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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5-01-22 07:36:55

〈타인의 삶〉에서 이어지는 한 방울의 눈물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

브런치 글 이미지 1

 

〈타인의 삶〉(2007)에서, 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는 극작가와 배우 커플을 도청하며 감시하다 어느새 그들의 예술에 감화되어 남몰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두 사람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영화에서, 비즐러가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시대의 지배적 담론과 그에 부착된 권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결코 인간 내면을 완전히 잠식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로 제시된다. 비즐러가 반체제 인사를 감시하는, 사상이 투철한 인물이라는 점은 그 눈물 한 방울의 가치를 더욱 극화한다. 어둡고 칙칙한 공간에서 도청하던 그가 홀로 전율하며 흐르는 한 방울의 눈물은 체제에 속한 사람의 내면에조차 잠식당하지 않은 공간이 있음을 폭로하고, 우리가 ‘인간다움’이라 부를 만한 것이 바로 그 공간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카라바조의 그림자〉는 비즐러의 눈물을 16세기의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에게 헌사한다. 교황의 명령을 받은 한 남자가 있다. ‘그림자’로 불리는 그는 카라바조가 일으킨 파문을 객관적으로 조사할 임무를 명받는다. 난폭한 성격의 카라바조는 살인죄를 저지르고 도피하다 사면을 기다리는 중이다. 한편에서는 신성을 모독하고 실정법을 위반한 카라바조를 빨리 처형하라는 요구가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카라바조의 재능을 알아본 몇몇 귀족, 심지어 추기경까지 교황에게 카라바조의 사면을 청하고 있다. 그림자는 이 상황에서 카라바조 사건을 면밀히 추적한다. ‘객관적’ 진실에 가 닿가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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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바조는 고통받는 자들에게서 예술을 길어왔다. 수감자, 가난하고 병든 자, 창녀를 종교화의 모델로 썼다. 그의 모델이 된 ‘비천한’ 사람들은 자신도 신성할 수 있는 존재라는 가능성에 고무되고 여기에 자부심을 느낀다. 동시에 카라바조는 난폭하고 ‘저속’하다. 향락에 젖은 파티를 일삼고 소년과 남색을 벌인다는 혐의도 받는다. 반대자들은 카라바조를 ‘악마’라고 부르고, 그를 지지하는 추기경이 ‘타락’했다며 비난한다.

 

  ‘객관적’ 조사를 명받기는 했으나, 그림자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인물이다.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지엄해야 한다고 믿고, 도덕적 정결이 그 권위를 지탱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짐작 가능하듯, 그림자는 카라바조의 삶과 예술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메스꺼움과 매혹을 동시에 느낀다. 메스꺼움은 카라바조가 예술로 묶어낸 ‘빈자들의 교회’라는 집단 감각이 로마 교회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본능적 위기감에서 나온다. 카라바조가 기존의 미술 학교, 아카데미 소속 인물과 그들의 화풍에 반기를 드는 것도 카라바조의 반체제성에 대한 그림자의 의혹을 돋운다. 반면 매혹은 자기 신념과 반대될지라도 도저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예술적 재능과 그 재능이 그림자의 마음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나온다.

 

  모든 조사를 마친 그림자는 카라바조와 대면한 최후의 장면에서, 자신의 신념과 마음을 저울질한 후 나름의 결단을 내리고, 이후 눈물 한 방울을 흘린다. 후회의 눈물일까? 감동의 눈물일까? 그림자는 비즐러와 같은 것을 느꼈으나 다른 선택을 내렸다. 이렇게 예술과 체제, 권력과 인간의 딜레마에 관한 그럴듯한 드라마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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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한편, 카라바조가 예술가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건 21세기가 아니라 16세기에 태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예술가의 인품, 생활을 작품성과 깊이 연계하는 오늘날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를 둘러싼 스캔들은 더 뜨겁고 격렬했거나 아니면 애초에 예술가로서 자격을 상실해 점화조차 되지 않았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장면은 대개 난폭한 난동꾼인 그가 밑바닥 사람들과 애정 어린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깃든 성령을 포착한 후, 모델로 세우기까지의 몇몇 과정에 대한 묘사였다. 바로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카라바조의 작품이 여전히 빛나는 것일 터다. 그래서 더더욱 헷갈렸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과거의 인물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그와 같은 인물이 다시 등장한다면 어디에 초점을 두고 그를 평가할 것인지에 관해서 말이다. 수 세기 전 그림자가 마주한 고민은 다른 방식으로 계승되어 우리에게 나름의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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