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2-24 08:22:07
누구도 주인공일 수 없는 아메리칸드림의 잔혹한 설계도
영화 〈브루탈리스트〉

전쟁 중인 유럽을 탈출해 미국에 도착한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가 한 성매매 업소에서 남성 성노동자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난 그런 쪽 아니야’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장면은 그가 훗날 마주할 해리슨의 끔찍한 성폭력을 예감하는 것이 아닐까. ‘이쪽’과 ‘저쪽’의 구획에서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선언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해리슨에게 강제로 자리를 부여받는 라즐로가 느낄 비감이 도입부의 이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느꼈다.
재능 있는 유대인 건축가가 이주 후 미국 하층부를 전전하다 한 거부의 눈에 들어 대형 프로젝트를 맡은 후 종내에는 영광을 얻는다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우리가 이미 여러 영화에서 본 이방인의 성공 스토리와는 결이 다르다. 노인이 되어 휠체어에 탄 채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는 전시에 참석한 그의 얼굴은 피로해 보인다. 라즐로 부부를 떠나 이스라엘로 향한 조카 조미아가 정작 라즐로 삶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무대 위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삼촌의 업적을 설명하는 대목은 그의 피로감에 공허함을 더한다.
‘성공한 유대인’이 있는 것은 맞다. 그들의 성취는 종종 아메리칸드림의 증거로 전시된다. 그러나 그 성공은 아름답지 않았다. 지적 허영과 과시욕, 속물적 근성의 화신, 즉 가장 미국적인 인물인 해리슨은 라즐로를 자신의 자랑스러운 수집품 정도로 대우하고, 라즐로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술 취한 그를 강간한다. 그는 라즐로에게 “넌 그저 밤거리 매춘부야”라고 말한다. ‘선’을 넘지 말라는 선언이다. 라즐로 프로젝트의 철학과 예산이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자 미국 사회의 주인은 돈이며, 그 돈을 가진 사람은 나라는 점, 즉 자신은 성 구매자이며 너는 성 판매자라는 점을 라즐로에게 극한 모욕을 주는 방법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라즐로는 그 충격에 휩싸여 더욱 자신의 예술적 목표(혹은 해리슨의 야망)인 건축물에만 집착하고 자신이 쌓아 올린 건축물에 유폐된 듯 영혼을 강탈당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라즐로는 걸작을 창안했으나 영혼을 상실했고, 미국식 속물주의를 대변하는 해리슨은 사건이 폭로된 이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으며, 늙고 지친 라즐로를 기념하는 행사에서는 과거 그를 떠난 조카가 확신에 찬 얼굴로 숙부의 업적을 칭송한다.
이 영화가 아메리칸드림의 오욕에 관한 문제 제기라는 인상을 받은 건 그래서다. 이 세 사람이 이루는 구도에서는 누구도 온전한 아메리칸드림의 주인공일 수 없다. 자수성가했다는 자부심으로 예술에 대한 심미안 없이 뭐든 돈으로만 하려는 해리슨도, ‘걸작’을 만들었으나 생기를 잃어버린 라즐로도, 홀연히 등장해 숙부의 성취‘만’ 이야기하며 뒤늦게 자신이 라즐로의 혈육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조미아도.
영화가 한창 건축이 진행 중일 때 고통받던 라즐로를 비추다가 갑자기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노쇠한 라즐로의 얼굴로 점프하는 것은 아메리칸드림에 영광은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적 설계의 일환일 것이다. 사람들은 완성된 건축물만 본다. 그 이면의 설계도를 상상하지 않는다/못한다. 그러나 영화는 반대로 ‘라즐로의 아메리칸드림’에서 완성물이라 할 그의 건축물과 그로부터 피어나는 영광의 순간들을 뺀 채 그 영광의 설계도만 보여준다. 누군가의 장식품으로서만 예술가일 수 있었던 이방인, 그런 이방인 예술가들이 없었다면 구축되지 않았을 미국이라는 허상, 설계 과정의 문제는 덮고 결과물만 바라보며 찬사를 보내는 사회가 이방인의 아메리칸드림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누구도 주인공일 수 없는 아메리칸드림의 잔혹한(brutal) 설계도 말이다. 라즐로가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을 추구하는 브루탈리스트였다는 점은 이 설계도가 품은 역설을 더한층 도드라지게 한다. ‘사람은 죽어도 예술은 남는다’는 통념 혹은 진실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Relative contents
-
- [씨네피커] 촬영팀 세컨드 / 촬영팀 추천 영화
Q. 7월의 씨네피커 촬영팀 형정훈님의 마지막 에피소드인데요. 촬영감독으로써, 촬영 추천 영화를 소개해주세요.
추천 영화가 많은데, 우선 첫 번째는 종류를 따지자면 기술적으로 정말 촬영이 잘 된 영화를 보고 싶다면 로저디킨스나 엠마누엘 루베스키 감독 영화를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버드맨>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그리고 <1917> 이런 롱테이크를 다룬 영화들이 아무래도 촬영이 돋보이는 영화라서 촬영에 대해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번째로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로 생각을 했을 때는 저는 봉준호 감독님 영화가 진짜 좋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기생충>도 그렇고 <옥자>도 좋았고 <마더>도 그렇고 저는 다 카메라가 인상 깊게 분석을 하면서 봐야 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 카메라를 분석하면서 봤을 때 정말 많은 이야기와 그 의도들이 보인다면 공부를 많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또 여러모로 촬영이 인상깊었던 작품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그리고 <버닝> 이 두 작품인데요, 말하다 보니까 한경표 감독님의 작품이 좀 많네요. 촬영 감독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작품들을 보고 자신만의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보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Q. 촬영 감독을 꿈꾸는 분들에게 혹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촬영 감독은 좀 책임감이 정말 많이 필요한 직업인 것 같아요. 그 책임감을 갖고서 작품을 완성해냈을 때 그 또 다른 뿌듯함이 정말 큰 직업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직업들이 많지만, 저는 카메라 감독도 그런 직업이라고 생각을 해요.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이미지를 형상화시키면서 담아내는 작업을 하는 게 촬영 감독이니까요. 일을 하다 보면 정말 힘들고 무너질 때도 많고 그리고 세상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구나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경험이고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본인의 노하우가 생기고 하면 좋은 작품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혹시 촬영감독을 꿈꾸는 분들이 계시다면 저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라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포기하지 않고 본인이 계속 노력하고 많은 작품들을 보게 된다면 좋은 촬영 감독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다크홀> <배드 앤 크레이지> <더 글로리><마당이 있는 집> <유괴의 날> 현재 방영중인 <감사합니다> 까지 차근 차근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형정훈님의 촬영추천영화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영화를 보고 공부하며 단단하게 준비해오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에서 유로, 글에서 영상으로 자신의 색을 가진 콘텐츠를 만들어갈 미래의 촬영감독님을 기대합니다.
-
- 젊은 다이애나 스펜서의 슬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아주 어렸을 때 아이가 사람들의 손을 타면 안 좋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누구나 너무 예뻐하고, 예쁘다고 쓰다듬고 한 번 볼 걸 두 번 보게 되는 아이는 명이 짧다나. 그리고 그들은 익명의 죽은 아이들이 얼마나 예뻤으며 주변에서 얼마나 예쁘다고 난리였는지 회상했다.
이제는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모두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어떻게 무너지는가. 우리는 그런 케이스들을 자주 확인했다. 영화를 보면서 몇몇 사람들을 떠올렸다. 관심이라는 포장을 씌우면 비수도 무디어지는지 모를 일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영국에서는 당연하고,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평범한(사실 귀족 출신이지만) 유치원 교사 여자가 왕자님과 결혼하는, 말 그대로 신데렐라와 같은 러브스토리로 비추어졌다. 레이디 다이애나의 결혼식부터해서 패션까지 유행했고 그 스타일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한편으로는 모나코 공국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와도 비교할 수 있겠다. 그들은 다 떠났는데 디올의 레이디백, 에르메스의 켈리백은 아직까지 사랑받는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사흘간의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이다. 다이애나는 기사도 없이 별장으로 향한다. 지도를 보아도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내비게이션은 정말 대단한 발명품이다). 한참을 헤매다 보니 어릴 적 살던 동네이다. 아버지의 외투로 만든 허수아비를 발견하고서야 깨닫는다. 그걸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결국 여왕보다 늦게 별장에 도착한 다이애나는 별장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삐걱거린다. 크리스마스를 즐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별장에 들어왔을 때의 몸무게와 나갈 때 몸무게를 재는 것.
이 관습은 단지 '재미'로 시작되었다. 몸무게를 다는 것이 재미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몸무게의 족쇄로부터 벗어나 있는 사람뿐이다. 대상화되지 않는 쪽, 관찰자인 쪽이다. 관찰자는 누구인가. 권력을 쥐고 있는 쪽이다. 영국의 제레미 벤담이 설계한 판옵티콘처럼, 보는 자는 권력을 쥔 자이다.
웨일즈의 공주, 왕세자비, 신데렐라인 레이디 다이애나는 안타깝게도 언제나 대상화되었다. 궁 안에서는 궁의 예절와 법도를 어기지 않는지 감시받아야 했고, 궁 밖에서는 파파라치들의 카메라에 비친 관찰자였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기자들과 파파라치들이 따라붙는 삶, 매일 얼굴이 신문 1면에 대문짝하게 나오는 삶, 뭘 입고 뭘 했는지 모두가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자신은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삶이란 얼마나 끔찍한가.
그때 한 명이라도 자기의 편이 있다면, 아주 작은 진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나마 거기에 기대어 살겠다. 다이애나에게 남편 찰스 왕세자가 그 역할을 해주었어야 했으나 찰스는 그럴 수 없었다. 그에게는 다이애나와 결혼하기 전부터 만나왔고, 결혼 후에도 정리하지 못한 여자가 있었으니, 아내는 그저 왕실에 맞는 허울을 뒤집어 쓴 껍데기에 불과했다. 심지어 내연녀와 똑같은 진주목걸이를 선물받았다는 걸 아는데도 그 목걸이를 크리스마스 내내 걸어야 하니, 지옥이 달리 지옥이 아니다.
다이애나도 그렇지만, 왕실 역시 다이애나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인들의 모든 관심은 다이애나에게 쏠려 있었다. 왕자인 찰스가 가장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찰스 왕자의 비(妃) 다이애나'가 아닌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남편 찰스가 되어버린 꼴. 게다가 딱딱하고 절제되어 있던 왕실의 분위기와 다이애나의 다정한 이미지 사이의 괴리 때문에 영국 사람들은 다이애나에게 더욱 열광했다.
영화에서 찰스의 역할은 미미하다. 찰스뿐만 아니라 왕실의 누구도 돋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역도 없고 다이애나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하지만 가장 나쁜 것은 방조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을 쳐다보지만, 왕실에서 다이애나는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크리스마스 이브 밤, 아이들과 함께하는 놀이에서 '엄마는 왜 슬픈지' 묻는 큰아들 윌리엄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먹은 것을 다 게워내는 다이애나에게, 남편 찰스는 위로는 커녕 요리사들을 생각해서 토하지 말라는 말을 할 뿐이다. 그나마 다이애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시종 매기까지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자 다이애나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사방에 믿을 사람 하나 없는 다이애나는 앤 불린의 책을 읽으며 불안에 떨기 시작한다. 앤 불린은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이다. 숱한 여자들과 바람을 피운 헨리 8세는 오히려 앤 불린에게 외도의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앤 불린은 참수형으로 죽는다.
다이애나는 아마도 앤 불린에게 자신을 투영한 것 같다. 정작 바람은 본인이 피우고 있으면서도 다이애나를 단속시키는 찰스의 모습은 헨리 8세를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그러지 않아도 다이애나는 임신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몇 번의 자해가 있었고, 거식증과 폭식증도 있었다. 그럴 때 누구라도 다이애나의 곁에 있어주었더라면 사정이 좀 나아졌을까.
먹지도 못하고, 행사에 참여도 하지 못하던 다이애나는 자꾸만 어릴 때 살던 집으로 가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저지당한다. 기어코 폐허가 된 옛날집에 들어갔을 때, 다이애나의 눈앞에 유년시절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웨일즈의 공주, 왕세자비, 레이디 다이애나가 아닌 '다이애나 스펜서'로서의 삶.
크리스마스 연휴 마지막날에는 꿩 사냥이 관습인가 보다. 꿩은 아름다운 깃털을 가졌지만 사냥용으로 길러질 뿐이다. 죽임을 당하기 위해 사는 존재. 작은아들 해리는 아직 꿩 사냥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왕실의 법도에 의해 꿩사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이애나는 꿩 사냥터에 나타난다. 그리고 아들들을 데리고 별장을 떠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최고급 셰프가 만든 복숭아 수플레가 아닌 KFC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KFC 점원이 주문자의 이름을 묻자 다이애나는 말한다. '스펜서'
*
<스펜서>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삶을 새롭게 써보고자 했다. 다이애나에 관한 영화는 이미 몇 편 나와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다이애나의 사랑, 안타까운 이별 등이 아니라 왕실의 일원으로서 다이애나의 슬픔과 불안, 우울 등의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비운의 왕세자비' 같은 타이틀 말고, 인간 다이애나 스펜서에 관하여.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이혼 후 활발하게 사회운동을 해나간다. 아프리카 빈민구조, 지뢰제거, 적십자 활동 등을 해나가며 '대상'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이혼 후에도 파파라치의 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파파라치를 피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모자라, 즉사가 아니었음에도 파파라치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쳐 죽고 말았다. 영국 국민들은 슬픔에 잠겼으나 왕실은 끝까지 냉정했다. 그러다 블레어 총리까지 추모를 할 것을 촉구하여, 왕실장으로 장례식을 치른다. 그때 윌리엄, 찰스 왕자는 고작 10대 초중반이었다. 엄마가 죽었는데도 왕실의 법도를 따르며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그 심정을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비극은 어쩌면 현대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뻣뻣한 왕실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해리 왕자와 결혼한 매컨 마클은 신문사의 횡포에 참지 않고 사생활침해 소송을 꾸준히 하고 있다. 물론 왕실의 인종차별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모두의 관심 속에 사는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한두 사람의 사랑이 지지대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는 관심이라는 무기로 너무 많은 사람들을 보냈다.
관람 포인트
* 다이애나 역을 맡은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목소리와 발성이 거의 다이애나 그 자체였다. 영화 상영 전에 잠시 크리스틴의 인터뷰를 보여주는데, 다이애나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찾아보고 연구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목소리도, 제스추어나 표정도 옛날 다이애나비의 영상 속의 그 모습 같다. 영화를 보기 전후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영상을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찍은 클레르 마통이 촬영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도 보여주었지만 그가 보여주는 미술적 감각은 정말 아름답다. <스펜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
- [JIMFF 인터뷰] 배우와 황동희가 일치하는 순간까지 달려가고 싶습니다
배우와 황동희가 일치하는 순간까지 달려가고 싶습니다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경쟁 장편 영화로 선정된 '나의 여신'은 전통 무속을 심도 있게 재현하면서 특히 굿의 음악적, 무용적 측면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영화다. 8월 12일,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에서 황동희('나의 여신' 부계석 역) 배우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영화 '나의 여신'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나의 여신'이란 작품은 민속학자 선호가 제주도 최고의 심방(무당)을 연구하기 위해서 소미(무당의 조수)가 되려고 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선호 이전에 원래 심방의 소미였던 부계석 역을 맡았는데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소미가 되려고 하는 선호를 견제하는 역할입니다.
부계석이라는 역을 소화하기 위해 추가로 준비하신 거나 공부하신 게 있으신가요?
직접 제주도 굿을 보기도 했고 한국무용과 현대무용도 배웠습니다. 또 사설도 읽었고 이자람 님에게 판소리를 배우며 준비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배우시느라 힘들었을 것 같아요.
우선, 제가 굿이나 국악 분야를 처음 접하다 보니, 헷갈렸어요. 저는 네 박자에 익숙한데 국악은 세 박자이기도 하고…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되게 힘들었는데 손수현 배우님이 국악 전공이셔서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북 치는 법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 주셔서 재미있게 촬영했습니다.
굿과 국악은 영화 음악으로 접하기에 흔하지 않은 소재라고 생각해요.
어제 개막식에서 작품 소개 나오는데 서양 음악들이 되게 많더라고요. 근데 <나의 여신> 작품을 소개할 때만큼은 딱 토속적인 음악이 들리니까 신비롭기도 하고 아주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옆에 같이 있던 관객분들도 끄덕끄덕하면서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국제음악영화제이고 제천에서 열리는 만큼 '나의 여신'이 한국에 대한 그런 토속적인 음악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여신'에서 음악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음악에 따라서 영화가 되게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저는 촬영하면서 오케이 컷 모아 놓은 편집본도 보고, 사운드가 입혀졌을 때, 영화 음악이 삽입되었을 때도 보는데 음악을 어떤 걸 넣는지에 따라서 영화가 완전 다르게 바뀌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음악의 힘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만큼 음악이 영화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부계석을 떠올렸을 때 생각 나는 음악은 무엇인가요?
이 영화 시나리오를 받고 계석 역할을 보면서 위플래쉬의 'Caravan'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이기도 하고 되게 도전적이고 호전적이고 분노와 억압이 많이 담겨 있어서 그 점이 계석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외로 국악이나 전통음악이 아니네요? 그렇다면 부계석을 위한 테마 곡을 만든다면, 그 곡의 제목은 무엇으로 하고 싶으세요?
계선을 보면서 되게 불안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만약에 테마 곡 제목을 정한다면 ‘Unstable’로 정하고 싶습니다.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제가 그때 선배님들과의 첫 촬영이라 너무 긴장하고 얼어 있어서 불안정한 상태 그 자체였는데 선호 역할을 맡으신 윤선우 배우님이 “끝나고 내 방으로 와라.” 이렇게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너무 긴장해가지고 잘못했나? 실수했나?’ 생각하면서 갔는데 맥주랑 치킨을 사다 놓고 기다리고 계셨어요. 그리고 손수현 배우님이 모영리당을 위한 우정 링과 첫 촬영 기념 책을 사 주셔서 덕분에 긴장 다 풀리고 되게 재밌게 촬영했었습니다.
배우 황동희의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배우로서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의 이름 자체가 배우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장르를 불문하고 일치되는 순간이 올 때까지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신효림, 김민서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혜지
에디터 : 김문숙
-
- 세상을 살아가는 건 머리보단 끈기라는 걸
누구나 진학하고 싶어하는 명문고에 진학했지만 명문고 안에서는 수학 9등급에 빛나는 지우. 그런 처참한 성적인 것도 서러워죽겠는데, 학교 담임은 지우의 미래를 걱정하는 척하며,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들어온 지우를 계속 학교에서 치워버리려고 한다. 최고 명문고인만큼 사교육도 당연시되는 이 곳에서 변변찮은 사교육 하나 받지 못해 성적이 바닥을 기는 바람에 지우의 자존감도 하루가 다르게 하락한다. 자존감이 하락한 사람에게 세상은 한없이 친절하질 않는데, 그 친절하지 않은 세상에는 학교 경비 인민군도 있다. 그 인민군 때문에 지우의 녹록치 않은 학교 생활은 점점 꼬여만 가는데.......... 하지만 우연히 인민군이 수학 천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인민군 아저씨에게 수학 과외를 요청하는데, 과연 지우는 인민군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수학 점수 반등에 성공할 수 있을까?
1. 수학과 음악의 상관 관계
이 영화는 음악을 정말 적재적소에 잘 사용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수학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있는데, 음악 악보는 사실 수학 공식이 담긴 그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수학을 깨쳐야 작곡을 할 때 용이하다. 음악을 좋아하던 북한 소년(리학성)이 수학의 길로 빠져들어간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수학을 공식으로만 외우고, 외운 공식에 숫자만 대입하면 되는 과목으로 이해했던 뼛 속 깊이 문과인 나에게 수학의 세계는 누군가에겐 하나의 언어를 배우는 일임을 깨닫게 했다. 영어는 알파벳으로 움직이는 말의 세계라면, 수학은 숫자로 움직이는 하나의 언어 체계인 것이다. 파이송도 똑같다. 파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숫자 배열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숫자 배열을 음으로 치환하면, 하나의 곡이 된다는 사실이 수학은 이과생에게는 언어 체계와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파이는 그저 단순히 숫자를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악보로 기능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왜 이과생들이 수학의 세계에 심취할 때, 눈이 반짝거리는지 알 것도 같았다.
파이송을 피아노로 치는 장면을 통해서 수학이 가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지만 북한에서의 리학성이 음악을 포기하고, 수학을 선택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왜 수많은 음악가들 중에서도 바흐를 좋아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단조로운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오히려 음악을 일종의 수학의 언어체계라고 이해한 리학성에게 그 단조로운 바흐의 음악은 조화로움을 끝을 달리는 음악이었을 것이다.
2. 수학과 인생은 머리가 아닌 끈기로 하는 것
이 영화의 메시지는 굉장히 단순하다. 수학 점수를 올리고 싶다면, 나는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고 있을 시간에 끝까지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고로 비단 수학 뿐만이 아니라 우리네의 인생은 머리로 사는 것이 아니라 끈기로 살아남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다.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야. 문제가 안풀릴 때, 화를 내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뭐가 이렇게 어렵담, 내일 다시 풀어봐야지 하는 용기가 필요한 거야. 문제가 안 풀린다고 머리 싸매지 말고, 내일 다시 풀어봐야 겠다고 생각하는 게 수학적 용기다. 용기를 내라."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대사였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대사였던 것 같은데, 마음 속에 남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수학적 용기를 어떤 단어로 치환할 수 있을지 고민했었다. 나름 치열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수학적 용기를 인생에 비유한다면, 그것은 끈기일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끈기있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걸 누가 모르는가.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네의 삶에서 우리는 끈기가 가진 위력을 무시하고, 몇 번 해봐서 안된다고 많은 것을 지레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 학벌도 별로고, 얼굴도 안 예쁘고, 키도 별로 안 크고, 찌질한데다가 인기도 별로 없어."
이런 자기비하 중 단 하나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이 모든 자기비하를 다 해본 사람이다. 나는 자기비하가 좀 심한 편이고, 자책도 많이 하는 편이며, 그 자책에 파묻혀 삶의 동력을 잃어 노력하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수많은 자책의 굴레 속에서 요즘 느끼는 바가 있었다. 단번에 결과가 나오지 않아 좌절하고, 나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게 될 때, 무너저 가는 중심을 어떻게든 붙잡고, 나의 길을 가다보면, 좋은 답이든 나쁜 답이든 생길 것이다. 그 답에 따라 인생을 다시 재구성하면 된다. 인생은 한 순간이 아니라 순간들을 모아놓은 필름이기 때문이다.
수학을 풀어내는 데에 필요한 것은 공식도 아닌, 좋은 머리도 아닌 끈기라면, 인생이라는 수학 퍼즐을 푸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도 결국 끈기일 것이다. 그래서 인생도 결국 수학 퍼즐같은 것이라서 리학성도 허구헌 날 스도쿠 퍼즐 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수학과도 같은 인생을 어떻게든 풀어보고자 하는 몸부림 같은 것이랄까. 내가 인생이라는 문제를 풀어가면서 부딪혔던 슬럼프를 기억하고, 그 슬럼프를 극복했던 과정을 기억한다면, 지금 당신의 인생에 닥친 두려움도 타파할 수 있지 않을까.
3. 총평
사실 독자분들께 위로를 건네는 것처럼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이 글은 나를 위한 글이다. 나는 지금 슬럼프를 겪고 있다. 슬럼프의 이유는 다르 사람들이 나에게 내리는 평가들로 촉발된 것은 맞지만 사실 그것보다 큰 문제는 그 평가들을 받아들이고, 대처해나가는 내 행동의 미숙함, 어리숙함에서 비롯된 실수들 때문이다. 그래서 요새 내가 나에게 거는 주문은 "내가 이 미안함, 창피함을 기억하자. 그리고 다음에는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하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이런 메시지를 전해주는 영화를 보니, 영화 내용이 마음이 동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 자존감의 하락이 내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던 시기였기에 지우를 보면서 공감할 수 밖에 었었다. 그리고 지우에게 수학의 본질을 가르친 리학성에게서 인생은 단기 레이스가 아니라 장기 레이스라는 것을 배웠기에 기대 수명까지 산다면, 이제 삶의 절반도 안와본 내가 너무 오버액션이 가미된 자책과 절망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힘내서 앞으로 나가볼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클리셰와 클래식은 한 끗 차이"
특별하게 신기한 내용적 신선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비주얼적으로 정말 화려한 영화도 아니었지만 평소에 실패 때문에 자책을 많이 하는 나같은 사람들, 자존감이 낮아서 살면서 안해도 될 실수들을 많이 저질러놓고, 머리 쥐어싸매는 사람들 등이 이 영화를 보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다분히 클리셰스럽지만 클리셰도 감정을 잘 만져줄 수 있으면, 그런 클리셰는 성공한 클리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클리셰는 부정적인 단어로 많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한 끗 차이로 클리셰는 클래식이 될 수 있다.
-
- 다시 부활한 코스믹 호러
세상에 태어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다. 우리는 부모의 DNA를 이어받아 작은 존재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한 길을 걷게 된다. 태어난 순간부터 먹고, 자라며, 배우고,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 과정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된다. 학자들은 이것을 종족 유지라는 학문적 개념으로 설명하지만, 사실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단지 살아가는 본능에 의해 우리는 존재하며, 계속해서 그 본능을 이어갈 뿐이다.
이러한 생명체의 본능적인 삶은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 더욱 극적으로 묘사된다. 이 영화는 단순한 SF 호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조인간, 그리고 에이리언이라는 세 가지 다른 존재가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명확한 본능을 지닌 존재는 바로 에이리언이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폭력적인 행동을 하며, 다른 이들을 해치고 자신을 지키려 한다. 이 점에서 그들의 삶은 극도로 본능적이며,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들이 그저 생존을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주인공은 10대 인간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식민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환경은 무척 열악하다. 부모들은 일하다 죽거나 병에 걸리며, 아이들은 희망 없는 삶 속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다. 그 중심에는 레인(케일리 스패니)이 있다. 레인은 부모를 잃고 나서, 이 우울한 행성에서 벗어나 태양이 떠오르는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기를 꿈꾼다. 이 여정에서 레인과 인조인간 동생 앤디(데이비드 존슨),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은 버려진 회사의 함선을 타고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함선에 숨어있던 에이리언들이 그들의 여정에 큰 위협으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변화한다.
[첫 번째 감정] 인간 레인의 희망
레인은 직접 태양이 떠오르고 지는걸 보고 싶어한다. 종일 비가 내리는 식민행성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장면이다. 부모의 죽음이후 열심히 일하는 시간을 채워 다른 행성 이주를 꿈꿨지만, 정부에서 그것조차 허가하지 않는다. 레인의 희망은 태양이다. 태양을 볼 수 있는 어딘가로 가는 것이 그에게 남아있는 작은 희망의 조각이다. 레인은 자신이 왜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하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왜 살아가야하는가.
그 의문이 레인을 움직이게 만든다. 레인 뿐 아니라 그녀의 친구들도 그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버려진 함선에 가려고 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태어난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드는 방법은 조금 위험한 일이라도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레인 역시 고민하지만 그 일을 해보려고 한다. 태양을 꿈꾸는 그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레인에겐 동생이 있다. 기능 오류로 버려져있었던 인조인간 앤디다. 레인에겐 정말 동생같이 챙겨줘야하는 존재이고, 레인이 힘들어보이면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며 레인에게 위로를 준다. 인조인간 앤디 역시 자신이 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에겐 명확한 목표가 있다. 바로 레인을 위한 선택과 행동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감정] 인조인간 앤디의 미안함
앤디는 스스로를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함을 자주 느낀다. 그의 몸이 고장나고, 움직이지 못할 때마다 레인이 그를 리부트해 주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이는 앤디가 자신의 한계에 대해 느끼는 미안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중반부에서 앤디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더 강력한 인조인간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감정은 점차 사라진다. 앤디는 점차 기계적인 존재로 변해가지만, 그의 본질적인 존재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레인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 목적이 그를 움직이게 만든다.
앤디의 이러한 존재는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등장했던 인조인간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의 철학적인 고민과도 닮아 있다. 데이빗은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인간과 인조인간의 경계가 어디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존재다. 앤디 역시 인간적인 감정과 기계적인 존재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를 탐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의 미안함과 혼란은 단지 기계적 오류를 넘어서, 그가 가지는 존재의 이유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앤디가 다시 원래의 고장난 앤디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적인 느낌 때문일 것이다. 마치 가족처럼 레인을 생각하고 챙기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존재가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난 그 자체가 바로 가족을 위해서라는 아주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비록 인조인간이지만, 이 영화 안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다.
[세 번째 감정] 에이리언의 본능
이 영화에서 가장 순수한 본능을 가진 존재는 에이리언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단지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다른 생명체를 공격하고,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싸운다. 에이리언들은 자신들이 왜 태어났는지,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단순하다. 살아남고, 더 많은 생명을 빼앗아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 그들은 극도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존재지만, 그것은 그들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이 에이리언들을 바라볼 때, 그들의 폭력성에 경악할 수 있지만, 사실 그들 역시 생명체로서 자신을 지키고, 생존하기 위해 싸우는 존재다. 이 점에서 에이리언들의 존재는 인간과도 일맥상통한다. 인간 역시 생존을 위해 싸우고,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이러한 본능적인 생존에 대해 인간과 에이리언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가 그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에이리언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지만, 그들이 가진 본능은 그 자체로 생존의 이유를 설명한다. 반면 인간은 그 존재를 넘어 더 위대한 존재가 되고자 하며,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역시 결국에는 에이리언의 본능과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진화하고자 하는 욕망, 더 강력한 존재가 되려는 욕구는 결국 더 큰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시도에 불과할 수 있다.
성공적으로 돌아온 코스믹 호러
영화를 연출한 페데 알바레즈는 <맨 인더 다크>와 같은 작품을 통해 관객의 심리를 자극하는 스릴러와 호러 장르에서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 감독이다.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도 그는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강렬한 비주얼로 에이리언 시리즈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알바레즈는 공포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며, 단순한 시각적 충격을 넘어 심리적인 공포를 강조하는 연출을 통해 관객을 몰입시킨다. 그의 연출 스타일은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공포 영화에서 벗어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깊이를 담고 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알바레즈가 기존의 에이리언 시리즈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 설정들을 재구성하면서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 점이 돋보인다. 그는 에이리언의 원초적인 공포를 유지하면서도, 우주적 공포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성공적으로 표현해냈다. 기존 시리즈의 코스믹 호러 요소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관객에게 새로움과 익숙함을 동시에 전달했다.
케일리 스패니가 연기한 레인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 자신의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녀의 연기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을 감성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이 그녀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도록 만든다. 인조인간 앤디를 연기한 데이비드 존슨 역시 기계적인 존재와 인간적인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며, 그의 캐릭터에 깊이를 더했다. 이들의 연기는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단순한 생존 영화가 아니다. 인간과 인조인간, 그리고 에이리언의 대립을 통해 생존의 본질과 그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인간이 결코 에이리언의 위협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극악의 존재로부터 오는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
- 다큐에서 아카이빙을 활용하는 방법
<넬리와 나딘>
영화는 수용소에서 해방되어 돌아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나레이션과 함께 진행된다. 흑백의 과거 영상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했다. 이 질문에서 진행된 영화는 각 여성들의 이름과 얼굴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 지 말한다. 그 중 유독 더 집중해서 보여주는 얼굴이 있는데, 그 인물은 ‘나딘 황’이다.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화면은 컬러로 바뀌며 시간과 공간이 바뀌고 새로운 인물인 ‘실비’가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의 할머니 ‘넬리’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넬리’는 수용소에 삶 이전에 가수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수용소에 잡혀가고 거기서 적힌 끔찍한 나날 속에서 유독 많은 이름이 보인다. 그 이름은 ‘나딘 황’이다.
‘넬리’와 ‘나딘’은 수용소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나갔다. 해방된 이후에도 여생을 함께 살며 그들의 사랑은 이어져갔다. 영화 내내 그 둘의 수많은 아카이브 영상을 보면서 실존 인물인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 풍부하게 다가왔다.
수용소에서의 끔찍한 삶에서도 그 둘, 그리고 다른 수용소 사람들 또한 이 삶을 버티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사랑이라는 것을 느꼈다. 영화가 진행될 수록 이 둘이 얼마나 깊은 사랑을 하고 서로를 버티게 하는 기둥이 되어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역사는 수없이 만들어지지만, 잊혀지고 사라지는 역사들 또한 수없이 많다. 이 둘이 기억되고 우리가 알 수 있는 이유는 아카이브라는 걸 느꼈다.
잡동사니로 분류되어 방치된 기록들은 실비의 발견을 통해 <넬리와 나딘>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수많은 아카이브를 발견하고 이것들을 어떻게 엮고 만들어나갈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역사에 좀 더 집중을 해서 그 시절 수용소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아니면 성소수자들의 삶, 아시아인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 스파이가 된 이유..등등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사랑’에 좀 더 집중한 부분이 이 영화를 좀 더 따뜻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방대한 자료 속에 어떤 이야기를 취사선택 하고 진행할 지도 감독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수많은 흑백 과거 영상 속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역사가 있다. 그것은 ‘넬리’와 ‘나딘’처럼 기록되어 전해지기도 하고 , 아니면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소멸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수많은 역사 속에서 살고 있고 역사를 쓰고 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가고 보존할 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면 사라지고 소멸된 지나간 역사들를 소중히 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김군’을 찾는 영화이다. 영화에선 ‘김군’이 북한군이다, 아니다 정말 많은 말이 오고 가는 인물이다. 감독은 이 ‘김군’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수많은 아카이빙 자료를 분석하고 제시한다. 영화의 흐름에 맞춰 보는 내내 ‘김군’은 도대체 누구인가? 에 집중하게 된다.
긴장감 속에서 ’김군‘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 우리는 영화 속 등장한 수많은 ’김군‘을 마주할 수 있었다. ‘김군’은 북한군도 아니고 어떤 모함을 지닌 인물도 아닌 그저 고아로 광주를 지키고자한 평범한 인물이었다.
우리는 단 한 명의 ’김군‘이 아닌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속 수많은 ’김군‘들의 노력과 희생을 보게 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소설, 영화, 드라마, 다큐 등 다양한 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데 볼 때마다 늘 가슴이 아프고 슬퍼진다. 그만큼 이 사건이 비극적이고 끔찍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김군‘이라고 명명된 이름은 어떤 누구도 다 ’김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큐멘터리 속 ’김군‘ 찾기를 통해 이러한 일은 다시는 일어나면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또 한 번 생각하고 다짐한다.
영화 속 아카이브는 매우 적절하고 긴장감 있게 사용되었다. 그 사이를 지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기록과 역사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그렇기에 영화는 과거의 기록 자료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의 인터뷰로 구성된다. 자료로 제시된 신문기사와 사진들 속에 더해진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은 극에 더 몰입감있게 집중할 수 있었다.
<넬리와 나딘>, <김군>은 둘 다 아카이브를 사용했다. 하지만 어떤 메세지에 집중하고 관객들에게 보여줄 것인지가 다른 영화이기에 이 두 영화가 사용하는 아카이브 방식은 다르다고 느껴졌다.
<넬리와 나딘>은 풍부한 아카이브 영상과 재연 나레이션을 통해 편지를 읽는 방식을 통해 감성적인 연출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면, <김군>은 좀 더 시사적인 느낌과 추적, 추리의 차가운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이를 통해 방대한 아카이브 속에서 어떤 이야기에 집중하고 보여줄 것인지에 따라 연출하는 방식도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
- ?씨나병의 영화정보 #11? ?영화 제작팀과 연출부가 궁금하다고?!?
?씨나병의 영화정보 #11? ⠀ ?열한 번째 주제? ⠀ ?영화 제작팀과 연출부가 궁금하다고?!⠀
-
-
- 영화 <기동전사 건담 F91> 메인 예고편
깨어나라 우주! 건담 신시대 제 1장 ‘크로스본’ 시리즈의 시작! 아무로와 샤아의 최후의 결전 이후의 세계를 그린 [기동전사 건담 F91] 메인 예고편 대공개🌌!
-
- 영화 <동백> 30초 예고편
3대째 국밥집을 운영하는 괴팍한 노인 ‘순철’.
하지만 불경기로 인해 식당의 존폐 위기가 찾아오고,
착하기만 한 아들과 철없는 손주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식당에 한 낯선 손님이 방문한 후
거짓말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속상한 기억들, 같이 펄펄 끓이는 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