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1-13 13:48:13
1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속편으로 돌아온 <크리미널 스쿼드> 1위 등극!

제라드 버틀러 주연의 <크리미널 스쿼드>가 속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전작과 동일하게 크리스찬 거드게스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크리미널 스쿼드2: 판테라>가 개봉 첫 주 누적 수익 1,550만 달러를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전작은 입소문을 타며 총 4,5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제작비 4,000만 달러가 투입된 이번 속편 역시 비슷한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제라드 버틀러는 전작과 동일하게 빅 닉 역을 맡아 유럽으로 건너가 강도 전문가 도니(오셔 잭슨 주니어)를 추적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한편, 1,320만 달러를 벌어들인 <무파사: 라이온 킹>이 2위를, 국내에서는 큰 호응이 없는 것과 달리 북미에서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수퍼 소닉3>가 누적 수익 2억 달러를 넘기며 3위를 차지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하얼빈>이 여전히 선두를 지키고 있습니다. 3주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전주보다 약 18만 명이 적게 들어 누적관객수 400만 명을 겨우 넘긴 상황입니다.
금주에도 별다른 대작이 개봉하지 않는 상황이기에 이번 주말에도 무난하게 순위권 앞에 위치할 것으로 보이나,
과연 손익분기점인 650만 명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지난주와 동일하게 <소방관>이 2위를 지키고 있으며, <히든페이스> 박지현 주연의 <동화지만 청불입니다>가 새롭게 순위권에 들어 3위를 차지했습니다. 각각 누적 관객 수 370만 명, 10만 명을 기록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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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타인의 고통을 오롯이 공감할 수 있는가?
'당신은 타인의 고통을 오롯이 공감할 수 있는가?’ <리얼 페인>은 제목처럼 ‘고통’과 ‘아픔’에 대해 솔직해서 덜컹거리지만, 그럼에도 따뜻함을 유지하는 탐구 여행이다. 폴란드를 배경으로 생각만 해도 끔찍한 홀로코스트란 과거의 아픔, 매일 고통과의 싸움을 벌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아픔을 병렬로 연결하며, 관객에게 이 문제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건넨다. 영화가 빛나는 건 이 지점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형제는 아니지만 형제처럼 지냈던 사촌 벤지(키에란 컬킨)와의 여행을 결심한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원래 걱정을 달고 살고 소심한 타입인 자신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타입의 벤지와의 여행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번 여행은 남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최근 돌아가신 할머니의 고향 폴란드이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할머니의 아픔을 느껴보고자 역사 투어를 신청한 이들은 타인들과 유적지 탐방을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반된 성격의 둘은 말싸움을 벌이고, 급기야 벤지는 투어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벌인다. 이미 예상했지만, 눈앞에 벌어진 벤지의 독단적 행동에 데이비드는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리얼 페인>은 버디 무비 장르를 차용한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서로 반대되는 성향은 두 인물이 여정을 함께 하면서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버디 무비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극 T와 극 F가 만나서 여행하면 생기는 일들을 보여주는 영상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 진짜 이들은 정말 다르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들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와해되는 순간이 있지만, 가족이라는 핏줄, 함께 잊지 못할 과거를 공유했던 관계를 기억하며, 어떻게든 이 여정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건네면서 서로의 아픔을, 특히 벤지의 아픔을 수면위로 끌어올린다.
연출, 각본, 주연. 1인 3역을 맡은 제시 아이젠버그는 실제로 홀로코스트 생존자 3세대다. 극 중 데이비드와 벤지가 홀로코스트 생존자 3세대로 나온 건 우연이 아니다. 조상들의 아픈 과거와 불안증을 앓고 있는 자신의 아픈 현재를 병합한 이 작품은 그 자신이 생각하는 ‘고통’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해 놓은 듯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투어에서 빚어지는 벤지의 뼈 있는 말들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번 여행은 할머니의 나라이자 고통으로 점철된 자신의 뿌리를 찾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홀로코스트 역사 투어는 기쁨보단 슬픔과 아픔을 오롯이 느끼고자 하는 이들이 모였고, 이들은 유대인, 유대교라는 공통 키워드는 물론, 각자가 안고 있는 아픔을 지닌 인물들이다.
하지만 여느 투어처럼 극 중 투어도 좋은 호텔에서 묵고, 기차 일등석에 오르는 등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들의 아픔을 느끼는 건 그때뿐이다. 이때 벤지는 버럭 화를 내며 한마디 한다. 자신은 일등석에 탈 수 없다고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더불어 다른 투어 지역에서도 과거 역사적 사실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건 과거의 사람들이 가졌던 아픔을 느끼는 과정에 도움이 안 된다고 뼈 있는 말을 내뱉는다. 불손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타인의 고통, 역사적 트라우마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본 것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벤지 또한 아이러니하다. 바르샤바 게통 봉기 기념탑에서 군인 흉내를 내며 사진을 찍거나 티켓 없이 올라탄 기차에서 벌이는 행동들을 보면 그 또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벤지의 공허하면서도 아픔과 슬픔으로 가득찬 눈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홀로코스트의 아픔과 비견될 수 없지만, 그 또한 고통의 늪에 계속 빠져있다. 겉으로는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건 사회적 가면일 뿐이다. 그 안에는 삶의 목적성을 잃고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해 본 초라한 인간이 자리 잡는다. 데이비드는 벤지와 함께 있는 게 그리 좋지 않지만, 내면적으로 힘들어하는 벤지를 위해 자신의 삶을 정지시킨 채 여행을 떠난 것이다.
여정을 함께 하는 동안 데이비드는 벤지의 아픔을 오롯이 공감하지는 못하지만,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의 삶을 지지하는 1인으로서 존재하려 노력한다. 자신도 강박증과 불안증에 시달려 약으로 살아오고는 있지만, 타인의 고통을 놔둘 수는 없는 노릇. 어쩌면 영화는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타인의 아픔을 오롯이 공감할 수는 없지만, 이해하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그 노력이 큰 변화를 낳지 못해도 말이다.
영화의 주동력은 제시 아이젠버그와 키에란 컬린이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배우를 뛰어넘어 이제 작가로서의 행보를 더 기대하게 만든다. 무거운 삶의 고민을 스크린에 옮기면서도 유쾌함과 따뜻함을 잃지 않는 유머는 영화를 계속해서 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마치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응축된 인생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키에란 컬킨의 연기는 발군이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벤지의 조울증 연기를 깊이 있게 보여준 그는 냉온탕을 넘나들는 감정의 온도차를 잘 표현한다. 마지막 그의 눈빛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알다시피 그는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가장 유력한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다.
<리얼 페인>은 답을 주는 객관식 영화는 아니다. 자신만의 답을 찾는 주관식 영화다. 90분 동안 이어지는 이들의 여정이 끝나면 비로소 관객들의 여정이 시작된다. ‘당신은 타인의 고통을 오롯이 공감할 수 있는가?’ 쇼팽의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며, 자기 삶으로 돌아간 데이비드와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 벤지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 답을 찾아보길 바란다.사진 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평점: 3.5 / 5.0
한줄평: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아픔에 대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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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오늘을 미망하는 시선
미망 (Mimang, 2024)
낯선 오늘을 미망하는 시선
개봉일 : 2024.11.20.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 92분
감독 : 김태양
출연 : 이명하, 하성국, 박봉준, 백승진, 정수지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종로 길거리. 한 남자가 통화를 하며 길을 찾고 있다. 그는 자신이 서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가다 보면 알겠지”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그의 말대로 그가 아는 길이 나타난다.
영화 <미망>은 이 남자와 같은 태도로 정처 없이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변화하는 길과 시간 위를. 걸을수록 낯선 길은 익숙한 길로 변하고 멀리 떨어져 있던 시간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다. 참으로 멜랑꼴리한 경험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특히 도시, 서울은 정말 쉴 틈 없이 변화를 반복한다. 정신 차려보면 무언가 사라져 있고 익숙해졌다 싶으면 낯선 무언가가 생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것들이 과거로 빨려 들어가지만 나는 과거로 갈 수 없기에 그것들을 잊은 채 낯선 오늘을 살아간다.
가끔은 이 낯선 오늘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오늘 하루 난 뭘 했지? 오늘 하루가, 오늘 있었던 만남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지?. 그저 시곗바늘을 따라 똑같은 자리를 달린 기분. 이런 찜찜함을 안고 잠들었던 밤이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미망>은 나의 이러한 의구심과 찜찜함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똑같은 자리를 달린 게 아니라는걸, 지금의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나를 잡아줄 변치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미래의 나도 길을 잃지 않을 거라는 걸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든다.
과거 연인이었던 남자와 여자는 길 위에서 재회한다. 어딘가 낯설어진 길과 과거 연인의 모습. 이 길이 맞나, 지금 내가 말 걸려는 사람이 그 사람이 맞나. 두 사람은 반신반의 상태로 그 길을 걷지만 여전한 남자의 걸음걸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 추억 같은 그대로 남아있는 익숙한 것들을 찾아낸다.
두 사람이 다시 각자의 길을 가면서 잠깐의 만남은 다시 과거가 되고 그 위로 현재의 새로운 만남이 덧씌워지지만 남자는 한 가지를 깨닫는다. 오늘 나는 12시부터 12시. 같은 자리로 돌아온 시계가 아닌 어제와 다른 나로서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을.
남자와 여자는 과거를 미망(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 하며 낯선 길 위를 미망(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한다. 그러다 작은 익숙함과 재회하고 자신의 발자취를 미망(멀리 넓게 바라봄) 한다. 마지막 미망은 잠깐의 위로를 주고 그들은 다시 각자의 낯선 길로 발을 돌린다. 미망과 미망과 미망. 낯섦과 익숙함, 인연의 과거와 현재. 이 단어들의 조합은 우리의 인생을 표현하기에 한치 부족함이 없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길이 바뀌고 사랑이 지나가고 서울 극장이 사라지고 친구가 죽는다. 남자와 여자의 마음은 아직 과거에, 서울 극장에, 또 떠난 친구에게 머물고 있는데 변화는 너무 빠르게 일어난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길을 헤맨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
동상 하나에도 얽힌 이야기가 수십 개인데 인연에 얽힌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남자와 여자. 그리고 친구는 추억을 떠올리며 지나간 과거와 새로운 현재를 다시 체감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과정이 그렇게 서글프기만 한 건 아니란 거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에 담긴 추억과 감정들은 오래도록 남는다. 모든 게 변한 길거리의 구석, 좁은 골목 한 편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소우처럼 일부는 유실됐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오래된 영화 <미망인>의 필름처럼. 도시가 변하고 극장이 사라지고 남자가 화가가 되고 친구가 택시 운전사가 되고 또 여자가 엄마가 되어도 지난 추억과 감정은 마음속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있다.
여자의 새 연인은 매번 길을 헤맨다는 여자에게 ‘자세히 보면 변치 않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을 보고 길을 찾으면 된다’고 말한다. 언제나 길 한편을 지키며 보행자들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무언가처럼 변치 않은 추억과 인연은 우리의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맬 때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오늘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어 내 마음속 변치 않는 무언가로 남을지 모르니 실망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며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낯선 길 위에서 여자와 재회했던 남자는 새 연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12시에서 12시. 똑 같은 거 같아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네요.”.
낯설고 허탈한 오늘의 끝에서 <미망>을 만난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12시에서 12시를 지나온 건 어제와 같지만 오늘의 나는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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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다시 돌아올 그대라는 걸 알기에'
오늘은 공부하기가 싫었다. 외우던 단어책을 덮었다. 배고프다. 라면 끓일까? 아냐. 라면은 안 먹어도 될거같아. 그저께 <레 미제라블>을 봤었다. 오늘은 약속이 없다. 막학기를 맞은 대학생이란 이렇게나 심심하다. 올 봄 샀던 옷들을 입고 나가볼까. 여행을 못간다는건 이렇게 갑갑하다. 아예 그 맛을 안들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과 함께 신발을 신었다. 뭘 할지도 생각 안했다. 그냥 무턱대고 앉아있는거다. 이번달 통신사 무료 영화표가 있었다. 이번달에 보려고 계획했던 작품이 하나 더 있었다. 메가박스엔 상영관이 없다. 롯데시네마는 그냥 안간다. 딱 안성맞춤이었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내 계획이 순조롭게 지나갔다.
저벅저벅. 버스에서 내렸다. CGV가 있는 시청에 멍하니 서있었다. 돌아다니고 싶었다. 아무 약속도 없는 날이었다. 자주 가던 꽈배기집이 있었다. 저기 1000원치고 맛있었어.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삼삼오오 누구와 함께 가고 있었다. 누구는 연인이었고 누구는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익숙한 장소가 몇개 보였다. 아. 여기서 누가 알바했었는데. 누구는 또 무슨 일을 했었는데. 오랜만에 오는 시청이었다. 가까이 가기 싫은 곳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가보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영원한 건 없었다. 나도 변했고 세상도 많이 자랐다. 여기 근처 살던 형은 잘 사려나. 있을 때 잘할 걸 그랬나봐. 또 어떤 술집을 지나갔다. 친해지고 싶어 다가가는 걸 잘 못하는 나는 불필요한 오해도 만들어봤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생각났다. 세상에게 하고 싶었던, 속에 있는 말이 많았는데 말이지. 상영시간이 되자 다시 CGV로 돌아갔다. 영화가 시작 할 시간이었다.
<노매드랜드>는 돌아다니는 사람에 관한 영화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초반 도입부부터 아마존에서 근무하는 여자 주인공의 삶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그녀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까. 고장나기 5분전인 밴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화장실은 차 안에 있는 페트병으로 해결한다. 하루 벌어서 하루 끼니 해결한다. 이렇게 고정적인 집이 없는 탓에 주위 사람들의 걱정도 많이 산다. 어떻게 사냐는 말에 어찌저찌 산다고 대답할 뿐인다. 사실 주인공 펀은 말이 좋아 유랑하는 사람이지 홈리스에 가깝다. 자그마한 밴에서 자다가 부지 관리인에게 들켜 쫓겨나기도 하는게 부지기수다. 펀은 어렸을때 부터 이런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펀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자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펀을 기다리는 공동체가 있었다. 같은 노매드들이었다. 영화는 이 공동체가 어떻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갈등이나 화합의 장면이 없다. 그냥 단순히 보여줄 뿐이다. 설명해주지 않는다. 관객이 함께 같이 사는 것 같은 경험을 안겨준다.
난 이 영화의 이런 연출지점이 참 좋았다. 펀에게 동정심을 갖지 않는 연출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영화는 펀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이 세상과 아예 멀어진 사람은 아니다. 그녀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나오기는 하지만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안좋은 일이 일어나느냐? 아니다. 좋은 일도 없지만 부정적인 사건이 영화에 나타나진 않는다. 펀과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줄 뿐이었다. 영화는 이런 평탄한 각본을 통해 '어떻게 살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꼭 좋은 일이나 나쁜일만 일어나야 삶인건 아니다. 감독은 연출을 통해 이런 메세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 같고, 나는 그렇게 이해해서 이 영화가 좋았다. 동정심을 갖지 않는 화법은 이런 이점만 갖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다른 특이점을 갖는다.
어울려 산다는 것. 영화는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 지점에 관해 이야기한다. 다들 그렇겠지만 주변사람들과 허구한 날 싸우면서 살진 않는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좋은 사람들과 항상 무언가를 공유하며 산다. 이 영화처럼 말이다. 영화 안에선 별의 별 사람과 이에 알맞은 일상들을 보여준다. 먼저 떠난 아들을 기리기도 하고, 그릇을 깨먹기도 하고 또 신나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이런 삶을 보여주다 마지막 클라이맥스 한 부분에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부분을 제외하곤 영화는 우리 일상에 있을 법한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난 감독이 이 연출지점을 통해 관객의 공감을 얻으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극적인 사건이 있다면 그 사건과 비슷한 일이 있던 사람이 공감할거다. 그런데 에피소드를 통해 이해를 돕는것이 아닌 일상을 보여주는 화법을 썼다. 이렇게 같이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는건 '그래. 나도 저렇게 좋은 주위사람들이 있었지'같은 동질감을 느끼게 하기 위함일거라고 생각한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만약 없다면 이 사람은 미래에 무슨 사건을 겪어 사연이 생길 예정일테지.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상처를 감당하고 이겨낸 후의 입장일거다. 영화는 이렇게 각자가 갖고 있는 삶의 공통점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시끄러운 속사정을 최소화하고 현재에 집중해 관객에게 '당신이 겪는 소소한 힐링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극적인 사건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영화 후반부의 명대사 '영원한 안녕이란 없다. 언젠가 꼭 만나게 될 테니까'란 대사도 주인공과 한 인물이 대화하다 나온 말이다. 이렇게 우리 삶의 대부분의 기쁨은 관계에서 온다. 영화는 이를 보여주기 위해 과거를 괄호치고 현재만 보여줘서 우리에게 어울려 산다는게 어떤 힘을 주는지를 말해준다. 신선한 화법이다.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지 않고 '그래. 나도 저런 사람이 주위에 있지' 생각이 들게 하는거다. 그것만으로도 난 기분이 좋아졌다. 노매드랜드는 이런 특장점을 가지고 우리의 내면에 다가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상에게 하고 싶던 말이 생각났다. 하지 못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우리는 주위에 누군가가 있어서 살 수 있다. 그것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기억하고 싶은 사람 얼굴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직 작별인사를 하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영화가 이 생각에 힘을 보태줬다. 이 영화처럼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때 쯤이면 서로 웃으면서 볼 수 있겠지. 좋은 영화다. 아마 영화를 보는 사람들 모두 나처럼 함께 있거나 떠나보낸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이유가 있는 작품이었다. 볼까말까 고민 많이 했었는데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어서 기분이 좋았다. 아마 메이저 시상식에서 적지 않게 상을 타게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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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6회 칸 영화제 한국 초청 영화 '7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5월 16일 (화) ~ 5월 27일 (토)까지 진행되는 칸 영화제! 시작과 동시에 전 세계 영화인들과 셀럽들이 모여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올해 칸영화제는 총 '7편'의 한국 영화가 초청되었습니다!
어떤 작품일지 지금 바로 만나 보시죠!
비경쟁 부문 초청
(1) 장편영화
화란
Hopeless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개요: 느와르
감독: 김창훈
출연: 홍사빈, 송중기, 김형서
개봉: 2023 예정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소개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
issue
제76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초청작! 송중기의 첫 칸 진출작이자 김형서(비비), 홍사빈이 함께 참여해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신세계', '무뢰한', '아수라', '헌트' 등을 통해 강렬한 재미를 담보하는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선보여온 사나이픽처스의 신작인 점에서
'느와르'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에게 더욱 기대를 높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영화 <화란>은 희망 없는 세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탄탄한 드라마와 밀도 높은 연출로 그려낸 깊고 강렬한 누아르 드라마로 올해 개봉 예정입니다.
잠
Sleep
ⓒ롯데엔터테인먼트
개요: 미스터리
감독: 유재선
출연: 정유미, 이선균
개봉: 2023 예정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소개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와 수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issue
제76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초청작 영화 <잠>.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신인 감독에게 수여하는 황금 카메라상 후보에 올랐으며
특히 배우 이선균은 <기생충>이후 4년 만에 또 한번 공식 초청된 점에서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영화 <잠>은 올해 가을 개봉 예정입니다.
거미집
COBWEB
ⓒ㈜바른손이앤에이개요: 드라마
감독: 김지운
출연: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개봉: 2023 예정
배급: ㈜바른손이앤에이
ⓒ㈜바른손이앤에이
소개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는 영화
issue !
제76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초청작 <거미집>.
영화 <밀정> <악마를 보았다>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 <달콤한 인생>, <장화, 홍련>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의 신작입니다.
특히 '밀정'과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에서 함께 호호흡을 맞춘 배우 송강호,
<장화홍련> 이후 다시 만난 배우 임수정이 합류해 더욱 기대감을 모으고 있습니다.
영화 <거미집>은 폐막 직전인 25일 밤 월드 프리미어가 편성 돼 영화제의 대미를 장식할 전망입니다.
탈출: PROJECT SILENCE
(PROJECT SILENCE)
ⓒCJ ENM
개요: 스릴러
감독: 김태곤
출연: 이선균, 주지훈, 김희원, 문성근, 예수정, 김태우, 박희본, 박주현, 김수안
개봉: 2023 예정
배급: CJ ENM
ⓒCJ ENM
소개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속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고립된 사람들이
예기치 못한 연쇄 재난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
issue
제76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은 액션, 스릴러, 공포 등 장르적 색채가 뚜렷한 작품을
상영하는 칸 국제영화제 공식 프로그램으로 장르물로서의 기대감이 더욱 증폭되고 있습니다.
<기생충> 이선균과 <신과함께> 시리즈 주지훈, 천만 배우들이 의기투합한 것을 비롯해
김희원, 문성근, 예수정, 김태우, 박희본, 박주현, 김수안까지
세대 불문, 다양한 개성과 매력을 겸비한 배우들이 합류해
완벽한 연기 앙상블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개봉일은 2023년 예정입니다.
우리의 하루
PROJECT SILENCE
ⓒMichele Tantussi / Reuters
(포스터 추후 공개 예정)
개요: -
감독: 홍상수
출연: 김민희, 기주봉, 송선미
개봉: 2023 예정
배급: -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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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홍상수 감독의 신작으로 제76회 칸영화제 감독주간 폐막작으로 선정!
올해 하반기 개봉 예정으로 줄거리는 추후 공개될 예정입니다.
라 시네프 부문
(1) 단편영화
이씨 가문의 형제들
Issi gamunui hyeongjedeul
ⓒ센트럴파크
개요: 드라마
감독: 서정미
소개
할아버지의 유일한 유산인 시골집이 장손에게 넘어갔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엄마는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
issue
영화학교 학생들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라 시네프 부문에 초청된 영화 <이씨 가문의 형제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서정미 감독의 졸업작품이며
서 감독은 '소영의 영화'로 제40회 청룡영화상 단편영화상 후보에 오른 바 있습니다.
홀
hole
ⓒkafa
개요: 스릴러
감독: 황혜인
소개
신입 사회복지사가 점검 차 방문한 남매의 집에서 커다란 맨홀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스릴러.
issue !
영화 <홀>은 한국영화아카데미 황혜인 감독의 작품으로 라 시네프 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라 시네프 섹션의 아티스틱 디렉터 디미트라 카르야(Dimitra Karya)는 <홀>에 대해
“매우 잘 연출되고 절제된, 설득력 있는 스릴러 ”라며 극찬을 표해 더욱 기대가 되는
단편 영화입니다.
이렇게 총 7편의 한국영화 초청작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추후 더욱 유익하고 재미난 영화 소식으로 찾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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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미나리
다시, 미나리
'미나리'를 두 번 봤다. 처음 볼 때보다 감동이 더 크다. 처음에는 줄거리, 서사의 의미, 인물들의 관계와 생각, 풍경, 음악 등이 눈에 들어왔다면, 두 번째는 그 모든 요소들 가운데서 특히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은 세계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꼽힌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이 영화는 지루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난해하고 느린 영화지만, 한국에서는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는데, 이 난해한 영화를 본 관객이 10만 명이 넘었다는 것이 외국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으니, 한국 관객의 수준이 꽤 높다는 걸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희생'에서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 안드레이는 자기의 집을 불태운다. 그가 자기의 집에 불을 지르는 까닭은 그가 신과 일방으로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알렉산더에게는 늦둥이 아들이 있는데, 실어증이 있다. 그는 아들을 데리고 죽은 나무에 물을 주며 정성을 다하면 죽은 나무도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알렉산더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을 각오한다.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이 다가오고, 세계가 멸망할 위기가 닥치자 알렉산더는 우체부의 말을 듣고 자기 집 파출부인 '마리아'와 동침한다. 이때 우체부는 예수를 인도한 '세례자 요한'의 상징이며, 파출부 '마리아'는 예수를 따르던 '막달라 마리아'를 상징한다. 알렉산더는 3차 세계대전과 지구 멸망을 막는 '예수'의 현현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런 모든 관계와 서사가 알렉산더의 망상일 거라는 암시도 없지 않다.
알렉산더는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 집에 불을 지르는데, 이때 '불'은 '정화'의 상징을 갖는다.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불태워 깨끗하게 만드는 상징으로써 불은 고대부터 현재까지도 은유와 상징으로 작용하는데, 불은 고대부터 신성한 존재이자 신의 현현이며, 불가사의하고 위대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 폐허를 만들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을 키운다는 점에서 혁명이기도 하다. 과거를 불태우는 혁명, 자기 자신을 태워 희생하면서도 그 속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진정한 혁명성이 '불'이다.
불은 '악'으로 상징하는 모든 더러운 것들, 불길한 기운, 악령, 저주, 죽음, 원한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태우고 정화한다. 이창동의 '버닝'에서 '벤'은 불을 지르면서 쾌감을 얻는데, '더러운 것들을 태우면서 뼛속까지 울리는 베이스의 선율'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벤은 낡은 비닐하우스에 불을 지르겠다는 말을 종수에게 하는데, 종수는 벤이 방화범이자 여성들만 노리는 연쇄살인범이라고 판단하고 - 그럴만한 근거는 있지만 확실한 물증은 없는 상태에서 - 벤을 살해하고 그와 그의 차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다.
벤이 쾌락을 느끼기 위해 지르는 불은 사실은 자기가 살해한 여성의 시신까지를 태워 범죄의 증거를 없애려는 행위였다면, 종수가 벤을 살해하고 그의 몸과 자동차를 불로 태우는 것은 '신'의 행위를 대리하는 복수의 행위라는 것이 다르다.
종수의 '불'은 해미의 실종과 벤의 수상한 행동들, 벤이 한 '이미 태웠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인해 해미의 실종은 벤이 해미를 살해한 것으로 연결되면서, '악'을 응징하는 수단으로 '불'을 선택한다. 벤이 했던 말,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과 해미의 시신까지 태웠을 거라는 암시로 분노와 증오의 마음을 담아 해미의 복수로 벤을 살해하고 그를 불태운다.
'미나리'에서 채소저장고에 불이 옮겨 붙는 건 할머니의 실수 때문이지만, 할머니는 가족을 위해 선의를 갖고 한 행동이었고 할머니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진다. 이때 제이콥과 모니카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불이 붙는 장면을 발견하고 급하게 수확한 채소를 꺼내려 하지만 결국 몸만 겨우 빠져나온다.
불을 발견하기 직전까지 제이콥과 모니카는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가족보다는 농장과 채소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는 제이콥이 모니카는 못마땅하고, 제이콥은 결코 과거의 병아리 감별사로 인생을 끝내지는 않겠노라고 결심했기 때문에 농장을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두 사람의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하필 할머니의 실수로 일어난 불이 채소저장고를 태우고, 이 불속을 뛰어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불과 연기 속에서 함께 고통을 겪으며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갈등이 불과 함께 타버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이콥의 피와 땀이 담긴 채소저장고는 불에 탔지만, 그로 인해 가족은 더욱 단단하게 뭉치고, 갈등은 스러지며, 삶의 한 고비와 단계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자신의 실수로 채소저장고가 불에 타자 할머니는 절망과 죄책감으로 가족을 떠나려 한다. 이때 데이빗이 달려가면서 할머니에게 '우리집으로 가요'라고 말한다. 데이빗이 뛸 수 있다는 것은 가족에게 커다란 희망이자 기쁨이다. 할머니는 뇌졸증을 앓지만 데이빗은 건강해지고, 제이콥의 채소 농사는 위기를 겪지만, 할머니가 심은 미나리는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미나리는 제이콥에게 희망이고 삶의 근거가 된다. 미나리와 함께 제이콥의 가족은 낯선 땅 미국에서 미나리처럼 뿌리내리게 될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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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궤도에서 벗어난 ‘탈주’, 도착만 하면 끝?
살아야 하는 이유
이 영화의 주인공은 북한군 군인 규남(이제훈)이다. 전역이 코앞이다. 10년간의 긴 레이스였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규남. 북한사회라고 하더라도 내가 내 인생을 가로지를 수 있다는 것 하나만 믿고 지루한 시간을 견뎌왔다. 사실 규남은 혼자다. 어머니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규남이 이래서인지 동생 같은 동혁(홍사빈)에겐 진심이다. 멀리서 보면 형제 같은 두 남자. 언젠가 둘 다 군을 떠나기 때문에 이별이 아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남자 규남과 동혁은 같은 속마음을 갖고 있었다. 바로 북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유를 억제하는 북한에서 벗어나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었던 규남. 어머니가 보고 싶었던 동혁. 두 남자는 사실 자유에 대해 거대한 갈망을 품고 있었다. 비가 오던 날, 동혁과 규남은 탈주를 계획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쫓아가는 또 다른 주인공 현상(구교환). 처절한 탈주극이 남북의 군사분계선에서 벌어진다.
내가 주인공인데
이 영화에서 설명이 가장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은 소위 말하는 '주인공 버프'다. 사실 이런 장르에 있어 주인공 버프는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당연히 추격전이라는 특성을 살려 1시간 40분 동안 끌고 가려면 두 주인공이 살아야 하지 않겠어? 팬데믹 시기에 개봉했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나 추격물의 근본이라고 볼 수 있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이 주인공 버프에 대해 나름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총이 등장하더라도 이게 언제 등장하고 퇴장하는지를 명확하게 표현한다던가 / 애초부터 두 주인공이 대립하는 걸 최소화하고, 그 나머지도 행운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전개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두 인물의 추격전을 강조했다.
이 글에서 정말 중요한 건 이 <탈주>에서 그걸 '어떻게 구현했냐'에 대한 부분이겠지? 이 영화의 주인공 버프는 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영화의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 군인 / 북한 두 곳이기 때문에 총격전이 등장한다는 건 스포일러가 아니라 당연하다(심지어 포스터의 구교환 배우가 총을 잡고 있다). 이 전제 하에 영화가 총격전을 잘 묘사했나?라고 묻는다면 난 아니오다. 그러니까 주인공 버프에 당위성이 떨어져 보이기 쉽다는 뜻이다. 대신 영화가 두 사람의 역동성을 강조한 연출을 보여줬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도자의 위치에서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해도 아-무 지장이 없는 현상이 자유로워 보이는 것을 먼저 생각해 보기로 한다. 다음으론 규남이의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볼 필요가 있는데, 틀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주인공이 공간이 바뀌고 나서 유달리 운동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글쓴이는 이것이 어느 정도는 의도가 있을 거라고 봤다. 규남은 다른 캐릭터들과 다른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이 특징에 대한 관점에서 보면 규남이의 주인공 버프가 그렇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영화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두 가지, 추격전과 자유로운 인물들이란 걸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는 이런 연출들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 깔려있는 영화의 맹점이 있다. <탈주>는 이종필 감독을 위시로 한 편집과 연출에서 속도감 있는 방식으로 화면을 보여줘서 몰입이 잘 되는 쪽이다. 추격전의 측면에서는 합격점을 잘 받았다고 보긴 어렵다. 왜? 앞에서 언급한 주인공 버프가 편의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영화의 액션들이 기본적으로 페널티가 있을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어떤 장면에선 노골적이라고도 볼 수 있을 만큼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이 낡았다. 그리고 영화는 주인공 규남이 군인이라는 설정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역이 코앞에 있는 말년병장이 맞나? 그렇다 보기엔 이 인물은 전투력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 단순히 큰 줄기의 추격극에만 천착해서 중요한 디테일들을 놓친 건 아닐까? 이야기가 꼼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운 선택이었다.
현상 그 자체
글쓴이가 생각하는 탈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현상이라는 캐릭터다. 여기저기 신경 쓸게 많은 규남과는 달리 현상은 단순하다. 그냥 규남과 동혁을 잡으면 그만이다. 이 간단한 설명 덕에 영화에서 해결할 것들이 별로 없다. 이런 이유로 이 인물은 북한사회를 표현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냥 극 중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그러니까 두 사람을 추격하기만 해도 영화가 설명하고자 하는 바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데, 극 중에 묘사가 되기도 하지만 북한 사회는 개개인의 목표를 짓밟고 집단을 강조한다. 영화가 이걸 내내 강조하는데 정작 현상은 자유롭게 움직인다? 이건 영화가 대놓고 고위공직자들에겐 관대한 북한사회를 꼬집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후반부에 굉장히 구체적으로 보여주기도 하는데 지뢰에 대한 장면 이에 해당한다. 고위관리는 지뢰를 밟지 않지만 그 아랫사람들은 그것을 밟는다. 이 세계는 자유가 있는 사람에게 동력을 준다는 걸 두 인물의 대비로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화룡점정. 현상이 북한사회를 드러낸다는 묘사는 인물의 대사에도 직접적으로 나온다. 후반부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하는 말 몇 줄은 현재를 관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영화가 북한사회를 블랙 코미디처럼 풍자한 것도 흥미로웠다. 대표적으로 휴대전화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영화 초반 동혁이가 처한 문제를 보여준다. 바로 연락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중반즈음에 영화에서 스마트폰이 나온다. 그러다가 어떤 인물은 폴더폰을 갖고 다닌다. 후반부에선 라디오와 관련된 묘사가 나온다. 이런 식으로 영화가 특정 소재를 반복하면서 누구는 누리지만 누구는 못 느끼는 걸 영화가 보여준다. 어떤 장면에선 카메라로 이 인물들이 가진 우스꽝스러움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어떤 인물은 집단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다른 부분에선 개개인을 집중적으로 들추며 조롱한다. 이 집단에 대한 부분도 영화가 기괴한 방식으로 인물들을 촬영했는데 조롱하듯이 북한사회를 공격하는 영화의 톤에 생동감을 더하는 선택이었다.
이상한 퇴장
윗문단의 연장선상에서 쓴다. 이 영화는 추격전이라는 장르적인 특성을 이으려다가 갑자기 포기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첫째. 영화의 세 번째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동혁의 동선은 철저하게 비현실적이다. 이 인물이 이렇게 길게 나올 일인가? 일찍 나올 거면 기존에 이 인물에게 정해져 있는 분량보다 더 빠르게 퇴장하는 게 적당했다. 아니면 차라리 길게 오래 끌어서 이 인물이 왜 탈주해야 하고 절실한지를 설명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글쓴이는 이 원인이 단순히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만들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관습적으로 영화를 봐왔던 습성에 기대 인물을 묘사하니 플롯에 구멍이 많았다. 이 구멍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추격하는 이야기라는 영화의 플롯에 전적으로 방해가 됐다. 이 사람이 쫓기는 이유, 쫓는 이유가 겉으론 분명할지 몰라도 어색하면 안 된다. '왜'의 필요성을 관객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면 장르적인 재미로는 생생하지만 밀도 높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보긴 어렵다. <탈주>는 여기에 어느 정도는 기댄 듯했다.
그리고 글쓴이가 이 <탈주>의 세계관에서 가장 큰 이물질이라고 생각했던 것. 두 특별출연이다. 이 영화는 사실상 북한이라는 시스템과 한 개인의 추격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전작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기업과 개인과의 대립을 보여준 것에서 더 큰 갈등을 묘사한 것이다. 그럼 정확하게 시스템과 인물만 있어야 영화 안에 장애물이 없다. 당연하지. 시스템을 시각적으로 대놓고 보여줄 수는 없으니 규모의 이미지든 뭐든 사실적으로 표현하려면 인물을 나누는 것도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다. 작위적이라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북한이라는 소재를 다룬 이상 그 세계의 경직이 작위적으로 느껴지게 그릴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글쓴이의 이런 관점에서 특별출연으로 나온 두 인물은 작위적이지 않기 위해 작위적인 것을 선택한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여성 캐릭터. 이 캐릭터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뭐가 됐든 간에 이런 일을 하는 인물들은 사실 원하는 바가 정해져 있다. 영화는 이걸 놀라울 정도로 무시한다. 단지 이야기에서 편향되지 않기 위해, 인물들의 행보에 윤활유를 덧붙히기 위해 사용한다. 글쓴이는 동혁이의 분량을 차라리 이 캐릭터에 줬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 인물이 하는 일이든 행보든 잠깐 조연으로 나올 만한 크기의 캐릭터가 아니다. 이 인물은 영화 안의 북한군 고위간부를 하나하나 암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영화 안에서 받은 역할이나 활용법이나 마무리를 확실하게 짓지 못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엔딩은 너무 많은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허점이 너무 많아 보인다. 어떤 인물이 특정한 판단을 보여준다. 그 판단에 대해 한 인물이 리액션을 보여준다. 그 두 행동은 반향이 클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이 상황을 해소하는 방식도 편의 적었지만 이 판단을 위한 인물의 내면도 어딘가 모순이 많다. '걔들이라면 원래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야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장면 바로 다음도 인물이 가진 현실성이 굉장히 떨어져 보인다. 대신 한국 상업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마무리방식을 선택했다. 차라리 이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끝냈으면 이 영화만의 개성이 더 생겼을 듯하다.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
글쓴이가 이 <탈주>를 보고 나서 든 생각. 이종필 감독의 전작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한번 더 보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힘이 빡 들어간 감상적인 부분. 따뜻한 감성. 은근히 트렌디한 감각까지 이 영화의 메가폰을 맡은 이종필 감독은 다시 한번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운명과 맞서 싸운다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덕목이 있다. 운명이 좋은 운명인데 주인공이 맞서 싸울리는 없다. 당연히 한국사회가 낳은 부조리 중 하나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럼 사실적인 묘사에 설득력 있는 플롯이 필요하지 않을까?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이 단점을 잘 소화했다? 글쓴이는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그럼 이번에 잘하면 그만이다. 이걸 생각했을 때를 관점으로 봐도 이 <탈주>는 단점이 더 많았다. 왜? 이야기에서 이 연출 의도를 견지하려면 사실적인 대한민국(이 영화에선 북한까지 포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북한의 모습에'만' 솔직하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엔 운이 가장 크게 작동한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영화가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려다가 만 느낌이 강한 이유가 된다. 그래서 영화가 반쪽짜리 성공처럼 느껴진다. 이제훈, 구교환, 홍사빈 세 사람이 연말 시상식에서 이름을 올릴 것 같다는 거 말고는 새로울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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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보다 별로라고? / 여전히 기발한 연출의 병맛 영화 / 웹툰 암살요원 준 시즌 2 / 권상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히트맨 2"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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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틀로얄: 러버스> 예고편
눈을 뜨면, 죽음의 게임이 시작된다!
납치된 학생들이 낯선 건물에 감금당한 채 죽음의 게임을 강요 받는다.
더 복잡해진 게임의 룰 속에서 학생들은 하나 둘 희생되고
게임을 운영하는 운영자들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 학생들은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된다.
하지만 죽음의 게임에서 벗어 날 수는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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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피터팬 & 웬디> 티저 예고편
피터 팬과 함께 떠나는 미지의 세계 네버랜드! 모두가 사랑한 마법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디즈니+ 오리지널 영화 [피터팬 & 웬디] 티저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