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5-04-03 13:15:56
경쟁자를 제자로 둔 스승의 감정
- <승부>(2025)






가끔 인생에서 ‘보석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인연이 길든 짧든, 이 만남이 서로의 삶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는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어느새 그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때론 이 관계가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질 수도 있고, 그 경쟁의 자리가 때로는 스승과 제자의 구도로 나타날 수도 있다. 서로를 밀고 끌어주며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어느덧 ‘없으면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영화 <승부>는 실제 바둑계 전설 조훈현(이병헌)과 그의 제자 이창호(유아인)의 이야기를 담는다. 바둑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지만, 정작 둘 사이에 어떤 갈등과 감정의 교류가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영화는 이들이 단순한 ‘스승과 제자’를 넘어 ‘라이벌’이 되고, 결국 서로에게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가는 과정을 촘촘하게 펼쳐 보인다.
<승부>는 조훈현이 바둑 신동 이창호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신동이라 불릴 만큼 번득이는 실력을 지닌 이창호는 어린 시절부터 도전정신이 가득했고, 프로 기사들과 맞서는 일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국내 바둑 1인자를 굳건히 지키던 조훈현에게 계속 도전장을 내밀어, 끝내 그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이창호가 조훈현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기초부터 배우는 과정은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점차 두 사람의 스타일 차이와 승부욕이 드러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스승과 제자가 공식 대결에서 만나는 충격적 장면이 펼쳐지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흘러간다.
한편 영화는 단순히 ‘바둑 경기’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둑판 위에서의 사활만큼이나 치열하게 움직이는 스승과 제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다. 둘 사이에 형성된 끈끈한 인연이 경쟁 구도가 되면서 어떤 파문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감정을 어떻게 주고받는지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첫번째 감정] 제자 이창호의 미안함
어린 이창호는 무척 대담한 인물로 묘사된다. 바둑판 앞에서만큼은 자신감이 넘쳤고, 누구와 겨뤄도 결코 지지 않겠다는 강한 집착이 있었다. 바둑계 최강자였던 조훈현에게 거듭 도전한 끝에, 결국 제자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발랄하고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은 아이 같으면서도, 어딘가 기이한 집중력을 보여줘 관객에게 신동이라는 설정을 쉽게 납득시킨다.
조훈현의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 뒤, 이창호는 바둑의 이론과 전통을 배우면서도 특유의 반항적인 기질을 감추지 못한다. 스승은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바둑을 선호하지만, 이창호는 한 발 물러서서 전체 흐름을 관찰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바둑판 위에서는 정답이 없는 만큼, 두 사람의 대립은 ‘누가 옳다’라기보다 ‘누구의 방식이 더 강한가’로 귀결된다. 한 편으로 이창호는 이렇게 스승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게 옳은 걸까라는 내적 갈등을 겪는다.
처음 맞붙은 공식 대결에서 이창호는 스승에게 승리를 거두고, 이후 대회에서도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둔다. 이 순간부터 이창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감정에 사로잡힌다. 스승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프로 세계에서 이기고 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스승이라는 존재에게 패배를 안긴다는 점이 이창호에겐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승리할수록 커져가는 미안함, 그러나 동시에 승부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해지는 묘한 내면 충돌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두번째 감정] 스승 조훈현의 실망
조훈현은 처음에 이창호를 데려왔을 때, 분명 특출난 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의 적수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조훈현은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영민한 제자였기에, 누군가가 성장하는 속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이창호만큼 빠르게 스승의 자리를 위협할 줄은 몰랐다. 정작 자신의 삶과 바둑 철학을 전수해 주었는데, 제자는 아예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경쟁자로 거듭나는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창호의 바둑을 지켜보면서, 조훈현은 여러 차례 '그게 아니다, 이렇게 둬야 한다'며 짜증을 표출한다. 공격적이고 직선적인 스승의 성향은, 유연하고 변칙적인 제자의 기보와 부딪힌다. 그런데도 막상 성적이 좋으니, 단순히 틀렸다고 하기 어려운 현실에 부딪힌다. 결국 조훈현은 속으론 인정하면서도, 쉽사리 '내가 틀렸다'고 내뱉지 못한다. 제자를 100% 수용하기에는, 아직 자신이 현역으로 활약 중이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는다.
스승으로서 제자를 응원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경쟁자로서는 매번 패배를 맛보는 일이 고통스럽다. 제자가 강해지는 만큼 자신이 약해져 가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잇따른 패배 후에야 조훈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무너진다. 한때 최강이라 불렸던 자존심이 무너질 때 느끼는 허망함, 그리고 '내가 잘못된 길을 제자에게 가르쳤나?' 하는 후회가 그를 짓누른다. 이 영화는 그 실망의 순간들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며, 한때 최고의 선수였던 이의 내면에 깃드는 그림자를 애틋하게 보여준다.
[세번째 감정] 스승과 제자의 존중감
승부의 세계에선 언젠가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기도 한다. 바둑판 위에서 조훈현과 이창호의 관계 역시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렇지만 치열한 승부 뒤에 누가 이겼든,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실력을 존중한다는 본질적인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조훈현은 처음엔 불만과 실망을 표출하지만, 결국 이창호가 걸어온 독창적 길을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이창호 역시 스승의 옛 기록들을 되짚어 보며, 자신이 너무 빠르게 승리를 좇은 건 아닌지 반성하는 순간이 온다.
바둑판 위에서 마주 앉아 손가락 하나로 돌을 놓을 때, 그들이 느끼는 긴장과 흥분은 서로가 아니면 충족하기 어렵다. 결국 스승과 제자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유일한 동료가 된다.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기도 한 셈이다. 영화는 스승과 제자가 진심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지점이 어느 순간 찾아옴을 보여주는데, 그 순간의 성취감과 뭉클함은 대단히 크다.
끝내 조훈현과 이창호는 서로에게 '네가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하게 된다. 이기고 지는 문제를 떠나,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고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영화 <승부>는 승패보다 더 중요한 동반자로서의 자각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관객에게도 진정한 경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실화를 훌륭하게 각색해낸 영화
<승부>는 실제 있었던 조훈현-이창호의 바둑 역사를 바탕으로, 스승과 제자가 경쟁자로 변해가는 흥미로운 과정을 그려낸다. 바둑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주는 긴장과 성장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왜 둘은 한 판의 바둑에 그렇게 목숨을 거는지, 어떻게 제자가 스승의 자리를 위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은 어떤 것인지가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실제 조훈현과 이창호는 지금까지도 좋은 경쟁자로 서로를 인정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서로가 없었다면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며, 덕분에 한국 바둑계가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영화는 그런 실제 감정을 최대한 살려내, 경쟁의 긴장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동시에 보여준다.
연출은 차분하면서도 흡인력 있게 이어진다. 김형주 감독은 바둑판 위에 펼쳐지는 치열함을 디테일하게 포착하면서도,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바둑알이 놓이는 소리, 팽팽하게 얽힌 표정 등 작은 요소들도 극적 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병헌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노련한 기사 조훈현 역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유아인은 이창호 특유의 무표정 속에 내재된 열정과 부담감을 표현해낸다. 최근 상황으로 인해 유아인의 연기를 당분간 보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이번 작품에서 보여주는 제자 역할은 참 매력적이다. 조연들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 영화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바둑이라는 소재 덕분에, 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층에게는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경쟁 세계를 보여준다. 바둑이든 어떤 게임이든, 인생을 관통하는 ‘승부’의 본질에 호기심이 있다면 이 영화를 꼭 보길 권한다. 마치 한 수 한 수 내딛는 모든 순간에, 인물들의 감정이 묻어나고, 결국엔 스승과 제자라는 틀 안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사랑하게 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승부>는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경쟁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끝내 서로를 깊이 존중하는 인연이 되어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담아낸 휴먼 드라마다. 바둑을 사랑하는 장년층 관객과 함께 관람하면 더욱 즐거울 것이며, “스승-제자” 관계가 빚어내는 미묘한 심리전과 진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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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모범생과 나쁜 학생들
제27회 아시아영화의 창 <모범생 아논>
ⓒ 부산국제영화제
정보
개요 드라마 | 태국 | 87분
감독 소라요스 프라파판
출연 코른다나이 마르크 다우첸베르크, 원유 웡수라왓 등
줄거리
새 학기를 맞이한 방콕의 사왓디 고등학교.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아논은 학교의
‘모범 학생’이 되어 교장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지상 목표인 이곳에서
검은 유혹의 손길이 다가오자 갈등하기 시작하는 아논. 한편 학교에서 일어난 체벌 사건이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며 학생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모범생 아논>의 T.M.I
ⓒ 부산국제영화제
기획 계기
고등학교 때, 친구가 기존 정권에 반하는 행동을 보인 적이 있는데 이를 자신이 8년 전에 봤던 쿠데타와
연결 지어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더하여, 젊은 세대들의 '나쁜 학생 운동'에 대한 양상도
결합하여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 속 시위 장면
영화를 보면 시위의 장면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은 컷이 있다. 이 부분은 실제로 찍은 것도 있지만,
기사에 쓰이거나 SNS로 공유된 자료를 활용한 것도 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한 이유
코로나 시대 현상을 강조하고 싶기도 했고, 이전 단편 영화 작업을 통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하면
대사 수정하는 과정이 수월하다는 점을 깨닫게 돼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했다.
<모범생 아논> 리뷰
ⓒ 부산국제영화제
태국 사회를 풍자한 단편들을 통해 이름을 알린 소라요스 프라파판 감독이 첫 장편 데뷔작으로 역시나
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나온 스틸컷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컷들의
색감, 구도, 구성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속 아논의 모습은 영화의 제목과는 다소 다른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하지만, 수업 시간에 자고
담배도 피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학생들. 부패하고 과도한 체벌이
일어나는 학교에 부조리함에 맞서 학생들은 자신을 나쁜 학생이라고 지칭하며 나쁜 학생 운동을 하게 된다.
모범생과 나쁜 학생 모두 이들을 반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낸다.
본 영화는 영화적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태국에서 상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태국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담아냈다.
21세기, 동시대에 벌어진 이야기를 담았기에 영화에 공감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이런 분들께 추천 해드립니다"
- 태국의 현 사회에 대해 알고 싶다?
- 역사와 관련된 콘텐츠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
-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 ?
태국 사회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태국 사회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영화 <모범생 아논>.
영화 <모범생 아논>은 내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마지막 상영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예매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지금까지 영화 <모범생 아논>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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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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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제주에서 볼 수 있다고?
제18회 제주국제영화제가 8월 27일부터 9월 24일까지 롯데시네마 제주연동점에서 열린다.
권범 제주영화제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코비드-19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났지만 세상은 아직도 위로와 치유가 필요하다’며 영화제를 전회차보다 일찍 앞당긴 이유를 전했다. 올해 개막작은 지난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콤 베리어드 감독의 <말 없는 소녀>다. 권 이사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유년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친척집살이’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인간사회의 진정한 연대의 의미를 응원하기 위해 개막작에 선정했다”라고 말했다.
세계 섬 영화의 고유성과 독창성에 주목하는 섹션 ‘아일랜드 시네마’에서는 얼마 전 배우와 감독이 내한일정을 소화해 호평을 받았던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홍상수 감독의 <물안에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 <칠중주 : 홍콩 이야기>를 상영한다.
매 해 제작되는 한국 영화 중 주목할만한 작품을 초청하는 ‘한국영화 초이스’ 섹션에서는 작년 개봉작으로 이미 명작 반열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황윤 감독의 <수라>, 권철 감독의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상영한다.
영화 상영 전 스크린 이미지.
올해 500만 관객을 동원한 <스즈메의 문단속>을 통해 굳건한 인기를 과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필모그래피 <날씨의 아이> <초속 5센티미터> <너의 이름은.>, 프랑스 코미디의 거장 자크 타티를 기리는 ‘자크 타티 특별전’도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 하에 열린다.
제주의 고유성과 독창성에 주목한 영화인들을 응원하는 섹션 ‘제주트멍경쟁’에서는 김경만 감독의 <돌들이 말할 때까지>, 이상목 감독의 <우도 해녀의 노래>, 우광훈 감독의 <인어춘몽>, <제주 떡 우주를 빚다>가 9일 관객을 만난다.
<물안에서> 상영 전 모습.
나의 pick
홍상수, <물안에서>
미야케 쇼,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보통 홍상수의 영화들이 제주에서 상영되는 법이 거의 없다. 메가박스가 제주에서 철수한 이후로 홍상수의 ㅎ자도 볼 수 없는 게 제주 영화관의 현실이다. 이런저런 현상을 이유로 제주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상영된다는 점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제주영화제가 기존의 관습을 벗어나 다양한 영화들을 초청한 것에 감사함을 전한다.
이 영화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고 갔을 것이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듯하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을 해보자면 이 작품은 걸작보다 괴작에 가깝다고 본다. 익히 알려진 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거의 모든 러닝타임은 포커싱이 나가있어 정말 '물 안에서' 영화를 보는 듯한 체험을 선사한다. 이 실험이 무의미하진 않다. 홍상수는 <극장전>부터 시작해 영화의 안과 밖을 해체시키는 실험을 해왔다. 바로 전작인 <소설가의 영화>에선 구조를 해체시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집중했고, <탑>에서는 '알고 있다'라는 인식론에 대해 논한다. 이 <물안에서> 역시 영화와 삶의 구분선에 포커싱을 흐려 무엇이 진짜인지 묻는다. 이런 실험은 전 세계에서 홍상수만 할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이 시도가 기존의 필모그래피에서 추구하는 바를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이 실험이 과연 신선한가?' 혹은 '이 실험을 통해 얻은 것이 가치가 있던 것이었나?' 질문하게 만든다. 하지만 홍상수가 젊은 세대를 관찰하며 세상과 나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이해한다면 거장의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가지가 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복서 케이코가 주인공인 영화다. 쉬고 싶은 케이코. 하지만 마음대로 모진 말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세상이 마음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복싱장이 문을 닫는다는 말을 들은 케이코. 케이코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영화가 보편성을 얻는 과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 인물의 가장 개인적인 행동이 우리 상황에 대입된다. 그 상황을 이해한 관객들은 '그래. 나도 그렇게 해 봐야겠어'라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무너져가는 현실에 스스로 올곧게 바로 선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하마구치 류스케, <스파이의 아내>의 구로사와 기요시, <어느 가족>의 고레에다 히로카츠의 문법에서 벗어나 감독 자신이 갖고 있던 올곧은 영화언어가 돋보인다. 제주에 상영관이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작품인 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이라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9월 16일 저녁 7시 30분 롯데시네마 제주 연동점에서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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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데믹 시대가 불러온 고딕 호러의 향취
이건 운명이다! 고딕 호러 영화로,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기념비적 작품 F. 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와 <더 위치> <라이트하우스>의 로버트 에거스는 엘렌과 올록 백작처럼 언젠가 만날 운명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광팬으로 잘 알려진 감독은 원작의 으스스한 분위기와 고딕 호러의 요소를 재소환하면서도, 현시대에 맞는 새로운 변화보다는 고전미를 계승한다. 안전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로버트 에거스가 어떤 감독인가!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만 골라 골라 관객에게 잊지 못할 영상미를 전한다. 그리고 제목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염병’의 공포까지 소환한다.
어렸을 때부터 알 수 없는 악몽에 시달려온 엘렌(릴리 로즈 뎁). 토마스(니콜라스 홀트)와 결혼 후 조금은 나아진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토마스의 갑작스런 출장 소식은 잊고 지냈던 불안을 데려온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친구 하딩(애런 존슨) 부부에게 맡긴 그는 중요한 계약을 맺기 위해 타국에 있는 올록 백작(빌 스카스가드)을 찾아간다. 한편, 엘렌은 점점 환각 상태가 심해지고, 급기야 악몽을 다시 꾼다.
<노스페라투>를 색으로 표현하자면 회색, 잿빛이 가장 어울리듯 하다. 원작 자체가 흑백이었던 것을 소환하듯 영화는 높은 채도의 색 사용을 기피한다. 대부분의 호러 영화가 그렇듯 음울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이어 나가려는 방법으로서 보이지만, 감독은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지워나가는 것으로 그 영역을 확장한다. 당시 고딕 문학이 성행했을 때의 시대적 분위기는 철학, 과학 등의 경계가 모호하고 혼란스러웠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원작은 앞서 소개한 사회상을 반영했고, 감독은 이를 계승한다.
영화가 빛나는 장면은 이 모호한 경계를 공포로 치환하는 부분이다.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될 무렵임에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등장은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보이지 않는 것,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하는데, 감독은 올록 백작의 모습과 형상을 모호하게 보여준다. 빛과 어둠의 경계,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까지 기다려 서서히 조여오는 노스페라투의 존재, 점프스케어를 통한 공포는 관객으로 하여금 멋스럽게 다가와 섬뜩함을 안긴다.
이 클래식한 호러 영화가 시대착오적이지 않고 지금의 관객을 공포로 무장해제 시키는 건 다름 아닌 전염병이다. <노스페라투>란 제목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병을 옮기는 자’에서 따왔다. 이는 19세기 만연했던 흑사병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팬데믹을 상시기킨다. 극 중 올록 백작이 엘렌이 사는 도시에 뿌린 쥐 떼는 그 자체로 공포. 100년도 넘은 이 원작을 현시점에 소환한 것은 관객이 전염병의 공포를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악몽 같은 시간을 반강제적으로 체험하는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현실 공포와 맞닿게 된 것. 뱀파이어의 공포와 전염병의 공포를 동시에 전하는 1타 2피 격인 작품은 전자든 후자든 간에 한 번은 무서움을 느낀다.
두 가지 공포를 스크린에 재현한 영화는 원작의 에로티시즘도 놓치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시달리는 엘런, 그 빈구석을 채우고자 관에서 나와 먼 여정을 떠난 노스페라투의 기이한 앙상블은 그 자체로 묘한 섹슈얼리즘을 표방한다. 너무나 싫고 증오하지만. 원초적으로 올록 백작에게 끌리는 엘렌의 두 얼굴은 당시 결혼이란 제도 아래 여성의 억압된 성적 욕망과 탐험을 죄악시했던 사회적 현상을 대변하는데, 죽음의 화신으로서도 보이는 올록 백작과의 결합은 그 자체로 타나토스의 아름다움으로도 비춘다. 여튼 마지막 장면은 꼭 눈여겨 보기 바란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아래 배우들은 호연을 펼치는데, 특히 엘렌 역의 릴리 로즈 뎁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포제션>의 이자벨 아자니를 떠올리게 할 만큼 다양한 감정에 휩싸여 다층적인 불안을 입체적으로 연기하는 모습은 엄지척! 중후반부 토마스와 격렬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백미다.
<노스페라투>의 국내 관객은 2.4만명(2/11 기준)이다. 영화의 완성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 이는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관객들에게 소구 되지 못했다는 걸 증명한다. 숏츠 영상으로 도파민을 충족하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너무 클래식해서 그런것 인지, 아니면 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현실을 살고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이렇게 보내주기에는 뭔가 아쉽다. 참고로 <노스페라투>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 의상상, 분장상, 미술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 제공: 유니버셜픽쳐스
평점: 3.5 / 5.0
한줄평: 영화가 흡혈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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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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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영화감독과 가장 핫한 프로듀서의 만남이라니 너무 기대가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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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회 부산국제 영화제 개막식 공동 사회를 맡았던 배우 이제훈이 건강상의 사유로 불참하면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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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서게 되었습니다.
강하늘 X 전소민 <30일> 신작 예매율 1위 급상승
영화 <30일>이 예매율 1위와 동시에 2일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습니다. 30일은 서로의 찌질함과 똘기를 견디다 못해 마침내 완벽한 남남이 되기로 한 이야기로 개봉 이틀차인 오늘까지 누적 관객수 23만명을 기록했습니다.
<발레리나> 그레이, 음악 감독 참여
이충현 감독이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에 뮤지션 그레이를 음악감독으로 발탁했습니다.
<발레리나>는 경호원 출신 옥주가 소중한 친구 민희를 죽음으로 몰아간 최프로를 쫓으며 펼치는
복수극입니다. 이충현 감독은 음악이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음악으로 독보적인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는 'LATEST CINE NEWS’였습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면 댓글과 좋아요 콕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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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브리 정주행 특집 ④] 바람이 분다 (The Wind Rises, 2013)
- 지브리 정주행 특집 네번째 영화 -
"Le vent se leve. Il faut tenter de vivre."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2013
바람결에 흘러가듯 날아온 한 소년의 꿈과 사랑!
당신의 마음에는 아직 바람이 부나요?
<바람이 분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안노 히데아키, 타키모토 미오리
개봉: 2013. 09. 05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 SYNOPSIS
하늘과 비행기를 좋아하는 소년 지로.
근시를 가진 지로는 시력 때문에 비행기 조종을 못하는 대신 비행기 설계사라는 꿈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어느 날, 지로는 기차에서 바람에 날아간 자신의 모자를 잡아준 소녀 '나오코'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날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나 서로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지게 된다.
그 후 비행기 설계사로 취직하여 계속해서 꿈을 좇아가돈 지로는 10년 뒤, 어느 바람 부는 언덕에서 나오코와 우연히 다시 재회한다.
나오코는 지로에게 자신이 결핵에 걸렸다는 사실을 고백하지만, 이미 운명처럼 서로에게 이끌린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다.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두 사람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지로는 마침내 자신의 염원과도 같았던 전투기 '제로센'을 완성시킨다.
▶ REVIEW
1. 1930년대 일본 풍경
1930년대의 일본 풍경을 보고싶다면? 이 작품을 보시길!
6-70년대도 아니고 30년대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작품은 그 나름대로 희소성이 있지 않나 싶다.
일본 전통 의상과 나막신을 볼 수 있고,
삼등칸, 이등칸으로 나뉘어진 기차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등급별 칸으로 나뉘어진 기차를 타 본 적이 없어서 신기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기차를 타고 가다가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씬이 가장 예뻤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라는 작품 속 가장 좋아하는 대사도 이 때 나오고! :-)
2. 비행기는 꿈, 설계사는 꿈을 만드는 사람
미야자키 하야오는 비행기를 참 좋아한다.
그의 은퇴작이라고 발표한 작품에 비행기를 사랑하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만든 것도 그렇고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비행기는 꿈이고, 비행기 설계사는 그 꿈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대사가 참 좋았는데,
어느 분야든 하고 싶은 일을 향해 꿈을 꾸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좋아하는 대상을 향한 애정이 많이 담긴 대사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는 현실세계와 주인공이 꾸는 꿈의 세계가 자주 번갈아 등장하는데
꿈 속에서의 비행기는 사람들을 태우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행복한 비행기고,
현실에서의 비행기는 전쟁을 위해 쓰이는 수단으로 나온다.
나는 그 모습이 냉정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꿈을 좇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 같았다.
행복한 모습만 보고 싶고, 내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이라고, 최선이었다고 믿고 싶은 마음.
어쩌면 그런 마음이 무언가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달려갈 원동력을 만들어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3. 한 사람의 일대기? 친절하지 않은 설명방식
이 작품은 전투기 제로센의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어쩌면 그의 일대기를 다뤘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한 사람의 인생을 관찰하는 것처럼 이야기는 딱히 정형화된 주제를 가지고 있지 않고,
장면 전환이나 내용 전개에 있어서 꽤 불친절한 설명 방식을 보여준다.
갑자기 꿈을 꾸고, 갑자기 몇년의 시간이 흘러가버리며
사건 중심으로 내용이 펼쳐지기보단 시간의 흐름에 충실한 이야기같은 느낌이다.
작품을 보면서도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보고 있다기보단
그저 저 인물들을 흘러가듯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봤을때와 비슷했다.
4. 전쟁 미화의 아쉬움
아무리 비행기를 꿈에 비유하고, 그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렸다고 해도
전쟁을 미화하여 그린 점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남았다.
아무리 예쁘게 포장을 해도 지로가 설계하는 비행기는 사람을 태우는 비행기가 아닌
사람을 죽이러 가는 전투기, 살생무기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 지로가 동경의 마음을 가지고 비행 설계에 대한 도움을 받으러 간 나라 역시 독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전쟁을 일으킨 나라들에 대한 미화와 은연 중 제국주의에 대한 동경을 떠오르게 한다는 점은 반박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애니메이션' 장르 자체가 작품 내 등장하는 모든 것을 현실과 한 발자국 떨어져 보이게 만들고,
그로 인한 미화의 기능을 가지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자체가 전쟁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가직 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감독의 다른 작품인 <붉은 돼지>는 전쟁과 파시즘에 대한 회의감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 BEST QUOTES
1.
Le vent se leve. Il faut tenter de vivre.
바람이 분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
2.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이고
설계사는 그 꿈을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다.
3.
감각은 시대를 앞서가지. 기술은 그 뒤에 따라가는 거야.
4.
인생의 창조적 시간은 10년이지
예술가나 설계가나 똑같아
자네의 10년을 최선을 다해 살게.
5.
살아있다는 건 멋진거예요.
당신은 살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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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사라진 여자와 퀴어를 영화로 기억하는 법
럭키, 아파트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영끌’로 작은 아파트를 장만한 9년 차 레즈비언 커플 선우와 희서. 이제 행복한 일만 가득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잘 나가던 희서는 회사의 남성 동성 친밀성 사회에서 배제당해 성과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희서의 가족은 그녀에게 이성애 결혼을 계속 압박한다. 희서가 아파트 마련 비용을 대부분 마련한 데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선우는 배달 일을 하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지만 일하다 다리를 다쳐 오히려 걱정만 끼친다. 집을 마련하기 위한 대가는 두 사람의 생각보다 거대했다.
문제는 이 모든 문제를 감내할 감정적 토대의 근원이 되어주어야 할 아파트에조차 이상한 일이 생긴다는 점. 선우와 희서는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악취로 괴로워하다 그 냄새가 혼자 살던 할머니가 고독사한 후 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희서가 회사와 원가족 일로 지친 사이 선우는 홀로 그 할머니에 대한 조사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 지독한 냄새에서 레즈비언 친밀성의 계보를 발견하고, 그 계보를 통해 위기의 희서와 선우는 다시금 단단해진다. 어느 ‘무연고자’가 남긴 삶의 조각들을 차근히 채워나가는 집요함으로 그려낸 이 계보는 기록‧기억되지 않고 스러진 소수자의 삶을 복원하고 상기하는 일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펼쳐내 보인다.
양양
한국경쟁
자신이 화목한 가정에서 부족할 것 없이 자랐다고 생각하는 주연은 어느 날 술 취한 아빠와의 통화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 1953년생으로, 이십 대 초반에 자살한 고모 이야기였다. 이미 장성한 성인인 주연은 혼란을 느낀다. 왜 지금껏 고모의 존재조차 몰랐던 걸까? 왜 이제껏 가족 중 누구도 고모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걸까? 주로 여성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온 주연은 이제야 이름을 알게 된 고모 양지영의 삶을 추적해보기로 한다.
감독의 탐구는 ‘화목한 가정’이라는 자기 믿음을 처음부터 재검토하는 데서 시작한다. 남아 선호 사상이 당연하던 시절에 장녀로 태어난 고모는 공부를 잘했으나 서울로 대학 가는 일을 허락받지 못했다. 취재를 이어나가면서는 고모가 오늘날의 교제 살인을 당했으리라는 분명한 정황이 발견되기도 한다. 쉬쉬하던 어른들이 수수께끼처럼 던진 말은 고모의 죽음이 ‘개인적 비극’이라는 느낌을 줬지만, 감독이 취재한 고모의 죽음은 ‘사회적 죽음’에 더 가까웠다. 고모는 남자친구 집에서 죽었다는 이유로 가족조차 이 일을 쉬쉬했기에 이제껏 온당한 추모를 받지 못했다. 이 뒤늦은 추모는 죽은 지 50여 년 후에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조카에 의해 이뤄진다. ‘조카’이자 ‘후배 여성’인 양주연이 양지영의 삶을 복권하는 과정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개인적 비극을 사회적 비극으로 재해석하여 가족의 서사를 전체 여성의 서사로 확장한다.
말께리다스
프론트라인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은 칠레의 감옥에 갇힌 여성들이 핸드폰으로 몰래 촬영한 저화질 영상으로 구성되었다. 대체로 가난하고, 아마도 그러한 이유로 자주 감옥에 들락거릴 수밖에 없는 이들의 카메라가 주로 찍는 건 아이들이다. 이 여성들은 아이가 2살이 될 때까지만 직접 돌볼 수 있다. 그 이후에는 아이를 밖으로 보내야만 한다. 그러나 가난한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엄마와 떨어졌을 때 엄마와의 연결성이 극적으로 취약해지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엄마들은 애틋하고 간절하게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렇게 하면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곁에 둘 수 있다는 듯이. 이 엄마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이들의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는 모른다. 그럼에도 영화는 진심을 담아 촬영한 조악한 영상으로 이 강제된 이별에 어떤 방식의 인도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쉬이 설득해낸다. 진심을 다해 돌봐줄 엄마가 사라졌을 때 아이들이 또 다른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여성 수감자들끼리의 사랑과 그들이 만들어낸 촘촘하고 따뜻한 네트워크, 열악한 감옥에서의 삶 등을 두루 망라해 보여주는 이 영화는 긴급한 호소로 읽힌다. 어머니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정원의 운율
영화보다 낯선
베를린 외곽. 트레일러들이 수풀 속에 불규칙적으로 늘어져 있다. 퀴어 페미니스트 그룹 ‘몰리스’가 거주하는 곳이다. 영화는 공동체의 소박하고 평화로운 삶을, 그 작은 세계의 분위기와 리듬을 관객이 직접 감각할 수 있도록 차근히 전한다. 꽃, 고양이와 강아지, 독서, 클럽 음악, 피어싱, 타투 등등. 서로 그리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 대상들이 나름의 관계성으로 얽혀 독특하면서도 편안한 경관을 펼쳐낸다.
그러나 이 공간은 그리 단단하지 못하다. 한 비정규직 구성원의 사회적 취약성과 마찬가지로 그 토대가 연약하다. 꽃 안으로 극단적으로 파고들어 오랫동안 머무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마치 그 안으로 들어가면 트레일러 주변에서 들려오는 공사 소리를 막을 수 있다는 듯 집요하다. 하지만 공사 소리가 가까워지는 일을 중단시키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소수의 사람이나마 기대고 쉴 수 있었던 이곳은 “있었지만, 이제 없다”. 영화가 기록한 이들 정원의 운율은 계속 울려 퍼질 수 있을까?
힘을 낼 시간
한국경쟁
망해버린, 26에 은퇴한 아이돌 멤버 셋이 제주도로 뒤늦은 수학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이들은 더는 아이돌이 아님에도 여전히 아이돌로서 훈련받은 것들을 몸에서 떨쳐내지 못한다. 지난 시간 생존하기 위해 혹독히 견뎌냈던 것들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으려는 이들을 자꾸만 붙잡는다. 그러나 K-POP 아이돌 ‘산업’에서 ‘상품’이 되지 못한 이들이 겪는 문제들을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세세히 짚어내는 이 영화의 주요 정서는 역설적이게도 희망이다. 내내 이들을 실패한 과거에 붙들어 매는 것들이 불쑥불쑥 소환되지만 그 이면에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결심, 즉 힘을 낼 시간이라는 깨달음이 있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은 내내 절망적인데 영화가 내내 희망의 질감을 보인다는 역설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절망과 희망의 기묘한 공존과 끝내 희망의 손을 들어주는 여정은 매우 흡인력 있다.
그리고 예라가 있다. 자살한 아이돌 멤버 예라는 이 셋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세 친구는 예라를 추모하고 자신들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힘을 낼 시간〉은 캐릭터의 앙상블과 아이돌 산업에 대한 구체적인 취재 내용이 청년을 위로하는 서사와 깊이 어우러지는 따뜻한 영화다. 당신이 나처럼 K-POP 아티스트를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위로받을 때마다 이 영화를 함께 떠올리며 그 자리에 서지 못한 다른 얼굴을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5회 국제전주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위 영화의 상영 시간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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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 #JIMFF 박영광 감독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낮은목소리 의 박영광 감독님 본격 탐구! ?♀️ #하이스트레인저
? JIMFF X HISTRANGER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한국경쟁 상영작 [낮은 목소리]의 박영광 감독님을
하이스트레인저 웹 데일리 팀이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8월 25일 대개봉!! ??
? 씨네픽쳐(스틸컷 퀴즈) 절찬리 진행중!! ?
? 씨네픽 큐큐(Quote Quiz) 절찬리 진행중!! ?
? 씨네픽 숏-퀴즈 절찬리 진행중!! ?
아이폰 다운로드 https://apps.apple.com/kr/app/%EC%94%...
안드로이드 다운로드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
#씨네픽 매주 목요일 밤 11시 59분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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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메인 예고편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은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남편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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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괴짜들의 로맨스> 30초 예고편
강박증을 앓고 있는 두 사람은 우연한 만남으로 거울처럼 닮은 서로를 알아본다ㅏ.
썸에서 사랑 마침내 소울메이트가 된 이들,
우리,평범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의 세상 안에서 우리는 모두,괴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