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09 14:02:31
내일을 향한 희망을 전하는 영화
조용한 희망
❣️[Cinelab Curation]❣️
힘든 어제의 끝에는 언제나 희망찬 내일이 있기 마련이죠!😆
어떤 이유로든 지쳐 있을 여러분들께 영화를 통해 힘내자는 말을 전해봅니다.
행복은 빈도라고 하던가요?
여러분들의 하루에 기분 좋은 일들이 더 자주 찾아오길,
행복한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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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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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음악영화 좋아하시나요?! 예전에 음악영화 뭘 좋아해요?! 라고 물어보면 비긴 어게인, 라라랜드, 위대한 쇼맨?! 이 정도가 다였다면?! 여기에 하나 더 넣을 수 있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나타났어요!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가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살펴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전기, 드라마
감독 : 브라이언 싱어
각본 : 앤서니 매가튼
출연진 : 라미 말렉, 루시 보인턴
개봉일 : 2018년 10월 31일
평점 : 9.45
스트리밍 : tvN , 디즈니 플러스
기획 의도
공항에서 수화물 노동자로 일하며 음악의 꿈을 키우던 이민자 출신의 아웃사이더 '파록 버사라' 보컬을 구하던 로컬 밴드에 들어가게 되면서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으로 밴드 '퀸'을 이끌게 된다. 시대를 앞서가는 독창적인 음악과 화려한 퍼포먼스로 관중들을 사로잡으며 성장하던 '퀸'은 라디오와 방송에서 외면을 받을 것이라는 음악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려 6분 동안 이어지는 실험적인 곡 '보헤미안 랩소디'로 대성공을 거두며 월드 스타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던 '프레디 머큐리'는 솔로 데뷔라는 유혹에 흔들리게 되고 결국 오랜 시간 함께 해왔던 멤버들과 결별을 선언하게 되는데...
세상에서 소외된 아웃사이더에서 전설의 록밴드 '퀸'이 되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OST
Part 1. Somebody to Love
Part 2. Doing All Right
Part 3. Keep Yourself Alive
Part 4. Killer Queen
Part 5. Fat Bottomed Girls
Part 6. Bohemian Rhapsody
Part 7.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Part 8. We Will Rock You
Part 9. Another One Bites the Dust
Part 10. I Want To break Free
Part 11. Under Pressure
Part 12. Who Wants to Live Forever
여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관객 평점이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한다.
음악영화의 특성상 사운드가 풍부한 영화관에서 듣게 된다면 퀸의 음악을 좀 더 직관적으로 훌륭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영화의 번역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데드풀 번역가 '황석희'가 번역하여 작품을 높은 퀄리티로 감상할 수 있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결말을 살펴보자면...
솔로를 원했던 머큐리는 결국 Queen의 멤버들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사과를 구하며 대망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미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연습을 할 때도 삑사리가 나며 아슬아슬 준비를 하면서 공연에 오르게 되면서 본연의 Queen으로 돌아오며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된다.
전설적인 밴드 퀸을 영화 스크린으로 소한시켜 내가 관객이 된 것 같이 눈과 귀가 즐겁게 해줬던 영화였다.
영화를 봤다면, 당신의 플레이 리스트에 한 곡은 꼭 들어가는 노래! 아! 이 노래 알아! 하면서 따라 부르고
혼자서 흥얼거리게 되는 마법 같은 영화~
한줄평 : 에오! 에에에에오!!! 에에에에에에에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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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얼굴 앞에서, 2021 홍상수 감독작품
평온한 일요일의 오후 햇살. 한껏 아픈 다음 느끼는 안온함과 미열. 이제는 폭우가 지나갔다는 안도감.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한참을 달리고 있을 때는 모른다. 한참을 울음을 삼키며 질주해야 할 때는 알 수가 없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들이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고, 주변에 있는 이들이 살아가는 데 충분한 위안이 된다는 걸. 멈춰 서려고 할 때 발 밑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문득 보일 것 같은 순간에 대한 영화를 보았다.
이곳에도 국제 영화제가 있었다. 작년에는 개최하지 못했을 영화제가 올해는 열렸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다. 32회 차나 되는 줄은 몰랐고, 홍상수 감독의 ‘당신 얼굴 앞에서 (in front of your face)가’ 초청되었다는 소식은 알았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모 여배우와의 불륜 스캔들로 시끄러웠지만, 홍상수 감독의 초기작들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무렵에 무척 유명했다. 필자는 전문 평론가가 아니라서 감히 이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는 뭐라고 못하겠지만, 뭐랄까. ‘오! 수정’에서 보여준 흑백의 강렬함, 원색적인 소재를 놓고 양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는 서로 다른 이야기의 아귀 맞춤이 절묘했다. 고 이은주 배우의 쇳소리 나는 신음소리를 스크린에서 접했을 때의 충격이란. 그 후에 봤던 ‘극장전’의 엄지원 배우의 애드리브 ‘이제 그만 뚝!’, 그리고 ‘생활의 발견’에서 추상미 배우의 능청스럽고 현실감 있는 연기들. 처마 밑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처연히 서 있던 남주인공의 그 눈빛이 선한 영화였다. 그 영화들이 홍상수 감독에 대한 나의 기억들이다. 아주 일상적이고 남사스러운 이야기를 소재로 아주 가까이에서 렌즈를 들이대고는, ‘저것 봐, 당신 인생이 이거랑 조금은 다른 거 같아? 한 번 봐’라는 자세로 관객의 눈과 귀를 희롱했던. 사실 나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3)을 마지막으로 그의 영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정은채 배우는 연기력 논란이 늘 있어온 것도 같은데, 그 영화 속 해원이랑은 잘 어울렸다. 그 해에 나는 여기에 건너왔다. 그렇게 자주 위안삼아 찾아가던 종로 시네 코아와, 흥국 생명 건물에 있던 하이퍼텍 나다와, 아트선재 센터를 뒤로 하고. 그곳들이 밀집한 곳에 있던 직장에 다닌 게 신의 한 수였다.
영화관에 대한 추억은 참으로 많다. 다행히 이 곳에도 좋은 곳들이 여럿 있다. 코로나로 어려웠겠지만,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 위의 영화관들이 아쉽지 않게, 이곳에서도 자주 한국 영화랑 외국 영화들을 본다. 홍상수 감독은 언제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을까? 언제부터 영화들에 남자 주인공보다는 여자 주인공이 화자가 되고 주인공으로 부각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을까? 그리고 2021년에 발표된 ‘당신 얼굴 앞에서’에서는, 그전의 감독에게서 보지 못했던 시각들을 볼 수 있다. 관객도 감독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는 경험들로 인한 것이었을까? 영화 속 주인공인 ‘상옥’은 이혜영 배우가 맡아 관록의 연기를 보여준다. 연기라고 하기에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특별한 상옥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상옥은 과거 한 때 연기를 한 적 있는 영화배우다. 그녀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주류 소매점을 운영했다. 자신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영화감독 (권해효 배우)이 있어서 그것을 계기로, 한국에 있는 동생 집에 묶으며 한국을 다녀가고 있는 중이다. 영화는 소파 위에서 잠들고 일어나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독백으로 시작된다. 초반에 그녀의 대사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영화 중간중간 그녀의 독백은 기도가 된다. 오늘 하루도 평안함에 감사하고 있다. 잠든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그녀가 깨서 함께 간 브런치 카페에서의 대화는 그냥 상황만 있고 대본은 없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셈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자매의 감정이 격해지고,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 감독은 아주 명확히 카메라 렌즈를 줌인한다. 살면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감정선을 읽으라는 듯, 아주 친절한 교과서처럼, 알려준다.
바다 대신 산과, 고층 아파트와, 공원이 등장한다. 예전 같지 않게 홍상수 감독 영화의 주인공들은 많이 현실에 밝아졌고, 집값 시세도 너무 잘 안다. 상옥은 조카도 만나고, 그녀가 오래전에 살던 집에도 가 본다. 집안 구석구석을 보다가 만난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는 장면은, 과거의 어느 장면에서 멈춰있는 그녀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친절하고, 감독과의 대화는 길고 재미있다. 한껏 취기가 올라 영화 이야기를 하든 그들. 뭐 이제는 자타공인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버린 권해효 배우는 상옥에게, 그녀의 과거 영화들에서 보여준 얼굴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말하며, 그녀와 함께 영화를 찍고 싶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한참 망설인 상옥은 자신에겐 살 날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며, 영화 출연을 고사한다. 감독은 단편 영화라도 찍자며, 다음 날 자신이 상옥을 데리러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둘은 여행을 약속한다. 상옥이 그제야 감독에게 묻는다.
‘결혼했어요?’
‘아들이 벌써 다 컸죠’
몇 병의 연태고량주와, 담배와, 기타 연주가 오가고 둘은 빗속에서 헤어지고, 그 다음 날의 상옥은 감독의 음성 문자 메시지에 눈이 떠진다. 거기에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백하는 듯한, 감독의 대사가 있다. 이전에는 미처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치기 어린 하룻밤을 계획했던 수치스러움과 후회를, 감독은 권해효 배우를 통해 말한다. 신변잡기적인 대화들 속에서, 감독이 바라보는 그 어떤 삶에 대한 ‘진실’ 하나를 가늘고 긴 냉면처럼 뽑아내던 그의 날카로움은, 등이 가냘픈 여배우를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숙취 뒤의 사과문으로 뭉뚝하고 둔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글쎄, 우리네 삶 속에 렌즈를 대고 들여다본다면 우리도, 그런 순간들을 살아내고 있지는 않은가? 술, 마시고 하는 의미 없는 듯한 대화들. 하지만 그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사람들과 하는 말이라면 그런 ‘낭비’되는 시간 또한 곧 행복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상옥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의 뒤안길에서 하루하루의 평안함에 감사하며, 모두의 얼굴 앞에 놓인,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미처 보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는, ‘천국’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녀처럼 죽음이 눈앞에 있거나, 삶의 찬란한 순간들을 뒤돌아봐야 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상옥처럼 내 시선과 마음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시네코아에서 극장전을 보던 대학생인 나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보던 하이퍼텍 나다에서의 나와, 해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마주 보고 있는 지금의 나. 내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진실, 혹은 수치심, 혹은 신념은 무엇일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나치게 과거를 돌아보고, 어쩌면 아주 오래 그 안에서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에 잠겨 있지 않을 때는 또 영화 속 상옥처럼, 열심히 일을 하며 지냈다. 일을 하지 않는 나는 한 번도,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불륜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범인은 아닐 홍상수 감독도, 배우들의 입을 통해 전하는 대사들로 인해 어딘가 많이 변했다는 걸 깨달으며, 영화제에 초대해 주신 고마운 분과 참 많이 웃었던 즐거운 밤이었다. 과거가 아닌 현재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내일도 어제도 아닌 오늘 안에서 살자고 내게 속삭이던 영화였다. 두 자매의 이야기 속에서 비치는 한 사람의 일생이 저렇게 짧고도 길고, 처연하기도, 강렬하기도 한 소설 (short story. 단편영화. 영화 속 감독과 상옥이 이야기를 나누던 인사동의 카페 이름이 ‘소설’이다) 같기도 하다 싶었다. 나중에 40년쯤 더 지나서 나도 내 인생을 돌이켜 본다면, 축약하면 단편 영화나 소설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누구나 가지고 있을 그 찬란한 개개인의 역사가 다 영화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다면 나도 선물 (present)처럼 주어진 오늘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요즘은 일이 버거워 자주 몸이 안 좋았는데, 몸살이 나서 아픈 것도 코로나인줄 알고 덜컥 겁이 났었다. 하지만 고열이 미열로 바뀔 즈음 또 영화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영화 속 상옥을 깨우던 햇살과 깨달음처럼, 오늘의 나는 포근함을 느낀다. 참 다행이다. 앞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더 많은 한국 영화가 초청되고, 상영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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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농업 현실을 알 수 있는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이라는 영화는 스페인에서 농업을 하는 솔레 가문이 나온다. 복숭아를 재배해서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이 가족들은 3대째를 거쳐 농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토끼들이 농사를 방해하자 사냥용 총으로 쏴 죽이는데 이 영화 곳곳에서 토끼들의 사체가 나온다. 그 토끼들의 명복을 비는 흑인 노동자의 모습을 본 솔레 가문의 손녀는 그 모습을 따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들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다가온다. 바로 누군가가 태양 전지판을 자신들의 땅 근처에서 심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본 솔레 가족은 거칠게 항의하지만 더 이상 막지 못한다. 자신의 땅에서 대를 이어온 농사를 망치고 싶지 않은 솔레 가족을 보여주면서 스페인의 농업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농업이라는 게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있는 직업이다 보니 스페인에서도 농업인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특히 농업인들은 토지를 헐값에 팔기도 하는데 점점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느낌이다 보니 자신들이 피 땀 흘려 만든 과일들을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들이 벌어들이는 돈의 반밖에 안되는 걸로 생활할 수밖에 없어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신들의 과일을 납품받던 대기업에 시위를 하게 된다. 또한 스페인도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농부라는 직업에 대해 큰 관심이 없기에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보다 학업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게 우리와 비슷해서 안타깝게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레 가족들은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이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대기업의 횡포로 인해 자신들의 밥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어두운 이면에 있는 농업의 현실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토끼들을 죽여야만 했던 것 때문일까? 토끼들의 죽음이 솔레 가족에게 전해주는 의미는 무엇이었나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자신들이 농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방해되는 토끼들을 제거했듯이 자신들의 물건을 납품받던 대기업도 솔레 가족에게는 큰 타격을 준 것이다. 어쩌면 인과관계가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둘 다 불쌍한 건 매한가지다. 그래서 살기 위해 무슨 일을 한다는 게 꼭 쉬운 것만이 아닌 것 같다. 그게 농업이든 학업이든...
스페인에서 농업의
이면에 숨겨진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
※ 저의 주관적인 영화 리뷰입니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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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올란도’로부터 시작되는 트랜스젠더 계보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Orlando, My Political Biography
폴 B. 프레시아도/France/2023/98min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란도》*는 어느 날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이 바뀐 올란도가 수백 년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울프가 사랑했던 여성 비타 색빌 웨스트가 모델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즉 《올란도》의 설정과 작품이 쓰인 배경을 결합하면, 이 소설이 트랜스 여성을 향한 동성애적 욕망에 기반한 이야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이 쓰인 게 1928년. 출간 100주년을 앞둔 지금, 폴 B. 프레시아도 감독은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에서 《올란도》를 다시 읽는다. 그럼으로써 올란도로부터 이어져오는 트랜스 계보를 써내려가고자 한다.
《올란도》는 프레시아도 감독에게 경외와 분노를 동시에 자아낸다. 트랜스 서사의 ‘원형’으로 삼을 만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경외를, 모든 트랜스젠더의 자서전은 《올란도》를 능가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동시대의 수많은 트랜스가 귀족이자 시인이었던 올란도가 누린 특권에서 이질감을 느낀다는 데서는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즉,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은 《올란도》에 대한 헌사이자 이를 비판적으로 넘어서기 위한 시도다.
영화에는 동시대의 수많은 올란도‘들’이 등장한다. 젠더 이분법이 포섭하지 못하는 모든 존재는 ‘올란도’다. 영화에서는 8세부터 70세까지의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non-binary, 자신을 성별 이분법으로 분류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일컬음) 26명이 《올란도》와 자기 서사를 오가며 ‘원형’을 변주한다. 동시대의 올란도들은 현대의 젠더 이분법보다 버지니아 울프가 백여 년 전 그려낸 세계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 물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한 것도 많기에 최초의 올란도와 그 후예는 완전히 같지 않다. 《올란도》의 시적 아름다움이 가능케 하는 자유를 노래하다가도 정신병원, ‘남성’과 ‘여성’뿐인 신분증이 야기하는 불안,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법의 문제 등을 수시로 소환하는 동시대 올란도들의 이야기를 보라. 요컨대, 이들은 ‘최초의 올란도’를 재연하는 동시에 이를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한다. 어디까지가 ‘원형’이고 어디부터가 ‘변형(trans)’인지 모를 이야기는 우리를 성별 이분법의 기나긴 역사와 이 폭력적인 체제가 양산한 트랜스젠더의 경험, 감정의 궤적으로 인도한다. 패러디와 유머를 활용해 기어이 폭력적인 규범 속에서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낸 올란도들의 이야기는 쾌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올란도 이후에도 수많은 트랜스젠더 아이콘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가 올란도와 마찬가지로 그 후예들이 동일시하는 대상이 되었다. 미국에서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크리스틴 조겐슨이 대표적이다. 수잔 스트라이커가 쓴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보면, 조겐슨의 유명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편지를 하도 많이 보내서 미국 어디에서든 주소 없이 ‘크리스틴 조겐슨’이라고만 써서 편지를 붙여도 그녀의 집에 배송되었다고 한다. 올란도의 후예들이 동일시하는 건 대중에게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가시화한 인물뿐만이 아니다. 모든 특권에 반대하며 혁명을 주창한 급진적 트랜스젠더 활동가들도 동일시의 대상이다. 동시대의 올란도들은 여러 번의 동일시를 통해 젠더 이분법이 누더기로 만든 트랜스젠더 계보를 복원한다.
영화의 마지막, 인상적인 세 장면이 연달아 나온다. 첫 번째는 의사가 《올란도》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수술하는 장면이다. 의사는 “폭력뿐이었다(Violence was all)”는 구절을 오려내고, 책에 실린 올란도의 얼굴을 동시대 올란도들의 얼굴로 교체한다. ‘정신병자’로 낙인찍혀 의료 조치의 대상이 되어야 할 존재는 트랜스젠더가 아닌 그들을 주변화한 젠더 이분법이라는 점을 ‘수술’이라는 트랜스젠더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 의료 행위로 패러디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당당히 스스로가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는 어린이들의 ‘올란도 선언’이다. 아이의 이미지는 대개 이성애 규범적인 핵가족의 미래를 상징하는 보수적 상징으로 활용되지만,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에서는 그렇지 않다. 트랜스젠더임에도 우울하지 않은 아이들의 얼굴은 올란도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앞으로도 다채롭게 변주되어 이어질 것임을 분명하게 암시한다.
마지막은 《올란도》 출간 100주년인 2028년을 맞아, 《올란도》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판사가 체제의 폭력에 시달려온 존재들에게 논바이너리 국가의 시민권을 부여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최초의 올란도(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식민주의‧제국주의의 관성을 거부하고 배제된 자들을 위한 국가와 권리를 선포하는 장면, 즉 권력을 전유하는 장면으로 독해할 수 있다.
이 진지하고 감동적이면서도 풍자 정신이 충만한 블랙/코미디가 최종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시적 세계에서만 가능했던 트랜스젠더의 자유를 현실로 가져오라는 것.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은 퀴어가 나오는 작품의 문학성은 예찬하면서도 정작 현실의 문제에는 눈감는 사람, 독특한 상상력으로 우리를 속박하는 규범의 경계를 넘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독창적‧실험적 영화다.
*국내에는 ‘올랜도’로 번역된 것이 더 많으나 영화의 제목에 맞춰 편의상 ‘올란도’로 표기한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 초청으로 제24회전주국제영화제에 기자로 참석해 작성한 글입니다.
★이 영화는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4월 30일 13시, 5월 3일 17시 30분, 5월 4일 16시 30분에 상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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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회] 바로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체험해야 할 영화
개봉 | 2025.06.03.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국가 | 독일
러닝타임 | 167분
배급 | 그린나래미디어(주)
시놉시스 |
꿈에 그리던 수사판사 승진을 하게 된 ‘이만’, 때마침 테헤란에서는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이만’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총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딸들과 논쟁을 벌인 어느 날, 총이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가족의 믿음에는 균열이 생긴다.
철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것은
빛이 아니라
목 잘린 발들이 일으키는 먼지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고
외부가 한낮으로 향해 갈 때
어둠이 숨어드는,
모두가 짙어지면 홀로 더 깊이 짙어지는,
땅보다 낮은 땅에서
절대 상하지 않겠다
박세미, <일조권>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영화관에서 보길 잘했다 싶은 영화 중 한 편인데요. 보다 많은 분들께 영화에 대해 알려드리고, 추천하고 싶은 마음으로 리뷰를 작성합니다.
영화는 테헤란을 배경으로 하며, 혁명 법원의 수사판사로 임명된 이만과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만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사형 선고를 승인해야 하는 일을 맡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합니다. 일을 맡은 직후에는 양심의 거리낌을 느끼지만, 정신없이 일을 하며 그는 점차 무뎌지죠. 그가 일에 적응하는 한편, 그의 딸 레즈반과 사나는 세상의 변화에 눈을 뜨고 냉혹한 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가 호신용으로 지급받았던 총을 집에서 잃어버리자, 그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집니다.
라술로프 감독은 영화 속에 실제 2022년 이란의 '여성, 생명, 자유' 시위 장면을 삽입하여, 극 중 이야기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삽입된 시위 장면을 볼 때마다, 이 영화는 그저 영상으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영화관에서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 “시네마”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포스터 상단에 적힌 “반드시 목격해야 할 영화”라는 문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었고, 관객들이 모두 이란 정부의 잔혹한 폭력의 목격자가 되는 듯했습니다.
영화는 가족을 중심으로, 이란 사회의 전체주의적 구조를 하나의 가정에 빗대어 보여줍니다. 영화에 그려지는 가족은 서로를 지지하는 공동체가 아니며, 집은 가장 편안한 장소가 아닙니다. 가족식사 장면에서는 숨을 쉴 수 없는 압박감마저 느껴지죠. 말을 해도 서로에게 닿을 수 없고, 그 어떤 공간에서도 편히 쉴 수 없습니다. 아버지인 이만과 어머니인 나즈메에게는 총을 잃어버린 공간, 딸들이 총을 숨겼을지도 모르는 공간으로 불신의 공간이라면, 딸인 레즈반과 사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반복해서 총을 숨겼냐며 따져 묻고, 수시로 방을 뒤지는 불안함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갈등이 심화되며, 관객은 서스펜스를 느끼게 됩니다. 이 지점이 혼란감을 주기도 하죠. 다큐멘터리같은 이 영화를 보며 서스펜스를 느껴도 되는 걸까? 영화는 정치적 책임감을 갖고 보지 않아도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심리적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한 연출들이 눈에 띄기도 하죠. 영화는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비추면서도, “영화”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끝까지 가져갑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제작진의 신변에 대한 걱정이 될 정도인데요. 이란 내의 폭력 현장을 고스란히 영화에 담은 점으로 인해 개봉에 어려움이 있진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아니나 다를까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비밀리에 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 감독이 겪어야 했던 일들은 우리가 안일하게 짐작한 것보다 훨씬 고되고 심각했습니다.
라술로프 감독은 이 영화로 인해 이란 정부로부터 8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추가적인 형벌이 예정된 상태에 놓였습니다. 이에 그는 전자기기를 모두 버리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산악 지대를 도보로 넘어 이란을 탈출했죠. 그는 수감과 망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고, 결국 독일에 도착하여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엄마 나즈메 역을 맡은 배우 소헤일라 골레스타니 역시 자국을 비판하는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태형 74대와 징역 1년형을 받을 위기에 처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소헤일라 골레스타니는 실제로 2022년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에 연대하는 영상을 SNS에 올렸다가 체포되어 에빈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는데요. 영화가 개봉 이후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출국 금지 조치로 인해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라술로프 감독과 함께 이란을 탈출해 칸영화제에 참석했던 딸 역할의 두 배우 마흐사 로스타미, 세타레 말레키는 망명을 선택하고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감독과 배우들이 사생결단으로 만든 이 영화는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비롯하여,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습니다. 2024년 칸 영화제에서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상영된 후, 라술로프 감독은 "이란 영화인들에게 전하는 나의 메시지는: 두려워하지 말라"며, "그들은 우리를 낙담시키려 하지만, 우리는 존엄한 삶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그는 또한 영화제에서 이란에 남아 있는 배우들의 사진을 들고 나와,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답답하고 두렵지만, 결국은 싹을 틔우고 조금씩 뿌리를 내리며 억압을 무너뜨리는 영화.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진실을 가리는 베일을 벗어던지는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극장에서 한 분이라도 더 보셨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전하며 마치겠습니다. 함께 목격하고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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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틴 아메리카 4 | 반등했지만 비상하지는 못한 MCU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의 방패를 물려받고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난 '샘 윌슨'(앤서니 매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위험이 닥쳐온다. 소코비아 협정으로 어벤져스를 궁지에 몰았던 '로스'(해리슨 포드) 장군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 로스는 인도양에 자리 잡은 티아무트 섬에서 채굴된 새로운 금속 아다만티움을 둘러싼 국제 분쟁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그 목으로 샘에게 어벤져스 재창설을 제안하며 협력을 요청한다.
하지만 둘은 쉽사리 손잡지 못한다. 백악관 테러의 배후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 2대 팔콘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와 함께 수사에 나선 샘은 이내 '리더'(팀 블레이크 넬슨)의 음모를 발견한다. 뇌에 스며든 헐크의 피 덕분에 초인적인 계산 능력을 얻은 그가 약속을 안 지킨 로스에게 복수하려 했다는 것. 그 사이 티아무트 섬 분쟁은 전쟁으로 치닫고, 분노를 참지 못한 로스는 '레드 헐크'로 변할 전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MCU, 마침내 반등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루소 형제의 MCU 복귀 뉴스는 멀티버스 사가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자인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캐릭터를 못 살렸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퇴장한 주요 캐릭터의 후계자 중 자기만의 서사와 매력을 보여 경우는 많지 않았다. 자연히 이전 작품이 그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3> 같은 인피니티 사가의 후속담에 관객들이 호응한 이유였다.
MCU만의 매력도 잃었다. MCU의 핵심은 시리즈 간의 연계였다. 한 영화 속 사건이 다른 영화에 영향을 끼치는 연쇄작용은 다른 프랜차이즈에서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쾌감이었다. 그런데 멀티버스 사가는 각자 자기 일을 해결하기 바쁜 영웅들만 비췄다. 토니 스타크처럼 시리즈를 오가는 구심점도, 인피니티 스톤이나 타노스 같은 궁극적인 목적지도 명시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데드풀과 울버린> 이후 약 8개월 만에 공개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이하 <캡틴 아메리카 4>)는 상술한 두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안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 샘 윌슨은 차별화된 매력과 상징성을 증명하며 성공적으로 재데뷔했다. 미국 대통령이 된 로스는 흩어진 MCU의 이야기 중 일부를 묶어냈다. 이에 힘입어 MCU도 마침내 반등의 기틀을 마련한 듯 보인다.
샘 윌슨의 증명
캡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자유',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자유'다. 1편 <퍼스트 어벤져>에서 스티브 로저스는 나치와 하이드라에 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영웅이었다. 2편 <윈터 솔져>에서는 모든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으로 전 세계를 통제하려 한 하이드라와 맞서 싸웠다. 3편 <시빌 워>에서도 미국 정부와 유엔, 동료 절반과 척을 지면서까지 어벤져스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즉, 스티브 로저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를 제외하면 정부 뜻대로 움직인 적이 없었다. 비록 이름은 누구보다도 미국 정부의 하수인처럼 느껴지지만, 그에게는 개개인의 자유가 최우선 가치였다. 자유에 뒤따르는 책임도 개인이 온전히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유를 억압하려는 정부의 개입에는 일관되게 반대하는 슈퍼히어로였고, 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어벤져스의 이상을 상징했다.
샘은 자신이 스티브의 신념과 이상을 계승했음을 증명해 낸다. 일례로 로스가 어벤져스 재창설을 부탁했을 때도 샘은 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사야 브래들리(칼 럼블리)'를 무작정 백악관 테러 범인으로 몰아간 처사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샘이 리더의 음모를 알아채고, 전쟁을 막은 것 역시 진정한 자유를 추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가 로스 대통령의 압력에 굴하는 대신 독자적으로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리더의 계략 때문에 의도치 않게 레드 헐크로 변한 로스를 샘이 저지하는 장면 또한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자격을 증명한다. 샘은 레드 헐크 안에 있는 로스의 자유의지를 신뢰했다. 로스가 헐크에게 저지른 과오를 씻고, 딸 '베티'(리브 타일러)에게 속죄하려는 열망이 진심이라고 믿었기에 레드 헐크를 설득해 로스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이는 <윈터 솔져>에서 버키를 믿고 그에게 자기 목숨을 맡겼던 스티브의 선택과 다르지 않다.
같게 또 다르게
그와 동시에 <캡틴 아메리카 4>는 '버키'(세바스찬 스탠)의 입을 빌려 샘 윌슨만의 상징성과 매력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옳다고 믿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스티브 로저스는 믿음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윈터 솔져>에서 쉴드의 일반 요원들은 그의 연설에 용기를 얻어 하이드라와 총격전을 벌였다. 이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그보다 능력이 뛰어난 다른 히어들이 그의 지시를 따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샘 윌슨은 다르다. 그는 혈청도 맞지 않았고, 초인적인 정신력을 지니지도 못한 평범한 군인이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티브를 도우며 옳다고 믿은 신념을 따르는 과정에서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더 나아가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났다. 즉, 그는 누구나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고 옳은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타고난 리더였던 스티브보다는 동반자에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달라진 액션 스타일은 두 캡틴 아메리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방패를 활용한 액션은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공통점을 보여주지만, 더 아크로바틱 한 액션은 차이점을 암시한다. 대인 액션 시퀀스에서 샘은 스티브보다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스티브와 달리 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는 없기 때문. 슈퍼 솔저는 아니어도 스티브의 신념을 이어가려는 샘의 노력이 액션의 차이점에도 녹아있는 셈이다.
로스라는 연결고리
샘이 캡틴 아메리카의 자격을 증명하는 사이, 로스 대통령은 MCU의 유산을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의 플롯은 샘과 마찬가지로 증명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로스는 헐크에게 군대를 보내고, 어벤져스를 감옥에 보냈던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의 변화는 정치적 측면과 개인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 지점에서 <캡틴 아메리카 4>는 서로 다른 시리즈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던 과거 MCU를 연상케 한다.
로스의 플롯 중 정치적 측면은 <이터널스>의 후폭풍과 직접적으로 연계된다. 인도양의 섬이 되어버린 티아무트에서는 비브라늄보다 단단한 금속 아다만티움이 발견된다. 이에 로스는 일본, 인도, 프랑스 등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고자 한다. 티아무트 섬을 남극처럼 중립지대로 놔두고, 아다만티움을 지구촌이 공유하자는 것. 로스는 호전적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백악관 테러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대화를 통해 조약을 체결하고자 애쓴다.
로스의 변화는 개인적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크레더블 헐크>의 유산을 활용해 그의 부성애를 부각한다. 로스는 한때 브루스 배너의 연인이었던 딸 베티와의 화해를 염원하고 있으며, 그전에는 차마 죽을 수 없어서 리더에게 심장병 치료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 과정에서 리더의 계략 때문에 레드 헐크로 폭주하기도 하지만, 그에 맞는 죗값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히어로로 변모할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즉,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피니티 사가의 후일담이자 멀티버스 사가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마침내 MCU다운 영화를 보는 듯하고, 극 중 삽입된 여러 복선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벤져스 재창설이라는 떡밥이 등장하고, 쿠키 영상에서 <어벤져스: 둠스데이>와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를 암시함에 따라 마침내 멀티버스 사가의 목적지가 보이기 때문. 마치 10여 년 전 MCU를 보는 듯한 향수를 자극하는 장치다.
양날의 검
그러나 로스를 전면에 내세운 선택은 양날의 검이다. 우선 진입장벽을 높인다.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크레더블 헐크>와 <팔콘과 윈터 솔져>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문제는 두 작품 모두 접근성이 낮다는 것. 전자는 MCU가 인기를 얻기 전인 2008년에 개봉했고, 후자는 디즈니+ 드라마이기 때문. 초반부에 뉴스 형식으로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두 작품을 보지 않았으면 극 중 상황을 즉각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화의 밀도도 낮춘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빌런과 히어로의 대립이 고조될 때 클라이맥스의 쾌감이 극대화된다. 그런데 샘과 리더는 각자의 이유로 로스와 갈등을 빚을 뿐, 정작 서로 대립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티아무트 섬에서 샘과 로스의 대립이 일단락된 순간, 영화는 긴장감이 꺾인다. 로스와 리더의 플롯이 남은 가운데, 샘의 역할이 애매해지는 것. 그 결과 레드 헐크와 샘의 충돌도 비록 눈은 즐겁지만, 뒷북처럼 느껴진다.
리더와 <시빌 워> 속 제모 남작을 비교해 보면 문제가 더 명확하다. 두 빌런은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며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가짜 미끼를 던져주고, 주인공끼리 싸우게 만든다. 그러나 리더와 달리 제모는 캡틴 아메리카에게 원한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와 아이언맨을 분열시키는 전개는 복수라는 맥락 안에서 개연성이 있었고, 서스펜스를 끝까지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다. 정확히 <캡틴 아메리카 4>에서 빠진 스토리라인이다.
더 나아가 기시감도 극대화된다. 영화가 늘어짐과 동시에 지난 시리즈를 답습한 장면이 드러기 때문. 일례로 백악관에서 이사야가 도주하는 시퀀스의 연출과 타이밍은 <윈터 솔져>에서 버키가 닉 퓨리를 저격한 후 도주하는 장면을 빼닮았다. '사이드와인더'(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가 도로에서 샘을 급습하는 장면, 리더가 군사 기지 지하에 숨어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이는 오마주를 넘어서서 자가복제에 가까워 보인다.
비상까지는 부족한 한끗
그 외에도 <캡틴 아메리카 4>는 이전 시리즈에 비해 완성도가 한끗 부족한 순간이 적지 않다. 액션 연출이 대표적이다. 물론 확실한 장점도 있다. 캡틴 아메리카와 팔콘이 일본 해상자위대 및 세뇌된 미 해군과 펼치는 공중전에서는 최근 MCU에서 보지 못한 역동감이 느껴진다. 빠른 속도감과 레드윙을 활용한 신선한 연출 덕분이다. 레드 헐크도 <어벤져스> 1편과 2편에서 보여준 헐크의 위용만큼 파괴적인 액션 시퀀스를 선보인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라는 제목에 비하면 전반적인 액션 연출은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대인 액션, 육박전 장면에서는 카메라 워크나 편집 속도가 한 템포씩 늦다 보니 주인공들의 움직임에서 박력이 덜 강조된다. 군사 기지 지하 복도에서 군인들과 샘, 호아킨, '루스'(쉬라 하스)가 한 데 뒤엉키는 액션 장면을 <윈터 솔져>나 <시빌 워>의 액션 시퀀스와 비교해 보면 부족함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숱한 재촬영의 여파도 가리지 못했다. 주요 캐릭터 중 일부는 중요성에 비해 분량이 적다. 일례로 로스의 안보 보좌관이자 레드룸 출신 블랙 위도우인 루스는 스티브-샘-나타샤처럼 샘, 호아킨과 팀을 이루는 데도 활약이 미미하다. 전개도 편의적이다. 레드 헐크가 샘에게 갑자기 설득되거나, 사이드와인더가 손쉽게 샘에게 협력하는 식이다. 기존 촬영분과 재촬영분을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후반부 전개를 섬세하게 다듬지 못한 흔적이다.
종합하면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새로운 <퍼스트 어벤져>에 가깝다. 기존 클리셰에 기대면서 완성도는 일부 포기하더라도, 세계관의 핵심 인물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며 시리즈와 유니버스의 기반을 다졌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달리 말하자면 반등에 성공했을 뿐, 아직 날아오르지는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결국 두 후속 타자, <썬더볼츠*>와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의 어깨가 여전히 무거워 보인다.
Acceptable 무난함
날아오르기에는 아직 출력이 부족한 캡틴 아메리카와 M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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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름끼치는 결말까지 시즌1 34분 만에 몰아보기 결말해석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지옥 결말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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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 리뷰 - 아버지 부조금으로 장례식장을 노름판으로 만든 불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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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전성기는 반드시 온다!
한때는 잘나가던 큰형님 `호성`(손현주).
8년 만에 출소해 보니 남보다 못한 동생 `종성`(박혁권)은 애물단지 취급이고,
결혼을 앞둔 맏딸 `은옥`(박소진)과 오랜만에 만난 아들 `동혁`(정지환)은
`호성`이 부끄럽기만 하다.
아는 인맥 다 끌어 모은 아버지 장례식에서
부조금을 밑천삼아 기상천외한 비즈니스를 계획하며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데…
그런데…! 하필이면 세력 다툼을 하는 두 조직이 이곳에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때마침 눈치라고는 1도 없는 `호성`의 친구 `양희`(정석용)가
술에 취해 오지랖을 부리는데...
일촉즉발! 수습불가!
과연 X버릇 남 못 준 `호성`에게 봄날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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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더 킬러> 공식 티저 예고편
결정적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타깃을 놓친 암살자. 사적인 감정은 배제한다는 신조 아래 국제적인 추격전에 뛰어드는데. 그 여정에서 의뢰인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더 킬러》, 일부 극장에서, 그리고 11월 10일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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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가 날 부를 때> 30초 예고편
꿈을 이루기 위해 홀로 돈을 벌고 공부하며 고군분투하던 ‘안란’.
어느 날, 간절히 바라던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몇 번 본적도 없는 어린 남동생이 안란에게 덜컥 맡겨진다.
동생을 키우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누나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어른들.
“내 인생에는 너만 있는 게 아냐.
나에게도 우주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