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2-12 11:38:20
2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아카데미 작품상 유력 후보 <브루탈리스트> 개봉

금주에는 마블 스튜디오가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옵니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새로운 캡틴과 함께 관객들에게 찾아왔습니다.
이번 작품으로 삐그덕거리던 마블의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곧 개최될 아카데미 시상식의 강력한 후보로 점쳐지는 <브루탈리스트>도 개봉을 앞뒀습니다.
215분이라는 러닝타임과 상영시간 내 인터미션이 존재한다는 정보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골든 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등 각종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고 있는
애드리언 브로디가 과연 이번 오스카에서도 남우주연상을 거머쥘 수 있을까요?
브루탈리스트
The Brutalist

개요: 드라마 | 미국 | 215분
감독: 브래디 코베
주연: 애드리언 브로디, 펠리시티 존스, 가이 피어스
개봉: 2025.02.12.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줄거리
전쟁의 상흔을 뒤로하고 미국에 정착한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미국 이민자의 냉혹한 현실 속에 전쟁의 트라우마를 견뎌내던 어느 날. ‘라즐로’의 천재성을 알아본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이 기념비적인 건축물 설계를 제안한다.
하지만, 시대와 공간, 빛의 경계를 넘어 대담하고 혁신적인 그의 건축 설계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후원자 해리슨의 감시와 압박, 주변의 비난이 거세질수록 오히려 더 자신의 설계에 집착하던 ‘라즐로’.
혁신적인 브루탈리즘 건축에 자신을 투영하던 ‘라즐로’는 결국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는데...
발 디딜 곳 없는, 소속이 불분명한 삶의 연대기 트라우마가 예술로 승화된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Captain America: Brave New World

개요: 액션 | 미국
감독: 줄리어스 오나
주연: 안소니 마키, 해리슨 포드, 대니 라미레즈, 쉬라 하스
개봉: 2025.02.12.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줄거리
대통령이 된 새디우스 로스와 재회 후, 국제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샘이 전 세계를 붉게 장악하려는
사악한 음모 뒤에 숨겨진 존재와 이유를 파헤쳐 나가는 액션 블록버스터.
두 사람
Life Unrehearsed

개요: 다큐멘터리 | 대한민국 | 80분
감독: 반박지은
주연: 이수현, 김인선
개봉: 2025.02.12.
배급: 반박지은필름, (주)시네마달

줄거리
“가장 낯선 곳에서, 가장 깊은 사랑으로”
파독 간호사로 낯선 나라 독일에 이주한 뒤 지역 사회와 소수자를 위해 목소리 내는 일에 앞장선 ‘수현’.
간호 학교를 졸업하고 신학 연구에 뛰어들며 이주민의 마지막 길을 동행하는 호스피스 리더 ‘인선’.
40여 년 전, 재독여신도회에서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 이민 1세대, 이주 노동자,
그리고 레즈비언으로서 서로에게 쉴 곳이 되어주고, 곁에서 여생을 함께하기로 한다.
첫 황혼에서 두 손을 마주 잡은 <두 사람>의 무지갯빛 블루스가 시작됩니다!
아카디안
Arcadian

개요: SF | 미국 | 92분
감독: 벤자민 브루어
주연: 니콜라스 케이지, 맥스웰 젠킨스, 제이든 마텔
개봉: 2025.02.13.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줄거리
밤이 오면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온다! 쌍둥이 아들 ‘토마스’와 ‘조셉’과 함께 문명이 파괴된 세상을 살아가는 ‘폴’.
밤마다 습격하는 정체불명의 괴물들 때문에 이들은 매일 긴장감 속에 전투를 준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일로 한밤중에 집을 나선 ‘폴’은 마주쳐서는 안 될 괴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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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에 대처하는 그녀의 자세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도망치듯 떠나왔지만 결국 누구보다도 한 곳에 정착하고 싶었던 스즈코
스즈코가 처한 상황, 하루 아침에 범죄자가 되어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의 대상이 된 상황은 스즈코도 스즈코 인생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본인이 범죄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살진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건은 터져버렸고, 그 이후의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 옛 동창들의 왕따는 스즈코가 감당해야만 하는 문제들이었고, 스즈코도 감옥에서 나와서 텅 빈 거리를 걸으면서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고민하며 노래를 불렀던 게 아니었나 생각한다. 착잡한 마음에 대비되게끔 노래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스즈코는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기 위해서 백 만엔을 열심히 벌어낸다. 스즈코에게 그 당시는 도피라는 키워드는 생존과도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 동네를 벗어나야 내가 산다"는 마음이었겠지. 그리고 백만엔 이 모일 때마다 도망쳐온 바다, 산골, 도시 그 어느 곳에서도 아웃사이더로 살아간다. 바닷가에서 만난 호감을 표시하는 남자에게서는 극강의 철벽을 시전하고, 산골에서도 자신의 상처에 얽매여 살고 있는 그녀에게 좁디 좁은 산골 사회가 표출하는 공격성 때문에 그녀는 더 움츠러들게 된다. 그 어느 곳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한다. 백 만엔은 "나는 그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는 범죄자입니다. 나를 깊이 알아갈수록 당신은 날 혐오하게 될 것입니다."라는 스즈코의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에 밝게 살아가려고 하는 스즈코의 인생 목적이자 자기 혐오를 표출하는 방식이다. 잘못 한 것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부정적인 세상의 시선에 굴복하는 스즈코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스즈코는 그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은 채, 혼자 세상을 맴돌며 가족에게까지 괜찮은 척하며 살고 있는데, 스즈코의 동생은 스즈코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왕따의 피해자로 현실을 도망가고 싶어하는 동생은 스즈코를 자신의 암울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개척하고 있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이런 인식은 동창에게 놀림 받고 있는 스즈코가 당당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동생에게 인상적으로 남겨졌기 때문인데, 동생의 인식과는 달리 스즈코는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동생이 처한 상황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동생은 답이 나오지 않는 현실에서 도망가지 않고, 계속 살아가보겠다는 결심을 담은 편지를 스즈코에게 전달함으로써 스즈코와는 다른 선택을 했음을 보여준다. 관객 입장에서는 둘 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둘 다 서로가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설정은 꽤나 흥미롭다. 거지 같은 현실에서 도망친 여자, 그 현실을 그대로 감내하고 있는 동생, 은근히 비교가 되면서 보고 있으면 애잔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표면적 진실 말고 그 이면을 보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 말들은 분노를 일으키기 충분했고,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단지 내가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유, 나와 관련없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평가내리는 모습들을 제대로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달리 비판하기에는 내 마음이 콕콕 찔리는 이유는 나도 저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일까.
스즈코의 남자 친구는 스즈코의 내면에 깊이 자리한 정착 욕구를 불러일으킨 사람이었다. 남자 친구의 거짓말만 아니었더라면 스즈코는 계속 남자 친구 곁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앞서 등장한 두 장소에서의 떠돌이 생활과 그로 겪게된 오해와 편견들로 지칠대로 지친 스즈코에게 제 때에 나타난 사람이었는데, 스즈코가 백만 엔을 다 모아 떠나갈까 두려워 돈을 빌리며 오해를 사기 충분한 행동을 한다. 이는 스즈코가 떠나려는 충분한 명분을 제공한다. 이 남자는 스즈코를 붙잡으려다 오히려 스즈코를 떠나보낸 것이다. 머리를 잘 못 쓴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냥 솔직히 "백만엔이 모여도 나를 봐서라도 떠나지 말라"그 말 한마디만 하면 되지 않나 답답했었다. 하지만 이런 계기가 있었기에 스즈코는 자신이 굉장히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었고, 오히려 동생보다도 더 성숙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역시 모든 고통에는 좋은 대가도 함께 온다. 이유없이 지나가는 고통은 없는 것이다.
영화는 열린 결말인데, 나는 스즈코의 마지막 대사와 독백 대사들로 보건대 스즈코는 남자 친구와 재회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씩씩하게 걸어나갈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다시 떠나간 곳에서는 계속 지금까지 살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자신의 상황, 상처에 정면 돌파하는 용기 있는 모습, "나는 잘 못 한 것이 없어"라며 당당한 태도를 가지고 살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 때문에 상처받은 스즈코가 자신에게 내려야 할 처방은 떠돌이 생활이 아니라 어쩌라고 식의 마이웨이의 당당한 마인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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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3주 차 개봉작,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이번 주 개봉, 공개 예정인 작품들을 소개해드릴 예정인데요.
청불 코미디 킬링 액션 영화 <렌필드>부터, 작년 부국제 화제작 <라이스보이 슬립스>까지,
다채로운 이번주 개봉작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렌필드
Renfield
ⓒ네이버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93분
감독: 크리스 맥케이
출연: 니콜라스 홀트, 니콜라스 케이지, 아콰피나
개봉: 2023.04.19.
배급: 유니버셜 픽쳐스
시놉시스
불멸의 삶과 폭발적인 힘의 대가는 악당용 배민이 되는 것?! ‘드라큘라’에게 취업사기를 당하고 24시간 밤낮없이 그에게 순결한 제물을 바치는 직속비서 ‘렌필드’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꼰대 상사에 점차 피폐해져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드라큘라’에게 바칠 제물을 찾던 중 자신의 인생을 뒤바꿔줄 친구 ‘레베카’를 만나게 되고 지금껏 가슴 한 켠에 숨 죽여 있었던 퇴사의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데.. 과연 퇴사 없는 종신계약에서 ‘렌필드’는 벗어날 수 있을까?
CINE PICK!
다양한 작품에서 열연을 펼친 니콜라스 홀트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드라큘라의 직속비서인 '렌필드'와 '드라큘라' 역을 맡아 독보적 캐릭터 변신을 예고했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 2005년 영화 <웨더 맨>에서 아빠와 아들 사이로 만난 적이 있는데, 이번 영화에서 전혀 다른 관계로 다시 만나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불어 매 작품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한 아콰피나까지 합류하여 극에 활력을 더한다. 쉴틈 없이 터지는 코미디 요소와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짜릿한 액션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라이스보이 슬립스
Riceboy Sleeps
ⓒ네이버영화
개요: 가족 | 캐나다 | 117분
감독: 안소니 심
출연: 최승윤, 이든 황, 도현 노엘 황 등
개봉: 2023.04.19.
배급: 판씨네마(주)
시놉시스
1990년 모든 게 낯선 캐나다에서 서로가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 '소영'과 아들 '동현'의 잊지 못할 시간을 담은, 문득 집이 그리워질 따스한 이야기
CINE PICK!
<라이스보이 슬립스> 토론토영화제의 '2022년 최고의 캐나다 영화'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캐나다 감독조합상, 미국의 샌디에이고 아시안 영화제 작품상과 관객상,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 등을 수상하며 전 세계 24관왕을 기록 중인 화제작입니다. 1994년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한 안소니 심 감독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영화입니다.
옥수역귀신
Ghost Station
개요: 공포 | 대한민국 | 80분
감독: 정용기
출연: 김보라, 김재현, 신소율 등
개봉: 2023.04.19.
배급: (주)스마일이엔티
시놉시스
특종이 필요한 기자 ‘나영’은 옥수역에서 근무하는 친구 ‘우원’을 통해 ‘옥수역’에서 계속해서 일어난 사망사건들을 듣게 된다. ‘나영’은 ‘우원’과 함께 취재를 시작하고 그녀에게 계속 괴이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무언가 있다. 옥수역에…
CINE PICK!
2011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호랑작가의 네이버 공포 웹툰 [옥수역 귀신]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옥수역귀신>은 원작을 뛰어넘는 섬뜩함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 지명이 등장하는 등 현실과 맞닿아 있어 더욱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귀를 기울이면
Whisper of the Heart
ⓒ네이버영화
개요: 로맨스 | 일본 | 115분
감독: 히라카와 유이치로
출연: 세이노 나나, 마츠자카 토리, 야마다 유키 등
개봉: 2023.04.19.
배급: (주)팝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동화 작가를 꿈꾸는 ‘시즈쿠’ 세계적인 첼리스트를 꿈꾸는 ‘세이지’ 중학교 시절, 두 사람은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각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10년 후 ‘시즈쿠’는 일본에서 출판 에디터로, ‘세이지’는 이탈리아에서 전도유망한 첼리스트로 서로의 길을 응원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그러나 현실에 지친 ‘시즈쿠’는 일과 꿈 사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정답을 찾기 위해 ‘세이지’가 있는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는데…
CINE PICK!
지브리 최초의 로맨스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영화 <귀를 기울이면>은 두 주인공 '시즈쿠'와 '세이지'의 설레는 첫사랑 스토리에 이어 둘의 10년 후를 그린 성장 스토리까지 담겨 있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OTT 신작 등 총 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Hiz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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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누가 욕망만을 이토록 섬세하고도 담대하게 담아낼 수 있는가
우린 흔히 사랑을 양 당사자가 모두 같은 마음으로 이뤄지는 경우를 생각하기에 단 방향성 감정을 사랑이라 칭하지 않는다. 짝사랑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극단적으로 생각한다면 상대방을 쟁취하고자 하는 마음, 다시 말해 욕망이라 칭할 수도 있겠다. 대개 욕망이라는 단어를 불쾌하거나 불건전한 경우에 많이 사용하지만, 사랑만큼이나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감정이다. 수많은 영화가 감정에 대해 다루고, 그 감정들에 욕망도 포함된다. 그러나 그 어떤 영화도 사람에 대한 욕망을 다른 감정들과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저 악한 인물이 가진 가치관 내지는 악한 정서 정도로 치부한다. 행복, 슬픔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그 인간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수많은 영화가 다룬 만큼 욕망도 영화적으로 다루어질 차례가 되었다. 어쩌면 영화 <미세리코르디아>가 이를 해낸 것은 아닐까.
영화 <미세리코르디아>는 욕망에 대해 섬세하고도 담대하게 다룬다. 어떤 장면에서는 그 욕망으로 인해 웃기기도, 끔찍하기도 또 의문스럽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게 욕망이라는 하나의 감정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 인상적인 것은 감독이 이토록 치밀하게 설계한 욕망을 관객에게 교훈이랍시고 가르치려 들지 않고 그저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어쩌면 그게 본인이 생각한 욕망의 의의를 본인답게 답하려는 듯 자기만의 독보적인 길을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대단하게 선보인다.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대도시에서 잠시 고향으로 온 제레미가 일련의 일들을 겪다 그만 고향 친구였던 뱅상을 몸다툼 끝에 죽이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재밌는 건 영화는 이 엄청난 일을 담담하게 연출했다는 점이다. '살인답게' 섬뜩한 음악을 깐다든지 피가 낭자한 상황을 연출한다든지 하는 것이 보통의 접근이다. 그러나 영화는 성인 간의 치열한 액션이 아닌 하찮은 소위 개싸움을 보여주며 끝내 벌어진 우발적 살인을 제시한다. 이후 해당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으려는 경찰들의 움직임과 뱅상의 어머니이자 제레미가 묵는 집의 주인인 마르틴의 움직임 등이 이어짐에도 이 또한 담담히 연출된다. 영화는 오히려 남겨진 이들의 욕망을 건드려가며 그 욕망이 어떤 식으로 표출되는지 관찰한다. 하나의 사건, 제레미가 뱅상을 죽인 그 사건으로 인해 평범해 보이던 영화의 이야기가 범죄 스릴러 그리고 감정의 고찰까지 장르의 범위를 넓혀간다. 이와 같은 영화의 서사 구조는 인물 구조와도 닮아있다.
모든 이야기는 작중 주인공 제레미를 중심으로 치러진다. 인트로 또한 제레미가 짝사랑했던 남성이자 마을에서 명망 있던 제빵사의 장례식을 제레미가 방문으로 꾸며진다. 제레미는 동성애자로 추정되는데 제빵사였던 장피에르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친구였던 왈테르에게까지 감정을 표출하는 인물이다. 다시 말해 제레미는 영화 <미세리코르디아>에서 욕망의 주체가 되는 인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제레미는 욕망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욕망의 객체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마을의 목사인 필리프는 눈치껏 뱅상을 죽인 범인이 제레미인 것을 알면서도 제레미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범행 사실을 묵인, 급기야 시체 유기까지 돕는다. 또한 마르틴도 제레미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는 인물이다.
나아가 배경도 구조의 궤를 같이한다. 영화의 주 배경을 구역별로 나눈다면 마르틴과 성당이 있는 한 구역과 숲 그리고 왈테르가 사는 구역, 총 3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제레미는 왈테르에 대한 욕망을 실현하려는 듯 마르틴의 집에서 숲을 갔다가 왈테르의 집으로 향한다. 돌아올 때면 다시 숲을 지나쳐 마르틴의 집으로 향한다. 뱅상을 죽인 일마저 앞선 경로와 같으며 뱅상을 묻은 곳 역시 숲에서 영화의 극 후반 성당 근처 무덤으로 옮겨진다. 숲이라는 하나의 이동 공간이자 사건의 주 발생지이기도 한 배경을 중심으로 인물의 이동을 보여주고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게 한다.
영화는 이처럼 하나의 인물, 하나의 중심 사건, 하나의 주 배경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복잡하고도 체계적인 관계성을 풀어나가는데, 주목할 점은 이 모두 순환된다는 점이다. 욕망의 주체와 대상 또한 모두 단 방향성으로 뻗어있지 않다. 제레미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은 목사가 있다면 그때의 제레미는 그 대상에서 벗어나려 왈테르를 대상으로 삼는다. 이후 사건에서는 그 관계가 반전이 되기도 하는 등의 사건들이 벌어지며 순환의 구조를 취한다. 더불어 서사 또한 제빵사 장피에르를 관에 묻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면 그 끝은 그의 아들이었던 뱅상이 땅에 묻히는 것으로 일종의 수미상관 식 구조를 갖는다.
작품의 대표적인 식재료로 버섯이 등장한다. 영화 속 세계관에서도 그렇듯 실제 버섯은 유기물의 사체 혹은 썩은 무언가 위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고향에 돌아와 숲속 버섯을 캐는 게 취미던 제레미는 뱅상을 묻은 자리 위로 피어난 버섯들을 황급히 따낸다. 영화 속 버섯은 영화가 가진 순환이라는 개념에 대한 표상이 아니었을까. 인물, 사건, 배경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순환이라면 그 인간이 만들어진 순환은 결국 죽음과 욕망으로 인해 탄생한 순환이 아닐까. 이와 대비되는 자연 순환의 표상인 버섯은 죽음으로 인해 탄생했지만, 욕망의 표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주 배경인 마을과 집 내부만큼이나 누군가의 차 내부 및 차창 밖 정경이 영화 속에 빈번히 등장한다. 영화는 오픈 크레딧과 함께 차창 밖 정경을 비추며 시작하는데 보통의 영화들보다 훨씬 길게 보여준다. 이후 해당 장면 속 시점이 제3자의 관점이 아닌 주인공 제레미의 관점이었음을 일러준다. 영화는 이후 차 내부 씬들에서도 그렇듯 차창 밖 정경을 보여주고 난 후 그 시점이 누구의 시점인지를 드러낸다. 그 예시로 제레미와 뱅상이 숲속으로 차를 타며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제레미를 혼쭐 내주려 한 뱅상의 관점은 요동을 치지 살인을 저지른 후 은폐를 위해 운전한 제레미의 관점은 되려 안정적인 것이 흥미롭다.
더불어 영화는 차 속 인물들의 각각의 감정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 함께한 인원들의 공통적인 감정까지도 담아낸다. 이때의 주 감정이 욕망이라는 것 그리고 그 욕망의 방향성이 무조건 같지만은 않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제레미와 목사가 차량에 함께 탄 씬에서 카메라는 뒤에서 제레미의 어깨와 목사의 어깨 모두를 담아낸다. 제레미와 목사 모두 욕망을 가진 인물이지만 해당 장면 속 제레미는 시체 처리를 욕망하는 반면 목사는 제레미를 욕망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함을 드러낸다.
목사의 동성애, 유년기 고향 동성 친구에 대한 일방적 유혹, 죽은 아들의 살인마일지 모르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감정. 모두 영화 <미세리코르디아>의 욕망의 표출이다. 보통의 시각 속 욕망은 옳지 못한 감정으로 그 엔딩은 욕망의 표출로 인한 인간의 말로(末路)로 삼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미세리코르디아>는 궤를 달리한다. 분명 저 멀리 삽으로 무언가 푸는 소리가 들림에도 마르틴은 제레미를 데리고 집에 들어가고, 제레미는 같이 잘 수 있는지 그녀에게 묻는다. 뱅상이 제레미를 쫓고 헤치려 한 이유도 제레미가 마르틴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생각에서 기인했다. 마르틴에 대한 감정이 전혀 없는 듯 뱅상의 의혹을 제레미는 모두 부정하지만, 종반부에서 제레미가 먼저 마르틴에게 동침을 제안했고, 선뜻 스킨십했다. 영화는 마르틴과 제레미가 한 침대에서 손을 잡은 채 잠을 청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제레미의 알 수 없는 표정과 욕망의 방향으로 인해 보통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그들의 욕망은 불건전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런 욕망마저도 사랑이었다. 마찬가지 사랑 때문에 목사는 자신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살인을 눈감으며 시체 유기에는 버선발을 내던졌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제레미라는 인물이 정말 동성애자인지 아니면 양성애자인지 확실치 않다는 점이다. 사실 영화 속 그 누구도 말이나 행동으로 감정을 직접 표출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린 영화 속 그들의 행동이 정말 사랑의 표현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랑과 욕망의 구분 점을 둔 것이 아닐까.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당신을 원하고 있다는 단 하나의 원초적이면서도 모호한 그 감정을 욕망이라 정의한다. 쉽사리 이해하기 쉽지 않던 영화의 엔딩마저 욕망의 불확실성에 따른 마무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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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빛이 비치는 자리
감독] 신수원
출연] 이정은, 권해효, 탕준상, 김호정
시놉시스] 지완은 갱년기에 접어든 여자 감독이다. 어렵게 만든 세 번째 영화마저 실패한 후 실의에 잠겨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상자료원으로부터 60년대 여자 감독이 만든 영화의 복원 작업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 작업을 통해 지완은 60년대에 활동했던 영화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을 통해 그녀에게 영화란 그리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돌이켜보게 된다.* * *
보이지 않던 것들
어렸을 때 나는 <빨간 머리 앤> 못지않게 거창한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어른들이 놀라며 “그런 말도 알아?” 할 때마다 민망해지는 느낌이 싫었다. 나중에 어른 되면 난 절대 애들이 어떤 단어를 써도 놀라거나 주목하지 말아야지. 그 다짐은 잊지 않았지만, 그런 말을 안 하는 어른이 되지는 못했다. 대신 당시 어렴풋하게만 느꼈던, 아직 몇 년 안 산 작은 사람의 어휘력을 칭찬하려는 어른들의 마음만 더 잘 알게 되었다.이십대 시절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상대가 “나도 너 나이 땐 그랬어.”라는 말로 응수하면 그렇게 듣기가 싫었다. 상대와 나는 나이 차가 10살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더욱 그랬다. 뭔 팔십 먹은 사람처럼 말하고 있어, 자기도 아직 젊으면서. 나는 나중에 그러지 말아야지 또 다짐했다. 그 다짐 또한 잊지 않았지만, ‘나도 그랬지…’하는 씁쓸하고 그리운 감정이 가끔 불쑥 올라온다. (그래도 말은 억지로 삼킨다.) 내 사기를 깎으려는 게 아니라, 나는 안중에도 없이 그냥 자기들의 호시절을 그리워했던 거구나. 지난날의 그들을 이해하고 있다.
그 시절의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면서, 나중에 어떤 중년과 노년을 살아가게 될지 궁금해졌다.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궁금했던 어린 시절처럼 두근거린다. 벌써 느끼기 시작한 ‘나도 그랬지…’의 씁쓸하고 그리운 감정만으로 채우고 싶지 않은 그 긴긴 날들에 무엇을 채워 넣게 될까? 참고할 만한 이야기를 찾아 주변을 돌아보니, 중년과 노년 여성의 서사가 놀랍도록 적고 납작했다. 그러나 점차 같은 문제의식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할머니’를 다룬 소설도 늘어나고, 다양한 중년 여성과 노년 여성들의 이야기가 점점 우리에게 많이 와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제 중년을 넘어가는 여성 ‘지완’(이정은 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오마주>를 보면서 힘을 많이 얻었다. 얼핏 보면 신수원 감독 본인의 이야기가 많이 녹아 있는, ‘1명’의 이야기 같지만, 뚜껑을 열어 보면 그 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외로워도 아파도 설령 지워진다 해도
지완은 소위 ‘독립영화’ 혹은 ‘예술영화’로 분류되는, 그러니까 천만 영화가 될 확률이 높지 않은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만들었다. 사실 ‘지워지지’ 않고 감독으로서 꾸준히 영화 세 편을 내놓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프로듀서와 단 둘이 어두운 극장에 앉아서, 이 상영관에서도 곧 내리겠지 생각하는 일은 즐겁지 않다.
그나마 함께 있던 프로듀서 동료조차 영화를 그만둘 것이라 하고, 지완이 영화를 따르는 삶에 불만이 많았던 남편과 아들 또한 지완이 영화보다는 돈 되는 일이나 가사노동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다. 이럴 때일수록 힘 있게 작업에 매진하면서 자기 확신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잘 쓰던 ‘되’와 ‘돼’가 헷갈릴 만큼 시나리오 작업도 쭉쭉 나가주질 않는다.
착잡한 지완에게 영상자료원 측에서 영화 복원 의뢰가 들어온다. 홍재원 감독의 <여판사> 복원을 위해 백방으로 뛰면서, 지완은 당시 여성 영화인들을 돌아보게 된다. 두 번째 여성 감독이자 이 영화 속 ‘홍재원’ 감독의 모티프가 된 홍은원 감독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감독이자 아이를 업고 현장을 지휘했다는 일화로 유명한 박남옥 감독, 영화 <오마주>에도 변주되어 등장하는 여성 편집 기사 김영희까지.
어느새 이 일은 단순한 영상 복원 그 이상의 의미를 띠게 된다. 지금보다 훨씬 견고했던 당대의 유리 천장에 균열을 내며 길을 텄던 여성 선배들의 단단한 등을 바라보는 일은, 지완뿐 아니라 그 뒤에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여성들, 남들이 모두 안된다고 하는 꿈에 가슴 시려 본 모든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선글라스와 코트로 멋지게 선 모습도, 외로움과 막막함을 토로하는 모습도 모두 그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성공을 거두고 당당하게 씩 웃는 젊은 날의 모습만이 아니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도, 외롭고 아프고 잊혀도, 그들의 모습이다. 꿈꾸다 사라진 사람들, 사라져도 꿈꾸는 사람들, 어쩐지 눈물 날 듯 아름답다.
그림자를 더듬는 작업
필름은 기본적으로 빛과 그림자의 작업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림자이기만 한 것 같다고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이 영화 속 지완이 자주 그랬듯이. 영화 속 홍재원 감독이 쓰던 편지 내용 같이. 가끔 쓸쓸하고 겁도 덜컥 날 때가 있다. 생각해 보면 꼭 필름만, 영화만 그런 일은 아닌 것 같다. 관성적으로 하다가도 문득, 이게 맞나 돌아보게 되고. 나이 듦이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화를 만들고 복원하는 일이 늘 외롭고 쓸쓸하기만 한, 혹은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일들처럼 이 또한 당사자에게는 관성적으로 일하는 날이 훨씬 더 많겠지. 하지만 긴긴 ‘일의 시간’ 위에 이따금 외로움과 회의감이 찾아오는 날을 아주 피할 수 없다면, 그 일의 아름다운 면을 기억하는 것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더 오래 달리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듯이.
그러니 이따금 외로워 보이는 그림자의 자리야말로 곧 빛이 있는 자리임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빛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한다. 영화 속에 종종 구둣발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여성의 그림자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런 생각들이 뭉쳐, 지완의 티셔츠 프린팅이나 아들이 써낸 엽서처럼 일상적인 곳에 은은하게 묻어날 것이다.
홍은원 감독과 1세대 여성 영화인들에 대한 ‘오마주(hommage, 감사와 존경)’가 묻어 있는 이 작품에, 신수원 감독과 다른 여성 영화인 더 나아가 꿈꾸고 일하는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오마주’를 담는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을까?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아름다운 각자의 길에서 서로의 등을 보며 나아갈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바로 이 자리가 빛이 비치는 자리라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2022. 08. 25 ~ 2022. 09. 01<오마주> 상영 시간표2022. 08. 27. 10:30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5관2022. 08. 29. 20:00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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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보면 희극
소위 '사적 다큐' 작품들을 좋아한다. 나와 공통점도 별로 없는 개인의 삶이 정성스럽게 담겨 있는데, 들여다보면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나 보편적인 마음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지점에서. 게임을 즐기지 않았어도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보며 동년배의 마음을 뭉클 느꼈고, 영재교육이나 부동산 투자와 먼 삶을 살았지만 <디어 마이 지니어스>나 <버블 패밀리>를 보며 동시대 사람들의 사랑과 노력, 착잡함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박강아름 감독의 전작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도 재미있게 보았다. 오랜 세월의 영상을 잘라 모아, 박강아름 감독 자신을 둘러싼 외모 품평부터 소개팅 후기, 복잡한 시선을 담았다. 애정 어린 친구의 조언일 때도 있고, 학생들이 툭툭 뱉는 말일 때도 있지만, 이들 누구의 말도 낯설지 않다. 내게도 익숙한 지식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에는 다양한 방향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사실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강요받는 때가 훨씬 많으니까. 그나마 협소한 변주라도 이루어지며 조금씩 미의 기준이 확장되어 온 지금에 비해, 이전은 더했다. 우리는 참 야만적인 사회에 살아왔고, 살고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의 박강아름 감독을 담으며 마친다. 상대의 무례함을 갈라내어, 그들의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자주 몸무게를 재며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슬퍼했지만 거기에 카메라 무게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마지막에야 깨닫는다. 우리가 보는 우리에게도 그런 시선의 무게가 항상 달려 있겠지. 그리고 분명 카메라보다 무거울 것이다.
그리고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끝에 함께 있던 두 사람은 강아지 슈슈와 함께 프랑스로 향한다. 프랑스어를 아는 아름이 행정과 경제를 맡고, 프랑스에 큰 뜻이 없었던 남편 성만이 가사와 이후 육아까지 주로 맡게 된다.
한국에서 한 사람의 여성과 남성이 만나 결혼하는 풍경을 하나의 그림으로만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떤 보편적인 스토리라인이 존재한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흔히 말하는 보편적 삶의 모양새란 게 있기도 하고, 어쩐지 결혼이 가까워 오면 제각각의 연애담들이 소실점 따라가듯 비슷한 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박강아름 감독과 성만 씨의 결혼은 그 보편적 모양새와 조금 다르다. 프랑스로 떠난 영화감독과 그 배우자라는 점도 그렇지만, 맞벌이를 하면 했지 남편이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경우는 확실히 드무니까. 그럼에도 이 영화에 그려진 정서는 보편적이다. 끝없는 가사는 전쟁 같고, 육아는 눈 뗄 틈조차 허락하지 않고, 생활비는 늘 빠듯하고, 일상은 숨 가쁘게 바쁘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에서 인물들의 말을 평가하고 또 나를 돌아보며, 박강아름 감독의 몸으로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깊이 비춰냈다면, <박강아름 결혼하다>에서는 결혼과 결혼에서 파생되는 노동과 두 사람의 관계를 촘촘하게 이어, 질문을 던진다.
두 사람의 일상에도 먹구름이 낀다. 독박 육아와 끝없는 가사에 지친 성만은 주부 우울증을 앓고, 출산 이후 이전과 달라진 몸으로 (그리고 임신과 출산이 몸에 이런 변화를 가져다준다는 걸 전혀 몰랐던 마음으로) 학교 생활과 영화 작업을 병행하는 아름은 너무 바쁘다.
결혼은 원래 이런 걸까? 왜 결혼을 한 걸까? 결혼이란 무엇인가? 박강아름 감독은 질문하기 시작하고, 그 질문을 해소하고자 자신의 기억도 돌아보고 사람들에게 질문도 던져 본다. 그 수단은 집에 차리는 한 테이블 식당, 외길식당이다. 성만의 주부 우울증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생활로 시작했다가 멈춘 프로젝트를 다시 굴려본 것이다.
수없는 질문과 대화가 해답을 찾아줄 수 있을까? 그럴 리 없다. 다양한 부부 혹은 연인에게 그들만의 서사가 있고, 상황이 있고, 입장이 있으니까. 부분적으로 공명할 수는 있다. 프랑스인과 결혼해 프랑스에 거주한 한국인 여성이 성만의 깊은 외로움을 안쓰러워하는 장면에서처럼. 박강아름 감독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공명하며 질문을 던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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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직전, 설문 요청을 하나 받았다. 한 문항은 현재 나의 상태와 가장 가까운 것을 고르라고 했고, 보기에는 결혼과 자녀 유무에 대한 다양한 선택지가 들어 있었다. 500자로 서술하라고 해도 답하기 어려운 고민들이지만, 아무튼 질문은 '현재 나의 상태'에 '가장 가까운' 것을 물었으므로 나는 답했다. 결혼과 자녀 둘 다 원치 않는다,라고. 인생은 시시로 몸피를 뒤트니 앞으로 언제 내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보기 중 제일 가까운 선택지였다.
얼핏 단순한 객관식 선택지 같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질문과 고민이 깊다. 결혼이 더 이상 의무가 아닌 지금 결혼 적령기로 분류되는 나이를 살면서 더욱 그렇다. 이십대 내내 생각했다. 결혼이라는 관계는 희망적으로 바라보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하기 위한 목적의 결혼은 할 마음이 없다고. 지금 품고 있는, 아직은 잗다랗게 반짝거리는 꿈의 궤도를 모두 수정해야 하는 결정이니만큼, 잘할 수 없을 바엔 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이 '잘'은 나의 인력으로 되지 않으니, 현재 나의 상태에 가장 가까운 대답은 '원치 않는다'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를 보면서는 저런 결혼이라면 참 좋다, 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이 덩케르크의 바다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두 사람은 흐린 날 바다를 찾는다. 성만은 몸이 좋지 않아 불편하고, 아름은 성만이 투덜댄다는 느낌이 들어 불편하다. 가볍게 던지는 타박과 잠깐의 침묵. 익숙한 갈등의 언어들. 그러나 그 갈등 끝 두 사람이 하는 것은, 유모차가 슥슥 나가지 않는 모래사장에서 유모차를 들고 낑낑거리며 바다를 보는 것이었다.
손발을 맞추고 수평을 맞춰 원활하게 척척 들고 가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비바람이 맹렬히 몰아쳐대 바다는 오래 보지도 못했다. 우산도 들어야 하고 사진도 찍고 싶어 두 사람은 또 생각이 일치하지 않고, 소리 없이 멀리 보이는 조그만 모습으로도 두 사람이 티격태격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 끝에 굳은 얼굴로 나란히 기차에 앉아있는 두 사람에게, 아기 보리는 스노볼을 내민다. 엄마가 흔들어준 스노볼을 보며 생긋 웃다가 아빠에게 그것을 내민다.
언젠가 스리랑카 바다에서, 나중에 누구 보여줘야겠다 생각하며 사부작사부작 사진과 영상을 몇 개 찍고 돌아섰던 적이 있다. 흐린 날 바다 아니라 맑은 날 청록빛 바다라도 혼자 보고 돌아서는 길은 조금 쓸쓸했다.
비록 당일에는 굳어진 입매와 편치 않은 침묵으로 기억되더라도, 언젠가 훗날 돌아보면 유모차를 들고 낑낑거리다 비바람에 휩쓸린 기억에 웃음 짓게 된다면. 결국 함께 있다는 것, 함께 산다는 것이 결혼 아닐까. 어쩌면 순적하고 매끄러운 삶은 유니콘처럼 환상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늘 우당탕쿵탕 굴러가는 게 삶이려니 받아들인다면, 초연하고 호젓하지는 못해도 스노볼처럼 작게 반짝이는 일상을 즐길 수는 있을 것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 꼭 비극과 대치하지 않더라도 맞는 말 같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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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킹헤즈의 이해불가함과 대체불가함을 담아낸 필름
<스탑 메이킹 센스(Stop Making Sense)>(1984, 조나단 드미)
토킹헤즈의 ‘콘서트를 담아낸다’는 것, 놀랍게도 <스탑 메이킹 센스>는 그것을 해낸다. “Hi, I got a tape I want to play.”와 “Does anyone have any questions?” 사이, (녹음된) 데이빗 번의 날카로운 음성이 전하는 것은 맴버 소개를 제외하면 가사 뿐이다. 스토리텔링 위주인 토킹헤즈의 가사는 딱히 싱잉으로 정의되지 않는 번의 보컬링을 통해 전달되어야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하여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의 가사와 음악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것, 아니 어쩌면 해석을 시도하는 것 자체부터가 별 의미없는 행위다. 말이 되기making sense를 기꺼이 멈추는 이 밴드의 무대는 머리로 이해하기를 그만둘 때 비로소 심장과 살갗에 닿는다.
기타로 ‘Psycho Killer’의 리프를 연주하기 시작하는 데이빗 번, 카메라는 쉴새 없이 움직일 예정인 그의 발을 감싼 스니커즈에서 출발한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댄스 무브에 집중하는 맴버들을 마구 흔들리며 스쳐가기도 하고, 한 벌스 내내 데이빗 번의 상반신에 고정돼 있기도 한다. 번이 스테이지를 문자그대로 조깅할 때는 마치 그에겐 관심이 없는 듯 다른 맴버들에게 머물러 있고, 제 키만한 스탠드 조명을 파트너삼아 밀고 당기며 춤을 출 땐 바로 곁에서 동선을 좇는다. 그 장면들은 전부 긍정적인 의미로 미쳤고 이상하다. 라인 바이 라인이 즉석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데이빗 번의 구상에 맞춰 순서대로 짜인 제스처들이다. 투어 중 목격한 일본 전통 공연들에 영감을 받았다는 기묘한 안무들은 완벽히 토킹헤즈의 음악과 결합된다. 구성된 무대의 모든 액션이 즉흥으로 와닿는 까닭은, 그날 그 순간 발생한 맴버들의 흥과 힘, 그 사이 교감은 스테이지드 될 수 없는 것이어서다. 선명한 디지털 레코딩과 조화를 이루는 <스탑 메이킹 센스>의 촬영은 공기중의 에너지 흐름을 포착한다.
고화질로 리마스터링된 <스탑 메이킹 센스>는 그 시절 토킹헤즈의 콘서트를 동시대에 밀접하게 관람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영화관에서 본다면, 꼭 시공간을 뛰어넘어 1983년 판타지스 극장에 도착한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현장 객석에선 쉬이 보기 어려운 것들까지 가까이 관찰할 수 있다. 이를테면 칠이 벗겨진 썬번 기타, 그것을 연주하는 번의 현란한 손놀림, 쉼 없이 리듬을 타는 티나 웨이머스의 어깨와 무릎, 미소가 떠나지 않는 크리스 프란츠의 얼굴 같은 것들. 객석에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부분을 담는 시선이 오히려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각 클로즈업은 숏이 나뉘어 있더라도 끊기지 않고 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4+5인의 맴버 각자의 대체불가함, 그리고 그들이 하나의 밴드로 움직이는 방식이 인식-되기보단 감각된다. 알려져 있듯 이 필름엔 아티스트 인터뷰가 없고 반응은 환호성 몇 차례 정도만 삽입된다. 다만 마무리 즈음 객석을 조명한 숏이 몇 이어지는데, 관객들조차 어쩐지 토킹헤즈화 돼 있다. 엔딩크레딧이 흐를 무렵엔 방금 그들 가운데에서 사흘에 걸쳐 이 예측불가한 퍼포먼스를 관람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40년이 지났음에도 이 필름과 콘서트는 전혀 낡지 않았다. 물론 이는 데이빗 번이 단지 과거의 전설이 아니라는, 신세대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꾸준히 신곡을 내는 현재진행형 창작자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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