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1-31 14:36:17
2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기예르모 델 토로 <프랑켄슈타인> 첫 공개

기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한 <프랑켄슈타인>의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오스카 아이작이 연기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첫 모습이 공개되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올해 11월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 예정인 해당 작품은 델 토로가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작품이라고 밝혀 더욱 화제가 되었습니다. 델 토로는 2008년 ComingSoon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부터 ‘프랑켄슈타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으며, 보리스 칼로프의 프랑켄슈타인 관련 수집품을 소장하는 등 오랜 시간 이 프로젝트를 구상해 왔습니다. 2018년 유니버설 픽처스가 해당 프로젝트를 취소하며 무산될 뻔했으나, 이번에 넷플릭스를 통해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에는 오스카 아이작을 비롯해 제이콥 엘로디, 크리스토프 왈츠, 미아 고스, 찰스 댄스 등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들이 출연할 예정이며, 촬영 감독 댄 로스텐이 <미믹>, <크림슨 피크>, <셰이프 오브 워터>, <나이트메어 앨리>에 이어 다섯 번째 협업을 이어갑니다.
로버트 로드리게스 <패컬티> 리메이크 확정

1998년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이 연출했던 <패컬티>가 리메이크를 확정 지었습니다. 새로운 <패컬티>는 장편 데뷔작 <컴패니언>으로 현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드류 핸콕이 각본을 쓸 예정입니다. 제작은 <바바리안>의 제작사인 볼더라이트(BoulderLight)가 맡습니다.
<패컬티>는 어느 한 고등학교의 교사들이 외계 기생 생물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이, 학교가 완전히 점령당하기 전에 힘을 합쳐 저항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조다나 브류스터, 클리어 듀발, 일라이저 우드, 조쉬 하트넷, 셀마 헤이엑 등이 출연한 바 있습니다.
미이케 다카시 <오디션>, 할리우드 리메이크되나

포커스 피처스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오디션> 리메이크 제작을 추진 중입니다. 공포영화 <스픽 노 이블>로 호평받았던 덴마크 감독 ‘크리스티안 타프드럽’이 각본과 연출을 맡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디션>은 무라카미 류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아내를 잃은 한 남성이 새로운 배우자를 찾기 위한 가짜 오디션을 열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공포영화입니다.
선댄스영화제, 2027년부터 볼더로 이전 유력

영화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영화제 중 하나인 선댄스영화제가 유타를 떠나 2027년부터 유타를 떠나 콜로라도 볼더로 이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볼더 측은 약 3,400만 달러에 달하는 세금 공제와 토론토, 칸 영화제처럼 보다 중앙 집중형 영화제 운영 방안을 제시한 것이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오래된 소규모 극장들과 영화제를 오가는 셔틀
버스가 선댄스의 매력이었기에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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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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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류준열·천우희, <머니게임> 크랭크업
ⓒ 롯데컬처웍스
한재림 감독의 첫 시리즈물 <머니게임>이 지난 23일 크랭크업했다. <머니게임>은 네이버 웹툰
원작으로 한 8부작 시리즈로 류준열, 천우희, 박정민 배우가 출연한다.
지일주·박지연 <강남좀비>, 134개국 선판매
ⓒ 네이버 영화
배우 지일주, 박지연 주연의 영화 <강남좀비>가 북미를 비롯해 독일, 태국, 일본, 필리핀 등
총 134개국에 선판매되었다고 밝혔다. <강남좀비>는 이번 달 5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메간>, 25일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영화 <메간>은 오직 ‘케이디’를 위해 프로그래밍 된 AI 로봇 ‘메간’이 ‘케이디’와의 우정을 위해
예측할 수 없는 업그레이드를 계속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새해 첫 호러 영화 <메간>은
이번 달 25일 개봉 예정이다.
<상견니>, 25일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대만 인기 드라마 <상견니>가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과 스토리로 재탄생한 영화가 국내에서
25일 개봉을 확정했다. 원작의 내용에서 출발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전개될 것을
예고하였다.
해외
제임스 카메론, <아바타 3> 불 다루는 나쁜 나비족 그릴 예정
ⓒ 네이버 영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최근 프랑스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아바타 3>에서는 나비족 중 불의
요소를 가진 '재의 부족'에 대해 그릴 것"이라고 밝혔다. <아바타 3>는 현재 2024년 12월
20일 개봉 예정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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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시선으로 특별하지 않음을 말하다.
<디어 에반 한센(Dear Evan Hansen)>, <나, 다니엘 브레이크>, <말아톤>, <7번방의 선물>과 같이 장애를 겪고 있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영화는 비록 상업영화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국내외 영화계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앞서 예시를 든 영화들처럼, 장애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들은 흔히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해당 인물이 어려움과 고난을 겪게 되는 모습을 통해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의 고난→ 조력자 혹은 특정 사건과 만남→ 주인공의 극복/ 희망’과 같은 클리셰를 사용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러한 영화의 전개는 관객에게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혹은 상상해보지 못한 상황을 이해하고, 몰입해볼 기회를 제공하며,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인물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행방식은 영화의 전반을 중심인물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때로는 영화의 중심인물이 아닌 주변 인물들이나 그들이 겪는 사건, 영화 전반에 걸쳐 숨겨져 있는 의도와 영화의 주제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도를 하락시킨다는 단점을 보이기도 하며 ‘주인공의 고난과 극복’이라는 전형적이고 반복적인 클리셰에 관객이 흥미를 잃게 될 가능성 또한 있다. 이런 ‘사회적 약자’라는 같은 소재를 가진 영화들의 어떤 공통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 속에서 영화 <나는 보리>가 갖는 시선은 특별하다. <나는 보리>는 농인을 바라본다. 소수가 아닌 다수로서, 장애인 가족이 아닌,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한 가족으로서,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소통하는 존재로서, 그리고 농인과 청인을 다르지 않은 시선에서 말이다.
1. 경계를 허무는 시선
‘코다(CODA:Child Of Deaf Adult)’는 농인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하는 용어로, 2020년에 개봉한 김진유 감독의 <나는 보리>는 ‘코다(CODA)’인 소녀 ‘보리’의 일상과 그런 보리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을 담은 영화이다. 김진유 감독은 실제 농인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코다(CODA)’로, 영화<나는 보리>는 김진유 감독의 유년기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때문에 <나는 보리>의 주인공이자, ‘코다(CODA)’인 소녀 보리는 김진유 감독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어있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보리>의 주인공인 11살 ‘보리’는 어린 시절 김진유 감독처럼 농인인 부모님을 대신해 은행 업무를 보고, 음식을 주문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등 주로 가정 내에서 아이보다는 어른들이 하게 되는 일들을 도맡아 한다. 영화 속 “나는 누나 귀 안 들리는 거 싫어. 치킨 못 먹어.”라는 농인 동생 정우의 대사를 통해서, 아침에 혼자 알람을 듣고 일어나 가족들을 깨우고 등교하는 보리의 모습을 통해서, 보리가 “내일 할아버지 집에 갈거야.”라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말에도 따라나서 엄마와 동생의 몫까지 기차표를 구매하고, 택시 앞자리에 탑승해 길을 안내하고, 수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농인인 엄마 사이에서 수화를 통역해주는 장면을 통해서 보리의 가족들이 생활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보리에게 맡기고 의지하고 있으며, 보리가 가족들 사이에서 어떠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는 보리가 이러한 책임들을 도맡음으로써 결코 불행하다거나 힘겹다거나, 가족들이 보리에게 과도하게 의존하여 보리가 없이는 아예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불리하고 힘든 요소를 지니고 있음에도 영화에서 보리네 가족은 따스함과 서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넘치는 화목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떻게 보면 가족 구성원 내에 농인이 없는 일반 가정보다 더욱 화목한 모습으로 말이다. 이는 은정이가 자신의 부모님은 항상 바쁘고 매번 걸려오는 전화와 부모님의 심부름은 다 자신의 몫이라고 투덜대며 보리를 부러워하는 장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화목하고 따뜻한 가족의 묘사는 농인인 부모님과 청인인 자녀로 구성되었지만, 보통의 가족들처럼 따뜻하고 화목했던 김진유 감독의 가정환경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화목한 가족 내에서도 왠지 모르는 소외감을 느끼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보리’이다. 들리지 않는 부모님 혹은 동생 정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수에 속하는 청인 ‘보리’ 말이다. 이러한 설정은 <나는 보리>가 농인의 문화와 세상을 특별하지 않게 바라봄으로써 가지는 미덕을 돋보이게 해준다. 보리는 가족들 사이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알 수 없는 소외감에 매일 아침, 자신도 부모님과 동생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기도 하며, 심지어는 소리를 잃기 위해 MP3를 최대 음량으로 키워 이어폰을 귀에 바짝 꽂은 채 음악을 듣거나 물에 귀를 자주 담그면 청력이 감퇴한다는 TV 속 해녀의 인터뷰를 보고 직접 바다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러한 보리의 행동과 소외감은 일반 청인 관객들이 보기에 이질적이고 쉽게 공감할 수 없으며 한편으로는 충격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이런 보리의 심리와 행동, 영화의 설정이 <나는 보리>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
가족 내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존재로서, 사회적으로 우리가 흔히 다수라 말하는 청인에 속함에도 보리가 농인으로 사는 삶을 원하는 모습을 통해 <나는 보리>는 장애인은 약자, 청인은 일반인이라고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이분법적 사고와 농인의 삶을 남다르게 바라보고 불편할 것이라 섣불리 동정하는 우리의 선입견을 깨트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보리>에는 농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하지 않기를 바라는, 있는 그대로의 농인을 보여주고 싶은 감독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앞서 말했듯, 보리는 물품을 구매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은행 업무를 보는 등 흔히 보호자가 해줄 법한 일들을 모두 맡아 하는데, 이렇게 가족들의 생활편의를 도울 뿐 아니라 보리는 사회로부터 가족들을 보호하기도 한다. 이는 보리가 동생 정우의 축구경기 출전과 엄마와 함께 옷을 사는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동생 정우 역시 농인인데, 정우는 축구 실력이 뛰어남에도 귀가 들리지 않아 경기 수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출전선수가 아닌 후보 선수로 지목된다. 이에 정우가 후보선수라는 것을 알게 된 보리는 이장님인 아버지를 둔 친구 은정이를 통해 정우가 축구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보리가 엄마와 단둘이 옷가게를 방문한 장면에서 보리는 옷가게의 직원들이 자신과 엄마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와 비하를 서슴지 않고, 옷 가격 또한 원가보다 높게 책정해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후 보리는 잘못된 거스름돈을 점원에게 돌려주며 엄마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자신은 들리지 않는 척하고 있었을 뿐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행동과 말을 했는지 다 보고 들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보리는 가족의 도우미와 더불어 보호자의 역할도 소화한다.
그렇다면 청인인 보리는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족들의 도움 없이도 모두 스스로 잘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보리가 가족을 돕듯, 보리 또한 가족의 도움과 관심,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영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보리는 불꽃놀이를 보러 가족과 함께 시장에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부모님의 손을 놓친다. 안내방송을 해도, 전화를 걸어도 들을 수 없는 부모님과 동생이기에 이들을 찾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보리는 막막하기만 하다. 이 순간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밝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보리는 처음으로 11살 제 나이 또래처럼 어린아이 같은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는 이렇게 가족 내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하는 보리 또한 가족들의 보살핌과 도움이 필요하며, 우리가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는 농인도 도움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큰 힘과 도움이 되어 주는 존재라는 걸 알려준다. 다음 소주제에서 더 언급하겠지만, <나는 보리>와 유사한 작품으로 미국에서 개봉한 <코다>라는 음악 영화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코다(CODA)’인 주인공 소녀가 “지금까지 가족 없이 뭘 해본 적이 없어요.”라며 망설이는 모습을 통해 <나는 보리>와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자신이 가족들을 도와야 하지만 역으로 자신도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는 청인과 농인이 모두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이기도 함을 보여주는데, 결국 <나는 보리>가 이야기하는 바는 이러한 영화의 장면들과 보리의 아빠가 보리에게 반복해서 뱉는 말을 통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들리든, 들리지 않든 우린 똑같아.” <나는 보리>가 바라보는 청인과 농인은 연약한 존재이자 때론 강한 존재로서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그저 똑같은 한 사람일 뿐이다.
2. 다르고도 같은 소녀들– 영화 <코다>의 루비, <나는 보리>의 보리
<나는 보리>의 보리와 유사하게 ‘코다(CODA)’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있는데, 바로 2021년 미국에서 개봉한 <코다>이다.
두 영화의 주인공 보리와 루비는 모두 코다 중에서도 가족 내에서 유일하게 소리가 들리는 자녀 'OHCODA’이자, 미성년자 코다 ‘KODA’에 속한다는 점, 그리고 영화가 청인과 농인의 화합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나, 두 영화 속 소녀의 가정 환경이나 농인의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 그리고 인물의 선택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나는 보리>에서 보리의 관심이 가족들과 보내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과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면, <코다>의 루비는 졸업과 성인을 앞둔 나이로 진학과 가족의 생계 등 자신의 삶과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고민하는 데에 몰두한다. 두 영화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차이는 보리는 가족들과 동일시 되어 자신도 소속감을 느끼기를 바라는 반면, 루비는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기를 원한다는 점이었는데, 이는 단순히 졸업 학년과 11살이라는 인물의 나이 차이 때문에 나타난 차이 만은 아닐 것이며, 두 소녀의 가정 환경과 제작자(감독)의 배경과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 잡은 문화적 배경 또한 영화의 관점과 주인공의 선택에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루비의 가족은 아빠와 오빠가 운양하는 어선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가는데, 일정치 않은 수입과 틈만 나면 중간에서 이익을 떼가는 중개업자들 때문에 루비의 진학비용 걱정은 물론, 늘 생활비 걱정을 안고 지낸다. 또한, 루비의 가족은 가족 내의 강한 유대와 결속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루비의 엄마가 식사할 때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가족의 일에는 꼭 모두가 함께 자리하게 하는 장면을 통해 루비의 엄마가 가족의 소통과 결속을 강조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거 알아? 엄마도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해.”라는 루비의 대사와 “들리는 년들은 나랑 말 안 해.”라는 엄마의 대사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사실 엄마의 이러한 행동은 청인과의 교류는 두려워하며 피하고, 농인에 공감할 수 있는 가족 내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유지하려는 엄마의 방어기제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 내의 유대를 강조하는 엄마의 행동과 자신도 부양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저절로 심어지게 되는 루비네 가정의 분위기와 환경은, 루비가 가족에게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반면, 보리의 가족은 루비네 가족과 같은 입장으로, 농인으로서 겪는 불편함과 어려움이 분명 있음에도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의 본보기라고 표현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따뜻한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나는 보리>에서 보리의 부모님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수술비조차도 전혀 상관없다며 정우와 보리의 귀를 위해선 큰 비용지출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코다>에서는 가족의 생계수단이던 낚시도 <나는 보리>에서는 보리 아빠의 오랜 취미이자, 어린시절부터 아빠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준 존재, 아빠와 보리가 속마음을 교감하게 되는 시간과 배경으로 나타난다. <코다>는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이며 원작 영화인 <미라클 벨리에>는 프랑스에서 제작되었고, <나는 보리>는 우리나라의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제작되었다. 이에 루비와 보리의 선택 차이에는 우리나라보다 비교적 이른 나이의 면허취득과 독립을 맞이하는 서양의 문화와 개인주의, 그리고 한국의 가족공동체 정신과 협동, 한국의 ‘정’이라는 이데올로기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가정과 사회에 대한 루비와 보리의 관점과 선택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두 영화 모두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농인과 청인의 경계를 허물고, 화합과 이해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은 같다. <코다>의 경우 영화의 후반부. 음악 영화답게 음악을 통해 주제를 드러낸다. 루비의 오디션과 대학 진학을 내내 반대하던 루비의 부모님은, 교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루비의 모습과 루비의 노래에 환호하는 관객의 모습, 그리고 그 누구보다 노래를 사랑하는 듯한 루비의 태도를 보고 오디션 당일 아침, 직접 운전을 해 오디션장까지 함께 간다. 오디션장에서 루비가 부르는 노래는 “Both sids now”. 앞서 말했듯, 영화의 메인 사운드 트랙이자 주제를 나타내고 있기도 한 이 루비의 오디션 곡은 “하려던 일들이 많았지만 구름이 내 앞을 막았지. 이제 구름을 양쪽에서 보게됐어. 위와 아래에서”, “이제 사랑을 양쪽에서 보게 됐어. 주는 쪽과 받는 쪽에서”, “이제 인생을 양쪽에서 보게 됐어. 이기는 쪽과 지는 쪽에서”와 같이 성장하며 주변에 있던 것들에 대해 달라진 이해와 시선에 대한 가사를 담은 곡으로, 루비가 ‘코다(CODA)’로서 살아가며 때로는 농인인 가족이 자신의 인생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때로는 농인 가족 속에 속한 유일한 청인이 자신이 소외된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던, 때로는 다른 가족들과 다른 자신의 가족이 부끄럽고 이해할 수 없었던 루비가 이제는 농인과 청인의 입장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가족을 이해하게 되었음을 노래한다. 그뿐만 아니라, 오디션 현장에 몰래 들어온 가족들을 위해 루비는 노래를 부름과 동시에 가사에 맞추어 수화를 하는데, 이 장면을 통해 영화 <코다>는 루비의 성장과 이해, 농인과 청인의 교류와 화합을 완벽히 실현시킨다.
<코다>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이해와 화합에 중심을 두었다면 <나는 보리>는 서로 간의 이해와 더불어 ‘코다(CODA)’로서 살아가는 보리의 자아정체성 확립과 농인과 청인과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농인도 청인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점을 더 강조해 말한다. <나는 보리>의 미덕은 바로 이렇게 농인 가족이 등장하지만, 비장애인 가족과 다르지 않은 보편적 정서를 다룬다는 점에 있다. 다름보다는 같음을 느끼게 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게 한다. 실제로 나는 보리의 김진유 감독은 “처음부터 장애를 어떻게 다루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리의 감정에 집중했고, 그 감정선을 따라 보리 가족의 모습을 묘사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기존의 장애를 다룬 영화와 차별점을 갖게 된 것 같다.”라며 특별한 의도를 담기보단 오히려 그저 농인을 향한 시선이 특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뿐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영화 <나는 보리>의 후반부에서, 보리는 시장에서 구매했던 부적인 ‘악마의 눈’을 바다에 던지는데, 이러한 보리의 행동을 통해 일시적이지만 농인의 입장을 직접 체험해보고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을 경험해본 보리가 더 이상 가족에 대한 타인의 차별적인 시선이나 편견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으며 ‘코다(CODA)’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시선이 어떻든, 자신에게는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확립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나는 보리>는 보리가 도로와 바다 사이 좁은 방호벽 같은 길 위를 양팔을 벌린 채 균형을 잡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배우들의 이름과 함께 등장하며 마무리되는데, 도로도 바닷가도 아닌 사이 도로 방호벽 위를 조심조심 걸어가는 보리의 모습을 통해 농인과 청인 사이에 놓여있는 ‘코다(CODA)’ 보리의 정체성과 농인과 청인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완성한다.
3. 보리가 보여주는 농인의 세상
<나는 보리>에서 보리는 가족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에 농인이 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물에 귀를 자주 담그면 잘 들리지 않는다는 TV 속 해녀의 말에 직접 바다에 뛰어들며, 이상 없이 무사히 구조되었음에도 보리는 이후로 계속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척, 자신도 농인이 된 척 행동하는데, 이렇게 농인으로서 생활하는 동안 보리는 농인을 향한 사회의 시선을, 가족들이 농인으로서 겪었을 어려움과 외부에서 받았을 차별들을 경험하게 된다. 앞서 <나는 보리>의 미덕은 농인 가족이 등장함에도 비장애인 가족과 전혀 다른 바 없이 느껴지는 보편적인 정서를 다룬다는 점이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영화 전반에 걸쳐 경계를 허물고,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지만, 보리가 직접 농인의 입장으로 살아가는 생활들을 담음으로써 일상 속에서 농인이 겪게 되는 불평등한 차별과 시선 또한 짧은 내에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 또한 <나는 보리>의 또 다른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보리가 가족들처럼 농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친구들은 학교에서 이전과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 보리와는 상의 없이 보리에게 화장실 청소 당번임을 통보한다던가, 은정이와 보리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보리를 투명인간처럼 쏙 빼놓고 은정이에게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식으로 말이다. 학교와 또래 친구들 내에서뿐만 아니라 보리는 주변 어른들에게서도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보게 되는데, 부모님 대신 정우와 농인이 된 척하는 보리를 데리고 병원에 간 고모가 ‘착한 거짓말’이라는 명분으로 병원에 다녀온 후 엄마, 아빠에게 수술하게 되면 정우가 앞으로 축구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전하지 않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또한, 엄마가 함께 간 옷가게에서는 보리와 엄마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몰래 점원들끼리 상의하여 더 높은 가격으로 옷을 판매하는 것을 보게 되며, 지나가는 보리를 본 동네 어른들이 “어린 것이 딱해서 어떡해.”라며 들리지 않게 된 보리를 안타까워하며 안쓰러운 시선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바라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보리가 농인인 체를 하며 겪게 되는 주변의 변화와 상황들은 우리가 영화 밖 현실사회에서 농인을 바라보는 태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우리 사회는 흔히 장애를 섣불리 안타깝다는 식으로 바라보거나 ‘힘들겠다’라는 식으로 동정 같은 공감을 한다. 작은 시선, 별 의미 없는 말 한마디일 수 있지만, 때로는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툭툭 나오는 시선과 말들은 당사자의 마음에 꽂히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11살 소녀가 특별히 큰일 없이 지나가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차별을 경험하도록 한 것에도 농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하지 않았으면 하는 김진유 감독의 바람과 유년 시절 감독이 겪었던 감정, 그리고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진유 감독은 “제가 만났던 농인 부모 중 60% 정도가 자녀가 농인으로 태어나길 바랐다. 농인이라는 것 자체가 불편하지 않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사회에서 우리가 농인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감독이 영화에서 보리가 직접 농인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농인이 일상 속에서 빈번하거나 흔하게 겪게 되는 어려움을 보여주고, 그 어떤 가정보다 따뜻하고, 온전하고,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를 그림으로써 현실에서의 농인을 향한 특별한 시선을 제거하고자 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4. <나는 보리>에 대한 글을 마치며
영화 <나는 보리>는 농인의 삶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코다(CODA)’라는 익숙하지 않은 용어와 존재를 알리고, 이런 ‘코다(CODA)’ 소녀를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단순히 농인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농인과 청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경계를 허물고 농인 가족이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가족임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보리가 농인이 되고 싶어 하는 바람을 통해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사고에서 전환된 시각과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지닌다.
<나는 보리>의 김진유 감독은, “장애인 가족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식의 묘사도 하고 싶지 않았고,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농인 가족의 평범한 일상과 자신이 살았던 모습만을 보여줘도, 대중이 농인을 조금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라고 인터뷰에서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감독의 애정 어린 시선이 영화 <나는 보리>와 그것을 보는 관객에게도 통한 것일까. <나는 보리>의 보리네 가족은 보는 사람의 마음도 더불어 따뜻해질 정도로 그 누구보다 화목하고 행복해 보이며, 영화를 통해 그들의 삶과 ‘코다(CODA)’로서 살아가는 보리의 삶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더 이해하고, 그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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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보다 더 한국적인 영화
낯선 미국 땅 중 한국인이라고는 절대 살 것 같지 않은 허허벌판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들에게 지루한 병아리감별사 일에서 벗어나 미국 땅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병아리 감별사로 일을 다시 시작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의 보육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지만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미국에서 볼 법한 할머니 상과는 영 딴판인 할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화에는 다양한 갈등이 존재한다. 갈등이라는 키워드로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1. 가정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 여자 vs 성공에 눈 먼 한탕주의 남자
가부장적인 남자는 가정의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위신을 세워주는 요소들을 정해놓고 산다. 예를 들면, 좋은 집, 좋은 차로 대표되는 돈, 즉, 가정에서 남자가 해야할 일이란 그저 돈을 잘 벌어다주는 것, 그래서 가족들이 풍족하게 살게 해 주면 그만이라는 생각들로 지배적인 것이다. 그 과정에 있어서 가족의 희생이 필수적이라면, 그리고 그 희생에도 불구하고, 풍족한 가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남자들의 위신은 설 데가 없게 된다.
제이콥은 한국의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표본이다.
"아이들이 내가 성공하는 건 보여줘야 할 것 아니야"
"나만 믿어, 조금만 있으면 우리 다 잘 살 수 있어"
등의 대사를 보면, "가족을 위한"이라는 방패를 가지고, 본인의 이상을 추구하는 데에만 여념이 없는 남자이다. 물론, 제이콥이 성공한다면 가족들은 행복하고 여유있게 살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의 이상에 대한 결과이지, 그의 이상의 목적이 아닌데, 성공하지도 못했으면서 가부장적인 가장들은 가족을 자신의 무모한 도전의 이유, 목적인 것처럼 포장한다. 마치, 진짜 가족을 위해서 한다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가족은 그들의 이상의 부가적인 이유이지, 그들은 가족을 담보 잡아 도박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빛좋은 개살구 같은 그들의 포장이 얼마나 비겁한지 왜 그들만 모르는 것인가.
그에 반해, 부인은 아무래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생활비에 쪼들리는 삶이기 때문에 남자의 무모한 도전에 대해서 마냥 박수를 치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상의도 없이, 트레일러 집에 살게 한 이 남자에 대해서 간헐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이 남자의 도전이 성공만 한다면 정말 가족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테니, 이 남자를 믿어보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칸소를 떠나자는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어야 하는건지 우왕좌왕하는 이 여자를 보자니,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가족을 위해서'라는 슬로건으로 밀어붙이는 이 남자의 결과와 목적이 뒤바뀐 주객전도식 설득에 매번 지고야 마는 이 여자도 결국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자라온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도 남편 없이는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사실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다만, 직감적으로 이 남자의 농사에 대한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그저 불안할 뿐이고, 돈이 벌리기 보다는 돈이 나가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불안이 이 여자를 반 미치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 이것이 그녀의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을 그녀와 그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들이 살아왔던 시대가 그들에게 요구했던 사회성이 아마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고, 시대의 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들은 그렇게 갈등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2.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의 충돌
부부 간의 갈등과는 별개로, 미국 태생 자식 세대와 오리지널 한국 할머니의 문화적, 세대적 충돌도 이 영화의 중요한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특히, 아들의 입장에서는 미국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맛있는 쿠키를 구울 줄도 모르고, 싫어하는 음식만 잔뜩 해서 먹이는 할머니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고, 영어도 못하면서 이상한 영어로 사람 당황시키기나 하는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식사 예절에서 개인의 그릇이 중요한 미국에서 그릇을 공유하고, 컵도 공유하는 할머니의 행동에서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던 자식 세대의 감정에 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너는 내 가족이니까 네가 쓰고 있는 물건도 내가 그냥 허락 구하지 않고 쓸 권리가 있다'는 식의 접근이 영화의 배경 기준에서 자식 세대보다 더 어린 세대인 내가 우리 할머니의 그런 태도에 기분이 나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깊이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현재 우리나라도 영화의 배경 시대에 비하면, 참 많이 서구적으로 바뀌었구나, 많이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 때나 지금이나 세대 간의 충돌의 이유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영화 상에서 개인주의 문화를 정없는 문화로 간주해버리고, 정이라는 애매한 말로 무례함을 덮어버리는 집단주의가 미국의 개인주의 문화와 충돌했을 때, 어느 쪽이 이기는가 하면, 집단주의가 이기고야 만다. 집단주의 문화 에서 가족이라는 집단의 존재가 아주 중요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하는 희생이 당연시된다. 희생의 힘이란 아주 강력해서 각자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미국 아이들은 처음 집단주의에 노출되면, 처음엔 그 집단주의의 일종의 무례함이 오지랖으로 보일 수 밖에 없지만 집단주의에서 필수 요소인 희생에 노출되면, 무례함에 대한 불쾌함이 사그라들고, 고마움으로 바뀌게 된다. 그 고마움이 결국 집단주의에서 형성되는 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도 앨런은 할머니에 대한 불쾌함을 느꼈던 과거는 잊고, 할머니에게 의지하게 된다.
3. 미나리의 의미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살아야 했지만 아메리칸 드림 하나 바라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는 땅에서의 현실도 한국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 가난을 타파하고자 하는 가장의 마지막 승부처로 잡은 넓은 대지에서 말라가는 작물과는 달리, 미나리는 특별히 손대지 않아도 알아서 너무 잘 자라버린다. 아등바등하면서 되도 않는 농사를 하는 제이콥과는 대비되는 할머니의 미나리는 결국 이 가족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작물로서, 미국 땅에서 기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한국인 이민 가족들의 집념을 상징하는 듯 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서도 여전히 미국에서 자리잡고 살고 계신 이민 가족, 교포 분들이 어디에서 자라도 극강의 생명력을 보이는 미나리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총평
이 영화는 제 2의 기생충이다 뭐다, 말들이 참 많던데, 기생충과는 참 분위기도 다르고, 더 한국적인 영화다. 기생충은 인간 사회의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의 입장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 영화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사람들이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에 대해 논하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해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미나리의 경우, 한국 사회의 특징적인 점들을 잘 집어내어 한국인에게는 당연한 내용이고, 해외 영화 팬들에게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스테레오타입적인 특징을 잘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영화라고 생각한다. 기생충의 경우, 한국 태생 감독이 한국 영화의 세계화를 목표로 만든 영화 같았다면, 미나리의 경우, 한국 교포인 감독이 '한국인에 대한 이해'라는 과목을 세계인들에게 강의하고 있는 듯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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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자아를 남성성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전통 서부극과 현대 서부극, 카우보이의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났는지에 관하여
권총을 찬 채 말을 타고 드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소를 지키는 카우보이란 직업의 독특한 캐릭터성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쓰이기에 적합합니다. 전통 서부극을 비롯해 현대 또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본질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복수하는, 전통 서부극과 같은 골자를 가진 최근의 영화까지 카우보이는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수많은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재밌는 부분은 개척시대 혹은 그와 가까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최근에 제작된 현대 서부극의 카우보이들은 전통 서부극의 카우보이가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의 일부 특징들을 비틀어서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각 영화가 가진 카우보이의 특징은 무엇인지, 그로 인해 그 영화만이 가진 특별함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는 192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당연하게 카우보이가 다수 등장하는 서부극 장르의 영화입니다. 얼핏 보면 그들은 전통 서부극 카우보이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가진 듯한 느낌입니다. 카우보이 하면 바로 떠오르는 외양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남성우월적 마초이즘·인종차별 마인드가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게 되면 <파워 오브 도그>에 등장하는 필 버뱅크로 대표되는 카우보이 또한 숨겨져 있던 비틀린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이 영화는 현대 서부극의 범주에 속하는 영화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 영화에서는 총을 사용한 액션은 찾아보기 힘든 대신, 대화와 분위기를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를 숨기거나 파헤치는 데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남성성을 중시하고 강조하면서 여성스럽고 섬세한 피터를 멸시하던 필은 역설적이게도 남성성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동성애자임을 여러 메타포를 통해 은연중에, 또는 직설적으로 드러냅니다. 과거 자신의 스승이었던 브롱코 헨리의 안장을 쓰다듬는 행위는 마치 애인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밴조를 음정과 박자에 맞춰 섬세하게 연주하는 모습, 카우보이 무리와 동떨어져 홀로 멱을 감고 스승의 손수건으로 자위를 하며, 남성의 나체 사진이 담긴 잡지를 비밀 공간에 숨겨놓는 등의 행위를 비춤으로써 말입니다. 마초적인 남성의 실체가 동성애자라는, 그 괴리감으로 인한 자기 파괴적인 면모를 보이는 캐릭터는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착실한 빌드업을 거쳐서 드러낸 클리셰는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파워 오브 도그>만이 가진 특별함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통 서부극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스테레오타입을 탈피한 현대 서부극 <파워 오브 도그>, 클리셰일지라도 착실한 빌드업은 영화를 풍부하게 만든다.
나의 유일한 영혼과 자아. 개에게 잡아먹혔느냐, 저항하였느냐
개의 세력으로 직역이 가능한 영화의 제목 <파워 오브 도그>는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성경의 시편 22편 20절로부터 유래했습니다. 왜 하필 개의 세력을 제목으로 설정하였을까? 이 구절은 자신의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게서 구해달라는, 자신의 영혼을 악(惡)에게의 굴복이라는 고난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럼 <파워 오브 도그>의 악은 무엇인가? 해당 시대의 사회가 남성들에게 요구하는 권위적이고 마초적인 남성성을 의미합니다. 영화에서 로즈와 피터에게 남성성을 내세우면서 가차없고 잔인하게 대하는 필을 보면 악을 대변하는 존재로 느껴질 법 합니다. 하지만 그는 섬세한 감수성과 높은 지능, 그리고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자아와 영혼을 악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하고 굴복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대변하게 된 나약하고 가여운 자일뿐입니다.
반면에 내성적인 성격에 가냘프고 유약해 보이는 외모, 그리고 생화로 착각할 만큼 종이로 섬세한 꽃을 만드는 등 영화 초반의 피터는 전반적으로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는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토끼를 아무렇지 않게 해부하고 관찰하며, 고통받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통한 살인을 벌이기까지 합니다. 또한 다른 카우보이들은 발견하지 못하던 개의 형상을 피터는 발견함으로써 필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필은 황무지에서의 생존법을, 더 나아가 사랑을 배웠던 브롱코와의 관계처럼 피터와 그러한 사제지간 혹은 그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고자 합니다. 피터는 그를 따르고 지식을 습득하려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카우보이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피터는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이란 개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유일한 것, 의사가 되고자 하는 자아와 영혼을 지켜내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둘 자체의 성격과 둘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고 은유하는 존재들 역시 영화 속에 치밀하게 숨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예 외에도 인상 깊은 메타포 하나를 소개해 보자면, 필과 피터가 같이 여행을 떠났을 때 토끼 한 마리를 쫓게 되었습니다. 나무 더미 아래에서 당당하다는 듯 꼼짝 않는 토끼는, 실은 꺼내고 보니 다리를 움직이기 힘든 부상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토끼에게서, 나무 더미와 같은 주변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는 마초적이고 당당하지만 주변 환경에서 꺼내어져 실체를 확인하였을 땐 상처 입은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 필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그 토끼를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준 피터는 필 또한 동일하게 구원과 안식을 주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파워 오브 도그>는 수많은 장치들을 통해 둘과 둘 사이의 관계를 치밀하고 섬세하게 담아냈으며,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함 중 하나입니다.
브롱코의 안장을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대하던 필과, 필이 만든 밧줄을 장갑을 낀 채 침대 아래로 밀어 넣은 피터, 악의 대물림과 끊어냄.
영화를 흘러가게 만드는 힘, 연출·배우와 소리
난해 보일 법 한 영화의 초반부 흐름과 달리 <파워 오브 도그>의 스토리는 정말 단순합니다. 부유한 카우보이 형제·동생과 결혼하게 된 과부·소심하고 유약한 그녀의 아들·그리고 모자와 형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 이 영화의 주된 골자입니다. 이 단순한 스토리를 특별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데에는 치밀한 플롯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치밀한 플롯은 누구에게서 탄생을 하였는가 하면 연출과 배우의 연기에서 탄생하였습니다. 분명히 태양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는 드넓은 황무지를 익스트림 롱 숏으로 비추고 있음에도 그 분위기는 마치 겨울처럼 싸늘하게 느껴집니다. 또는 등장인물을 비출 때 클로즈업을 통한 감정의 묘사와,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보는 듯한 위치의 카메라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한 가지 예로, 로즈가 형편없는 실력으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을 때, 2층에서 마치 그녀를 비웃는 듯 필은 동일한 곡을 밴조로 유창하게 연주합니다. 이때 위에서 내려다본 로즈는 한없이 작아 보이고, 아래에서 올려본 필은 한없이 커 보입니다. 위축된 로즈와 위압감 넘치는 필을 자연스럽고 탁월하게 묘사해 냈습니다.
아무리 감독이 연출을 뛰어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배우들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불완전한 실패한 영화일 뿐입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진정으로 배우를 위한, 배우에 의한 영화입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커스틴 던스트, 코디 스밋 맥피, 그리고 제시 플레몬스는 감독의 의도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그대로, 혹은 더 특출나게 영화에 담아냈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야 두말할 것도 없으며, 그가 맡은 배역 중에서 감히 최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컴버배치의 포스에 전혀 밀리지 않고 동등하거나 오히려 후반부에서는 그를 잡아먹어 버린 코디 스밋 맥피는 새로운 배우의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시킬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또한 커스틴 던스트의 짓눌린 듯한 압박감과 공포로 인해 병들어가는 모습 또한 그녀 역시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인 캠피온의 소리를 활용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습니다. 필이 차고 있는 박차가 찰랑거리는 소리는 그의 성격과 맞물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그에게 압도되고 공포를 느끼도록 분위기를 전환시킵니다. 게다가,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들 역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피터가 미지의 공간인 산과 황무지를 처음 탐험할 때, 처음 발을 들이는 공간이 주는 긴장감을 OST가 묘사를 합니다. 전통적으로 휘몰아치는 듯한 긴장감을 조성함에 있어 바이올린이 주로 사용되기 마련이지만 그린우드는 호른 두 대와, 커다란 공간의 잔향을 활용하여 독특한 긴장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외에도 불협화음으로 이뤄진 날카로운 피아노 소리는 로즈가 위치해 있는 장소의 분위기와 그녀의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합니다.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영화와 잘 어울리는 '소리'까지, <파워 오브 도그>는 눈과 귀 모두에 강한 자극을 선사합니다.
단순한 스토리를 받쳐주는 치밀한 플롯, 그 플롯을 받쳐주는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그들을 한데 아울러 감싸고 있는 불편하지만 어울리는 소리까지.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한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자동차를 이용하는 동생 조지와 피터와 달리 필은 오직 말을 이용할 뿐입니다. 이를 통해 필과 피터의 관계를 과거에 안주해 있는 존재와 그로부터 벗어나 현재·더 나아가 미래를 향하는 대립되는 존재로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수많은 메타포와 상징이 산재해 있는 영화이지만 관객들이 그들을 찾아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보니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그것들을 발견해 내지 못하더라도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나고 훌륭한 심리 영화입니다. 다만, 서스펜스가 형성되는 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적지 않은 분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꼭 감상하기를 추천하는 영화, <파워 오브 도그>입니다.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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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우리가 ‘은혜씨’의 얼굴을 들여다볼 차례
누구나 생각만으로 그저 웃음이 나는 얼굴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을 보고 나면, 거기에 하나의 얼굴이 더 추가될 것이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발달장애인 ‘은혜씨’의 얼굴 말이다.
〈니얼굴〉은 여러 예술가가 모여 물건을 판매하는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는 은혜씨의 이야기를 담았다. 은혜씨에게 자기 얼굴 캐리커처를 맡긴 사람은 4천여 명에 달한다. 집에서 뜨개질만 하던 은혜씨는 화가인 어머니가 운영하는 그림 교실에서 우연히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후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인기 셀러(seller)로 거듭났다. 마주 앉은 사람의 얼굴을 정성 들여 그려주다보니 ‘니얼굴 작가 은혜씨’라는 별명도 생겼다. 인기가 너무 많아서 골치 아프다는 은혜씨의 너스레에서 그녀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장애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내내 밝은 분위기로 전개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아니, ‘밝은 분위기’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니얼굴〉은 엄청나게 웃긴 영화다. 은혜씨는 내내 재치 있는 말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렇다고 또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영화에는 은혜씨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장생활 안내서에 삽화를 그려달라는 의뢰에 답하는 장면이 있다. 제안을 들은 은혜씨는 “중요하다, 이거”라고 말한다. 그녀가 자신의 문제에 깊이 있는 고민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요컨대 발달장애인인 은혜씨는 유쾌하고 성숙한 시민이다. 차이를 차별로 환원하지 않는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서 은혜씨의 ‘다름’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애를 다루는 영화라고 해서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영화관에 왔다면, (내가 그러했듯) 〈니얼굴〉을 본 관객은 아마도 어떠한 반성의 계기를 마주할지도 모른다. 밝고 유쾌한 은혜씨에게도 불행한 순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장애인은 마땅히 불행할 것이다’라고 생각한 우리들의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장애인이라서 불행한 게 아니라, 장애인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우리의 가정이 불행의 원인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은혜씨의 웃는 얼굴은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뒤바뀌었음을 자각시키는 계기이기도 하다. 동료 시민들의 애정과 지지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다면, 장애인의 얼굴은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은혜씨의 웃는 얼굴 옆에 있는 돌봄 제공자의 얼굴도 기억해야 한다. 은혜씨의 기쁨, 짜증, 투정, 행복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반응하는 은혜씨의 어머니이자 화가인 장차현실, 그리고 화면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아버지이자 감독인 서동일의 얼굴 말이다. 아무리 은혜씨의 그림 재능이 탁월하고 그녀의 성격이 활발하다 하더라도, 두 사람의 헌신이 없었다면 은혜씨는 여전히 집에서 다소 우울한 얼굴로 뜨개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두 사람은 사회‧공동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사적인 공간에서 오롯이 떠맡은 채 은혜씨의 삶이 빛나도록 지탱하고 있다. 그들은 많은 순간 행복을 느꼈을 테지만, 그만큼 많은 순간에 괴로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비장애중심주의가 상식인 사회에서 장애인과 그의 가족이 마냥 행복하길 바란다면 그건 기괴하게 뒤틀린 환상에 불과할 테니까.
장차현실과 서동일이 가능케 한 은혜씨의 웃는 얼굴은 우리를 그다음 질문으로 인도한다. 돌봄과 헌신을 제공받지 못해 자기 내면의 빛을 꺼내 보일 수 없다면, 장애인은 웃지 못할 수도 있다(은혜씨의 문제가 비단 장애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은혜씨와 장차현실, 서동일이 촉발한 질문은 계급, 성별, 인종 등의 이유로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질문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니얼굴〉을 봤으면 좋겠다. 그들이 은혜씨의 밝은 얼굴과 그녀의 유쾌한 농담에 웃음 짓고 감동받았으면 좋겠다. 나아가 그들이 은혜씨가 선물한 웃음을 또 다른 질문으로 전환해 더 많은 은혜씨‘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은혜씨는 이미 4천 명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 얼굴의 구체성을 포착하여 정성 들여 그려줬다. 이제 우리의 차례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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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서울독립영화제 후기 (2)
4.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국내에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 이 원작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로 가장 잘 알려진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타 작품들을 워낙 재미있게 봤던 터라, 기대를 안고 가장 먼저 티켓팅에 도전한 영화이다. 역시나 좋았고, 전작들과는 색다른 느낌을 주는 이야기였다.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난 후 진행된 시네토크에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에서 시작해서 픽션으로 끝나는 영화’라고 하신 평론가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이보다 이 영화를 더 잘 설명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자연을 보호하고자 하는 거주민, 그리고 그 반대쪽에 서서 어떻게든 글램핑장을 건설하려는 회사 직원들의 이야기. 와중에 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엔딩에 이르러서는 충격적인 장면이 묘사된다. 어떠한 순간순간들이 문학적으로 다가와 좋았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말을 아껴야겠다. 정보없이 봤을 때 오는 놀라움이 크다)
광활한 풍경, 유머러스한 대화, 그리고 오프닝이 정말 볼만하다.
그리고,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5. 백탑지광 (감독 장률)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디>, <경주>, <춘몽>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영화감독 장률. 이번 영화 <백탑지광>은 한 편의 시를 닮았다.
영화 <군산>과 <경주>
영화 <춘몽>과 <백탑지광>
백탑은 그림자가 지지 않아요
영화 제목 '백탑지광'에서의 백탑은 베이징에 있는 탑으로,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이는 곧 한 등장인물이 '우리에겐 그림자가 없다'라고 상대에게 말하는 것과 연결된다. 각자의 아픔과, 말 못할 서러움들을 내면에 꾹꾹 눌러담고 있어서일까.
속에 자리한 그늘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은 각자의 힘으로 묵묵히 생을 버텨내고 있다.
내가 안아줘도 될까요?
용기내어 이렇게 물어보며 자신의 그림자를 꺼내 보인다. 조금은 다른 모양일지라도,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포갠다.
너의 그림자와 나의 그림자를 겹쳐본다.
괴로움, 죄책감, 고독감 모두. 나의 아픔과 너의 아픔까지도.
그 순간에는 조금 쓸어내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음껏 봤고 마음껏 좋아했다.
12월의 압구정 cgv의 온기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영화인들 틈에 끼어 12월 4일부터 7일까지, 4일간 출석했던 서울독립영화제. 2024년에는 또 어떤 좋은 영화들을 만나게 될까. 영화가 가진 힘을 믿으며 앞으로의 2024년도,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좋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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