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2025-02-25 23:57:29
3시간 50분의 대작, 영화 <브루탈리스트>
영화 <브루탈리스트> 리뷰
젊은 감독이 저예산으로 짧은 촬영기간 동안 만들어 낸 영화가 영화제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 이야기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대작이라는 소문에 비해 생각보다 상영하는 극장이 적어 예매가 쉽지 않았다. 아마도 긴 러닝타임으로 극장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이 영화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분)가 미국에 정착하며 겪는 삶을 그린 작품이다.
브래디 코베 감독은 브루탈리즘 건축 양식을 활용해 주인공의 내면과 시대적 배경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독특한 연출과 카메라 워크는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피아니스트>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애드리언 브로디는 이번 작품에서도 주인공의 복잡한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해 몰입도를 높였다.
<브루탈리스트>는 AI 기술을 활용해 일부 장면을 구현했다. 이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AI가 예술적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예술과 기술의 조화 속에서 이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해진다.
총 러닝타임은 3시간 35분이지만, 15분의 인터미션을 포함해 3시간 50분으로 늘어났다. 아내는 한 시간 정도 줄였으면 더 좋았겠다고 했다. 인터미션 없이 편집한다면 1시간 15분을 단축하는 셈이다. 긴 러닝타임은 관객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킬링문>이 3시간 26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인터미션을 도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오히려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독창적인 연출과 깊이 있는 연기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관객의 집중력 한계를 넘기는 긴 상영시간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서사를 압축하고 몰입도를 높였다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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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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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명필름아트센터, 한글날 맞이 <에.에.원> 특별 상영
ⓒ 명필름아트센터 인스타그램
명필름아트센터에서 한글날을 기념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특별상영을 한다.
관람 시 한글 버전 티켓과 패러디 포스터 <돌> A2 포스터를 증정한다고 한다.
CGV+OTT, 정액제 상품 출시
ⓒ 특허청
CGV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과 결합한 월 정액제 상품 CGV를
출시할 예정이다. 정확한 가격대는 아직 논의 중이라고 한다.
웹툰 <문유>, 4DX로 10월 개봉
ⓒ 네이버 영화
네이버 인기 웹툰 <문유>가 웹툰 최초로 4DX로 제작된다. <문유>는 지구로 향하는 운석 '파이'를
막기 위해 달로 갔다가 홀로 남겨진 주인공 문유의 고군분투 생존기를 담았다. 모션그래픽과 카메라를
활용한 움직임을 더하는 등 오감을 자극하며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해외
미드 <커뮤니티> 영화화 확정
ⓒ IMDb
스트리밍 서비스 Peacock에서 유명 미국 드라마 <커뮤니티>의 영화화를 확정했습니다.
영화 제목은 <Community: The Movie>로 원작 드라마의 여러 배우가 그대로 출연한다고 한다.
<헌트>, 제7회 런던아시아영화제 개막작 선정
ⓒ 네이버 영화
런던아시아영화제 측에서 지난 28일, 영화 <헌트>를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개막작 <헌트>의 감독이자 주연인 이정재 배우가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에놀라 홈즈 2>, 11월 공개
ⓒ enolaholmes 인스타그램
셜록 홈즈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에놀라 홈즈 시즌 2>가
11월 4일 오후 4시에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전편의 주연이었던 배우 밀리 바비 브라운과
헨리 카빌이 출연한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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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를 찾아 헤맬 너에게
나는 상당히 만화에 보수적인 편이었다. 10대 시절부터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 소위 대작들에 길들어져서인지. 새로운 만화를 알게 되더라도 한 권이라도 꺼내보지 못할망정, 사람들의 평가만 한참을 뒤적이다가 '그러면 그렇지' 하며 읽을 마음을 단념한다.
애니메이션은 더욱 심하다. 제대로 다 본 애니메이션이 한 편도 없고, 작가가 직접 그린 만화가 진짜라는 얄팍한 신념 때문일까. 혹은 위 대작들의 애니메이션이 썩 좋은 결과물이라 할 수 없어서 그럴까. 차차 하더라도 영화와 같은 롱폼을 한 번의 온전한 집중으로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나로서. 넷플릭스를 틀은 채 밥을 먹고 떠들며 시리즈물을 챙겨보는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주위에서 <진격의 거인>을 꼭 보라는 말의 등쌀에 밀려서. 그리고 나의 행동들이 편견이 아닌 기호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벼룬 듯 음침하게 시즌1 1화를 켰다. 결과는? 그 순간부터 결말까지 누워있어도, 앉아 있어도, 밥을 먹어도. <진격의 거인>을 봤다. 대작 앞에서 나는 그저 알량한 편식쟁이였고, 대작은 그런 나도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었다. 그러니 심장을 바칠 수밖에.
워낙 이야기가 방대하고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내용을 요약하지는 않고 몇 가지 주제에 대한 QnA 형식으로 본문을 이끌겠다. 무엇보다 시리즈 전체 리뷰가 아닌, 최종장 극장판인 <더 라스트 어택>의 리뷰인 만큼 이 이상의 이야기는 가능한 지양하도록 하겠다.
Q.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A.시리즈 전체를 통틀면 엘빈 스미스. 극장판 한정으로 지크. 둘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 씁쓸한 일이지만, 두 캐릭터의 사상은 극과 극이면서도 가장 맞닿는 지점이 있다. 엘빈은 대의를 위해 사익과 공익을 가리지 않고 불사르는 캐릭터이다. 거인에게 자신의 팔이 물렸을 때도, 날아오는 돌들을 향해 희생을 자처했을 때도. 어린 신병들에게 죽음을 강요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도. 그는 대의를 위해 전진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꿈을 포기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바치더라도, 그 모든 이해관계를 뛰어넘을 대의가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크는 정반대이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에게 상처를 받았고, 이는 아물지 못한 채 곪아 지크를 허무주의의 길로 빠지게 했다. 그렇게 본인의 사상을 위해, 그 믿음을 사실로 실현하기 위해 무자비하고 무분별한 살인을 일으켰다.
가장 양극에 도달한 두 캐릭터이지만 믿음의 노예라는 점에서 비슷하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자의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이라도 믿음의 족쇄에서 벗어난 그들에게 더욱 온정이 간다. 결국 세상에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고 각자의 사상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를 세상에 온전히 대입하지 못하기에 집착이 생기고 상처는 곪는다.
Q. 결말에 대해
A.땅울림이 많은 비판을 받는 듯하다. 이는 선뜻 에렌이 인류의 80퍼센트를 죽이고 동료를 살리는 길을 선택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관 속에서 좌표라는 개념이 있다. 2000년간 정해진 역사에서 에렌은 그 사실을 알고만 있을 뿐, 최종 결정권자가 아닌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했다. 인류의 80퍼센트가 죽는다는 운명에서 발버둥 친 에렌이지만 거대한 흐름은 막을 수 없던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에렌이 동료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는 것이다. 목숨은 부지해 줄 테니 막으러 올 테면 와봐라. 그들이 인류 대학살 속 겨우 건져낸 목숨을 스스로 걷어차게 한 힘이 무엇일까. 바로 자유의지이다. 그들은 선택해야 했다. 자신의 목숨과 증오의 반격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목숨과 연쇄의 단절을 택할 것인가. 결국 그들은 후자를 택했고, 마치 이 모든 서사가 지금을 위해 존재했다는 듯이 마음을 다잡으며 에렌을 막았다.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가 누군가에게 자유를 선물한 채 세상을 떠난다는 스토리는 감동적이면서 한편으로 철학적이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답이 없는 논제처럼. 극과 극은 서로를 낳고 대립하며, 그 과정을 어쩌면 역사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Q.가장 좋았던 장면은?
A.지크가 아르민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장면. 이후 지크는 쿠사바와 제회해 묻어놓았던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당신과 캐치볼을 할 수만 있다면 다시 태어나도 좋을 것 같다고. 결국에는 모든 원흉이었던 아버지도 용서한다. 탐구의 주체인 인간이 그저 번식의 부산물이면 행복 역시 부산물에 그칠 뿐이다. 사소하더라도 소중한 일상이면 그것이 곧 삶의 의미라는 깨달음은 왜 항상 한발씩 늦을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Q. 추천하는가?
A.올해 1분기에 본 모든 드라마, 영화, 만화를 통틀어서 가장 추천하는 작품. 나의 편견을 뽑아버린 건 시즌 1에서 이미 끝나버렸고,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전개되는 반전과 감동에는 깊이가 있었다. 물론 이 글에 언급되지 않은 주요 캐릭터와 사건이 셀 수 없이 많으니, 작품을 보고 이 글을 이해하는 편이 수월할 것이다. 안 봤더라면 꼭 보고, 한 번 봤으면 두 번 볼 것. 일단 나부터. 신조 사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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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씨의 애틋하고도 치열한 삶을 응원하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니얼굴>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니얼굴>은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의 인기 셀러인 '은혜씨'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은혜씨는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그녀의 부스에 방문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며 얼굴을 그려주고 있다.
'니얼굴 작가' 은혜씨는 예쁘게 그려달라는 사람들에게 '원래 예쁜데요 뭘~'이라는 말을 넌지시 던지는 그런 사람이다.
은혜씨가 캐리커처를 그리게 된 계기는 그녀의 '어머니'였다.
은혜씨의 그림에서 특별한 재능을 찾아낸 그녀의 어머니는 은혜씨가 캐리커처 일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고, 캐리커처를 그릴 때도 옆에서 종종 조언을 해주었다.
영화의 곳곳에서 은혜씨의 어머니와 은혜씨가 투닥거리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 순간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은헤씨의 어머니 '장차현실'은 은혜씨의 든든한 조력자로서, 친구로서 그녀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예쁜 얼굴을 기록하곤 한다.
영화에 나오는 은혜씨의 그림들을 보다보면 '참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얼핏 보면 투박해보이지만 어딘가 애틋한 느낌도 드는 그림들, 그리고 그림 속 얼굴들에는 사랑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이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곤 했는데 영화의 후반부에서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했다.
바로 '은혜씨가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려서'이다.
아마도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던 은혜씨의 그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모든 그림들에 투영되었고, 이 마음들이 스크린 너머의 나에게까지 전해진 것이 아닐까?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영화의 초반부, 은혜씨가 김정호의 노래 '하얀나비'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은혜씨의 전시회에서 우리는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의 성장과정이 담긴 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이 가사가 은혜씨와 그녀의 가족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자신만의 치열한 삶을 살아왔을 은혜씨, 그리고 이런 은혜씨의 그림에서 특별한 점을 발견하고 그녀를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한 어머니이자 화가인 장차현실, 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담아낸 아버지이자 감독인 서동일.
이 영화를 통해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에게까지 웃음을 전해줄만큼 많은 다정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보냈을 그들이지만, 동시에 많은 서러운 순간들을 보냈을 그들이기에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라는 가사가 더 와닿은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누구든 그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된다.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그리고 자신만의 기억을 가지고 치열하고 애틋하게 삶을 살아가는 스크린 속 주인공을 보다보면 나도 내 삶을, 그리고 주변인의 삶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삶을 조금 더 응원하게 된다.
다큐멘터리는 이런 힘을 가졌다. 생판 만나본 적도 없고, 대화 한 번 나눠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들이 구축해나가는 자신만의 삶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더 유쾌하고 따뜻했음 좋겠고, 괴롭고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보다는 마냥 행복하고 다정한 순간들이 많기를- 하고 바라게 된다.
은혜씨가 내게 이런 깨달음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참 고맙다, 은혜씨가.
많은 사람들이 영화 <니얼굴>을 통해 은혜씨의 밝고 유쾌한 미소와 그녀의 애틋한 삶을 꼭 마주하기를 바란다.
아마 영화관을 빠져나올 때는 관객 모두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담겨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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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일루셔니스트》, 환상은 어디까지가 좋은 것일까?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다시금 내가 애니메이션 감상에 최적화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보는 내내 격하게 화가 나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고, 작품을 보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화 《일루셔니스트》 시놉시스
세월이 흘러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일루셔니스트는 자신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찾아 이곳 저곳을 떠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스코트랜드의 한 선술집에 머물며 공연을 하다 그곳에서 앨리스라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일루셔니스트의 무대에 반한 어린 소녀 앨리스는 다음 무대를 찾아 떠나는 일루셔니스트와 함께 여행을 나서고 뒤이은 그들의 모험은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비언어극 같았던 영화 《일루셔니스트》
영화 《일루셔니스트》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언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국어가 아니기에 대사가 많은 영화의 경우네는 자막을 읽는데 집중을 하다보면 장면장면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 작품은 불어였기 때문에 자막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일종의 비언어극처럼 대사보다는 인물의 행동과 주변 환경에 관객들이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하고 있었다. 앨리스의 달라지는 모습과 함께 점점 낡아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부각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앨리스가 빛이 날수록 오히려 영화 자체의 색감이나 조명은 점점 어두워지는 등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심은 언제까지 지켜줘야 하는 걸까?
영화 《일루셔니스트》를 보면서 화가 나고 답답했던 것은 도대체 왜 할아버지는 앨리스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걸까? 였다. 자신의 생계를 위협하면서까지 앨리스의 세상을 마치 환상 속에 있는 것처럼 만들어준 것일까? 답답했다. 영화를 본지 꽤 됐지만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잘 알 수가 없다. 앨리스는 자신이 점점 화려해지면서도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마법으로 얻은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결국 앨리스에게 마법사는 없다는 말을 남기면서 앨리스의 곁을 떠난다.
둘 모두에게 별로 좋지 않았던 방법인데 왜 그것을 고수했는지 의문이 들었고, 순간적으로 그렇다면 아이들의 동심은 언제까지 지켜줘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던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마법사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앨리스의 곁을 떠난 할아버지는 기차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그림을 열심히 그리다가 연필을 떨어트린 소녀는 기차 의자 바닥에서 연필을 찾는다. 그 연필을 주운 할아버지는 기다란 자신의 연필과 비교하며 소녀가 원래 가지고 있던 짧은 연필 대신 긴 연필을 줄까 잠시 고민하지만 원래 소녀의 것은 소녀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나는 할아버지가 더 이상 마술을 이용해서 아이들을 환상 속에 두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마술 한번으로 아이들이 헛된 생각을 품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마술을 보여주되 그 마술은 순간적인 재미일뿐임을 알려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이 장면을 영화 《일루셔니스트》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었다.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대사가 많이 없어서 영화 그 자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그래서 작품의 여운과 의미가 많이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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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탄 앞에 선, 젊은 예술가의 초상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8년 동안 ‘슈퍼비아’의 대본·작곡 작업을 이어온 뮤지컬 작가 지망생 조너선 라슨은 늘 자신감에 넘친다. 재능과 패기를 가진 그는 자신의 미래가 밝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1990년, 서른을 앞둔 그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과연 ‘슈퍼비아’를 완성할 수 있을까? ‘슈퍼비아’ 제작자를 구할 수 있을까? ‘슈퍼비아’가 공연된다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을 수 있을까? 하나의 질문이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질 때마다 견고했던 조너선의 자신감에 조금씩 균열이 난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마치 폭탄의 카운트다운처럼 느껴진다. 조너선은 과연 똑딱똑딱(tick, tick) 타이머가 도는 폭탄이 터지기(boom!) 전까지 자기 확신을 지켜내고 ‘슈퍼비아’를 완성할 수 있을까?
〈틱, 틱... 붐!〉은 동명의 뮤지컬을 각색한 영화로, 뮤지컬 ‘렌트’ 등을 만든 실존 인물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가 주목하는 건 서른이라는 숫자다. 서른. 별다른 의미가 없는, 그저 수많은 아라비아 숫자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이 숫자가 나이에 적용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서른이라는 나이는 청춘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문턱으로 여겨지곤 한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지,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장래성은 보장되는지 등이 평가 기준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예술가라면 기준이 조금 달라진다. 그에겐 여전히 돈과 장래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예술을 경유하는 명예‧자기만족의 부산물로서만 그렇다. 돈을 목표로 예술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예술을 하는데 돈이 따라오면 좋은 일이지만, 그에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는 것이다.
조너선이 이토록 초조한 건 이 때문이다. 그는 남들이 ‘번듯한’ 직장을 구하는 동안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에겐 자부심이 있었다. 언젠가 수많은 사람이 열광할,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작품을 만들어낼 거라는 자부심 말이다. 그는 그 자부심으로 20대를 지나왔다. 문제는 최종 평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차일피일 미뤄왔던 냉정한 평가에 스스로를 내던질 때가 다가왔다는 것. 그리고 아직 자신이 덜 준비된 것만 같다는 것. 조너선은 미래의 제작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워크숍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아직 뮤지컬의 마지막 노래를 작곡하지 못했다. 함께 꿈을 좇던 친구는 배고픈 무명 생활에 질려 마케팅 회사에 취직해 승승장구하는 중이고, 마찬가지로 예술계에 종사하던 여자 친구도 새로운 직장을 찾아 멀리 떠나겠다고 한다. 왜 하필 이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이 연달아 벌어진단 말인가! 조너선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드디어 대망의 워크숍 날. 기적적으로 영감이 떠올라 작곡은 어찌어찌 마무리했다. 영향력 있는 비평가도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워크숍에 참석했다. 지난 괴로움이 ‘대작’을 만드는 과정의 필연적 고난으로 여겨질 참이다. 워크숍을 마친 조너선은 잔뜩 부푼 기대를 품고 전화기 앞에서 대기한다. 에이전트를 통해 여러 영향력 있는 제작자들이 연락해올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머 달린 폭탄은 끝내 조너선의 품에서 폭발해버린다. 조너선은 아무런 제안을 받지 못한다. 그의 에이전트가 말한다. “다음 작품을 써. 그게 작가야. 언젠가 하나 터질 때까지.” 모든 것을 새로 다시 시작하라는 말. 이 한마디가 자신의 20대를 평가하는 말이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패닉이다. 조너선은 다시 텅 빈 악보를 마주해야만 한다. 가늠할 수 없는 조너선의 큰 좌절감이 화면을 뚫고 전달되는 듯하다.
다행히 현실의 조너선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틱, 틱... 붐!’도 호평을 받았고, ‘렌트’는 초대박을 터뜨려 ‘뮤지컬의 정의를 바꿔놓았다’고 평가될 정도로 극찬을 받았다. 다만 허망한 건, 그가 ‘렌트’ 초연 전날 밤 대동맥류 파열로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예술을 향한 그의 애타는 갈망과 이토록 허무한 비극적 삶. 조너선이 이를 미리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극적인’ 요소는 조금 덜하더라도 그가 더 오랫동안 살아 자신의 성취를 만끽했으면 좋았겠다 싶다. 영화 〈틱, 틱... 붐!〉은 잔혹한 현실을 거슬러 폭탄 앞에 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다른 결말로 채색되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가 부디 하늘에서라도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렌트’의 성공을 만끽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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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와 함께라면 그깟 오류 쯤이야
* <글리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글리치 (2022)
연출: 노덕
극본: 진한새
출연: 전여빈, 나나, 이동휘, 류경수, 백주희 등
장르: SF, 스릴러, 코미디
공개 회차: 10부작
유년 시절의 ‘지효(전여빈)’는 괴짜로 통했다. UFO를 추종하며 전세계의 초자연적인 사건들에 관심을 가지는 중학생 소녀에게 이해 혹은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없었다. 여느 날처럼 학교 옥상에서 전자파 탐지기를 손에 쥔 채 음악을 듣고 있던 ‘지효’ 앞에 처음으로 말을 거는 소녀 한 명이 나타났다. ‘지효’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영혼의 친구, ‘보라(나나)’와 ‘지효’의 우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외계인과 사이비 종교. 작품을 관통하는 거대한 소재들이지만, 이야기의 주제는 집요한 자아 탐색과 성장의 과정, 그리고 두 여자의 우정이다. 작품이 미스터리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외계인이나 비과학적인 사건들을 파고드는 데 열중하지 않는 것은 주인공을 둘러싼 ‘믿음’의 실체를 확인하고,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변화하는 인물들 간의 관계와 감정들이 더 중요하게 다뤄 지기 때문이다.
‘지효’에게 믿음이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괴짜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며 평범한 친구들처럼 살아가기 위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환각인지 실재인지 알 수 없는 외계인이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잠시 눈을 질끈 감고 안 보이는 척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사회 속에 숨어든 채 불완전한 평화를 유지하던 찰나 외계인의 흔적이 턱 끝까지 쫓아오고, 급기야 헤어진 남자친구 ‘시국(이동휘)’이 실종된다. 안정적인 일상은 깨졌고, 오류(Glitch) 상태에 놓인 ‘지효’는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나 외계인이 보여.’ 누가 이 문장을 한 치의 의심 없이 순수하게 믿어줄까? 소통이 불가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지효’를 더 답답하게만 만들 뿐이다. 시청자들마저 답답하게 할 정도로 그가 입을 꾹 닫은 이유는 애초에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국’의 실종으로 외계인과 UFO에 대한 ‘지효’의 생각은 의심에서 확신으로 변했다. 남자친구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보다 믿음의 실체를 꼭 확인해야만 했다.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론적 의미를 증명하는 길일 테니까.
‘지효’를 혼란에 빠뜨린 미스터리는 그를 외계인도, 남자친구도 아닌 오래 전 사이가 틀어진 친구 ‘보라’에게 데려다 놓는다. 어린 시절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 주었던 친구, 함께 아지트를 만들고 비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영혼의 단짝. 한때 ‘보라’는 ‘지효’의 오해로 인해 큰 상처를 입었지만 관계의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거침없는 태도와 담대함을 무기로 친구를 둘러싼 기이한 사건들의 실체를 독종처럼 파고든다. ‘지효’가 겁에 질리거나 깊은 생각에 잠겨 고장이 날 때마다 ‘보라’는 그의 손을 덥석 잡아 앞으로 이끈다. 설령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순간에 부딪힐 지라도. 정상의 궤도를 걷고 있던 ‘지효’에게 찾아온 혼돈은 그를 얼어 붙게 했고, 공룡만한 크기의 외계인에게 쫓기며 두려움을 경험했다. 이 상황을 해결해야 했지만, 자신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지효’는 온전히 혼자였다. 그런데 겉으로는 트러블 메이커 같아도 능수능란하게 위기를 넘기며 해결사를 자처하는 ‘보라’가 자신의 기묘한 운명에 같이 뛰어들었다.
비록 하나 뿐이지만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지효’는 주저 없이 외계인과 사건들의 연관성을 파헤친다. ‘시국’의 납치, 외계인과 UFO, 정신병원과 ‘하늘빛들림교회’.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던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지효’는 자신과의 연관성을 찾아내기 위해 사이비 종교단체에 잠입하고, 호산나를 연기하는 위험까지 감수한다. 이 모든 과정을 감내한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찾기 위해서다. 비록 제3자에게 ‘미친년’ 소리를 들을 지라도 ‘지효’는 자신의 두 눈에 보이는 외계인이 환각인지 실재인지 이번 기회를 통해 꼭 확인해야만 했다. 자신이 믿고 살아온 현실이 허상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꽤 오랫동안 자기부정을 거듭하며 거짓된 자아를 만들고 평범함을 지키고자 애썼던 ‘지효’는 상상치도 못했던 스케일의 모험을 겪으며 자신이 봉인했던 과거의 자아를 되찾고 진짜 ‘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사실 사이비 종교나 외계인은 단지 ‘지효’의 자아 탐색과 성장을 위한 배경이자 수단이었을 뿐이다. 주인공이 범상치 않은 인물인 탓에 본의 아니게 그 과정이 스릴러에 판타지 장르가 되어 버렸지만.
외계인의 존재를 목도하기 전, 종교 의식의 호산나로 낙점되어 손발이 묶인 채 광신도들 앞에 전시되어 있던 ‘지효’는 자신의 신념이 거부당했다는 사실에 무너질 뻔한다. 하지만 ‘보라’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를 구하며 자신의 믿음을 보여준다. 눈물을 흘리며 ‘지효’를 끌어안는 ‘보라’의 눈빛에는 그를 향한 확신이 서려 있다.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무한한 신뢰를 주는 조력자이자 동반자의 등장. 진실과 자아를 찾겠다고 나선 친구를 위해 이 한 몸 바쳐 싸울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있겠는가. ‘보라’의 존재만으로도 ‘지효’는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친구와 함께한 모든 여정을 통해 자신에게 불어 닥친 오류를 극복했다. 어쩌면 고생 끝에 입증한 자신을 향한 믿음보다 누구보다 자신을 믿는 친구와의 조우가 ‘지효’가 외계인 사태를 통해 얻은 가장 값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1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만난 두 친구이지만 마치 늘 함께였던 것처럼 의기투합하여 이들 앞에 폭탄처럼 터지는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을 영리하고 용감하게 헤쳐 나간다. 누구보다 나를 믿어주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사이비 종교 단체나 외계인 따위와 맞서는 것도 두렵지 않다. 어딘가 모자라고 나사가 하나쯤 풀려 있는 것 같은 두 주인공의 모험과 ‘지효’의 성장 속에서 단 한 번도 무너지거나 부러지지 않는 여자들의 우정이 빛난다. ‘보라’는 ‘지효’를 오류 속에서 꺼내 구원하였고, ‘지효’는 삶의 권태에 빠진 ‘보라’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헛된 신념에 빠진 사이비 종교인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저마다의 구원을 찾았지만 무한한 믿음으로 형성된 벗을 통한 구원 앞에 이들의 허황된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혼자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을 때, ‘나’를 완전하게 믿어주고 ‘나’를 위해 주저 없이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 한 명을 곁에 두는 것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그 존재로부터 확신을 얻은 ‘지효’는 무너지지 않았고, 스스로의 삶마저 완벽하게 구원했다. 오합지졸 같던 두 주인공이 자신을 위해, 그리고 서로를 위해 분투하는 과정은 허접하고 유쾌하다가도 어느샌가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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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CHOICE MOVIE] 2021년 9월 4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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