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artist2025-02-18 15:42:41
과유불급(過猶不及)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리뷰
영화를 모두 관람한 후 우선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본 작품에 대한 다양한 평들이 나오겠구나.'였다. 개인의 성향, 개인의 신념, 생각 등에 의해 판단이 모두 갈릴 수 있을 법한 작품이라고 생각되었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가 지금과 같이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는 데에는 영화가 이처럼 객관적인 영화의 뚜렷한 잣대로 평가받기 보단 주관적 개인의 판단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뮤지컬 영화라는 특성을 지닌다. 대사를 하는 중 뮤지컬 넘버로 이어져 군무와 각종 안무들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넘버의 리듬과 가사의 주제를 통해 해당 씬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가 개봉하기 전 본 작품의 OST와 넘버에 관해서도 큰 이슈가 되었고, 칸 영화제에서 이에 관해 찬사가 이어졌다고 들은 바 있다. 필자의 관점에서도 굉장히 인상적인 넘버가 많았으며, 그 안에서의 주제나 군무를 통해 인물의 변화나 상황의 변혁으로 인해 인물이 위치가 변했을 때 행할 수 있는 행동의 변화를 알아가는 점이 영화의 큰 매력이었다.
그럼에도 필자의 생각에 다만 아쉬운 점은 물론 모든 넘버를 끝낼 때에 있어서 무조건 화려히 끝내거나 넘버의 엔딩을 깔끔히 마무리시킬 필요는 없지만 좀처럼 모든 많은 넘버들이 마무리된지도 모를만큼 순식간에 다음 씬으로 넘어가 종료되거나 디졸빙을 통해 화면을 암전시킨 후 다음 씬으로 넘어가는데, 이런 부분만큼은 영화를 진심으로 즐기는 데엔 지장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몇몇 넘버의 등장 또한 다소 무리가 되었다고 생각될 만큼 예상치 못한 구석이 있는데, 이 또한 그런 뮤지컬의 문법적인 것들을 영화가 100% 따라줄 필요는 없지만 이 점 또한 필자에게 있어 영화를 충분히 즐기기엔 제한되었다.
최근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트렌스젠더와 LGBTQ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상되었고, 최근 그래미 시상식에서의 레이디 가가의 트렌스젠더 지지 수상소감 또한 또다른 논쟁의 중심지가 되었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기본적으로 이 지점을 가리켜 주제를 형성하였고, 그 주제를 통해 인간의 인생에 관해서 질문을 던지며 동시에 트렌스젠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를 촉구하는 듯한 영화적 자세를 취한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속 '에밀리아 페레즈'는 과거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수장이었지만 여자가 되고 싶어 "리타"를 만나 여자가 되었을 때 만든 이름이다. "에밀리아"로서의 인생을 스스로 꿈꿔왔고, 온갖 역경을 헤쳐나가며 이루어냈지만 남자였을 때 낳은 아이들과는 함께 하고 싶지만 아빠나 엄마의 칭호가 아닌 고모의 칭호로만 지낼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과 전 아내에게도 죽음을 위장하였기에 스스로의 변화된 모습을 그녀에게 말할 수도, 더 가까이할 수도 없는 복잡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트렌스젠더인 인물이 처한 상황, 뭐든 할 수 있는 동시에 뭐든 하기 애매해져버린 한 인간을 보여주게 되는데 굉장히 현실적이면서 처연하게 보여준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가 흥미로운 점은 트렌스젠더이면서 레즈비언인 "에밀리아"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무작정 두 가지 소재를 이용한 돌림노래를 구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밀리아"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맞이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행하고자 스스로 멕시코의 시신을 수습하는 협회를 만들어낸다. 협회 활동을 하면서 과거의 어두웠던 삶을 청산하려 했지만, 남아있던 지난 삶의 흔적들은 작품이 종료될 때까지 그녀의 발목을 잡고, 그녀가 바라고 행하고자 하는 것들에 제약을 걸고자 했다. 작품 속 "에밀리아"를 성전환시키기 위해 "리타"가 찾은 의사가 "리타"와의 대화를 통해 전한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의사는 "리타"에게 단순히 몸을 변화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맞지 않겠냐는 말을 전한다. 영화는 이 지점을 기점으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드러내는데, 작품은 과거 삶을 청산하고자 몸과 신체를 변화시킨 그 인물이 과연 그 삶을 청산할 수 있는지, 그 삶의 흔적들과 발자취들에게서 벗어나 용서를 빌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리타"의 존재와 역할이 또한 굉장히 작품 내에서 인상적이다. 멕시코인이면서 동시에 여자라는 이유로 내려진 사회의 수갑은 변호사가 되었지만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일에 깊은 회의감을 가졌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에밀리아"의 과거 삶의 이름인 "마니타스"의 의뢰는 그녀를 멕시코시티에서의 동네 변호사에서 런던 상류층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성공한 변호사로 변신시켜주었다. 어쩌면 "에밀리아"만큼이나 영화는 "리타"에게도 2번째 삶을 제시하고, 그렇게 바뀐 상황 속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식의 이야기를 펼친다. 이후 장면 속 과거 삶 속 사람들을 다시 만난 "리타"는 그녀에게 잘 보이고자 알랑방귀 뀌는 그들에게서 인간혐오심을 느끼며 본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넘버를 선보인다.
결국 영화는 인간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인간이 과연 달라질지, 그 말로는 어떻게 될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마무리로 던진다. "에밀리아"의 전처인 "제시"는 "에밀리아"가 남편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녀에게서 벗어나 새 살림을 차리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하다 그녀가 모든 계좌를 동결시키자 "에밀리아"를 납치하여 협박한다. 그러자 "리타"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무장한 이들을 동반해 협상 장소로 찾아가지만 총격전이 벌어지고 말았고, 어지러운 상황 속 정신을 차린 "에밀리아"는 "제시"에게 사실을 고한다.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제시"는 결혼 예정자가 "에밀리아"를 차량에 싣고 운전을 해 함께 도망치려 할 때 차를 세우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게 되고, 차량은 결국 전복되어 모든 이들이 사망하게 된다. 결국 모든 이들이 사망하고, "에밀리아"의 자식들은 "리타"에게로 향했고, 멕시코 시티의 많은 사람들이 멕시코 시신 수습 협회를 이끌었던 "에밀리아"의 비고를 함께 추모하며 영화가 막을 내린다.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전 삶의 흔적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갱생받은 삶을 통해 결국 그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일까? 영화는 이런 질문에 인물들의 말로를 보여주면서 관객 스스로 그 선택지들을 통해 답을 내리게끔 유도한다. 영화적으로 한번쯤 다루었으면 했던 것들, 다룸으로써 전세계 관객들이 한번쯤 이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하는 것들에 대해 영화는 거침없이 달려나가 임무를 수행한다.
다만 필자가 본 작품에 대해 심히 고민이 되고, 생각이 많아졌던 이유는 바로 영화의 복잡성 때문이다. 마치 몸에 좋고, 맛에 좋은 수 만가지의 식재료를 모두 긁어모아 음식을 만들려했지만 결과적으론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거 같은 느낌을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잊을 수 없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좋은 영화, 명작의 반열에 들어설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와 주제를 관객에게 내던지고, 그저 제시함으로써 그만일 것이 아닌 관객의 손을 꼭 잡고 주제를 안내하고, 메시지까지 관객이 지치지 않고 도달할 수 있게끔 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본 작품의 경우 전자에 속한다고 생각되었다. 물론 너무 좋은 소재이고, 파격적인 소재였으며, 그 안의 OST나 넘버들이나 배우들의 연기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장점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하나의 작품으로 소화시키는 과정이 굉장히 어색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위의 언급과 같이 호불호의 영역이고, 개인적 견해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필자의 기대가 컸던 것인지 다소 아쉽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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