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1-27 15:02:10
미래가 될 수 없는 어떤 과거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리뷰
SYNOPSIS.
천재 피아니스트,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
보사노바 황금기를 책으로 담으려던 기자 ‘제프 해리스’.
우연히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그 주인공 ‘테노리우 주니오르’에 매료된다.
하지만 30년 넘게 음악 활동을 멈춘 그의 삶은 미스터리로 가득했다.
제프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여러 음악가들과 인터뷰를 거듭하며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데...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은 테노리우 주니오르가 아르헨티나 투어 중 실종되었다는 것!
POINT.
✔ <치코와 리타>에서 쿠바를 배경으로 재즈와 사랑을 얽어 보여주었던 바로 그 감독이, 이번에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피아노 연주자의 실화를 담아 왔습니다
✔ 보사노바 재즈 아티스트를 좋아한다면 놓치기 아쉬운 이름들이 숱하게 지나가는 작품
✔ 화려한 색감과 보사노바 재즈 음악으로 우리의 감각을 두드리는 작품
✔ 동시에, 한 시대의 어둑한 이야기를 조망하는 작품
✔ (요즘 왜 자꾸 이런지 모르겠지만~ 알겠기도 하고~) 지금 이 시국에 보면 섬뜩해지면서 더 의미를 품고 다가오는 작품
✔ 1월 29일 개봉

한 장르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났던 시절을 뒤돌아보는 것은 언제나 묘한 감정을 준다. 모든 부와 시선이 집중되어 미친 듯이 빛나는 시기를 보는 일은 눈이 즐거울 수밖에 없지만, 그 결말 혹은 명암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래의 입장에서 소위 황금기 혹은 전성기였던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단순 노스탤지어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바빌론>, <맹크>, <헤일, 시저> 같은 작품들을 생각해 본다.

보사노바의 물결을 타고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제프 해리스라는 작가가 재즈 관련 칼럼으로 유명세를 얻고 새 책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들었던 앨범 속 피아노 연주자 테노리우 주니오르(Tenorio Junior)의 삶과 행적을 따라가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패럴림픽 마스코트 이름에까지 쓰였던 조빔이나 비니시우스의 명성에 비해 낯선 이름이지만, 그의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브라질에서 태동한 보사노바 재즈의 물결, 그 원류를 마주하게 된다.
보사노바의 창시자처럼 여겨지는 작곡가 조빔과, <이파네마의 소녀> 작사가이기도 한 시인 비니시우스의 만남. <슬픔이여 안녕(Chega de Saudade)>라는 전설적인 곡의 탄생, 엘라 피츠제럴드가 자기 공연을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가던 클럽의 존재까지... 브라질이 세계 음악의 중심지처럼 여겨졌던 그 시절. ('보사노바Bossa Nova'라는 단어 뜻 자체도 뉴웨이브, 누벨바그와 똑같다는 지점에서 더더욱) 영화로 치면 누벨바그 같은 시절이었다. (그 과정에서 엘라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아티스트들의 육성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과 기쁨과 위대함만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보사노바가 널리널리 알려지던 그 전성기는 상처와 함께 이어진다. 1964년부터 1985년까지 20년 간 이어진 브라질의 군부 독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살해와 실종으로 이어졌고,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독재 세력은 사람들이 함께 음악을 듣는 행위를 싫어한다. 예술가들도 탄압을 받았고, 많은 브라질 뮤지션들은 때마침 무르익은 보사노바 음악과 함께 북미권에 진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살해당하고 실종당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도 예술가가 있었다.

영화는 재즈 애니메이션에 담근 다큐멘터리로, 애니메이션 작화 이전에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말했을지 쉽게 연상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가 들어 있다. 그들의 말은 다소 반복적으로 전개되는데, 그 부분이 내겐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무수한 피해 증언이 모자이크처럼 모여 거대한 국가 폭력을 고발하는 그림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료이자 친구였던 테노리우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여전히 괴로워했고, 그를 그리워했으며, 그의 면면은 조금도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정치적인 삶을 살지도 않았고, (거의 불교도 같았다는 주변인들의 증언과는 달리) 곧 태어날 아이까지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과 아내를 두고 애인을 동행해 투어를 떠날 만큼 그다지 도덕적인 현자도 아니었으며, 다만 그가 남긴 악보만으로도 너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곡을 남긴 훌륭한 음악가였던 테노리우 주니오르는, 그의 삶이 아니라 그의 죽음으로 '정치적'이 되었다.

미래가 될 뻔한 과거를 타고
삶의 한 순간을 강렬하게 스친, 오래도록 좋은 기억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살해되었다는 소식... 그것도 마땅히 국민을 지키고 삶의 기반이 되어야 할 국가가 주도하여 살해했다는 소식은 언제나 끔찍하다. 내 친구가 아무런 이유 없이 어딘가에서 학살 당하는 세상이라니. 독재 정권이란 뭘까. 왜 음악가와 학생과 시인과 주부와 어린아이를 죽일까.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기관총과 군인, 검열이 거리 곳곳에 깔려 있는 당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비니시우스와 피아졸라도 있었던 도시는 그들로 인해 "모퉁이를 돌아가더니 영영 안 돌아"오는 사람들의 도시가 되어버린 풍경. 그건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되었을 수도 있는 풍경이었다.
비록 국회와 시민들에 의해 막히기는 했으나, 우리도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으며, 누군가를 "계엄법에 의해 처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문건이 발표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본 것이다.

"(...) 선량한 일반 시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하겠다지만, 그런 도시에서 과연 무엇이 살아남을 수 있나. 음악도, 북적이는 사람들도, 예술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영화에서 테노리우의 죽음을 "브라질 음악의 죽음의 메타포"라고 언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권력으로 사람을 찍어 누르는 사회에서 예술은 온전히 피어오를 수 없다. 그래서 더없이 '예술'적인 이 영화의 화려한 색감과 리드미컬한 음악에도 불구하고, 거기 실려 전해진 지구 반대편 나라의 근대사가 단순한 과거로만 느껴지지 않아 극장에서 섬뜩함을 몇 번이나 느껴야 했다.

테노리우가 2024년 12월 3일 이야기를 들었다면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알 수 없다. 영화에서도 몇 번이나 서술되듯, 그는 자신이 두고 간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을 비롯해 그 어떤 미래도 보지 못했으므로. 죽은 자를 떠올릴 때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이유다. 내 기억 속 그들은 너무 생생한데, 그는 모른다.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로 지하철을 타는 세상도, 한국에서 칸영화제와 오스카영화제를 석권한 영화가 나오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사실도, 그들이 없는 세상에서 이만큼 나이를 먹은 나의 모습도.
테노리우의 음악은 좋은 음악이 줄줄이 나오는 이 영화에서도 손 꼽히게 아름다워 전곡을 따로 듣고 싶어질 정도였으나,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테노리우의 죽음은 단순히 한 음악가의 죽음 혹은 한 장르의 죽음에 대한 메타포 이전에, 국가폭력의 희생자는 사실 "아직 우리 곁에 있었어야 할 사람"임을 깨닫게 한다. 이는 수많은 상상을 발휘하게 한다. 어쩌면 윤동주가 전태일에 대한 시를 썼을 수도 있는 것이다. 군부 독재에 희생된 젊은이들 중 누군가가 세월호를 생각하고 목소리를 내는 장면을 우리가 보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무너진 자리에 우뚝 설 기록을 타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내게 인상 깊었던 인물들은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짧게는 국가가 행한 폭력의 기록을 보관하는 이들에서부터, (이와 비슷한 이들의 존재감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도 두드러진다) 좀더 확장하자면 제프가 글을 쓰게 하는 뉴욕의 편집자 제시카와 브라질 현지 친구 주앙도 그렇다. 이들은 계속해서 제프에게서 글을 끌어내고 그를 조력하여, 제프가 글을 완성하게 한다.
독재 정권들이 마치 짠 것처럼 싫어하는 대상은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뿐만이 아니다. 폭력에 물들고 깨진 이들의 사고는 온건한 언어를 견디지 못하여, 언어를 무너뜨린다. 고문을 기다리는 통로는 "행복의 길"로 불리고, 영원한 실종은 "수송 작전"으로 불린다. 아이히만에 대해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래가 되어서는 안될, 결코 미래가 될 수 없을 어떤 과거를 재현하지 않는 방법은 기록과 기억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일에 많은 부분을 기댄다. 영화 속에서 테노리우의 죽음은, 죽음 이후 테노리우가 알지 못하는 세상은, 배턴을 이어받듯 여기까지 기록되어 왔다.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를 보는 당신을 통해, 또 한 번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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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금주에는 대형 영화 대신 높은 완성도로 호평받고 있는 예술 영화들이 대거 개봉합니다.
기념비적인 공포영화 F.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1922)가 새롭게 돌아옵니다. <더 위치>, <라이트하우스>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만들어낸 로버트 애거스 감독의 시선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북미에서만 누적 수익 8,000만 달러를 넘기며 인디 영화로서는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 중입니다.
얼마 전, 진행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작품인 <리얼 페인>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배우로 더 친숙한 제시 아이젠버그가 연출과 연기를 맡은 작품입니다. 그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1939년까지 조부모님이 살았던 폴란드의 집과 마을에서 촬영했다고 전해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카모메 식당>, <안경>으로 국내에도 사랑받았던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서늘한 신작 <파문>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배우상을 수상한 <은빛살구>도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럼 1월 셋째 주 PICK 소개를 시작합니다!
노스페라투
Nosferatu
개요: 공포 | 미국 | 132분
감독: 로버트 애거스
주연: 릴리 로즈 뎁, 니콜라스 홀트, 빌 스카스가드, 애런 존슨, 윌렘 대포, 엠마 코린
개봉: 2025.01.15.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줄거리
오랜 시간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이끌려 악몽과 괴로움에 시달려 온 ‘엘렌’.
남편 ‘토마스’가 거액의 부동산 계약을 위해 머나먼 ‘올록성’으로 떠난 후부터
엘렌은 불안 증세가 심해지고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인다. “그가 오고 있어…”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나며 마을로 점점 짙게 번져오는 그림자.
영원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올록 백작이 찾아오는데…
리얼 페인
A REAL PAIN
개요: 드라마 | 폴란드, 미국 | 90분
감독: 제시 아이젠버그
주연: 제시 아이젠버그, 키에란 컬킨
개봉: 2025.01.15.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줄거리
달라도 너무 다른 정반대 사촌과의 여행, 괜찮을까?
생김새부터 성격, 취향까지 모든 것이 다른 두 사촌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와 '벤지'(키에란 컬킨).
돌아가신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오랜만에 재회한다. 한때는 형제처럼 친밀했지만 각자의 삶과 가족 등의 이유로 멀어졌던 둘의 관계는 할머니의 고향인 폴란드를 방문해 투어를 떠나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둘의 극과 극 성격은 투어에서도 균열을 만들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면서,
미묘한 감정의 골 또한 더욱 커져만 가는데...
파문
Ripples
개요: 드라마 | 일본 | 121분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주연: 츠츠이 마리코, 미츠이시 켄
개봉: 2025.01.15.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줄거리
남편이 집을 나간 후, 생명수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요리코’.
매일 생명수에 기도를 올리고 정원을 정리하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집을 나갔던 남편이 암에 걸려 돌아오며 잔잔했던 ‘요리코’의 마음에 커다란 파문이 일기 시작하는데…
은빛살구
Silver Apricot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21분
감독: 장만민
주연: 나애진, 안석환, 강봉성, 김진영, 최정현
개봉: 2025.01.15.
배급: 마노엔터테인먼트
줄거리
퇴근 후 뱀파이어 웹툰을 그리는 웹툰 작가이자 비정규직 웹디자이너 ‘정서’(나애진). 남자 친구 ‘경현’(강봉성)과의 결혼을 앞두고 서울의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지만 계약금 준비가 쉽지 않다.
이에 엄마 ‘미영’(박현숙)은 이혼할 때 ‘영주’(안석환)에게 받은 차용증이 붙은 색소폰을 건네주고, ‘정서’는 아버지 ‘영주’가 있는 강원도 동해시의 묵호항 벌교횟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가깝지만 먼, 낯선 가족들의 욕망에 휘말리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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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정상궤도로 돌아온 레전드 SF 호러
이제야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시리즈의 장점과 향수를 자극하며 작품 본연의 재미를 견고하게 다지는 데 성공한다. 개봉 전 이 영화의 완성도는 반신반의했다. 그 이유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구축한 <에이리언>의 세계관이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그 힘이 떨어졌기 때문. 하지만 새롭게 조종석에 앉은 페데 알바레즈는 보란 듯이 성공적 도킹에 이른다.
2142년, 거대 기업 ‘웨이랜드 유타니’의 우주 식민지화 사업은 가열차게 돌아간다. 사업이 확장할수록 죽어 나가는 건 노동자들이다. 우주 식민지에서 기업의 노예처럼 사는 레인(케일리 스패니)는 친동생처럼 여기는 합성 인조인간 앤디(데이비드 존슨)와 낙원과도 같은 식민지 이비가 행성을 가려 한다. 노동시간을 채우면 행성 이동이 가능한 시스템을 활용해 이를 신청한 레인은 영문 모를 이유에 거절당하고, 좌절한다. 그러던 그에게 친구들이 찾아와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식민지를 함께 떠날 계획을 들려주고, 이들은 바로 행동에 옮긴다. 그 첫 목적지는 버려진 우주기지 ‘로물루스’. 이곳에서 동면용 장치와 연료를 가져오려는 레인과 친구들은 굳게 닫힌 문을 연다. 그 안에 에이리언의 무자비한 공격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가져오는 대신 익숙하지만 멋들어진 오마주를 펼친다. 스토리 라인도 곁가지를 다 쳐낸 듯 매우 단순하다. 희망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청춘들이 버려진 우주기지 안에서 미지의 외계생명체와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기존 IP가 가진 가공할 힘에 기댄 듯한 영화의 전략은 주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번 영화에서 제작자로도 참여한 리들리 스콧 때문인 동시에 덕분이다.
2012년, <에이리언> 시리즈를 다시 회생시키기 위해 리들리 스콧은 다시 도킹을 시도했다. 숨겨진 에이리언의 기원을 소개하는 <프로메테우스>를 비롯해 2017년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내놓은 것. 시리즈의 팬들이 그토록 궁금해한 외계생명체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의의를 둘 수 있지만, 영화 고유의 끈적끈적한 공포의 맛은 덜해졌다. 또 다른 동력으로 불멸의 시리즈를 이어 가기 위해 그 기회를 엿봤던 리들리 스콧에게는 다소 아쉬운 선택이 된 것.
어느 순간 목적지 없이 유영하는 우주선이 된 이 시리즈의 굳게 닫힌 문을 연 이는 <맨 인 더 다크>로 유명한 페데 알바레즈다. 감독은 이야기의 깊이와 넓이의 확장 대신, 에이리언 고유의 재미와 매력을 살리기 위한 심폐소생술에 집중한다. 에이리언의 광팬이라 밝힌 감독은 우주선 밀실 공포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에이리언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1편의 초기 설정처럼 의문의 외계 생명체의 출현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의 모습, 페이스허거를 시작으로 체스트버스터, 제노모프 등 에이리언의 성장 단계별 모습과 공격 등 상세히 설명한다.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미지의 공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듯한 느낌이 강하다. 이런 부분은 기존 팬들에게는 향수로, 이 시리즈를 새롭게 볼 신규 관객들에게는 이 세계관의 친절한 입문서로서 읽힌다.
기존 시리즈와 동어반복적인 스토리라인에도 기시감을 넘는 긴장감을 계속해서 부여하는 건 멋들어진 오마주 덕분이다. 1편에서 봤었던 우주선 조작키부터 내부 통로, 투박한 모니터와 화질 등 그 시절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통해 만났던 디자인은 물론, 보기만 해도 고개를 돌릴 정도로 매끈한 빅헤드를 들이밀며, 턱받이가 필요할 정도로 산성 침을 질질 흘리는 얼굴, 그리고 입에서 촉수처럼 또 하나의 입이 나오는 크리처의 향연은 그 자체로 멋지다. 어둠속에서 머리나 꼬리를 살짝 보여주며 공포감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 수평, 수직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공격을 가하는 액션 스타일까지 구현한다. 특히 <맨 인 더 다크> <이블 데드>(2013)에서 보여줬던 분위기와 액션을 잘 활용한 듯한 느낌도 든다. 여기에 CG가 아닌 아날로그 방식으로 크리처를 제작해 연기를 펼쳤다는 것만으로도 감독의 덕심은 영화를 향한 존경으로 바뀐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시리즈의 장점만을 계승한다는 목적 아래 오마주만 바친 건 아니다. 레인과 앤디의 관계성은 그 자체로 새로움을 전한다. 이들의 관계는 창조주(인간)와 창조물(합성 인간)의 관계를 뛰어넘어 유사 남매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더불어 로물루스에 올라타며 과거 이 우주기지에 있던 합성 인간의 디스크를 통해 업그레이드 한 이후 180도 돌변하는 앤디의 모습을 통해 극의 긴장감을 더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들은 손을 잡고 연대를 펼친다. 마치 1편에서는 리플리의 적이었다가 2편에서는 동지로 우정을 나누는 합성 인간 비숍(랜스 헨릭슨)처럼 말이다.
더불어 중력을 활용한 액션 시퀀스는 그 자체로 새로움을 준다. 인간이나 에이리언 모두 중력에 굴복하는 생명체라는 점에 착안해 이를 활용한 후반부 액션 시퀀스는 기존과 다른 액션의 묘미를 전하기 충분하다. 더불어 남루한 현실을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몸부림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레인과 친구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스릴을 맛보게 한다.
앞서 언급한 장점 못지않게 대체로 인물들의 전사가 길고, 기존 시리즈의 스토리라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인간과 에이리언의 사투가 과거 보다 신선함이 떨어지는 등 영화가 가진 단점도 명확하다. 오마주를 바치고, 향수를 자극한다고 해도 그건 일시적인 충족감을 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데 알바라즈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궤도를 벗어난 시리즈를 정상 궤도로 다시 옮긴 작업을 했다고 본다. 오랫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에이리언> 시리즈의 강점과 매력은 무엇인지 인장을 제대로 찍고 싶어 했다는 생각이 영화에 비춰줬다. 단순히 이건 덕심만으로 작동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이 불멸의 시리즈를 어떻게든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런 감독의 마음을 알아챈 이들이라면 다음 시리즈가 나올 동안 다들 동면에 취할 듯하다. 기대감에 부픈 미소를 머금고.덧붙이는 말: 영화 제목이기도 한 ‘로물루스’는 쌍둥이 동생 레무스와 함께 로마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왕의 이름이다. 이들은 티베리스강에 버려졌으나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인물로, 늑대의 힘을 지닌 인간으로 여겨진다. 극 중 우주기지에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이름이 명시되어 있고, 늑대 젖을 먹는 두 인물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있을 정도. 웨이랜드 유타니 사가 왜 이런 이름의 우주기지를 만들고, 그 안에서 외계생명체를 통해 어떤 걸 만들려고 했는지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평점: 3.5 / 5.0
한줄평: 침흘리개 친구야! 어디 갔다 이제야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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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만의 독특한 감성, 북유럽 영화 추천! 🎬🇫🇮 🇸🇪 🇩🇰
안녕하세요, YELM입니다!
오늘은 북유럽 추천작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북유럽영화 특유의 독특한 감성이 잘 녹아있는 추천작 5개 빠르게 추천해드릴게요 :)
/ 순서는 순위가 아닙니다. /
사랑은 낙엽을 타고
Kuolleet lehdet (2023)
헬싱키의 외로운 두 사람이 우연히 카라오케바에서 마주치고, 서로에게 호감이 생깁니다. 그러나, 하늘은 그들에게 결코 쉽게 행복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잃어버린 상황에서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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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특유의 차갑고 정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이렇게 차갑고 소심한 사랑영화가 있을까요?
경계선
Gräns (2018)
출입국 세관 직원인 '티나'는 냄새로 사람의 감정을 읽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조금 독특한 외모에 사람들과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어느날, 티나는 자신과 비슷한 외모의 남성 '보레'를 마주한다.
그가 들고 있던 수상한 짐때문인지, 모든 것이 수상하고 이상한 보레.
그녀는 그런 그에게 흥미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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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괴하고, 독특하고, 어쩌면 역겹기까지한 스웨덴 영화입니다.
개봉 당시, 평단의 찬사가 이어진 작품으로서 새로운 영화적 충격을 받고 싶으시다면 주저 없이 추천드리고 싶네요!
라이카 시네마
Cinema Laika (2023)
핀란드의 한 작은 마을의 주조공장에 시인이자 작가인 미카 라티는 그의 친구인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함께 영화관을 짓기로하고 프로젝트에 돌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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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핀란드의 작은 마을에 영화관을 짓는 다큐멘터리로, 잔잔한 흐름의 영화입니다.
큰 사건사고, 흥미로운 전개, 독특한 캐릭터등 관객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요소는 없지만, 관객들에게 영화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도그빌
Dogville (2003)
도망자 '그레이스'는 자신을 쫓는 사람들을 피해 작은 마을 '도그빌'에 도착합니다.
마을 주민 '톰'이 그레이스를 발견하게 되고, 톰은 주민들을 설득해 그녀를 마을에서 보호해주기로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점 큰 보호의 대가를 그레이스에게 요구하게 되고, 작은 마을은 곧 그녀의 평온한 안식처가 아닌 감옥으로 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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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감독 중 한명인,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그의 영화는 항상 기괴하고, 혐오스럽고, 심오하죠.
그 중 '도그빌'은 가장 순한 맛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을 선으로만 표현하는 독특한 연출과 제한된 공간에서도 극중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이는 멋진 작품입니다.
어나더 라운드
Druk (2020)
인생에 활력이 없는 중년 남성 4명이 '혈중 알콜 농도가 0.05%이 되면 더 적극적인 성격이 발현된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실험을 합니다.
과연, 실험은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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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흥미로운 가설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영화입니다.
실험이 그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주목해보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떠올리면 인상깊은 결말이 생각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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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드린 독특한 감성의 북유럽 영화들 보시고 후기 댓글 남겨주세요!
이번주도 영화와 함께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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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과 방 사이의 섬
온갖 유형 테스트가 범람하고 있다. 각종 심리테스트나 백문백답처럼 옛날 싸이월드에서 하던 것들이 여전히 0과 1의 세계에 돌아다니는 걸 보면 유행이 정말 돌고 도나 보다. 대부분은 시중에 돌아다니는 MBTI 테스트 변용이라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가끔 해본다. 나도 뭐라고 언어화해본 적 없는 취향을 딱 표현하는 말을 찾아내기도 하고, 친구들이랑 공유하면서 내가 아는 그들의 성향과 내용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어서.
국내 유수의 영화제들도 ‘영화 취향 테스트’ 같은 걸 많이 하던데, 무의식 중의 취향을 확인하곤 한다. 지난 5월 전주에서 내 영화 고르는 기준에 ‘포스터’가 상당히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정확하게는 분위기. 포스터나 예고편 영상에서 풍기는 분위기나 느낌이 좋으면 일단 본다. 설령 시놉시스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시놉시스에 다 담기지 않는 감정이나 장점들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킬링 오브 투 러버스>도 포스터가 마음에 들었으나 시놉시스 읽고는 볼지 말 지 고민했다.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에 동의하고 별거 중인 부부, 결혼과 육아로 단절된 꿈을 되찾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한 아내,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새로운 애인, 그리고 거기서 펼쳐지는 감정의 자기장. 음, K-드라마로 다수의 삼각관계 클리셰에 단련된 K-유교걸은 이런 오픈 릴레이션십의 쿨한 면면이 편치 않다고.
그래도 포스터나 예고편 영상에서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일단 보고 생각하기로 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점, 최근 <기생충>이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등 아트영화에서 손꼽히는 작품들을 계속 배급해온 북미 배급사 NEON에서 선택한 작품이라는 설명도 고민을 끝내는 데 일조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짧은 시 한 편의 전문을 떠올렸다.
<섬>,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내가 이 영화에서 본 건 오픈 릴레이션십 안에 놓인 세 사람의 쿨한 감정 놀음도 관능적인 육체 관계도 아니었다. 그보다 좀 더 초라하고 보편적인 인간 감정,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과 그 실패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문이 굳게 닫힌 각자 마음의 방, 그리고 방과 방 사이 놓인 섬이었다.
영화는 기승전결을 천천히 쌓아 올리는 게 아니라, 긴장의 한복판에서 대뜸 시작한다. 잠들어 있는 아내 니키와 그 연인 데릭에게 총을 겨누다가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에 한숨을 푹 쉬고는 창문으로 집을 빠져나와 달리는 남편 데이빗의 모습에서.
흐리고 눈 쌓인 회색 지면에서 데이빗은 달리고, 음산하고 불안한 음악이 그 뒷모습을 따라간다. 흔히 생각하는 화성 악기의 느낌이 아니라, 일상의 소음들을 기묘하게 조합해 낸 느낌의 음악이다. 삐걱거리는 소리들이 무너져가는 관계를 드러내고, 차 문 닫는 소리들이 총소리처럼 쾅쾅 울린다. ‘체호프의 총’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그 법칙을 뒤집는 총이라는 생각도 든다. 첫 시퀀스는 그렇게 영화 전체를 멋지게 끌고 가며 영화의 짜임새를 단단히 한다. 시작된 긴장감은 영화 내내 사람을 콱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음악과 함께 사람을 영화에 가둬놓은 건 화면 비율이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4:3 비율의 화면이었다. 사실 나는 화면 비율이나 사운드 등을 예민하게 인지하는 사람은 아니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4:3 화면비는 모를 수가 없다. 옛날 텔레비전 드라마 비율이었으니까. 극장에서는 무성영화 시절에나 쓰던 비율이었고,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사용하지 않은 지 한참이라, 이제 와이드 스크린에 익숙해진 내 눈에는 화면이 좁다고 인식된다.
영화 배경으로 보이는 들판은 너무나 광활하여, 적막하고 쓸쓸할 만큼 넓게 펼쳐져 있는데, 정작 인물들은 운전석에 꽉 끼어서 대화한다. 영화의 많은 순간 운전석에서 같은 각도로 잡히는 데이빗과, 모처럼 잡은 데이트를 자꾸 뚝뚝 끊는 것 같은 아내 니키. 타이트하게 잡힌 얼굴로, 운전석에 고정된 옆얼굴로, 피로한 표정으로, 눈을 보지 않은 채로 하는 대화. 좁은 화면 비 안에서 좁게 멈춰 나누는 대화.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교착 상태가 두 사람의 관계를 고스란히 대변한다.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안정감이라곤 없이 불편하고 어긋난 두 사람의 삐걱거리는 관계 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의 데릭은 비집고 들어서려 한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세 연인의 감정싸움이다.
이 영화를 전형적인 감정싸움 이상으로 넘어가게 하는 데에는 아이들의 존재감도 한몫한다. 어떻게 저렇게 딱 그 나이 아이들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지. 막내들의 옹알거리는 대화나 행동들, 사춘기에 맞아 엄마아빠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파악한 큰딸의 혼란스럽고 짜증 나는 마음 같은 것들이 그들의 대사와 표정에 너무나 잘 들어가 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겠다고 나온 공원에서, 로켓에 흥미를 보이다가도 잘 되지 않으니 토라지는 큰딸의 복잡한 마음도,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뒤돌아서는 누나를 보며 민망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아빠에게 “고마워요”라는 말을 잊지 않는 동생의 뻘쭘해진 마음도.
아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돌아보는 그 순간들이 이 영화의 파편 같은 관계들을 끌어모은다. 니키와 데이빗의 전사가 자세히 묘사되지 않지만, 두 사람과 아이들 사이 몇 마디 대사에서 성긴 추측이 가능하다. 서로를 사랑한다 하며 어린 나이에 결혼했고, 아이를 넷 낳았고, 터울이 좀 있는 걸 보니 육아의 무한 굴레에 빠져 있었을 것이고, 당연히 힘들어 허덕이는 순간들이 있었을 테고… 그러다 보니 이 선택을 위해 기각되었던, 사랑에 비해 빛을 잃은 듯 보였던 다른 선택지들을 돌아볼 요량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게 된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에도 동의하는 기이한 행태의 별거를 시작한 데까지. 그 후로도 시간이 점점 소용돌이치며 위태로워질 때까지.
일상의 소리들이 음산하고 불안한 음악을 이뤄낸 것처럼, 불행은 그렇게 일상의 크고 작은 틈에서 쌓이는 것인지 모른다. 차 문 닫는 소리가 끝내 총소리에 이른 것처럼. 배려의 겉옷을 입은 그 마음은, 딱히 크게 누구 잘못도 아니었던 마음들은, 아이들만큼도 못했다. 아장아장 걷는 걸음을 이제 막 벗어난 아이만큼도 서로에게 이르지 못했다.
잘해보고 싶었던 마음들이 실패로 돌아갈 때, 이것이 최선이었나 돌아보게 될 때, 스스로가 초라해질 때, 구질구질한 마음들이 복잡하게 안을 메울 때, 차라리 지지부진한 관계에 깔끔하게 선을 긋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 때. 더 잘해보려고 내린 선택이 회오리처럼 더 휘몰아쳐,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그때 삶의 문제를 녹이는 실마리는 무엇일까.
긴장감에 휩싸여 보던 영화에서 한 줄기 미소 지을 수 있었던 순간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가 넷이나 있는 부부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보인 마음 때문이었다. 갑자기 화를 팩 내며 돌아가 버린 누나의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누나의 마음이 좋지 않음을 이해하고, 덩달아 마음이 좋지 않아진 아빠를 헤아려 “고마워요”라는 말로 어색한 공기를 뚫는 아이의 마음을 생각한다. 소용돌이치며 끝도 없이 높아져만 가는 긴장감의 끝, 보는 내내 궁금했던 결말에서 툭 터지던 마음도 함께 생각한다.
나의 방을 벗어나 서로의 사이에 있는 섬으로 나아가는 것. 더없이 차가운 온도일 것만 같았던 이 ‘트랜스픽싱(transfixing; 두려움이나 경악으로 얼어붙게 만드는)’ 로맨스의 끝에 발견한 건 초라한 마음까지도 내려놓고 문을 여는 마음, 사랑이었다.
영화 킬링오브투러버스 X 케빈오 Oh My Sun 콜라보 뮤비. 쓸쓸한 배경과 조용한 사랑이 잘 묻어나 있어 좋았다.
*영화사 블루라벨픽쳐스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영화를 감상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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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없이 밀려오다 부딪히는 파도처럼. 빅 리틀 라이즈 (2017-2019)
이렇게 여성들의 연대를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 또 있을까. 매 화마다 등장하는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는 그들이 매번 마주하는 풍경이자, 순간들이고 때로는 이들을 한 곳으로 이끌어 위로해주기도 한다.
드라마 오프닝 장면부터 오랫동안 기억해두고 싶다. <빅 리틀 라이즈> 속 이들은 모두 '엄마'라는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데,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이들의 학교를 데려다 주기 위해 차를 모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클로즈업하며 스쳐 지나가는 표정을 담아낸다. 누군가에겐 놓치기 쉬운 일상의 일부분인 순간을 이렇게 오랫동안 바라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드라마는 몬터레이에 사는 다섯 인물들(메들린, 제인, 셀레스트, 레나타, 보니) 속 관계의 매듭을 풀어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제목에서 짐작했듯이, 그들에게 '거짓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 또는 우정과 연대 그 자체이다. 이들 사이에는 '크고 작은 거짓말'들이 존재하고, 이를 대하는 각각의 다른 시선들을 따라가 보면 이들의 선택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시즌 1이 그들이 거짓말을 대하는 각자의 방식이라면, 시즌 2는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진실들을 마주하게 되는 그들의 선택이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이 다섯 인물이 지목되고, 과거 회상 방식으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되묻게 하며 시즌 1은 시작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의 진술은 이들 중 과연 누가 범인인지를 예측하는 데 있어 일종의 내기를 하는 듯하다. 다들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결코 누구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이 게임. 점점 사건에 가까워질수록 이들은 의심이 가는 행동들을 하며 걷잡을 수 없이 의심은 커진다. 시즌 1의 마지막화는 그동안의 늘어뜨린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가며 실마리를 잡고, 그렇기에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여운을 남긴다. 누구 하나가 단독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 함께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고, 더 이상의 불행을 막고, 자신을 가로막던 고리를 끊기 위해 대응했다. 속을 알 수 없는, 미궁의 인물이었던 보니가 직접적인 행동을 했던 것이 바로 <빅 리틀 라이즈>가 말하고 싶었던 바이다. 여성들의 시기와 질투보다는, 연대와 포용이 앞서는 순간들. 외부의 진술들이 그들을 내던지고 있을 때 누구보다 똘똘 뭉친 그들을,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그 순간의 시작은 어쩌면 1화에서 우연히 메들린을 도와주는 제인에서부터 이미 시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시즌 2 속 그들은 거짓말에 직면하고, 이로 인해 감당해야 할 것들을 떠안으며 혼란에 빠진다. 가정 폭력, 성폭행과 같은 과거의 트라우마들은 시간이 흘러도 그들 한구석에 자리 잡아 있고, 가끔은 갑작스럽게 일상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오는 상처 또한 절대 아물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에 맞서는 태도를 보인다. 결국 양육 재판에서 승리하고, 다시 사랑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며 기쁨을 나누기도 한다. 언제나 그랬듯, 마지막까지 이들은 함께한다. 다 같이 경찰서로 가는 뒷모습을 비추며 우리들의 시선은 멈춘다.
무엇보다 극적인 '성장'이나 희망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 좋다. 어딘가에 부딪히면 마구 부서지는 파도처럼, 그들은 수없이 무너짐과 갈등을 반복한다. 그렇지만 그들에겐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자신을 위해, 계속 나아간다. 우리가 늘 느끼고 지나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던 관계들을 담아낸, 섬세함과 온기가 가득한 작품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JW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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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고니스트를 프로타고니스트로
조정이라는 종목을 통해 극한 경쟁의 세계를 다룬 <더 노비스>는 홍보 문구대로 <위플래쉬>의 박자 감각을 따라가며 <블랙 스완>의 내면 갈등을 묘사한다. 알렉스(이사벨 퍼먼 분)는 영화 후반부까지 프로타고니스트의 위치에서 관객의 공감을 유도하지만 후반부에서 알렉스가 팀 내에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알렉스가 결국에는 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는데 알렉스라는 캐릭터가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희한한 일이기도 하다. 알렉스는 지독하지만 조정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어보이거나 조정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캐릭터가 아니다. 알렉스는 그저 자신이 갖고 태어나지 못한 재능을 갈망하며 노력으로 이기려고 하는, 승리 자체가 그 목적인 인물이다. <위플래쉬>의 앤드류(마일즈 텔러 분)나 <블랙 스완>의 니나(나탈리 포트먼 분)는 최고의 자리를 갈망했지만 내부로 침잠했던 반면 알렉스는 외부로 그 화를 돌린다. 재능에 대한 갈망이라는 목마름은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의 재능을 가질 수 없는 많은 관객들에게(최고라는 단어가 수많은 이들 가운데 최정점에 이른 극소수를 이르는 말이니 대다수의 관객은 필연적으로 최고가 아닐 수밖에 없다)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다.
그럼에도 알렉스가 호감을 사기에 쉽지 않은 캐릭터임은 자명해 보인다. 알렉스는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하지도 않았고 조정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나 사연도 없다. 오히려 대통령 장학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자금난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고 조정에 대한 사연은 거의 비춰지지 않는다. 전공 또한 조정과는 거리가 먼 물리학이고 이마저도 본인이 가장 못하는 과목이기에 전공으로 선택했다는 희한한 답변을 내놓는다. 알렉스의 사연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최정점 그 자체를 향한 갈망에 천착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조교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시험 답안지를 가져가는 행동이나 단순히 잘난척하는 동급생이 보기 싫었다는 이유로 우등반을 떠나지 않고 최우등 졸업에 도전했다는 사연은 관객의 공감을 사기 어렵다. 영화 내내 무표정과 분노를 오가는 알렉스는 집착의 화신에 가깝다. 영화 초반부에는 이런 모습이 성실성으로 비쳐지기 때문에 관객의 응원을 얻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알렉스의 집착이 불러오는 파국에 관객은 어리둥절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은 여전히 최고의 위치에 서본 경험이 없는 이가 대다수이므로 알렉스의 시선에 공감하게 된다. 알렉스의 갈망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초조함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연출이다. 알렉스의 손가락 소리나 로잉 머신에서 기록을 확인하는 장면 등은 공포영화에 가깝게 표현됐다. 알렉스에게 있어 조정 대표팀에 든다는 것은 단순한 목표를 넘어 삶의 이유에 등치된다. 즐거운 학교 생활을 위해 조정 클럽에 가입하거나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가기 위해 조정을 하는 등 조정이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한 다른 조정 클럽원들과는 달리 알렉스는 조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취에 집착한다. 로잉 머신에서 연습하다가 요실금을 한 알렉스는 팀원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망상에 시달리기도 하고 첫 경기에서 지고 난 후에는 자신의 실수로 팀원이 졌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알렉스는 타인의 평가에는 민감하지만 팀원을 존중하지 못하는데 이는 조정 경기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드러난다. 운동에 재능을 타고난 제이미(에이미 포사이스 분)와의 포지션 경쟁에서 팀원들이 제이미와 경기할 때 더 열심히 노를 저었다고 믿는 알렉스는 공정하지 않았다고 열변을 토한다. 하지만 팀 스포츠라는 특성상 팀원의 존중을 얻는 것 또한 경쟁력의 일부라고 한다면 알렉스의 패배는 불공정의 결과가 아니다.
알렉스의 시선에서 공감을 유도하던 연출은 중반 이후 선로를 틀어 알렉스의 약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공정해 보이지 않던 경쟁은 알렉스의 성격적 결함에 따른 결과였을 뿐이고 팀원들의 적대감은 연출로 가릴 수 없을 만큼 눈에 띄게 드러난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호수 합숙훈련 기간이 다가오면 이제 알렉스의 문제점은 관객이 무시할 수 없는 정도로 발전한다. 누가 봐도 조정 실력이 아닌 팀 플레이를 확인하는 합숙 훈련은 즐거운 분위기를 띠다가 알렉스의 기록에 대한 문의로 삽시간에 반전된다. 기록을 재느냐고 다그쳐 묻는 알렉스에게 코치는 마지못해 싱글 기록을 잴 거라고 말해주지만 관객은 이미 알렉스가 호수 합숙훈련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알렉스가 대표팀에 들기를 응원하게 되는데 많은 관객이 끊임없는 갈망에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대통령 장학금을 받고 아침마다 홀로 싱글 보트 훈련을 할 만큼 성실한 알렉스가 대표팀의 자리 하나를 따내지 못하다니 가혹하지 않은가. 특히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는 한국 관객에게 알렉스의 패배는 관객의 패배나 마찬가지다.
<더 노비스>가 혹여 한국에서 더 공감받는 영화라면 그 이유는 팀 활동 경험이 유독 적은 한국의 교육환경 탓일 공산이 크다. 팀 스포츠가 발달한데다 우수한 학생임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스포츠 클럽에서의 활동인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개인의 경쟁이 두드러지는 학업 경쟁력이 입시에서 우선순위가 된다. 따라서 팀 스포츠에 익숙하지 않고,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를 알려면 대학생들의 팀 프로젝트를 보라는 말이 유행하는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알렉스에게 공감하기 쉽다. 팀이란 서로를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다는 제이미의 대사는 그래서 날카로운 지적으로 돌아온다. 제이미이기보다는 알렉스이기 쉬운 한국의 입시 환경에서 잉태된 아이들은 그래서 최고가 되지 못하고 최고에 대한 갈망만을 품게 된다. 나의 시선에서는 알렉스를 제외한 다른 팀원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쉽지만 타인이 보는 나는 알렉스와 비슷할 가능성이 더 높다. 특히나 입시에 대한 공정성이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관객은 알렉스라는 안타고니스트를 프로타고니스트로 여기고 조정이 아닌 승리를 염원하는 알렉스를 응원하게 된다.
어두운 새벽 강에서 다른 팀원을 물 속으로 밀어넣고 번개가 치건말건 제이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질주하는 알렉스를 보는 카메라는 마지막으로 알렉스의 공허함에 주목한다. 알렉스를 조용히 응원하던 관객은 결말에 이르러 묘한 서글픔을 경험하고 승리를 향한 비뚤어진 갈망이 낳은 허무함을 목도한다. <4등>을 비롯한 많은 영화에서 한국 사회의 비뚤어진 경쟁이 사회 구조의 문제만으로 묘사되어 왔지만 <더 노비스>는 그것만이 문제가 아님을 지적한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구조에 맞서 개인 또한 경쟁보다 공동체에 속한 개인으로서 경쟁 자체에 맞서야 함을 은유하는 <더 노비스>는 알렉스의 공허한 눈빛을 마지막으로 서사를 마무리한다. 알렉스를 프로타고니스트로 여겼던 관객은 이제 안타고니스트로 돌아온 알렉스의 눈에 비친 자기 자신을 독대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본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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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 #JIMFF 권철 감독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버텨내고존재하기 의 권철 감독님 본격 탐구! ?♀️ #하이스트레인저
? JIMFF X HISTRANGER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한국경쟁 상영작 [버텨내고 존재하기]의 권철 감독님을
하이스트레인저 웹 데일리 팀이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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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2] (브런치작가/영화리뷰/결말x) 진짜 저스티스리그가 찾아왔다!
잭 스나이더가 하차하면서 자신의 버전을 완성하지 못했던 저스티스 리그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2017년 조스웨던이 완성한 버전은 여러모로 평가가 좋지 못했죠.
이번 HBO max에서 공개된 영화는 한국에서는 Vod로 공개 되었어요.
4시간의 상영시간이 아깝지 않을만큼 완성도 자체는 조금 올라갔어요.
여전히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전 버전에 비해서는 캐릭터 서사가 나아졌고, 액션 장면도 좋아졌어요.
또한 음악감독을 맡은 정키XL의 음악도 영화에 힘을 줍니다.
마지막 전투도 조금 바뀌어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 합니다.
잭 스나이더의 다음 편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래도 좀 더 나은 저스티스 리그를 볼 수 있어 좋네요.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하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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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크리머리 : 라스트 맨> 공식 예고편
바이러스의 창궐로 세상 모든 남자가 죽고 여자들만 남은지 8년, 히로 밸리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살아가던 세 명의 여성이 우연히 지구상 최후의 남자와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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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킹덤: 아신전> 공식 예고편
[2021년 7월 23일, 넷플릭스 공개]
비극과 배신이 삶을 덮친다.
기이하고 불길한 뭔가를 발견한다.
한순간에 가족과 동족을 잃은 여인.
오직 복수를 꿈꾸며 살아온 그녀가 짙은 어둠을 마주한다.
<킹덤>의 스페셜 에피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