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3-13 08:08:51
죽음의 사유에서 피어오르는 삶
영화 〈숨〉
6★/10★
영화의 주요 화자는 세 명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죽음에 걸쳐 있다. 장례지도사 유재철은 수많은 이의 죽음 의례를 총괄하며 죽음에 관한 태도를 다듬었고, 폐지를 줍는 여성 노인 문인산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 무탈하기를 소원하며, 유품정리사 겸 특수 청소를 하는 김새별은 고인이 남긴 흔적을 갈무리해 그의 살아생전 모습을 상상 속에서 복원한다. 이 세 명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죽음에 천착하여 삶의 조건을 환기한다는 것 말이다.
먼저 장례지도사 유재철. 그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죽음을 모두 다뤄봤다. 가져갈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이 커서인지 부자는 얼굴을 찡그린 채 몸을 웅크리고 죽었다. 반면 가난한 자는 극락에 간 듯한 편안한 표정이다. 현실의 고달픔을 이제는 벗어날 수 있어서일까? 죽음은 현생의 무수한 불평등을 거스르는 몇 안 되는 인간의 공통 경험인데, 장례지도사는 여러 죽음의 양태 속에서 자기 삶의 태도를 톺아본다. 누군가는 께름칙하다는 이유로 꺼리는 일인 염殮을 하는 그의 노동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의 정돈되고 익숙한 손길은 한 사람의 생애 단 한 번뿐인 특별한 일을 ‘일상적’인 일로 만든다. 노동으로서의 염이 무수히 반복되는 사건으로서의 죽음이 야기하는 두려움을 상쇄하여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사유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폐지 줍는 노인 문인산이다. 그의 말은 듣는 이를 괴롭게 한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죽지 못해 산다, 사는 게 슬프고 허무하다, 호화 찬란하게 살고 싶었다……. 그에게 생은 언젠가부터 고통과 회한의 연속이었다. 건강 악화와 빈곤이라는 조건에서, 독거 여성 노인인 그는 죽음이 별 소란 없이 스윽 다가왔으면 한다. 그에게 요란스럽게 다가오는 죽음에 대응할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유재철이 환기해주듯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그러나 문인산이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듯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불평등은 그 죽음마저 불공평한 것으로 만든다.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죽음의 존엄은 박탈되고, 존중받지 못하는 노인은 홀로 외롭다.
세 번째는 유품정리사 김새별. 우리와 비슷한 모양새였을 신체는 썩어 문드러져 잘 닦이지 않는 진액이 되었고, 그 진액을 박박 문질러 걷어내는 김새별은 죽은 자가 남긴 흔적을 토대로 그의 생전 삶의 조각을 맞춰본다. 그가 들려주는 고인의 이야기는 왜 인간은 죽은 후에야 인간적인 상상력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지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김새별이 특수 청소를 하며 추론한 것들을 사회가, 제도가, 이웃이, 가족이 먼저 할 수 있었다면 소주병이 굴러다니는 방에서 홀로 죽어 진액이 된 남자의 삶은 그와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죽음과 맞닿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죽음과 순환을 이루는 삶을 환기한다. 영화에는 숨소리에 집중해 크게 들려주는 장면이 있다. 죽음과 삶이 들이쉬고 내쉬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숨과 같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였을 터다. 우리는 죽음과 맞닿은 삶을 어떻게, 어떤 조건 위에서, 어느 정도의 온기를 품고 살아갈 것인가? 숨을 들이쉬면 내쉬어야 하듯이, 삶을 잘 살아가려면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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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아씨들(2019)>, 조가 로리를 사랑할 수 없었던 이유
작은아씨들(2019), 조가 로리를 사랑할 수 없었던 이유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작은 아씨들」은 일곱 번이나 영화화가 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소설이다. 그 중 가장 최근에 나온 2019년 「작은아씨들」의 네 자매들은 현대시대에 맞게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동시에 로맨스적인 부분들이 눈에 띄는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나 로리가 조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여러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리라 생각된다. 조가 로리를 거절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조는 로리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조는 원래 결혼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결혼을 하는 결말로 끝맺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상대는 로리가 아니었다. 젊고, 잘생기고, 돈 많은 로리와 정반대인 프리드리히를 선택한 것은 차선책이고 조가 얼마나 자신의 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로리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이유는 조가 사랑보다는 꿈을 중요시여겼고, 끊임없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사실 로리와 조는 모두 고집이 세고 자유를 추구하며 감정적이라는 면에서 조와 비슷한 면이 많으며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낼만큼 잘 통하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로리의 집안 부잣집이며, 로리의 할아버지는 아들과 딸을 모두 잃어 이제는 손자, 즉 로리 하나뿐이다. 만약 조가 로리의 고백을 받아들였다면 그 시대에 조가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며 자신이 하고 싶던 꿈을 온전히 펼칠 수 없었을 것이며 이미 재산이 쌓여있는 집안에서 굳이 스스로 돈을 벌 필요조차 없어진다. 또한 로리는 할아버지가 시키는 일, 조가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가문의 보호 아래에서 자란 로리는 자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인물이 되지 못한다.
반면에 프리드리히는 로리와 완전히 정반대의 인물이다. 프리드리히는 나이가 많았고 가난했으며 심지어 조의 글이 별로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조가 프리드리히를 사랑한 것은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이었다. 프리드리히는 조에게 독일어를 가르쳐 주다 한계에 다다랐을 때도 끝까지 조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조의 글에 대한 평가로 인해 화가 난 조에게도 먼저 다가갔다. 프리드리히는 심지어 자신의 옷을 스스로 기워 입는 사람이었다. 조의 인생에 그런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내 몫은 내가 들게요, 프리드리히. 그리고 생계를 꾸리는 것도 도울게요. 그렇게 하기로 해요. 안 그럼 나 절대 안 갈 테니까.” 영화에서 떠나는 프리드리히를 잡고 그의 집을 나누어 들며 하는 말이다. 자기 몫은 자기가 들겠다는 조의 말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프리드리히와 조는 동등한 위치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해나가며 서로의 꿈을 이뤄나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대가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조가 왜 로리를 사랑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길게 설명했지만 한 마디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여성은 꿈과 사랑을 동시에 이루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러한 여성의 처지는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 아직도 여성들은 꿈과 사랑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를 선택하고 노력하는 우리 사회의 ‘조’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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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에 이런 영화가 나오다니
조선 팔도 제일의 살수 '이난'(신현준) 병마가 그를 위협하고,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에 고통스러운 몸을 이끌고 한 마을에 의탁한다. 탐관오리의 횡포와 울부짖는 백성들의 비명으로 점철된 살아있는 지옥… 조선 최고의 살수 '이난' 마침내 그가 깨어난다!
1. 빈약한 극본
이 영화는 모든 장면이 예상 가능하다. 모든 장면이 클리셰로 가득하다. 악당에게 병에 걸린 전설의 살수가 다시 영웅이 되는 이야기인데 탐관오리가 판치는 세상에 대한 묘사부터 중간중간 등장하는 유머까지 굉장히 얕다. 분명히 초반에는 살수의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유머코드가 등장하면서 '달마야 놀자'나 '가문의 영광' 같은 2000년대 상업 영화의 느낌도 많이 난다.
악당에게 쫓기는 비운의 살수 스토리는 마치 어둠의 조직에게 쫓기는 천재 탐정 명탐정 코난을 보는 것만 같다. 코난은 애니메이션이지만 이건 성인들을 타겟으로 하는 느와르 액션이 아닌가. '와, 저 살수 진짜 멋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주인공이 매력이 없다. 주인공 캐릭터에 힘은 들어가 있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그 멋있음에 설득되진 않는다. 그저 어지러운 세상이라는 단편적인 배경 묘사 아래 주인공이 멋있다는 사실만 강조해놔서 관객의 입장에서 그냥 목소리 깔고 액션만 보여주면 캐릭터에 동화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싶다.
2. 어딘가 허술한 액션
장르가 시대극 느와르 액션인 만큼 액션도 굉장히 공들인 티가 난다. 하지만 잘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예상해 본다면, 액션에 돈이 많이 들어간 것 같진 않다. 이게 제작비 때문이라면 한정된 제작비 안에서 가성비가 높은 액션을 선보였다는 뜻인데 수준높은 액션이냐 아니냐를 평가할 때 가성비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이 적절한 지는 모르겠다. 혹시 가능하다면 굉장한 연출력이 필요할 텐데, '정말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도 이런 액션을 구사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소리는 안나올 듯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액션이 몰려있는데 액션 영화를 잘 보진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액션이 주는 긴장감 보다는 이난 캐릭터가 카리스마있어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전략이 다른 관객에게까지 먹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점 때문에 액션이 아무리 많아도 허술하다고 느꼈다.
3.누굴 위한 영화일까
모든 영화는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 독립 영화인지 그리고 장르별로 규모와 타겟 관객이 정해진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어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괜찮은 영화인지 묻고 싶다. 상업 영화인 것 같은데 내용이 너무 뻔하고 액션이라도 보라고 하기엔 액션 연기에 큰 메리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캐릭터도 그저 단편적이라서 예상이 가능하고 말이다. 도대체 이난과 대적하는 그 여자 살수는 눈이 왜 빨간 건지 알 수 없었다. 하다하다 '인간이 아닌 크리쳐'까지 등장시킨 거냐라고 생각했다. 허세 섞인 대사 또한 덤이다.
이난을 죽이려고 하는 그 위의 인물은 끝끝내 등장하지 않아 다음 시즌을 노린 걸까 싶은데 과연 다음 시즌은 나올 수가 있을까.
영화 리뷰 꽤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 혹평은 처음 하는 것 같다. 혹시 보시는 분이 있다면, 피드백 부탁드린다.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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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치 있는 코미디 <드림>이 재미없는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엄마의 사기 범죄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축구 선수 '홍대'(박서준).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화를 참지 못해 대형 사고를 내고, 경기 출전 금지 징계를 맡는다. 이에 홍대는 홈리스 풋볼 월드컵 감독을 맡아 이미지를 개선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선수 선발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현실에 찌든 다큐멘터리 PD '소민'(아이유)은 없는 듯 있는 각본을 들이대며 실력이 아닌 사연 순으로 선수를 뽑자고 협박 아닌 권유를 한다. 골문 안으로 공을 보내는 법도 모르고, 체력은 엉망이며, 반칙만 잘하는 선수들도 도움은 안 된다. 그렇지만 홍대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게도, 소민에게도, 선수들에게도 월드컵 출전이라는 꿈은 소중하니까.
<드림>, 익숙하지만 어색하다
<스물>과 <극한직업>으로 흥행 감독 반열에 오른 이병헌 감독. 그의 무기는 신선함이었다. 한국 코미디 영화의 공식을 파괴하는 도전 정신 덕분에 그의 이야기는 설령 뻔해도 새로웠다. 쉴 새 없이 쏘아붙이는 웃음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2010년 홈리스 월드컵을 모티브로 삼은 <드림>에서도 그의 장기는 유효하다. 빠른 템포로 주고받는 홍대와 소민의 티키타카는 살아 있다. 조연 한 명 한 명으로부터 코미디를 뽑아내는 실력도 여전하다. 홍대와 '범수'(정승길), 범수의 애인 사이에서 발생한 삼각관계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전반부는 부자연스럽다. 쏟아지는 대사는 재치가 있지만 재미가 없다. 마치 자기 스타일을 과시하려는 집착 또는 강박 같다. 후반부는 정반대다. 웃음 대신 신파가 중심이다. 전반전은 웃음, 후반전은 감동이라는 한국 영화 공식을 차용했다.
사실 신파는 문제가 아니다. 스포츠와 성장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잘 살려낼 수만 있다면 적절한 선택이다. 하지만 정작 감동과 눈물은 공허하다. 그러다 보니 앞선 코미디와 잘 조화되지 않는다. 의아한 대목이다. 이병헌 감독은 단순히 잘 웃기기만 하는 감독이나 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연민과 공감에 바탕을 둔 웃음
그의 필모그래피를 추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주인공을 향한 연민이다. 주인공을 연민하는 관객은 자기 현실을 그에게 은연중 투영한다. 그러다 보면 코미디는 일회성 웃음이 아니다. 현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웃으면서 털어버리자고 격려하는 치유의 장이다. 영화관 밖 현실은 힘들어도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아픔도 별일 아니라며 웃을 수 있다는 것. 이병헌 표 코미디의 진가다.
<스물>은 이십 대 남성의 고민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기껏 간 학교에서 뭘 할지 모르는 대학생,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재수생,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꿈을 찾아 방황하는 백수까지. '헬조선'이라는 말이 한창 유행하던 당시 사회적으로 정해진 트랙대로 사는 데 지친 청년들의 솔직한 심정을 담았다. 주인공들의 바보 같은 연애사와 한심한 행동에 관객들이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다. 병맛 넘치는 섹드립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성과다.
<극한직업>도 마찬가지다. 작중 가장 웃긴 대목을 하나만 꼽으라면 치킨집 장면을 고를 수 있다. 위장만 하려던 형사들이 정신 차려보니 실제로 치킨집을 운영하며 좌충우돌하는 모습. 이 또한 남 일이 아니기 때문에 웃겼다. 문과를 나오든 이과를 나오든 종착역은 치킨집이라는 자조적인 유머가 퍼져 있는 사회였기에 가능한 웃음이었다. 즉, <극한직업>은 그저 형사물에 코미디만 버무린 게 아니었다. 승진은 막히고 생활고를 겪는 직장인의 비애를 치킨집을 배경으로 한 코미디였다. 그래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연민과 현실이 사라진 <드림>
그런데 <드림>에서는 연민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전작과 달리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인데, 정작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 않다. 홈리스 월드컵에 나간 선수들을 보자. 그들은 투혼을 보여줬고, 인기 팀에 뽑히면서 좋은 성과를 냈다. 흘린 땀과 피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문제는 그 후다. 그들의 변화를 보여줄 때 영화는 편의적이다. 모든 문제가 손쉽게 해결된다. 집이 없어 딸과 함께 밥도 못 먹던 아버지는 호주 유학을 떠나는 딸과 행복한 미래를 기약하며 이별한다. 계란빵 하나도 사치인 남자친구는 애인과 계란빵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게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난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알 수 없다.
러닝타임이 지날수록 소민이라는 캐릭터가 붕 뜨는 이유도 같다. 첫 등장은 좋다. 그녀는 예상을 빗겨 나가는 염세적인 대사와 행동으로 무장해 이병헌 표 티키타카의 재미를 잘 살려낸다. 하지만 카메라는 정작 그녀의 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 PD의 일상은 대사로만 나온다. 이번 다큐멘터리가 마지막 기회인 이유도 잘 보이지 않는다. 가족사나 선수로서의 굴곡이 모두 묘사된 홍대와는 다르다. 스포츠 영화로 장르가 바뀐 후반부에서 소민은 카메라를 든 관찰자일 뿐이다.
그러니 화려한 조명과 현란한 카메라 워크로 무장한 결말은 어색하다. 홍대는 관중이 가득한 그라운드에 축구 선수로 복귀한다. 멋진 플레이를 연달아 보여주는 홍대는 이날 경기에서 의심할 여지 없는 주인공이다. 관중석에는 홈리스 선수들과 가족이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그 옆에는 소민이 연예인처럼 세팅한 채 앉아 있다.
인위적이다. 현실적인 맥락이 보이지 않는다. 고민 하나를 해결하자마자 곧장 주인공에게 입대라는 고비를 던져주던 전작과는 다르다. 마치 꿈같은 성공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신파를 사용해도 감동은 크지 않다. 연민이 없는 웃음도 입가를 순식간에 떠난다.
재치는 있지만 재미는 없는 이유
영화도 어색함을 아는 눈치다. 감추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우선 리듬이 부자연스럽다. 아무리 찰진 티키타카가 장점이라지만 너무 빠르다. 물론 빠른 템포가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기는 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모든 캐릭터를 다 챙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일례로 홍대는 사고를 치고, 다큐멘터리 출연을 결정하고, 소민을 만나고, 팀원들을 설득한다. 이 장면들은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인물의 감정선은 생략되거나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홍대, 범수, '인선'(이현우) 정도만 예외다.
스포츠 영화로 바뀐 후반부에서도 무리수를 둔다. 홈리스 월드컵 경기를 묘사할 때 영화는 경기 자체의 연출보다는 해설자의 멘트에 더 집중한다. 실제로 경기 내용은 코미디에 가깝게 묘사된다. 반면에 해설자는 이 경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감동적인지를 하나하나 직접 알려준다. 스포츠 영화라면 경기 자체가 감정을 끌어올리고 해설은 그 순간을 짚어주는 조력자여야 하지만, 역할이 바뀌어 있다.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가 경기 내용을 충실히 묘사해 선수들의 감정 변화를 보여준 것과는 상반된다.
이는 현실적인 맥락과 공감할 여지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을 타개하려는 고육지책이나 다름없다. 전반부에서는 현란한 말솜씨로, 후반부에서는 눈물로 문제를 가리는 셈이다. 작중 웃음과 울음 모두 다소 가볍고 공허한 이유다. 그러다 보니 <드림>은 아쉬움이 크다. 이병헌 감독의 재치는 여전하나, 전작과 같은 재미는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Poor 형편없음
연민이 사라지고 현실을 놓치자 재미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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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간에 그려낸 서로의 초상화.
이 글은 영화 [승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때 그려진 초상화를 보면. 드라마 촬영 후 후보정까지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적나라하다는 표현 밖에는 붙여줄 수가 없는 작품이 많다. 하지만 초상화를 남기는 것은 어명의 영역이었기에 그 어떤 숨김도 거짓도 없어야만 한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당연하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 폭의 그림에 담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땐. 마냥 어명이라 하더라도 신이 나지는 않았을 것만 같다. 애써 숨기고 싶었던 곰보 자국이 그림 안에서 살게 될 자신의 뺨 위에서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던 단점마저도 초상화에 들어있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사진출처:다음 영화
제자인 창호(유아인)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발견했을 때. 조훈현(이병헌)은 아마도 처음으로 자신의 곰보자국들을 들여다봤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익숙한 흉터뿐만 아니라.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기풍에 있는 부스럼까지 발견했을 때의 그 무력감은. 아마도 바둑의 신(神)과 겨루어도 질 것 같지 않았던 그 당시 그의 자존감의 크기만큼이나 크고 깊었을 것이다.
처음엔 제자의 초상화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들여다보니 보인 것일 뿐이라 믿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을 결승전에서 앞에 두고 스승의 초상화를 또 한 번 묵묵히 그려내는 제자의 모습을 보며. 훈현은 자신의 장점도 단점도. 승패를 가린다는 어길 수 없는 어명 같은 하나의 목적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을 것이다.
창호가 그린 초상화가 자신과 똑 닮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몸을 일으켜 애써 그 초상화 앞에서. 그리고 그 초상화의 주인 앞에서 멀어져야만 했다. 더 들여다보았다가는 정말로 제자에게, 혹은 제자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으니까.
사진 출처:다음 영화
스승과 승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데 훈현은 꽤 오랜 세월을 바쳐야 했다. 그동안 결승마다 만난 자신의 제자 앞에서 수도 없이 패배와 친해져야 했다. 무관왕이라는 타이틀 아닌 타이틀도 어느새 그의 옆에서 입김이 느껴질 위치에서 머물곤 했다.
자신의 제자는 물과 같아서. 칼처럼 예리한 자신은 베어낼 수도. 손에 쥘 수도 없었다. 그는 속절없이 차디찬 물에 떠밀려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 아무리 자신을 휘둘러도 창호의 눈썹 하나조차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이대로 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에 빠져 죽는 것 외에 남은 선택지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신(戰神) 조훈현에게 후퇴한다는 말까지 수식어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분명 제자에게 스승과 승부는 다른 것이라 가르쳤으며. 자신이야 말로 이 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칼로 제자를 베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달궈진 자신을 식혀서 단단하게 연마해 주는 것이 제자의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순간부터. 조훈현의 손에는 제자의 모습. 아니 자신의 라이벌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가 완성되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다시 만난 제자는 자신에겐 패배를 배우게 한 스승이 되어 있었고, 승리를 알려준 스승을 만난 제자는 훈현의 손에 들려 있는 자신의 초상화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 기묘한 사제관계의 라이벌은, 다시 한번 치열하다 못해 피가 마르는 신선놀음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 신선놀음의 끝에는 분명히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지만. 영화의 말미에 가서는 더 이상 그 결과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물론 제삼자의 입장이라 그랬을지도.)
자신의 스승과 대국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자신의 곰보자국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스승과 제자, 라이벌 사이를 오가는 이 대국은. 단순한 승부라는 말을 넘어서서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했으니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르게 하는 바둑판 위에서 펼쳐진 그들의 대결은 승패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들이 남긴 서로의 초상화가 단순한 기보가 아닌. 인생의 기보로 남았기에 나 역시도 이런 영화를 보며 그들의 흉터에서 느껴지는 아픔마저도 느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면서;책임지지 못한 돌에 대하여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는 할아버지에게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도 말고. 이곳을 잊어버리라는 말을 듣는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야 없었겠지만. 그만큼 토토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것쯤은 어린 토토라도 이해했을 것이다. 어린 창호의 왼손에 채워진 시계는 그런 걱정과 염려를 담뿍 담은 채 굳건히 채워졌다.
물론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이창호는 변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묵묵히 해내며 앞으로 정진했다. 스승인 조 국수에게 배운 것처럼 바둑돌 하나하나에도 책임을 다 했고 그 결과 정상의 자리를 15년가량이나 지키며 남에게도. 스승과 라이벌에게도. 그리고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 유아인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분명 매우 좋은 영화이며 큰 만족감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나올 수 있었던 영화였으나. 그는 초심을 잃은 토토가 되어 영화 속에서만 강렬한 연기를 보일 뿐이다.
조훈현의 시점만이 아닌 이창호의 시점으로도 영화를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으나. 커버린 토토가 할 것은 참회밖에 없기에. 이 영화의 영광과 대단함이 한 풀 꺾이는 것만 같은 아쉬움을 지울 수는 없었다.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승리와 패배를 동시에 가르친 참된 스승이었다. 배우 유아인에게도 그런 스승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동시에 드는 영화였다.
[이 글의 TMI]
1. 영화관에서 팝콘 안 먹기 2회 성공
2. 오늘 점심 회식인데 도망가고 싶다.
3. 이 비를 통해서 불이 반드시 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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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독전 시즌2를 맞이하며
영화 독전을 아시나요?!
원래 재미있게 본 콘텐츠가 있다면
그 대사가 기억이 강렬하게 남잖아요!
저는 바로 영화 독전이 그랬어요!
영화 대사 中
"어떤 한 인간을 X나게 집착하다 보면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신념 같은 게 생기거든?"
저는 이 장면이 엄청 강렬하게 다가왔나 봐요~
그럼, 영화 독전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범죄, 액션, 스릴러, 느와르, 공포, 미스터리, 서스펜스
감독 : 이해영
각본 : 정서경, 이해영
출연진 : 조진웅, 류준열, 김성령, 박해준, 차승원, 김주혁
개봉일 : 2012년
평점 : 8.42
스트리밍 : NETFLIX
기획 의도
아시아 최대 마약 조직,
실체 없는 적을 추적하라!
의문의 폭팔 사고 후, 오랫동안 마약 조직을 추적해온 형사 '원호'
의 앞에 조직의 후견인 '오연옥'과 버림받은 조직원 '서영락'이 나타난다.
그들의 도움으로 아시아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과 조직의 숨겨진 인물
'브라이언'을 만나게 되면서 그 실체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잡게 되는데...
여담
영화 독전은 짜임새 높은 스토리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력 하나만큼은 일품인 영화이다.
무엇보다 영화 독전에서 조진웅이 실제로 마약을 흡입하는 과정에서
이 가루의 정체는 소금과 분필 가루였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아파 보였을지도?)
영화 독전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불리며
독전 시즌 2가 촬영 중에 있다고 한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독전 결말을 살펴보자면...
서영락(류준열)이 이선생으로 밝혀지며,
이선생을 잡기 위해 원호(조진웅)은
라이카에게 미리 위치추적기를 심어
이선생을 찾는데 성공한다.
이 둘은 집안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다
집안에서는 총소리가 울려 퍼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
결말 부분에서 상당히 많은 평이 갈리긴 하지만.
시즌 2를 생각하면 조진웅이 류준열을 쏜 거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즌 2에는 류준열이 안 나오기 때문에?!
이 영화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아무래도 배우들의 미친듯한 연기력이 아닐까 싶다.
스토리 부분만 살펴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력이 빛을 발휘했던 영화였다.
한줄평 : 넘어설 수 없는 연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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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켈리 갱> - '거짓과 진실을 거둬낸 네드 켈리의 이야기'
켈리 갱 (True History of the Kelly Gang, 2019)
개봉일 : 2021.08.31 (한국 기준)
감독 : 저스틴 커젤
출연 : 조지 맥케이, 러셀 크로우, 니콜라스 홀트, 에시 데이비스, 토마신 맥켄지, 찰리 허냄, 션 키넌
거짓과 진실을 거둬낸 네드 켈리의 이야기
혹시 Ned Kelly(네드 켈리)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지 모르겠다. 19세기 후반 오스트레일리아(이하 편의상 호주로 표기)에서 활동했던 은행강도인 네드 켈리. 네드 켈리가 왜 유명한가 하면 그는 단순한 도둑이 아닌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핍박하는 자들의 물건을 훔치던 의적이자 공권력에 저항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영국의 막강한 힘에 눌려 폭력과 불평등함으로 점칠 된 사회에서 시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저항했던 영웅이자 공권력이 가장 제거하고 싶어 했던 범죄자 네드 켈리. 그는 호주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홍길동과 임꺽정과 같은 인물이라고 한다.
교과서에서도 만나본 적 없는 네드 켈리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조지 맥케이 배우 덕분이었다. 그가 영화 <1917>의 히로인으로 주목받던 해, 자연스레 조지의 진중한 연기에 빠져들어 그의 필모그래피를 훑던 중, 내 시선을 순식간에 빼앗은 작품이 몇 개 있었다. 거친 표정과 단단하게 다져진 몸, 날카로운 눈빛. 지금껏 봐왔던 조지의 이미지와는 조금 달라 강렬하게 다가온 네드 켈리의 모습을 보고 순식간에 온갖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대체 어떤 영화일까.”, “네드 켈리란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처음 알았을 땐 영화가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던 때였고, 솔직히 무자막으로 볼 용기는 또 없었다. 그래서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사진들을 찾아보며 속칭 존버-를 했다. 그리고 존버는 승리한다더니, 2021년 여름의 끝자락. 네드 켈리를 만났다.
<켈리 갱>엔 위에서 소개한 인물, 네드 켈리의 불안정했던 유년시절과 저항 정신을 가득 담은 켈리 갱을 창설하고 마지막 전투를 벌이던 26살까지. 그의 생애가 담겨있다. 투박한 글체로 적어내려간 네드 켈리의 편지를 바탕으로 재해석된 소설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우선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딘가 아쉬웠다. 아무래도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과 2시간으로 일부 압축된 영화는 근본적인 정보량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영화 <켈리 갱>은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의 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웠다고 해야 할까.
조지 맥케이의 내레이션과 함께 천천히, 아주 깊게 훑고 지나간 유년시절 부분까지는 정말 좋았다. 어린 네드 켈리를 연기한 배우 올란도 슈워드의 연기도 훌륭했으며, 그 위에 얹어지는 조지 맥케이의 정갈한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매력에 빠진 채 “이제 그토록 궁금해했던 네드 켈리의 이야기를 듣는 건가.”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초반부를 감상했다. 하지만 네드 켈리가 성장하고 각성하는 계기가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졌고 그의 전투엔 비장함과 결의보단 흥분이 조금 앞서는 느낌이었다.
지배받고 있는 나라에서 태어나 지배자들에게 억압을 받으며 슬픔과 분노를 안고 자란 아이가 어떠한 계기로 각성을 했다기보단 갑자기 어느 날 폭발해버린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별로였다, 재미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네드 켈리라는 인물을 만들기 위해 공들인 티가 역력했고, 배우들 또한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롭고 놀라운 액션들을 보여줬으며 카메라 안에 담아낸 광활한 배경 또한 정말 멋졌다. 결말까지도 참 좋았는데, 많은 기대를 해서 그런지 기승‘전’.. 전에 해당하는 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만일 이 영화를 볼 예정이라면 네드 켈리라는 인물 또는 시대 배경에 대한 정보를 조금 훑어보고 가는 걸 추천한다. 그가 왜 이토록 분노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포인트를 미리 알고 간다면 감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억압의 시대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평범한 시민이 되기 위해 거칠게 저항한 네드 켈리.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전설처럼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켈리 갱>은 용감한 시민 네드 켈리와 그의 동료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박수갈채를 담은 작품이다.
아쉬운 시점을 지나고 나면 약간의 벅찬 감정이 밀려오는데, 그 순간 정말 희한하게도 아쉬웠던 감정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아쉬운 점은 분명 있었지만 조지 맥케이, 러셀 크로우, 니콜라스 홀트, 에시 데이비스와 같은 굵직한 배우진들의 연기 조합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누군가에겐 범법자로 낙인 되었던 그의 거칠지만 용감하고 진실된 일대기가 궁금하다면, 조지 맥케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다면 <켈리 갱>을 추천한다.
켈리 갱 시놉시스
폭력과 부패로 가득했던 시대
온갖 범죄로 세상을 더럽히는 무법자 ‘해리’와 부패경찰 ‘알렉스’에 맞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악인들을 단죄한 전설적 영웅이자 세상이 버린 위대한 범죄자 ‘네드 켈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이야기는 1867년 호주. 네드 켈리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진실과 거짓으로 뒤섞여 범법자 또는 영웅으로 불리는 그의 일대기에서 진실과 거짓이란 이분법을 거둬낸 후 깨끗하게 다듬어 내놓은 인생의 시작점은 다소 휑하고 뻐근하게 다가온다.
나의 비를 막는 지붕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던 어머니 엘렌은 아무리 파내려 가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해리 파워에게 네드를 제자로 팔아넘겼고 해리 파워와 함께 다니며 이 넓은 세상에서 나를 지켜줄 자는 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도 빨리 알아버린 네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마리 짐승 같은 남자로 자라게 된다.
무능하게 살다 감옥에서 갑작스레 생을 마감한 아버지, 여러 남자들을 거치며 서서히 네드를 지키길 포기한 어머니. 아직 어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동생들. 먼지만 날리는 땅에 살고 있는 네드 가족을 억압하는 영국 경찰들까지. 어린 네드가 감당하기엔 세상은 너무 거칠고 불공평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빠르게 막을 내렸고 희망 또한 보이지 않았다.
신이 버린 땅에서 아버지를 잃고, 남은 가족들의 일부는 볼모로 잡힌 채 공권력 밑에 무조건 수그려야 하는 불합리한 삶. 네드는 이 삶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 억압된 사회의 진실을 감추면 숨이 막힐 것이고 편안한 길을 찾아 거짓을 숨기면 삶이 서서히 부패할 것이니 그는 진실된 사회를 되찾기 위해 거친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네드는 원망스럽지만 잊지 못했던 가족들과 사랑에 빠진 여인 매리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경찰들에게 대항한다. 그는 어릴 적에 발견한 아버지의 드레스에 담긴 저항정신을 그대로 물려받은 동생 대니와 친구 스티브, 오래된 절친 조니와 함께 흐드러지는 드레스를 입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네 명의 청춘들은 이 조직의 이름을 ‘켈리 갱’이라고 명했다.
네드는 부패한 공권력 대신 진실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지만 소수의 힘으로 거대한 권력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끝없는 도망 대신 맞서 싸우기를, 조용히 입을 닫기보단 우리의 역동적인 삶을 글로 남기기를 선택한다. 그는 평범한 시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죽음도 불사한 자신들의 피로 쓴 역사를, 신이 버린 땅이라지만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소중한 땅을 되찾기 위해 겪어야 했던 거친 여정을 틈틈이 적어나간다. 네드는 두서없고, 문법과 문장 규칙 따위는 하나도 배우지 못한 티가 역력하지만 후세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이 글을 자신의 미래인 아이에게 바친다.
광기와 날것의 분노가 가득했던 마지막 전투를 마친 네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 후 사람들은 네드가 남긴 기록을 보며 손뼉을 치고, 형장에 매달려 있는 네드의 모습에 박수 소리가 얹어진다. 이 박수는 네드의 후손들이 네드와 그의 삶에 보내는 박수갈채를 의미하려는 연출이 아니었을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보다 좋은 세상을 남겨주고 싶었던 남자 네드 켈리. 거짓에 물들지 않은 진실된 그의 삶은 예상보다 더욱 거칠었고 어쩐지 버거워 보였다. 그는 자신이 남긴 기록이 후손들에겐 낯선 이야기가 되기를 바랐다. 핍박받던 나의 삶이 나의 후손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라면, 이 억울하고 답답한 현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이어져선 안될 역사지만 여전히 잊히기만 하고 사라지진 않고 있는 강자의 압제와 폭력들. 안타깝지만 그가 원하던 세상은 아직 완전하게 도래하지 못한 것 같다. 남은 건 그가 미래라고 칭했던 우리의 몫이니 우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로 물든 저항의 역사를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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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보름달이 뜨는 특별한 저녁,
새로운 공포 게임 앱 "Werewolves Awaken"의 화려한 런칭 파티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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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야수의 표식"으로 비난하는 로만 신부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어수선해지고,
더구나 잔인하게 훼손된 시체가 발견되면서 파티는 아수라장이 된다.
마침내 살인자는 무시무시한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고 생존자들과의 처절한 살인게임이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