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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artist2025-02-24 17:23:11

확신치 않고, 늘 의심할 지어다. 그 의심 속에서 성스러운 순수함만을 찾을 지어다.

영화 <콘클라베> 리뷰

우린 왜 '역설, 반골 기질, 평소와는 다름'이 담긴 예술을 좋아하는 것일까? 이는 '창의적'과는 또 다른 갈래의 영역인 것만 같다. 우리의 생각과는 반대되는 것, 우리가 그동안 지녀왔던 그 모든 관념들과는 상이해서 이해하는데,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들을 우린 유독 예술에서 만큼은 인정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 이유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우린 예술을 경외하고, 예술이라는 분야는 예술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범주라고 여기기에 그 독창성과 다름을 단순한 틀림이 아니라 비범함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 <콘클라베>는 종교 영화라는 정립된 장르에 정치적, 철학적 이분법론과 인간의 타락과 의심이 불러일으킨 고뇌 그리고 종교개혁을 연상케하는 플롯 등을 이용해 마치 종교 영화계의 이단아, 반골과 같은 모습을 띤다. 영화는 인트로의 베일을 벗은 순간부터 클로징의 막을 내릴 때까지 종교 영화의 장르적 자세를 항상 취하지만 추리, 미스테리한 일들의 연속을 더해갔고, 지속적으로 타락과 진솔의 사이를 오가는 모습, 의심과 확신의 불안정한 수평선 사이 고뇌하는 인물을 보여주면서 영화의 깊이감을 더해갔다.

필자의 경우, 삭막한 공간 속 긴장감을 극도로 느끼거나 불안한 심정을 스스로에게도 감출 수 없을 때면 스스로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일정치 못한 박자감의 숨소리는 나의 불안감을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그 불안감의 양을 증가시키면서 신체의 무리로까지 이어지게 한다. 작품을 제작한 감독은 이런 부분들을 경험한 것인지, 영화적으로 사용하면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적절하다는 점을 아는 것인지,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주인공 "로렌스"의 등을 비추면서 연신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들려준다. 이 점은 영화의 초반부뿐만 아니라 중후반부 "로렌스"가 고뇌에 빠져 선택의 길로에 서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을 때면 이따라 등장한다. 영화 <콘클라브>는 막을 내리기 직전까지도 이 긴장감과 고뇌, 착잡함의 냉랭한 공기를 걷지 않고, 이를 숨소리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OST로 아예 관객의 머리에 분위기를 각인시킨다.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웅장하면서 동시에 영화의 전반적인 테마를 잘 담아냈다고 생각하는 OST는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긴장감을 고조시켜야 하는 상황이면 어김없이 등장해, 소위 소름을 끼치게 한다. 물론 이런 점을 매우 반복하기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다 보면 곧 OST가 나오면서 갈등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걸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은 사실 작품의 단점이면서도 안정적인 구조, 본인들이 잘 해낸 부분들을 잘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확신하지 말지어다. 항상 의심할지어다." 어쩌면 영화는 본 구절을 영상화한 작품인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누구나 종교인, 특히 교황과 그 교황이 될 후보 추기경들은 어떤 경우에도 항상 진실고, 거짓이 없으며, 종교인으로서의 사명을 다 할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고, 필자의 경우에도 무교지만 그렇게 생각해왔었다. 영화는 이 부분에서 먼저 고정관념을 깬다. 교황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새로운 교황을 뽑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선거, '콘클라베'. 교황이라는 직위가 곧 권력의 중심이라 반드시 차지하고자 하는 사람, 교황의 직위를 책임감이라고 생각해 거부하려는 사람간의 갈등이 격돌하고, 교황의 직위를 통해 종교가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전통과 신념을 보수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사람과 교황의 직위를 통해 시대적 흐름에 맞춰 종교를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의 관념들이 부딪혔다. 이 추기경은 좋은 사람이고, 교황의 자질이 있는 사람이라 추천하였지만 교황의 직위를 쟁취하고자 했던 사람에게 돈을 받은 사람 중 하나였다는, 의심이 확신이 되어가는 순간 영화는 고조로 다달아 주인공 "로렌스"와 보고 있는 관객 모두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반문하게 된다.

위 문단을 읽은 분들은 아마도 더욱 영화의 플롯에 의문을 가지실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이렇게 혼란스럽고, 갈등 상황이 많아?'라고 질문을 하실 수 있겠지만, 실제로 영화는 한 시도 관객과 주인공을 갈등의 중심지에서 놓아주지 않는다. 이런 점이 더욱 잘 드러날 수 있는 데에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오는 힘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콘클라베' 기간이기 때문에 바깥 상황과도, 외부의 그 어떠한 세력과도 만나서도, 연락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교황청을 모두 철폐하고, 모든 연락들을 끊은 상태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단 한 공간, 교황청만을 비춘다. 창문도 모두 닫히고, 문도 모두 막힌 채 바깥에서 무슨 소동이 일어나는 지도 알지 못한 채 한정된 공간 안에선 전쟁을 방불케하는 피튀기는 신경전이 오갔고, 영화는 그것만을 오로지 담아냈기에 그 서스펜스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또한 영화의 분위기와 혼란을 유지하기 위해 영화가 행한 방법은 바로 주인공 "로렌스"가 알아가는 만큼 관객도 똑같이 알아가게 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초반부와 중반부, 복도를 걷는 "로렌스"를 촬영할 때면 영화는 그의 등을 클로즈업하여 담아내는데, 이는 마치 관객과 "로렌스"를 일치시켜 그의 상황과 심리 상태에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사건의 진실을 알아가는 데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영화는 굉장히 빈번하게 카메라의 수평 이동과 부감 숏을 활용해 "로렌스"를 비롯한 주 인물들 뿐만 아니라 교황청을 채우는 모든 추기경들을 한번에 담아낸다. 한정적인 공간을 모두 채우는 그 많은 추기경들의 숫자가 빚어낸 부감 숏은 마치 관객에게 현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사건의 중압감을 선사한다. 또한 수평 이동을 통해 '콘클라베'에서 투표하고 있는 추기경들의 표정을 모두 담아내는데, 확신했던 것들이 의심이 되어가고, 한 두 차례에서 끝났을 투표가 수 차례로 이어지면서 고도화된 심리전을 관객이 모두 경험할 수 있게 되면서 극의 흥미진진함을 더해갔다.

'콘클라베'가 끝나게 되면 모든 단장직을 내려놓겠다는 "로렌스". 기도가 약해졌다는 이유이다. 그가 왜 기도가 약해져 단장직을 내려놓겠다고 이야기하는지 영화는 생각해보라고 전한다. 아마도 영화는 그가 내려놓으려 했던 이유엔 종교의 타락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믿지 않았던 이들은 정말 생각만큼의 행동들을 했고, 믿었던 이마저 사실은 타락의 결에 속했었다. 어쩌면 종교의 장을 뽑는 것인 '콘클라베'는 언쟁이 지속될 수록 정치적 논파 간의 싸움으로 변해갔고,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갈등은 좀처럼 다시 꿰놓을 수 없을 만큼 벌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영화는 이 의심과 혼돈만이 가득한 상황에 한 가지의 답을 내려준다. 그게 바로 "베니테스"였다. 의문만이 가득했던 그의 등장은 전 교황의 서명을 통해서 입증되었다. 그는 '콘클라베'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로렌스"에게 투표했다. 그럴 때마다 "로렌스"는 이를 거부했지만 끝까지 그는 신념을 지켰다. 외적인 소동으로 인해 교황청이 소란에 빠졌을 때 "베니테스"는 그 모든 정치적, 실리적 이득을 위한 언쟁과 투쟁들을 비난하며 나섰고, 이 지점에서 모든 추기경들이 그의 매력을 안 것인지 그 다음 투표 때 "베니테스"가 교황이 되어 "인노켄티우스 14세 교황"이 된다. 재밌는 건 영화는 마치 좋은 교황을 선정하게 되면 이 모든 혼란이 가실 것처럼 묘사하였지만, 오히려 모든 이들의 합이 맞춰져 뽑게된 새 교황의 투표 과정, 과정 속 추기경들의 표정 등을 보여주지 않고 굉장히 빠른 속도록 축약한다. 마치 그게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말이 아니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로렌스"는 좋은 인물을 교황직에 세운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다. 발표만을 남겨놓고 대기하던 와중 하나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정체가 베일에 가려져 누구인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던, '콘클라베' 기간이라 외부와의 연락이 안 되어 더욱 궁금했던 그의 정체는 사실 생물학적 여자였던 것이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유전적으로 여자였지만 스스로가 여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남자로서 살아갔고, 정신적으로도 남자였던 것이다.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은 "로렌스"는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 없다. 이에 "베니테스"는 과연 이 점이 문제가 되는지 물어본다. 대화를 마친 "로렌스"는 기도가 약해져 종교에 회의감을 품던 과거의 표정과는 달리 새로운 교황의 진실과 사실을 안 이후로 조금은 다른, 조금은 더 편안해진 표정을 지었고, 그렇게 영화의 막이 내린다.

어쩌면 영화는 마지막 갈등이 모두 해결되는 그 순간들까지도 관객에게 '의심을 풀면 안됩니다!'와 같은 말을 전하는 것 같았다. 결국 영화가 "베니테스"의 정체에 반전을 줌으로써 하고자 했던 이유는 단순히 성적 다양성이 종교에도 녹아들어져야 한다는 취지가 아닌 것 같다. 진실이 사실은 거짓이었고, 거짓이 거짓인 줄 몰랐고, 심지어 자신을 아꼈던 교황마저도 자신을 의심했었다는 그 모든 불신과 불안정함만이 존재했던 상황 속 찾아낸 진실, 진리마저도 의심해봐야함을, 의심의 결과 결국 찾은 진실에서 종교적, 인간적 순수함을 찾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 속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물어보는 것만 같다. 영화는 이에 대해 순수함이 중요하다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론짓는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영화는 이런 모든 순간들에 의심을 더해가며 관객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작성자 . being artist

출처 . https://blog.naver.com/le_film_artiste_ho/223771953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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