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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ong2023-12-25 16:03:19

이순신이 2023년의 관객에게 묻는 전쟁의 의미

<노량 : 죽음의 바다> 스포일러 없는 리뷰

 

마지막 전투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순신(김윤석)이다. 어느덧 전쟁 7년 차. 조선과 왜 나라(일본) 이젠 지쳤다. 희생자가 많은 조선. 이는 조선과 연합을 맡은 명나라도 마찬가지다. 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선조와 궁궐 안. 문신들은 전쟁을 금방 끝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조선 내부에서 전쟁에 대한 온갖 논의가 오간다. 하지만 대부분 ‘전쟁 후 조선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뿐이다. 답답한 이순신. 이 왜 나라 무리들을 그대로 놔두다간 화가 돌아올 것 같다. 이순신의 동상이몽이 조선 궁궐 내부의 신하들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본 내부에서도 전쟁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고니시(이무생)와 시마즈(백윤식)는 다이묘의 입장에서 대립하는 관계다. 이 둘에게는 과제가 있다.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조선에 있는 군대를 철수시켜라’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전쟁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고민하는 시마즈와 고니시. 둘은 이순신만은 놔두면 안 된다고 생각해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조선과 연합을 맺은 명나라의 장수들도 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 의리라면 죽고 못 사는 등자룡(허준호). 등자룡은 조선에게 우호적이었지만 진린(정재영)은 뭔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전쟁을 지속하는 게 맞을까? 진린의 머릿속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전운이 감도는 조선. 세 나라의 마지막 전투가 노량 앞바다에서 벌어진다!

 

 

 

신선한 시도

 

이 <노량 : 죽음의 바다>가 느꼈던 가장 큰 장점은 신선함이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전작과는 다른 노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의 첫 번째 목표는 <한산 : 용의 출현>과는 다르다. 짜릿한 액션 쾌감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런 이유로 <명량> <한산 : 용의 출현>처럼 멋진 이순신 장군이 나쁜 놈들 때려잡는 액션물을 기대했다간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 이 영화의 목표는 뭘까? 바로 반전(Anti-war) 영화다. 이 목표 아래에서 본작은 전작 <한산 : 용의 출현>과는 다른 노선을 취하고 있다. 가령 전작에서 1부는 2부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후반부 액션과 거북선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본작은 다르다. 본작은 사실상 1,2부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병사들의 생사여부가 장군들 몇의 판단에 따라 달렸다는 아이러니를 묘사해야 하고, 이 ‘이순신 3부작’의 핵심 키워드인 ‘의’라는 가치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작이 단순히 서사의 인과관계때문에 사용된 것과는 정반대다. 그리고 이 1부가 전개되는 도중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의 선택이 흥미롭다. 이 캐릭터들은 전쟁을 형상화하고 있다. 입체적인 특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전쟁 이기면 승리에 기쁠 것 같지만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복잡미묘함을 묘사한 것이다. 

 

 

 

전쟁의 비참함

 

이 영화가 반전영화로 기획된 근거를 다방면으로 읽을 수 있다. 그 하나의 예는 카메라 시점이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처음부터 이순신 장군의 전략가적인 면모에 강세를 두지 않는다. 이는 이 <노량 : 죽음의 바다>를 처음 기획할 때에 제작하는 입장에서 염두한 부분일 것이다. 일단 전작 2편과는 다르게 이 노량해전에 대한 기록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난중일기>에서 전장의 상황을 직접 묘사하던 이순신 장군이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휘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달할 것이 적다는 한계가 영화의 흐름과도 이어진다. 이야기 안에 판타지스러운 장면이 많이 들어가는데, 빈 공간이 많을 수밖에 없는 흐름을 상상력을 통해 영화의 에너지로 치환시킨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묘사하는데도 안성맞춤이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타국 병사들을 해치우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들어간다면 영화의 접근이 1차원적이게 된다. ‘임진왜란은 나쁜 놈을 때려잡는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에 근거한 감동만 느껴지는 것이다. 이걸 그대로 따라간 것이 전작 <명량>과 <한산 : 죽음의 바다>다. 영화가 굳이 같은 방식을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라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함으로써 이순신 장군의 최후까지 무게감 있게 연출하는 것이 나을까? 영화는 후자를 선택하고 있다. 생명의 무게감을 후반부까지 잇는 것이다.

 

 

 

비단 카메라뿐만 아니라 이야기 전개 상으로도 반전영화를 가리키는 소재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전작 두 편의 진주인공이었던 어떤 것이 등장/퇴장하는 방식, 병사 개개인에게 동기부여가 들어간 것, (아마 불호 평이 압도적으로 많을) 북과 꿈, 영화의 가장 첫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캐릭터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방식 등 이 영화는 전쟁의 비참함을 내내 머금고 있다. 이는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이라는 위인으로 전쟁이 얼마나 비극적인 것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읽힌다. 글쓴이는 이 시도가 신선했다고 생각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나 <1917>에서 봤던 서양 전쟁 영화의 씁쓸함이 이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압도하는 존재감

 

이 영화의 시마즈와 진린의 존재감은 주인공 이순신만큼 강력하다. 시마즈는 고니시과 함께 이 영화를 이끄는 빌런이다. 영화는 이 시마즈를 악마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 악마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특별하다. 우리가 아는 악마는 어떤 존재일까? 일단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다다를 수 없다. 하지만 악은 우리에게 다가갈 수 있다. 시마즈라는 인물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행보는 이 특성을 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는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시마즈가 조-명 연합군에 대해 처음 언급할 때 입 밖에 내는 대사와 이 인물의 마지막 장면은 완벽하게 대비되는데, 이를 염두하고 영화를 본다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정재영 배우가 맡은 진린 캐릭터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묘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순신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진린이 주인공을 묘사한다? 이질적으로 들릴 수 있는 문장이지만 글쓴이는 다른 측면을 말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의 세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순신이 취한 전략가적 면모를 적군이 아닌 동맹의 연합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진린의 과제다. 그리고 정재영 배우는 진린이 이순신에게 영향받은 모습을 강한 감정표현으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글쓴이는 이 캐릭터 사용법이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고 본다. 이는 전작 <한산 : 용의 출현>에서 변요한 배우가 맡은 ‘와키자카’와 비슷하다. 다만 등장인물이 처한 처지가 적군과 동맹군이라는 점이 다르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또 연기하는 방식도 차이점이 있다. 변요한 배우의 와키자카가 순수한 전쟁광을 맡았다면 진린은 기회주의적이지만 그 근거가 어느 정도 있는 인물이라는 점도 차이점이다. 글쓴이가 두 캐릭터 중 더 정이 들었던 건 진린이다. 와키자카가 좀 답답한 구석이 있었던 반면 진린은 조선 입장에선 박쥐 같은 느낌이지만 명의 입장에선 나름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물 연출에 있어서 김한민 감독이 더 좋은 방식을 고른 지점이다.

 

 

 

다만 글쓴이는 등자룡의 캐릭터가 진린과 시마즈에 비해 설명이 부족해 보였다. 이 인물의 작중 행보는 실제 인물을 그대로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인물을 이렇게 묘사했던 것도 나름 합리적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고 영화는 영화다. 이야기상에서 이 인물이 이런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면 이 캐릭터가 주는 정서의 힘이 더 강해졌을 것이다. 그냥 이순신과 친해서? 그래 보이진 않다. 뭔가 가치관과 어그러지는 것이 있어서? 그런 묘사도 없어서 글쓴이가 상영관에 있을 때는 갑자기 전개가 빨라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안에서 이 캐릭터가 겪는 사건은 거대한데 마음은 그곳으로 향하지 않으니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의’가 ‘왜?’가 되다

 

글쓴이는 이 영화가 가진 단점 중 하나가 사족이라는 말을 듣기 딱 좋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에서 김한민 감독이 진짜 전하고 싶었던 것들이 이 사족에 있다고 본다. 글쓴이는 영화를 보며 이런 요소들이 이순신 장군이 가진 숭고함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찾겠다는 김한민 감독의 의도를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령 이순신이 아들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누군가에게 서찰을 받고 어떤 행동을 한다. 이 서찰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 인물의 이름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이순신 장군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장면인 것이다. 또 영화에서 반복되는 어떤 소리, 러닝타임 다 끝나고 올라가는 쿠키영상에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반복되는 소리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이 아니듯 이순신 장군의 직업윤리가 후세대에도 빛을 발했다는 것을 청각적인 요소로 보여준 것이다. 또 쿠키 영상 역시 마찬가지다. 글쓴이는 이 쿠키 영상도 역사에 대한 코멘트라고 생각했다. 쿠키 영상에서 어떤 인물이 등장하는지를 주의 깊게 본다면 이 영화를 보는 폭이 넓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김윤석의 이순신

 

김윤석 배우의 이순신은 3부작 중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민식 배우와 박해일 배우의 이순신은 장군으로서의 위엄이 가장 중요한 캐릭터들이다. 가령 <명량>에서는 이순신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군대를 격려하는 장면에 방점이 찍혀있다. <한산 : 용의 출현>에서는 정적인 구도가 기억에 남는다. 이 정적인 구도는 영화에서 장점이자 단점이다. 멋진 박해일 배우와 진부한 플롯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작 <노량 : 죽음의 바다>에서는 정적이고 감정전달의 폭이 넓고 깊은 이순신 둘 다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 영화에서 ‘신파극이다!’라는 말을 듣기 딱 좋은 부분이 있다. 이 부분 연기도 김윤석 배우가 보여준 역량이 아니었다면 정말 신파극처럼 보이기 쉬웠다. 그리고 김윤석 배우는 목소리 톤을 내는 방식으로도 이순신을 표현한다. 진린과 대화하는 장면이 그런데, 일정한 톤으로 이순신의 결기를 표현하는 좋은 연기였다. 이는 아수라장인 전쟁터에서 감정표현이 드물다는 인물의 특성을 통일성 있게 끌고 가는 좋은 선택이었다.  

 

 

 

이걸 기대하고 간다면

 

이 영화에 대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액션이다. 사실 이 영화 자체가 반전이라는 테마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연출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건 김한민 감독과 (나와 같은) 일부 영화팬들의 입장이다. 당연히 이순신, 그것도 김윤석의 이순신이 멋진 액션으로 왜 나라를 해치우는 액션물을 기대하고 갔다면 실망한다. 롱테이크? 조명? 촬영? 다 처절한 병사들의 모습만 보여줄 뿐 엄청난 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글쓴이는 이 <노량 : 죽음의 바다>가 대중적으로 큰 흥행을 할 영화 같지는 않아 보인다. 

 

 

또 전작 <명량> <한산 : 용의 출현>에서 구사했던 간단한 플롯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김한민 감독이 두는 선택이 좀 오그라들 수도 있다. 1부는 무미건조하다. 그래서 지루하게 느끼기 쉽다. 그러나 후반부는 또 다르다. 쿠키와 엔딩이 그런데, 약간 과해보이기도 하다. 글쓴이도 이 부분은 감독이 놓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명량>에서 국수주의적 대사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던 김한민 감독이, 과연 이 선택 말고 다른 건 없었을까? 싶다면 글쓴이 입장에서도 ‘아니요’다. 차라리 그냥 존재만 언급하고 끝난다면 더 이야기가 입체적일 뻔했다.

 

 

작성자 . udong

출처 . https://brunch.co.kr/@ddria5978uufm/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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