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2025-03-25 04:04:47
길 위의 삶, <로드무비>
한국영화리뷰 1 - <로드무비> (김인식, 2002)
2002년 개봉한
김인식 감독의 <로드무비>는 길 위를 떠도는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며 지내던 ‘대식(황정민 役)’은 일자리를 잃고 노숙인이 된 ‘석원(정찬 役)’을 만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을 하려던 석원을 구해 준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함께 떠난다. 뚜렷한 목적지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던 두 사람의 앞에 ‘일주(서린 役)’라는 여성이
나타나고, 대식을 사랑하게 된 일주는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여정에 함께하게 된다.
세 사람은 점차 어긋나기 시작한다. 대식은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석원을 사랑한다는 것을
석원에게 들키게 된다. 석원은 자신의 몸에 손 대지 말아 줬으면 한다며 대식을 거부한다. 일주는 대식이 진짜 여자를 못 만나 봐서 그렇다며 대식의 사랑을 갈구한다.
<로드무비>는 제목처럼, 길 위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대식, 석원, 일주는
물론 이들을 데리고 다니던 ‘민석’이나 서울역의 노숙인들
모두 갈 곳이 없는 길 위의 사람들이다. 대식은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정착하는 것을 거부하고 길 위의 삶을 택했다. 석원에게는
아내가 있지만, 경제적인 위기로 인해 아내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일주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식을 따라서 함께 방랑한다.
이 영화는 떠도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름다운 이미지를 통해 그리고
있다. 다양한 로케이션을 통해 인물들의 방랑을 표현하고, 핸드헬드
촬영은 그들의 거친 삶과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또 반복적인 백샷을 통해 인물들의
뒷모습을 보여 주며, 관객들이 그들의 여정을 뒤따라가도록 만든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성적 지향성,
그리고 그의 동성을 향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퀴어 시네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의
깊이가 다소 아쉽다. 극의 초반, 대식은 한 남성과 정사를
갖고 이별을 한다. 길에서 그만 지내고 같이 살자며 애원하는 남성에게,
대식은 ‘사랑 같은 것 하기 싫다’며 소리를
치고 남성의 뺨을 때린다. 또 대식은 낯선 남성과 화장실에서 일회성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대식의 정체성은 여러 상대(동성)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그것을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거부하는, 전형적인 미디어 속 퀴어의
모습을 통해서 표현된다. 그리고 대식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사랑을 고백하기를 택할 만큼
절절한 사랑을 하지만, 관객은 그저 ‘처음 봤을 때부터’ 첫눈에 반했다는 대사만으로 뒤늦게 납득해야 한다. 인물들의 감정을
전부 소화시키지 못한 채 도달하는 결말은 역시 시각적으로 아름답지만, 반쪽짜리 엔딩이라는 인상을 준다. 퀴어 시네마, 동성 간의 사랑이 ‘로드무비’라는 장르와 함께 이 영화를 지탱하는 주요한 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영화가 동성애자인 인물을 구축하는 방식이 아쉽지 않을 수 없다. 대식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떠도는 것이 아니라, 떠돌기 위해 (감독에
의해) 동성애자가 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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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액션은 어디로 갔는가?
드니 빌뇌브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그 느낌을 매우 좋아한다. <컨택트>와 <시카리오> 등에서 보여줬던 아름다운 미장센, 대사 없이 많은 설명을 담는 능력, 진중한 메시지 등 헐리우드의 젊은 3대 천재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만든 <듄> 시리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 감독인 한스짐머까지 합류해 기대가 컸고, 많은 유명한 SF에 영향을 준 이야기답게 무게감 있고 멋지게 담아냈다. 그리고 이번 <듄: part2>는 마치 20년 전 유행하던 블록버스터 트릴로지 무비들-<스파이더맨>, <엑스맨>,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의 2편처럼 1편보다 더 광대하고 박진감 있다.
그러나 2편에도 여러 가지 단점들이 존재했다. 1편에서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살라메)의 고난과 역경을 다루었다면, 2편은 그가 안티메시아로써의 도약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작부터 끝까지 '액션'으로 가득 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편에서는 액션의 서사나 성장이 아주 부족하거나 거의 보이지 않아, 어떤 이들은 지루함을 느낄 정도다. 영화의 완성도가 훌륭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더 두드러져 보이고 액션 매니아의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워서, <듄: part 2>를 액션 영화의 관점으로 다뤄보았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캐릭터성이 사라진 액션
액션 영화에서 무술은 한 인물의 캐릭터성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가문, 민족, 국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듄: part 2>에서는 게릴라전을 하는 프레멘을 제외하고는 딱히 특징 있는 무술을 보여주지 않는다. 즉, 액션에 캐릭터가 없다.
간단한 예를 들면, 마블의 <어벤저스>는 이런 캐릭터 액션에 상당한 공을 들인 걸로 유명하다.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위도우가 시대적으로 다른 사람이라 총 파지법이 다르다던지, 토르와 로키 등 아스가르드인들은 쓰는 무술이나 준비자세가 같다던지 하는 식으로. <샹치>와 같은 중국식 무협에서는 캐릭터의 인생철학이 캐릭터가 쓰는 무술에 담겨있고, 싸우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무술의 합으로 표현했다.
<듄: part 2>에서 엄청난 전투력을 자랑하며 공포스러운 존재인 황실친위대 사다우카가 황제 옆에서 칼을 들고 있는 모습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마지막 선을 지키던 공작 친위대가 칼을 든 모습은 서양 롱소드 검술로, 둘 구분이 거의 가지 않는다. 가문 성격이 완전히 다른 하코넨과 아트레이데스도 무술 동작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액션을 잘 짠다는 것은 단순히 합을 잘 짜는 걸 말하지 않는다. 의상, 외모, 대사 등 캐릭터를 대비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한 것 치고 액션의 캐릭터성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단 얘기다. 다만, 1편에서 처음 폴이 액션을 배울 때 했던 실수 - 목을 겨누느라 배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을 그대로 이용해서, 그보다 성장한 마무리는 칭찬할만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한 사람에게서 무술을 배운 것처럼 단조롭다.
프레멘의 무술은 단도를 주로 사용하고, 몰래 빠르게 움직여 죽이는 암살과 게릴라전에 특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군용 무술보단 잠입암살 무술인 닌자에 더 가깝고, 그 부분은 프레멘의 특징을 잘 살려서 좋다. 그러나 이는 폴이 배운 '펜싱 자세를 기본으로 한 검술'과 아주 큰 차이를 보이는데, 그렇다면 폴이 프레멘에게 인정받기 위해 수행을 할 때 무술을 배우는 장면도 있어야 했다. 물론 1편에서 무술수련을 할 때 이미 다양한 무기들로 수련을 해온 설정이 어렴풋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실제와 자료로 보고 배운 건 다르다. 영화에서는 '사막 걸음'을 프레멘인 챠니가 제대로 된 걸로 다시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액션에서도 필요했다.
그리고 폴이 하는 검술의 펜싱자세는 다른 무술과 달리 주손 주발이 앞으로 나와있는 오소독스 자세다. 그 이유는 긴 칼로 빠르게 찌르고 빠지기 위함인데, 단도를 들고 육탄전을 감안해 싸우는 <듄> 세계의 특성상 잘 맞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준비 자세만 펜싱 자세고, 싸울 땐 그냥 군용 무술이다. 즉 '귀족'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준비자세만 멋으로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액션을 죽이는 잘못된 무기들
라반은 채찍을 사용하는데, 이게 그의 캐릭터가 말랑해지는 데 한몫했다. 채찍이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고, 그 큰 덩치에 조그만 채찍을 꺼내드는 모습은 조금 코믹하다. 페이드 로타는 칼을 두 개 든 이도류지만, 액션이 그의 캐릭터성을 나타내기엔 평범했다. 그 이유도 무기 때문이다. 페이드 로타의 검은 앞이 길고 내려앉은, '정글도'로 잘 알려진 마테체의 한 형태다. 정글도는 원래 도끼와 단검의 중간 형태로, 정글에서 생존용으로 쓰는 칼이다. 실제 무기로도 자주 쓰이지만, 날 앞쪽에 무게중심이 있고 손잡이 위에 손을 보호하는 키용이 없어서 가까이에서 찌르기에 적합한 무기가 아니다. 마테체는 오히려 덩굴을 베듯 도끼처럼 내려찍는 무기다. 그런데 페이드 로타의 액션은 일반 백병전 단검술이다. 그러니 동작이 둔해지고,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오히려 예리한 단검술보단 위협적으로 내리찍는 무술을 했다면 더 맞았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프레멘의 무기, 크리스나이프도 그렇다. 크리스나이프는 샤이 훌루드의 이빨로 만든 단검으로, 날과 손잡이의 두께가 거의 같으며 역시 손을 보호하는 키용이 없다. 키용이 없는 칼은 사실 대부분 찌르는 전투용 칼이 아니다. 그런 칼로 유명한 것은 일본의 시라사야인데, 이건 칼을 들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지팡이로 위장한 칼이며 베는 칼이다.
서양의 칼에서 손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날과 손잡이 사이의 키용
영화 <듄> 시리즈의 크리스나이프
칼과 칼이 맞붙는 싸움에서 키용은 굉장히 중요하다. <듄> 시리즈에서는 칼을 칼로 막고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사실 진검이라면 날끼리 미끄러진 다음 키용끼리 부딪혀, 칼과 키용의 십자 모서리 부분끼리 엇갈려야 힘겨루기가 가능해진다. 즉, 키용이 없는 칼끼리 싸우면 금방 손가락이 잘려나간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키용이 없는 칼끼리 너무 챙챙 맞부딪힌다. 날끼리 부딪혀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 자체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판타지 액션 연출이지만, 키용까지 없는 칼로 그렇게 싸우는 건 조금 그렇다. 사실 키용은 손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칼을 뺏거나 부러트리는 등 다양한 용도로 검술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장치다. 그런데 폴과 페이드 로타 둘 다 칼에 그게 없으니, 단순하게 찌르거나 휘두르기만 할 뿐이다.
게다가 키용이 없다면 손이 미끄려져 힘을 준 찌르기가 힘들며, 오히려 내 손이 날까지 미끄러져 손이 다치게 된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 식칼로 찌르다 엄지손가락이 나간 것을 기억해 보자. 즉 <듄: part 2>의 무기들은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디자인부터 잘못되었다. 단순한 액션 고증 문제가 아니라, 이런 것들이 영화의 액션을 심심하게 만든다. 칼 디자인은 그냥 영화적 장치니까 멋으로 보자고 하기엔, 다른 부분들에서 세계관을 엄청나게 잘 만들었다고 칭송받는 소설이 원작이라 아쉬울 뿐이다.
또한 <듄> 시리즈에서는 핵무기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고대의 엄청난 무기를 발견한 것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그 핵무기의 사용 방법이나 파괴 리액션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폴은 핵무기를 군대 뒤에 산을 폭파하는 데 쓰고, 그 잔해들이 운석처럼 군대를 덮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그렇고 실제 핵무기의 가장 큰 위력은 폭발 반경에 1억 도가 넘는 순간온도와 몇천 도가 넘는 '열폭풍'이다. 수십 킬로미터 반경에 달하는 열폭풍으로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녹이고 날려버리는 것이 핵무기인데, <듄: part 2>에서는 그저 조금 센 미사일 수준으로만 보여서 너무 심심했다. 황제까지 죽이면 안 되니까 그랬다고 변명한다면, 황제는 우주선 안에 있으므로 그 정도는 견딜 수 있고 밖에 주둔한 군대를 싹 쓸어버리는 용도로 쓴다고 설정할 수도 있었다. 그게 안된 이유는, 모래벌레가 공격하는 장면이나 백병전 장면을 넣기 위해서로 보인다. 사실 애초에 핵무기를 백병전 전초전 격으로 발사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 일대가 수십 년 이상 방사능에 오염되기 때문이다.
또 샤이 훌루드는 마지막 전투에서 등장만 화려할 뿐, 구체적으로 적들을 어떻게 섬멸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깔고 뭉개는 건지, 잡아먹는 건지, 차에 치이듯 사람들이 날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매머드가 적들을 상아로 쳐내 날려버리는 모습이나 밟는 모습이 세세하게 나와서 위압감을 줬던 걸 생각하면, <듄: part 2>에서의 샤이 훌루드를 활용한 액션은 많이 아쉽다. 지하에서 나와서 군인들 수십 명을 잡아먹거나 하늘의 비행정을 통째로 삼키는 등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걸 보여줬어야 더 재미있었을 텐데.
대단하지 않은 액션 서사의 포장
사실 이게 <듄: part 2>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인데, 폴이나 페이드 로타 둘 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일을 했는데도 대단하다고 리액션을 하며 엄청난 음악을 깔아주고 있는 연출이 그것이다. 그것은 조금 과장하면, 동남아의 무술 고수라면서 손도 안 대고 제자들을 쓰러트리는 사기영상처럼 우스워 보이기까지 한다.
앞서 말했듯 <듄: part 2>에서는 프레멘이 되기 위해 폴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알기 힘들다. 거기에 폴이 프레멘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한 부분이, 고작 '미끼가 되어 방어막이 풀리는 순간을 노리도록 한 것'이라는 게 많이 의아하다. 그 정도의 전술은 미리 가르치고 시작하던지, 당연히 해내야 하는 것 아닐까? 배우는 부분이 삭제되었다면, 프레멘이 생각하지 못할 기발한 작전들을 생각하는 것이 더 대단했을 것이다. 혹은 비행정에서 무기를 사용할 때만 방어막이 풀리는 것을 프레멘들이 모르고 있었던 걸까? 그럼 폴이 직접 포를 쏴서 그 짧은 틈을 맞추는 장면을 보여줬다면 뒤에 프레멘들이 폴을 대단하게 여기고 환호하는 모습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챠니와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인지 챠니가 포를 쏴서 폴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죽었다. 웅장한 화면에 더 엄청난 음악을 깔아버려 뭔가 엄청난 일을 한 것 같았지만, 생각해 보면 별거 없는 걸 포장한 것이다. 비행정의 움직임을 미래를 봐서 예측한 것도 아니고.
거꾸로, 프레멘의 액션도 그렇다. 프레멘은 적들이 사막에서 방어막을 켜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샤이 훌루드가 방어막의 진동 때문에 미쳐 날뛰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막에서 게릴라전을 잘하는 건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수도에 들어가면 적들은 방어막을 켜고 있다. 방어막을 켠 상태에서의 검술은 일반 검술과는 달리 몸 근처에서 느리게 움직여야 한다. 방어막을 켠 적을 별로 상대해 본 적이 없는 프레멘은 그 검술을 어떻게 익혔을까? 폴이 그걸 가르쳐줬다면 더 폴의 능력을 높게 살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나오지 않았다.
페이드 로타의 액션 서사도 그렇다. 페이드 로타의 액션은 그의 캐릭터와 위압감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장치다. 등장 전부터 그를 '싸이코닉'하다고 말하거나, 칼을 점검하며 주변 사람들을 찔러 죽여보는 모습 등으로 하코넨 남작이나 라반보다 더 대단할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상은 그가 자기 혀에 칼을 가져다 대려다 피도 안 내고 그냥 옆사람을 찔러보던 장면처럼 맥이 빠졌다. 원작에서 그는,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굉장히 교활한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런 면모는 거의 보이지 않는데, 그럼 그냥 사이코패스 같은 면이라도 부각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차라리 비슷한 장면의 비교라면 <글래디에이터>의 코모두스가 훨씬 교활하고 사이코 같고 두려움의 대상처럼 보인다. <듄> 소설이 훨씬 먼저 나왔으므로 <글래디에이터>가 그것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큰데도 말이다.
원작을 살펴보니 페이드 로타의 생일 검투장면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 교활한 최면 술수를 써놓고 마치 자기가 정당하게 힘으로 이긴 것처럼 포장해서 영웅처럼 그려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폴과 싸우다 그 최면이 자기한테 걸린 거라 착각해서 스스로를 옭아매 죽게 되는 게 원래 내용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영화에선 페이드 로타의 그런 술수나 자업자득의 교훈도 없이 그냥 칼싸움해서 지는 걸로만 보여줘 페이드 로타의 서사가 사라졌다. 그러니 밋밋한 것이다. 서사를 없앴다면 액션에서 캐릭터성을 부여할 수도 있었는데, 페이드 로타는 검술을 잘해서 오만하다는 거 말고 딱히 액션에서 드러난 게 없었다. 만약 페이드 로타가 너무 검술을 잘해서 폴의 검술을 흉내 낸 설정이었다면, 관객이 이해하기 힘들게 연출을 했다.
오히려 액션의 캐릭터 서사에서는 1984년 데이빗 린치의 <듄>이 조금 더 낫다
또한 샤이 훌루드와의 액션 서사도 대단하게만 보이지 실제로 대단한지 잘 모르겠다. 1편에서 프레멘에게 신처럼 여겨지던 샤이 훌루드가 2편에서 교통수단으로 다뤄지는 게 좀 의아했는데, 원작에서도 그런 모양이다. 그 부분 묘사를 보면, 프레멘이 샤이 훌루드를 생각하는 감정이나 느낌은 모아나가 바다에게 갖는 감정과 비슷하다. 인격체 신이라기 보단 만물이 창조된 대자연으로써의 경외감 같은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이 샤이 훌루드를 타는 장면은 사실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폴이 왜 대단한지, 샤이 훌루드와의 교감이나 길들이기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서사가 전혀 없다. 이전에 <아바타>에서 나비족이 토루크를 길들이는 방식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는데, <듄: part 2>에서 보이는 샤이 훌루드와의 액션 교감 서사보단 낫다.
샤이 훌루드를 타는 것은 갈고리를 걸면 끝나는 것이고, 그 거대한 것을 손으로 버티며 조종하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쳐도 1편에선 분명 공격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는데, 그 정도의 갈고리가 걸쳐졌다고 해서 모래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친절하게 모래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태워주는 것은 왜인가. 또 갈고리를 풀면 바로 튕겨나가 떨어질 텐데 내릴 땐 어떻게 내린단 말인가. 베네 게세리트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에게도 '보이스'를 쓰는 것이 1편에 나왔었는데, 폴은 '보이스'를 이용해 남다르게 샤이 훌루드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설정이 있어도 좋지 않았을까? 마치 이 장면은 '폴이 샤이 훌루드를 타게 되어 프레멘에게 인정받았다'라는 한 문장을 대충 영상으로 멋지게 '설명'한 것뿐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특별한 교감이나 길들임 없이 되는대로 타는 설정은 샤이 훌루드의 캐릭터를 빈약하게 만들었다.
빈약한 전술
그리고 영화의 내용상으로 보자면, 황제의 군대를 잡는 마지막 전투는 전쟁액션 개연성이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아무리 멀다고 해도 언덕 뒤에서 크게 연설을 하고 온 군대가 개전 전에 소리를 지르다니, 이건 기습전에서 해선 안될 일이다. 이런 장면은 남부에서 군대가 출발하기 전에 했어야 했다. 액션에서 종종 뒤에서 기습하는 적이 소리먼저 지르고 공격하려다 소리 듣고 눈치채고 피하거나 되받아치는 장면을 많이 봤을 것이다. 기습전은 조용해야 한다.
그리고 모래 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오는 게릴라 전술은, 적들이 가는 길목을 예측하고 함정을 파서 기습할 때 쓴다. 앞에 스파이스 채굴기를 공격하는 건 그게 맞았다. 그러나 적의 진지 앞에서 모래 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온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언제부터 거기에 숨어있었던 걸까. 아니면 모래 속을 기어서 거기까지 간 걸까. 그럼 그 뒤에 단체로 백병전을 위해 달려서 뛰어오는 건 왜 그럴까.
폴이 이 전투에서 특별히 한 것은 거대한 모래폭풍 예측이다. 나머지 전술이라는 건 그냥 순서대로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전술이랄 게 없었다. 왜 이렇게 황제와 하코넨의 군대가 허무하게 당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폭풍이 먼저 수도를 감싸고, 비행정이 뜨지 못하는 가운데 익숙한 프레멘들만 자유롭게 움직이며 적들을 썰어버렸다면 모르지만 영화에선 그런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프레멘들은 애초에 방어막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냥 레이저 빔으로 쓸어버리면 그만 아닐까? 하코넨한테 고전 무기도 다 허용했던 황제인데. 왜 황제 앞까지 왔는데 사다우카는 칼로 싸우는 걸까. 멋있고 장대한 장면들을 늘어놓기 위해, 개연성을 포기한 듯 보였다.
게다가 하코넨은 프레멘을 상대한 게 처음이 아니다. 지금이 가장 격렬한 저항이라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아라키스 행성을 지배하며 그들을 상대해 왔다. 그런데 프레멘의 저항이 거세진 상황에서 채굴기의 방어인력은 왜 이리도 허술한가? 거꾸로 채굴기를 미끼로 해서 프레멘을 몰살시킬 생각은 왜 못하나? 여기선 프레멘이 폴에 대한 종교적 믿음으로 더 강해진 것처럼 보인다기보다, 그냥 하코넨 쪽이 너무나 바보같이 보인다. 황제 또한 그렇다. 황제는 은하계의 대 가문들을 사다우카의 무력과 자신의 정치력으로 조율하는 세력이다. 물론 그 뒤에 베네 게세리트가 있었다고 해도, 여기서 보여주는 황제의 모습은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허약한 모습이다. 만약 이런 의문들에 대한 해답이 원작에 있다!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 팬끼리 돌려보는 2차 창작 팬무비에 불과하다. 영화는 영화로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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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지만, 듄의 스토리가 현재 세계정세와 맞물리는 부분이 있어 그걸 어떻게 표현할지 아주 궁금해진다. 모티브를 따온 종족과 별개로 내용을 보자면 아트레이데스는 영국(미국) / 하코넨은 나치 / 프레멘은 유태인과 흡사하다. 현재 2편까지의 내용을 보면 영국이 유태인을 나치에게서 구해 유태인의 나라 이스라엘을 세워준 역사와 비교되는데, 그 뒤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주변 아랍국가와 팔레스타인과 끝없이 전쟁해 왔다. 이는 3편에 나올 내용, 대가문들과의 전쟁과도 연결된다.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무차별 학살하는 것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듄: part 3>가 이것을 어떻게 느끼게 만들까? 미국인과 이스라엘 인들은 그 내용을 자신들의 이야기와 연결시킬 수 있을까?
드니 빌뇌브가 소설 <듄>을 너무나도 멋지게 실사 영화로 만들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의 고질적인 약점인 빈약한 액션 서사가 더욱 두드러졌다. 게다가 그 빈약함을 영상미와 한스 짐머의 웅장한 음악이 멱살 잡고 끌고 가고 있는 모양새다. 1편보다 2편이 조금 더 완성도가 높다고 한다면, 3편은 부족함을 더 채워서 나왔으면 좋겠다. 장대한 우주 대 서사시를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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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여운 캐릭터의 유통기한이란
* <미니언즈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미니언즈2 (2022)
감독: 카일 발다
출연(목소리): 스티브 카렐, 타라지 P.헨슨, 양자경 등
장르: 애니메이션, 코미디
러닝타임: 87분
개봉일: 2022.07.20
미니 보스와 미니언들의 본격 성장기
트릴로지로 구성된 <슈퍼배드> 시리즈는 악당 '그루'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라면 스핀오프 <미니언즈> 시리즈는 말그대로 그루의 조력자 겸 친구로 등장했던 미니언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작품이다. <슈퍼배드>의 프리퀄로서 미니언이라는 종족의 기원부터 이들이 어린 그루를 만나게 되는 초기 서사를 그렸던 전편에 이어 2편은 11살이 된 그루와 미니언들의 본격적인 성장기를 담고 있다. 6인의 악당을 동경하는 '그루'는 미니언들과 함께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소한 말썽을 피우는 게 전부이지만, 세계 최고의 악당이 되기를 꿈꾼다. 6인의 악당에 한 자리 공석이 생겨 면접을 보러 간 그루는 어리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무시를 당하자 눈앞에서 스톤을 훔쳐 달아나버린다. 하지만 말썽쟁이 미니언 '오토'가 스톤을 잃어버리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그루마저 늙은 악당 '공포의 검은 장갑'에게 납치를 당한다. 그렇게 그루를 구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는 미니언, 그루를 쫓는 악당들, 그리고 잃어버린 스톤을 찾기 위해 떠난 오토의 좌충우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신 없는 플롯, 핵심 스토리의 부재
<미니언즈2>는 기존 시리즈 작품들처럼 러닝타임이 짧지만 중심 플롯이 세 개나 등장하기 때문에 많은 사건들과 캐릭터들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미니언즈'의 핵심은 심플함과 직관적인 코미디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플롯을 활용하면서 그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미니언을 두 팀(주인공 3인조와 오토)으로 쪼개고, 그루마저 이들과 떨어뜨려 놓아 함께 있을 때 시너지를 이루는 주인공들의 매력적인 합을 보기가 쉽지 않다. 또한, 중심 축이 되는 스토리라인 부재도 아쉽다. 가장 많은 분량을 가져간 '케빈-밥-스튜어트'의 쿵푸 액션 도전기는 슬랩스틱 개그와 시각 효과를 제외하면 별다른 내용이 없다. 반면 <슈퍼배드>와의 연계성을 가져간 그루의 서사는 떡밥 회수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제공하나 본작이 <미니언즈> 시리즈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 또한 의미 있는 구성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루'와 '미니언'의 비중이 비등비등하게 반영되어 본작이 <미니언즈> 시리즈인지 <슈퍼배드> 시리즈인지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 영어 대사를 소화하지 않는 미니언들이 무작정 큰 비중을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슈퍼배드> 시리즈와 이어지는 '그루'의 서사가 꽤나 중요하게 다뤄지면서 미니언들은 그저 코믹하고 귀여운 요소로 활용되는 것에 그친다. <미니언즈> 전편은 <슈퍼배드>의 주인공인 '그루'가 등장하지 않았지만 마성의 매력을 가진 미니언들만으로 작품을 꽉 채우는데 성공했던 터라 스핀오프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귀여운 매력만으로는 분명한 한계
<슈퍼배드>도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시리즈를 이끌어 왔고, 이러한 롱런의 비결로는 시리즈 초기까지 감초에 불과했던 미니언들의 커진 존재감을 꼽을 수 있다. <미니언즈> 1편은 탄탄한 스토리라인 없이 오로지 미니언들의 귀여움과 코믹한 캐릭터성만을 내세워 <슈퍼배드> 시리즈를 넘어서는 수익을 거두는데 성공했을 정도다. 완성도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오로지 캐릭터의 인기만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시리즈물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대단해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후속작 제작이 지속되면서 더 이상 귀여움만으로는 승부수를 띄우기 어려운 구간에 도달한 듯하다. 미니언의 캐릭터 쇼만으로 작품을 채우기에는 한계가 있는데, 더 이상 이들과 함께 풀어나갈 스토리나 매력적인 사건들이 없다. 사실 몇 편 째 어설픈 빌런과 그루/미니언의 대결 구도만으로 작품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후속작인 이번 작품 역시 흥행에는 성공하고 있지만, 제작이 확정된 <슈퍼배드4>와 그 이후에도 프랜차이즈를 계속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면 날이 갈수록 유치함만 더해지고 있는 각본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줄거리 없이 캐릭터의 인기만으로 흥행을 거두었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과거에도 많았다. 하지만 빈약한 시나리오 문제는 시리즈가 지속됨에 따라 귀여운 매력의 약발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니언즈> 시리즈 또한 이와 같은 길을 걷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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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호러영화에는 재미도 있고 슬픈 전설까지 있어
여러분은 어떤 것에 무서워하는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이뤄지는 걸 무서워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될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던 게 현실화되면 무섭다. 거의 대부분 현실로 이뤄지는 게 함정이지만 이 공포에 무덤덤함이란 없다. '혹시 누가 화장실 물을 안 내렸으면 어떡하지' 싶으면 간혹 그 더러운 광경을 보게 된다. 비단 시각적인 것으로만 국한 지을 필요는 없다. '이 쯤되면 뭐 하나 잃어버릴 것 같은데' 싶으면 잃어버린다. '돈 다 쓸 것 같아'라면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돈이 빠진다.
당연히 우리 모두 다 재미없는 삶을 싫어하기 때문에 혹시 나를 두려워할 것이다. 이게 심해지면 불안장애라는 병으로 발현되기도 하지 않나. 이런 걸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 외로 내 운명이 바뀔까 하는 두려움은 거의 클래식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각자가 믿는 신에 다들 기대곤 하는 거 아니겠어? 그 점을 활용한 예술 장르가 공포영화고. 한국과 그렇게 멀지 않은 곳 대만에서 호러영화 한 편이 공개됐다. 이 영화, 무섭다, 기괴하다. 당신의 110분을 사라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저주 걸린 여자의 삶 가까이에 다가가 보자.
건드리지 말아야 했던 것
저주가 있다고 한다. 여자는 저주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백하는 여자. 자기를 리궈난이라고 소개한 주인공은 과거에 있던 일을 털어놓는다. 끔찍한 금기를 건드렸다는 여자. 금기를 건드린 탓에 리궈난의 주변에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카메라를 들고 간 경찰서에는 의문의 자살사고가 벌어진다. 계속되는 불행에 삶에 벌어지는 일들을 체념하기로 한 것 같다. 리궈난은 자기의 처지를 고백하고 금세 이 영상을 찍고 있는 이유를 말한다. “우리 딸의 불행을 극복하고 싶어서에요”
카메라는 리궈난의 일상으로 옮겨간다. 리궈난에겐 딸 한 명이 있다. 어두운 낯빛이지만 그래도 환하게 웃어 보이는 어머니 리궈난. 리궈난은 양육권을 뺏길 위기에 처한 것 같다. 평가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친모로서의 권리가 박탈될지도 모른다. 카메라와 리궈난은 한 남자와 만난다. 아마 공동으로 양육권을 가질 아버지가 되는 분인 것 같다. 촬영하고 있는 영상의 목적 ‘영상일기’를 설명한다.
둬둬는 리궈난 인생의 전부다. 그녀가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도, 유일하게 웃는 것도 딸을 만날 때가 아니면 볼 수 없다. 그런데 마음대로 편하게 굴러가진 않는다. 같은 차에 탔는데도 흐르는 어색한 기류. 차에 타서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둬둬와 리궈난은 행복할 자격이 있다. 간단한 놀이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녀. 둬둬는 어머니 리궈난에게 살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갑자기, 돌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시작됐다. 리궈난은 정해져 있던 저주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사실 뻔하다. 이 영화는 호러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다. 호러 영화에서 주인공이 저주에 걸리는 설정은 가지각색으로 다양하다.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 아무 이유도 계기도 모른 채로 맞이한 비극, 식인종 연쇄살인마와의 대담, 내재되어있는 분노 폭발 등 기존에 있는 호러 영화 수작들처럼 창의성 있는 도입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 금기를 건드리게 된 계기는 허무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뻔하다. 당장 떠오르는 <텍사스 전기톱 2022>부터 <이블데드>까지 전통과 근본의 주요 소재를 기시감이 들 정도로 답습하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저주의 시각화다. 이 저주를 시각화한 방식은 다른 영화와는 다른 차이점을 부여한다. 이 저주에 힘을 빡 줘서인지 인트로에 힘이 영 없는 건 분명한 단점이다.
이 단점이 영화 초반부에 제시되면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초반부가 지루하다는 점이다. 이야기 전개가 예상대로 이어진다. 눈길을 잡아끄는 건 자극적인 저주뿐이다. 단점이 이런 선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편집이 좀 산만한 감이 있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영화의 등장인물이 직접 카메라를 찍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형식)의 특성이 어느 정도는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근데 이 장르의 특성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내용이 좀 있다. 구체적으로 초입부의 저주의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첫 번째로 저주가 시각화되는 장면이 있다. 이 신은 아쉬움이 있다. 전체적으로 후반부의 폭주하는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다음 장면에 '어떻게 주인공들이 저주에 걸리게 됐는가'를 정작 영화에서 힘을 주고 싶은 부분이 너무 대놓고 드러나는지라 전반부는 기능적으로 단지 분위기만 제시하기 위해 쓰인 느낌이 강하다. 냉장고에 물건들이 다 엎어지고, 느닷없이 꼽등이가 날아들며 불이 깜박깜박하는 것이 후반부까지 통일성 있게 나타나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전반부는 그냥 잊힌다. 이 장면에서 둬둬가 저주가 걸린 부분을 1/3으로 줄이고 중반부로 이야기를 전개했어도 큰 무리는 없다. 이런 식으로 초반부는 단지 무서운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만 쓰인다. 이때 이 영화의 미술팀이 열일을 해서 무서운 느낌을 내는 건 충분하다. 그런 측면에서는 영화의 성취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자극적으로 높은 템포를 단지 유지하기 위해서 러닝타임을 썼다는 점은 사람에 따라서 지루하다가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디어가 너무 재치 있고 흥미로워서 영화의 서사가 희생된 느낌?
이 단점은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앞에서 쓴 현재 시퀀스 바로 다음은 과거 회상이다. 어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던 주인공. 친구들과 함께 한 마을의 전통을 취재하려고 한다. 이 취재는 리궈난이 저주에 걸린 계기가 된다. 그니까 둬둬가 걸려있는 저주의 증상을 보여주고 리궈난이 이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엇갈려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방식은 중반부 터닝포인트가 있기 전까지 지속된다. 근데 이건 사실 좀 더 쉽게 전개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초반부에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이 저주를 알면 알수록 더 큰 위험에 빠져들어요'라고. 그러면 이 저주가 대체 뭐하는 것이길래 인물들을 이렇게 끔찍한 비극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걸까? 의문점이 든다. 난 이 저주의 숙주에 대해 알고 싶다. 그런데 계속 저주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를 보여준다. 그게 불필요한 건 아닌데 주인공이 어겼던 종교적인 금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을 방해할 정도로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영화는 초반부터 중반까지 끊기는 느낌인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엇갈려 배치할 필요가 없는 느낌이었다. 이게 현재 시점에서 겪는 저주 연출이 현실적으로 기괴해서 그렇지 미술팀의 열일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굉장히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다행히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을 보여줘 이야기에 집중이 되지만 천천히 쌓아 올린 빌드업이 불친절한 것은 영화의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저주에 걸린 모녀의 모습 - 과거에 어떻게 저주에 걸렸는가 - 현재 관점에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 - 하이라이트 신(과거 회상) - 엔딩으로 이어져도 극이 훨씬 깔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영화의 다른 단점 중 하나는 엔딩이다. 아마 "..?" 싶을 것이다. 중후반부까지 쌓아 올린 압도적인 이미지에 무색하게 좀 허무하게 끝난다. 근데 이 영화는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무섭고 기괴한 에너지가 강점인 영화다. 그래서 엔딩이 그렇게까지 페널티는 아니다. 좀 어이없을 뿐. 아무 인상도 주지 못하는 엔딩이었다. 이 부분은 직접 확인하시길!
압도적인 시각 디자인
이 영화는 이렇게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사실 장점이 훨씬 더 크다. 일단 앞에서도 쓴 시각 디자인은 정말 노력의 대가가 그대로 나타났다. 일단 기괴한 이미지를 너무 잘 짰다. 어쩜 그렇게 무서운 짓만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초반부에 어떤 할머니가 차 밖에서 인물을 관찰하는 신이 있다. 그냥 슥 지켜보는 게 아니라 딱 달라붙어서 구경한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서 하는 행동들, 몸의 각도들, 대사들까지 경제적인 활용법이 돋보인다. 이 감독은 어떻게 해야 그냥 지켜보는 행위로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 수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기괴한 짓만 골라서 러닝타임을 끌고 가기 때문에 호러 영화의 제1원칙 '일단 무서워야 함'을 아주 충실히 충족한다. 그래서 이 영화 자체가 재미있는 영화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 계속 생각난다. 하이라이트 신에서 만든 세트장은 진짜 실제로 그런 게 있을 법하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뭐라 뭐라 보여주지 않아도 디자인의 현실감 하나로 모든 설득력을 갖는다.
이 시각 디자인의 강점은 신체를 활용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분명 여러분들이 다 익숙한 맛일 것이다. 근데 그 익숙한 맛에서 살짝 비켜나가서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초반부에 입 안을 열었는데 치아가 많은 장면이 있다. 이 때 치아가 좀 누리끼리하지 않다. 정말 새하얗다. 근데 입 안이 또 완전 새빨간색은 아니다. 적당히 빨갛다. 적당히 빨갛고 아예 새하얀 치아를 탁한 조명으로 묘사한다. 이 이미지에서 오는 기괴함은 아직도 생각날 정도다. 그리고 무슨 피부에 발진이 나는 형태도 현실감 있게 잘 그렸다. 단순히 끔찍하게만 그려서 무서운 게 아니다. 진짜 일어날 법한 상처라서 더 무섭다. 이 상처를 비추는 조명이나 촬영 방식도 잘 골랐다. 연출자의 섬세함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믿음이 가는 이 느낌
<랑종>이 생각난다. <랑종>과 이 영화는 어느 정도 비슷한 감이 있다. 아시아권의 영화감독이 동양적인 소재로 호러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궤를 공유한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도 장점을 공유한다. 바로 신뢰를 팍 주는 중심인물들이다. <랑종>에서는 님 역을 맡은 배우가 실제 다큐를 보는 듯한 든든한 연기를 보여줬다. 반대로 이 영화에서는 유사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인물의 특성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인물의 표정연기와 대사 치는 톤으로 신뢰감을 형성한다. 이 사람은 진짜 그럴 것 같다. 그리고 후반부로 이어지는 폭발하는 연기 역시 생동감 있게 잘 소화했다. 이 인물의 행보, 등장과 퇴장을 유심하게 지켜보면 극의 배경이 되는 연기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또 모녀의 연기 역시 좋았다. 특히 아역 배우 둬둬를 맡은 배우는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이 호러를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을까? 90년대-00년대 아마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귀신 들린 연기를 깔끔하게 잘 소화했다. 또 리둬난 역을 맡은 배우도 리액션 연기가 좋았다. 기괴한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어딘가 불안한 내면을 탄탄하게 소화했다. 어쩌면 불안한 각본을 이끌 수 있었던 건 이 세 배우의 호연 덕이다.
그냥 보기 좋아
영화를 왜 볼까? 난 그냥 본다.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본다.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라는 매개체가 주는 특성은 남다르다. 가끔은 장점이고 단점이고 나발이고 순수하게 무서운 영화가 끌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 장점을 충실히 구현하는 좋은 영화다. 일정한 톤으로 기괴한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극에 빠져드는 장점이 될 것이다. 시각 디자인팀이 만든 영화의 에너지를 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이 후딱 지나가 있을 것이다. 작년 <랑종> 역시 무서운 영화였다. 이 영화는 <랑종>의 장점과 단점을 어느 정도는 갖고 와 나름의 방식으로 변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맥주 깐 상태로 보기 좋은 공포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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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져도 기억될 영화와 마음, 좋아하는 마음으로도 충분하니까.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주인공은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을 하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속해있는 영화 동아리는 카린을 중심으로 로맨스 영화만 촬영한다. 사무라이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맨발은 불만을 품지만 <무사의 청춘>을 만들겠다는 마음만큼은 절대 져버리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담고 싶은 영화의 주인공과 닮은 린타로를 만나게 되면서 꿈을 현실로 만들 기회가 눈앞에 다가온다. 과거를 아는 것보다 미래를 아는 게 더 희망적일까. 불확실함에서 확실함을 찾아가야 하는 현재는 용기를 내기가 어렵고 또 겁난다. 자신의 현재이자 미래를 바꿀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영화는 말이야, 스크린을 통해 현재랑 과거를 이어준다고 생각해. 난 내 영화를 통해 미래를 연결하고 싶어” 오해와 어려움을 거쳐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영화를 통해 마주하게 된다. 기록에는 남지 않아도 기억에는 남을 열정과 영화 그리고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다.
영화관에서 만나기 전에 재팬 필름 영화제에서 만난 작품 중 하나로 어느 것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만난 착한 영화였다. 그때는 봄이었는데 지금은 뜨겁고 끈적이는 여름이 되어 그 자체가 싫어지는 와중에 다시 이 영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여름이었다’ 라는 흔한 말과 ‘청춘’이 그대로 담겨있는 이 영화는 민낯의 청춘들을 사랑하고 있다. 성공, 인생의 목표, 뚜렷함과 같은 것들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지만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도 만든다. 그런 나를 위로하듯 활활 타오르는 열정을 영화에 한가득 담아낸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맨발은 좋아하는 것을 영화에 진심을 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끊임없이 자신의 두려움의 감정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만들어내는 단어들이 떠오르고 뒤보다는 앞을 바라보게 만드는 용기를 얻어갈 수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마주하고 바라보고 있는 영화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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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욕망과 두려움의 표상, 그리고 삶의 의미
*영화 '아가씨'의 결말 줄거리 포함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소설(fiction)의 형태로 이 세상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것은 태생부터 이 세상에 실존하지 않는 것이었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존재하는 그 개념은 생명을 가진 유기체처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역동적으로 그 의미를 달리 해왔다. 그 과정에서 ‘디스토피아’라는 개념이 새롭게 태동하여 마찬가지로 살아 움직이며 몸집을 불려왔음이 이를 방증한다. 우리는 수많은 매체와 형태, 즉 문화라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그 과정을 지켜봐 왔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살아 움직일 수 있는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욕망과 두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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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디스토피아
영화 ‘아가씨’는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나 유토피아로 향하는 과정으로서 인간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극 초반에서 나타나는 두 주인공의 삶은 각기 다른 형태의 디스토피아를 나타내고 있다. 두 인물의 삶은 경제적 또는 사회적 자유가 부재하는 삶이다. 이에 저항하여 생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분투하는 타마코와 분투 끝에 생존의 의지를 상실해버린 아가씨의 모습은 대조를 이룬다. 두 인물은 사회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 각각을 배타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사회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 둘 중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자유의 부재다. 그들은 분명 자유롭지만 철저하게 일면에서만 자유로운 탓에, 결국 전혀 자유롭지 않다. 한쪽은 돈에, 한쪽은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에 철저히 종속된 삶이다.
두 주인공은 서로에게서 자신이 가진 결핍으로서의 부자유를 본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가장 밀도 있게 함유한 개념이다. 우리의 욕망은 결코 완전히 충족되는 법이 없는 반면, 두려움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실현 가능함에서 비롯한다. 실현이 가능하지 않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멀리, 그러나 욕망하는 것에는 가까이 가고자 끊임없이 질주하는 과정이다. 디스토피아에 대한 도피와 유토피아를 향한 지향이 인간 삶을 구성하는 본질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유토피아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옥희’라는 유명한 대사는 아가씨의 관점에서 서술되지만 타마코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아가씨의 마음, 그것은 곧 생명의 불씨였기에 타마코에 의해 마음이 짓밟힌 순간 그녀는 목을 매달기 위한 밧줄을 꺼내든다. 타마코가 벚나무에 힘없이 매달려 죽음을 기다리던 아가씨를 밑에서부터 받쳐 들었을 때, 두 주인공이 깨달은 것은 단지 서로를 향한 각자의 애달픈 마음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유토피아가 반대편이 아닌 동일한 방향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기도 했다.
서로의 존재 없이는 결코 그곳에 도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의 인생을 ‘구원’해내기로 한다. 그리고 종래에는 하나의 유토피아에 도달한다. 이는 원작 소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기도 한데, 원작에서 두 주인공은 길고 지난한 여정에 걸쳐 기존의 디스토피아에서 또 다른 디스토피아로 자리를 옮길 뿐이다. 그들은 둘의 노력으로 이룩할 수 있었던 유토피아의 존재조차 끝까지 알지 못한다. 원작과 영화의 결말, 그리고 이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극명한 차이가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은 삶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삶의 본질은 단지 두려움으로부터 도피하는 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우리는 도피하는 동시에 어딘가로 나아가야 한다. 그곳에 각자의 유토피아가, 욕망이, 삶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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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써 대답하기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 각자의 유토피아를 향한 과정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실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에 도착하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오직 그것만이 삶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유토피아에 도달함으로써 마치 기차가 역에 도착하듯이 삶도 종착역에 도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행인 것은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우리들 삶의 의미가 죽음으로써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도 삶의 의미는 남는다. 그것은 주인을 잃었어도 기어코 이 세상에 남아 삶과 연결된다. 무엇을 두려워할 것이며 무엇을 욕망할 것인가. 하나의 질문이 있고 하나의 답이 있다. 당신의 질문과 나의 질문, 당신의 답과 나의 답은 반드시 다를 것이다. 그러나 다름 아닌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우리는 연결될 것이다. 삶으로써 질문에 대답해야만 하는 숙명을 가진 인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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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 / Ghostbusters: Afterlife, 2020
영화의 제목만으로 이 영화를 안다는 건 저처럼 나이를 많이 먹었거나 많은 영화들을 봐왔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동명의 노래를 들어보신다면 '어! 이 노래가 이 영화에 나오는 거였어?'라고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는 84년에 첫 선을 보였고, 89년 2편을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흥행이 전혀 안되건 아니었습니다. - $296,578,797과 $215,394,738로 각각 제작비를 훨씬 웃도는 성적을 기록했으나 수뇌부의 기준에는 못 미쳤나 봅니다.
그리고 2016년 기존 남성 캐릭터들을 여성으로 바꾸며, '리메이크'를 강행했지만 평가와 흥행이 실패하며 그대로 '유령'이 돼버리고 맙니다.하지만, 이대로 멈추기에는 아쉬움이 컸을 겁니다.
이에 영화는 "제이슨 라이트만"감독을 선임하는데, 특이사항이라면 아버지가 "이반 라이트만"으로 대표작이 <고스트버스터즈>라는 것이죠.
이 소식에 '낙하산'이라는 말도 나오겠지만, <주노>를 시작으로 <인 디 에어>로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아왔으며, 최근 "샤를리즈 테론"의 <툴리>까지 흥행은 아쉬워도 실력을 인정받은 그이기에 때아닌 기대를 끌어모았는데요.
그렇게, 아들이 만든 시리즈의 3편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으며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재밌는 건 평론가의 반응과 관객들의 반응이 상반되는데, 이는 16년 버전과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영화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의 감상을 한 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누군가로부터 도망치는 한 남성은 황급히 집으로 들어오지만, 끝내 목숨을 잃고 마는데요. 이에 연락을 받은 딸의 가족은 남겨진 그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됩니다.
시골이고, 외진 곳에 있는 만큼 지루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던 가운데 '피비"는 집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물건을 발견하고, 지하실을 찾게 되며 자신의 할아버지가 "고스트버스터"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내가 누군지 알겠니?
1. 30년도 더 된 영화들을 찾아봐야 하나요?
앞서 말했듯이 이번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시리즈'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이는 즉슨, 고정 관객층들이 있다는 것으로 이런 시국일수록 이런 영화들의 개봉은 불가피하지만 좋은 선택지로 보이나 문제는 전작 <고스트버스터즈>가 1984년에 나온 영화입니다.
그나마, 빠른 최근 작이 89년에 나온 작품이니 빨라도 32년 전에 나온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2016년에 나온 영화가 있지만 이는 전혀 상관없는 작품이 되었으니 이번 <라이즈>를 보려면 30년도 넘은 영화를 찾아봐야 하니 높디높은 진입장벽에 해당 관람을 포기하는 팬들도 존재할 겁니다.
무엇보다 30년이나 넘은 영화인만큼 요즘 같은 매끈한 시각효과를 기대하긴 어렵겠죠.그럼에도, 찾아봐야 할까?
저는 이에 "굳이, 안 보셔도 문제없습니다"라고 말할 겁니다.
이런 이유에는 이번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가 '시리즈'에 속하지만 전작들과의 텀이 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를 영화에서도 하나의 과거담으로 적용시켜 역으로 "궁금증"을 자아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활용시킵니다.
여기에 어린 주인공들의 성장을 "귀신"과 접목시킨 <그것2017-19>의 사례대로 밟아가니 어색함은 느껴지지가 않아 하나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합니다.2. 그래도, 시리즈를 찾아본다면 달라질 거예요.
다만,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일부 개연성이 아쉬운 장면들이 있습니다.
극 중 숨겨진 "고스트 트랩"을 발견하는 우연성 짙은 장면이나 보지도 못한 "먹깨비"의 존재와 등급을 유추하는 장면은 그러한데요.
특히, 이번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의 러닝 타임은 124분으로 앞선 107분의 1편과 2편보다 더 많은 분량을 가진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미스플레이"입니다.
이런 이유는 앞서 말한 길어진 시리즈의 텀을 정리하는 것과 새로이 소개할 "피비"와 같은 아이들의 설명으로 보이는데요.
이에 "시리즈를 챙겨봤어야 하나?"싶은 후회도 생기겠지만, 이는 예습을 못한 우리의 잘못은 아니잖아요.그래도, 찾아본다면 달라질 거예요.
이렇게, 본다면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다소 평범한 범작에 그치겠지만 앞선 "시리즈"들을 챙겨본다면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겁니다.
앞선 84년 89년에 나온 영화의 분위기는 마냥 어둡지만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귀신"을 소재로 삼았음에도 영화는 내내 코믹스러우면서도 밝은 분위기를 유지했는데, 이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마시멜로맨"이죠.
여기에 "먹깨비"의 존재도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것보다 먹는 것에 초점을 두었으니까요.
근데, 앞서 <그것>시리즈를 언급한 이번 <라이즈>에서는 그 분위기가 정반대로 흘러나갑니다.3. 기술의 발전에 비례하는 무서움?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펼쳐지는 "유령"과의 추격전과 대결부터 영화는 이전과 다른 다크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런 이유에는 "점프 스케어"와 같은 공포 영화의 방식을 일부 차용한 것도 있지만, 보여주는 비주얼의 발전이 크더군요.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가 "고저"와 '도사견'같은 하수인들입니다.
84년 영화에서는 기술의 한계로 옷과 섬광 효과, 그리고 점토와 같은 질감으로 표현되어 어설픈 감이 없지 않는데요.
이제는 강산도 3번이나 바뀔 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그 비주얼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겁니다.발전하는 기술만큼 무서워진다.
앞서 말했듯이 '도사견'의 모습을 한 하수인들은 그 자체만으로 제법 무섭습니다.
특히, 마트에서 보여주는 추격전은 저라도 "꺄아!"를 극장에서 떠나가라 할 정도로 압도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고저"도 84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성의 모습과 남성의 목소리는 외양만으로도 충분히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 만큼 완벽했으니까요. (이에, '정치적 올바름'도 나오죠)
그런 점에서 이번 <라이즈>에서는 외양에 있어 합격점이나 그 안에 있는 이야기는 84년 영화에서 조금 더 뻗어나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자신을 봉인한 "고스트 버스터즈"와의 관계가 존재하나 그를 부활시키려던 시장의 이야기는 정작 풀어내지 못했네요.4. 다음 고스트 버스터즈는 언제쯤?
그럼에도,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세대교체"라는 시점에서 바라보면 만족스러운 영화입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이든 "세대교체"는 정말 어려운 숙제인 것이 '나이'를 빌미로 삼자니 당장의 성적이 눈에 아른거리고, 영화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는 "로다주가 아닌 아이언맨이 맞나?'라고 팬들의 반발심만 살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다음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을 기대케한다는 것은 이전 16년 작품과는 어떤 차이가 있던 것일까요?무릎을 꿇어 맞춰준다 한들...
이번 <라이즈>와 16년 작품, 모두 전작의 주인공들이 "카메오"로 나오는 것은 맞지만 보여주는 위상은 정반대입니다.
<라이즈>의 경우. 공식적인 후속작인 만큼 악당 "고저"와의 관계부터 보여주는 힘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16년의 경우. 극의 전개에 아무런 영향도 없는 캐릭터들로 축소되니 두 영화 새로운 주인공들을 위한 의도된 푸시라고 한들 느껴지는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분명히,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번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일어나라"라는 부제만큼 쓰러진 팬심을 다시 기립시켜주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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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나는 누가 책임져?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최우식 주연 영화 거인입니다.
너무 좋은 영화라 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usic
Levity – Johny Grimes#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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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이고,치이고,흔들려도 우린 오늘도 직진! 치열하고 뜨거운 청춘들이 온다? 뜨겁게 빛나는 밀레니얼 라이프 《더 패뷸러스》 11월 4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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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위태롭고 불길한 분위기의 선상에서 탑승객들을 심문하는 탐정 ‘에르큘 포와로’
모두가 범인으로 의심되는 가운데,
연이어 발생한 살인 사건은 그의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관객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기치 못한 반전으로 놀라운 결말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