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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DAY2025-01-16 17:15:28

페라리 | 경로를 이탈한 집착과 욕망의 레이싱카

<페라리>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57년 여름, 페라리의 창립자 '엔초 페라리'(아담 드라이버)는 위기에 처한다. 좀처럼 차가 팔리지 않으면서 회사가 존폐의 기로에 선 것. 이에 더해 엔초가 사랑하는 두 여자도 그를 괴롭게 한다. 아내이자 동업자인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는 엔초의 외도를 문제 삼아 회사의 지분을 무기로 사용하고, 애인 '리나'(셰일린 우들리)는 아들 피에로를 좀처럼 '페라리'로 인정하지 않는 엔초와 사이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이에 엔초는 대담한 계획을 세운다. 포드를 비롯해 다른 자동차 회사의 투자 제의를 받아들이자는 의견은 거부한다. 대신 가장 빠르다는 드라이버를 모집하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전역 공도를 가로지르는 1,000마일 레이스 '밀레 밀리아'에서 우승하기 위해.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 우승한 레이스카의 판매량이 오를 테고,  높아진 명망은 시끄러운 개인사를 충분히 덮어줄 테니까. 

 

브런치 글 이미지 1

 

애매하게 걸친 양다리

전기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인물 중심 또는 사건 중심이다. 전자는 연대기적 구성이다. 한 인물을 유년 시절부터 관찰하면서 그의 생애를 보여주는 식이다. <보헤미안 랩소디>, <프리실라> 등이 해당된다. 후자는 <소셜 네트워크>, <스티브 잡스>, <오펜하이머>와 같은 영화를 말한다. 특정 사건을 통해 한 인물의 여러 면모를 동시다발적으로 관찰하는 방식으로, 그림으로 말하자면 피카소의 입체주의와 같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주변 인물의 활용법이다. 전자는 철저히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춘다.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그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후자는 다르다. 주인공도 중요하지만, 주인공과 관계를 맺는 조연들의 역할이 더 크다. 다양한 주변인과의 관계 속에 그의 생애, 가치관, 변화를 녹여서 보여줄 수 있으니까. <오펜하이머>에서 오펜하이머 못지않게 스트로스, 그로브스, 키티와 같은 조연들이 빛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마이클 만의 신작 <페라리>는 이 차이점을 간과한 듯하다. <페라리>는 페라리의 창립자인 엔초 페라리가 1957년 '밀레 밀리아' 레이스를 앞둔 상황을 다룬다. 즉, 사건 중심의 방식을 선택한 전기영화다. 문제는 철저히 엔초 페라리의 관점에서만 이야기를 전개했다는 것. 이처럼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 소재와 사건 자체는 나름 자극적이고 흥미로운데도 불구하고 <페라리>는 무미건조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엔초의 다른 이름, 집착

극 중 엔초 페라리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집착이다. 그는 카 레이싱에 집착한다. 레이싱 드라이버 출신인 그에게는 회사마저도 카 레이싱 경기에 참여하고 승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회사의 경영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마저도 카 레이싱에서 찾는다. 그에게는 '밀레 밀리아'가 해결책이다. 레이스에서 이기면 우승한 차를 더 많이 팔아서 경영 실적을 개선할 수 있을 테니까. 

 

반면에 포드와 같은 다른 자동차 회사로부터 투자를 받는 선택지는 그에게 무의미하다. 외부 자본이 개입하는 순간, 엔초 페라리는 회사의 주도권을 온전히 가질 수 없으니까. 이는 곧 회사 차원에서 레이싱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는 의미이므로 엔초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는 대신 더 빠른 드라이버를 찾는 데에 혈안이 된다. 

 

<페라리>는 엔초의 집착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기어코 레이싱에서 우승을 차지한 끝에 페라리라는 이름도, 레이싱을 우선시하는 자동차 회사도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와 동시에 레이싱만 바라보는 집착은 결실 이상의 피해를 초래한다. 시험 운행 중 문제가 드러난 차를 그대로 본 시합에 투입한 결과 드라이버와 관중 모두 피를 보고 만다. 이처럼 엔초의 집착과 열망은 명암이 분명히 갈리기에 뇌리에 더욱 각인된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마이클 만의 짙은 그림자

흥미롭게도 엔초의 집착은 유달리 타인과의 관계에서 강조된다. 그는 페라리를 위해서라면 진심으로 사랑한 두 여자와의 약속을 모두 저버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들 '디노'를 잃은 후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던 라우라가 얼핏 드러낸 진심을 이용해서는 자금을 융통한다. 피에로를 아들로 인정할 것처럼 굴면서 리나의 기대감을 키우다가 배신하면서 회사와 자기 명망을 지키기도 한다. 

 

즉, <페라리>는 집착 때문에 주변 사람을 소모품으로 대하면서도 그 집착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욕망을 꿰뚫어 볼 줄도 아는, 복잡 미묘한 사람에 관한 캐릭터쇼인 셈이다. 이는 엔초 페라리의 서사에서 마이클 만 특유의 매력이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게 가장 전형적이고 극단적인 남성이다. 그들은 자신의 일이나 의무 때문에 가족에게, 애인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거나 끝없이 갈등을 빚는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맡은 일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다. 

 

마이클 만의 필모그래피는 이 남성들이 겪는 의무감, 고초, 인생 풍파, 후회로 가득하다. 특히 그들의 심경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행동 위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앞뒤 설명 없이 레이스에서 우승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엔초의 모습을 건조하게 보여주는 <페라리> 또한 마찬가지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드라마와 형식의 부조화

문제는 마이클 만 특유의 드라마가 형식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 <페라리>는 '밀레 밀리아'라는 사건을 대하는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조합해 엔초 페라리를 그려내는 영화다. 라우라와 리나를 비롯해 여러 드라이버의 서사가 한 데 모였을 때 엔초가 얼마나 레이싱에 미쳐 있는 사람인지 묘사되는 구성인 셈이다. 그래야만 그의 집착이 갖는 양방향성도 더 입체적으로 제시될 수 있다. 

 

그 구성을 채워야 할 내용도 명확했다. 사랑은 식었지만, 사업 파트너이며 긴 세월을 함께한 아내. 아들을 낳아줬고,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애인. 목숨을 건 경쟁에 본인을 대신해서 뛰어들어야 하는 선수들. 엔초는 그들의 요구, 욕망, 그리고 삶의 무게를 떠안은 채로 매 순간 압박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페라리>는 위의 내용을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 엔초가 다른 이들과 상호작용하는 장면은 많지 않다. 설령 갈등을 빚더라도, 그의 시점에서 이유를 보여준 뒤 그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식으로 갈무리한다. 그 결과 주변 캐릭터들은 엔초의 난관일 뿐이고, 복잡해 보였던 그의 인간관계도 평이해진다. 엔초가 피에로를 데리고 '디노'의 묘를 방문하는 결말로부터 특별한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일견 자극적인 소재도 빛을 잃는다. 외도 후 약속보다 늦게 집에 들어온 엔초에게 라우라가 권총을 쏘는 오프닝까지만 해도 재벌가의 사생활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내 엔초의 이기심으로 말미암은 여자 문제, 출생의 비밀과 같은 소재의 원초적인 매력은 이내 무미건조해진다. 라우라도, 리나도 그저 들러리에 불과해지니 엔초의 난잡한 사생활은 익숙한 막장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공허한 레이싱

만약 후반부를 장식한 레이스 시퀀스가 강렬했다면 상술한 문제들은 덮어졌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레이싱 장면은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역할을 나름 충실히 해낸다. 페라리의 레이싱카 중 하나가 전복될 때, 순간적으로 음향을 소거하면서 긴장감과 몰입도를 극도로 끌어올리는 식이다. 이에 더해 도심 한가운데에 짚단으로 레이싱 트랙을 만드는 것과 같은 수십 년 전 모습을 사실적으로 연출한 디테일도 신선한 볼거리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다. 레이스의 존재 자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극 중 드라이버들은 엔초의 대리인에 불과하다. 누가 1등을 하는가 보다는 빨간 차가 1등을 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레이스 안에서 페라리 드라이버끼리 펼치는 경쟁은 애초에 흥미도, 절박함도 유발하지 못한다. 이는 마이클 만이 기획한 <포드 V 페라리>에 비해 <페라리>의 레이스 시퀀스가 유독 밋밋한 결정적인 원인이다. 

 

결과적으로 <페라리>는 레이싱 영화로서의 쾌감이나 박진감도, 막장 드라마로서의 원초적인 자극도 모두 놓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전기 영화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데 그치고 만다. 엔초 페라리라는 인물이 얼마나 레이싱에 진심이었는지를, 또 페라리라는 브랜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실존 인물을 되살린 것 같은 애덤 드라이버, 페넬로페 크루즈, 셰일린 우들리의 열연이 아까울 따름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Poor 형편없음 

르망 24시에 F1 레이스카로 출전한 꼴 

작성자 . KinoDAY

출처 . https://blog.naver.com/potter1113/22372788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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