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샤2024-09-09 22:22:17
장하지 못한 장손들의 연대기
영화 <장손> 리뷰
둘 이상의 형제자매 관계에서 맏이란 무엇일까? 가장 먼저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동생(들)이 태어난 후에는 관심 독점 체제에서 벗어나 자유 경쟁 상태에 내몰리는 것이 맏이다. 이것이 전 세계의 모든 인간 사회에서 맏이가 감내해야 하는 보편적 숙명이라고 한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맏이의 의미가 사뭇 더 엄중하다. 한국의 가족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맏이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책임감'이 아닐까 싶다. 학업을 포기한 맏딸이 남동생의 대학교 학비를 벌기 위해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사태는 이제 거의 없겠지만 오늘날에도 맏딸이나 맏아들은 다른 형제자매들에 비해 부모님께 효도하고 집안이 기울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는 은근한 압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맏이와 장손은 또 다르다. 맏이는 딸일 수도 있고 아들일 수도 있지만 장손은 보통 아들만을 지칭한다. 장손은 부계사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존재 중 하나다. 가족을 가장 중시하는 집안에서 장손은 자신이 누리는 혜택의 크기만큼 거대한 중압감에 시달린다. 게다가 영화 <장손>의 주인공 '성진(강승호 분)'처럼 3대 독자라면? 더군다나 성진의 할아버지 '승필(우상전 분)'이 가족주의의 전통이 강고한 경상도 어느 지역에서 두부 공장을 세워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면? 성진은 부모님을 살뜰히 모시고 조상들의 제사를 챙기는 정도를 넘어서 가업을 승계하고 온 가족을 짊어져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모든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야 이야기가 동력을 얻어 전진할 수 있다. 성진도 현재 아버지 '태근(오만석 분)'이 운영 중인 두부 회사 '대명'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선포한다. 성진은 두부 공장 사장보다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고, 장손 역할이 못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전날에 과음한 후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의 합동 제삿날에 최대한 늦게 할아버지 댁으로 내려온 성진에게 가족은 택시에서의 구토처럼 게워 내고 싶은 부담 덩어리일지 모른다.
영화 <장손>은 성진과 가족들이 증조부와 증조모의 합동 제사와 할머니 '말녀(손숙 분)'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발생하는 사건들을 두부처럼 담백하게 맛보게 해 준다. 쉽게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비극과 상처가 불거지고 여느 가족들처럼 영화 속 인물들도 다투지만 관객은 차분한 성진의 시점을 따라가며 이 가족의 역사를 관찰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 승필과 아버지 태근이 겪어야 했던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스친다. 그래서 어쩌면 영화 <장손>은 장하지 못한 장손들의 연대기다.
뛰어난 앙상블을 보여 준 배우들 사이에서 아버지 태근 역을 맡은 오만석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정중동의 카메라워크로 한국 농촌의 사계를 아름답게 포착한 장면들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끝)
* 9월 4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진행된 <장손> 시사회에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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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다섯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이동욱 X 임수정의 <싱글 인 서울>이 오는 29일 개봉합니다. 선남선녀 배우의 케미로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는데요. 뿐만아니라 제 76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과 퀴어 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의 개봉소식을 알렸는데요.
사카모토 류이치의 유작이 담겨져 있는 <괴물>은 어떤 내용일지, 그 외의 개봉소식까지 같이 알아볼까요?
괴물
12.12: THE DAY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스릴러 | 일본 | 1427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안도사쿠라, 나가야마 에이타, 쿠로카와소야, 히이라기 히나타 등
개봉: 2023.11.29
배급: (주)NEW
시놉시스
“우리 동네에는 괴물이 산다”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에서 이상 기운을 감지한다. 용기를 내 찾아간 학교에서 상담을 진행한 날 이후 선생님과 학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흐르기 시작하고. “괴물은 누구인가?” 한편 사오리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미나토의 친구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자신이 아는 아들의 모습과 사람들이 아는 아들의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데…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아무도 몰랐던 진실이 드러난다.
CINE PICK!
제76회 칸영화제 각본상과 퀴어 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괴물>은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의 자신의 어린 시절 체험을 바탕으로 각본을 집필한 영화로 지난봄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영화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 영화음악이 담긴 작품이기도합니다.
싱글 인 서울
Single in Seoul
ⓒ 네이버영화
개요: 멜로/로맨스, 코미디 | 한국 | 103분
감독: 박범수
출연: 이동욱, 임수정, 이솜, 장현성, 김지영 등
개봉: 2023.11.29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나한테 딱 맞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싱글이 답이다!” 혼자 걷기, 혼자 쉬기, 혼자 먹기, 혼자 살기… 혼자가 좋은 파워 인플루언서 ‘영호'(이동욱) “사실 혼자인 사람은 없잖아요” 혼자 썸타기, 나 홀로 그린 라이트… 유능한 출판사 편집장이지만 혼자는 싫은 ‘현진’(임수정) 싱글 라이프를 담은 에세이 <싱글 인 더 시티> 시리즈의 작가와 편집자로 만난 ‘영호’와 ‘현진’. 생활 방식도 가치관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은 책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하면서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은데…? 서울, 혼자가 좋지만 연애는 하고 싶은 두 남녀의 싱글 라이프가 시작된다!
CINE PICK!
<레드카펫>을 연출한 박범수 감독과 이동욱, 임수정이 만난 <싱글 인 서울>은 최근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연애에 대한 관점이 다양해진 현실을 반영해 만든 로맨스 영화로 예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합니다. 역주행에 이어 장기흥행까지 이끌어낸 로맨틱 코미디 영화 <30일>의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레슬리에게
To Leslie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20분
감독: 마이클 모리스
출연: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오웬 티그, 마크 마론 등
개봉: 2023.11.29
배급: 진진
시놉시스
“말해주세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술에 빠져 수억의 복권 당첨금까지 잃은 레슬리는 몇 년 후, 사이가 틀어진 아들 제임스와 재회하지만 달라지지 못한 모습 탓에 그와 다시 멀어진다. 그런 레슬리에게서 과거를 떠올린 모텔 주인 스위니는 레슬리에게 모텔 청소부 일을 제안하는데… 지난 잘못을 돌이킬 수 없을 때 찾아온 새 출발의 기회! 흔들리는 세상의 모든 <레슬리에게>
CINE PICK!
제33회 런던비평가협회상 영국여우주연상 수상,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주연의 <레슬리에게>는 가족의 화해와 이해, 공감의 드라마로 수많은 후회를 거쳐 끝내 용서받기를 원하는 한 인간이 자립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관객들에게 따듯한 용기를 건네는 영화입니다.
아줌마
Ajoomma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싱가포르, 한국 | 90분
감독: 슈밍 히
출연: 후이팡 홍, 정동환, 강형석, 여진구 등
재개봉: 2023.11.29
배급: 싸이더스
시놉시스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 가슴으로 낳은 한류스타 ‘여진구’의 나라 한국으로 떠나다! 평생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싱가포르 아줌마 ‘림메이화’(홍휘팡) 한국드라마 촬영지 투어를 위해 인생 처음으로 나 홀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꿈 같은 시간도 잠시, 그녀를 두고 떠나버리는 관광버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 홀로 남겨진 그녀의 여행은 뜻밖의 인연들을 마주하며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여진구’ 찾아 떠나온 곳에서 진짜 ‘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하다! 어서와~ 싱가포르 아줌마는 처음이지?
CINE PICK!
<아줌마>의 연출을 맡은 허슈밍 감독은 실제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본인의 어머니가 늘 3~4개의 한국드라마를 챙겨보았다며 중년여성이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기에 한국이 완벽한 장소라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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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배트맨> 자기 자신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탐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알프레드(앤디 서키스)'의 조력을 받고 '제임스 고든 경위(제프리 라이트)'와 협력하며 어둠 속에서 고담시의 범법자들을 응징해 온 '배트맨/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 그는 고담 시장 선거를 앞두고 수수께끼 킬러 '리들러(폴 다노)'가 연쇄 살인을 벌이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리들러가 남긴 단서를 쫓아 '캣우먼(조 크라비츠)', '펭귄(콜린 파렐)', '카마인 팔코네(존 터투로)'를 차례대로 만나며 증거와 정황을 파악하던 배트맨. 그러나 수사를 계속할수록 그는 모든 증거가 자신과 자신의 부모님의 가려진 과거를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가운데, 배트맨은 개인적인 복수와 공적인 정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팀 버튼의 <배트맨>부터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또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관객들과 함께 한 배트맨. 이처럼 슈퍼 히어로의 대명사로 통하는 배트맨이지만, 사실 그의 역할은 일반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과는 달랐다. 그간 배트맨 영화는 배트맨/브루스 웨인만큼이나 그의 빌런들에게 적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쏟아 왔다. 실제로 펭귄과 베인, 라스 알 굴 같은 수많은 캐릭터들은 지금도 관객들의 뇌리에 남아 있으며, 특히 그의 숙적인 조커의 경우에는 단독 영화로도 흥행과 비평 양 측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전까지의 배트맨 영화가 하지 않았거나 미처 못했던 일을 대신하는 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은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조커>(2019)의 그림자가 진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다채롭게 장르를 바꾸어가며 영웅이기 이전에 한 인간인 2년 차 배트맨의 내면과 심리를 진득하게 풀어내는 <더 배트맨>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탐정 영화로서 <더 배트맨>
너무나도 익숙한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들여다보기 위해 <더 배트맨>이 선택한 방법은 간단하다. 배트맨 고유의 정체성, 곧 탐정이라는 정체성을 고찰하는 것이다. 애초에 DC 코믹스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디렉티브(탐정) 코믹스에서 배트맨 탐정으로 처음 등장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는 원형으로의 회귀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영화는 리들러의 범죄 현장으로부터 경찰들과 과학수사 요원들도 놓치는 여러 단서들을 침착하지만 신속하게 포착하고, 이를 토대로 리들러의 목적을 추리하는 배트맨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비춘다.
동시에 영화는 배트맨의 탐정 활동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그가 겪는 부작용과 피해도 공들여 묘사한다. 특히 작중 탐정 배트맨이 프로파일러에 가깝게 묘사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탐정 영화로 출발한 <더 배트맨>이 심리 스릴러를 거쳐 종국에는 히어로 영화로서 마무리될 수 있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비 내리는 날씨와 암부가 짙은 배경을 통해 살려낸 누아르적 분위기가 이 영화의 특장점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반부에 브루스 웨인은 자신이 그림자 속에 숨어 있을 거라는 범죄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이 바로 그림자라고 독백한다. 그 말대로 배트맨은 고담 시의 다른 경찰들과 달리 범죄자적 사고(thinking like a criminal)에 능하다. 그는 철저히 범죄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지식과 기술을 이해하고 이용하며, 범죄자들의 특정한 욕구, 경험, 그리고 관념을 쫓을 줄 안다. 이는 돈 미첼 시장의 집을 감시하는 리들러의 시점과 캣우먼을 관찰하는 배트맨의 시점이 연출된 방식이 동일한 이유다. 그래서 고든이 풀지 못하는 리들러의 수수께끼를 오직 배트맨만이 풀고, 그만이 리들러가 숨겨놓은 힌트를 찾아내고 해석할 수 있다.
심리 스릴러로서 <더 배트맨>
하지만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라는 <선악의 저편> 속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대로, 프로파일러인 배트맨은 악을 들여다보다 깊은 고통을 겪는다. 범죄자의 입장이 되어서 범죄자의 심리를 통해 사건을 해석할 때 프로파일러의 자아는 방향을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작중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 활동에 매진하느라 재벌이자 기업인으로서의 공적인 삶과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개인적 삶의 끈을 놓아버린다. 또 밤이 익숙해진 결과 낮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고, 또 자신의 정체가 밝혀질 까 봐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더 배트맨>은 배트맨과 다른 캐릭터 간의 '관계성'을 마치 거울처럼 활용해 탐정 영화에서 심리 스릴러로 자연스레 장르를 전환시킨다. 특히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 프로파일러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범죄자나 피해자에게 전이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영화가 브루스 웨인의 내적 갈등과 고통을 그가 쫓고 만나고 대화하는 주변인들에게 투영시켜 외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배트맨의 수많은 빌런과 조력자들이 한 영화 속에 빼곡히 등장해야 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진실을 사이에 둔 채 변화하는 브루스 웨인과 팔코네의 관계, 또 그와 알프레드의 갈등과 봉합은 액션신 없이도 강렬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배트맨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계기를 보여주는 배트맨과 리들러의 관계다. “나는 복수다”라고 되새기며 범죄자들을 제압하던 초반부의 배트맨. 그런 그 앞에 선 리들러와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에게 무관심했던 고담시를 향해 마치 '외로운 늑대(lone wolf)'처럼 그저 복수하는 것뿐이라고 대답한다. 그 순간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과 복수심을 범죄자들에게 쏟아내며 해소하던 배트맨은 자신의 모습이 그가 혐오하는 범죄자들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배트맨이 어떤 존재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앞에 선다. 이에 더해 그와 캣우먼과의 로맨스도 같은 맥락에 위치한다. 사적인 복수와 공적인 정의를 동일시하던 배트맨과 달리 그 둘이 완전히 항상 같지는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캣우먼 역시 배트맨으로 하여금 그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고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영웅 서사로 귀결되는 <더 배트맨>
이처럼 배트맨이 리들러의 수수께끼로부터 스스로에 대한 의심, 고민, 갈등을 마주한 순간, <더 배트맨>은 장르를 심리 스릴러에서 히어로 영화로 바꾼다. 그 질문과 고뇌에 대한 답, 곧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배트맨을 비추기 위함이다. 배트맨은 리들러와 그의 추종자들을 보면서, 또 캣우먼과 자신의 차이를 자각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다. 리들러의 수수께끼와 캣우먼의 인생사를 통해 자신의 사적 복수와 공적 정의가 같은 의미일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공포의 상징이었던 배트맨은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분노와 복수심을 떨쳐내고, 희망의 상징으로 변모하고 또 성장한다.
그래서 홍수가 고담시를 덮치고, 시민들이 위기에 빠진 절체절명의 순간에 배트맨은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스스로를 어둠과 복수에 동일시하며 그림자 속에 머물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림자 밖으로 나와 누구보다도 먼저 시민들을 구하러 나선다. 사람들에게 손을 건네고, 어둠 속에서 조명탄에 불을 붙여 길을 인도하고, 어둠에 갇힌 이들을 환한 빛이 비치는 바깥으로 이끌어 준다. 계속해서 누군가의 발자취만 쫓던 그가 다른 이들을 위해 먼저 발자취를 남겨주며, 공포의 화신이 아닌 영웅으로 자리매김한다.
배트맨의 영웅 서사는 앞뒤로 신화적 표상이 가득하기에 더욱 풍성하게 느껴진다. 리들러의 살인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함께 들려준다. 이 노래의 가사가 그리스도이자 메시아인 예수의 탄생을 마리아에게 알려주는 내용임을 생각해보면, 영화의 오프닝은 리들러의 악행으로부터 배트맨이라는 영웅이 만들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이는 <더 배트맨>의 묵시록적인 결말부와도 직결된다. 요한 묵시록은 일곱 번의 재앙이 일어난 후에 예수가 재림하고 신의 나라가 도래할 것을 약속한다. 그런데 마침 일곱 대의 차에서 일어난 폭발로 인해 고담시는 구약 성서의 내용과 노아를 연상케 하는 홍수에 휩싸여 버렸고, 그 순간 배트맨은 사람들을 구하며 영웅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영리한 수미상관을 보여주는 <더 배트맨> 속 영웅의 성장은 누아르 장르의 어둡고 진득한 분위기가 더해져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플롯을 빛내는 영리한 연출
한편, 맷 리브스 감독의 유려하면서도 직관적인 연출은 배트맨의 각성과 성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서는 인물의 시점이 상당히 중요하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리들러의 시점에서, 배트맨의 시점에서 대상을 관찰하고 지켜보는 장면들이 상당히 많다. 이때 배트맨의 시점에 주목해보면, 그의 시야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망원경이나 카메라 등의 도구를 이용해도 배트맨은 초점이 맞지 않거나 흐릿한 시야에 갇혀있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시야는 점점 뚜렷해지면서 넓어지며, 마지막 순간에 그는 가장 높고 탁 트인 공간에서 고담 시의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운 연출 방식이다. 우선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자기 자신도 고통에 빠트릴 정도로 범인을 쫓는 일만 집착하던 한 탐정이, 자신의 한계를 깨고 영웅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담아내기에 영리하다. 또한 배트맨이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해 알 수 없는 과거에 괴로워하던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확실한 과거를 알지 못해도 브루스 웨인이 집착과 미련을 내려놓고 순간 답답하던 시야가 넓게 트이는데, 이정면은 마치 진실을 확신하지 못해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때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또한 긴 러닝타임 때문에 느슨해지려는 찰나마다 등장하는 강렬한 액션신도 인상적이다. 특히 한 템포를 쉬고 본격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예열의 미학이 돋보인다. 관객을 순간적으로 작중 범죄자 혹은 빌런의 입장에 서게 만들면서 배트맨을 마주하는 그 두려움과 공포감을 온몸으로 함께 맛보게 하여 배트맨이 왜 공포의 상징인지를 단숨에 납득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다섯 개의 액션 시퀀스 중에서 전복된 펭귄의 시점에서 배트맨을 보여주는 펭귄과의 추격전이 유독 뇌리에 각인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더 배트맨>에 단점이 없지는 않다. 일단 전반적으로 최근 트렌드와는 동 떨어진 스타일의 영화인 점이 호불호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결정적인 단점이다. 단순히 절대적인 영화의 시간이 길거나 볼거리(액션)나 스토리의 강약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 몇몇 캐릭터들의 서사가 과연 적합한지 의문이 들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메인 빌런인 리들러의 경우 그의 범행 과정은 상당히 복잡한 데 비해 그의 동기는 상대적으로 평면적이라서 그 괴리감이 적지 않다. 배트맨의 성장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인 캣우먼의 활용법 역시 그녀의 존재감과는 별개로 아쉬움이 남는다. 배트맨의 이야기와 별도로 전개되는 개인적인 서사가 다소 과한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트릴로지의 시작을 알리는 <더 배트맨>이 지나칠 수 없는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배트맨 영화 중에서도 유달리 이질적이고, 세계관 연계에 집중하는 근래 많은 슈퍼 히어로 영화들과 달리 묵직하고 우직하게 히어로 본연의 의미를 탐구하고 성찰하는 신선함을 선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배트맨>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고 논쟁이 되기에 오히려 특별한, <로건>과 <조커>의 뒤를 잇는 모험적인 히어로 영화의 비장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새로운 배트맨 케이브로의 깊고 어둡고 진득한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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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다 막시모프가 내 시간을 없애버렸어
그토록 기다리던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했다! <팔콘 앤 윈터 솔저>나 <로키>가 한창 방영중일 때 국제적으로 들려오는 평판만 확인할 정도였는데 실제로 볼 수 있게 됐으니 완전히 감개무량이다. 나는 사실 이 <완다비전>이 너무 궁금해서 나무위키로 슬쩍 읽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개봉했던 영화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이나 <블랙 위도우>와는 다르게 인물의 깊은 내면묘사가 이뤄져 알고 봐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이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아마 직접 보면 알 것이다. 내면묘사가 단순히 인물의 양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드라마가 꼭 가져야 할 연출 지점과 어우러져 신기했다. 과연 <오징어 게임>과 자웅을 겨루는 글로벌 드라마답다.
주연은 두 명이다. 아이언 맨이 만든 똑똑한 AI 비전과 하이드라가 만들어낸 초능력자 완다(스칼렛 위치)다. 이 둘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가 만든 커플로 깊은 사랑에 빠졌다. 배우 둘이 워낙 연기를 잘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엘리자베스 올슨과 폴 베타니는 MCU의 히어로들 중에서 제일 몰입이 필요한 역할일 텐데 이번에도 무난하게 각자의 롤을 잘 소화해냈다. 나는 초능력자가 된다던가 AI가 된다던가 하는 생각을 단 1분도 해본 적이 없다. 근데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 답게 어떻게든 하는 걸 보면 역시 프로는 다른가보다 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또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엘리자베스 올슨 진짜 예쁜 것 같다. 같이 나오는 캣 데닝스도 물론 예쁘다. 근데 엘리자베스 올슨은 고상하게 아름답다. 심지어 연기까지 잘한다.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사랑스러움부터 연이은 좌절로 인한 어두운 내면까지 깔끔하게 소화해낸다. 내가 배우면 이렇게 멋있게 연출해놓은 판 안에서 연기할 맛 날 것 같다. 또 폴 베타니 목소리 너무 섹시하다. 얼굴도 잘생겼다. AI 의상에선 몰랐는데 과거 미국에서 유행했던 코디를 입혀놓으니 '와 진짜 멋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무튼 드라마는 배우들의 호연과 깔끔한 색감, 또 과거 미국 드라마들에 대한 오마주까지 아다리가 맞아떨어지는 삼박자 연출로 깔끔하게 잘 뽑혔다. 나는 이 장점들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드라마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단순히 마블 팬이라서 재미있는 작품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1. MCU 정주행, 필요한가요?
네!!!!!!!!!!!!!!!!!!!!!!!!!!!!!!!!!!!!!!!!!!!!!!!!!!!!!!!!!!!!!!!!!!!!!!!!!!!!!!!!!!!!!!!!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
- 이 이하부터 <어벤저스 : 엔드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 보신 분들, MCU 정주행하고 옵시다 -
2. 앞으로의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작품인가요?
일단 이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할 정도라면 인류 반이 날아갔었다는 극의 설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타노스는 생명체 반을 날리기 위한 준비물을 모두 구하는 데 성공했고 결과적으로 <인피니티 워>에서 그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그 과정에서 비전이 갖고 있던 마인드 스톤이 뽑히는데 이것을 계기로 그가 죽게 된다. 결과적으로 어벤저스는 타노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완다 역시 떠나보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멘토 스티브 로저스와 나타샤 로마노프까지 그녀의 곁을 떠난 것이다. 가족, 친구, 사랑 모든 걸 다 잃은 완다. 그녀에게 기댈 곳이라곤 단 1도 없다. 그런데 드라마 1화부터 갑자기 죽은 줄 알았던 비전이 살아서 완다와 함께 등장한다. 우리는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아니, 비전 죽은 거 아냐? 와 아니, 갑자기 느닷없이 평범한 시트콤이 되어버린다고? 다. 이 두 가지가 이 드라마의 기본 설정이다. 작품은 이 두 가지의 미스터리에 대해 설명해주며 왜 주인공 둘이 이렇게 살고 있는지, 완다에게 비전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이는 곧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 <로키>와 <닥터 스트레인지 인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에서 다룰 '멀티버스' 세계관이 열렸던 개연성을 보여준다. - 아, 이것을 설명해주는 건 스포일러가 아니다. 왜냐면 케빈 파이기가 완다비전이 멀티버스랑 관련 있다고 오피셜을 내렸기 때문이다. - 또한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하는 듯한 암시도 있었으니 MCU의 팬이라면 무조건 봐야 하는 셈이다. 아, 포스터에도 나오듯 완다 막시모프라는 인물이 '히어로냐 빌런이냐'의 양자택일 안에서 어떤 선택을 고르는 지도 굉장히 중요하니 새로운 안티 히어로의 등장을 지켜본다는 점에서도 볼 이유가 분명하다. 아, <앤트맨>에서 나왔던 지미 우와 <캡틴 마블>에서의 모니카 램보, <토르 : 천둥의 신>에서의 달시 루이스, <엑스맨>의 피에트로도 나오니 마블의 팬들은 즐겁게 보기 좋을 것 같다.
3. '빌런 혹은 히어로'? 갑자기?
'완다가 빌런이냐 히어로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고?'라고 포스터를 보고 의문점이 들 수 있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아니 한번 히어로면 영원한 히어로지 빌런이 된다고? 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 의문점은 내가 지극히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에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완다비전>까지 오기 전, 그녀의 처지를 살펴보자. 주인공이 사랑했던 인물들이 자기 의사랑 상관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경험상 이럴 땐 누군가의 위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막상 아무도 없으니 그녀가 감당하기엔 슬픔은 너무 컸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히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그녀의 처지를 복기해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데 드라마는 그녀의 섬세한 내면묘사를 바탕으로 이 인물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 공감하게 만든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히어로로 남을지. 강한 내면을 되찾음으로써 그녀의 자아를 다른 쪽으로 비틀지, 드라마는 철저한 미스터리로 우리들의 시간을 없애버린다. 결국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인물의 양면성에 대해 이해하게 될 것이다.
4. 이야기의 완성도는 어떤가요?
일단 1회독을 끝낸 지금 생각해 보니 딱히 구멍은 없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며 색감이 은근히 좋아서 이야기에 몰입하기 좋다. 또 도입 3화까지 살짝 지루한 구석이 있을 것 같긴 하다. 근데 그게 플롯의 누수때문이 아니라 천천히 내용을 만들어 가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5번에서도 썼지만 빌런에게 읭? 싶은 구석이 있긴 하다. 근데 보기에 페널티가 있고 이런 건 아니다.
5. 빌런의 묘사는 어떠한가요?
기존에 마블의 빌런들을 돌이켜 봤을 때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았다.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에서의 만다린, <스파이더맨 : 홈커밍>에서의 벌처가 생각난다. 전자는 담당 배우의 엄청난 카리스마가 만든 느낌이 강하고 후자는 생활밀착형 빌런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쉬웠다. 이 <완다비전>에서의 빌런은 이들과 살짝 다른 맥락이다. 이 빌런(들)은 엄브릿지형으로 볼 수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재수가 없다. 또한 밑도 끝도 없는데 인물의 성격 자체가 그럴 법해서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의 지모 대령의 정확히 반대 기능을 하는 악역인 셈이다. 현실에 저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거나 직장상사거나 후배면 진심으로 싫을 것 같다. 이런 가까이 가기 싫은 캐릭터를 잘 묘사해 나름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6. 다른 히어로의 탄생? 무슨 뜻인가요?
이는 3번의 질문과도 이어진다. 완다는 앞으로 히어로가 될지 빌런이 될지 알 수 없는 캐릭터다. 이 인물이 후의 MCU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가 새로운 히어로의 탄생을 꼼꼼히 지켜보면 알 수 있다. MCU의 방향성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새로운 능력자와 함께 지켜보도록 하자.
7. 고전 미국 시트콤을 오마주 했다던데?
난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떤 드라마를 본떠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시트콤에 대한 오마주가 이 극에서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무조건. 오마주를 위한 작품이 아니다. 작품을 위한 오마주가 된 것이다. 또한 이런 연출 방식이 드라마의 호러, 스릴러 향 첨가에 도움을 준다. 기존에 장르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다른 재미요소가 될 것이다. MCU의 작품이 평단에서 호평받았던 경우가 드문 걸로 아는데 이 작품은 이 지점에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오징어 게임>과 자웅을 겨뤄볼 만하다.
8. 액션 맛집 마블, 이번에도 닉값 하나요?
액션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한 화에만 나오는 정도? 두 주인공 폴 베타니와 엘리자베스 올슨이 워낙 연기를 잘했고 CG도 매끄럽게 잘 뽑아서 극을 이끄는 흡입력이 좋다. 굳이 액션이 필요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액션의 퀄리티가 별로냐? 난 좋았다. 등장인물의 특색들을 잘 살렸다.
4.5/5.0
강력추천!
디즈니 플러스를 처음 구독한 분들이라면 부담없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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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당신을 채울 수 없다는 것, 영화 <님포매니악 1,2>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포스터를 보면 뭐 이런 영화를 다 만들었네 싶을 수도 있다. 또 영화의 결말을 보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다. (결말 밖에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그러나 두가지 '뭐 이런게 다 있다'는 평을 하는 느낌은 영 다르다. 포스터는 마치 이런 영화를 보면 내가 '님포매니악'이 된 것처럼 볼까봐 걱정이 들 수도 있겠다. 예전보다야 나아졌지만 성에 개방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건 여전히 어색함이 더 크다. 그러나 주의할 건 포스터가 보여주는 게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원초적 본능>과 그런 면에선 맥락이 같다. 화끈하고 질펀한 걸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보면 볼수록 허전하고 쓰라리다.
제목은 아무 잘못이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이 영화를 못살게 군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바닥에 널부러진 조와 우연찮게 길바닥에서 만난 샐리그먼이 밤새 이야기하는 것이 영화의 전부다. 다만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님포매니악(여성 색정증 환자)라고 불렀고 그는 스스로를 무성애자라고 칭한다는 것. 섹스 중독자와 섹스가 1도 동하지 않는 두 사람의 섹스에 대한 대화.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만나면 이렇게 차분한 대화가 가능하다니 신기하다. 조의 일대기는 꽤 길고 복잡하다. 그녀의 생이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그녀는 차를 마시며 침대에 누워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샐리그먼은 그녀의 '경험'을 그래서 자신의 '지식'으로 공감하고 이해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낚시, 음악 등 각종 지식으로 맞장구를 친다. 때때로 이야기가 끊어지면 그들을 둘러싼 방의 인테리어, 벽에 남아있는 자국, 방의 구조, 조명 등으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됐다. 만담이라기엔 잔잔하고 대담이라기엔 독백이 길고, 독백이라기엔 응하는 사람이 있는 독특한 밤이었다. 샐리그먼의 뜬금없고 박학다식한 지적 공감은 자칫 19금썰 혹은 사랑과 전쟁이 될 뻔한 한 이야기를 꽤 담백하고 흥미롭게 탈바꿈해준다. 다른 남자였다면 이렇게 클래식 평론하듯이 말하진 못했겠지. 그는 영화를 끝까지 흥미롭게 만드는 존재인데 그건 차차 얘기하는 것으로.
영화의 부제를 짓는다면 <님포매니악: 어느 고독한 여자의 이야기>라고 붙이고 싶다. 주인공 조는 성보다는 사람을 탐닉하고, 쾌락보다는 외로움을 채우려 애썼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부제를 지어본 건 갑자기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가 떠올랐기 때문. 주인공 외의 등장인물, 심지어 관객들마저 주인공과 자기 자신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암만, 우리는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처럼 살인자도 아니고, 조처럼 님포매니악도, 섹스중독자도 아니니까. 그러나 정말 전혀 다른가. 외로움과 공허함이 비슷해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면 이상한걸까. 조는 유일하게 사랑했던 제롬에게 속마음을 보여준 적이 있다. 자신의 모든 구멍을 채워달라고 하면서. 애틋한 말이었다. 늘 내 빈 곳을 누군가 채워줄 수 없다고 수없이 회의적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에 더 슬펐다. 정말 섹스로, 혹은 제롬같은 누군가가 내 안의 모든 빈 곳들이 채워진다면 같은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든 걸 걸고서.
조를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모르고 시작하는 바보가 어딨나. 그녀도 알고 있었다. 욕구란 끝이 없고 만족을 느끼는 만큼 허전함 역시 크다. 맛있는 음식들, 아는 맛이지만 그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이는 사람들. 바깥에서 사먹는 음식 중에서 나에겐 떡볶이가 늘 그렇다. 치킨도, 피자도, 그 무엇 보다도. 정말 아는 맛이지만 집집마다, 가게마다 다르다. 내 입맛에 찰떡인 떡볶이를 찾아 헤매는 것이 숙명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떡볶이 비유는 너무 가볍나.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리는 사랑에 대한 욕구도 있겠다. 외로워서, 궁금해서, 이유가 뭐든간 다신 사랑하지 않겠다면서 그 달달하고 몽글거리던 날이 그리워 다시 찾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이 사랑에 함몰되어 있는 동안 조에겐 섹스가 그랬을 것이다. 아는 즐거움이었지만 즐거웠고 쉼없이 필요했다. 하루에 7-8명 정도 되는 사람들과 만나 늘 그 사람들에게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 그건 분명 본인도 많이 노력해야하는 고된 일정이었다. 아는 맛의 끝을 보고 싶었던 것, 그게 조와 우리의 작은 차이점일 것이다.
유부남이 아내와 함께 찾아왔다(feat. 질척거림)
그녀를 철면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끝에 갈수록 그런 생각은 잦아든다. 죄의식이나 자책감 따위는 저버린 듯이 말했지만 그녀는 아주 오래 자신의 삶을, 자신의 선택을 '죄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와 '미끼'가 되어 누가 더 기차에서 많은 사람과 잤나 내기하느라 유부남을 유혹할 때도, 사랑하지도 않는 유부남이 자신 때문에 20년지기 아내와 아들 셋을 버리고 왔을 때도, 음성사서함에 올라온 수많은 남자들과 만날지 말지를 주사위를 굴려 결정할 때도, 그녀에게 닥친 불감증이라는 위기에 다시 쾌락을 되찾기 위해 폭력적인 남자에게 몸을 맡기고 아이와 남편을 버릴 때도. 그녀가 사랑한 제롬이 자신과 함께하는 여자아이와 엮이게 되어서 질투심에 총으로 쏘려고 했을 떄도. 그게 다 죄라면서.
그녀가 여러 사람을 만났던 것은 그녀가 사랑한 대상이 섹스가 주는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과 흥분은 섹스에 필요한 기본적 요소였고 사랑마저도 그녀에게 섹스를 완성해주는 비밀의 레시피였다. 그럼에도 샐리그먼에게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변명을 늘어놓으며 배수진을 친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들릴 이야기는 부도덕하고, 저는 나 좋자고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못돼 처먹은 사람이에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서도 아닌데. 죄라고, 부도덕하다고, 못된 사람이라는 인식은 전부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정말 못된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녀가 인간의 본성을 위선이라고 말하는 건 그런 그녀가 위선적이라는 것에부터 출발 한 것은 아닐까.
젊은 여자 둘이 기차에 타면
모르는 사람에게 한두번 해본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샐리그먼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는 자신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된다. 샐리그먼은 그녀에게 '날개가 있는데 좀 날면 어떤가'라며 여성으로서, 욕구를 가진 인간으로서 조를 긍정적으로 해석해주었다. 조가 남자였다면 이 모든 건 지금보다 큰 문제가 아니었을거라면서. 젊은 여자 둘이 기차에 타면 눈을 맞추고 웃기만 해도 남자와 잘 수 있지만 젊은 남자 둘이 그러면 똑같이 가능하겠냐면서. 아이를 버리고 자신을 택한 건 그녀의 남편 제롬도 마찬가지였다고 말이다. 하다 못해 질투심에 눈이 멀어 제롬에게 총을 쏘려다 실패한 것 역시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그를 죽일 생각이 없어서 총을 제대로 장전하지 않은 것이라고 답해준다. 그러니 죄책감 갖지 않아도 된다고.
한마디 더해 '혼자 박수칠 수 있던가'라고 곁들여주고 싶었다. 그녀를 함부로 말할 수 있겠나.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이건 단독범행은 아니다. 그리고 그녀의 착각아닌가. 자기 자신 좋자고 다른 사람 마음 아프게 했다는 말. 그녀만 좋자고 했나, 상대방도 좋자고 했지. 그 사이에 상처가 있었다면 그건 둘의 책임이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다. 그녀가 추구하는 섹스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근데 그 섹스가 그녀 말대로 쉬웠다. 그건 그녀가 사람 환장하게 하는 팜므파탈이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늘 응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이상해하는 사람들보다 그녀에게 이끌리듯 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녀를 싫어하는 건 여자들이었다. 그 이유가 신기했다. 자기 남자들을 건드릴까봐. 그녀를 거절하려던 철벽 같던 유부남도 있었다. 똑같이 신기했다. 그녀를 피하려던 이유가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끊으려고도 해볼만큼 해봤거든요
조가 변하려고 결심할 수 있었던 건 청춘을 다바쳐 쾌락을 좇아 해볼 만큼 해보았기 때문이다. 억지로 누가 섹스 중독을 고쳐보라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다르다. 몸이 아프게 되어 '못'하게 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섹스 때문에 사랑하던 제롬과 극단으로 치닫고 상처를 받아서일 수도 있겠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자고 올 땐 보이지 않던 게, 눈 앞에서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여자와 그가 자는 걸 보면서 제대로 상처받았을 것이다. 제롬은 그녀의 이야기 중에 유일하게 F, G, K, B 같은 이니셜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였다. 그리고 처음 만난 샐리그먼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지 않았나. 자신이 그렇게 견딜 수 없었던 욕구 없이도 사는 사람이 있고, 자신을 편견 없이 보아주는 사람이 있고,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사회는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고 그녀 역시 사회를 받아들일 수 없다 생각했는데 그런 그녀에게 친구가 생긴 것이다. 처음으로.
그러나 그 스펙타클한 조의 연대기보다도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몇 분에서 볼 수 있다. 샐리그먼은 아주 대단한 역할을 맡게 된다. 처음으로 믿을 수 있는 친구, 외로움과 중독을 벗어나보겠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보고 다짐하는 조를 짓밟아 버린다. 역설적이게도 님포매니악이던 조가 섹스 없이 있는 힘껏 살아보겠다고 말한 그 직후, 평생 섹스와 담 쌓고 살아온 무성애자 샐리그먼이 그녀와 섹스하고 싶어진 것이다. 이걸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욕망의 전이?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그가 정말 그녀에게 상처를 준 건 수많은 남자들이랑 자지 않았냐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는 그녀 앞에서 '남자'가 되었다. 과거 그녀가 자동문처럼 가리지 않고 남자들과 잤다고 해서 지금 이순간, 그와 거리낌없이 잘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와 그녀는 방금 전 이야기 하듯이 '인생 최초의 친구'가 아니었던가. 그는 믿을 수 있는 친구 대신 욕망에 가득한 어느 남자가 된 것이다. 방금까지 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사랑하던 제롬을 죽이지 않아서, 안도하던 조는 망가졌다. 총은 제대로 작동했고, 친구라 부르던 셀리그먼이 그 총을 맞았다. 어쩌면 그녀는 살인자가 되었겠다. 혹은 급소가 아닌 곳에 총알이 박힌 채 그가 신음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총소리에 가장 많이 아파할 사람은 조일 것이다. 동이 텄고 문이 닫혔다.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녀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져 있을까.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그녀의 평생을 바친 단 하나의 실험, 단 하나의 목표가 얼마나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지. 누구도 그녀의 구멍을 채워 줄 수 없었다. 채우려 애쓸수록, 기대하면 할 수록, 그녀에겐 짙은 외로움이 피어나는 구멍들이 커질 뿐이었다.
* 섹스 중독자와 님포매니악이 무엇이 그렇기 다르기에 조는 거듭 강조를 했나. 의미상 여성이란 점을 부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남성 색정증은 사티리어시스라는 다른 표현을 쓰고 있으니까. 단어 중 님프는 영화에서 유충이란 뜻으로도 설명되었다. 실제로 낚시를 할 때 이 님프를 본따 님프 낚시를 하기도 한다고. 미끼가 되어 사냥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녀가 스스로를 섹스중독자라고 칭하며 중독을 끊으려 할 때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마음을 바꾸는데 그 때 그런 생각이 스쳐가지 않았나 한다. 자신이 여성으로서, 섹스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남들과 다르다고. 그게 그녀를 흔하고 광범위한 섹스중독자가 아니라 '님포매니악'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라고.
* 조의 아버지의 '소울 트리'. 내 나무 찾기 이야기가 은근히 흥미롭다. 조도 절벽 위에서 그 나무를 찾게 된다. 아직 그런 느낌이 드는 나무를 찾지는 못했는데 나무를 찾았을 때 기분이 기대된다. 꽃을 들자면 제비꽃은 가능할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매년 반갑고 애틋하다.
*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욕망과 외로움을 어떻게 대할지가 아닌가 싶다. 욕망과 외로움의 방법론. 욕망의 끝을 알기 위해, 외롭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확실한 건 몸을 직접 내던지는 건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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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여름의 끝자락, 동심을 붙잡다
[SICFF] 여름의 끝자락, 동심을 붙잡다
영화 <숀더쉽 더 무비 : 꼬마 외계인 룰라!> 리뷰
감독] 윌 베처, 리처드 펠런
출연] 저스틴 플레쳐, 아멜리아 비테일
시놉시스] 먼 우주에서 길을 잃고 지구에 오게 된 꼬마 외계인 ‘룰라’! 우연히 양떼목장의 비글비글 사고뭉치들 ‘숀’과 친구들을 만난다. 달콤한 젤리와 초콜릿이 가득한 지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 ‘룰라’를 위해 집을 찾아 주기로 하는 ‘숀’과 친구들! 우주에 가기 위해 ‘룰라’가 잃어버린 UFO를 찾아 나서고 한편 수상한 비밀요원 ‘에이전트 레드’ 일당이 ‘룰라’를 추적한다. 과연, ‘룰라’는 무사히 엄마 아빠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스포일러 유의#
대사가 없는 영화는 20년 만에 처음
숀더쉽 더 무비 : 꼬마 외계인 룰라!가 애니메이션 작품이라는 것만 알고 방문한터라 당연히 대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단한 착각이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5분이 지나도록 효과음, bgm이 다 나오는데 대사가 없어서 친구와 함께 ‘왜 말들은 안해,,, 대사가 없는건가? 말이 없음 어떻게 내용을 이해하나~’라고 얘기를 나눌 정도였다. 너무 어른의 사고방식이었다. 대사가 한마디도 없고, 심지어 등장 캐릭터들이 다 동물이어서 표정이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았지만 엄청난 내용전달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 텔레파시를 통해 대본을 내 머리 속에 주입시키는 느낌이었달까? 영화의 모든 내용이 쏙쏙 들어오는 이 경험이 20년만에 처음 느끼는 새로운 경험이어서 신선했다.
자유롭게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할 때부터는 대부분의 시청각자료에서는 ‘음성’이 가장 많은 정보를 주곤한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대본이 8할은 먹고들어간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숀더쉽 더 무비 : 꼬마 외계인 룰라!는 히히히히, 룰라룰라, 메헤헤헤 온갖 의성어만 난무할 뿐 대사를 통해 얻어지는 정보는 하나도 없다. 캐릭터들의 몸짓, 발짓을 통해 그리고 주어진 상황들을 통해서 각 캐릭터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관계를 파악한다. 게다가 이를 어린이와 어른이라는 서로 다른 세대를 동시에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에 더욱더 그 표현이 어려웠을텐데 이 작품은 아이와 어른의 공감을 모두 이끌어냈다. 정말 룰라 우주선이 망가지고,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도 없어졌을 때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눈물이 다 날 뻔했다. 대사 한마디 없이도 이렇게 집중해서 본 작품은 정말 오랜만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관계의 변화를 그리다
영화 속 외계인 룰라는 우주 저멀리 다른 행성에서 엄마와 아빠가 자고 있던 사이 우주왕복선 키를 만지작 거리다가 지구에 불시착한다. 이미 여기서부터 사고뭉치라는 가장 느낌적인 느낌이 들 것이다. 피자의 맛있는 냄새에 홀려서 숀을 만나게 되고, 숀가 양들과 함께 재밌게 지내다가 다시 돌아가야 하기에 우주선을 찾으러 길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숀은 양들 내에서 사고뭉치였지만 자신보다 레벨이 다른 사고뭉치를 만나면서 룰라의 보호자가 되어 문제가 되는 상황들을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하고, 집으로 보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렇게 처음 불시착한 장소를 찾아낸 룰라와 숀. 하지만 그곳을 기어코 찾아낸 양치기 개 비처. 그들의 앞에 레드요원들이 등장해 우주왕복선을 통째로 기지로 옮겨버린다.
숀과 비처는 항상 앙숙같은 관계였지만 일단 이 기지를 빠져나가기 위해 합심을 하고 룰라와 숀, 비처는 무사히 기지를 찰출해 룰라의 고향으로 방향을 튼다. 하지만 룰라 앞에서는 의젓했던 숀이 비처가 등장하면서 비처가 조작기를 이리저리 누르는 사이 배가 고프다며 스위치를 누르다가 결국 다시 우주선의 방향이 바뀌고, 지구로 불시착하게 된다. 그 충격으로 우주선은 그만 불타고 만다. 룰라의 엄마와 아빠가 담긴 사진도 날아가고, 우주선도 다 타버리고, 룰라의 능력마저 제대로 못쓰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룰라는 좌절하고, 숀은 이 상황이 꼭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에 얼른 집으로 돌아가 양들의 도움을 받아 룰라의 집으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파마겟돈의 연극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 숀과 룰라, 그리고 비치와 양들은 힘을 모아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송신기를 위로 올려보내고, 레드요원의 방해에도 결국 송신에 송공하면서 룰라의 엄마아빠가 룰라를 구하러 지구로 날아오는데 성공한다. 룰라는 지구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간다.
숀과 룰라, 그리고 비처의 관계를 보면서 어린아이들의 관계에서 항상 고정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 보였다. 한없이 철이 없을 것 같던 숀도 자신보다 미성숙한 룰라에게는 어른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비처가 나타나면 다시 천방지축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학교를 전학가거나, 이사를 가는 등 새로운 곳으로 이동을 할 때도, 그 이동을 지켜보는 경우도 생길텐데 한 곳에서 좋은 친구와 좋은 추억을 만들고 또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자연스러운 이별의 모습도 담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영화 숀더쉽 더 무비 : 꼬마 외계인 룰라!는 여름의 끝자락, 야외에서 잠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상영시간표>
2024. 9. 7.(토) 20:00 롯데몰 9층 잔디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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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나 음악할래'라는 말
6★/10★
〈둠둠〉은 메시지가 넘치는 영화다. 그러다 보니 흩어진 메시지를 한데 모으는 결말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여성과 꿈, 모녀 관계의 어떤 순간을 탁월하게 담아낸 장면이 특히 그렇다.
주인공 이나는 테크노 음악으로 디제잉을 하던 촉망받는 유망주였으나 이제는 음악을 그만둔 지 수 년째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이나와 만나던 남자가 출산 후 해외로 가버린 사건이 첫 번째고, 교회 집사인 엄마가 체면 문제로 미혼모 딸과 손녀 그리고 딸의 디제잉을 용납하지 않으려 든다는 것이 두 번째다. 그래서 이나는 엄마의 바람대로 음악을 그만두고, 콜센터에서 일하며, 딸은 위탁가정에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전 함께 음악을 했던 동료에게서 디제잉 오디션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는다. 선발되면 베를린 클럽에서 2년간 일할 기회가 주어지는 큰 오디션이다. 회사에서 헤드폰으로 고객 상담을 진행하던 이나는 깨닫는다. 헤드폰에서 강렬한 비트의 음악이 나올 때, 자신이 행복했음을.
그러나 엄마와 딸이 발목을 잡는다. 엄마는 아빠가 죽은 후부터 불안 증세를 보였다. 사소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늘 사고가 날까 두려워한다. 집안에 재난 대비용 벙커를 짓고 비상식량을 챙겨둘 정도다.* 엄마의 그 날카로운 신경은 주로 이나에게 향한다. 영화에는 엄마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지 않고 계속 진동이 울리도록 두는 이나의 모습이 많이 나온다. 핸드폰 진동이 전하는 압박감은 이나가 디제잉하는 음악의 자유로움과 대비를 이루어 꿈을 향한 이나의 갈망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나는 멋진 디제이가 되고 싶고, 딸을 다시 데려와 (자기 엄마와는 다른)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엄마와의 화해가 필요하다. 이나의 모순은 여기에 있다. 능력 있는 디제이가 되기 위해 노력할수록 엄마가 이나에게 느끼는 분노와 소외감은 커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처럼 해방과 절망이라는 양극단의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이나의 삶을 굉장히 섬세하고 감각적인 연출로 담아낸다. 이나가 만드는 음악이 익숙지 않은 관객이라도 서사, 연출, 연기가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내는 몰입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나가 살아가는 서로 다른 (그러나 얽혀 있는) 두 세계의 긴장을 훌륭히 담아낸 영화가 결말에서 이를 너무 성급히 봉합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나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를 음악에도 담아낸다는 설정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중후반부까지 안정적으로 이어지던 영화의 밸런스가 다소 빠르게 봉합되어 영화의 전체 리듬이 망가지는 것이 문제다. 여성의 꿈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엄마를 타자로 남겨둘 수 없다는 점에서 성급한 결말을 이해해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맥이 풀려버린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불안증에 시달리며 딸을 압박하는 엄마 역의 윤유선 배우의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다. 윤유선 배우가 주로 선한 중년 여성 배역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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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몰입하고 있는 거침없는 한 사내의 사건![1탄/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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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비좁은 통로 안에 갇혀버린 리사.
살기 위해선 함정을 피해 빠르게 탈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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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환영까지 뿌리치며 그녀가 무조건 해야 할 것은 탈출!
과연 그녀는 무사히 통로를 탈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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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매일 죽음을 다짐하지만 알코올성 치매로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하며 다짐을 잊고 살고 있다.
한 여자가 있다.
그냥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우울함과 무력감으로 죽을 결심을 한다.
김모인과 류화림이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함께 죽기 위해 태백으로 향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까마귀숲에 도착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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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하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