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3-13 08:08:51
죽음의 사유에서 피어오르는 삶
영화 〈숨〉
6★/10★
영화의 주요 화자는 세 명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죽음에 걸쳐 있다. 장례지도사 유재철은 수많은 이의 죽음 의례를 총괄하며 죽음에 관한 태도를 다듬었고, 폐지를 줍는 여성 노인 문인산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 무탈하기를 소원하며, 유품정리사 겸 특수 청소를 하는 김새별은 고인이 남긴 흔적을 갈무리해 그의 살아생전 모습을 상상 속에서 복원한다. 이 세 명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죽음에 천착하여 삶의 조건을 환기한다는 것 말이다.
먼저 장례지도사 유재철. 그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죽음을 모두 다뤄봤다. 가져갈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이 커서인지 부자는 얼굴을 찡그린 채 몸을 웅크리고 죽었다. 반면 가난한 자는 극락에 간 듯한 편안한 표정이다. 현실의 고달픔을 이제는 벗어날 수 있어서일까? 죽음은 현생의 무수한 불평등을 거스르는 몇 안 되는 인간의 공통 경험인데, 장례지도사는 여러 죽음의 양태 속에서 자기 삶의 태도를 톺아본다. 누군가는 께름칙하다는 이유로 꺼리는 일인 염殮을 하는 그의 노동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의 정돈되고 익숙한 손길은 한 사람의 생애 단 한 번뿐인 특별한 일을 ‘일상적’인 일로 만든다. 노동으로서의 염이 무수히 반복되는 사건으로서의 죽음이 야기하는 두려움을 상쇄하여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사유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폐지 줍는 노인 문인산이다. 그의 말은 듣는 이를 괴롭게 한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죽지 못해 산다, 사는 게 슬프고 허무하다, 호화 찬란하게 살고 싶었다……. 그에게 생은 언젠가부터 고통과 회한의 연속이었다. 건강 악화와 빈곤이라는 조건에서, 독거 여성 노인인 그는 죽음이 별 소란 없이 스윽 다가왔으면 한다. 그에게 요란스럽게 다가오는 죽음에 대응할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유재철이 환기해주듯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그러나 문인산이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듯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불평등은 그 죽음마저 불공평한 것으로 만든다.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죽음의 존엄은 박탈되고, 존중받지 못하는 노인은 홀로 외롭다.
세 번째는 유품정리사 김새별. 우리와 비슷한 모양새였을 신체는 썩어 문드러져 잘 닦이지 않는 진액이 되었고, 그 진액을 박박 문질러 걷어내는 김새별은 죽은 자가 남긴 흔적을 토대로 그의 생전 삶의 조각을 맞춰본다. 그가 들려주는 고인의 이야기는 왜 인간은 죽은 후에야 인간적인 상상력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지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김새별이 특수 청소를 하며 추론한 것들을 사회가, 제도가, 이웃이, 가족이 먼저 할 수 있었다면 소주병이 굴러다니는 방에서 홀로 죽어 진액이 된 남자의 삶은 그와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죽음과 맞닿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죽음과 순환을 이루는 삶을 환기한다. 영화에는 숨소리에 집중해 크게 들려주는 장면이 있다. 죽음과 삶이 들이쉬고 내쉬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숨과 같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였을 터다. 우리는 죽음과 맞닿은 삶을 어떻게, 어떤 조건 위에서, 어느 정도의 온기를 품고 살아갈 것인가? 숨을 들이쉬면 내쉬어야 하듯이, 삶을 잘 살아가려면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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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애프터 썬’을 보고] 널 진짜 사랑해, 잊지마
[영화 ‘애프터 썬’을 보고] 널 진짜 사랑해, 잊지마
'애프터 썬(After Sun)’이라는 영화와의 첫 만남은‘쓸쓸한 사랑 영화 추천 TOP 3' 이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에 올려진 행복한 모습의 아빠와 딸의 포스터를 통해 이뤄졌다. ‘쓸쓸한 사랑’을 서로가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외로운 사랑이라고 여겼던 것과 달리 다정해보이는 부녀를 보며 이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겉으로는 행복해보였지만 이 부녀 둘 사이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균열이 존재했다.
어렸던 딸은 아버지를 향해 깊은 애정을 느끼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던 아버지의 깊은 내면적 고통과 불안까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영화는 성인이 된 딸이 아버지와 여행했던 시간을 되새기며 그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고뇌와 감정을 조각처럼 짜 맞춰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기억은 이미 희미해졌기에 사랑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영화는 더 이상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이해하려 해도 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쓸쓸함을 남긴다.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빠는 딸 소피에게 자신의 우울감이 전해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지만 그의 눈엔 이미 슬픔이 가득 차보였다. 그러나 어린 소피(Sophie)와 마찬가지로 나도 영화를 보는 동안 그가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오히려 세상 무기력하고 게으른 아빠처럼 보였기에 그를 좋은 아빠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맥락을 단 몇 분으로 파악하려 했던 나의 판단이 오해였음을 깨닫게 된다. 소피 역시 그를 이해하기 위해 아빠와의 기억의 조각을 긁어모았지만 그의 속사정까지 깊이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렇듯 소피와 나는 아직 그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힘든 어린 나이다. 그러나 아빠는 딸과 재밌게 놀아주기 위해 일찍 풀어버린 깁스와 혼자 남겨졌을 때만 눈물을 흘리는 등 그가 딸과 행복한 시간을 망치지 않기 위한 노력만큼은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아빠의 외로운 모습을 보며 갑자기 ‘혹시 우리 아빠도 그러지 않았을까?’라며 소피의 상황을 ‘나’에게 이입해 의식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완벽히 알 수 없지만 어린 시절에는 더욱 이해하지 못했던 아빠의 마음이 이제야 어렴풋이 느껴졌다. 가족 앞에선 늘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혼자 있을 때만 슬픔을 흘렸을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 한 편이 먹먹해졌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늘 힘든 감정을 삼켜내며 우리에게 기쁨만을 주고자 했던 가장의 무게는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가 웃을 때 그 안에 숨어있는 눈물은 오직 그와 가족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그것을 마주하는 또 다른 한 인간의 애틋한 시선을 통해 사랑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특별한 순간들을 포착해내는 이 영화는 내게 평생 슬픔과 쓸쓸함의 잔향을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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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빈, 이솜, 강유석배우 넷플릭스 제작의 <택배기사> 캐스팅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
영화계 안팎의 다양한 소식과 영화 개봉작들의 이벤트 소식과 굿즈 일정을 소개드리는 콘텐츠입니다!
이번 주 영화계 소식을 다 같이 알아보실까요?
1. 넷플릭스 제작 확정 <택배기사> 김우빈, 이솜, 강유석 출연
<택배기사>는 2018년 아시아필름마켓에서 E-IP피칭 어워드를 수상한 동명의 인기 웹툰이 원작입니다.
현재 우리 일상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택배기사'라는 현실적인 존재를 모두의 생존을 책임지는 특별한 존재로 재탄생시킨
독특한 발상으로 주목받았다고 전해지는데요.
<택배기사>의 연출은 <마스터>를 연출했던 조의석 감독이 맡을 예정이며 <마스터>, <스물>, <기술자들>,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등
영화/드라마를 막론하고 다양한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배우 김우빈이전설의 택배기사 5-8을 맡았습니다.
<마스터>에서 연출자와 배우로 만났던 조의석 감독과 김우빈 배우가 다시 이 작품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또 한번의 호흡이 기대가 되는 대목입니다.
오직 택배기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전설적 존재 ‘5-8’을 선망하는 난민 소년 사월은 배우 강유석으로 최종 캐스팅 확정이 됐으며,
사월의 생명의 은인이자 사월을 식구처럼 돌보는 군 정보사 소령 설아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소공녀>, 드라마 <모범택시> 등에 출연했던 이솜 배우가 맡았습니다.
전설적인 택배기사와 택배기사를 꿈꾸는 소년, 그리고 사월을 두고 ‘5-8’과 얽히는 군인 등 기존에 볼 수 었었던 소재와 캐릭터인만큼 기대됩니다.2. 1월 12일 <특송>,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하우스 오브 구찌> 개봉
1월 12일(수) 모처럼 극장가에는 볼만한 작품들이 대거 개봉했습니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박소담 원톱주연의 카 체이싱, 오락 액션영화인 <특송>,
그리고 명품 브랜드 구찌의 일가를 다룬 작품 <하우스 오브 구찌>입니다. 과연 이번 주 박스오피스의 승자는 어느 작품이 될까요?
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첫 번째 뮤지컬 영화이기도 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전체 예매율 1위를 탈환하며 기분좋게 시작했습니다.
최근 기분 좋은 소식도 덩달아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최근 제7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3관왕을 석권하며
2022년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다관왕을 이룰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2.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하우스 오브 구찌> 또한 행보가 만만치 않습니다.
극 중 구찌를 사랑하고 청부살해 의뢰하여 죽인 여인 '파트리치아'를 연기한 레이디 가가는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으로 레이디 가가는 전 세계 유수 시상식 17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여우주연상 등 4개의 수상을 확정해
다가올 아카데미 시상식의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꼽히고 있습니다.
3. 영화 <특송>은 성공률 100%의 특송 전문 드라이버 ‘은하’가 예기치 못한 배송사고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추격전을 그린 범죄 오락 액션 영화입니다.
박소담 배우의 원톱 주연과 이제껏 볼 수 없었던 화려하고 완성도 높은 카 체이싱 장면과
송새벽, 김의성, 염혜란 등의 다채로운 배우들의 연기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만큼 박스오피스가 순위가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3. <드라이브 마이 카> 누적 관객 수 3만 돌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가 독립·예술영화 부문에서 3주 연속 정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누적 관객 3만명을 이미 돌파했다고 하는데요!
일본 영화계의 새로운 거장으로 떠오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이 영화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또한 전미비평가협회상 시상식에서는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외국어영화상에서 이름을 바꾼 비영어 부문 작품상을 차지했습니다.
그야말로 연일 수상행보를 보이고 있는 엄청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과연 2022 오스카시상식에도 국제장편영화상 메인 후보에 올라 수상을 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4. 이번 주 (1월 12일~1월 15일) 영화계 이벤트 &굿즈 증정 일정
1월 12일(수)
1월 13일(목)
1월 14일(금)
1월 15일(토)
1월의 둘째 주 영화계 소식과 이벤트(굿즈) 소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씨네랩은 다음 주 더 유익하고 재미있는 소식과 함께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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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갖춘 자력 엔진으로 미래를 향해 활공하다
세 번째 캡틴 아메리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캡틴 아메리카 샘 윌슨(앤서니 매키)이다. 스티브가 떠난 자리. 캡틴 아메리카가 된 샘. 타노스와의 일전 이후 외계인까지 이 세계에 침략하는 일은 없었다. 인간 단위의 악행(?)은 샘이 등장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꼭 악행을 펼치는 사람이 악인이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미국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썬더볼트 로스(해리슨 포드). 이 사람, 악인까진 아니다. 그냥 단지 어벤저스가 싫은 인물일 뿐. 슈퍼히어로를 통제하고 싶었던 인물이 미국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이 샘에게 좋기만 한 소식은 아니다. 어느 날. 샘은 백악관으로 초청된다. 대통령의 초대? 자리가 주는 책임감에 샘은 백악관으로 향한다. 일행이 있었던 샘. 파트너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와 샘의 친구이자 전직 캡틴 아메리카 이사야(칼 럼블리)와 함께한다. 샘을 따로 부르는 로스. 샘에게 "어벤저스를 다시 모아달라"라고 지시하는 로스. 당황스러운 말에 '이게 뭐지'라고 고민하던 도중, 갑자기 이사야가 이상하게 행동한다.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더니 갑자기 로스에게 총구를 들이민 것이다. 몇십 년 동안 감옥에서 썩었던 이사야가 제 명 재촉할 일을 할 이유가 있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샘과 호아킨. 그 이면에는 미국을 통해 세상을 뒤흔들고 싶었던 빌런의 계획이 깔려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 반드시 임무를 해결해야 하나도.
혈청 맞지 마 그냥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샘 윌슨이라는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혈청을 맞지 않았다는 점을 장르적 재미로 적극 활용하며 차별화를 꾀한다. 전임자인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는 혈청에서 오는 압도적인 운동능력으로 빌런들과 대결했다. 샘은 스티브와는 전혀 다르다. 초반부, 샘이 빌런들의 계획을 방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특징과 캡틴의 시그니처인 방패를 활용한 액션을 선보이는 샘. 여기까진 좋지만, 샘이 혈청을 맞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력이 스티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샘 자체가 특수훈련을 받은 군인이기에 웬만한 악당은 제압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아무래도 힘겨운 싸움을 펼칠 수밖에 없다. 유효타를 날리는 만큼 얻어맞는 샘, 힘겹게 싸워서 힘겹게 이긴다.
이 액션 장면은 사실 샘이라는 히어로를 단적으로 요약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늘을 나는 히어로의 특성은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승리를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 초인적인 힘 없이도 누구나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스티브 로저스가 든든한 존재감으로 사람들을 지켰던 것과 대비되는 캐릭터 설정이다. 영화는 이러한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전작을 오마주 하는 방식을 택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에서 스티브가 배트록과 맞붙는 장면처럼, 본작에서도 초반부 액션 장면을 통해 샘의 히어로적 특성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맞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이 영화의 빌런 또한 이러한 테마(혈청을 맞지 않았다)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빌런의 존재는 중요한 요소이며, 본작의 메인 빌런인 레드 헐크는 어벤저스의 헐크(브루스 배너/마크 러팔로)와 유사한 방식으로 탄생한 인물이다. 쉽게 말해 혈청과 비슷한 강화 과정을 거친 존재다. 혈청을 맞지 않은 히어로와 혈청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효과를 지닌 빌런의 대결 구도는 자연스럽게 혈청의 존재를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빌런 캐릭터는 혈청을 맞지 않았다. 대신 혈청과 비슷한 강화(?)를 겪은 캐릭터다. 물리적인 강화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진화를 체화한 캐릭터다. 이 캐릭터는 샘의 캐릭터성을 강조시키기 위해 설정된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샘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공중전의 히어로잖아? 그런데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해서 온갖 외계인들과 싸워 이기리라는 법은 없다. 그럼 다른 방식의 리더십과 전략이 더욱 중요해진다. 전투력보다 정무적인 판단이나 용인술이 중요하다. 이 샘의 선천적인 성격이 강조되려면 무력 외적으로 강력한 캐릭터가 필요한데, 여기에 이 빌런은 안성맞춤이다.
이 빌런이 주로 등장하는 공간 역시 샘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는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는 존재로 묘사되며, 영화의 중반까지는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 반면 샘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자유로운 이미지로 대비된다. 이러한 구도는 전직 슈퍼히어로들과도 대비되며, 이번 캡틴 아메리카는 자유와 의지를 상징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후반부에서 빌런이 내리는 선택이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속박과 자유의 대비라는 주제 의식을 연계해 보면 영화가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의 유산
이 영화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장르적 요소는 스파이물의 긴장감을 유지하려 했다는 점이다. 스파이물이란 본질적으로 ‘스파이가 누구인가?’를 추론하는 장르다. 본작에서 이 긴장감을 유지하는 핵심 인물로 루소(시라 하스), 릴라(쇼사 사르코머), 이사야, 그리고 썬더볼트 로스가 등장한다. 이들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어렵지만, 각 캐릭터는 스파이물의 전형적인 요소를 충실히 수행한다.
이러한 스파이물적 요소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가진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시리즈 중에서도 특히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가 스파이물로서의 성격을 가장 강하게 드러냈던 작품인데, 본작 역시 이러한 전작의 분위기를 차용했다. <윈터 솔저>에서 하이드라가 실드를 장악하며 스티브 로저스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것처럼, 본작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빌런이 사람들을 포섭한다. 관객들은 누구를 믿어야 할지 의심하게 되고, 결국 이 모든 것이 샘이 캡틴 아메리카로서 적합한 인물이라는 결론을 향해 수렴한다.
편의적인 마무리
그러나 영화의 마무리는 편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감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레드 헐크의 묘사 방식이다. 이 영화가 정말 표방하고 싶은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이 끈기와 근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장면이 더욱 많았어야 했다. ‘누구나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히어로 영화의 핵심이라면, 샘의 승리가 보다 설득력 있게 다뤄졌어야 했을 것이다. '헐크를 어떻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글쓴이는 반대로 MCU에서의 브루스에게 약점이 아예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이 부분도 충분한 설명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샘과 팔콘은 그렇게 연구했으면서 레드 헐크는 그냥 때려 부수는 액션만 활용하려고 했다는 것이 아쉽다.
또 마블의 CG 기술력은 시리즈가 지속되면 될수록 우려된다. 이 부분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VFX의 품질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최근 마블 영화들이 VFX 품질 저하 문제를 겪고 있는 가운데, 본작에서도 이 현상이 심각하게 드러난다. 클라이맥스에서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며, 결국 영화의 마무리를 아쉽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엔진은 갖췄으나
이 영화에 대한 글쓴이의 총평은 나름대로 자구책을 갖췄다는 것이다. '엔드게임' 이후 마블은 과거에 편승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이나 <데드풀과 울버린> 같은 영화는 과거 마블의 히어로들 등장시켜서 거대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그 외에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나 <더 마블즈> 같은 영화가 과거 MCU의 영광을 승계할 만큼 매력적인 히어로를 등장시켰다고 보기엔 어렵다. 대신 본작 <캡틴 아메리카 : 브레이브 뉴 월드>는 나름 이 히어로의 성격 '자유와 끈기'를 전적으로 등장시켜 시각적으로나 플롯 상으로나 구현했다는 점에서 기본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해리슨 포드는 이 제작자들의 노력을 더욱 빛내는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자격지심과 정의감 사이 여기저기 충돌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가감없이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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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 듣는 오아시스
올해 깜짝 재결합 소식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던 밴드 '오아시스'가 내년 10월 한국을 찾습니다.
내한 공연 티켓팅도 벌써 이번 주로 성큼 다가왔다고 하는데요!
오아시스를 사랑하는 씨네픽 구독자 여러분을 위한 티켓팅 성공 기원 콘텐츠를 준비했습니다.
오아시스의 노래가 삽입된 영화 보고 함께 행운의 기운을 모아보아요!
줄거리
불같은 성격이지만 유쾌하고 당당한 엄마 '디안'은 거칠지만 사랑스러운 사고뭉치 아들 '스티브'가 보호시설에서 사고를 쳐 쫓겨나자 홈스쿨링을 시작한다. 엄마가 행복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들 스티브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꿈꾸는 디안. 하지만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불안정한 성격의 스티브를 돌보기란 쉽지 않다. 이때 이들 앞에 나타난 이웃집 여인 '카일라'. 카일라의 등장으로 세 사람은 유일하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작은 행복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디안 앞으로 한 장의 편지가 날아오는데…….
억척스럽지만 정 많고 속 깊은 엄마 '디안'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유별난 사고뭉치 아들 '스티브’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누구보다 따뜻한 그녀 ‘카일라’. 결핍으로 가득 찬 세 사람이 만나 하나의 소우주를 구성할 때, 그들의 세상은 비로소 시작된다.줄거리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 카오스 이론
끔찍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지닌 에반. 그에게 남은 것은 기억의 파편들과 상처 입은 친구들. 에반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어릴 적부터 매일매일 꼼꼼하게 일기를 쓴다.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예전의 일기를 꺼내 읽다가 일기장을 통해 시공간 이동의 통로를 발견하게 되는 에반. 그것을 통해 과거로 되돌아가 미치도록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첫사랑 켈리와의 돌이키고 싶은 과거,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닥친 끔찍한 불행들을 고쳐 나간다.
그러나 과거를 바꿀수록 더욱 충격적인 현실만이 그를 기다릴 뿐, 현재는 전혀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는데...
과연 그는 과거를 바꿔 그가 원하는 현재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불행한 현재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인가?줄거리
내 이름은 터키쉬. 영국 이름치곤 깬다. 비행기 사고 때 부모님도 사고를 쳐 나란 놈이 태어났다. 그 비행기 이름을 따 내 이름을 지었다. 쟤는 타미다. 총 이름을 땄다지만, 그건 순 뻥이고, 19세기 유명한 발레 댄서 이름이다. 나와는 배꼽 친구로 지금은 작업 동료다. 수컷끼리 뽀뽀하는 그런 사인 아니다. 까놓고 얘기하면 녀석은 또라이 짓을 잘한다. 방지하는 차원에서 팍팍 갈궈주고 있다. 우정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다이아몬드? 난 권투중개인이다. 권투에 울고 권투에 웃던 내가 다이아몬드가 뭔지 알게 뭔가? 벨기에산 똘삐던가?
다이아몬드 도둑인 네 손가락 프랭키(Franky Four Fingers: 베니치오 델 토로 분)는 자신이 훔친 어마어마한 크기의 다이아몬드를 뉴욕에 있는 보스 아비(Cousin Avi: 데니스 파리나 분)에게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우선 다른 자잘한 보석들을 런던에 있는 보석 장물아비 더그(Doug The Head: 마이크 레이드 분)에게 넘겨줘야 하는 프랭키에게 아비는 절대 도박에 손대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허나 프랭키가 무허가 도박 권투에 돈을 걸면서 다이아몬드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간다.
한편, 풋내기 무허가 권투 프로모터인 터키쉬(Turkish: 제이슨 스테텀 분)와 토미(Tommy: 스티븐 그레이엄 분)는 돼지 농장 경영주이자 마피아 두목인 브릭 탑(Brick Top: 알란 포드 분)과 함께 사기도박을 해서 건수를 올릴 계획이다. 하지만 4회에 무너지기로 예정되었던 권투 선수가 아일래드 집시인 원 펀치 미키(One Punch' Mickey ONeil: 브래드 피트 분)의 주먹에 쓰려지자, 그들은 미키를 임시방편으로 링에 올린다. 4회에 무너져야 한다는 약속을 받고서...
그러나 미키는 약속과는 정반대로 4회에 상대 선수를 기절시키고 만다. 터키쉬와 토미는 브릭 탑의 처절한 보복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브릭 탑은 이 두 명의 어설픈 갱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한다. 터키쉬와 토미는 이번에도 실수하면 잔혹한 살육이 기다리고 있음을 미키에게 인지시키고 또 인지시킨다. 도박 권투에 참가하기로 한 프랭키가 실종되자 사촌 아비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영국 런던행 비행기에 오른다. 아비는 그곳에서 전설적인 인물, 총알 이빨 토니(Bullet Tooth Tony: 비니 존스 분)에게 사건을 의뢰, 보석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불쌍한 프랭크는 시신으로 발견되는데...줄거리
재정난에 허덕이는 해링톤 고등학교의 캠퍼스 분위기는 유난히 음침하고 을씨년스럽다. 학생들도 학업 따위엔 의욕이 없고 교사들도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러나 주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아메리칸 풋볼팀만이 기세가 등등하다. 물론 윌리스 코치(Coach Willis: 로버트 패트릭 분)의 위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패컬티에서 펼쳐질 희대의 사건은 윌리스 코치가 드레이크 교장(Principal Drake: 베비 누워스 분)을 무참하고 처참하게 살해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해링턴 고등학교엔 일곱 명의 아웃사이더가 있다. 치어리더이자 학보사 편집장으로서 언제나 특종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미모의 딜라일라(Delilah Proffitt: 조다나 브로스터 분),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기 싫어하여 레즈비언인 척 위장하는 중성적 외모의 스토클리(Stokely: 클리어 듀발 분), 부모가 교통사고로 죽자 애틀랜티스에서 전학 온 미모의 은발 메리베스(Marybeth: 로라 해리스 분), 스포츠카 광이며 차고에서 코카인을 제조하여 교내에서 비밀리에 유통하는가 하면 미모의 영어 교사에게 미묘한 눈길을 던지는 제키(Zeke: 조쉬 하트넷 분), 머리가 비상한 모범생이지만 항상 따돌림만 당하는 외톨이 케이시(Casey Connor: 일라이저 우드 분), 풋볼팀의 스타 쿼터백으로서 화려한 미래를 보장받고 있건만 부당하리만큼 차별적으로 우월한 대우를 받는 것이 싫어 풋볼팀을 탈퇴한 스탠(Stan: 숀 웨인 하토시 분). 이들 아웃사이더들은 교직원들 사이에서 불길하고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인다는 것을 눈치챈다.
교사들로부터 미움을 사던 드레이크 교장이 살해되고 나서, 교직원들이 하나씩 사라지거나 변사체로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결속력은 점점 강화된다. 그러나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이 서서히 파국의 조짐을 노출하기 시작하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단서를 잡지 못하던 아웃사이더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면서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생물 교사인 미스터 펄롱(Mr. Furlong: 존 스튜어트 분)이 죽던 날 자칭 6인의 전사들은 케이시가 풋볼 경기장에서 찾아온 증거물이 마을을 온통 피의 파티장으로 만들어버릴 충격적인 비극의 단서가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줄거리
MI6의 최고 암살자 세바스찬(마크 스트롱)에게는 형이 있다. 문제는 그 형 노비(사샤 바론 코헨)가 잉글랜드 그림즈비 출신의 축구 훌리건이라는 점이다. 노비는 그림즈비라는 가난한 어촌 마을에서 살면서 한 남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아홉 명의 자식들과 북잉글랜드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자친구(레벨 윌슨)다. 하지만 노비에게는 한 가지가 부족하다. 바로 어릴 때 헤어진 동생 세바스찬이다. 입양된 후 28년 동안 동생을 찾아다니던 노비는 드디어 동생의 행방을 알게 된다. 그는 곧장 동생을 만나러 떠나지만, 동생이 MI6 요원이라는 사실은 물론, 전 세계를 위협하는 음모를 막으려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동행하게 된다. 누명을 쓰고 도망치게 된 세바스찬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형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줄거리
다른 아이들처럼 산티아고 뮤네즈(쿠노 베커)도 큰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게는 그러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티아고의 이런 집념과 목표 의식은 엄청난 궁핍함과 개인적인 희생을 감내하고 고향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세계 최고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룰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능하게 했다. 열 살 나이에 산티아고가 미국 국경을 넘을 때, 수중에 가지고 있던 것은 단 두 가지, 축구공과 낡은 월드컵 사진이었다. 이후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성장한 산티아고가 관심을 쏟는 유일한 대상은 축구였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또 하나의 과제는 그의 아버지에게 그가 장래 유명한 축구 스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사람 좋은 전직 축구 선수이자 스카우트 담당인 영국인 글렌 포이 (스테판 딜레인)가 로스앤젤레스 지역 시합에서 산티아고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 클럽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찾고 있는, 뛰어난 재질과 기량 그리고 스피드와 대담함을 고루 갖춘 산티아고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이제 축구의 성지나 다름없는 뉴캐슬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 구장에서 어린 산티아고는 그의 기량을 입증해서 세계에서 가장 명망 있는 축구클럽과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게임을 앞두게 된다.
인간적 고뇌와 육체적 부상 그리고 성공에 따른 세속적인 유혹은 말할 것도 없고, 진흙 구장과 매서운 바람 그리고 팀 동료들로부터의 심리적 견제를 견뎌내야만 이 화려하고 가슴 벅찬 국제 축구 무대에서 산티아고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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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쳐 가는 감정들과 스며드는 소리들
왕가위의 영화 가운데 <타락천사>(1995)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영화는 <중경삼림>(1994)이다. <타락천사>는 질척거리는 불편한 감정들과 공존할 수 있는 찰나의 위안과 휴식을 머금으려는 영화였다. 어떤 것도 과하게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출하는 날 것의 영화이기도 했다. 제멋대로 감정을 덧칠하는 <타락천사>의 작법은 <중경삼림>에서 출발한다. 시선과 감정을 교환하는 인물들의 사이를 파고드는 긴장감이 위태로운 무드를 만들어내지만, 그 속에서 낭만을 찾아서 음미할 수 있다는 점이 <중경삼림>의 매력 아닐까. 감정의 얽힘을 형상화하는 <중경삼림>의 투박한 시도는 어쩐지 <타락천사>의 거친 스타일보다는 매끄럽게 느껴진다. 다양한 인물의 사연이 얽힌 에피소드를 은근슬쩍 교차하던 <타락천사>와는 달리, <중경삼림>은 비교적 분명하게 첫 번째 에피소드와 두 번째 에피소드를 구분해서 배치한다. 하지만 떨어진 듯 보이는 두 이야기는 몇몇 연결고리를 통해 유기적인 덩어리로 재편된다. <중경삼림>에서 감정은 어지럽게 스치기만 하고, 음악과 목소리는 언제나 깊숙이 스며들고, 기억은 보존된 채로 어딘가에 남아 있다.
스쳐 가는 감정들
<중경삼림>의 도입부는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 쉴 새 없이 화면을 흔들던 왕가위는 갑작스레 남자와 여자가 스치는 순간을 프레임에 가둬버린다. 내레이션하는 남자(하지무)는 뻔뻔할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찰나를 가두는 건 쉬워도, 그들의 감정을 보존하는 일은 어렵다. 왕가위의 세계의 단골손님인 스텝 프린팅과 정지 화면은 어쩌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스쳐 가는 감정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역으로 표출하고 강조하는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그런 왕가위 특유의 기법들은 화면을 멈추고 인물들을 머무르게 해서라도 감정을 붙잡고 싶다는 감독의 간절함이 형상화된 산물로 기능한다.
하지무는 메이를 잊기 위해 술집에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손바닥 뒤집듯 실연과 사랑을 오가는 듯하지만, 사실 그렇게 해서라도 실연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은 하지무의 간절함이 오히려 와닿는다. 그러니까 스치는 감정의 표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심연에는 낙인처럼 박힌 짙은 감정들이 몸부림치고 있다. 마약 밀매상은 언제나 레인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풍성한 블론디 가발로 머리를 가린다. 덕분에 밀매상의 감정은 헤아리기 어렵다. 스치는 감정들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왕가위는 그의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활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밀매상의 의뭉스러운 속내를 내레이션을 통해서 직관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언제 비가 올지 언제 화창해질지 모르니까 늘 레인코트와 선글라스를 함께 착용한다는 밀매상의 독백은 그녀의 감정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구간 가운데 하나다. 놓쳐버린 마약 운반책들을 잡지 못하면 일이 번거로워질 거라는 내레이션 또한 그녀의 불안정한 심리를 잘 표현한다.
한편으로 인물들의 감정은 여전히 아리송하게 스크린을 맴돈다. 경찰 663은 스튜어디스인 애인과 이별한 뒤 자신에게 온 편지를 읽지 않는다. 오히려 페이가 663 앞으로 온 편지를 몰래 읽는다. 이때 왕가위는 단골 식당에 함께 있는 경찰 663과 페이를 프레임에 가두고 응시한다. 전경(前景)에선 행인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데, 후경에 위치한 두 사람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서로의 감정은 묘하게 서로의 마음을 스쳐 간다. 663을 향한 페이의 마음은 점점 커져가고, 애인을 떠나보낸 663의 마음은 점점 복잡해져 간다. <중경삼림>의 인물들이 표출하거나 감추는 감정들을 우리는 이따금 포획할 수 있지만, 어쩐지 떠나보내거나 스치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며드는 소리들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감정들을 붙잡기 위해 왕가위는 <중경삼림>에서 종종 ‘소리’를 활용한다. 음악은 감정을 실어 나르는 최적의 도구이자, 그 자신이 감정 표출의 주체로 기능할 수도 있다. 이때 왕가위가 <중경삼림>에서 음악뿐 아니라 유독 매달리는 소리가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경찰 하지무는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옛 애인 메이를 잊지 못해 전화를 걸었지만, 어쩐지 전화를 받는 이들에겐 메이를 찾는 전화가 아니라 안부 차 전화드렸다고 둘러대기만 한다. 하지무는 메이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하지무는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이의 목소리를 끝내 들을 수 없었지만, 그 상실의 빈자리를 잠시 스친 마약 밀매상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채운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하지무와 마약 밀매상의 본격적인 만남은 옷깃이 스치던 찰나를 거쳐 어둑한 술집에서 꽃을 피운다. 그들이 가까워질 시간은 하룻밤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사정 때문에, 서로의 속내를 깊게 공유하지 않는다. 머뭇거리는 감정들이 무심하게 스치는 자리엔 무엇이 남았는가. 그건 바로 하지무의 삐삐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이다. 만남이 종료된 이후, 감정이 스쳐간 이후에 남은 건 그 소리가 전부다. 밀매상의 축하 메시지는 비록 그녀의 목소리로 직접 전달되진 않았지만, 안내원을 매개로 하지무에게 스며든다. <중경삼림> 속의 이런 특징적인 소리는 성취될 수 없었던 직접적인 감정의 교환보다 더 넓은 층위의 소통을 만들어낸다. 하지무의 마음에 밀매상의 소박한 진심이 스며든다. 묻어놓았던 감정을 나누고, 지쳐버린 서로를 위로하는 일이 소리를 매개로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재밌게도 하지무는 말을 멈추지 않는다. 밀매상을 바(Bar)에서 처음 만나 말을 걸 때도, 당신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며 너스레를 떨지 않았나. 그는 저녁마다 단골 식당의 공중전화 부스에서 질리도록 전화를 걸기도 했다. 이때 두 번째 에피소드의 경찰 663 역시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네는 모습이 어쩌면 두 에피소드를 연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663은 스튜어디스였던 전 애인과의 이별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다. 그는 실연의 아픔을 사물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들로 대체하려고 한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향해 그만 울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선 빈자리를 무언가로 채우려는 고독이 짙게 묻어 나온다.
이렇게 어디서든 말을 멈추지 않는 663에게 스며드는 소리가 있다. 바로 단골 가게의 종업원 페이가 틀어 놓은 음악이다. <중경상림>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그렇다. 663이 등장하는 그 감성 가득한 신을 기억하는가. 그때 페이가 크게 틀어놓은 음악인 ‘California Dreamin’은 내화면 영역에서 외화면으로 확장되어 관객을 자극한다. 또한, 이 음악은 663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페이가 바꿔 놓은 CD로 인해, 663에게도 은근슬쩍 스며들고야 만다. 페이가 663의 집에서 종아리 마사지를 받는 장면에서, 663은 ‘California Dreamin’을 재생하며 전 애인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라고 말한다. 이에 페이는 코웃음치며 속으로(내레이션) 내가 CD를 바꿔놓은 줄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어느덧 663의 마음속은 음악을 통해 페이로 가득 채워진다.
그 자리에 남은 기억들
감정이 어지럽게 스쳐간 자리, 소리가 아련하게 스며든 자리엔 뭐가 남아 있는가. 소박한 추억이나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아닐까. <동사서독>(1994)에서 왕가위는 기억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탐닉한다. <중경삼림>의 인물들 역시 기억에 매달린다. 기억은 평생 동안 우리의 머리를 맴돈다.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 평생을 가져가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면 한편으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기억들도 있다. 하지무에게 메이와의 추억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한순간에 털어내야 할 기억이기도 하다. 그에게 스물다섯 번째 생일 아침은 메이 없이 맞이하는 외로운 날이기도 하지만, 밀매상의 축하 메시지가 마음을 채워준 날이기도 하다. <중경삼림>을 대표하는 대사가 있다. 하지무의 내레이션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이기도 하다.
한 여자가 ‘생일 축하해’라고 말해 주었다.
난 그 말 때문에 이 여자를 잊지 못할 것이다.
만약 기억을 통조림이라고 친다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유통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 왕가위, <중경삼림>(1994)
하지무는 온종일 돌아다니느라 지저분해진 밀매상의 구두를 타이로 닦아준다. 잠에서 깬 밀매상에겐 하지무의 온기가 묻은 채로 놓인 구두 한 켤레가 남는다. 그 구두를 보면 밀매상이 과연 하지무를 떠올릴까? 밀매상에게 하지무는 좋은 기억으로 남을까? 확신할 순 없지만, 카메라는 가발을 벗어 던진 채 프레임을 빠져나가는 밀매상을 간신히 붙들고 화면을 멈춰버린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1994년 5월 1일인 통조림을 비춘다. 붙들기조차 힘든 스치는 감정들이 지나간 자리엔 유통기한을 지워버리고 싶은 통조림이 남는다.
페이는 떠나면서 663에게 편지를 남겼다. 663은 그 편지를 일 년 간 고이 간직한다. 일 년 후 스튜어디스가 된 페이와 식당을 넘겨받은 663이 재회한다. 663과 페이가 처음 만났던 그 순간처럼, 식당엔 ‘California Dreamin’이 크게 울려 퍼진다. “언제부터 이런 시끄러운 노래를 좋아했죠?”, “이제 습관이 됐어요”. 지난날의 감정들은 미묘하게 스치며 그들 또한 함께 어긋났지만, 페이의 음악은 663에게 스며들었고, 그의 마음속은 페이의 편지와 시끄러운 음악들을 매개로 하는 추억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젠 시끄러운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듣는 게 습관이 되었다는 663에게 페이는 젖어버린 항공권을 새 항공권으로 바꿔주겠다고 한다. 젖은 항공권을 간직했던 663의 일 년과, 스튜어디스가 되어 노래를 따라 캘리포니아에 갔다 온 페이의 일 년은 서로의 기억에서 어떤 시간으로 남아있을까. 새로운 항공권이 가져다줄 시간은 그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이미지 출처: https://screenmusings.org/movie/blu-ray/Chungking-Express/index_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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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에 출연한 존 시나가 최근 중국에 사과한 이유는?
해외 매체 전문지 버라이어티(Variety)에 따르면,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에 출연한 존 시나는 지난 홍보 인터뷰에서 대만을 ‘국가’라고 부른 것에 대해 이미 중국 팬들에게 한차례 사과를 했지만, 세계 최대 영화 시장을 지닌 수많은 중국 관객들은 그의 사과문을 받아들일 수 없는 태도라고 밝혔다.
10년 넘게 중국어를 배워 온 프로레슬링 선수 존 시나는, 이달 초 대만의 뉴스 채널 TVBS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어로 “대만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최신 편을 볼 수 있는 첫 번째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만에서의 극장 개봉은 중국보다 3일 빠른 5월 18일, 즉 미국 개봉일인 6월 28일보다 약 5주 이상 앞두는 것으로 예상됐으나 현지 코로나 상태가 악화돼 무기한 연기되어 왔다.
1949년, 대만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가진 채 중국으로부터 분리되었지만,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하에 대만이 중국 영토의 일부이며, 따라서 대만을 독립국가로 부르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시나는 공식 웨이보 계정을 통해, TVBS에 사과하는 글과 함께 동영상을 올렸다. 그는 어색한 문법과 비교적 정확한 발음과 함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분노의 질주를 위해서 정말 많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정말 많이요. 한 인터뷰에서 실수를 했어요. 지금부터 제가 말할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중국을 존경하고 중국 사람들을 사랑해요. 제 실수에 대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저는 정말 중국을 존경하고, 중국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간주한 그의 실수는 중국에서의 보이콧을 초래할지 지켜볼 일이다. 작년 12월에는, <몬스터 헌터>가 중국 개봉 이후 하루 만에 상영을 전면 중단한 사건이 있었다. 논란에 휩싸이게 된 배경은 <몬스터 헌터>에서 한 백인 군인이 “이 무릎(knees)은 뭐지?”라는 농담을 하자, 동양인 군인이 ”중국인(Chi-knees)”이라고 답하며 웃는 장면에서 촉발됐다. 또한 지난 3월에는 <노매드랜드>의 상영을 취소한 바 있는데, <노매드랜드>의 감독 클로이 자오가 2013년 ‘필름메이커’와의 인터뷰에서 “10대에 고국을 떠났을 때, 중국은 거짓말이 도처에 널린 곳이었다.”라고 발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선전부는 심기가 거슬렸는지, 중국 내 모든 매체에 아카데미 시상식을 중계 및 보도하지 말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일부 팬들은 존 시나가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 수년 동안 중국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하며 그를 옹호해왔다. 또한 다른 이들은 외국인들이 중국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 대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생각이 달랐다. “중국어로 ‘대만은 중국의 일부이다’라고 말해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약 7,500개의 ‘좋아요’를 받은 네티즌은 말했다.
“중국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사과를 할 때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게 단순히 문법적 오류였을까요? 존 시나는 심지어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그가 실제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누가 알까요?” 약 2,000개의 ‘좋아요’를 얻은 네티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Endata(艺恩)에 따르면,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중국 개봉 후 5월 27일 기준으로 약 10억 위안(한화 약 18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마지막 두 편의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미국에서보다 중국에서 훨씬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 바 있다.
씨네랩 에디터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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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쳐. 네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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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좋은 사람> 티저 예고편
고등학교 교사 ‘경석’(김태훈)의 반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같은 반 학생이 ‘세익’(이효제)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경석’은 ‘세익’을 불러 어떤 말을 해도 믿을 테니 진실을 말하라고 하지만,
세익은 무조건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날 밤, 학교에 데려왔던 ‘경석’의 딸 ‘윤희’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또 다시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되는데…
의심하는 순간 모든 것이 흔들렸다
의심과 믿음 그 사이에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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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올드> 티저 예고편
아침에는 아이, 오후에는 어른, 저녁에는 노인
죽음은 시간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