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5-04-03 13:15:56
경쟁자를 제자로 둔 스승의 감정
- <승부>(2025)






가끔 인생에서 ‘보석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인연이 길든 짧든, 이 만남이 서로의 삶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는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어느새 그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때론 이 관계가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질 수도 있고, 그 경쟁의 자리가 때로는 스승과 제자의 구도로 나타날 수도 있다. 서로를 밀고 끌어주며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어느덧 ‘없으면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영화 <승부>는 실제 바둑계 전설 조훈현(이병헌)과 그의 제자 이창호(유아인)의 이야기를 담는다. 바둑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지만, 정작 둘 사이에 어떤 갈등과 감정의 교류가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영화는 이들이 단순한 ‘스승과 제자’를 넘어 ‘라이벌’이 되고, 결국 서로에게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가는 과정을 촘촘하게 펼쳐 보인다.
<승부>는 조훈현이 바둑 신동 이창호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신동이라 불릴 만큼 번득이는 실력을 지닌 이창호는 어린 시절부터 도전정신이 가득했고, 프로 기사들과 맞서는 일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국내 바둑 1인자를 굳건히 지키던 조훈현에게 계속 도전장을 내밀어, 끝내 그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이창호가 조훈현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기초부터 배우는 과정은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점차 두 사람의 스타일 차이와 승부욕이 드러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스승과 제자가 공식 대결에서 만나는 충격적 장면이 펼쳐지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흘러간다.
한편 영화는 단순히 ‘바둑 경기’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둑판 위에서의 사활만큼이나 치열하게 움직이는 스승과 제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다. 둘 사이에 형성된 끈끈한 인연이 경쟁 구도가 되면서 어떤 파문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감정을 어떻게 주고받는지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첫번째 감정] 제자 이창호의 미안함
어린 이창호는 무척 대담한 인물로 묘사된다. 바둑판 앞에서만큼은 자신감이 넘쳤고, 누구와 겨뤄도 결코 지지 않겠다는 강한 집착이 있었다. 바둑계 최강자였던 조훈현에게 거듭 도전한 끝에, 결국 제자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발랄하고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은 아이 같으면서도, 어딘가 기이한 집중력을 보여줘 관객에게 신동이라는 설정을 쉽게 납득시킨다.
조훈현의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 뒤, 이창호는 바둑의 이론과 전통을 배우면서도 특유의 반항적인 기질을 감추지 못한다. 스승은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바둑을 선호하지만, 이창호는 한 발 물러서서 전체 흐름을 관찰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바둑판 위에서는 정답이 없는 만큼, 두 사람의 대립은 ‘누가 옳다’라기보다 ‘누구의 방식이 더 강한가’로 귀결된다. 한 편으로 이창호는 이렇게 스승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게 옳은 걸까라는 내적 갈등을 겪는다.
처음 맞붙은 공식 대결에서 이창호는 스승에게 승리를 거두고, 이후 대회에서도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둔다. 이 순간부터 이창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감정에 사로잡힌다. 스승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프로 세계에서 이기고 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스승이라는 존재에게 패배를 안긴다는 점이 이창호에겐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승리할수록 커져가는 미안함, 그러나 동시에 승부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해지는 묘한 내면 충돌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두번째 감정] 스승 조훈현의 실망
조훈현은 처음에 이창호를 데려왔을 때, 분명 특출난 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의 적수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조훈현은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영민한 제자였기에, 누군가가 성장하는 속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이창호만큼 빠르게 스승의 자리를 위협할 줄은 몰랐다. 정작 자신의 삶과 바둑 철학을 전수해 주었는데, 제자는 아예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경쟁자로 거듭나는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창호의 바둑을 지켜보면서, 조훈현은 여러 차례 '그게 아니다, 이렇게 둬야 한다'며 짜증을 표출한다. 공격적이고 직선적인 스승의 성향은, 유연하고 변칙적인 제자의 기보와 부딪힌다. 그런데도 막상 성적이 좋으니, 단순히 틀렸다고 하기 어려운 현실에 부딪힌다. 결국 조훈현은 속으론 인정하면서도, 쉽사리 '내가 틀렸다'고 내뱉지 못한다. 제자를 100% 수용하기에는, 아직 자신이 현역으로 활약 중이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는다.
스승으로서 제자를 응원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경쟁자로서는 매번 패배를 맛보는 일이 고통스럽다. 제자가 강해지는 만큼 자신이 약해져 가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잇따른 패배 후에야 조훈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무너진다. 한때 최강이라 불렸던 자존심이 무너질 때 느끼는 허망함, 그리고 '내가 잘못된 길을 제자에게 가르쳤나?' 하는 후회가 그를 짓누른다. 이 영화는 그 실망의 순간들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며, 한때 최고의 선수였던 이의 내면에 깃드는 그림자를 애틋하게 보여준다.
[세번째 감정] 스승과 제자의 존중감
승부의 세계에선 언젠가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기도 한다. 바둑판 위에서 조훈현과 이창호의 관계 역시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렇지만 치열한 승부 뒤에 누가 이겼든,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실력을 존중한다는 본질적인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조훈현은 처음엔 불만과 실망을 표출하지만, 결국 이창호가 걸어온 독창적 길을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이창호 역시 스승의 옛 기록들을 되짚어 보며, 자신이 너무 빠르게 승리를 좇은 건 아닌지 반성하는 순간이 온다.
바둑판 위에서 마주 앉아 손가락 하나로 돌을 놓을 때, 그들이 느끼는 긴장과 흥분은 서로가 아니면 충족하기 어렵다. 결국 스승과 제자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유일한 동료가 된다.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기도 한 셈이다. 영화는 스승과 제자가 진심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지점이 어느 순간 찾아옴을 보여주는데, 그 순간의 성취감과 뭉클함은 대단히 크다.
끝내 조훈현과 이창호는 서로에게 '네가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하게 된다. 이기고 지는 문제를 떠나,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고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영화 <승부>는 승패보다 더 중요한 동반자로서의 자각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관객에게도 진정한 경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실화를 훌륭하게 각색해낸 영화
<승부>는 실제 있었던 조훈현-이창호의 바둑 역사를 바탕으로, 스승과 제자가 경쟁자로 변해가는 흥미로운 과정을 그려낸다. 바둑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주는 긴장과 성장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왜 둘은 한 판의 바둑에 그렇게 목숨을 거는지, 어떻게 제자가 스승의 자리를 위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은 어떤 것인지가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실제 조훈현과 이창호는 지금까지도 좋은 경쟁자로 서로를 인정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서로가 없었다면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며, 덕분에 한국 바둑계가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영화는 그런 실제 감정을 최대한 살려내, 경쟁의 긴장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동시에 보여준다.
연출은 차분하면서도 흡인력 있게 이어진다. 김형주 감독은 바둑판 위에 펼쳐지는 치열함을 디테일하게 포착하면서도,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바둑알이 놓이는 소리, 팽팽하게 얽힌 표정 등 작은 요소들도 극적 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병헌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노련한 기사 조훈현 역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유아인은 이창호 특유의 무표정 속에 내재된 열정과 부담감을 표현해낸다. 최근 상황으로 인해 유아인의 연기를 당분간 보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이번 작품에서 보여주는 제자 역할은 참 매력적이다. 조연들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 영화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바둑이라는 소재 덕분에, 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층에게는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경쟁 세계를 보여준다. 바둑이든 어떤 게임이든, 인생을 관통하는 ‘승부’의 본질에 호기심이 있다면 이 영화를 꼭 보길 권한다. 마치 한 수 한 수 내딛는 모든 순간에, 인물들의 감정이 묻어나고, 결국엔 스승과 제자라는 틀 안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사랑하게 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승부>는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경쟁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끝내 서로를 깊이 존중하는 인연이 되어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담아낸 휴먼 드라마다. 바둑을 사랑하는 장년층 관객과 함께 관람하면 더욱 즐거울 것이며, “스승-제자” 관계가 빚어내는 미묘한 심리전과 진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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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
2009년에 만들어진 대만영화 <청설>은 파란 이미지가 돋보이는 영화다. 파란 수영장의 물, 파란 여름 하늘, 그리고 두 주인공의 맑은 마음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아우른다. 이 영화는 진정으로 상대를 생각하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 서로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따뜻함을 전한다. 말이 아닌 수화로 표현된 사랑의 모습은 무척이나 특별하고 조용한 사랑 이야기로 다가온다.
<청설>은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소통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사랑이라는 것은 단지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를 위해 기울이는 작은 노력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이 영화는 잔잔하게 이야기한다. 이런 맑은 느낌의 원작을 다시 한국 상황에 맞게 리메이크한 영화 <청설>도 원작의 맑음을 무척 잘 담았다.
[첫 번째 감정] 용준의 배려
용준(홍경)은 어느 날 음식 배달 중 수영장에서 여름(노윤서)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여름과 동생 가을(김민주)이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예전에 배웠던 수화를 떠올려 친해지려 노력한다. 서툴게 시작했지만, 여름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에 수화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용준은 점차 여름과 가까워진다. 두 사람이 수화로 대화할 때마다, 그들의 손짓과 배려 가득한 순간들이 조용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용준은 여름과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고, 그녀의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그는 여름과 가을을 클럽에 데려가 음악을 독특한 방식으로 느끼게 하는데, 그가 보여주는 배려는 단순한 호의가 아니다. 그가 여름과 가을을 위해 마련한 이 특별한 경험은 청각장애인도 음악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이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섬세한 접근 방식이다. 아마도 리메이크된 이번 영화에서 용준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용준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상대방과 같이 즐기고 대화한다.
영화 내내 용준은 여름을 위해 수화를 하며 자신의 말을 전하고, 여름의 말을 듣는다. 그는 수화할 때 한 번도 입으로 말을 내뱉지 않고, 오직 상대방을 위한 배려와 집중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용준의 모습은 단순한 사랑의 표현을 넘어,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하는 진정한 마음을 보여준다. 그 배려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진정한 소통의 방식이다.
[두 번째 감정] 여름의 희생
여름은 수영선수인 동생 가을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그녀의 수영 연습과 대회 준비에 헌신한다. 자신의 인생보다 동생의 목표가 우선인 여름은 알바를 하며 수영비와 강습비를 벌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그래서 용준이 여름에게 "뭘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녀는 동생의 목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의 삶은 늘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었다. 그 속에 자신의 미래는 없었다.
여름의 이러한 모습은 순수하지만 동시에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억제하고, 한계를 두며 가족을 위해 살아간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고, 자신을 위한 삶을 꿈꿔본 적도 없다. 그러나 용준을 만나면서 여름은 조금씩 자기 자신을 위한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용준과의 관계를 통해 여름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고, 비로소 자기 자신을 위해 살 용기를 얻게 된다.
여름의 변화는 영화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그녀는 더 이상 가족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과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변화는 용준과의 사랑을 통해 더욱 두드러지며, 여름이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는 단순한 로맨스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세 번째 감정] 용준과 여름의 사랑
용준과 여름이 서로 마주 보며 웃을 때, 두 사람의 사랑은 화면을 가득 채운다. 특히 수화를 통해 빠르게 움직이는 그들의 손짓,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그들의 사랑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두 사람이 거리를 함께 걷고 서로의 미소를 주고받는 순간들은 말없이도 진심이 오가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들의 사랑은 조용하지만 그 어떤 사랑보다 강렬하다. 그들은 서로에게 맞춰가며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의 세상에 들어가려 노력한다. 용준과 여름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사랑이란 단순히 기쁨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들의 사랑은 단순한 청춘 로맨스를 넘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
중반부에 희생이 사랑을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랑은 그 희생까지도 나누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서로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게 만들며, 희생조차 사랑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한다. 비록 이들의 사랑이 약간의 판타지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맑고 투명한 사랑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오래도록 맑은 여운을 남긴다.
맑고 투명한 느낌의 리메이크
영화 <청설>은 그야말로 맑고 투명한 영화다. 원작에 비해 채도가 줄어든 파란색이 하늘색에 가까워지며 맑은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킨다. 현재 한국의 여름 이미지를 아름답게 담아낸 리메이크작은 특히 두 주인공, 홍경과 노윤서의 캐스팅이 눈부시다. 두 사람은 각자에게 딱 맞는 배역을 맡아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이 영화에는 청각장애인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특별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저 다른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훈련하고, 사랑하고, 수다를 떠는 이들의 모습은 이 영화가 그들을 얼마나 평범하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는 태도는 이 영화의 큰 미덕이다.
또한, 이 영화는 사랑과 소통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가, 얼마나 진심으로 다가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용준과 여름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 이상의 깊이를 가지며, 그들이 서로를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이들의 맑고 투명한 관계는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랑의 순수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랜만에 등장한 한국 로맨스 영화로서, 원작의 맑고 투명한 특성을 그대로 살려내며 두 배우의 사랑스러운 케미를 빛내고 있다. 두 사람의 감정 변화와 그들이 만들어가는 사랑의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따뜻한 감동과 여운을 느낄 수 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여름날의 로맨스를 꼭 한 번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mGhUIExGY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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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내라고 하면 힘낼 수 있나요
진짜 포기하고 싶다. 아니 포기해야겠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을 꿨기 때문에 좌절감도 맛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노력을 무지막지하게 들여도 안 되는 것이 있으니 삶이란 역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다못해 메이플스토리의 데미안과 스우를 잡는 것도 숙련도가 올라가면 쉬워지는데 삶은 그런 게 없어 잔인하다. 난 근본적으로 사랑받기엔 못돼 쳐 먹은 인간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만하고 싶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당분간 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든다. 모든 것이 싫다. 무엇이든 할 맘이 안 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포기하면 뭐 어쩔 건데? 엄마, 아빠한테 내 정신적인 고통을 줄줄 늘어놓으면 어떤 지점이 달라지나? 사실 선생님에게 최근의 내 상태를 말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기에 이 선택이 내 인생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똑같은 하루의 반복일 것이다. 몸이 고장 난 것도 바뀌지 않을 거고. 뭔갈 사고 싶은 강박은 아마 죽을 때까지 가지 않을까 싶다. 맞다. 나는 지친 것 같다. 유럽에 갔다 와도 지친 게 해소되지 않아 '이런 식으로 가다간 나의 정신적 탈진은 아마 영원할 것'이라고 설레발을 쳤던 때가 생각난다. 다시 생각해보면 1년 동안 지치는 타이밍이 한 번도 안 오는 게 더 이상하다. 어물쩡 넘긴 나 자신이 싫다. 쉬어야 할 때 제대로 쉬질 못했으니 지금 닳고 닳았다. 요즘 나는 삶의 동기부여가 단 1%도 남지 않았다. 난 남들에게 위로해주는 법은 알았지 나 자신에게 격려를 하는 법이라곤 단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람도 사랑도 다 무섭다. <굿 윌 헌팅>과 <그린 북>이 어쩐지 환상 속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요즘이다. 가끔은 내가 쓴 글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때도 많은데 요즘은 반대의 기분을 느끼고 있다. 정말 내가 쓴 글이 맞는 말이란 말인가.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가 돈이라기엔 난 경험해야 할 것들이 많지 않나. 상상과 희망도 재미가 없는 오늘 난 천천히 가는 버스에 기대 잡생각을 하고 있다.
<체리 향기>는 소소한 일상에 관한 영화다. 나의 인생영화 중 한 편으로 꼽는 작품이기도 하다. 트럭을 운전하는 주인공. 어쩐지 표정에서 사연이 많아 보인다. 이 사람은 갑자기 지나가는 남자 한 명을 태운다. 군인을 태운 주인공 바디. 바디는 군인에게 본인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그는 죽고 싶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어디 땅굴에 묻힐 테니 그 조력자가 돼 달라는 부탁을 한다. 군인은 당연히 거절한다. 다음 손님으로 신학도를 태운 바디. 같은 부탁을 하지만 역시 거절한다. 죽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바디는 세 번째 손님을 찾아 나선다.
세 번째 손님은 나비를 박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아들의 치료비가 급해 바디의 제의를 받아들인 이 노인은 주인공과 차를 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주제는 삶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다. 나 역시 죽고 싶던 때가 있었어요. 내가 인생을 살아야 했던 이유는 코 끝에 스친 체리 향에서 왔죠. 소소한 삶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는 노인. 바디는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아예 말을 안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바디에게 변화가 있긴 했다. 노인을 다시 찾아간 바디. 내일 내가 살아있을지도 모르니 적극적으로 깨워달라는 요청이었다. 영화는 웃으며 바디의 근심 걱정 모든 것을 떠나보내지 않는다. 노인의 진정성이 통했다고 해서 바디의 우울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바디는 다시 무덤 아래에 누웠다. 생각이 바뀐 게 없는듯한 바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디의 요청에서 우리는 뭔가를 기억할 수 있다. 유의미한 차이는 있지만 이 무언가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는 정의해주지 않은 채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영화에 엔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바디는 죽을 곳에 다시 누웠다. 그의 생각은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하다. 난 인생을 얻는 동기부여의 힘이 갑자기 어느 날 번쩍하고 생기는 게 아니라고 본다. 한참을 어두운 터널 속에서 살 때 느낀 게 있다. '힘 내'는 너무 포괄적인 단어라는 것이다. 힘을 내? 힘을 낸다는 게 무슨 뜻이지? 힘 내면 내가 이 뭐 같은 일상을 이겨낼 수 있나? 당연히 이 반응이 '와닿지 않았다'란 말을 자격지심에 빠져 거칠게 하면 나오는 것이란 걸 모르지는 않는다. 말하는 이에게 상처 줄 생각 단 1도 없지만 큰 골자가 되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앞서 쓴 바와 같이 그 말을 하는 이는 내가 다시 기운을 차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것일 테지. 난 살짝 다르다. (그렇다고 힘 내!라는 말을 하는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말을 잘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겪는 비극은 나를 다시 공격할 것이고, 난 같은 방식으로 또 표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디는 모든 걸 웃어넘겨 행복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단 조금의 변화만 있었다.
그렇기에 영화는 사려 깊다. 바디의 인생이 무조건 다 잘 풀릴 거라고 묘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서 부정적인 순간을 마주할 때를 생각해보자. 어느 순간을 극복했다고 해서 비슷한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행복이 갑자기 뚝 떨어지나? 아닐 것이다. 삶은 같은 순간의 반복이다. 그래서 어느 것을 극복했다는 생각이야 말로 인간의 교만일 수도 있다. 큰 힘을 줘가며 삶의 순간을 지나가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이 이유로 인생에 환기란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 같다. 환기가 안되기 때문에 상처는 누적될 수밖에 없다. 또 힘 내!라는 말에 힘을 내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 곪았다. 모두가 심하게 깊게 파여서 단순히 끌어올리는 게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목표에 실패하기.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나기. 영원한 이별. 이런 삶을 가로지르는 실패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이라고 하는 건 우리 머릿속에서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상처와 우울함은 천둥번개 치듯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삶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과거를 지워버린다? 지울 수 있으면 인간이 아니지.
감독은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좀 특별한 시각을 보여준다. 간단하다. 인생을 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전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는 극적인 성장을 보여주지 않는다. 생의 목적에서 진 인물이 다시 이겨내는 걸 제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분명한 연출 의도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 사람은 같은 곳에서 똑같은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여러분은 예외인가? 아니다. 여러분이 사는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같은 곳에서 머무르는 건 매한가지일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무언가를 위해 달려왔다고 생각해왔지만 나는 지금의 이 기분이 뭔지 모르겠다. 죽고 싶은 건 절대 아니다. 엄마 아빠가 나한테 못하냐? 그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기분이 뭔지 모르겠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외로움인지. 권태인지. 뭔가를 이겨내기 위해 그렇게 노력해왔지만 그게 정말 의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또 언제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게 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내가 나를 속였던 거짓말이었다. 나는 내 20대를 관통하는 동기부여보다 더 얻고 싶은 것을 마음속에 둔 인간이었고 그 관점에서는 사실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 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이런 나를 보여주는 증거다.
근데 또 삶을 포기하라 한다면 아쉬울 것 같다. 아니 사실 지금 당장은 모든 걸 던져버리고 쉬은 게 맞긴 하다. 당장 이 세상을 뜨고 싶지는 않다. 나에겐 수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아직도 정산 못 받은 돈. 가지 못한 여행지. 공익근무지에 들어오는 바나나우유. 우리나라 아티스트가 나이키와 협업해서 나오는 새로운 스니커즈.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왠지 모르게 사실이 아닐 거라는 기대감까지. 나는 아직도 바라는 것이 많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나 무너져있다고 해서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 이 시간은 흘러가 있을 것이고, 나는 오랫동안 극복하지 못한 삶의 터널을 훌쩍 지나있을 것이다. 이 모든 걸 포기하기엔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이 상태로 살아왔다.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그건 좀 많이 어렵다. 사랑받기 위해 이제까지 달려온 모든 시간들에 실패해 지금은 괴롭지만 내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소소한 재미들 덕이었다. 이를 위해 계속 같은 것만 하겠지. 지겹게. 그러나 삶은 원래 지겨운 것이 맞다. 근데 또 지겨워서 좋은 것이다. 실패한 인생을 살더라도 나를 일으켜주는 사소한 무언가가 있다면 하루를 버리기엔 너무 아쉽다. 그래. 사랑받는 인생 다 좋은데. 이것 역시 나에게 중요한 거 맞는데. 돈 많이 벌어서 나 좋은 거 엄마 아빠 멋있는 거 사는 거 다 좋은데. 사실 나는 어느 날 맡은 체리 향기와 같은 소소한 인생의 재미를 좇는 사람이었다. 그런 재미 하나 만드려고 일을 벌이고 돈을 벌고 하는 것이다. 난 감독이 삶의 이 지점에 대해 논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를 찾지 못한 당신에게 묻는 것이다. 과연 당신의 삶의 이유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닐걸. 의외로 우리의 삶을 가로지르는 것은 사소한 무언가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를 바뀌게 하고, 서서히 좋아지게 만들며, 또 살아 숨 쉬게 도와준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매일마다 감상이 다른 내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한다. 다들 지겨울 것이다. 매일이 현타의 연속이고 우울감은 하루마다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러니까 오래 살자. 힘은 되도록이면 내지 말자. 빨리 가지 말고 천천히,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위해 살자. 그러려면 천천히 걸어야 할 것이고, 남들보다 늦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건 어차피 중요하지 않을수도 있다. 한번 사는 인생 과연 그 목표가 삶의 전부가 되더라도 우리는 그것보다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을테니 말이다. 고통받으며 살더라도 오래오래 살자. 언젠가 만날 체리 향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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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나'로 거듭나게 해줄 꿈
** 본 리뷰는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 필리프 팔라도
출연: 마가렛 퀄리, 시고니 위버, 더글러스 부스 등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01분
개봉일: 2021.12.09
작가 지망생 조안나, 꿈에 닿기까지
1995년 미국, 작가 지망생 '조안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부푼 꿈을 안고 뉴욕에 입성한다. 뉴욕의 허름한 아파트에 살고, 한가로운 카페에서 담배를 피며 글을 쓰는 여느 작가들처럼. 꿈을 위해 남자친구와 이별 후 뉴욕에 사는 친구의 아파트에서 생활을 하던 조안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구한다. 그렇게 그는 작가의 꿈을 잠시 접어둔 채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작가 에이전시의 CEO인 '마가렛(시고니 위버)' 밑에서 비서로 일하게 된다.
조안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작가 'J.D. 샐린저'를 담당하며 작가에게 온 팬레터를 관리하게 되는데, 샐린저 작가는 답장을 하지 않는다는 기계적인 응대만을 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일개 직원인 조안나는 마가렛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지만, 작가적 마인드가 활활 타오르는 그의 심리 상태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몇 개월동안 기계적인 업무만 처리하며 작가를 꿈꾸었던 과거의 꿈을 잊어가던 찰나에 조안나는 다시금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 큰 결심을 내린다.
꿈과 현실 사이의 고민
조안나는 잡지에 자신이 쓴 시를 등재한 경험이 있는 어엿한 작가 지망생이지만, 뉴욕에 온 후 쉽사리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결국 글쓰기라는 자신의 열망을 잠시 접어두고 작가 에이전시에 취직하여 자신의 롤모델의 뒷켠에서 남들의 원고를 지켜봐야만 했다. 이러한 조안나의 행보는 순수하게 꿈을 좆던 어린 대학생이 현실이라는 벽 앞에 부딪혀 돈을 벌기 위한 다른 직업을 택하는 모습과 굉장히 닮았다. 이러한 청춘들의 삶은 1995년이나 2021년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2021년인 지금 취업난이 더욱 심화되었다.)
조안나는 매일 같이 에이전시에 출근하며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면서도 자꾸만 글에 대한 열망이 샘솟는다. 마가렛의 지시를 어긴 채 팬레터에 답장을 보낸 것 또한 상상력과 문학적 감수성이 넘치는 조안나의 성격이 드러난 부분이다. 하지만 작가를 조수로 쓰지 않는다는 마가렛의 신조 때문에 조안나는 이러한 성향을 최대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쓴다. 조안나는 작가가 아닌 작가 에이전시 직원으로서의 능력도 출중했다. 몇 개월동안 근무하며 마가렛의 신임을 얻었고, 단독으로 서적 판매에도 성공하는 등 직장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나갔다. 그에게도 나름대로 안정적인 길이 펼쳐진 셈이다. 하지만 조안나는 고민 끝에 에이전시를 박차고 나와 다시 글을 쓰고자 한다. 결국 현실과 꿈 사이의 기로에서 꿈을 택한 것이다. 누군가는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모험을 나선 조안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청춘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모두가 마음 속에 품고만 있던 꿈에 대한 열망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다.
디지털 VS 아날로그, 책의 미래는?
1990년대는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이전의 아날로그 문화와 새롭게 나타나는 디지털 문화가 혼재된 시기였다. 극중 작가 에이전시의 CEO인 '마가렛'은 아날로그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컴퓨터를 비롯한 최신 기기들을 흉물 보듯 대하고 타자기를 활용한 작업을 고집한다. 그는 디지털 기술로 인해 시행된 전자책 산업을 비판하며 이같은 기술의 발전이 출판업의 종말을 불러올 것이라 한탄하기까지 한다.
반면, X세대인 조안나는 타자기보다는 데스크탑으로 원고를 타이핑하는 것을 더 편리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는 분명 문명을 대하는 태도가 마가렛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젊은 사회초년생을 대표하는 조안나가 과연 훗날 종이책을 버리고 전자책만을 사용하게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세대에 관계없이 문학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감성 하나만은 모두가 동일하다. 종이책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따뜻한 정서와 마음을 향한 울림이 있기 때문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여전히 종이책을 꾸준히 소비한다. 따라서 마가렛의 입장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완고한 고집은 문학에 대한 사랑과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충분히 이해는 간다.
'아무개'에서 '나'로 불려지기까지
조안나는 '샐린저' 작가로부터 첫 전화를 받았을 때 자신의 직책과 이름을 소개하지만 청력이 좋지 않았던 작가는 그를 '수잔나'라고 제멋대로 부른다. 주인공도 이러한 작가의 부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데, 작가 본인에게 일개 직원의 이름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안나의 자리는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인원으로 대체된다 할지라도 회사나 작가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고, 누구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조안나는 샐린저의 업무를 관리하며 그와 계속 통화를 하게 되는데, 그에게만큼은 자신이 글을 쓴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샐린저 또한 조안나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계속해서 글을 쓰라는 말을 강조한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퇴사를 앞둔 조안나는 베일에 쌓여 있던 샐린저를 드디어 마주하는데, 그는 처음으로 '수잔나'라는 별칭 대신 조안나라는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준다. 이는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할 때, 비로소 온전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해석으로 비춰진다. 자신의 꿈을 잊고 무기력하게 회사에 소속되어 '아무개'로 살아가는 삶이 아닌 꿈을 향해 용기를 갖고 나아가는 삶을 살아보자는 감독의 응원이 아닐지.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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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초청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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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이 영화의 주제는, 음식 말고 영향력 그리고 뮤즈
줄리는 줄리아를 통해 영감을 얻는다. 예민하고 불만 가득한 생활 속에서 줄리아의 자취를 따라 도전을 이어간다. 자신의 손을 붙잡고 이끌어주는 느낌에, 더욱 줄리아를 사랑하게 되고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은 현실의 줄리아가 아니다.
줄리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줄리아"이다.언제나 드러내지는 않았던 사실 : 저는 박은태 배우 좋아했어요.
뮤지컬을 좋아한다고 하면, 늘 따라붙던 질문이 있다. 관객이건 전문가건 '뮤지컬을 좋아한다/직업으로 삼고 싶다'라고 하면 물었다.
"그래, 그럼 어떤 배우 가장 좋아해?"
그러면, 잠깐 대화의 흐름을 멈췄다. 내겐 좋아한다거나, 애정 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배우가 딱 한 명 있었다. 꼭 나보다 먼저 태어난, 내 분신을 보는 것 같았다.
단순히 누가 멋져, 누가 예뻐, 어떤 콘텐츠가 좋았어라는 수식어로 설명될 대답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들어줄 만한 사람인가'를 생각해보고 대답했다. 주로 가볍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없어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 박은태 배우요!라는 대답을 들었다면, 당신은 나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어줬던 사람! 고마워요 :D정해진 걸 재깍재깍 하던 중고교 범생이 시절을 지나, 사관학교로의 진로 고민을 하다가 방향을 틀어 경영학과에 갔고, 뮤지컬을 했다. 여기까지가 정말 닮았다. 그래서 신기했고, 응원했고, 잘 되고 행복하기를 바랐다. 내가 다른 성별로 그즈음 태어났으면 저런 행보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공연을 보고, 응원의 글을 남기곤 했다.
어느 정도로 좋아했느냐면, 동급생들이 한창 아이돌 그룹의 노래나 J팝을 듣고 부를 때, 나는 이 배우의 출연작 넘버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정확히는, 이 배우로 시작해 공연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가씨의 명대사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내가_받은_긍정적인_영향. zip
예민하고 나도 내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던 사춘기에, 다른 엄한 데 흥미 갖지 않고 뮤지컬 넘버를 흥얼거리며 프레스콜 영상을 뒤적이게 된 건 확실히 구원. 하지만 그 후로 얼마나 공연을 보고, 돈 안 되는 공연활동을 했던가! 물론, 내 선택으로 경험한 일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고3 수험생 때는 박은태 배우(이하, 박 배우)의 모교인 대학교의 동일학과 입시 시험을 보러 갔는데,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이동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논술 시험 시작 5분 후에 도착했으면서도 긴장이 아니라 설렘으로 들떠있었다. "여기가 그 건물이구나, 여기 어디에 앉아 어떤 수업을 들었던 걸까?" 붙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물론, 해당 시험은 시원하게 떨어졌다.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소위 "성지순례를 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어이없는 발상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이었다.
내가 힘들 때, 앞서 간 어떤 사람의 일화를 보고 들으며 '그 사람도 이랬대, 그런데 결과를 냈대.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하는 식으로 영감을, 에너지를 얻는 것은 든든하다. 앞서 간 사람의 발길을 따라간다는 상상을 하면,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과연 공연 근처에라도 갈 수는 있을까 싶었지만, 진짜 전문가들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인터뷰로만 접하던 때보다 좀 더 생생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공연을 업으로 삼는 전문가들을 중/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많이 만났는데, 박 배우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성실하다, 겸손하다, 언제나 노력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프로 정신이 투철하다, 늘 성장하려 한다 등. 응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애정을 받으며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리는 이미지와 실제 본인은 다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만난 적 없는 박 배우에 대한 이미지는 공연과 인터뷰 등을 조합해낸 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 점도 늘 인지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줄리는, 상상 속 줄리아의 손을 놓고 발자취 없는 길을 나설 때 이렇게 말한다.
"사랑해요, 줄리아."
나는 이제 뮤지컬을 예전만큼 자주, 많이 즐기지 않는다. 플레이리스트에 순도 100%로 뮤지컬 넘버만 채우던 예전에 비해 한 달에 뮤지컬 넘버는 몇 곡을 들을까 말까 한다. 그리고, 박 배우의 소식을 찾아보지도 않는다.
언제 내 이상적인 뮤즈의 손을 놓고 나만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마음속으로라도 영화 속 줄리처럼 인사를 건넸던 것 같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행복하세요 라고 말이다.힘들었지만, 소중한 내 과거에 날 이끌어줘서 감사합니다.
본인은 전혀 모르시겠지만ㅋㅋㅋㅋ
그게 '진짜' 당신이 아닐지라도,
내게 열심과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꿈을 꾸는 희망의 불을 붙여주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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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명하지 않는 <그레타 툰베리>
오는 6월 17일 개봉을 앞둔 <그레타 툰베리>는 제7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를 시작으로 해외 다수의 영화제뿐만 아니라 전주국제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서울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 등 국내 영화제들에서도 상영된 스웨덴의 15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현존하는 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만큼, 이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그레타의 모습은 어떤 부분이었을까. 2019년,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하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레타 툰베리는 역대 타임지 올해의 인물 최연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가 스웨덴의 환경운동가인 줄은 알았지만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그녀의 명확한 행보는 알지 못했었다. 영화는 기후 변화 법안 마련 촉구를 위해 금요일마다 의회 앞에서 홀로 결석 시위를 하며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eature)’을 외치던 평범한 소녀부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녀를 향한 반응은 갈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니?'부터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라는 차가운 시선까지. 만약 그녀가 후자의 말대로 결석 시위를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면 기후변화 대응 촉구 시위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31만 명이 캐나다 몬트리올에 모이고 전 세계 106개국에서 청소년 기후 활동가들을 움직이도록 할 수 있었을까.
영화에서 나의 눈에 가장 돋보였던 점은 그레타의 집요함과 섬세함이었다. 일정의 압박과 우호적이지 못한 여론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모습, 때로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가족들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지만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는 그레타의 모습에선 여느 전문가과 다름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그레타를 둘러싼 논란에 해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 그리고 그녀의 명성을 뒷받침해줄 전문성을 보여줄 뿐이다.영화에서 나의 눈에 가장 돋보였던 점은 그레타의 집요함과 섬세함이었다. 일정의 압박과 우호적이지 못한 여론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모습, 때로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가족들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지만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는 그레타의 모습에선 여느 전문가과 다름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그레타를 둘러싼 논란에 해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 그리고 그녀의 명성을 뒷받침해줄 전문성을 보여줄 뿐이다.
'유능한 환경운동가가 되려면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고 보기 싫어하는 행위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풍파를 일으키고 사람들을 열 받게 해야 되죠. 그러지 않으면 제 역할을 못하는 거예요.' 그린피스의 공동 창립자이자 시셰퍼드의 창립자인 폴 왓슨 선장의 말처럼 세상을 바꾸기 위한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이 다수에게 불편한 소리가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에 대한 이 기록물은, 환경을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부터 자신만의 외침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까지 귀감이 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그레타의 행동들이 설사 퍼포먼스라 할지라도 그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생각만 많고 용기 없는 어른들보다 먼저 소리를 낸 그레타 툰베리에게 찬사를 보내며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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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성애의 다양한 형태들과 연대감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 영화는 다양한 여성의 모습과 다양한 어머니의 형태를 보여준 영화였다. 1999년도에 나온 영화인데 요즘에서야 다루어질 수 있는 이슈를 담았다. 또한 영화 속에선 다양한 소수자들이 얼마나 차별적인 환경에서 살았는지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 다른 영화와 다를 바 없이 등장 하였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다른 퀴어 영화랑은 다른 점이었다. 영화를 볼 때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지기도 하였다. 여성으로 성 전환을 하는 트랜스 젠더인데 여성과의 아이를 낳는 점도 그렇고 내가 아직 많이 보지못한 사람들이 영화 속에 등장해서 이 영화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상식 밖의 내용과 설정이 담겨있던 영화였다.
아들을 잃어버린 미누엘라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 치유를 하는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치유 받는 대상이 아들의 아빠가 아닌 오히려 우연히 만난 여성들이 었다. 자신의 남편이었던 사람의 아이를 가진 로사와의 연대감이 돋보였다. 과연 나 였다면 로사를 돌봐주고 곁에 있어 줄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배우의 싸인을 받으러 갔다가 아들이 죽은 것인데 그 배우를 찾아가 원망을 할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 배우를 도와주고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 그 배우 또한 에스테반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에스테반의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어머니라는 큰 틀로 포용이 되는 것 같았다. 어찌보면 미누엘라의 적이 될 수도 있는 관계들인데 그렇게 그리지 않고 연대의식으로 그려낸 점이 인상깊었다.
하지만 롤라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 미누엘라가 용서 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보면서 가장 민폐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소수자로써 존재 한다고 하더라도 롤라가 한 행동이 이해가 되거나 용서 받을 행동은 아니었다. 모성애를 다룬 작품이라고 하지만, 미누엘라가 과하게 희생을 한 것 처럼 보여졌다.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여성의 다양한 이미지를 담고 싶어했고 어머니의 다양한 형태와 그로 인해 이어지는 여성들의 연대를 담고 싶어한 영화라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캐릭터나 내용을 하나 하나 생각해보면 충격적인데 너무 자연스러운 것으로 영화 속에 담겨있어서 나에게는 낯설고 본능적으로 이상하다는 감정이 생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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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일루셔니스트> 메인 예고편
환각에 가려진 살인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라!
혼란의 시대, 푸성탕 멸문 사건을 시작으로
나라에는 의문의 익사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전직 런던 경찰이자 대마술사 ‘로빈’과
경찰 ‘룽충’ 일행은 사건의 해결을 위해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
그러다, 사람을 환각에 빠지게 한다는 ‘천환인면산’에 대해 알게 되고,
‘로빈’과 ‘룽충’ 일행은 살인 사건임을 직감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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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싸나희 순정> 티저 예고편
도시를 떠나 마가리에 도착한 시인, 유씨는 동화 작가가 꿈이라는 원보의 집에 묵게 된다.
처음 온 날부터 "유씨를 보니 가슴이 자라고 있따"며 만져보라 하더니,
순정의 세계를 아냐는 둥, 동심의 세계를 아냐는 둥 참견에 잔소리 일색이다.
그런 원보의 꿈은 '어린이들 가슴에 열정을 불지르는 동화작가'라는데, 어쩐지 수상한 말들만 늘어놓는 원보와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유씨의 적응기, 그리고 '순정'과 '동심' 되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