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2023-12-11 00:39:12
2023 서울독립영화제 후기 (2)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백탑지광>
4.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국내에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 이 원작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로 가장 잘 알려진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타 작품들을 워낙 재미있게 봤던 터라, 기대를 안고 가장 먼저 티켓팅에 도전한 영화이다. 역시나 좋았고, 전작들과는 색다른 느낌을 주는 이야기였다.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난 후 진행된 시네토크에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에서 시작해서 픽션으로 끝나는 영화’라고 하신 평론가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이보다 이 영화를 더 잘 설명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자연을 보호하고자 하는 거주민, 그리고 그 반대쪽에 서서 어떻게든 글램핑장을 건설하려는 회사 직원들의 이야기. 와중에 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엔딩에 이르러서는 충격적인 장면이 묘사된다. 어떠한 순간순간들이 문학적으로 다가와 좋았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말을 아껴야겠다. 정보없이 봤을 때 오는 놀라움이 크다)
광활한 풍경, 유머러스한 대화, 그리고 오프닝이 정말 볼만하다.
그리고,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5. 백탑지광 (감독 장률)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디>, <경주>, <춘몽>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영화감독 장률. 이번 영화 <백탑지광>은 한 편의 시를 닮았다.
영화 <군산>과 <경주>
영화 <춘몽>과 <백탑지광>
백탑은 그림자가 지지 않아요
영화 제목 '백탑지광'에서의 백탑은 베이징에 있는 탑으로,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이는 곧 한 등장인물이 '우리에겐 그림자가 없다'라고 상대에게 말하는 것과 연결된다. 각자의 아픔과, 말 못할 서러움들을 내면에 꾹꾹 눌러담고 있어서일까.
속에 자리한 그늘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은 각자의 힘으로 묵묵히 생을 버텨내고 있다.
내가 안아줘도 될까요?
용기내어 이렇게 물어보며 자신의 그림자를 꺼내 보인다. 조금은 다른 모양일지라도,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포갠다.
너의 그림자와 나의 그림자를 겹쳐본다.
괴로움, 죄책감, 고독감 모두. 나의 아픔과 너의 아픔까지도.
그 순간에는 조금 쓸어내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음껏 봤고 마음껏 좋아했다.
12월의 압구정 cgv의 온기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영화인들 틈에 끼어 12월 4일부터 7일까지, 4일간 출석했던 서울독립영화제. 2024년에는 또 어떤 좋은 영화들을 만나게 될까. 영화가 가진 힘을 믿으며 앞으로의 2024년도,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좋아해야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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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을 때까지 '장난'을 멈추지 않은 남자의 일대기
7★/10★
영화 제목 이야기부터 해보자. 헤더 로즈의 인상적인 소설 《현대적 사랑의 박물관》의 주인공이기도 한 저명한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에서 감독에게 제목을 즉흥적 투표로 정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를 포함한 몇몇 사람이 제목을 적어 내고, 그중 투표로 뽑힌 걸 이 영화의 제목으로 하자는 것이다. 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까지 “죽기 전에 해볼 장난이 몇 개 더 있어요”라고 말한 백남준의 일대기와 예술관에 부합하는 제목 정하기 방식이다. 그러나 백남준의 ‘장난’이 그러했듯, 이 제목은 그저 말장난에 그치지 않는다. 이 제목에는 영화가 재현하는 백남준 예술의 핵심이 응축되어 있기도 하다.
1932년에 태어난 백남준은 당시 손꼽히는 재력가 집안에서 자라며 예술적 지향의 기틀을 다졌다. 그 퍽퍽했던 시절에 아놀드 쇤베르크의 전위적 음악을 들으며 감명받았다는 데서 알 수 있듯, 백남준의 예술은 그가 평생 미워하고 거부했으나 영원히 단절할 수는 없었던, 예술을 하찮게 여긴 아버지의 영향하에서 그 싹을 틔웠다. 한국 전쟁 후에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독일로 건너갔다. 그리고 1958년, 존 케이지의 공연을 보고는 “새로 태어났다”. 음악에 동양적‧우연적 요소를 적극 들여와 클래식 전통을 파괴해 극과 극의 평가를 받은 존 케이지의 음악은, 아시아인 예술가를 상상하지 못했던 당시 유럽 예술계를 마주한 백남준에게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기막힌 응답이 되어주었을 터이다. 피아노를 도끼로 부수고, 객석에 앉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고, 바이올린에 줄을 단 채 반려견인 양 끌고 다니는 백남준은 존 케이지에게서 “자유로워질 용기와 파괴할 용기”를 얻었다.
이후 모든 예술적 권위에 반대하는 예술 운동인 플럭서스에 참여한 백남준은 TV가 도래할 시대의 핵심 매체가 될 것을 예감했다. 훗날 그를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이자 아버지’로 만들어줄 절묘한 통찰이었다. 그에게 TV는 독재적 매체였다. 사람들은 TV에서 송출되는 화면에 수동적으로 응답할 수밖에 없다(물론 문화연구에 따르면 시청자는 TV의 수동적 대상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TV는 인간이 일방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달과 같다. 즉,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이에 백남준은 TV를 헤집고 기괴하게 비트는 등 TV의 일방향적 매체성을 뒤집을 예술적 방법론을 지속적으로 고안했다. TV 방송의 중심지였던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그리고 비디오가 나왔다. 비디오는 TV와 다르다. 수많은 사회 운동가가 TV 방송에서 다루지 않는 현실을 비디오로 촬영해 알릴 수 있었던 것은 비디오가 TV보다 민주적인 매체였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자신만의 방송국을 소유해 주류가 하지 않는 걸 해야 한다는 백남준의 예술관은 비디오 시대, 나아가 지금의 1인 방송 시대를 한참을 앞서 선취했다.
백남준의 예술은 소재와 방법론 등에서 기존 위계의 맨 밑바닥에 있었다. 당시는 회화, 조각에 밀려 사진조차 예술로 대접받지 못하던 때였기에, TV와 비디오를 예술로 들여온 백남준의 시도는 파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평단의 냉대도 자주 받았다. 그의 ‘재능 없음’에 대한 몇몇 평론가의 비판이 이어졌다. 하지만 백남준은 시대를 선취한 모든 예술가의 숙명과도 같은 냉대, 경멸, 저평가를 이겨내고 마침내 점차 널리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의 영향력과 예술적 영향력의 극치는 뉴욕과 파리 등에서 다원 생중계된 이른바 ‘인공위성 예술’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영감을 받은 이 방송은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이 시청했고, 한국에서는 새벽에 방영되었음에도 수백만 명이 봤다고 한다. 쇤베르크에서 시작해, 존 케이지를 경유하고, 끝내 그의 시대를 지배한 매체에 대한 통찰로 나아간 백남준은 언제나 예술적 전위, 즉 아방가르드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시대를 겨냥한 그토록 적확한 장난을 평생 멈추지 않은 백남준이 그의 ‘조국’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이다. 한국을 떠난 그가 국제적 명성에 힘입어 다시 고국을 방문한 1984년은 군부 독재의 통치기였다. 백남준이 예술에서 민주주의를 주창했을 뿐 아니라 특권층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반감에서 기인한 좌파적 성향을 갖고 있었음을 고려했을 때, 그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 동료들에게 얼마간 연락이 없으면 조치를 취해달라 부탁한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은 그를 성대히 환영해 ‘국격 상승’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활용했다. 이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다룬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의 작품을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책임을 갖는 국가가 나서서 칭송하는 오늘까지도 이어지는 현상이다. 자기 예술에 담긴 반권위주의적, 민주적 요구를 국가가 그저 근사한 트로피로 포장해 전시했을 때 백남준(그리고 그의 후예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궁금하다.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환대받는다는 느낌이 평생 고약한 장난에 몰두한 백남준의 예술가 정체성을 완전히 잠식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더불어 플럭서스의 일원이었던 백남준의 아내 구로다 시게코와의 관계 측면에서, 그의 예술가적 남성성이 어떤 토대에 발 디디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괴짜’, ‘천재’, ‘선구자’들은 거의 언제나 남성의 얼굴을 한다. 같은 재능과 예술 행보를 보인 여성 예술가가 종종 ‘미친년’ 소리 듣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백남준의 혜안과 탁월함에 감탄하면서도, 평생 아이 같은 해맑음으로 그저 예술가일 수 있었던 그의 예술적 토대와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예술계의 젠더 배치가 내내 궁금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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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렷한 선과 악 그리고 수퍼 히어로 마동석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악구도로 나뉘지 않는다. 물론 각자 가지고 있는 경계가 어느 정도는 있지만 그것이 명확하게 나누어지지는 않기에 판사의 심판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등장하는 사이코패스나 살인자는 물론 악인이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이해하기보단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보고 사회적으로 동일한 악인이 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여전히 존재하는 악인을 없애는 방법일 것이다. 그 모든 것 이전에 수많은 악인들을 잡아내는 형사들이 있다. 형사들은 판사의 판단을 받기 전에 가장 의심되는 용의자를 가려내고 잡아낸다. 어찌 보면 악인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많은 범죄가 그들을 거쳐간다. 희미한 선악구도 속에서도 형사들은 최대한 그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영화 <범죄도시>는 마석도 형사(마동석)와 그 팀의 이야기를 담았던 범죄 영화였다. 선악구도가 꽤 분명하게 나뉘어진 이 영화는 약간은 때가 묻은 마형사를 등장시켜 최악의 악인을 쫓게 만든다. 깡패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던 마형사가 완전히 깨끗한 형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악인들이 더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정리했다. 여기에 아주 악독한 악인이 등장하면서 그는 모두의 영웅이 된다. 엄청난 덩치와 파워는 달려드는 악인들을 나가떨어지게 했다. 또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 악인을 잡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 한 팀으로 만들었다. 결국에 가장 나쁜 악인 중의 악인인 장첸(윤계상)을 잡아냈을 때 관객들이 느낀 건, 악인을 처벌했다는 통쾌함이었다. 그게 후속 영화를 만들어낸 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편의 이야기를 변주해 만든 두 번째 시리즈
<범죄도시2>는 1편의 이야기 방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번에도 영화의 악인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전편이 그랬단 악인을 먼저 보여주며 영화적 긴장감을 높인다. 이 영화의 악인 강해상(손석구)은 베트남에서 한국인을 납치해 돈을 뜯어내고 그 사람을 죽여 실종 상태를 만든다. 우연히 베트남 출장에 간 마형사가 강해상이라는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를 추적하는 과정이 영화에 담겼다. 특히나 이번 영화는 선악구도가 더 명확해졌다. 1편에서 약간은 때가 묻은 듯했던 마형사는 이번 2편에서는 좀 더 정의로운 모습으로 나온다. 전편의 마형사가 어느 정도는 현실적인 모습이었다면 이번 영화의 마형사는 좀 더 수퍼영웅에 가까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전편과는 다르게 마형사가 크고 작은 범죄자들과 대결을 벌일 때 마형사가 상대를 가격하면 큰 음향효과가 추가되어있다. 그래서 마형사가 타격하고 상대가 나가떨어지면 느껴지는 관객들의 통쾌함도 극대화되어있다. 그러니까 선악구도를 명확히 하고 마형사를 좀 더 선한 인물로 조정하여 선이 악을 물리칠 때의 쾌감에 집중한 것이다. 그래서 마형사와 그의 팀이 활약할 때 관객은 든든함을 느끼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악인들을 물리칠지 기대하며 보게 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타격감은 앞으로 이어질 <범죄도시>라는 시리즈가 좀 더 수퍼영웅 장르로 뻗어나갈 것임을 암시한다.
1편의 이야기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이야기적으로는 기시감이 많이 든다. 베트남 로케이션을 활용하고 영화의 빌런을 바꾸었지만 악인을 우연히 만나고 그를 추적하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 한정된 공간에서 마형사와 빌런이 격투를 벌이는 모습도 1편과 거의 흡사하다. 그런 점을 본다면 이 영화는 몇 가지 요소를 제외하고는 전편의 구조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전편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는 담기지 않았다.
이 영화의 빌런인 강해상은 전편의 장첸과 마찬가지로 과거 그만의 사연이 등장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장첸보다 더 과거를 보여주지 않는 인물이다. 강해상은 장첸보다는 좀 더 순하게 보이지만 한 번 돌진하면 엄청난 에너지로 달려가는 인물이다. 그래서 전반적인 빌런의 느낌은 장첸보다는 덜 인상적이지만 무섭다는 느낌을 주는 건 그만이 가진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를 위해 몸을 키우고 서늘한 눈빛을 보여주는 배우 손석구의 연기가 강해상이라는 악인을 좀 더 공포스럽고 무서운 인물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빌런 강해상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마형사와 대적하게 되는 인물이다.
수퍼히어로 마형사가 주는 통쾌함
영화 <범죄도시2>는 목적이 분명한 영화다. 극장에서 팝콘을 먹으며 선이 악을 물리치는 과정을 즐기게 하는 것이 바로 그 목적이다. 이야기나 캐릭터의 특성은 전편에 비해 조악해졌지만 선과 악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잔인함은 조금 덜어내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게 문턱을 낮췄다. 영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마형사는 한국의 수퍼영웅으로 탈바꿈하였고 그가 주먹을 날릴 때마다 정의가 실현되는 느낌을 받게 한다. 코로나로 지친 관객들에게는 꽤 위로가 되는 영화다. 현실에서는 애매한 선과 악의 구분이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는 명확하다. 이야기 구성 자체도 복잡하지 않고 특별한 반전도 없다. 그래서 더욱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마형사 역할의 배우 마동석은 이미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마블 영화 <이터널스>에서 무서운 주먹을 보여준 적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그가 맡은 한국영화의 배역 중 가장 강력한 영웅으로 거듭난다. 앞으로 시리즈가 계속 이어진다면 꽤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캐릭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범죄도시>의 마형사는 그가 맡은 여느 영화들 중에서 그에게 가장 잘 맞는 캐릭터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이상용 감독은 이번 영화가 연출 데뷔작이다. 과거 <범죄도시> 1편에서 조연출, <롱 리브 더 킹:목표 영웅>에서 조감독을 맡았었다.
많은 관객들이 다시 극장을 찾아 즐길 수 있는 영화 <범죄도시2>는 절대 선 마형사와 그의 팀이 활약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담는다. 마형사가 등장할 때 느껴지는 든든함은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경찰에게 느끼고 싶은 감정일 것이다.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 같은 설정이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면서만은 선이 악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며 그 희열을 즐길 수 있다. 앞으로 꽤 많은 관객들이 마형사의 타격감을 즐기려 극장을 찾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2Bw3gnfLJc&t=164s
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범죄도시2>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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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연적인 갈등’을 존엄한 것으로 만들려면
8★/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23년 아일랜드의 한적한 섬마을 이니셰린*. 파우릭과 콜름은 온 마을 사람이 다 아는 절친한 친구 사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펍으로 향해 밤늦도록 대화를 나눠왔다. 둘이 함께하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이 자연스레 다른 사람은 어디 갔느냐고 묻을 정도다. 어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오후였던 그날처럼 말이다.
파우릭은 조금 당황한 상태다. 콜름과 함께 펍에 가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는데, 콜름은 그를 철저히 무시한 채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조금 의아하고 걱정스럽지만 파우릭은 우선 홀로 펍에 간다. 콜름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라면, 그가 곧 올라와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콜름은 파우릭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 파우릭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하고, 파우릭은 혹시 자신이 콜름에게 실수한 일이 없는지 곱씹어본다. 술에 취해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봐 주변 사람에게도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둘 사이가 지금까지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제는 콜름에게 직접 이유를 물어야만 한다.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황당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가장 절친한 친구로 지냈는데, 별다른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저 싫어졌다는 이유로 자신을 이토록 모질게 대하는 콜름을 파우릭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대로 물러 설 순 없다. 최소한 제대로 된 이유라도 알아야 수긍하든 싸우든 할 게 아닌가? 파우릭이 계속 캐묻자 콜름이 답한다. 콜름은 지금껏 파우릭과 나눈 대화가 지독히 지루하고 무의미했다고, 그 멍청한 대화에 질려버렸다고, 이것이 너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이유라고 선언한다. 기껏해야 10여 년을 더 살 텐데, 남은 생을 그토록 하찮은 일에 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신 사색과 작곡에 몰두하며 지금까지의 ‘낭비’를 보상받겠다고도 덧붙인다.
파우릭은 큰 혼란에 빠진다. 그는 자타공인 마을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다. 아무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파우릭은 여기에 어느 정도 자긍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콜름의 충격적인 선언은 지금껏 파우릭의 삶을 지탱해온 가치를 송두리째 뒤흔든다. ‘착함’이 ‘멍청함’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때문에 ‘착한’ 네가 참으라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위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파우릭의 혼란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그러나 파우릭은 콜름과의 우정을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어쨌든 그들은 지금껏 (늘 그랬던 것은 아니더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왔다. 설령 지금까지의 우정에 불만이 있다면 둘 모두가 만족할 만한 새로운 방식으로 우정을 쌓아가면 된다. 그래서 여러 방식을 동원해 콜름의 마음을 돌리고자 한다. 그러나 콜름의 결단은 파우릭의 상상 이상으로 단단하다. 콜름은 결연한 표정으로 파우릭이 자신을 귀찮게 할 때마다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말한다. 허울 좋은 협박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자기 손가락을 잘라 파우릭 집 앞에 던져 놓는다.
파우릭의 혼란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늘 그의 곁을 지키던 여동생 시오반이 본토에서 도서관 사서 자리를 제안받아 마을을 떠나고***, 상심한 파우릭을 달래주던 소년은 실족사(혹은 학대하는 아버지를 피해 자살)하며, 파우릭이 사랑하는 당나귀 제니마저 콜름이 던져 놓은 손가락을 먹다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소중한 모든 것을 잃은 파우릭은 ‘각성’한다. 자신의 ‘착함’을 버리고 콜름에게 그가 치러 마땅한 대가를 돌려주고자 결심하는 것이다.
영화의 종반부는 초지일관 단호한 콜름과 그를 향한 서슬 퍼른 복수심에 불타는 파우릭의 대결로 치닫는다. 콜름과 파우릭의 대치는 두 개인의 갈등인 동시에 내전 중이던 아일랜드의 은유이기도 하다.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의 자치권 부여 제안을 두고 급진파와 온건파가 나뉘어 전쟁 중이었다. 즉 급진파와 온건파는 어떤 것이 진정 아일랜드를 위한 길인지를 두고 다투었다. 섬마을인 이니셰린은 상대적으로 내전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파우릭과 콜름의 갈등과 본토에서 울리는 포성이 교차하며 등장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 두 사건은 완전히 떨어져 있지 않다. 본토의 내전이 무엇이 아일랜드를 위한 정답인지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라면, 파우릭과 콜름의 갈등은 무엇이 좋은 삶‧우정인지를 묻는 두 개인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다.
파우릭과 콜름의 갈등(그리고 무엇이 나라‧공동체를 위한 길인지에 관한 다툼)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이 일상적인 문제를 충격적이면서도 탄탄한 알레고리로 쌓아 올린다. 그러나 영화는 마냥 비관하지만은 않는다. 파우릭과 콜름은 갈등이 극에 달하는 순간에도 분명 서로를 존중한다. 콜름은 파우릭을 무시하는 경찰을 때려눕히고, 파우릭은 극단적인 복수의 순간에도 콜름의 반려견을 배려한다(심지어 콜름은 파우릭의 복수가 ‘마땅하다’고 여겨 이를 순순히 수용한다). 그러는 동안 본토의 포성도 조금은 잦아든다.
때문에 〈이니셰린의 밴시〉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관계든 국가‧공동체 간이든 갈등이 필연적이라면, 우리는 그 갈등을 존엄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친구와 우정을 끊고 싶어도, 그가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방법론에 차이가 있더라도, 급진파와 온건파는 모두 아일랜드를 사랑한다. 이를 분명히 한다면 우리는 절대적 고독과 압도적 혼란 속에서도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다. 극단적 파괴와 복수를 다루는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가 묘한 희망을 풍기는 건 이 때문이다.
*‘이니셰린’은 ‘아일랜드의 섬’이란 뜻으로 허구의 지명이다.
**원어는 ‘nice’다. 영화 자막은 이를 ‘다정함’으로 번역했지만 ‘착함’으로 해석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듯싶다.
***책을 많이 읽어 똑똑한 시오반은 파우릭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콜름과 마찬가지로 식자층이다. 하지만 그녀는 마을에서 콜름처럼 대우받지 못한다. 오히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욕당한다. 시오반은 콜름처럼 파우릭을 버리는 대신 오빠의 장점을 북돋아주기도 한다. 영화의 메시지와 인물 간 갈등과는 별개로, 콜름과 시오반을 각각 젠더화된 지식인의 표상으로 독해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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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것은 누구일까?
파라다이스 Paradise
Director
프라사나 비타나게 Prasanna VITHANAGE
Cast
Roshan MATHEW, Darshana RAJENDRAN
Program Note
인도의 영화프로듀서 케사브와 블로거 암리사 부부는 고대 인도의 힌두교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유적들을 여행하기 위해 스리랑카에 도착한다. 첫날 여행 중 넷플릭스의 투자 소식을 들은 케사브는 하루빨리 인도로 돌아가고자 하는데 그날 밤, 호텔에 괴한들이 습격하여 모바일폰, 노트북, 카메라 등을 모두 훔쳐 간다. 이튿날 경찰서로 간 부부는 마을의 실업 상태 젊은이들 중 누가 괴한이었는지를 지목하도록 요청받는다. 2022년 4월 국가부도를 선언한 스리랑카의 현재를 무대로 한 이 영화는 인도인 부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 자신의 국가에서도 이등 시민 취급을 받으며 절박한 생존의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 시민들이 무능하고 부패한 국가 권력에 대해 분노를 쌓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탄탄한 서사로 그려낸다. (박선영)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한 부부가 스리랑카로 결혼 5주년 기념 여행을 온다. 파라다이스 같은 아름 다운 풍경과 다르게, 차창 밖은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스리랑카가 국가부도를 선언한 지 2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름도 전기도 없는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목소리를 내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아슬아슬한 거리의 모습과는 대조되게, 부부가 탄 차는 안전하고 평온한 다른 세상이다.
넷플릭스가 작품 제작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소식을 접하고 기쁨과 환희에 가득 차 있다. 이제 돈 벌 일만 남았다는 케사브는 스리랑카의 현실이나, 구걸하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핸드폰 속의 자신의 세상만 중요하다. 몸은 스리랑카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인도에 돌아가 제작을 시작하고 화려한 미래로 향해간다. 그에 비해 아내 암리사는 이 여행에 충실하다. 앤드루의 가이드를 귀 기울여 듣고, 창 밖을 본다. 관광객일 뿐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현실을 직시하고자 한다. 돈이 필요한 나라에 나는 외화를 쓰러 온 사람이니 대접받아야 한다는 케사브의 논리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관광객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스리랑카인 여행업 종사자를 서비스업종사자로 보기보다 하인을 대하는 듯 보이는 장면에서 돈으로 권력을 쥔 인간의 근성을 볼 수 있다.
영화에서 내내 안타까웠던 사람은 이상하리 만치 평온한 이 세상과 저 현실에 중간에 서 있는 운전기사 앤드류였다. 이 세상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기도 하며, 저 현실의 생활자이기도 한 그의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린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동을 주시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가 끝나고 장면을 하나씩 돌이켜 보면 막 숙소에 도착해 짐을 옮기며 ‘사슴 고기 있냐, 먹어보자’ 고 단순하게 말을 던진 케사브와 관광객을 모시기 위해 사슴사냥을 가는 지배인, 그리고 덤덤히 따라가는 앤드류, 사슴을 발견하고 쏘려고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만!” 하고 외침으로써 상황을 종료하는 암리사가 나오는 이 짧은 장면에서 모든 캐릭터에 대한 설명과 주제를 던져 주었구나 하고 알 수 있다. 사냥을 당하는 사슴, 폭력을 휘두르는 케사브, 권력자 옆에서 따르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끝낼 수 있는 사람.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아슬아슬한 이 사냥처럼 조용히 흘러가던 여행은 부부의 전자기기 도난 사건이 벌어진 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여행에서 도난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곳이 어디든(소위 말하는 선진국이든 혹은 후진국이든) 그 물건은 이미 내 물건이 아니다.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진술서를 쓰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정도 일 것이다. 그런데 케사브는 경찰이 사건을 대충 넘어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자, 고위층에 고발하겠다, 찾아오지 않으면 떠나지 않겠다며 협박을 하고, 경찰은 자기 살길을 위해 아무나 데리고 와 이 사람들이 맞냐며 묻는다. 케사브는 마치 분풀이를 할 대상을 찾는 것처럼, 그 수사에 동조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폭력이 시작된다. 이 과정은 사슴사냥과 다르지 않다.이 폭력은 사망자를 만들어 내고, 스리랑카인들의 폭동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스리랑카인의 폭동은 관광객인 케사브를 향해 있지 않다. 폭력적인 경찰을 향한 시위지만, 경찰은 이 시위에 너를 보호하겠다며 관광객인 케사브를 자신의 안전에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격한 상황이 되니 인도인 부부는 거기에 따른다. 이제까지 영화 내내 경찰이 아무런 돈도(기름도), 도둑을 잡을 능력도, 대단한 권한도 없는 것처럼 묘사 되었는데, 결국은 그들이 폭동을 제압할 수 있는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의지하게 되는 장면이 아이러니했다.
암리사의 앤드류가 힌두교의 대서사시 ‘라마야나’ 전설의 해석이 수십 개라고 이야기를 나눴던 장면처럼 마지막 열린 결말은 관객들 마다 각자의 해석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여행을 왔다 폭동에 남편을 잃은 슬픈 사랑이야기가 될지, 이 모든 폭력을 끝낸 여성의 이야기가 될지. 그저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인과응보의 이야기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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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은 영화에서 스리랑카가 겪고 있는 연료나 전기 문제뿐만 아니라 소수민족문제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경제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이런 현실을 영화에 담아내야 할 의무가 있고 그것 또한 삶의 의미라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자신을 이해하려고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영화를 보며, 나의 인도여행과, 스리랑카 여행을 떠올렸다. 암리사처럼 아이들을 쳐다보았던 순간을 기억했다. 관심처럼 보이지만 안쓰러움을 담고 있던 그 눈빛이 아이들에게 폭력은 아니었을까? 때때로 여행자의 시선에서 서비스업 종사자를 혹시 낮게 본 적은, 혹혹은 나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던 적은 없었을까? 그 또한 ‘라마야나’ 전설처럼 각자의 상황에 따라 해석이 될 테니, 아무렇지 않게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 상처나 폭력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곳이,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곳이 바로 ‘파라다이스’가 되는 게 아닐까?
Schedule
10월 7일 20:00 영화의전당시네마테크
10월 8일 20: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10월 10일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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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사의 손꼽히는 거인
7★/10★
〈길위에 김대중〉은 탄생부터 이른바 ‘양김 분열’ 직전까지의 김대중의 삶을 다룬 영화다(그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진다고 한다). 90년대생인 내게, 이 영화는 그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정도로만 막연히 알고 있던 양김 분열 이전의 김대중의 정치적 여정을 살필 수 있던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후 정치인 김대중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다. 민주주의, 평화, 지식인, 연설가의 이미지가 흐릿하게 중첩되어 있을 뿐이었던 그가 신념을 가진 협상가, 전술가, 의회주의자의 이미지로 재각인되었다.
1924년 전라도의 한 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사회에서는 해운회사를 세워 승승장구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는 사업을 지키기 위해 우익 단체에 가입했던 것이 빌미가 되어 인민군에게 큰 고초를 당했고, 전후 부산에서는 권력을 향한 이승만의 야욕(이와 반대로 이승만의 ‘건국’과 ‘호국’ 업적을 기리는 영화로는 〈기적의 시작〉이 있다)에 크게 분노했다. 이 두 경험은 정치인 김대중의 향로를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민주주의를 해야 공산당을 이긴다’라는 확신을 얻은 것이다.
사업과 달리 정치인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연이어 낙선하다 38의 나이에 국회에 입성했다. 김대중은 정치 입문 초창기부터 탁월한 언변과 논리로 주목받았다. 박정희가 왜 장관이고 국회의원이고 김대중 하나를 못 당하느냐고 닦달했다는 대목은 정치인 김대중에게 말이 평생의 든든한 무기가 되어주리라는 걸 짐작케 한다.
김대중에게는 평생에 걸쳐 추구할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있었다. 국가 주도 경제가 아닌 대중 경제론, 중앙집중이 아닌 지방 자치제 등은 이를 위한 구체적 정책 제언이었다. 더불어 의회가 필연적으로 협상을 통해 굴러갈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점을 인식한 그의 현실 감각이 흥미로웠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을 무조건 반대하는 대신 이를 국가 발전과 민주주의 제도 확립과 연결할 방안을 제시했다. 즉 그에게 정치는 전부냐 제로냐(all or nothing)의 문제가 아니라 이득을 보는 협상을 이끌어내는 행위였다. 이런 태도가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운동가‧혁명가라면 타협할 줄 모르는 불굴의 정신으로 목표하는 바를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의회에 소속된 국회의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대중과 함께하는 정치인이라면 늘 그럴 수만은 없다. 이들의 방법론은 달라야 한다. 전제정치의 수장이나 왕이 아니라면 협상과 타협은 불가피하다. 영화는 정치인 김대중이 꺾이지 않는 신념과 협상할 줄 아는 현실감을 함께 가진 정치인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그를 현대 한국 정치의 손꼽히는 거인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박정희 집권기에 정치 활동을 하면서 김대중은 여러 고초를 겪었다. 100만 명이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이고, 당시 여당이 엄청난 금권 선거를 했는데도 간신히 대선에서 승리하자 본격적인 견제가 시작된 것이다. 김대중의 성취는 지역감정으로 줄곧 폄훼되었고(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는 어떻게 김대중에게 지역감정의 족쇄가 씌어졌는지를 다룬다), 심지어 정보기관에 의한 암살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탄압은 전두환 정권에서도 이어졌다. 그와 뜻을 함께하는 많은 이가 고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대중은 멈추지 않았다. 해외에 망명 중일 때도 유수의 언론사에 기고문을 보내거나 인터뷰에 임했고, 강연을 진행하는 등 정치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또 다른 민주화의 상징 김영삼과는 미묘한 연대를 이어가며 끝내 직선제를 쟁취해냈다. 그리고 언제나 김대중의 곁에는 그를 지지하는 국민이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가 김대중 석방이었다는 데서 그가 많은 사람에게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적확히 시대를 진단하고, 미래의 시대정신을 제시하며, 단호하면서도 유연하게 원하는 것을 얻어낸 그의 정치 행로는 뭇 정치인들의 그것과는 달리 사뭇 감동과 감탄을 자아내는 데가 있다.
정치인을 회고하는 영화는 모두 나름의 관점이 있다. 〈기적의 시작〉(2023), 〈노무현입니다〉(2017), 〈문재인입니다〉(2023) 등의 영화는 모두 대중에게 해당 정치인을 어떤 가치로 기억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리고 이 가치는 그 정치인이 살아온 시대를 대변한다. 〈길위에 김대중〉은 신념을 가졌으되 협상할 줄 아는 정치인 김대중의 가치를 관객에게 제시한다. 소구력이 있는 가치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집요함은 탄압‧협상‧개척의 질곡을 건너 끝내 꽃을 피웠다. 그가 살아간 시대는 지났고, 이제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이유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김대중과 그의 시대가 빚어낸 무언가에 빚지고 있다. 대중 정치인과 운동가, 의회주의자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국면에 맞추어 대중과 함께 자기 영역을 넓힐 줄 알았던 정치인. 인물에 대한 호불호와 업적에 대한 평가가 갈릴 순 있겠지만, 누구도 김대중이 우리 현대사의 손꼽히는 거인이었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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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 환경!'을 외치는 악당 나자연
<짱구는 못말려>의 TV 시리즈는 어린이를 위한 것 스토리가 주를 이루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 극장판은 어른이들의 눈물도 뺄 만한 스토리가 많다. 그래서 많이 챙겨보는 편이고, 즐겨보는 편이다. 그래도 주 타겟층은 어린이겠지만 말이다.
짱구 극장판이 판타지적인 스토리들을 많이 다루고 있는 것처럼 <포효하라! 떡잎 야생왕국>은 어떠한 약을 먹으면 인간들이 동물로 변하는 것이 메인 스토리로 다뤄진다. 약을 먹은 여러 사람이 조금이지만 에너지를 아끼고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끝난다. 짱구 극장판은 TV에 나오면 거의 챙겨보는데 처음 접한 편이라서 더 유심히 봤던 것 같다. 다 보고 리뷰를 찾아보니 팬들 사이에서 그다지 평이 좋지는 않았다.
<포효하라! 떡잎 야생왕국>에서 눈여겨볼 캐릭터는 마을회장이자 악당인 나자연 씨다. 날씨가 푹푹 찌는 것이 지구온난화(물론 지금은 기후위기라고 부른다) 때문이라고 짱구 엄마가 말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다.
나자연 씨의 첫 등장은 급하게 쓰레기를 버리는 짱구 엄마 봉미선 씨를 만나면서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여기에 버리시면 안 돼요~ 얼마 전에 마을 회의에서 쓰레기를 세분화해서 버리기로 정했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환경운동가의 관점에서 그는 악당이 아니어야만 했다.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는 사람들이 '환경! 환경!'이라고 외쳐가면서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좀 웃겼지만 말이다. 그는 만남 직후 봉미선 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지금 지구환경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쓰레기 분리, 재활용, 에너지 절약, 전 세계 사람들이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환경보호운동에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지구를 지키자! (환경환경) 자연을 지키자! (환경환경)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지구를 남겨줘야지 않을까요?”이 이야기를 계기로 봉미선 씨는 집에서 할 수 있는 환경운동들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부부싸움의 스케일이 커졌다고 짱구 아빠 신영만 씨는 불만을 토로했지만 각자의 실천들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나자연 씨의 유치원 교육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지구의 환경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도 환경의 심각성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환경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어른들 때문에 강은 쓰레기장으로 변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작지만 하나로 모으면 커다란 힘이 됩니다.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힘을 모읍시다!”
나자연 씨는 열정적인 연설을 한 뒤 유치원생들과 함께 강으로 가서 쓰레기를 주웠다. 그는 실천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구두는 어디에 버려야 할지 헛갈려하는 훈이에게 (비록 무서운 표정이었지만)재활용과 재활용이 아닌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그는 쓰레기에 정말 진심인 사람인 것 같았다.
이런 나자연 씨가 왜 악당이어야만 했을까? 그는 어떤 사람일까?
마을회장 나자연 씨는 '지구를 구하고 자연을 구하자', 일명 지구자구의 수장이었다. 지구자구의 목표는 지구의 자연성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 인간들을 동물로 만드는 것이다. 그가 지구를 대하고 있는 진심을 동물로 변한 봉미선 씨와 신영만 씨를 앞에 두고 한 말에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물질적인 풍요로움만 추구한 나머지 모두 물질에 찌들어 있죠. 그런데 지구는 점점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하고 파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파멸을 길에 벗어나 지구의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이제 물질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포기하지 마! 그래 가지고 지구를 구할 수 있겠냐!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물질문명을 포기하지 못하는 현대인! 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식한 존재란 말이냐!”그와 지구자구는 마을회장이 되어서 분리 배출된 쓰레기를 팔아서 활동비용으로 충당했다. 길거리 모금을 통해서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다. 실제로 환경단체 중에는 자원순환 사회적기업과 연관하여 활동하고 있는 곳도 있고, 운영을 위해서는 회원을 모집하여 후원금을 받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런 활동은 비난받을 이유는 없었다. 물론 공금인 마을회비를 사용했다면 횡령이기 때문에 그 부분은 비난받아도 된다. 실제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악당이 하는 행동'으로 그린 것에 대해서는 큰 우려가 된다. 현실 세계의 아이들에게 우리는 악당으로 보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이 공개된 2009년 즈음 나는 봉사활동을 위해 일본에 두 달 정도 머무르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도 분리배출은 열심히 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쓰레기를 한곳에 묶어서 배출하고 있었다. 재활용품 분리에 대한 개념이 있기는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고,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도 수분이 제거되면 작은 봉지에 밀봉하여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렸다. 나자연 씨가 마을회장이 되면서까지 분리배출을 하도록 결정한 부분은 일본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어야 했다. 그동안 본인들이 막 버리던 쓰레기들이 실제로 자원화가 되고, 심지어 되팔아서 자금이 된다는 사실은 놀라워야 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자연 씨는 '흉악범' 취급을 당한다.
그는 본격적으로 인간들을 동물로 만들기 전에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한다.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 쇼핑몰의 불필요한 조명을 끄고 조도를 낮추는 일을 했다. 이 일이 기존의 익숙함에 비해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말은 틀린 것도 없다. 물을 아끼기 위해 식수대를 잠그기도 했고, 마을의 음료수 자판기의 '차가움' 기능을 끄기도 했다. 석탄연료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자동차의 엔진을 없애버리기도 했다. 이런 행동들은 환경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반발감을 사기 충분해 보였다.
나자연 씨가 지구자구를 하게 된 것은 사람들이 환경을 보호하자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환경을 지키고 지구를 지키자고 말해도 사람들은 들어주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환경은 더욱 나빠지기만 했다. 지구와 자연을 지키자고 말하는 그는 물벼락도 맞았다.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소리는 괜찮지만 구호는 듣기 싫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인간들에게 절망하고 말았다. 애석하게도 환경운동을 하다가 보면 결국은 인간이 멸종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자연 씨도 환경운동가가 겪는 산 하나를 만나고 만 것이다. 인류애가 사라지게 된다고나 할까... 결국 지구 바보 나자연 씨는 아름다운 지구를 되찾는 것에 인생을 걸었다. 우연히 들어간 떡잎마을 지하 땅굴은 사람들이 없고 원시 자연이었으며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지하를 지키려면 마을회장이 되어야만 했고, 그때부터 사람들을 동물로 만드는 약을 연구했다. 인간을 죽이는 약이 아니라 동물로 만드는 약을 만드는 것 자체가 그가 인간을 생각보다 미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 방법이 최후의 수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을 해 보고, 인간들을 조금이나마 믿어보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일 것이다. 그들은 요상한 옷을 입고 요상한 자세로 '환경! 환경!'을 외치고 다니지만 실제로 악당이 아니라 '급진적 환경운동가'일뿐이었다.
나자연과 반하는 인물로 빅토리아(코코)를 들 수 있다. 빅토리아는 히로인인데 매우 부자인 것으로 그려진다. 심지어 (나중에 밝혀지지만)나자연의 부인이다. 무동력으로 추격전을 하고 있는 지구자구와 짱구네 가족들 사이에 엔진 빵빵한 자동차를 몰고 와서 수류탄을 마구 투척한다. 지구자구는 무기랍시고 본인들이 수거한 캔을 던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기름이 떨어져서 자동차가 멈추자 연비가 좋지 않은 차라면서 투덜거리기까지 한다.
지구자구의 본거지에 쳐들어왔을 때도 멋진 오도방구를 타고 바주카포를 날린다. 어느 누구의 위험과 안전은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 쏘아댄다. 짱구 일행도 다칠 뻔했다. 이때도 지구자구는 화석연료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건물의 전기는 마당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로 충당하고 있었고, 그들은 탈 것 없이 뛰어서 빅토리아를 맞이한다. 무기는 옷걸이와 프라이팬 등이었다. 지구자구가 싸우는 중에도 분리배출을 하는 등 어리숙하게 보이는 것은 그들은 '싸움'에 주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빅토리아가 지구자구를 잡으려고 하는 이유는 그들의 계획이 성공하면 원피스, 구두, 가방 같은 본인을 꾸미기 위한 것들이 사라져서 허무해질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악당을 물리친다고 했지만 그녀는 지구자구가 말하는 현재 문명에 찌들어 있는 사람이었고, 자원과 에너지 절약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여러 의미로 환경을 망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정상적인 사고체계라면 '그런 방법은 옳지 않아!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라고 했어야 맞는 것일 텐데 '환경 그까짓 게 뭐라고'의 마음을 가진 히로인이라니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러니 낭비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빅토리아보다는 자연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정강이를 까이는 나자연 씨에게 더 관심이 갈 수밖에. 그가 아내인 빅토리아를 동물화시키려고 했다가 인류까지 계획을 확장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여담이지만 빅토리아가 이상한 통에 갇혀서 데굴데굴 굴러갈 때 부딪히는 곳이 산꼭대기에 잔뜩 꽂혀 있는 송전탑인 것을 보고는 감독님의 디테일에 살짝 감동하기도 했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자전거와 러닝머신을 이용하는 모습 역시도 그랬다.
나자연 씨는 굉장히 이상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너무 악당 같지 않았던 것일까? 막판에 그는 신념도 없는 이상한 사람처럼 그려졌다. 강력한 약어서 괴물로 변했고, 약병도 함부로 버렸다. 사랑 때문에 찌질하게 군 사람처럼 그려지기도 했지만 그가 악당으로 변한 것은 살아온 역사를 본다면 당연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들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고, 심지어 짱구네 가족들도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로만 하고 '인간은 어찌 돼도 상관없냐'고 되물었으니 말이다.
결국 가족의 사랑이 지구의 사랑이라고 말한 나자연 씨는 아무리 노력해도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것을 느끼고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현실에 안주하기로 한 것 같다. 행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씁쓸한 말로였다.
팬들이 최악으로 뽑는 제일 큰 이유는 개연성 없는 스토리와 개연성 없는 캐릭터였다. 나 역시 나자연 씨의 활동들에 매우 동의하며 감정 이입하고 있었는데 막판에 무너진 캐릭터 때문에 당황스러웠기 때문에 그 평가에 매우 동의한다.
안타까운 상상이기는 하지만 나자연씨의 일과 가족이 현실이라면 빅토리아가 돈을 잘 쓰고 다니는 것은 잘 벌거나 집안이 좋다고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나자연 씨가 다른 돈벌이 없이 환경운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런 경제적인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와 등지고 나서는 쓰레기를 팔아서 자금을 모았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배부르니까 환경운동 한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나는 환경운동은 가난한 활동이라는 것에는 매우 동의한다. 사실 환경운동가 중에 부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가난하든 부자든 환경보호는 누구나 해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환경운동 하기 어려운 것도 너무나 현실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다섯 벌 사던 옷을 세 벌로 줄인다는 약속은 남은 비용을 환경운동 하는 곳에 투자해 준다는 약속으로 확장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아마 그 비용은 나자연 씨의 환경보호활동을 덜 급진적이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너무 속물처럼 보이지만 현실이 이러하니 안타까운 상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아이들이 환경보호를 하는 활동들이 나쁘고 하찮은 것이라고 여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뽀로로>를 보고 아이들은 가장 사고를 많이 치는 크롱에게 가장 많은 감정이입을 한다고 하던데 <짱구는 못말려>의 악당에게 감정이입을 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현재진행형이라서 환경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이 애니메이션을 딱히 추천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른이들은 이 안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잘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의 나자연 씨는 인간을 동물로 만들지 못했지만 나는 오늘도 외쳐본다.
“환경! 환경! 지구자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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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패왕> 메인 예고편
카지노 패권 싸움에 휘말려 죽은 동생을 위해
복수를 다짐하는 아시아 도박왕 '우쯔젠'
아시아 카지노를 장악하기 위해 계략을 꾸미는
용등회 리더 '이치로'
이들은 아시아 카지노를 휘두를 수 있는
도박왕 자리를 두고 목숨을 건 배팅을 시작하게 되는데...
왕의 자리를 지킬 것인가, 빼앗길 것인가!
인생을 건 한판 승부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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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루엘라> 스페셜 예고편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의 광기 어린 악녀이자 디즈니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빌런 ‘크루엘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