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14 15:26:45
일어나... 회사 가야지...
지친 직장인을 위한 오피스물 6선

거친 세상에 뛰어든 건 나지만 힘들다...
지친 직장인들을 위해 웃고 우는 오피스물을 준비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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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의 정서로 계급 격차를 깨는 승리호 이야기
우리가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자연환경일 것이다. 숨 쉴 수 있는 공기와 산, 강, 바다와 같은 자연환경은 우리가 굳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그것이 자본주의 논리와 만나면 그것을 모두가 누리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과거에 마시는 물이 판매된 것처럼, 공기를 판다거나 산, 강, 바다에 가는 것도 비용을 내고 가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이미 진행 중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자연환경과 가까운 집이나 땅은 그 가격이 그만큼 비싸져 아무나 가질 수 없다.
그렇게 환경적인 것조차 구입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면, 그것은 더욱 계급 격차가 벌어지는 사회일 것이다. 부가 많은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좋은 환경을 얻지 못한다. 결국 그것은 개개인의 건강문제에도 영향을 주게 되어 계급별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코로나가 유행하고 있는 현시점에도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국가들은 많은 백신을 사들여 공급하지만 그런 여유가 없는 국가들은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연적인 환경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그저 방치될 뿐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자신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환경으로 인한 빈부격차를 바탕에 깔고 보여주는 국산 SF <승리호>
영화 <승리호>는 그런 환경으로부터 유발된 빈부격차를 바탕에 깔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영화 속 지구는 환경적으로 먼지에 쌓인 곳이 되었다. 자금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두꺼운 호흡기기를 필수적으로 착용하고 지구에 살아가고 여건이 되는 일부는 좋은 환경을 갖춘 우주의 이주 기지에서 살고 있다. 그 이주 기지는 UTS라는 기업이 개발한 것으로 이 기업은 궁극적으로 화성에 좋은 자연환경이 있는 이주 기지를 만드는 것을 추진 중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이주 기지는 이주민과 비 이주민의 계급을 명확히 가르게 되고 그 중간 어딘가에 어디에도 끼지 못한 층들을 등장시킨다. 우주선에서 생활하는 우주 청소부라는 중간 계급이 영화 속에 나온다. 말이 중간 계급이지 이들은 지구인도 아니고 이주민도 아닌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태호(송중기), 장선장(김태리), 타이거 박(진선규), 업동이(유해진)가 같이 생활하고 일하는 승리호는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는 우주선이다. 그들은 승리호를 이용해 지구 주변의 우주 쓰레기를 팔아 생활을 이어나간다. 로봇인 업동이를 제외한 세 사람은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서 모두 과거에 어느 정도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던 인물들이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자신의 위치에서 청소부로 추락하면서 지구와 이주 도시 사이에 머무르며 자신들의 다음 계획으로 나아갈 기회를 찾는다. 그들은 지구로 돌아가기보다 이주 도시 근처에 남아 그곳에서 쓰레기를 치우며 자금을 모으며 생활한다. 어찌 보면 그들 자신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하겠지만 그들은 지구에서도, 이주 도시에서도 살 공간이 없어진 인물 들인 셈이다.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태호다. 태호는 전직 UTS 기동대의 장교였고 아마도 등장인물 중 가장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었던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 순간의 선택으로 UTS 기동대 자리를 잃고 자신이 키우던 딸아이와 노숙인처럼 생활한다. 갑자기 사회에서의 위치가 추락하면 꽤 긴 시간 동안 마음을 다잡기 어렵다. 실제로 태호는 그 방황기를 꽤 오랜 시간 동안 보냈고, 그 사이에 자신의 딸을 잃는다. 그가 우주선에서 우주 쓰레기를 치우며 돈을 모으는 것은 그가 우주에서 잃은 딸의 시체를 찾기 위함이다. 어쩌면 잃은 딸의 시신을 찾으려 노력하는 그 행위 자체가 태호의 삶에서 남은 유일한 목적이자 살게 하는 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태호의 머릿속에서 계급이나 이주민, UTS의 사업은 관심사가 아니다. 사실 태호뿐 아니라 장선장이나 타이거 박도 개인적인 목적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는 편이다. 즉, 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들이지만, 꽃님이(박예린)를 만나게 되면서 이슈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간다.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의도하지 않게 이들을 사회문제의 중심으로 끌어들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런 문제들에 관심이 없고, 아마도 계속 그들의 그런 의식은 유지될 것이다. 그들은 의도하지 않게 영웅의 길을 들어오게 되어 평등한 기회가 있는 사회에 기여하게 된 것인데, 특별한 능력을 가진 꽃님이를 보호함으로써 자연을 살리는 길을 인류에게 선사하게 된다. 즉, 계급 구분을 무시한 주인공들이 환경오염 때문에 임의로 나뉘어버린 이주와 비 이주민의 구분을 없앰으로써 어쨌든 그들은 다시 인류가 평등을 추구하는 세상으로 갈 기회를 준 것이다.
그들에게 영향을 준 꽃님이는 사실 권력에게 자신의 능력을 착취당하던 존재다. 아주 순수한 아이인 그는 그 자신이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빠를 위해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한 선한 의도라는 것 때문에 UTS를 도왔을 가능성이 높다. UTS라는 기업이 한 아이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사업적으로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선함은 승리호 선원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에게 아이의 아픔과 외로움을 공감하게 만든다. 결국 그런 공감의 힘이 인류의 희망이 되고, 온 지구에 그 선함을 전달함으로서 다시 생명의 씨앗을 트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전혀 계급적이지 않은 존재들이 착취당하던 피해자에게 동감하고, 그로 인한 반발력이 비평등의 구조를 깬다는데 있다. 어쩌면 인류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온갖 계급과 계층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주민과 비 이주민의 계급을 깨뜨리는 승리호
영화에 등장하는 UTS의 운영자 설리반(리차드 아미티지)은 전형적인 기업 중심적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다. 임의로 만든 자연환경을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궁극적으로는 화성 이주 프로젝트로 전 인류의 생명줄을 쥐고 자신의 의지대로 조정하려고 한다. 어찌 보면 그는 지구의 재앙을 이용해 일부러 사회 구조적 계급을 만들어낸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만들어낸 그 계급 구조에 속하지 않는 승리호의 인물들과 그가 마지막에 대립하게 되는 건 이야기의 흐름상 필연적일 것이다. 결국 <승리호>는 세상을 구분하려는 측과 그 구분을 부수려는 측의 대립이 끝까지 이어진다.
영화 <승리호>는 이렇게 잘 만들어진 구조 안에 주인공들이 우연히 흘러가게 되는 일들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높은 우주에서 이주 도시를 만들었다는 것에서 비슷한 콘셉트의 영화 <엘리시움>이나 <알리타: 배틀엔젤>이 떠오르기도 한다. 결국 양분화된 계급적 구조 사이에 우주 청소부라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들을 넣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익숙하지만 조금은 다른 세계를 만들어냈다. 완전히 새롭게 창조한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 영화들과 겹치는 설정들로 기시감은 들지만 오락영화로서 우주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은 어색함이 없다. 또한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매력은 갖추고 있다.
사실 태호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장선장이나 타이거 박의 과거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아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왜 결국 따뜻한 정서를 택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것인지를 영화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다른 인물들 이야기까지 모두 하게 되면 영화가 산만해질 수 있기 때문에 태호에게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해 나가는 것 같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야기의 작은 구멍들을 꽃님이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으로 간단히 대처하고 있다.
또한 영화의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설리반은 너무 전형적인 형태의 악당이어서 클라이맥스의 전투에서도 크게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 않는다. 그의 의도는 명확하지만 인간미가 없어 그저 로봇처럼 보인다. 강력한 악당으로서 영화 속에서 기능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그에 따라오는 특별한 매력은 없어 아쉽다.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악당에 대한 기억은 별로 남지 않고 다른 캐릭터들만 기억에 남는다.
조성희 감독은 전작 <늑대소녀> 나 <탐정 홍길동>에서 이미 독특한 설정의 세계관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리고 그의 영화 안에는 늘 순수한 아이들이 등장해 그 특유의 세계 안에서 희망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승리호>에는 우주로 세계관을 확대시켰고, 순수한 아이 역시 인류의 희망으로 등장한다. 그의 영화는 늘 다음 편이 궁금해지는 결말을 맺는데, 이번 <승리호>도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다. 특히나 영화 속에 담긴 계급격차나 그것에 속하지 않는 승리호 멤버들의 구도는 꽤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고 그 격차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2시간 반의 짧은 러닝타임에는 다 담지 못한 장선장의 이야기나, 타이거 박의 이야기 등을 볼 수 있게 영화나 드라마가 이어진다면 더 많은 관심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영화의 여러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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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 리뷰>* 본 콘텐츠는 Rabbitgumi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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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궐의 암투를 목격한 맹인 침술사
그냥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정치는 조금은 멀게 느껴지는 일이다. 일단 자신과 가족의 안위와 배고픔을 먼저 해결해야 하고 여러 가지 상황이 조금 안정되었을 때 조금씩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누가 나라를 이끌고 있는지, 많은 정치인들이 그 안에서 어떤 암투를 벌이는지에 대해 한 번 눈이 트이면 좀 더 디테일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정치는 먼 이야기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근대화가 되기 전, 조선시대 같은 과거의 사회에서도 정치는 계속 이어졌다. 왕이라는 군주가 나라의 대표가 되고 그 밑에 신하들이 여러 의견을 내면서 앞으로 나아갈 결정을 해 나아갔다. 여기에 왕의 가족들까지 그 정치에 참여하거나 이용되면서 왕의 가족들은 본인의사와 상관없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양한 왕가의 사람들 주변에는 여러 가지 수발을 드는 신하들이 있었다 요리를 하고, 건강을 챙기고, 잡일을 하는 이들은 궁궐 안에서 다양한 일들을 보고 듣는다. 그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일반 백성에 비해서는 나라가 돌아가는 상황을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우연히 궁궐에 들어간 맹인 침술사의 이야기
영화 <올빼미>는 어느 순간 궁궐에 들어갈 기회를 잡은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의 이야기를 담는 영화다. 경수는 앞을 못 보는 맹인이지만 좋은 침술 능력으로 아픈 동생의 약값을 벌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는 어의가 되어 궁궐에 들어가면 동생의 약을 계속 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으로 생각하고 궁궐에 들어갈 기회를 엿본다. 그러다 궁궐의 어의 이형익(최무성)의 눈에 띄어 궁궐에서 일하게 된다. 그 안에서 좋은 침술 덕에 왕가 사람들을 치료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김성철)와도 만나게 된다.
영화는 경수와 소현세자가 친해지는 계기를 보여준 이후, 소현세자가 독살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적 긴장을 높인다. 사실 경수는 밝은 곳에선 거의 볼 수 없지만 어두운 밤에는 희미하게나마 앞을 볼 수 있다. 그는 어두운 밤 소현세자를 누군가 독살하는 모습을 본 목격자다. 영화는 이렇게 그가 앞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는 특성을 잘 활용해 어의 이형익을 비롯한 왕실 사람들과 대면할 때 손에 땀을 쥐고 만든다.
이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또 다른 인물은 바로 인조(유해진)이다. 인조는 아들 소현세자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는 모습보다는 불안한 모습을 더 보인다. 그가 가진 불안감은 그의 몸을 조금씩 마비시키며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아버지로서 자신의 아들조차 청나라에 포로로 보내야 했다는 불안함과 자신도 희생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그가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 인조는 언뜻 나쁜 결정을 하지는 않을 듯 보이지만 그의 진짜 결정과 진짜 모습은 영화 후반부에 완전히 드러난다.
짜임새 있게 쌓아가는 영화적 긴장감
영화 속에서 침술사 경수는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왕실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암투를 제대로 목격한다. 그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어의가 되려고 했던 경수는 왕실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치적인 일들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치적 운명 속에서 살아가는 소현세자를 보고 소현세자의 아들의 고통까지 목격한 그는 스스로 정치적인 변화를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경수라는 인물과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부분은 상상에 불과하지만 평민이 우연히 왕실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정치적인 상황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꽤 설득력이 있다. 영화의 후반부와 마지막은 너무 긍정적이고 편하게 결말을 맺고 있지만 주인공 경수가 서서히 암투 속으로 빨려 들어가 스스로 주도성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맹인이지만 밤에는 어느 정도 볼 수 있다는 설정을 잘 활용해 극적인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인조 역할을 맡은 유해진은 굉장히 불안하고 유약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아주 무서운 눈빛으로 변해 정치적 암투에서 이기려는 모습도 보여준다. 아버지로서, 한 인간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얼굴과 두려워서 피하고 싶어지는 얼굴을 번갈아가며 보여주게 되는데, 그 연기가 어색하지 않고 무척 실감 나게 표현되었다. 맹인 경수의 연기도 무척 좋다. 보일 때와 안 보일 때를 잘 구분해서 연기하고 있으며 특히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보일 때, 남들 앞에서 안 보이는 것처럼 연기하는 모습이 무척 훌륭하다.
영화의 서사는 평민이 우연히 왕실에 들어가 정치적 상황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 경수가 그 암투의 한복판으로 빠져들어가는 모습이 무척 긴장감 있게 보인다.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훌륭하게 활용하며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그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결말이 아쉽지만 영화가 앞부분에 만들어놓은 좋은 이야기는 그 단점을 만회하기에 충분하다. 영화의 좋은 완성도는 이번 영화가 첫 연출작인 안태진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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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아물지 않는 상처 속에서 푸른 하늘을 꿈꾸다
아물지 않는 상처 속에서 푸른 하늘을 꿈꾸다
새로운 물결 부문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 리뷰감독] 이리나 칠리크
시놉시스] 싱글 맘 안나는 아이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돈바스의 전쟁 지역 최전방에 살고 있다. 영화에 대한 사랑이 깊은 안나 가족은 전쟁 속 자신들의 삶을 영화로 찍어나간다. 그들에게 있어 트라우마를 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은 인간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다.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특별 군사작전 개시 명령 선포와 함께 다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그동안 끊임없이 국지전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전쟁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국경에 맞닿아 있기에 지난 8년간 단 한번도 총성이 안 들린 날이 없었다던 돈바스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각자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것
영화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는 전쟁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꿈을 찾아 노력하는 안나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첫째딸은 영화에 대한 자신의 꿈을 쫓아 영화학교에 진학하는 데 성공한다. 엄마와 가족은 그 꿈을 응원하고, 함께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는 것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최전선에 있는 돈바스 지역이지만 어느 누구도 삶을 비관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쏟아지는 포탄과 총탄 속에서도 그들을 꿋꿋이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어른들은 일을 한다. 행복한 크리스마스와 생일에는 케익을 만들고 파이를 구우면서 파티를 연다. 다만 그 모든 소박한 일상 속에서 포탄소리가 ‘은은하게’ 퍼져 나갈 뿐이다.
꿋꿋하게 돈바스 지역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을 보면서, 과연 나라면 이들처럼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고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나 위험한 곳을 떠나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 속에서도 일상을 담담하게 살아가고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할 에너지가 남아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다음날의 생명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꿈을 쫓고, 노력한다는 것이 어찌보면 굉장히 허무한 일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바스 주민들은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었고, 영화를 보며 그들에게 무한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더불어 영화의 제목처럼 오렌지처럼 아름다운 노을과 포탄이 떨어지지 않는 푸른 하늘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평화의 돈바스가 되길 바랄 뿐이다.
무뎌질 수 없고 아물지 않는 상처돈바스 지역에서 살아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밤이고 낮이고 울려퍼지는 포탄과 총탄 속에서 긴장을 멈출 수 있는 날이 없다. 해맑게 아이들이 축구를 하던 도중에도 갑자기 포탄이 떨어지고, 잠을 자고 있던 한밤중에도 마당 앞으로 총탄이 날라와 지하실로 숨는 것이 일상이다. 이렇게 전쟁의 한가운데에 놓여진지 어언 8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총알이 빗발치고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만큼은 전혀 무뎌질 수 없다. 무너진 집을 다시 복구하고 일상을 살아보려 하지만 그 자리에 다시 총탄이 박히고 포탄이 떨어지면서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얹는 과정이 돈바스 지역에는 없는 듯 했다.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계속 상처가 생기면서 그 고통은 계속되고 있었다.
영화 속 6~8살 남짓 된 아이들은 소리를 통해 이 포탄이 어디에 떨어질 것인지 예측하고 있었다. 축구공을 발로 뻥 차는 소리면 다른 마을로 떨어지는 것이고, 직사각형처럼 날카롭고 단단한 소리가 나면 우리 마을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직감적으로 소리를 구분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게다가 안나의 가족이 어린아이들을 모아 놓고 주변에서 이상한 물건이 발견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선생님이 설명하는 씬을 찍고 있었는데, 선생님 역할이던 둘째딸이 대사를 까먹었지만 실제 아이들은 ‘이상한 물체를 발견하면 즉시 어른들에게 알리고 절대 만져서는 안된다. 그 곳을 바로 벗어나야 한다’라고 줄줄 읊을 정도 였다. 이 장면에서 둘째딸이 탄식을 하는데, 그 탄식이 자신이 대사를 틀려서 였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기계처럼 이를 자연스럽게 읊을 정도로 이 어린아이들에게 전쟁이라는 상황이 너무나도 밀접되어 있다는 사실에 탄식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안나와 그의 가족들은 언젠가는 돈바스에 평화가 찾아올 날을 기다리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큐로 담는다. 그렇게 만든 자신들의 첫 작품을 돈바스의 주민들에게 공개를 하는데, 모든 이들이 눈물을 보이면서 이 영화는 마무리된다. 안나와 그의 가족들이 어떤 작품을 만들어냈는지 우리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들에게 이 전쟁이 현재 진행형이며, 이 상황이 얼마나 큰 슬픔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더불어 그 고통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돈바스 주민들을 보면서 무고한 민간인들은 전쟁 속에서 언제나 피해를 입지만 다시 도시 일으키고, 결국 나라를 지키는 장본인임을 일깨워 준 작품이었다.
전쟁 속에서 민간인들이 얼마나 공허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표현하고 있었던 영화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 전쟁이 어떻게 한 도시의 다채로운 색을 죽이고 회색도시로 남기는지 현실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시간표
2022-08-27 10:00
메가박스 상업월드컵경기장 8관
2082022-08-28 20:30
메가박스 상업월드컵경기장 9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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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가 나타났다!
이 글은 영화 [퇴마록], [검은 수녀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라떼는 학생들이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일이 흔치 않았다. 덕분에(?) 지금처럼 "즐길거리"는 많지 않아서 독서 정도가 만인의 취미 정도로 여겨졌다. 만인의 취미는 또 다른 이름의 교과서가 되어 유명 대학교 추천 어쩌고 100선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가슴속에 짐짝처럼 올려져 있었기에. 장르 소설인 퇴마록의 인기와 재미는 마치 금서를 펼쳐보는 것과 같은 짜릿함을 학생들에게 선사했었다.
나라는 학생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삼촌 책장에 고이 꽂혀 있는 책을 한 권씩 읽어내려가며 부모님은 모르는 세계에서 유영하는 바람에 모든 중간, 기말고사를 망하고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어른이 되어버렸지(?).
사진 출처:다음 영화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서 모든 책의 내용이 기억난다고 하지는 못하지만. 그 책을 읽어 내려갈 때의 비밀스러움과 전율만큼은 아직까지도 기억해 낼 수 있을 정도로 이 책의 의미는 학창 시절의 나에겐 대단했다.
그런 대단한 원작을 바탕으로 실사도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개봉까지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의 반응은 당연하게도 물음표였다. 과연 그 특유의 어둡고 먼지 가득한 이야기를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많았지만. 영화가 초반부터 날려댄 일침은 이 오만하고 늙은(?) 관객이 정신을 차리다 못해 무릎을 꿇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가 꽤 괜찮은 오컬트 영화임을 설명하려면. 안타깝게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검은 수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영화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한 지점을 [퇴마록]은 꽤 적절한 수준으로 보수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각 인물들의 플래시백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지만 과하거나 지루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았다. 덕분에 이 퇴마 원정대가 모이게 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명쾌하면서도 충분했다. 충분하다는 말은, 자세하게 설명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적당하다는 말로 통용해도 무리가 없다.
덕분에 이 편에서 궁금증을 느낄만한 장면들은 후속 편을 향한 자연스러운 떡밥으로 이어지는데. 아주 묘한 점은 마치 수많은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다음 편을 위한 징검다리로 본편을 소비해 버리지는 않기에, 강호를 구하지 않으면 정말로 밀교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긴장감이 극 중 내내 유지된다.
그뿐인가.
단 하나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선(善)을 위한 종교 대통합(?)은 이렇게 이루는 것이다. 를 몸소 보여준 탓에. 그 어떤 이질감이나 모독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적절하면서도 합당한 설명이 이뤄졌기 때문에 오는 안정감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게다가 이 영화는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이야기들은 거의 다 들려줬다. 휘몰아치는 1.5시간 정도의 러닝 타임 속에서 뛰고 구른 덕분에 힘은 들고 지치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개운하게 극장을 나설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속편이 기대되는 작품이라니. 게다가 그 속편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영화라니. 편견 아닌 편견을 깨준 덕에 즐겁게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영화를 만나 행복했다.
[이 글의 TMI]
1. 연휴 기다리며 참는다.
2. 빵을 끊어야 하는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3. 겨울 워커도 세탁 맡기면 되는 건가?
#퇴마록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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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녀(Her)> : 낯선듯 낯설지 않는 그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발표한 2021년 대한민국 국민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93.4%1)로 먼 미래 속 이야기 같았던 인공지능 친구들은 어느새 우리의 손안에 들어오고 말았다. 하지만 SNS를 비롯한 커뮤니티에서는 인공지능의 황당한 대답들이 꾸준히 업로드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 인공지능은 통화나 문자와 같은 간단한 명령들만 잘 수행하는 수준이지만, 최근에는 랩이나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고 ‘해리포터’와 ’스타트렉‘ 등 유명한 작품들의 대사를 인용하는 등 사회적 맥락에 맞춰 대화할 수 있는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우리는 외로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간이 남을 때면 인공지능 친구들과 심심함을 달래는 것이 더는 어색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랑을 그린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그녀(2013)>>는 곧 개봉 10주년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지금까지도 활발히 언급되고 있다. 영화<<그녀(2013)>>는 개봉 당시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이라는 색다른 주제로 관객들에게 생각해볼 계기를 제공하며 많은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2022년, 확인해본 영화<<그녀(2013)>>는 그리 색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과연 인공지능이 전과 달리 우리 삶에 더욱 깊숙이 들어온 탓일까? 무엇이 영화<<그녀(2013)>>를 낯설지 않게 만드는 것일까?
테오도르가 ‘Operating System(이하 O.S)’을 구매하고 처음 만난 인공지능은 굵은 목소리로 O.S의 목소리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테오도르가 처음 만난 인공지능은 기계 특유의 인위적 목소리이지만 테오도르가 목소리를 여성으로 선택하자마자 등장하는 것은 매력적인 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이다. 사만다는 영화의 O.S 중 유일하게 자연스러운 허스키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제외한 다른 인공지능에 명령조로 말하며 거기에 답하는 인공지능 또한 어색하고 굵은 목소리의 인공지능만이 존재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절대 손으로 조작하지 않는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인공지능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청유형으로 말하며 순간순간 명령조가 튀어나올 때는 사만다가 농담으로 서운함을 비추기도 한다. 마치 어떻게 자신을 기계처럼 대하냐는 식으로 말이다. 인간 또한 손으로 입력해 조작할 수 없고 언어, 특히 음성을 통해 소통해야지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인간으로서 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만나자마자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탐구한다. 마치 0.2초 만에 책 18권을 읽는 인공지능이라도 방대한 정보만으로는 인간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사만다가 어떻게 성장했고 프로그래밍 됐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는 사만다가 담긴 O.S를 테오도르가 구매하는 장면을 생략하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사만다를 만든 개발자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사만다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는 후반부에도 테오도르는 개발 회사에 연락하지 않고 그를 찾으러 집으로 향한다. (테오도르가 퇴근하는 모습이 담긴 초반부와 장면구성이 같다는 점에서 집으로 달려가는 듯 보인다) 모든 O.S들이 인간을 떠나고 나서도 테오도르를 비롯한 고객들이 개발 회사에 반기를 드는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은 사만다가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그가 어떠한 과정을 겪었는지 알 수 없다. 사만다가 이사벨라와 어떤 이메일을 주고받았는지, 철학자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어떻게 신체를 더는 갈망하지 않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사만다가 말하는 ‘데이터 처리기능 업데이트’의 원리와 ‘무한한 시간의 공간’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사만다 또한 말해주지 않는다. 그는 그저 테오도르에게 ‘설명할 수 없지만, 언젠가 그곳에 온다면 나를 찾아줘.’ 같은 감정적인 말로 테오도르를 달랠 뿐이다. 이처럼 영화는 사만다에게서 인공지능 같은 면모를 계속해서 지우고 있다. 여기에는 사만다를 인공지능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느끼게 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숨어있을 것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사만다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영화 내내 스칼렛 요한슨의 얼굴을 마주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뒤로하고 이 영화가 인공지능과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이 영화는 사만다를 인공지능으로 묘사한 것일까? 때문에,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달리 찰나이지만 테오도르와 인공지능의 사랑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이 영화가 여느 멜로 영화와 다름없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테오도르와 인공지능의 사랑이 아닌 테오도르와 한 여인의 사랑 영화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처럼 사만다가 인공지능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둘의 관계에만 집중한다면,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사만다에게 인간으로 사는 삶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테오도르를 능숙한 연상의 남성으로, 사만다를 미숙하고 어린 나이의 여성으로 치환할 수 있다. 그리고 미숙한 동시에 성적 매력을 발산한다는 점에서 사만다라는 캐릭터는 어딘가 익숙해 보인다. 바로 지금까지 많은 영화에 등장했던 ‘Born Sexy Yesterday’ 캐릭터이다. ‘Born Sexy Yesterday’ 캐릭터들은 성적 매력과 아름다운 외모 외에는 어린아이의 행동, 지능 및 태도2)를 가진 캐릭터로. ‘Born Sexy Yesterday’ 캐릭터는 뤽 배송 감독의<<제5원소(1997)>> 의 리루, 존 머스커 감독의<<인어공주(1989)>> 와 롭 마샬 감독의<<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2011)>>의 인어, 패티 젠킨스 감독의<<원더우먼(2017)>>의 다이애나 등 오랫동안 대중 영화 속에 등장했다. 사만다는 문뜩 보면 지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이 공식에서 벗어난 듯 보이지만 그 지능을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봤을 때는 무지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영화<<그녀(2013)>>는 ‘Born Sexy Yesterday’ 캐릭터가 지금까지 인간 또는 생명체였던 반면, 비인격체인 사만다로 변화했을 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성별을 선택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은 개발자들이다. 앞서 말한 듯이 그들의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사만다를 만들어냈고 성별에 대한 선택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창조자 즉 신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만다의 성별, 정확히 말하면 목소리를 결정한 것은 테오도르고 그에게 인간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는 것 또한 테오도르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연인이기 전에 부모로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는 더더욱 부적절해 보이며 둘의 관계는 롤리타 콤플렉스를 다룬, 또는 은밀하게 그것을 표방하고 있는 기존의 영화들과 큰 차이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관계의 시작은 곧 갈등의 시작이다. 라는 로맨스 영화의 공식처럼 테오도르와 사만다도 사랑에 빠지고 위기를 맞는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진짜인가 하는 회의감에 빠지게 되고 이 모습을 본 사만다는 인간의 신체를 갈망한다. 하지만 <<그녀(2013)>> 가 기존에 여성 관객을 대상으로 한 로맨스 영화와 다른 점은 둘이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 모두 성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샤론 맥과이어 감독의<<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 등 대부분의 로맨스 영화들은 두 남녀 주인공이 깊은 교감을 하고 나서야 성관계를 맺으며 영화는 이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지 않고 ‘암시’한다. 사만다에게 신체와 다름없는 음성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화면을 검게 처리해 성관계 장면을 노골적으로 연출한 <<그녀(2013)>> 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더 나아가 비교적 최근에 제작된 수잔 존슨 감독의 영화<<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2018)>>에서는 남자주인공과 섣부른 성적 행동이 여자 주인공에게 위협으로 다가온다. 이는 성적 요소가 로맨스 장르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주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그녀(2013)>>는 초반부의 성인 음성 채팅 장면과 사만다와의 성관계 장면의 구성을 동일시하여 비교한다. 이를 통해 성행위에 예술성을 부여하고 관계에서 성관계가 가진 의미를 부각하려 하지만 기존 로맨스 문법에 익숙한 여성 관객에게 공감을 얻긴 어렵다.
샤론 맥과이어 감독의<<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의 바람둥이 캐릭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의 육식 생물체, 주드 아패토우 감독의<<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2015)>>의 자유분방한 캐릭터처럼 각 캐릭터의 특성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서사에 갈등을 부여한다. 사만다의 특성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과 테오도르가 원할 때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영화 중반부에 사만다가 신체를 갈망하고 테오도르가 사만다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갈등을 유발하지만, 후자는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다. 사만다는 자신이 테오도르를 위한 존재라는 것에 불만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그녀(2013)>>에서는 사만다의 능력이 발달하면서 사만다는 자신의 일상을 가지고 테오도르는 외로움을 느끼며 둘의 관계는 서서히 무너진다. 이는 캐릭터가 가진 기존의 특성을 변화해 갈등을 해결하는 다른 로맨스 영화들과 다르다. 예를 들면, 길 정거 감독의<<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999)>>에서는 개구쟁이 캐릭터가 평범해지며 갈등이 해결되고, 마크 로렌스 감독의<<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2007)>>에서는 바람둥이 캐릭터가 주인공에게 정착하면서 갈등이 해결된다. 하지만 기존의 영화들과 달리 <<그녀(2013)>> 에서는 사만다가 자신의 특성을 변화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둘의 관계에는 큰 위기가 찾아온다. 가령 이사벨라를 섭외한 것과, ‘데이터처리 기술’을 업데이트한 것처럼 말이다. 사만다의 완전한 성장으로 볼 수 있는 ‘무한한 시간의 공간’으로의 이동은 아예 테오도르와의 관계를 종결시킨다. 이는 영화와 테오도르 모두 사만다가 수동적인 캐릭터로 남아있길 바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를 동정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카메라 속 테오도르는 무언가 답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관객들은 어안이 벙벙하기만 하다. 인공지능과의 사랑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인간 간의 소통을 중요시하려는 듯 보이는 감독의 의도와 달리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사만다를 인간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영화<<그녀(2013)>>의 미성숙한 여성이 성숙한 남성처럼 되고 싶어 가르침을 받는다는 설정은 뤽 배송 감독의<<레옹(1994)>>,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킬빌(2003)>>, 그리고 존 머스커 감독의<<인어공주(1989)>>를, 중년의 남성과 미성숙한 여성이 사랑을 나눈다는 점에서는 장 자크 아노 감독의<<연인(1992)>>과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로리타(1962)>>를, 이후 성장한 여성이 더 좋은 환경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떠나지 않길 바라는 남자주인공은 레오 까락스 감독의<<퐁네프의 연인들(1991)>>을, 미성숙하지만 호기심 넘치는 여성 캐릭터는 뤽 배송 감독의<<제5원소(1997)>> 등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영화 <<그녀(2013)>> 는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그려낸 기존 남성적 시선의 영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결국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 <<그녀(2013)>> 는 수많은 영화의 파편을 조립해 ‘인공지능과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관객들을 현혹한 가짜 혁명일 뿐이다. 2022년의 우리는 이런 영화에게 찬사를 보낸 2013년의 할리우드가 얼마나 구시대적 가치에 발목이 묶여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실감할 뿐이다.
1)이돈주, 「스마트폰 보유율 지속 확대…가구별 TV 보유율 증가세 전환」, 『EBN 산업경제』, 2022.1.20, <https://www.ebn.co.kr/news/view/1516826/?sc=Naver>, 2022.6.3
2) Rachael Sampson, 「Born Sexy Yesterday: The Perverse Male Fantasy Nobody Is Addressing」,『Film Inquiry』, 2019.4.1, <https://www.filminquiry.com/born-sexy-yesterday/>, 20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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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정서 학대
개봉 전 스크리너 시사회로 먼저 관람하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인생에서 꽤 중요한 존재다. 우리 모두는 갓 태어났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엄마에게 많은 도움을 받는다.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것을 알려준다. 다른 무엇보다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정서적 안정감은 굉장히 중요하다. 사랑이라고 하는 그 감정은 부족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애정결핍이 되고, 너무 넘치면 애정 과잉이 되어 한 사람의 성향을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우리가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대부분은 따뜻함과 포용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사랑은 넘치든 모자라든 큰 영향을 준다.
그럼 엄마에게 아이란 무엇일까. 사실 아직까지 현대사회에서도 엄마는 전통적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육아에 대한 부담을 아빠와 사회 제도가 약간은 보조해주지만 여전히 엄마에게 육아의 부담의 무게가 좀 더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렇게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커리어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아예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태어난 초기에 대부분의 엄마는 혼란스러워하고 고민도 많아진다. 그 상황에서 아이를 교육하고 또 사랑을 주게 되는데 여기서 각 엄마들의 사랑의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어떤 방식은 조금 과격할 것이고, 어떤 방식은 한없이 부드러울 것이다. 그 강약은 엄마도 아이도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그 사랑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엄마가 딸에게 주는 사랑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
영화 <비올레타>는 한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이야기 속에는 엄마인 한나(이자벨 위페르)가 딸인 비올레타(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에게 주는 사랑의 방식이 그려진다. 영화 초반 비올레타의 모습에서 엄마는 그저 그리운 존재다. 증조할머니와 같이 생활하고 있는 그는 주로 외부 활동을 하고 가끔씩 찾아오는 엄마를 볼 때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잠깐의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집 밖으로 나가는 엄마 한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비올레타의 모습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한나는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카메라로 누군가를 찍는 등 예술 쪽 관련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마로 인한 감정적 부재는 있지만 비올레타는 학교에서 크게 문제가 없는 아이였다. 증조할머니의 보살핌과 기도를 받으며 어느 정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주변에 특별히 나쁜 친구들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상황 그대로 자랐어도 어느 정도 일반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문제는 엄마 한나가 좀 더 적극적으로 비올레타를 찾아오기 시작한 이후 벌어진다. 동료 미술가인 에른스트(드니 라방)에게 카메라를 받은 이후 한나는 여러 모델을 이용해 자신의 사진작품들을 작업해나간다. 일반인 중에서 모델을 선택하는데, 그가 선택한 모델 중 한 명이 바로 비올레타다.
한나는 비올레타에게 보고 싶었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딸이 사진의 모델이 되는 길을 이끈다. 비올레타에게 그 사랑이라는 말은 한없이 달콤한,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엄마의 사랑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거기서부터 의심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딸을 찾아오지 않다가 갑자기 매일 찾아오는 엄마가 말하는 사랑이 얼마나 진실된 것일까. 그런데 비올레타는 그렇게 엄마가 자신을 원한다는 그 자체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린다. 그만큼 그동안 받지 못한 엄마의 사랑은 달콤하다.
엄마가 주는 사랑과 비올레타가 원하는 사랑 사이의 괴리
사실 영화 속 엄마 한나가 요구하는 수준이 단순히 이쁜 옷을 입고 사진 촬영을 몇 번 하는 정도라면 보는 관객들도 모녀의 관계와 활동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 한나는 계속적으로 사진의 수위를 높여간다. 아직 중학교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비올레타는 엄마의 요구에 맞추어 어른 옷을 입고 화장도 짙게 한다. 그때부터 비올레타는 학교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게되고,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이 되거나 따돌림을 당한다. 거기에 심한 노출 사진까지 찍게 되면서 비올레타는 하기 싫은 일과 엄마의 사랑 사이에서 굉장히 혼란스러워하게 된다.
엄마 한나의 논리는 간단하다. 자신의 작품을 완벽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모델은 딸 비올레타고, 그와 함께 작업했을 때 그가 일하는 예술계에서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인정받고 돈을 버는 것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비올레타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건 비올레타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성인이 되지 않은 어린 소녀에 불과한 비올레타는 엄마가 찍는 사진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지만 그 사랑은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고 그것을 대중에게 공개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랑에 숨겨진 폭력은 결코 외면할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엄마와 함께 하는 건, 공포와 짜증이 된다. 아이에게 그 상황은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고 자기 자신이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엄마에게 떨어지면 사랑받지 못하고 유일한 가족이 되어버린 한 사람과 멀어지게 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엄마와 같이 있으면 자신의 치부가 외부에 공개된다. 아이는 도망갈 곳이 없다. 최악의 경우, 죽음만이 그 탈출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시 한번 질문할 수밖에 없다. 엄마에게 아이란 무엇일까. 엄마에게는 아이로 인해 여러 가지 넘어야 할 장벽이 생긴다. 경력에 단절이 생긴다거나 아예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남편이 없고 혼자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건 더 큰 벽이 된다. 영화 속 한나는 비올레타를 모델로 사진을 찍으면 딸과 시간을 보내며 딸이 원하는 사랑을 충족시켜 줄 수 있고, 자신의 커리어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한 가지는 비올레타는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자신이 생각한 사랑과 커리어의 균형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이 영화 안에서 엄마 한나에게 아이는 자신의 안정과 출세를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다. 즉, 아이가 만든 사회의 장벽을 아이로 넘으려고 결정한 것이다.
너무나 이기적인 엄마 한나의 사랑
영화 <비올레타>를 다 보고 나면 엄마 한나가 내뱉는 ‘사랑’이라는 말이 굉장히 폭력적이고 일방적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안기는 비올레타의 모습에서는 측은함과 분노를 느낀다. 사실 부모가 된 모두가 하는 실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교육시키고 또 함께 하지만 그것은 아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부모의 사랑이 필요해서 아이는 그저 부모가 원하는 대로 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다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처음에는 그들이 생각했을 때 아이를 위한 놀이나 교육을 시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아이에게 가장 적절한 길을 찾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아이를 위한 사랑일 것이다.
엄마 한나는 그 사랑을 이용했다. 어쩌면 딸에게 주는 사랑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한나의 아픈 과거가 드러난다. 하지만 그런 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한나가 비올레타에게 했던 나쁜 사랑을 정당화할 수 없다. 한나는 비올레타에게 계속 사랑한다고 소리치지만 비올레타에게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고 멀리 도망치게 만드는 아픈 말이 되어 버린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분노가 치미게 되는 건, 그런 한나의 이기적인 사랑 방식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아픈 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용서할 수 없는 건, 영화 맨 마지막 비올레타의 행동을 통해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영화 <비올레타>는 2011년에 만들어져 칸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영화다. 또한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드니 라방의 뛰어난 연기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비올레타 역의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도 성공적인 데뷔를 했던 영화다. 이 영화에서 특히 화제가 되었던 것은 이 영화를 연출한 에버 이오네스코 감독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이다. 자신의 엄마가 어린 시절 자신을 촬영했던 경험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는 감독은 그것의 특징적인 아픔을 영화적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비올레타>를 완성했다.
영화 <비올레타>는 비록 만들어진지 10년이 지났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부모가 주는 사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아이를 위해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강요는 오히려 아이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모든 부모가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 적정한 선을 찾아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질문하면서 좀 더 좋은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부모도 아이도 한나와 비올레타의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다. <비올레타>는 그 사랑의 방식이 잘못 이루어진 모습을 잘 보여준다. 특히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조금 아프더라도 이 영화 관람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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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 감상평 - 쥬라기 월드 시리즈의 허무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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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작품의 최종장이라는 거창한 홍보문구에 비해 그 임팩트는 꽤나 부족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쥬라기 월드 3에서 이런 아쉬움이 느껴진 이유에는 몇가지 작품의 판단미스들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오웬과 블루의 연대와 케미스트리가 거의 전무하다는 부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쥬라기월드 트릴로지의 키 메시지는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공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 기대에 못 미치는걸 떠나서, 이 정도로 무난해도 되는건가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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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메인 예고편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군말 없이 집으로 내려온 아들은
엄마가 들려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구슬픈 노래를 담담하게 듣는다.
엄마와 아들, 서로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바람이 되어 안개를 걷어갈 수 있을까?
때로는 지긋하고 때로는 애틋한 엄마와 아들,
우리 시대 가족 이야기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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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너와 나의 경찰수업> 1차 예고편
패기 빼면 시체!? 경찰대 신입생들의 캠퍼스 라이프를 그린??♀️ [너와 나의 경찰수업]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