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1-09 18:55:12
토대를 잃지 않기
영화 <총을 든 스님> 리뷰
SYNOPSIS.
2006년의 부탄 왕국. 마침내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도착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민주주의다. 국왕이 자진해서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민주주의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정국가 부탄에서 역사상 첫 번째 선거가 시작될 예정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투표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당국은 모의 선거를 마련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파란당, 빨간당, 노란당 선거로 인해 서로 반목하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 선거 감독관은 마을의 존경을 받는 큰 스님이 총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는데...
POINT.
✔️ 건재한 왕이 직접 전제 왕권을 내려놓고 도입한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실화. "투표가 뭔데요? 우린 폐하가 좋은데?" 상태의 국민들 실화. 거기서 스님이 갑자기 총을 찾는다? 부탄이기에 가능한 매력적 시놉시스
✔️ 도르지 감독에게는 부탄 관광청이 상 줘야 하지 않을까? (어쩐지 부탄은 안 줄 것 같지만) 아름답게 펼쳐지는 부탄의 풍광에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이유.
✔️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 당연했던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묻는, 이 시국에 알맞은 작품
✔️ 중간중간 짤막하게 나오는 아이들이 그야말로 신스틸러.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 새해 당신의 마음을 맑게 해줄 작품. 1월 1일에 개봉했습니다!

행복한 부탄에 찾아온 변화
부탄은 인도와 티베트 사이에 위치한 아주 작은 나라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통 '국민행복지수'를 중요시하는 나라라고 오래 전 교과서 한귀퉁이에 소개된, 그래서 어쩐지 샴발라 같은 낙원의 이미지로 막연하게 그려질 만큼 잘 모르는 나라다. 나는 부탄 영화감독도 딱 한 명밖에 모른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몇 년 전 <교실 안의 야크>로 우리를 찾아왔던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이다.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을 통해 우리에게 그려진 부탄은, 우리가 기존에 알던 부탄의 이미지처럼 맑고 청량했다. 루테인과 지아잔틴 섭취는 안 해도 될 것 같은,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풍경과 거기 기대 사는 사람들의 면면을 부드럽게 그리기 때문이다. <교실 안의 야크>만 해도 야심만만하고 젊은 교사가 산간벽지 학교로 부임해 가면서 겪는 일들을 사랑스럽게 담았다. 그런데 차기작 제목에 총이 들어간다고요. 그것도 평화와 비폭력의 상징인 스님과 함께? 궁금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부탄은 거대한 변화의 기로에 놓여 있다. 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당연스럽게 왕이 갖던 권력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과연 선출은 무엇이고 투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 선거 사무원들은 전세계가 주목할 상황 앞에 그럴 듯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자 지역을 두루 다니며 사람들에게 선거의 개념을 알리고 모의 선거를 치르고자 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넌센스한 상황들이 계속 펼쳐진다. 애초에 행정적인 이름과 생일이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선거 명부를 작성하는 것부터가 일이다. 국왕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이 사람들을 크게 옭아맨다고 느끼지 않았기에, 그 권력을 억지로 쪼개 경쟁을 붙여야 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이 시간을 통해 무언가를 도모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고, 투표를 하거나 말거나 자기 뱃속을 불리는 게 중요한 사람도 있다.

민주주의가 뭔데요?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큰스님의 "총을 구해 오라"는 발언일 것이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결합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아무래도 시국이 시국이어서 그런가 우리는 좀더 세속적인 상상을 하게 되지만... 흠흠. 아무튼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영화 속 인물들이 보이는 각양각색의 반응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피를 흘리며 민주주의를 여기까지 이루었고, 지금도 민주주의의 삼권 분립과 상호 견제의 원리를 통해 우리를 지키는 중인 한국 사회는 영화 속 부탄과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수많은 질문들이 우리에게도 유효타로 날아든다.
정치적인 의견 차이가 배신처럼 간주된다면, 거기서 우리는 어떻게 건강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제도를 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제도 그 이상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다수가 원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남들이 목숨 걸고 갈구한 것이라면 여기서도 필요한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행복으로 가는 길은, 우리 손으로 어떻게 그려가야 할까?

자본주의도 통역이 되나요?
이 영화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묵직한 질문들을, 하필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이런 때에 숙고하고 있노라면... 이 영화가 민주주의만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민주주의의 좋은 짝, 자본주의다. 영화에는 총을 둘러싼 대화가 영어-부탄어 통역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 문장들은 단순히 말뜻을 옮기는 그 이상의 기능을 한다. 통역자 '밴지'는 단순하게 말을 비슷한 단어로 옮기는 게 아니라, 표현과 그 의도까지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분칠을 해서 성실하고 매끄럽게 내어 놓는다.
자본주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언어와 어찌 보면 그 대척점 비슷한 곳에 가 있는 언어를 옮기는 것은, 발화된 말 뒤에 있는 마음까지도 적절히 분칠을 해서 내어 놓아야만 하는 일이 된다. 밴지가 통역한 것은 영어와 부탄어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부탄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적절히 양념을 치고 거짓도 보태어, 화자와 청자 사이에 약간씩 괴리가 발생한다.
이 괴리는 작지만 흥미로웠는데, (이 영화에서는 작은 수준으로만 등장하지만) 이러한 괴리가 자라고 자라면 우리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일부 정치인들의 망언이 되는 거구나 싶어서였다. 이미 죽어 있는 마음의 시체 비슷한 것에 분칠을 해봤자 악취를 가릴 수 없다. 가치를 상실한 말은 언어의 거죽을 뒤집어써도 언어를 파괴할 뿐이다. 아무리 주절주절 단어를 끌어 모아 가려봐도 기표 뒤의 기의는 가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작지만 명확히 드러난다.

이 영화는 묻는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두 제도. 잘 발휘될 때의 장점과 잘못 발휘될 때의 해악도 명확한 이 제도 앞에서, 시스템 이면의 가치를 잊지는 않았는지, 잃지는 않았는지. 제도 이전에 우리 마음의 토대에 놓여야 할 것은 무엇인지, 마치 부처님의 미소처럼 순하고 부드러운 양상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영화의 결말에서는 어쩐지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이라는 백석의 시구가 떠올랐다. 우리 같이 쪼이고 싶은, 따뜻한 모닥불 같은 영화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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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이기를 택해야 했던 이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근데 사실 저도 혼자 밥 못 먹는 것 같아요.
혼자 잠도 못 자고 버스도 못 타고 혼자 담배도 못 피우고.
사실 저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냥 그런 척 하는 것뿐이지."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2021)은 1인 가구 비율이 31.7퍼센트(2020,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가 된 세태를 중심으로 거기 속한 인물들의 군상을 조명하는 영화가 아니라 혼자 사는 사람(여성)이 마주하는 여러 종류의 불안감과 1인분의 삶을 소화해내느라 분투하는 이의 외강내유한 내면을 살피는 작품이다.
노아 바움백의 영화 <프란시스 하>(2012)에 대한 김혜리 기자의 평문 중 "일상을 열심히 전시한다고 그 사람이 반드시 자랑할 만큼 인생을 만족스러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족하려고 열심히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라는 문장에 오래 머문 적 있다. 어쩌면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혼자 해결하는 사람에게도 이것은 비슷한 종류일 것 같다. 가령 혼자 식사를 하는 일은 그것이 좋거나 편해서이기보다 타인과의 식사가 불편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 수 있다는 뜻이다. 혼자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이 불편해서.
'진아'(공승연)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곁에 사람이 아닌 기계적 장치로 '혼자가 아닌 것처럼 혼자 보내기'를 행한다. 거기에는 주로 이어폰과 같이 자신과 타인의 영역을 구분하는 수단이 자리 잡는다. 점심시간마다 홀로 찾는 국숫집에서, 혹은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진아'는 예능이나 먹방을 보고 있다.
그러니, 식사를 같이 하자고 살갑게 따라오는 신입 직원 '수진'(정다연)이나 자신에게 신입 교육을 떠맡기는 사수이자 팀장 '해나'(김해나)나 교회에 나오라고 별 용건 없이 전화하는 아빠(박정학)는 '진아'에게 불편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거실도 아닌 방 안에 모든 살림을 밀어 넣은 '진아'가 혼자의 일상을 간신히 살아내는 동안 영화 안에서는 조금씩 그 일상을 뒤흔드는 일들이 일어나고, '진아'의 태도에도 일말의 변화가 생겨난다. 그가 누군가에게 "잘 가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못 챙겨줘서 미안해요."라고 어떤 순간에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불과 90분밖에 되지 않는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은 섬세한 연출과 각본으로 (1인 가구라는 삶의 형태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혼자인 채로 사는 이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자신과 타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 혹은 혼자이기를 택해야 했던 마음을 들여다본다. 어떤 장면에서 '진아'는 더 이상 이어폰을 꽂고 있지 않다. 그건 삶의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혼자의 일상을 좀 더 잘 보내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해나가는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에서 업로드한 게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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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지금 가장 핫한 배우, 3세대 대표 여배우들이기도 한 고윤정 신시아 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스핀오프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의 주연에 낙점되었다고 하는데요. 9월3주차 OTT/ 영화 가장 핫한 소식들만 모아왔습니다. 지금 같이 만나보시죠!
<거미집> 김기영 감독 인권침해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소송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거미집>이 김기영 감독 유족과 소송전을 벌였는데요. 김기영 감독 측은 ‘김 감독’이 김기영 감독을 부정적으로 묘사해 고인의 인격권,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지만만 제작사 측은 김기영 감독을 모티브로 한 게 아니며 전기 영화도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개봉전 김기영 감독 유족과 극적인 합의를 이뤄 정상개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신카이 마코토 <스즈메의 문단속> 특별 전시회 개최
국내 550만명을 넘긴 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의 문단속> 특별 전시회가 다음달 신세계 백화점에서 열립니다. 전국 신세계 백화점에서 10월1일부터12월 17일까지 선보일 예정이며 이번 전시회에서는 원작 스토리를 다양한 시점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감독의 스케치, 콘티, 캐릭터 아트 등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슬의생> 스핀오프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환혼> <무빙>의 고윤정, <마녀2>의 신시아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스핀오프에 주연으로 낙점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에는 율제 본원에서 종로 율제병원으로 무대를 옮겨 산부인과 전공의들의 리얼한 병원생활을 그리며 초보 의사들의 병원 생활에 대해 사회생활을 겪는 이들의 공감을 자아낼것으로 보입니다.
향년 81세 변희봉 배우 별세
배우 변희봉배우가 9월18일 별세했습니다. 유족에 따르면 과거 완치 판정을 받았던 췌장암이 재발해 투병하던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불리며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에서 호흡하며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입니다.
이선균X정유미 주연 <잠>100만 돌파
영화 <잠>이 개봉 2주차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며 100만 관객수를 넘겼습니다. 올해 나온 한국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범죄도시3> <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 <잠> 총 4편입니다.<잠>은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며 각본, 연출을 같이 맡았고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최초공개되었습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는 'LATEST CINE NEWS’였습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면 댓글과 좋아요 콕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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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일상이 스릴러가 되다
전주국제영화제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작품이었던 영화 <풀타임>. 지난주 전주에 내려와서 풀타임 포스터를 받고, 일상 스릴러라는 카피에 굉장히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폐막작으로 선정된만큼의 작품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전주돔을 찾아갔다.
영화 <풀타임> 시놉시스
영화 <풀타임>은 파리 교외에 살며 홀로 두 아이를 기르는 쥘리의 하루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마켓리서처로 일하다 4년 전.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실업자가 된 그녀는 설상가상 남편과 헤어지면서 지금은 파리 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룸메이드로 일하며 겨우 생활비를 번다. 아이들은 옆집 아줌마에게 맡겨놓고 허덕이며 일을 해야 하는 쥘리. 마침 프랑스 전역을 휩쓴 노란조끼시위로 기차를 비롯한 대중교통 역시 장기 파업에 돌입하면서 그나마 쥘리가 잡고 있던 깨지기 쉬운 균형마저 위태로워진다. 다시 전공을 살려 전업 마켓 리서처가 되고자 하지만, 파업은 출퇴근은 물론 그녀가 면접에 가는 것조차 쉬 허락하지 않는다. 양육비도 보내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는 전남편,더 이상 아이들을 봐주지 못하겠다고 성을 내는 옆집아줌마, 놀다가 다치는 아들 등 쥘리의 삶은 도무지 숨 쉴여질 틈이 보이지 않는다. 과연 쥘리는 성공적으로 정규직 직장을 구해 고통스러운 나날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이 이후로는 영화 <풀타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연기
로르 칼라미의 연기는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비정규직에 경력이 단절이 된 두 아이의 엄마라는 캐릭터를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낸 배우였다. 프랑스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그간 봐왔던 프랑스 영화들은 굉장히 지루한 부분이 많았어서 프랑스 영화와 나는 결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 <풀타임>을 보는 내내 그동안 내가 알던 프랑스 영화의 답답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마 그 역할을 해준 것이 쥘리 역을 맡은 로르 칼라미의 연기 덕분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든 경력이 이어가보고자 면접에서 초롱초롱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하며 아이들을 돌볼 곳을 찾기 어려워 난감해하는 엄마의 모습, 파업으로 인해 출퇴근이 어려워지고 심지어는 집에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좌절하는 직장인의 모습까지 과장됨 없이 정말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어서 극의 몰입도를 더 높여주지 않았나 싶다. 특히, 파업으로 인해 직장에 지각을 하게 되는 장면에서 작년 한찰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할 때 맞닥뜨린 시위현장이라던지, 파업이 생각나면서 영화 속에서만큼의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정말 크게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불안한 음악과 우울한 날씨
지난번 영화 <시계공자의 아나키스트>를 통해 영화음악 없이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영화음악을 잘 쓰면 긴장감과 극의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 영화음악의 역할을 영화 <풀타임>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영화 <풀타임>은 초반부터 불안함을 끌어올리는 음악을 사용한다. 주인공 쥘리가 기차를 향해 달려가면서 가까스로 탑승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험난한 하루하루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음악이 깔리는데 그 순간 그 큰 전주돔의 분위기 착 가라앉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음악과 함께 극중 배경 역시 우울함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했다. 영화 속에서는 두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가 내리거나 우중충한 날씨를 보여준다. 심지어 주인공은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거의 우산을 쓰지도 않는다. 맑은 날의 장면은 아들의 생일파티와 마지막 장면에서의 합격전화를 받는 장면 밖에 없었는데 그만큼 쥘리의 일상 자체가 우울하고 피곤한 상태라는 것을 날씨를 통해서 잘 표현하고 있었다.
일상이 스릴러인 이유
어찌보면 그저 험난한 출근길과 계속되는 악재로 인해 계약직 호텔일도 잘리는 것이 어떻게 스릴러일까 싶기도 하지만 연출을 잘해서 그런지 보는 내내 심장이 조여오고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그 일상이 스릴러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자를 내지 못해 카드가 정지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집에 가지 못하자 내야하는 호텔비와 다음날 면접을 위해 구매해야할 옷까지, 정말 이 때 카드 결제가 안되면 어쩌나 싶을만큼 엄청난 긴장감을 주더니 다행이 결제가 되는 안도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핸드헬드 카메라를 통해서 흔들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찍으면서 주인공의 극대화되는 불안감을 관객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이 영화는 제작되었다. 험난한 출근길에서 시작한 일상의 무너짐은 퇴근길이 무너지면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되고, 와중 면접을 보러가야 하는 상황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호텔에서 대타를 구할 수 없게 되고, 그 사실을 호텔 담당자가 알게 되어 짤릴 위기에 처하다가, 와중 아들의 생일이어서 카드값이 밀려있지만 선물과 파티 준비를 해야하고, 대중교통 총파업이 이뤄지면서 결국 잦은 지각으로 인해 호텔에서 잘리는 악재가 반복되는 이 구조가 정말 하루하루 숨쉬는 것이 공포 그 자체처럼 다가오도록 연출이 돼서 왜 이 작품이 일상 속 스릴러라는 카피를 썼는지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기대를 많이 하고 본 영화 <풀타임>. 그 기대만큼 만족도 역시 컸던, 폐막작으로서 최고였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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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그 엉망 진창에 대하여.
이 글은 영화 [루이스 웨인;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 봄의 다른 이름이자 숨겨진 본심처럼 느껴지는 단어다.
오래 기다려온 아름다움으로 눈앞이 아찔해지는 경험은 마치 사랑에 빠진 연인의 마음과도 같아서, 짧아서 언제나 아쉬운 마음도 더해져 계절 내내 우리를 웃고 울게 한다.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는 마음이 솜털처럼 푹신해지는 봄과 사랑을 둘 다 담은 영화이다. 또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필모에도 봄바람이 부는 것 같은 영화이니 터지는 꽃망울처럼 거부할 수 없는 영화가 되기를 빌어본다.
돋보기를 프리즘으로 바꾸기;베니가 사랑에 빠지면 일어나는 일.
사진 출처:다음 영화
영화에서 제2의 주인공이라 불릴만한 요소는 당연히 고양이다. 무려 산책하는 고양이 피터의 귀여움을 앞세웠으며 루이스 웨인은 익숙지 않았던 고양이 그림으로 자신의 유명세를 날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영화에는 고양이만큼 폭력적으로(?) 존재감을 어필하지는 않지만 분명 다른 주인공이 하나 더 있다. 사랑을 속삭이는 두 연인의 대사에서도 빠지지 않는 대상인 "빛"이다.
루이스의 삶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단 한 곳, 삽화에 집중한 돋보기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성공적으로 종이의 한 부분을 태울 수 있었지만 다른 모든 것들에 있어서는 그 어떤 요령도 터득하지 못한 채 살았다. 삽화를 그리는 행위 외의 모든 것은 그를 그저 괴롭히는 것들에 불과했고, "쓸데없는" 것들에 정신을 빼앗길수록 그림에 집중하려는 마음은 더 강해졌다.
루이스의 삶은 에밀리를 만나면서부터 달라졌다.
그녀는 프리즘과 같은 삶을 살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들을 총천연색 무지개로 바꿀 줄 알았다. 덕분에 루이스는 난생처음 보는 색의 축제 속에 삶을 내던질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집중할 줄 알았고, 서로에게 받은 마음을 여러 색으로 한껏 풀어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나 행복을 만들어가는 장면들에 유독 빛이 아름답게 촬영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비록 영화이지만 화면 가득한 빛들을 보면 움츠러들었던 마음도 보송하게 마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랑.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던 것에 대해서.;하나의 사랑이 아닌 다양한 사랑.
사진 출처:다음 영화
영화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타이틀에 내걸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단어에서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연인 사이에서 존재하는 감정"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천륜이라는 단어에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애증에 가까운 사랑. 루이스가 직업에 대해 가진 사랑, 그리고 루이스의 작품으로 인해 많은 기쁨을 얻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함께 보여준다.
에밀리가 루이스에게 삶을 보는 태도를 바꿔준 것처럼.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루이스는 조금씩 자신이 알고 있는 형태의 사랑이 아닌 다른 모습의 사랑들에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책임감으로 착각했던 가족의 사랑과 인정을 조금씩 쌓아가고, 직업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 덕에 초라한 말로를 맞이할 뻔했던 한 예술가의 인생은 그나마 정상 궤도 가까이 올라오게 된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영화에 등장할수록, 평생을 그 어떤 무언가에 눌려 살았던 루이스의 모습이 더욱 딱하게 느껴진다. 만약 에밀리마저 없었더라면, 이 모든 형태의 사랑은 그에게 평생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이었을테고. 이로 인해 루이스는 에밀리를 만나기 전의 그 어벙하고 멍해 보이는 상태로 오늘도 길을 걸어가기 바빴을 것이다.
루이스는 눈치챘을까.
에밀리와의 달콤했던 시간 이외의 모든 순간들도 자신을 향한, 혹은 자신이 원한 사랑들의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던 삶이 존재했음을.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배우가 된 그 남자.;이젠 그냥 멋있음.
사진출처: 다음 영화
유튜버 [거의 없다]님의 최신 영상에 의하면.
배우는 크게 감정을 안으로 소화시키는데 능한 사람과 터뜨리는 것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영화 [신세계]가 흥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도 전자에 속하는 배우 이정재와 후자의 황정민이 만났기 때문이라고.
가끔 베니(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애칭)를 보고 있으면 이 희한한 배우는 대체 어디에 속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데뷔작에 가까운 상업 드라마가 국제적 대박을 치고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고. 하는 작품마다 자신의 위치를 완벽하게 찾아들어가 어떤 오점도 남기지 않는 연기를 하는 이 사람. 호통을 쳐도. 한숨을 내쉬어도. 이 배우 외의 다른 사람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 물론 아쉬울 때도 있었다.
예전에도 리뷰한 것처럼 상실에 젖은 천재의 역할에 너무 자주 거론되는 사람인 것만 같아서.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연기하는 모든 인물들은 다 다르게 느껴진다. 그들은 모두 각각 다른 슬픔과 고뇌를 가지고 있고 이 모든 역할들은 베니의 노력으로 우리에게 항상 마음의 이곳저곳을 울리곤 한다.
그가 어떤 곳에 속하는 배우이건 상관없이.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인해 우리에게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을 마음으로나마 전한다.
이번 영화에서도 베니는 루이스 웨인의 일대기를 연기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 한 편에서 보여주는 연기의 스펙트럼 만으로도 그가 영화사(史)에 해야 할 일은 다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배우가 아닌 인간 베네딕트 컴버배치만큼은 사랑이 무엇인지 충분히 느끼고 마음 가득 머금기만을 바랄 뿐이다.
마치면서
가끔 예고편이 영화를 좀 더 (효과적으로) 망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물론 예고편이 보여주는 모습이 인물들의 인생에 있어 가장 드라마틱 했기에 루이스와 에밀리의 모습을 영화 전면에 내세운 것이겠지만. 이 영화를 두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로 착각하면 매우 실망하기 쉽다. 또한 고양이가 엄청 나올 것이라 예상하면 더욱 재미없는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루이스 웨인의 삶과 그 안에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에 집중한다면. 단지 달콤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지만 조금 더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 이제 정말 대배우가 되어버린 베네딕트의 연기도 가슴을 울리기 충분하다. 흔치 않은 그의 멜로 눈깔(?)을 감상할 수 있었기에 더 귀하기도 한 영화랄까.
카카오뷰도 있어요+_+
[이 글의 TMI]
1. 이제 어느 정도 일정이 정리되었다.
2. 응원해 주신 덕분에 좋은 조건으로 좀 더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백수 처음 해보는데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음다.
4. 코로나 후유증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하다.
5. 그래도 그릭요거트 퍼먹으면서 씩씩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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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이드 아웃 2 | 기쁨과 불안 속에서 나를 찾아줘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라일리'(켄싱턴 톨먼)의 행복을 위해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바삐 일하는 ‘기쁨’(에이미 포엘러), ‘슬픔’, ‘버럭’, ‘까칠’, ‘소심’. 그들은 라일리가 아이스하키 대회 결승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다음날 떠날 하키 캠프에 대한 걱정 없이 그녀가 잠들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그 후 기쁨은 좋은 기억만을 골라서 라일리의 신념과 자아가 만들어지는 '신념 저장소'에 배치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음날 새벽 예기치 못하게 잠에서 깬다. 라일리의 사춘기가 시작돼 본부가 갑작스러운 리모델링에 돌입했기 때문. 이에 더해 새로 등장한 감정 ‘불안’(마야 호크), ‘당황’, ‘따분’, ‘부럽’이는 연신 최악의 상황과 미래만을 가정하며 기쁨과 충돌한다. 갈등이 이어지자 불안은 결국 기존 다섯 감정을 본부에서 내쫓아 버린다. 그렇게 기존 감정들이 본부로 돌아가려 애쓰는 사이, 라일리는 점점 불안한 사춘기에 빠져든다.
부끄럽지 않은 동생
2015년에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은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그전까지 픽사는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침체기였다. 일상에서 잊고 지내던 가치를 일깨우는 픽사 특유의 스토리텔링을 찾아보기 힘들었으니까. <토이 스토리 3> 이후 개봉한 <카 2>, <몬스터 대학교> 등은 속편인데도 미묘한 평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이드 아웃>은 픽사가 건재할 뿐만 아니라, 픽사만의 영역을 개척했음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 꿈, 무의식, 기억처럼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해서 독창적인 비주얼을 선보였고, 유년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를 기점으로 <인사이드 아웃>은 픽사의 교과서가 됐다. <소울>, <엘리멘탈>만 해도 <인사이드 아웃>의 콘셉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렇기에 9년 만에 돌아온 속편 <인사이드 아웃 2>의 어깨는 무거웠다. 전편의 충격과 신선함을 유지하되, 새로운 것을 덧붙이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았다. 실제로도 한계가 명확하다. 여러 아이디어를 가능한 많이 살리려 과욕을 부리다 보니 전편에 비해 만듦새가 다소 아쉽다. 하지만 1편의 명성을 잇기에는 충분하다. 드라마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깊은 맛이 나고, 픽사가 늘 그랬듯이 성인 관객에게 더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기쁨과 불안이 만나 '나'를 빚다
<인사이드 아웃 2>의 핵심은 사춘기다. 13살 청소년은 여러 변화를 겪는다. 부모님과 난 데 없이 싸우기도 하고, 과거와 다른 취미를 갖거나 머리 스타일을 바꾸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며 미래를 걱정하기도 한다. 순수한 어린아이가 비아냥거리는 법도 터득한다.
극 중 기쁨과 불안의 대립은 사춘기의 혼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쁨은 현상 유지가 목표다. 라일리가 즐겁고 재밌는 기억만 간직한 채 지금 모습 그대로이길 바란다. 안 좋은 기억은 무의식 저편으로 던져 버리고, 라일리의 자아를 좋은 기억으로만 채우려 한다. 하지만 새 친구와 환경을 마주한 라일리에게 기쁨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쁨의 지시를 따르자 하키 캠프에서 선배들에게 찍히고, 코치에게 한 소리를 듣기만 하니까.
이에 감정 컨트롤 본부는 이제 불안에게 넘어간다. 불안은 하키 캠프나 고등학교를 비롯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만을 걱정한다. 부정적인 예상과 미래만 라일리에게 보여주면서 라일리를 다그친다. 처음에는 불안이의 계획이 통하는 듯하다. 라일리는 롤모델인 '밸'(릴리마르)의 눈에 들고, 선배들과 코치에게도 실력을 어필한다. 하지만 불안이 이어지면서 라일리는 친구들과 멀어지고, 자기 신념과 확신마저 잃어버린다.
하지만 기쁨도, 불안도 잘못은 없다. 이 모든 변화가 '나'를 찾기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과정이니까. '신념 저장소'의 변화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에는 기쁨이 가져다 놓은 기억만 가득하지만, 나중에는 불안이 가져놓은 기억이 더 많아진다. 끝내는 모든 기억이 한 데 뒤엉켜서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새로운 라일리의 자아를 만들어 낸다.
픽사는 이번에도 픽사했다
따라서 기쁨과 불안의 갈등은 결국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고찰이나 다름없다. 고유한 자아와 신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감정이, 그리고 모든 기억이 있는 그대로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좋은 기억과 안 좋은 기억 모두를 있는 그대로 곱씹어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성장한 것이라고.
그러니 기쁨의 비중과 역할도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기쁨이 단지 유치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불안하고 힘든 순간마다 과거의 기쁜 기억이 '나'를 지탱해 줄 테니까. 이는 결국 기쁨이 다시 감정 컨트롤 본부를 제어하는 이유다. 슬픔도 다른 감정만큼 중요하다는 전편의 메시지와 유사한 귀결이지만, 한 발 더 나아간 셈이다.
라일리의 성장 서사는 성인 관객이 더 감동받는 대목일 수도 있다. 특히 20대나 30대 초반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지점이 커 보인다. 대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발돋움하는 또 한 번의 사춘기를 거치는 시기에는 기쁜 일보다 우울한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이드 아웃 2>는 각자의 사춘기를 되짚어 보고, 지금의 자기 상황도 투영하면서 위로를 받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라일리의 성장은 생각보다 더 거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밸이나 코치가 보는 나'보다 '내가 보는 나'가 더 중요하다고 깨닫는다. 그런데 이 교훈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유효하다. SNS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따르는 게 중요해진 현대 사회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즉, <인사이드 아웃 2>는 현대 사회가 나날이 불안 사회가 되어가는 이유까지도 예상치 못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탄탄한 기초공사
이러한 스토리는 <인사이드 아웃 2>의 탄탄한 구조 덕분에 더 잘 전달된다. 아이스하키 규칙을 영리하게 이용한 수미상관 구성이 대표적이다. 아이스하키 반칙 중에는 마이너 페널티가 있다. 상대를 막기 위해 신체나 장비를 과격하게 쓰는 반칙으로, 이 반칙을 범한 선수는 2분간 페널티 박스로 퇴장당한다. 라일리는 영화 시작과 끝에 한 차례씩 마이너 페널티를 범한다. 영화는 이 순간을 활용해 라일리의 사춘기를 요약한다.
사춘기가 오기 전 라일리는 퇴장을 당해도 큰 걱정을 안 한다. 오히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경기에 다시 투입되기를 기다린다. 반면에 사춘기를 본격적으로 겪는 라일리는 다르다. 홀로 페널티 박스에 앉아서 극도의 불안함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러한 공황 상태를 겪었기에 라일리는 한 단계 성장한다. 자기의 단점, 부끄러운 과거, 잘못, 비밀까지도 자각하고 받아들이고 친구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용기를 비로소 낼 수 있다.
이에 더해 자칫 따로 놀 수 있는 라일리와 감정들의 플롯을 이어주는 가교도 메시지의 울림을 극대화한다. 라일리의 플롯은 그녀가 하키 캠프에서 새로운 선배와 친구를 만나며 겪는 변화가 핵심이다. 감정들의 플롯에서는 불안을 비롯한 새 감정이 기쁨과 슬픔 같은 기존의 감정과 만드는 여러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이때 <인사이드 아웃 2>는 라일리와 불안을 '후배'라는 위치에 동기화하면서 유기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다양한 상상력의 명과 암
구조를 탄탄히 잡은 후에는 인테리어를 화려하게 꾸미려 애쓴다. 특히 <인사이드 아웃 2>는 시각 효과나 캐릭터가 전편만큼 신선할 수는 없으니, 화려함과 다양함으로 승부를 보는 듯하다. 이는 일장일단이 있다. 우선 전편보다 다채로워진 시각효과 자체는 인상적이다. 특히 사춘기의 특성에 걸맞게 라일리의 머릿속을 더 정교하게 리모델링하는 과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예를 들어 감정 컨트롤 본부는 사춘기가 되자마자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나는데, 이는 사춘기를 겪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또 라일리가 예전과 달리 비아냥거리거나 냉소하자 '의식의 흐름' 강은 거대한 폭포로 변하기도 한다. 이에 더해 상술한 신념 저장소부터 비밀을 간직한 금고 등 스토리텔링의 배경이 되는 새로운 장소의 등장도 눈길을 끈다.
기존 픽사 작품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시도도 흥미롭다. 금고에 갇힌 다섯 감정이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블루피', '파우치', '랜스 슬래시브레이드' 같은 2D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는 라일리의 과거를 상징하는 장면이자, 3D 애니메이션의 틀을 깨면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같이 안겨주는 순간이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나 <장화신은 고양이 2>처럼 픽사 이외의 스튜디오에서 시도한 연출을 픽사스럽게 응용한 듯 보이기도 한다.
다만 다양한 아이디어가 단점으로 작용하는 대목도 있다. 바로 캐릭터다. 새로운 감정이 넷이나 튀어나오다 보니 응집력이 다소 부족하다. 불안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비중을 받은 캐릭터가 없다시피 할 정도다. 또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특성상 한정된 러닝타임 내에서 여러 캐릭터의 플롯을 다뤄야 하니 템포도 급해진다. 전편에서 빙봉이 사라지는 장면처럼 눈가에 물이 고이게 하는 완급조절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한계 혹은 가능성
이에 더해 사춘기를 다루는 영화라서 남는 아쉬움도 하나 있다. 사춘기의 변화 중 빼놓을 수 없는, 이성 관계에 대한 묘사가 없다시피 하다. 라일리가 밸을 좋아하는 것도 이성애든, 동성애든, 양성애든, 사랑에 관한 내용이라 보기는 어렵다. 롤모델에 대한 동경이자 새로운 우정에 관한 이야기에 가까우니까. 이는 아무래도 가족 단위 타깃 관객과 관람가를 염두에 둔 픽사와 디즈니의 한계가 아닌가 싶은 대목이다.
한편으로는 다음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라는 기대도 할 수 있다. 3편에서 다룰 이야기를 남겨두는 게 아닌가 싶으니까. 1편도 기쁨이 '고작 12살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라고 말하며 끝났지만, 2편에서 바로 13살이 되자마자 사춘기에 접어들었듯이. <인사이드 아웃 2>가 비록 전편만큼의 놀라움을 안겨주지는 못했지만, 형 못지않은 동생이기에 가능한 기대 혹은 상상일지도 모르겠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성인에게도 2분 페널티가 필요할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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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년전 오늘의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이번 주 바로 N년 전, 오늘 개봉한 영화에 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오늘은 무려 12년 전에 개봉한 개리 위닉 감독의 <레터스 투 줄리엣>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네이버 영화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은<샬롯의 거미줄>,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을 연출한 게리 위닉이 연출했으며,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인 타임>의 출연한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풍경이 담겨져 보는 내내 눈이 즐거우며, 테일러 스위프트, 콜비 카레이 등이 OST에 참여해 귀까지 즐겁게 만드는 영화이다.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은 왓챠에서 시청할 수 있으며,
Google Play 무비, 웨이브, Apple TV에서 대여하여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레터스 투 줄리엣>의 T.M.I
1. 실제로도 담벼락에 편지를?
ⓒ 네이버 영화
영화처럼 줄리엣의 집은 존재하지만 담벼락에 편지를 쓰는 공간이 있지는 않고,
내부 박물관에 우체통이 있어서 그곳에 편지를 적어 보낸다고 합니다.
2. 실제 이야기인가?
ⓒ 네이버 영화
영화의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 2006년에 출판된 리즈와 세일 프리드먼의
동명의 책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고 한다.
3. 클레어와 로렌초
ⓒ 네이버 영화
50년 전 사랑에 대한 고민을 적었던 클레어 역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배우와, 클레어의 첫사랑인
로렌초 바르톨리니 역의 프랑코 네로 배우는 실제 부부 사이다.
<레터스 투 줄리엣> 명대사
ⓒ 네이버 영화
사랑에 늦었다는 말은 없어요.
이젠 용기를 내세요. 가슴의 소리를 따라가는 거에요
ⓒ 네이버 영화
난 완벽주의자니까.
그건 겁쟁이라는 말과 같아. 두려워할 필요 없어.
<레터스 투 줄리엣>이 좋았다면?
ⓒ 네이버 영화
아직 <레터스 투 줄리엣> 속 이탈리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시는 분들에게
이탈리아 배경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을 추천드립니다!
<레터스 투 줄리엣>처럼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힐링 영화입니다.
<투스카니의 태양>은 네이버 시리즈온과 Google Play에서 구매 후 시청할 수 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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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탕웨이의 연기가 돋보이는 원더랜드 속 감정 🌟 #영화원더랜드 #탕웨이 #영화리뷰
안녕하세요! 레빗구미입니다!
🐰✨ 오늘은 김태용 감독의 신작 '원더랜드'에 담긴 세 가지 감정을 알려드립니다. 🎥🍿
이번 원더랜드의 평가가 좋지는 못한 상황인데요. 😢🔍
영화 속에 담긴 감정은 잘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저와 함께 영화 속에 담긴 감정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
#탕웨이 #영화리뷰 #원더랜드 #영화감성 #레빗구미 #감정분석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시고 레빗구미의 영화 감성과 함께 매력적인 영화의 세계로 빠져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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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Z세대의 솔직한 연애이야기 ❤ 근데 이제 거기다 영화 얘기를 곁들인...(500일의 썸머, 건축학개론) ?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씨네마사지 비주얼 특집!?
YG 케이플러스의 비주얼 모델들이 떴다!
모델돌 ATO6의 현우와 용국, 모델 출신 배우 고이진 그리고 여연희 까지~
훈훈한 남녀들을 모아놓고 달달한 연애영화를 주물러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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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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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페리 메이슨> 공식 예고편
사설탐정 페리 메이슨은 어린 아기 찰리 도드슨의 납치 및 살해 사건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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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티브 맥퀸 : 더 맨 앤 르망> 메인 예고편
‘빠삐용’에 출연하기 몇 해 전,
1960년대를 대표하던 할리우드 스타 배우 ‘스티브 맥퀸’은
평생의 소원이었던 레이싱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프랑스 ‘르망’으로 떠난다.
질주하는 도로 위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을
스크린으로 전달하고 싶던 그는
영화 제작사를 설립해 직접 감독을 섭외하고
레이싱 카에 개조한 카메라를 설치하며 열의를 보이지만,
늘어나는 촬영 회차와 투자사와의 불화로
영화는 점점 그가 원하는 방향에서 멀어져 간다.
여기에 뜻하지 않던 불의의 사고가 더해져
꿈을 향해 질주하던 그에게 브레이크를 걸고 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