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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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두리안이라는 가수가 부른 <i'm still loving you>라는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 ost였고 어렵지 않은 노래여서 초등학생들도 많이 따라 부르곤 했다.
그 노래가 영화 <첨밀밀>에 수록된 노래의 번안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첨밀밀, 달 첨(甛)자에 꿀이라는 뜻을 가진 밀(蜜)이 두 개나 붙은, 그야말로 달고 달고 달다는 뜻을 가진 이 영화는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
지하철에서 깜빡 졸다, 뒤에 앉은 사람이 내리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내려야 할 역에 제대로 내린 소군.
소군은 돈을 벌기 위해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왔다.
중국 본토에는 소정이라는 약혼자가 있고, 돈을 벌어서 소정과 결혼을 하려고 한다.
본토 사람인 탓에 광둥어도, 영어도 하지 못하는 소군은 겨우 고모네 집 쪽방에 머문다.
우리나라 고시원보다도 좁은 방이지만 공용공간이 있으니 아주 불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소군은 자전거를 정말 잘탄다. 자전거를 타고 닭을 배달하고 자전거를 타고 홍콩 이곳저곳을 다닌다.
중국에는 없는 맥도날드도 간다. 그러나 광둥어를 못하는 소군은 계산대 앞에서 우물쭈물할 수밖에.
알바생 이요는 소군의 주문을 받아주면서 홍콩에 살려면 광둥어와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귀띔한다.
솔깃한 소군은 이요를 따라 영어학원에 등록한다. 물론 이요가 수수료를 떼먹는다. 이요는 영어학원에서도 알바를 하니까.
본토 사람이면 테레사 탱(등려군)에 환장한다는 생각을 한 이요는 소군과 함께 테레사 탱 카세트 테이프를 파는데, 대실패다.
대실패여도 그 둘은 여전히 테레사 탱을 좋아한다.
이요와 소군의 공통점은 돈을 벌기 위해 홍콩에 왔다는 것과 테레사 탱을 좋아한다는 것뿐이다.
영화에서 테레사 텡의 <월량대표아적심>이 나올 때마다 괜히 보는 사람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홍콩인들에게 욕을 가르치는 서양인 선생은 소군의 집에 사는 젊은 여자와 연애하고, 소군은 소정에게 자주 편지를 쓴다.
이요는 돈을 벌 생각밖에 없지만 타향살이의 외로움 때문인지 금방 소군과 가까워진다.
소군의 집에 놀러가서 같이 국수도 먹는다.
소군은 이요가 남긴 국수를 마저 먹는데, 의외로 그런 사람이 있다. 나도 그렇다.
내가 남긴 걸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걸 보면 뭔가 묘한 기분이 든다. 이요도 그랬는지 모르겠다.
집에 가려고 옷을 입는데 단추가 잘 잠기지 않는다. 그걸 도와주는 소군.
단추를 끼우려면 가까이 가야 하고, 가까이 가다 보니 뭐, 쌔빠지게 잠가놓은 단추를 다시 다 푼다.
소군은 참 눈치도 없다.
약혼녀에게 줄 팔찌를 이요에게 골라 달라고 하면서, 이요에게도 똑같은 팔찌를 선물한다.
세상 어떤 바보가 약혼녀와 애인(까지는 아니지만)에게 같은 팔찌를 선물하겠나.
그런데도 소군은 왜 이요가 상처받았는지 알지도 못하는 눈치다.
돈밖에 모르는 이요는 주식도 꼴아박고(남 얘기 같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마사지숍에서 일하게 된다.
소군은 이요를 돕고 싶지만 이요는 순진한 바보 소군이 부담스럽다.
한날, 마사지숍에 온 손님이 무서운 게 없어 보인다고 하자, 이요는 쥐 빼고는 무섭지 않다고 한다.
그 손님은 다음번에 친구를 데려 왔다고 하며, 험악한 문신 사이에 작게 새겨진 미키마우스를 보여준다.
이요와 함께 하게 된 파오다. 암흑가 보스. 돈도 많다.
이요와 소군은 헤어지고 3년만에 지인의 결혼식에서 재회한다.
소군은 소정과 결혼했고, 이요도 파오와 함께다.
아주 좁은 복도에서 튀김인지 뭔지를 먹는 이요와 이요를 바라보는 소군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더니, 기어이 그 둘은 예전에 함께 보내던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함께 새로운 곳으로 가서 다시 시작하려 한다.
소군은 소정에게 진실을 말했지만 이요는 파오에게 말하지 못한다.
파오가 대만으로 도주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요는 돌아오지 않고, 소군은 부두에서 하염없이 이요를 기다린다.
세월이 흘러 소군은 미국으로 건너가 식당 주방에서 일하고, 때마침 이요와 파오도 미국에서 도피생활 중이다.
이요는 소군이 만든 닭요리를 맛있게 먹으면서도 소군이 만든 줄도 모른다.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하다. 그렇게 가까이에 있어도 한 번도 못 만난다.
이요와 파오의 미국 생활은 얼마 가지 못한다. 흑인 아이들에게 공격받은 파오가 총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죽은 파오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간 이요는 등 쪽으로 몸을 돌려 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등에 새겨진 미키마우스를 본다.
피식 웃는 이요의 웃음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더 슬프다.
파오의 죽음으로 미국에서 강제추방될 상황에 놓인 이요는 경찰차 안에서 우연히 소군을 본다.
예의 그 멋진 자전거 타는 모습은 미국에서도 그대로다.
경찰들은 이요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줄 알고 차별적 언행을 이어간다.
이요는 경찰차에서 탈출하여 소군을 쫓아가지만 실패하고, 그 이후 이요는 본토로 돌아가고자 여행가이드로 일한다.
그리고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우연히 TV에서 테레사 탱이 죽었다는 뉴스를 본다.
그리고 옆에 누군가 다가온다.
소군이다.
영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소군의 뒷자리에 앉아있었던 사람을 비춘다.
그는 이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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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홍콩의 중국 반환에 대한 우화로 보는 사람도 있으나, 나는 그냥 로맨스 영화로 알고 싶다.
사랑이 사랑인 줄도 모르고 지나가버렸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만약 우연히라도 만나게 된다면...' 하는 상상도 해본다.
인연이란 무엇일까.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되고, 아닌 사람은 어떻게든 헤어지게 된다는데,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멀어진 인연은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한용운, <님의 침묵>)지만, 다시 만날 가능성은 너무도 희박하다.
그래서 인연이라는 말을 자꾸만 의심하게 된다.
돌고 돌고 돌아서 다시 만나게 되는 인연은 너무 고통스럽다.
너무 고통스러운데 멈출 수가 없는 게 사랑이다.
모르겠다. 그냥 사랑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