족은 서로 사이가 좋은 편이다. 타지에서 온 어머니와 찐 제주도민인 아버지를 두고 있는 하은. 식탁에서 나오는 대화도 그렇게 무겁지가 않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대화 소재가 하은이의 인간관계였다. “얘 친구 없어서 어떵(떡)하지?” 성격도 착한 하은이지만 외로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런 하은이에게 갑자기 한 손님이 찾아온다. “안녕! 나는 미소야. 오늘 네 짝꿍이 될 뻔했던.”
어디서 본 것보다 나았어
이 영화는 대만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당시 주연배우였던 주동우의 ‘연기 차력쇼’를 바탕으로 살짝 다크 했던 분위기를 잘 끌고 갔던 원작. 영화를 볼 때 기억에 남았던 것은 글쓴이가 전부터 잘 알던 대만 청춘영화의 연출 방식이 살짝 보인다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부터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까지 이 대만이라는 나라에 있던 영화들은 어느 장르를 품고 있는 듯하다. 본 작은 이 특성을 잘 소화한다. 나라가 바뀌었는데 대만 청춘영화 특유의 청량감이 살아있는 것이다. 어떻게? 공간적 배경을 설정한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 영화의 주요 공간은 제주와 서울이다. 영화의 특성상 전자 제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당위성을 적절하게 사용하듯이 영화에서 위치는 굉장히 중요하다. 어느 장면에서는 공간 안에 갇혀서 바다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데 바다를 바라보는 데 밍밍하게 바다만 있으면 뭔가 맛이 없다. 그럼 예뻐야 한다. 이런 특성을 살리는데 제주 서귀포시의 어느 공간은 뭐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뿐일까? 미소와 하은이가 자전거를 타고 휘리릭 달려가는 것도, 스쿠터를 타고 달려가는 일도 색감과 인물들의 분위기를 설정하기 위해서 제주는 필수적이었다. 또 영화 초반부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전후관계도 걸어 다녀야 하는 제주의 특성을 살리기도 했고, 토속적인 장소를 구현한 좋은 수가 됐다.
글쓴이는 제주도 사람이다. 많은 영화들이 제주를 공간으로 사용했단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계춘할망> 같은 경우는 공간을 제주로 설정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주인공이 해녀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도연 배우가 주연을 맡았던 <인어공주>가 있다. 여기서는 주인공이 제주로 가서 전원생활을 해야 했던 이유가 있다. 이런 인물의 서사와 함께 제주도 사투리가 들리는 것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 <소울메이트>에서 제주 사투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억지로 막 욱여넣지 않았다는 것이 글쓴이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서울과 제주의 거리 차이가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는 것을 이면으로 깔고 표면적으로는 이 공간을 묘사한 감독의 섬세함이 느껴졌다.
반복과 차이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반복과 차이에 있다. ‘소울메이트’라는 단어를 보고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는 ‘영혼을 공유하는 친구’라는 뜻이다. 영화는 이를 충실하게 이행한다. 우선 미소의 서사다. 미소의 가족 특성은 초반에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후반부에 정확히 반복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 내지는 구성요소를 생각해 보면 감독이 영화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또 영화에서 대놓고 핵심처럼 보이는 미술이라는 소재 역시 감독이 설정한 반복이라는 모티브를 확인할 수 있다. 뭐 이렇게 핵심으로 작동되는 키워드가 아니더라도 영화 대사에서 두 사람의 처지를 관통하는 대사가 나온다.
이렇게 두 사람의 처지를 엇갈려서 제시한 이유는 사랑이라는 주제와 이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영화가 퀴어 로맨스를 다룬 영화일까?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영화가 그 소재를 다룬다고 보지 않는다. 영화는 두 사람의 처지를 병치시켜서 서로를 이해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런 대사가 있다. ‘너는 내가 살아온 걸 이해 못 해’라는 것이다. 영화는 사실 어떤 인물이 고른 선택지를, 다른 사람이 사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지사지의 영화인 셈이다. 이 세상의 인간관계를 생각해 보면 모든 갈등과 헤어짐이 관점의 차이에서 온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런 줄 알았는데 상대는 이랬고. 나는 그때 몰랐지만 내 생각보다 상대방이 날 더 좋아했고.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인간은 지루한 인간관계를 반복한다. <소울메이트>는 이를 잘 이해하듯 이 사랑이 왜 우리들에게 공감을 살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현실성을 인물 간의 관점을 혼합시켜서 부여한 것이다.
K-레이첼 맥아담스
글쓴이는 영화를 보면서 김다미 배우가 정말 뛰어난 역량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전부터 연기했던 몇몇 클립들을 봤었다. 드라마를 즐 안보는 글쓴이지만 <이태원 클라스>나 <그 해 우리는>의 활약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 영화에서 김다미 배우가 보여준 연기는 그동안의 필모를 집대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다미 배우가 지금 1995년 생으로 27세다. 글쓴이랑 두 살 차이 난다. 글쓴이가 지금 교복 입고 고등학생 연기하면 민원 들어올 것 같은데 이 배우는 어떤 헤어스타일로든 찰떡같이 소화한다. 비주얼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 인물은 나이대에 맞는 인물의 행동을 잘 연기한다. 10대 때는 10대답게, 20대 초 불안한 일상을 보내는 청춘으로서의 일상, 악착스럽지 않으면 낙오되는 삶, 30대가 되고 나서 겪는 다른 인생까지 한 사람이 한 인간의 일생을 바탕으로 매번 다른 처지에 적응하는 모습을 잘 연기했다. 이는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진다. 매 번 다른 입장에 놓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소울메이트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감정적인 호소력, 눈물연기의 빈도는 뭐 말해 뭐 해? 수준이다.
하은 역을 맡은 전소니 배우도 연기가 좋았다. 하은 캐릭터는 감정적으로 입체적인 측면이 미소보다 넓어야 한다. 하은이가 받아들이는 것이 미소의 서사에서 핵심이고, 또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이런 사랑이 있나요?’라는 질문과도 닿아있다(심지어 영화의 촬영 자체도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방식으로 많이 짜여 있다). 전소니 배우를 이를 잘 이해하듯 중요한 부분마다 표정연기를 성공적으로 소화한다. 대표적으로 후반부에서 인물이 재회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후반부 각본이 살짝 작위적인 느낌이 듦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이 없으면 영화의 엔딩이 성립되지 않을 수준이다. 이 장면에서 세월 동안 쌓아놓은 애정과 증오를 눈빛으로 보여준다. 전소니 배우의 이름은 몇 번 들어봤어도 실제로 연기하는 건 처음 봤다. 이 배우의 얼굴을 효과적으로 연기를 이끌어낸 좋은 연출이 돋보였다.
작위적이긴 해
영화 장점 정말 많다. 글에서 크게 언급하지 않는 부분은 역시 촬영이다. 제주라는 공간적 배경이 아니더라도 영화가 유지하는 색감과 구도가 작품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괜히 대만 청춘영화의 업그레이드라고 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까지 전소니, 김다미 배우의 표정연기로 이야기의 작위적인 느낌을 끌고 갔다는 점은 아쉽다.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서로 아끼는 친구 관계가 균열이 일어나는 기점이 있다. 이를 시작으로 후반부와 엔딩을 위해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몰입할만한 요소가 살짝 적다는 느낌이 든다. 충분히 이 전에 이 사람들이 이런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뭐 영화를 보시는데 크게 지장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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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연니버스는 후회 없을 선택
시청했던 작품을 한 패키지로 모아서 간단 리뷰를 하려고 한다. 대상은 '기생수: 더 그레이', '삼체'다.
'기생수: 더 그레이'
연상호 감독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타고난 이야기꾼인 건 동의하나, 그가 구축한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 인장이 찍힌 작품들에 대한 관객들의 호불호는 극명하다. 하지만 이와아키 히토시 작가의 '기생수'를 드라마화한 '기생수: 더 그레이'는 후회 없을 선택이 될 것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설정만 그대로 가져왔을 뿐, 원작 만화와는 다른 방향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판을 키우기보단 충청남도 남일군이라는 가상 지역 내로 의도적으로 축소하면서 동시에 서사, 캐릭터들의 전사 등을 속전속결로 풀어낸다. 여기에 '기생생물과 인간의 공존'이란 주제를 바탕으로 '기생생물을 지키려는 자, 막으려는 자, 공생하는 자'로 단순하게 공식화하면서 '인간성'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19세 관람가'가 붙었을 만큼, 소름 끼치는 비주얼 재현도 합격점이다.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가는 전소니와 구교환의 합, 시즌 2 여지를 남겼던 마지막 장면 또한 인상적이었다. 만약 시즌 2가 제작된다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는 조금 더 손을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
'삼체'
SF 소설가 류츠신의 동명소설을 드라마화한 넷플릭스 '삼체'는 흥미롭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400년 뒤에 지구에 도착해 폭격을 가하겠다는 낯선 외계 문명을 대처하는 지구인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으니 말이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지우려고 했던 광기의 결정체 문화대혁명의 피해자 예원제(자인 쳉/로잘린드 차오)는 복수를 위해 외계문명을 불러들였으나, 같은 가해자의 길을 걷게 돼 또다시 소중한 이를 잃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게 인상적이다. 또 과학과 이성이 상상치도 못하게 계속 고꾸라져 절망을 안겨주는 광경도 이목을 끌었다. 거듭된 실패와 절망, 비탄 속에서도 더 나은 해답을 찾아 나서려는 태도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비과학적인 인물들까지 과학적 사고를 하는 모습도 매우 신선하다.
여기에 넷플릭스의 거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은 화려한 시각효과 및 스케일도 압권이다. VR 세계관과 우주의 윙크는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것이 원작소설의 초반부를 압축해서 담아냈다는 사실이 놀랍다. 시즌 2가 제작된다면 얼마나 더 대단한 스토리텔링과 SF요소들이 나올까 기대감만 높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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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30] 스릴러로 돌아온 안젤리나 졸리의 추격극
영화 윈드리버의 타일러 쉐리던 감독이 신작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굉장히 건조하지만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가진 캐릭터를 등장시켜 일종의 복수극을 스릴러로 보여줬는데요.
이번 영화는 좀 더 스케일이 커지고 빨라졌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영화가 재미있습니다. 마음을 쫄깃하게 만드는 스릴러 영화에요.
시카리오 시리즈의 각본가로 유명한 타일러 쉐리던은 이제 연출을 시작하는 감독입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는 감독이네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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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거침없이 쏘고 자비없이 속이는 스파이들의 전쟁 《야차》 4월 8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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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챌린저스> 30초 예고편
모든 관계는 그녀로부터 세 사람의 긴장감 넘치는 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