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13 11:11:20
3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존 윅 5>, 실제로 제작되나

최근 키아누 리브스가 <존 윅 5>에 대해 “그 캐릭터는 죽었다.”라고 속편에 대해 답변한 것과 상반되게 제작사 라이온스게이트는 현재 <존 윅 5>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라이온스게이트는 <더 크로우>, <보더랜드>, <메갈로폴리스> 등 대형 흥행 실패를 겪어, 북미에서만 2억 달러를 벌어들였던 <존 윅> 시리즈(<존 윅 4>)를 제작하지 않기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한편, 라이온스게이트는 현재 매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HBO/HBO Max 오리지널, 쿠팡플레이에서 본다

<석세션>, <하우스 오브 드래곤> 등 HBO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다시 국내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쿠팡플레이가 국내 독점 제공으로, 오는 3월 21일 금요일부터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쿠팡플레이는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와 콘텐츠 파트너십을 맺어 HBO/HBO Max 오리지널 콘텐츠와 워너 브라더스 픽쳐스의 콘텐츠들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세이디 싱크, <스파이더맨 4> 출연 확정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로 큰 인기를 얻은 배우 세이디 싱크가 <스파이더맨 4> 출연을 확정 지었습니다.
톰 홀랜드와 함께 주연을 맡은 세이디 싱크가 <엑스맨> 시리즈의 대표적인 캐릭터 ‘진 그레이’를 연기할 것이라는 가설에 힘이 실리고 있는 가운데, 과연 그가 맡게 될 캐릭터는 무엇일지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한편, 이번 작품의 연출은 <샹치>의 감독 ‘데스틴 크리턴’이 맡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애프터 양> 코고나다 신작, 북미 개봉 연기

전작 <애프터 양>으로 호평받았던 코고나다 감독의 신작 <A Big Bold Beautiful Journey>가 북미 개봉일을 연기했습니다.
애초 2025년 5월 9일 개봉 예정으로 알려졌지만, 9월 19일로 개봉일이 연기되었습니다.
마고 로비와 콜린 파렐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의 자세한 줄거리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결혼식에서 만난 낯선 두 사람이 GPS에 의존한 여행을 함께 떠나는 이야기라고 알려졌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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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할 텐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바다 너머, 인간이 사는 육지 세상이 궁금한 인어공주 '에리얼'(할리 베일리).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바다 위로 올라갔다가 폭풍우를 만나 난파된 배에서 '에릭 왕자'(조나 하워킹)의 목숨을 구한다. 에리얼은 첫눈에 그와 사랑에 빠지지만, 아버지이자 바다의 왕 '트라이튼'(하비에르 바르뎀)은 절대로 바다 위 인간 세상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엄명을 내린다. 이에 에리얼은 바다 마녀 '울슐라'(멜리사 맥카시)와 거래해 목소리를 잃는 대가로 다리를 얻어 육지로 향하고, 새로운 운명을 찾아 나선다.
모두를 실망시킨 <인어공주> 재해석
2010년대 초중반부터 디즈니는 자사 애니메이션 영화를 실사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많은 흥행작을 만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정글북>, <알라딘>, <라이언 킹>, <미녀와 야수>는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하지만 논란이 가장 많은 영화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인어공주>다.
<인어공주>는 제작 단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원작 파괴가 문제였다. 주연을 맡은 할리 베일리는 애니메이션 원작 속 에리얼과 달리 흑인이었다. 에리얼의 빨간 머리도 흑인 특유의 드레드 머리로 바뀌었다. 한쪽에서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재해석이라고 옹호했다. 반대쪽에서는 원작 파괴라고 비판했다. 에리얼을 닮지 않은 배우가 출연해 리메이크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영화를 보니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일단 흑인 인어공주는 나름 자연스럽다. 덴마크가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를 식민지로 삼은 역사를 반영해 배경을 카리브 해로 바꿨기 때문이다. 에리얼을 닮은 외모는 아니지만, 할리 베일리의 연기와 노래도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원작 설정을 재해석하고 변경한 이유를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당위와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대목을 외면한다. 그렇게 월트 디즈니 컴퍼니 100주년 기념작 <인어공주>는 새로운 해석을 기대한 관객도, 원작의 실사화를 바란 관객도 모두 실망시킨다.
공허한 재해석
새로운 <인어공주>가 힘을 준 대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다양성이다. 에리얼과 에릭의 로맨스는 소통과 다양성을 추구하자는 이야기다. 영화는 에리얼과 트라이튼의 갈등을 통해 다른 문화를 포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에릭 왕자의 서사를 더해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그와 '셀리나 여왕'(노마 두메즈웨니)의 대립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편견과 선입견을 깨야 한다고 말한다.
에리얼과 에릭의 로맨스는 동병상련에서 시작된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무장한 부모는 자녀를 억압한다. 트라이튼은 인간이, 셀리나는 바다의 신과 인어가 잔인하고 야만적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두 주인공은 그들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동경한다. 다른 문화를 궁금해하고 기꺼이 수용하려 한다. 두려움 없는 그들은 서로의 세상을 배우면서 사랑을 싹 틔운다. 더 나아가 완고한 부모까지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인어공주>의 재해석은 공허하다. 원작과 다른 이야기가 두드러지지 않아서 메시지가 밋밋하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는 설정이 대표적이다. 트라이튼 왕은 인간이 에리얼의 엄마를 죽였다고 암시한다. 인간 왕국의 왕도 바다 때문에 죽었고, 에릭 왕자도 표류하다가 구조됐다고 언급된다. 영화는 육지와 바다 사람이 서로 배타적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갈등을 극복하는 로맨스를 강조한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이 너무 평이하다. 육지와 바다 사이에 있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대사 몇 마디로 그친다. 그러다 보니 추가된 서사는 뇌리를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전반적인 흐름에도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결국 영화는 인어와 인간의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큰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과 인어가 화해하는 결말도 그저 동화다운 교훈을 주는 결말에 그치고 만다.
흑인과 카리브해의 역사
더구나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소재를 손에 들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 흑인 인어공주를 비롯해 카리브 해라는 공간적 배경과 드레드 머리는 손쉽게 소비된다. 이들을 이용해 다양성과 관련된 사회적, 역사적 문제를 깊숙이 살펴보려는 시도는 없다. 그저 관객의 상상력과 지식에 맡길 따름이다.
카리브해는 역사적 맥락이 깃든 장소다.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이 <인어공주>의 원작 동화를 썼고, 덴마크는 제국주의 시대에 카리브해 일대를 식민지로 삼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령 버진아일랜드가 대표적이다. 중심지인 '샬럿아말리에이'만 해도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5세의 왕비인 헤센카셀의 '샤를로트 아말리에'로부터 이름이 유래했다. 작중 에릭 왕자가 유럽과 교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총리를 비롯한 지배층 대다수가 백인으로 묘사되는 이유다.
이때 덴마크와 카리브해, 그리고 흑인 주인공이라는 조합은 곧장 한 가지 역사적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노예무역이다. 구체적으로는 아프리카, 유럽 열강,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삼각 노예무역이다. 덴마크는 영국, 포르투갈 등과 함께 노예무역 당사자 중 하나였다. 카리브해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의 종착지 중 하나였다. 19세기에 법적으로 금지하기 전까지는.
그런데 <인어공주>는 이런 역사적 맥락을 제거한다. 흑인 노예가 수입되는 시대에 흑인 여왕은 백인 왕국을 통치하고, 백인 왕자는 흑인 인어공주와 결혼한다. 시대상을 고려하면 어색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흑인 인어공주를 등장시키고 배경을 카리브 해로 변경해 놓고도 마치 제작진이 그 함의나 맥락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도 보인다. 영화가 흑인이라는 키워드를 고민 없이 편의적으로 활용하는 듯한 인상이 남는다.
드레드 머리는 단순한 헤어스타일이 아니다
이에 더해 <인어공주>는 에리얼의 머리도 표피적으로 활용한다. 사실 드레드 머리는 단순한 헤어 스타일이 아니다. 아메리카에 정착한 흑인 노예들에게 아프리카 특유의 헤어 스타일은 부끄러운 대상이었다. 드레드(Dread)라는 용어 자체가 '끔찍하다(Dreadful)'는 단어에서 비롯될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은 백인 헤어 스타일을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약품을 동원해 머리를 피다가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흑인 인권 운동이 힘을 가지면서 흑인들은 자기 본연의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드레드 스타일도 이맘때 퍼져 나갔다. 즉, 드레드 머리는 백인 중심 사회에 동화, 통합되지 않겠다는 흑인 사회의 의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상징이다. 동시에 아메리카 흑인들의 아픈 역사를 함축한 상징이다. 따라서 카리브해, 흑인 인어공주, 드레드 머리라는 헤어 스타일이라는 소재를 종합하면 새로운 인어공주는 흑인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강력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는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에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의미심장한 소재를 그저 표피적인 의도로 활용할 뿐이다.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목적으로. 포크 사용법을 모르는 에리얼이 포크로 드레드 머리를 다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신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안전한 스토리에 의존한다. 캐스팅 논란이 무색할 정도다. 흑인 인권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쟁점을 영화에 녹여낸 <블랙팬서>와 비교해 보면 새로운 <인어공주>는 더 안일해 보인다. 칼을 뽑았는데, 무도 자르지 못한 셈이다.
큰 도움은 되지 않는 완성도
심지어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점보다 단점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우선 <라이온 킹>과 비슷한 문제점이 있다. 동물을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하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심지어 이번에는 포유류가 아닌 해양 생물이라서 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화면도 어둡다. 실사 영화로 구현된 어두운 바닷속은 광원이 부족해서 어둡다. 장면을 부각할 조명도 마땅치 않다. 결국 흑인인 에리얼은 어두운 배경 속에 갇혀 버린다. 그녀를 지켜보기가 어렵다. 할리 베일리에 맞추어 연출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이는 대목이다.
그래도 디즈니 영화로서 최소한의 재미는 갖췄다. 에리얼과 에릭이 거대해진 울슐라와 맞서 싸우는 후반부 해상 전투신은 인상적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 경력자답게 롭 마샬 감독이 클라이맥스에 걸맞은 스펙터클을 그려냈다.
울슐라와 트라이톤 왕의 역할도 지대하다. 코미디 배우로 알려진 멜리사 맥카시는 선입견을 제대로 깼다. 오빠 트라이톤의 권력을 갈망하고 복수를 꿈꾸는 마녀 울슐라라의 광기와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준다. 하비에르 바르뎀도 무게를 잡아준다. 그의 연기 덕분에 가족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의 슬픔과 외로움은 극대화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디즈니
<인어공주> 애니메이션 영화는 디즈니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20세기 중후반 침체기를 겪은 디즈니가 새로운 전성기인 '디즈니 르네상스'를 알린 시작점이 <인어공주>였기 때문이다. 이는 디즈니가 창사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 <인어공주>를 공개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인어공주>는 그 상징성과 중요도에 미치지 못했다. 과감하지 않은 사회적 메시지는 원작의 도전 정신에 미치지 못한다. 1989년에 애니메이션이 보여준 능동적인 여성상에 비하면 이번 영화가 무슨 메시지를 담았는지 의문스럽다. 만듦새와 볼거리 역시 현재 디즈니의 위상과 자본력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다. 그 결과 100주년을 맞이해 더 화려하고 세밀해진 디즈니 성의 미래는 마냥 밝지 않아 보인다.
Dreadful 끔찍한
충분한 고민 없는 재해석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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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뜻 보이는 허술함도 코미디로 커버 친 <오케이 마담>
바닷길 선발대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 중 해당 프로그램의 구성원들이 박성웅 배우가 출연한 영화 <오케이 마담>을 함께 모여서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팬인 김남길이 카메오로 나온다기에, 영화 출연시간을 다 합해봤자 2분이 채 되지 않는 김남길을 보기 위해 2시간 짜리 영화를 보았지만 정말 재미있게 본 작품이었다.
영화 [오케이 마담] 시놉시스
극강의 쫄깃함으로 빠른 완판을 기록하는 꽈배기 맛집 사장 '미영'은 컴퓨터 수리 전문가 '석환'의 남다른 외조로 하와이 여행에 당첨되고, 난생 처음 해외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비밀 요원을 쫓는 테러리스트들도 같은 비행기에 오르고 꿈만 같았던 여행은 아수라장이 된다. 난데없는 비행기 납치 사건의 유일한 해결사가 되어버린 부부. 평범했던 과거는 접어두고, 숨겨왔던 내공을 펼치며 인질이 된 승객을 구하기 시작한다.
현실성 없는 허술함이 포인트인 작품
솔직히 말하면 영화 [오케이 마담]은 영화 자체가 웰메이드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허술한 부분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허술함이 영화의 장르인 코미디와 결합하면서 영화의 몰입도를 방해하거나 분위기를 와장창 깨트리기보다는 코믹한 부분을 더욱 강조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피식피식 어이없어서 웃고, 그래그래~ 하면서 넘어가게 되었다.
비행기 문이 뚫렸는데 그 뚫림 상태로 하와이까지 아주 무사 착륙을 하다든지, 하와이의 바닷가 장면이 누가 봐도 CG인 것이 티가 나서 제작비로 이렇게 웃음을 선사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엄정화의 액션 소화력과 연기력
필자는 사실 엄정화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엄정화가 나오는 작품을 챙겨 보는 편이 아니었고, 엄정화라는 이미지가 필자에게는 아직까지 가수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연기를 잘한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망가지는 연기를 잘하다니..! 정말 억척스러운 연기와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사랑스러움. 그리고 액션 연기를 할 때의 카리스마와 딸을 생각하는 모성애까지 오케이 마담에서 웬만한 감정 연기는 다 선보인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 연기에 있어서 과장된 느낌은 없고, 코믹스러운 와중에도 그 감정선이 다 연결되고 부담스럽지 않아서 엄정화가 정말 배우구나, 연기를 잘하고 부담스럽지 않게 배역에 물드는 그런 배우구나 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김남길은 1분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재밌었다..!
사실 영화 [오케이 마담]은 김남길 때문에 본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작품이다. 김남길은 비행 공포증으로 인해 신경 안정제를 다량으로 섭취하고 비행기 하이재킹 상황에서 아주 꿀수면에 취한다.
비행 내내 어딜 끌려가도 맞아도 정신을 차리지를 못한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 되고, 하와이에 와서야 정신을 차린 김남길은 핸드폰에 와있는 대량의 문자와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다.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국정원 요원이 바로 김남길이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아무 쓸모가 없었던 국정원 요원에 대한 풍자가 너무나도 잘 이뤄졌던 장면이었다. 끌까지 국정원 요원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마지막 스크롤이 올라갈 때 쿠키 영상처럼 김남길의 상황이 등장해서 마지막 반전 코믹 요소를 선사한다. 이처럼 영화 [오케이 마담]은 마지막 코믹 요소까지 잘 갖춘 작품이었다.
작품성과 개연성이 잘 갖춰지진 않은 작품이지만 주말에 킬링타임용으로 피식피식 웃으며 보기 좋았던 코미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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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와그작
미국의 어느 도시. 평범한 10대 소녀인 매런은 학교를 다니고 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다니는 매런. 다른 국적의 10대들과 다를 바 없이 지내고 있다. 오늘은 우리 집에 올래? 매런을 초대하는 친구들. 매런은 당연히 오케이다. 주인공 매런은 그냥 평범한 10대 소녀다.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매런. 어머니가 아주 어렸을 때 매런 가족의 곁을 떠났다. 아버지와 함께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었던 매런. "잘 자요, 아빠!" 다른 날과 비슷하게 아버지에게 인사하는 매런.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대로 자면 뭔가 아쉽다. 일과 때 친구들과 했던 약속이 떠오른다. 방에 있는 창문을 열고 신발을 신은 다음 조심조심히 밖을 나가는 매런. 아버지 모르게 친구 집에 도착한다. "매런, 왔어?" 매런을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들. 친구들과 서로 대화한다. 가장 친한 친구 옆으로 가는 매런. 나른한 피아노와 함께 같이 누웠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매런과 매런의 베프. 그런데 갑자기 매런이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친구의 손가락을 씹어 먹었다.
아수라장이 된 파티장. 우발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에 매런은 당황한다. 도망가는 매런. 집에 도착했다. 당황한 아버지. 아버지의 혹시? 는 사실이 됐다. 사람을 뜯어먹은 매런. 어렸을 때 잊었던 기억이 몇 년을 돌아 다시 부녀에게 들이닥쳤다. 급히 도망가는 매런 부녀. 그렇게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될 거 같았다. 천만에. 또다시 연상되는 트라우마에 아버지는 딸 매런을 버리고 도망친다. 매런이 살아오면서 행했던 식인 에피소드를 일일이 녹음한 테이프를 남기고. 혼자가 된 매런.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어머니밖에 없다. 어머니가 있는 미네소타로 향하는 매런. 매런의 세상에는 정말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 식인종은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외로운 삶을 이겨내야 할 것 같았던 그녀에게 또 다른 손님이 등장했다. 먹는 취향이 비슷한, 그러니까 같은 식인종인 '리'다.
로드무비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영화 안에서 차와 풍경을 활용한 연출이 구석구석 돋보인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보여줬던 아름다운 영상미가 이 영화에서도 장점으로 발현된 것이다. 이와 관련된 근본은 역시 '보니 앤 클라이드'에서 왔다. 우리나라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한글화 되었던 영화. 무료한 일상에 질려 강도질을 시작했던 커플을 소재로 했던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이 <본즈 앤 올>은 이를 보여주듯 두 커플이 어떻게 식인이라는 본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에 대한 내용을 품고 있다. 영화에서 모든 이야기에 개연성이 생기는 이유도 이 '로드무비'라는 특성을 십분 활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매런이 배고프다고 했을 때 리가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 리의 생존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어머니는 과연 매런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리와 매런 둘은 어떻게 만났는지, 엔딩 전개를 위한 준비물까지 이리저리 떠도는 인물들의 특성을 이야기에 잘 넣었기에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런 로드무비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이유는 역시 두 주인공 리와 매런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리와 매런은 본질적으로 주류에 낄 수 없는 사람이다. 사람을 죽여 식인 한다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매런은 사람을 해치기 싫어한다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데 세상이 그대로 나 둘리가 있나. 이리저리 여행한다는 것은 인물의 입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와도 관련이 있다.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와 여행의 동적 이미지가 닿아 있는 것이다. 이는 영화에서 두 번 반복되는 시퀀스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느 산골에서 두 사람만 조명하는 이미지는 텅 비어 보이는 느낌에도 왠지 따뜻한 느낌이 든다. 이 외에도 영화에서 언제 여행을 멈추고 쉬어가는지, 여행을 아예 그만 둘 때는 언제인지 생각하면 이 역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행을 오히려 인물의 고독과 연대라는 이중적인 성격으로 표현한 것이다.
식인종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세팅인 '식인'은 단순히 자극적으로만 소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팅은 아닌 것 같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누가 봐도 외톨이다. 당연히 식인이라는 습성 때문에도 있지만 이 인물들에게는 큰 결핍이 있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매런과 리. 이는 어머니/아버지가 어렸을 때 떠났고 이 둘이 범인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연대를 표현하는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또 이 둘이 '어떻게 생존을 지속하는가'에 대해서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이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식인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 '본능적으로 하는 식인'은 영화에서 어떤 트리거를 통해 두 사람의 사랑과 병치된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두 사람이 먹는 것이 인간으로 표현은 되지만 '소외된 이들이 사랑'을 먹는다라는 의미와도 통한다. 식인이라는 속성이 호러와 로맨스라는 두 극단적인 장르의 구분선을 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인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역시 전 세계 도처에 있는 아웃사이더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숨어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식인은 굉장히 극단적인 세팅이다. 영화는 이 식인을 합리화하지 않는다. 극에서 가족을 등지고 도망치거나 버려졌던 인물들의 특성을 봐도 그렇다. 또 매런과 리 캐릭터의 차이점을 봐도 알 수 있다. 매런은 식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식인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리는 매런에 비해서 좀 우호적이다. 대신 식인 하는 이유에 나름대로의 원칙을 적용한다. 이 두 속성만 봐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식인에 대해서 '다름을 이해하자!'식의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 것 같다. 대신 영화는 극단적인 세팅으로 두 사람의 고독과 고립감을 증폭시킨다. 이 고립감은 두 영화가 호러-로맨스의 장르 구분을 뛰어넘는 것과 유사하게 로맨스 영화의 장르 특성을 강화한다. 둘 다 외롭고 이해받을 수 없는 존재기 때문에 사랑이 깊어지는 것이다. 소재가 가질 수 있는 아이러니를 잘 잡은 것이다. 또한 본 작은 이런 극단적인 세팅을 소모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중간에 대사로 "우리 같은 사람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입'이라는 신체기관이 두 가지의 생존에 기여한다는 점이나, 두 주인공이 서로를 알아봤던 방식까지, 영화는 끊임없이 아웃사이더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있다. 평생을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해 온 관객들이 있다면 이는 깊은 감정적인 공감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를 포함한) 완벽한 사랑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근데 사실 그런 건 없다.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날도, 좋지 않은 날도 있다. 얼핏 보면, 시선의 전환이 순수한 사랑을 낳을 때도 있는 것 같다. 영화는 이 시선에 대한 영화다.
캐릭터 칭찬해
글쓴이의 관점에서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캐릭터(들) 때문이었다. 첫 번째. 주인공 매런은 공허한 사람이다. 이를 보여주는 영화의 연출과 테일러 러셀의 내면연기가 좋았다. 영화의 분위기를 이끄는 좋은 퍼포먼스였다. 또 남자 주인공이었던 티모시 샬라메는 영화 러닝타임 내내 빛난다. 누가 이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겠는데 헤어스타일 진짜 잘 골랐다. 티모시 샬라메가 극 중에서 깡마른 체형으로 묘사되고 또 워낙 잘생겼기 때문에 이 헤어스타일을 소화하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 첫 등장부터 연출의 수혜를 받았던 리. 단순히 외모뿐만 아니라 감독의 주특기를 가장 잘 받는 인물이 이 '리'다. 이 영화의 굉장히 큰 강점은 색감이다. 빛, 의상, 물건의 색, 피의 색(빨간색), 이런 색상 배치를 자기만의 영상언어로 감독은 표현한다. 이 톤인톤의 색감을 티모시 샬라메는 훌륭하게 소화한다. 이 인물은 개인의 작중 행적에서도 각본의 혜택을 받는다. 영화는 리는 이 인물이 어떻게 하면 더 로맨틱하게 보일 수 있을까?를 전부 다 구현하는 서사를 갖고 있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캐릭터에 대한 존재감을 쾅쾅 남긴다.그러나 이 리 캐릭터에게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 후반부에 터닝포인트가 되는 지점이 있다. 여기서 엔딩까지 좀 갑자기 전개되는 감이 있다. 이 사이에 인물의 내면 묘사가 어느 정도 있었으면 몰입이 더 깊지 않았을까?
아. 위의 두 캐릭터만큼이나 엄청난 존재감을 풍기는 인물이 있다. 바로 마크 라이런스가 맡은 '설리'다. 이 인물은 첫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더 배트맨>의 리들러가 연상되는 말투를 뽐내며 매런에게 말을 거는 설리. 어딘가 좀 돌아이 같은 이 캐릭터가 영화 끝까지 어떤 방식으로 등장하는지를 주시한다면 영화의 재미가 넓어질 것이다. 이 영화가 각본의 힘이 좋았던 이유는 언제 어디서 어떤게 튀어나올지 예상이 안 되지만 극 내부에서 거의 대부분 설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캐릭터들이 생동감이 있어 살아 숨쉬지만 특히 설리라는 인물은 더더욱 그랬다. 아마 마크 라이런스는 주요 시상식에서 이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뭐 단순히 연출 내적으로 인물들이 또렷하긴 했다. 그러나 글쓴이가 이 인물 연출에서 더 좋았던 점은 이 인물들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매런. 매런의 어머니. 매런의 아버지. 리. 리의 어머니. 리의 여동생. 리의 아버지. 설리. 중간에 만나는 인물. 다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인물들은 사랑을 갈래만 다른 채로 표현하고 있다. 영화에서 인물 간의 대비를 훌륭하게 조명했기 때문에 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글쓴이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재미는 '각기 다른 사랑'이 어떻게 표현됐는지를 알아챌 때 왔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 사랑에 대해서 어느 쪽에 가중치를 둔 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이 뭘까? 나라는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것. 그런게 사랑 아닐까? 좀 잔인하긴 해도 커플들이 보기 좋은 영화다. <아바타 : 물의 길> 이전에 <더 메뉴>와 함께 보면 좋은 웰메이드 로맨스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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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이라는 의미
간만에 자극적이지 않아도 울림이 큰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이 영화는 진짜 모자란 사람은 누구인지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본다면, 꼭 이 질문에 답을 해보길 바란다. 내가 정한 답은 이거다. 진실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내가 경험하고, 마음으로 느껴야 보이는 것이라는 것. 인간은 사회적으로 비교를 하게끔 태어났다. 내가 저 남자보다 돈이 더 많고, 집도 더 좋은 곳에 산다. 고로 난 저 남자보다 더 나은 인간일까? 외적으로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내가 더 절대적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이처럼 이 영화는 눈으로 보는 외적인 모습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시각적인 편견 너머의 세계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한다.주인공 양순호는 민변 출신의 국내 최고 로펌 회사에 취직하지만 세상 풍파에 찌들어 오로지 빚을 갚는 데에 인생이 저당잡혀 삶의 의욕 따위 밥 말아먹은지 오래된 인물이다. 실력있는 변호사인 그는 회사 사장에게 제대로 잘 보인 덕에 정부의 하수인이라는 회사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 대표 변호사로 선택받는다. 이처럼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를 걷나 했더니, 그가 자폐아 여고생이 증인으로 선정된 한 재판에 휘말리면서 그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생긴다. 장애인의 증언은 법정에서 그리 신빙성있게 받아들여지는 증거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자폐아 임지우를 쫓아다녔던 양순호의 행동은 그에게 있어서 단지 재판을 위해 공격할 명분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의 행동의 전제에는 지우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그래봤자 장애인인데, 그녀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불신의 편견과 자신이 지우보다 좀 더 우월하다는 자만심이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간만에 자극적이지 않아도 울림이 큰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이 영화는 진짜 모자란 사람은 누구인지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본다면, 꼭 이 질문에 답을 해보길 바란다. 내가 정한 답은 이거다. 진실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내가 경험하고, 마음으로 느껴야 보이는 것이라는 것. 인간은 사회적으로 비교를 하게끔 태어났다. 내가 저 남자보다 돈이 더 많고, 집도 더 좋은 곳에 산다. 고로 난 저 남자보다 더 나은 인간일까? 외적으로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내가 더 절대적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이처럼 이 영화는 눈으로 보는 외적인 모습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시각적인 편견 너머의 세계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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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냥감이 되거나 사냥꾼이거나 둘 다 아니거나
굉장히 오래전 일이다. KBS의 <해피 투게더>에 나와서 모 래퍼가 어떤 분에게 랩을 한다. "인생의 진리지!" 이 한 줄은 많은 커뮤니티를 오고 가며 밈이 된다. 약간 모든 게 완벽한 너. 너는 인생의 진리지!라는 식의 가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랩을 했던 사람이 자기 계발에 진심인 분이었어서 그 분 특유의 오그라드는 감성과 잘 맞았다.이 깔끔한 캐릭터성은 지금 봐도 웃긴 코미디 소스다. 그런데 코미디는 코미디고 완벽한 건 참 부러운 일이다. 비단 나만 해도 머리가 안 좋고 키가 작다. 그리고 소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과는 머리가 먼 느낌이다. 나도 다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노력은 하는데 이상과 현실이 괴리가 있는 느낌.. 하하..
이정재 배우 역시 찾아보면 단점이 있을 것이다. 그의 인생사가 편하게만 전개되지는 않은 것 같긴 하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았던 적도 있으니 지금까지도 유효한 비판일 거라 생각한다. 근데 이 이정재 배우는 작년 <오징어 게임>을 필두로 중년 운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관상>으로 재기의 시발탄을 쏘아 올리면서 그의 커리어가 다시 시작됐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포스 있는 액션 연기로 무비스타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다. 그다음 작은 <오징어 게임>이었다. 국제적으로 가장 흥한 드라마인 이 작품. 미국의 어느 에이전시와 계약했고 마블과의 링크도 뜨고 있는 건 정말 신기하다. 엥? 더 잘 될 수가 있나? 우리나라에선 이미 탑스타가 된 이정재 배우. 이 이정재 배우가 연출에 도전한다. 그리고 엄청 성공적인 것 같다. 웰메이드 스릴러 한 편이 등장했다. <헤어질 결심>과 <소설가의 영화>에 이은 올해 한국영화의 발견이 되지 않을까 싶다. <헌트>다.
복잡한 1983년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킨 지 4년이 지났다. 1983년 워싱턴. 두 안기부 차장이 대통령을 엄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원래 대통령이 오기로 했던 건물 밖에는 성난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 어수선한 건물 밖 분위기. 건물 위층에는 CIA 인사와 안기부 부장 강 부장이 시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과열되는 시위. 하지만 대통령이 워싱턴에 도착하는 일정에 차질은 없다. 그런데 CIA에서 연락이 왔다. 대통령을 노리는 저격수가 있다는 소식이다. 어디에? 안기부 국내팀/국외팀 차장 박평호와 김정도는 무장하고 건물 내부로 들어간다. 건물 안에 모든 신경이 집중됐다. 긴박한 지금. CIA와 안기부는 테러범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런데 임무 도중 박평호가 인질로 잡히게 된다. 고민하는 안기부. 그렇게 전전긍긍하던 때 김정도는 테러 용의자를 사살한다.
뭔가 안 맞는 것 같은 둘. 사실 테러범을 생포해 배후에 누가 있는지 조사하고 싶었지만 김정도가 가차 없이 사살했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하긴 어렵게 됐다. 김정도의 발령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호흡이 영 안 맞는 둘. 두 사람이 이끄는 안기부에 제보 하나가 들어왔다. 안기부 안에 북한과 내통하는 스파이가 있다는 소식이다. 이름은 동림. 이 스파이가 주요 정보들을 그동안 북측에 정보를 제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파이를 놔둔다는 것은 한국의 안보에 거대한 구멍을 만드는 셈이 됐다.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동림. 안기부의 윗동네가 아니라면 유출이 안 될 정보들이 퍼지고 있다. 과연 동림의 정체는 누구일까? 두 남자는 처절하게 대립하며 스파이의 정체를 점점 알게 된다.
독보적인 느낌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이정재 배우의 감독 데뷔작이다. 이정재 감독은 보통 배우로 유명하다. 작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징어 게임>이 그의 대표작이다. 드라마로 국제적인 인기를 끌기 이전에 사실 충무로에서 굵직하게 이름을 날리던 게 이정재 배우였다. <도둑들> <암살>로 천만배우 주조연도 해보고 <관상>의 수양대군이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레이, <신세계>의 이자성 역으로 개성 강한 역할을 많이 맡았다. 특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레이 역이 아주 인상 깊었다. 그 처음 등장할 때 ‘그것이 나의 방식이야’하던 장면을 글쓴이는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정말 이정재 배우의 팬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뭔가 스타성이 강하지 예술가적 창의성이 뛰어나다고는 생각 안 해봤다. 맡는 역할도 왠지 제한된 느낌?
그러나 이 영화는 그동안의 영화를 봤던 분들에게 '이런 면도 있었구나' 놀라게 하기 충분하다. 이 신인 감독의 연출기법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었다. 일단 이 영화는 세 작품과 비슷하다. <원스 어픈 어 타임 할리우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공작>이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 역사를 살짝 비틀었다는 것이 아마 세 작품과의 유사점이 될 것이다. 근데 유사점을 떠나 세 작품과 비슷하면서도 결이 살짝 다른 느낌이다. <원스 어픈 어 타임 할리우드>보단 어둡고 빠르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첩보물의 형태를 가져왔지만 주인공의 입장 처지가 완벽하게 다르다는 것, <공작>과도 비슷하지만 더 처절하고 끈적끈적하다는 지점이 세 영화와 같지만 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액션신 연출 방식이 여태까지 나왔던 다른 장르물과 다르다. 이 <헌트>에서의 액션신은 분출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시퀀스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박평호와 김정도가 내면에 품고 있는 특정한 감정으로 영화 분위기를 이끌기 위해 짜여있다. 가령 첫 번째 도입부를 보면 그렇다. 김정도는 그냥 사살하는데 박평호는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인물 간의 입장 차이를 위해 장면 장면을 넣은 것이다. 또 하이라이트 신에서의 총격전은 어수선하고 난잡하면서도 장르적인 특성과 하고 싶었던 말을 분명하게 삽입했다. 불필요한 장면 삽입 없이 시퀀스를 경제적으로 활용한 이정재 감독의 뚝심이 돋보였다.
이렇게 이야기와 드라마 사이를 잘 조절해서 빠르게 전개하다 보니 보는데 이물감이 없다. 굉장히 빠른 이야기 전개에 변박을 부여해서 정서와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까지 한다. 또한 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인물 간의 차이점을 부각하는 연출에도 유효한다. 극 중 김정도와 박평호는 비슷한 점이 많다. 같은 안기부 차장이라는 점, 부하 직원이 있다는 점, 또 뭔가 약점이 있다는 점 이런 것들에서 비슷하다. 이렇게 비슷한 게 두드러지도록 잘 짜여있기 때문에 엔딩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구멍이 없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하면 '아 이래서 그랬겠구나'이해가 쉬울 것이다. 일부러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목표로 둔 게 아니라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이라이트 신의 쾌감이 잘 느껴진다. 이런 방식은 어디에서도 못 봤다. 신인 감독의 독창성이 그대로 묻어 나온 영화였다.
엄청난 퍼포먼스
이정재와 정우성은 충무로의 큰 이름들 중 하나다. 그만큼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는 뜻이다. 이에 호응하게 둘의 인맥은 넓은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정재 배우의 '방위 시절'에 만났던 유재석,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이미 모델로 월드클래스였던 정호연 배우, 송강호 배우 등 충무로 마당발 중 하나가 이 영화의 감독이다. 마찬가지로 정우성 배우 역시 곽도원 배우나 주지훈, 전도연 배우 등등 청담동 부부는 덕을 잘 쌓았는지 인맥이 넓다. 이를 보여주듯 이 영화에선 씬스틸러들이 잘 나온다. 그리고 이 씬 스틸러 중 몇몇 배우는 물리적인 분량이 짧아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일단 어떤 카메오들은 잠깐 샤샥하고 스쳐 지나간다. 초중반부쯤 총격전 신에서 양 갈래로 나뉜 국정원 요원들의 얼굴을 잘 확인해보시면 누가 나왔는지 파악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상기했던 '엄청나게 중요한 카메오'에 대한 이야기다. 네 배우다. 일단 ~장 전문 배우 송영창 배우는 극에 보이는 대로 이해해도 뭐 큰 스포일러가 아니다. 중요하긴 하지만 이 배우의 출연 사실만으로도 반전이 있거나 이러지는 않다. 나머지 세 배우다. 이 세 배우중 두 사라는 주체적인 연기를 잘 소화했다. '주체적인 연기'라고 하는 것은 인물이 수동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인물의 처지를 결정짓는다는 이야기다. 회사 대표로 나왔거나 안기부 요원 중 한 사람으로 나온 두 사람은 자기 몫을 충분히 잘 해냈다. 극 중 인물들이 '이래서 이렇게 행동했다'를 설명하기 위해 굉장히 중요했던 두 사람은 눈빛과 표정으로도 그 개연성을 성립시킨다. 아. 세 신스틸러 중 나머지 한 배우가 있다. 이 배우에 대해서는 어떤 역을 맡았는지 서술하지 않겠다. 이 배우는 극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등장하자마자 천재성을 선보이며 극의 휘발유를 부었다. 이 인물이 이야기 전개에서 핵심이 되는 두 번째 발화점이라는 점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압도적인 긴장감을 조였다가 푸는 광기 어린 퍼포먼스를 소화해낸다. 금세 이 배우가 출연했던 다른 영화들이 떠오를 것이다.
아. 카메오들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디렉팅이 깔끔했다는 느낌이 든다. 전혜진 - 허성태 배우는 박평호 - 김정도의 곁에서 조수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두 배우는 성격이 극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전혜진 배우가 맡은 방주경 역은 비교적 덜 감정적이면서 여유가 있다. 이 여유가 있는 일처리 방식은 주요하게 작동한다. 또 허성태 배우가 맡은 장철성 역은 들끓어 오르는 인물이다. 이 인물의 내면 역시 극에서 중요하게 작동되며 이야기에 영향을 끼친다. 두 배우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두 남자에게 신뢰관계를 형성하며 안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두 배우가 워낙 경험이 많아서인지 이 두 과제를 잘 이해하고 수행한 듯 보인다. 둘 다 정말 좋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또 정우성 배우는 이 영화에서 경력의 최고점을 찍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난 이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이를 보여주듯 불안에 떠는 내면과 많은 임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드러냈다. 김정도와 박평호에게 중요했던 것은 거리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두 사람 사이에도 그게 느껴져야 하고 관객들 입장에서도 멀리 떨어져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글쓴이는 두 인물이 어떤 사람인가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정재 배우는 뭐 본인이 감독이니만큼 극의 배경이자 설정이 되는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또 고윤정 배우와 임성재 배우가 기억에 남는다. 임성재 배우가 어떤 역을 맡는지는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난 이 배우가 좀 잘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어딜 갖다 놔도 어울리는 비주얼과 연기를 보여준다. <언프레임드>에서 찌질한 느낌도 잘 살리고 이런 역도 잘하는 거 보면 연극 판에 오래 있던 분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다. 뭐 지금 제일 인기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도 나온다고 하던데 잘 되셨으면 좋겠다. 또 고윤정 배우는 이름만 몇 번 들어보고 실제로는 처음 본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배우 역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정재 감독이 좋은 원석을 잘 섭외했다.
알고 가면 더 효과적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그리고 실제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기도 했다. 일단 전두환 누군지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10.26 사태로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독재자다. 1980년 광주를 위시한 수많은 학생운동을 탄압하며 많은 분들을 희생시킨 인물이다.
다음 두, 세 번째는 '장영자 사기사건'과 '이웅평 대위 귀순 사건'이다. 일단 전자. 장영자 사기사건은 1980년대 초반 장영자라는 인물이 전직 안기부 요원이었던 이철희와 함께 도합 6천억 원가량의 어음사기를 벌인 일이다. 이 사건으로 관련된 5 공화국 인물이 많이 구속됐다. 이 사건이 극에서 어떤 사건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후자 이웅평 대위 귀순 사건 역시 극에서 나름 중요하다. 북한의 공군이었던 이웅평 대위가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제트기와 함께 남한으로 무작정 투항한 사건이 이 일이다. 1983년 이 일이 있고 나서 남북관계가 불안정했다고 전해진다. 다음은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다. 이근안은 5공화국 당시 유명했던 고문기술자다. 주로 심문하는 사람들에게 팔을 꺾거나 사람을 통닦처럼 묶어 고문을 하는 등 현재까지도 많은 영화에서 사용한 방식 몇 개를 이근안이 고안해냈다고도 한다. 이 이근안이 암시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다음은 조총련이다. 간단하다. 북한의 사회혁명 단체다.
또 가장 중요한 아웅 산 묘소 테러사건이다. 전두환 정권은 1983년 아시아를 순방 중이었다. 이때 미얀마를 방문해 이 나라의 민주투사들에게 참배하는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당시 북한군은 폭탄을 설치해 아웅 산 묘소에 있던 13명의 정부 관료를 사살했다. 전두환을 목표로 한 테러였지만 주요 행정부 관료가 사망했기 때문에 5공이 무너지진 않았지만 엄청난 치명타를 가한 셈이 됐다. 전두환은 묘소에 도착하기 이전에 차가 고장 나서 수리하는 바람에 도착이 지연됐다. 이 일은 전 대통령에게 행운으로 돌아왔다. 이 덕에 전두환 대통령은 생존해서 1987년까지 정권을 이끌게 된다.
여름 극장가의 승자가 될 듯
한 3주 지났다. <외계+인> 1부로 시작한 여름 빅 4 레이스가 <헌트>를 끝으로 마무리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이 <헌트>가 최종 승리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2부를 위한 준비물이었던 <외계+인>, 깔끔하지는 않았던 <한산>,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비상선언>은 뭔가 아쉬운 지점이 있다. 그런데 이 <헌트>는 강강강의 템포가 강점으로 발휘돼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스릴러 장르영화로서 훌륭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뭔가 오그라드는 느낌도 없고 위험한 지점도 없으며 결과를 이미 알고 있지도 않는 좋은 영화다. 한국의 현대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가장 티켓값을 할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 중 높은 순위권에 안착할 작품이 나타났다.
총성으로 되묻다
우리나라는 참 상처가 많은 역사를 갖고 있다. 전쟁 이후 70여 년 동안 독재자 세 명이 등장한 탓에 많은 분의 희생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영화화될 소재가 많아졌다. 그리고 이 <헌트>도 이를 반영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헌트>는 사실 관객에게 질문하는 영화다. '동림'이 누구라고 생각해? 와한 문장이 더 있다. 후반부에 주요 등장인물의 입에서 나오기도 하고, 여러분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짜인 장르적 특색이 메시지와도 이어지는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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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태풍이 우리를 해방케 하리라•마고 내시의 <무소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마고 내시: 호주 사회의 도전적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언더커런츠: 힘에 관한 명상>(이하 <언더커런츠>)와 <무소유>다. 최근작 <언더커런츠>는 단편으로, 1994년작이자 장편 극영화인 <무소유>의 이미지들이 일부 들어갔다. 필자는 작년 6개월 동안 호주 시드니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그때 느낀 것은 호주의 문화라는 것이 사실 상 없다는 것이다. 호주는 여기저기서 온 이민자들이 세운 국가다. 필자가 다니던 광고홍보회사에도 정통 순혈 호주인이라는 것은 있는 개념 같지도 않았고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그리스계, 필리핀계, 한국계 외에도 수많은 다양한 계통의 사람들이 섞여 사는 곳이 바로 호주다.
이러한 다양성은 호주의 정체성이지만, 뭔가 고유한 것이 없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호주의 전통 음식이라는 것은 정체가 불분명하다. 모두가 입을 모아 하나로 외칠 수 있는 것이 없다. 호주는 이러한 자국 문화의 한계를 선주민들에게서 찾아오려고 하는 것 같다. 마침 필자의 회사 근처에는 ‘Gadigal’이라는 이름의 지하철 역을 짓고 있었다. Gadigal은 부족의 이름으로, 호주 선주민들 중 하나다. (방금 완공된 Gadigal 역의 모습을 찾아보고 애틋한 감상에 잠기고 말았다…) 현재 호주 정부는 이런 식으로 선주민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기리려 하고 있다. 필자가 호주의 예술에 대해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도 호주 선주민들의 페이즐리 무늬를 닮은 전통 문양이다.
<무소유>는 테사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집으로 귀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상영 후 게스트 시네필로 초대된 호주의 영화평론가 에이드리언 마틴은 이러한 귀향(Return) 모티프가 호주 예술에서 자주 반복된다고 말한다. 호주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호주인들이 자신의 국가를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이는가? 호주는 문화적 황무지인가, 혹은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인가? 마고 내시의 영화에서도 이런 질문들이 언급된다.
테사는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 지붕이 있고 울타리 형식의 대문이 있는 호주에서 흔한 주택이다. 테사는 원래 언니 케이트의 집에 묵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세 아이를 키우는 케이트는 돈 때문에 집을 팔려고 하고, 테사는 그 집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않느냐며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집을 두 자매 모두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찾으려고 그 집으로 향한다. 영화는 처음에는 두 자매의 갈등으로 시작하여 테사가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어두운 과거로 빠져든다.
테사는 브라를 하거나 하지 않은 채로, 멍하니 집안을 거닌다. 이 상태는 해방감과 불안함을 동시에 준다. 그녀의 옷은 붉거나 살구색 계통으로, 가슴이 깊이 파여있다. 머리는 검은색 단발머리다. 떡 벌어진 어깨로 스크린을 유유히 걸어다니는 테사의 육체를 보며 이 영화가 정말로 여성적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적인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에이드리언 마틴은 여성적 미학(female aesthetic), 어슐러 르 귄의 캐리어백 이론을 언급한다. (어슐러 K. 르 귄은 허구를 운반하는 가방 이론(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 1986)에서 찌르고 때리고 자르는 창의 문명과 채집하고 보존하고 나누어주는 가방의 문명이 분기되는 아주 오래 전을 되돌아 본다. 창이 영웅을, 주인공을 필요로 하고 정복, 개척, 승리와 패배, 구원과 희생의 서사를 구축한다면 가방은 작고 다양한 이름 없는 것들이 뒤죽박죽 순서를 가지지 않은, 구체적인 삶의 진실을 닮은 이야기를 위한 공간이다. 출처: http://leehanbum.com/writing/the-man-who-carried-the-bag)
가부장적 픽션은 폭력이나 사냥의 스릴에 관한 것이다. 대조하여, 여성적 픽션은 모임(gathering), 돌봄(caring), 세상의 파편들을 모으고 기억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테사는 청소년 시절 선주민 남자아이와 사랑에 빠졌고,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 전쟁 트라우마로 정신 질환을 앓던 아버지가 남자아이를 총으로 쏘았고 테사는 그 길로 집을 나간다. 아버지가 널 어떻게 할 지 모르니 절대 돌아오지 말라는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면서. 그리고 바로 여기서, 역사적으로 수없이 반복되었던 그 장면이 펼쳐진다. 딸은, 엄마는 도대체 아빠를 어떻게 견디면서 사느냐고 질문하고 어머니는 대답하지 못한다. 딸은 떠난다.
필자가 <무소유>를 보며 한 양동이가 찰 만큼 눈물을 흘렸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마고 내시가 여성이라면 연결될 수 있는 감정적 빛의 한 줄기를 영화 속에 흘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부장제의 억압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여성이 아니더라도 여성이 될 수 있다.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선주민 여자아이, 밀리와 함께 테사는 집에 들어온다. 밀리와는 풀밭과 집안에서 어느 정도 유대감을 쌓은 사이이다. 집안에는 그토록 마주치기를 두려워 했던 아버지가 있다. 그는 요양원에 있다가 돌아왔다. 세 사람은 테사가 준비한 토마토 스파게티로 저녁을 먹고 밀리가 궁금해 하는 학교 숙제에 관하여 아버지가 몇 마디 말을 해 준다. 그때, 태풍이 들이닥친다. 폭우에 센 바람까지 동반한 태풍이다. 아버지는 지하로 들어가자며 안내하고, 세 사람은 바닥의 작은 네모난 문을 열어 지하로 들어간다. 테사는 불을 피운다. 지하 토굴에서 부녀는 몇 십 년 간 밀렸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격앙될 때마다 밀리가 움찔거린다. 구조대가 찾아오고, 테사의 품에 안긴 밀리는, 선주민 가족들이 집을 사고 싶어한다는 테사의 오해에 대해 해명한다. “그건 그냥 농담이었어요. 왜 백인들은 우리가 모두 가지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죠?”
그 태풍은 긴장감과 그 간의 세월을 씻어내리는 것이었다. <무소유>의 태풍은 여지껏 내가 봤던 어떤 태풍보다 아름답고, 개운하고, 강렬하며, 시원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오랜 세월에 걸친 것들, 선주민의 차별적 경험과 백인과의 관계, 토지 소유권 문제, 테사와 아버지의 관계, 어머니의 집에 관한 문제가 이 태풍으로 인해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인 방식으로 한 데 모아졌다. 그것들은 처음부터 떨어진 것이 아니었으니까.
에이드리언 마틴은 그간 매우 억압되었던 호주 역사의 기억이 이 영화를 통해 형체를 갖는다고 말한다. 백인들은 호주에 깃발을 꽂고 이 땅은 아무나 차지해도 된다는 전제로 행동했다. 이는 식민주의의 근간이 되는 법적 폭력이다.
영화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무소유>를 보기 전날, 전주톡톡에서 정지혜 평론가가 던진 질문이다. 실시간 라이브가 가능해진 오늘날, 영화는 지나간 시간을 찍을 수밖에 없는데 뭣하러 영화를 찍어야 하냐는 거였다. 정지혜는 우리는 이미지를 반복하여 경유해야만 사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를 어떻게 불러 올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이다. 마고 내시는 영화를 만듦으로써 억압되어있던 과거를 불러왔다. 그 과거가 너무나 깊은 저장고에 수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져오는 효과가 더욱 컸고, 필자는 눈물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결국에는 필자가 이 영화를 보고 왜 울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렇게 강렬한 감정에 휩싸였을 때는 이유를 찾고 싶다. 어쩌면 필자는 테사처럼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따스한 햇살과 나무로 된 집안 벽과 거세게 부는 바람을 보았을 때, 이미 테사와 한 몸이 된 것인지도. 그래서 이 영화의 생각을 멈출 수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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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2025)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그 자연
Chapter 2 인간탐구
00:00 홍상수 신작
01:05 그자연이란
06:02 인간탐구
11:17 별점 및 한 줄 평
11:36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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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화이트 온 화이트> 메인 예고편
‘한 장의 잔혹한 아름다움으로 덧칠하다’
20세기 초반, 중년의 사진작가 ‘페드로’는
정체 모를 지주 ‘포터’의 결혼식 사진을 찍기 위해
설원으로 둘러싸인 칠레의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하지만 소녀 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어린 신부만이 나타나고
‘페드로’는 그녀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집착하다
결국 ‘포터’의 부하들에게 끌려가고 마는데…
세상 끝에 선 사진작가, 잔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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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잘리카투> 티저 예고편
폭주하는 물소, 광기 어린 인간들, 진정 누가 짐승인가?
푸줏간(도축장)에서 도망친 물소가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닌다. 마을 남자들은 폭주하는 물소를 잡기 위해 나서고 이웃 마을 남자들까지 몰려들자 한바탕 대소동이 벌어진다. 평화롭던 마을은 물소를 제압하려는 남자들로 인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버리고, 인간과 짐승의 구분이 사라져 버린 물소 사냥은 점차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광기로 변해간다.
※ 잘리카투(또는 살리카투) JALLIKATTU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의 수확축제인 퐁갈에서 진행하는 전통있는 집단 경기다. 황소를 남자들 무리 속에 풀어놓으면 참가자들은 황소의 등에 올라타서 최대한 오래 버티거나 소를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는데, 이 과정에서 살벌한 장관이 펼쳐진다. 리조 조세 펠리세리 감독의 <잘리카투>는 잘리카투 경기를 묘사하는 영화는 아니다. 확실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