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까기의 종이씹기2025-07-20 11:17:06
돈 때문에 만든 시리즈의 최후
<오징어 게임 시즌 3> 리뷰
스포일러 주의!
<오징어 게임 시즌 3>는 게임을 멈추기 위해 대규모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처절하게 실패한 성기훈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쿠데타 진압 과정에서 게임 진행에 반대 표를 던졌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망하면서 게임을 멈출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고, 이에 절망을 느낀 기훈은 실패의 원인을 겁먹고 탄창을 가져오지 않은 강대호에게 있다고 판단하여 그를 향한 원망을 내비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의 이름은 '숨바꼭질'로, 참가자들을 파랑 팀과 빨강 팀으로 나누어서 진행을 하는 게임이다. 파랑 팀은 제한 시간 이내에 생존하거나 게임 방을 탈출하면 통과할 수 있고, 빨강 팀은 칼을 들고 파랑 팀을 1명 이상 죽여야 통과할 수 있는 게임이다. 게임에 참가한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걱정을 품고 있을 때, 빨강 팀이 된 기훈은 파랑 팀이 된 대호를 타깃으로 잡는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고 대호와 대면하는 순간부터 점차 변화하는 기훈의 모습을 담은 <오징어 게임>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일단 <오징어 게임 시즌 2>를 재미있게 봤건, 재미없게 봤건 간에 <오징어 게임 시즌 3>에 대한 궁금증을 품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시즌 2와 시즌 3는 사실상 하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과연 전편(전반부)에서 쌓아놓은 이야기들을 이번 작품에서(후반부)에서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언가 보여줄 것이 많아 보였던 시즌 2와는 달리 <오징어 게임 시즌 3>는 애당초 하고픈 말이 있기나 했던 건지 의문일 만큼 총체적 난국을 보여준다. 문제점들이 너무 많아 어떤 점을 먼저 짚어야 할지 난감한 수준인데, 가장 큰 문제는 여기저기로 흩어졌던 이야기를 한 데 묶어 마무리를 짓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 있다.
<오징어 게임 시즌 3>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의 이야기 줄기를 가지고 있다. 분노 때문에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되찾아가는 성기훈의 이야기, 섬을 찾아 형에게 만나려고 하는 황준호의 이야기, 진행 요원으로 참가했다가 박경석을 구출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는 강노을의 이야기. 이렇게 세 갈래로 흩뿌려진 이야기가 어떻게 하나로 묶일지, 각각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으나, 놀랍게도 이 드라마는 기대했던 것과 완전히 정반대의 흐름으로 간다. 기훈은 실패했다. 단지 쿠데타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실패했다. 그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대호를 죽였다. 무리하게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은 죄에 더해 살인까지 저질렀다. 준호도 실패했다. 그는 본래 기훈과 함께 섬을 찾아 게임을 막아야 했지만, 프론트맨의 정체를 함구해버리는 바람에 기훈은 인호의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노을도 마찬가지다. 진행 요원으로 참가한 노을은 탈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족을 버리고 도망갔다. <오징어 게임 시즌 3>는 이러한 실패를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 스스로 자신의 실패를 바로잡는 이야기로 나아간다. 즉, 이 작품은 속죄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기훈에게는 아이를 지켜달라는 약속이 주어지고, 준호에게는 섬을 찾아야 하는 의지가 주어졌으며, 노을은 경석과 경석의 딸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이 주어진다. 여기까지의 구성은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나는 오히려 속죄라는 소재를 끼워 넣으려는 본 작품의 시도가 굉장히 어설프고 게으르며 전체 서사를 망쳐버렸다고 생각한다. 먼저 기훈은 내게 보기에는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인물이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살인을 저지르면서 자기 손으로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훈은 누군가를 구해주는 한이 있어도 철저히 인간성을 잃고 폭주하는, 파멸의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드라마는 기훈을 마지막까지 평범한 사람을 대변하는 존재로 만들려고 하며, 아이를 지키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그의 희생을 숭고하고 성스러운 행위로 묘사한다. 이에 대한 첫 번째 불만은 이해 가능한 범주를 넘어선 기훈에게 '평범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집어넣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의문이고, 두 번째로는 아이를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낡고 얄팍한 방식에 있다. <레옹>부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까지 이어지는 '아이를 구하는 것으로 그 모든 죄를 속죄 받는' 방식은 이제 너무 고리타분하고 편의적이지 않은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그럴듯하게 서사가 완성된 기훈에 비해 준호와 노을의 서사는 처참하다. 준호는 막말로 분량을 통으로 삭제해도 상관없을 만큼 존재의 의미가 없는 인물이다. 섬을 찾아야 한다는 의지만 주어졌을 뿐,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 탓에 준호의 서사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배처럼 작품에서 홀로 겉돈다. 심지어 섬을 찾은 이후에도 인호를 향해 "형!'이라고 외치는 것을 끝으로 활약이 끝나버리는 바람에 본 이야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다 결말에 가서 아이와 456억이 주어지는데, '대체 왜?'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는 결말이다. 아이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 준호가 왜 이런 결말을 맞이하는지에 대한 설득 과정이 전무하기 때문에 본 결말은 그저 황당하기 짝이 없다. 노을은 기훈보다 더 죄가 심각한 인물이다. 가족을 버린 것은 물론 직접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해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다른 요원들이 장기매매를 하지 못하도록 참가자의 내장을 파괴해 줬으니 됐다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고, 경석과 경석의 딸을 살리는 데 성공하게 만들면서 노을을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딸에 대한 그리움이 있고 안면식이 있는 사이여도 그렇지 왜 그렇게까지 경석과 경석의 딸을 구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세상 모든 딸은 다 구할 속셈이 아닌 이상에야 목숨까지 거는 이유가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연들의 이야기가 이 모양인데 조연들의 이야기는 말할 필요가 없다. 가뜩이나 주연 다루기도 바쁜데 나머지 조연들은 어떻게 퇴장시킬지 차마 신경을 못 쓴 감독은 각 인물들에게 가장 최악의 방식의 퇴장을 안겨준다. 쿠데타를 실패하는데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 대호는 이후에 기훈과의 갈등을 더 길게 보여주거나, 나중에 기훈이 용서하면서 둘이 다시 합심하는 그림을 만들 수도 있었으나 작품은 기훈에게 더 큰 죄를 안겨주기 위해 그에게 손쉽게 살해당하면서 허무한 퇴장을 맞이한다. 현주는 등 뒤로 접근한 명기에게 저항도 못하고 단번에 사망하면서 올바른 행적에 걸맞지 않은 최후로 시청자를 허망하게 만든다. 금자는 방금 막 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친아들을 (사실상) 살해하는 놀라운 행적을 보이고 작품의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기 위해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식으로 초라하게 끝맺는다. 세미와 타노스의 죽음으로 뭔가 보여줄 것 같았던 민수와 남규는 마약에 취해 별다른 활약도 못해보고 끝까지 약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죽는다. 그나마 명기와 준희가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을 맞지만, 애를 낳고도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준희를 보고 있자니 마음만 먹으면 줄넘기도 쉽게 통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시청자 모두가 노을이 총을 가지러 엘리베이터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혼자만 모르다가 뒤늦게 눈치채는 멍청한 부대장, 아무런 활약도 못 해본 프런트맨, 마지막까지 존재 자체가 의문이었던 극한의 컨셉질을 하는 용궁 선녀, 그냥 사람을 죽이는 것 외에는 '오징어 게임'스러운 재미는 전혀 찾을 수 없었던 숨바꼭질, 뒤를 돌거나 땅을 짚어야 한다는 규칙이 없어서 심심했던 줄넘기, 시즌 1의 구슬치기와 징검다리와 너무 유사한 전개 흐름, 전혀 풀리지 않은 게임의 기원과 프론트맨의 과거사(타노스가 자식 얘기로 조롱하자 갑자기 화를 내는 모습에 대한 설명) 등 단점이 너무 많아서 다 꼽으려면 밤을 새워야 할 정도다. 더 심각한 건 작품의 교조적 태도로, 기훈의 "우리는 말이 아냐, 사람이야. 사람은..." 대사를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치는데 이는 인물들의 죽음을 오락으로 소비하는 시청자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오만하다. 만약 정말로 그러한 의도로 넣은 장면이라면 죽음을 오락으로 소비하여 돈을 벌고 전당에 앉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고, 더 나아가 데스 게임이라는 사람 죽이는 것으로 재미와 쾌감을 얻어내는 장르에서 이런 메시지를 담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다. 만약 그러한 의도가 아니라면 연출을 단단히 잘못한 것이고.
황동혁 감독은 어느 한 인터뷰에서 <오징어 게임>(정확히는 시즌 2)이 재미없으면 그건 당신이 우울한 것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위험한 발언이지만 그래도 창작자가 스스로의 작품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작품을 잘 만들고 나서 그런 소리를 해야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오징어 게임 시즌 3>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졸작이다. 시리즈의 마무리로도, 데스 게임 장르의 재미로도, 인간의 속죄에 대한 이야기로도, 자본주의 비판으로도, 어느 것 하나 성취하거나 좋다고 할 만한 부분이 없다. 시즌 2와 시즌 3는 만들지 말아야 할 속편의 예시로 계속 소환될 것이며, 남은 것이라고는 감독의 오만한 태도뿐이다. 창작자가 자아도취에 빠져 작품을 만들면 이렇게 된다.
별점: ★☆
- 1
- 200
- 13.1K
- 123
- 1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