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샤2025-03-15 15:55:37
무대 없이 살 수 없는 사람들의 연대
다큐멘터리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삶은 무대다(All the World's Stage)'.
아마 지구상 최후의 인간도 모를 수 없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명언이라고 한다. 이 문장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 나오는 대사로 인생을 연극 무대에 비유한 것이다. 사실 우리의 삶은 죽는 순간까지 쉼 없이 이어지지만 중요한 분기점들을 기준으로 인생을 연극의 막(幕)과 장(場)처럼 나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대와 삶의 형식적 유사성보다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무대 위의 배우처럼 어느 정도 연기를 하면서 산다는 것이 무대와 삶의 더 중요한 공통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득을 얻기 위해 꼴 보기 싫은 사람 앞에서도 잘만 웃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슴지 않고 가시 돋친 말을 하기도 한다. 지구상 최후의 인간이 되어 혼자 살지 않는 한 우리는 타인과 공존해야 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누구나 배우 지망생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는 명맥이 거의 끊어진 여성 국극을 끝내 놓지 못하는 박수빈 배우와 황지영 배우의 삶을 중심으로 1900년대 중반 짧은 전성기를 누렸던 여성 국극의 전설적 배우들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다. 크든 작든 자신들을 위한 무대만 있다면 전국 어디든 출동하는 1985년생 박수빈, 1993년생 황지영 배우의 검질긴 열정도 놀랍지만 아흔이 넘은 조영숙 배우를 비롯한 나이 많은 배우들이 <레전드 춘향전> 공연 준비 기간과 공연 당일 무대에서 뿜어내는 기운이 경탄스럽다. 평상복을 입으면 그저 푸근한 할머니처럼 보이는 그들이 분장하고 배역에 맞는 의상을 갖춰 입고 무대에 올라 대사를 하고 동작을 하기 시작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예술이 부박한 삶의 정수를 길어 올리는 우물이라면,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의 배우들도 다른 많은 예술가들처럼 우물이 마를 일이 없도록 우물가를 지키는 파수꾼들이다. 그들은 무대 없이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대 없이도 숨은 붙어 있겠지만 제대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스크린으로 그들의 연대를 지켜보는 동안 새삼 예술의 힘과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끝)
* 씨네랩의 초청으로 3월 14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
- 누가 성인이고 누가 죄인인가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당혹스럽다. 우선 액션 위주의 영화가 아닌데 <원맨>이라는 B급 액션영화 같은 타이틀을 달고 예고편을 만들어 착각하게 만든 게 당혹스럽고, 영화 내용이 한국의 역사가 오버랩돼서 당혹스럽다. 아마도 원래 타이틀인 <In the Land of Saints and Sinners (성도들과 죄인들의 땅에서)>로 개봉하고, 드라마 장르인 원래 메시지를 드러나게 했다면 더 관객이 안들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원맨>이라는 타이틀은 마치 <존 윅>이나 주연인 리암 니슨의 <테이큰>을 연상시키고, 영화를 본 관객들을 실망시키니까. 영화 <원맨>은 70년대 후반 북아일랜드 역사와 사람들을 보여주는 영화다. 우선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우선 간략하게 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 아일랜드의 무장독립투쟁단체인 IRA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와 영국, IRA
아일랜드인의 주류는 켈트족이고 종교는 가톨릭이다. 영국인은 주류는 앵글로 색슨족이며 종교는 개신교 계열인 영국 성공회이다. 아일랜드는 아주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중세부터 이어진 전쟁과 간섭은 1600년대부터 완전히 지배당하고 1919년 독립선언을 하기까지 수백 년을 지배당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로 완전히 비교할 순 없지만, 이입을 해보자면 임진왜란 때 조선이 일본에 지배당하고 3.1 운동할 때 독립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유럽의 오래된 진저(빨간 머리) 차별이 아일랜드인에 대한 차별과 엮여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아일랜드인 중 많은 사람이 빨간 머리와 주근깨, 흰 피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일랜드가 워낙 오랫동안 지배당했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인종적으로도 영국과 섞여있었는데, 그중 성공회의 영국인이 많이 거주하던 현재 북아일랜드 지역은 아일랜드가 독립할 당시 영국령으로 남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일랜드는 영국의 자치령으로 남아 남북 분단을 하려 했고, IRA는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하려 해서 아일랜드 내전이 일어난다. 결국 IRA는 지고 아일랜드는 남북으로 분단된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북아일랜드에서 성공회의 영국 계열 주민들이 가톨릭인 아일랜드인을 차별하고 핍박하는 게 점점 커져 '북아일랜드 분쟁'으로 확대된다. 이에 아일랜드 전체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IRA가 힘을 얻고, 점점 무장 투쟁이나 폭탄테러등을 하며 영국과 대립한다.
영화의 배경인 1979년에는 실제로 IRA가 루이 마운트백작을 폭탄으로 암살한 사건이 터진 해다. 이 사건으로 그의 가족들과 같이 요트에 있던 선원들까지 죽었고, 그가 아일랜드와 별로 척진 게 없기 때문에 아일랜드에서도 IRA의 행동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영화의 시작에서 IRA가 폭탄테러를 하면서 죄 없는 아이들이 말려들어 죽은 것이 묘사된 게 이러한 IRA의 상황을 나타낸다. IRA는 강력한 아일랜드의 독립의지를 보여줬지만, 아일랜드의 은행을 털어 자금을 마련하는 등의 행동으로 나중에는 아일랜드도 등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영국군이 아일랜드에 계속 못할 짓을 하고 일반인들까지 IRA로 몰아 죽인 숫자는 더욱 컸기 때문에, IRA가 민간인 희생자를 내고 강도, 살인등의 행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IRA가 정말 선하냐 악하냐를 딱 구분 지을 수 없는 모양새다. 그러다 1998년 벨파스트 협정 이후, IRA는 공식적으로 무장투쟁을 철회하고 정당을 만들어 민주주의 방식으로 대항하고 있다.
성자도 죄인도 없다
주인공인 핀바 머피(리암 니슨)는 2차 대전 군대를 다녀온 전직 군인이다. 전쟁에서 돌아오고 나니 아내가 죽었고, 그 우울증 때문에 방황하다 살인청부업을 하게 된 거라고 설명한다. 핀바는 지역 주민들과 잘 지내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인 킬러다. 그리고 마을에 숨어 들어온 IRA와 대립하게 된다. 이 IRA는 독립 투쟁을 위해 폭탄을 터트려 요인을 암살했지만, 죄 없는 어린아이들까지 말려들어 죽게 한 죄를 가지고 있다. 그럼 독립운동가는 폭탄테러범이고, 그 테러범과 킬러가 싸우는 내용이란 말인가? 이 지점에서 한국인은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정치권에서도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테러범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볼 때, 아일랜드의 상황과 일제강점기 상황이 정확히 매치되지 않는다는 시선이 필요하다.
특히 영화에 잘 언급되진 않았지만, 핀바 머피는 킬러 이전에 죄가 많은 사람이다. 그가 2차 대전에 참전했다고 하는 것에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 2차 대전 당시, 아일랜드는 내전 상황이었고 영국과의 관계 때문에 오히려 독일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공식적으로는 중립국을 선언하고 참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은 오히려 아일랜드를 침공하려 했고 이에 미국이 아일랜드를 점령해 연합국 기지로 활용한다. 이때 개인자격으로 참전한 이들이 있었고, 아일랜드에서는 이들의 존재를 크게 언급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한국이 해방 후 일본과 중국이 전쟁을 했다고 한다라고 가정했을 때, 한국인이 일본군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즉 핀바는 이제 막 독립한 나라에서 자신들을 식민지 삼았던 국가를 도우러 참전한 사람이었고, 거기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인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핀바는 킬러임에도 불구하고 인품이 좋은 할아버지처럼 나오지만, 사실상 영국을 도와 전쟁에서 공로를 세운 인물이고, IRA는 대의를 위해선 약자나 민간인에게 피해 입히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무자비한 인성으로 나오지만 사실 영국에 저항하는 독립군이다. 서로가 대의를 위해서는 반대편에 섰었지만, 이 영화에서 그 둘은 배경과는 정 반대로 서로의 개인적인 대립과 복수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
영국의 편에 서서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평생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을 살해한 청부살인업자가 정말 선한가? 아니면 죄 없는 민간인들이 같이 죽어도 폭탄테러를 하고 폭행, 협박, 강도짓을 일삼는 IRA가 선한가. 서로가 서로의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는 이들은 자신의 가슴속에 항상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며,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벌을 내린다. 마치 핀바가 읽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처럼.
영화를 보다 보면 자꾸 한국의 독립군의 상황 등이 생각나 미묘한 감정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영국-아일랜드-북아일랜드-IRA는 한국-일본 관계와 자세히 보면 많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을 대입하려 하기보다는 당시 북아일랜드가 겪어야 했던 많은 아픔들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역사 드라마이기 때문에 '리암 니슨'이라는 이름이 주는 액션 스릴러로써의 시원함이나 멋짐 등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저 우리는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그토록 많은 죄가 서려있다는 것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
- 다양한 감정의 파노라마
정말 마음이 아팠던 순간을 만나면 누구나 울음을 터뜨린다. 마음껏 눈물을 흘리면서 그 슬픔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면 마음속에 있는 무거움과 압박이 조금 해소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매 순간이 기쁨으로 가득 차있다면 물론 행복하겠지만, 실제 인생에선 기쁨을 느낄 시간보단 아픔과 슬픔을 느끼는 시간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슬픔의 감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 영화가 바로 <인사이드 아웃> 1편이다.
2015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기쁨, 슬픔, 까칠, 분노, 소심이라는 감정들이 11살 라일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무척 흥미롭게 보여줬다. 디즈니의 픽사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 감정들과 기억을 처리하는 공간을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창조해 냈다. 기쁨을 담당하는 조이가 조종간을 잡으면 라일리도 기쁨을 느끼고, 분노를 담당하는 버럭이가 조종간을 잡으면 화를 낸다. 실제 라일리가 느끼는 상황에 따라 감정이 변화하는 모습을 무척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쉽게 화면으로 담아냈다.
[첫 번째 감정] 불안
이번 <인사이드 아웃2>는 사춘기가 된 라일리의 감정들을 다룬다. 더 확장된 감정에 어찌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라일리의 모습과 감정들을 보여준다. 특히나 불안은 라일리의 행동을 흔드는 가장 큰 감정이다. 라일리는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 그리고 학업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불안은 라일리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불안으로 인해 라일리는 자주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영화는 라일리가 시험 성적에 대한 불안으로 밤잠을 설치고, 친구 관계에 대한 걱정으로 식사도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사춘기 청소년들이 겪는 공감할 만한 상황이다.
영화는 라일리의 불안이 어떻게 그녀의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불안한 감정에 휩싸인 라일리는 종종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작은 실수에도 크게 자책한다. 이러한 모습은 불안이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두 번째 감정] 당황, 따분, 부럽
불안만 있는 건 아니다. 불안이 주로 영향을 주긴 하지만 중간중간 당황이나 부끄러움을 느끼는 포인트도 늘어난다. 라일리가 학교에서 발표를 하다 실수를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말을 더듬는 순간들이 그 예이다. 특히나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반응했다가 실수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한 상황이다.
따분함을 느껴 누군가를 비꼬거나 무시하는 감정도 자주 찾아온다. 라일리는 수업 중에 딴짓을 하거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청소년들의 전형적인 태도로, 영화는 이를 통해 라일리의 감정 변화를 더욱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부러움도 청소년기에 많이 나오는 감정이다. 라일리는 반에서 인기 많은 친구나, 학업 성적이 우수한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이는 사춘기 시절 많은 이들이 겪는 감정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면서 생기는 부러움이 자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 번째 감정] 자아 형성
영화 초반 자아의 모습은 하얀색이거나, 빨간색이다. 단색으로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던 자아는 영화 후반에는 다채로운 색깔로 변화한다. 상황에 따라 색깔이 이리저리 변화되며, 이는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상징한다.
자아 형성의 과정을 사회심리학적 이론과 연결해 보면, 이는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과 관련이 깊다. 에릭슨에 따르면, 사춘기 시기는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라일리는 영화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며 자신의 자아를 찾아간다. 이는 에릭슨의 이론이 제시하는 자아 정체성 확립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이 과정을 통해 라일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점점 더 명확히 하게 된다. 이는 청소년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영화는 이러한 자아 형성의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내며, 라일리가 성장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담아낸다.
결론적으로 1편의 신선함에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훌륭한 픽사의 감정 세계와 감정의 작용 방식을 영상으로 무척이나 쉽고 감동적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라일리의 감정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사춘기를 겪는 모든 이들에게 큰 위로와 공감을 줄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감정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다양한 감정들이 조화를 이루며 우리의 자아를 형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사이드 아웃2>는, 감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
- 드디어 히어로에게도 행복과 일상을 묻다.
이 글은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목이 너무 길어서 아래의 글들에서는 모두 닥스 2로 줄여서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Phase4로 향하는 마블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새로운 히어로를 앞세운 영화들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익숙한 히어로들의 빈자리는 새삼 크게만 느껴졌다. 모든 영화가 다음 편을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는 마블 시리즈의 최대 불만은 적시타를 맞은 공처럼 튀어 올라 마블 관계자들이 하늘만 쳐다보게 하기 충분한 것만 같았다. 게임이 끝난 것 마냥 허망한 눈으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살얼음판 같던 마블의 명성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로 겨우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 리셋해놓은 판이었지만. 이 판의 우세한 승자가 마블이 될 것이라는 것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마블의 구원투수가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과 동시에, 코로나로 인해 거리 두기까지 끝난(?) 시점에 침체된 영화계의 부흥이라는 기대까지도 어깨에 얹은 채 5월의 징검다리 휴일에 개봉했다.
그가 부리는 마법이 이번에도 모든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 만큼의 위력을 발휘했을지는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공포 영화의 형식을 접목한 접근법도 꽤나 신선하고, 멀티 버스라는 장점을 십분 살려 볼거리도 가득하다.
마블 유니버스에서 닥스의 어깨에 놓인 책임감.;다시 생각해도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명배우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역은 마치 캐스팅부터 마블의 운명을 짊어진 것만 같다. Phase3까지는 아이언맨 등의 걸출한 영웅들에 가려져 할당된 분량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능력이 출중한 캐릭터임을 드러냈을 때 이 점을 관객들이 받아들이기에 큰 무리가 없어야 하는 아이러니가 존재했다.
제작진은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베네딕트 컴버배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모든 촬영 일정 등을 그에게 맞추는 등의 공을 들인 덕에 그를 캐스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여태 배우가 쌓아온 커리어 덕에 솔로 영화 한 편만으로도 관객들에게는 충분히 강한 힘을 가진 히어로로 각인될 수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새로운 마블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해내야 함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런 히어로에게도 마블의 현재 상황은 꽤나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멀티 유니버스라는 특성상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하는 것도 경험과 부담을 동시에 가진 작업이었을 테고.
그러나 영화 속 베니를 보고 있자면.
제작진의 직감이 절대 틀리지 않았음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그는 멀티버스에 존재하는 각각의 도플갱어들을 완벽히 다른 인물들로 재연해 내고. 피터 파커에 이은 아메리카의 훈육(?)도 완벽하게 해 낸다. 자신이 애써 피했던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인정하고 일상생활의 불안함을 즐기는 연기까지 보고 나면. 다시 한번 그가 얼마나 위대한 배우였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어마어마한 중압감에 눌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배우의 모습은 언제 봐도 응원하고 싶을 뿐이다.
왜 하필 공포인가;남은 자들에 집중하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제작 단계에서부터. 마블은 이번 작품이 공포영화가 될 것이라 말해왔다. 대형 프랜차이즈 히어로 영화에 공포라는 장르가 언뜻 매치가 되지 않을 듯 보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마블이 취하는(혹은 바뀐) 자세와 공포가 그 어떤 때보다도 잘 맞아떨어진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마블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은 누가 뭐라 해도 타노스의 블립이었다."5년전 그 일"이라는 단어로 불리며 제대로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는 인물들이 늘 존재했고. 떠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장면들을 매 영화마다 넣어 희생자들에 대한 생각으로 고개를 떨구는 히어로들을 그리곤 했다. 하지만 이 "의식"은 마블의 침체기와 맞물리면서 팬들에게 떠난 영웅들에 대한 아쉬움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가져왔다.
그러나 마블은 이제. 혹은 "드디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남은 자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부재로 가끔 긴 한숨을 몰래 쉬어야 하고. 다시는 누구를 잃지 않겠다는 마음과 지키겠다는 마음이 뒤엉켜 늘 불안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일상으로 돌아와 내 몸 하나 있을 자리를 겨우 유지해야만 했다.
이 불안함과 공포는 히어로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수많은 희생 위에 쌓아올린, 아직은 위태로운 평화를 위해 각자 다른 목표를 가진 인물들이 영화에서 충돌하지만. 모든 히어로 영화에서 그렇듯 반드시 한 쪽은 패하게 되어 있고, 그들의 염원이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들에서 공포를 느끼기 충분한 장면들이 만들어진다.
생소하다고 생각한 공포는 요소는 영화에서 크게 겉돌지 않는다. 가끔 이게 진짜 마블 영화가 맞을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들도 만들어 낸다. 공포를 순수한 무서움이라는 좁은 의미보다 두려움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영화는 정말 성공적인 시도를 해낸 셈이고. 마블이라는 이름 하에 조금은 격하되었던 영화의 "격"도 함께 올라갔음을 느낄 수 있다.
히어로에게도 행복은 존재한다.;행복은 환상이 아닌 현실에 존재한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케이크는 한 조각만 먹을 때 제일 맛있는 거예요.
스쿼트를 몇백 개(?) 하고, 울기 직전의 상태로 주저앉아있는 내게 트레이너 선생님이 해준 말이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인바디를 측정할 때마다 그 말이 조금씩 마음에 와닿았다. 고난이 없으면 케이크가 달게 느껴질 리가 없고. 그 감정을 느껴보지 못하면 고난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돌려 말해주신 것이었다.
완다는 케이크 한 판을 한 번에 먹는 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했다. 그녀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우주에 있는 것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늘 케이크보다는 쓰디쓴 맛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완다는 인정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꾼 셈이다.
영화는 완다의 행복을 향한 불가능한 여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히어로들에게도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예전의 마블 영화들은 정체성과 하늘을 찌를 듯한 의무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Phase 4에 다다른 마블은 이제 히어로에게도 능력에 대한 질문보다는 일상에서의 삶과 행복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던진다.
불안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딛어야 하는 삶이지만. 그럼에도 행복하냐고 묻는 것을 보니. 이제 진정으로 마블이 새로운 세대를 열 준비가 되었나 보다.
마치면서
마블 관계자들은 이제서야 안도의 한숨이라 부르는 것을 내쉴 수 있을 것 같다.
보는 내내 케빈 파이기와 샘 레이미 감독을 향한 찬사를 멈출 수 없을 만큼 즐거운 영화였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야 뭐 당연하고.) 애써 되찾은 마블의 명성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이기적으로 바라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의 최애 장면]
단연코 자비에 교수가 완다의 의식을 구해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샘 레이미 감독을 썼던 이유에 대해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음. 그 장면 때문에 영화를 두 번 세 번은 다시 보고 싶을 정도.
[이 글의 TMI]
1. 오이 오빠 소처럼 일해줘서 고마워요.
2. 오이 오빠 제발 내 시간과 돈과 사랑을 받아.
3. 우리나라 사람들 마블에 진짜 진심임. 개봉날 조조영화가 매진이라니.
#마블영화 #닥터스트레인지대혼돈의멀티버스 #베네딕트컴버배치 #샘레이미 #엘리자베스올슨 #베네딕트웡 #레이첼맥아담스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최신영화 #네이버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브런치작가 #Munalogi
-
- 초코, 설탕, 우유, 노른자를 섞으면 크림이 되니까
‘빼빼로 데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상업적 기념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 제과회사에서 시작된 ‘데이마케팅’ 그러니까 특정한 날에 특정 상품을 소비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지극히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빼로데이를 핑계 삼아 11일 아침이 되면 편의점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어차피 먹을 간식 오늘은 빼빼로를 사 볼까?’ 하게 되는 것이다. 몇천 원 정도로 회사의 팀원들과 달콤한 간식을 나눠 먹으며 피 – 식 하고 한번 웃을 수 있는, 아주 소소한 일상의 순간을 나눌 수 있으니까, 올해도 이 마케팅에 자발적으로 ‘당함’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달콤함을 입에 넣는 그 순간의 행복, 그리고 음식으로 마음을 나누는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스르르 녹아버리는 것만 같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요리가 왜 좋은지 알아? 직장 일은 예측불허잖아. 무슨 일이 생길지 짐작도 못하는데 요리는 확실해서 좋아. 초코, 설탕, 우유, 노른자를 섞으면 크림이 되거든 맘이 편해.”
줄리가 초코 크림을 섞어 핸드메이드 케이크를 만드는 그 장면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초콜릿의 화려함이나, [코안도르 양과자점]의 디저트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케이크지만, 다양한 영화 속에 나오는 달콤한 디저트보다, 나의 침샘을 자극한다.
나를 위해, 그리고 함께 먹을 한 사람을 위해 만든 초콜릿 케이크. 만드는 사람의 마음 치유와, 함께 먹는 사람의 기쁨까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초콜릿 케이크를 만드는 줄리는 전설의 프렌치 셰프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을 보며 365일 동안 총 524개의 레시피에 도전하는 중이다. 한 때는 글 좀 썼다는 줄리지만, 지금은 잘 나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존감을 잃는 일이 자주 생기고, 엄마는 잔소리만 늘어놓는다. 한 가지 일을 잘 끝내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블로그는 제대로 하고 말 거야.’라는 다짐 속에서 하나하나 요리를 시도하고 포스팅을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줄리가 524개의 레시피에 도전하는 바로 그 책을 쓴 ‘줄리아 차일드’는 1949년 외교관 남편과 함께 프랑스에서 살기 시작하는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생활에서 먹을 때 가장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고 요리학교 ‘르꼬르동 블루’를 다니며 요리 만들기에 도전한다. 줄리가 줄리아의 요리 도전하기 블로그를 운영하는 2002년의 그녀는 이미 전설적인 쉐프지만, 당시에는 남자셰프들이 대부분이었던 르꼬르동블루에 여자이면서, 프랑스어가 서툰 미국인일 뿐이었다. 무시와 차별 속에서도 줄리아는 허허허 웃으며, 때로는 의연하게, 때로는 당차게! 밤낮없이 칼질을 연습하며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2002년의 줄리도 1949년의 줄리아도 요리가 본업은 아니었지만, 무료한 일상 속에서 꿈을 발견하고 차근차근 한 걸음씩 목표를 달성해 가며, 꿈을 이뤄가는 가정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해 간다.
모든 사람이 꿈을 이루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상황 때문에 꿈을 포기하거나, 현실 때문에 꿈을 잠시 미뤄두기도 하고, 사는 게 바빠서 꿈을 잊기도 한다. 꿈을 꾸어야만, 또 그것을 이뤄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문득 공허함을 느끼거나, 내 초라하고 작게 느껴질 때, 일단 작은 ‘행동’이라도 해보는 게 어떠냐고 말해주는 영화.
나 역시 그랬다. 워킹맘으로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노동이기도 하지만, 때로 치유가 되기도 한다. 요리를 하는 동안 음식을 만드는 행위에만 집중하며 다른 것들 에서 한발 떨어지는 시간이 나에겐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기도 하다. 화려하고 멋짐 따위는 없는 너무 소소해서 요리라고도 하기에도 민망한 것들을 만드는데.
7살 3살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채소를 잘게 다져 계란물에 넣고, 슬라이스 햄을 넣어 계란말이를 하고. 싫어하는 음식재료를 꽃모양 커팅기로 잘라, 예쁘게 담아주면 일단 탄성을 지르며, 한입이라도 먹게 하고, 때로 생크림을 휘핑해 동그랗게 카스텔라에 얹고, 싱싱한 딸기만 얹어도 꽤 근사해서 ‘엄마가 만들어준 케이크가 최고’라고 말해주는데…
이런 단순한 즐거움과 작은 행복의 표정들로 밥을 먹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밖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내가 부족한 것만 같아서 작아졌던 마음, 고단한 하루의 끝에 워킹맘의 죄책감이 조금 상쇄되곤 한다. 나도 꽤 괜찮은 엄마지 하고.
초코, 설탕, 우유, 노른자를 섞으면 크림이 된다는 확실한 것을 해보면 맘이 편해지니까. 거창할 것 없는 작은 행동으로, 빼빼로를 나눠 먹는 작은 기쁨으로, 행복에 더 가까워지는 하루가 되길. 지금 뭐라도 당장 시작해 보는 오늘이 되길 그리하여 나는 꽤 괜찮다고 스스로 토닥여 줄 수 있는 그런 날들을 꾸려나가길.
-
- 언론인의 책무와 촘스키의 시민불복종 원리의 접점이 시사하는 것
일찍이 <여론조작>을 발표했던 노엄 촘스키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전에 부당하게 참전해왔다는사실을 알게 되면서 미국 정부의 행위를 크게 비판하는 한편으론 시민불복종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국가의 범죄를 막기위한 행동을 하는 것은 마땅하다. 살인을 막기 위해 교통 법규를 위반해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노엄 촘스키가 구체적으로 지정한 국가의 범죄란 당시 미국 정부의 베트남전 참전이었다. 한편 미국 정부는 베트남전이 시작된 이래로 군사적 개입은 일절 없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더 나아가 닉슨은 대외적으로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베트남에서 미군이 물러날 것처럼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베트남에서 공산진영(북베트남)의 우세가 두드러지자, 미국은 수많은 장병들을 베트남으로 보냈고, 그 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하지만, 결국 꼬리가 길면 잡히게 되는 법이다. 국가기밀로 덮어두기엔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상황은 좋지 않았고, 베트남으로 파병간 장병들의 사기도 날이 갈수록 떨어져갔다. 그런 와중에 뉴욕 타임즈는 다른 언론사들보다 먼저 ‘펜타곤 페이퍼’라고 불리는 베트남전 기밀문서를 입수하게 된다. 이 문서에는 정부가 시민들에게 숨겨온 베트남전의 기록과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영화 <더 포스트>는 바로 이 시기, 정부의 거대한 거짓과 부정한 권력에 맞서 언론의 자유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더 포스트>는 출판의 자유와 권력에 대한 견제로 언론의 역할을 보여주는 영화인 동시에, 캐서린이 남성중심사회에서 최초의 여성 발행인으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와 지위를 되찾기까지의 이야기도 담아내며, 위엄있고 우아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한편으론 다소 정적일 수 있는 소재를 속도감과 몰입감 있게 촬영하여 이야기 자체의 매력 또한 잃지 않고 있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어쩌면 미래에도 유효할 메세지를 담고 있다는 점, 영화속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도 높이 살만하며, 1971년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도 가감없이 반영하고 있다는 점, 이야기 자체도 속도감 있고 흡입력있게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고 하겠다.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오늘날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라웠고,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혔는데,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당시 트럼프 정부를 향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수 있겠다. 실제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미국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체제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기도 했다. 물론, 국내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국내의 특정 언론인 혹은 특정 언론들은 진실을 보도하는 것보다도 자신들의 관심사나 이익을 위한 기사를 쓰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언론의 책임에 대한 메세지와 부정한 권력을 향해 경종을 울리는 영화 <더 포스트>는 꽤 오랜시간 회자될만한 수작이다. 언론인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정보의 제공자가 될 수 있는 정보화 시대에서 각 개인들에게도 ‘진실’의 의미와 사회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볼만한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두 언론인의 남다른 무게
여기,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정반대의 입장, 정반대의 성격을 보이는 <워싱턴 포스트>의 두 언론인이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최고 경영자 캐서린 그레이엄과 편집장 벤 브래들리가 바로 그들이다. 영화가 시작된 이후 두 사람은 끊임없이 의견충돌을 겪는다. 우선, 백인 남성 중심의 전문직 사회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장으로 자리잡은 미국인 남성 벤 브래들리는 자신의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언론인답게 특종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날 <뉴욕 타임즈>의 1면을 가득 채운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특종을 접하자마자 벤의 관심사 역시 그쪽으로 쏠린다. 다만, 주목해야 할 점은 벤이 펜타곤 페이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특종을 놓치지 않으려는 언론인의 직업적 열정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는 점이다. 벤 역시 언론을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닉슨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으며, “출판할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출판이 답이다”라는 언론인으로서의 도덕과 책임감도 보이긴 하지만, 영화속 그에게서 보이는 상당 부분은 단순한 전문직 종사자의 직업적 열정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벤 : 케이(캐서린)만 용감한 건 아니지.
토니 : 당신이 잃을 게 뭐있다고.
벤 : 내 직장, 명성...
토니 : 벤, 왜 이래. 당신 명성은 광택만 더하게 될 걸 우리 둘 다 알잖아. 직장으로 말하자면 또 구하면 그만이고.
실제로 밴에겐 선택지가 많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케이의 선택을 용기있는 선택이라고 말한 토니와 벤이 나눈 대화를 참고해보면, 이 영화속 벤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다. 벤은 분명 언론인으로서의 열정과 도덕, 책임감을 갖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언론인이 아니더라도 전문직 남성들이 갖는 일에 대한 열정과 성공에 대한 욕망과도 같은 것들이 그에게선 언뜻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진정한 언론인은 벤이 아니다. 자신을 억누르는 사회속에서 당당하게 일어서는 사람, 모든 것을 걸더라도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 사회의 압력으로 움츠러들었을 뿐, 강인한 내면으로 다시 일어서는 사람. 바로 캐서린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주인공이다.
캐서린은 <워싱턴 포스트>의 최고 결정권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은 그녀에게 걸맞는 대우를 하지 않는다. 당시 미국 사회의 전문직은 백인 남성들에게만 열려있었다. 때문에 백인 남성이 대다수인 사회속에서 전문직 여성들은 은근하게 차별받고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영화 <더 포스트>에선 정당하게 회사의 경영권을 이어받았음에도 끝없이 그녀를 무시하거나 소외시키는 태도를 보이는 장면들을 연출한다. 캐서린의 조언을 듣지 않는 벤, 캐서린이 듣는 앞에서 그 자격을 논하는 아서, 이사회가 끝나고 세남자들의 뒤에서 걷는 캐서린의 모습, 이사회에서 일어나려는 캐서린을 한손으로 주저앉히는 증권거래인 등. 벤의 말 한마디면 아무런 말도 못하는 사무실과는 대조되는 캐서린의 환경은 전문직 백인 여성이 감수해야하는 사회적 압력과 시선을 과장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캐서린이 자신을 자꾸만 주저앉히려고 하고, 깎아내리는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자기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 당당하게 일어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때문에 캐서린의 성장담을 담아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투쟁의 과정에서 캐서린은 우아하고 위엄있는 방식을 택했기때문에 이 영화의 문체는 캐서린의 숭고한 투쟁을 닮아 품위있는 어조로 읽힌다. 덧붙여 캐서린 개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귀기울이지 않고 거리를 둔채로 그녀의 이야기를 적어가는 것으로 객관적인 시선에서 쓰고 있어서 이야기의 품격을 더하고 있다.
시민불복종과 언론인의 책무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71년, 미국 언론들이 다루었던 ‘펜타곤 페이퍼’의 내용을 읽게 된 미국 시민들이 받은 충격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1970년에는 캄보디아를 침공하기도 했으므로, 반전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1971년 5월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중 61%는 베트남전 개입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면 군입대 거부도 늘어났고, 베트남에 주둔하는 부대에선 탈영하는 병사들도 늘었다. 명령에 불복종하는 병사들도 있었으며, 반전 시위의 규모와 인식은 점차 커져갔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일련의 움직임들은 미국사의 대표적인 시민불복종 운동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위 엘리트 계층을 제외한 각계 각층에서 반전(反戰)의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시민불복종 운동의 최전선에는 바로 언론인들이 있었다. 영화속에서 보여지듯이,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한 언론인의 책무와 국가 기밀과 관련한 보안법을 지키는 일은 상충되는 것들이다. 시민들의 알 권리를 지키자면, 국가 보안법에 걸려서 불법적인 행위를 하게 되고, 합법적으로 말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딜레마에서 언론인은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비단 언론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 또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이글의 시작과 함께 소개한 노엄 촘스키는 이런 딜레마를 헤쳐가기 위해서 시민불복종을 강조한다. 실제로 1971년에 한 네덜란드 방송에서 그가 비유한 것을 해석하자면, 국가의 범죄를 막기 위해 국민이 저지르는 범죄는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분명한 기준과 인간본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의 결과로 얻어낸 정의로운 대의가 있어야만 시민불복종은 정당화될 수 있다. 미국의 베트남전 같은 경우에는 충분히 정당화될 근거를 갖추고 있다. 1971년 한해에만 미국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에 80만 톤의 폭탄을 떨어뜨렸다. 미국 정부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벌인 일련의 무력시위는 학살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이라면, 시민불복종의 권리를 행사해야 옳을 것이다. 우리의 국가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면, 우리 정부가 불법으로 지정한 행위를 통해서라도 우리 국가의 범죄를 막아야 할 것이다. 그게 바로 노엄 촘스키가 강조한 시민불복종의 의미이다.
영화 <더 포스트>는 바로 그 점을 인정한다. 반전시위에서 한 청년은 미국이라는 열차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기위해선 때론 몸을 선로에 던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캐서린과 벤은 국가 보안법에 위반되더라도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진실을 신문 지면에 쓰기로 한다. 캐서린과 벤은 이를 통해서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물론, 정부의 잘못된 선택을 교정하고자 한다. “헌법 제정자들이 언론의 자유를 준 것은 반드시 가져야 할 보호 장치이며, 민주주주의에 필수적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이다. 언론은 피치자에게 봉사하는 것이지, 통치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이유때문이다. 출판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통해서 권력기관들의 부패를 견제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언론은 억압받지 않는 위치에서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더 포스트>가 말하는 언론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노엄 촘스키가 당시에 말한 시민불복종의 원리와 닮아 있다.
<더 포스트>의 화두, 언론인의 시민불복종과 일반 시민의 시민불복종
여기에 아직도 유효한 루소의 사회계약론의 이론을 조금 빌려와서 말하자면, 행정부를 비롯한 국가 정책 결정권자들을 비롯한 국가 권력은 모두 시민에게서 양도받은 것들이다. 따라서 시민들에겐 자신들이 빌려준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 권리가 있으며, 그 알 권리를 수행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다. 300년 가까이 되어가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의 내용은 아직도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현대사회에선 새로이 추가되는 것들-요컨대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한 자본-은 있어도 그 뿌리가 흔들리는 법은 없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계속되는 한 언론의 역할과 책임, 그 중요성 역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더 포스트>의 화두는 자유민주주의가 존속하는 이상, 그보다 더 나은 체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유효할 것이다.
한편, “언론인의 책임과 의무”에서 조금 더 나아가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론의 역할도 역할이지만, 언론인 역시 일반 시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영화 <더 포스트>가 말하는 언론인의 역할을 다하는 행위와 노엄 촘스키의 시민불복종의 원칙에 접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영화는 비단 언론인 뿐만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부패하고 부정한 권력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2016, 12)되고, 영국의 브렉시트(2016, 06), 미국에선 급진주의자 트럼프가 당선된 시기(2016, 11)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지금 이 영화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
- 비가 오면 더 선명해지는 것
어린시절, 엄마는 비 오는 날 나를 데리러 온 적이 한번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업주부였기 때문에 데리러 올 법도했는데 그 때는 그걸 이상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고, 서운 한 적도 없었다.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으면, 그걸 핑계로 아주 심나게 비를 맞고 집에 갈 수 있으니까. 다른 아이들이 얌전히 엄마와 우산을 쓰고 집에 갈 때 나는 물 웅덩이로 뛰어들어 첨벙첨벙 놀다가 집에 갔다. 장화 같은 것은 없었으므로, 집에 돌아와 양말을 벗으면 발가락이 조글조글해져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 시절 비가 올 때 젖을까 걱정 하지 않고 빗속으로 뛰어 들어갈 때의 해방감과 기쁨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영화 노트북이 생각난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재회하던 노아와 앨리가 뜨거운 마음을 쏟아내던 순간. 어느 때 보다 아름답고 둘의 감정은 자유로웠다.
영화 노트북은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할머니에게 노트북에 적힌 노아와 앨리의 러브스토리를 읽어 주면서 시작한다. 이야기 속 인물은 시골 청년의 노아 그리고, 도시 아가씨의 앨리. 노아는 첫눈에 반한 여성 앨리에게 위험천만하게도 놀이 기구에 매달려서 자신을 만나달라고 하며 호기로운 데이트를 신청한다.
그녀의 친구들은 노아를 조롱하며 무시했지만,앨리는 당돌한 노아의 모습에 끌려 진심 어린 고백을 받아들이고 급속도로 친해지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17세의 노아와 앨리는 행복하고 뜨거운 여름을 보내지만, 부모님은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심하게 반대하고, 그 두사람을 떼어 놓기 위해 이사를 간다.
노아는 앨리를 그리워하며 365일 동안 365개의 편지를 보내는데, 둘의 사이를 반대한 앨리의 부모님은
그녀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전부 숨겨버린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서로의 마음속엔 서운함 감정과 오해가 생겼다.
노아는 세계 2차대전에 참전을 하게 되었고, 앨리는 부상당한 간호사로 전쟁중 병사들을 치료해 주다가 사랑을 고백하는 론과 약혼을 하고 결혼을 약속한다. 노아는전쟁이 끝난 후에도 앨리와의 추억이 있는 집을 수리하며 그곳에서 지낸다. 결혼이 코앞인 앨리는 우연히 완공된 집과 나란히 서 있는 신문의 노아를 보게 되고, 웨딩드레스를 맞추던 앨리는 신문을 보곤 노아를 찾아 나선다.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노아와 앨리는 뜨거운 재회를 나누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나누며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게된다. 사실 노아는 앨리를 하루도 잊지 못해 매일매일 그녀에게 편지를 썼고,그 편지는 앨리의 엄마에 의해 앨리에게 전해지지 않았단 사실도.
비가 오는 날이면 둘이 재회하던 그 장면이 자주 생각난다. 비로 인해 나를 둘러싼 자연의 색과 냄새가 선명해진 그 때 , 앨리의 감정도 선명해졌던 것은 아닐까? 쏟아지는 비 따위가 아무 상관이 없어지는 그 마음이 깊은 곳의 감정을 모두 끌어올려 준 것은 아닐까? 궂은 날이 나쁜 날은 아니다. 어쩌면 그 궂은 날이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는건지도 모른다.
-
- 송중기 스타일의 액션 /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 / 보고타: 기회의 땅 / 권해효, 이희준의 물오른 연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보고타: 기회의 땅"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
- 영화 자산어보 후기 / 실학자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생활 / 한국최초 어류도감 / 화려한 명품조연들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자산어보”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이준익 감독, #흑백영화, #사극, #인생띵작
-
-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 메인 예고편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연 꿈의 프로젝트,
그 시작에는 두 천재가 있었다!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의 부활을 위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정의할 '옥스퍼드 사전 편찬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책임자로 부임한 이는 수십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괴짜 교수 제임스 머리(멜 깁슨). 그는 영어를 쓰는 모든 이들로부터 단어와 예문을 모으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전국에서 편지가 빗발치던 어느 날, 머리는 고전을 풍부하게 인용한 수백 개 예문이 담긴 편지를 발견한다. 보낸 이는 닥터 윌리엄 마이너(숀 펜), 그의 천재적인 능력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사전 편찬 작업엔 속도가 붙는다. 하지만 윌리엄이 정신병원에 구금된 미치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
- 왓챠 <웨인> 공식 예고편
질풍노도의 시기지만 마음은 따뜻한 열여섯 웨인.
방금 사귄 애인델을 오프로드 바이크에 태우고 도난당한 아버지의 유산인 1979년식 슈퍼카를 되찾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