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목필2025-03-23 09:57:14
무수히 생산되는 '나' 속에서 진정한 내 이름을 찾기.
영화 <미키 17>

자본과 번호, 이름과 사랑
퇴근하고 잔뜩 지친 몸을 이끌어 지하철에 오른다. 각자의 온도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의 뜨끈한 등과 어깨를 꾹, 꾹 밀며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 본다. 한 정거장 지나자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순간, 당신의 눈이 드물게 번쩍 빛난다. 그러나 옆에서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던 중년 여자가 당신보다 훨씬 빠르게 엉덩이를 붙여버린다. 당신은 미간을 팍 구기고 다시 고개를 숙여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다. 유해한 도파민이니, 뇌세포를 파괴한다느니의 말들은 쓸모없다. 무의미한 작은 직사각형의 세상으로 당신은 있는 힘껏 오늘로부터 도망친다.
결국, 21 정거장 내내 서서 온 당신은 길거리에서도 핸드폰에 눈을 떼지 않는다. 아무리 편한 운동화를 신어도 언덕을 오르는 종아리는 풍선처럼 부풀어 터질 것만 같다. 당신은 길고도 긴 여정 끝에 엘리베이터를 타 버튼을 누르다가 무심코 거울 속 자신과 마주한다. 그 속의 사람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당신의 자리가 아닌) 당신의 자리를 뺏은 중년 여자와 얼굴이 겹쳐지면서, 핸드폰으로 겨우 외면했던 질문이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내가 원래 이런 표정이었나?"
나는 정말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름 모를 여자와 비슷하게 생긴 거울 속 나는 몇 번째 '나'일까?
블랙 코미디 + SF + 우화의 공식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지독히 사실적이면서도 어쩐지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블랙 코미디 + 우화' 공식으로 성공한 작품을 말하자면 당연히 <기생충>(2019)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자본과 계급으로 분명하게 나뉜 두 가족의 이야기를 보면 속이 울렁거리면서도 어쩐지 헛웃음이 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폭싹 젖는 감각이 생생한 동시에 몽롱한 동화 같으니 말이다. 한국 SF 장르와 봉준호 감독 세계관에 한 획을 그은 <설국열차>(2013)도 디스토파이 세계관에서 아주 긴 열차 칸으로 나뉜 계급 이야기다. 위와 아래, 앞과 뒤. 뒤집으면 언제든 서로가 될 수 있는 구조. 그는 열과 행의 이미지로 끊임없이 자본주의에 잠식된 현재와 미래를 그리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그의 대표적인 크리처 무비인 <괴물>(2006)과 <옥자>(2017)도 전체적인 세계관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빠질 수 없다. 이렇게 계승한 블랙 코미디 + SF + 우화로 더욱 견고해진 봉준호 감독의 작가 주의 세계관을 통해 <미키 17>(2025)이 세상에 나왔다.
<미키 17>은 지구가 멸망을 앞둔 디스토피아적 근미래 배경이다.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자고 주장하는 이들과 망가진 지구를 어떻게든 고쳐서 쓰자 주장하는 정당의 대립이 이루어지는 혼란함 속에서, 친구 '티모'와 차린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해 거액의 빚을 진 주인공 '미키'는 빚쟁이를 피해 지구를 떠나려고 한다. 얍삽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티모와 달리 자존감도 낮고 기술도 없었던 미키는 어떻게든 영토 개척 프로젝트 우주선에 탑승하기 위해 모두가 기피하는 '익스펜더블'에 지원한다. 접수를 받는 직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지원서를 제대로 읽었는지 몇 번이나 물어봤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익스펜더블은 진짜 '극한 직업'이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모두 미키를 앞세운다. 우주선을 고치는 줄 알았더니 사실 방사능 실험이었고 끔찍한 고통 속에서 어떻게 몸이 망가지는지 설명해줘야 한다. 4년의 항해 끝에 도착한 얼음행성 '니플하임'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있을 수도 있으니, 당연히 미키가 먼저 땅을 밟고 있는 힘껏 공기를 마신다. 그리고 피를 토한다.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몇 번이고 죽음은 미키'들' 덕분에 다른 요원들도 마음껏 차가운 입김을 볼 수 있게 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사랑은 꽃핀다. 주변 사람들의 무시와 일상에 도사리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미키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나샤'의 사랑이다. 미키는 어떤 상황에서도 늘 곁을 지켜주는 나샤를 사랑하면서도, 최고의 요원인 그녀가 왜 하찮은 자신을 사랑하는지 의문을 품으며 그녀를 내조한다.
그날도 17번째 미키는 추락사로 몸이 반토막이 나 죽었어야 했는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얼떨결에 살아남아 지나가던 티모에게 구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티모는 떨어진 무기만 챙기고 다친 그를 향해 재수 없는 질문만 툭 던진다.
"죽는 건 어떤 느낌이야?"
그렇게 덩그러니 남은 미키는 행성의 주인인 '크리퍼'에게 잡아 먹히며 최후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크리퍼는 잡아먹긴커녕 미키를 질질 끌고 가 얼음 동굴 밖으로 내보낸다. 크리퍼가 자신을 눈밭에 던져 얼려 죽일 작정이라고 생각한 미키 추위에 떨며 힘겹게 함선으로 돌아온다. 잔뜩 지친 몸을 침대에 내던지는 순간, 어떤 인기척에 이상함을 느끼고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또 다른 자신, 미키 '18'과 마주한다.
복제의 사이클
'익스펜더블'은 사뭇 다른 원작과 영화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까지의 '복제 인간'과 다른 점은 미키가 자신이 익스펜더블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이것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징그럽고 코믹한 정치인 마샬 부부의 영토 개척지 정책의 핵심은 좋은 유전자로만 구성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몇 번이나 복제된 미키는 불량품에 불과하다. 나샤와 카이, 과학자 도로시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도 미키가 느낄 고통과 죽음을 경시한다. 죽음에 대한 무례한 질문을 던지고, 누구도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살피지 않는다. '그게 네 쓸모고 직업이야.'라는 폭력적인 말 한 마디면 미키마저도 고개를 끄덕이니까. 과학자와 의료진도 처음엔 프린팅 되는 몸을 잘 받아줬지만, 나중에는 바닥으로 꼴사납게 떨어져 구겨진 몸에 주사 바늘을 꽂을 뿐이다.
시체, 쓰레기 등 자본과 사회의 찌꺼기는 모두 '사이클러'에 던진다. 용광로처럼 생긴 사이클러는 단순히 쓰레기를 소각하는 게 아닌, 단백질을 다시 분해하고 재생산해서 다음 미키를 만들어내고 선원들의 식사가 된다. 익스펜더블이 아닌 인물들도 자기도 모르게 이 사이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셈이다. 미키는 끊임없이 소각되고 다시 출력되며, 권력에 의해 멸시받는 노동자들의 응집된 몸이 된다.
꼭 프린터기에 들어가야만 복제 인간의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마샬 부부는 특히 우수한 가임기 여자 요원들에게 관심이 많다. 그들이야말로 자신들의 원대한 계획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궁, 아니 열쇠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샬 부부를 향한 카이의 날카로운 질문처럼 그들에게 여성은 다른 의미의 '인간' 프린터다. 인류 번식과 자신들의 부를 위해 끊임없이 노동자를 출산할, 인간이지만 프린터의 역할을 해줄 존재들인 것이다. 그래서 크리퍼와 인간의 첫 대면에서 미키가 아닌 제니퍼가 죽었을 때 추악한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카이와 제니퍼가 연인 사이인 줄도 모르고, 여성이라면 당연히 남성과 결합해 아이를 생산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거란 편견도 끼얹으며 말이다.
다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일파 마샬은 이상하리만치 '소스'에 집착한다. 살아있는 베이비 크리퍼의 꼬리를 잘라 바로 믹서기에 갈아버리는 장면은 경악스럽다. 굳이 손가락에 찍어 맛을 보라고 권유하고, 배양육인지도 모르고 게걸스럽게 고기를 먹는 미키에게 메인 디쉬가 아닌 소스 맛이 어떤지 묻는다. 이렇듯 소스는 일파가 강력하게 표현하는 권력의 상징이자 일개 노동자들과 자신의 차이다. 효율을 위해 정해진 칼로리 안에서 구역질 나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닌, 맛과 건강을 추구하고 음미하는 삶이 최고의 권력인 것이다. 미키를 공개적으로 무시하긴 하지만, 마샬 부부의 눈에는 다른 노동자들도 비슷하다. 노동자 1, 노동자 2, 비위를 잘 맞추는 노동자, 말을 안 듣는 노동자. 선원들은 자신들을 미키와 달리 분명한 이름과 존엄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겠지만, 부부의 시선에선 언제든 대체 가능하고 휴지 조각 같은 존재들일뿐이다. 생존을 인질로 잡고 있는 자본의 힘이 있는 한 사이클러는 무엇보다 뜨겁고 부지런히 권력을 위해 움직인다.
인간보다 나은 크리퍼
’Creepy’에서 유래된 이름인 ‘크리퍼‘는 마마 크리퍼를 중심으로 완전한 공동체 생활을 한다. 인간의 시선에선 낯선 외형이 두렵고 징그럽긴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니플하임에 마음대로 정착해 들쑤시고 다니는 인간이야 말로 외계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저 이름도 꽤 무례하게 느껴진다.) 애초에 크리퍼들은 인간을 잡아먹는 생명체도 아니었고, 유일한 친구인 티모마저 외면한 위험에 빠진 미키를 구해준다. 미키는 크리퍼의 의도를 완전히 오해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나샤는 '크리퍼가 구해줬다'라고 정확하게 짚어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2000)를 본 사람들이라면 크리퍼를 보자마자 ‘오무’가 떠올랐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 나라와 나라의 대립을 그린 영화로 주인공 ‘나우시카’가 전쟁을 멈추기 위해 오무 무리들과 소통하는 장면은 미키가 통역기를 사용해 크리퍼에게 곧 가스가 살포될 테니 도망치라고 알리는 장면과 비슷하다. 크리퍼가 본격적으로 서사에 등장하는 시점부터 영화는 어쩐지 애니메이션처럼 보인다. 이러한 지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장르 믹싱 기법이 눈에 띈다.
크리퍼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소통하며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미키의 이름도 잡혀있는 베이비 크리퍼 ‘조코’를 통해서 들었을 것이다. 마마 크리퍼는 외형이 똑같은 두 베이비 크리퍼의 이름을 정확히 구분한다. 죽은 아이는 ‘로코’, 잡혀 있는 아이는 ‘조코’. 마마 크리퍼를 중심으로 하나의 정신을 공유하지만, 그들은 명확하게 각자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으며 공동체가 힘을 합쳐 움직여야 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잘 알고 있다. 외형도 전부 다르고 고유한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치환되는 인간들이, 정작 동료가 위험에 빠진 순간 힘을 합치는 이들은 지극히 소수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아마 미키가 크리퍼였다면 마마 크리퍼는 단순히 그의 이름에 번호를 붙여 구분하는 단순하고도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익스펜더블이라는 비윤리적인 직업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고, 더 앞서 삶의 터전인 행성을 그렇게 오염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역사를 넘나들며 과학적,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으니 당연한 대가라는 말은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받은 만큼만 되갚고, 선의를 보이는 이에게는 관용을 베푸는 태도. 이러한 크리퍼의 자세에서 우리는 진작 갖추어야 할 인간성을 배운다.
나를 마주하기
영화는 미키 ‘17’과 미키 ‘18’이 대면하면서 본격적인 위기에 닥친다. 미키 18은 지금까지 누적된 미키의 정보를 다운로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키 17과 완전히 반대의 성격이다. 뭐만 하면 죽여버린고 말하며 높은 폭력성을 띄고, 대책 없이 충동적이며, 엄청 밝힌다. 17은 자신을 가차 없이 죽이려는 18과 몸싸움을 하면서 나샤에게 전해 들었던 지금까지의 미키와는 차원이 다른 녀석이라는 걸 실감한다.
시간을 앞당겨 익스펜더블이 윤리적 논란에 휩싸였을 때로 돌아가본다. 악용하는 사람이 생길 거라고 주장하자마자 한 미친 과학자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위해 '멀티플'을 만들어 노숙자를 죽인다. 둘도 아니고 셋이나 만들어 무고한 이들을 잔인하게 죽인 사건을 계기로, 익스펜더블은 공식적으로 지구 안에서 시행이 금지되며 멀티플은 중범죄가 된다.
다시 돌아와 미키 18을 죽이려고 나름 노력해 보는 미키 17의 눈을 보자. '또 다른 나'와 처음 마주한 그는 이제 곧 세상에서 사라지고 죽을 거란 공포와 자신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다는 놀라움, 혼란 등에 빠져 제대로 대항하지 못한 채 몸이 반쯤 사이클러 속에 들어간다. 반면, 미키 18은 17에 대한 확실한 반감이 있다. 거울을 보듯 겁에 질린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모습에 17은 더 혼란스럽다.
비슷하지만 미세한 차이점이 있는 얼굴로 나란히 서있는 둘의 모습은 마치 자아 분열의 가시화된 것 같다. 얼음 동굴에서 무심코 쓰레기를 버리듯 던진 티모의 질문은, 실험쥐처럼 수없이 이용당하는 미키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자기 방어와 누적된 폭력성을 발현시킬 트리거로 작용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미키 17이 처음으로 욕하고 분노하는 존재가 18이라는 점이다. 처세술에 강하고 얍삽한 티모를 비꼬는 발언은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부당함을 주장하거나 무례함에 대응한 적 없던 미키 17은 나샤에게 접근하는 또 다른 '나'를 향해 화를 참지 못한다. 심지어 마샬 부부와의 만찬에서 입에 올리지도 못할 끔찍한 고통과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7이 씩씩 거리는 대상은 다름 아닌 18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호기심에 빨간 버튼을 눌러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미키는 죄책감에 모든 우선순위에서 자신을 제외한다. 17의 이러한 위축된 태도는 18의 화를 키운다. 만찬에 초대해 놓고 실험 중인 배양육을 먹인 것도 모자라, 타인의 목숨보다 카펫이 소중한 부부에게 뭐라고 하고 나왔냐는 질문에 17은 작은 목소리로 답한다.
"저녁 식사 감사하다고... 하고 나왔어."
그런 수모를 겪고도 감사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냐고 불같이 화를 낸 18은 당장이라도 케네스를 죽이겠다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정말 그를 향해 망설임 없이 총구를 겨눈다. 폭발하는 공격성이 온전히 '나'를 지키기 위해 표출될 때, 관객은 17을 향한 18의 반감이 애증이었음을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미키 18은 17과 대치하던 중 티모를 보자마자 사이클러에 던져 죽이려 든다. 비록 분열된 두 사람이지만 미키가 처음으로 자신을 지키려고 시도한 순간이었다.
내가 너라서 알 수 있는 열등감과 자기혐오, 그리고 트라우마. 빨간 버튼 따위로 사고가 날 만큼 자동차를 엉망으로 만든 회사 잘못이라는 18의 말은 평생 미키가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그는 무모하고 폭력적인 또라이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용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뻔해도, 결국 우리를 구하는 건 사랑
서로 으르렁 거리는 17과 18 사이에서 혼자 신난 사람은 다름 아닌 연인 '나샤'다. 지금껏 다양한 미키를 봐온 나샤는 정반대 성격의 두 미키를 보며 굉장히 흥분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신날 수 있냐는 미키 17의 질문에 그녀는 '반대 상황이라면 너도 나처럼 좋아할걸?'하고 가볍게 받아친다. 멀티플인걸 숨겨줄 테니 미키를 나누자는 카이의 말에는 불같이 화를 낸다. 16이든 17이든 18이든, 나샤에게 미키는 오로지 단 한 명이니까.
나샤는 엉뚱한 면이 있지만, 인정받은 소수 정예 엘리트 요원으로서 단단한 내면과 외면을 갖춘 인물이다. 미키는 다방면에서 월등한 그녀가 대체 왜 가장 낮은 계급인 자신과 사랑을 나누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바이러스와 각종 실험으로 죽어가는 미키를 두고 볼 수 없던 그녀는 직접 진공복을 입고 실험 캡슐 안으로 들어간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자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서 희생하는 자를 돌본다.
베이비 크리퍼를 구하기 위해 몸이 묶인 채 이로 밧줄을 잡은 나샤는 미키에게 신호를 받고 'C3' 전략을 펼친다. C3는 아기를 안는 것 같은 자세로, 미키와 나샤의 섹스 체위 중 하나이다. 칼로리마저 철저히 계산하고 먹어야 하는 우주선 안에서 섹스는 가장 비효율적인 에너지 활동이다. 마샬 부부는 생존을 빌미로 니플하임에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섹스를 금지시키지만, 그들은 장난으로 체위를 그려가며 계속 몸을 겹친다. 나샤가 미키의 전략으로 베이비 크리퍼를 구해 눈밭을 달리는 장면은, 그들의 섹스가 결여된 존중과 냉소적 자본주의로 만들어진 노동과 권력보다 더 가치 있음을 증명한다.
케네스와 대치하던 18은 기어코 죽음의 순간을 마주한다. 그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은 케네스는 그런 감정이야 말로 인간성의 증거라고 자극한다. 그러나 미키 18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나샤와 함께 서 있는 미키 17을 보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줄 사랑이야말로 지금 모두에게 필요한 본성이라는 것을. 뒤에 붙는 거지 같은 숫자 따위는 집어치우고 미키 '반스'라는 이름을 되찾기 위해, 지금까지 그들을 괴롭혔던 동그란 버튼을 꾹 누른다.
거대한 스케일의 SF 영화로 봉준호 감독은 사랑을 말한다. 너무 큰 서사와 화제성에 비해 작은 주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만 더 고민해 보자. 사랑이 조금 뻔하긴 해도, 작았던 적은 없다. 우리는 언제부터 나를 사랑하는 것도, 너를 사랑하는 것도 식상한 말처럼 느껴져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나? 무수한 호칭에 짓눌려 더미 속에 묻혀버린 내 이름을 건져 먼지를 툭툭 털어주고, 어쩐지 낯선 내 얼굴도 한 번 바라보자. 그리고 힘이 남는다면 아끼는 이들의 이름도 찾아 숫자는 치워버리고 광이 나게 닦아보자. 미키와 나샤, 크리퍼의 사랑으로 우리는 그 가치를 배웠으니까.
무수히 생산되는 '나' 속에서 진정한 내 이름을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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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감정을 찾아서
우리 모두는 감정적으로 행복한 순간들을 기억에 담아둔다. 그 기억을 담으면서 주변의 분위기, 음악, 풍경들까지 한꺼번에 담아둔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 음악을 들으면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어떤 장소에 가면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게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그 주변의 분위기나 무언가를 같이 기억한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은 원래 시리즈의 타임라인 가장 앞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 외계인 침투의 원인과 참상을 자세히 다루기보다는, 그 당시 한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전 시리즈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줬듯이, 이번 프리퀄에서도 시한부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시리즈는 소시민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주인공 사미라와 그의 고양이 프로도와 함께 하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사미라는 도시 밖으로 탈출하지 않고 도시 중심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과거의 추억이 있던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먹기 위함이다. 일반적인 재난 영화들이 도시 밖으로 탈출하는 걸 보여주었지만 이번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은 위험한 도시 안으로 더 들어간다는 측면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첫 번째 감정] 사미라의 고집
사미라는 암 말기 환자로 호스피스에서 생활한다. 그녀가 처음 등장할 때 표정은 어둡다. 삶의 의지를 거의 잃은 듯한 표정이다. 그래서 그는 상담 세션에도 무척이나 고집스럽게 행동한다. 반항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행동에는 절망이 섞여 있다. 더 이상 새로울 것 없고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병원에서 마련한 위로 공연에도 가지 않으려 하던 사미라는 간호사가 밖에서 피자를 사준다는 약속을 한 이후에야 몸을 일으킨다. 꽤나 고집 있어 보이는 그의 모습은,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 고집이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의지였다.
그 고집스러움은 그녀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저항이었다. 삶의 끝자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원했던 마지막 순간을 위해 힘을 내는 그녀의 모습은 고집이 아닌 생존의 의지로 비친다. 외계인의 공격에 잠시 흔들리긴 하지만 그에게 진짜 무서운 건, 살아서 자신의 추억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래서 그녀의 고집은 충분이 공감할만하다.
[두 번째 감정] 사미라의 추억
사미라가 이 영화에서 생존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이유는 바로 추억 때문이다. 추억으로 돌아가는 그 과정에서 그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며 생존을 위해 노력한다. 고양이와 함께 자신의 고통을 참아내며 결국 그녀는 추억의 피자가게로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그는 외계인들에게 쫓기고 온갖 위험한 순간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그녀가 만나고 싶어 하는 추억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있는 공간이다. 그 장소에 도착해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미소를 짓는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는 삶의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행복해한다. 그 추억을 또 다른 생존자인 에릭이라는 남자와 함께 기억하고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긴다. 영화에서 그 순간은 가장 감성적으로 담긴다.
외계인은 밖에 있지만, 사미라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삶의 목적을 모두 이룬 것 같은 표정이 사미라에게서 보인다. 에릭과 함께, 아버지가 과거에 공연하던 그 무대에 올라 마법 트릭 쇼를 같이 하면서 두 사람에게 밝은 햇살이 비춘다. 그 따뜻한 추억이 그녀에게 삶의 마지막 빛을 비춰주는 것이다.
[세 번째 감정] 사미라의 희생
자신과 추억의 장소에서 같이 따뜻한 감정을 나눈 에릭은 사실 살아갈 이유가 더 많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위험한 순간에 늘 공황의 감정을 느낀다. 순간 그의 몸이 멈추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입에선 저절로 비명이 나오려 한다. 사지가 멀쩡하고 아픈 곳이 없는 그가 오히려 사미라 보다 훨씬 약한 사람처럼 보이는 건, 그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에릭은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혼자 도시를 탈출하기보다는 사미라와 함께 도시 안으로 들어간다.
사미라는 자신의 옆에서 힘을 주며, 추억이라는 선물을 준 에릭에게 마지막 선물을 준다. 그건 바로 에릭이 도시를 무사히 탈출할 수 있는 기회다. 수많은 외계인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소리를 이용해 다른 곳으로 외계인들을 유인하는 것이다. 사미라는 그렇게 최대한 자신이 희생하여 에릭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한다. 에릭은 사미라의 희생을 보고 전속력으로 앞으로 달려간다. 그 순간 모든 외계인은 사미라에게 몰려가고, 에릭은 영화 안에서 가장 용기 있게 앞으로 성큼성큼 뛰어간다.
사미라에게 그 희생은 가치 있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며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녀의 희생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사랑과 추억을 나눈 사람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사미라의 삶은 여기서 끝나지만, 그 삶과 감정, 추억은 에릭이라는 사람을 통해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달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은 사미라의 감정과 이야기에 집중한 영화다. 전작들에 비해 숨 막히는 긴장감이 조금 덜어졌고, 주인공에게만 관대한 설정들이 이어져 다소 맥이 풀리지만, 그래도 한 사람의 감정과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측면에서는 기존 시리즈의 특징을 그대로 넣으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시리즈 팬들에겐 부족할 수 있는 영화지만, 일반 관객들은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시리즈다. 사미라의 감정들을 확인해 보면 어떨까. 이 영화는 우리에게 기억의 소중함과 그 속에 담긴 감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사미라의 고집, 추억, 희생은 결국 우리 모두가 삶에서 겪는 감정들이며,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번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의 연출을 맡은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은 특유의 긴장감 조성과 감정의 디테일한 표현으로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의 연출은 음향의 극적인 사용과 시각적 서사에 중점을 두어, 관객들이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며 영화 내내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한다.
루피타 뇽은 사미라 역을 통해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사미라의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표현하며, 관객들을 그녀의 감정선으로 깊이 끌어들인다. 조셉 퀸은 에릭 역을 맡아 그의 내면의 갈등과 생존 의지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사미라와의 케미스트리를 완벽하게 구현해 낸다. 디몬 하운수는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캐릭터의 복잡한 감정을 충실히 표현한다. 알렉스 울프는 연약해 보이지만 강한 생존 본능을 지닌 캐릭터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렇듯 감독과 배우들의 조화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을 단순한 프리퀄 그 이상으로 만들며, 감정의 깊이와 서스펜스를 동시에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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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영화에 발을 담그는 동시에 내가 딛는 모든 게 넓어지고 깊어지는 경험을 나누기 위해 계속 노력할 계획입니다. ” 크리에이터 '백록'님 인터뷰
이번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계신 ‘백록’님과 함께 대화를 나눠보았는데요!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백록님의 이야기를 만나 보시죠.
크리에이터님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씨네랩에서 백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고, 현재 졸업 후에 영화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습니다.
필명은 혹시 어떻게 선정하시게 되신 거예요?
글을 써보자는 결심을 하고나서, 필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제 이름 중 가장 좋아하는 성(‘백’)에 ‘록’을 붙여서 완성하게 되었어요. 외자에서 오는 느낌을 좋아하고, ‘록’이라는 단어에 녹색, 사슴, 영어의 ‘뒤흔들다(Rock)’ 등 제가 좋아하는 의미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쓰게 됐어요.
영화를 (복수)전공하셨다고 들었어요. 많은 전공 중에,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으셨나요?
원래 영상 쪽에 관심이 계속 있었는데 전공을 하겠다는 확신까지는 없었어요.
대외 활동을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하게 되면서, 여러 업무를 하다가 단편 영화 제작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살아있다고 느끼게 되었고, ‘영화’라는 분야를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영화 전공 하시는 분들 보면 어떤 영화가 좋아서 전공을 했다 이런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계기가 되는 영화도 혹시 있나요?작품이 계기가 되지는 않았어요.
저에게 영화는 당연한 취미 생활 중 하나였는데, 직접 제작 과정을 경험하니까 그냥 그 자체가 재미있더라고요. 그렇게 관심이 이어져서 지금은 작품들도 많이 파고들면서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백록님의 추천 영화, <콜레트>(2018))
크리에이터로서 영화를 보고 긴 글로 리뷰를 남기시잖아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시나리오 작성과 전혀 다르죠. 어쩌다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처음은 사실 작년에 같이 영화 동아리를 하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우연히 그 영화를 보고 영화 얘기만 주구장창 하는 모임을 가지게 되었어요.
별 기대 없이 간 첫 모임에서 6시간 넘게 영화 얘기만 하는데도 말이 안 끊기고 너무 재밌는 거예요. 지금까지 혼자 보면서 했던 생각들이 ‘대화’가 되니까 더 집중하게 되고, 영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그 경험이 아무래도 졸업하면서 끝나 버렸거든요.
또, 사실 말하면서 하는 건 즐겁지만 남기지 않으면 다 휘발되어 버리잖아요. 그게 살짝 아쉬워서 모임도 못하는 겸 이제 진짜 글로 한번 남겨보자 해서 처음 길게 남기기 시작한 작품이 <연소 일기>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그러면 처음 <연소 일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처음 쓴 글을 지금 보면 사실 정말 체계가 없는 날 것의 글이예요. 그때도 나름은 정돈해서 쓴다고 쓴 게 그거였거든요. 그런데 계속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어떤 목차로 써야 잘 나오는지, 쓰고 싶은 내용이 잘 잡히는지가 확실히 정돈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뭔가 포인트 한 두세 개 정도 잡아서 완전 구별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미장셴을 얘기할 거면 그것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포스터가 예뻤다든가 하면 그것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처럼요.
근데 그런 것들에 주목할 만한 공통된 소재들이 있는지가 보이면서, 다시 재정렬되는 식으로 발전한 것 같아요. 전보다 더 체계가 잡힌 글을 쓸 수 있게 된 거죠.여러 활동을 하다 보면 글을 쓰기 힘든 작품을 만날 때도 있잖아요. 그런 쓰기 어려운 글을 쓰는 노하우 같은 것들도 생겼을까요?
예전에 쓸 때는 그 작품에 대해서 모든 걸 적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한 편의 글을 쓸 때, 이 영화에서 담고 있는 것과 내가 느낀 것을 전부 다 담아야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느낀 것을 전부 다 써버리면 글의 색깔이 하나로 안 잡히더라구요.
오히려 하나의 매력에 집중하다 보면, 아무리 나의 취향이 아니고, 뭔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도 글이 바로 잡히는 것 같아요.(한 부분에 집중해서! 다른 분들에게도 꿀팁이 될 수 있겠네요.)
때로는 글을 완성하면서 감상이 달라질 때도 있을 것 같아요.
보통은 첫 감상이 유지되는 것 같고요. 근데 예외적인 상황들이 전 그런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이 영화에서 뭘 봐야 될지 모르겠다가 글로 이제 써야지 하고 정리하다 보면은 보이는 것들이 한 번씩 있거든요.
그게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도 그 중에 하나였어요. 제가 그거 시사회 그거를 글로 써야 되잖아요.처음에는 진짜 당황했어요. 제가 기대했던 하나를 보여주지 않는 영화로 끝나버려서. 내가 여기서 뭘 캐치해야 되는지 엄청 당황스러웠는데, 계속 생각하다 보니까 제목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제목에 집중하면서 내가 느꼈던 이상한 것들, 이해가 안 되는 것들 혹은 좋았던 부분들을 종합을 해보니까 좋은 감상으로 변하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글이 술술 써졌던 기억이 있어요.
(백록님의 추천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2013))
그럼, 20대인 백록님이 추천하고 싶은 비슷한 나이대에 계신 분들이 꼭 봐주셨으면 하는 영화가 있을까요? 아니면 영화를 전공하셨으니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 꼭 봤으면 하는 영화나 영화에 대한 영화 같은 것도 좋아요!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작품 추천이면, 저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인 것 같아요.
제 주변에 영화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거의 없는데, 최근에 제가 좋아하는 친구가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거 듣다 보면 영화에 흥미가 생긴다라고 말을 해서 고민을 하다가 영화 한 편을 추천해 줬어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이었는데, 그 친구가 진짜 너무 좋게 봤거든요. 누구든지 상관없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또, 저만의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이 있는데 거의 다 충족하는 작품이도 하구요.그 기준을 여쭤봐도 될까요? 어떤 면이 마음에 들어야 이 영화가 딱 좋다고 느껴지는지
일단, 영화는 종합 예술이다 보니까 영화 한 편을 구성하는 포인트가 많잖아요.
편집도 있고, 사운드도 있고, 이미지가 있고… 그 중에서 제게 제일 중요한 건 스토리 같아요.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메시지랑 부합하는가 혹은 단순히 스토리로서의 완전함이 있는가가 기본인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서 미장센이 아름다운가, 이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는가, 음향이 어떤지, 노래가 어떻게 잘 어울리는지같은 것까지 종합해서 평가하는 것 같아요.그러면, 잘 만들었다 하는 작품들 말고 그냥 지희 님 인생의 이정표 같은 작품이 있는지, 힘들거나 지치거나 할 때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그런 영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관점인 것 같아요. 언제 보든 그러니까 어쨌든 다시 저로 돌아올 수 있는 영화를 말씀하시는거죠? (네 맞아요.) 저는 모든 그냥 영화라는 분야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저로 다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 같고.
인생 영화는 사실 <오만과 편견>이에요. 글에도 적었지만 (씨네랩 챌린지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아직도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 사랑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과 표현해내는 방식이 진짜 인상 깊었어요. 감정의 풍부함을 너무 잘 담아낸, 제가 볼 때마다 다시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또, 남들은 잘 모를 것 같지만 봤으면 좋겠는 작품 혹시 하나만 추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아무래도 제 본고장은 스릴러 공포 미스터리거든요.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부터 그 장르를 좋아했는데, 이 장르가 잘 만들어진 영화가 진짜 없거든요. 다섯 손가락을 꼽을 것 같은데, 그 중에 제가 추천할 수 있는 잘 만들어진 공포 영화가 <트라이앵글>이거든요. (처음 들어봐요.) 그쵸? 저도 직설적인 공포를 진짜 안 좋아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공포를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트라이앵글>은 진짜 두세 번 볼 때 더 완벽한 작품이에요. (나중에 찾아봐야겠어요.)(백록님 추천영화, <기담>(2007))
올해부터 씨네랩과 새롭게 함께하게 되었잖아요.
어떤 계기로 알게 되었고, 또 크리에이터로 함께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씨네랩에 크리에이터 모집 공모가 떠서 보니, 일단 흥미가 갔었는데 알고보니 인스타그램 콘텐츠도 예전에 몇 번 본 적이 있더라구요. .
그리고 (씨네랩에 올라오는)글 자체도 제가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랑 비슷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서 콘텐츠도 너무 좋았고요. 거기에 제가 글을 써보자 하고 마음먹은 시기랑 완전 맞물려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크리에이터라는 책임을 가지면 꾸준히 쓸 수 있잖아요. 크리에이터가 된 만큼 더 잘 써보자 하고 있고, 씨네랩 인스타에도 그렇게 한 피드를 채울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러면 씨네랩 하시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활동이 있나요?
최근에 BIKY(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에서 기자로 글을 기고한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어요.
시사회를 보거나, 글을 써서 올라가는 것도 다 좋은 일이지만, 관객으로서 예전에 개인적으로 보러 간 적이 있던 BIKY를 또 다른 시선으로 경험해보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었던 것 같아요.
더 좋은 기회로 만나뵐 수 있기를 희망하며, 마지막으로 백록님에게 영화란 무엇인지 또 그걸 나누려는 마음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듣고 마무리하겠습니다.영화는 예술 중에서도 굉장히 영향력이 큰 분야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고, 그것을 아름답게 다시 표현하고, 그것을 보기 위해 모이는, 그러한 사람들의 궤적들이 저는 굉장히 매력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에 발을 담그는 동시에 내가 딛는 모든 게 넓어지고 깊어지는 경험을 나누기 위해 계속 노력할 계획입니다.
언젠가, 백록님이 만든 영화를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때까지 씨네랩이 늘 응원하고 있겠습니다!백록님의 비슷한 나이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3편!
1. 모든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 위의 인터뷰 내용을 확인해 주세요!
2. 지금 나이에 공감할 수 있는 영화, <콜레트>
: 20대 중반은 경계선에 서 있는 나이입니다. 한 발자국을 어디로, 얼마나, 어느 방향으로 뻗냐에 따라 길의 모양이 달라집니다. 나의 시간을 어떤 내용으로 채울지 결정하는 건 오로지 내 몫입니다.
영화 <콜레트>는 주인공의 일대기로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 상이한 선택에 따라 누군가의 그림자에 가려질 수도, 무한한 성장을 이루어 낼 수도 있음을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그려냅니다. 수려한 이미지로 전하는 강렬한 메시지 속 내가 느끼는 감상을 통해 분명한 ‘나자신’을 뚜렷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3. 20대 겁없을 때 보기 좋은 영화, <기담>
: 저는 공포영화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싫어합니다. 보통의 공포영화는 잔인하고, 징그럽고, 깜짝 놀래킬 뿐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고,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제 취향을 명확하게 표현하자면 ‘쾌적한 공포, 아름다운 기괴함, 촘촘한 추리극’입니다. <기담>은 여느 작품들보다도 잔인하고 무섭지만, ‘아름다운 기괴함’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극중 엄마 귀신으로 유명한 것이 오히려 왜곡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수작입니다. 몇몇 장면들만 겁없이 넘길 수 있다면, 각 등장인물의 사연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대사와 서정적인 음악을 통해 작품을 관통하는 ‘쓸쓸함’을 여과없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백록님의 더 다양한 글을 만나보고 싶다면, 씨네랩 글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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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원작 퀴어 영화 上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날씨가 춥다 보니 실내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이럴 때일수록 집에 꼭 틀어박혀 재밌는 영화도 보고,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도 읽으면 그게 행복이겠죠 ?
그런데 도대체 어떤 책을 읽을까,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셨던 분들 모두모두 모이세요!
그 고민들, 씨네랩이 한꺼번에 몽땅!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
오늘은 저희가 재미있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퀴어 영화들을 소개해 드리려고 하거든요!
사랑스러운 고등학생들의 연애와 고민을 담아낸 하이틴 소설부터,
죽지도 늙지도 않는 신비로운 인물 '올란도'의 삶을 담아낸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힘차게 시작해 볼까요 ٩( ᐛ )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8)
Call Me By Your Name
ⓒ 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1983년 이탈리아, 열 일곱 소년 엘리오는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족 별장에서 여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오후, 스물 넷 청년 올리버가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찾아오면서 모든 날들이
특별해지는데... 엘리오의 처음이자 올리버의 전부가 된 그 해, 여름보다 뜨거웠던 사랑이 펼쳐진다.
Cine Pick!
'첫사랑의 마스터피스'라는 칭호를 얻기도 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아이 엠 러브>(2009)와 <비거 스플래쉬>(2015)를 잇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욕망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에요. 제목부터 낭만적인 이 영화는 국내에서는 《그 해, 여름 손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한 안드레 애치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요. 2007년 해외 출간 당시 람다 문학상 게이 소설 부문에서 수상하는 등 세계 언론의 극찬을 받았던 작품으로, 출간 10년 뒤에 영화로 재탄생되며 제 90회 미국 아카데미상 각색상 수상을 포함한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음악상(<Mystery of Love>)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다시 한 번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 예스24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여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달콤쌉쌀한 로맨스!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과 책을 함께 만나본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아가씨 (2016)
The Handmaiden
ⓒ 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 이모부의 엄격한 보호 아래 살아가는 귀족 아가씨 히데코. 그녀에게 백작이 추천한 새로운 하녀가 찾아온다. 매일 이모부의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외로운 아가씨는 순박해 보이는 하녀에게 조금씩 의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녀의 정체는 유명한 여도둑의 딸로, 장물아비 손에서 자란 소매치기 고아 소녀 숙희.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될 아가씨를 유혹하여 돈을 가로채겠다는 사기꾼 백작의 제안을 받고 아가씨가 백작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하녀가 된 것. 드디어 백작이 등장하고, 백작과 숙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가씨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하는데…
Cine Pick!
<아가씨>는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두터운 팬층을 보유 중인 박찬욱 감독의 10번째 장편 영화입니다. 원작 소설은 영국의 여성 작가 세라 워터스의 역사 스릴러 소설인 《핑거스미스》로 알려져 있는데요, 스릴러 소설로는 처음으로 부커상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되었던 작품으로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하여 부유한 상속녀 '모드'와 그의 하녀 '수'의 미묘한 관계, 런던 뒷골목과 상류사회의 대비, 음모와 사랑, 배신까지 리얼하게 묘사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예스24
주연배우인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배우의 리얼한 연기가 돋보이며, 아름답고 섬세하게 구현된 세트와 미술 전반은 칸 영화제에서도 인정받아 류성희 미술감독에게 미술 부문 스탭으로서는 최초로 '가장 뛰어난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 작품의 아티스트에게 수상하는 상'인 벌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기도 했습니다. 영화화 과정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일제 강점기로 각색하여 색다른 재미가 있다고 하니, 함께 감상하면 재미가 두 배겠어요!
러브, 사이먼 (2018)
Love, Simon
ⓒ 다음 영화
시놉시스
사이먼은 평범한 삶을 사는 고등학생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 다만, 자신이 게이인 걸 아무도 모른다는 것뿐. 남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게이라는 이유로 남들이 자신을 다르게 볼까 마음 한 켠에 고민을 안고 다닌다. 게이임을 숨기고 학교 생활을 이어가던 사이먼은 교내 게시판을 통해 학교에 커밍아웃하지 않은 게이가 또 있음을 알게 된다. 사이먼은 익명의 학생 블루에게 메일을 보내 자신도 게이임을 처음으로 밝힌다. 사이먼은 블루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진다. 교내 수 많은 남학생 중 블루는 누구일까?
Cine Pick!
<러브, 사이먼>은 발간 즉시 큰 인기를 끌었던 베키 앨버탤리의 영 어덜트 장편 소설 《Simon vs. The Homo Sapiens Agenda》를 원작으로 하는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자 퀴어영화입니다. 국내에서는 《첫사랑은 블루》라는 제목의 청소년용 도서로 발간되었으며, 십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심리학자였던 작가를 단숨에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습니다. 작가는 심리 상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 정체성을 지닌 어린이들을 위한 지원팀 공동 대표를 7년간 맡아 오기도 했다고 해요.
ⓒ 예스24
영화는 북미 개봉 당시 평단의 호평과 흥행을 동시에 이끌어 낸 작품으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만든 첫 퀴어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가볍고 통통 튀는 하이틴 로맨스의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성소수자 학생이 겪게 되는 심적 고난을 깊이 있게 다루어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사이먼 스피어 역은 2013년에 킹 오브 썸머로 영화 데뷔 후 2015년 작 쥬라기 월드에서 이름을 알린 닉 로빈슨이 맡아 자연스러운 연기와 풋풋한 매력으로 눈길을 끌었으며, 사이먼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친구들 및 주변 인물들은 대부분 신예 배우들이 맡아 신선하고 귀여운 연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OST가 좋은 영화로도 유명한데요, Khalid, The 1975, Troye Sivan 등이 참여한 사운드 트랙을 감상하는 재미도 크겠습니다.
올란도 (1994)
Orlando
ⓒ 다음 영화
시놉시스
여성보다 더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젊은 귀족 올란도는 만찬회장에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를 낭송한다. 여왕은 그에게 저택을 하사하고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말라는 말을 남기는데, 과연 여왕의 말대로 올란도는 400년을 살아 남성과 여성 사이를 오가는 인간이 된다. 여왕이 죽은 후 영국 주재 러시아 대사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갑자기 그녀가 고국으로 돌아가버리자 상심한 올란도는 1주일 동안 잠에 빠지고, 깨어난 후에는 시를 쓰며 마음을 달랜다. 얼마 후 터키 대사가 되어 영국을 떠난 올란도는 그곳에서 일어난 전쟁에 휘말리자 다시 긴 잠에 빠지게 되고 깨어나보니 자신의 성이 여자로 바뀌었음을 알게 되는데...
Cine Pick!
여성 감독 샐리 포터가 감독과 각본을 맡은 영화 <올란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요. 소설은 성별을 오가며 400년을 살아간 '그'이자 '그녀'였던 올란도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유머러스한 문체로 젠더의 허구성을 그려낸 버지나아 울프의 숨겨진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양성성을 지닌 매력적인 인물 올란도의 모델은 당시 울프의 연인었으며, 이후로도 오랫동안 가깝게 지냈던 여성 작가 비타 색빌웨스트였다고 해요. 비타가 작품을 위해 직접 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들이 책 속에 사료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었고, 비타의 아들이 소설에 대해 "문학사상 가장 길고 매혹적인 연서"라는 평을 남겼다는 점 등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 더욱 흥미롭습니다.
ⓒ 예스24
남성과 여성을 넘나들며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비로운 인물 올란도를 연기한 배우는 바로 틸다 스윈튼입니다. 어쩜 이렇게 찰떡같은 캐스팅이 다 있나 싶죠! 다양한 캐릭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 내는 틸다 스윈튼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역할이라는 데 모두들 동의하실 거에요. 소년이었다가 남자로, 또 다시 여자로. 긴 세월의 삶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남성이자 여성으로서 세상을 체화해내는 틸다 스윈튼의 연기가 일품인 영화입니다. 여성으로서의 고난을 보여주며 성별의 경계를 모호화하는 장치가 영화 전반에 걸쳐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 문학과 영화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도 추천드리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의상과 소품을 감상하는 재미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캐롤 (2016)
Carol
ⓒ 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낀다. 하나뿐인 딸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과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확신이 없던 테레즈, 각자의 상황을 잊을 만큼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감정의 혼란 속에서 둘은 확신하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에,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온 진짜 사랑임을…
Cine Pick!
영화 <캐롤>의 원작 소설은 범죄 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자전적 소설이자 유일한 로맨스 소설인 《소금의 값》입니다. 하이스미스는 《재능 있는 리플리》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린 작가인데요, 리플리 시리즈는 영화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져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었지요. 《소금의 값》은 작가가 생활고에 시달렸던 시절에는 맨해튼의 대형 백화점에서 인형 판매 사원으로 일을 했었는데, 당시에 딸의 선물을 사러 온 모피 코트를 걸친 금발 여성에게 매혹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했다고 해요. 그러나 동성애에 대한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사생활, 작가로서의 정체성 고착이 염려되어 다른 필명으로 책을 냈던 것이 100만 부가 팔려나가 그녀에게 큰 성공을 안겨 주었고, 40년이 지난 후에야 《캐롤》을 제목으로 재출간하며 자신이 저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밝혔습니다.
ⓒ 예스24
영화 <캐롤>은 겨울 했을 때 많이들 떠올리는 영화이기도 해요. 1950년대의 추운 맨해튼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고요하면서도 뜨거운 사랑 영화이기 때문이겠지요. 캐롤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 인물인 테레즈는 상대역인 케이트 블란쳇의 오랜 팬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던 루니 마라가 맡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 내에서도 밖에서도 빛나는 두 사람의 케미가 영화 팬들 사이에서 화제이기도 했지요.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소중한 사람과 함께 즐겨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오늘 씨네랩이 소개해드리고 싶었던 영화는 여기까지입니다.
미처 보여드리지 못했던 다른 작품들은 다음 편에서 보여드릴 테니 기대해 주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 :)
씨네랩 에디터 Y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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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한 올드머니 패션 착용한 주인공 영화 8선
지금 떠오르고 있는 올드머니룩 ! 올드 머니(oldmoney)의 뜻은 말 그대로 오래된 돈, 유산, 상속받은 돈으로 오랜기간동안 부를 축적한 상류층을 뜻한다고 합니다. 브랜드 로고 대신 부유층만 알 수 있는 브랜드, 혹은 고급스러운 소재로 실루엣만으로 부유함을 표현하는 룩들이 대표적인 예라고 하는데요.
켄달제너, 기네스팰트로, 다이애나비가 올드머니룩의 유명인들이라고 하죠. 한국에서는 드라마 안나에서수지와 정은채 배우가 올드머니룩을 완벽히 소화해 내면서 큰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올드머니룩은 부유층을 다룬 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패션인데요. 부유층을 다룬 영화들 속 올드머니룩을 착장한 주연 배우들 같이 한번 만나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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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안나 윈투어의 어시스턴트로 일한 경력이 있는 미국의 작가 로렌 와이스버거가 집필한 소설이 원작인데요. 직장에 실제로 있을것 같은 캐릭터들로 개봉 20주년이 다가가는 이 영화는 지금 봐도 재밌고 여성팬층이 매우 두터운 작품입니다. 실제로 원작 소설보다 나은 이야기 전개로 호평을 받고 미란다 역의 메릴 스트립 연기는 크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패션잡지회사에 관련된 영화다보니 등장인물들의 뛰어난 패션감각으로 뉴요커들에 대한 환상을 가중시키는 데 한몫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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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대표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의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며 2014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2014 골든글로브상 외국어 영화상 수상 2014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비영어 영화상 수상작으로 세계 3대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트리플 크라운을 거머쥔 작품입니다.
중장년층의 부유한 세계를 그린 <그레이트 뷰티>는 주인공이 로마의 사교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면서 점점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의 공허함을 느끼는 과정을 거칩니다. 위의 주인공의 감정과 대비되는 화려한 세계는 풍자와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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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를 주인공으로 한 실화 소재의 영화이며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 전세계 27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의 <스펜서>는 영화계 동료, 언론, 평단, 관객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특히 의상이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데 <작은 아씨들> <안나 카레니나>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재클린 듀런이 맡았고 그시절 패션 아이콘이기도 했던 다이애나비의 의상을 구현하기 위해 수년간 다이애나의 패션을 수집하며 완성도를 높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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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2회 연속으로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으로 가족들을 통해 인간의 위선과 이중성에 대해 고찰한 이야기인데요. 이 영화의 제목인 <해피엔드>는 해피 엔딩의 의미가 아닌 행복이 끝난다는 의미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영화 속 '로랑'가는 프랑스에서 건설업으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이지만 자살을 몇 번이고 시도하다 실패한 조르주, 아들 피에르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앤, 바람을 계속 해서 피는 토마스 등 고상한 줄만 알았던 가족들의 이중성이 점점 표면우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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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따라 평이 갈리는 우디앨런 작품 중 수작이라고 뽑히는 영화로 특히 과거를 잊지 못하는 신경쇠약의 여성을 잘 연기해낸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로 큰 호평을 받으며 86회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줄거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에르메스, 루이비통, 펜디, 샤넬, 로저 비비에 등 다양한 고가의 명품 브랜드들의 의상이 등장하는데 케이트 블란쳇의 이름값을 이용해 간신히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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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러브>는 누구나 부러워 하는 귀적적인 삶이지만 알 수 없는 권태로움을 느끼는 엠마의 공허감과, 매력적인 쉐프인 아들의 친구 안토니오에게 감춰져 있던 열정으 른끼며 사랑에 빠져드는 상류층 여성의 은밀한 욕막을 표현해낸 영화로 미술, 의상 뿐만아니라 틸다 스윈튼의 우아한 몸짓과 카리스마를 강렬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배우 뿐만 아니라 <아이 엠 러브>의 스태프들이 이탈리아 상류층 재벌가문의 캐릭터를 구현하는데 깊은 고심을 했고, 각 캐릭터에 맞는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의상을 찾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고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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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뉴욕의 상류 사회에 진입하기를 열망하는 밑바닥 인생의 삶과 애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달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인간적 서정을 느끼면서도 부와 상류층의 상징인 보석상 '티파니'를 동경하기 때문에 꿈과 현실의 괴리감을 피할 수 없는데요. 또 가난한 작가와 사랑을 나누면서도 부자를 찾아 헤메는 이야기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빈부격차의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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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이자 할리우드 영화의 패러디이며 1973년 국제영화비평가협회상 최우수감독상, 1973년 아카데미영화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부뉴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입니다. 미란다 공화국의 대사 돈 라파엘이 6명의 부르주아들과 함께 근사한 만찬을 가지려 하지만 그때마다 기이한 상황에 처하며 좌절을 겪는 과정을 부뉴엘 특유의 통렬한 유머감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오늘은 '올드머니패션' 주제로 영화를 다루어보았는데요 앞서 추천드린 영화는 패션뿐만아니라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수작들이기도 합니다. 즐겁게 영화 즐겨주시길 바라며 저는 다음주에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큐레이터 AMY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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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애나의 ‘외로움’을 가득 담은 영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사람이 살면서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외로움은 찾아오고 긍정적인 일들이 주변에 많이 일어나도 어느 순간이 되면 갑자기 찾아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그렇게 매달리는 것인지 모른다. 사랑을 주고 또 받을 사람을 찾고, 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결혼이라는 문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그 외로움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그 사랑에도 익숙해질 즈음에 그 외로움은 또 찾아온다. 주변 가족이나 친구들과 만나며 그것을 해결하기도 하고, 그저 태어난 아이를 키우는데 더 집중하면서 그 외로움일 이겨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외로움이라는 것은 그렇게 평생 우리 곁에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방송 프로그램이나 영화 같은 화면을 통해 접하는 연예인들도 외로움과 고독감을 느낀다. 화면 속 화려함과 팬들의 동경은 그들을 스타로 만들어주지만 개인의 삶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연예계에서 멀리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화려한 인기 속에 살고 있더라도 외로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친구가 많아도 외로움은 찾아오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달래가야만 한다. 어쩌면 그건 인간으로 태어나 평생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외로움을 담은 영화
영화 <스펜서>에는 외로움과 고독한 감정이 가득 담겨있는 영화다. 유명을 달리한 다이애나 황태자비(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감정을 담는 영화는 그가 이혼하기 전 왕실에 있던 1990년대 초반 즈음의 크리스마스 3일을 다룬다. 실제 사건을 재구성했다기보다는 다이애나라는 인물의 감정을 압축해서 영상으로 옮겼다는 설명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처음 별장에 가족들과 일하는 직원들이 모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초반에 다이애나는 혼자 오픈 카를 운전하여 별장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보조해주는 운전사도 없이 혼자 운전을 하는데 길을 잃고 제시간에 도착하지도 못하지만 계속 왕실의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고 무척 애쓴다.
다이애나가 도착한 왕실의 별장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 근처에 있다. 영화 속 다이애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생가에 가려고 하거나 과거 아버지가 농사지었던 땅의 허수아비를 찾아간다. 영화 속 '현재'에 다이애나는 고립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이 있던 ‘과거’의 장소로 회귀하려는 시도를 계속 반복한다. 얼굴엔 외로움이 가득하고 쓸쓸함이 느껴진다. 왕실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먹은 그는 곧 그 음식을 다 비워낸다. 마치 왕실의 모든 것에 거부감을 느끼듯 속에 들어온 많은 것을 뱉어내려 애쓴다. 그의 주변에 그를 돕기 위해 파견된 도우미들이나 파티를 주관하여 총괄 관리하는 그레고리 소령(티모시 스폴)은 계속 그를 파티와 행사에 밀어 넣지만, 다이애나는 그걸 계속 밀어낸다. 그래서 가족 모임으로 다이애나를 끌어들이려는 그들이 영화 속에서 악당처럼 느껴지는 건 영화가 다이애나의 감정을 무척 잘 표현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이애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의 행위는 모두 적대감이 느껴진다.
다이애나가 마음을 열고 있는 왕실 사람은 두 아들과 의상 담당자 매기(셀리 호킨스)뿐이다. 두 아들은 그가 낳은 친족이기 때문에 좀 더 편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매기는 일하는 직원일 뿐이다. 그럼에도 매기는 다이애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답답하고 꽉 막힌 왕실 가족의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다이애나가 편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생각해 보면, 매기라는 인물은 다이애나를 사랑했던 소수의 주변 인물과 일반 대중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매기의 말처럼 다이애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 사실은 실제로 그가 불운한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 추모의 분위기로 알 수 있다.
다이애나의 자유에 대한 의지
다이애나가 자신의 생가에 어렵게 방문하여 보게 되는 과거의 환영들에서 그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삶의 의지를 확인한다. 그 환영을 본 후 다시 별장에 돌아와 매기와 만나며 시간을 보내고 두 아들을 시외로 데리고 나가는 장면에서 다이애나의 모습은 숨 막히는 왕실의 압박과 분위기에서 벗어나 조금은 자유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스펜서’라는 결혼 전 자신의 성으로 주문하고, 길거리에서 먹는 모습 두 아들과 다이애나의 뒷모습에는 영화 속 어떤 모습보다 자유롭게 보인다.
영화 <스펜서>에는 다이애나의 고독과 외로움이 가득 담겨있다. 무엇보다 다이애나 역을 맡은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외모부터 실제 다이애나 황태자비와 비슷해 보인다. 거기에 목소리 톤까지 그에 맞추면서 더욱 실제 다이애나가 눈앞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그리고 과거 다이애나가 겪었을 감정적 외로움과 고독이 배우의 얼굴로 세세하게 표현한다. 거대한 왠지 위압적인 별장의 모습과 그에 비해 너무나 작아 보이는 다이애나의 모습이 잘 대비된다. 또한 연신 음식을 토해내는 모습은 그가 가진 왕실에 대한 거부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스펜서>는 실제 사건을 요약하여 제시하는 영화라기보단 그 당시의 인물이 가졌던 감정을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영화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한다. <스티브 잡스>는 실제 사건을 다룬다기보다 무대 뒤에서 스티브 잡스(마이클 패스벤더)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가졌던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점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된 영화다. 그러니까 주인공의 감정이나 있었던 일에 대한 반응을 이야기에 함축하고 배우의 표정으로 표현해낸다는 측면에서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영화를 연출한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과거에도 퍼스트레이디인 재클린 케네디의 이야기를 다룬 <재키>나 칠레의 민중 영웅 파블로 네루다의 이야기를 다룬 <네루다>를 연출한 경험에 있다. 이번 <스펜서>에서도 실존인물인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가졌던 감정을 두 시간의 영상으로 함축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다이애나는 영화가 담긴 시기 이후 이혼을 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한다. 어쩌면 이혼 후의 시간에서는 영화를 가득 채웠던 외로움과 고독감을 조금은 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늘 억압되고 고독했던 다이애나를 이제 대중들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런 다이애나의 외로움에 담긴 영화 <스펜서>는 정적인 스타일의 영화지만 다이애나의 표정을 통해 보는 사람의 감정을 크게 움직이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스펜서>
https://www.youtube.com/watch?v=O2fcOhrE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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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과 용기 사이, 지금의 나를 만든 그때의 ‘사소한 것’들
▷한줄소감 : 침묵과 용기 사이, 지금의 나를 만든 그때의 ‘사소한 것’들
▷영화/책 :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 / Claire Keegan, 2023.11월
결정적인 순간에야 본 모습을 드러내는 나의 본성의 근원은 무엇일까?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서 침묵하지 않을 용기,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최근 영화로 개봉된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의 그 기억들을 소환해내고 있다.
1985년 실업과 빈곤으로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 뉴로스에서
석탄 배달업으로 아내, 딸 다섯 가족을 이끌고 있는 빌 펄롱(컬리언 머피 역),
무엇보다도 딸들이 각자 자신의 재능을 찾아 성장해 나가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족과 함께 케이크를 만들고 산타클로스에게 보낼 카드를 쓰는 일상이 행복하기만 하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어린 시절을 헤쳐 나온 그였기에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기 스스로를 그저 운이 좋을 뿐이라 생각한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
"우린 참 운이 좋지?" 어느 날 밤 펄롱이 침대에 누워 아일린에게 말했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 "그렇지." (p20)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p22)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p24)
그렇다고 하루하루 지치고 힘든 일을 버텨내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 일을 하고 저녁 늦게서야 식탁에 앉아 가족을 대하는 반복된 일상 속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목구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p44)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을 다 잡아준 것은 그 옛날 어머니조차 일찍 돌아가시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아이가 되었을 때,
자신을 돌봐 주었던 집 주인 미시스 윌슨 아주머니의 따뜻한 격려 때문이었다.
미시즈 윌슨은 마치 자기 자식인 양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렴." 미시즈 윌슨이 말했다.
그날 종일, 그 뒤로도 얼마간 펄롱은 키가 한 뼘은 자란 기분으로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바 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 다녔다.(p37)
그런 영향인지 빌 펄롱은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한없이 친절한 사람이다.
사업체 직원들의 일상을 돌본다든지, 동네 사람들 중 어려운 집에 장작을 몰래 가져다 놓는다든지,
지나가다 친구 아들을 보고는 주머니에서 동전 몇 푼이라도 꺼내 준다든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강 건너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창고에 갇혀 있던 어린 소녀 세라를 발견한다.
수녀원장은 친구들끼리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고 둘러댄다.
오히려 그 사실이 외부에 발설되지 않도록 무언의 압박을 보낸다.
딸들이 다니려고 하는 세인트마거릿 여학교의 운영자이기도 한 수녀원이기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수녀원장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현찰이 든 봉투를 내밀었을 때 그냥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 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p99)
자괴감에 빠져 있는 그를 바라보는 아내 아일린이나, 수녀원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던 음식점 주인 미스즈 케호는 그저 모른척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 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p57)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일에 관해 말할 때는 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거 알지?”
“말했듯이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그 수녀들이 안 껴 있는 데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교단은 다르지만 다 한통속이야. 어느 한쪽하고 척지면 다른 쪽하고도 원수 되는거야.”(p105~106)
그러나, 크리스마스이브날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깎고, 아내에게 줄 구두를 찾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
펄롱의 하루는 지금 무언가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있었다.(p113)
결국 그는 다시 수녀원으로 가서 창고에 갇혀 있던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지역사회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수녀원이었기에 자신의 사업체와 가족에게 닥칠 최악의 상황이 떠올라 두려웠지만
더 이상 물러서지 말아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p119)
빌 펄롱에게 이런 용기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순간 어려웠던 시절, 집주인 미시즈 윌슨 아주머니와 같은 집 일꾼이었던 네드의 보살핌의 손길이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의 자신을 이루게 한 것은 그분들의 배려, 친절, 격려들 때문이었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행동으로, 때로는 사소한 것(Small Things)들로.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p120)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 - 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 -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p120)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p121)
지금 주인공 빌 펄롱에게 침묵에 맞설 '용기'를 불러일으킨 것은 어릴 적 자신을 일으켜 세웠던 '사랑'과 '보살핌'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뿌려진 씨앗이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열매를 맺은 것이다.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는 그것들은 결코 사소한 것들이 아니었다.
소녀를 구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그 첫 발걸음은 사소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를 나되게한 '사소함'은 무엇이었을까? 인생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 무수히 많은 사랑의 손길이 떠오른다.
내가 살아갈 '용기'는 나 자신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춥고 어두운 겨울밤에 따스한 불빛이 반짝거리며 떠오르는 것 같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막달레나 세탁소’는 아일랜드 가톨릭교회와 정부 지원하에 1922년부터 1998년에 이르기까지
70여 년 동안 3만 명 이상의 젊은 여성들을 감금, 강제 노역과 착취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곳이다.
2013년에 이르러서야 정부는 진상조사를 마치고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막달레나 세탁소(Magdalene laundries)’ 또는 ‘막달레나 수용소(Magdalene asylums)’는
타락한 여성 교화라는 명분하에 1344년경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아일랜드에서는 1767년부터 10여 개 시설에 약 1만 명의 여성이 수용되었고, 잉글랜드는 1758년 이후 300개 이상의 세탁소가 운영되었으며,
1800년 미국 필라델피아, 1848년 캐나다 토론토, 1852년 스웨덴, 1890년 호주에서 운영되었다.
노동 착취와 인권유린의 현장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최후의 막달레나 세탁소가 1996년에 이르서야 폐쇄되었다.
각 나라의 막달레나 세탁소 / ①아일랜드(1767년), ②잉글랜드(1758년), ③미국(1800년), ④캐나다(1848년), ⑤스웨덴(1852년), ⑥호주(1890년)
20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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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영화 전문 감독인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신작 문폴이 공개되었습니다.
이번엔 달이 추락해 지구와 충돌하게 되는 재난을 담고 있죠.
재난 전문 감독의 영화답게 달이 지구와 가까워지면서 다양한 재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많은 재난 장면들이 이미 과거에 본 적이 있죠?
그래서 기시감이 많이 들고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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