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2-12 11:38:20
2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아카데미 작품상 유력 후보 <브루탈리스트>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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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에는 마블 스튜디오가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옵니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새로운 캡틴과 함께 관객들에게 찾아왔습니다.
이번 작품으로 삐그덕거리던 마블의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곧 개최될 아카데미 시상식의 강력한 후보로 점쳐지는 <브루탈리스트>도 개봉을 앞뒀습니다.
215분이라는 러닝타임과 상영시간 내 인터미션이 존재한다는 정보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골든 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등 각종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고 있는
애드리언 브로디가 과연 이번 오스카에서도 남우주연상을 거머쥘 수 있을까요?
브루탈리스트
The Brut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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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드라마 | 미국 | 215분
감독: 브래디 코베
주연: 애드리언 브로디, 펠리시티 존스, 가이 피어스
개봉: 2025.02.12.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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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전쟁의 상흔을 뒤로하고 미국에 정착한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미국 이민자의 냉혹한 현실 속에 전쟁의 트라우마를 견뎌내던 어느 날. ‘라즐로’의 천재성을 알아본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이 기념비적인 건축물 설계를 제안한다.
하지만, 시대와 공간, 빛의 경계를 넘어 대담하고 혁신적인 그의 건축 설계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후원자 해리슨의 감시와 압박, 주변의 비난이 거세질수록 오히려 더 자신의 설계에 집착하던 ‘라즐로’.
혁신적인 브루탈리즘 건축에 자신을 투영하던 ‘라즐로’는 결국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는데...
발 디딜 곳 없는, 소속이 불분명한 삶의 연대기 트라우마가 예술로 승화된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Captain America: Brave New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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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액션 | 미국
감독: 줄리어스 오나
주연: 안소니 마키, 해리슨 포드, 대니 라미레즈, 쉬라 하스
개봉: 2025.02.12.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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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대통령이 된 새디우스 로스와 재회 후, 국제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샘이 전 세계를 붉게 장악하려는
사악한 음모 뒤에 숨겨진 존재와 이유를 파헤쳐 나가는 액션 블록버스터.
두 사람
Life Unrehear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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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다큐멘터리 | 대한민국 | 80분
감독: 반박지은
주연: 이수현, 김인선
개봉: 2025.02.12.
배급: 반박지은필름, (주)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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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가장 낯선 곳에서, 가장 깊은 사랑으로”
파독 간호사로 낯선 나라 독일에 이주한 뒤 지역 사회와 소수자를 위해 목소리 내는 일에 앞장선 ‘수현’.
간호 학교를 졸업하고 신학 연구에 뛰어들며 이주민의 마지막 길을 동행하는 호스피스 리더 ‘인선’.
40여 년 전, 재독여신도회에서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 이민 1세대, 이주 노동자,
그리고 레즈비언으로서 서로에게 쉴 곳이 되어주고, 곁에서 여생을 함께하기로 한다.
첫 황혼에서 두 손을 마주 잡은 <두 사람>의 무지갯빛 블루스가 시작됩니다!
아카디안
Arca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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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SF | 미국 | 92분
감독: 벤자민 브루어
주연: 니콜라스 케이지, 맥스웰 젠킨스, 제이든 마텔
개봉: 2025.02.13.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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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밤이 오면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온다! 쌍둥이 아들 ‘토마스’와 ‘조셉’과 함께 문명이 파괴된 세상을 살아가는 ‘폴’.
밤마다 습격하는 정체불명의 괴물들 때문에 이들은 매일 긴장감 속에 전투를 준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일로 한밤중에 집을 나선 ‘폴’은 마주쳐서는 안 될 괴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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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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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착적 소유욕, '사랑'이 되다
7★/10★
폴 토마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에서, 알마는 사랑하는 레이놀즈를 자기 곁에 붙들어두기 위해 음식에 독을 넣는다. 치사량은 아니지만 레이놀즈의 몸이 허약해져 알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는 많다. 알마를 그저 자기를 구성하는 여러 세계 중 하나로만 대우했던 레이놀즈는 기꺼이 알마의 요리를 먹는다. 그러고는 “사랑해”라고 말한다. 더는 알마가 아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애정을 나눠주지 않겠다는 듯이. 이렇게 알마는 레이놀즈를 완벽하게 소유하고, 둘의 사랑은 ‘완성’된다.
〈엘리자벳과 나〉는 사랑의 권태를 피학과 가학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알마와 레이놀즈의 길을 잇는다.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이자 헝가리 왕국의 왕비인 엘리자벳과 그의 시녀 이르마다. 엘리자벳은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왕족으로 손꼽힐 정도로 타고난 외모를 엄격하게 관리한 여인이다. 173의 큰 키임에도 평생 50kg 이하로 몸무게를 유지했다고 한다. 지독할 정도로 엄격한 관리가 동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는 대중이 생각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외모로 살기 위해 부단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황후를 맞이하러 나온 대중 앞에서 기절할 만큼 코르사주를 꽉 조일 정도로 말이다. 여성의 섭식장애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획득할 수 없는 공적 권력‧역능을 향한 욕망의 방향을 바꿔 자기 몸에 행사하는 일일 때가 많다. 엘리자벳이 주인공인 또 다른 영화 〈코르사주〉에서 드러나듯, 그녀의 공적‧사적 욕망이 ‘황후’라는 이름으로 제한될수록 엘리자벳은 더욱 엄격한 자기 통제로 이를 보상하려 했을 것이다.
이르마는 백작 가문 출신의 42세 미혼 여성으로 결혼하지 않으면 수녀원에 가야만 한다. 결혼과 수녀원은 모두 이르마에게 답답함을 상징하기에 그녀는 황후의 시녀가 되고자 한다. 엄격한 식이요법과 활동적인 운동을 즐긴 엘리자벳의 시녀가 되기 위해 달리기 테스트까지 마친 후 엘리자벳의 시녀가 된 이르마. 그녀는 금세 엘리자벳과 가까워지며 총애를 받는다. 그리스의 한 휴양지, 즉 엘리자벳의 의지와 명령만이 중요한 장소에서 남성 사회에서 가져온 습관(식이요법)을 유지하면서도 자신들만의 가능성(여성들의 우정과 사랑)을 벼려내기도 한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발랄하면서도 격정적인 친밀성은 마찬가지로 비극적 황후의 삶을 조명한 〈코르사주〉와의 결정적 질감 차이를 만든다. 〈코르사주〉가 질식 직전의 삶에서 황후가 갈망한 자유를 그녀 삶 전반에 걸쳐 풀어냈다면 〈엘리자벳과 나〉는 황후의 삶과 그런 황후를 사랑하는 이르마를 통해 남성 사회가 여성의 욕망을 취급하는 방식을 고발한다. 〈코르사주〉가 전반적으로 질식할 듯한 답답함으로 점철된 엘리자벳의 삶을 담담히 애도‧추모한다면, 〈엘리자벳과 나〉는 폭발할 듯 분출되는 황후의 욕망과 자유의지가 끝끝내 좌절하고야 마는 현실과 그에 괴로워하며 변덕을 부리는 엘리자벳을 사랑하는 이르마의 관계성에 천착하여 영화를 황후에 대한 헌사를 넘은 여성 친밀성과 사랑에 대한 통찰로 이끈다.
엘리자벳과 이르마의 사랑은 다정하거나 살갑지 않다. 상호적이지 않다. 황후의 변덕에 이르마는 늘 안달한다. 엘리자벳 시동생의 말마따나 이르마는 또 하나의 “쓰고 버릴 여자”일지도 모른다. 즉 이르마에겐 황후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인물이지만, 엘리자벳에겐 이르마가 억눌린 욕망과 자유의지를 분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시적 대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헌신적일수록 멀어지기만 하는 엘리자벳을 보며 이르마는 황후를 완전히 소유할 방법을 찾는다.
역사 속 실제 인물 엘리자벳은 1898년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그러나 〈코르사주〉는 상상력을 발휘해 황후에게 대안적 역사, 품위 있는 죽음을 선물했다. 〈엘리자벳과 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번에는 그 목적이 다르다. 〈코르사주〉의 상상력이 황후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엘리자벳과 나〉의 상상력은 잡히지 않는 황후를 자기 곁에 붙들어두기 위한 이르마의 결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팬텀 스레드〉의 레이놀즈가 독약을 탄 알마의 음식을 기꺼이 먹으며 사랑에 투신하듯, 죽기 직전의 엘리자벳도 이르마의 집착적 소유욕을 사랑의 표현으로 용인해준다. 이제 황후는 죽었고, 더는 자신을 떠날 수 없게 된 황후 앞에서 이르마는 평온을 얻는다. 더는 위기에 빠지지 않을 영원한 사랑을 획득한 자의 표정이다. 소유욕이 사랑일 수는 없다. 동시대의 감각으로는 오히려 범죄에 가깝다. 그럼에도 〈코르사주〉를 경유해〈팬텀 스레드〉로 나아가는 〈엘리자벳과 나〉의 극단적 소유욕이 ‘사랑’일 수 있는 건, 사랑의 불확실성과 필멸성을 온몸으로 거부하겠다는 광기에 우리가 무언가 애잔한 공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르마가 언제나 두 사람의 관계성에 더 목말랐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납득이 되는 집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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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외톨이별처럼
아직 내가 서울시민이 아니었던 10년쯤 전, 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벌이는 설전을 보았다. 한 후보가 세계 최고의 무엇을 도내에 들이겠다고 했고, 상대 후보는 "왜 최고여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최초, 최고 속도, 이렇게 최(最)가 붙는 것들의 존재가 정말 우리에게 필수조건인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정치인들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화법은 아니었다.
그러게, 왜 최고여야 하지? 우리가 왜 꼭 첨단의 첨단을 달려야만 하지? 지켜보던 나도 같은 의문을 품었다. 그가 도지사 후보로 나갔다는 것조차 가물가물해진 지금도 그 말만큼은 마음 한쪽에 남아있다가 가끔 떠오른다. 아마 지금 내가 서울시민으로, 서울에 살면서 느끼는 것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도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는데, 내게 서울은 시간의 첨단을 달리는 도시로 보인다. 앉아있으면 온 도시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첨단의 첨단을 달려야만 한다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좇아야 한다고.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고.
어쩌면 내가 음악이든 영화든 앞에 "인디"가 붙는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 또한, 서울에서 받는 그 메시지에 대한 저항인지 모른다. 독립영화나 인디음악은 자본의 영향력이 적다는 뜻이니 뒤집어 말하면 창작자가 더 극명하게 묻어난다는 소리니까. 창작은 어떻게든 창작하는 이의 시간을 헤집으니까. 혹시 첨단의 첨단 기술을 동원한다 해도 그건 창작의 도구일 뿐 결코 전부가 되지 못한다. 창작자의 시간은 선형으로 흐르지 않아, 현재 아닌 시간의 것들이 어떻게든 묻어나게 돼있다.
도시의 욕망과 나의 욕망 사이에서 제각각의 길을 찾는 것이 창작은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영화나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며 했던 생각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같이 떠오르던, 나는 그런 식으로 글을 써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 그리고 이 영화, <다시 만난 날들>은 어쩐지 그런 상념들을 다시 끌어내 준다.
연주하고 곡도 쓰고, 아직 본인의 앨범을 내지는 못했지만 차곡차곡 음악을 쌓고 있는 주인공 태일(홍이삭)은 동료에게 대형 기획사 대표를 소개받는다. 대표는 "뻔한 사랑 노래" 같은 게 좋다고, 트렌디하고 쉬운 게 좋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면서, 태일의 곡을 들어보자고 한다.
실력이 인정받고 있지만 자기 음악을 하기엔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은 애매한 상태. 그 불안한 자리에 있던 태일은 문득 바닷가 마을로 향한다. 오래전 친구들과 밴드를 하던 기억이 스틸 사진처럼 남아있는 곳. 여전히 그곳에 살면서 음악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원(장하은)을 만나, 찬찬히 시간을 보낸다. 잘 풀리지 않던 곡의 후반부를 지원과 함께 쓰고, 중학생 밴드 아이들의 노래를 보아주고. 그렇게 마음의 코드까지 하나하나 짚는 모습을 살뜰히 보여준다.
그들이 만나는 곳- 내부는 따뜻한 노란 조명으로, 바깥은 푸른 보랏빛 조명으로 덮인 음악학원이라는 공간은 과거의 추억을 가득 담고 있다. 동시에 이제 막 음악에 첫 발을 떼는 중학생 밴드 '더 디스트로이어'가 새싹처럼 자라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필름 사진 속 지금 보면 촌스럽기도 하고 투박하지만 즐거웠던 시절의 그들과, 이제 막 밴드라는 작업의 재미와 신뢰를 알아가는 중학생 손에 들린 필름 카메라. 어쩌면 과거는 미래를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다 카포Da Capo,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흘러가는 시간이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성장과 어른들의 성장이 나란히 포개지며 영화는 흘러간다.
음악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글을 쓴다고 컴퓨터나 노트 앞에 혼자 앉아있는 것밖에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중간중간 부러운 대목도 있었다. 악기라는 도구가 있다는 것도, 합을 맞추며 함께한다는 것도, 코드를 짚으며 음악을 언어처럼 사용해 소통하는 것도. 그러나 그렇게 탄탄해 보이고 함께 있는 듯 보여도 결국 사람 속은 다 알 수 없는 거여서. 과거의 어느 날 태일은 갑작스럽게 그 시간과 공간을 떠났고, 그래서 그 시간을 그리워하는 한편 그래도 더 크고 '메이저'한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놓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태일과 닮은 듯 보이는 인물이 덕호다. 기태, 배돌, 북순이라는 다소 직관적인 작명으로 표현될 만큼 파트 색깔이 뚜렷한 아이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누나와 자신의 쓸모와 락에 대한 마음 같은 것에 이리저리 뒤흔들리는 중인 밴드 보컬. 덕호와 친구들을 보면서 태일은 아이들을 격려하고 또 음악을 다듬어준다. 그 '중2병' 감성을 비웃지도 않고, 과장되게 칭찬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창작이란 어떤 걸까. 영화 속 태일은 척추에서 나오듯이, 일기 쓰듯이 그냥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그 안에서 덕호는 성장하고, 태일도 자신을 돌아본다. 무언가 만들어내는 삶을 고민해본 이라면 누구든 그 안에서 쉬어갈 수 있는 쉼표 같은 대사들이 녹아 있다.
태일이 그리는 잔잔한 온기가 영화의 한 축이라면, 반대편에는 지원이 가진 단단함이 있다. 욕망하지 않는 소도시의 작은 음악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설정부터도 그렇지만, 태일에 비해 흔들리지 않고 편안하게 자리를 지켜온 사람의 느낌이 있다. 기죽지 않고 "야" 한 마디만으로 친구를 지켜줄 수 있는 북순도 어떻게 보면 지원과 닮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원 못지않게 북순이 좋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매력은 캐릭터에만 있지 않다. 싱어 송라이터 홍이삭의 노래와 기타, 지원 역을 맡은 기타리스트 장하은의 연주는 물론이고 중학생 아이들의 장면도 매력적이다. 밴드 아이들은 연주 실력이 훌륭하면서도 귀엽고, 각 캐릭터가 파트와 잘 어우러지면서 톡톡 튄다. 특히 지원과 기태의 '배틀' 장면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피아노 배틀 못지않게 흥미로운데, 기태 역을 맡은 양태환은 평창 올림픽 폐막식에서도 공연했다고 한다. 연기를 해온 사람보다는 음악을 해온 사람 위주의 캐스팅이다. 위험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빛을 발한다.
주연배우인 동시에 음악감독을 맡은 홍이삭이 만든 곡들도 어느 하나 지나치고 싶은 것이 없다. 뮤지컬 <러브 트릴로지> OST로 알고 있던 곡들이 나와 의아했는데, 엔딩 크레디트 보니 심찬양 감독과 홍이삭이 함께했던 뮤지컬 <러브 트릴로지>가 원안이라고 한다. 자이로부터 시작해서 이나우, 박찬영 등 중간중간 <슈퍼밴드>에 홍이삭과 함께 나왔던 반가운 얼굴들도 눈에 띈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김하진, 양지완이라는 이름도 봤는데... 어느 장면인지 놓친 것 같다.)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답게, 영화 구석구석을 좋은 음악으로 빼곡하게 채웠다는 느낌이다. 후반부 각본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아쉬움을 음악이 어느 정도 상쇄해준다.
큰 기대 없이 본 영화였는데, 계절에 잘 어울리는 뜻밖의 위로를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기타를 잡고 밴드를 한 사람이 많지는 않아도, 직선적인 열정이 있었던 과거와 유려해졌지만 열정이 사그라든 것만 같은 현재를 톺아보는 사람은 많으니까. 우리의 과거는 미래를 닮아있으니, 나의 오늘을 '메이저'하게 쌓는 것 못지않게 과거와 미래를 일정하게 연결하는 단단한 마음도 중요하다. 그게 뜻밖의 위로가 됐다. 큰 무대에 서지 않아도, 어제와 내일을 잘 이어주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가치가 있다는 것이.
하필 요즘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다. 나의 20대에 쓸 수 있을 최선을 쓴 것 같은데, 좋은 평도 꽤 받은 것 같은데, 될 듯 말 듯 어떤 선을 못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 이제 더 글을 쓰려면 새로운 무언가를 살아내야 할 것 같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 어쩌면 이 영화 속 태일과 비슷한 시기인 것 같다. 그런 때에 훌쩍 떠날 소도시가 있다는 건, 그 도시를 닮은 사람을 안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얼마나 큰 행운인지.
조바심과 불안해하는 마음은 버리기로 했다. 중학생 덕호가 습관처럼 외치는 빌보드가 아니어도, 뮤직비디오 찍고 앨범 내는 가수가 아니어도, 이들에게는 함께 부른 노래가 있었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쓰고 싶은 것들을 소중하게 써내려가기로 했다.
* * *
천만 관객 동원하는 상업영화부터 아직 개봉하지 못한 다큐멘터리 독립영화까지, 빌보드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부터 이제 막 첫 녹음을 한 누군가의 작은 공연까지. 각자의 취향과 자본의 영향력으로 그린 사분면 어딘가에, 지금도 다양한 음악과 영화가 별처럼 흩뿌려지고 있다.
존 버거의 책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우주의 별 절반 이상이 성운에 속하지 않은 외톨이별이라 한다. 가장 많은 빛은 그들에게서 나오는 거라고. 더 다양하고 그래서 더 풍성한, 독립영화와 인디음악의 힘도 그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나직하지만 힘 있게 빛나는 외톨이별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도 한 외톨이별로서 빛나고 있을 거라 다정하게 도닥여주는 빛. 따뜻한 마음으로 이 영화 음악을 들으며 나의 별을 밝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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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 흔들리지 않는 건
콩나물국 있으니까 챙겨 먹어라.
가끔 부모의 마음이란 과연 어떤 걸까,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나랑 같이 사는데도 매일같이 오후 2시쯤이면 집에 있는 반찬들의 목록을 나에게 카톡으로 보내곤 한다. 나는 주로 집에서 점심과 저녁을 모두 챙겨 먹는 편이라 냉장고 어느 칸에 고기가 있는지 훤히 아는데도.
오후 2시에 집에 있는 반찬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액션 코미디 SF 장르라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참 어려운 영화다. 한참 입소문을 타고 끝물즈음에야 겨우 시간을 내어 영화관에서 관람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어떠한 평도 후기도 보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사실 이 영화를 스포하기가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 진행이 빠르고, 화면 전환이 체감상 초 단위로 이루어지며, 내용의 전개와 장르도 5분마다 바뀌기 때문에 관객은 저들의 우주를 넘나드는 모험을 그냥 눈으로만 잘 좇아가면 된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멀티버스
이 영화에서 멀티버스의 개념은 선택과 결정의 결과에 따른 평행 우주다.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때마다 우주는 갈라지고, 다른 결정을 한 나는 각자의 우주에서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작게는 점심 메뉴부터 크게는 진로나 연인까지. 우주 어딘가에 다른 선택을 한 내가 그 결과 나름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우리 모두가 술자리에서, 혹은 자기 전에 항상 하는 생각 아닐까.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그 주식을 팔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다른 평행우주의 에블린의 삶을 잠깐 훔쳐보며 나는 잠깐이나마 대리 경험을 한 것만 같았다. 다른 우주의 내가 잠깐 궁금했다.
#2. 버스 점프
영화는 한 단계 상상을 더 해, 멀티버스 간의 점핑까지 가능토록 한다. 다른 평행우주의 내가 가진 능력을 '버스 점프'를 통해 이 우주로 빌려오는 것이다. 버스점핑을 하는 방법이 기가 막힌데, 밑도 끝도 없이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립글로스 씹어 먹기, 열 손가락 사이를 종이로 모두 베는 것 등이다. 진지하게 풀었다면 자칫 우스워졌을 수 있는 소재였는데, 대놓고 우습게 만들어서 B급 코믹 감성을 더하니 나무랄 데 없었다.
이유 없는 이상한 행동에 이유를 붙인 것이 마음에 든다. 가끔 나는 이유 없는 행동을 한다. 예를 들자면 갑자기 얼굴 근육을 당겨 본다거나, 혀를 찬다거나, 엉덩이를 흔든다거나 그런 행동들. 이 영화는 이런 행동까지 우주의 일부분으로 끌어안는다.
#3. 에브리씽 베이글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 나는 베이글과 사랑에 빠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베이글 가게로 달려가서 이것저것 잔뜩 넣은 베이글과 커피를 주문하고, 만든 지 하루 지나서 10개를 1달러에 파는 베이글을 잔뜩 사 와서는 집에서 또 야무지게 크림치즈를 발라서 먹곤 했다. 그 당시 나를 좋아하던 대학 선배는 나에게 잘 보이겠답시고 아침마다 베이글을 사다 줄 정도였으니까. 사실 선물로는 베이글보다 반짝이는 게 더 좋지 않나 싶지만.
아무튼, 갈릭 베이글과 어니언 베이글을 가장 좋아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에브리씽 베이글이었다. 깨가 잔뜩 올라가 한 입 베어 물기만 해도 우수수 쏟아질 것만 같은 비주얼에 도대체 뭐가 들었을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이름까지. 모든 것이 들어가 있는 베이글이라니, 공포 그 자체가 아닌가.
이 영화의 빌런인 조부 투바키(스테파니 수)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블랙홀로 에브리씽 베이글을 만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정말이지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 없었다. 투바키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게 아닐까. 모든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에서 오는 역설적인 공포. 역시나, 먹을만한게 아니었어.
#5. We are all small and stupid.
이 대사의 정확한 번역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작고 어리석어.
저 눈알 달린 돌멩이는 저 말을 위로라고 하는 걸까 싶었다. 극단적인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딸 돌멩이에게 고작 하는 말이 저것이라니. 그런데 갑자기 마음 속 한 곳이 팍 하고 터져버린다. 아직도 이유를 짚으라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는 여기서부터 엔딩까지 쉬지 않고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놀랍고도 다행인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극장 곳곳에서 다들 뭐가 그리 서럽고 힘들었는지 울고 있었다는 후기다. 덕분에 나도 맘껏 울었다.
대충 80년에서 100년 사이를 산다고 치면, 우리 모두 어느 한순간에는 조부 투바키였던 것이 아닐까. 이토록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돌멩이의 별 것 아닌 한마디가 위로로 콕 박힌다. 뭘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답을 제시하는 대신, 그냥 나의 미숙함과 어리석음을 안아버린다. 그래, 모두 뭐 다 그런 거지?
#6.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여기서 전개는 한 번 더 몰아치는데, 갑자기 여태껏 무능해 보였던 남편 웨이먼드(조너선 케 콴)의 활약이 나오기 때문이다. 웨이먼드는 처음부터 에블린을 귀찮게만 했다. 지금 세금 폭탄을 맞게 생겼는데, 이혼 타령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웨이먼드는 차갑고 원칙주의자인 국세청 직원한테까지 이혼 위기를 털어놓는 솔직하고, 온정적인 캐릭터다. 그런데 웨이먼드의 사정을 들은 국세청 직원은 그를 이해하고 심지어 시간을 더 주기까지 한다. 결국 상황을 해결할 수 있게 만든 건 웨이먼드의 진심이었다.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는 데만 몰두하던 에블린은 끝에 몰려서야 웨이먼드의 말을 제대로 듣기 시작한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귀찮게만 여겼던, 그의 진심.
그리고 그녀는 적들을 물리치기 위한 무기로 다정함을 선택한다. 포용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안아준다. 그녀가 투바키를 포함한 적들을 모두 다 무찔렀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이유 없이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은 얼마나 단단하고 강하길래 이 험난하고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저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만, 먹고 사느라 바빠서 또 내일이면 잊게 된다. 우리는 작고 어리석음을, 그리고 다정함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강한 무기라는 것을.
이 영화처럼 이상한 방법으로라도, 가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후 2시에 집에 있는 반찬을 알려주는 다정함을, 바쁘다는 핑계로 카톡을 읽지 않는 나의 나약함을, 그리고 읽지 않은 카톡창에 또다시 밥을 잘 챙겨 먹으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엄마의 진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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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크리처> 파트 1 | 경성은 있는데 크리처는 없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경성에서 제일가는 전당포 주인 '장태상'(박서준). 경성 최고 셀럽으로 화려한 삶을 누리던 그는 1945년 봄, 느닷없이 역경에 빠진다. 경무국장 '이시카와'(김도현)가 그의 목숨과 재산을 뺏어버리겠다고 협박한 것. 그의 아내 '마에다 유키코'(수현)가 숨긴 자기 애첩 '명자'(지우)를 벚꽃이 질 때까지 찾아내지 못한다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장태상은 모든 연락망을 동원해 명자의 행방을 수소문하지만, 좀처럼 그녀에 대한 정보를 찾지 못한다. 결국 도움을 받기로 결정한 그는 만주에서 제일가는 토두꾼 '윤채옥'(한소희)과 '윤중원'(조한철) 부녀와 계약을 맺는다. 그들의 도움 덕분에 일본군 병원인 옹성병원에 명자가 갇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태상은 직접 그녀를 빼내오려 한다. 병원 지하실에 일본군이 만든 괴물이 있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한 채.
크리처물의 딜레마
괴수물, 넓게는 크리처물은 언제나 딜레마에 직면한다. 장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과 일반 관객이 기대하는 바가 엇갈리기 때문. 전자는 괴물이 얼마나 강하고 독특한지, 괴물 혹은 인간과의 싸움이 얼마나 스릴 넘치는지를 따진다. 등장인물의 서사, 인간 캐릭터의 완성도는 뛰어나면 플러스 알파이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다.
반면에 일반 관객은 크리처물이나 괴수물을 볼 때 당황하기 쉽다. 일반적 작법을 자주 벗어나니까. 서사의 개연성과 핍진성이 과하게 부족하거나, 인간 캐릭터가 단지 괴물을 소개하기 위한 도구로 소비되는 식이다. 일례로 괴수들의 액션에 집중한 <고질라 VS. 콩>은 일반적 관점에서 완성도를 등한시한 범작이다. 반면에 장르 팬이 보기에는 더 바랄 것 없는 선물이다.
시즌 1과 2를 통틀어 제작비 700억을 투입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도 딜레마를 피하지는 못했다. 이 드라마는 <미스터 션샤인>과 <스위트홈>을 섞으려 했다. 1945년 봄 경성을 살아가는 조선인의 애환과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괴물과의 싸움을 그려냈다. 하지만 파트 1만 놓고 보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시도는 실패에 가깝다. '경성'은 살렸지만, '크리처'물로서의 정체성은 약해졌기 때문이다.
1945년 경성 사람을 그려내다
<경성크리처>의 기초공사는 일견 착실하다. 참신하다고는 못해도, 시기의 특수성을 나름 적절히 활용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제의 침입이 본격화된 1900년대 초나 일제의 수탈이 한창인 1920년대나 30년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항일운동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기에 용이하므로.
<경성크리처>는 다르다. 1945년의 봄을 보여준다. 일본의 패망이 임박한 시기가 배경이다. 물론 화려한 금옥당을 비롯한 거리 모습은 물자 배급이 시행되던 실제 역사와는 차이가 있다. 다만 그 시대의 사람들을 그려내려고 애쓴다. 옹성병원에서 붙잡힌 장태상과 거래하는 일본군 장교가 대표적이다. 그는 경성에서의 삶이 이미 익숙하다며, 태상을 풀어주는 대신 일제의 패망 이후 조선 정착을 도와달라고 제안한다.
이에 더해 <미스터 션샤인>처럼 독립운동을 묘사하는 방식도 눈에 띈다. <미스터 션샤인>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캐릭터가 당연히 조선 독립을 원하는 뻔한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진 초이, 구동매, 김희성처럼 조선을 증오하거나 방관하던 이들이 고애신의 조선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돌리는 이야기였기에 흥미로웠다.
<경성크리처>의 주인공 장태상도 마찬가지다. 그는 같이 독립운동을 하자는 '권준택'(위하준)의 제안을 항상 거절한다. 일본의 일부인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그에게 독립운동은 설령 옳더라도, 자기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의열단의 조력자였던 어머니의 생전 마지막 말이 "살아남아라"이기에 더더욱. 이처럼 <경성크리처>에서는 선과 악을 딱 잘라 말할 수 없게 된 일제 치하의 세월을 녹여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역사를 붙잡은 괴물
그 덕분에 시대극과 크리처물의 조합도 어색하지 않다. 패망 직전이기 때문에 괴물을 만들겠다는 일본군의 발악에는 설득력이 깃든다. 단순히 한 과학자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 하에서 이뤄지는 실험이기 때문. 병원장이 괴물을 길들이거나 대량 생산이 가능한지 묻고, 결과를 천황에게 보고할 것이라는 장면만 봐도 일본군이 이 괴물을 태평양 전쟁 전황을 바꿀 신무기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성크리처>의 상상력은 역사와도 부합한다. 하얼빈에 위치한 731 부대는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조선인 대상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전쟁 말기에는 실험 기록과 시설을 없앤 후 일본으로 도주했다. <경성크리처>는 이 역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했다. 만주를 떠나 경성에서 실험을 이어가거나, 웅성병원 건물 디자인이 731 부대 건물을 닮은 점이 대표적이다.
물론 국내 드라마 기준으로는 클리셰에 가까운 대목일 수 있다. 다만 거시적으로는 인상적인 시도일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간 할리우드 영화는 비밀무기를 개발하거나 찾아내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꿈꾸는 나치 독일을 자주 등장시켰다. <인디아나 존스 5>에서는 나치 잔당이 시간을 되돌리는 기계로 역사를 바꾸려 했다. <캡틴 아메리카> 1편에서도 나치 소속인 레드 스컬과 하이드라가 테서렉트를 이용해 승전을 꿈꿨다.
반면에 같은 추축국이었는데도 일제가 주체인 경우는 많지 않았다. 종전 직후 냉전에서 미국이 일본을 우방국으로 두기 위해 전쟁 범죄를 눈감아 준 역사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731 부대의 연구 성과를 이용하려고 731 부대원의 전범 재판 기소를 면제하거나 거액의 돈을 주기도 했다. 그저 괴물만 괴물은 아닌 셈이다. 그렇기에 <경성크리처>는 승전국이 아닌 과거 식민지의 콘텐츠라서 가능한, 분명 흥미로운 시도다.
문제는 괴물 활용법
하지만 <경성크리처>는 '경성'을 살려낸 것에 비해 '크리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괴물의 등장부터 호불호의 여지가 크다. <경성크리처>는 2014년도 <고질라> 같다. 이 영화는 고질라가 파괴한 도시, 공항, 함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위용을 간접적으로 강조했다. 클라이맥스가 돼서야 고질라를 전면에 등장시켜 방점을 찍었다.
<경성크리처>도 마찬가지다. 괴물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참혹하게 살해되는 일본군과 조선인 희생자들의 리액션을 비춘다. 괴물은 중후반부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일장일단이 있다. 극의 속도를 조절하며 서스펜스를 강화할 수 있지만, 괴물의 활약을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감질날 수밖에 없다.
주인공 일행과 일본군의 비중도 감점 요소다. 괴물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 빈 분량을 드라마는 장태상, 윤채옥과 일본군의 병원 내 추격전으로 대신한다. 크리처물을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울 만하다. 마치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싸움 대신 미군과 디셉티콘이 싸우는 장면만 나오는 <트랜스포머>를 보는 심정과 비슷하다.
괴물 묘사도 일관적이지 않다. 초반부에 괴물은 수많은 일본군을 손쉽게 제압한다. 초인적인 속도와 먼 거리를 넘나드는 촉수 앞에서는 어떤 무기도 속수무책이다. 그런데 정작 두 주인공을 마주한 순간부터 괴물은 속도도, 촉수도 활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무기를 쓰거나 몸을 숨기기에 충분한 시간을 준다. 자연히 긴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괴물과 윤채옥의 신파가 더해지면 극의 전개는 더욱 억지스러워진다.
경성은 있는데 크리처는 없다
주요 플롯 중 하나인 장태상과 윤채옥의 로맨스도 덩달아 부자연스럽다. 극 중 로맨스는 우연적 요소에 기대 급하게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장태상이 윤채옥의 외모 때문에 첫눈에 반했다거나, 운명적인 사랑임을 깨달았다는 식으로. 이는 경성 배경 시대극과 크리처물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방증이다. 드라마가 크리처물 플롯을 살리기 위해 로맨스에 할애할 분량을 줄였기 때문.
결국 <경성크리처>는 무엇을 기대했는지에 따라 첫인상이 갈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경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역사를 활용하는 방식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보는 나름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크리처'를 기대했다면 속 시원하지 못한 전개와 억지스러운 묘사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과연 <경성크리처> 첫 시즌의 남은 에피소드 3개는 첫인상을 바꾸고, 시즌 2의 기대감을 키울 수 있을까?
Poor 형편없음
'경성'크리처냐, 경성'크리처'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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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아주담담 & 짧은 영화, 긴 수다
아주담담 & 짧은 영화, 긴 수다는 다양한 작품과 게스트들이 하나의 주제 하에 모여 활발하게 소통하는 프로그램이다.
10월 7일 영화의전당 시네마운틴 6층 아주담담 라운지에서 진행된 한국 영화의 오늘 - 비전 2에 참여하여 영화를 더욱 깊이 들여보는 시간을 가졌다.
<홍이>, <파동>, <3학년 2학기>, 이 세 작품의 감독 황슬기, 이한주, 이란희, 배우 변중희, 박가영이 함께했다.
<홍이> 황슬기 감독, 변중희 배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개막한 10월 2일부터 계속 머물고 있다는 황슬기 감독은 틈틈이 영화도 챙겨보고 이번에 좋은 작품들이 너무 많아 영화를 보는 재미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추천할만한작품으로는 박송열 감독의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를 추천했다.
영화를 소개하기를 홍이는 30대 후반 경제난에 시달리는 한 여자가 자신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데려오면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이며,
제가 어떤 겪었던 경험담과 그런 걸 듣고 보고 느꼈던 것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 쓰고 영화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황슬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홍이>. 이번 작품을 제작할 때를 되돌아보면 즐거운 순간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함께 만드는 영화를 함께 만드는 동료의 소중함을 정말 많이 느꼈다고 한다.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과거와는 달리 첫 장면을 찍으면서 스태프들이랑 얘기하고
각자가 일을 나누어서 더 얼마만큼 마음을 쓰고 신경을 쏟느냐를 같이 나누는 작업이 영화의 완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변중희 배우는 홍이 엄마로서 딸이 듣는 엄마의 목소리 그리고 딸이 살짝 보는 엄마의 표정이 엄마의 다가 아니라는 것과
모성에 대한 것들을 표현하는 방법이 반어법적으로 나오는데, 그것을 중점적으로 보며 그 마음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황슬기 감독은 홍이에는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미워할 수도 없고 더 사랑할 수도 없는 모습인데,
화학 작용을 내는 게 저 영화에 잘 담겼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10월 9일 10시에 마지막으로 상영하는데 그 모습들을 보러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전했다.
<파동> - 이한주 감독, 박가영 배우늘 배우로 영화제를 참가했던 이한주 감독이 <파동>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그의 첫 연출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물결 파에 겨울 동을 써 파동이라고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서울에서 철도 기관사로 일하고 있는 문영이라는 인물이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기억을 쫓아가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고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상호라는 인물이 문영의 고향을 내려가게 되면서 두 가지 이야기가 왔다갔다 하면서 조금씩 교집합을 만들어내고 있는 영화라고 전했다.
<파동>은 의도적으로 파편적이고 불친절하게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이러한 장르를 선호한다는 이한주 감독은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생각하며,이미지로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자신에게는 인상 깊었기에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으며 파동에서 그런 부분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전부터 이한주 감독과 여러 작품을 같이 했다는 박가영 배우는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에 대해서, 그리고 영화의 창작에 대해서 많은 소통을 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같이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장편으로 써져 있는 글들이 자신이 좋아했던 어떤 시기를 구현할 수 있는 소설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박가영 배우는 이 영화의 관람포인트로 풍경을 꼽았다. 전북 남원의 지리산 쪽에 있는 작은 동네에서 촬영을 했다는 <파동>.사라져가는 동네를 추억할 수 있고, 누군가들이 떠오를 수 있는 공간, 쓸쓸하지만 그럼에도 존경할 수 있는 것들,
그런 풍경들을 고스란히 담으려고 한 흔적들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라 말했다.
또, 그 풍경들을 인물이 나오지 않은 순간에도 볼 수 있다고 전했다.이한주 감독은 넓은 마음으로 이 영화를 봐 달라 청했다.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복잡하고 힘든 영화일 수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좋은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속 3명의 인물이 각자 다른 위치에서 개인적인 성장을 이룬다.
영화를 볼 때, 각기 다른 세 명의 인물들을 통해 개인의 어떤 시절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을 꼭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3학년 2학기> 이란희 감독, 유이하 배우, 김성국 배우첫 장편 영화 <휴가>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이란희 감독은 두번째 장편영화 <3학년 2학기>로 다시 부산을 찾았다.늘 청소년 노동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이란희 감독은 뉴스에 현장 실습생들 사고 소식을 듣게 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연히 첫번째 장편 영화 <휴가>를 통해 만난 현장 실습 하다 사고를 당한 학생들의 부모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두번째 장편 영화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김성국 배우는 <3학년 2학기>는 실습생들의 성장과정을 많이 보여주는 영화라고 한다.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행동하는 부분이 재미있는 관점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전한다.
유이하 배우는 결말을 다 알면서도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보며 "한 번만" "한 번만" 하며 응원하게 되는데, 자신과 같은 지점에서 같은 생각을 하며 자신이 했던 말들을 생각해 달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란희 감독은 현장 실습생 사고 소식은 보통 뉴스로 접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과 함께 실습을 같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직업계 고등학생들에 대해 글자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학생들로 생각해 달라고 전했다.
[상영시간표]
<홍이>
10/6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10/7 10: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10/9 10:0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파동>
10/6 12: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10/7 09: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10/8 15: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3학년 2학기>
10/6 16: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10/8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10/9 2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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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죽이는 나의 사랑, <피터 본 칸트>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터 본 칸트 Peter von Kant, 2022
프랑스, 드라마, 85분
감독: 프랑수아 오종
나를 죽이는 나의 사랑, <피터 본 칸트>
사랑은 난감하다. 입으로 소리 내어 발음하면 달콤한데,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땐 한없이 어렵다. 솔직한 만큼 씁쓸하다. 좋으면서도 아프고, 모르는 척해도 다 알 것만 같고, 낯설다가도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해진다. 영원한 사랑, 불멸의 사랑, 조건 없는 사랑, 헌신적인 사랑, 이기적인 사랑... 사람들은 틈만 나면 사랑에 조건을 붙인다. 그리고 누구나 사랑을 원한다. 사랑은 그 힘을 받아 스스로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변화해 인간의 외면은 물론 내면까지 바꿔 놓는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어 동시에 한계 없이 존재하는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이란 사실이다. 사랑은 개인의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 권력을 과시하고 무한한 힘을 발휘한다. 특별한 조건? 필요 없다, 나만 좋으면 된다. 그다음 당신도 좋다면, 난감해도 사랑이란 걸 할 수 있다.
결과는 각자 감당하면 되는 일이고.
<피터 본 칸트>엔 사랑이 쏟아진다. 말로, 눈으로, 손짓과 발짓을 포함한 몸짓은 물론이고 인물들의 침묵마저도 전부 사랑을 얘기한다. 무엇이 사랑이고, 사랑이 아닌지 구분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스토리가 품은 반전도 인물이 숨긴 배신도 아니다. 천재 감독, 피터의 파격적인 짝사랑과 절절한 외사랑, 그리고 모두를 죽이고 다시 피어날 끝사랑, 그야말로 '사랑'이다.
아주 사적인 피터만의 사랑, 영화 제목이 '피터 본 칸트'인 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얘기다.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다음)
쓰레기를 반복적으로 찍어내기 바쁜 할리우드(?)와는 다른 차원의 예술 작품을 만든다고 자부하는 영화감독 피터는 거대한 창이 세 개나 달린 저택에서 어시스턴트 칼을 두고 새 작품을 위해 대본을 집필 중이다. 하지만 그는 대본 집필에 열성적이지 않다. 자신의 성공을 질투해 끝나버린 사랑, 즉 이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층 예민해져 뭐든 듣고 보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칼에게 더 날카롭고 무례하게 이래라저래라 한다. 칼은 자신의 고용주를 남몰래 사랑한다. 피터를 향해 있는 칼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피터에겐 그냥 눈알 따위로 보이는 게 슬플 뿐이다. 해서 칼은 매일 무표정한 얼굴로 피터의 손과 발이 되어 집 안을 누빈다.
한때 자신의 뮤즈였던 시도니가 찾아오자 피터는 대본에 녹여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사랑에 대한 본인의 철학과 상념을 열정적으로 토해낸다.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술과 담배, 마약으로 본격적인 이야기 장을 만들고 각자의 사랑을 주고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너무나 개인적인 견해이자, 누군가의 생각으로 모두의 가슴에 와닿는 명언이 아니다. 딱 내뱉는 순간 흩어지는 물거품이다. 영양가 있고 포만감도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이 내쉬는 담배 연기만큼이나 가볍고 허하다. 마치 헛배가 부른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언제나 나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옳으며 진리라고 강조한다.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다음)
자신감 넘치는 시도니는 자부심까지 넘치는 피터에게 무명 배우 아미르를 소개한다. 방금 전까지 사랑을 험담했던 피터는 아미르를 보자 사랑에 빠진다. 이때의 카메라 동선이 흥미롭다. 피터와 아미르가 처음 만나 악수를 하는 장면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데, 그 찰나의 순간 피터의 눈이 반짝인다. <피터 본 칸트>는 아미르와 피터가 사랑에 빠지는 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선도 매우 간결하고, 무척 간단하다. 의미를 두지 않는 컷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래 음미하며 볼 컷도 아닌 것이다. 피터와 아미르의 사랑이 모두가 예상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미리 보여준 정도랄까.
피터는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 자존심, 자부심까지 전부 이용해 아미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감독과 연인의 위치를 능숙하게 바꿔가며 적재적소에 아미르에게 꿈과 사랑을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나의 차기작은 아름다운 너를 위한 영화이며 우린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정복도 할 수 있기에 반드시 함께 해야한다고 말한다. 무명 배우 아미르는 피터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아미르에게 요구되는 건 사랑뿐이고, 완벽하게도 그는 피터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었다. 그에게 사랑은 꿈을 위한 조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혼했고 아내가 호주에 살지만, 아직 세상에 자기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그에겐 가정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을뿐더러 최우선의 고민거리도 될 수 없었다. 반면 피터에게 아미르의 사랑은 삶의 연료로 필요했다. 전부와 일부의 줄다리기, 피터와 아미르의 사랑은 처음부터 다른 선상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길 위를 달린다.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다음)
먼저 식어버린 건 아미르다. 호텔 생활을 하는 아미르를 자기 집에 살게 한 피터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을이 된다. 아미르는 별다른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당연하게 갑이 됐다. 피터가 먼저 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미르는 피터의 헌신적인 사랑과 자신의 쌓여가는 업적으로 인해 소위 말해 버릇없는 애가 됐다. 자신이 모든 걸 조정할 수 있고, 뭐든 해도 괜찮다고 믿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귀중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된 것이다. 그와 같이 속물적이고 세속적이지만, 그보다 더한 것을 바라는 피터는 애원과 원망을 섞어가며 다시 아미르의 마음을 잡으려 한다.
아내를 만나러 가겠다는 아미르와 추잡스러운 몸싸움까지 벌인 피터는 자기 돈까지 건네며 흔한 연인의 사랑싸움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다시 그에게 이별, 아니 버림 이후의 시간이 온 것이다. 피터의 성공을 질투해 헤어지게 된 전 연인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피터는 늘 그런 유형의 사랑을 해 온 남자다.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상대의 일부만 갖는 그런 사랑. 그것이 자신의 예술을 돋보이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결국 피터는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집에 놀러 온 딸과 엄마 그리고 친구 시도니에게 분풀이하기 시작한다. 딸의 사랑을 콧방귀 뀌며 비웃고, 돈을 빨아먹는 기생충, 노력이란 걸 해본 적 없는 흉측한 늙다리 창녀, 할리우드 쓰레기나 찍는 배우라 욕하며 마지막까지 아미르의 전화를 기다리다 쓰러진다.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다음)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이 된 채 차라리 죽고 싶다며 오열하는 피터를 진정시키는 건 그의 엄마다.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아들을 가엽게 여기는 그녀의 손길에 피터는 아이처럼 안겨 운다. 사랑은 늘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엄마의 조언에 자신이 그동안 누리고 취했던 사랑이 잘못됐음을 시인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조건 없는 사랑이라면서 소유를 위한 사랑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까지 한다. 이후 그토록 기다렸던 아미르의 전화를, 감정이 배제된 냉철한 전 연인으로서 받는다. 꼭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엔 배움이 없다. 배움을 가장한 태움이 있을 뿐이다. 피터는 처음부터 자기 사랑에 대해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불신도 의심도 필요치 않았다. 그에게 사랑이란 자기 작품과 같고, 가장 열정적이며 아름다운 불꽃이다. 언제든 발화되어 주변의 것을 다 태우고 끝나는 삶이다. 따라서 피터에게 필요한 건 다른 불꽃이다. 그는 조건 없는 사랑을 원하는 척, 그 사랑을 줄 수 있는 척 칼에게 향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본 칼에게 진짜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너에 대해 말해달라고 속삭인다. 맹목적인 숭배를 받기 위해 아미르에게, 그 전의 아미르와 같았던 이들에게 썼던 방식을 또 답습하는 것이다.
칼은 대답으로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그리곤 지금까지 살았고 앞으로도 평생 살 것만 같았던 피터의 집에서 제 발로 떠난다. 미친 고용주를 견디지 못한 걸까? 드디어 한계가 온 걸까? 아니다, 칼이 원한 사랑이 아니었을 뿐이다. 피터의 엄마가 말한 사랑처럼, 피터의 딸이 처음 남자 친구에게 느끼는 사랑처럼, 본인만이 설명할 수 있기에 가장 솔직하게 원할 수 있는 '나'의 사랑과 다르기 때문이다.
감히 예상하건대, 칼이 원한 사랑엔 분명 '동등'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 <피터 본 칸트>(스틸컷, 다음)
텅 빈 집 안에서 홀로 아미르의 테스트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피터, 그는 자신을 죽이는 사랑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다. 몇 번이고 스스로를 죽이더라도, 자기가 바라는 아름다운 사랑을 또 꿈꿀 것이 분명하다.
그게 피터이자, <피터 본 칸트>다.
관객은 칼의 시선으로 피터를 열심히 관찰하다 나중에서야 제삼자로 그에게서 완전히 멀어진다. 아미르와 시도니에게서도 마찬가지다. 가까워졌다가, 찰나의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리를 둔다. 지독한 일인칭 이야기는 사실 수많은 예시 중 하나에 불과하고, 칼의 이탈에 명백한 이유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상 피터의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피터, 아미르, 시도니는 사랑에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야만 삶이 진행되는 인물들이다.)
"모든 이가 사랑하는 것을 죽이네."
시도니의 노래 중 한 구절이며, <피터 본 칸트> 속 세 사람의 사랑 해석본이다.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보자면,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은 반드시 사랑하는 것을 죽이면서 사랑을 한다.' 정도가 되겠다
이야기를 이끄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빨려들 수밖에 없는 음악이 본 영화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시도니를 보여주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피터에게 전화하라고 시킨 시도니의 모습은 <피터 본 칸트>가 유일하게 가져간 긴장감이자, 뼈 있는 반전이며 풍자의 대상을 끝까지, 정확하게 겨눈 한 방이다.
p.s <피터 본 칸트>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1972)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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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선(톰 홀랜드)'과 '설리(마크 윌버그)'가 함께 트레저헌터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미스터리와 보물을
찾아나서는 액션 어드벤처 블록버스터 영화
언차티드 영화 정보
감독: 루벤 플레셔
제작: 아비 아라드, 찰스 로븐, 알렉스 가트너
각본: 아트 마컴, 맷 할로웨이
출연: 톰 홀랜드, 마크 월버그, 안토니오 반데라스
장르: 액션
제작사: 컬럼비아 픽처스,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 너티 독, 아라드 프로덕션, 아틀라스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소니 픽처스 릴리징, 소니 픽처스 코리아
촬영 기간: 2020년 3월 16일 ~ 2020년 10월 29일
촬영 감독: 정정훈
개봉일: 미국 2022년 2월 18일
원작: 너티독의 언차티드 시리즈
제작비: 1억 2,000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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