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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025-02-27 12:03:23

실체가 사라져도 사랑할 수 있을까

샬롯 웰스 <애프터썬> 2023

벽에 붙여둔 포스터를 보며 생각했다. 결국 인간은 무언가와 닿아야만 하는 존재일까.

방 한 쪽 벽에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를 잘 붙여두고 그 밑엔 잘 틀지도 않는 음반들을 쌓아둔다. 마음에 드는 책은 꼭 종이책으로 구입하고 굳이 손 편지를 써 보내는 우리는,

결국 사랑에도 손을 뻗어 닿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 그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면, 우린 어떻게 사랑을 이어가야 할까.

 

샬롯 웰스 감독의 영화 <애프터썬>31살이 된 주인공 소피가 11살 여름방학, 아빠 캘럼과 떠났던 튀르키예 여름휴가 영상을 돌려 보며 당시를 회상하는 영화다. 관객들은 소피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며, 11살의 그녀는 온전히 알 수 없었던 아빠의 우울을 천천히 목격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캘럼은 영화에서 늘 작은 공간에 존재한다. 캠코더와 연결된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등장하거나 호텔 방의 거울 속에 비춰지는 등 스크린의 가장자리나 희미한 화면, 어둠 속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위태로운 난간 위에 올라서고, 어둡고 파도치는 바다로 뛰어든다. 캘럼은 좀처럼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어딘가로 떠다니는 인물이다. 소피에게 넌 어디든 원하는 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고향에서 조차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영화 후반부에 여의치 않은 지갑 사정에도 무리해서 구입한 카펫은 그가 온전히 발붙일 유일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작은 카펫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는 어린 아빠는 소피에게 이를 선물한 듯 보인다. 31살의 된 소피는 자신의 침대에서 카펫에 발을 디디며 일어난다. 캘럼의 작은 카펫은 그가 유일하게 세상과 닿을 수 있는 공간이자, 어른이 된 소피(어쩌면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머물고 있을)가 발 디딜 곳이 되어주는 셈이다. , 캘럼의 부재 이후 그녀를 아빠와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제목 애프터썬은 햇볕에 탄 피부에 바르는 크림을 의미한다. 이미 다 그을려 버린 피부지만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바르는 이 크림은 소피와 캘럼이 서로를 돌보는 방식이다. 그들은 영화 내내 애프터썬 크림을 바르며 서로의 존재와 함께함을 확인한다. 부모의 이혼 이후 소피는 주로 엄마와 지내는 듯 보인다. 그녀는 휴가 중 캘럼에게 우리가 같은 태양을 볼 수 있단 사실을 떠올려. 비록 같은 장소에 있진 않더라도, 같이 있는 거나 다름없잖아?’라는 말을 건넨다. 뜨거운 햇볕에 달아오른 피부에 닿는 차가운 크림의 감촉은 여행 내내 소피가 느낄 부드러움이며 계속해서 아빠의 부재를 상기시킬 시린 감각이다.

 

 

 

영화는 계속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캘럼의 춤사위를 비춘다. 그의 춤은 고통의 몸부림이자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이며, 어떻게든 삶을 붙들어 보려는 시도다. 엔딩 장면에서 소피와 캘럼은 Under Pressure 음악 속에서 함께 춤을 춘다. 11살의 소피는 아빠의 우스꽝스러운 춤을 창피해하면서도 기꺼이 그와 춤추고 31살의 소피는 닿지 않을 절규와 함께 있는 힘껏 그를 껴안는다. 비로소 아빠의 우울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어버린 소피에게는 더 이상 그의 실체를 감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한다. 사랑하는 대상의 실체를 잃는 것은 이를 불가능하게 하여 우리를 괴롭힌다. 그렇기에 우리는 떠난 이에 대한 기억을 기어코 끄집어내어 그를, 또 나를 안아주어야만 한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춤이니까.

작성자 . K

출처 . https://blog.naver.com/odetothe/223776268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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