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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포도2025-03-31 21:17:38

종교와 믿음에 대한 피상적 접합을 벗어나다

<헤레틱> (2025)

 신은 있을까. 신의 존재는 믿음으로써 현현해질 수 있을까. 당신의 앞에 두 개의 문이 있다. 왼쪽에는 믿음’, 오른쪽에는 불신이다. 신을 믿고, 그의 존재를 믿는다면 왼쪽 문을 열면 된다.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없고, 온전히 이를 과학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자라면 오른쪽의 문을 열어라. 

 

 

 

 

 <헤레틱>은 외딴집에 몰몬교를 전도하는 두 소녀가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친절해 보이지만서도 한편으로는 수상해 보이는 집주인 미스터 리드(휴 그랜트)’는 영화의 초반부부터 관객들을 긴장시킨다. 아내가 음식을 대접하려고 한다며 시간을 끄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수상케 생각하기 쉽다. 수상한 미스터 리드의 모습을 두 소녀가 눈치채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금세 이야기는 팽팽한 긴장의 줄 위에 놓인다. 카메라는 완전히 두 소녀 반스(소피 대처)’팩스턴(클로이 이스트)’를 비추고, 관객은 그들이 느끼는 긴장감에 온전히 빠져들어야만 한다.

 

 자신이 종교를 연구했다며 자신이 알아낸 이야기를 공유하려는 미스터 리드와 두 소녀 간의 이야기는, 공간이 점점 집의 내부로 들어갈수록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든다. 미스터 리드는 집의 안쪽에 있는 방에서 그 둘을 맞이하며 종교가 가지고 있는 허점에 대해 설파하고, 두 소녀의 믿음을 흔든다. 수상한 남자의 집에서 그들은 도망쳐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양쪽에 놓인 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믿음’, 혹은 불신’. 그들은 어느 문을 열고 수상한 집에서 탈출하게 될 것인가. 탈출은커녕 자신들의 목숨마저 놓칠 것인가.

 

 

 

 

 <헤레틱>은 종교에 대한 믿음의 담론을 소재로 영화의 서사를 전개한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그 내면에는 수많은 철학적 고민이 내재한다. 미스터 리드는 반스와 팩스턴의 몰몬교를 향한 믿음을 계속해서 반박한다. 스스로 의심하게 만든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진정한 믿음에서 온 것인가.’, ‘신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맞는가.’ 수수께끼 같은 미스터 리드의 시험이 반복되고, 반스와 팩스턴은 계속해서 그 시험에서 물러나지 않으려 한다. 미스터 리드의 시험과 의심들에 빈틈없이 채워진 서스펜스들은 단순히 두 소녀만을 긴장시키지 않는다. 관객들마저 완전히 동화시킨다. 오히려 관객들 자신도 그 상황에 놓인 듯이 질문하게 만든다. ‘내가 반스와 팩스턴이라면 어떤 선택과 도전을 할 것인가.’

 

영화가 어쩌면 믿음과 불신이 아닌 3의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작품 속에서 나비의 존재가 꽤 중요한 입지를 가진다. 워낙 많은 종교적 요소가 엮여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할지 때론 혼란스럽다. 그러나 나비를 염두에 두는 것은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나비는 호접지몽을 배경에 두고 있다.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깨고 나니 자신이 인간의 몸을 한 것이 믿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자는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지금의 모습이 나비로서 꾸는 꿈의 일부인지 혼란스러워한다. 이러한 점에서 삶의 덧없음이 드러난다는 의미가 전해져 내려왔다. 미스터 리드도 이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고, 영화의 엔딩에서도 나비가 프레임 안으로 날아든다. 엔딩이 일종의 결론의 역할을 한다는 영화 텍스트 분석적 관점에서 보면 이 나비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헤레틱>은 믿음과 불신 그 너머의 무용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봄 직하다. 믿음 혹은 불신의 감정을 느끼고 그것에 매여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무용한 것인가. 결국 태어나고 죽는 것까지의 그 과정에서 믿음 혹은 불신이 할애되는 과정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겠는가. 생존과 죽음의 경계에서 반스와 팩스턴이 자신들의 믿음에 관해 딜레마를 느끼듯, 삶의 본질 앞에서 믿음이라는 존재는 그 얼마나 한없이 초라해지는가.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이교도라는 뜻을 가진 헤레틱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한 점이 더욱 눈길을 끈다. 우리가 속히 말하는 사이비에 빠진 이들에게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자신보다 믿음이 더 중요케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존재하는지 알 길이 없는, 심지어는 자신이 신의 전령이라며, 신의 대행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사이비 교주들에게 자신의 삶을 모두 바치는 것이 진정한 삶다운 삶이라 볼 수 있는가. 그런 점에서 영화 종반부에 접어드는 과정에서 보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반스와 팩스턴을 찾기 위해 마을을 돌던 목사가 그들은 뒷전에 둔 채 미스터 리드의 집 앞에서 그에게 몰몬교를 전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긴장감을 풀어주고, 약한 웃음을 유발하는 일종의 환기 역할을 하는 장면인데, 그 하위 텍스트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덧없음의 가치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이런 텍스트적 의미를 떠나서도 영화가 서스펜스로부터 공포를 유발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교묘하게 배치한 것이 인상적이다. 호러 장르에 맞게끔 종교와 믿음에 관한 소재를 적절히 뒤틀어낸 것도 놀라운 점이다. 빈틈없이 치고 나가는 이 작품에는 어떤 단점이 존재하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개봉 전 관람을 한 관객들의 반응 중에는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잃고 갈팡질팡한다는 평이 있었다. 영화의 텍스트가 아닌 전반적인 조화를 눈여겨본다면 충분히 가능할 만한 지적이었다. 심지어 글에서 언급한 텍스트적 논점들 또한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징검다리는 상실한 채 띄엄띄엄 연결된 이야기들이 눈에 밟힌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소재와 장르의 혼합이 꽤 눈부신 작품으로 관객 앞까지 오게 된 것은 호평할 일이다. 종교와 호러는 흔히들 결부해 영상으로 만들어 왔지만, <헤레틱>은 어찌 보면 1차원적이라 할 수 있는 피상적 접합에서 벗어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호러 작품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니 여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극장에서 잘 만들어진 호러 영화 한 편으로 올해도 무더울 여름을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헤레틱> 4 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참석한 뒤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 강포도

출처 . https://brunch.co.kr/@sangok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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