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14 10:54:50
4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흥행 돌풍을 일으킨 <마인크래프트 무비> 2주 차에도 북미 1위 등극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영화로 옮긴 <마인크래프트 무비>가 개봉 2주 차에도 북미 주말 영화 순위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누적 수익 2억 8,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예상보다 강력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흥행 수치에도 불구하고, 관람 시 일어나고 있는 극장 내 상황으로 인해 찬반 여론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상영 중 '치킨 조키(Chicken Jockey)' 밈을 따라 관객들이 해당 장면이 나올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팝콘을 던지고,
친구들 어때 위에 올라가 환호하는 등 통제가 어려운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로인해 일부 극장에선 실제로 경찰이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현상을 본 감독 제러드 헤스는 "재밌는 건 그냥 팝콘을 던지며 환호하는 거 가지고 경찰이 오고 있다는 거예요.
웃기죠. 친구들과 가족들이 함께 추억을 만들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좋다고 생각해요.”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의견 역시 존재하는데요. 한 극장 직원은 “위키드 상영 당시도 힘들었지만, 마인크래프트는 그 이상입니다.
한 번에 열댓 명씩 퇴장 조치하고 있어요. 한 회차에만 10대 남학생 30명을 내보낸 적도 있어요”라고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은 “이 영화 끝나는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마인크래프트 무비>의 열기가 식지 않고 계속될 수 있을까요?
*기사 출처(https://www.worldofreel.com/)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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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 알고리즘] ‘여행과 사랑’, 낯선 곳에서의 당신
[무비 알고리즘 Movie Algorithm]:
‘온더플로어’만의 컨텐츠, [무비 알고리즘]에서는 다양한 영화들을 하나로 묶어본다. 너무나 달라보이는 영화들. 하지만 영화 하나하나를 조금씩 살펴보면, 우리는 그것들에게서 어떠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이번 무비 알고리즘의 연결고리는 ‘여행’과 ‘사랑’이다. 지금부터 여행과 사랑이라는 연결고리로 묶인 네 편의 영화들을 살펴보자.여행 가기 전날 밤 잠에 들기전의 설렘, 여행지에 도착해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면서 떠나온 땅들을 바라볼 때의 아쉬움. 이처럼 여행이 만드는 설렘과 행복, 그리고 아쉬움은 사랑이 가진 그것들과 너무나 닮아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버린 우리들. 우리가 여행 속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이 있겠지만, 이것들 중에 가장 특별한 감정은 단연 사랑일 것이다. 낯선 이가 느낄 차가운 공기, 그 속에서 더욱 뜨거웠던 그 둘만의 시간을 소개한다.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
- 영화: 비포 선라이즈 (1995)
-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 출연진: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안드레아 에커트 外
‘단 하루를 위해’
달리는 기차 안, 싸우는 독일인 커플을 보며 똑같은 감정을 느낀 ‘제시 (에단 호크 分)’와 ‘셀린 (줄리 델피 分)’. 각각 미국과 프랑스에서 온 그들은 같은 기차를 타고 있다는 공통점 외에는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로 대화를 나누게 된 그들은 짧은 순간이지만 서로에게 흥미를 갖게 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한 기차, 원래라면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는 셀린은 함께 내리자는 제시의 제안에 그들은 함께 비엔나를 여행하게 된다. 비엔나에서 보내는 단 하루, 그들은 비엔나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잊지 못할 감정을 갖게 된다.
‘떠나가기에 더 간절한’
여행과 사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트릴로지>였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은 모두 일관되게 제시와 셀린이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다룬다. 기차 안 스치듯한 만남에서 시작해 평생의 연인이 되어가는 그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18년의 세월동안 그들 곁에서 살아갔다는 생각마저 든다. <비포 선라이즈>가 <비포 트릴로지> 중의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해당 작품을 최고의 작품으로 뽑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감히 생각하기에는 두 사람의 첫 시작이 여행이 가지는 풋풋함과 설렘, 그 로망을 가장 잘 드러내서는 아닐까 싶다.
작품 속에서 제시와 셀린은 하루동안 비엔나의 다양한 장소들을 돌아다닌다. 허나 비엔나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어느 순간이 되면, 우리의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제시와 셀린의 대화에 빠져들게 되어서이다. 가벼운 농담에서 시작하여 죽음과 인간, 그리고 사랑까지. 능글맞고 현실적인 제시와 섬세하고 이상적인 셀린의 표현과 말은 극과극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그들 모두 꾸밈 없이 솔직했다. 영화를 보면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하루만에 저렇게 사랑을 느끼고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카페에 앉아 친구에게 전화하는 형식을 빌려 서로에게 뜨거운 사랑을 말하는 이들을 보며 그 마음은 금방 바뀌게 되었다. 사랑을 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 각자의 기차에 탄 제시와 셀린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는다. 행복한 미소와 감은 눈. 아마 그 의미는 평생 다시 겪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그 하루를 꿈속에서나마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냉정과 열정 사이 Calmi Cuori Appassionati>
-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2001)
- 감독: 나카에 이사무
- 출연진: 타케노우치 유타카, 진혜림, 유스케 산타마리아 外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밀라노에 살고 있는 두 이방인 '준세이 (다케노우치 유타카 分)'와 '아오이 (진혜림 分)'. 그들은 일본에서 만나 서로를 너무도 사랑했지만, 그 기억을 묻어둔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오해와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멀어진 이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재회한 그들은 다시 서로에게 끌리게 되지만, 이미 각자의 삶에는 다른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준세이는 그림 복원을 배우며 ‘메미 (시노하라 료코 分)’와 동거 중이고, 아오이는 마빈 (왕민덕 分)’과 안정적인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준세이와 아오이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과연 그들은 결국 10년 전 연인이었던 시절 아오이의 30번째 생일에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고 다시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냉정을 이기는 것’
<냉정과 열정 사이>는 수많은 한국 관광객을 이탈리아 피렌체으 ‘두오모 성당’으로 이끈 대표적인 일본의 로맨스 영화이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섬세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특히, 원작 소설은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라는 남녀 작가 두 명이 신문에서 2년간 각각 ‘아오이’와 ‘준세이’의 입장이 되어 교대로 연재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만큼 다소 단조로워 보이는 형식임에도,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을뿐더러 깔끔하게 이야기가 구성되었다. 결국 관객들은 10년의 세월동안 일어난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과 애틋한 감정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두 인물의 비극적인 상황과는 반대되게 이탈리아 피렌체와 밀라노의 풍경은 아름답게 묘사된다. 두오모 성당, 아르노 강변, 밀라노의 거리 등 낯선 이의 얼굴과 함께하는 이국적인 풍경은 준세이와 아오이의 사랑 이야기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든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엔야 (Enya)’의 특별한 음악과 ‘요시마타 료 (Yoshimata Ryo)’의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은 영화의 깊이와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특히, <'The Whole Nine Yards'>와 같은 두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명곡들은 큰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도 <냉정과 열정 사이>의 준세이와 아오이라는 캐릭터 모두 감정선이 요동치지 않아 표현하기가 어려움에도 이들을 연기한 두 배우의 연기는 훌륭했다. 다케노우치 유타카는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내면에 열정을 간직한 준세이를 잘 소화했고, 진혜림은 잔잔해보이지만 강인한 아오이의 매력을 충실히 표현했다.
빛 바랜 추억을 복원하는 준세이, 영롱한 사랑을 세공하는 아오이. 10년의 시간, 점점 더 멀어지는 그 간극을 뛰어넘은 그 사랑의 힘의 원천은 서로의 존재가 갖는 믿음과 이끌림인듯 하다.
<김종욱 찾기 Finding Mr. Destiny>
- 영화: 김종욱 찾기 (2010)
- 감독: 장유정
- 출연진: 임수정, 공유, 이청아 外
‘세상 모든 종욱들’
뮤지컬 무대 감독 ‘지우 (임수정 分)’는 인도 여행에서 만난 첫사랑 '김종욱'을 잊지 못하고, 결국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운영하는 ‘기준 (공유 分)’에게 의뢰를 하게 된다. 기준은 꼼꼼함과 집요함으로 '김종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하지만, 이는 쉽지가 않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김종욱'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이상형과 딱 맞는 그때의 그 남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찾으면 찾을수록 오히려 자신의 옆에서 티격태격하며 늘 함께 있는 기준에게 마음이 끌린다. 한편, 기준은 융통성 없고 답답한 지우를 구박하면서도, 그녀의 첫사랑 찾기를 진심으로 돕는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기준은 '김종욱'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게 되고, 지우에게 이 단서를 가져간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될까.
‘내 곁에 누군가’
영화는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적인 흐름을 따라간다. 앞서 본 <냉정과 열정 사이>가 시종일관 잔잔함을 바탕으로 여운을 준다면, 해당 작품은 발랄함과 유쾌함을 통해 즐거움을 선물한다. 해당 영화 역시 원작을 갖고 있는데 동명의 뮤지컬이 그 원작이다. 이를 통해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음악으로 뮤지컬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면서, 영화적 연출도 놓치지 않았다. 첫사랑 찾기라는 소재에 더해 ‘공유’와 ‘임수정’이라는 로코 (로맨틱 코미디) 장인들의 연기도 볼만 하다. 공유는 그 특유의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한기준' 역을 맡아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와 츤데레 매력을 선보이고, 임수정은 털털하고 사랑스러운 '서지우'역을 맡아 로코퀸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들의 연기와 얼굴합은 영화의 즐거운 요소이다.
영화는 판타지적 요소보다는 첫사랑에 대한 현실적인 연애 감정에 집중한다. 뮤지컬은 극적인 효과를 위한 장치일뿐, 실질적으로 영화가 관객에게 유도하는 방향은 첫사랑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에 대한 고찰이었다. 호두과자를 하나 안 먹고 남겨두는 이유를 묻는 기준의 말에 ‘끝을 안내면 좋은 느낌 그대로 두고두고 남는다’라고 답하는 모습. 사실 김종욱씨의 모든 것을 알면서도 끝일까, 실망할까 두려워 알면서도 모른 척 김종욱을 찾지 않은 지우. 이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법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이를 통해 관객들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며 영화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공유와 임수정이 나오는 인도 ‘조드프루’ 지역의 회상신과 같이 국내외 여행지에서의 풍경은 아름다웠고 로케이션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감미로운 OST나 대사 등 누군가에게는 오글거리는 장면들도 많았다. 그러나 ‘김동욱’, ‘신성록’, ‘김무열’, ‘정준하’ 등 익숙한 스타들을 카메오로 볼 수 있고 영화 내내 나오는 특유의 유머는 “나 이런 게 좋아하네”라는 말을 자동으로 나오게 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누군가를 찾기 위해, 또 다른 여행을 떠난 두 사람. 그들의 원래의 목표였던 ‘김종욱 찾기’는 어느새 맥거핀이 되어버렸고 그들에게는 여행 속 항상 함께했던 서로가 너무나 큰 의미로 남게 되었다.
<해피 투게더 Happy Together>
- 영화: 해피 투게더 (1997)
- 감독: 왕가위
- 출연진: 양조위, 장국영, 장첸 外
‘나랑 같이 있어줘’
홍콩 반환을 앞둔 1997년, "우리 다시 시작하자"라는 하보영 (장국영 分)의 말 한마디에 이끌려 여요휘 (양조위 分)는 그와 함께 홍콩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아르헨티나까지 오게 된다. 두 사람은 이과수 폭포를 함께 보러 가기로 약속하지만,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다른 피부색의 두 이방인에게 낯선 타지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요휘는 탱고 바에서 일하며 힘겹게 생활을 이어가는데, 그러던 어느 날, 보영이 심하게 다친 채 아휘 앞에 다시 나타난다.
아휘는 보영을 간호하며 다시 한번 그에게 마음을 열지만, 보영의 변덕스러운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보영은 아휘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며, 쉽게 떠났다 쉽게 돌아온다. 안정적인 관계를 원하는 아휘는 그런 보영에게 지쳐가면서도, 그를 쉽게 놓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 새롭게 일을 한 식당에서 ‘장 (장첸 分)’을 만나게 되는 등,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다. 혼란에 빠진 아휘와 보영의 관계. 과연 그들의 끝에는 서로가 있을까.
왕가위 감독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해당 영화는 그의 독보적인 세계를 다시 한번 세계에 각인시켰다. 감독의 특징인 즉흥적인 연출과 미장센, 다양한 상징들은 영화 내내 끊임없이 살아 숨쉰다. 먼저 작품의 구성은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는데 초기에는 장국영이 아닌 ‘유덕화’가 보영의 역할이었고, 이과수 폭포로 가는 로드 무비가 원래의 구성이었다. 또한 아휘의 이성 연인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작품은 제작 내내 변화를 거쳤다.
왕가위의 영혼의 파트너 ‘크리스토퍼 도일’이 담당한 촬영 역시도 정해진 대본 없이 촬영된 장면들이 많다. 일례로 보영과 아휘가 갈등하고 다투는 장면에서 활용된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는 인물들의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클로즈업을 통해 아휘의 슬픔과 고독, 보영의 불안과 후회 등 복잡한 감정들을 전달한다. 흑백, 붉은색, 녹색, 노란색 등의 활용을 통한 강렬한 색채 대비 역시 두 남자의 엇갈린 운명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상징한다. 특히, 흑백의 색은 현실의 고단함과 과거를, 컬러의 색은 현재를 상징하며 붉은색과 노란색은 열정과 불안, 녹색은 희망과 고독을 나타낸다..
‘구름 사이 봄햇살’
<해피 투게더>는 단순한 동성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이방인의 고독, 불안정한 관계와 엇갈린 운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감독은 영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상징과 장치들을 활용하여 이러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작품 내내 관통하는 상징적 이미지인 아래로 쏟아지는 이과수 폭포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휘의 방 안에 놓인 이과수 폭포 스탠드는 두 남자가 함께 이루고자 했던 꿈, 이상향을 상징한다. 반면, 결말에 보영 없이 혼자 이과수 폭포에 도착한 아휘가 직접 맞이한 거대하고 압도적인 이미지는 아휘의 공허함과 상실감을 극대화한다 작품 내내 등장하는 여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보영의 여권을 숨긴 아휘의 행동은 상대를 구속하고 옭아매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여권은 곧 자유와 이동의 가능성을 상징하는데, 이를 빼앗음으로써 강압적 수단을 사용해야만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그들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작품의 후반, 아휘와 보영만큼이나 큰 영향력을 보여준 인물은 첸이었다. 자신이 정한 선을 넘지 않으면서 아휘에게 다가가는, 그리고 "귀가 눈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첸. 이러한 첸의 행동과 대사는 아휘가 보영과의 관계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감정과 욕망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첸은 아휘가 스스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찾는데 있어서 그의 성장을 돕는 희망의 상징이자 방향이 되었다.
영화의 제목이자 가수 ‘터틀즈 (The Turtles)’의 목소리로 마지막을 장식한 그 말 "해피 투게더". 이는 역설적이게도 두 주인공의 불행하고 엇갈린 사랑을 의미한다. 함께 있지만 진정으로 행복하지 못하고 외로웠던 두 사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어느새 우리의 몫으로 넘겨졌다.
‘사랑하게 될거야’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속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나와 당신은 의지할 곳, 의지할 것 하나 없는 이방인이 된다. 너무나 낯선 그 곳, 그 다른 색의 눈들이 만든 시선들은 너무나 차가워 우리는 그 눈들을 피하려 애를 쓰곤 한다. 그렇게 경계하는 눈들을 피하고 한 숨을 돌리고 나면 보이는 어느 누군가. 그 누군가에게서 당신은 냉기를 식혀줄 가장 뜨거운 바로 그것, ‘사랑’을 느끼게 된다. 끝이 두렵다고 여행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여행의 끝이 언제나 해피엔딩은 아닌 것처럼, 뜨거웠던 사랑의 끝이 아쉽고 또 아플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못 볼 지나간 풍경들을 놓쳤다고 괴로워하기 보다는, 자그마한 용기를 내어 사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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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부유하는 도시인과 일상의 접촉
시놉시스
<푸르스름한>은 모호한 분위기, 느낌, 존재의 연약한 상태를 묘사한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릴리트 크락스너 Lilith KRAXNER, 밀레나 체르노프스키 Milena CZERNOVSKY
출연: Leonie BARMBERGER, Natasha GONCHAROVA
리뷰
<푸르스름한>은 명확한 줄거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 영화가 아니다. 사이에 끼인(in between) 일상 속 순간의 분위기와 느낌을 이미지와 사운드로 포착하는 일종의 아방가르드 영화다. 코로나 시기 구상된 <푸르스름한>은 판데믹 동안 사회와 일상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느낀 설렘과 두려움을 표현한다. 그럼에도 <푸르스름한>의 줄거리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너무나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던 탓에 소통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다시 세상과 연결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원제 <Bluish>는 본래 파란색의 색채와 우울한 기분을 모두 뜻하는 단어다. 제목의 중의적 의미는 파란색의 이미지를 통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물의 이미지다. 물에 둥둥 떠 있거나 샤워를 하고, 수영을 하는 장면들은 단단하게 뿌리내린 고체 상태로서 인간이 아닌 액체 상태의 인물을 형상화한다. 일종의 정화 행위로서 샤워는 신체와 접촉하는 물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는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의 실제 시간에 맞먹을 정도로 롱테이크로 촬영된 샤워 장면은 가시적이지 않지만 우리의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순간들을 재탐색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행위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현대인의 하루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행위는 무엇일까? 단연코 스크린 타임일 것이다. 깜깜한 밤에도 놓지 못하고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의 색채 또한 파란색이다. 스마트폰의 블루 스크린은 세상과 소통되길 원하면서도 단절된 현대인의 불안을 형상화한다. 이를 잠재우려는 듯 주인공은 명상 영상을 틀어놓고 잠에 든다. 수동적인 관람이 아니라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시각적 이미지를 모두 암전시키고 마치 실제로 주인공과 함께 자리에 누운 듯 고요한 명상 영상에 집중한다. 음향이야말로 관객의 신체에 가장 가깝게 접촉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여전히 평면의 한계로 인해 카메라가 두 여성의 일상에 밀착하면 할 수록 관객의 시선은 관음이 된다. 그래서 <푸르스름한>은 관객으로 하여금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게 만든다. 영화에는 세 번의 눈맞춤이 등장한다. 첫 번째 눈맞춤은 병원 대기실에서 만난 아이와 함께 눈을 깜빡이는 장면, 두 번째는 데이팅 어플에서 만난 사람과의 눈맞춤, 그리고 마지막은 완전히 낯선 사람과의 눈맞춤이다. 영화 속 인물들뿐만 아니라 관객 또한 얼굴 클로즈업 정면샷을 통해 배우와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관계를 얼굴의 현현으로 설명한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상대방의 얼굴, 그것은 참된 인간성의 시작일뿐만 아니라 일종의 윤리적 호소로서, 또는 저항할 수 없는 명령으로서 나에게 다가온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타자를 환대할 수 있다. <푸르스름한>은 혐오가 재미가 된 시대에 파편화된 타자의 얼굴을 다소 투박하지만 온전한 형태로 기워 넣음으로써 일상 속 blue의 순간들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상영스케줄
2025.05.02(금)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21:00 (상영코드:259)
2025.05.03(토)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20:30 (상영코드:375)
2025.05.04(일) 메가박스 전주객사 4 17:30 (상영코드:449)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2025.04.30~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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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과 매국 사이 애매한 줄타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국 군벌, 마적, 일본군과 일본 경관, 조선인과 독립군이 엉켜 살아가는 1920년대 간도. 그곳에 한 남자가 도착한다. 일본 군복을 벗고 죽기 위해 간도로 향한 '이윤'(김남길). 10여 년 전 남한 대토벌 작전에 참전했던 그는 작전 당시 자기 때문에 가족을 잃어야 했던 의병장 '최충수'(유재명)를 만나 목숨으로 사죄하려 한다. 유일한 사랑 '남희신(서현)'도, 친구이자 한때 주인님 '이광일'(이현욱)과의 인연도 뒤로 한 채.
하지만 이윤은 조금씩 생각을 고쳐 먹는다. 경성에서 볼 때는 기회의 땅이었던 간도가 무법천지의 땅이었기 때문. 자기를 죽이러 온 총잡이 '언년이'(이호정)를 만나고, 마적 떼의 습격을 받아 무기력하게 죽어 나가는 조선인을 보면서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생겼음을 깨닫는다. 독립군도, 마적도 아닌 도적이 되어 어떻게든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만주 웨스턴의 부활?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웨스턴은 할리우드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돼 관객과 만났기 때문.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이른바 스파게티 웨스턴은 미국 정통 서부극을 대신할 정도로 인기였다. 원주민과 개척지라는 조건이 미국과 같은 호주에서는 '미트파이 웨스턴'이 제작됐다. 심지어 소련에서도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레드 웨스턴'이 냉전 동안 인기를 모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제강점기 만주를 배경으로 중국군, 일본군, 독립군, 마적, 그리고 조선인이 얽힌 만주 웨스턴이 있다. 물론 본고장 미국에서도 서부극 인기가 시든만큼 만주 웨스턴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장르로 보기는 어렵다. 김지운 감독의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하 <놈놈놈>) 이후 흥행한 사례도 많지 않다. 그나마 윤종빈 감독의 <군도: 민란의 시대>가 사극과 스파게티 웨스턴의 퓨전을 선보인 정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는 이처럼 보기 드문 만주 웨스턴의 명맥을 잇겠다고 선포한 작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적: 칼의 소리>가 만주 웨스턴의 부흥을 이끌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장르의 근본적인 한계를 깨부수는 데 실패한 나머지,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본분에 충실한 액션
<도적: 칼의 소리>는 분명 반갑다. 본분에 충실하다. 만주 웨스턴은 철저히 오락적인 이유로 등장한 장르다. 국내에서 서부극에서 볼 수 있는 총격전과 기마 추격전을 맛보고 싶은 욕구가 낳은 장르이기 때문. 즉, 황량한 배경에서 화끈한 액션과 볼거리만 보여주면 만주 웨스턴은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놈놈놈>만 해도 일제 강점기 간도라는 시공간을 빌려 주인공 3명의 캐릭터쇼로 승부를 보는 액션 활극이었다.
<도적: 칼의 소리>는 좋은 선례를 착실히 따라간다. 우선 각 인물별로 확실한 캐릭터를 부여하면서 서부극에서 기대하는 볼거리를 충실히 보여준다. 일본군 출신 총잡이, 궁수, 호랑이 잡던 포수, 도끼 든 광대, 괴력의 거한, 암살자까지. 특징이 확실한 이들이 팀을 이뤄 싸우는 액션은 꽤 인상적이다. 물론 캐릭터 설정이 신선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수위가 높고 각자의 역할이 잘 살아있다 보니 액션 보는 맛은 확실하다.
이에 더해 웨스턴 영화로서 갖출 것도 다 갖췄다. 총격전, 기마 추격전은 당연히 등장한다. 말 탄 도적이 기차를 쫓거나 총잡이들끼리 일 대 일로 총을 겨누는 클리셰도 빼먹지 않는다. 일본군과 독립군, 도적과 일본군, 도적과 마적 등 믿을 사람 없이 서로 싸우는 장면도 만주 웨스턴답다. 만주 웨스턴은 기본적으로 군상극인 스파게티 웨스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액션 활극이기 때문.
나라가 아닌 사람을 지키다
시공간적 배경을 적극 활용한 스토리텔링도 눈길을 끈다. 사실 1920년대 간도는 피카레스크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최적화된 혼돈의 공간이자 시대다. 1920년대에 일제는 문화 통치를 통해 일본과 조선의 물지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을 추구했다. 자연히 해방 대신 자치를 요구하는 조선인이 늘었다. 간도라는 공간도 혼란스럽다. 중국 군벌, 일본군, 조선인과 독립군까지. 누구 하나 실질적인 행정력과 통제력을 지닌 주체가 없었다.
<도적: 칼의 소리>는 변절자가 늘고 선악 구분이 무의미한 시공간적 배경에 걸맞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역사적 당위성에 회의감을 표한다. 한국인이라면 일제의 침탈을 막고, 일제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명제를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상상은 할 수 있다. 노비나 백정이었던 사람이 조선과 독립운동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 초이나 구동매가 그러했듯이.
그래서 <도적: 칼의 소리>는 나라를 구한다는 추상적인 대의 대신 눈앞의 목표에 일신을 던진 이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대한 독립 대신 개인, 가족, 친구의 생존이 우선순위인 이들을 비춘다. 이윤이 대표적이다. 그는 시대적 대의와 개인의 욕망 중 항상 후자를 고른다. 그가 희신을 돕는 이유도 그저 사랑 때문이다. 남한 대토벌 작전에 참여한 후 일본군에서 전역한 것도 민족 감정이 아닌 개인적인 죄책감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는 의병장이었던 최충수가 독립군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 언년이가 시니컬한 암살자가 된 이유, 더 나아가 그들이 도적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독립군 대신 '도적(刀嚁)', 칼 휘두르는 소리로서 지켜야 할 사람들만 보호하자는 것. 또 이광일이 메인 빌런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영달을 위해 숙부도, 약혼자도, 오랜 친구도 일제에 팔아넘기거나 죽일 각오가 된 인물이니까. 이윤과는 정반대로.
장르와 역사의 충돌
하지만 <도적: 칼의 소리>의 스토리텔링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만주 웨스턴의 기본적인 한계를 깨려는 시도가 없기 때문이다. 대의 대신 생존을 택한 도적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만주 웨스턴의 묘미에 부합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만주 웨스턴의 선조 격인 스파게티 웨스턴은 선악 구분이 확실한 정통 서부극과 달리 군상극에 가깝기 때문이다.
선택지도 많았다. 도적을 독립군과 차별화하고, 난세에서 살아남는 민초로 그리고 싶었다면 굳이 독립군이 완벽한 선일 필요도 없었다. 독립군이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인을 탄압한 '빈주 사건'처럼 독립군과 도적 간의 갈등을 강조할 수도 있었다. 마적과의 갈등, 이윤과 이광일의 개인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방법이었다.
<도적: 칼의 소리>는 상상력을 펼칠 기회를 포기한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타란티노가 보여준 배짱과 비슷한 용기는 없다. 독립군 대 일본군의 전형적인 구도를 답습한다. '십오만원탈취 사건', '간도참변', '훈춘 사건', '미쓰야 협정', '길회 철도 부설 반대 투쟁' 등 실제 사건을 변용한 대목은 선악구도를 강화한다. 마치 <봉오동 전투>를 보는 듯하다. 생존을 위한 사투도 알게 모르게 독립군 정신과 합쳐진다. 극이 진행될수록 도적들이 독립군보다 더 독립군스럽고, 일본군에게도 더 많은 피해를 준다.
그렇게 웨스턴 장르의 매력은 급감한다. 피카레스크적인 요소가 곁들여진 장르적 쾌감도,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서사의 매력과 개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스토리는 다른 길로 흘러 버린다. 이윤-이광일-남희신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이윤과 희신의 사랑이 싹피는 멜로드라마가 메인 요리가 된다. 액션도 쾌감을 잃는다. 시퀀스만 떼어 놓고 보면 즐기기 충분하지만, 전체 맥락에서는 미묘하게 어색함이 느껴진다.
틈으로 새어 나오는 완성도
장르와 스토리의 지향점이 충돌하는 사이로 부족한 짜임새도 노출된다. 우선 전반적으로 루즈하다. 액션 시퀀스와 대본에 문제가 있다. 액션씬의 경우 과하게 분량을 차지한다는 인상이 짙다. 장르 특성상 이해할 수 있지만, 흐름을 끊는 것은 사실이다. 대본의 경우 동어반복인 대사가 많다. 조금 더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풀어냈다면 1시간에 육박하는 각 에피소드 분량을 줄여서 긴장감을 더 끌어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도적: 칼의 소리>는 많은 넷플릭스 작품처럼 도전 그 자체에 박수를 보내는 데서 만족해야 할 작품처럼 보인다. <고요의 바다>, <택배기사>, <승리호>처럼 과감한 장르 영화가 많아지는 가운데, 시도라는 의의를 넘어서서 어떻게 열매까지 딸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Poor 형편없음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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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틀린 세계에서 비로소 깨닫는, 사랑
'평행 세계'라는 소재는 잘 먹히는 요즘 영화 치트키 중 하나입니다. 어떠한 선택의 이면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가정은 상상만으로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죠. '이 선택을 한 나와 그 선택을 한 나, 어느 세계의 내가 더 행복할까?', '그 세계의 나는 어떤 삶을 살까?' 여러 생각들이 겹치면서 가슴 속에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두둥실 떠오르곤 합니다. 그러한 감정의 부유 상태를 즐겁게 누리곤 하는 저는, 평행 세계 소재의 영화를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니 이 영화 역시 객관적으로 바라보긴 어렵겠지요. 두 세계의 너와 나를 다룬 로맨스 영화,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입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2025년 5월 22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My Beloved Stranger
Summary
어느 날, 눈을 뜨자 우리가 사랑한 모든 시간이 사라졌다. 베스트셀러 작가 ‘리쿠’는 8년을 함께한 첫사랑 ‘미나미’와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린 낯선 세계에서 깨어난다. 잃고 싶지 않은 그녀를 되찾기 위해 시간을 넘어 여기, 다시 시작되는 우리의 평행 세계 로맨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미키 타카히로
출연: 나카지마 켄토, 미레이
익숙함에서 무심함, 다시 소중함으로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감독 미키 타카히로의 대표작은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입니다. 그는 뒤집고 연결하고 확장하고 축소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라는 개념을 주무릅니다. 감히 '세계' 전문 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가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에서 택한 방식은 우주에 존재하는 무한한 평행 세계입니다.
대학 시절, 글쟁이로 살며 데뷔를 꿈꾸던 '리쿠'는 현재 잘나가는 인기 소설가로 승승장구 중입니다. 그의 곁에는 오랜 연인에서 이제는 아내가 된 '미나미'가 있죠. 그러던 어느 날, '리쿠'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눈을 뜹니다. 일류 작가였던 자신은 일개 출판사 직원으로 전락하고, '미나미'는 가수로서 대성공을 거두어 스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명성과 사랑을 한 번에 잃어버린 '리쿠'는 자신의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미나미'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간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것을 마주하게 되죠.
솔직히 이야기의 틀은 익숙합니다. 설렘은 익숙함에 잠식되고, 익숙함은 곧 무심함으로 변하는 것은 로맨스 스토리에서 흔히 보는 진부한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것은 곧 현실의 로맨스이기도 합니다. 미묘한 애정과 뜨거운 열정 뒤에는 언제나 익숙함을 핑계 삼는 무심함과 뒤늦은 후회가 있습니다. '리쿠'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다가, 평행 세계를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로맨스를 다루기에 여러 종류의 세계가 존재하는 평행 세계만큼 적합한 배경 요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면'의 가정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자신이 어떤 그릇된 선택을 했는지 몸소 깨달을 수 있는 것이 평행 세계로의 차원 이동이니까요.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뻔한 설정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본래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의 심성을 한순간에 뒤바꾸려면, 세계 하나쯤은 뒤틀려줘야 하겠거니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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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서 내가 있어"
이 작품의 매력은 꼭 소설처럼 마음에 오래 남는 대사들이었습니다. 일본어라서 정확히 받아적지는 못했지만, "네가 있어서 내가 있어"라든지, "어느 세계에서든 그곳에서 가능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거야" 같은 대사들은 사람들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은 작은 소망을 어루만져주는 듯했습니다. 일본 영화에서는 이렇게 직접적이면서도 다정한 대사들이 여전히 유효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작동한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뻔하지만 풋풋하고, 그래서 더 따뜻한 사랑 이야기. 일본은 이런 종류의 영화를 참 끈질기게, 꾸준히 잘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소설 같은 대사들과 더불어서 음악도 기억에 남습니다. '미나미' 역을 연기한 가수이자 배우인 미레이의 목소리는 이 영화의 배경과 참 잘 어울렸습니다. 영화의 메인 OST이자 실제로 미레이의 음반으로 발매되기도 한 "I still"은 이야기의 맥락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죠. 영화가 끝나고 곧장 그의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해 다시 들었을 만큼 매력적인 J-POP이었습니다.
연기와 음색 모두 뚜렷한 인상을 남긴 미레이의 다음 행보가 벌써 기대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리쿠' 역의 나카지마 켄토와 함께, 영화 속 '창룡전기'의 주인공 같은 행색을 하고 제대로 된 SF물을 하나 찍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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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들른 서점에서 이 영화의 주제를 고스란히 관통하는 문단을 만나, 인용구로 이 글을 마칩니다.
우리는 언제나 타인의 선의를 놓치고 맙니다. 정확히 말해서 사랑은 그것이 사랑인 이상 발견하지도 눈치 채지도 못하도록 건네집니다. 사랑은 산타클로스의 선물처럼 정체를 숨긴 채 우리 곁으로 찾아옵니다. (지카우치 유타,『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One-Liner
세계를 이루는 건 너와 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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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1979년 12월엔 '서울의 봄'이 오지 못했나
12.12 쿠데타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79년 10월 이후의 대한민국이다. 18년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가 죽었다. 어수선한 대한민국. 대통령이 죽었기 때문에 관련부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특히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중앙정보부다. 정보의 홍수가 멈출 곳을 찾지 못해 배회한다. 이 흐름을 독식한 건 전두광이다.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광. 박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본부장이 되어 중앙정보부의 이권이라는 건 혼자 다 빼먹고 있었다. 전두광의 폭주를 지켜보는 사람이 없던 건 아니다.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은 전두광을 시골로 좌천시킴과 동시에 수도경비사령관에 이태신을 추천하려고 노력한다. 전두광이 다급해진다. 이러다가 군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친구 노태건과 함께 중상모략을 꾸미는 전두광. 전두광의 발상은 위험했다. 그의 위험한 계획은 청와대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재밌는 영화라서 좋아
이 영화의 장점에 대해 여러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중 최고는 스릴러로서 탁월하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 관객들은 이 영화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 심지어 영화의 갈등구도는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하지만 이 안에서 역사적 고증은 살리되 가지치기에 성공한 플롯이 돋보인다. 대표적으로 영화 초반부에 등장해 쿠데타의 핵심이 되는 정부 부처 캐릭터가 있다. 이 인물의 행방을 쫓는데도 이미 스릴러 한 편 뚝딱이다. 장소를 활용한 방식도 돋보인다. 전두광이 차 안에서 부하 군인들과 함께 있는 장면을 보면 이 영화가 공간도 잘 활용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상화 캐릭터 서사도 단편영화 한 편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클래식한 서스펜스 요소만 구사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구도 던진다. 이태신과 전두광의 대립구도도 흥미롭다. 이 둘은 군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 방식이 합리적이게끔 느껴지도록 대립한다. 액션 신도 서스펜스를 만드는 좋은 방법이지만 이렇게 지략싸움으로도 관객들을 충분히 설득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문무겸비형 스릴러다.
어려운 말을 쉽게 전달하는 단계
또 영화는 이 전달력이 좋은 편이다. 이 전달력이라 함은 영화가 연출 방식 중 하나로 어떤 요소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게 무엇인지는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이 연출 방법 때문에 이야기 흐름을 못 따라가는 관객은 아마 드물 것이다. 친절하게 다 설명해 준다. 그런데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설명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명확한 사실이라고 해서 이야기 만드는 것이 쉬운 게 아니다. 오히려 제약이 더 달려있어서 극화가 어렵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장르적인 재미까지 챙겼으니 ‘어려운 말을 쉽게 전달하는’ 고수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봐도 무방하다.
올해 한국영화 중 최고인 듯
그리고 영화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데 있어 배우들의 연기력 대결이 대단했다. 특히 전두광 역을 맡은 황정민 배우는 실존인물을 따라 하기보다는 본인만의 정공법으로 이 영화를 소화한다. 가령 전두광이 혼자 있는 장면은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밑줄 쳐져있다. 사실상 영화가 초반부부터 ‘전두광이 어떤 인물인가’를 규정짓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미 실존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관객들이 다 알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정민 배우는 자기가 생각하는 악이 무엇인지를 가감 없이 표현한다. 황정민 배우가 긴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글쓴이는 이 전두광이 그의 최고작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태신 역을 맡은 정우성 배우도 감탄하는 장면이 몇 있었다. 이태신 캐릭터는 극화가 몇 번 됐던 인물이다. 그중 대표선수 격인 작품은 <제5 공화국>이다. 이 드라마에서 ‘장포스’ 김기현 배우는 후대에 밈으로 길이 남는 명대사(“너 이 XX 그대로 있어!”)를 남긴다. 이 장면이 워낙 임팩트가 크기 때문에 이 캐릭터 하면 폭발하는 분노가 연상된다. 정우성 배우는 이와 반대로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천천히 관객을 설득하는데 집중한다. 이는 영화의 플롯을 생각해 본다면 정우성 배우가 작품을 잘 이해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두 주인공이 아닌 조연 캐릭터에서도 물 샐 틈 없이 깔끔한 연기를 보여줬다. 정상화 역을 맡은 이성민, 김오랑 역을 맡은 정해인, 노태건 역할을 맡은 박해준 등 조연/특별출연 캐릭터들도 영화를 빛내는데 기여한다.
존재와 부재
그러나 이 조연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은 국방부 장관(국방장관)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어떤 것’의 존재와 부재라고 생각한다. 이를 여러 인물을 대비시켜서 보여준다. 이 캐릭터 역시 이 대비를 보여주는 요소 중 하나다. 그냥 평범하게 연기하면 이야기의 핵심이 밋밋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배우는 유달리 압도적인 존재감을 표출하며 스크린을 장악한다. 국방부 장관의 어떤 부분이 결여됐다는 점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배우가 이런 역할 권위자(?)다. 매번 다른 연기를 보여주시는 게 신기하다. 내년 국내 영화제 조연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내내 뜨거워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은 톤이 조금 차가웠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점이다. 중반부까지 이야기 잘 끌고 간다. 하지만 후반부가 되니 살짝 늘어진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과 이어지게 하기 위해 이런 선택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갑자기 엔딩에서 직접적으로 감정을 유발하는 장면이 들어간다. 그래서 이야기 방점을 엔딩에 찍고 싶어 했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엔딩 직전 후반부가 묻힐 수도 있다는 느낌? 사실 글쓴이는 영화 후반부에 이태신의 대사에서 드러나는 ‘감독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그리고 이는 설득력도 있었다. 플롯에서 내내 공들여서 왜 이런 인물인지를 설명하는 방식이 좋았다. 그런데 그럴 보람도 없이 엔딩에선 다른 이야기를 하니 아쉽다. 이마저도 사실이라 이런 엔딩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역사를 다 알고 이 영화를 보고 있다. 뒷맛의 씁쓸함과 실존 인물에 대한 분노는 우리 스스로 체화해야 할 일이지, 누가 떠먹여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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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 꼭 사랑하겠어'라는 집착이 꾼 악몽
우리는 신혼부부
이 영화의 주인공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 수진과 현수다. 두 사람은 아직까지 연애 초반의 풋풋함을 유지하고 있다. 서로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두 사람. 현수는 배우지만 중요한 역할을 맡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런 현수를 위해 수진은 임산부의 몸을 이끌고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못내 미안한 현수. 하지만 이런 미안함도 신혼부부라면 함께 이겨낼 수 있다. 사실 현수와 수진은 굉장히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 바로 두 사람 사이의 아이가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만 할 것 같은 두 사람. 서로에게 서로가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일상이 만족스럽다.
어느 날. 현수가 자다 일어나서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갑자기 느닷없이 일어나서 뭐라 중얼거리는 현수. “누군가 들어왔어”란 말을 한다. 난데없는 잠꼬대에 아내인 수진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문 밖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가보는 수진. 침실 근처에 있는 드릴을 무기 삼아 누가 있는지 물어본다. 사실 별거 없었다. 다시 잠에 드는 수진. 수진과 현수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이 이야기를 나눈다. 글쎄. 어제 그런 일이 있었어. 그래? 별 일 아니네. 수진이 퇴근하고 난 다음 이뤄졌던 대화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다시 잘 준비를 앞두고 있다. 갑자기 얼굴을 벅벅 긁는 현수. 현수나 수진이나 여기까지는 별 일 아닌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현수의 얼굴에 피가 흥건한 채로 큰 상처가 생긴다. 경악하는 수진. 두 사람의 잠에 끔찍한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묘한 기시감
영화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향수가 있다. 첫 번째는 구로사와 기요시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일본의 영화감독이다. 기요시는 무의식에 내재해 있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던 예술가다. 일본 영화 역사상 가장 큰 발자국을 찍은 <큐어>, 2006년에 발표한 <절규>가 대표작이다. <잠>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은 갈래가 나뉘는데, 이는 기요시의 필모그래피와 유사하다. 구체적으로 비슷한 영화는 <큐어>다. 두 영화(<큐어>, <잠>)의 주인공 서사는 공통점이 있다. 내적으로 미쳐가는 인물을 각기 설득력 있게 표현한 것이다. 또 기요시는 시각적으로도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괴함을 묘사했다. <큐어>의 엔딩신이 나 <회로>에서 웅덩이와 관련한 장면들이 그렇다. 이는 <잠>에서도 볼 수 있는데, 영화에서 카메라가 침대 밑을 비추는 신이 있다. 이 장면은 <큐어>에서 주인공이 아내를 살해하고 난 다음을 연상케 한다.
다음은 두 오컬트 영화 <유전>과 <곡성>이다. <유전>을 단지 가족영화로만 정의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가족이기 때문에 거역할 수 없는 요소가 영화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 <잠> 역시 가족이기 때문에 알거나 알지 못했던 것들이 이야기에서 중요하다. 또 <곡성> 같은 경우는 극 중 서스펜스를 만드는 것을 어느 정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돼서 이 부분을 깊게 풀어쓸 수는 없지만 <곡성>을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공통점을 쉽게 찾으실 것이다. 이렇게 병치시킨 이야기 때문에 단점도 느껴진다. <유전>과 <잠>의 캐릭터가 조금 비슷한데, 정유미, 이선균 두 배우의 호연으로 끝까지 몰입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이 세 영화들이 생각난다고 해서 <잠>이 남 따라 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잠>은 기존 호러영화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데이터들을 유재선 감독의 영상언어로 깔끔하게 재구성한 영화다. <큐어> <유전> <곡성>과 분명한 차이점이 되는 지점이 있다. 주인공 수진과 관련된 부분, 현수의 직업, 딜레마를 왜 다뤘는가에 대한 부분 등 기존의 영화들과 구분되려고 했던 수가 돋보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구분되는 차이점은 영화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몇 장면들은 공간이 열리면 열리는 대로 닫히면 닫히는 대로 그 특이점을 보여준다. 수진의 동선과 관련된 부분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벌이는 행동이라 관객으로 하여금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것들은 <유전>, <곡성>, <큐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연출 방식이었다.
이건 몰랐지
영화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예상을 벗어난다는 점이다. 정유미 배우가 맡은 수진 캐릭터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 영화를 이끈다. 여주인공이 플롯의 핵심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수진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과 이에 대한 근거를 쌓는 과정은 영화가 다른 호러/미스터리물에 비해 가지는 분명한 차이점이다. 이를 위해 영화는 수진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관객들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끔 사건을 배치한다. 예를 들어 수진의 어머니 캐릭터, 중반부에 등장하는 핵심 조연 둘, 현수의 리액션이 그렇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진의 내면묘사다. 100분 언저리의 짧은 러닝타임에 굵직한 사건이 많아 지나치기 쉬우나 초반부 이 인물이 갖고 있는 설정은 사실상 이야기의 모든 지점을 관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이 사소한 요소들을 후반부에 방점으로 사용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정유미 배우의 호연이 돋보인다.
현수 캐릭터 역시 관객의 예상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현수의 직업은 배우지만 담당 배우 이선균처럼 유명한 인물이 아니다. 드라마에서 큰 역할을 맡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무명 배우라는 직업적 특성은 영화의 배경이라고도 볼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이 설정이 영화에서 다른 두 가지의 핵심 소재를 은유하는 것으로 영화가 묘사하고 있으면서 영화가 다루고 있는 딜레마를 표현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 인물의 설정을 인간의 도리와 부부가 지켜야 할 선으로 표현한 점은 영화가 갖고 있는 창의성이다.
두 가지의 갈림길
영화의 이야기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어 관객들끼리 다양한 해석을 토론할 수 있는 작품이다. 주류 여론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 예상할 수는 있지만 반대측면에서 이야기를 바라봐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두 설정 각자가 갖고 있는 디테일이 살아있어 n회차를 해도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두 딜레마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다 함께’라는 부분이다. 수진과 현수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묘사도 둘의 연대를 두고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전개하는지에서 온다. 가족이 다 함께 모이거나/해체되어 있는 것이 영화의 갈등구조인데 이 부분을 염두하고 본다면 이 영화가 어떤 부분을 염두하고 짠 이야기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맑은 눈
이 영화에서 이선균, 정유미 두 배우는 엄청난 연기를 보여줬다. 정유미 배우의 수진 캐릭터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원동력이다. 헤어스타일에 따른 각기 다른 감정변화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영탁 역 이병헌 배우가 생각나는 퍼포먼스였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3부를 잊지 못할 것이다. 글쓴이도 3부를 보면서(물론 1,2부도 정유미 배우의 연기가 감탄스럽다) 이 배우가 이런 연기도 잘할 것 같았어 감탄했다. 글쓴이 같은 사람들은 아마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나 <우리 선희> <다른 나라에서> 같은 작품으로 기억하지 드라마에서의 활약상은 잘 모른다. 오랜만에 볼 수 있었던 그녀의 다른 얼굴이 흥미롭다. 이병헌 배우와 함께 온갖 '~주연상'의 유력 후보다. 파트너인 이선균 배우는 내내 깔아주는 듯한 퍼포먼스를 하다가 강력한 임팩트 한 방을 보여주는데, 이 장면이 가진 위압감과 장면 연출은 박력을 가지고 있다.
굳이 꼽자면
영화의 단점을 굳이 뽑자면 ‘이야기를 다 보고 나서’로 함축할 수 있다. 강한 템포로 뛰어다니는 영화이기 때문에 몇 장면은 생략한 것 같다. 수진의 감정선이 더 들어가면 영화가 더 입체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수의 내적 갈등이 좀 더 들어갔다면 엔딩 해석이 더 폭넓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보고 싶은 것과 보여주고 싶은 것의 딜레마만을 다루기 위해 캐릭터가 약간 희생된 것이다. 하지만 관람에 큰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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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히트맨 2"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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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디스 아메리카노> 예고편
“나 여기 목숨 걸었다!”
영화감독지망생 수진의 첫 장편영화 제작기!영화감독 지망생인 수진은 자신의 첫 장편영화를 성공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주변의 도움과 직접 모은 돈으로 제작하는 영화기에 제작비는 터무니없이 적다.
수진은 피우던 담배마저 저렴한 ‘디스 오리지널’로 바꾸고, 배우였던 전 남자친구에게 주연배우를 부탁해가며 열심히 영화를 준비하는데...
수진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난다!
과연 수진은 성공적으로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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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티탄> 리뷰 예고편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뇌에 티타늄을 심고 살아가던 여성이 기이한 욕망에 사로잡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다 10년 전 실종된 아들을 찾던 슬픈 아버지와 조우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