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2-24 17:56:24
한 걸음 더 앞으로! 로드 무비 5선
스크린으로 떠나는 여행

어느덧 2024년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 여는데 ‘여행’만큼 적절한 것이 없죠.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내딜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로드 무비를 함께 보고 싶어 준비했습니다.
그럼 같이 떠나볼까요!

줄거리
‘라이프’ 잡지사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월터 미티.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상상’을 통해 특별한 순간을 꿈꾸는 그에게 폐간을 앞둔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찾아오는 미션이 생긴다.
평생 국내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월터는 문제의 사진을 찾아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등을 넘나들며 평소 자신의 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어드벤처를 시작한다.
누구보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월터, 그 누구도 겪은 적 없는 특별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줄거리
대학 강사인 가장 리차드(그렉 키니어)는 본인의 절대무패 9단계 이론을 팔려고 엄청나게 시도하고 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이런 남편을 경멸하는 엄마 쉐릴(토니 콜레트)은 이주째 닭날개 튀김을 저녁으로 내놓고 있어 할아버지의 화를 사고 있다.
헤로인 복용으로 최근에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앨런 아킨)는 15살 손자에게 섹스가 무조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전투 조종사가 될 때까지 가족과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아들 드웨인(폴 다노)은 9개월째 자신의 의사를 노트에 적어 전달한다. 이 콩가루 집안에 얹혀살게 된 외삼촌 프랭크(스티브 카렐)는 게이 애인한테 차인 후에 자살을 기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방금 퇴원한 프로스트 석학이다. 마지막으로 7살짜리 막내딸 올리브(애비게일 브레슬린)는 또래 아이보다 통통한(?) 몸매지만 유난히 미인대회에 집착하며 분주하다.
그러던 어느 날, 올리브에게 캘리포니아 주에서 열리는 쟁쟁한 어린이 미인 대회인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 출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리고 딸아이의 소원을 위해 온 가족이 낡은 고물 버스를 타고 1박2일 동안의 무모한 여행 길에 오르게 된다. 좁은 버스 안에서 후버 가족의 비밀과 갈등은 점점 더 커져만 가는데...
할아버지와 올리브가 열심히 준비한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의 마지막 무대는 가족 모두를 그들이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과연 후버 가족에겐 무슨 일이 생긴 것 일까?

줄거리
매일 같이 불행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만나는 런던의 정신과 의사 ‘헥터’, 과연 진정한 행복이란 뭘까 궁금해진 그는 모든 걸 제쳐두고 훌쩍 행복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돈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상하이의 은행가,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아프리카의 마약 밀매상,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난 말기암 환자, 그리고 가슴 속에 간직해둔 LA의 첫사랑까지 ‘헥터’는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을 통해 그는 리스트를 완성해 나간다.
설레고 흥겹고 즐거운 그리고 때로는 위험천만하기까지 한 여행의 순간들, 진정한 행복의 비밀을 찾아 떠난 정신과 의사의 버라이어티한 어드벤처가 시작된다!

줄거리
“때로는 초라한 진실보다 환상적인 거짓이 더 나을 수도 있단다. 더구나 그것이 사랑에 의한 것이라면!”
운명을 보는 마녀, 집채만 한 거인, 시간이 멈춘 유령마을까지… 믿을 수 없는 모험으로 가득한 에드워드 블룸의 이야기. 당신도 믿나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고향을 찾은 윌.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다 큰 아들에게 허풍 가득한 무용담을 늘어놓는 아버지. 그의 레퍼토리는 언제나 기상천외한 모험과 단 하나의 로맨스로 이어진다.
이제, 믿기 힘든 이야기 속에 가려진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는데…

줄거리
가난한 삶, 폭력적인 아빠,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했던 유년 시절을 지나 엄마와 함께 행복한 인생을 맞이하려는 찰나, 유일한 삶의 희망이자 온몸을 다해 의지했던 엄마가 갑작스럽게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엄마의 죽음 이후 인생을 포기한 셰릴 스트레이드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파괴해가고…
그녀는 지난날의 슬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수 천 킬로미터의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의 공간 PCT를 걷기로 결심한다. 엄마가 자랑스러워했던 딸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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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가짜 페르시아인이 뇌리에 새긴 불편한 진실
이 글은 씨네랩에서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초청 받은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우리 주변의 '가짜'들
살다보면 우리는 숱한 가짜들을 마주한다.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들을 말하냐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짜란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다른 탈을 뒤집어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이들은 어떠한 목적에 의해 그러한 개인의 고유한 특질을 감추거나 가리고 또다른 가면을 쓴다. 이유는 다양하다. 정말로 자신이 가장한 삶처럼 살고 싶어서일수도 있고, 피치 못하게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야 해서일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의 본질과 가면(페르소나)를 양립시켜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러한 가짜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아주 견고하고 확고한 의지, 혹은 신념이다. 꼭 어떤 것을 해내야만 한다는,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질' 역시 그러한 가짜의 탈을 쓴 사람 중 하나이다.
2. 살기 위해 가짜가 되다.
때는 세계 제2차 대전. 나치 독일의 야욕은 온 유럽을 집어 삼키고, 그들의 광기는 인종학살적인 경지에 이른다. 뛰어난 종만을 살려서 더 나은 인간종을 만들겠다는 우생학의 골조 아래에 숱한 비-아리아인(흔히 전통적인 독일 민족이라고 일컫어지는)들이 '청소'당했는데, 잘 알려졌다시피 유대인은 이들의 대표적인 학살 대상 중 하나였다. 유대인인 '질'은 이들의 인종 청소로부터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수용소로 강제로 끌려가게 된다.
그가 다다른 곳은 소위 '쓸모 없는 인간'은 지워지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곳.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바로 그곳에서 질은 살기 위해 페르시아인을 사칭한다. 정작 페르시아어를 하나도 모르면서!
하늘이 도운 걸까? 이 가짜 페르시아인이 끌려간 곳에는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독일군 대령 '코흐'가 있었다. 질이 알고 있는 단어는 '아버지'를 뜻하는 '바바' 뿐이지만, 살려면 그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쳐야 했고, 그리하여 이 가짜 페르시아인은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을 위해 필사적으로 단어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단어는 대충 지어낸다 쳐도, 가르칠 단어는 하루가 멀다하고 늘어날텐데 그 많은걸 어떻게 다 기억한단 말인가? 한참을 고전하던 질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의 이름과 인상에서부터 단어를 착안해내고, 그 기발한 발상으로 말미암아 2000개가 넘는 단어를 만들어 낸다. 단어에서 시작되었던 언어는 이윽고 문장이 되고, 문장은 일련의 이야기가 된다. 살기 위해서 만들어낸 가짜가 이름과 이름들이 견고하게 엮임으로써 하나의 실제하는 언어가 된 것이다.
3. 가장 평범한 악인들
질과 코흐는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을 거듭하면서 묘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코흐는 질을 철저하게 착취하는 입장이면서도 그에게 나름대로의 '관용을' '베풀'고, 질은 그 얄팍한 관용 속에서 코흐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알아 나간다.
코흐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이기적이고, 쪼잔하며 얼마쯤 완벽주의자적인 면모도 있다. 요리사였던 그는 수용소의 수감자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그들을 학살하는 독일군 장교들을 배불리 먹인다. 그는 직접 누군가를 죽인 적은 없지만 학대한 적은 있고, 적어도 간접적으로 독일군의 광기어린 살인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냉혈한일 것만 같은 그 코흐도 퇴역 후 낯선 땅에서의 안락한 여생을 꿈꾸고,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가정하며 친애를 표했다. 그는 그 자신이 평범한 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 대단한 만행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평범한 악인은 그뿐만이 아니다. 작중에 나오는 독일군 모두가 그러하다. 그들은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악행을 합리화한다. 코흐는 스스로의 손을 직접 더럽히지는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얻고, 또 어떤 병사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비논리적인 잣대로 평가된 '유대인들의 저급함'을 학대의 근거로 삼는다. 이러한 믿음은 거의 종교와도 같다. 때때로 종교가 우리 역사를 뒤흔들어 놓았듯이, '그러니까 저들은 그르고 나는 옳다'는 이기적인 신념은 그들을 광기로 몰아넣는다. 그 대단한 파시즘적인 발상에의 추종과 '나 자신의 안락함'을 위한 외면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을 죽이고, '치우고', '묻었다'.
4. 살아남은 가짜 페르시아인과 가짜 페르시아어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다시 말해, 주인공 질은 살아 남았다. 그리고 그가 만들었던 언어, 즉, 수용소에서 죽어간 약 2000여 명의 사람들의 이름 역시 살아 남았다. 처절한 생존의 의지가 만들어 낸 어떤 기적이다.
페르시아어를 배운 코흐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건 영화를 직접 보는 편이 좋겠다. 이 영화가 악인을 그리는 방식은 대단히 흥미로워서, 이를 관찰하는 것 역시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신념이 가지는 힘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신념은 사람을 죽이고, 어떤 신념은 사람을 살린다. 신념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의 생각이어서 얼마든지 그릇될 수도 있는 것인데, 때때로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나 신봉한 나머지 그것에 매몰되곤 한다. 우리는 언제든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러한 가짜들이 진짜인 우리를 집어 삼키게 될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 영화의 독일군들처럼!
내가 쓰는 가면은 어떨까. 나는 내 가면을 올바르게 닦고 있을까? 나의 본질과 본질이 아닌 것은 어떻게 분리해야 할까? 내가 그러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세계를 배우고, 사람을 만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수밖에는 없을 거 같다. 나만 생각해서는 내 가면에 내가 잡아먹힐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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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성과 모성애에 관한 시선과 뒤따르는 감정의 파고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나의 눈부신 친구’의 작가 엘레나 페란테이 집필한 나쁜 사랑 3부작 중 한 편인 ‘잃어버린 사랑’을 원작으로 우리에게 배우이자 제이크 질렌할의 누나로 친숙한 매기 질렌할이 첫 연출과 각본을 맡아 제94회 아카데미 3개 부문 후보를 포함해 전 세계 영화제에서 103개 부문 노미네이트,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각본상을 포함한 37개 수상을 거머쥔 영화 로스트 도터 리뷰입니다. 그리스의 휴양지를 찾은 비교문학 대학교수 레다가 젊은 엄마 니나를 만나 자신의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서스펜스 드라마로 그들의 행동과 모습을 통해 여성성과 모성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보수적이고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인간의 욕망에 충실한 파격적인 여성을 그리는 작가의 솜씨가 여성제작진들과 출연진들을 만나 책을 통해 개인이 혼자 떠올려보는 상상이 아닌 큰 스크린으로 다 함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짜여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재를 살아가는 엄마, 딸, 여성이라면 다각적으로 생각해 볼 여백을 남겨주는 미묘함을 경험할 수 있을 듯합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로스트 도터 정보 및 출연진
따님들 어렸을 땐 어땠어요?
다양한 언어에 대한 비교문학을 공부하는 대학교수 레다는 홀로 그리스의 작은 해변 도시로 휴가차 방문합니다. 별장 관리인 라일과 해변 관리 아르바이트 윌의 친절에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가에서 그녀만의 호젓한 휴가를 만끽할 줄 알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저택에 사는 대가족이 몰려와 해변을 차지하면서 그의 심기는 점점 불편해집니다. 그리고 그들 중 어린 딸 엘레나와 함께 나온 니나에게서 과거의 자신이 떠올라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눈을 뗄 수 없게 됩니다. 15년 전 두 딸을 키우며 워킹맘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식을 얻고 키우는 즐거움보단 괴로움,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성취욕 등이 충돌하던 그때를 말이죠.
예고편│ Trailer
원제 : The Lost Daughter│감독·각본 : 매기 질렌할
원작 :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잃어버린 사랑
출연진 : 올리비아 콜맨, 다코타 존슨, 제시 버클리, 피터 사스가드, 폴 메스칼, 에드 해리스 외 多
장르 : 드라마│상영 시간 : 122분
국가 : 미국, 영국, 이스라엘, 그리스│등급 : 15세 관람가
평점 : 기자·평론가 6.75, 왓챠피디아 예상 3.2, 로튼 토마토 신선도 94% 팝콘 50%, IMDB 6.7, 메타 스코어 86점
개봉일 : 2022년 7월 14일
여성들의 앙상블, 그들의 섬세한 메시지
원작을 쓴 엘레나 페란테가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은 굉장히 직선적으로 느껴지는데, 마치 우리 사회에서 암묵적인 룰처럼 여겨왔던 모종의 합의를 깨부수는 형태로 접근합니다. 이러한 미묘하고 비전형적인 심리묘사의 중심되는 레다를 돋보이는 것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올리비아 콜맨으로 묵직한 존재감으로 드라마임에도 묘한 긴장감을 만들며 중심을 잡아주죠. 그리고 여성에서 엄마라는 위치로 옮겨가며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작품의 상징적인 의미인 여성성과 모성애를 둘러싼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니나를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 중 한 명인 다코타 존슨이 맡아 물오른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라이징 스타라 할 수 있는 아일랜드 배우이자 가수인 제시 버클리로, 누군가는 이기적으로 볼지 모르지만 부모 이전에 한 여성이자, 인간으로 솔직한 젊은 레다를 맡아 완벽하지 않아 더 일반적이라 느낄 수 있는 열연을 펼칩니다. 세 명의 출중한 배우들과 현장 경험이 많은 감독이 만들어낸 앙상블은 이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충분한 메시지를 완성시킵니다.
# 로스트 도터 평점
애들이 없으니 어떻던가요?
교수이자 번역가인 주인공은 작은 해변 마을에 도착해 햇빛 아래서 휴식을 취하기를 고대하고 있지만, 그녀를 둘러싼 상황들은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세상과 주변 사람들이 문제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자기중심적으로 강박적인 행동에 이상한 것의 중심은 그라는 걸 쉽게 깨달을 수 있죠. 그렇게 작품은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욕망과 충동에 이끌려 자유를 갈망했던 기억들을 통해 현재의 불안한 감정에 대한 수수께끼를 천천히 풀어갑니다. 이러한 현재의 장면들은 20년 전 레다의 삶이 겹쳐지는 신비롭고 긴장된 묘사를 통해 개인의 성취욕과 자신에게 매달리는 두 딸을 양육하는 것에 애쓰지만 점차 지치고 짜증이 쌓여 압도당해버린 한 여인의 과거를 효과적으로 보여주죠.
‘82년생 김지영’처럼 근래 한국독립영화에서 종종 사용되는 산후우울증이지만, 그녀가 받는 스트레스에 대한 묘사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으로 점차 깊이 빠져들고 마는 늪처럼 그려집니다. 일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남편이 등장하지만, 자신의 무게에 짓밟혀 질식되어가는 모습은 끝끝내 극단적인 일탈을 불러오고 외형적으로 꿈꾸던 목표에 도달했죠.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죄의식은 다른 형태로 현재를 잠식해가고 자신이 밟아왔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것 같은 니나에게 감정을 투영할수록 문제는 복잡하게 꼬여갑니다. 결국 소소한 사건들이 이어져 점차 더 자신을 갉아먹는 과거에 옥죄어 현재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 모습을 통해 완벽한 해답보다 관객들에게 답을 구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죠.
사람들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니나의 현재 모습과 결부되어 두 인물이 묘하게 평행선을 이루면서 양육의 모습과 당시의 심리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많은 관객에게 공감을 살 것 같습니다. 반대로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묵시적으로 내려오는 무게감이 주인공의 충동적인 행동들이 불편하거나 꺼림칙할지도 모르죠. 동전의 양면처럼, 빛과 어둠이 있듯 어쩌면 엄마이기 이전에, 여성이자 한 사람으로서 지극히 인간적 캐릭터임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매기 질렌할은 첫 연출임에도 원작의 색을 잘 이어 인형을 통해 과오를 속죄하고자 하는 행동들, 다시금 상기되는 배꼽의 상흔, 흘러나오는 음악들(특히, 가사 의미가 투영된 본조비의 Livin' on a Prayer)까지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다양하고 복잡한 심리를 잘 표현한 세 배우의 연기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특히,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 일에 대한 성취, 성적 욕망 등에 빠져든 제시 버클리는 ‘멘’이랑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 아마 남성 관객이 100% 공감과 이해를 하기는 어려운 부분들이라 출산과 육아에 대한 경험이 있는 여성 관객이라면 감정적으로 많이 와닿지 않을까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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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이었어
학창 시절 가장 친했던 당신의 단짝을 기억하는가?
나의 단짝을 떠올려본다. '처음'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공유한 타인. 별거 아닌 일에도 눈만 마주쳤다 하면 깔깔 웃곤 했던 그때. 유머 코드도, 대화도 잘 통했던 우리. 오랫동안 함께 하리라고 믿었던 어린 나. 번호조차 모를 미래는 상상도 못 했다. 그 친구는 가끔 꿈에 나온다. 우리는 때로 화해를 하고, 때로 싸우고, 때로 예전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눈을 뜨는 순간 실제 같은 잔상은 빠르게 사라진다. 오묘하다. '오묘함'은 대체 어떤 감정인지 몰라서 어떻게 떨칠 수 있는지 모른다. 추억이 된 단짝과의 기억은 그렇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안생도 비슷한 아침을 보냈을까.
꼬꼬마 시절, 안생과 칠월은 같은 학교에 다녔다. 공통점이라곤 그거 하나인 것 같았다. 칠월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 모범생의 길을 걸었다. 공부도 잘하고, 말썽도 안 피우고, 하라는 일은 착실히 해냈다. 안생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길을 만들어 갔다. 성향이 상극인 두 사람은 종일 붙어있다시피 한다. 정반대여서 끌렸을까?
▶ 그래야만 하는 칠월, 그래도 되는 안생
안생과 칠월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둘이 걷는 방향이 멀어진다. 안생은 공부 대신에 미용을 배우고, 칠월은 어려서부터 듣던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한다. 둘의 마음은 멀어지지 않았다. 안생은 여전히 칠월의 가족처럼 식탁에 앉는다. 칠월은 조금 불만이다. 저에겐 타박만 하는 어머니가 안생을 다정하게 대한다.
태도뿐만 아니라 들려주는 말도 다르다. 칠월에게는 바른 삶을 이야기한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고, 그마저도 힘드니까 좋은 대학에 가서 적당한 때에 결혼을 해야 한다며. 칠월은 그 조언을 진리라고 믿었다. 한 번도 엇나가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안생은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자유분방함과 씩씩함, 복스럽게 먹는 모습 따위에 대한 칭찬만 들었다.
칠월은 친딸이고, 안생은 딸의 친구라서 하고 싶은 말이 달랐을까? 어쩌면 둘이 태생부터 다르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칠월은 얌전하고,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유약한 아이. 안생은 밝고, 쾌활하고, 재밌고, 흥이 많은 아이. 안생이 훔쳐온 귀걸이를 칠월의 어머니께 선물하자, 칠월은 도덕성에 어긋난 안생의 행동을 꼬집는다. 안생은 언젠가 갚을 생각으로 가져온 거라 훔친 게 아니라고 답한다. 칠월의 어머니가 사실을 알게 되면, 안생보다는 친구를 말리지 않은 칠월을 나무랄 것이다. 칠월을 '그래야 하는' 아이로 키워왔다.
안생은 곧 넓은 세계로 나가겠다며 고향을 떠난다. 칠월은 고향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우직하게 자리를 지킨다. 대학교에 입학하자, 이제 꼭 해야 하는 공부는 끝났다. 앞으로 할 일을 직접 찾아야 한다. 호기심과 들뜸을 안고, 저마다 관심 있는 동아리 부스로 찾아가는 사람들. 칠월은 그 가운데에 우뚝 서 있다. 하고 싶다는 욕구를 품어본 것도, 그 욕구를 따라가 해소한 경험도 없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었다.
결국 주어진 길로 돌아온다. 칠월은 목표했던 신문방송학과 대신 경제학과를 졸업해 은행원으로 취직한다. 스물일곱에 애인과 결혼하면, 적어도 가족이 말했던 여성에게 안정적인 길은 따라갈 수 있다. 안생은 긴 시간 세상 곳곳에서 칠월에게 편지를 쓴다. 매 편지마다 직업도, 머무는 장소도, 어울리는 사람도 다르다. 매일을 다르게 사는 안생은 문득 재미를 잃는다. 지친 것이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고향, 칠월에게 돌아간다.
▶ 나는 네 존재만큼 부족하다
둘은 상해로 여행 간다. 칠월은 처음으로 고향에서 벗어났다. 정해진 길을 충실히 산 덕에 여행자금이 풍족하다. 하루하루 사는 것에 족하던 안생은 돈이 없다. 안생의 안내로 낡은 여관으로 간 둘. 칠월은 자신이 돈을 내겠다며 고급 호텔로 데려간다. 식사를 하러 나온 둘. 안생은 칠월에게 제가 살아온 방식을 보여준다. 바텐더에게 술 10병을 팔면 자신에게 공짜로 1병을 주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시끌벅적한 테이블로 가 내기를 건다. 20초 안에 안생이 한 병을 다 마시면 추가로 10병 시키기로. 안생은 해낸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술병을 따는 안생. 잠시 머물렀던 테이블에서 두 남자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안생은 친구가 술을 못한다며 자연스레 거절하려고 한다. 칠월은 술잔을 단숨에 비운다. 당황한 안생, 다시 빌붙으려는 남자들을 융통성 있게 쫓아낸다. 상황을 가볍게 넘기려고 애써 농담을 붙이는 안생. 칠월은 날카롭게 받아친다. 감정은 말이 오갈수록 격해지고, 결국 안생의 언행이 저급하다고 깎아내린다. 안생도 지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지 못한 칠월을 비꼰다. 상처만 남은 여행은 각자 찢어진 채로 끝난다.
안생에게 있는 것이 칠월에게 없고, 칠월에게 있는 것이 안생에게 없다. 전자는 자유로운 사고, 친화력, 추진력이고 후자는 따뜻한 가정, 안정적인 삶이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동시에 부러워한다. 성격과 가정환경은 후천적으로 창조할 수 없다. 절대 가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갖고 싶어 하고, 그것을 가진 이의 자랑에 자존심이 깎인다.
둘의 사이는 극악으로 치닫는다. 칠월의 삶은 안생과 애인뿐이었다. 칠월이 가졌기에 안생은 가질 수 없는 사람, 칠월의 애인 가명. 오래전, 안생이 떠나기 전에 가명은 가장 소중한 목걸이를 안생에게 주었다. 둘의 이상한 분위기를 두 눈으로 보았음에도 칠월은 모른 척했다. 둘 다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안생에게 뺏기기 싫었다. 안생을 다시 만난 칠월은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낸다. 칠월이 이전에 저급하다고 말했던 방식대로 안생을 공격한다.
느지막이 칠월은 깨닫는다. 정해진 수순을 따라서 가명과 결혼을 해도 행복은 없을 것이다. 살면서 온전히 자신 뜻대로 무언가를 한 적도, 원한대로 된 적도 없었다. 칠월은 큰 결심을 단행한다. 가명에게 결혼식 날 도망가라고 말한다. 그래야 자신도 당당하게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며. 그렇게, 둘의 사이는 끝났다. 고향을 벗어나 혼자 살아가던 칠월은 안생을 찾아간다. 부른 배를 안고서.
안생은 직장을 잡고, 결혼할 애인을 옆에 두고, 한 곳에 머문다. 예전의 칠월이 살던, 매일이 똑같은 삶이다. 칠월은 지난 일들을 털어놓으며 미움, 분노, 억울함까지 고백한다. 그리고 자유를 갈망한다. 안생처럼 이곳저곳 정처 없이 떠도는 삶, 정해진 길이 없는 삶, 하고 싶은 것을 주저 없이 따르는 삶. 안생과 칠월은 서로의 인생을 바꾸기로 한다. 칠월의 아이는 안생이 맡고, 칠월은 생애 첫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 그래서 너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이었어
자유를 얻은 칠월은 안생의 흔적을 따라간다. 여관, 유람선, 바, 거리. 안생은 후에 가명을 만나 칠월의 이야기를 전한다. 가명은 안심한다. 하지만 안생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진다. 가명이 현실이라고 믿는 그 이야기는 사실 안생이 쓴 소설의 픽션 부분이었다. 칠월은 아이를 세상에 남기고 죽었다. 자유를 한 번도 느끼지 못하고 떠난 친구의 명복을 안생이 빌어주기로 한다. 적어도 소설 속 칠월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얼마든 머물 수 있고, 무엇이든 즐길 수 있다.
누가 만든지도 모를 길을 견뎌내느라 지쳤을 칠월, 자유에 손 뻗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헐뜯던 칠월, 자유를 쉽게 얻은 안생을 미치도록 부러워했던 칠월. 신중하고, 겁 많고,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이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화재경보기를 장난으로 울리려고 한다. 안생은 경보기를 감싼 유리를 깨뜨리려고 돌멩이를 쥐었지만, 망설인다. 뒤에 있던 칠월이 안생의 손을 잡고 유리를 부쉈다. 스릴을 즐기고, 겁 없고, 장난기 많았던 칠월. 정해진 길을 걷기 위해서 제거해야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안생이 그린 칠월의 자유로움은 칠월의 바람이 깃든 것만은 아니다. 잃어버린 칠월을 되찾은 이야기이다.
'너 자신을 알라'.
사회의 무수한 기준, 잣대, 평가에 나를 욱여넣던 지난날. 이제 뒤돌아 자신이 찍은 발자국을 살펴볼 시간이다. 내가 원했던 방향을 걷고 있는지, 이상과 다르다면 얼마나 다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래서 어떻게 할지. '나'에 관한 답을 만들어 갈수록 생각은 명확해지고, 길은 뚜렷해진다. 물론 어렵고 힘든 여정이다. 하지만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사진 출처는 모두 네이버 영화입니다.
등급
15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원작
도서 칠월과 안생
러닝타임
110분
감독
증국산
출연
주동우(안생 役), 마사순(칠월 役), 이정빈(가명 役) 등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박윤혜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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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가 이사왔다 | '엑시트'를 꿈꿨던 오컬트 로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2의 <엑시트>를 꿈꾸다
2019년 여름 극장가의 주인공이었던 <엑시트>는 겉과 속이 달랐다. 예고편과 포스터만 보면 평범한 한국형 코미디 같았다. 특히 배우들의 이미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영화처럼 느껴졌다. <건축학개론> 속 조정석의 코믹한 이미지와 <공조>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임윤아의 푼수 연기를 전면에 내세운 게 분명해 보였다.
실상은 달랐다. 구조 헬기를 부르는 장면처럼 확실한 웃음 포인트를 선보이면서도 재난 영화로서의 긴장감을 잃지 않는 균형감이 돋보였다. 특히 취준생 주인공들을 내세워서 가상의 재난을 현실에 비유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화학 가스에 뒤덮인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빌딩 위로 향하는 그들은 마치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다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스크린 밖의 2030 세대와 다를 바 없었다.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이 선보인 신작, <악마가 이사왔다>는 제2의 <엑시트>가 목표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겉모습과는 달리 내용물은 오컬트를 활용한 코미디와 신파로 가득한 가운데,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로 여러 장르를 묶어 놓은 모양새가 <엑시트>와 유사하다. 그러나 이 전략은 유효하지 않다. <엑시트>와는 달리 다양한 장르를 묶어줄 연결고리가 허술한 나머지, 그럴듯한 소재에 비해 결과물은 아쉬움을 남기기 때문이다.
서양식 오컬트와 코미디의 만남
<악마가 이사왔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요소는 오컬트다. 차이가 큰 동서양 오컬트를 코미디와 드라마, 로맨스를 엮는 실로 활용하는 스토리텔링이 인상적이다. 사실 서양과 동양의 오컬트는 사뭇 다르다. 전자가 대체로 악마 같은 대상을 퇴마하는 과정을 다루지만, 후자는 원혼이나 귀신의 트라우마나 사회적 억압 등에서 비롯된 한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많다.
그렇기에 동서양 오컬트를 한 작품 내에 녹여내기는 쉽지 않다. <파묘>만 봐도 알 수 있다. 수십 년간 한 맺힌 원혼을 달래기 위해 파묘를 하고 굿을 하는 전반부는 동양적 오컬트 영화에 가까웠다. 그에 반해 후반부는 한국을 배경으로 일본의 오니를 등장시키면서도 서양식 오컬트의 퇴마 의식과 비슷한 전개를 보여줬다. 천만 관객을 돌파하고도 <파묘>에 대한 반응이 꽤 엇갈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악마가 이사왔다>의 초반부는 서양식 오컬트 외양을 띤다. 퇴사 후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중 아랫집에 이사 온 '선지'(임윤아)에게 첫눈에 반한 '길구'(안보현). 하지만 그는 밤마다 전혀 다른 인격을 변하는 선지를 목격한 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그녀의 정체를 탐색하고, 마침내 그는 선지의 아버지 '장수'(성동일)로부터 진실을 듣는다. 새벽마다 깨어나는 악마 '밤선지'가 '낮선지'에게 붙었으며, 이 악마를 퇴마하는 법은 없다는 것.
장수는 반신반의하는 길구에게 새벽 동안 밤선지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제안하고, 제의를 승낙한 길구는 난동 벌이는 밤선지를 제어하느라 새벽마다 고통받는다. 그녀의 난동은 코미디의 소재이기도 하다. 밤선지가 편의점 신제품을 매일 싹쓸이한 뒤 한발 늦게 온 고객을 조롱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소소하게 일상의 금기를 깨는 악마적인 사건들로 구성된 광경은 마치 <핸섬이즈>와 유사한 결의 웃음을 자아낸다.
한국형 오컬트로 빚은 신파
하지만 밤선지의 사연이 드러나는 순간부터는 동양식 오컬트가 전면에 나선다. 수백 년 전 기근이 닥쳤을 때, 밤선지는 굶주림으로 가족을 잃었고, 마을 사람들은 고아가 된 그녀를 굿의 제물로 바쳤다. 이후 원혼이 된 그녀는 불에 탄 본인 유해가 담긴 옹기에서 조용히 소멸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낮선지의 외조모가 그녀를 옹기에서 내쫓으면서 휴식을 방해하자 그녀는 선지의 가족에게 대를 이어 붙어 있는 것으로 복수했다.
즉, 그녀는 퇴치해야 할 악마가 아니라 한을 풀어줘야 할 원혼이었다. 서양식 오컬트의 겉모습을 빌렸지만, 이면에서는 동양식 오컬트 서사를 착실히 쌓아 올린 셈이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여러 장르의 가교 구을 한다. 감성과 형식이 다른 두 오컬트가 동시에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다. 오컬트의 성격이 달라지는 순간 코미디가 신파로 전환되기에 영화의 흐름도 끊어지지 않는다.
이에 더해 진부함과 식상함의 농도도 옅어진다. 기근으로 가족을 잃고, 제물로 희생되었다는 사연은 여러 사극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클리셰다. 하지만 길구가 원혼의 한을 덜어주기 위해서 그녀가 담겨 있었던 옹기를 찾으러 제주도에 도착한 순간, 이 클리셰는 비로소 눈치채지 못했던 복선을 찾는 재미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제주도는 유달리 기근으로 고생을 많이 했고, 육지와는 다른 문화를 간직해 온 공간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제주도는 경신대기근으로 인해 1670년 9월에 42,700여 명이었던 인구가 불과 2년 만에 27,578명으로 줄어드는 피해를 바 있다. 또 비극적인 역사와 고립된 지형으로 인해 제주도는 고유의 무속 신앙 전통이 뿌리 깊다. 지금도 해원상생굿을 통해 4.3 사건 피해자를 기리고 있으며, 환자굿으로써 당시의 트라우마를 달랜 생존자들도 많다. 이처럼 특수한 지역적 서사를 발견하는 순간, 기구한 원혼의 사연은 차별화될 수 있다.
빵과 옹기의 의미
유달리 자주 등장한 소재인 빵과 옹기의 의미 또한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선지는 낮에도 밤에도 유달리 빵에 집착한다. 낮에는 제빵사로 일하면서 프랑스 제빵 유학도 준비한다. 국가대표 유망주였을 뿐만 아니라 올림픽 메달도 거뜬할 수영 재능을 지녔는데도 제빵사의 꿈에만 매달린다. 밤에는 편의점에서 파는 시폰 케이크에 집착한다. 진열대에 제품이 올라가는 즉시 전량 구매해서 먹어버릴 정도다.
선지의 행동에는 단순한 개인 취향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육지와는 달리 제주도에서 카스텔라, 롤케이크, 단팥빵 같은 빵이 전통적으로 명절 차례상이나 제사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음식이기 때문이다. 즉, 항상 빵을 갈구하는 그녀의 행동은 허기짐을 표현하는 장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그녀가 받지 못했고, 또 가족들에게 차려주지 못했던 제사상에 대한 한이 담긴 음식이 바로 빵인 셈이다.
그녀가 새벽마다 옹기를 찾아 돌아다니는 이유도 지역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쓰레기장이나 꽃집을 돌면서 유독 화분이나 여러 항아리를 살펴본다. 본래 자신의 쉼터여야 할 옹기를 찾기 위해서. 이때 옹기 역시 제주도의 특수성을 상징하는 소재로 활용된다. 제주도 특유의 고냉이찰흙으로 빚어진 옹기는 불로 구웠을 때 천연 유약인 ‘자연유’가 저절로 입혀지는 등 육지의 다른 옹기와의 차이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제주 옹기는 음식의 맛을 돋우고, 내용물의 변성을 막으며, 물을 정화하기로 유명하며, ‘숨 쉬는 항아리’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은 과거 사람들이 소녀의 유해를 화장해 옹기에 담은 이유, 선지의 외조모가 그 옹기를 발견한 뒤 씻어낸 후에 김치를 담그다가 원한을 산 계기로 이어진다. 즉, 옹기 또한 사후에도 평화를 얻지 못한 아픔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영화적 장치인 셈이다.
실종된 긴장감과 달함
하지만 오컬트 소재를 신파로 풀어내는 사이에 <악마가 이사왔다>는 오컬트 장르 본연의 서스펜스와 쾌감을 놓치고 말았다. 우선 낮선지와 밤선지라는 아이디어는 거의 활용되지 못했다. 선지와 영화 <잠>에서 몽유병을 앓는 듯 보이는 '현수'(이선균)는 처지가 유사하지만, 그를 지켜보는 주변인들의 두려움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후자와 달리 전자는 낮과 밤이 다른 선지가 유발하는 공포감을 거의 조성하지 못한다.
오컬트 분위기를 고조할 캐릭터도 제대로 못 활용했다. 무당처럼 보이는 '영식'(신현수)이 등장하지만, 그에 대한 설명은 다. 그가 선지에게 깃든 원혼을 노리는 이유도, 원혼을 퇴치하는 데 한 차례 실패한 뒤 다시 접근하지 않는 이유도 알 길이 없다. 그러다 보니 그의 등장 장면은 제대로 된 위기 상황을 만들지 못한다. 자연히 선지에게 악마가 아니라 원혼이 붙었다는 진실이 밝혀지는 반전의 순간도 임팩트가 줄어든다.
악역의 빈약한 존재감은 로맨스에도 악영향을 준다. 로맨스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은 함께 위기를 극복하면서 관계를 발전시킨다. 학교나 회사에서는 어려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집에서는 부모의 반대를 꺾는 식으로. 영식이라는 캐릭터가 별다른 기능을 못 하는 이상, 길구와 선지는 함께 극복할 특별한 위기 상황을 맞지 못한다. 결국 그들의 관계가 아파트 이웃, 직장 동료 이상으로 발전할 만한 계기도 찾아볼 수 없다.
몇 안 되는 이벤트마저 길구와 밤선지의 몫이다 보니 로맨스의 주인공도 애매하다. 길구와 낮선지가 서로 호감을 느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길구와 밤선지의 관계가 변화하는 모습에 분량과 비중이 집중된 이상, 길구와 낮선지가 주도적으로 로맨스를 만들어 나간다는 인상은 받기 어렵다. 그 결과 길구와 낮선지가 연애를 시작하는 결말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며,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만족감도 절대 크지는 않다.
무위에 그친 성공 방정식
로맨스의 실종은 길구의 서사를 공기화하면서 <악마가 이사왔다>의 완성도를 결정적으로 저해한다. 길구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되짚어 보면 영화의 의도는 유추할 수 있다. 아마도 밤선지의 한을 달래주는 여정을 겪으면서 길구가 자신의 아픔도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주려 한 듯하다. 타인을 향한 선의가 자기 아픔도 치유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무장한 것.
이는 <엑시트>가 '용남'(조정석)을 활용한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취준생으로 지내며 무기력해졌던 용남은 잊고 있었던 장기, 클라이밍 기술을 살려서 재난 상황을 극복하는 영웅으로 거듭난다. 용남에게 재난이 덮쳤다면, 인형 뽑기가 재능인 길구에게는 귀신이 찾아왔다. 회사 생활이 남긴 상흔을 술과 인형 뽑기로 애써 가리며 지내던 길구는 선지와의 모험을 통해 자기 아픔도 치유하고,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길도 찾아낸다.
그런데 로맨스 서사가 약하고, 오컬트에서 비롯된 신파가 중심 스토리라인이다 보니 길구의 서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길구 감정선이나 내적 변화와 성장까지 들여다볼 시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가 선지를 만나기 전까지의 그의 일상을 보여주는 초반부는 대체 왜 필요한 건가 싶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해 길구가 주인공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관객에게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악마가 이사왔다>는 재난 영화를 빼고 오컬트를 더해서 제2의 <엑시트>가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루지 못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예상할 수 있 맛과 의외의 신선함을 모두 선사한 <엑시트>와 달리, <악마가 이사왔다>는 예상한 맛이 안 나는 와중에 예상 못 한 맛도 특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임윤아라는 배우가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도 이끌 수 있는 주연임을 확실하게 증명했다는 성과가 있을 따름이다.
Poor 형편없음
두 번은 안 통한 <엑시트>의 성공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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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3주 차, 개봉예정작
이번 주 극장가에는 신작과 재개봉작이 함께 찾아옵니다 🎬✨
먼저 연기의 신 올리비아 콜맨과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부부로 만난코미디 신작 <더 로즈: 완벽한 이혼>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결혼의 균열을 유머와 날카로움으로 그려낸 작품인데요
의외의 조합에 코미디 장르라니 개인적으로 참 기다려지는 작품입니다.🔥
여기에 반가운 재개봉작들도 눈에 띄는데요,
청춘 영화의 레전드 배두나 주연의 <린다 린다 린다>,
젠데이아·조쉬 오코너 주연의 테니스 로맨스 <챌린저스>,
그리고 지브리의 걸작 <모노노케 히메>까지!
추억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극장가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여러분은 어떤 영화 보시나요?
🎬 9월 3주차 PICK!
►<린다 린다 린다(2006)>
►<썸머 블루 아워>
►<바로 지금 여기>
►<더 로즈: 완벽한 이혼>
►<챌린저스(2024)>
►<프란체스코, 신의 어릿광대(1950)>
►<모노노케 히메(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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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직 기자의 시점으로 본 '기자 영화'
기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마치 탐정처럼 사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본질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다가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며 반전을 맞이한다. 그래서 그는 펜으로 바로잡고 정의 구현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만 보면 영화 '댓글부대'는 흔히 사회고발을 하는 기자 영화로 비치고, 원작소설을 집필한 장강명 작가 또한 기자 출신이었기에 더더욱 기자 영화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정진영 작가의 '침묵주의보'를 드라마화한 JTBC '허쉬'와 같은 결을 따라갈까 영화를 관람하기 전 살짝 예상해 봤다.
전직 기자의 시점으로 바라본 '댓글부대'는 우리가 흔히 아는 기자 영화와는 전혀 다른 결이다. 특정 대기업을 떠올리게 만드는 만전 그룹 비리를 보도했다가 오보로 판명돼 한순간에 '기레기'로 전락한 임상진(손석구)이 절치부심해 비밀리에 운용 중인 만전 내 여론조작팀의 실체를 들춰내 정의 실현으로 이어질 줄 알았지만, 정작 이 영화는 그러한 스토리에 관심 없다.
안국진 감독이 '댓글부대'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기자 임상진이 쓰는 '기사'다. 인터넷 문화가 태동한 1990년대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이 주류가 된 현시점까지 보여주면서 여론을 주도하는 건 소수 미디어 매체가 아닌 불특정 대다수에게 넘어갔다는 걸 전한다. 그러면서 임상진의 피땀눈물로 완성된 기사의 영향력은 점점 잃어가고, 진실인지 거짓인지 불분명한 인터넷 글이 막강한 힘을 얻는 오늘날의 현주소를 조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정보들은 하나같이 '100% 팩트'라고 말하기 애매함의 연속이다. 임상진에게 만전의 여론 조작을 제보하는 찻탓캇(김동휘)의 주장이나 만전의 비리를 알린 중소기업 대표의 말, 만전이 진짜 여론을 조작했는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아니, 영화는 애초에 이 정보들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 어차피 중요한 건 정보의 사실 검증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지 여부다. 믿는다면 진짜로 받아들일 것이고, 의심하면 가짜로 보일 테니까.
그래서 '댓글부대'는 흥미롭다. 그동안 근현대사를 재해석하는 데 할애하는 반면 현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에는 조용했던 다른 한국영화들과 다르게 과감한 선택을 취했기 때문이다. 안국진 감독의 선택은 확실히 참신했고 그는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다만 '댓글부대'의 화법과 연출 방식까지 참신하다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장황한 내레이션과 대사들이 주류를 이루며 풍자하는 방식은 할리우드 대표 감독 중 하나인 아담 맥케이를 연상케 하나, 마치 말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플래시백이 잦다 보니 작품의 전개 속도도 빠르지 않아 지루함도 느껴진다. 반전이 등장했음에도 감흥이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댓글부대'에 출연한 배우들의 쓰임새도 아쉽다. 주연인 손석구를 비롯해 김성철(찡뻤킹 역), 김동휘, 홍경(팹택)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력과 존재감을 뽐냈던 배우들인데 유독 이 영화 내에선 크게 매력적이지 못하다. 아무래도 '기사'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캐릭터들이 희미해진 게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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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악독하고 잔인한 바이킹족을 모두 몰살시켜 버리는 전사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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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이름은] 정재헌 성우님의 타키 연기 드디어 공개!! 너의 이름은 명장면 황혼의 시간을 재연해봤습니다(feat. 황보, 라이언)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씨네마사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ine_massage/
EP.28
정재헌 성우님의 비공식(?) 타키 연기를 감상해봐요!!
*열악한 녹음 환경에서도 열연을 해주신 정재헌 성우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더빙 음성과 영상이 원본 감성 그대로 깔끔하게 살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더빙 영상에 깔린 배경음악으로 Firefly Piano님께서 커버 음악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곡 감사합니다^^
Firefly Piano 유튜브 채널 : ? http://bit.ly/SubscribeFireflyPiano
해당 커버곡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75Lxu...
출연
황보 라이언 정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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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 잡는 연쇄살인마 그가 돌아왔다? #덱스터뉴블러드 12월 30일, 티빙 독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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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주토피아 2> 메인 예고편
2배 더 넓고, 다채로워진 주토피아! 그곳에서 더 짜릿하고 거대해진 사건을 만난다! [주토피아 2] 메인 예고편 공개 11월, 극장에서 만나요💙 [주토피아 2] 11월 극장 대개봉 #디즈니 #주토피아2 #Zootopia2 #11월극장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