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1-26 09:51:40
검은 수녀들 | 길 잃은 오컬트와 빛바랜 여성 서사
<검은 수녀들>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등학생 ‘희준’(문우진)은 자살을 시도했다. 자신에게 숨어든 악령을 내쫓기 위해. 하지만 악령은 좀처럼 희준의 몸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구마를 시도하던 장미십자회 소속 '안드레아 신부'(허준호)도 악령의 힘을 당해내지 못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유니아 수녀'(송혜교)는 이 악령이 12 형상 중 하나라고 확신하고, 구마 사제가 없더라도 구마 의식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렇지 않으면 희준은 곧 죽을 테니까.
하지만 희준의 담당의 ‘바오로 신부'(이진욱)는 구마의식을 의심하며 정신과 치료만으로도 차도가 있다며 유니아의 계획에 협조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녀는 바오로 신부의 제자인 ‘미카엘라 수녀'(전여빈)가 자기처럼 악령을 느낄 수 있다는 비밀을 눈치채고, 그녀에게 막무가내로 도움을 요청한다. 미카엘라는 자기 과거를 희준에게 투영하며 유니아를 돕기로 결정하고, 두 수녀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구마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또 실패한 한국 영화 속편
한국 영화의 속편 제작 소식은 그렇게까지 기대받는 뉴스가 아니다.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호평받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해적 2>, <국가대표 2>, <강철비 2>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던 작품들의 속편만 보더라도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속담이 유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신과 함께>, <범죄도시> 시리즈처럼 애초에 시리즈물로 기획되는 경우가 예외일 뿐이다.
전편의 성공을 이어받지 못한 속편들은 공통점이 있다. 제목 외에 연속성이 없다. 이름만 같을 뿐, 배우부터 캐릭터와 감독까지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시리즈만의 장점보다는 단점만 부각된다. 시리즈 특유의 매력을 기대하는 관객이 오히려 실망할 가능성도 커진다. 음식점으로 치면 프랜차이즈 식당인데 지점마다 메뉴도 레시피도 다른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검은 수녀들>도 염려가 컸다. <검은 사제들>과 세계관은 같지만 감독, 배우, 캐릭터가 달라졌으니까. 특히 장재현 감독의 부재가 걱정이었다. 아무나 오컬트의 장르적 쾌감과 대중성을 조화시키지는 못하기 때문. 안타깝게도 <검은 수녀들>은 우려를 불식하지 못했다. '여성 오컬트'를 표방했지만, 오컬트를 살리지 못한 나머지 여성 서사만의 매력을 놓쳤다. 그 결과 <검은 수녀들>은 세계관을 확장하는 도구로만 소모되고 말았다.
가톨릭과 여성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검은 수녀들> 속 여성 서사는 예상된 수순이다. 그런데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꽤 흥미롭다. 여성과 종교의 관계성을 깊이 파고들기 때문. 역사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여성의 영성을 이중적으로 대했다. 성모 마리아 공경 교리나 성모 발현 기적 사례는 교회 내에서 강력한 종교적 상징으로 기능한 여성의 영성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여성의 영성은 상징성이 큰 만큼 경계의 대상이었다. 교회 제도 내에서 수녀로서 영성을 발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교회와 사제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다고 여길 정도였다. 이는 중세 시기에 교회가 민간 신앙 혹은 신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추구하는 신비주의 전통을 부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톨릭 교회의 권위와 권력이 약화되자 굳이 '마녀'를 외부의 적으로 상정한 역사 역시 여성의 영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방증한다.
<검은 수녀들>은 이러한 가톨릭과 여성의 관계에 주목했다. <검은 사제들>이 정통성 있는 구마의식을 다뤘다면, <검은 수녀들>은 그 이면에 존재한 비정통성을 다룬 셈이다. 영화 곳곳에 그 의도가 녹아 있다. 중세 시기라면 마녀로 몰렸을 정도로 특별한 영성을 두 주인공이 소유한 설정이 대표적이다. 바오로 신부와 같은 일반 사제들이 구마의식의 효용성을 부정하거나 수녀의 구마의식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이다.
무속도, 타로도, 자궁 타령도 억지는 아닌 이유
그렇기에 자칫 뜬금없을 설정도 <검은 수녀들>에서는 마냥 작위적이지 않다. 여성의 영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무당이 등장하고, 굿으로써 악령을 쫓아내려 하고, 수녀가 타로 점을 보는 전개도 나름 설득력이 있다. 정통 제도 종교의 영역의 밖에서 이어져온 여성의 여성을 한국이라는 공간적 맥락 안에서는 무당과 무속 신앙이 상징하기 때문이다.
악령의 존재를 남들과 다른 청각과 시각으로써 인지할 수 있는 두 수녀의 특별한 능력도 좋게 말하면 영성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미친 것이고, 한국적으로 표현하면 신내림을 받은 셈이다. 미카엘라가 타로 점을 볼 줄 아는 것 또한 제도 종교 외부에서 생명력을 유지한 종교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종교적 전통 간의 접점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구마 방식도 마찬가지다. 악령은 유니아를 창녀라고 모욕하면서 자궁을 영영 못 쓰게 만들겠다고 위협하고, 그녀는 실제로 자궁암을 앓는다. 하지만 그녀는 악령을 자궁에 가둔 뒤에 파괴하면서 그의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마녀가 악마와 성교를 하고, 악마의 아이를 낳는다는 중세 시대의 소문과 전승을 뒤집은 이 전개 역시 제도 밖에서 유지된 여성의 영성이라는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나아가 극 중 구마 의식도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는 듯하다. 두 수녀는 구마의식을 같이 진행하면서 신뢰를 쌓기 전까지는 세례명이 아닌 본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악마의 이름을 알아내는 게 구마의식의 핵심인 것을 고려하면 이는 의미심장하다. 두 수녀가 스스로를 가톨릭 교회 속하지 않는 괴물, 마녀, 악마로 여겼음을 암시하니까. 즉, 유니아와 미카엘라는 악령 들린 학생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구마하고 치유한 셈이다.

오컬트 없는 여성 오컬트
이처럼 종교사 이면에 숨은 여성의 영성을 중점적으로 묘사했기에 <검은 수녀들>의 스토리텔링은 흥미롭다. 문제는 차별화된 주제 의식과 소재가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 이유는 명확하다. 여성 오컬트를 표방하지만, 정작 오컬트가 없다. 드라마에만 힘을 준 나머지 오컬트 영화라는 사실을 망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 대가로 종교적 맥락과 깊이 연관된 서사도 덩달아 힘을 잃는다.
우선 오컬트 분위기를 조성할 디테일이 부족하다. <검은 사제들>은 치밀했다. 의식의 순서마다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일례로 구마 사제는 여성의 분비물을 몸에 뿌린다. 본래 수컷이라서 남자 육신을 취하려는 악령에게 성별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에 반해 <검은 수녀들>에서는 두 수녀가 하는 행동, 외우는 기도문, 준비한 성물 등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구마 예식은 지나치게 가상적으로 느껴진다.
디테일이 없다 보니 구마의식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누가 됐든 악마를 못 이길 것 같으면 성수를 잔뜩 쏟아부은 후에 예식을 다시 시작하는 식이다. <파묘>에서 '이화림'(김고은)이 여러 형태의 굿을 보여줬던 것과 비교하면 오컬트 특유의 재미가 현저히 부족하다. 악령의 권능도 비교적 단순하게 묘사된다. 주변 사물로 구마자를 해하거나 겁 주고, 구마의식을 방해하기 위해 쥐를 풀어서 도로를 엉망으로 만드는 정도다.
구마의식은 스토리텔링을 이끌지도 못한다. <검은 사제들>의 구마의식은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악령은 여동생과 관련된 '최준호 아가토'(강동원)의 트라우마를 악용했고, 그는 간신히 악령을 이겨냈다. <검은 수녀들>은 다르다. 미카엘라는 자기처럼 영성을 지닌 친구가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악령은 이를 이용하지 않는다. 유니아 역시 별다른 약점이 없다 보니 구마의식은 단순한 볼거리로 소비된다.

스스로 맥을 끊다
그 결과 종교적 맥락 내에서 전개돼야 할 여성 서사는 부자연스럽고, 오독될 소지도 크다. 사제들이 수녀라는 이유로 유니아를 억압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본래 의도대로라면 종교 내에서 여성의 영성이 경계받는 미묘한 긴장감이 전해져야 한다. 그러나 오컬트 분위기가 약하다 보니 이 장면은 여성 차별적 구도 안에서 여성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평면적이고 편의적인 연출처럼 느껴진다.
드라마의 잠재력을 스스로 제약하는 결과도 초래했다. <검은 수녀들>은 바오로 신부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희준이 겪는 일련의 현상이 악령에 의한 것인지, 단순한 정신병인지 유니아도 확신하지 못하는 식으로 초중반부를 연출할 수 있었다. 이 경우 바오로 신부와 유니아의 갈등은 일차원적 남녀 대립 구도를 넘어서서 정통성과 비정통성의 충돌이라는 종교적 맥락을 입체화하고 강조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는 바오로 신부와 유니아가 결국 협력하게 되는 전개를 더 극적으로 꾸미고, 원칙주의자인 바오로 신부의 매력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검은 사제들>과는 다른 과점에서 구마의식을 조명하며 세계관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가능성이 무위에 그친다. 그 결과 <검은 수녀들>의 결과물은 지나치게 <검은 사제들>을 의식한, 전작 주인공의 성별만 뒤바꾼 열화판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기술적 완성도 때문에 아쉬움은 더 크다. 초반부와 후반부에 왕왕 등장하는 부자연스러운 컷 전환은 오컬트 특유의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긴장감 조성을 방해한다. 한국 영화의 고질병인 음향 문제도 재발했다. 구마의식 중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사 내용이 들리지 않을 정도다. 배우들도 빈 공간을 채우지 못한다. 희준을 연기한 문우진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수녀복, 사제복을 입은 채로 이전 캐릭터를 되풀이하는 듯하다.

세계관은 커졌지만
결국 <검은 수녀들>은 한 가지 미덕만 남긴다. 바로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확장했다는 것. 성공한 작품의 외피만 빌려 쓰는 대신 두 작품을 엮어 본격적으로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야심이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장미십자회의 존재와 역할을 더 부각하고, 12 형상이라는 설정을 구체화하면서 속편의 토대를 다진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최준호 아가토의 재등장도 단순한 팬서비스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다만 이 또한 일장일단이 있다. <검은 수녀들>은 <검은 사제들> 세계관을 위한 발판, 그 이상 그 이하의 인상을 주지 못한다. 마치 <아이언맨> 이후 <어벤져스> 개봉 전까지 <아이언맨 2>, <토르: 천둥의 신>, <퍼스트 어벤져>를 공개한 MCU를 보는 듯한 인상이다. 만약 속편이 나오더라도 유니아의 빈자리가 그리 커 보이지 않다는 점, 그리고 최준호와 미카엘라의 향후 활약상이 그다지 기대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 방증이다.

Poor 형편없음
방향은 맞았으나 길을 잘못 들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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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넷팩상 수상작 일본 코미디 지옥의 화원
오랜만에 보는 일본 코믹물
스윙걸즈, 워터보이즈 등 일본 특유의 코믹스러움을 물씬 풍기는 영화 한 편이 지난 15일 개봉했다.
황당무개한 상황 전개는 그저 잠시 바쁘고 빠른 일상 가운데 지칠 대로 지친 관객에게 잠시 삶의 긴장을 늦추고 논리나 이유 따위는 내려놓고 웃으라고 이야기한다.
감독 - 세키 카즈아키
출연 - 나가노 메이, 히로세 아리스, 나나오, 카와에이 리나, 오오시마 미유키, 카츠무라 마사노부, 마츠오 사토루, 마루야마 토오미, 엔도 켄이치, 코이케 에이코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코미디, 액션
국가 - 일본
러닝타임 - 102분
배급 - 찬란, (주)하이스트레인저
오피스 코믹 액션을 표방하는 이 작품은 사무 여직원의 유니폼인 스커트에 구두를 신은 복장으로 거침없이 싸움을 하는 장면들로 신선한 액션을 보여준다.
배우들의 과한 표정연기와 만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상항들이라는 나레이션을 통해 마치 영화 상 보여지는 씬들이 현실인 양 표현한다.
새로운 감성과 에너지로 무장한 가장 역동적인 영화제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에 해당하는 넷팩상을 수상했다.
일본의 천재 개그맨 바카리즈무가 각본을 담당하고, 슈퍼 루키 나가노 메이, 히로세 아리스가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줄거리는 압도적 격투 능력만 있다면 최강의 여직원으로 칭송받는 여직원의 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잡는 ’호조 란‘이 등장하고, 그녀와 친분이 생기게 된 일반인 여직원 나오코가 뜻하지 않게 그들 세계에 휘말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이기고도 진 것 같은 상황 전개와 예상피 묘한 반전도 함께 있으니 그 부부네 대해 기대해 볼 만하다.
참고로 액션과 웃음에 눈과 귀가 빼앗기다가 센스가 넘치는 대사들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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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승완'이라는 장르
‘류승완’ 이라는 장르
솔직히 말해 ‘한국식 액션’ 이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조직폭력배와 사기꾼, 정치 음모, 칼로 찌르는 장면이 난무하는 피가 튀는 액션을 보고 나면 기가 훅 –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작이 나오면 일단 보고 싶다는 기대감을 주는 감독이 있다. 류승완 감독이다.
류승완 감독 하면 '액션키드', '시네 키드'와 같은 말이 항상 붙어 다닌다. 초등학교 3학년때 <취권> 을 보고 태권도장을 다니고, 초등학교 때 시험지 빈칸에 알고 있는 영화 감독을 가나다 순으로 적을만큼 아주 어려서부터 영화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는 감독은 데뷔작을 연출하기 전까지 무려 2000여 편의 영화를 감상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함께 살며 방을 구하지 못해, 이삿짐과 함께 길에 나앉은 적도 있을 만큼 어렵게 살았다고 하는데 류승완은 소년 가장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그러던 와중 박찬욱 감독을 만나게 되며 처음 영화 현장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380만원 예산으로 찍은 단편 <패싸움>을 1부에, 한국 독립 단편 영화제 최우수상인 <현대인>을 3부에 놓고서 <악몽>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에피소드를 추가해 연결시켜 완성한 장편<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발표했다. 원래 장편 영화로 만들려고 각본을 완성하였으나 장편으로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자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끝에 이야기를 4개의 에피소드로 조각내어 적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 스스로의 방법을 찾아 낸 것이다. 이 작품의 총 제작비는 제작비 약 6,500만원에 불과했는데,이 때까지 류승완은 생계를 유지하고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지하철 보수 공사 현장에서 일하거나 류승범과 함께 고구마장사를 하는 등 어렵게 생활 했다고 한다. 이 영화로 류승완 감독은 청룡영화상에서 신인 감독상을 받았다.
동생 류승범은 바로 이 영화로 데뷔했는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양아치 역'을 찾고 있었는데 집에 가보니 "양아치 한 명이 누워있어서” 캐스팅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류승완과 류승범을 직접 키운 친할머니는 배우와 감독이 된 두 사람을 향해 "왜 잘생긴 애가 감독을 하고, 못생긴 애가 배우를 하느냐"란 말을 했다고.
이후,<다찌마와 리> <피도 눈물도 없이><주먹이 운다><짝패>등 자신만의 개성 있는 스타일을 만들어 오던 류승완은 2010년 개봉한 <부당거래>를 통해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박수받는 작품을 남기게 된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영화는 못봤어도 한번쯤 들어봤을 명대사가 바로 이 영화에 등장한다. 개봉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영화 중의 하나다.
내가 류승완 감독 작품 중에 가장 애정하는 영화는 <부당거래> 이후 제작한 <베를린> 이다. 개봉 이후 7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류승완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는 영화였다. 긴박함과 긴장된 연출 ,서늘한 공기까지 느껴지는 분위기, 그리고 화려한 액션신을 보며, ‘우리나라 영화도 이런 연출을 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 본인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베를린> 촬영 당시엔 54kg까지 체중이 빠졌다고 한다. 어느 날은 "머리 감을 시간도 없고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삭발까지 감행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속편을 기다리고 있다. 베를린 2 제발)
이 후 “어이가 없네?” 라는 전 국민 유행어도 만들고, 류승완 감독에게 '천만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준 <베테랑>까지 큰 성공을 거두며, 류승완은 한국사회라는 소재를 잘 버무려 세련되게 연출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감독이 되었다.
'강한 놈이 오래가는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거다'라는 <짝패>의 대사처럼 묵묵히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꾸준하게 숙련공처럼 자신만의 길을 찾아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을 갈고 닦으며 진화 해온 류승완 감독이 새영화 ‘ 밀수’ 에서는 또 어떤 류승완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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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을 숨겼더니 가감 없이 드러나는 욕망의 민낯
언더워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스타 지휘자 성진(송승헌)이다. 신혼부부인 성진. 아내 수연(조여정)의 집안에 돈이 아주 많다. 첼리스트인 수연. 선남선녀에 돈까지 많고 직업도 서로 맞으니 부러울 것이 없다. 하지만 성진에겐 외로운 구석이 있다. 아내에게 쌀쌀맞은 성진. 까칠한 남편의 태도에 수연의 마음속에 상처가 늘어난다. 충동적인 수연. 갑자기 흔적도 없이 숨어버리는 것을 계획한다. 어디 나 없이 살아봐! 화가 난 수연. 짧은 영상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로 한다. 합창단에 첼리스트가 사라졌다. 새로운 연주자를 뽑아야 한다. 첼리스트 공고를 내는 성진. 이 빈자리에 묘한 매력의 여성 미주(박지현)가 지원한다. 미주에게 끌리는 성진. 사라진 아내와 본능처럼 이끌린 미주 사이에 성진이 갈등한다. 과연 수연은 어디로 갔을까? 수연과 미주 사이에서 누굴 골라야 할까? 그리고, 그게 전부일까?
꼼꼼한 접근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하나하나 되짚어볼 때 놀라웠던 건 욕망이란 소재를 잘 접근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이 영화에서 베드신을 비롯한 여러 수위 높은 장면들이 들어갈 이유가 필연적이다. 왜? 인물들의 욕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신의 존재를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낼수록 인물들이 가진 내면이 그대로 노출된다. 세 주인공 중 성진이란 인물은 영화의 이 기획의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진은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이 커다랗게 난 인물이다.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고 분명히 아내인 수연에게 사랑을 느끼기는 한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미주에게 강하게 끌린다. 이 양측에서 충돌하는 인물의 내면이 곧바로 베드신에서의 성진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 성진의 모습이 영화 안팎에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가 한쪽으로 확 기울어진 성진의 모습이 ‘쟤 저러다 어떻게 되는 거 아닐까’라는 긴장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욕망이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스릴러로서의 장르 특성을 베드신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 베드신의 존재가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는 극적인 전개에 영향이 간다. 글쓴이는 이 영화가 일종의 성장영화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3인방이 스스로의 욕망에 갇혀 자기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이게 영화의 뼈대라고 치면 영화 안에서 모든 인물들을 한 번에 휘감을만한 사건이 필요하다. 또 인간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사건이 필요하다. 이걸 한꺼번에 엮는다면 어떤 사건이 필요할까? (예고에서도 읽을 수 있듯) 부부관계인 성진과 수연 사이에 갑자기 끼어든 미주의 관계성을 핵심으로 삼는 것도 큰 무리가 아니다. 또 이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생각할만한 것을 뒤엎는다는 점에서도 영화 안에서 베드신은 필수적이다. <헌트>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정재 배우가 감독이었던 영화다. 이 영화에서 액션 시퀀스들은 인물이 처한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히든 페이스> 역시 베드신의 존재가 인물의 내면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베드신과 욕망이라는 소재를 오랫동안 깎아온 감독의 장인정신이 빛난다고 볼 수 있다.
저렴하지 않게
이 영화’를 보며 예상외로 좋았던 건 소위 말하는 ‘때깔’이 좋았다는 점이다. 이 때깔이라는 것은 욕망을 다룬 영화 중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하는 연출지점이다. 왜? 우리 일상 속을 예로 들어보자. ‘난 원래 솔직한 게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보통 실언할 확률이 높다. 영화 역시 이런 사람들과 궤를 같이하는 감이 있다. 같은 말을 해도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에게 품격과 진솔함이 같이 존재하듯 ‘인간의 본질’만 두드러지게 강조하면 연출력이 비판받기 쉽다. 대표적으로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를 지금 당장 구글에 검색하면 좋은 영화라는 평가만큼 혹평이 많다. 해외의 시네필들이 남긴 ‘잔혹하다’라는 평도 평이지만 정성일 평론가가 남긴 평이 인상적이다. ‘단순히 시간의 순서를 역순으로 뒤집기만 했다’이라는 코멘트가 있다. 이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영화가 표현하는 높은 수위에 비해 영화가 담고자 하는 그릇의 크기가 넓지 않았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이 <히든 페이스>는 이런 장르적인 특성을 잘 이해한 것 같다. <돌이킬 수 없는> 보여주는 베드신을 제외하고 나머지 장면들을 보면 김대우 감독이 시청각적인 연출 자체에도 힘을 굉장히 줬다는 느낌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음악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마에스트로라는 직업적 특성을 영화 밖에서도 꺼내오듯 영화 안에서 현악기가 많이 들린다. 이 삽입된 클래식 음악이 인물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탁월했다. 전자음악 위주였다던가 <서울의 봄>처럼 영화의 중후함을 드러내는 음악이 들어갔다면 이질감이 드는 연출이었을 텐데 이 <히든 페이스>는 개성을 잘 살렸다. 이 연출 때깔을 잘 살리는 장면이 후반부에 몇 있다. 성진이 양자택일의 순간에서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또 수연이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몇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 인물이 음악으로 인물의 내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훌륭했다.
또 영화에서 관음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도 극의 품격을 높이는 좋은 수였다. 몰래 훔쳐본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자극적인 행동이다. 일상을 사는 우리 대부분은 남을 염탐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각자 살기 바쁘니까. 이런 일상성과 염탐이 충돌한다는 속성 때문에 이것을 소재로 한 로맨스 영화가 몇 있다. <이창>이나 <헤어질 결심> ,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같은 작품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염탐한다는 인물의 내면을 그대로 채택했다. 이것은 곧 ‘염탐’을 통해 인물을 지켜보는 인물의 모습을 관객들이 지켜봤고, 그 모습에서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낀다!라는 의미다. 염탐을 염탐하는 관객들을 노리고 만든 영화라는 점이다. 이 <히든 페이스>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 ‘염탐하는 인물들’이다. 수연, 미주 역시 누군가를 염탐하는 입장이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동의하지 않겠지만 사실 성진도 염탐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그 염탐에 따라 인물의 내면을 영화가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욕망으로 뒤엉키는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그 욕망은 타인과의 상호관계를 통해 구현된다. 만약 누군가가 타인을 관음 하지 않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면 영화가 그저 그런 삼류 에로영화가 될 것이다. 그냥 하는 행위 자체만 중요하니까. 그러나 <히든 페이스>처럼 지켜보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보여주면 욕망이라는 소재를 캐치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리액션만 보여주면 되니까. 이런 측면에서 영화가 저렴하지 않은 톤을 유지하기 위해 소재와 장르를 잘 이해해서 고른 선택지는 아주 흥미롭다.
한 번 뒤엎은 팜므파탈
이 영화가 가진 다른 작품과의 차이점은 팜므파탈을 색다르게 해석했다는 점이다. 가령 <헤어질 결심>에서도 서래가 딱 그런 예시 중 하나로 보인다 2 묘한 매력을 풍기는 서래. 하지만 그 영화의 중심을 자세하게 들여보면 팜므파탈이 아닌 이유가 그 영화가 가진 낭만적인 성격을 강화시키는 장치가 된다. 이 <히든 페이스>는 팜므파탈을 <헤어질 결심>과는 다르게 더 너절하고 끈적하게 해석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리고 그 뒤엎은 팜므파탈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장르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가끔 사랑영화가 사랑을 곧 추락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본작같은 해석은 사랑의 결과를 다방면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감독이 나름대로의 창의성을 표현했다고도 생각한다.
안 골라도 되는 선택지
이 영화의 엔딩은 엔딩과 플롯이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의문부호가 강하게 든다. 이 영화에서 맥락이 점점 구체적으로 변한다는 건 중요하다. 중반부터 예고와 포스터로 읽을 수 없는 이야기 전개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 사건을 이루는 자세한 사항이 이야기 안에 담겨있다. 여기에 인물들이 나름 입체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핍진성은 글쓴이 입장에서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관음과 욕망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그러다가 후반부가 인물들의 선택이 입체적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걸 골랐다. 다방면으로 생각하다가 갑자기 욕망 그 자체에만 천착한 엔딩으로 끝낸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 그 자체로 흘러간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글쓴이는 좀 더 섬세하고 자세했으면 이야기의 밀도가 더 촘촘했다고 생각한다. 욕망-욕망-욕망-욕망으로만 이야기가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이야기다. 이야기라면 어느 정도의 구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마무시한 조여정
이 영화에 대한 글쓴이의 총평은 '좋은 영화'다. 엔딩이 좀 '이게 뭐지' 싶지만 그 직전까지 끌고 가는 영화 내적인 몰입감이 좋아서 스릴러로서의 역할은 충분하다. 그리고 일단 조여정 배우의 연기가 대단하다. 초중반부까지 흔한 치정극 같은 영화가 중반부터 자신만의 톤으로 변주하는데 이 역할을 조여정 배우 혼자 견인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박지현 배우가 배우로서 과감한 선택을 고른 것 물론 대단하다. 하지만 이 박지현 배우의 야심이 조여정이라는 배우가 조율하는 극의 흐름이 아니었다면 그저 그렇게 묻혔을 거라 생각한다. 기대보다 좋았던,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여정이라는 배우가 빛났던 <히든 페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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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보다는 흥미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
각종 세계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존 덴버 죽이기'(아덴 로즈 콘 데즈 감독)는 현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온라인 마녀사냥, 사이버 불링, 디지털 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문제를 담아 더욱 주목을 받고 있고 국내에는 11월 23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아이패드를 훔쳤다는 누명을 쓴 존 덴버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친구와 싸운다. 그 과정이 편집된 채, SNS에 동영상이 올라가며 존 덴버 사건이 알려진다. 앞 뒤가 잘린 동영상은 존 덴버가 아이패드를 훔쳐간 것도 모자라 친구를 폭행했다는 사실이 되어 '악마'가 된다. 사실과는 전혀 다른 일이 기정사실화 되어 존 덴버는 사이버 불링의 피해자가 되지만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완벽한 '악마'가 되어갈 뿐이었다.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난관에 봉착한 존 덴버는 자신의 결백함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지 영화에서 확인해보면 좋을 듯하다. 설령 당신이 기대했던 결말과 조금 다를지라도.
사실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누가 범인일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존 덴버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실한 영상이 나오지 않았다면 "내가 훔치지 않았어요"라는 말을 믿었을까? 그런 내 모습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물론 범인이 밝혀져야 존 덴버의 무고함에 힘을 보태어줄 수 있지만 이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불특정 다수에 의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으며 추측으로 인한 2차 피해까지 고려하지 않는 현 세태의 문제를 이리도 꼬집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비판을 넘어서 과도한 비이성적인 비난은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은 폭력에 불과하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를 따지기보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정보 공유를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SNS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우리나라 과거의 문제라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실에 의거한 진실보다는 흥미에 관심을 쏟다가 또 다른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으로 옮겨간다. 사실이 아닌 내용과 짜깁기 한 영상들은 검색과 클릭만 할 수 있다면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있으니 사라지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개인의 가벼운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름만 바뀐 채 ㅇㅇㅇ죽이기는 반복될 것이다. 언제까지 혐오에 시간을 허비할 것인가. 여전히 # 해시태그는 한 사람을 향하고 있다. 어딜 향해 날아들지 모를 수많은 말의 화살이 내일은 당신을 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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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분명히 톱스타였던 내가 갑자기 무명 재연배우?
안하무인의 톱스타
오빠 일어나!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에 박강은 부랴부랴 눈을 뜬다. 우리 기사 났어! 동침을 한 동료 여배우의 말에 눈이 뜨인다. 핸드폰을 키는 박강. 뉴스란에 박강의 스캔들이 대문짝 하게 걸려있다. 연말에 귀찮은 일 생겼네. 기사를 처리할 생각에 매니저부터 생각난다. 그런데 눈치 없이 박강은 매니저만 찾지 않았다. 파트너인 동료 여배우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다. "이거 너네 회사가 낸 거 아냐?" 발끈하는 동료 여배우. 집에 크게 걸려있는 박강의 초상화에 커피를 뿌리고 집 밖을 나선다.
박강의 직업은 배우다. 배우라고 하는 것은 연기를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박강은 톱스타다. 사생활은 더럽지만 연기는 곧잘 하는 박강. 한국영화대상이라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정도였다. 올해도 후보 지명뿐만 아니라 수상까지 성공하는 주인공. 박강은 수상소감으로 감사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할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그동안 함께했던 회사 식구들이나 스태프들에게 고맙다고 할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초심 잃겠다'라는, 말실수 아닌 말실수를 해 실검에 등장한다. 안하무인의 톱스타 박강. 온 세상이 우습지만 특히 더 만만한 건 친구 겸 매니저 조윤이다. 회사가 대형 에이전트는 아닌 탓에 박강의 흥망성쇠에 조윤 가족의 일상이 달려있다. 분명 연극 같이 하던 친구이자 동료였는데 조윤은 박강이 하라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한다. 자기가 했던 수상소감처럼 초심을 완벽히 잃은 박강. 이런 박강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도착했다. 택시 하나를 탔을 뿐인데 자기가 톱스타였던 세계관에서 무명 재연배우인 세계관으로 옮겨진 것이다!
왜 지금 개봉을?
영화에서 중요한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다. 이 영화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구색을 갖췄다고 느낀 것은 이 시간적 배경 덕분이다. 영화의 이야기에서 이 작품이 왜 이 시기로 잡았는지 설명하는 편이다. 일단 크리스마스가 있다는 것은 시기가 연말이라는 것이다. 연말이기 때문에 시상식이 있다. 이 시상식에서 박강이라는 인물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묘사하는 대사가 있다. 또 크리스마스 자체가 가족들이랑 보내는 시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만큼 감독이 이야기의 완결성을 잘 생각했다고도 볼 수 있다. 또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와도 연관이 있다. 이 상징적인 의미는 후반부에 어떤 대사와 이어진다. 각본을 쓴 마대윤 감독이 이 부분을 일부러 만들었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또 영화 전체적으로 크리스마스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이야기의 터닝포인트로 활용한 부분이 몇 개 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라는 소재에 여러 키워드를 넣다 보니 좀 아쉬워지는 부분이 있다. 왜 개봉시기가 2023년 1월일까? 하는 생각이다. 2022년 12월에 <아바타 : 물의 길>이라는 자연재해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런데 글쓴이는 11월 말에도 개봉시기로 적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새로운 인생의 탄생’이라는 관점이 극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모티브이기 때문에 1월의 개봉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올빼미>나 <육사오>처럼 장르적인 개성을 어느 정도는 잡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자의 영화(<육사오>)의 경우처럼 나름의 뚝심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한다. 적당히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후에 개봉하는 <유령>, <교섭>보다 더한 임팩트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예감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시기가 좀 아쉬운 영화가 됐다.
심심하면 만날 수 있어
영화의 소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작년 11월에 개봉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다. 찡한 가족드라마이자 ‘당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 영화. <덩케르크>처럼 미니멀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닌 넣을 수 있는 건 죄다 때려 박아서 내내 폭발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그 하나하나 빼곡히 넣은 소재가 영화의 주제 중 하나(‘모든 것을 경험하고 난 후의 삶’)과 이어져서 의미 없이 소모되는 것이 없었다. 이 <에브리씽~>은 이렇게 연출과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는 쾌감 덕분인지 많은 분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하려고 하는 말의 방식이 신선해서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과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의 영화인들이 사골국같이 우려낸 소재다. 이제 <에브리씽~>의 연출방식이 아니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비단 <소울>만 봐도 이런 소재 영화가 재작년에도 있었다.
이 <스위치>는 이렇게 익숙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개성이 느껴졌다. 바로 영화에서 기본적인 구성이 어느 정도는 갖춰졌기 때문이다. 이는 <올빼미>나 <육사오>와 유사한 느낌이다. <올빼미>가 대체역사물과 스릴러라는 익숙한 맛을 살렸다면 <육사오>는 그냥 순수하게 웃기는데 집중한 영화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위치>는 가족구성원들의 캐릭터를 잘 살렸고, 가족의 유대감을 살려 코미디로 소화하는 연출이 몇몇 보인다. 대표적으로 아내 수현 캐릭터가 박강의 행보를 설명해주는 인물처럼 보인다는 것이 그를 설명할 수 있다. 수현이 어떤 캐릭터로 설정됐느냐에 따라 박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좋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나름 잘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인물이 좋은 사람이라 마음이 간다. 그런데 아쉬운 부분도 있다. 수현의 몇몇 대사는 좀 오그라든다. “이렇게 예쁜 선물을 받아서 화가 난고야?”같은 대사는 아쉽다. 이 부분은 영화의 가장 큰 단점과도 이어진다. 수현에게 비교적 올드한 연출이 집중되기 때문에 거의 주인공쯤 되는 분량인 이민정 배우 부분이 약간 숙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사 몰입에 집중이 안 되는 것이다.
다른 가족구성원으로 나오는 어머니, 아들/딸은 나름 연출로 잘 살렸다. 자녀가 되는 로이, 로하 역할은 살짝 아쉬운 박강의 감정선에서 관객을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무슨 말이냐고? 아이들이 귀엽다. 특히 박소이 배우도 귀엽지만 그 동생으로 나온 분이 애가 이쁘다. 극 중에서 그렇게 잘생긴 아이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냥 귀엽다. 캐릭터를 살리는 인물 설정이나 촬영방식에서 이 둘을 살리는 연출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캐릭터인 어머니 역은 두 인물의 차이를 보여주는 역할을 나쁘지 않게 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처음 등장할 때 어떤 위치에서 나왔고, 두 번째 등장할 때 어디서 만났는지를 보다 보면 가족구성원의 위치가 박강을 설명하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스위치>에서 신파극적인 요소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의 근거는 중 후반부쯤에 어머니가 어떤 연기를 보여주는 신이 있다. 뭐 다른 분들은 글쓴이만큼 좋아하진 않겠지만 나는 이 장면이 감정적으로 찡했다. 어머니와 아들 간의 관계를 이렇게 엉엉 울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다. 좋은 연출의 예시였다.
살짝 새는 구멍
영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세팅은 역시 멀티버스다. 영화에서 직접적인 '다중우주' 언급이 없긴 하지만 뭐 다른 평행세계의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멀티버스를 언급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영화 자체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깊게 안 하고 지나가는 것이 좋았다. 단순히 작년만 해도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에서 이에 대한 묘사가 나왔다. 이 이유의 연장선상에서 다중우주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는 많았다. 당연히 이를 두 번 세 번 설명하면 좀 지루하다고 느꼈을 것 같다. 영화는 이 설정을 과감히 생략하며 이야기의 선택과 집중을 강점으로 발휘시켰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가족영화적 특성'에 임팩트를 집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집중하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살짝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박강이라는 인물을 곁에 둔 주변인들의 리액션이다. 영화에서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세계관이 바뀐 박강의 상태 묘사다. 박강은 다른 세계관에서 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다른 세계에서는 슈퍼스타였던 그가 서프라이즈 재연배우로 만족한다는 게 말이 쉽지 막상 내 입장이 되면 나 같아도 저렇게 행동한다. 여기에 물리적인 분량을 할당하고 인물의 서사를 쌓은 방식 자체는 코미디로서도 좋고 영화의 매끄러운 연결이라는 측면에서도 탁월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영화에서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박강의 가까운 지인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묘사된다. 여기서 박강의 인물선은 입체적인데 주인공과 친한 인간관계의 감정선은 평면적인 쪽에 가깝다. 설정에 대한 설명 이전에 박강이 어떻게 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렇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인물 서사에서 이를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후반부의 어떤 이야기전개는 숙제를 푸는 듯이 쉭쉭 넘어간다. 수현이 좋은 사람인 것에 의존하는 셈이다.
그리고 어떤 떡밥은 영화가 강박적으로 풀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영화 전체적으로 따뜻한 가족영화적인 특성을 살렸다. 이를 위해서 떡밥을 푸는 행동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 중 ‘와 이건 좋았다’ 싶은 부분도 있다. 가령 수현이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라는 것, 박강의 가족관계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수현이 그림을 그리는 부분은 이 부부에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소재가 된다. 박강의 가족관계에 대한 부분은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나름 잘 챙겨서 이야기 서사에 굴곡을 부여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것이 ‘강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영화의 엔딩 장면에 대한 이야기다. <헌트>의 엔딩에 대해서 써보자면, 이 작품의 끝 장면은 고윤정 배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정재 감독이 나중에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이랬겠구나’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반대다. 영화의 인물들이 뭘 어떻게 했는지를 너무 대놓고 다 보여준다. 만약 처음 만난 그 장면에서 끊었으면 여운이 엄청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지나치게 친절한 셈이다.
낡은 구석들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이야기를 잘 갖춘 영화지만 나이 든 영화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바로 권상우 배우의 상의 탈의 신 몇 개다. 영화에서 권상우 배우가 상의탈의를 한 장면이 다섯 번 정도 된다. 여기서 두~세 번 빼고는 사실상의 탈의 안 해도 된다. 특히 찜질방에서 조윤과 대화하는 신은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권상우 배우 멋있는 걸 굳이 이 영화를 통해서 알아야 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여기서 보여주는 코미디 신은 호보다 불호가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박강이 슈퍼스타인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장소에서 어떤 행동을 한다. 아 진짜 싫다. 이걸 재밌어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글쓴이는 진짜 너무 싫었다. 왜 저러지? 싶었다. 이후에 박강과 어머니의 대화 신에서 느껴지는 뭉클함이 인상 깊어서 이게 더 두드러졌다.
그리고 수현이라는 캐릭터의 연출 방식도 살짝 아쉽다. 수현 캐릭터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다. 배우로서의 성과가 시원찮은 박강을 굳게 일으켜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로서도 두 아이들에게 좋은 어머니가 되어준다. 그렇다고 인물을 납작하게만 설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인물에서 몰입이 깨지는 느낌은 대사(들)에서 나온다. ‘나 같은 예쁜 선물을 받아서 기분이 나쁜 거야?’식의 대사는 이민정 배우가 처음 등장했던 <그대 웃어요>에서나 본 대사다. 이런 대사가 이야기가 잘 전개되다가 갑자기 등장해서 좀 의아해지는 부분이 있다. 이민정 배우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영화에 플러스가 되는 셈이다. 근데 수현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할 때 이것만 기억나는 거라면 이런 연출방식이 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직업은 배우
사실 권상우 배우에게 예술가적인 기대를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다. ‘옥상으로 따라와’와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빼곤 20대 후반인 글쓴이에게도 뭔가 신선한 느낌이 없다. 저번 작품인 <히트맨>에서도 뭔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이 <스위치>에서 권상우 배우는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왠지 불쌍한 무명배우와 슈퍼스타의 간극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를 잘 연구해서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극에서 굉장히 찡한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도 권상우 배우가 이렇게 감정적인 전달이 좋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안하무인 톱스타가 어떻게 이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느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외로운 눈빛과 몸짓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 분이 새삼 직업이 셀럽이 아니라 배우인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권상우 배우의 최고작 갱신에도 불구하고, 오정세 배우의 퍼포먼스가 압도적이었다. 이 배우가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극 중 극 연기다. 이 영화 안의 드라마 연기와 영화 자체의 퍼포먼스를 비교하면 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또 조윤이 톱스타가 된 세계관에서의 연기도 나름 충실했다. 대놓고 조윤을 안 챙기는 박강과는 다른 대비되는 모습을 '어떻게 하면 인물들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지'를 연구하고 표현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과시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절제된 인물로 톱스타의 오만과 미덕에 대해 연기하는 좋은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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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에이트 쇼 | 메시지도 이야기도 놓쳐버린 불상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평범하게 살아가던 '진수'(류준열). 하지만 그는 지인을 따라서 주식에 손을 댔다가 투자한 돈을 다 잃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중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릴 결심을 한다. 그 순간 갑자기 도착한 입금 문자와 게임 참가를 종용하는 메시지. 계좌에 꽂힌 엄청난 액수의 돈에 놀란 진수는 그 자리에서 게임 참여를 결정한다.
3층 카드를 골라 방에 입주한 그는 1분에 3만 원씩 버는 규칙에 놀라고, 다른 참가자 7명, '8층'(천우희), '7층'(박정민), '4층'(이열음), '6층'(박해준), '2층'(이주영), '5층'(문정희), '1층'(배성우)과 안면을 튼 후 게임을 가능한 오랫동안 지속할 규칙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우연히 갈린 층수에서 비롯된 불평등이 가시화되자 참가자 8명은 서로를 짓밟고 더 많은 돈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감독이 작품보다 우선될 때
거울. 영화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사용하는 비유다. 거울을 보면 안 보이던 외적인 문제를 찾을 수 있듯이, 영화도 관객이 미처 깨닫거나 생각 못했던 사회적 문제를 일깨워줄 수 있으니까. 봉준호의 <기생충>과 <설국열차>가 그랬듯이.
한재림 감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를 자기만의 거울이라 생각한 듯싶다. 배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각색한 이 드라마는 한국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를 비판, 풍자, 고발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전작인 <관상>, <더 킹>, <비상선언>에서 선보인 연출력과 스타일을 적극 활용해 메시지를 펼쳐 보이고, <오징어게임>의 아류작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려고도 한다.
그러나 <더 에이트 쇼>는 한재림의 <기생충>도, <오징어게임>도 되지 못했다. 우선 거울에 비춰 보여주려는 문제점을 영화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다.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감독 자의식이 과하게 반영된 마무리는 시청자가 작품을 소화할 여지를 없앴다. 그 대가로 8부작 드라마의 화려한 볼거리는 단순한 기교에 불과해지고, 의도도 메시지도 가학성과 자극성에게 잡아먹혀 버렸다.
명확한 목적
<더 에이트 쇼>의 목적은 확실하다. 8개 층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에 한국 사회를 빗대어 그 모순점과 불평등함을 비판, 풍자하려 한다. 우연히 1층부터 8층까지 선택한 8명의 주인공. 그들의 운명은 순전히 운에 달렸다. 가장 이상적인 비율의 피보나치 수열로 1층부터 8층까지의 상금이 주어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권력과 부의 격차는 벌어진다. 금수저론, 코인과 주식 열풍이 불었던 원인을 유비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어떻게 보면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의 만남이다. <기생충>이 계단을 활용해 계층 관계를 보여줬듯이, <더 에이트 쇼>도 위아래로 움직이는 동선 속에 1층부터 8층까지의 위계를 녹여냈다. 바삐 움직이는 캐릭터들도 한국인의 대표적인 모습을 집약한 듯하다. 위로 올라가려 발악하는 1, 2, 3층.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4, 6, 8층. 그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5층과 7층. 주변에서, 또 뉴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상이다.
이에 더해 윤리적인 선도 함께 건드린다. 8층을 장악한 이들은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아래층을 잔인하게 찍어 누른다. 인간의 기본적인 3대 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을 통제하거나 자극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시험한다. 이때 <더 에이트 쇼>는 '모든 악행의 책임은 권력을 악용한 개개인의 몫인가? 아니면 그렇게 환경을 조성한 시스템의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진다. <오징어게임>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한재림이 한재림 한 전반전
한재림 감독 특유의 스타일은 <더 에이트 쇼>가 목적에 다가서는 원동력이다. 특히 한재림 감독의 장점이 빛나는 전반부가 유도 인상적이다. 그는 다양한 코미디를 다룰 때도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바 있다. <더 킹>에서는 검사 주인공을 내세워 한국 현대 정치사를 비꼬았다. 계유정난에 개입한 관상가의 비극 속으로 관객을 자연스럽게 초대한 <관상>의 전반부도 인상적인 코미디였다.
<더 에이트 쇼>의 전반전도 마찬가지다. 블랙 코미디 느낌이 짙다. 노동 소득만으로는 부를 늘릴 수 없는 가운데, 주식과 코인 대박을 꿈꾸지만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2030의 모습을 진수에게 투영한다. 그 덕분에 <더 에이트 쇼>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극의 몰입도를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연상시키는 여러 장치는 풍자의 화법으로서도, 블랙코미디라는 신호로서도 탁월하다. 과거 무성영화 스타일의 자막, 필름 화면, 영화 비율을 활용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진수가 슬랩스틱을 여럿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던 타임즈>가 비인간적인 공장 노동에 시달린 노동자의 피폐한 삶을 꼬집었다면, <더 에이트 쇼>는 약 1세기가 지나자 그 노동 자체가 무가치해졌다고 일깨우는 셈이다.
자가당착에 빠진 후반전
문제는 후반부다. <더 에이트 쇼>는 앞서 던진 비판점을 강조하기에 충분한 전개를 보여주지 못한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끝은 냉소와 자조에 가깝다. 어떻게든 꼭대기층으로 올라가려던 1층의 발버둥을 잔인하게 짓밟으며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계단 위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지워 버린다.
그런데 1층을 제외한 게임 참가자들의 삶은 정작 희망적이다. 비록 게임 속에서 겪은 충격적인 일 때문에 피폐해진 듯 보이지만, 거액의 상금을 챙겨 바라던 삶 또는 더 좋은 삶을 누린다. 즉, 현실에서 층수를 바꿀 수 있는 사다리를 제대로 챙긴 셈이다. 1층은 영원히 1층, 8층은 끝까지 8층이라는 게임의 끝과는 거리가 멀다.
자연히 <더 에이트 쇼>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어렵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과는 거리가 먼 결말을 보여준다. 빈부격차와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문제를 비판하려는 건지, 시스템에 순응한 채 조용히 살아야 한다는 건지, 인간성을 버리면서까지 상금을 타내는 참가자들의 노력과 인내심을 본받자는 건지 혼란스럽다.
이 단점은 감독의 전작인 <비상선언>과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화려한 스펙터클로 눈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캐릭터들이 군상극을 펼치기 시작하자 메시지와 개연성, 캐릭터는 모두 흔들리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주제 의식마저도 공감되지 않고, 억지스러운 해피 엔딩은 실망감을 키운다.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있겠지만, 정작 그 메시지를 담아낼 이야기를 만드는 데 실패한 전철을 답습하고 말았다.
허망한 마지막
어떤 면에서는 <비상선언>보다도 더 큰 실패다. <비상선언>에서는 못 본 단점이 드러나기 때문. '7층'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7층은 자기가 경험한 게임을 토대로 '더 에이트 쇼' 시나리오를 쓴다. 한때 흥행 감독이었던 7층이 이제는 현실적이고 예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는 감독의 자의식이 투영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7층이 쓴 시나리오 제목을 비추는 엔딩은 인상적이지 않다. 허세에 가까워 보인다. <더 에이트 쇼>의 내용이나 문제의식은 결코 날카롭거나 새롭지 않기 때문.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이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을 활용해 하위 계층을 더 촘촘히 감시하고, 착취하는 현상은 이미 <설국열차>, <오징어게임>, <헝거게임> 등 숱한 작품이 다룬 바 있다.
또 다른 작품들과 달리 문제의식을 제시할 뿐, 그 대안이나 비전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설국열차>에서는 기차가 전복됐다. 캣니스는 헝거게임 경기장을 부수고, 성기훈은 프론트맨을 잡으러 간다. 반면에 <더 에이트 쇼>는 게임을 끝낸 참가자들이 상금 덕분에 해피엔딩을 누리는 것 다음 이야기가 없다. 그저 영화감독인 7층의 입을 빌려 사회 모순을 통찰했고, 그 비판을 드라마(영화)에 담아냈다는 도돌이표에 그친다.
만약 <기생충>처럼 아예 새로운 문제의식을 보여줬다면 다른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기생충>은 기득권은 악하고, 빈곤층은 선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면서 관객의 시야를 넓혀 버렸으니까. 그런데 <더 에이트 쇼>는 그 정도의 통찰력까지는 못 보여줬다. 권력자는 악하고 타락하고, 빈자는 선하지만 고통받는다는 오래된 도그마를 답습하기 바쁘다. 자연히 메타적인 결말은 더욱 허망하고 실망스럽다.
<더 에이트 쇼>가 <오징어게임>이 될 수 없는 이유
주제 의식과 의도에 공감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게임 자체를 보는 재미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오징어게임>과 <더 에이트 쇼>의 결정적인 차이다. 두 게임의 참가자 모두 돈을 원한다. 하지만 전자는 예상치 못하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수동적인 플레이어였다. 반면에 후자는 능동적인 주체다. 자기 의지로 상대의 존엄성을 가능한 잔인하게 짓밟는다. 그 결과 계속해서 연장되는 게임 시간은 쾌감 대신 거북함으로 가득해진다.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극단적인 참가자도 몰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특정한 인물상을 대변하는 장기짝에 불과하다. 정신병자, 천재, 선인, 악인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티끌만큼도 변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속고 속이는 후반부에서는 속는 사람의 아둔함에 탄식이 나올 정도다. 캐릭터 간의 관계와 심리 변화를 쫓는 <오징어게임>의 재미는 찾아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영화 대신 드라마를 선택한 결정도 악수다.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전개가 느리다. 그러다 보니 <더 에이트 쇼>는 중간마다 가학적인 장면을 의도적으로 전시할 수밖에 없다. 왕게임이나 숨바꼭질처럼 특별하지 않은 게임이 등장하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인 상황을 조성하기도 한다. 수면 고문 장면처럼.
결국 <더 에이트 쇼>는 거울이 아니라 빈 깡통이다. 감독과 출연자의 명성은 요란하고, 볼거리는 화려하다.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은 특별하지도,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Poor 형편없음
<더 킹> 마냥 이륙해서 <비상선언>처럼 착륙한 한재림표 <오징어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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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액션은 90점 스토리는 30점
#영화 #다만악에서구하소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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