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바다2025-03-08 13:43:53
다시 일깨우는 ‘사랑’과 ‘공존’의 가치
영화 <미키 17> 리뷰
▷한줄평 : 다시 죽음의 두려움조차 이겨낸 ‘소통’, ‘협력’, ‘사랑’, ‘희생’의 보편적 가치를 말하다
▷영화 : 미키 17(Mickey 17), 2025.2월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영화 <미키 17>에서 / 티모(스티븐 연), 카이 캇츠(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
우리 모두는 ‘익스펜더블’과 같은 존재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해도 매번 죽음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생체실험에 자신의 생명을 제공하는 ‘익스펜더블(Expendable, 소모품)’ 직군을 선택한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죽음을 피할 방도는 없다. “다시 만나!”라고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소각로(사이클러)에 뛰어들면 그만이다. 두려움도 반복되면 익숙해진다. 다시 프린트하면 되니깐. 이 순간 ‘미키’는 미키1, 미키2… 미키n과 같이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달리 벗어날 방법이 없다. 2054년 우주 행성 개발 시대에서조차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하층 노동자는 ‘위험의 외주화’의 도구가 될 뿐이다. 미키n이 갖는 존재의 가치를 논할 필요가 없다.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지점에 슬픔조차 불필요한 감정이 된다. 죽는 기분이 어떤지 묻는 동료의 질문에 ‘항상 무섭다’라고 말할 것 밖에 없다. 고귀한 새로운 생명의 창조와 탄생 일조차 이제는 간단히 버튼 하나로 3D 프린터로 뚝딱 만들어내는 단순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인간 존재의 가치를 말해주는 ‘탄생’과 ‘죽음’의 신비로움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 미키는 이런 소모품으로 자신이 소비되고 있음이 후회스럽다.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
어쩌면 <미키 17>에서의 새로운 복제인간의 탄생은 우리가 매일같이 잠을 자고 새로운 날을 맞는 것과 유사한 메커니즘을 갖는다. 미키가 과거의 자기를 폐기하고, 새롭게 탄생한 존재를 현재 살아있는 객체로 구분해 내듯, 우리는 연속된 생을 하루라는 날로 구분하여 매번 새로운 날들을 만들어 낸다. 3월 1일, 2일…n일 처럼 말이다. 시간의 영속적 흐름 속에서 특정 시간에 대한 의미 부여를 위해 강제로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어 쳇바퀴에 올려놓은 꼴이다. 매일매일 지옥과 같은 일상 속에서 자아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을 반복한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교차하는 지점에 드는 아쉬움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대한 쓸데없는 감정 소모일 뿐이다. 그래서 미키n이든 제이바다n일이든, 이 세상의 모든 ‘익스펜더블(소모품)’들은 견디기 힘들 만큼 지루한 일상을 끊임없이 버텨내야만 한다. 그 짧은 간극 사이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각 개인들의 몫이다.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소모품으로 소비되는 미키n의 존재들
봉준호 감독은 이 지점에 미키17이 자신을 복제한 미키18을 마주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17번째 미키가 크레바스에서 죽었다고 착각한 이들이 18번째 미키를 리프린트하게 된 것이다. 이 세계에선 동일한 익스펜더블이 공존하는 '멀티플'은 불법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 상황이 발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둘 중 하나를 죽여야 한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서로 살아남기 위해 자기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존속이 행복할 것처럼 보였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마주해야 비로소 그 삶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은 계속 사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달라. 내가 죽으면 네가 사는 거잖아.’ 영화 <미키 17>에서 / 미키 17(로버트 패틴슨)
현재는 과거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결과물은 사뭇 다르다. 기억의 저장과 재생 과정에서 성품까지도 동일하게 반복 재생시키지는 못했다. 마치 기억의 저장소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끄집어내 나의 온전한 기억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과 같다. 미키18는 다혈질의 성향을, 미키17은 온유한 성품을 가졌다. 어쩌면 순간마다 달라지는 우리들의 내적 자아의 분열과 같다.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낸다.
미키의 이러한 다른 성품은 둘 중 어느 하나가 살아남을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 둘은 처음에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격하게 부정한다. 서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소통’이 만들어낸 대결과 파멸의 극복
기록된 역사는 정복자의 관점을 투영한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말 그대로 우연한 ‘발견’일뿐이지, 그 대륙에도 사람들이 이미 번성한 문명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최근에는 유럽인의 시각에서 사용한 ‘발견’이라는 말 대신에 ‘만남(Encounter)’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지금도 정복자의 시선이 담긴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s)’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당시에도 문명국가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잉카, 마야, 아즈텍은 대표적인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이다. ‘니플헤임’ 식민 우주 행성 개척은 생육과 번성을 꾀해왔던 인류의 역사와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외계인인데 왜 쟤네더러 외계인이래?" 영화 <미키 17>에서 / 나샤(나오미 애키)
이 프로젝트의 총사령관인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과 일파 마샬(토니 콜렛) 부부는 이런 정복자 DNA의 야욕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행성에 이미 살고 있었던 외계 생명체, 크리퍼 (Creeper)를 ‘추악한 외계인’이라 부른다. 그 옛날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을 ‘인디언(Indian)’이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크리퍼들이야말로 이곳 니플헤임의 원주민이며 외계인은 오히려 지구에서 찾아온 우리 인간들이다. 크리퍼에게는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체계가 있었으며, 그 수많은 개체들마다 각자의 이름(루코, 조코, 등)이 있을 정도로 공동체성을 보유하고 있는 종족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케네스 일당은 여전히 그들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마샬은 벌레의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다며 식민지 개척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크리퍼를 몰살할 계획을 세운다.
영화 <미키 17> 스틸컷 / 독재자와 그의 추종 세력들
영화 <미키 17>에서는 이 지점에서 외계인을 포함한 타인을 대하는 탐욕스러운 인간 본성을 탐구한다. 아둔하고 차별적이며 폭력적인 케네스 마샬은 이 시대에 존재하는 수많은 독재자들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옆에서 이를 부추기며 소스(Sauce) 개발에 열을 올리는 등 사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아내 일파 마샬과 조력자들의 존재는 현실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들은 철저히 계급을 나누고 명령과 복종을 강요한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대화와 타협, 소통은 늘 뒷전이다.
이젠 미키17과 미키18에게는 극복해야 할 공공의 적이 생겼다. 어떤 식으로든 케네스 일당으로부터 크리퍼의 파멸을 막아보겠다는 미키 17과 미키 18은 외계인과의 메신저 역할을 자처한다.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 인류와 외계 인간의 공존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이렇게 ‘소통’과 ‘협력’은 파멸을 이겨내는 과정이 되었고, 종국에는 ‘희생’을 통해 희망이라는 미래를 만들어 내었다.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외계 생명체를 만나러 가는 미키
죽음의 두려움조차 이겨낸 ‘사랑’과 ‘희생’의 가치
이러한 분열된 자아와 같은 또 다른 미키의 등장으로 인한 혼란, 생사의 키를 쥐고 흔드는 독재자의 압박, 처음 마주한 외계 생명체와의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미키17과 미키 18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케네스 마샬은 미키가 그동안 느껴왔던 ‘두려움’조차 이용하려 든다.
"너도 두려움을 느끼는 거지? 너도 인간이잖아, 중요한 존재지."
영화 <미키 17>에서 / 케네스 마샬 (마크 러팔로)
그러나 다시 살아날 것을 기대하며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영원한 사라져야 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다를 것이다. 이 ‘두려움’을 ‘희생’으로 치환 시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사랑’과 ‘공존’에 대한 염원이다. 사랑이야말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가 가치 있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요인이 되었다.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멀리서 보이는 사랑하는 나샤(나오미 애키)와 미키 17을 바라보면서 ‘희생’을 선택한다.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나샤
봉준호 감독은 참으로 일관된 스토리텔러이다. 영화의 시간과 공간을 <설국열차>의 멈추지 않는 기차와 <기생충>의 어두침침한 지하실에서 <미키 17>의 미래와 우주로 옮겨 놓았을 뿐,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보편적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설득해 내려고 한다. 그동안 인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등장해 왔던 독재자, 아메리카 신대륙을 정복하러 나섰던 콜럼버스와 같은 야욕가, 인간의 생명의 존엄 따위는 관심조차 없는 정치가 등 부와 권력의 위계질서는 인간 사회가 유지되는 한 지속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타인과의 평화로운 공존의 모색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다. 영화 <미키 17>은 ‘사랑’, ‘협력’, ‘소통’, ‘희생’을 통해 이를 극복해 낼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는 바로 우리, 여기,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영화 <미키 17>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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