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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025-03-12 17:30:40

상관없어, 그냥 계속 연기해

웨스 앤더슨 <애스터로이드 시티> 2023

신없이 일상을 보내다가도 순간 삶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한평생 우리를 따라다녔고 또 따라다닐 이 질문은,

'대체 무엇이 의미 있는가'

자꾸만 길을 잃는 이들에게 웨스 앤더슨은 영화를 통해 말한다. '상관없어, 그냥 계속 연기해.'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극작가 콘래드가 쓴 연극과 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애스터로이드'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열린 '소행성의 날' 행사 참석을 위해 과학 천재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 등 여러 사람이 모인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외계인의 등장으로 이들은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갇히고 만다. 이 이상한 연극의 전개를 이해하기 위해 극 속 인물들과 극 밖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의미를 찾아내려 애쓴다.

 

 

 

영화는 연극 속 내용과 비하인드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연극을 현실처럼, 비하인드인 현실을 연극처럼 보여준다는 것이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라는 극은 컬러 화면이며, 자연스러운 화면 전환을 보여주는 반면, 비하인드 씬에서는 흑백 화면과 내레이션, 연극 세트와 같은 화면 구성을 가진다. 이러한 경계는 영화가 진행되며 자꾸만 무너진다. 현실의 내레이터 배우가 뜬금없이 연극 장면에서 등장하고, 오기 역의 배우는 도저히 극 중 오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며 연극 밖으로 뛰쳐나간다. 엔딩에서는 연기학원에 앉아있던 배우들이 모두 잠에 빠져드는 연기를 펼친다. 그중 한 배우가 벌떡 일어나며 무언갈 외치는데 이때 배우를 비추는 화면은 컬러로 바뀐다. 현실과 극의 경계가 뒤섞이는 순간이다.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어.'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외계인이 나타난 후 우드로는 아버지 오기에게 말한다. '모든 게 불확실해요. 외계인이 또 올지, 오면 무슨 말을 할지, 왜 소행성을 훔친 건지, 그게 우리건 맞는 건지, 우린 아는 게 없다고요. 어쩌면 저 우주에 뭔가 우리 삶의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요.' 수상한 외계인의 등장이 우드로의 인생을 흔들어 놓는 동안, 오기 역 배우 존스는 조금 다른 사건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왜 오기는 전기 버너 위에 손을 올렸는가.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이상한 점은 한 둘이 아니다. 땅을 파는 자판기, 잘려 나간 오기와 아내의 장면, 알 수 없는 외계인의 의도. 그러나 존스가 가장 궁금해하는 건 오기가 버너 위에 왜 손을 올렸는지다. 결국 극 밖으로 뛰쳐나와 연출가 슈버트를 찾아간 그는 말한다. 아직도 이 연극의 의미를 모르겠어요. 슈버트는 그런 그에게 의미는 상관없으니, 그냥 이대로 계속 연기하라 답한다.

다시 무대에 오르기 전 존스는 아내 역을 맡았던 배우를 우연히 만난다. 그녀에게서 잊고 있던 삭제 장면에 관해 들은 그는 묻는다. 왜 잘랐을까요? 좋은 장면인데. 배우는 답한다. 아마 러닝타임 때문이겠죠.

극으로 돌아간 존스는 무사히 연기를 끝내고,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성황리에 막을 내린다. 그러나 우드로도, 존스도, 연출가도, 관객도 각자의 의문을 해결하진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상관없다는 것.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기에 인생은 너무나도 짧고, 극의 모든 뜻을 파악하기도 전에 영화는 끝난다. 우리는 끝내 아무것도 알 수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의문을 가지고서라도 나아가는 것이다. 엔딩에서 배우들이 외친 대사처럼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조차 없다.

 


 

작성자 . K

출처 . https://blog.naver.com/odetothe/223793600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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