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4-12-24 17:39:47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의 대가
- <서브스턴스>(2024)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며,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난하고 증오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를 공격하면서,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한 첫걸음조차 내딛지 못한다. 특히 현대 사회처럼 복잡하고 고립된 환경에서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깊이 고민하게 된다. 이런 고민은 나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진다.
이런 욕망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다. 많은 이들은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거나, 명상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으려 한다. 피부 관리를 통해 외모를 가꾸거나, 식단을 조절하며 건강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외모에 대한 불만족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성형수술을 받거나, 심지어 약물에 의존하기도 한다. 이런 노력들은 표면적으로는 자기애를 위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외부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현대 사회는 아름다움에 대한 구체적이고 강박적인 기준을 제시하며, 개인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그 기준에 맞추라고 요구한다. 외모는 개인적인 만족도와 직결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평가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며 외모가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는 태도는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평가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고 바꾸려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증오가 더 커지고, 진정한 자기애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첫 번째 감정] 엘리자베스의 상실감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한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스타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녀의 인기는 사라졌고, 그녀 자신도 나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활동을 이어가지만, 주변의 시선은 과거의 영광과 비교하며 그녀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특히, 프로듀서의 대체 인물을 찾으려는 행동은 엘리자베스의 상실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의 자신을 되찾을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진다.
이런 상실감은 그녀의 자존감을 철저히 무너뜨린다. 영화 초반, 화장실에서 자신의 몸을 거울로 바라보는 장면은 엘리자베스가 자신을 얼마나 혐오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순간에도 카메라는 그녀의 몸을 아름답게 비추지만,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나이 든 모습을 감당하지 못한다. 외부의 평가에 좌우되던 그녀의 자존감은 이제 그녀 자신조차 부정하게 만든다.
결국, 그녀는 젊고 아름다운 자신을 다시 만들기 위해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이 약물은 그녀의 몸에서 새로운 자아인 '수'(마가렛 퀄리)를 탄생시킨다. 젊고 매력적인 수는 엘리자베스의 이상을 현실로 만든 듯하지만, 상실감을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엘리자베스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수에게 내어주며 점차 파괴의 길로 접어든다.
[두 번째 감정] 수의 자신감
수는 엘리자베스가 잃어버린 젊음과 자신감의 상징이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의 젊은 시절을 현실로 구현한 듯하며,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단숨에 스타로 떠오른다. 프로듀서와 주변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며, 그녀를 무대의 중심에 올려놓는다. 수는 외부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엘리자베스와 수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수가 빛날수록 엘리자베스는 점점 더 어둠 속으로 빠져들며, 자존감은 더욱 바닥으로 떨어진다. 영화는 이 둘을 대비시키며 관객들로 하여금 수의 매력에 빠지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연출은 엘리자베스의 고통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며, 그녀를 파괴의 길로 몰아넣는다.
결국, 수는 엘리자베스의 몸을 완전히 지배하려고 한다. 약물의 설명서에는 "두 캐릭터는 모두 당신이다"라는 경고가 있지만, 수는 이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간다. 그녀의 자신감은 엘리자베스의 존재를 파괴하며, 결과적으로 엘리자베스를 잃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로써 영화는 자아와 외부의 평가 사이에서의 갈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세 번째 감정] 프로듀서의 징그러움
영화에서 가장 불쾌한 인물은 단연코 프로듀서다. 그는 쇼 비즈니스의 냉혹한 현실을 상징하며, 엘리자베스와 수를 상품으로 취급한다. 프로듀서는 자신의 투자자들 앞에서 수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며, 그녀를 하나의 상품처럼 다룬다. 그 장면은 쇼 비즈니스의 추악한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관객에게 깊은 혐오감을 안긴다.
프로듀서의 행동은 단순히 개인적인 탐욕을 넘어 시스템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그는 수를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 하며, 그녀를 철저히 이용한다. 그의 존재는 엘리자베스와 수의 고통을 증폭시키며, 쇼 비즈니스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을 파괴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후반, 괴물이 등장하며 상황이 급변하지만, 관객에게 더 큰 충격을 주는 것은 이러한 괴물을 만들어낸 프로듀서와 같은 시스템이다. 영화는 쇼 비즈니스가 가진 추악한 이면을 통해 외모 지상주의와 성공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프로듀서의 역겨움은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선 사회적 비판으로 기능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강렬함
영화 <서브스턴스>는 현대 사회가 외모와 성공에 집착하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리는 자신의 외모와 자아를 사랑하지 못하고, 외부의 평가에 의존하며, 그 평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바꾼다. 영화는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결국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배우 데미 무어는 실제로도 외모와 나이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싸워온 인물이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듯 진솔한 연기를 펼친다. 수를 연기한 마가렛 퀄리는 젊음과 매력을 극대화하며, 관객들조차 그녀에게 매료되게 만든다. 두 배우의 연기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서브스턴스>는 단순히 미스터리와 호러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자신을 사랑하는가?" 이 질문은 우리의 자아와 외부의 평가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의 클로즈업과 음향 효과는 자아가 만들어지고 파괴되는 과정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한다.
현대 사회의 자기애와 외모 집착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이 영화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고어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결국 괴물이 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브스턴스>는 흥미롭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로, 강력히 추천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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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짜 천재 감독의 발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시놉시스
마크는 괴짜이면서 아이디어가 기발한 영화감독이다. 자신이 있는 영화사에서 영화를 잘못 만들었다는 이유로 퇴짜를 당할 위기에 처하자 마크가 또 한 번의 계획을 세우는데 자신의 숙모인 드니즈가 사는 시골 마을에 내려가서 자신의 팀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과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할 팀원들인 샤를로트와 실비아 그리고 촬영 보조까지 준비는 끝났다! 하지만 마크에게 일이 자꾸만 꼬이기 시작하고 과연 영화 한 편이 잘 완성될 수 있긴 할까?
마크는 뛰어난 아이디어들을 선보이지만 팀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의 기발한 상상력은 누구보다 앞서는 것처럼 보여도 인정받기가 어려웠다. 특히 자신의 경쟁자인 막스를 싫어했는데 샤를로트가 막스의 전화를 받자 휴대폰을 뺏어 싱크대에 집어던지고 팀원 중에 알레르기 때문에 기침이 심한 촬영 보조가 있었는데 거리를 심하게 둔다.
그뿐만이 마크의 괴이한 성격은 팀원들에게도 피해를 줬다. 그렇게 팀원들을 떠나보내고 자신이 드니즈와 남게 되자 이때까지 써 온 솔루션북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배포한다.
마크가 솔루션북을 제작하기 전에 몇 가지 규칙들이 있었고 그걸 지켜야만 하는 불문율이 있었다. 팀원들은 그의 괴이한 행동을 꺼려 하지만 그래도 마크가 해낸 게 많다. 마크는 자신이 정한 자신만의 규칙으로 숲속의 낡은 집을 사들여 그곳에서 지휘자를 내쫓아 영화 음악을 단독으로 만들어내고 런던으로 가서 스팅이라는 유명 락가수를 섭외해 녹음까지 한다.
자신만의 독특함이 있었지만 성격이 워낙 괴이한 것 때문일까? 팀원들은 그의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건 그가 만든 영화가 끝까지 관객들에게 상영을 할 수 있도록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마크는 분명히 천재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비범한 상상력을 가졌기에 좋은 아이디어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정신과 약을 먹고 있어서 그런지 약을 끊게 되면 너무 예민한 성격과 자신을 이용한다는 피해 망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펼친 수많은 노력은 부정할 수가 없는데 마크의 포기하지 않는 끈기도 필자는 본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마크의 행동은 분명 기이한 게 맞다. 그렇지만 마크가 해낸 걸 나쁘게 볼 수많은 없는 게 맞는 것 같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상상력이 비범한 영화감독의 이야기지만 그의 너무 괴짜 같은 성격 때문인지 사람들이 잘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마크의 노력이 통한 걸까? 마크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인 가브리엘과 연인이 되고 자신이 팀원들과 만든 영화도 상영회가 열려 수많은 관객들과 배우들이 참석하고 끝내 성공을 맛본다. 우리나라 속담에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는데 필자는 그 속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넘치면 넘칠수록 좋은 게 더 많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이 영화는 자신의 비범함을 알아주지 않는 천재 감독의 이야기지만 그만큼 열정과 끈기가 대단한 감독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마크의 상상력 하나하나까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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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낯선 존재들의 연속, 물음의 연속
미확인 | Unidentified
전주영 | Jude CHUN
Korea |2022|80min|DCP|Color|Fiction|12|Korean Premiere
시놉시스
1993년 전 세계 모든 도시 상공에 UFO들이 나타났다. UFO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이 상태로 29년이 지난 세상. 우리 중 어느 사람들은 사실 외계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프로그램 노트
1993년 정체를 알 수 없는 UFO가 전 세계 주요도시 상공에 등장한다. 당시 인류는 패닉에 빠지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전주영 감독의 <미확인>은 그로부터 29년이 지난 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분절적인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얼핏 갈피를 잡기 어려울 뿐더러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나 군무 장면이 불쑥 튀어나와 맥락은 더욱 잡기 쉽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UFO와 외계인이라는 장치를 통해 현대사회와 사람들을 풍자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영화 속 농담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은 결국 돌아와, 보는 이의 뒤통수를 노린다. <미확인>은 단편영화 <시간 에이전트>(2015)에서 보여줬던 SF적 상상력과 <신의 토로>(2018) 등 밴드 자그마치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줬던 역동적인 화면 구성처럼 전주영 감독의 장점이 총망라된 영화다. 올해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하버 부문, 지난해 싱가포르국제영화제 언더커런트 부문에서 상영됐다. (문석)
낯설게만 느껴지던 것들이 '아, 이거였구나' 하고 느껴지는 순간
영화는 여러 개의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UFO를 믿지 않아서 팻말을 걸고 시위하며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남자에 대한 인터뷰, 상사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동료들과 함께 우르르 회사를 나온 뒤 홀로 무선 이어폰을 꼽고 음악에 취해 길거리를 춤추면서 걸어가는 남자(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은 남자를 설렘 가득한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던 여자, 그리고 이런 여자의 시선에 부응하듯 여자가 버스에서 내리자 따라 내린 뒤 꼭 끌어안는 남자, 식당 손님에게 갑작스럽게 뺨을 엄청 맞고 경찰에게 하소연하는 고깃집 직원 등.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이들이 서 있는 곳의 하늘 위에 항상 괴상하게 생긴, 웅웅-거리는 UFO가 하늘에 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야기 중간중간에 외계인들이 자꾸 언급된다. 앞서 경찰에게 하소연하던 고깃집 직원은 갑자기 타로점을 보러가서 자신이 외계인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말하는 두 인물은 각각 인간과 공존해야겠다는 생각과 본래 목적인 인간들을 정복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앞서 UFO를 믿지 않아서 시위하던 이는 <미드소마>와 같이 흰 옷을 입고 UFO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어떤 의식을 치루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영화의 전개가 이어질 때마다 개인적으로 '어 뭐지?', '이건 뭘까?'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그러다 문득 '내가 보고 있는 인물들이 어쩌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외계인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러다가 또 진상손님 때문에 힘들어하는 알바생,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운명 같은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엔 다른 이들처럼 헤어지고 조금은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이는 커플 등의 모습을 보면 '그냥 우리네 일상 아닌가?', '우리와 같은 사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은 이렇게 낯선 것들을 계속 마주하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어떤 깨달음과 결론에 도달하여 이전까지 낯설게 느껴지던 것들을 모두 '그러려니-'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런 독창적인 매력을 지녔다. 아이러니한 존재에 대한 물음을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던지면서 관객들이 각자 자신 나름대로의 결론에 도달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동시에 관객들이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 <미확인>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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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자성의 50가지 그림자
이 글은 영화 [헌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주세요.
바람 잘 날 없는 한 달이었다.
앞다투어 개봉하는 대작들의 풍년으로. 그리고 그 영화들을 속 시끄럽게 하는 잡음과 이슈들 로도 말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 속에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세 영화에 이어. 마지막 기대작인 영화 [헌트]도 자신의 경로를 확인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이미 배우로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입장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도. 자신의 한계선을 저만치 밀어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담은 작품으로, 이정재는 배우이자 신인 감독의 이름으로 꾸벅 인사를 건넨다.
어쩌면 이중고가 될지도 모르는 이 무거움을 기어코 어깨 위에 얹고 걷는 영화 뒤로. 이 영화의 운명을 결정할 주사위가 던져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영화 [공작]에 이은 또 다른 호평을 이끌어 낼 첩보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인지는 이 영화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함께 걸으며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자성의 50가지 그림자;거울에 갇힌 자신을 꺼내려는 시도
사진출처:다음 영화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은 만나는 첫 순간부터 서로를 향한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분명 같은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도 협력은커녕 뒤꽁무니를 캐느라 눈이 벌게진 모습이 긴장감으로 승화되어 영화를 지배한다.
누군가를 의심해야만 하는 시대적인 특성도 있었겠지만. 더 크게 보면 두 사람 모두 품 속에 자신의 이념이라는 거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당시의 신념은 목숨만큼이나 중요했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드러냈다가는 스스로의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기에, 가진 거울 위에 일부러 먼지를 소복이 쌓은 채 시치미를 뚝 떼고 살아야만 했다.
김정도(정우성)에게는 이 거울의 정체가 매우 명확하다. 자신이 군인이던 시절 보고 겪은 참상이 그것이 되어 꼿꼿하게 마음에 뿌리내린 채 흔들릴 겨를이 없었다. 이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단호하게 쳐내며 거울의 존재를 지키려 애쓴다.
그러나 박평호(이정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방주경(전혜진)은 자신이 뒤집어쓴 먼지 같은 삶을 그 어떤 왜곡 없이 너무도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 어떤 생각도 없이 상부의 명령에 오롯이 자신을 던지고. 자신의 일에 심지어 신이 나 보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불만은커녕 이 일이 즐겁다는 것처럼.
다른 거울이자 박평호의 크립토나이트(약점)인 유정은 자꾸 평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현재의 그 부조리를 과연 참으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파문을 던져댄다. 생각해야 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지금 대답을 하고 바로 행동에 옮기라며 채근한다.
두 개의 거울 사이에 낀 박평호는 자신의 모습이 무한대로 반사되어 분열하는 것을 보며 하나의 자신만이 남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쩌면 혼란에 빠져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리려고 하는 모습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면서도 자신이 아닌 무한대의 박평호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마저 느꼈을 그는 결국 방주경의 목을 조르는 것으로 이 혼돈이 마무리되기를 바랐다.
오월동주에서 동상이몽으로;결국은 숨길 수 없었던 본질에 대하여.
사진 출처:다음 영화
박평호와 김정도가 공동의 목표를 종착지로 하는 배에 승선하려고 채비하는 과정은 참으로 험난했다. 숨통 같은 거울을 잠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 각자 가장 아끼는 장수 하나씩을 제 손으로 바다에 밀어 넣어야만 했다.
눈물 뿌릴 새도 없이 매정하게 등을 돌려 돌아오다 눈을 들었을 때. 그제야 서로는 자신만을 비추는 거울을 오랜 세월 들여다본 다른 사내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어딘가 낯설고. 또 어딘가는 조금 닮아 있고. 이념과 함께 한 세월만큼이나 고집스러운 입매를 가진 것 같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속을 보일 수 없어 고독했을 것이며, 아주 가끔은 자신의 이념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도 몇 번은 던졌을 것 같은 얼굴.
그 연민을 닮은 것만 같은 마음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혹은 상대방을 향한 감정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본능에 가까운 불안감이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결국 숨길 수 없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희생으로 배의 방향키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려보려 애썼지만. 본질적으로 달랐던 그들의 이념은 결국 사람마저도 양립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체제 앞에선 한없이 약한 두 사람의 모습은 그들이 지닌 거울의 본질에 상관없이 똑같이 안쓰럽고 안타깝다.
오월동주라도 되길 바랐지만. 결국은 동상이몽이 되어버린 배 안의 소란도 알지 못한다는 듯. 시대의 파도는 배를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게 할 뿐이었다. 조용히.
결국 닿지 못한 신세계;이자성 수난시대
사진 출처:다음 영화
이정재 배우가 출연한 스파이 영화에서는 유달리 최종 목적지에 대해 묻는 장면들이 많다고 느낀다.
신세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자성이 골드문에 들어갈 때만 해도. 이 일이 끝나면.이라는 가정문은 희망이 되어 오랜 세월 동안 그를 버티게 했고. 자신의 배역은 아니었지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인남(황정민)의 최종 목적지 역시 딸과 함께 살 수 있는 행복이 가득한 곳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가정문이 주던 희망은 결국 희망 고문이 되어 자신을 포박했고, 행복이 가득한 곳으로 가려면 자신의 희생이 있어야 딸이 밟고 지나가는 길목을 훤히 터줄 수가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다르지 않다.
숨진 유정(고윤정)의 아버지(이성민)가 몇 년 전에 물었을 때도. 김정도가 일이 끝나면 가고 싶은 곳으로 보내 주겠다고 약속을 했을 때도. 박평호는 자신이 절대 그곳에 닿지 못할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으리라.
“그곳”에 닿지 못하는 것이 스파이의 숙명이고, 모든 작전이 쉬쉬 했지만 목적지는 이념의 승리일 뿐 그런 곳은 없다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자신은 이미 이념에 잠식 당해 개인을 잃어버려 그 질문을 들었을 때마다 허를 찔린 기분이기도 했을 것이다.
목적 하나만 믿고 살아왔고. 한 곳에 뿌리내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그에게 허락된 종착역은 변절자라는 오명뿐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자성도 인남도, 그리고 박형호 마저도. 원하던 종착역에 내리지 못했다.
마치면서
영화를 보며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최근처럼 강하게 든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낮은 목소리의 웅얼거림은 첩보 영화의 복잡성을 조금 더 배가 시키는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또한 많은 카메오들이 나오는 것은 좋았으나 중요한 장면에서 필요 이상의 “아는 얼굴”들은 영화에 쏟아야 하는 몰입을 약간 흩어지게 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일본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총격전 장면에서. 박평호가 자신이 몰던 차의 엑셀을 발로 비벼 밟는 장면을 보며 생각이 조금 누그러졌다.
이미 개봉 전부터 많은 매체에서 이야기했기에 다시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겹의 말을 그 위에 얹자면.
무엇이. 그리고 어디까지가 감독이라는 역할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하는지는 나 같은 문외한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영화를 위해 초보 감독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를 그 한 장면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고, 낯설기도 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많은 감정을 닮은 간절한 발짓처럼 보였을 정도니까. 이 초보 감독의 곁에서 메인 배우이자 친구의 역할도 진심으로 해 냈을 정우성 배우와의 호흡도 두 말할 것 없다. 이토록 처절하게 미워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딱하게 생각하는 스파이들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애써서 만든 영화임에는 틀림없고. 눈치챌 정도의 엉성함도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성공적인 첩보 영화의 한 예인 [공작]과는 대척점에 들어있는 또 다른 스파이 영화의 예로 남게 될 듯하다. 물론 좋은 쪽에 속하는 예시로.
열정을 실력으로 바꾸는 사람들의 행보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대단하다.
차용하고 있는 거울의 모티브는 불식 경설화와 이규보의 경설에서 따왔음.
[불식경 설화]는 한 번도 거울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남편이 사 온 거울을 본 아내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왔다고 생각했고. 화난 아내에게서 거울을 받아 든 남편은 외간 남자가 비치는 것에 놀라 화를 냈다는 이야기임.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는 이념의 거울을 처음 본 두 남자가 서로의 이념에 화를 낼 수밖에 없음을 빗대 차용함.
이규보의 [경설]은 거울에 먼지가 쌓여 흐릿해진다 해도 무언가를 비춘다는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 어차피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거울이 있을 테니 그 본질이 결국 두 사람을 오월동주가 아닌 동상이몽의 파멸로 이끌게 했음을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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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미란 코미디 원맨쇼
* <정직한 후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정직한 후보 (2020)
감독: 장유정
출연: 라미란, 김무열, 나문희, 윤경호 등
장르: 코미디
상영시간: 105분
개봉일: 2020.02.12
진실의 주둥이가 불러온 기상천외 선거전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튀어나오는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 그녀는 살아계신 할머니의 목숨까지 팔아 선거에 이용할 정도로 뻔뻔한 철면피다. 할머니의 이름을 팔아 설립한 재단을 앞세워 4선 도전도 무리 없이 진행되려던 찰나 손녀의 버릇을 고쳐놓고자 할머니 '옥희(나문희)'가 기도를 하면서 '상숙'은 하루아침에 거짓말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동안 거짓으로 포장했던 속마음들이 마치 생리 현상처럼 입에서 주체없이 튀어나오게 되고, '상숙'의 선거전에 크나큰 차질이 생긴다. 보좌관 '희철(김무열)'이 물심양면으로 그녀의 곁을 지키며 어떻게든 리스크를 막아 보려 하지만 거짓말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잃은 '상숙'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된다. 이대로 4선의 목표가 좌절되려는 순간, 과감하게 정면돌파를 택하며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 나간다.
뻔하지만 코믹한, 유쾌함에 충실
<정직한 후보>는 '짐 캐리'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라이어 라이어>를 표절한 의혹이 있는 브라질 영화 <O Candidato Honesto>의 판권을 구매해 리메이크한 작품. 원작의 '변호사'를 '정치인'으로 바꾼 것만 빼면 내용상의 차이는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위선과 거짓으로 똘똘 뭉친 유력 정치인이 하루아침에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소재로 써 내려갈 스토리가 워낙 뻔하다보니 작품의 줄거리를 쉽게 예측할 수 있고, 실제 전개 역시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직한 후보>는 코미디 영화이고, 개인적으로 코미디 장르는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본질에만 충실해도 기본은 해냈다고 생각한다. 비현실적인 설정, 식상한 스토리라인을 차치하고서라도 혼을 빼놓도록 웃기면 그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작은 적어도 가볍고 유쾌한 유머를 날리는데 충실하다. 작품을 이끄는 '라미란'의 역동적인 코믹 연기는 SNL '라미란' 편 혹은 그의 코미디 원맨쇼라 할 정도로 평범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원톱 주연인 '라미란'을 서포트 하는 두 남자, '김무열'과 '윤경호'의 연기도 함께 돋보인다. '김무열'은 중후한 카리스마 혹은 냉혈한 빌런의 모습으로 더 익숙한 배우이지만 극중 열정 넘치는 해결사, 어딘가 부족한 허당, 어리광을 피우는 남동생 등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캐릭터로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라미란'과 '김무열'의 케미스트리는 작품의 두 번째 시즌이 탄생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식 전개로 갉아먹은 장점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코미디의 색채는 옅어지고 신파극의 특징을 보인다는 점에서 뒷심이 부족했다. 중반부까지는 스토리가 엉성하더라도 '주상숙'이라는 캐릭터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상황을 해결하려는 방식들이 웃음을 주고, 작품에 속도감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상숙'이 개과천선을 하고,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썩은 정치인들을 징악한다는 결말은 정치에 관한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한국영화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즉, 뻔한 줄거리의 코미디 영화에 고리타분한 한국식 결말까지 더해져 인물의 톡톡 튀는 캐릭터성마저 희미하게 만들어버렸다. 오히려 초반부의 B급 감성을 끝까지 밀고 나갔더라면 코미디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나선 배우들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스토리 상의 비판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라미란에 의한, 라미란을 위한
<정직한 후보>의 가장 큰 가치는 원톱 주연으로서 코미디 작품을 성공적으로 이끈 '라미란'의 역량과 내공이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여성 원톱 주연 영화는 활발하게 제작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 제작되더라도 흥행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김혜수'가 원톱 주연으로 출연해 200만 관객을 돌파했던 <굿바이 싱글> 정도가 떠오른다.) 그런데 <정직한 후보>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힘든 시국에도 1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시즌2 제작도 안정적으로 착수했다. 이는 전적으로 수많은 코미디 작품에 조·단역으로 출연하며 자신만의 유머 코드를 개척한 '라미란'의 기량이 발휘된 결과이며 그녀가 괜히 '청룡영화제'에서 코미디 원톱 주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게 아니라는 것 역시님 증명했다. 그동안 남성 원톱 주연 코미디 영화는 수없이 제작되었고 흥행한 사례도 많지만 여성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정직한 후보>가 작품성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여성 원톱 주연 코미디 영화도 충분히 흥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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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생커플의 로맨스 추억 여행 영화 <실 : 인연의 시작>
스다마사키와 고마츠나나의 결혼이 현재 일본 연예계의 가장 큰 화제일 것이다. 나도 스타벅스에서 과제를 하다가 갑자기 고마츠나나의 인스타에 올라온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결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른 나이에?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솔직히 나는 두 사람이 연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둘의 외모적 조합은 너무 완벽해서, 다양한 작품과 광고를 함께해왔다. 가장 최근 작품 중 두 사람의 조합을 볼 수 있는 작품은 바로 '실: 인연의 시작'이다.
#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대사
일본 드라마나 영화나 애니나,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가지고 있는 것은 '이것이 명대사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대사가 항상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영화도 그런 대사들이 있었다. 많은 일본영화들이 그런 대사들의 억지스러움이 보여서 거부감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잘 어우러진 것 같다.
"내가 아오이를 지켜줄게"
일본영화의 단골 클리셰 100% 대표 대사이다.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守る(마모루, 지키다)"한다는 대사. <실 : 인연의 시작>은 초반에 불꽃놀이가 나오면서 클리셰 범벅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거기다가 이 대사까지 나오는 순간 나는 이 영화에게 굉장히 실망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 대사가 너무 자주, 여러 사람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자, 감독이 뭔가 전하고자 하는게 있을거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 "마모루"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은 이 영화에게 특별함을 더해준다. 첫번째로 렌이 아오이를 지켜준다고 했을때, 아오이는 렌이 자신의 손을 잡자, 이렇게 말한다. "손이 아파" 이 대사가 누군가에게는 그냥 넘어가는 대사였을 지도 모르지만, 이 대사는 곱씹을 수록 엄청난 깨달음을 주었다. 두번째로, 아오이가 동업친구 레이코에게 지켜준다 했을 때, 레이코는 스스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아, 지켜준다는 말이 얼마나 이기적인 말인지 깨달았다. 함부로 누군가에게 책임감을 가진다는게 남을 위한 거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매우 자기 중심적인 사고였다. 나는 그 사람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꼭 잡은 것 뿐인데, 그 사람은 그 손이 아프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전해준다.
"울고있는 사람이나, 슬퍼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렴."
이 대사는 렌의 치즈공장에서 만난 아내, 카오리가 자신의 딸 유이에게 항상 해주는 말이다. 이 대사는 이 영화의 눈물 포인트가 되어준다. 후반부에 아오이가 큰 성공에 이은 배신과 실패를 경험하고 지칠대로 지쳐서 어릴 적 자신을 챙겨주던 할머니에게 돌아간다. 할머니는 어릴 적 자신에게 음식을 내어주던 경험에서 시작하여 아이들에게 따뜻한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와 재회한 뒤, 조그마한 책상에 앉아 밥을 먹으며 지난 날의 고통을 곱씹으며 슬퍼하는 아오이. 그녀를 보고 유이는 엄마가 말해준 대로 슬퍼하는 아오이를 안아준다.
# 배우들의 연기
유명한 배우 총출동이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일본드라마나 영화를 꽤 본 사람들이라면 못알아볼 배우는 없다. 따라서 연기력에 대해서 사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오랜 스다마사키의 팬으로서, 그의 연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실 이번 작품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연기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그의 특유의 강렬한 연기 스타일이 이번 영화에는 잘 어우러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카오리 역을 맡은 에이쿠라 나나 배우의 연기가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 스러웠는데, 그녀가 엄마라는 역할에 너무 잘 어울리게 연기한 반면, 스다는 아빠라는 역할에 잘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에이쿠라 나나는 지금까지 연기력 논란이 많았던 배우인데, 이번 역할은 실제로 두 아이를 둔 엄마라서 그런지 소화력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고마츠 나나도 역할이 조금 안어울린다는 느낌이 살짝 들긴 했지만, 연기는 감명깊었다. 특히 위 사진의 타지에서 고향의 음식을 먹으며 무너져버린 자신의 인생에 고통스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정말 완벽했다. 최악에 가정에서 자라, 어린 나이에서 부터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고생하고, 겨우겨우 이뤄낸 성공을, 친구의 배신으로 다 잃어버린 아오이의 마음을 관객들이 정확히 읽어낼 수 있게 표현했다.
# 추억 여행
이 영화는 아마 외국인들에게는 크게 인상깊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는 지난 날을 추억할 수 있는 감동적인 영화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헤이세이 시대는 일본인들에게 '상실의 시대'였다.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 지하철 사린사건 등 많고 거대한 사건 사고가 있었다. 일본에 있는 나의 한 친구는 원전사고로 입은 피해로 인해 현재까지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영화 '실 : 인연의 시작'은 헤이세이 시대에서 레이와 시대의 전환점까지 긴 시간을 다루고 있다. 연출적인 면에서도 뭔가 촌스럽고, 옛날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또한 이 영화는 일본의 국민가수 나카지마 미유키의 '실'이라는 곡을 모티브로 한다. 영화 내내 이 곡이 배경음악으로 들려오는데, 이는 관객들을 추억 여행으로 데려다주는 듯 하다.(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 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스다마사키도 이시자키 휴이와 함께 리메이크 앨범을 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이 '파이트'라는 곡을 카라오케에서 부르기도 한다. 이 곡을 부르는 씬들은 청년들의 현실에서의 고통을 표출하는 듯해 마음이 짠해진다.
ファイト! 闘う君の唄を闘わない奴等が笑うだろう
파이팅! 싸우고 있는 너의 노래를 싸우지 않는 녀석들이 비웃겠지.
ファイト! 冷たい水の中をふるえながらのぼってゆけ
파이팅! 차가운 물속을 떨면서 올라가라
暗い水の流れに打たれながら 魚たちのぼってゆく
어두운 물살을 맞으면서, 물고기들은 올라 간다.
사실 이 영화가 한국사람들에게, 특히 일본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인상깊은 작품으로 남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에게는 헤이세이 시대의 청년들의 아픔과 그 시대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감동적인 영화로 다가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사실 렌과 아오이 두 사람이 함께 나오는 장면 보다 두 사람 각각의 인생에 대해서 얘기하는 장면들이 많아 로맨스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또한 과도한 우연적으로 엇갈리는 상황들의 연속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스다마사키X고마츠나나의 조합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재밌었다.
평점: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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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기다리며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으로 30년 종사한 딸, 커스틴 존슨이 아버지 딕 존슨의 죽음을 다양하게 연출하며 찍은 다큐멘터리이다. 픽션(Fiction)과 논픽션 (Nonfiction)을 오가며 촬영된 영상은 아버지의 죽음, 더 나아가 '죽음'이 가져온 남은 자들의 상실과 아픔을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담아냈다.
다큐멘터리 속 딕 존슨은 다양한 방식으로 죽는다. 길을 걷다 누군가가 떨어트린 모니터에 머리를 맞아 죽거나, 공사장 인부가 휘두른 자재에 맞아 피 흘리며 죽는다. 그 외에도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고, 자전거에서 떨어지거나, 심장마비로 죽는다. 이렇듯 죽음은 늘 예기치 못하게 그것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커스틴이 아버지의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이유는 알츠하이머로 떠난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다. 커스틴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를 찍은 짧은 영상만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큰 후회를 했다. 그녀는 죽음이 주는 상실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그러한 상황 속 딕 존슨 또한 점차 기억을 잃는 일이 잦아진 것을 커스틴은 깨닫게 된다. 이제는 죽음이 주는 상실의 아픔에 덜 괴로울 수 있도록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을 연습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한다. 자신과 아버지, 그리고 딕 존슨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죽음 연습하기 영상은 매우 개인적인 내용이면서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존슨 집안은 예로부터 안식교를 믿었다. 안식교에서는 술, 춤, 영화를 금지한다. 그러나 딕 존슨은 안식교의 규율을 거부하고 자녀와 <영 프랑켄슈타인>을 보러 가는 등, 그에게 천국은 아이들과 함께 이 땅에 있는 것일 뿐 안식교에서의 규율은 중요하지 않았다. 딕 존슨은 자녀들을 아끼고 주변 사람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알츠하이머의 전조가 보인 일은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알츠하이머는 자신을 점점 잃게 만들고 주변 사람도 하나씩 잃어간다. 나를 구성했던 모든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다.
"제가 남편이 죽었을 때도 딕에게 제일 먼저 연락했어요. 근데 마음이 아팠던 게 며칠 후에 딕을 만나 절 따뜻하게 안아주셨는데 5분 후에 저에게 남편의 안부를 물어보셨어요.
전 그게 또 다른 상실임을 알았어요. 기억 상실이죠.
그러나 제가 기억하는 한 딕의 기억은 제 안에 있다는 거예요."다큐멘터리 속 연출된 장면들은 죽음에 대비하는 연습의 과정을 담아냈다. 딕 존슨이 죽고 나서 가게 될 천국을 연출하거나 딕의 친구들을 만나 죽음을 이야기하며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딕의 장례식이다. 장례식은 엄중하고 슬픈 분위기로 가득하다. 친구는 추모사를 읊으며 슬픈 눈물을 흘리며 그를 추억한다. 그러나 딕은 장례식이 열린 교회 강당의 문밖에서 그 상황을 보고 웃고 있다. 그렇다. 이것은 딕의 가짜 장례식이다. 딕은 추모사가 끝난 장례식장의 문을 열고 자신을 추모한 사람들 속으로 걸어가 인사를 나눈다.
죽음을 연습한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준비 과정을 통해 우리는 죽음이 가져다주는 슬프고 무서웠던 기억에 웃음을 가져다주는 여유를 덧대어 준다. 물론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당연한 명제 앞에서 ‘딕 존슨의 죽음’은 언젠가 일어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커스틴 존슨은 벽장에 들어가 핸드폰에 한 문장을 반복해서 녹음한다. “딕 존슨은 죽었습니다.” 한 문장을 계속 되뇌며 커스틴은 딕 존슨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녹음을 마친 뒤 벽장 문을 열고 환한 빛과 함께 나타난 닉 존슨을 끌어안으며 다큐멘터리는 끝이 난다.
'Dead'
죽음이란 단어는 쉽게 꺼내는 주제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죽음은 정말 무서운 것이고 피하고 싶은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느꼈다. 누군가에게 죽음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기억은 없다. 그저 어른들은 죽음이라는 말을 꺼내길 꺼렸으며 터부시했다. 영화, 소설, 드라마, 책 다양한 매체에서도 죽음은 ‘나’라는 존재의 상실이자 끝이었다. 또한, 죽음은 남은 사람들에게 슬픔과 아픔을 가져 왔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죽음은 최대한 피해야 하고 말하면 안 되는 금기였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다가오면 우리는 늘 후회로 가득하다. 죽은 자에 대한 제대로 된 배웅을 하지 못해 후회하고, 죽은 자신에 대한 위로를 건네지 못해 후회한다. 나의 죽음만이 아닌 타인의 죽음, 우리는 죽음 연습이 필요하다. 죽음은 누구나 단 한 번 겪는다. 누구든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죽고 나서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연출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을 통해 우리는 죽음이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익숙해진다고 해서 모든 아픔과 후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아픔과 상실 또한 삶에 반드시 존재한다. 그렇기에 조금은 덜 아플 수 있도록 연습을 해야 한다.
“유년기가 죽으면 청년기가 오고, 청년기가 죽으면 노년기가 오고, 어제가 죽으면 오늘이 오고 오늘이 죽으면 내일이 온다.”
몽테뉴의 얘기처럼 삶은 그 자체로 죽음의 연속이며, 처음부터 삶 안에는 죽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인생에 행복한 일만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헤어지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지 않을까? 그래서 딕은 기억은 점점 잃어가지만, 딸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지금을 천국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죽음을 마주 보았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죽음을 회피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 보며 딕은 연출된 자신의 죽음을 보며 천국이 그려진 세트장을 보며 웃는다. 이 웃음이야말로 딕 존슨이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천국에서 만난 아내와 이소룡과 버스터 키튼, 프리다 칼로와 함께 있는 힘껏 웃고 즐기면서 말이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만 준다면 참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면 서로를 잃는 고통도 마주해야 한다. 상황이 나빠지면 우린 서로 꼭 껴안는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면 짧은 기쁨에 감사한다."
감독: 커스틴 존슨 (Kirsten Johnson)
장르: 다큐멘터리 / 드라마 / 코미디
제작국가: 미국
러닝타임: 약 8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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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만 보이니> 티저 예고편
감독 장근과 동료들은 영화 촬영을 위해 버려진 호텔을 찾는다.
분명 여기엔 우리 6명 말고 아무도 없댔는데 저기 저분은 누구?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고 귀신을 봤다는 스태프들이 속출하며
애절한 로맨스 영화는 점점 아찔한 호러 영화가 되어가는데!
우리… 이 영화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