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1-09 18:55:12
토대를 잃지 않기
영화 <총을 든 스님> 리뷰
SYNOPSIS.
2006년의 부탄 왕국. 마침내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도착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민주주의다. 국왕이 자진해서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민주주의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정국가 부탄에서 역사상 첫 번째 선거가 시작될 예정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투표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당국은 모의 선거를 마련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파란당, 빨간당, 노란당 선거로 인해 서로 반목하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 선거 감독관은 마을의 존경을 받는 큰 스님이 총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는데...
POINT.
✔️ 건재한 왕이 직접 전제 왕권을 내려놓고 도입한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실화. "투표가 뭔데요? 우린 폐하가 좋은데?" 상태의 국민들 실화. 거기서 스님이 갑자기 총을 찾는다? 부탄이기에 가능한 매력적 시놉시스
✔️ 도르지 감독에게는 부탄 관광청이 상 줘야 하지 않을까? (어쩐지 부탄은 안 줄 것 같지만) 아름답게 펼쳐지는 부탄의 풍광에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이유.
✔️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 당연했던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묻는, 이 시국에 알맞은 작품
✔️ 중간중간 짤막하게 나오는 아이들이 그야말로 신스틸러.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 새해 당신의 마음을 맑게 해줄 작품. 1월 1일에 개봉했습니다!

행복한 부탄에 찾아온 변화
부탄은 인도와 티베트 사이에 위치한 아주 작은 나라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통 '국민행복지수'를 중요시하는 나라라고 오래 전 교과서 한귀퉁이에 소개된, 그래서 어쩐지 샴발라 같은 낙원의 이미지로 막연하게 그려질 만큼 잘 모르는 나라다. 나는 부탄 영화감독도 딱 한 명밖에 모른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몇 년 전 <교실 안의 야크>로 우리를 찾아왔던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이다.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을 통해 우리에게 그려진 부탄은, 우리가 기존에 알던 부탄의 이미지처럼 맑고 청량했다. 루테인과 지아잔틴 섭취는 안 해도 될 것 같은,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풍경과 거기 기대 사는 사람들의 면면을 부드럽게 그리기 때문이다. <교실 안의 야크>만 해도 야심만만하고 젊은 교사가 산간벽지 학교로 부임해 가면서 겪는 일들을 사랑스럽게 담았다. 그런데 차기작 제목에 총이 들어간다고요. 그것도 평화와 비폭력의 상징인 스님과 함께? 궁금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부탄은 거대한 변화의 기로에 놓여 있다. 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당연스럽게 왕이 갖던 권력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과연 선출은 무엇이고 투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 선거 사무원들은 전세계가 주목할 상황 앞에 그럴 듯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자 지역을 두루 다니며 사람들에게 선거의 개념을 알리고 모의 선거를 치르고자 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넌센스한 상황들이 계속 펼쳐진다. 애초에 행정적인 이름과 생일이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선거 명부를 작성하는 것부터가 일이다. 국왕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이 사람들을 크게 옭아맨다고 느끼지 않았기에, 그 권력을 억지로 쪼개 경쟁을 붙여야 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이 시간을 통해 무언가를 도모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고, 투표를 하거나 말거나 자기 뱃속을 불리는 게 중요한 사람도 있다.

민주주의가 뭔데요?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큰스님의 "총을 구해 오라"는 발언일 것이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결합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아무래도 시국이 시국이어서 그런가 우리는 좀더 세속적인 상상을 하게 되지만... 흠흠. 아무튼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영화 속 인물들이 보이는 각양각색의 반응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피를 흘리며 민주주의를 여기까지 이루었고, 지금도 민주주의의 삼권 분립과 상호 견제의 원리를 통해 우리를 지키는 중인 한국 사회는 영화 속 부탄과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수많은 질문들이 우리에게도 유효타로 날아든다.
정치적인 의견 차이가 배신처럼 간주된다면, 거기서 우리는 어떻게 건강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제도를 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제도 그 이상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다수가 원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남들이 목숨 걸고 갈구한 것이라면 여기서도 필요한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행복으로 가는 길은, 우리 손으로 어떻게 그려가야 할까?

자본주의도 통역이 되나요?
이 영화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묵직한 질문들을, 하필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이런 때에 숙고하고 있노라면... 이 영화가 민주주의만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민주주의의 좋은 짝, 자본주의다. 영화에는 총을 둘러싼 대화가 영어-부탄어 통역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 문장들은 단순히 말뜻을 옮기는 그 이상의 기능을 한다. 통역자 '밴지'는 단순하게 말을 비슷한 단어로 옮기는 게 아니라, 표현과 그 의도까지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분칠을 해서 성실하고 매끄럽게 내어 놓는다.
자본주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언어와 어찌 보면 그 대척점 비슷한 곳에 가 있는 언어를 옮기는 것은, 발화된 말 뒤에 있는 마음까지도 적절히 분칠을 해서 내어 놓아야만 하는 일이 된다. 밴지가 통역한 것은 영어와 부탄어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부탄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적절히 양념을 치고 거짓도 보태어, 화자와 청자 사이에 약간씩 괴리가 발생한다.
이 괴리는 작지만 흥미로웠는데, (이 영화에서는 작은 수준으로만 등장하지만) 이러한 괴리가 자라고 자라면 우리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일부 정치인들의 망언이 되는 거구나 싶어서였다. 이미 죽어 있는 마음의 시체 비슷한 것에 분칠을 해봤자 악취를 가릴 수 없다. 가치를 상실한 말은 언어의 거죽을 뒤집어써도 언어를 파괴할 뿐이다. 아무리 주절주절 단어를 끌어 모아 가려봐도 기표 뒤의 기의는 가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작지만 명확히 드러난다.

이 영화는 묻는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두 제도. 잘 발휘될 때의 장점과 잘못 발휘될 때의 해악도 명확한 이 제도 앞에서, 시스템 이면의 가치를 잊지는 않았는지, 잃지는 않았는지. 제도 이전에 우리 마음의 토대에 놓여야 할 것은 무엇인지, 마치 부처님의 미소처럼 순하고 부드러운 양상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영화의 결말에서는 어쩐지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이라는 백석의 시구가 떠올랐다. 우리 같이 쪼이고 싶은, 따뜻한 모닥불 같은 영화였다.
Relative contents
-
- 사랑할 때 나는 나에게 최악의 사람이 된다.
개인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업무 특성상 국내외 영화제의 선정작들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배우 정재영의 뛰어가는 짤과 비슷해서 익숙했을 수도 있지만, 근래 봐온 다수 영화제에서 계속해서 본 탓도 있었을 것이다. 국내에선 2021년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한 이 작품을 언젠간 꼭 보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접한 개봉 시사회 소식에는 바쁜 시기가 맞물려 고민이 많이 되었다.
시사회 당일에는 퇴근을 하고 용산 아이파크몰 CGV 근처 자리가 있는 라멘집에 갔다. 함께 간 지인과 라멘을 먹으며 라멘 이름에 대해 얘기를 했다. 소유는 간장, 시오는 소금. 일본에는 단일 소스를 베이스로 한 음식들이 꽤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고 다양한 재료를 섞어 깊은 맛의 요리들이 주인 것 같다는 얘기였다. 식사를 마치고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무슨 얘기를 담고 있더라도 분명히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전작 <델마>와 <라우더 댄 밤즈>들이 모두 다수의 영화제에 선정되어서가 아니라 단일의 맛이 아닌 깊은 맛을 담고 있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프롤로그-12개의 장-에필로그의 순으로 구성된다. 의학을 공부하던 율리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삶을 살기로 한다. 삶의 방향뿐만 아니라 사랑 또한 율리에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파티에서 만난 악셀과 사랑에 빠져 그와의 관계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성장하기도하지만 점점 어긋나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국내에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유미의 세포들>이 떠오른다. 유미라는 주인공의 연애를 포함한 성장기를 담아내며 귀여운 세포들을 이용해 유미의 내면을 대변해주는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웹툰)가 많은 사랑을 이유는 유미의 작고 섬세한 감정들을 세포들을 통해 보여주었기에 주인공에게 감화될 수 있었던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는 귀여운 세포들은 없지만 판타지적인 연출을 통해 주인공 율리에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게 만든다. 예를 들면 율리에가 마약버섯을 섭취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세 가지의 의미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는 악셀과의 만남에서 본인 스스로 관계 또는 삶에서 주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율리에의 상황이 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었다는 것, 두 번째는 율리에의 무의식, 혹은 율리에를 압박하는 것들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 세 번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유미의 세포들>이 세포들을 통해 주인공에게 이입시켰다면 약물에 취한 율리에가 경험한 환각을 최대한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도입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프롤로그, 에필로그 외에 12장의 구성은 시간의 흐름을 담은 서사적 이야기 같으면서도 동시에 일어나는 일의 파트를 나눈듯하기도 하다. 악셀을 만나고, 함께 하게 되고, 헤어지는 과정 중에 진행되는 가족 이야기는 비교적 평행한 시간 같이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판타지적인 연출과 인물의 삶을 파트별로 나눈 구성은 율리에의 삶에 더욱 이입시키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그냥 누군가의 삶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삶에 위로가 된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이 더욱 와닿았던 것 같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또한 율리에의 삶을 통해 위로가 되기도 했다. 본론에서 비교했던 <유미의 세포들>과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분명히 다르다. 주인공이 마주하는 상황들과 삶에 대한 고민의 깊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율리에의 삶을 ‘경험’할 수는 있었지만 율리에가 느꼈을 ‘감정’에 대해서는 다소 부족했다는 점이다. 감독은 보여주고자 했었으나 아쉬움이 남는 것인지, 감독의 의도인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 21세기판 "허클베리 핀의 모험", <피넛 버터 팔콘>
벚꽃이 봄눈 되어 거리가 하얗게 덮인 날, 다양한 장르의 예술영화와 함께 따뜻한 로드무비 한 편이 개봉하였습니다. 꿈과 희망, 그리고 돛단배 한 척이 담긴 포스터만 보더라도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영화 <피넛 버터 팔콘>은 레슬러가 되고 싶은 청년 '잭'의 꿈을 이뤄주기 위한 세 사람의 여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한 요양원에서부터 플로리다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2011년, 캘리포니아의 한 연기자 캠프에서 영화의 두 감독과 배우 '잭 고츠아전'이 만나며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이 주연 배우로 출연하는 영화를 찍는 것이 꿈이라는 '잭'의 말에 영화의 두 감독은 2000만 원을 들여 그와 함께 짧은 컨셉 비디오를 찍습니다. 그리고는 수년간 그 비디오를 통해 투자자를 찾는 작업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2017년, 마침내 그들은 펀딩을 통해 '잭'을 주연 배우로 하는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여정에는 배우 샤이아 라보프, 다코타 존슨, 그리고 원로 배우 '브루스 던'이 함께하게 되죠.
'마크 트웨인'의 명작이자 주연 배우 '잭'이 실제로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현대판으로 각색한 이 영화는, '잭'의 유일한 우상이자 꿈 레슬링 '선수 '솔트 워터 레드넥'을 만나는 길을 따라 갑니다. 무모할 수도 있는 그의 여정은 본인이 속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요양원을 탈출하면서부터 시작되고, 언제나 그렇듯 우연히 (그 나름대로 문제가 안고 있는) 조력자를 만납니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잭'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로드무비는 보통의 경우, 드넓은 미국 땅을 횡단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의 경우 옥수수밭을 제외하고는 물 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터도, 안전장치도 없는 작은 뗏목을 타고 그들은 천천히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의문점이 하나 생기죠. 미국의 남동쪽, 대서양 바다가 파도도 없이 저렇게 잔잔할 수가 있을까?
네, 있습니다. 이유는 '바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촬영지는 Pamlico sound 라는 석호(lagoon)로, 길이는 130km, 너비는 50km에 달하는 서울보다 큰 호수입니다. 그 어느 곳에서 찍어도 육지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당연히 이곳이 '바다'일 거라 으레 짐작하게 되죠.
이 외에도, 영화엔 몇 가지 특이점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음악이 지나치게 많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약간 낯설 수도 있는, 미국의 소울 음악부터 컨트리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가 흘러나오는 영화를 보며, 관객만큼이나 흥이 난 '잭'을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조금은 서툴 수 있는 '잭'을 위해, 영화의 두 감독은 촬영 전 리허설 단계에서 대형 붐박스를 가져다 놓고 영화에 사용될 사운드트랙을 크게 틀어놓았다고 합니다. 영화보다 사운드트랙이 먼저 작업되었다는 뜻이기도 하죠. '잭'을 위한 영화인만큼, 영화의 모든 부분은 '잭'이 꿈을 펼칠 수 있게 짜여져 있습니다. '잭'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첫 주연 영화에서 그가 마음껏 뛰노는 장면들을 통해 관객으로서 생각하는 바가 많아지기도 합니다.
'백인' 위주였던 할리우드는 최근 많이 달라진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어떠한 의도에서든,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전 세대의 관객들이 보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은 '인종'과 '성별'에서 더 나아가 '차별'이라는 산탄을 받고 있는 모두를 향해 갈 수 있다면 영화는 가장 대중적이고도 주도적인 문화예술로서의 그 가치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차별로부터 멀어지게 될 날까지
영화로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
-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뮤지컬 영화 두 편 - 라라랜드, 로켓맨
라라랜드 - 2016년 최고의 로맨스 뮤지컬
재즈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세바스찬 와일더와 카페에서 알바를 하며 배우를 지망하는 미아 돌런은 어느 날, 우연히 레스토랑에서 만난 것을 시작으로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데이트도 하고, 함께 생활을 하는 등 화목한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점차 둘의 관계가 비틀어지기 시작하고 끝내 이를 극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성장하려는 과정을 그린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뮤지컬 영화다.
일단 확실히 재미있게 봤다. 감독의 전작 [위플래쉬]만큼 강렬하거나, 폭발적인 영화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성장과 이야기를 지닌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뮤지컬 영화답게 노래가 정말 훌륭하다. 세바스찬이 혼자 독백하며 부르는 'City Of Stars'이라든가, 영화 도입부에 펼쳐지는 뮤지컬 장면은 정말 소름의 연속이었다. 특히 배우들의 춤선이 너무 아름답게 짜여져 있어서 뮤지컬 영화를 나름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매우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그러나 뮤지컬 음악이 나오지 않은 '일상 장면'들 중 대부분이 다소 평범하게 연출되었다는 건 상당히 아쉬웠다. 대표적으로 세바스찬과 미아가 식탁에서 파티하다가 싸우는 장면 같은 경우에는 현실적이긴 한데 한국 막장 드라마에서 주구장창 봐왔던 거라 다소 거부감이 있었고(영화의 잘못은 아니지만.) 앞서 말했듯 [위플래쉬] 같은 쾌감이 없었던 것도 조금은 아쉽게 다가왔다.
그래도 훌륭한 영화라는 것에는 100% 동의한다. 확실히 재미있는 영화고, 스토리와 연출, 연기와 각본 모두 평균 이상이기 때문에 아무 때나 봐도 만족스러울 만한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사실 이 위에 문제들은 그냥 개인적인 아쉬움일 뿐이고, 모든 면에선 거의 완벽에 가깝기 때문에 2016년 최고의 영화라고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의는 못하겠지만.) 특히 그중에서 가장 돋보였던 건 뭐니 뭐니 해도 감독의 연출이다. 일단 이 부분은 [위플래쉬]를 봤을 때도 느꼈던 강점인데, 셔젤 감독은 장면 하나하나를 지나갈 때마다 그 상황 당시에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포착해서 스크린으로 펼쳐놓는 능력이 굉장히 탁월하다. 물론 [퍼스트맨]에선 오로지 주인공의 겁먹은 표정 외에 다른 것들을 전부 다 놓치고 있긴 했지만 뭐 [라라랜드]까지는 이러한 장점이 살아있으니 크게 상관은 없다. 어쨌든 주말에 보기 딱 좋은 영화니 강추!
평점: 9/10로켓맨 - 잘 만든 음악 전기 영화의 대명사
음악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엘튼 존은 자신만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의상들, 그리고 끝내주는 음악들로 인해 인생의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매니저인 존 리드를 만나게 되면서 인생이 점점 꼬이기 시작하고, 이에 뒤따른 온갖 마약과 술에 찌들어 폐인이 되고 만다. 결국 그렇게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가지만 이를 전부 극복하고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엘튼 존의 이야기를 다룬 덱스터 플레처의 뮤지컬 영화다.
일단 정말 재미있게 봤다. 개인적으로 2019년에 개봉한 뮤지컬 영화들 중 가장 좋았고, 재미의 측면에선 [라라랜드]보다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우선 기본적으로 영화의 감정선이 매우 뛰어나다. 엘튼 존이 마약과 술에 빠져 피폐해져가는 과정을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몰입을 유도했고, 끝내 이를 극복하는 모습까지 차근차근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엘튼 존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깔끔하고 완성도 있게 보여주었다. 특히 음악 전기 영화라는 점에서 [보헤미안 랩소디]와 비교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로켓맨]이 더 뛰어난 영화라는 것은 팩트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프레디의 외로운 면만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그 외에 것들은 전부 다 설렁 설정 넘겨버려서 필자를 정말 짜증 나게 했지만, [로켓맨]은 이에 정확히 반대되는 작품이라 개인적으로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단점이 아예 없는 영화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로켓맨]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로켓맨'이라는 곡이 이 영화의 별다른 쟁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의 제목이 '로켓맨'인 것은 바로 엘튼 존의 별명에서 따왔다고 하면 크게 할 말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엘튼의 상징과도 같은 곡인데, 겨우 이런 식으로 낭비하는 건 좀 별로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로켓맨'이라는 곡이 한 건 수영장에서 익사할 뻔한 걸 구한 게 전부고, 이 곡이 나온 이후에도 마약을 하고 술을 퍼먹는 등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거기다 마약과 술을 하는 장면을 워낙 사실적으로 연출했다 보니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라는 점에서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영화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켓맨]은 필자에게 매우 재미있는 영화였고, 앞으로도 잘 만든 음악 전기 영화의 대명사로 쓰일 듯하다.
평점: 8/10
* 본 콘텐츠는 블로거 콩까기의 종이씹기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지치고 힘든 순간이 하이틴 영화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성적표를 받은 미국의 고등학생, 거기에 적힌 글자는 ‘C’다. 여타의 학생이라면 우울한 기분으로 게을렀던 과거를 후회하거나 부모님께 혼날 걱정을 할 것이다. 그녀는 다르다. 선생님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부모님께 성적표 공개를 거부한다. 어떻게 자신하냐는 질문엔 매 학기 선생님들을 설득해 점수를 올렸다고 당당히 말한다. 심지어 독신인 토론 선생님이 행복하면 점수가 올라갈 거란 가정하에 다른 선생님과 로맨스를 만든다, 그녀의 계획은 성공하고 훌륭한 성적을 받으며 친구들의 고마움과 인기를 한꺼번에 얻는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하이틴 영화 ‘클루리스’에서는 가능하다.
영화 ‘클루리스’는 벌써 개봉한 지 20년이 훌쩍 넘는 이야기로 제인 오스틴의 ‘에마’를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만든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하이틴 영화의 정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꼭 봐야 할 하이틴 TOP’ 순위에도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마치 하이틴 영화계의 히치콕의 ‘사이코’고 셰익스피어다. 전체적인 내용은 간단하다. 베벌리 힐스에 사는 고등학생 셰어의 학교생활과 우정, 사랑을 다룬다. 부유한 집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자란 아가씨가 변호사 아빠를 닮아 말도 청산유수인데 자신감마저 넘칠 때 벌어지는 상황들이 주요 사건이다.
클루리스 영화의 특징은 셰어라는 인물의 특징과 일맥상통한다. 주인공의 매력이 특히 중요한 하이틴 영화에서 그녀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먼저 옷을 좋아한다. 몸에 달라붙는 슬립 원피스와 노란색 체크 셋업 의상, 가죽 치마와 프레피 룩은 화려한 외모와 잘 어울린다. 영화의 분위기마저 알록달록하고 다채롭게 보인다. 유행은 돌고 돌아서 촌스럽지 않고 2020년에 유행하는 의상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셰어가 집에서 입고 있는 보라색 이너와 세트인 카디건은 요즘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디자인이다. 게다가 영화가 셰어의 독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최근 유행하는 Vlog를 보는 기분이 든다.
다음 특징은 영화 속 어떤 상황이라도 과즙미를 머금고 상큼하게 만드는 대사들이다. 아빠가 밤늦게 파티에 간 셰어에게 “몇 시인 줄 알아?”라고 묻자 그녀는 태연하게 씩 웃으며 ‘이 옷엔 시계가 안 어울려요.’라고 대답한다. 만화를 보며 의붓오빠인 조시에게 매우 실존주의적이라고 고급스럽게 말하고는 단어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또 다른 파티를 나가려고 할 때 아빠와 나누는 대사는 어이가 없어서라도 웃게 된다.
“그 옷이 뭐니!”
“드레스요.”
“누가 그래?”
“캘빈 클라인이요.”
설득력 없고 종종 이해되지 않는 그녀의 사고 회로는 당연하다는 듯 뻔뻔하고 당당하게 말하자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녀 자신도 스스로 사랑스럽고 멋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또래 남자애들은 자신보다 옷도 못 입고 멍청하다고 무시한다.
이렇게 세상을 다 알 것처럼 친구들에게 훈계하고 세상이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거라 행동하던 그녀도 사회의 벽에 부딪힌다. 맞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연결해주다가 상처 받고, 사람에 대한 그릇된 편견으로 위기에 처한다. 기어코 운전면허 시험까지 떨어졌을 땐, 자신이 몹시 작고 바보가 된 기분을 느낀다. 그녀가 영화의 첫 장면에서 말하듯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10대다.
진정으로 셰어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요소는 이 순간이다. 좌절한 순간들마저 그녀 답게 해결한다. 철없던 자신의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다툰 친구에게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물품 기부 행사를 열며 앞장선다. 그러면서 엉뚱함을 잃지 않는다. 자신의 철없음을 깨닫는 순간조차 쇼윈도를 보며 내면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저 옷이 제 사이즈가 있을까요?’라며 독백한다. 옛날 영화답게 연출도 귀여워서 셰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인정할 땐 그녀 뒤에서 분수가 튀어 오른다. 그녀와 영화는 뭘 해도 사랑스럽기만 하다.
하이틴 영화를 보는 이유는 쉽기 때문이 아닐까?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고 웃을 수 있다. 풋풋한 주인공의 로맨스에 대리 설렘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과거에 개봉한 하이틴 영화는 열이면 열 개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사랑을 이루고 우정을 얻고 성장한 주인공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마지막 장면이다. 우리의 일상도 그랬으면 좋겠다. 지치고 무기력하게 버티는 시간들이 결국엔 하이틴 영화처럼 더는 닫을 수 없을 만큼 꽉 닫힌 행복으로 끝나길 희망한다.
-
- 야, 너네 오빠도 그럴 수 있어.
이 글은
영화 [성덕]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인용 및 퍼가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주세요.
사진출처:다음 영화
사실 너를 이해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오빠”가 포승줄에 묶여 기자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미안한 척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우리 오빠는 아니니까 괜찮아.라는 말을 서슴없이 뱉는 또 다른 “오빠”의 덕후인 너를.
아무리 생각해도 뭐가 괜찮은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자기 오빠만 아니라면 저런 일이 일어나도 된다고 생각하는 너의 태도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네가 웃고 있다는 점이 나를 불쾌하게 했다. 미소 안에 숨겨진 알 수 없는 우월감과 안도감을 결국 숨기지 못해 내게 들켰다는 사실을 네가 알까.
우리 사이를 10년이나 지속하며 지내온 나조차도 덕후가 되어 이상한 필터가 눈과 마음에 씌워버린 채 내 앞에 앉아 있는 낯선 너를 이해할 수 없는데. 어째서 만들어진 신(God)에 가까운 검은 머리 짐승에게 이토록 마음뿐 아니라 이성까지 빼앗겨 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너와 있을 때 생겨나는 묘한 불편함은 손톱 옆 거스러미처럼 계속 나를 긁어 댔다. 너는 늘 우리 오빠 이야기만 했고. 우리 오빠의 작품을 보기를 강요했으며. 우리 오빠가 팬들 중 유일하게 너를 팔로우했다며 제주도에서도 보인다는 롯데 타워만큼이나 올라간 어깨를 으쓱댔으니까. 만난 것은 우리 두 사람인데 어째서 약속 장소에는 나는 허락하지 않은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 같기만 한지. 그리고 왜 약속을 잡은 나와는 이야기하지 않고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주제에 내 약속 상대를 뺏아간 그 누군가와만 이야기하는 것 같은지. 네가 즐거워서 얼굴이 더 밝아질수록 나의 불쾌함은 그 밝음의 그림자처럼 깊어져만 갔다.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너는 늘 입버릇처럼 자존감의 성립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고. 나는 그 틈을 비집고 심리학에서 의존할 대상이 필요하거나, 누군가에게 받지 못한 인정과 사랑을 충족시킬 대상을 내세울 때 연예인에게 집착하는 성향이 생긴다는 사실을 대입했다. 그만큼 너의 애정은 자신을 향한 푸념만큼이나 광기에 가까웠고. 나는 너의 그런 찬란함만 가득한 광기가 이해가 가면서도 온전히 안을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너는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했다.”저런 거”쫓아다니는 애들은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던가. 혹은 직업에서 그다지 입지를 다지지 못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너는 참 열심히도 살았다. 덕질하느라 적금도 겨우 넣는다는 너의 푸념은 입가에서 마를 날이 없었던 건 너는 쏙 빼고 말하겠지만.
영화 속엔 네 친구들이 참 많더라. 그런 사건이 터졌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오빠가 그럴 리가 없다며 옹호하기도 했고. 쿨한 척 죗값을 치르고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으며. “너네 오빠”의 가면 벗은 모습을 밝힌 기자 한 사람이. 세상에서 잠시 없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느낄 때까지 무지성으로 헐뜯기도 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나는 팬으로 대변되는 집단의 대다수가 가진 좋아한다는 감정이 참으로 우습다는 생각도 한다. 그 죽고 못 사는 오빠가 어느 정도 그런 사람인 줄 짐작으로 알았으면서도 기꺼이 눈을 가렸음을 말할 때는 머뭇거리는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서 더더욱. 결국 그들의 선택적 눈가림이 진짜 피해자들에겐 2차 가해이기도 함을 모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일하며 그 사람을 좋아하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으로는 어떤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해도 온전히 떳떳함을 느끼지 못하고 슬그머니 어깨를 움츠리는 것처럼.
물론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너희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문제는 있을 것이다. 억울하기도 하겠지. 입에도 담기 싫은 그 일이 생긴 후, 팬들은 그런 사람을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동급 취급을 당하거나. 걔 언젠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당사자가 아닌 팬들에게 넘겼을 테니까. 그뿐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너를 떠올리고 있는 나조차도 내가 너를 이해해 “주겠다”는 시건방진 마음을 가지고 다리나 꼰 채로 의자에 앉아 맘껏 너를 비웃으며 영화를 관람하고 있으니까. 너를 포함한 그 집단은 이런 시선과 아니꼬움까지 업은 채 본질보다 더 왜곡되고 있을지도 모르지.
영화가 다루는 대상, 혹은 질문에서 빠져 있는 게 피해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쩌면 너도 피해자 중 한 부류이기도 할 거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그것도 돈, 시간, 마음까지 다 바친 대상에게.
세연이 박사모를 찾아가는 모습을 비추었을 때의 얼굴을 네가 보았어야 했다.세연에겐 거울 요법이었을 테고. 그 어떤 기준도 없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열변을 토하는 박사모 회원 중 한 사람을 보면서 세연이 느꼈을 어이없음은 내게도 조금의 통쾌함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기세에 밀린다는 생각을 아마 너네 오빠가 최고인 줄 알던 너도 저 자리에 있었다면 처음 만나보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뭐 요새 하는 말을 빌리자면 자강두천(자존심 강한 두 천재) 정도가 되겠지.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러나 그와 동시에. 영화의 마지막 지점은 묘하게 내가 너와 별반 다른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나 조차도 은근히 선을 긋고 있음을 알게 되는 그 시작점. 불쾌하지만 사실적이고 어딘가 축축하지만 화려한 독버섯이 가득 피어 있는 길티 플레저를 닮은 이 영화처럼.
나도 충동적으로 용돈의 일부를 털어 [리틀 드러머 걸] 블루레이 세트를 사고(언제 오냐ㅠ), 일주일에 한 편 이상의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것에 강박적이며.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영화를 찾기 위한 여정을 외롭게 걷는 것을 즐기는 데다 “대다수”의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는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고급인 척 하지만. 그래도 “너 정도”는 아니니까.라는 말로 포장했을지도 모른다. 네가 “그 오빠”에 빠져 있을 때 나는 너보다는 “수준 높은”것을 하고 있다고 너를 매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훅 밀려왔다.
그런 사람 좋아하지 말고 네 인생에나 신경 쓰라고 말하고 싶어 늘 마음속 파우치에 그 문장을 고이 챙겨 다녔던 나도 그다지 떳떳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든다. 물론 그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개입해야 할 문제일지 아닐지 투표를 한다면 개입하지 않는다에 더 많은 표가 들어있을 것임은 투표 전인 지금도 명백해 보이니까. 어차피 정도와 대상의 차이만 있을 뿐. 좋아하는 것을 향한 다양한 감정은 네가 그렇고, 영화 속 인물이 그렇고 나에게도 그랬듯이, 모두의 마음속 하늘에 뜬 채 지지 않는 엉망진창 무지개일 텐데 말이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뿌리 깊은 덕질이 하루 안에 그칠 리 없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에 그려진 것처럼. 행복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건강하게 덕질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러나 그 행복하기 위한 덕질의 전제 조건으로 나중에 상처받을까 봐 애초에 마음을 다 주지 말자고 말하는 영화 속 인물의 말에는 반대한다. 사랑이란 것이 우연처럼 찾아와 남남이던 두 사람을 우리로 엮어 뗄 수도, 떼고 싶지도 않게 여겨지던 때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과연 그 다짐이 제대로 작동해서 헤어질 때 마음 한 구석이 마취도 하지 않은 채 강판에 갈려 나가는 것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한 적은 없지 않은가.
어차피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의 행동이 정상에 가까울 리 없다. 그러니 너도 나도. 정상인 척 숨기려 하지는 말자. 하지만 일상만은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자. 여전히 나보다 정도가 심한 덕질을 하는 네게는 힘들 수도 있겠지만. 두 발 모두를 허공에 띄워 정처 없이 표류하기보다 적어도 가계부만은 쓰기를.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선택한 덕질이라 할지라도 현실 앞에 눈 감기보다 한쪽 눈 정도는 뜰 수 있기를.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는 지긋지긋하게 너를 덕질하는 현실이 너를 놓아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는 말자.
그러니 다음에 만날 때는 너의 23 아이덴티티 중 그 오빠의 덕후인 모습은 숨긴 채 만나자. 덕질은 너만의 것일 뿐. 다른 사람 마음의 옷걸이에 제멋대로 걸어두는 외투가 아니다. 불쾌함을 느낀 상대방이 너의 외투를 툭 떨어뜨린다고 해서 네가 옷걸이를 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너와 나는 그 사실을 반드시 인지해야만 한다. 그래야 서로 간의 시간도 감정도 존중하는 길일 테니까.
또한 네가 좋아해 마지않는 그 오빠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자. 우리 오빠는 그럴 리가 없다라던가 어떻게 팬들한테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철학적으로라도 인정해야 한다. 행여나 네 마음속 감옥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런 “안 좋은 일”이 탈옥해서 세상에 돌아다닌다 해도.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늘 알아야 한다. 애초에 너네 오빠의 자유의지가 그랬을 뿐이다. 너네 오빠는 그럴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가진 사람이었을 뿐. 너는 그 사람을 소유할 수 없고. 그 사람은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어야 할 의무가 없는 사람이다. 우리의 덕질은. 이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길 때 비로소 더 자유로울 것이다. 물론 어렵겠지만.
삶에 지쳐 오아시스를 찾을 수는 있을지언정. 신기루에 마음을 빼앗기지는 말자.
우리, 남보다 나를 앞세운 삶을 살자.
마치면서
정말 뒤틀려있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분명 어이없는 마음이 들게 하면서도 마지막의 성찰을 보여 주는 부분에서 세연의 얼굴 표정은 아 자신이 이렇게 비쳤을 수도 있겠구나를 알게 한다. 어머니의 부분도 좋았다. 적어도 어머니는 팬심에 삶의 지혜가 더해져 조금 더 건강한 방법으로 강제 탈덕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이제 웃으면서 지나 보낸 것 같은 모습을 보이셨으니까.
정말 영화 보는 내내 친구의 모습이 겹쳤다. 실제로 리뷰 속 사건들과 친구의 태도 때문에 절교를 마음먹은 적도 있었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 친구가 이제는 만날 때 더 이상 내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기간제 연장을 한 것 이긴 하지만. 내가 누굴 이해하려는 스스로의 마음에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에 대한 좀 더 나이 들어버린 자가 할 수 있는 꼰대 마인드를 온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학생=공부라서 나는 전교에서 놀았고 혹은 사범대를 갔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부분도 우스웠다. 어차피 학벌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님은 스스로들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애초에 화이트 칼라에 해당하는 집단들이 도덕적이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만약 그게 말이 되는 일이었다면 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의대생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테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올 만큼 노력한 사람이니 사람 하나쯤 화장실에서 죽인다고 매장당하는 게 아깝다는 말에 이토록 분노감을 느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리뷰를 쓰는 방식도 매우 고민했다. 애초에 덕질에 대한 과도한 친구로 인해 그다지 좋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보통 덕질을 바라보는 사람이 훈계하는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똑같은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보다 낫다는 시선을 가진. 내 모습의 일부이기도 하기에 영화의 내용과 녹여서.
흑역사에 대해 가감 없이 털어놓고 성찰하려는 태도를 가진 감독의 배짱도. 영화도 모두 좋았다.
[이 글의 TMI]
1. 은근히 터지는 부분이 있음.
2. 9월에 본 영화 중 최고라 자부할 수 있음.
3. 마지막 남은 사랑니가 대공사(+위험함)를 해야만 뽑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됨.
4. 치과에서 이 덩치에 울 뻔함.
5. 정말 지옥의 카운트다운만 남은 셈.ㅠ
#영화성덕 #오세연감독 #다큐멘터리 #덕질 #덕후 #한국영화 #영화장르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영화꼰대
-
- 두렵지 않아
나는 ‘성장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제일 꺼리는 모순적인 성향이 있다.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두려움이 크지 않는가. 나만 그런 거라면, 그냥 주관적인 생각으로 알고 넘어가 달라. 아무튼, 성장 영화의 끝은 항상 내게 묘한 감정과 벅차오름을 선사해주지만, 그 기운들이 내게는 너무 벅차 시작도 전에 머뭇거리고 두려워진다. 그래서 아예 가볍거나 아예 무거운 작품들을 선호하게 된 것 같다. 기대가 아주 낮아야 보기 편하다고 할까. 아님, 영화제처럼 강제로 보는 것도 괜찮지만 워낙 영화의 퀄리티가 랜덤이라 위험도가 높다. 그래도 그것대로 재밌긴하다.
딴 길로 새버렸는데, ‘와일드’는 내가 좋아하고, 어려워하는 성장 영화이기도 하고, 워낙 칭찬이 많았던 영화였던 지라 기대감이 커져 버려서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이렇게 동아리를 통해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정말, 지금이라도 이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도 현재, 영화 초반의 ‘셰릴 스트레이드’와 같이 길 잃은 상태였기에 좀 더 이입되었다. 엄마를 잃고, 탈선을 시작한 셰릴는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방황하게 된다. 그래도 셰릴은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는 자였다. 그는 큰 결심을 안고, PCT 하이킹에 나선다.
운동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는 트래킹조차도 싫어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뉴질랜드의 경관을 보면서 트래킹하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경관을 구경하고 싶었다. 나는 죽을 때 절대로 서 있다가 죽진 않을 것 같다) 하이킹이라니. 정말, 아찔하다. 하지만 셰릴은 계속 일어서고, 꿋꿋하게 걸어간다. 몸에 상처가 나고, 발톱이 빠지고, 두려움을 느껴도 묵묵하게 계속 걸어간다. (2분에 한 번씩 그만두고 싶다 하여도) 이제 그는 길을 잃는 것에 무서워하지 않는다.
눈이 쌓여 길이 잘 보이지 않는 구간에서도 셰릴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가고, 해낸다. 그의 대장정이 끝나갈 때쯤에는 나도 함께 벅차오름이 부풀어진다.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희망과 길을 잃어도 다시 찾으면 된다는 지혜. 코로나 19로 많은 외부 활동들이 제한되고, 사람은 갇혀있다. 이에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감이 세상을 덮치는 중이라 생각한다. 번아웃과 막힌 벽들.
‘여행 영화’가 우리의 외부 활동에 대한 갈망을 다 채워주진 못해도, 간접적이라도 우리에게 선사해주며 자신만의 희망을 잃지 않게 다독여준다. ‘여행’으로 치유하는 모습을 보며, 다른 이들도 치유받는 이 과정이 새삼스럽게 신기하고, 우리는 어떻게든 이어진 존재가 아닐까. 역시 한 사람의 생애는 다양하면서도 많은 부분이 닮아있고, 이에 연결감이 언제나 존재한다.
‘와일드’의 주인공은 백인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인 여성이 그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당연, 공통의 고통 혹은 환희를 알기에, 결국 사람이기에 아는 것일 터. 이런 미디어의 전파력은 참 황홀하다. 나도 언젠간 나의 고통을 나누고, 나의 기쁨을 나누고, 나의 일부가 되어주고, 나의 일부가 되어 갈, 무엇을 창조하고 싶다. 참 욕심나는 경험들이다. 이런 욕심나는 경험을 지금이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영광이었다.
-
- [영화리뷰/결말포함] 어린이집,유치원 선생님인가요? 아이가 있으시다고요? 당신도 오해 때문에 주변에서 버림받은 적이 있나요?! 전 아직도 그렇습니다...
#매즈미켈슨#칸_남우주연상#영화리뷰
이 영화 '더 헌트' 라는 작품으로 매즈 미켈슨은 칸에서 남우 주연상을 받습니다. 간략한 내용은 아이의 거짓말로 인해 오해를 받으며 유치원 교사 루카스가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사람들 속에서 자리를 잃어가는 내용입니다구독?부탁드려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Nqd...영화 '더 헌트'
네이버별점 9.0#무비워크 #영화리뷰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결말포함
-
- [Movielog #4] 자살을 선택한 사람에 대한 세심한 접근
Rabbitgumi 입니다! 김혜수 배우가 주연한 영화 내가 죽던 날 을 보고 왔어요.
자살한 아이에 대한 수사를 종결시키기 위해 마무리 수사를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데요.
한 사람이 자살로 이르는 심리묘사가 탁월합니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이 자살보다는 좀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사람의 믿음과 도움을 통해 보여주려 합니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좋은 드라마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봐주세요!^^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려요. ^^
-
- 영화 <수퍼 소닉2> 메인 예고편
때가 왔다! 초특급 히어로 소닉과 친구들? 소닉&테일즈 VS 너클즈&로보트닉의 대결로 2배 업그레이드 된 어드벤처 4월 6일 극장에서 만나소-닉
-
- 영화 <이공삼칠> 메인 예고편
모두 놓치지 않을거에요! [7번방의 선물]을 잇는 웃음과 감동! [이공삼칠] 메인 예고편 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