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1-04 11:35:10
시빌 워 : 분열의 시대 | 늦은 개봉일이 야속할 경고문
<시빌 워 : 분열의 시대>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지속된 끝에 역사상 두 번째로 내전 상태에 돌입한 미국. 연방에서 독립한 주들의 시민군과 연방군이 치열한 전투를 지속하는 가운데, 기자 ‘리(커스틴 던스트)’와 ‘조엘(와그너 모라)’, ‘새미(스티븐 핸더슨)’, 그리고 ‘제시(케일리 스페이니)’는 연방 정부의 수도 워싱턴 D.C.로 향한다. 내전 발발 후 일방적인 기자회견 외에는 속내를 밝힌 적 없는 '대통령'(닉 오퍼먼)을 인터뷰하기 위해서.
현실에 역사와 상상을 더한 경고문
2021년 1월 6일,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의회 인증일. 폭도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했다. 대선 패배 후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며 선거 결과를 바꾸려고. 폭동은 이내 진압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미국 의회가 1983년 미 의회의 상원 회의장에 폭탄 테러가 자행된 이후 40여 년만에, 그것도 자국민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오명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이는 민주주의 선도자로 자처하고, 다양성과 포용성의 국가라고 내세우던 미국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서 특히 충격적이었다. 부정선거 음모론과 대통령 선거 불복 선언, 그리고 QAnon발 딥 스테이트 음모론과 같은 낭설에 의해 파괴된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을 목격했으니까.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미국 사회가 상상도 못 했던 디스토피아에 가까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이하 <시빌 워>)는 이처럼 극심해지는 사회적 양극화에 역사적 맥락과 약간의 상상력을 덧붙였다. 종군기자의 시점에서 일부러 거리를 둔 채 미국의 두 번째 내전을 관찰하며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발생가능한 미래를 경고한다. 하지만 <시빌 워>의 야심과 의도는 기대에 비해 날카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영화보다 영화적인 현실이 <시빌 워>의 역할과 메시지를 이미 대신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전쟁
시작은 야심에 걸맞는다. TV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도 선포하는 듯이 결연하게 승전 발표를 진행한다. 중계를 지켜보는 리의 방 밖, 도시 한복판에서는 폭발음이 들리며 내전에 휩싸인 미국의 현실이 보인다. 뒤이어 내전에 휩싸인 미국이라는 상상력에 부합하는 이미지도 연달아 펼쳐진다. 뉴욕에서는 난민들이 구호물자에 의존하고, 구호물품을 배부할 때 또 한 번 폭탄 테러가 발생하는 식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 이후로 <시빌 워>는 중반부까지 내전 상황임을 알 수 있는 묘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정보가 부족하다. 내전의 구체적인 원인과 양상은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듣고 알아서 짜 맞춰야 한다. 일례로 새미가 대통령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질문을 본 뒤 권위주의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연방정부가 미국 연방수사국을 해체하고, 반정부 시위대를 공습하는 등 폭정을 저질렀음을 유추해야 한다.
이민자와 인종 문제가 내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암시도 마찬가지다. 워싱턴 D.C. 인근에서 제시는 흑인들을 집단 살해 중이던 군인에게 붙잡힌다. 이때 군인들은 그녀의 동행 중 홍콩 출신 기자만 골라 살해하고, 다른 이들은 반항하지 않는 한 위협만 한다. "포틀랜드의 마오주의자"라는 대사와 연결시키면 비로소 인종 차별과 이민자 문제, 미중 대립 등이 내전을 격화시켰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주인공 일행의 여정을 따라가면 캘리포니아 주와 텍사스 주를 주축으로 한 '서부군', 동남부 지역 19주가 뭉친 '플로리다 동맹'이 분리 독립해 연방군과 내전 중이라는 현황도 제한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즉, <시빌 워>는 전쟁 영화처럼 보이지만 정작 마지막까지 전쟁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자연히 초중반부까지는 내용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몰입을 방해하는 여정
흥미롭게도 <시빌 워>는 전쟁이 아닌 로드 트립에 나서면서 본색을 드러낸다. 종군 기자인 네 주인공은 백악관으로 향한다. 내전 발발 이후 대통령과의 첫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하지만 서부군이 먼저 워싱턴 D.C.와 백악관에 당도한 나머지 그들은 계획한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한다. 이는 여정의 목적을 맥거핀으로 이용하고, 그 대신 여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로드 무비 작법에 정확히 들어맞는 전개다.
리, 새미, 조엘, 제시의 여정은 그 자체로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선 내전의 참혹함을 강조한다. 언제 어디서나 시체가 등장하고, 민병대와 군인이 전투를 펼치며, 무고한 시민 사이에서 폭탄이 터지는 불안정한 상황이 끊이지 않는다.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미국 달러 대신 캐나다 달러로만 물건을 살 수 있고, 그저 고향이 홍콩이거나 피부색이 검은색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와 동시에 내전으로부터 거리를 두도록 유도한다. 제시는 베테랑 사진 기자이자 롤모델인 리로부터 전쟁 지역에서 취재하는 법을 배운다. 총격적인 중인 군인들과 동행하면서 가장 생생하고 정확한 현장의 순간을 포착하려 한다. 그런데 묘한 연출 때문에 이 과정은 내전이라는 맥락과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치열한 총격전에 우스꽝스러운 힙합 음악을 더해서 전투 중인 양 진영 어느 쪽에도 동조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아담 맥케이 감독의 <돈 룩 업> 같은 블랙 코미디를 의도하지도 않는다. 마지막까지 주요 장면 대부분은 퓰리처상을 수상해야 할 것 같은 흑백 보도사진 구도로 구성된다. 진중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관객을 철저히 관찰자 시점에 머물게 한다. 강렬한 음향 효과 덕분에 살 떨리는 현장감이 강조되고, 갈수록 전쟁 분위기가 짙어지는 후반부에서야 주인공들에게 몰입할 여지가 생겨난다.
영화라는 사진전
그러다 보니 <시빌 워>를 보다 보면 질문 하나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왜 하필 사진 기자 시점에서 내전을 다룰까?'라는 의문이다. 애초에 내전이라는 스펙터클 속에 관객을 빠트리고자 했다면, 극 중 등장한 인물 중 더 적합해 보이는 이들이 많다. 대통령이나 각 진영에 속한 군인들만 내세워도 내전을 충분히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전투 현장을 구체적으로 묘사할수록 내전의 참혹함도 더 직관적으로 전해질 수 있다.
하지만 사진 기자의 본질을 따져 본다면 <시빌 워>의 독특한 구성과 형식, 연출과 편집은 비로소 하나의 의도를 보여준다. 사진 기자는 언제나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 어떤 순간은 사진으로 남기고 어떤 순간은 흘려보낼지 필터링을 하는 게 그들의 업이다. 사건과 현장에 일부러 몰입도, 공감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누구보다 냉정하게 가치를 평가하고, 사진만으로 사건의 의미를 극대화하는 게 그들의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시빌 워>는 일종의 사진전 같다. 내전에 관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최소한의 설명만 붙는 보도 사진과 유사하다. 즉, 관객들이 미국의 두 번째 내전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즐기는 것은 애초에 목적이 아니다. 꼭 미국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내전으로 표출될 정도로 양극화된 사회적 갈등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면서 그 위험성을 곱씹게 만드는 게 본 의도인 셈이다.
이는 후반부 링컨 기념관 공방전, 워싱턴 D.C. 시가전, 백악관 공성전, 백악관 내부 전투를 <시카리오>나 <제로 다크 서티>처럼 영웅적 묘사 없이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내전이라는 혼란상을 장르 영화로서 영위하는 대신 가까운 미래에 대한 경고로 활용한다. 언제 내전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회적 갈등의 개인적, 공동체적 책임과 의무를 한 번쯤은 성찰하게 만드는 현실의 거울이나 다름없다.
사진전에 깃든 기자의 삶
제시와 리의 관계성은 사진전이라는 의도를 한 번 더 강조한다. 제시는 이제 막 현장에 발을 내디딘 사진기자다. 그녀는 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정 하나를 앞세워 워싱턴 D.C.행 여정에 동행한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주유소 장면이 대표적이다. 주유소 주인은 피범벅이 된 남성 둘을 매달아 놓고 그들을 죽일지 말지 제시에게 묻는다. 예상 못한 상황에 제시는 그대로 주유소 주인 앞에서 얼어붙는다.
베테랑 사진기자 리는 다르다. 주유소 주인을 두 남자 사이에 세운 후 차분히 사진을 찍는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제시에게 냉정히 종군기자의 덕목을 일러준다. 기자는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총알이 빗발치고 폭발이 난무한 전장이더라도 관찰자로서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못하겠으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이 충고에는 뼈가 있다.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 자체가 실수라는 말은 리의 실수 혹은 회한을 암시한다.
열정만 넘치는 제시와 냉정한 베테랑 리의 관계는 마지막 순간 다시 부각된다. 백악관 내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무리해서 사진 찍을 자세를 취한 제시. 그 순간 리는 몸을 던져 제시 대신 총알을 맞고, 제시는 쓰러지는 리를 연신 카메라에 담는다. 그녀의 희생 덕분에 제시는 대통령이 사살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포착한 사진기자가 된다.
이는 리의 조언에 담긴 회한을 유추할 수 있는 힌트다. 리 역시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선배를 잃었고, 그 순간을 후회하지만, 직업적 사명감 때문에 계속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그래서 본인을 닮은 제시를 만류하면서도 도와주고, 끝내 그녀를 위해 희생한 게 아닐까. 지친 자신을 대신해 제시에게 사명을 넘긴 것처럼도 보인다. 기자로서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지만, <시빌 워>라는 사진전에 사용될 사진을 누군가는 찍어야 하니까.
영화보다 발 빠른 현실
안타깝게도 <시빌 워>는 영화 외적인 이슈로 인한 평가절하를 피할 수 없다. 우선 흥행을 고려한 선택이겠지만, 로드 무비를 블록버스터 전쟁 영화로 포장한 포스터와 예고편이 아쉽다. 겉포장을 보고 커진 기대를 영화 본편이 충족하지 못하면 실망감은 배가되니까. 예고편과는 전혀 다른 전개와 결말 때문에 혹평을 피하지 못했던 <조커: 폴리 아 되>처럼. <시빌 워>가 그 다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더라도 놀랍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4월 개봉한 미국과 달리 12월을 선택한 국내 개봉일이 특히 불운하다. <시빌 워>는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의 폐해와 그로 인한 부정적인 미래를 묘사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내란이라는 모습으로 최악의 미래가 이미 현실에 당도해 버렸다. 경고문이 너무 늦게 도착한 셈이다. 그 결과 1달 전이었으면 폐부를 찔렀을 메시지의 위력은, 진중하게 쌓아 올린 완성도가 무색하게도, 현실의 벽 앞에서 반감되고 만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포장지와 타이밍이 야속할 냉철한 사진전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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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모든 엄마와 언니를 위한 기도
7/10
모녀 관계, 자매 관계는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 관계의 복잡한 역동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나는 장소 중 하나다. 이들은 서로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아들, 남자 형제는 ‘바깥 일’만 잘하면 가족의 자랑이 되지만 딸, 여자 형제는 여기에 더해 관계를 유지하는 물질적·감정적 노동까지 잘 수행해야만 인정받는다. 불리한 위치에서 불평등한 노동을 떠맡은 이들은 서로를 깊게 이해하지만, 서로를 닮기는 거부한다. 이 관계만 벗어나면 더 좋은 삶이 가능하다는 듯 자꾸 그 관계 밖으로 나가려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얽힌 혈연이라는 관계는 지겹도록 끈끈한 것이어서 이들을 쉽게 놔주지 않는다.
〈라인〉은 바로 이 모녀, 자매 관계를 다룬다. 영화는 딸 마르가레트가 엄마 크리스티나를 구타하기 위해 미친 듯이 쫓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엄마가 딸을 때리려는 게 아니다. 성인이 된 딸이 엄마를 때리려는 거다. 격렬한 난투극 끝에 두 사람 모두 큰 부상을 당하고(심지어 크리스티나는 장애를 얻는다), 마르가레트는 경찰로부터 석 달간 크리스티나에게 100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말라는 행정 명령을 받는다.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마리옹은 마르가레트의 막냇동생이자 크리스티나의 딸이다. 앳된 얼굴의 마리옹은 언니와 엄마를 모두 사랑한다. 둘 사이에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집 주위 100미터를 파란색 페인트로 동그랗게 칠해 ‘라인’을 그리기도 한다. 화가 많은 마르가레트와 예민한 크리스티나가 또다시 맞붙으면 두 사람과 함께하기가 영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모녀 관계와 자매 관계는 아슬아슬하게 길항하며 좁힐 듯 좁혀지지 않는다. 영화에는 마르가레트와 크리스티나가 왜 몸싸움을 벌였는지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유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늘 남자를 바꾸며 연애하느라 어린 마리옹에게 소홀한 크리스티나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쉽게 주먹다짐에 휘말리는 마르가레트가 모녀로 만났다면, 갈등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는 딸 셋을 출산한 이후 경력이 망가졌다. 앨범까지 발표한 촉망받는 피아노 연주자였던 그는 출산과 육아를 하며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피아노 강습으로 근근이 세 딸을 키웠다. 크리스티나는 딸을 사랑하지만 딸들의 존재로 자기 삶이 망가졌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영 어렵다. 크리스티나가 애인을 자주 갈아치우며 세 딸보다 그에게 더 많이 의존하는 데서도 그녀가 딸들에게 느끼는 거리감을 짐작할 수 있다. 크리스티나는 불안하고 예민하다. 반면 마르가레트는 어머니의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았으나 쉽게 분노하는 성격 때문에 동료들과 원활한 팀 활동을 이어가지 못한다. 크고 작은 싸움으로 작고 조용한 마을에서 늘 문제아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생 마리옹만큼은 끔찍이 아낀다. 매일 마리옹이 그려 놓은 선 밖을 서성이며 동생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마르가레트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런 둘을 모두 사랑하고자 하는 마리옹의 마음은 간절하다. 마리옹은 ‘유일한 친구’인 하나님에게 애타게 기도한다. “엄마와 언니를 동시에 사랑하고 싶어요.” 마르가레트가 파란 선을 넘지 못하도록(엄마와 새로운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엄격하게 감시하던 마리옹은 3개월의 분리 기간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나서 자신이 힘들게 그린 선을 지운다. 마침내 어색한 표정으로, 별일 없었다는 듯 대면하는 마르가레트와 크리스티나의 뒤에는 마리옹이 있다. 서로를 향한 애증으로 잔뜩 엉킨 크리스티나와 마르가레트가 모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건, 미성숙하고 불안한 어른을 보듬고자 온 힘을 다한 마리옹 덕분이다.
마리옹이 짊어진 책무는 그녀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다. 모녀/자매 관계의 복잡다단함은 당사자 간의 내밀한 소통과 더불어 그녀들의 실존 조건 역시 바뀌어야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다. 언젠가 어른이 될 마리옹이 부담에 짓눌리지 않기를, 자신이 품은 성숙함의 깊이를 더할 수 있기를, 엄마·언니와 조금은 더 편안히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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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시장’이라는 미장센을 구성한 여성 노동자들의 확대경
근로기준법, 평화시장, 전태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노동의 환경들엔 이미 알려진 노력들외에도 수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김정영, 이혁래 감독의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은 우리가 몰랐던 1970년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을 통해 들려준다.
‘굶는 것에 굶주렸던 사람이잖아요. 근데도 너 밥 먹을래 노동교실 갈래하면 노동교실 간다고 할 정도로…’
-신순애 인터뷰 중,
‘시다'가 하는 일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저 할 수 있어요’라고 대담하게 외치며 시작한 공장일은 이야기의 시발점이 된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일해야했던 소녀들은 청계피복노동조합과 노동 교실을 만난 후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된다. 그녀들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노조를 탄압하고자 정부는 노동 교실을 강제 폐쇄하고 그녀들은 정부에 맞선다. 노동 교실에 가는 것이 삶이었던 소녀들 중 일부는 뭣도 모른 채 대담하게 맞서지만 이내 빨갱이라는 누명과 협박에 도달한다.
1977년 9월 9일 피고인으로 소환되기 직전 공장으로부터의 일시적 탈주에 대해, ‘전야제였지'라며 회상하는 바닷가 시퀀스는 파도치는 바다 앞에 서있는 세 인물의 풀샷-클로즈업샷-풀샷-클로즈업샷을 반복한다. 마치 이 프레임을 완성시킬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모습을 확대경으로 확대하는 것처럼 1970년대 ‘평화시장’이라는 미쟝센을 구성한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확대하는 듯 보여준다.
이 과거는 이들에게 어떤 기억이었을까.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기억, 억울하고 아픈 기억이라 자식에게도 선뜻 말할 수 없었다는 임미경씨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인터뷰하는 것조차 망설여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요즘은 아무도 남들에게 신경쓰지 않아'라는 딸의 말 덕분에 출연을 결심하게 된다. 알려지고 싶지 않다는 임미경씨의 마음에도 이 이야기가 널리널리 멀리까지 닿기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마음이 생길뿐이다.
어두운 방, 대화를 하듯 인터뷰하는 인물들 뒤로 보이는 스크린. 투영된 자신들의 모습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등장인물들은 어느순간부터 투영된 과거의 자신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과거의 10대 자신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크고 많은 노력에도 기록되지 못해 지워진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 중 70년대를 이뤄낸 여성들의 캐릭터, 아카이브와 연결된 증언, 연대까지 완벽한 서사는 2021년의 중요한 기록물이 된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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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엄마를 부르는 숲, 가족이 되는 순간
Director
Jerome YOO
Cast
JIN Sein, KIM Jae-hyun, NAM Da-nu, KANG Sangbum, Jedd SHARP, Candyce WEIR, Morgan DERERA
시놉시스
1991년 여름, 슬픔에 잠긴 어느 한국인 가족이 야생 들개의 침입으로 고초를 겪고 있는 캐나다의 대초원으로 이민을 간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면서 이들은 가족 사이의 깨져버린 유대감과도 직면해야 한다.
들어가며,
이민 2세대인 제롬유 감독의 영화는 캐나다를 배경으로 한 한 이민가정의 생활을 독특한 스토리텔링과 화면구성 방식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God, Cowboy, Blond라는 부제를 붙은 세 파트에선 아버지(광선), 아들(하준), 딸(하나)이 돌아가며 주인공이 된다. 같은 집, 같은 시간에 살고 있지만 진실의 층위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감각하는 이민생활의 최우선 문제 역시 다르게 인식된다. 한국에 정주하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선 ‘이민’이라는 한 단어로 퉁쳐지는 문제가 그를 받아들이는 각 세대마다 이토록 섬세하고 다양한 양상을 가질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된 영화이기도 했다.
잡종에 대해서,
표면적으로 잡종의 의미는 이것저것이 섞여 순종이 아닌 어떤 종류를 말한다. 모국을 떠나 타국인이 되어야 하는 이민세대의 고충을 뜻하는 뜻이기도 하겠으나 <잡종>은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을 ‘집을 잃어버린 떠돌이 개’로 확장시키며 인물들이 가진 결핍의 구심점을 만든다.
집을 잃어버린 채 마을과 숲을 오가며 사는 이들 들개는 어느 경계에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자로 해석된다. 이것은 한복을 입고 매니큐어를 칠한 한나, 영어를 쓰고 금발의 친구들과 놀지만 엄마의 노래를 듣는 하준, 땅주인을 위해 들개들을 잡을 때 한국식 위령제를 지내는 광선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제목의 필연성을 생각케 한다.
#1. GOD : 광선은 자식들에게 자꾸 강해지라고 한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바다를 건너왔다. 먹고 살기 위해 들개를 잡아 죽이는 사냥꾼이 되었다. 그들 가족에게 살 곳을 제공해준 마을의 목사 스캇은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유산을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들개들을 죽이고자한다. 광선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스킬로 들개를 다루어 단번에 스캇의 팀에 들어가게 되지만 밤이 되면 자신이 개들의 울음소리에 괴로워한다.
사냥을 망설이는 큰아들에게 ‘빨리 죽여주는 게 걔한테 도움되는거야!’라고 소리치지만 사실 그는 사냥을 시작할 때마다 나무에 오색실을 묶어두고 산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사람이다. 먹고 살기 위해 짐승을 물어뜯는 들개와 자신이 다를 것 없다는 죄책감이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이다.
#2. COWBOY : 하준은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반면 하준은 죽은 들개의 사체 위에 들꽃을 올려주는 마음을 가진 소년이다. 그러니 광선이 하준에게 거칠게 대하는 이유는 아마 그 모습에서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보이는 것은 그의 고통이 아니다. 그저 소리치거나 고성방가를 하는 무서운 아버지일 뿐.
하준은 노아를 비롯한 캐나다인 친구들인과 어울릴 땐 ‘그들’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여동생 하나와 같이 있을 땐 여전히 ‘집’에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노아가 친구 이상으로 느껴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하준이 원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아버지와 싸워도 돌아오게 되는 원점은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극과 극을 향해 달리던 아버지와 아들은 상실의 공감대로 연결된다. 그들은 이제 하나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려야 한다.
#3. BLONDE : 그리고 가족을 하나로 모으는 ‘하나’.
하나는 비행기 100개를 먹으면 소원을 빌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을 믿고 착실하게 비행기를 찾아다니는 소녀다. 목사의 부인인 로라는 딸이 없는 아쉬움을 하나에게 투영하며 엄마처럼 잘해주려한다. 옆자리, 생일파티, 기도문화, 선물, 매니큐어까지 하나는 아버지가 오빠가 자리를 비운 빈 집에 혼자 남아 엄마를 그리워 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아줄 여유가 있는 가족은 없다. 로라처럼 노랗게 머리를 탈색하려던 하나는 불현듯 숲으로 뛰쳐들어간다.
철없는 아이의 가출이라 생각했던 광선은 엄마가 올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하나를 보며 말문을 잃는다.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그리움을 두려움없이 꺼내버리는 천진난만함에 결국 무너지고 만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끈을 잡고 있던 가족은 다시 조금 가까워지게 된다.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엄마’라는 단어
하나가 숲 속에서 엄마를 부르고 광선이 (돌아올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함께 아내를 부르는 장면은 꼭 초혼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성인인 아버지와 아들이 각자의 이슈로 미루어두었으나 사실 가장 선행되어야 했던 ‘애도’는 막내딸 하나의 챕터에 와서야 이루어지게 된다. 여담이지만 이민가족들은 전통문화에 대한 보수성과 현지 문화에 대한 개방성이 묘하게 섞이게 되는데 높은 확률로 보수성의 일면은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발현되는 것 같다. 아버지는 아버지인데 엄마는 엄마가 되는 사례도 꽤 많은 것 같다. 현실의 사례에서 채택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이 호칭의 차이가 이 가족이 가진 거리감과 상실감의 깊이를 유추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섬세한 포인트였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한국식 요리를 해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한나가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단순히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그리움만이 아니라 어머니가 이들 가족의 구심점으로서 가족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어머니가 사라진 뒤 심화 된 갈등은 이들 각자의 정신적 위기로 확장되어 서로가 모르는 시간에 존재론적 위기를 겪게 만들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잡종이란 뿌리를 잃어버린 것이라는 해석으로 재정의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비단 한 이민가족의 개인사적 위기를 그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불안한 시대를 ‘영혼의 집’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로 확장된다.
긴 방황 끝에 같은 그리움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 세 명의 가족이 들개의 울음소리로 뒤늦을 애도를 함께 하는 장면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영혼의 집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샤론 최와 함께하는 <영특한 대화>
<잡종>은 사실 각각 부제를 붙인 세 편의 다른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인물 각자가 마주하고 있는 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특한 클래스>의 모더레이터로 참석한 샤론최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균질’한 서사인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영화가 담고자 한 이민세대의 진짜 고충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는 그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녀의 모더레이팅으로 영화가 사용한 각기 다른 화면비와 색감, 음악의 테마가 이 불균질과 충돌을 다루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었다. <영특핸 대화>에서는 디아스포라와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 외에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통역한 통역사로 명성을 얻었지만 제롬유 감독과 시네마 스쿨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신인영화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준비중인 샤론최의 커리어패스와 작업 근황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Schedule in JIFF
2025.05.02.(금) 17:30 CGV전주고사 1관
2025.05.03.(토) 17:00 CGV전주고사 1관
2025.05.07.(수) 17:00 CGV전주고사 2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4.30 ~ 5.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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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소울> : 삶의 목적을 향해 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혜안
소울 (Soul, 2020)
* 본 리뷰는 영화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과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0년 6월에 개봉해야 했지만 코로나로 개봉이 한참 밀려 이제서야 만나본 소울입니다.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을 저도 너무 좋아해서 요 며칠 동안 “소울”을 기다리느라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큰 감동을 받은 이력이 있어서, 소재와 일부(유세미나와 같은) 그림체가 인사이드 아웃과 결을 같이 하는 것 같았기에 많이 기대했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소울은 인사이드 아웃과는 다른 결로, 소울만의 메시지를 전해옵니다.
뉴욕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음악선생님인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는 진정한 음악가를 꿈꾸는 재즈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렇기에 학교 측의 안정된 정규직 제안도 그다지 기쁘지 않습니다. 언젠가 유명 밴드와 함께 공연을 하고, 음악가로서의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꿈꾸기 때문이죠. 정규직 제안을 받은 날, 조는 제자의 도움으로 바라고 바라던 유명 밴드와의 공연의 기회를 얻게 되죠. 너무나도 행복한 그는 흥분과 행복을 감추지 못하며 거리를 걷다가 그만 맨홀 속으로 빠지 게 됩니다. 그리고 영혼들의 세상 속에서 죽음의 문턱으로 넘어가는 그 길목 앞에 서있게 됩니다.
그렇지만 , 유명 밴드와의 공연을 앞두고 그렇게 죽을 수 없었던 조는 필사의 몸부림 끝에 경로를 이탈하여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곳은 “유세미나”로 불리는데 사람이 태어나기 전 각 영혼들의 고유의 성격을 만들어주는 곳이죠. 그리고 영혼들은 성격과 함께 열정을 태우는 무언가(=스파크)를 발견해야 “지구 통행권”을 받아서 지구로 갈 수 있습니다. 조는 그곳에서 마지막 단계인 스파크를 찾지 못한 영혼 22(티나 페이)를 만나게 됩니다. 테레 사 수녀, 무하마드 알리, 간디 등등 수많은 영혼들이 22의 멘토가 되어 그녀를 지구로 보내려 하였으나, 22는 지구에서의 삶을 원치 않습니다. 조는 22 멘토로서 그녀의 스파크를 찾아준 후 지구 통행권을 대신 받아 자신의 몸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엉뚱하게도 22가 지구에 있는 조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조의 병실에 있던 치유를 돕는 고양이의 몸속으로 조의 영혼이 바뀌어 들어가게 되죠. 밴드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바뀐 영혼을 제자리 로 돌려놓으려는 조와 22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삶의 목적,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
삶과 감정, 에피소드 끝에 이르러 느끼는 깨달음과 감동은 픽사가 가장 잘하는 분야인 것 같습니다. 특히나 그것이 아주 정점을 이루었던 작품은 2015년 개봉했던 인사이드 아웃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오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사람을 움직이는 5개의 감정을 소재로 다루었고 살면서 부정적으로만 느껴지는 “슬픔”을 꼭 필요한 감정으로 조명하여 슬픔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 놓았죠. 예고편과 포스터, 사람의 내면에서 출발하는 소재에서 느껴지는 풍으로 소울과 인사이드 아웃을 유사하게 바라볼 수 있지만, 소울의 지향점은 인사이드 아웃과는 조금 다릅니다. 소울의 지향점은 각 개인의 고유한 성격과 열정에서 시작하여 끝에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맞춰져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의 목적”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내가 태어난 이유, 내가 끝내 이루고자 하는 것, 되고 싶은 것, 바라는 모습 등 저 멀리 “목적”이란 결승선을 정해 놓고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그런데 목적을 위해서만 달려가다 보면 나를 지나쳐가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풍경들을 놓치게 되죠. 나의 지금(현재)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목적을 위해 소중한 시간들을 놓쳐버리게 됩니다. 조의 캐릭터가 그런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유명 밴드의 연주자, 성공한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 만을 향해 가는 조는 현실에서의 삶을 전혀 즐기지 못하고 있죠. 꿈을 이루지 못한 일상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소울은 삶의 목적(꿈)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의 날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홀대하는 삶의 태도를 조명합니다.
또한 , 그 삶의 목적에 대한 시선도 조금은 바꿔 보길 권유하는 것 같습니다. 조가 자주 찾는 이발관의 이발사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이발사란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발사는 행복합니다. 그는 “누구나 위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특별한 사람이 되거나 꿈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은 누구나 가져본 감정일 텐데요, 그것을 조금 내려놓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지금을 이어가는 것도 꿈을 이루는 것 못지않은 행복이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22를 통해 어쩌면 “삶의 목적”이란 것이 그리 거창하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까지 전해줍니다. 내가 의지대로 걷고, 맛있는 걸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저 떨어지는 단풍나무 씨앗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 “삶의 목적”이 일상생활에서 내가 경험하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우리는 매일 그 목적을 이루고 내 삶을 마음껏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전통에 따라서 생활해왔으며 인생의 루트가 어느 정도 정해진 삶을 꾸려 나가던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우리들의 삶은 너무나도 많은 정보들과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들 속에서 많은 욕망과 갈망, 좌절이 충돌합니다. 특히, 매일 업로드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면서 삶의 목적을 상향 조정하고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을 주는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소울은 조와 영혼 22를 통해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혜안을 건넵니다.
멋진 캐릭터의 탄생
세상의 흐름이 계속 바뀌는 만큼, 디즈니 픽사 또한 그 물결에 탑승하여 전진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디즈니는 <인어공주>의 실사판에서 아프리카계 아메리칸인 할리 베일리를 낙점했었죠. 디즈니 픽사는 이번엔 흑인들의 깊은 소울에서 탄생한 재즈라는 장르를 소재로 하여 흑인 캐릭터인 조 가드너를 탄생시켰습니다.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들에 대해 일부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내보이기도 한다는데, 소울은 재즈라는 장르를 통해 논리적이면 서도 필연적으로 흑인인 캐릭터를 내세운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조합은 논란의 “논”도 없는 조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 조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들이 아프리카계 아메리칸이고, 그들의 말투, 목소리, 억양, 행동 등이 매우 디테일하고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위해 아프리카계 아메리칸인 사람들에게서 많은 부분 컨설팅을 받아서 이 캐릭터들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몇 가지 이야기들
* 사운드트랙 : 영화가 주는 즐거움은 사운드트랙에도 있습니다. 저도 영화를 통해서 재즈란 장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참 묘한 즐거움을 주는 장르인 것 같습니다. 소울에서도 <Born to Play>, <It’s All Right>, <Feel Soul Good> 등 다양한 사운드트랙이 좋습니다.
* 영화 속 한국어 : 영화 속에 한국어가 등장합니다. 2번 정도 본 것 같습니다.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눈에 띄는 한국어 음식점의 간판과 내 바지가 어디 있냐고 찾는 목소리가 있었죠. 목소리는 픽사 애니메이터인 김재형 님의 직장 동료분의 아이디어에서 착안되었고, 목소리 또한 그 동료분의 목소리라고 합니다. 픽사에는 20여 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일하고 계신다네요. 디즈니 픽사의 작품들은 한국인들에게 특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그에 대한 픽사의 마케팅 전략과 보답이 만들어낸 장면이라 생각됩니다. ?
* 개봉 이야기 : 코로나로 개봉이 계속 미뤄져서 이제서야 개봉했고, 미국에서는 디즈니 플러스로 개봉되었다고 합니다.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하면 보실 수 있겠네요.
* 쿠키 영상 :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작고 귀여운 영혼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그 덕에 지루하지 않게 엔딩크레딧을 모두 볼 수 있었고 그렇게 쭉 보다 보면 맨 마지막에 무엇인가 하나 더 보실 수 있습니다. (22가 어디에서 어떤 성향으로 태어났는지 보고 싶었는데, 그건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진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호평 탓인지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고, 마음을 쾅 울리는 면에선 인사이드 아웃에는 조금 덜 미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지의 분명한 방향성과 의도는 꿋꿋하게 나아갑니다.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스토리텔링하고, 마지막에 이르러 진흙 속에 파묻혔던 진주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갖춘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파장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엔딩크레딧의 이름들이 한 명 한 명 참 대단한 듯 느껴집니다 . 그리고 그들의 애니메이션은 이제 더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어른들을 향해 방향을 바꾼 것 같습니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이제 더 급하게 돌봐줘야 할 이들이 "어른"이 되었기에 그 들의 스토리텔링도 그렇게 변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관적 평점 : ★★★★
- 픽사는 자신들이 제일 잘하는 것을 늘 제일 잘한다. 언제나 노력하는 1등.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정보 <소울> 스틸 컷
* 본 콘텐츠는 네이버 블로거 그린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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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네의 딜레마
"지네는 너무나 행복했어요.
두꺼비가 장난으로 이렇게 말하기 전까지는요.
‘지네야, 지네야, 어느 발 다음에 어느 발을 내딛는 거니?’
지네는 자기도 너무 궁금해서 궁리하다가
도랑에 빠지고 말았대요.
어떻게 걸어야 할지 몰라 발이 그만 꼬여버렸대요."
캐서린 크래스터(Catherine Craster)의 동시에서 유래된 ‘지네의 딜레마(The Centipede’s Dilemma)’는, 본능적인 행동을 억지로 의식하려 할 때 오히려 그 행위가 마비된다는 역설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심리학적 개념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퀴어(Queer, 2024)’는 이 개념을 한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까지 끌고 들어간다. 영화 속 인물 ‘리’는 곧 지네다.
‘퀴어’는 한 인간이 삶과 나이, 정체성, 그리고 사랑 앞에서 어떻게 마비되고 무너져 가는지를 보여주는 심리적 자화상이다. 겉으로 보기엔, 중년의 남성 리가 젊은 남자 유진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갈망과 집착 사이에서 스스로를 소진해 가는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그 서사 아래에는 훨씬 더 은유적이고 복잡한 감정의 회로가 숨어 있다.
리에게 있어 ‘퀴어’라는 정체성은 더 이상 탐색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이미 그것을 자각하고 받아들인 인물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찾아온다. 리는 이제 중년의 퀴어로서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 나이 든 자신이 여전히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오늘날 ‘퀴어’라는 단어는 성소수자를 아우르는 단어로 기능하지만, 그 단어는 본래 ‘기묘한’, ‘괴상한’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었다. 리는 그 어두운 잔영 속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인정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에는 너무 낡았고, 너무 망가졌다고 느낀다.
그런 리의 내면은 지네의 딜레마와 정확히 닮았다. 한때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감정이, 이제는 “이렇게 사랑해도 될까?”, “지금의 나는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을까?” 같은 자기의식과 분석 속에서 점점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리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해석하고, 조각내고, 재구성하지만, 결국 그 모든 과정이 ‘사랑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로 연결된다. 감정은 흐르지 않고, 막히고, 엉킨다. 그 빈틈을 그는 ‘야헤(Yagé)’라는 약초로 메우려 한다. 영화 속 야헤는 텔레파시 능력을 강화해 감정을 타인에게 직접 전이할 수 있게 해준다는 환상의 약초다. 리는 단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마약에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야헤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고자 한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의 강도, 몸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존재의 고통을, 오직 그 약만이 완전하게 전이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곧 자기 존재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런 리 앞에 나타나는 유진은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마치 리의 젊은 시절이 구현된 하나의 형상, 혹은 환영처럼 다가온다. 유진은 자유롭고 충동적이며, 자신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젊은 리가 가졌던 충동성, 찬란함, 자연스러움의 잔영이자, 이제는 사라진 리의 가능성 그 자체다. 그래서 리는 유진에게 단순한 애정을 넘어 시간에 대한 욕망을 투사한다. 유진을 통해 리는 다시 젊어지고 싶어 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고, 살아 있다고 느끼고 싶다. 그러나 사랑은 그런 방식으로 복원되지 않는다. 유진은 리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리는 점점 더 집착과 고립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잃어버린 자아를 타인에게 덧씌우고, 그를 통해 구원받으려는 이 고통스러운 시도는, 결국 리 자신을 파괴하는 감정의 회로로 귀결된다.
이 파괴의 회로는 영화 후반부, 시각적 상징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다. 자기 꼬리를 물고 도는 ‘우로보로스(uroboros)’는 끝없는 감정의 순환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은 선택되지 못한 가능성과 소멸을, 미니어처 인형의 집 안에 누운 노년의 리는 리가 끝없이 반복 재현해 온 자기 세계의 종말을 암시한다. 영화는 이러한 상징을 통해 말한다. 리의 세계는 무한히 복제된 자아 속에 갇혀 있으며, 그 안에서 그는 더 이상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인물이다. 이러한 폐쇄성과 내면화는 영화의 물리적 제작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실제 멕시코가 아닌, 이탈리아의 세트장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그의 감정이 투사된 심리적 무대임을 암시한다. 리는 외부 세계로 나아가지 못한 채, 자신이 만들어낸 내면의 공간 안에 갇혀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는 사랑을 해석하려다 사랑 자체를 잃어버린 사람이 된다.
결국 ‘퀴어’는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너무 깊이 들여다본 나머지, 감정이라는 생의 본능을 상실해 가는 이야기다. 리의 고독은 낯설지 않다. 그는 나이 들고, 망가져 간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그래서 그는 사랑이라는 굴레에 매달려 자신을 정당화하고 싶지만, 끝내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마모되어 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보며, 조용히 되묻는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너무 많이 들여다보느라 지금 ‘살아가는 일’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리의 파국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수 있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 ‘지네’가 되기도 한다.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힘과 사랑받고 싶어하는 힘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것입니다.” 때로 그 감정은 설명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으며, 형태를 갖추지도 않는다. 그러나 감정은 느끼는 것이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며, 사랑은 이유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의심하지 말고, 분석하지 말고, 지네가 되지 말자. 그저 그 마음이 흐르는 대로 한 번쯤은 그냥 느껴보자.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사진 출처 : hebdenbridgepicture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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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에 관한 마지막
INTRODUCTION.
“우리는 여왕을 사랑하며 자랐습니다” -비틀즈 폴 매카트니-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왕좌에 머무른 퀸 엘리자베스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다.
POINT.
✔️ 시대의 아이콘,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풋티지를 실컷 볼 수 있는 영화
✔️ 영국 왕실에 관심 혹은 지식이 있다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영화
✔️ 여왕의 재위 기간이 워낙 길다 보니, 윈스턴 처칠부터 폴 매카트니, 이건희, 마릴린 먼로까지 다양한 얼굴이 등장합니다.
✔️ 2021년 사망한 로저 미첼 감독의 마지막 영화
시대의 아이콘, 아주 독특하게 자리한
이 영화는 눈을 감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진으로 시작한다. 늘 눈 뜬 모습만 보았던, 아주 오랫동안 삶 전체가 공적 영역에 드러나 있던 사람의 눈 감은 모습은 낯설다. 영화는 이내 엘리자베스 여왕을 닮은 풋티지 영상을 성실하게 수집해 보여준다. 편집점이 짤막하게 구성되어 있고 음악을 현란하게 써서, 여러 편의 뮤직비디오를 연달아 보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일대기적으로 구성하기보다는,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싶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마치 원석을 다양한 면으로 커팅한 것처럼, 여왕 생애의 구석구석을 비추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주 독특한 인물이다. 물론 여왕이라는 직함 자체가 그렇지만, '군주'라는 단어 자체의 아우라가 많이 사라진 시대에, 아이콘으로 기능하면서도 역할을 톡톡히 해내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드레스를 입고 손을 흔들며 웃어 보이는 역할도 하고, 군복을 입고 비행기 옆에 서 있거나 총을 쏘는 모습으로도 남았다. 너무 앳되어 보이는 비틀즈에게 훈장을 건넸던 역할도, 윈스턴 처칠부터 블레어, 보리스 존슨까지 다양한 총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다.
동시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운운하던 이전의 시대에 작별을 고한 후, 영연방(Commonwealth)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다양한 국가를 순방하는 것 또한 그의 역할이었다. 구한말에 식민지로 전락하기 전까지의 역사에서 항상 일본보다 선진 문화 국가였던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지만, 많은 나라들이 여러 실리적인 혹은 상징적인 이유로 영연방이라는 국제기구에 소속을 남겨두었다.
보고 있노라면 그가 '여'왕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데, 부드럽고 우아한 미소를 짓는 그 얼굴을 보면서 다양한 국가들이 어떤 이유로든 영연방이라는 국제기구에 소속을 두기로 한 데에는 그의 아우라와 영향력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겠다 싶은 것이다. 식민지배라는 공격적이고 비인간적인 제도 이후에, 남성의 얼굴을 하고 오는 지도자보다는 분명 좋은 선택지였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그의 선택은 아니었다. 에드워드 8세가 사랑을 위해 왕위를 포기하면서 동생이 갑작스럽게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동생 즉 조지 6세 또한 "너무 일찍"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엘리자베스 또한 마땅히 준비할 만한 기간을 갖지 못한 채로 어느 날 여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최초의 대관식을 포함하여, 여왕의 생애가 선형적이지 않은 형태로 영화 속에서 흩날린다. 영국 왕실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느낄 수 있다. 71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를. 그리고 그 내내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이콘으로서 얼마나 건재했는지를.
시대의 아이콘, 이제는 끝난 시간의
그러나 여왕의 시대는 끝났다. 영연방을 순회하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은 분명 우아하고 그의 정치적 리더십을 느낄 수 있지만, 식민지였던 땅의 사람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춤을 추며 여왕을 맞이하는 장면 위로 "down on my knees(무릎을 꿇고)"라는 곡이 흘러나오는 것은, 식민지 출신으로서 영 편치 않다. 독일 폭격에 대해, 독일을 방문했던 여왕에게 계란이 던져지는 모습 또한 풋티지에서 빼먹지 않았다.
전쟁에 선은 없으니까. 히틀러가 절대악이었다면 문제는 간단했겠지만, 그렇지 않았으니까. 입헌 군주제의 여왕으로서 엘리자베스가 자기 역량을 아무리 발휘하고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다 한들, 전쟁의 시기를 보낸 입장에서 그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의 뛰어난 역량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시대는 이제 달라졌다. 그런 의도가 담긴 걸까. 이 영화에는 여왕에 대한 경의와 인정이 아닌 마음들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종종 있었다. 대관식 장면 위로 흐르는 "hero", 심지어 데이비드 보위 원곡 버전도 아닌 것. 여왕이 걷는 장면과 뒤섞여 등장하는 비너스 상들. 뼈 있는 농담을 의도했겠으나 실없이 느껴지는 선택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가십으로 소비되어 더욱 안타까운 그의 자식 농사 이야기도 펼쳐진다. 다이애나에 대해서는 짧게 짚고 넘어가는 정도이지만, 찰스 3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엘리자베스 2세가 수행한 아이콘으로서의 역할을 그에게 기대하는 사람도 없었겠지만, 역시나 기대할 수 없음이 확인된다. 그럴수록 엘리자베스 2세의 역량이 빛나기는 했구나 싶다.
영화 <스펜서>까지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엘리자베스 2세의 공적 인생에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으로 수렴되는 일련의 상황들은 분명 치명적이었다. 늘 이 부분만 잘라 다이애나 혹은 찰스, 심지어 카밀라에 더 주목하여 이야기되던 것을 엘리자베스의 공적 인생을 쭉 연결한 지점에서 보는 건 독특한 경험이었다.
마지막에 관한 마지막
늘 정해진 원칙에 따라야 하는 엄숙한 왕실의 모습이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 이후의 시대로 점차 친근한 모습도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 또한 시대의 요청에 응한 것이었다. 경마 결과를 이야기하며 해사하게 웃는 모습, <피터팬>의 저자인 제임스 매튜 배리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을 회상하는 모습을 보며 여왕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고, 긴 세월을 산 사람이었음을 동시에 느낀다.
역량이 뛰어난 시대의 아이콘인 동시에 한 인간. 이제 그 시대는 갔고, 인간도 떠났다. 찰스 3세는 개인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들로 엘리자베스 2세의 반만큼도 사랑받기 어려워 보이지만, 설령 그가 아주 매력적으로 자기 역할을 수행했다 한들 시대가 이미 가버렸으니 엘리자베스 2세 같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미 가버린 시간의 빈 자리를, 이미 우리 곁을 떠난 감독의 손길로, 짧고 급한 호흡으로 뒤척여 보는 것은, 마지막에 관한 마지막이라는 관점에서, 꽤나 씁쓸한 경험이었다. 지금보다 수십 년 후에 더 유의미해질 기록이 아닐까.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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