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2025-04-14 17:31:10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스웨덴] 한 여름의 힐링
<미드소마> 리뷰
스웨덴의 하지 축제 ‘미드소마’는 본래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여름의 한가운데를 축하하는 밝고 따뜻한 축제다. 해가 가장 길고, 햇살이 풍성한 시기에 들판에 모여 춤을 추고, 꽃을 엮고, 음식을 나누는 모습은 스웨덴 하면 떠오르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이미지와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 <미드소마>는 이런 실제 축제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비튼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 속, 오히려 그 안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잔혹한 일들은 우리가 기대했던 북유럽의 정서와 충돌하며 강한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환상처럼 맑은 풍경 안에서 무너져가는 인물들의 심리와, 그들이 목격하는 상식 밖의 의식들은 다양한 묘사와 메타포와 함께 묘한 긴장감을 더한다.
영화의 시작은 대니에게 닥친 끔찍한 비극으로 열린다. 여동생이 부모님의 방에 가스관을 연결해 부모님을 살해하고, 스스로도 가스를 흡입해 생을 마감한 것이다. 대니는 한순간에 가족 전체를 잃는다. 세상에 단 하나의 의지도, 이해자도 없는 상황. 그녀는 본능처럼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에게 매달리지만, 그는 이미 관계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고,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기댈 곳조차 없는 대니는 고립감 속에 갇혀 점점 더 외로워진다. 죽은 가족들의 환영은 그녀를 끊임없이 따라다니고, 마음은 늘 눈물로 가득 차 있다. 작은 자극에도 울음이 터질 듯한, 그런 상태로 대니는 간신히 일상을 버텨낸다.
그때, 크리스티안의 친구 펠레가 자신의 고향에서 열리는 축제, ‘미드소마’에 그들을 초대한다. 대니도 덜컥 따라나서게 된다. 그리고 도착한 그곳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 그들만의 규칙과 전통이 지배하는 마을이었다. 이곳은 이성이나 합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일정 나이가 되면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고, 때로는 제물을 바친다. 개인의 생명보다 공동체의 지속이 우선되는 사회. 개인이라는 주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하나의 톱니처럼 기능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니는 이 기이한 마을에 점점 스며든다. 일행 중 유일하게 ‘선택’받으며, 마을의 축제의 여왕 ‘메이퀸’으로 추앙받는다. 처음엔 당황하고 두려워했지만, 그녀는 서서히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 봐야 또 상처받고 외면당할 뿐이라면, 차라리 이 낯선 공동체 안에서 위안을 찾고 싶어졌던 건 아닐까.
그녀는 결국, 충격적인 장면을 통해 크리스티안에 대한 감정과 그간 쌓였던 울분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을 사람들은 대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함께 울부짖는다. 그 울음은 그녀의 고통에 대한 진정한 공감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의식의 일부였을까?
<미드소마>에서 당혹스럽고, 기괴했던 장면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이래서 사람들이 사이비에 빠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울음은 나에게 공허하게 느껴졌고, 진심이 담긴 공감이라기보단, 형식적인 흉내 같았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대니는 어쩌면 그런 울음조차 내심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세상 밖에서조차 남자친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던 대니. 그런 그녀에게는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이 그저 형식일지언정 큰 위로였을 수 있다. 적어도 누군가는 나의 고통을 ‘보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일까?
난 대니의 마지막 웃음이 이상하리만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영화 초반부터 대니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얼마나 이해받고 싶었을지를 따라가다 보니, 그녀가 그토록 갈망하던 위로와 소속감을 이 낯선 공동체 안에서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묘하게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그 방식이 잔혹하고 기괴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현실에서조차 아무도 그녀의 고통을 진심으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기에, 마을 사람들의 '함께 울어주는 행위'만으로도 대니에게는 그토록 간절한 공감이었을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밝고, 하얗고, 꽃으로 가득찬 아름다운 영화의 비주얼은 그런 심리적 불안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 잔혹한 장면들과 기괴한 의식들이 가득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초원, 화사한 햇살, 평화롭기까지 한 풍경. 마치 동화 속 마을 배경의 만남으로 공포영화로서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오히려 대낮에 대놓고 보여지길 강조하고, 강요하기 때문에 <미드소마>만의묘하고 강렬한 분위기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대니의 선택과 웃음이 완전한 해방인지, 혹은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인지에 대해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공감받고 싶었던 순간들, 이해받지 못해 외로웠던 시간들, 그리고 어딘가에라도 속하고 싶었던 간절함.
<미드소마>는 그 모든 감정들을 환하게 빛나는 한낮의 태양 아래, 너무도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무섭고, 그래서 더 슬프다.
* 북유럽의 여름과 예쁜 꽃들로 가득찬 행복한 축제를 느끼고 싶다면 <미드소마>를 추천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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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담컨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장르
감독, 제작진, 배우, 장르, 줄거리 그 무엇도 알지 못한 채로 보기를 추천하기에 아무 정보도 기입하지 않겠다.
아, 러닝타임 정돈 괜찮겠다. 139분.
대체 뭐라고 표현할까.
마땅한 단어를 떠올리던 무렵, 박찬욱 감독의 한 줄 평을 발견했다.
야단법석 왁자지껄 아수라장 대환장파티에서 막 빠져나왔는데 거울로 보니 내 눈에 눈물이.
그래, 이거다. 영화의 첫인상은 '정신없다'였고, 언젠가부터 '감독의 정체가 뭘까' 싶었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눈물 콧물 범벅된 마스크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난생처음 보는 종류의 영화였으니까.
컷 전환이 쉼 없이 빠른데도 러닝 타임은 2시간을 훌쩍 넘으니 실제보다 더 길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니 기깔나는 상영관에서 보는 걸 추천한다. 또렷한 색상 구현과 입체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는 돌비 시네마라던가.
메가박스 코엑스. 영화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아래로 늘어진 계단 한쪽에 털썩 앉았다. 전광판은 때마침 <에에원>의 짤막한 예고편을 무한 반복 중이었다. 사전 정보 없이 보고 싶어서 일부러 시선을 두지 않았는데, 소리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I'll save you"였나. 뭘 구하겠다는 말이 반복해서 들렸다.
뭐지. 세상을 구하는 전사 이야기인가. 히어로 영화인가. 저 사람이 주인공인가 보다. 대충 예감하며, 오래 앉아야 하는 걸 대비해 화장실에 들렸다. 그리고 아쿠아리움 같은 돌비 시네마 입구에 들어서서 공연장 같은 좌석에 앉았고. 돌비 시네마는 이 시스템이 얼마나 대단한지 온몸으로 체감하게 한다. 애피타이저로 입맛을 돋우듯 영화를 보기 전 오감을 일깨운다. 두근두근. 괜한 기대감에 사로잡히던 찰나,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땐 몰랐다. 화장실에서 휴지를 뜯어왔어야 했단 걸.
*아래로는 스포가 이어집니다.
거울.
그게 영화의 시작이었다. 컷 하나인데 길이가 꽤 길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들은 웃고 있었던가. 무언가 말하는 것도 같았다. 천천히 거울 속으로 들어가듯 카메라가 가까워지고, 거울 안 세계로 화면 가득 들어찼다. 거울을 마주한 나와 거울 속 나. 하나이지만 둘이고, 둘이지만 하나다. 지금 생각하면 '우린 멀티버스 세계관입니다'를 대놓고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관람 중에 멀티버스를 생각하지 못했던 건 이어지는 장면이 워낙 정신없어서다. 책상 위를 한가득 메운 하얀 영수증들. 다소 꾸깃꾸깃한 영수증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냈고, 그걸 정리하는 건지 신경질을 내는 건지 모를 동작으로 주인공 '에블린'이 자신의 남편과 뭐라 뭐라 대화를 이어갔다. 국수 좀 봐달라, 아버지 생신인데, 세금 내야 하고, 조이가 여자 친구를, 영수증은 다, 세탁소가, 종잡을 수 없는 말들이 영어와 중국어를 마구 오가며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보는 이도 정신없는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더 정신이 없겠는가. 에블린은 남편 '웨이먼드'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말하지만, 정작 웨이먼드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 밝고 쾌활한 목소리로 날카롭고 까칠한 에블린의 비위를 맞추는 듯했다. 여기에 그들의 딸, '조이'가 여자 친구 '베키'를 데려온다. 조이도, 베키도 환영받지 못한다. 특히 에블린에게서.
정신없이 얽히던 흐름이 뚝, 끊기던 때가 있었으니. 에블린의 아버지가 집에서 세탁소로 내려온 걸 발견하고서였다. 중국어에 서툰 조이가 할아버지에게 베키를 설명한 단어를 찾고 있을 때, 에블린이 말을 빼앗는다. 조이의 친한 친구라고. 그런 식이었다. 에블린은 조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먹고사는 데 급급해서라지만, 명백한 거부 의사였다.
에블린, 조이, 웨이먼드, 이들 가족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 놓였다. 웨이먼드는 이혼 서류를 내밀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바쁜 상황에 내쳐졌고, 막상 목숨이 오가는 급급한 상황에 치닫고서야 에블린이 그 서류를 펼쳤다. 혼돈에 또 다른 혼돈인 거다.
세무사에게 세탁소 회계감사를 받는 게 무슨 목숨까지 걸 일이 되었을까? 바로 웨이먼드가 '알파' 세계의 웨이먼드로 바뀌는, 멀티버스 세계관이 열리고부터다. '조부 투파키'라는 거대 악이 세계를 뒤흔드는 중인데 에블린이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다는 거다. 당연히, 에블린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웨이먼드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왔던, 꿈과 사랑이 넘치던 20대였으면 모를까. 지금은 쳇바퀴 같은 삶에 허덕대기 바쁜 시궁창 인생인데.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런데 이 말을 다르게 하면, 지금의 에블린이 택하지 않은 삶을 택한 에블린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거다. 능력 넘치는 버전의 에블린 말이다. 그렇다. 어딘가엔 웨이먼드를 따라가지 않고, 늦은 밤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가 쿵후 선생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고, 쿵후를 마스터해서 세계적인 액션 배우가 된, 돈/명예/커리어 어느 하나 놓치지 않은 에블린이 있다.
자, 이제 괴팍한 버전의 세무사 '디어드리'에게 맞설 쿵후 전문 배우 에블린이 필요하다.
이쯤 되어선 멀티버스의 개념과 스토리의 뼈대를 다 설명해서인가. 온갖 장르가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액션, 호러, 코미디, 시트콤, 블랙코미디, 공포, 드라마, 다큐멘터리, 스릴러, 로맨스, 애니메이션,... 장르의 멀티버스화라고나 할까.
멀티버스 세계관을 보여주느라 교차하는 장면이 많지만, 전체적인 톤앤매너는 비슷했다. 코미디. 다만 한없이 가볍고 허술한데 이상하게 매력적인 B급 영화인 것 같다가 진중하고 철학적인 상황으로 들어섰으니. 바로 돌들의 대화 장면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전체 분위기는 코미디인지라 갑작스러운 전환에 영화관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조부 투파키, 그러니까 조이의 멀티버스 중 한 모습이자 어찌 보면 본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가 평온을 느끼는 건 자신이 돌인 세계가 유일하다.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누구에게 명령을 내리지도, 싸우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있는 때. 그러나 외로움은 느꼈는데, 자신처럼 모든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게 된 에블린과 함께라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에블린이 동조했을까? 일상에 전전긍긍하던 에블린이라면 그랬을 거다. 이거야 말로 자신이 꿈꾸던 거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의 에블린은 이전과 다르다. 특별한 능력치를 지닌 에블린과 연결하여 뭐든 될 수 있어서, 세상을 구할 히어로라서 그런 게 아니라, 용서했기 때문이다. 실패로 점철된 자기 자신을.
It was beautiful.
에블린이 웨이먼드를 택하지 않은 덕에 유명한 배우가 된 세상을 경험한 후, 현재로 돌아와 남편 웨이먼드에게 했던 말이다. 꿈꾸는 표정 때문에 웃음이 절로 났지만, 마냥 재밌게 넘길 장면은 아니었다.
수천 번 생각했을 거다. 웨이먼드 대신 다른 걸 택했다면 자신의 삶이 이토록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매번 헤실대면서 긍정적으로만 굴지, 실속 없다고. 그 때문에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라고. 남 탓을 하는 건 신기하게도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선택을 자신이 했기 때문이다.
실패하는 선택지만 쏙쏙 골라온 스스로가 얼마나 불쌍하고 멍청하게 느껴지겠는가. 비관의 늪에 빠지기 딱 적절한 상태로, 에블린은 살아왔다. 웨이먼드가 끝을 고한 것도 애정이 닳았다기보다는 괴로움 때문이었을 거다. 그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약속했는데, 자신은 에블린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말았으니까. 각자도생이 최선이라고 여겼을 거다.
현재 남편인 웨이먼드가 아니라 알파 웨이먼드를 더 의지하고 따르던 에블린을 생각하면 그럴 만하다. 싸움에 능하고, 자신에게 나아갈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고, 단호하게 말할 줄 아는 웨이먼드를 훨씬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배우의 삶을 사는 다른 에블린의 세상에 평생 머물고 싶어 했던 것처럼.
그러나 에블린이 알파 행성에서 온 이들과 완전히 대치 상태에 놓였을 때, 에블린도 조부 투파키처럼 파괴의 기로에 서려고 할 때, 에블린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하다. 남편인 웨이먼드의 절박한 외침으로 말이다. 그가 말했다. 우리 모두 솔직해지자고. 그 이전인가 이후였나. 이 말도 덧붙였다. 자신의 바보 같은 친절함은 생존 전략이라고. 우린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고.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런데 왜 지속적으로 싸우는가. 시작은 이유가 있었을 거다. 그런데 싸움이란 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목적이 흐릿해진다. 모르겠는 순간에 놓이는 거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그러나 솔직하게 이 마음을 드러내는 순간 약점이 될 것만 같다. 싸움은 자신의 옳음을 과시하려는 행위이니까, 강해야 할 것 같은 거다. 모든 생명체는 위협을 느낄 때 그렇다. 검붉은 속 날개를 펼치는 곤충이나 독을 뿜는 전갈이나 뱀처럼.
인간은 주로 분노를 과시한다. 잔뜩 찌푸린 미간에 자극적인 욕설을 퍼붓고, 상대가 굴복할 때까지 극한으로 치닫는 거다. 제가 지닌 물리적 힘과 능력도 내세우며.
그런데 그깟 따사로운 마음이라니.
분노는 강하지만, 따스함은 유약하다. 유약하고도 솔직하다. 아프기 싫고, 누군가를 아프게 하기도 싫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무섭고, 나만 그만하고 싶은 것 같아서 더 무섭다는 걸 대놓고 내보인다. 전쟁터 한복판에 누워서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
'적'이라고 상정한 존재들은 무시무시해 보인다. 하지만 집단이 아닌 각 개인으로 보다 보면, 한낱 인간일 뿐이다. 그들은 원하는 게 있는데 얻다 말하기도 뭣하고, 말한다고 해결이 되지도 않고, 혼자 앓고만 있는 거다. 에블린은 공격하는 대신 그들의 갈망을 들여다본다. 말 못 할 성적 취향이 있고, 신경 통증 때문에 고생 중이고, 자신의 단짝을 애절하게 찾는 각각의 사람.
솔직한 마음을 받아들이고 나니 그 누구도 공격할 여력이 없다. 발라당 바닥에 누워서 행복에 겨울뿐.
영화에서 줄곧 던진 메시지가 이랬다. 죽어라 싸우고 요란법석 피워봤자 한낱 우주 먼지인 인간들. 지구도 우주에 있는 크고 작은 행성들 중에 하나이다. 지구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면, 인간이 전부라는 생각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무수하디 무수한 존재 중에 하나인 우리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Nothing Matters.
별 거 아니기에 부질없다는 생각으로 삶을 내던지려던 인물, 혼돈 그 자체였던 조부 투파키였다.
그가 만든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암흑, 블랙홀. 영화에서는 이걸 까만 토핑이 박힌 베이글로 유쾌하게 표현하긴 했다만. 조부 투파키는 세상을 휩쓸 생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괴할 수단으로 베이글을 만들었다. 모든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마음껏 될 수 있기에 되레 아무것도 의미가 없던 거다.
가운데가 뻥 뚫린 베이글의 모양새가 그의 표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겉은 사악함의 결정체 같아서 모두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없다. 비어있는 걸 감추기 위해 겉모습을 더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하게 꾸며냈는지도 모른다.
다 갖춘 그에게 필요한 건, 정말이지 인간다운 결론이긴 한데, '의미'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해서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둘째 치고, 나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나는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다.
이 사실을 보여주는 데에 멀티버스 세계관만큼 적합한 게 있나. 에블린의 모든 선택이 무수히 많은 세상의 에블린을 만들었다. 각각의 에블린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환경, 취향, 욕망을 따라 새로운 일을 겪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길을, 새로운 삶을 만들어간다. 아무것도 아닌 그토록 작은 먼지 하나가 이리도 다양한 굴곡을 헤쳐나갔단 말이다.
그러니 살면서 문득, 혹은 지금 당장 자신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면 여태까지의 삶을 돌이켜보자. 셀 수도 없이 많은 선택들을 말이다.
정말, 나 자신이 나에게 아무 의미 없었나?
세무사 디어드리와 에블린은 알파 세계관에서도, 현재 세계관에서도 앙숙이다. 디어드리는 이미 에블린을 문제 투성이라고 여기고, 그런 무지막지한 모습을 에블린은 융통성 없다고 느낀다. 그런데 손이 핫도그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둘은 애틋하고 사랑이 넘치는 관계다. 이런 대비는 클리셰 같은 걸까? 잘 몰라서 멋대로 판단하는 것이지, 알고 보면 나쁜 사람도 착한 사람이라고. 서로 사랑하기 공익 캠페인 같은 휴머니즘일까.
영화의 끝자락. 정해진 기한(당일 오후 6시) 내에 영수증을 다시 정리하라는 디어드리의 마지막 경고는 당연히, 산전수전 다 겪은 에블린이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이때 에블린은 방망이를 들고 주저 없이 나아가 유리창을 시원하게 깨부순다. 답이 없으니 완전히 미쳐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블린은 비로소 자기 자신을 드러냈다. 세탁기와 건조기로 그득한 이 공간이 얼마나 지긋지긋할까. 다 엎고 싶었을 텐데 그걸 꾹 참고 누르고 견디기만을 반복했다. 모두가 곪아 터지면서까지. 무모하고도 무책임한 행동. 그거야말로 에블린에게 가장 필요했다. 한 번쯤은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갔어야 했다. 못해먹겠다고.
에블린이 자신의 생존전략을 썼듯 웨이먼드도 자신의 전략을 펼쳤다. 그리고 디어드리는 일주일로 기한을 늘린다. 정말 마지막이라며. 대체 무슨 얘기를 했기에. 에블린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웨이먼드가 한 얘기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자신이 에블린에게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고. 디어드리도 에블린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자신도 그 느낌이 뭔지 안다고. 오묘한 동질감과 유대감이 생긴 둘.
마치 다른 핫도그 세계 속 에블린과 디어드리의 관계가 여기까지 이어진 느낌이었다. 에블린들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게 아닌 것 같다. 라쿤에게 요리를 배운 '라따뚜기' 요리사의 이야기로 알게 되었듯,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 '나'만 해도 내가 무수히 많아서. 지금의 나는 실패만 해왔을지언정 그게 전부가 아닌 것이다.
이 엄청난 교훈과 깨달음을 싣고 영화는 마지막 장면으로 향한다. 예전처럼 세무조사를 받으러 온 상황.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함께 온 사람들과 그들 간의 관계, 디어드리와의 관계, 태도, 그 모든 것이. 이미지로 충분히 보여줄 수 있지만, 영화는 딱 한 마디로 전부를 보여준다.
죄송해요. 못 들었어요.
체면 차리느라 속마음 숨기며 애먼 일 벌이지 말고, 솔직 담백하게. 평가받을까 봐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의 결핍 앞에서 당당히. 우스꽝스럽고, 멋지고, 재밌고, 지루하고, 진지하고, 덤벙대고, 약속을 잘 지키고, 늦고, 웃고, 우는 온갖 모습의 나 자신에게, BE KIND.
끝으로 왓챠피디아에도 남긴 감상을 이곳에 한 번 더 공유해본다.
Nothing matters.
So please, be kind to EVERYTHING EVERYWHERE.
Then you realize the whole world ALL AT ONCE.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아닌 존재랍니다.
그러니 온갖 모습을 지닌 자신을 좀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세요.
나 자신의 의미가 완전히 새롭게 보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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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로만 폴란스키 감독 작품. 폴란드 유대인 슈필만의 생존기를 다룬 영화이면서 독일군이 유대인을 얼마나 잔인하게 학살했는가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 있던 유대인의 수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혹독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들 가운데 수십만 명이 독일군이 운영하는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사건 또한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지금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일본의 이익을 위해 거짓 논문을 써내는 램지어 같은 인간과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유대인 학살 문제는 매우 신중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역사적 사건으로, 비유대인 유럽인들은 독일의 만행에 대한 공분과 함께 비유대인으로서의 도의적 책임감을 느끼는 태도를 보인다. 즉, 자기들(독일인이 아닌 비유대인 유럽인)은 유대인 학살에 직접 책임은 없으나 유대인을 적극적으로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 히틀러와 독일사회민주당과 결별하면서 독일의 역사적 과오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피해자인 유대인에게 사죄한 바 있다. 또한 앞으로 히틀러의 나찌즘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극우 정당의 출현, 극우 집단의 발호를 근본에서 막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 자서전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헐리우드의 영화자본을 쥐고 흔드는 유대인 집단은 헐리우드에서 유대인이 박해당하는 내용의 영화를 주기적으로 생산하도록 힘을 실어주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박해받던 유대인들은 전쟁이 끝나고 곧바로 '이스라엘'을 건립했고, 미국의 지원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폭력으로 차지하고, 자기들이 당한 것 이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탄압하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과 과거 유대인 박해를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건 옳지 않다. 유대인 박해 사건은 그 자체로 심각한 전쟁범죄이며, 보편적 인류의 자유, 평등, 존중의 정신을 말살한 최악의 사태였음은 명백하다. 그리고 현재 '이스라엘'은 그렇게 박해당한 경험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유대인의 의지로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가하는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독일이 저지른 것보다 더 잔인한 행위라는 걸 알아야 한다.
독일군에 의한 유대인 박해, 집단 살해 사건을 상업영화로 만들거나 다큐멘터리, 자서전, 역사책 등으로 만들어 꾸준히 알리는 것은 유대인의 권리다. 하지만 그 권리를 남용하면서 마구 휘두르면 그건 더 이상 권리가 아니라 폭력이 된다.
우리(한국인)는 유대인을 바라볼 때, 양가 감정을 갖는다. 유대인과 한국인은 역사적 피해자라는 사실에서는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유대인은 가해자인 독일이 진심으로 참회하고, 공식적, 역사적으로 사죄했으며,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
반면 한국인을 가해한 일본은 전쟁에서 패한 이후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코스프레를 하며 피해국과 그 국민들에게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헌법을 바꿔 침략전쟁을 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 있는데, 일본은 패전 이후 지금까지 극우집단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며, 피해국에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나라이기도 하다.
유대인은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국가'가 없었지만, 전쟁 끝나고 '국가'를 세웠다. 유럽과 다른 대륙을 떠돌던 유대인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물적 공간을 마련한 것이니 그들로서는 전쟁과 박해가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끔찍한 경험을 한 유대인들이 가까이 사는 다른 민족을 야만적으로 학살, 학대하기 시작한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들이 2차 세계대전에서 당한 박해와 학살을 세계에 널리 알리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이어나가고 있으니, 세계 사람들은 유대인을 보면서 인지부조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유대인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유대인 '개인'이 당한 경험과 서사는 비극이다. 하지만 집단으로써의 유대인이 저지르는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한 학살은 피해자 '개인'으로의 유대인까지 혐오하게 만드는 범죄이자 만행이다. 유대인 가운데도 노엄 촘스키처럼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비판적, 합리적 유대인도 많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주거지를 침략하며, 원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땅을 빼앗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서서히 말려죽이는 짓을 벌이고 있다는 것 역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동 지역에서 패권 국가로 행세하고 있다. 그들은 기고만장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면서 즐거워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를 파괴하고, 마치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자원을 수탈하고, 한국인을 학대하며, 농락했던 것과 똑같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대하고, 농락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이런 만행과 오만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폭력으로 흥한 자는 폭력으로 망한다는 진리도 있듯이, 이스라엘은 폭력을 기반으로 서 있는 국가이고, 폭력을 휘두르면서 쾌락을 느끼고 있다. 그런 행동이 정신분석에서 '가해자와 동일시'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동 인근 국가들을 모두 적대적 관계로 만들고, 멀리 떨어진 미국과 유럽의 몇 나라들-그들이 지금은 가장 폭력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이겠지만-을 등에 업고 폭력을 휘두르는 건 마치 어린아이가 칼을 쥐고 휘두르는 것처럼 위험한 행동이다.
이 영화에서도 유대인들이 독일군의 폭력으로 서서히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몹시 안타까웠다. 독일군의 만행은 끔찍하고, 말할 수 없이 잔인하며, 악랄했다. 유대인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스실로 끌려가야 했고, 강제수용소에서 노동을 하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데, 그런 유대인의 비참함에 감정이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까닭은, 현재의 유대인 '이스라엘'이 어떤 짓을 하는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유대인 슈필만을 팔레스타인으로 바꾸고, 독일군을 이스라엘군으로 바꾸면 완벽하게 똑같은 그림이 나온다.
이미 너무 많은 '피해자 유대인'을 그린 영화가 나왔고,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이제 '피해자 유대인'을 다룬 영화는 더 이상 관심을 끌기 어려울 것이다. '피해자 유대인'은 이미 과거의 역사가 되었고, 지금은 '가해자 유대인'의 이미지가 뚜렷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그동안 저지른 학살과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하고, 배상하고, 팔레스타인의 회복을 돕지 않는 이상, 유대인은 전쟁 때의 '독일군'과 같은 이미지로 오래도록 남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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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더맨 신작을 보고 싶은데 아는 지식이 1도 없을 때
이번 주 수요일, 그러니까 12월 15일은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의 개봉날이다! 개봉 전부터 다른 두 스파이더맨 앤드류 가필드, 토비 맥과이어의 등장 여부와 빌런 '닥터 옥토퍼스' '그린 고블린' '샌드맨'등 다른 시리즈의 주연들이 출연한다는 루머가 들려왔다. 또한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로키>와 <완다비전>의 연계까지 이런저런 특징으로 인해 다른 작품 -<이터널스> / <블랙 위도우> / <샹치 : 텐 링즈의 전설> -보다 더 MCU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즉슨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알아야 할 정보가 있다는 뜻도 되겠지? 근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 작품을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정보도 있으니, 여러분이 수요일 개봉 이전에 가볍게 읽고 나서면 좋을 것 같아 이 글을 쓴다. 오늘도 허접한 나의 글솜씨를 읽어주는 분들께 감사함을 전한다.
1. 현재까지 나왔던 스파이더맨 시리즈들
스파이더맨 1(2002) / 스파이더맨 2(2004) / 스파이더맨 3(2007)
감독 : 샘 레이미
주연 : 토비 맥과이어(스파이더맨/피터 파커 역), 커스틴 던스트, 알프레드 몰리나, 윌렘 더포, 토머스 헤이든 처치, J,K 시몬스 등
우리가 흔히 아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이다. 감독은 영화 장인 샘 레이미가 맡았다. 1985년 마블이 소니에게 스파이더맨 영화 실사화 판권을 판매한 것이 계기가 되어 두 회사가 합작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1조 원이 넘는 초대박의 흥행 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에 히어로 영화의 금자탑을 쌓아 올리는데 혁혁한 공이 있는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스파이더맨 역은 토비 맥과이어가, 히로인 MJ 역은 커스틴 던스트가 맡았다. 이 당시 출연했던 악당은 후술 할 '닥터 옥토비우스(알프레드 몰리나'와 '그린 고블린(윌렘 더포)'가 있는데, 전자는 연구에 충실하다 자연스레 흑화한 캐릭터를 그렸다면 후자는 이중인격에서 오는 괴리를 묘사했다. 이 둘의 악당 묘사가 후의 마블 팬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또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봤다면 기억이 날 'J. 조나 제임슨(이하 JJJ)' 캐릭터도 있는데 이는 이 트릴로지의 피터 파커가 언론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다른 악당은 3편에 등장한 샌드맨이 있다. 탈옥자 신분에서 수사망을 피해 도망치다 실험실에 들어가게 되고 이는 샌드맨으로의 흑화 계기가 된다. 후에 피터 파커와 굉장히 중요한 인연이었다는 게 알려지며 '베놈'과 함께 <스파이더맨 3>의 주요 악당이 된다. 이외에 이후에 해리 오스먼이 연기한 '뉴 고블린'과 '샌드맨', 베놈이 되는 '에디 브룩'도 출연했지만 우리는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을 보기 위해 이 글을 읽는 것이니 인물 소개에 있어서는 예고편에 나온 사람들만 소개하면 되겠지? 인물 외적인 부분에서는 전설적인 거꾸로 키스신이나 '스파이더맨 3'에서의 춤추는 장면, 또 '스파이더맨 2'에서의 지하철 사고를 막는 장면이 상징적이다. 현재 왓챠/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처럼 멋지고 잘생긴 히어로가 아닌 상 찌질이 영웅을 그렸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 시리즈의 '닥터 옥토비우스/그린 고블린/ 샌드맨'은 출연이 확정되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4)
감독 : 마크 웹
출연 : 앤드류 가필드(스파이더맨/피터 파커 역), 제이미 폭스, 리스 이판, 엠마 스톤
2012년 리부트 된 스파이더맨 시리즈이다. 감독은 <500일의 썸머>의 마크 웹. 역시나 마블과 소니가 협업해 만들어진 시리즈이다. 호쾌한 액션과 시각디자인 비주얼로 좋은 피드백을 들었던 영화다. 또한 입담꾼인 피터 파커를 그렸다는 점에서 역시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 만듦새가 주요 단점으로 지적받았다고 한다. 또한 흔히 스파이더맨 하면 토비 맥과이어가 보여주는 짠내 나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 당시의 앤드류 가필드는 미소년 타입에 친구 많게 생긴 인싸니 괴리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고 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또 삼촌 밴 파커 캐릭터가 기억에 남는다. (이게 나중에 찾아보니까 원조 스파이더맨 시리즈에도 나왔다는 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핵심 키워드를 전해주는 연출이 기억에 남아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 이걸 디테일하게 적으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다 말해줄 순 없지만 그웬 스테이시 역을 맡은 엠마 스톤의 '그 한 장면'을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빌런으로는 일렉트로와 리저드가 있다. 전자의 본명은 '막스웰 딜런'인데, 그는 소심한 아웃사이더였으나 특별한 계기를 통해 일렉트로가 된다. 스파이더맨이 전했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그의 친구가 된 줄 알았지만 결국 무관심했단 걸 깨닫고 나서 악당이 되는 인물이다. 다른 빌런 리저드는 피터의 아버지 리처드 파커의 친구였다. 그와 같은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던 과학자였으나 혈청 실험을 계기로 악당이 되어버린 인물이다. 이 두 악당은 이 작품 <노 웨이 홈>에 출연이 확정됐다. 역시 왓챠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아, 이 시리즈의 3편은 제작 취소된 듯.
MCU 스파이더맨 시리즈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2016) / <스파이더맨 : 홈커밍>(2017) /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2018) / <어벤져스 : 엔드게임 >(2019) /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2019) /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2021)
감독 : 루소 형제(<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 엔드게임>)
존 왓츠(<스파이더맨 : 홈커밍>,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출연 : 톰 홀랜드(스파이더맨 / 피터 파커 역),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젠데이아, 배네딕트 컴버배치, 제이콥 배들런, 존 패브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이다. 소니와 마블의 판권 분쟁에서 다시 마블이 어느 정도 판권을 가졌다는 뜻에서 솔로 무비 1편의 제목을 <홈커밍>이라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첫 등장이 <스파이더맨 : 홈커밍>은 아니었는데, 이 캐릭터의 첫 출연은 캡틴 아메리카의 솔로 무비 <시빌 워>였다. 두 편으로 나뉜 어벤저스 내전을 함께 치르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캡틴 아메리카와 전투를 벌이지만 스티브의 노련한 경험 덕인지 그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이 <시빌 워> 초반부터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함께 등장했고, 이후에 제작된 솔로 무비 <홈커밍>에서도 그 둘이 함께 나오기 때문에 '아이언맨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라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뿐만 아니라 <인피니티 워> <엔드게임>에서도 둘은 유사 부자 관계로 인연을 이어간다. 이 뿐일까?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에서도 토니 스타크의 모습이 반복해서 나오니 마블 팬들의 비판도 합리적인 셈이다. 물론 비판만 있지는 않다. 톡톡 튀는 하이틴 무비로서의 정체성이나 다른 히어로들이 등장한다는 점은 내가 생각하기에 이 시리즈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뭔가 나사가 빠진 피터 파커의 성격 역시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히어로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강한 캐릭터라기보다는 정신적으로 함께 성숙해진다는 것 역시 나름 신선한 접근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현재 이 MCU 스파이더맨의 제작자 에이미 파스칼에 의해 이 작품 이후의 3부작 제작이 확정되었다.
2. 출연이 확정된 인물들
닥터 옥토비우스(출연 : 스파이더맨 2 / 담당 배우 : 알프레드 몰리나)
<스파이더맨 2>에 출연했다. 원래 출연했던 작품에서 본인의 핵융합 실험물을 과신하다 만들어진 사고로 악당이 된다. 이 악당이 되는 과정에서 아내 로지도 죽고, 끔찍한 괴물로 변모했으니 삶의 목적이 날아간 셈이다. 외진 골목에서 자살하고 싶었지만 등 뒤에 붙은 기계 덕에 그마저도 실패하고 움직이는 살인 병기가 된다. 목 뒤에 붙은 칩이 악당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도구인데, 이 칩은 그의 머리에서 사고방식을 좌지우지함과 동시에 초인적인 힘을 갖게 해 준다. 전투를 할 때 뒤의 촉수 비슷한 것을 이용해 싸운다. <노 웨이 홈>의 예고편에서 알 수 있듯 원래는 스파이더맨과 싸우다 '괴물로 죽지 않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이 작품에서 출연이 확정됐다. 아마 종반부의 결정 이전에 차원 문이 열려 MCU의 세계관에 합류하게 된 듯.
그린 고블린(출연 : 스파이더맨 1 / 담당 배우 : 윌럼 더포)
<스파이더맨 1>에 출연했다. 원래 출연했던 작품에선 임상실험에서의 부작용으로 인해 그린 고블린으로 흑화 하는 캐릭터다. 위의 닥터 옥토퍼스가 후에 갱생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 처음부터 끝까지 스파이더맨의 목숨을 노리려고 한다. 피터의 사실상의 아버지 역할을 했지만 그마저도 주인공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병약한 비주얼 탓에 근력이 약해 보이지만 그런 것 없다. 맨몸액션에도 강하다. 또 호박 폭탄이나 글라이더를 타고 다녀 현대 과학에도 능통한 악당이 된 셈이다. 닥터 옥토비우스와 마찬가지로 최후를 맞기 전에 차원문이 열려 MCU에 합류한 듯.
샌드맨(출연 : 스파이더맨 3/ 담당 배우 : 토머스 헤이든 처치)
<스파이더맨 3>에 출연했다. 원래 출연했던 작품엔 탈옥수의 처지에서 도망가다 실험실에 들어가 뭐가 잘못되는 바람에 샌드맨이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른 두 빌런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살아남은 악당인데, 이후에 그가 어떻게 됐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캐릭터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모래로 변하고 커지고 작아지고 하는 것이 주 신체적인 특징이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특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죽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뭐 그러는 듯. 사진에서 왼쪽이다.
리저드(출연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 / 담당 배우 : 리스 이 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에 출연했다. 원래 출연했던 작품에선 팔 한쪽이 불편한 캐릭터로 나온다. 원래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그러니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연구에 투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앞선의 압박 때문에 연구하던 혈청을 자기 몸에 투여하게 되고, 팔이 다시 생김과 동시에 괴물처럼 변했다. 일렉트로가 전기를 활용하고 그린 고블린이 폭탄을 터트리는 것과 별개로 이 악당은 오로지 맨몸액션을 벌이는데, 그 힘이 어마 장장하게 강해 스파이더맨이 고전하기도 한다. 일렉트로와 다르게 이 작품의 종반부에 감옥에 갇히게 된다. 사진에서 오른쪽이다.
일렉트로(출연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 담당 배우 : 제이미 폭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 출연했다. 원래 출연했던 작품에선 존재감 0의 아웃사이더 캐릭터로 나온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런 조용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야근을 하다 전기뱀장어에가 가득 찬 수조에 빠지게 되고 악당으로 변신한다. 사람들의 시선에 일희일비하는 소심이 캐릭터지만 기적적으로 부활하며 스파이더맨을 고전시키는 악당이었다. 전기라는 소재를 활용해 발전소만 가면 강해진다던가 파란 신체를 가지고 있다던가 하는 점이 이 인물을 가로지르는 특장점이 될 것이다. 역시 영화 후반부에 사망하는 캐릭터지만 MCU에 합류했다. <노 웨이 홈>에서는 아이언맨의 아크 리액터를 가지고 있는 장면이 나왔는데, 전기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이 인물의 힘을 업그레이드시킨 매개체가 된 듯.
닥터 스트레인지(출연 : 닥터 스트레인지 시리즈 / 담당 배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어벤저스 시리즈를 다 봤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다. 캐릭터 별개의 솔로 무비도 있고 내년 2월에 차기작이 있으니 아마 <노 웨이 홈>을 아는 팬들이라면 이 작품 역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세계관 내에서 굉장히 강력한 마법사로 통한다. 멀티버스라는 것에 대한 이해도도 충분하고 타노스와의 일전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점에서 무력만큼이나 지적 능력도 강한 편. 담당 배우 배네딕트 컴버배치가 이 분야 전문가라 그런지 살짝 사회성이 떨어지는 천재 캐릭터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많이 나아진 듯. '생텀'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다. 또 스파이더맨 2편에서 '스티브 스트레인지'라는 이름이 언급됐는데 이 인물에 대한 이스터에그라는 설이 다분하다.
해피 호건(출연 : 아이언맨 시리즈 / 담당 배우 : 존 패브로)
역시 아이언맨 시리즈를 봤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다. '아이언맨의 경호원'이라는 역설적인 캐릭터를 아주 잘 소화한 인물이다. 토니의 친구로서, 또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코미디 캐릭터로서 아주 탁월하게 MCU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어벤저스 : 엔드게임> 이후 토니 스타크가 세상을 떠나자 그가 어떤 식으로 이 세계관에 존재할 수 있을지 궁금해할 팬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J. 조나 제임슨(출연 : 스파이더맨 1, 2, 3 / 담당 배우 : J. K 시몬스)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한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피터 파커는 언론인으로 나온다. 이 JJJ 편집장은 이 데일리 뷰 글의 편집장이라 피터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인물인 셈. 이 스파이더맨 오리지널 트릴로지에서 주인공을 못살게 괴롭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미워할 순 없다. 웃음을 전해주는 역할도 하니 씬 스틸러의 교과서라고도 볼 수 있을 듯. 지금은 별이 되어버린 스탠 리가 이 JJJ 캐릭터에 대해 '내가 연기해도 그것만큼은 못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극찬한 바 있다.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의 쿠키에 잠깐 등장했고, 이 <파 프롬 홈>에서도 출연이 확정되었다.
데어데블(출연 : 마블 드라마 데어데블 시리즈 / 담당 배우 : 찰리 콕스)
시각장애인 히어로. 넷플릭스에 있는 데어데블 시리즈의 주연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히어로지만 감각이 초극한으로 발달해 사실상 눈을 뜬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신체능력을 보여준다. 본업이 변호사라는 점에 있어 피터가 미스테리오 살인 사건을 잘 넘어가게 되는 구원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MCU 팬들에게 인기도 많고 캐릭터도 좋은 편. 세계관 합류가 확정되었다.
3. 그 외에 알아야 할 사실들 : 멀티버스
멀티버스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로키>에서 언급되는데, 이 드라마 후반부에 나오는 '계속 남아있는 자'는 다방면의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역시 이 시간을 관리한 덕에 멀티버스가 있고 다른 차원의 자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근데 이 능력을 좋은 쪽으로만 쓰지 않았다. 멀티버스의 존재를 알고 있던 이 인물은 다른 차원의 자기 자신과 지식을 공유하며, 이 개념을 통해 내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시간선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멀티버스를 관리하는 '계속 남아있는 자'. 이 <로키>의 후반부에서 로키와 실비에게 '나를 죽이면 또 다른 멀티버스 전쟁이 일어난다'라고 말하지만 실비에 의해 죽게 된다. 이 인물이 이렇게 죽음으로서 인해 진짜 멀티버스가 열리게 되고 이후의 MCU에 큰 영향이 간 듯. 이 드라마 안에서 실비가 겪었던 개인적인 고생이 이 인물 탓이었다는 점이나 애 먼 사람들을 평행세계로 끌고 와 혹사시킨 것, 또 앞에서 언급했던 멀티버스 워의 방파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악의 축으로 평가받는다. 사실상 인피니티 사가 이후의 MCU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의 멀티버스 이슈가 정말 예고편에 나온 대로 피터의 쫑알거림이 원인이 된지는 모르나, 이 <로키>에서의 멀티버스가 열리게 된 이유가 된 것인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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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소다 마모루의 칸 영화제 첫 공식 섹션 진출작
미야자키 하야오를 이을 감독으로 일찌감치 주목받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Belle> (竜とそばかすの姫, 용과 주근깨 공주(가제))이 올 7월 2년 만에 열리는 칸 영화제에 합류하였습니다.
지난 4일, 칸 영화제는 <Belle>이 7월 15일 목요일 영화제에서 프리미어로 상영될 예정이며, 12월 29일 프랑스에서 정식 개봉될 예정이라 밝혔습니다.
<Belle>은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유일한 애니메이션으로 뽑힌 <미래의 미라이>(2018) 이후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3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자, 호소다 마모루 감독 개인으로서는 칸 공식 부문에 처음 초청된 작품입니다. 또한, 올해 열릴 제74회 칸 영화제에서 아리 폴만의 <Where Is Anne Frank>, 파트릭 암베르의 <The Summit of the Gods>와 함께 단 세 편뿐인 애니메이션 작품 중 한 편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칸 영화제는 이를 발표하며, 마모루 감독을 젊은 뉴-웨이브 애니메이션 감독의 선두주자이자, 장르를 넘나드는 시적이고도 아방가르드한 세계관에 관객을 끌어들이는 감독이라 설명했습니다.
마모루 감독은 이에 대해 <Belle>은 자신이 늘 꿈꿔온 영화로, 지금까지의 작품들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영화라 말했습니다. 덧붙여, 영화는 로맨스, 액션, 서스펜스뿐 아니라 삶과 죽음과 같은 더 깊은 주제를 탐구하는 작품이라 밝혔습니다. 이로써, 마모루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썸머 워즈>에서 다뤘던 가상 세계에 대해 다시 한 번 다루게 되었습니다.<Belle>은 작은 산골 마을에서 아빠와 함께 살아가는 17살 고등학생 ‘Suzu’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오랜 기간, 자신의 그림자에 갇혀 살아온 소녀는 어느 날, 가상 세계 'U'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50억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세계적인 가수 Belle이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신비로운 존재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모험과 도전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한 여정을 떠나게 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 나갑니다.
현재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인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썸머 워즈>(2009), <늑대아이>(2012)를 연달아 성공시킨 화제의 감독입니다. 그는 2015년, <괴물의 아이> 개봉 기념 내한 당시 인터뷰를 통해, 봉준호, 나홍진 감독 등의 작품에 자극을 많이 받고 있다 말한 바 있는데요. 이후, <기생충> 개봉 당시에도 "굉장한 영화"라며 극찬을 보냈습니다. 현재 프랑스 개봉일이 공개된 <Belle>의 국내 개봉일은 미정인 상태이지만, 올겨울 개봉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새로운 '아이' 의 탄생을 기대해보며,
<Belle>의 개봉까지 영화로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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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영원을 향해
영화를 처음 여러 번 보게 만든 영화가 매트릭스였다면, 영화를 보고 난 후 후유증이 이렇게 오래갈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던 첫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였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책 보다 영화가 더 재밌어져 소위 명작이라고 말하는 영화들을 하나씩 찾아보던 때가 있었다. 그중 나에게는 박찬욱 감독 영화가 가장 여운이 길게 남았고 항상 지루하지 않게 보았다. 영화 개봉 전 인터뷰에서 감독이 자극적인 장면이 는 15세 관람가에, 자신의 영화가 아닌 순수한 로맨스 영화로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면서도 정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던 것 같다. (이후 스포일러)
출처: 유튜브 영화
영화에서 드러나는 내용만을 단순하게 따져보면, 이 영화는 불륜 영화에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계속 등장하는 자극적인 영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본 이후 든 생각은 '나는 왜 이런 영화를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거지?'였다. 라라 랜드, 어바웃 타임, 혹은 건축학개론 같이 정말 유명한 영화들을 볼 때 보다도 더 두근거렸다. 아무래도 영화를 여러 번 볼수록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배우들의 표정 연기에 압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유튜브 영화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여운이 길게 남을까를 생각했을 때, 가장 큰 이유는 영화에서 시종일관 흘러나오는 '안개'라는 노래인 것 같다. 음악 자체가 눈으로 보이는 장면들에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두 배우의 분위기와 감정이 노래의 음과 가사에 딱 맞아서 묘한 감정으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노래 때문인지 영화 속에서 계속 비가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출처: 유튜브 영화
영화 속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을 꼽자면 초반에 해준이 서래를 취조하고 감시하는 장면이다. 만약 내가 경찰과 용의자의 로맨스를 다루는 글을 쓰게 된다면 수사와는 관련이 없는 장소를 배경으로 할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취조의 과정은 소개팅처럼 보이고 감시의 과정은 데이트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해준이 냄새를 맡는 장면을 봤을 때 사랑이 서로의 향기를 맡는 거라는 버스커버스커 '향수' 가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안개와 같은 상황에서 대화와 관찰, 기록을 통해 끝없이 파고들고자 하는 것은 수사와 사랑이 맞닿아있는 지점일 수도 있겠다.
출처: 유튜브 영화
여주인공이 중국인인 이 영화는 서래가 '붕괴'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됨으로 1부를 끝낸다. 후반 해준은 자신이 언제 사랑한다는 말을 했냐고 다그치지만, 서래에게 있어 해준이 했던 붕괴되었다는 말은 곧 사랑한다는 말 이상의 말이었을 것이다. 사랑 고백도 아닌 말을 녹음해 힘들 때마다 듣곤 했다는 것만 봐도.. 이 지점까지 보았을 때는 둘 사이 타이밍이 어긋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었다.
출처: 유튜브 영화
1부는 삶의 목적이 없거나 결핍이 있어 불면증에 시달리고 졸음운전을 하고, 드라마를 보다가 소파에 앉아서 졸던 두 사람이 서로가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침내 사랑하게 되어 자신의 존재 이유나 다름없던 직업윤리를 버리면서 붕괴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이후 둘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살지만, 결핍이 채워졌던 곳은 더 크게 비어 이전보다도 못한 생활을 이어간다. 서래는 드라마의 대사처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을 만날 수 없을' 방법으로 해준을 찾아가며 2부가 진행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작중에서 해준은 해결하지 못한 미결 사건들의 사진을 방에 붙여놓고 잠을 잔다. 서래가 해준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서래는 처음으로 미결사건의 뜻을 알게 되었다. 둘의 마지막 대화 때, 서래는 '당신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었다.'는 말을 한다. 해준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만, 소유보다는 사랑이 더욱 커졌기 때문에 더 이상 상대를 붕괴시킬 수 없던 서래는 자기 자신이 미결 사건이 되어 영원한 사랑을 만드는 마지막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핸드폰을 바다에 버리는 것이 1부에서 해준의 사랑 방식이었다면, 2부에서는 서래가 똑같은 말을 하는 것도 영화의 핵심인 것 같다. 1부에서 녹음하는 사람은 해준이었고 2부에서 녹음하는 사람은 서래였던 것처럼. 결국 서래는 자기 자신을 바다에 버림으로써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최후에 최후에야 해준은 상대의 의도를 깨달아 해가 질 때까지 서래를 찾으며 영화가 끝난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바다를 좋아한다'는 대사를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계획을 다 이루고 바다를 택한 서래와 산으로 대표되는 '친절한 형사님'인 해준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지막 통화에서 서래가 가장 중요한 대사를 중국어로 말했던 것은 항상 해준의 얘기를 번역하고 붕괴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랑을 키웠던 자신의 입장을 해준도 겪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유튜브 영화
영화의 주인공이 살인범과 불륜 남인 것은 변함없지만 피를 싫어하는 상대를 위해 수영장의 피를 다 빼고 청소하고, 삶의 근간이 되는 직업윤리를 버리기도 하며, 상대를 만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이면서 가장 낭만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이런 영화를 본 적이 있었던가..
출처: 유튜브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떠올랐던 시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들 네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낮은 곳으로 - 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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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 리뷰
사랑을 단념해야 하는 두 사람이 있다. 둘의 차이는 전 연인이 살아있느냐, 살아있지 않느냐 정도에 불과해 보인다. 당연히 살아온 시간과 환경이 다르니 다른 점은 더없이 많겠지만, 동네 주민들에게 둘은 그저 ‘이상한 사람’ 일뿐이다. 한 명은 새벽에 결혼식 비디오를 찾다가 난동을 피우기도 하며,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손님이 있는 저녁 식사 자리마저 순식간에 망쳐놓는 재주를 지녔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팻(브래들리 쿠퍼)은 이별의 계기가 썩 좋지 못했음에도 자신과 그가 천생연분이었다는 사실을 신봉한다. 접근금지 처분을 빠르게 극복해 불륜을 저지른 아내와 재결합하여 서로를 완전케 할 사랑에 다시 빠질 수 있으리라 철썩같이 믿는다. 그렇다면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는 어떤가? 그는 사별한 남편을 잃은 후 느낀 허망함과 우울에 자신을 세상에 내던졌던 나날을 느리게 갈무리하는 중이다.
사실, 영화의 장르가 로맨틱/코미디인 만큼 결론은 뻔하다. 두 사람은 두 시간 동안 여러 굴곡을 겪을 테고, 서로가 자신에게 완벽한 짝이라는 것을 발견하며 끝날 것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과 결이 다소 다르다. 남녀 주인공이 서로를 포용하는 과정은 그들이 겪은 상실과 우울의 치유 여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이상異常: 보통과 다른
이상하지 않은 상태란 무엇일까?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는 일이 전혀 없다는 걸 의미할까? 그렇다면 사랑에 빠진 상태도 어떠한 의미에선 이상한 일일 테고, 누군가와 결별하는 것 역시 안전한 보통의 나날을 영위하는 이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일 것이다. 그러하므로 이상과 정상은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경계가 있을지라도, 개개인의 세계관에 따라 달라지는 유동적인 상태라 볼 수 있을 터다. 물론, 그의 아버지인 패트리치오(로버트 드 니로)가 전 재산을 거는 도박 행위 역시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단 걸 생각해보면, 사회가 관용을 베푸는 이상과 정상의 경계조차 뚜렷하게 말하기 어렵겠지만.
어쨌든 영화 초반의 가장 큰 문제는 팻의 이상행동이 타인에게 위협적일 수 있다는 점이며 조울증으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랑을 쏟아부은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할 때, 우리는 대상에게 투여한 리비도를 회수해야 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고. 또, 이 과정은 대개 순탄하지 않고, 현실 부정이나 대상에 대한 집착과 같은 강력한 반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고. 프로이트가 말한 애도에 대한 이론을 생각한다면 영화 초반의 팻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동네 주민에게 팻은 이미 오래전에 깨어져 돌이킬 수 없게 된 사랑을 어떻게든 붙여보려 하는 이상한 사람일지라도, 팻에게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이 안전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데에 집착하는 것이 당연하다. 팻은 어머니 때문에 일찍 집에 돌아왔을 뿐, 여전히 주기적으로 의사를 봐야 하는 환자이며 여전히 전처 니키와의 완벽한 사랑이 가능하리라는 환상 속에 사는 남자니까.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흔히 떠올리는 '이상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극단적인 기질을 지닌 인물이 여럿 등장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팻의 상실감 -혹은 상실에서 비롯된 우울이라는 일탈-을 이해하는 이는 극소수다. 팻의 어머니인 돌로레스(재키 위버)나 친구인 로니(존 오르티즈)는 친절하지만 사랑을 잃은 이가 유지하는 참담한 환상을 없애주진 못했다. 팻의 형인 제이크(셰어 위검)는 간만에 본 동생 앞에서 되려 우월감을 느끼기만 할 뿐이고, 아버지 패트리치오는 팻이 말썽을 피우지 않도록 집 안에 있을 것을 거듭 권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상실한 사랑, 토미로부터 벗어나던 티파니는 팻에게 거침없이 다가간다. 댄스 대회 파트너가 되어달라는 요청은 팻에게 이끌림을 느낀 티파니가 시간을 벌기 위한 방법이었던 게 분명한데, 그는 팻의 언어를 반복하며 유인한다. '니키를 위해서, ' '니키에게 당신이 더 좋아졌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니키에게 편지를 전하고 싶다면': 당신은 댄스대회에서 나의 파트너가 되어야만 해. 타인의 언어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티파니는 팻의 손에서 니키가 읽는다는 책을 앗아가고 춤을 가르침으로써 팻에게 자신의 언어를 체화시키기까지 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이상理想: 완전하고도 궁극적인
티파니가 아마추어 댄서였던 것은 팻에게나, 티파니에게나 큰 행운이었다. 실제로 우울증을 개선하는 데에 신체활동이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상에서 하지 않는 몸짓 언어를 개발시키는 과정에서 신체뿐만 아니라 정서/인지적 측면의 개발이 가능하다고 한다. 당장 니키에게 편지를 전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팻은 주기적으로 티파니와 댄스 연습을 하며 거부감 없이 우울증을 치료했던 셈이다. 특히 초반에는 연습만으로 기진맥진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영화 속에서 자세히 묘사되진 않았으나 체력적 요소 등으로 오로지 춤에만 매달려야만 했던 연습 초기엔 팻이 전처 니키를 떠올릴 겨를이 없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마 이러한 부분 역시 그가 상실한 대상에게서 벗어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반면 티파니는 팻이라는 사람을 통해 토미라고 하는 옛 연인에게 집중되어 있던 자신의 감정, 혹은 옛 연인에게 쏟아부었기에 이젠 오갈 길 없게 된 자신의 애정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특히 춤이라는 예술이 비언어적 표현에 기반한 소통 행위라는 것과 티파니가 날 선 말을 잘하는 캐릭터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팻과 다양한 감정을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 춤보다 더 좋은 수단을 찾긴 쉽지 않았을 듯하다.이렇듯 팻과 티파니는 최초의 끌림이 바로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고 지연된 덕분에, 둘은 더욱 어울리는 한 쌍으로 거듭났다. 다만, 이데아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기에, 현실을 사는 우리가 최선의 세상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하는 것처럼, 둘의 사랑이 영원토록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토미와 티파니의 사랑 역시 한때엔 이상적이었을 테고 니키와 팻 역시 그림 같은 커플이었던 시절이 존재했지 않은가. 그렇기에 영화의 결말부에서 둘의 행복한 결합이 그려졌다 해도 이 아름답고도 이상적인 사랑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우리는 모른다. 치유 과정 속에서 서로에게 상대방이 단 하나뿐인 사람이었을지라도 다시금 세상에 나갔을 때, 둘의 심경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이 둘이라면 영화 필름 밖에서도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으리라 믿게 되는 건 왜일까. 팻의 아버지가 말했듯 티파니가 팻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깊은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단지 그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둘은 댄스 대회에서 다른 경연자처럼 규격화된 음악과 안무를 택하지 않는 과감함을 지닌 이들이며, 5점에 아쉬움을 내비치지 않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호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다듬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팻과 티파니 개인의 어떠한 부분은, 두 사람이 함께 하자 긍정적인 시너지로 탈바꿈하였다. 타인 앞에서 굴하는 일이 없던 티파니에겐 팻이 비뚤어진 채로 서 있을 때 다가가 바로 설 수 있도록 돕는 힘이 있었고, 완전한 사랑을 믿던 팻에겐 티파니가 거짓으로 써준 답장을 모른 척 눈감아주는 이해심이 있었지 않은가. 심지어 로니 부부로 끝날 수 있었던 공동의 지인 역시 늘어나 단단하고도 따뜻한 안전망까지 넓어졌으니, 팻과 티파니는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리듬에 맞춰 '이상한' 사랑을 별 탈 없이 이어나갈 것만 같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세상에 나온 지도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다양한 변주로 관객을 기쁘게 하듯, '만남'이라고 뭉뚱그려지는 단어조차 유심히 살펴보면 동일한 사례는 하나도 없다. 손쉽게 둘의 마주침을 허용하는 운명도 있겠으나 일정 거리 밖에서 서성이며 자신이 안전한 사람임을 부단히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한 만남도 세상 어딘가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꼭 그만큼, 누군가에겐 멀리서 애써 찾아오는 인연이 있을지 모른다. 티파니가 팻의 동선을 알기 위해 그의 집에 전화를 걸고 똑같이 달려 나간 것처럼.
그러니 필연적인 우울이 길어져 힘겨워도 그대, 가끔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찬란한 한 줄기 햇빛은 오로지 당신만을 만나기 위해 일억오천만 킬로미터를 달려왔다. 다시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을 찰나의 위로, 어쩌면 당신의 짐을 덜어내고 당신을 바꿔놓을 가능성조차 외면하기엔 우리의 삶이 너무도,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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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존스의 일기’ 첫 페이지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