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샤2025-03-15 15:55:37
무대 없이 살 수 없는 사람들의 연대
다큐멘터리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삶은 무대다(All the World's Stage)'.
아마 지구상 최후의 인간도 모를 수 없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명언이라고 한다. 이 문장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 나오는 대사로 인생을 연극 무대에 비유한 것이다. 사실 우리의 삶은 죽는 순간까지 쉼 없이 이어지지만 중요한 분기점들을 기준으로 인생을 연극의 막(幕)과 장(場)처럼 나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대와 삶의 형식적 유사성보다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무대 위의 배우처럼 어느 정도 연기를 하면서 산다는 것이 무대와 삶의 더 중요한 공통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득을 얻기 위해 꼴 보기 싫은 사람 앞에서도 잘만 웃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슴지 않고 가시 돋친 말을 하기도 한다. 지구상 최후의 인간이 되어 혼자 살지 않는 한 우리는 타인과 공존해야 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누구나 배우 지망생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는 명맥이 거의 끊어진 여성 국극을 끝내 놓지 못하는 박수빈 배우와 황지영 배우의 삶을 중심으로 1900년대 중반 짧은 전성기를 누렸던 여성 국극의 전설적 배우들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다. 크든 작든 자신들을 위한 무대만 있다면 전국 어디든 출동하는 1985년생 박수빈, 1993년생 황지영 배우의 검질긴 열정도 놀랍지만 아흔이 넘은 조영숙 배우를 비롯한 나이 많은 배우들이 <레전드 춘향전> 공연 준비 기간과 공연 당일 무대에서 뿜어내는 기운이 경탄스럽다. 평상복을 입으면 그저 푸근한 할머니처럼 보이는 그들이 분장하고 배역에 맞는 의상을 갖춰 입고 무대에 올라 대사를 하고 동작을 하기 시작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예술이 부박한 삶의 정수를 길어 올리는 우물이라면,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의 배우들도 다른 많은 예술가들처럼 우물이 마를 일이 없도록 우물가를 지키는 파수꾼들이다. 그들은 무대 없이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대 없이도 숨은 붙어 있겠지만 제대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스크린으로 그들의 연대를 지켜보는 동안 새삼 예술의 힘과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끝)
* 씨네랩의 초청으로 3월 14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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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하자 우리
이 글은 영화 [브로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요즘 극장가의 상황이다.
판데믹 이후로 첫 천만 영화가 탄생했음은 물론. 기대작들이 줄줄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날이 드디어 왔다.
그 선봉장에는 칸 영화제에서 당당하게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를 앞세운 영화 [브로커]가 있다.
이미 송강호와 영화 [의형제]에서 합을 맞춘 경험이 있는 강동원과의 케미는 물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이지은이 미혼모로 열연하는 이번 영화가 기다려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아 브로커들과 친모. 범죄 현장을 덮치려는 경찰들의 이상한 조합을 감독만의 방식으로 그려냈다. 잔잔하고 자세히 속을 까뒤집어 보여주지는 않지만. 충분히 생각할 만하고 그 여운은 결국 실낱같은 안정으로 마음속에 다가온다.
아이 하나를 키워내기 위해 필요한 온 마을;금쪽이들이 치유받는 법
사진출처:다음 영화
한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그만큼 아이 하나가 온전히 커 어른이 되기 까지는 많은 사람의 영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모든 어른이 다 “좋은” 사람이면 참 좋겠지만. 우성의 주변을 이루고 있는 어른 마을은 조금 독특하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금쪽이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런데다 금쪽이 시절 버릇 하나 버리지 못하고 나이만 먹어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어딘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성의 엄마인 소영(이지은)은 물론 브로커인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확실하게 비뚤어져있다. 게다가 자신의 상처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사람만 보아도 못난 발톱을 한껏 세워 할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일 인분의 사람 구실도 못하는 핏덩어리에 불과한 우성에 의해. 금쪽이들은 스스로의 존재와 쓸모를 인정받는 순간을 맞이한다.
금쪽이들에게 이 순간은 평생을 기다려 온 순간임과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다가온 인정의 순간을 거부하는 금쪽이는 영화 내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순간부터. 금쪽이에서 조금은 어른에 가까워진 세 생명체들은 어디서부터 이 "판매 극"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누구 하나 입 밖으로 확신에 찬 채 말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보호받지 못했던 만큼의 시간을 우성이의 삶에서는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만 같다.
아이 하나를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의 뜻은 어쩌면 어른들에게도 아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게 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상현의 세탁소;해소와 진심의 순간들.
사진출처:다음 영화
금쪽이 패밀리(?)의 대장 격인(??) 상현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세탁소에 찾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빨래가 얼마나 더 깨끗하게 될지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담아 상현에게 말을 걸고. 상현은 그런 염려와 우려마저도 말끔히 씻어내린 빨래를 그들에게 건넨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빼앗아간 세상의 모든 티와 더러움은 고스란히 상현에게 쌓이고. 상현은 자신이 더러워질수록 타인의 빨래가 더 빛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자신의 훈장인 것처럼. 상현은 조용히 타인의 구겨진 삶의 일부를 받아들인다. 그것이 자신의 이중적인 삶을 덮어줄 수 있는 것이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차장에서 온통 젖어 엉망이 되어버린 상현의 표정이 후련해지는 걸 보고 있으면. 사실 상현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자신도 한 번쯤은 묵은 때를 벗겨내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두 번 다시 더러워지지 않는 빨래도 없고. 자신의 마음도 상처받은 채 상현에게서 다시 머물겠지만. 또 한 번 깨끗해지면 그만이라고 상현이 생각할 수 있기를 빈다.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아예 없지는 않은 거라고. 마음도 빨래도 뽀송뽀송하게 마를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행복하자 우리;아프지 말고. 몸도 마음도.
사진 출처:다음 영화
멸종 위기의 토종여우를 밀반입해 번식시킨 개 장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라 자부하는 서울대에서도 실패한 프로젝트를 학위 하나 없는 한낱 개 장수가 성공 시킨 것이다. (참고 1)
그 비결을 물었을 때 개 장수가 내어 놓은 대답은 더 가관(?) 이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돈이라 생각하고 무한한 관심을 쏟았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개 장수도, 영화에서의 브로커도. 결국은 자수를 한다.
그 목적이 어쨌건 자신들이 품고 베푼 애정과 관심은 결국 누군가를 최종적이면서도 올바른 행복으로 이끄는 힘이었던 셈이고. 스스로가 짊어지고 있던 죄도 내려놓고 평안함에 이르게 한 셈이다. 그래서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잡히는 순간에도 동수의 표정이 홀가분하게 보였던 것은 아닐까.
영화는 그들의 찬란한 행복을 보여주며 끝을 맺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기다릴 때처럼, 행복을 만나기 몇 시간 전부터 부푼 기대를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모든 인물의 행복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엔딩의 여운 앞에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마치면서
사진 왜 이래.
영화 브로커에 대한 홍보이건, 친분 때문이건 상관없이. 아이유의 유튜브 채널에 나와 스스로에 대한 칭찬을 해달라는 말에 눈시울을 벌겋게 물들이는 송강호 배우를 보고 있자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 업종에서 근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일하면서. 어찌 고난이 없고 회의가 없었을 것인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하나하나 걷어가며 묵묵히 길을 걸을 때 그가 흩어 뿌린 확신과 물음의 결과물을 나는 보고 자랐고. 그의 영화는 내게 믿음이란 각인으로 다가왔기에. 배우 송강호가 보이는 그런 모습은 참으로 귀함과 동시에 마음이 찡해지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로 인해 상을 받았건 말건 상관없이.
그저 배우 송강호가 여태 얻었을 고단한 마음의 짐들도, 마치 세차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끔히 씻겨내려가고 뽀송뽀송해지길 바랄 뿐이었다.
요새 구찌보다 구씨가 대세라고 하지만. 내게는 아직은(?) 구씨보다 호 씨가 최고야. 늘 짜릿해.
참고 1
사진 출처:구글 이슈야 놀자
실제로 개 장수가 자수(?) 한 이유도 얘들이 너무 예민하고 식비도 많이 드는데 버리자니 토종여우이고, 돌보다 보니 애정도 생겼기 때문이라 했음. 그래서 아예 양육 노하우를 연구용으로 넘기고 죗값이랑 퉁치기로 함. 사실 노하우라고 해서 엄청난 게 아니었음. 노란 박스에 애들을 키우니까 애들이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었음. 원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노하우를 찾아내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해 보면, 역시 진심인 놈 이길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그것도 돈에 대한 진심은.어우.
[이 글의 TMI]
1. 복숭아 비싸.
2. 그냥 조용히 망고를 사 본다.
3. 요새 왜 이렇게 리뷰 쓰기가 힘든지 생각해 보니
4. 인풋이 너무 없음.
5. 연차를 드디어 쓸 순간이 와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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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회] 세련된 음악과 깔끔한 영상, 가이 리치의 쿨한 액션. 역사영화보단 오락영화에 가까운.
안녕하세요! 지난 3월 11일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가이 리치 감독의 신작, <언젠틀 오퍼레이션>의 시사회에 참석하게 되어 후기를 작성해보려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 인생 첫 시사회였던지라 기대가 컸는데요. 액션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인 만큼 믿고 영화관에 입장했습니다.
시사회 기념 무대인사 시간이 있었습니다. 강철부대 W 출연진 분들이 오셨는데요. 군인의 입장에서 어떤 부분에 몰입이 되었는지, 어떤 부분이 흥미로웠는지에 대한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작전 수행에 있어 폭발물을 다루는 장면처럼, 복무 당시에 수행했던 임무와 관련된 장면에서 더 집중이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언젠틀 오퍼레이션>을 관람하는 대부분의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지점은 아마 해당 작품이 실제 작전을 배경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일 겁니다. 사실 저는 역사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아 해당 작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요, 해당 작전의 실제 이름은 “오퍼레이션 포스트마스터”였다고 합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실제 임무를 수행했던 요원들의 사진과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제 배경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보니 더욱 놀랍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나치군에 맞서는 유쾌한 액션 영화 중에서는 이미 수작으로 꼽히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죠. 유대인 출신의 미군인 주인공이 동료들을 모아 나치군을 상대로 복수를 펼치는 내용입니다. 특유의 유머 코드, 시원한 액션으로 유명한 영화인 만큼 <언젠틀 오퍼레이션>의 시놉시스를 읽은 후부터 해당 작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가이 리치 감독이 풀어낸 ‘나치에 맞서는 최정예요원들’ 이야기는 어떨까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이야기를 풀어갈 때에 어떤 지점에 차별점을 두었다고 느꼈는지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음악입니다. 센스 있는 음악이 영화 전반에서 분위기를 더합니다. 영화가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보니 설명적인 구간이 없다고 할 순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고 스타일리시하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깔끔한 촬영과 음악 덕분인 것 같다고 느꼈어요. 영화에 사용된 개성 넘치는 음악은 목숨을 건 작전을 수행하는 중에도 충분히 즐기는 것이 중요한, 비범하다 못해 미친 것 같은 주인공들과도 잘 어울립니다.
또한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막힘 없는 액션을 보여줍니다. ‘스토리상 정예요원이라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많은 군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은 나치군이 등장하는데요. 이렇게 가졌던 의문이 무색하리만큼 가차없는 액션을 선보입니다. 박진감보단 후련함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나치군들을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액션 장면을 원 없이 보고 싶으셨던 분들은 반가워할 작품일 것 같습니다.
더불어, 눈을 뗄 수 없는 주인공들의 비주얼이 만족감을 더합니다. 개봉 후엔 이 지점이 입소문을 타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ㅎㅎ…
출중한 비주얼의 배우들이 가이 리치 감독 특유의 분위기와 만나 시너지를 낸다고 느꼈습니다. 배우들의 다른 필모가 궁금해질 만큼 러닝타임 동안 각각의 매력이 잘 드러났습니다.
특히, 라센 역할을 맡은 앨런 리치슨은 오프닝 시퀀스부터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실 거예요.
다가오는 봄, 가까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때에 즐거움을 더해줄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스타일리시한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전쟁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 드리고 싶은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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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뤽 다르덴 & 장 피에르 다르덴, 로제타 (1999)
뤽 다르덴 & 장 피에르 다르덴, 로제타 (1999)
- 와플 왕국 노동자의 평범한 삶
karenine
# 이야기를 시작하며
살면서 아주 가까운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어른다운 부모를 두어서 좋겠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대학생 때부터 집을 뛰쳐나가 그야말로 신입생 때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친구였다. 나는 그에 비해 관심도 애정도 통제도 많은 부모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사실은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 감각도 있으면서 아이를 적당히 외롭지 않게 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아버지는 성실한 사람이다. 아버지의 성실함은 할아버지로부터 왔다. 할아버지는 60대 초반이 될 때까지 일을 하셨고 65세에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중간에 크게 아팠을 때 빼고는 한 번도 쉬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그렇게 아프고 힘들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장례식장에서 아버지가가 새벽에 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성실한 노동자 집안의 맏이인 나는, 고학력 실업자가 된 이후로 아무도 눈치 안주는 데도 눈치가 보인다. 예컨대 코로나 시대에 청년 취준생이 29만 명이라는 뉴스를 아버지와 차를 타고 가면서 라디오에서 듣는 일은 참 불편한 일이다. 결국 다른 뉴스가 나올 때까지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오늘도 아침을 먹고 약간은 무거운 표정으로 출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무슨 부업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누군가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기도 했고 내가 직접 지원하기도 했다. 없는 시간을 내서라도 열심히 쓸 것이다. 뿌듯함은 잠시였고, 앞으로 내가 벌린 일을 수습할 생각에 아찔했다. 어릴 적엔 작가, 글 노동이라 함은 멋들어진 서막을 열면서(예컨대 등단, 문학상 수상, 등등) 시작하리라 예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로제타가 뒷문을 통해 리케의 자리를 몰래 염탐하듯이 궁상맞고 은밀하게 시작되었다. 그녀는 리케의 자리를 바라보는 순간에, 언젠가는 사장의 여러 와플 가게들 중 하나의 점장이 되리라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메이저 지면에 기고하리라는 섣부른 야망을 가지면서 내 기분은 점차 상승했다가, 다시 땅에 내려앉았다.
# 로제타가 겪는 윤리적 각성
딸에게 양육자 구실을 하지 못하는 엄마를 둔 로제타(에밀리 드켄)의 삶은 매일이 진창 같은 전쟁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맨몸으로 싸우는 육박전이다. 사실 로제타의 가장 큰 적군은 엄마임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로제타가 남이 준 생선을 버리려고 할 때 딸에게 칼을 들이미는 '어미'다. 유아적이고 파렴치하며, 사창가의 여인 같기도 하고 돌아온 탕자 같기도 한, 그러나 무엇보다도 로제타의 생모, 어머니, 엄마.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은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이다.
로제타가 "나는 엄마랑 달라 Moi, c'est pas toi (*직역하면 난 엄마가 아니야.)"라고 선언하며 만들어가는 삶의 궤적은 철저하게 스토익하고 윤리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영화는 카메라 기법부터 어지러울 정도로 현장감을 그대로 가져오는 리얼리즘(핸드-헬드) 기법을 쓰고 있다. 반면 로제타의 삶의 태도에 있어서만큼은 감독의 목소리를 은연중에 대변하는 것과 같은 교훈적일 정도로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인물은 마치 순교자의 일생을 기록한 것처럼 의지로 가득 차 있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룩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것이 인물을 고지식하고 때로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하며, 로제타라는 인물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형성한다.
이 심리적 거리감이 철저히 전복되고 깨지는 것은 극 후반부이다. 영화 초반부부터 로제타는 이미 어떤 윤리적 각성을 한 소녀이다. 소녀는 엄마의 삶의 방식을 보고 겪으며 절대로 '엄마처럼 살아가는 건 안 된다'라는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사회로 나갔을 때 더 넓은 층위의 문제에 직면한다. 자신을 돕고자 하는 리케(파브리지오 롱기온)의 선의를 어디까지 받아야 하는지, 비슷한 처지나 좀 더 나은 처지인 그가 동료인지 잠재적 경쟁자이자 적인지를 로제타는 아직 판단하지 못한다. 동료 노동자는 그녀에게 자리를 뺏을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자 적이다. 지난 직장에서 경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동료의 모함 때문에 그렇게 허무하게 해고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J'ai une vie normale (나는 평범한 삶을 산다)
그런데 리케가 엄마와의 몸싸움 때문에 잃어버린 장화를 주었을 때, 로제타는 그날 밤 비로소 그를 '친구'라고 부른다. 머릿속에 생존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찬 소녀에게는 집에서 재워주는 것도, 오토바이로 태워서 데려다주는 것도, 토스트를 구워주는 것도 아닌, 자신의 생존품인 장화를 주는 사람이 가장 고마운 사람일 것이다. 전쟁통에서 군화를 잃어버려 행군을 못하는데 군화를 도로 찾아준 이에게 느끼는 전우애랄까. 그런데 리케의 사정은 다르다. 로제타가 리케의 눈을 안 마주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때, 리케가 그녀에게 인간적인 호감 이상의 감정이 있다는 것을 로제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눈치를 챘을 것이다.
위에서 로제타에게 갖게 되는 이상한 심리적 거리감은 후반부에 가서 어떤 강렬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휘몰아치고 부서진다. 로제타는 장화를 준 리케가 물에 빠졌을 때 '나 말고 저 사람이 대신 물(진창)에 빠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잠시 한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그를 밀어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현실인 것은 계산대에 있는 사장의 돈을 훔칠지 고민하는 것도 아니고 와플을 빼돌려서 수익을 남길지 고민하는 것도 아닌, 내 생존을 위해 다른 노동자를 그 자리에서 악의적으로 제거해도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점이다.
로제타는 남의 것을 훔치고 구걸하는 게 나쁜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철두철미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존엄을 해치지 않으면서 독립적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의지로 투철하다. 또한 카라반(트레일러)의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보통의 삶으로 정착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정작 타인의 선의를 어떻게 돌려줘야 하는지, 같은 노동계급의 동료와 어떻게 공존하고 연대를 이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각성은 로제타가 한 번도 맞닥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늘 대체되는 사람이었으므로.
리케가 해고되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로제타는 자신이 당했던 '부당한' 해고를 리케에게 덮어 씌움으로써 자신이 당했던 피해에 대한 복수에 성공한다. 갑자기 <복수는 나의 것>의 송강호 대사가 떠오른다.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그리하여 그녀는 꿈에 그리던 생산-판매라인의 가장 끝에 오르게 되고, 생전 가장 많은 돈을 만져보게 된다(갖게 된단 소린 아니다). 그러나 사장에게 얻은 신뢰도, 안정적이고 그럴듯한 직장도, 일하면서 그녀의 입가에 걸린 작은 미소도, 리케가 눈앞에 한번 나타나는 순간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 밥벌이의 즐거움과 슬픔
이 영화는 와플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벨기에 출신의 감독들이 만든 영화에 와플이 주연으로 나오는 것은 차라리 어떤 유머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감독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네 벨기에 하면 솔직히 와플밖에 모르지? 와플 말고 벨기에에 대해 아는 게 있나? 그런데 와플 왕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은 사실 이렇단다.'
와플은 영화 속 다양한 상황에서 등장한다. 첫 등장은 로제타가 해고당하고 얼굴이 벌게져서는 씩씩거리며 와플을 먹는 장면이다. 출근길에 사람들이 하나씩 사가는 아침 대용으로도 나오고, 직장에서 갓 잘렸어도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하는 음식이 바로 와플이다.
영화는 특별할 때 먹는 디저트로서가 아니라, 일용할 양식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상품으로서의 와플을 보여준다. 이로써 관객들은 와플 생산-판매 라인에 대한 모든 것을 보게 된다. 나는 벨기에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왠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일상식인 김밥이나 토스트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벽부터 재료를 준비하고 김밥을 마는 분주한 아침. 출근하는 손님들의 손에 하나씩 들려가는 김밥들과, 철컥 소리가 나며 열고 닫히는 계산대의 소리. 이것은 벨기에식 밥(빵?)벌이에 대한 가장 전형적인 초상화이자 그 뒷단의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지에 대한 성찰과 고발이다.
호흡이 가빴던 도입부에 비해, 와플가게 사장(올리비에 구르메)이 로제타에게 일을 알려주는 장면은 평화롭기까지 하다. 어떨 때 우리는 지긋지긋한 집안에서 벗어나 노동의 리듬 안에서 가장 큰 평화를 찾기도 한다. 로제타의 경우, 그녀에게 버거 워보이는 밀가루 포대를 제법 잘 들어서 반죽에 능숙하게 섞는다. 언뜻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되는 어떤 노동의 배움에 대해서 보여주면서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것도 잠시, 로제타는 사장 아들에게 또 밀려나고 만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는 로제타 눈에 비친 와플집 사장, 즉 소부르주아지의 고단함 또한 응시하고 있다. 이것이 다른 영화에서 굉장히 양극화된 계급 묘사와는 사뭇 달랐다. 이미 12개의 점포를 가지고 로제타의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 것 같은 사장도 실은 무거운 밀가루 포대의 무게 앞에서 쩔쩔맨다. 그 또한 매일같이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또한 사장은 부양 의무가 있는 책임감 있는 부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식을 위해 성실한 노동자를 해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이렇듯 밥벌이에서 어떤 선택의 순간들은 매일같이 찾아온다. 마음이 불편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야 되는 선택들이 있고 그것이 우리를 지치고 찌들게 만든다.
참고로 올리비에 구르메는 몇 년 뒤 <아들(2002)>이라는 다른 다르덴 영화에서도 소년들에게 목공일을 가르치는 역할로 나온다. 이 때도 무뚝뚝하지만 은근히 마음은 약하고, 자신의 상처와 지친 삶을 내색하지 않고 내면에 간직한 사람의 역할이 정말 잘 어울렸다.
# 다르덴 영화가 유머를 다루는 방식
슬프고 처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임에도, 나는 이 영화가 유머를 잃지 않았음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 유머는 아주 머쓱해지는 뚝 끊김, 갑작스러운 포즈(pause)에서 나온다.
리케네 집에 갔을 때 리케는 그 어색한 공기 속에서 어떻게든 아이스 브레이킹을 해보려 하지만 좀처럼 로제타는 장단을 맞춰주지 않는다. 리케는 음악을 연주하고 들을 만큼 아주 약간은 숨 쉴 틈이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주 법대로만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암시한다.
하지만 이윽고 우리는 그에게 변변한 진짜 음반도 하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본인이 직접 녹음한 연주 테이프를 들으며 어떻게든 흥을 돋우려는 이 남자아이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로제타는 못 이기는 척 리케가 연주한 이상한 드럼 곡에 맞춰 춤을 춘다. 흥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할 찰나, 갑자기 음악이 뚝 끊긴다. '어, 내가 여기서 틀린 것 같아.' 그리고 연주는 다시 시작되지만 한번 끊긴 '무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베스트 3 안에 꼽을 수 있다.
로제타가 진 삶의 무게는 밀가루포대-엄마-가스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무거운 것들 앞에서 로제타는 한 번씩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마지막 결말 부분의 그 안타까운 순간마저도, 영화는 절묘한 순간에 포즈(pause)를 주면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로제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갑자기 가스가 끊기는 장면이다. 죽으려고 할 때까지 가스통을 사서 끌고 와야 한다니. 영화는, 죽을 권리도 돈을 지불해야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강렬한 쓴웃음을 짓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리케의 얼굴을 정면으로 안 보여주는 것은, 로제타를 구원한 사람이 리케, 즉 남성-노동자라는 메시지를 넘어서기 위한 것이라고 짐작한다. 로제타가 마지막으로 삶은 달걀의 껍질을 깨듯, 그녀의 내면에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 끝엔 후회의 쓴맛과 현실에 대한 절망이 뒤따른다. 역설적으로 그러한 깨짐을 통해서 로제타는 자신의 과거와, 또 타인인 리케와도 화해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로제타의 두 눈빛을 통해 그녀가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음을, 아직 자신만의 무인도에서 죽을 힘을 다해 구조 신호를 쏘아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마치며
<로제타> 영화가 나온 이후 벨기에 정부의 로제타 플랜은 반짝 효과를 내고 몇 년 만에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 정부가 청년 정책 하며 내놓는 취업지원금이나, 이런저런 임시변통의 대책들도 저렇게 별 효과 없이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질 게 뻔하다.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는 각자가 견디고 자구책을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까진 이 광활한 진창을 없애기 힘드니 최대한 덜 빠지도록 조심하고 자신의 몸과 정신을 드라이로 말리듯이 항상 건조하게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가 준 가장 큰 교훈이 그것이 아니던가. 극악한 환경을 만들어놓았으니, 알아서 생존하시오.
가끔 현실이 팍팍할 때 이 영화를 꺼내어 볼 것 같다. 그 이유는? 에밀리 드켄의 출중한 연기나 블랙 유머 코드 때문에? 아니면 나를 물웅덩이에 밀쳐버리는 엄마가 없으니 차라리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나는 왠지 '진짜 일을 하고 싶어'라는 그녀의 대사를 되새기기 위해 이 영화를 다시 볼 것 같다.
'진짜 일'이란 당최 무엇인가. 최근에 친구랑 통화를 하다가, 친구가 너는 사랑에 있어서 더 원(the one), 일종의 운명적인 사랑이 있냐고 물은 적 있다. 나는 속으로 워너원도 아니고 그게 뭐냐고 생각했으나, 내 속마음은 반반인 것 같다.
친구 말마따나 일에도 나만의 더 원이 있을까? 일찌감치 어떤 직업에 소명 의식을 찾은 사람들이 갑작스레 부럽다. 그래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일'을 찾느라 분투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이, 어떨 때는 아무 일이든 좋으니 일감만 달라고 하다가도 일하게 되면 좀 더 큰 욕심을 품는다. 아무리 같은 돈을 받아도 뒷단의 구질구질한 일은 하기 싫고, 내가 가진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고, 남에게 해를 주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 운명적인 사랑을 찾는 것보다 차라리 그런 일을 찾는 것이 어렵겠다 싶다.
덧, 글을 쓴다고 아직 집에다 말하지 않았다. 그 돈을 버느니 본업에나 충실하라는 말을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걸 상상하니 욱하는 마음이 들지만 로제타의 구제불능 엄마를 생각하면서 참아야겠다.
[Eurofilm 6. 벨기에, 프랑스]
<이미지 출처>
www.bonjourtristesse.net/2010/12/rosetta-1999.html
www.simbasible.com/rosetta-movie-review/
https://www.etsy.com/listing/192831475/rosetta-limited-edition-movie-poster
https://www.ioncinema.com/reviews/criterion-collection-rosetta-blu-ray-review2020년 11월 23일 감상 / 2020년 11월 25일 씀.
* 본 콘텐츠는 브런치 karenine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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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그 자리는 과연 영원한가
DIRECTOR. 아티나 레이첼 창가리
CAST. 케일럽 랜드리 존스, 해리 멜링 외
PROGRAM NOTE.
짐 크레이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티나 라켈 창가리의 <하베스트>는 폐쇄 위기에 처한 이름 없는 마을로 우리를 데려간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월터는 그의 젖 동무이자 마을 지주인 마스터 켄트와 함께 이 외딴 마을에 정착했으며, 배타적이고 미신에 집착하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이성과 분별을 지닌 인물이다. 7일간에 걸쳐 마을은 화재를 겪고, 추수 잔치를 벌이며, 외지인들을 핍박하고, 새로운 지주를 맞이하더니 결국 고향을 등지고 떠나게 된다. 감독은 하나의 마을이 서서히 몰락하는 모습과 한 시대의 고통스러운 종말, 그리고 삶의 방식이 비극적으로 사라지는 과정을 35mm 필름에 담아낸다. 신(新)국수주의가 떠오르는 가운데, <하베스트>는 추방과 강제 이주로 이어지는 지독한 외국인 혐오와 불관용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강렬한 우화이다. (박가언)
디지털 기술이 계속 발전하지만, 필름 특유의 아름다움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 <하베스트>가 그렇다. 테두리가 거뭇거뭇하거나 불그스름한 흔적까지 고스란히 스크린에 올린 이 영화는, 필름을 통해 다소 중세적이고 목가적인 마을의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우화를 참 우화로 만드는 건 이런 검박해 보이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곡식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사이로 사람의 손이 올라온다. 이제 막 날개를 펴는 나비에게 후 숨을 불고, 까만 흙이 낀 손톱으로 이끼를 만지다 못해, 이끼를 베어 물고 나무 옹이에 혀를 넣기도 하다가 급기야 알몸으로 물에 들어간다. 그야말로 자연 속에 거하는, ‘인위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이 아닌 흙 낀 손톱처럼 자연 그대로인 모습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면은 화재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들판에 산들거리는 꽃이나, 쓰임새를 하나하나 일러주는 나무와 풀들, 거기서 양털을 꺾고 노동요 부르며 농사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얼핏 옛 유럽 그림엽서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사건들은 등락(登落)의 폭이 매우 크고, 그 낙차마다 사람을 놀라게 한다.
외지인은 누구인가
이 영화에는 여러 차례 외지인이 등장한다. 그중 절대다수가 트레일러에 등장하는데, 형틀에 묶여 있는 사람들과 말을 타고 오는 사람들이다. 마을 토박이 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외지인을 믿지 않으며, 어떤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합리적 판단보다는 익숙한 사람인지 아닌지의 잣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합리적 판단을 할 만큼의 시간조차 두지 않는다.)
오프닝 시퀀스의 남자이자 중간중간 서술자로서 내레이션을 하는 월터는 한편으로 주민들의 삶이 배부르고 취한 짐승들 같다고 자평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삶을 꾸려 가고 있다. 그나마 마을 사람들에 비해 외지인에 열려 있는 사람이 그다. 형틀에 묶인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고 싶어하고, 이름을 묻고 싶어한다. 이 마음은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형틀에 묶인 사람들에게조차 조롱을 받는다.
이 영화에서 “belong”은 주요하게 반복되는 단어다. 마을의 아이들은 동네의 경계를 따라 걷다가 경계를 알리는 돌에 머리를 찧음으로써 자신이 어디에 속했는지를 똑똑히 확인한다. 이러한 과정을 외지인에게는 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단단한 소속감은 기반 논리가 깊지 않다. 외지인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이들의 계급이나 상황이 계속해서 다양해짐에 따라, 주민들이 외지인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도 자반 뒤집기 하듯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물론 외지인의 말 또한 정답은 아니다. 동네를 “개선”하겠다며 소득 증대의 꿈을 꾸는 새로운 주인, 조단의 말은 아마도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전체의 소득이 증가하고 모든 게 좋아질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조단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농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토박이 동네를 떠나야 한다.
전통은 무조건적인 혁신으로 깨부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문을 닫아걸고 타인을 거부한다고 순수하게 계승할 수도 없다.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으로 넉넉한 사회만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 계속되는 외지인들의 등장 앞에 우왕좌왕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식민지로 물들었던 20세기 어떤 국가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지도는 어떻게 생겼는가
월터는 세계를 동심원형으로 인식한다. 지도 제작자 얼이 개인적으로 작업한 동심원형 지도를 보여주었을 때 “최고의 지도”라고 반가워한 것도 그래서다. 둥근 동심원형은 사방으로 잔잔한 파동을 퍼뜨리며, 설령 영역이 조금 겹쳐도 서로에게 뾰족하거나 유해하지 않다. 넉넉하고 너그럽고 부드럽다. 그러나 동심원형 제도는 얼의 개인 작업일 뿐, 그에게 의뢰되는 작업은 격자 무늬형 지도다.
네모반듯하게 구획을 자른 그 지도상에는 사람이나 나무를 표시할 필요가 없다. 그 지도에서 중요한 건 대략의 위치와 구획당 키울 수 있는 양의 수 정도일 것이다. 월터가 반박하듯 그 땅의 물과 흙, 심지어 땅을 돌아다니는 소의 특성까지도 확실히 알고서 그리는 동심원형 지도와는 전혀 다르다. 월터는 단박에 본질을 꿰뚫어본다. 그건 우리를 납작하게(flatten) 만든다고. 동심원형을 강제로 격자 모양에 쑤셔 넣으려면, 원의 가장자리는 잘라내야 한다. 그렇게 세상의 여백으로 밀려나는(marginalized) 사람들이 생겨난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세계 지도는 메르카토르 도법을 이용한다. 항해용으로 유리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아프리카가 너무 작게 표시되어 있다. 실제 아프리카 대륙은 미국과 중국과 인도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큰데, 실제로는 아프리카보다 훨씬 작은 그린란드가 더 커 보일 정도이다. 나름의 장점이 있어 활용한 도법이기도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 영국 같은 국가들이 좀더 음흉한 의도를 가지고 많이 사용한 측면도 있다.
월터는 세계를 동심원형으로 인지하는 사람이기에, 외지인을 받아들인다. 그는 어찌 보면 한국 근대 소설의 무력한 농민 가장들과도 닮은 측면이 있다. 격자식으로 잘려 나가는 세계에서 한 줌 흙을 놓치지 않는, 그러나 다른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지도 않는. 손가락질이 심긴 곳에서 비극이 피어난 곳을 보고도 흙에 씨앗을 심는 마음. 격자식 지도에 너무 익숙해진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마음 때문에 누군가는 영화를 만들고 누군가는 극장에서 두 시간씩 앉아 영화를 본다. 씨앗을 심고 거두듯이.
그 자리는 과연 영원한가
나그네는 영원히 나그네이고, 토박이는 영원히 토박이인가. 자리는 쉽게 뒤집힌다. 어쩌면 저기 저 사람의 어제는 나의 오늘과 비슷했을 수 있다. 나의 내일이 저 사람의 오늘이 되지 말란 보장은 없다. 격자식으로 횡과 종을 마구잡이로 갈라 서열화하는 지도를 떠나, 둥근 원형의 지도를 마음에 품어야 하는 이유다.
비록 월터가 그 동심원을 실행한 방법이 (이 또한 정말 너무 한국 근대 소설의 무력한 농민 가장 같은) 무위라는 점에서 조금 의아하면서도, 그가 보여준 걸음의 방향에만큼은 고개를 끄덕여 본다.
10/03 16: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상영코드 066)
10/08 20:00 CGV센텀시티 4관 (상영코드 395)
10/09 14:00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상영코드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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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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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교섭>, 1월 18일 개봉 확정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의 신작이자 황정민과 현빈의 첫 동반 주연 영화 <교섭>이
2023년 1월 18일 개봉을 확정했다. <교섭>은 최악의 피랍사건으로 탈레반의 인질이
된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 외교관과 현지 국정원 요원의 교섭
작전을 그린 영화이다.
전종서, <웨딩 임파서블> 긍정 검토 중
ⓒ 네이버 영화
<웨딩임파서블>은 동성애자인 재벌 후계자와 위장 결혼을 준비 중인 무명 여배우, 그리고 그 꼴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야망덩어리 예비 시동생이 만나며 벌어지는 욕망 충돌 결혼 반대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이다. 전종서 배우는 극중 무명의 단역 배우 오다정을 연기한다.
<이두나!>, 수지·양세종 출연 확정
ⓒ 매니지먼트 숲, 블러썸 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에서 시리즈 <이두나!> 제작 더불어 배우 수지와 양세종의 출연을 공식화하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이두나!>는 평범한 대학생 원준이 셰어하우스에서 화려한 K-POP 아이돌 시절을 뒤로하고
은퇴한 두나를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드라마다. 동명의 원작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해외
<퀸카로 살아남는 법>, 뮤지컬 영화로 제작
ⓒ 네이버 영화
하이틴 영화의 대표작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뮤지컬 영화로 새롭게 제작된다고 한다. 영화에는
앵거리 라이스, 아울리이 크라발리오, 르네 랩, 자켈 스피베이를 비롯한 배우진들이 참여한다.
테일러 스위프트, 장편 영화 감독 데뷔 예정
ⓒ 네이버 영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영화사 서치라이트픽처스와 함께 장편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지난 11월, 자신의 노래 'All Too Well(10 Minute Version)'을 배경으로
단편 영화 <All Too Well: The Short Film>을 직접 집필 및 감독하며 인기를 끌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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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풍 | 모두까기가 실현할 초인이라는 꿈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통령 '장일준'(김홍파)과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의 정경유착 비리 혐의를 포착한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 그는 정권을 내줄지도 모른다는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자기 진영이 배출한 대통령을 공격하기로 결심한다. 비록 자신의 정치적 멘토이지만, 자기가 믿는 신념에 대통령이 배치된다고 믿으니까.
하지만 일은 그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통령과 부총리는 재벌에게서 받은 막대한 자본, 검찰과 법원까지도 자기 뜻대로 부릴 수 있는 권력, 민주 항쟁 시절부터 다져온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인맥 네트워크를 활용해 반격한다. 오히려 검찰 수사를 받고 정치적으로 몰락할 위기에 처한 박동호. 이에 그는 정경유착을 뿌리 뽑고, 정치권의 악습을 뿌리 뽑기 위해 대통령을 시해하기로 결심한다.
새 시대를 촉구하는 정치 스릴러
사실상 양당제에 가까운 한국 정치권은 크게 두 세력으로 나눌 수 있다. 한쪽에 산업화 유산을 물려받은 우파가, 반대쪽에는 민주화 시대를 일궈낸 좌파가 있다. 양 진영의 공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두 세력 모두 과거의 영광만 붙잡고 있다는 비판도 피할 수는 없다. 개헌을 통해 87년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 끊임없이 나오는 게 그 방증이다.
권력 3부작을 집필한 박경수 작가와 넷플릭스가 처음으로 협업한 작품 <돌풍>은 바로 이 문제의식을 구현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남한이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는데도 여전히 태극기 부대에 매달리는 우파 정치인도, 아직도 민주 항쟁 시대를 살아간다고 착각하며 자기 기득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좌파 정치인도 가차 없이 비판한다. 그들과 상부상조하는 재벌과 검찰 역시 비판의 칼날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두 진영의 비리나 부패를 1차원적으로 비난하거나 단순한 정쟁으로 묘사하지 않아서 더욱 인상적이다. <돌풍>은 자칫 추잡하기만 할 수 있는 정쟁을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Übermensch), 곧 초인이 되지 못한 이와 초인으로 거듭난 이의 갈등으로 풀어낸다. 그 덕분에 <돌풍>은 몇몇 기술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실패를 진영의 실패로 확장시키고, 새 시대와 미래를 향한 갈망과 희망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무언의 경계를 넘어서다
그간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정치극은 상당히 한정적이었다. 수년간 비슷한 선악 구도와 메시지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실화 기반 작품은 대체로 민주화 이전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민주 항쟁이나 군부 쿠데타 사건을 소재로 삼아 군부 세력에 저항하는 이들의 숭고함과 희생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서울의 봄>이 그랬고, 그 이전에 <1987> 같은 작품도 다르지 않았다.
허구의 사건을 다루는 작품은 검찰과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악역을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정재의 <보좌관>이나 조승우의 <비밀의 숲>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주인공은 <60일, 지정생존자>처럼 재벌, 검찰, 군부 같은 전통적인 기득권층에 저항하고 개혁을 꿈꾸지만 실패하는, 이른바 시민 세력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많았다. 노무현을 비롯한 몇몇 대통령을 연상시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돌풍>은 다르다. 그간 많이 다루지 않은 2000년대 이후의 현대 정치사를 관통한다. 2010년대 중후반까지의 굵직한 정치 이벤트를 쪼개고 비틀어서 대체역사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장일준 대통령만 보더라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점, 아들을 비롯한 가족이 검찰 수사를 받은 점, 이후 소속 정당과 검찰 간의 갈등이 본격화된 것을 보면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을 섞은 캐릭터인 게 분명해 보인다.초인이 되지 못한 낙타와 사자
이 대체역사의 핵심은 초인이다. 진영 구분 없이 초인이 되지 못했고, 초인이 되겠다는 초심을 잊어버린 정치인의 모순과 폐부를 찌른다. 니체는 사람을 낙타, 사람, 어린아이 세 단계로 구분한다. 낙타는 그저 세태를 따르기만 하는 인간이다. 사자는 당대의 권력과 강압에 저항할 줄 아는 인물이다. 사자가 저항의 고통과 허무함을 하나의 놀이처럼 긍정하고 수용하면 어린아이, 곧 초인으로 거듭난다.
이때 초인은 삶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어려움을 회피하거나 종교, 도덕, 이념의 영역으로 도망치지 않는다. 대신 고통을 자극 삼아 새롭게 삶을 개척한다. 기존의 선악 같은 지배적 가치에 순응하는 대신 자기만의 신념과 목표, 사명을 만들어 실천에 옮긴다. 그러다가 몰락하더라도 그조차 수용하고 사랑할 줄 안다. 즉, 가혹한 삶까지도 마주 볼 수 있는 용기로써 매번 자신을 쇄신하는 사람이 바로 초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돌풍> 속 인물은 대부분 낙타 혹은 사자다. 우파 대표이자 태극기부대의 정신적 지주인 '조상천'(장광)은 낙타다. 납북된 아버지가 전향자로 대우받으며 잘 지내자, 아버지와의 인연을 철저히 부정하고 누구보다 악랄한 공안검사가 됐다. 반공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며 그 시대의 편견에 저항하는 대신 순응했고, 자기 스스로 북한과 관련이 있다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만 이를 떨쳐낼 용기도 없다.
반면에 정수진은 사자다. 전대협 소속 대학생으로 학생 운동에 투신했고, 훗날 남편이 된 전대협 회장 '한민호'(이해영)를 지키려고 온갖 고문을 견뎌냈다. '민주주의 만세'라는 문구를 감방 벽에 새길만큼 강인한 의지를 지녔고, 끝내 군부 독재와 공안 검찰 세력을 쓰러뜨린 후 경제부총리까지 됐다. 장일준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정수진의 멘토이고, 정경유착을 뿌리 뽑겠다는 일성을 내세워 대통령까지 당선된 민주 세력의 거두였다.
초인이 되지 못한 이들의 가짜 초인
이때 <돌풍>은 낙타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 낙타가 초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조차 갖지 않는다. 대신 사자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들이 초인으로 거듭나는 대신 낙타로 퇴보한 모습을 비춘다. 더 나아가서는 낙타를 초인으로 가장하는 비열함을 비판한다. 성경이나 삼국지 같은 고전의 문구, 카이사르를 비롯한 역사적 인물의 사건을 인용한 비유 덕분에 비판의 칼날은 더 날카롭게 느껴진다.
정수진과 장일준. 두 사자는 저항하는 삶에 지쳤고, 그 고통이 괴로워졌다. 그래서 고통에 굴복하고, 보상 심리에 빠져든다. 권력을 잡아 이루려던 신념은 잊고, 자기 기득권에 문제가 되는 동지는 거침없이 쳐낸다. 사모펀드를 이용해 불법 이익을 창출하고, 그토록 혐오하던 재벌과 검찰을 방패로 삼는다. 기득권 타파를 위해 젊은 날을 불태웠던 사자들은 이제 기득권에 안주하고, 젊은 시절을 보상받겠다는 낙타에 불과해진다.
둘만의 일탈도 아니다. 그들 진영의 전반적 경향이다. 정수진의 남편 한민호가 대표적이다. 전대협 의장까지 했던 이 인물은 불만으로 가득하다. 다른 선후배들이 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면서, 자기는 돈이라도 벌어야겠다며 불법 투자를 이어간다. 정수진의 뇌물을 받은 후 그녀 요구대로 조합을 움직이는 노동조합 간부도 마찬가지다. 의기와 투지로 가득했던 사자들이 낙타로 퇴화했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에 더해 그들에게는 초심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용기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허상 뒤에 숨는다. 정수진은 비리 혐의를 받던 장일준이 사망하자 그를 성역화하며 정치적으로 활용한다. 한민호가 검찰 수사를 받다 자살하자 그가 누구보다도 청렴 결백하다는 도덕적 허상을 만들어 그 뒤에 숨는다. 자기가 부패한 기득권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대신, 가짜 영웅을 내세워서 그저 과거의 구호를 되풀이할 뿐이다.
진짜 초인을 꿈꾸다
<돌풍>은 가짜 초인 뒤에 숨은 사자들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허상을 파괴하고, 그들이 되지 못한 진짜 초인을 보여주며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바로 주인공 박동호와 그의 조력자들이 바로 그 초인이다. 그들은 국가의 영웅이 되겠다거나,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목표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다만 자기가 믿는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서, 보이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용하고,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속한 조직과 진영으로부터 늘 버림받는다. 검사일 때도 검찰의 관습과 규범에 저항하다가 검찰에서 쫓겨났다. 자기를 영입한 장일준 대통령에게 직언을 멈추지 않고 그의 아들과 정수진의 비리를 파헤치다가 토사구팽 당할 처지가 된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목숨을 내던져 정쟁에 임하고, 매번 돌파구를 찾아낸다. 대통령 시해 시도가 들킬 위기에 처하자 이를 정적에게 뒤집어 씌우거나, 탄핵 위기를 역이용해 정적의 비리를 드러내는 식이다. 그 끝에서는 정수진을 비롯해 부패한 정적을 모두 제거하고, 정치 개혁을 일궈낸다. 이처럼 자기에게 가해지는 고통이 크고 상대하는 적이 강할수록 오히려 발전하는 것 또한 초인다운 행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돌풍>은 어느 한쪽 진영만 비판하는 작품이 아니다. 박동호를 거울삼아 초인이 될 의지가 없는 양쪽 모두를 꼬집는다. 확고한 지지 세력을 기반으로 양측이 정치적 거래를 하며 상부상조하는 구조도 같이 비판한다. 다만 약간의 온도 차이는 있다. 박동호의 정치적 위치를 고려하면, 낙타에 불과한 우파 진영과는 달리 한때 사자였던 좌파 진영이 초인을 배출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간직한 듯하다.
단점마저 묻어버린 메시지
사실 <돌풍>은 완성도가 다소 부족하다. 박경수 작가의 이전 작은 경제, 금융, 법률에 대한 폭넓은 지식 뒷받침된 덕분에 권력 싸움을 더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었다. 반면에 <돌풍>은 대통령 시해, 대선 후보 교체 시도, 대선 직후 탄핵 결의, 대통령의 범죄 자백과 검찰의 대통령 수사 등 개연성이 부족한 사건이 많다. 반격과 재반격이 오가는 상황과 구도를 만들어 몰입도를 높이려는 시도가 후반부로 갈수록 무리수로 보일 정도다.
이에 더해 완급조절도 부족해서 피로감이 크다. 모든 에피소드를 강강강강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어떤 반전이 있어도 놀랍지 않다. 한 에피소드 내에서도 박동호와 정수진이 수 차례 엎치락뒤치락하기에 더욱 그렇다. 결국 두 주인공도 사건에 휘말려 떠내려 가는 듯한 느낌이 짙다. 그들의 심경이 구체적으로 전달되는 지점이 많지는 않기 때문. 12부작보다 더 짧고 굵게 끝내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이유다.
그러나 단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문제의식을 전달하는 힘이 워낙 강해서 다소 투박한 만듦새마저 가려지기 때문. <돌풍>은 시청자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낙타, 사자, 어린아이 중에 어떤 단계로 살 거냐고. 정치인이 지시하는 대로 휩쓸리고 싶냐고 묻는다. 노재팬 팻말 일장기에 파란색을 덧칠해서 태극기 시위를 하거나, 이성과 논리가 대신 감성에만 호소하는 정치인을 종교 지도자처럼 따르며 굴종할 것이냐고.
<돌풍>은 정치인의 철학과 목표가 아니라 각자의 소신과 이익대로 권리를 행사하는 사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그럴 때에만 타인의 잘못에 맞서고 자기 잘못에 대한 죗값을 받아들이는 그런 초인을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따라서 <돌풍>은 정치적 지향이 어떻든, 조금이라도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자기 자신과 지지하는 진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Acceptable 무난함
초인이 되지 못한 낙타와 사자를 밟고 일어서는 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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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eople Say - dy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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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Paradise - Ik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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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 Ik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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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Young love - LiQW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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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 Julian Av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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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Need Someone - dy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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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Free - Ik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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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Palm Trees (feat. Joey Edwin) - Joakim Kar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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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Back To Summer - Nekz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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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vly - Joakim Kar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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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Day After Day - Joakim Kar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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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Sky - Ik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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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y - Vlad Gluschen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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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Nu Island - Day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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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Road Trip - Joakim Kar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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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x - Peyru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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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 Vlad Gluschen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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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타이거 우즈> 공식 예고편
타이거 우즈의 흥망성쇠와 함께 장대한 컴백을 공개한다. 미국 문화, 인종문제, 인간의 본성, 아버지와 아들, 대중이 명성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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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쿵푸팬더 4> 1차 예고편
2024년 봄, 무려 10년 만에 코미디의 아이콘 '잭 블랙'이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사랑받는 액션 코미디 프랜차이즈 [쿵푸팬더]의 유머와 재미가 가득한 신작 [쿵푸팬더 4]에서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쿵푸 마스터 포 역할로 돌아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맹함과 미친 무술 실력으로 죽음도 불사하며 세계적인 악당을 무찌른 세 번의 모험 끝에, 용의 전사(골든 글로브 후보, 잭 블랙)는 이제 평화로운 휴식을 만끽할 운명이었고, 이윽고 평화의 계곡의 영적 지도자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포는 영적 리더십에 대해 전체식 다이어트 요법에 대해 아는 것 만큼.. 사실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며 둘째, 그는 지금의 새로운 위치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용의 전사를 찾아 훈련시켜야만 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최근 강력한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인 카멜레온이 목격되었는데, 이 도마뱀은 크든 작든 어떤 생물체로도 변신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카멜레온은 탐욕스럽고, 반짝거리는 작은 눈으로, 포가 영혼의 영역까지 도달하면서 정복한 모든 마스터 악당들을 다시 소환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포의 지혜의 지팡이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때 꾀가 많고 영리한 도둑 젠(골든 글로브 수상자, '아콰피나')이 포의 털 밑으로 들어가는 기술을 쓰다가 포의 눈에 띄게 됩니다. 이 기술은 이후에 매우 중요한 기술이 됩니다. 카멜레온의 파충류 발톱으로부터 평화의 계곡을 보호하기 위해, 이 이상하고 코믹한 괴짜 2인조는 함께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때 포는 영웅은 가장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