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5-01-29 22:23:14
절망과 죄책감, 그리고 후회가 만든 구원의 길
-<검은 수녀들>(2025)





우리는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다. 처음엔 단순히 ‘불리기 위한 호칭’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름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겪게 될 모든 이야기와 감정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그렇기에 이름을 부르고, 또 불린다는 행위는 꽤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서로 다른 이름들 속에서 ‘나는 누구이고, 넌 누구인지’를 확인하며 관계를 맺는다. 이름이 없다면 나 자신을 정의하기도 어렵고, 타인에게 나를 제대로 각인시키기도 힘들다. 결국 이름이란, 우리 내면을 드러내고 서로를 구분 짓는 뿌리이자, 한 인간의 영혼을 상징하는 가장 기본적인 표시가 된다.
영화 <검은 수녀들>에서 우리는 유니아, 미카엘라, 바오로라는 ‘이름’을 지닌 세 인물을 만난다. 수녀이자 신부인 이들이 각각 품고 있는 절망, 죄책감, 후회는 그들의 이름 속 정체성을 흔들고 시험한다. 어둠에 사로잡힌 세계에서, 구마 의식을 둘러싼 제한과 의심 속에서, 이들은 자기 자신의 이름에 걸린 책임과 소명을 다시금 떠올린다. 과연 절망이 오히려 힘이 될 수 있을까, 죄책감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 수도 있을까, 후회가 도움의 손길로 바뀔 수도 있을까? 다음부터 살펴볼 세 가지 감정은 이 영화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치는 출발점이다.
[첫 번째 감정] 유니아 수녀의 절망감

유니아 수녀의 과거가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과 태도, 그리고 반응하는 방식에서 그녀가 깊은 절망감 속에 머물러 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조금은 외로운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니아 수녀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돕고 구하려고 애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녀의 절망감이 오히려 그녀를 움직이는 동력처럼 보인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마주할 때조차, 그녀는 흥분하거나 극단으로 치닫기보다 담담하게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 태도가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 이유는, 유니아 수녀가 어떤 상황에도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을 띠면서도, 막바지까지 타인을 위해 구마 의식에 나서는 모습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상징한다. 절망감은 흔히 사람을 고립시키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유니아 수녀는 그 절망 위에 일종의 ‘책임감’을 덧씌워,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더욱 단단히 다지게 된다.
특이하게도 영화는 이 ‘절망감’이 유니아 수녀에게서 연민이나 연약함이 아닌, 더욱 단단한 ‘투쟁심’을 끌어낸다고 묘사한다. 실제로 그녀가 처한 환경은 녹록지 않다. 구마 의식은 허가받은 신부만이 거행할 수 있는데, 유니아 수녀는 이 제약을 뛰어넘을만한 권한도, 신분도 갖고 있지 않다. 영화에서는 그녀가 무당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거절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사람을 구하고, 악령을 막아내려 애쓰는 모습은, 절망을 극복하는 데 있어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두 번째 감정] 미카엘라 수녀의 죄책감

영화 곳곳을 살펴보면, 미카엘라 수녀가 어릴 적부터 죽은 이들을 보아왔다는 암시가 있다. 친구가 자살한 듯한 과거가 엿보이는데, 그녀는 그 환영을 지금도 계속 목격한다. 이상한 기운이나 귀신 같은 존재가 주변을 맴돌면, 미카엘라 수녀도 금방 눈치채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질병’으로 치부하고, 외면하려 든다.
아마도 친구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현재 그녀를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 대신 살아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미묘한 부채감, 무엇인가 바꿀 수 있었을 텐데 바꾸지 못했다는 자책이 그녀를 무력하게 만든다. 미카엘라 수녀는 그러한 마음의 짐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려 하고, 수동적인 태도에 빠져 버린다. 그러나 유니아 수녀를 만나면서부터, 그녀는 조금씩 변화의 계기를 맞이한다.
죄책감은 사람의 행동을 옭아매는 강력한 감정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을 처벌하려는 듯한 충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 미카엘라 수녀는 스스로를 속이는 방식으로 이 감정을 억누르려 하지만, 유니아 수녀를 통해 ‘죄책감이 나 때문에 생긴 감정’이라면,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자각을 얻는다. 그제야 그녀는 더 이상 뒤로 숨지 않고, 마주보려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미카엘라 수녀는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이, 사실은 새로운 결심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 감정] 바오로 신부의 후회

바오로 신부는 영화 전반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인물임에도, 의외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사실 그는 ‘정신병 같은 건 의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으며, 구마 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쪽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그는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영화에서 가장 취약해 보이는 존재가 바오로 신부다.
다만 흥미로운 건, 바오로 신부가 어느 순간 결단을 내린 뒤의 모습이다. 영화는 그 과정 자체를 상세히 보여주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구마를 돕는 인물로 바뀐다. 바오로 신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구마 의식을 직접 행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위한 물품과 장소, 그리고 현실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후회’가 얼마나 강렬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진작 믿었다면, 아니, 적어도 무관심하지 않았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의 감정은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후회라는 감정은 이미 벌어진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사람을 무력감에 빠뜨리지만, 동시에 그 무력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게도 만든다. 바오로 신부가 보여주는 반전과 지원은, 여전히 죄의식과 후회를 품고 있음에도,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고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로 인해 유니아 수녀가 고립되지 않고 끝까지 악령에 맞설 수 있게 된다는 점은, 후회가 뒤늦은 도움일지언정 완전히 무의미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이야기 속 논쟁거리
정신병에 대한 평가는 사회적으로 여전히 논란거리다. 누군가는 의학적·과학적 치료가 최선이라고 주장하고, 또 누군가는 영적인 문제나 전통적 주술적 방식(무당, 굿 등)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이 영화 <검은 수녀들>은 구마 의식이라는 종교적 접근, 그리고 무당을 통한 민속적 접근, 의학적인 치료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시각에 따라 대처법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드러낸다. 현대사회에서도 정신적 문제나 질병을 두고 각기 다른 입장이 충돌하고 있는데, 영화가 그런 복합적인 관점들을 끌어모았다는 점은 꽤 흥미롭다.
물론 이야기 자체에 완벽하지 않은 구멍들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어느 한쪽 방식만이 옳다고 단정 짓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트라우마나 초자연적 현상에 접근하는 시도를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사회학적으로 본다면, 이것은 ‘질병’ 혹은 ‘이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다원성을 반영하는 사례일 것이다. 사람마다, 혹은 문화권마다 시각이 다르고, 그 다름이 때로는 갈등을 낳지만, 동시에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게도 만든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 던지는 메시지
영화 <검은 수녀들>은 제목만 보면 어두운 분위기의 공포·오컬트 장르로 느껴지지만, 정작 핵심은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한다. 유니아 수녀의 절망감, 미카엘라 수녀의 죄책감, 그리고 바오로 신부의 후회를 통해,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과 상처가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펼쳐 보인다. 우리는 종종 절망, 죄책감, 후회 같은 감정이 부정적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영화는 그 감정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그래도 앞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분명 영화상에서 아쉬운 구석이 없진 않다. 마치 급작스럽게 변하는 바오로 신부의 태도나, 미카엘라 수녀가 어떤 식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지 좀 더 구체적인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뚜렷하다. ‘결국 인간을 흔드는 건 외부의 악령이 아니라, 우리가 내부에서 품고 있는 절망, 죄책감, 그리고 후회가 아닐까?’라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진득하게 남는 여운이 있다면, 그것은 곧 우리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복합적인 감정을 어떻게 품고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감독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전반적으로 큰 사건과 스펙터클에 집중하기보다는, 인물 간의 심리적 갈등과 변화를 다루는 데 공을 들인 영화라서, 한 편의 심리 드라마를 본 듯한 인상을 남긴다. 오컬트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타인을 구하기 위해 절망감을 이겨내고, 과거의 죄책감을 짊어진 채라도 한 발씩 나아가는 사람들. 어쩌면 이 영화 <검은 수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일상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 이름이라는 것은 나 자신이자, 내가 지닌 모든 감정의 집합체다. 그리고 그 감정들 사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순간, 우리는 자기만의 구원과 용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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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패와 소패
만약 웨스 앤더슨 감독님이 독기를 품고 인간의 잔혹성을 영상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암울한 상황과 반대하는 아름다운 영상미가 계속해서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게 만든다.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들이 보여주던 괴상한 순간들을 관찰자의 시점에서 정확히 보여준다. 관객과 주인공 일행은 점점 그녀의 설득과 집요함에 물들기 시작한다. 미학적인 황금비를 충실히 지키며 거짓의 탈이 완벽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수학적으로 계산된 화면 구성은 진짜 광기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루누이가 희대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미인의 숨통을 노렸듯, 영화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의 가치를 교수대 위에 매단다. 날카롭지만 쉽게 베이지 않는 무거운 칼 같다.
무너지다
인간은 쉽게 무너진다. 더 단단하고 큰 육체를 탐하다 불법 주사기에 손을 댈 수 있고, 더 완벽한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인간에게 생사의 실험을 자행하기도 한다. 영화 속 학생들은 각자만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문제점은 그들을 약하게 만드는 약점이자 사라지길 바라는 아픔이다. 예를 들어, 발레리노 남학생은 당뇨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 정체불명의 약을 먹어야만 계속해서 춤을 출 수 있다. 트램펄린 선수인 여학생은 무거운 체중 때문에 더 높이 뛰기가 힘들다. 그래서 살을 빼야만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이유를 가지고 영양사 선생님 ‘미스 노백’을 찾는다. 인간의 욕망은 약점을 보완하는 선량한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인간은 쉽게 무너진다. 그럴수록 욕망은 더욱 거대해진다. 결국 칠흑보다 깊고 어두운 구멍을 가슴에 남긴다. 학생들은 쉽게 무너졌다.
방아쇠
영화를 보며 말도 안 되는 논리와 지극히 철학적이고 공생주의적 부모들의 태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스 노백’은 그저 트리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역량에 따라가기 벅찬, 부모의 모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미스 노백’을 만나고 폭발하기 시작한다. 1차적인 가해는 이미 집안에서 일어났다. 모델인지 체중 조절을 위해 음식을 먹지 않는 엄마와 강제로 음식을 먹이기 위해 윽박지르는 아빠 사이에서 여학생은 침묵한다. 음식을 먹는 시간,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는 사랑이 없었다. 반대로 매번 사랑이 가득 담긴 음식으로 성대한 저녁을 차려주는 집도 있다. 문제는 극진한 사랑에도 건강함은 없었다. 모든 부모들이 아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힘겨워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아이가 있기에 부모로 존재할 뿐이다. 최악은 부모 노릇마저 ‘미스 노백’에게 전가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아이들은 더 이상 부모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았다.
동굴 그리고 막장
주변 환경과 사회 전반적인 풍토는 분명 각 개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린 싸이월드에 감성 넘치는 글을 남겼고, 부끄럽다며 인스타에 옛 사진으로 관심을 돌린다. ‘미스 노백’의 선을 넘는 일방적인 주장과 불합리한 논지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학생도 존재한다. 그녀를 마치 선지자처럼 떠받드는 학생들은 ’반 미스 노백‘지지자들을 경멸한다. 신봉자들은 진실을 외면하면서 진실한 목소리를 가진 타 학생을 무시한다. 오히려 당신들도 믿음을 갖고 깨달아야 한다고 다그친다. 재밌는 사실은 ‘나도 틀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심어준 당사자는 ‘미스 노백’이라는 점이다. 나 자신은 틀렸다고 믿지만 결코 다른 사람들의 조언과 진심 어린 사랑에는 인색하다. 어딘가 무너진 존재는 가장 먼저 시야를 좁힌다. 그래야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지금 한국에게 필요한
얼핏 보면 영화는 봉건 사회에서나 볼 법한 무조건적인 신앙과 강제적인 비건 강요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수히 많은 풍자가 역류하며 과연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까지 도달한다. 영화 후반부에는 더 이상 학생들이 한창 성장하며 아프고 다시 일어날 십 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소화의 개념을 가진 로봇으로, 이목구비를 가진 짐승으로만 보였다. 그토록 잔혹하게 아이들을 바꾼 작은 씨앗이 무엇이었는지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해서 기쁘다. 고지식한 척, 깨어 있는 척, 가치관에 혼란을 주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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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이 현실이 되는 한 해가 되길
한해의 마지막에 이찬혁의 인스타그램에 이런 피드가 올라 왔다. ‘새해 처음으로 듣는 노래가 그 해를 비유한다는 말이 있어요. 1월1일 0시 1조와 같은 행운이 24년에 당신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1월 1일에 ‘1조’ 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말에 기분이 참 좋아졌다. 새해 처음으로 보는 영화도 한 해의 기운을 넣어주는 것으로 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제목만 들어도 모든 소원과 희망을 이루어 줄 것만 같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라이프’ 잡지사에서 사진 현상을 담당하며 16년째 근무중인 월터 미티는 성실한 일상을보내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월터는 회사의 구조조정 때문에 폐간을 앞둔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 25번째 필름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25번째 사진을 꼭 표지로 써줬으면 하네, 거기에 내 사진작가 인생의 정수를 담았어.” 평소 어디론가 멀리 떠나본 적이 없는 월터는 사진작가 숀 오코넬의 사진을 찾기 위해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히말라야를 넘나들며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어린시절 개성있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스케이트 보드에 우승할 정도로 활동적인 소년이었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가장이 되고, 하루를 성실히 꾸려가는 직장인이 되었다. 평소 월터는 상상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곤 했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미션을 완성하기 위해, 상상을 벗어나 세상밖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숀 오코넬이 사진고료를 수령해간 곳이 그린란드의 어느 술집임을 동료 셰릴에게 듣고, 그린란드로 가게 되는데…공항에 내려 렌터카 업체를 찾은 월터앞에 빨간차와 파란차 두대가 있고, 빨간 차를 선택한 월터는 술집에서 숀을 태워준 적이 있다는 헬기 조종사를 만나 헬기를 타고 물 그림자 사진에 찍힌 배까지 가기로 하는데, 이 때 두려움을 느끼는 월터의 앞에 상상 속에서 셰릴이 나타나 기타를 치며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를 들려주고 월터는 용기를 얻고 헬기로 뛰어 들게 된다. 고생끝에 배에 승선 했지만, 숀은 이미 아이슬란드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이슬란드로 다시 떠나지만, 숀은 닿을 듯 닿지 않고 월터는 계속해서 숀의 사진을 찾아 모험을 하게 된다.소심하고 조용한 듯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끝없는 상상력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시원시원하게 해내고,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가 되기도 한다. 상상을 하느라 현실에서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도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그 상상 덕분에 용기를 내기도 한다. 승진과 성공 더 큰 성과를 위한 도전이 아닌, 이제 문을 닫는 회사의 폐간호 표지사진을 찾기 위해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곳으로 떠나는 여정. 자신이 오랫동안 해 온 일의 좋은 끝을 위해 낸 용기.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지,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난…개인적으로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숀오코넬이 히말라에게서 찍으려고 기다렸던 눈표범을 보게 되지만 사진을 찍지 않고 바라보면서 하는 대사이다. 세계를 구하는 엄청난 활약보다, 평범한 하루 조용한 일상속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일상 속에 아름답지 않은 순간은 없다고. 현재의 행복과 평안을 만끽 하는 것 보다 과거에 머물고, 미래를 떠도는 우리 마음을 되돌아 본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영화의 처음 시작엔 월터의 현실과 상상의 구분이 명확하다. 하지만 숀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서 일어나는 모험은 어느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상상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아마도 월터의 ‘상상’이 ’현실’이 되어 가는 가정일 것이다.
영화의 첫 시작에 숀이 지갑에 새겨 월터에게 선물한 라이프지의 모토를 떠올려 본다.
"세상을 보고, 장애물을 넘어 너의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성공하거나, 최고가 되기 위한 여정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기 위한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속에서 빠져 나와, 다른 무엇이 아닌 나 다운 삶을 꾸려 가는 한 해가 되길.
Stop Dreaming, Start liv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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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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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강동원 X 허준호 X 이솜 X 이동휘 X 김종수<빙의>, 크랭크인
ⓒ CJ ENM
<기생충>, <헤어질 결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김성식 감독의 연출 데뷔작인 <빙의> (가제)가
지난 9월 14일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영화 <빙의>(가제)는 귀신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지만 귀신 같은 통찰력으로
온갖 사건을 해결하는 가짜 퇴마사 ‘천박사’가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강력한 빙의 사건을 의뢰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강동원, 허준호, 이솜, 이동휘, 김종수 배우가 출연을 한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일반 상영작 27일 티켓 오픈
ⓒ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개·폐막식 입장권 예매는 오는 23일(금) 오후 2시부터, 일반 상영작 티켓 예매는 27일(화)
오후 2시부터 온라인을 통해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아시아 전역의 우수한 TV, OTT, 온라인 콘텐츠를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인 아시아콘텐츠 어워즈 티켓 역시 9월 23일(금)에 오픈된다.
<콘스탄틴>, 17년만에 속편 제작 확정
ⓒ 네이버 영화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콘스탄틴>이 17년만에 속편 제작을 확정했다.
<콘스탄틴> 1편을 제작했던 아키바 골즈먼이 속편의 각본과 제작을 이어 맡았고,
키아누 리브스가 존 콘스탄틴으로 다시 등장할 예정이다.
김지운 감독, 미국 드라마 시리즈 연출
ⓒ 네이버 영화
<악마를 보았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 등 다수의 히트작을 보유한 김지운 감독이
<스타트렉: 디스커버리> 극본을 쓴 김보연, 에리카 리폴트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떠나는 한국 가족에 관한
드라마를 제작한다.
김영대, <낮에 뜨는 달> 검토 중
ⓒ 네이버 영화
인기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낮에 뜨는 달]에 배우 김영대가 출연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낮에 뜨는 달]은 시간이 멈춘 남자와 흘러가는 여자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외
ⓒ네이버 영화
배우 조니 뎁과 앰버 허드의 재판을 다룬 영화가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제목은 <Hot Take: The Depp/ Heard Trial>으로 조니 뎁은 배우 마크 햅카가 연기하고,
앰버 허드는 배우 매건 데이비스가 연기할 예정이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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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를 초월하는 아름답고 슬픈 영화적 체험
- 햇볕에 피부가 타지 않도록 바르는 제품이 선크림이라면, 애프터썬(Aftersun)은 타버린 피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바르는 제품을 말합니다. 햇빛 아래에 있을 때는 까맣게 모르다가 하룻밤 자고 나서야 따끔따끔 아파지는 살갗 위에 우리는 애프터썬을 바르죠.영화 <애프터썬>은 그 이름처럼 ‘애프터썬’이 필요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볼 때는 까맣게 모르다가 다 보고 나서야 마음이 저릿하게 아파오기 때문입니다. 곱씹을수록 아프고 저린 영화 <애프터썬>에 관한 감상을 나눕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1월 31일(화)에 진행된 <애프터썬>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애프터썬>은 2023년 2월 1일 국내 개봉했습니다.애프터썬Aftersun<애프터썬>은 30살 아빠 ‘캘럼’과 11살 딸 ‘소피’가 어느 여름날에 떠난 휴가지에서 촬영한 캠코더 영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캘럼’과 ‘소피’가 찍은 캠코더 영상은 때때로 어지러이 흔들리며 어느 한 곳에 정확히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데요. 이 영화도 비슷합니다. 단 한순간도 의도적인 대사나 장면으로 주제를 명확히 짚어주지 않죠. 대신 아빠이자 청년인 ‘캘럼’과 딸이자 소녀인 ‘소피’, 그리고 그 여름날의 휴가를 오롯이 체험할 수 있도록, 지근거리에서 인물과 사건을 포착할 뿐입니다. 관객은 이러한 영화적 체험 안에서 직접 영화의 주제를 찾아 나서야만 하죠.저는 ‘소피’였다가 ‘캘럼’이기를 반복하며 영화를 보았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살 가능성은 없는지 스리슬쩍 떠보는 ‘소피’였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소속감을 잃어버린 곳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캘럼’이었죠. 그러다 다시 어른스러운 척하면서도 실은 성숙해지고 싶은 어린 소녀 ‘소피’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저도 모르는 새에 어른이 되어버린 미성숙한 청년 ‘캘럼’을 이해했습니다. <애프터썬>에는 이러한 체험의 순간들이 상영시간 내내 이슬비처럼 슬며시 내립니다. 작고 미세한 이슬방울은 알아차리기가 어렵듯이,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이런 순간들이 그저 흘러가버리죠. 관객은 영화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이슬비에 온몸이 젖어버렸다는 걸 깨닫습니다.⊙ ⊙ ⊙아빠 ‘캘럼’과 딸 ‘소피’가 휴가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며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제가 온몸이 다 젖어버렸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애프터썬>은 여러 장면을 통해 ‘캘럼‘이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인물임을 암시합니다. 딸 ‘소피’가 없을 때의 ‘캘럼’은 난간에 위태롭게 올라서고, 살이 베일 정도로 거칠게 깁스를 풀며, 남이 버린 담배를 주워 피는 등 삶에 큰 미련을 보이지 않습니다.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 시도를 하려다가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춤을 추거나 기체조를 하며 몸을 움직일 때였죠. ’캘럼’은 그 감각을 ‘소피’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춘 춤은 아빠에 대한 ’소피‘의 마지막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소피‘는 춤을 추는 아빠를 계속해서 떠올립니다.이 장면에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퀸(Queen)의 노래 ‘Under Pressure’에는 “This is our last dance”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토해내듯 절정을 향해 치닫는 퀸의 노래 속에서 가사처럼 모든 걸 뒤로 한 채 그저 딸과 함께 마지막 춤을 추는 ‘캘럼‘의 모습을 보고, 울컥 눈물이 차올라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모르게 <애프터썬>의 감정에 서서히 젖어들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것이죠. 햇빛 아래에서는 약해진 피부의 아픔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애프터썬>의 주제는 한 문장으로 명확히 정리하기 어렵지만, <애프터썬>의 감정은 분명히 와닿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덩어리로 분명히 존재하는 이 감정을 무어라고 정의하기는 또 쉽지 않습니다. 샬롯 웰스 감독은 이 영화의 맥락과 맞닿아있는 단어로 튀르키예어 단어 ’harset’을 골랐다고 합니다. 튀르키예어에서 ‘harset’은 그리움, 사랑, 상실의 어떤 조합을 의미합니다. 영어 단어로도, 한국어 단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표현이죠. 형언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한데 엉겨 붙어 있는 영화 <애프터썬>은 그 감정의 힘으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 ⊙‘소피’에게 그 여름날을 담은 캠코더 영상은 살갗을 벗길 만큼 뜨거운 태양이겠지요.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아빠를 잃은 상실감, 아빠를 향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 그를 아프게 할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또한 상처 입은 피부 위에 덧바를 수 있는 ‘애프터썬’이기도 할 겁니다. 위태로움과 미숙함 속에서도 있는 힘껏 나를 사랑해 주었던 아빠의 모습이 그 안에 가득할 테니까요.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너무 아파서, 또 그만큼 너무 좋아서, 고통과 치유 사이를 오가며 이 글을 썼습니다. 아무래도 <애프터썬>은 제게도 뜨거운 태양이자 '애프터썬'인가 봅니다.Summary아빠와 20여 년 전 갔던 튀르키예 여행. 둘만의 기억이 담긴 오래된 캠코더를 꺼내자 그해 여름이 물결처럼 출렁이기 시작한다. (출처: 씨네21)Cast감독: 샬롯 웰스출연: 폴 메스칼, 프랭키 코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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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밤> 심층 분석 2
첫번째 리뷰에서는 <봄밤>이 기석과 지호의 캐릭터 대비를 통하여 정인-지호 관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다루었다.
이번 리뷰는 봄밤의 타임라인을 따라가며 정인-지호-기석의 감정선 변화와 그를 담은 연출에 집중한다.
<봄밤>의 이야기의 배경은 놀랍도록 한정적이다. 약국, 도서관, 은행, 차 안, 집, 같은 산책로, 같은 카페와 식당.현실 속 사랑은 결국 일상을 기반으로 피어나기에 사랑에 빠진 우리의 삶은 정작 겉에서 보기에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런 점을 표방하듯 <봄밤>은 화려한 로케이션이나 특별한 곳이 아닌 반복되는 일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특별할 것 없는 장소들에서 피어나는 정인과 지호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시청자들은 숨을 죽인 채로 가만히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며, 마치 사랑에 빠져 들어가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보듬듯.
첫만남
정인과 숙취에 시달리던 날, 정인과 지호는 지호의 약국에서 약사와 (지갑을 가져오지 않은) 손님으로 처음 만난다.
지호는 정인을 처음 본 순간부터 정인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정인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소 융통성이 없는 정인이 평소엔 절대 하지 않을 행동 - "내 전화번호 줄까요?"- 을 한다. 지호는 대신 본인의 전화번호를 불러주고, 정인은 불러준 전화번호를 단번에 외우고는 놀라워한다.
후에 지호와 정인은 정인의 친구 아파트에서 다시금 우연히 마주치고, 바로 전 지호의 고백을 거절한 정인은 지호가 본인을 따라왔다 오해한다. 지호에게 역정을 낸 정인은 얼마 후 본인의 실수를 깨닫고 지호에게 연락을 한다.
연락을 받은 지호는 아파트 발코니를 통해 아파트를 떠나는 정인을 바라본다.
친구할래요?
그날 밤 정인과 지호는 밤의 약국에서 만나 서로의 속얘기를 털어놓는다. 친구하자는 정인의 제안을 지호는 거절하고, 정인은 떠난다.
지호는 정인이 두고 간 녹차잔 곁에서 한참을 머무른다.
다음날 정인이 기석을 따라 나간 기석의 농구동호회 경기에서 지호와 정인은 다시 만난다.
<봄밤>에서 '초반부의 설렘'을 담당하는 OST <Is It You>가 흐르며 봄밤의 첫화는 마무리된다.
정인-지호의 세번의 우연한 만남에서 연출은 집요하게 인물들의 시선을 좇는다.
첫번째 만남에서는 약국 바깥의 정인에게 관심을 갖는 지호의 시선, 두번째 만남에서는 아파트 발코니에서 정인을 바라보는 지호의 POV와 짧게나마 지호와 눈을 마주치는 정인의 시선. 세번째 만남에서는 불편해하면서도 신경이 온통 지호에게 쏠려있는 정인의 POV. 그에 담긴 정인과 스쳐가듯 눈을 마주치는 지호. <봄밤>은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추상적인 끌림을 시각화하여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정인의 시선 끝 지호]
기석의 농구 동호회 회식에까지 참여하게 된 정인과 재인. 정인은 화장실을 가러 잠시 바깥으로 나온 새에 지호와 아들의 통화를 들어버린다. 의도치 않게 지호의 사생활을 엿들어 버린 정인이지만 묘하게 싫지가 않다.
지호는 정인의 친구하자는 제안에 응하고,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된다.
혼란과 밀어냄
허울좋은 '친구' 라는 단어로 희미해진 선에 지호와 정인은 혼란스러워한다. 결국 지호와 정인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통화를 하며 그런 자신들의 마음을 고백한다. 감정적 arc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자 3화의 하이라이트를, 카메라는 롱샷과 미디움 롱샷의 리버스를 교차해 가며 쌓아올린다. 둘의 얼굴 표정을 강조하는 타이트한 샷 대신 선택한 와이드한 샷구성은 장면이 과도하게 신파적으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고,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는 두 주인공의 상태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서로를 향한 끌림을 참고 있는 둘의 속마음은, 표정보다는 그들의 경직된 자세에서 더욱 여실히 새어나오기 때문이다. 정인과 지호 사이에 위치한 횡단보도라는 물리적 제약 또한 와이드한 샷에서 큰 존재감을 발휘하며, 둘 사이에 여러 현실적인 제약이 있음을 시각화한다.
카메라는 지호가 돌아간 후 술집으로 돌아온 정인을 시퀀스에서 유일하게 미디움 클로즈업으로 비춘다. 내내 감정을 절제하다 지호가 사라진 뒤에야 아픈 마음을 드러내는 정인의 씁쓸한 표정이 강조되며, 시청자들은 정인의 혼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드라마 초반부 정인과 지호의 사이에는 언제나 물리적인 벽이 존재한다. 유리창, 횡단보도, 도서관의 책장. 둘 사이의 제약을 시각화하는 물체들]
다가감
처음에는 정인이 지호를 밀어냈다면, 둘의 혼란이 가중된 이후부터는 지호가 정인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정인은 결국 애틋함을 이기지 못한 채 지호의 집에 찾아가 모진 말을 쏟아내는 지호의 입을 막고 울음을 터뜨린다. 놀란 지호는 함께 저녁을 먹자 청하고, 둘은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
둘이 자주 만나는 카페에서 지호는 정인에게 힘들어도 본인을 밀어내라 말한다. "정인 씨가 너무 아까워서" 본인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말하는 지호를 정인이 바라보는 순간, 카페에서 배경 소음으로 흐르던 <We Could Still Be Happy>는 non-diagetic world 로 넘어와 이야기 바깥에서 흐르기 시작한다. 정인-기석과의 관계에서 매번 아깝다는 평가를 듣는 것은 기석이었지 한번도 정인이었던 적이 없다. 본인이 '을' 로 평가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정인이 본인의 존재를 가치있게 여기는 지호에게 다시금 세게 동요하는 순간을, <봄밤> 은 배우들 간의 시선과 음악으로 전달한다.
지호에게 다가서는 정인을 겨우내 독한 말로 밀어낸 지호지만, 정인 집 앞의 지호를 발견한 재인의 강요에 얼떨결에 정인의 집을 방문한다. 멀어지려던 둘의 거리는 지호가 정인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함으로서 다시 가까워진다. 직장이나 카페같이 공적인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던 둘의 교류가 집이라는 온전히 사적인 공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재인, 영재, 지호와 정인 네 명의 인물들의 대화 중간중간 편집된 정인과 지호의 dirty(Dirty shot: 피사체 인물 이외의 다른 인물의 신체부위를 걸고 찍는 샷) 미디움 클로즈업 샷은 그들만의 비밀스런 기류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관계의 긴장감을 표면화한다. 지호와 더 가까워지기로 결심한 정인은, 같은 날 밤 지호의 앞에서 기석에게 이별을 고한다.
[화면에 걸친 서로의 존재]/출처 넷플릭스
[기석에게 이별을 고하는 정인 --> OVS 로 정인의 신경이 향하는 곳이 지호임을 표명하는 동시에 지호에게 가기로 한 정인의 굳은 결심을 드러낸다]
지호-정인의 관계가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을 얻는 순간
일련의 사건을 지나 정인과 지호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정인 또한 기석과의 관계를 정리하려 온 힘을 다한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가슴 한구석에는 여전한 찜찜함이 남는다. 그는 누군가의 연애가 끝나고 그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을 보는 일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떳떳하지만은 않게 시작한 정인과 지호의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정인-지호의 관계 진전 이후 <봄밤>이 넘어야 할 산은 바로 시청자들의 그 '찝찝함'을 없애는 것이다. '너네의 사랑은 앞에 버리고 온 사랑과 뭐가 그리 다른데?' 라는 시청자들의 의문을 해결하는 것. <봄밤>은 16화 드라마에서 가장 결정적인 회차인 9화(8화 혹은 9화는 16화 드라마의 꽃으로 불린다)의 전체를 이 질문에 답하는 데에 할애한다.
9화 (32부작 기준 17, 18화) 에서 지호와 정인은 같은 날 각자의 부모님께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지호에게 정인은 자신을 '그냥 유지호'로 보아준 유일한 사람이며, 정인에게 지호는 자신이 꿈꿔오던 '따뜻한' 사람이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사랑에 빠진 이유가 설명되지 않아 둘 관계의 정당성이 흐릿했다면, 지호와 정인이 타인에게 상대를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시퀀스를 통해 둘의 관계성은 비로소 윤곽을 드러낸다.
둘의 관계성을 확립한 후 바로 이루어지는 데이트 시퀀스는 그래서 다른 데이트 시퀀스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세상의 시선 혹은 주변인들에게 위축된 채 '을'로 살아왔던 두 사람은 꿈꿔왔던 사람인 서로의 앞에 설때 비로소 편안하고 당당한 본연의 자아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데이트를 끝내고 나오던 정인과 지호는 둘의 데이트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기석과 마주친다. 삼자대면 엔딩에는 항상 대립 상황을 대변하던 <No Direction> 이 아닌 <We Could Still Be Happy>가 엔딩곡으로 쓰인다. 드라마를 닫는 샷 또한 세명을 모두 잡은 마스터가 아닌 정인과 지호의 2 shot - LS 이다. 이는 정인-지호/기석의 대립을 강조하는 대신 정인과 지호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엔딩으로, 데이트 시퀀스 앞에서 윤곽을 그린 그들의 관계성을 선명히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9화의 연출을 통해 정인-지호의 관계의 필연/정당성은 비로소 시청자들에게 가닿고, 엔딩 시퀀스에서 We Could Still Be Happy 가 흘러나오는 순간, 시청자들은 그들의 행복을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깊어지는 지호와 정인의 관계, 옅어지는 기석의 확신
지호와 정인의 관계성이 확립되고 둘 사이의 확신이 짙어지며 카메라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인물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12화 (32부작 기준 23,24화)에서 정인이 지호와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을 슬쩍 내비칠 때, 카메라는 통화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이처럼 회차를 거듭하고 둘의 관계가 깊어질 수록 대화 씬 리버스샷에서 카메라의 구도는 점점 타이트해진다. 이러한 카메라의 개입은 14화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정인과 지호가 "죽을 때까지 상대방을 기억해주기"라는 약속을 할 때, 카메라는 dolly-in으로 통화하는 정인의 모습을 담는다. 이는 드라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카메라가 존재감을 피력하는 순간으로, 점점 농도가 짙어지는 정인의 사랑을 시각화한다. 회차를 거듭할 수록 짙어지는 화면의 분홍색도 같은 역할을 한다.
믿음을 쌓아가는 지호-정인과 달리 회차를 거듭할 수록 기석은 이성을 잃어간다. 기석이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정인에게 막무가내로 프러포즈를 한 후부터 기석-정인-지호가 대립하는 씬에서 카메라는 기석의 샷은 약간의 high angle로, 정인-지호의 샷은 약간의 low angle로 촬영한다. 서로에 대한 확신을 얻은 지호-정인은 힘을 얻고, 점점과 이성과 확신을 잃어가는 기석이 열세에 놓였음을 카메라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봄밤>이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서로에 대한 확신과 사랑, 그리고 그를 통해 얻은 믿음이 주는 힘' 의 테마를 영상적으로 뒷받침한다.
수미상관
<14화>
지호와 정인이 처음 서로의 약점을 내보이던 밤의 약국. 후반부 공식적인 연인이 된 그들은 비슷한 시간대, 같은 곳에서 또다시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지호는 정인에게 처음으로 본인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고, 정인 또한 지호의 말에 귀기울인다.
또, 초반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건너오지 말라' 며 애닳아하던 둘은 이제, 횡단보도를 건너 망설임없이 서로의 품에 안긴다.
<마지막화>
정인은 지호의 약국에 찾아가 장난스레 '술 깨는 약을 달라' 말한다. 바깥의 요란한 공사 소리가 둘의 대화를 방해하지만, 이번에는 지호와 정인 둘다 장난스레 웃음짓는다. 공사 소리 때문에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해 애닳아 하던 과거와 대비되는 순간이다.
겨울 막바지의 눈에서 시작한 둘의 마음은, 벚꽃이 만개한 봄밤을 지나 어느 여름밤에 도달한다. 달라진 계절과 달라진 지호-정인의 관계가 같은 배경에서 수미상관으로 끝을 맺을 때 시청자들은 비로소 체감한다. 또 한편의 눈부신 이야기가 끝이 났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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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먹지 않을 정도의, 딱 그 정도의
사실 이 영화, 꽤 오래 전에 보았다. 아무도 내 게으름의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겠지만 현생이9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야 적는 점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경위는 아주 간단했다. 그저 해가 바뀐 기념으로 영화나 보러 가자는 가족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내가 영화관까지 가서 찾아볼 의지가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물론 반응이 나쁘지는 않은 영화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요 근래 나는 영화관을 갈 심적, 물리적 여유가 모두 없어 영화관까지 갈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아무런 정보를 찾아보지도 않고, 그저 관람했다. 그 어떤 편견도 없이, 그 어떤 기대도 없이. 그것이 영화 관람에 있어 장점이었을지, 악영향을 미쳤을지는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싶다.
< 재난 영화가 가져가야할 서사는 모두 다 있다. 그게 전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재난 영화가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이다. 재난 영화란 모름지기 재난이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안타까움을 유발하면 반은 성공한 서사라고 본다. 그런 지점에서 이 영화는 매 순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공무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방관들이 받는 처우들을 보고 있자면 1차적으로 안타깝고, 매번 불과 싸우며 다치고 데이고, 목숨을 담보로 구조작업에 들어가는데, 나라에 지원을 요청하려면 총대를 매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또 안타깝다. 그런데 이 모든 서사가 예상이 가능하다. 뭐, 재난영화로 이미 장르가 정해진 상황에서 어떻게 더 대단한 서사가 나올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건 영화가 가진 단점이라고 할 수도, 그렇다고 장점이라고 추켜세울 수도 없는 그저 이 영화의 특징 쯤으로 생각하자.
말하자면, 이 영화는 재난 영화가 가져가야할 서사는 빠짐없이 있지만 다 있어서 이 영화는 기타 다른 재난영화와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재난 영화란 서사에 일종의 공식 같은 것이 존재하기에 다른 영화들 중에서 특출나게 대단한 서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금 머리를 스쳐가는 재난 영화는 '투모로우'인데, 투모로우를 왜 인상깊게 보았을까 생각해보면 폭설이 와 도시가 황폐해진 그 비현실적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던 기억과 함께, 주인공이 미션처럼 닥친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을 응원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소방관에서는 그런 경이로운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인물 간의 관계에 주목한다. 주인공인 철웅은 계속 고뇌하긴 하는데, 그 시간이 길어지며 소방관들의 애환을 이해하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을 보면서 보는 입장에서는 지루함이 유발되었던 것 같다. 영화 속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관객과 비슷한 입장이어야 할 철웅에게 공감이 되지 않고, 철웅이 방황하는 시간 동안 오히려 다른 캐릭터들을 이해하게 되어 버려서 보면서도 이게 맞는 건가 한참 생각했었다. 다만, 인물의 관계성에 집중하는 만큼 영화가 진행될 수록 신파스러운 서사가 등장하는데, 그 신파가 비교적 오글거리진 않는다. 재난 영화 상 당연한 수순 아닌가.
이 영화는 딱히 대단한 흠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만큼 대단히 매력적인 서사는 아니다. 너무 많이 접해온 서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방관이라는 공무를 집행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큼 이 영화에 대단한 오락성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이것이 최선이었던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불을 낸 원흉이었던 경호 캐릭터는 그렇게 모자라보이는 캐릭터로 그릴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화재 참사의 원인이 한 멍청한 모지리 때문에 일어났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극대화 시키긴 하지만 차라리 방화 이유는 변하지 않을 지언정 그 캐릭터는 조금 멀쩡하되 다만 비열한 캐릭터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경호 같은 모지리 같은 사람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짜증이 나는 것이 표면적 이유이다. 그리고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현실 상황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일을 저지르고 심신미약 등의 이유로 도망가는 일을 많이 봐왔으니 굳이 그런 일말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은 내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계속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움을 유발하고 싶은 거라면 그저 악역의 비열함만을 보고 싶지, 경호 캐릭터에게 도망갈 당위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 말이다.
그것 말고는 이 영화는 존재 이유를 달성했고, 딱히 너무 별로인 지점도 없다. 하지만 이 영화를 두 번 이상 관람할 것 같냐고 하면 솔직히 말하면 그건 아니다. 이 영화 관람료가 좋은 일에 쓰인다던데, 그런 좋은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뜻 있는 분들이 한 번쯤 관람하기는 좋으나 N차 관람은 내용의 매력이 넘쳐나야 가능한 일인데, 그런 지점까지 도달했는지는 아직 미지수이기 때문이다.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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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살리면 인류가 멸망하고, 인류를 살리면 가족이 죽는다! 23 아이덴티티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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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디그>
영국의 한 미망인이 알려지지 않은 고고학자를 고용하여. 그녀의 사유지에 있는 둔덕을 파헤치고, 거대한 유물을 발견하게 되는 실화를 다룬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