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ong2022-11-21 07:42:43
가장 시끄러운 폭탄은 러닝타임 안에서 터진 듯
<데시벨> 스포일러 없는 리뷰
단란한 한 때
잘 지내고 있었다. 강도영은 어느 곳에서 강연하고 있다. 왜 강연을 하고 있을까? 탁월한 리더십으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부하 군인들을 살린 공이 있던 남자 강도영. 강도영은 전직 해군 부함장으로서 역할을 다했기에 높은 덕망을 쌓고 있었다. 어디론가 향하는 강도영. 강도영에겐 옛 전우들이 있다. 사실 전우들이 그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전우는 술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전우는 가족들이 있지만 옛 기억의 트라우마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속이 편하지는 않은 강도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 남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일상 속에서 갑자기 사건이 터졌다. 갑자기 떠들썩한 뉴스. 뉴스에서는 한 가정집이 폭탄 테러를 당했다고 전한다. 뭔 일이지?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차가운 목소리로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한다. 저기 강도영 씨. 전우 중에 누구 알지? 그 사람 집에 폭탄 넣어놨어. 다음은 놀이터니까 그런 줄 알아. 뭔 소리야? '전화를 건 누군가'가 뉴스를 확인하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바로 찾아보기로 한다. 옛 전우가 있는 집 쪽에 폭탄테러가 터졌다는 말이 어렵지 않게 들린다. 금세 테러범은 뭔가 한이라도 맺힌 듯 다음 타깃을 지정한다. 그 타깃은 놀이터와 축구장이다. 두 장소에 폭탄이 설치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놀이터에 강도영의 부인인 장유정이 폭발물 제거 팀으로 참여하고, 축구장에는 그 어떤 지원도 없다. 선택의 딜레마에 놓인 상황. 강도영은 폭탄 테러 앞에서 사람들과 가족을 구할 수 있을까?
제목이 '데시벨'인 이유
일단 영화 제목은 '데시벨'이다. 이 제목을 설정한 이유는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왜? 당연히 소음의 정도에 따라서 폭탄이 발포되는 설정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건 신선했다. 보통 폭탄테러라는 설정이면 그냥 폭탄만 펑 터지는 것만 있지 여기에다가 부차적으로 뭔가를 붙인 경우는 거의 못 봤다. 그래서 이 소재가 영화에 가져다 줄 신선함은 분명한 이점이다. 아니 소리를 활용해서 폭탄이 터진다면 신선하잖아? 초반부는 이 설정에 힘을 얻고 질주한다. 아직 흑막이 왜 소리를 활용해서 폭발물을 설치할지 이유가 제시될 때도 아니다. 오케이. 강도영이 축구장이랑 놀이터 사이에서 고민하는 설정 자체도 좋았다. 이렇게 서사가 앞으로 전개될 일만 남았는데? 데시벨이라는 키워드 안에 숨어있는 인물들 간의 속사정을 알 수 있겠지?
이 궁금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인물들 간의 속사정은 있다. 흑막이 왜 폭탄 테러를 벌였는지. 목표를 뒀던 대상들을 왜 그렇게 설정했는지. 강도영은 과거에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딜레마는 무엇인지. 이 인물이 폭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는지. 폭탄을 제거할 수 있나 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 서스펜스 묘사까지 나름 잘 담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게 없다. 왜 소음을 활용한 폭탄을 사용했는가? 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 대한 설명이 아무것도 없다. 그냥 폭탄이 터지고 수습하고 이 내용의 반복이다. 그래서 이 '데시벨'과 관련한 소음 폭탄이라는 세팅이 사실 시한폭탄과 차이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키워드로 작동하는 주요한 소재를 설명하는 것을 공란으로 쳤기 때문에 빈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더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적당히 불필요만 하면 좋았을 텐데 이것들이 어떤 것으로 구성됐는가?를 본다면 더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것들
일단 초반부다. 놀이터와 축구장 두 장소에 폭탄이 설치된다. 당황하는 강도영. 강도영은 축구장으로 향한다. 축구장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카메라는 축구장 안에 있는 다른 손님으로 향한다. 축구장 안에는 한 부자가 있다. 축구장 구경에 여념이 없는 부자. 아버지가 어떤 일인지 좌석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아버지는 전직 해군 부함장 강도영을 만난다. 어? 유명인이네? 아버지의 직업은 기자다. 대박! 기자라는 직업적인 특성이 영화 안에서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강도영은 아버지 오대오를 보자마자 말한다. '축구장에 폭탄이 있어요' 당황하는 오대오. 오대오는 갑자기 마음을 먹고 어떤 행동을 한다.
이 장면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 일단 첫 번째. 강도영과 오대오는 처음 보는 사이다. 처음 보는 사이에 '축구장에서 폭탄테러가 있으니 뭔가를 해보세요'라고 말한다라. 그리고 이 행동을 한다. 그런데 이 행동이 영화 서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나? 그것도 아니다. 흑막이 폭탄을 터트리는 것과 이 행동은 아무 관계가 없다. 또 이 상황 바로 직전에 흑막이 주인공에게 '남에게 알리면 폭탄이 터진다'라고 말한다. 그럼 이 상황이 굳이 필요가 있는 것일까? 싶다. 영화 초반부에 제시되는 어떤 상황이 정리되고 난 후, 대오와 도영은 같이 차를 탄다. 단순히 정상훈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활용한 코미디로 장면을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SNL>를 위시로 한 여러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봐왔던 것이다. 그래서 코미디가 웃기지도 않거니와 식상하게까지 느껴진다. 아. 이 인물의 부부로 나오는 캐릭터도 왠지 익숙한 느낌이다. 부인이 맡은 캐릭터는 김슬기 배우가 맡았다. 김슬기 배우가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알린 계기가 뭘까? 역시 <SNL>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봤던 김슬기 배우의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 이렇게 기존의 이미지와 중복되는 설정을 두 번이나 보기 때문에 이 두 인물에 관한 내용이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대오의 직업과도 관련이 있다. 대오는 기자다. 대오가 기자이니 만큼 이 이야기에 주요하게 작동할 수 있다. 이건 당연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테러가 벌어지는데. 그런데 사람이 직업적 특성을 발휘해야 할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다. 폭탄테러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게 생긴 피해자한테 그 와중에도 녹음을 하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도 코미디를 위해 넣은 것 같았는데, 이 장면이 들어간 것이 이야기 전개에 있어 좀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든다. 뿐만 아니라 기자로서의 직업적 특성이 이 외에 작동하는 부분이 있나? 없다. 딱 한 번 있다. 극후반부 이 모든 이야기가 정리되고 누군가와 질의를 한다. 이때 한 번 직업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과도 연관이 있다.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인물을 기능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와 관련한 것은 흑막과도 이어진다. 흑막이 어떤 것에 불만을 가지고 복수극을 계획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굳이? 싶은 부분이 있다. 이는 흑막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되겠지만 결정적으로 대오라는 인물에 대한 성찰 부족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극에 주어지는 몇몇 설정만 잘 활용해도 흑막의 복수극은 성공하고도 남았다.
무리수
그리고 흑막의 범죄 방식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첫 번째. 폭탄을 설치하는 위치다. 축구장부터 시작해서 후반부까지 폭탄을 설치하는 위치를 보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은가? 에 대해 의문이 든다. 뭐 모든 영화에 현실성을 따지는 일이 이상하게 드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이 부분이 '어떻게 물리적으로 가능했나' 싶다. 장기간에 걸쳐 준비했다는 말이 나오지만 글쎄? 과연 시간을 오래 들인다고 해서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했을까? 아무도 없는 어떤 공간에 가서 천장에 쥐도 새도 모르게 카메라를 달고, 지하로 내려가 폭탄을 설치하는 일이 저렇게 쉬울 수 있을까?
또 흑막이 폭탄 테러를 벌일 때 인질로 삼는 대상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흑막은 폭탄 테러를 다섯 번 정도 했다. 한 번은 영화의 어떤 사건을 겪고 거동이 힘들어진 약자다. 나머지 세 번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다. 아이들이 과연 무슨 잘못을 해서 테러의 희생자가 되는 걸까? 영화에서 지배계층의 아둔한 선택에 대해 비판하는 듯한 톤과 이 피해자 세팅은 뭔가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 무리수인 설정은 영화의 쿠키 영상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에도 통한다. 쿠키영상은 과거 시점이다. 영화의 가장 첫 번째 시퀀스에서 제시되는 한 에피소드의 끝마무리쯤으로 보이는 영화. 이 쿠키영상은 영화에서 제일 불필요한 사족같이 느껴진다. 사실 내용은 별거 없다. 이 영화의 주요 인물들끼리 '형이라고 불러!'라고 부르는 부분이다. 다만 문제는 영화의 흐름과 좀 안 맞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영화의 핵심 인물을 더 입체적으로 그렸다면 이에 이입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피상적으로만 이야기를 보여준 감이 있어 이에 대한 내용이 그 전 장면에서 보여준 뭉클한 하이라이트와 안 맞는 것이다.
볼만할지도 몰라
뭐 그렇게 단점만 늘어놓은 영화지만 나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일단 흑막 연기를 맡았던 이종석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뭔가 파리한데 그 안에 광기가 서려있는 내면 연기를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 인물의 광기로 설명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 이를 위해서 액션부터 시작해 눈빛 하나하나까지 극의 분위기를 설정하는 좋은 연기였다. 또 이상희 배우의 연기도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장유정이라는 캐릭터는 강도영보다 더 강단 있고 씩씩한 인물이다. 이를 위해 두려운 것도 없이 당당하게 맞서는 연기를 보여줬다. 후술 하겠지만 인물 간의 전체적인 대사 톤이 잘 안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희 배우의 뚜렷한 발성이 들릴 때마다 기대가 되는 느낌이 있다. 또 차은우 배우도 연기를 잘했다. 솔직히 차은우 배우 캐스팅에 이름 뜰 때만 해도 별로 기대를 안 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주제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본인을 활용하는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세팅이 차은우, 이종석 두 배우가 맡은 캐릭터가 형제라는 것이었다는 왓챠피디아의 누군가가 생각난다.
또 폭탄을 활용한 사운드 연출도 좋았다. 쾅! 소리에 현실감도 있고 크기 조절도 잘했다. <늑대사냥>이 영화 내내 귀 따가운 사운드 연출을 들려준 것에 비하면 이 부분은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극에서 사소한 서스펜스를 유지할 수 있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사운드가 단점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것이다. 이는 김래원, 이종석, 이상희 같은 베테랑이 아닌 배우들이 아니면 대사 전달이 떨어진다는 치명적인 단점과도 이어진다. 여러모로 아쉬운 퀄리티에 아주 큰 구멍이 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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