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nkweon2025-02-11 21:12:47
추락하는 존재들에 대한 헌사
<더 폴 : 디렉티스 컷> 리뷰
타셈 싱 감독의 ‘더 폴 : 디렉티스 컷’을 오직 이미지에 취한 영화라고 평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이 영화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그리고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강렬한 미장센을 통해 '추락하는 존재들'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스턴트맨 로이(Roy)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추락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 것에 가깝다.
영화는 192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시작된다. 스턴트 연기 중 사고를 당한 로이는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사랑을 잃은 절망감에 빠져 자살을 시도한다. 어린 소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또한 농장에서 사고를 당해 다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 둘은 모두 추락을 겪은 인물들이다. 이 영화에서 ‘추락’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위태로운 상태를 상징한다.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자, 사랑에 실패한 자,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 모두가 이 영화 속에서 '추락하는 존재들'이다. 알렉산드리아가 쓴 편지의 우연한 추락으로 연결된 이들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서로를 구원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로이는 본래 알렉산드리아를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자살을 위한 약을 얻는 것) 일종의 도구로 이용하려 하지만, 그녀의 적극적인 개입은 로이의 이야기와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간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에게 오디어스(Odious)라는 폭군에 맞서는 다섯 영웅의 모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환상 속 이야기 또한 로이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야기 속 영웅들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이들 중 특히 중요한 인물은 가면을 쓴 영웅 검은 도적(The Black Bandit)이다. 로이가 이야기의 화자로서 스스로를 반영한 캐릭터인 이 도적은 끊임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패하며, 결국 추락하고 만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는 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개입시켜 결말을 바꾸려 한다. 환상 속 세계에서조차 인물들은 추락하지만, 알렉산드리아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간다. 이를 통해 영화는 추락은 불가피할지언정, 그것이 끝이 아니며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암시한다.
더 폴은 영화 역사 속에서 수많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 특히 스턴트맨들을 조명하기도 한다. 로이의 직업은 스턴트맨이며, 그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화면 속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배우가 영웅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는 철저히 소외된 존재이고, 그가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얻은 것은 부상과 절망뿐이다. 이 영화는 그런 스턴트맨들의 희생을 조명하며, 영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이들의 추락을 가시화한다. 더 나아가, 타셈 싱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도 ‘추락하는 자들’ 위에 세워진 것임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스크린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장면들은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영화는 완전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로이는 자신의 내러티브 속에서 모든 것이 비극적 결말을 향해 달려가지만, 알렉산드리아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검은 도적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거부하며,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단순한 이야기의 반전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방향성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추락할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병원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 알렉산드리아가 웃으며 영화 속 스턴트 장면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희망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더 폴이 진정으로 조명하는 것은, 추락을 거스르려 몸부림치는 인간의 숭고함이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떨어진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사랑을 잃고, 희망이 꺼져가는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그저 추락을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끝까지 저항하며 다시 일어서려 하는가? 로이는 절망 속에서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어 간다. 검은 도적은 패배하지만, 마지막까지 싸운다. 그리고 스턴트맨들은 매번 넘어지지만, 다시 몸을 일으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영화의 환상적인 영상미는 로이의 무의식에서 비롯된 삶에 대한 마지막 희망이 투영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말한다. 추락은 필연이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것은 인간의 선택이라고 그렇기에 더 폴은 모든 낙오한 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추락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바치는 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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