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환2025-02-11 19:36:01
존 오브 인터레스트: 사운드가 쌓아 올린 공포의 몽타주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리뷰
존 오브 인터레스트: 사운드가 쌓아 올린 공포의 몽타주
( 위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제공한 공식 스틸컷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2024)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하지만, 전형적인 홀로코스트 영화가 아니다. 관객이
목격하는 것은 수용소 내부의 참상이 아니라, 담장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한
한 가족의 일상이다. 그러나 영화는 시각적인 정보만으로 이 가해자의 삶을 조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운드가 화면 위로 쌓이며 '수직 몽타주'를 통해 전율을 만들어낸다.
사운드의 대위법, 두 개의 세계를 가르는 수직 몽타주
에이젠슈테인이 제시한 수직 몽타주 (Vertical Montage)는 영상과 소리가 단순한
동기화가 아니라, 각자의 리듬을 가지면서 충돌하거나 병치되는 방식이다. 그는
사운드를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또 하나의 독립적인 층위로 작동시키며 의미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활용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글레이저는 수직 몽타주의 원리를 철저하게 적용한다.
화면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의 가족이 등장한다. 그들은 정원을
가꾸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며, 아내는 수영을 즐긴다. 그러나 사운드는 이 평온한
풍경을 허락하지 않는다.
① 가시화되지 않는 공포: 들려오는 참상의 소리
관객이 듣는 것은 울타리 너머에서 들려오는 처형 소리, 기차의 기적 소리,
희미한 비명과 절규이다. 하지만 인물들은 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수용소의 기계음과 끊임없이 타오르는 화염은 영화 내내 들리지만,
이 소리는 이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사운드의 병치는 시각적으로는 평온한 장면을 유지하면서도,
관객이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공포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② 음향적 충돌: 대립하는 리듬과 감정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 이론 중 '대위법적 사운드 몽타주'는 영상과 사운드가
조화되지 않고 충돌할 때 감정을 배가한다고 본다. 글레이저의 연출은 이러한 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잔디 위를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가벼운 대화 뒤로
불길과 비명이 어우러진다. 이러한 음향적 몽타주는, 우리가 시각적으로 보고 있는
장면과 청각적으로 경험하는 장면이 충돌하며 형성되는 불협화음 속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미니멀리즘적 이미지와 음향의 폭력성
이 영화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공포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학살의 현장을 직접 담지 않는다. 그러나 소리는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형태로 우리를 압도한다. 시각적으로는 단순한 인물의 움직임, 가정집의 평범한
풍경이 담기지만, 청각적으로는 아우슈비츠의 거대한 산업적 학살이 무겁게 다가온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마치 우리가 장 폴 사르트르의 "지옥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명제를 변형해 "지옥은 타인의 귀를 통해 들려온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시각적 충격이 아닌 음향적 공포를 통해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환기한다.
정리하자면 조너선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사운드를 단순한 보조적 요소가 아니라,
의미를 창조하는 몽타주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에이젠슈테인의 수직 몽타주 기법을 통해
'보이는 세계'와 '들리는 세계'의 간극을 통해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전쟁영화, 홀로코스트 영화처럼 강제 수용소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그 참상 속에서도 일상을 지속하는 가해자의
무관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운드를 통해 구축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폭력을 내면화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듣고도 모른 척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스크린이
아니라 관객의 청각 속에 각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