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16 11:51:28
4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안젤리나 졸리의 마리아 칼라스 <마리아> 개봉

“오페라의 성경”이라 불리며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자랑했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를 연기해
제82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안젤리나 졸리의 <마리아>가 국내에 상륙합니다.
이 외에도 꾸준하게 사랑받은 '브리짓 존스'의 새로운 속편부터 마약 수사를 정면으로 다룬 한국영화 <야당>,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해 호평받았던 공포영화 <사유리>도 금주에 개봉합니다.
오늘도 극장에서 만나요!
마리아
MARIA

개요: 드라마 | 영국 | 123분
감독: 파블로 라라인
주연: 안젤리나 졸리,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 알바 로르와처
개봉: 2025.04.16.
배급: 판씨네마㈜

줄거리
“준비가 끝나면 언제든 다시 노래할 거예요”
음악이 인생의 전부였고 무대가 존재의 이유였던 세기의 프리마돈나,
불멸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무대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Bridget Jones: Mad About the Boy

개요: 코미디 | 영국 | 125분
감독: 마이클 모리스
주연: 르네 젤위거, 휴 그랜트, 엠마 톰슨, 치웨텔 에지오포, 레오 우달
개봉: 2025.04.16.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줄거리
4년 전, 사랑하는 남편 ‘마크 다시’를 잃고 싱글맘으로 살아가던 ‘브리짓 존스’
정체된 그녀의 삶을 걱정하는 주변인들의 권유와 압박으로 데이팅 앱에서 매력적인 연하남과 만나
오랜만에 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되찾는 한편 방송국에도 복직해 일과 가정, 로맨스를 병행하게 된다.
고군분투하며 최선을 다하지만 연하남과의 연애도, 직장 생활도, 아이들과의 관계도 모든 것이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브리짓’은 무엇이 정말 자신을 위한 삶인지 고민하게 되는데…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다시 브리짓!
야당
YADANG: THE SNITCH

개요: 범죄 | 대한민국 | 123분
감독: 황병국
주연: 강하늘, 유해진, 박해준, 류경수, 채원빈
개봉: 2025.04.16.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줄거리
대한민국 마약 수사의 뒷거래 모든 것은 야당으로부터 시작된다!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된 이강수(강하늘)는 검사 구관희(유해진)로부터 감형을 조건으로 야당을 제안받는다.
강수는 관희의 야당이 돼 마약 수사를 뒤흔들기 시작하고, 출세에 대한 야심이 가득한 관희는 굵직한 실적을 올려 탄탄대로의 승진을 거듭한다.
한편, 마약수사대 형사 오상재(박해준)는 수사 과정에서 강수의 야당질로 번번이 허탕을 치고, 끈질긴 집념으로 강수와 관희의 관계를 파고든다.
마약판을 설계하는 브로커 강수,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관희, 마약 범죄 소탕에 모든 것을 건 상재.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이해관계로 얽히기 시작하는데…
사유리
Sayuri

개요: 공포 | 일본 | 108분
감독: 시라이시 코지
주연: 미나미데 료카, 네기시 토시에, 콘도 하나, 카지와라 젠, 우라베 후사코, 키타로, 모리타 코코로, 이노마타 레이
개봉: 2025.04.16.
배급: ㈜트리플픽쳐스

줄거리
꿈에 그리던 집으로 이사 온 카미키 가족. 하지만 행복한 시간도 잠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가족들이 차례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제 남은 사람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중3 손자.
두 사람은 모든 일들이 이 집에 살았던 소녀 사유리 때문인 걸 알게 되고 이들의 살아남기 위한 각성과 반격이 시작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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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멸망했지만, 아이는 자란다
세상은 항상 변하고 있다. 28년 전과 지금을 나란히 놓고 보면, 전혀 다른 시대처럼 느껴진다. 기술이 바뀌고, 말투가 바뀌고, 사람들의 태도도 바뀌었다. 무엇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느끼는 감정의 결도 완전히 달라졌다. 변화란 겉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감정도, 생각도, 그걸 담아내는 방식도 점점 다르게 진화해왔다.
영화 <28년 후>는 그런 변화의 끝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28년 전 바이러스가 퍼졌던 영국은 아직도 멸망 직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고, 어른이 된다. 12살 소년 스파이크(알피 윌리엄스)는 섬에서 자라며 사회의 끝자락을 살고 있다. 본토는 여전히 감염의 위험이 남아 있지만, 그곳으로 나아가는 건 일종의 성장 통과의례처럼 여겨진다. 밀물이 빠질 때 잠시 드러나는 길 하나를 통해 본토에 갈 수 있다. 영화는 그 위험한 여정의 시작과 함께, 스파이크가 처음으로 느끼는 ‘진짜 삶’의 감정들을 풀어낸다. 그것은 생존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성장을 둘러싼 아주 깊고 복잡한 감정의 이야기다.
[첫 번째 감정] 스파이크의 두려움
스파이크가 처음 본토로 나가는 장면은 단순한 탐험이 아니라 하나의 통과의례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발을 내딛는 그 길 위에서, 그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실감한다. 아직 어린 나이의 그는 좀비보다도 그 공기 자체를 무서워한다. 밀물이 빠져 생긴 좁은 길을 따라 도달한 본토는 텅 빈 폐허처럼 보이지만, 언제 어디서든 위험이 튀어나올 수 있는 불확실한 공간이다. 아버지는 그런 두려움에 익숙해지라고 말하지만, 익숙해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스파이크는 실제로 좀비를 마주하고, 놀라고, 실수하고, 덜덜 떤다. 그 긴장은 그의 몸 전체를 휘감고, 카메라는 그 떨림을 아주 가까이에서 따라간다.
그러나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그 두려움이 단일하지 않다는 데 있다. 영화 후반부, 스파이크가 또다시 본토로 돌아가려는 이유는 단순한 모험심이 아니다. 이제는 병든 엄마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두려움’이 그를 이끈다. 그는 이제 안다. 세상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잔혹하고,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상실을 감당하는 것이 어른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다.
이렇게 두려움은 점점 형태를 바꾼다. 좀비에 대한 공포에서, 가족을 잃는 상실의 공포로. 그리고 결국 그 두려움은 스파이크를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게 한다. 그는 다시 본토로 향한다. 그건 누가 시킨 일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다. 아마도 그 순간, 우리는 스파이크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님을 알게 된다.
[두 번째 감정] 엄마 아일라의 사랑
스파이크의 엄마 아일라(조디 코머)는 몸 어딘가가 아파서 늘 정신이 흐릿하다. 때로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고, 어떤 순간엔 스파이크를 자신의 아버지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건 단순한 증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기억이 흐려져도 여전히 사랑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스파이크를 향한 진심이다. 아일라는 늘 말한다. 자기가 짐이 될까봐 두렵다고.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영화 중반, 아일라는 스파이크와 함께 본토로 향한다. 아들 스파이크는 엄마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를 찾아나서는데, 아일라는 그곳에서 무언가를 되찾고 싶은 듯한 표정이다.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한 재회를, 환상 속에서는 잠시 이룰 수 있으니까. 어쩌면 아버지와의 재회를 꿈꿨을지 모른다. 늘 그리웠던 자신의 보호막이자 따뜻한 존재가 바로 아버지 였끼 때문이다. 마치 스파이크는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한듯이, 본토로 건너간 순간부터 엄마를 보호하는 어른이 된다. 아이가 부모를 지키려는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속에 긴장을 만든다. 12살의 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그건 스파이크의 슬픈 성장일 것이다.
아일라의 마지막 선택은 너무도 조용해서 오히려 울림이 크다. 그녀는 스파이크에게 남겨지는 삶을 선물한다. 그것은 물리적인 보호를 넘어서, 감정의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선물이다. 죽음 앞에서도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는다. 아일라는 그렇게 아들의 가슴에 살아남는 것을 택한다. 그건 스파이크에게 선사한 마지막 사랑일 것이다. 스파이크가 어떤 어른이 되든지, 늘 마음 한 켠에는 엄마가 살아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사랑은 세상에 남았다.
[세 번째 감정] 닥터 켈슨의 통찰
영화 후반, 스파이크는 닥터 이안 켈슨(랄프 파인즈)을 만난다. 그는 짧게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핵심 주제를 건네는 인물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모든 것을 망가뜨린 이 세상에서, 켈슨은 여전히 죽은 이들을 존중한다. 그는 '죽음은 끝이 아니며, 기억 속에선 살아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종교적이지도, 철학적이지도 않다. 그냥 삶을 오래 살아낸 이의 태도다.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다리 위에 선 듯한 인물.
켈슨은 스파이크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가볍게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보다 성숙한 감정의 언어로 스파이크를 대한다. 이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스파이크의 성장에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멘토로 기능한다.
그가 보여주는 존중은, 단지 타인을 향한 예의가 아니다. 감정, 상실, 죽음, 존재. 그 모든 것에 대한 태도다. 그걸 지켜보는 스파이크는 다시 한 번 선택을 하게 된다.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간다는 의미를, 이 인물을 통해 비로소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건 좀비 영화가 아니라, 성장 영화다
<28년 후>는 <28일 후>와 <28주 후>와 결을 완전히 달리하는 작품이다. 겉으로 보면 바이러스와 좀비가 등장하는 디스토피아 영화이지만, 정작 영화는 좀비 액션보다 인물들의 내면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래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영화를 성장 드라마로 바라본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훌륭하다. 누군가의 감정은 이렇게 위험한 공간에서 피어난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다.
영국만이 감염되었다는 설정은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을 떠올리게 한다. 혼자 살아남았지만 더 고립된 땅. 이런 설정은 꽤 매력적이며, 이후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보다 현실 정치와 맞닿는 이야기로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영국 내의 상황 뿐아니라 외부의 이야기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엄마 아일라를 연기한 조디 코머는 극 중에서 매우 복합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흐려진 정신 속에서도 아들을 향한 진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닥터 켈슨 역의 랄프 파인즈는 아주 짧은 등장만으로도 이 영화가 단지 생존기 이상의 것임을 증명한다. 그가 등장하는 순간 영화의 무게감이 달라진다. 그의 연기가 영화의 메시지를 진중하게 전달한다. 대니 보일 감독 특유의 빠른 편집과 강렬한 영상, 사운드의 조화는 여전히 살아있다. 스파이크의 감정 변화는 시선의 흔들림, 호흡의 깊이까지 섬세하게 따라가며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밀착하게 되는데, 여기에 감독의 편집과 연출력, 사운드가 더욱 더 영화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 거대한 화면과 소리에 의해 그들의 감정이 더욱 가깝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직 국내 개봉 후 호불호가 극단으로 갈렸기 때문에, 국내 흥행은 미지수지만, 시리즈 전체의 시작점으로서 <28년 후>는 글로벌 흥행성적만 놓고 보면 꽤 인상적인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영화 속 그 한 걸음이, 다음 세대를 향한 희망의 시작이기를 바란다. 영화가 끝난 이후, 시리즈의 다음편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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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호원의 안식년을 지켜줘!
줄거리
악몽 같았던 킬러 다리우스의 경호를 맡았던 마이클은, 실제로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트리플 A 면허 복구에 대한 심사 때문에 더욱 압박을 느끼는 마이클에게 상담사는 휴가를 권유한다.
경호에 대해 잊어버리고 이탈리아에서 낭만적인 휴가를 즐기는 마이클 앞에 갑자기 총격사건이 벌어진다.
그의 앞에서 무차별 총질을 해대는 사람은 다름아닌 다리우스의 아내 소니아!
"우리 남편이 마피아에 납치당했어! 널 데리고 오래!"
가기 싫다는 마이클의 멱살을 쥐어잡는 킬러보다 더한 킬러의 아내. 이번에는 킬러의 와이프 경호를 맡아라!
감상포인트
전편보다 더 심한 대 환장 코미디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더 재밌게 보고 싶다면 1편을 보고 2편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별 거 아닌 반전만 있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헉소리난다. (반전은 아니지만 헐;;하게 되는)
감상평1편을 본 사람들이라면 2편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넷플릭스에 1, 2편 모두 있으니 참고할 것.
전편에서부터 미친 케미를 자랑했던 부부가 드디어 함께 등장한다. 미쳐버린 케미에 넋을 놓고 있다가 문득 마이클이 불쌍해지는 영화. 참 재수없고도 재수없는 인간이어라. 안식년이라고 총 대신 후추 스프레이와 주머니칼을 챙겼다는 사실이 너무도 웃프다. 저게 경호원의 직업병일까?
어쩌다보니 킬러와 사기꾼과 무면허 경호원의 손에 유럽의 운명이 달린 상황. 그러나 소니아와 다리우스의 목표는 유럽을 살리냐, 마느냐가 아니라 달콤한 신혼여행과 아이 만들기 뿐이다. 그래서인지 소니아는 자신들을 추격하는 뒷차에 대고 총질을 하는 내내 "이게 무슨 신혼여행이야! 이건 그냥 여행이야!" 하고 구시렁댄다.
거침없는 소니아 덕분에 영화가 훨씬 유쾌하다고나 할까. 대신 수위 높은 섹드립은 각오해야 한다. 부모님이나 어린 자녀와 보기에는 살짝 민망할수도...?
마이클은 계속해서 면허에 집착하다가 충격적인 일을 당하고서 다리우스에 의해 정신이 개조(?)된다. 면허와 안전 따위에 집착하는 건 루저라면서 말이다. 그가 미친 사람처럼 차를 몰자 옆에 있던 다리우스가 오히려 안전벨트를 매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1편에 비해 코멘트할 꺼리가 더욱 없긴 하지만, 그만큼 깊게 생각 안 하고 흘러가는대로 보는 재미가 있다. 지난 편보다 훨씬 더 높아진 뻔뻔함 수치. 주말을 유쾌하게 마무리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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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능력은 내면의 가능성이야
줄거리
신비한 마법이 흐르는 '엔칸토'에서 살아 움직이는 집인 '까시타'에 살고 있는 마드리갈 가족.
그들은 때가 되면 각자의 문을 열고 자신만의 능력을 받아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게 된다. '미라벨'은 유일하게 아무런 마법 능력도 가지지 못했지만, 마드리갈 가족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집의 막내인 '안토니오'의 마법 의식이 있는 날, 행복한 사람들 사이에서 미라벨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집에 금이 가는 것을 발견한 미라벨은 분명 마법의 힘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질 않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고 믿고 방법을 찾기 시작하는데...
감상 포인트
1. 노래가 웬만한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보다 더 흥겹고 잘 어울린다.
2. 캐릭터 고유의 능력들이 어우러져 영상미가 폭발한다.
3. 코코에 이은 디즈니의 가족 애니메이션 명작.
감상평
"능력이 있든 없든 나도 다른 가족들처럼 특별하거든."
능력이 없어서 슬프겠다는 동네 꼬마의 말에 미라벨은 답한다. 자신은 여전히 특별한 존재이며, 가족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미라벨은 아무 능력이 없더라도 가족들이 의식을 준비하는 동안 혼자 놀 수 없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미라벨을 보고 할머니 아부엘라는 말한다.
"미라벨, 거들고 싶겠지만 오늘 밤은 완벽해야 한단다."
완벽하기 위해선 네가 빠져야 한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할머니에게, 미라벨은 차마 한 마디 반발조차 못하고 방으로 돌아간다. 나는 특별해, 나는 소중해, 계속 되뇌었지만 결국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다. 가족들에게 자신은 사진을 찍을 때 빠져도 티가 나지 않는, 그 정도 사람이었다.
영화 [엔칸토]는 마법의 가족이라는 소재로 믿음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날씨 조절, 치료, 힘, 식물, 소리, 변신, 동물. 모든 가족이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할머니인 아부엘라는 미라벨과 마찬가지로 어떤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부엘라에게 마법의 힘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이 모든 마법의 힘이 아부엘라에게서 왔다고 믿으니까. 아부엘라의 꺼지지 않는 촛불은 마법의 힘을 유지하는 기적과도 같으니까.
아부엘라는 눈앞에서 남편을 잃고 남은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 순간 기적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마법을 유지하는 힘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가족들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까시타는 그런 아부엘라의 마음을 형상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허나 세월이 지나며 그녀는 가족을 위협하는 악이 가족 내부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시작은 자신의 아들 브루노였다. 예지력을 가진 브루노가 미라벨의 의식 전에 까시타가 부서지는 미래를 보자, 아부엘라는 브루노와 미라벨이 가족들을 위험에 빠트린다고 착각하게 된다. 실제로는 브루노와 미라벨만큼 가족들을 위하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는데도.
누군가를 지킨다는 행위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될 수 있지만, 믿는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까시타에 금이 가고 부서지는 것이 먼저였고, 촛불이 꺼지는 것이 마지막이었다. 촛불이 꺼졌다는 것은 가족을 사랑하기에 그들을 지켰다고 믿은 아부엘라의 마음이 져버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까시타가 부서진 것은 아부엘라가 아니라 미라벨의 마음이 다쳤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비록 능력은 없어도 자신이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미라벨이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까시타가 무너진 것이다.
집은 지친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역할을 한다. 까시타는 곧 미라벨 그 자체였다. 아부엘라가 가족들이 결속을 다질 수 있게 한 데 모으는 힘이라면, 미라벨은 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서 스스로의 힘을 유지하게 만드는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라벨의 엄마인 '어거스틴'이 치료의 능력을 가졌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영화 [엔칸토]는 나만 초라해 보일 때, 나조차도 나를 믿을 수 없을 때, 본다면 좋을 영화다.
결국 집을 일으켜 세우는 미라벨의 모습은, 당장 보이지 않는 능력에 연연하기보단 내면의 수많은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나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영화라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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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연이라는 말의 의미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이지만 드라마는 보다가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중간에 '아, 이건 무리순데' 싶거나 너무 자극적인 내용은 굳이 찾아서 보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를 찾으면서 너무 판타지인가 싶으면서도 결국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어서 꾸준히 완주했다. 완주한 기념으로 리뷰한다. 보고 있으면 이런 현실은 믿어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기도 해서 말이다.
1. 가족이라는 울타리란
이 드라마는 설정값부터가 좀 사기다. 모두 부모가 조금씩 자격미달들이다. 부모도 부모 나름대로 각자의 사연이 있지만 결국 아이들은 부모없이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온 상처가 이 드라마에서 기본 설정값이다. 한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모두 버렸고, 한 아이는 엄마가 버렸고, 한 아이는 엄마가 죽었다. 세상은 부모가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들 하고, 뭐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 절대적인가 싶을 때가 많은데, 이 드라마가 그 지점을 정확히 찌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결핍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알고 토닥토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픽션이라고 해도 혈연이라는 말은 가족 간의 유대가 약할 때 관계성을 강화하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강조하려고 만든 말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남보다 못한 혈연도 분명히 있고, 가족보다 나은 남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낳았는데'라고 말하며 자식이 벌어온 돈을 당연하게 뺏어가는 부모도 있고, 자식이 없으면 밥도 못 챙겨먹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꼭 '혈연' 운운하며 자식들의 죄책감을 자극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더 이상 대우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한 이 드라마를 그래서 더 꾸준히 봤던 것 같다. 바로 그 지점이 마음에 들어서.
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그저 모든 인물들이 예쁘게만 보인다. 이 드라마의 판타지는 주인공들을 둘러싼 인물들이 대부분 모두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 아이들의 친구들은 서로를 응원한다. 시기, 질투도 없고 누가 더 잘 된다고 까내리는 모습도 없고 그저 다들 순박하다. 난 이 지점이 이 드라마의 가장 비현실적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뭐, 가끔 산하 엄마같이 자신의 아픔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도 있는데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등장해 이 드라마가 가진 판타지를 조금은 현실적으로 그린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한 편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이들의 우애, 애정이 더 돈독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이 드라마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참 착하다. 생판 남이지만 서로를 형제라고 칭하면서 유대감으로 꽁꽁 매인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참 예뻐보였다. 서로를 가장 많이 챙기니 이게 가족이 아니면 뭐라고 할 건데 싶고, 정재가 산하와 주원을 반대하는 것만 봐도 이건 찐 가족의 리액션이지 싶었다. 그래서인지 세상엔 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많다고 믿고 싶어졌다. 가족은 삶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가족=혈연이라는 말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2. 정재 캐릭터가 가지는 의미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사실 정재다. 각기 다른 이유로 모여 살고 있는 하나의 가족을 구성하는 데 있어 정재와 같은, 소위 엄마의 역할을 하는 캐릭터가 있어 이 같은 가족 형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여자에게 엄마의 역할을 요구한다. 그리고 여자들도 그런 모성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고 아이들을 키워낸다. 하지만 정재와 같은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남자이지만 가족 구성원 상 엄마의 역할을 해내는 사람 말이다. 여자라고 모두 엄마의 역할을 해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도 엄마처럼 살뜰히 챙길 수 있다는 이런 메시지가 이런 TV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참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드라마에서 정재가 엄마이고, 산하 아빠가 가장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걸 보고 있자면 전통적인 사회에서의 온전히 존재하는 엄마 아빠가 없어도 그 역할을 대체할 사람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의 결핍까지 모두 채워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나에게 부모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아이들이 삐뚤어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재가 차려주는 밥상, 이거 참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함께 누군가와 정기적으로 밥을 먹어본 경험이 있는 것, 이것이 남은 인생, 20, 30, 40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느낀다. 나만 해도 진짜 싫어하던 가족 구성원과 오랫동안 밥을 질리게 먹었는데, 그래도 그 싫어하던 사람과의 밥상도 계속 먹다보면 일말의 추억이라는 게 생기기 때문에 안 한 것보다는 나았겠다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과의 밥을 먹어온 기억으로 지금의 내가 이정도 안정적인 정서를 갖게 된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가족 사회에서는 그런 밥상을 엄마들이 많이 차려오시는데, 나는 전통적인 가족 사회 출신이지만 그걸 꼭 엄마가 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내 인생에 그런 밥상을 차려주시는 어른이 있다면 그 사람이 곧 엄마가 아닐까. 엄마=여자로 생각될 필요는 없지 않나.
3. 총평
이 드라마, 중국 드라마의 리메이크이다. 중국 드라마도 조금 봤었는데, 우리 나라 사람 정서에 맞게 잘 리메이크한 것 같아서 오히려 좋았다. 이런 드라마 잘 못 만들면 신파 되기 십상인데, 인물들을 적당히 불쌍하게 만들다가도 로맨스 라인도 가미되어 잠시 분위기가 환기되기도 하다보니 그렇게 슬픔에만 몰입하지만은 않게끔 완급조절을 잘 한 것 같아서 좋았다. 신파를 볼 때에 크게 과하게 감정소모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오글거리고 그래서 끝까지 완주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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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지를 털고 능숙하게 벼려 밝힌 영화라는 여명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2021 | 스티븐 스필버그 | 156분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허드슨강과 리버사이드파크, 서쪽으로는 센트럴파크를 옆에 낀 뉴욕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 Upper West Side에는 미국 역사의 곡절이 담겨있다. 식민지의 역사로부터 19세기 후반 산업화 시기 노동 계급의 거처, 20세기 전쟁의 풍파로부터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 혹은 생활고를 피해 희망을 찾고자 정착한 이민자의 터전으로 발전한 이곳은, 도시 재개발로 자본과 사람이 유입해 문화와 예술이 발흥하는 뉴욕을 대표하는 부촌이 되었다. 지금의 멀끔하고 반듯한 건물과 거리, 햇볕을 쬐고자 바깥에 나온 느긋한 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기 전, 그러니까 약 60여 년 전 도시 재개발로 링컨 센터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막 뜬 그때 삶을 일궈 온 사람들은 떠나야 할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백인 하층 노동 계급 지역 할렘 Harlem과 중남미 이민자의 거리 산 후안 힐 San Juan Hill을 배경으로 생존과 반목을 넘은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았다.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사랑받는 뮤지컬을 영화화한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1961년 동명의 작품은 뮤지컬 영화의 고전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이 영화를 무려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에 영화 애호가들은 기대와 (주로는) 우려가 엇갈렸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이 만들어 낼 첫 뮤지컬 장르라는 관심과 함께, 우리는 이미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 오래된 이야기를 지금의 관객에게 어떻게 다시 선보일 것인가에 관한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감독에게는 잘 돼야 본전, 망치면 원작을 경험한 관객의 실망만 커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컸으리라. 그렇지만 노련한 거장은 결국 고전의 향수와 창작자의 정체성, 그리고 현재의 시선에서 영화 매체에 마침맞은 재구성을 이루어냈다.
셰익스피어의 오랜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파벌 간의 갈등 속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주제인 이 뮤지컬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과 제롬 로빈스(제리 라비노비츠)의 안무가 결합해 지금까지도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다만 1960년대 당시의 기술력이나 연출을 고려하더라도, 원작의 배우와 무대, 소품이라는 세트피스가 완벽하게 합일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유명한 오프닝 씬이나 체육관의 댄스파티 속 뮤지컬 넘버와 안무의 조화는 지금 보아도 훌륭한 장면이지만, 비교적 정적인 카메라 시선과 배우들의 대사 처리 등 뮤지컬 실황에 영화적 기법을 첨가한, 60년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과도기적 흐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극과 영화의 차이가 시각 매체로써 특히 공간의 무한한 변화 가능성 유무에 있다고 한다면 2021년 영화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라는 한 지구地區를 통째로 배경 삼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America〉는 도시 전체를 무대 삼아 거리를 누비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가 포인트인 〈Gee, Officer Krupke〉에서는 경찰서의 소품들로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준다. 거기에 〈Cool〉에서의 부서진 폐건물을 중심으로 ‘토니’(안셀 엘고트)와 ‘리프’(마이크 파이스트), 제트파 사이의 갈등과 신경전, 체육관에서의 댄스파티 등 뮤지컬 넘버를 스크린에 구현하는 데 일조한 카메라 워킹도 빼놓을 수 없다. 촬영감독 야누시 카민스키는 발레와 라틴댄스 기반의 춤의 역동성을 부각한다. 공들인 정교한 합과 역동적인 집단 군무가 스크린 앞 관객에게 화려하고 멋진 장면으로 선보일 수 있게 된 이유다. 관객은 현실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을 날 선 갈등과 비극을 춤과 노래를 통해 어느 정도 희석된 버전의 모습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인다.
영화는 음악만큼이나 조명을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극적 상황을 조성하는 장치로 적절하게 사용한다. 체육관 뒤편에서 토니와 마리아(레이철 지글러)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 건너편 틈 사이로 빛이 스며오는 장면이나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장면이 사랑에 빠진 몽롱한 분위기를 더 살렸다고 생각하지만) 제트파와 샤크파의 패싸움이 벌어지는 소금창고 양편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움직이며 겹치면서 발생하는 명암의 대비로 두 파벌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장면을 연출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원작이 주차장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을 조명 삼아 펼쳐지는 발레 대결이라면 리메이크된 작품에서는 훨씬 실감 나는 대전이 벌어진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오래된 성당에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동안 모자이크 사이로 비치는 아름다운 빛이나, 밤과 낮이 교차하며 달라지는 빛의 분위기도 눈여겨보게 된다. 연출을 위한 소품의 적절한 사용도 눈에 띈다. 앞서 제트파가 경찰서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퀀스에서 주변 소품을 활용한 앙상블은 재기 발랄하며 맹랑한 캐릭터에 잘 들어맞는다. 토니가 싸움을 말리러 갔지만 결국 베르나르도(데이비드 알바즈)를 죽인 후 마리아의 방 창문으로 들어와 바람에 날리는 커튼 사이의 장막을 사이에 둔 만남이나, 사랑을 위해 토니를 감싸주는 마리아에게 분노하는 아니타(아리아나 데보스)와의 듀엣에서 집에 걸어 둔 천으로 흔들리는 마리아의 감정을 표현하는 등의 장면들은 원작과 비교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메이크작을 관람하기 전 관객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뮤지컬을 어떤 방식의 영화로 만들 것인가.이고, 두 번째는 이 오래된 서사를 21세기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이다. 링컨 센터 공사를 위해 곳곳이 헐린 50년대의 맨해튼에서는 불안한 젊은이들의 방황과 분노가 담겨있다. 오히려 원작의 멀끔한 세트보다 이 불안한 10대들의 감정이 잘 드러나도록 설계한 2021년의 영화는 기존의 원작을 유지하면서도 작금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며 원작에 담긴 불쾌한 지점, 혹은 지나쳤던 지점을 부각하고 교정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한다. 시나리오와 노래에는 십 대 청소년의 일탈과 사회 갈등, 이민자 사회의 대립과 빈곤, 재개발 문제가 담겨있다. 그러나 당대 인식의 기반에 깔린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 등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갈등의 중심부에 두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 원형을 일부 유지한 채 스코어의 가사들을 윤색함과 동시에 넘버를 일부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효과를 준다. 감독은 원작에서 지나쳤던 미국 사회(이지만 사실 모든 사회에 통용될)에 고착된 차별과 갈등을 이야기의 모티프나 브릿지로 만들어 시의성을 높인다. 원작에서는 ‘우리의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 집단을 별종 혹은 외부 집단으로 설정해 그들의 유입으로 두 파벌의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현재의 갈등이 발생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경찰을 비롯한 어른들조차 백인 소년들의 편에 서서 이민자들을 향해 차별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리메이크작에서는 맨해튼이라는 지역의 역사의 흐름에서 자본에 밀려 탈락한 백인 하층 노동자 집단과 중남미 이민자 집단이라는 두 비주류 집단 간의 반목과 대립을 명시한다. 경찰로 상징되는 기존의 기득권 엘리트 집단의 눈에는 두 파벌 모두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골칫거리인 것이다. 여전히 미국 정치 지형에 대입할 수 있는 상황을 명확히 설정했음은 스페인어에 따로 자막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영어가 제1 언어인 미국이나. 두 언어에 익숙지 않아 그들의 자막 설정을 따라가야 하는 한국의 관객 관점에서 불친절할 수 있겠으나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그만큼 확고히 보여주는 설정도 없다. 이는 영어를 쓰도록 강제하는 주류 사회 분위기에 편입하려는 당시 이민자들의 노력을 보여주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들의 언어가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표식과도 같다.
주인공인 토니와 마리아를 중심에 두면 영화는 대립적인 집단 간 젊은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하지만, 청소년들의 일탈을 대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들을 외곽으로 내모는 사회에 눈을 돌린다면 또 다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상 복지서비스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젊은이들을 어떻게 죽음으로 내모는가에 관한 이야기로 본다면 이들의 파국에 사회와 기성세대의 책임은 없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여기서 두 파벌의 중립지대인 가게(약국)의 주인인 ‘독’을 대신해 원작에는 없던 인물인 ‘발렌티나’(리타 모레노)를 추가한 점은 익숙하며 낡아 버린 서사에 새로운 결을 터 주는 탁월한 역할을 한다. 발렌티나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몇 안 되는 어른 캐릭터이자 아직 어린 청년들의 치기와 감정의 골을 봉합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설정상 독과 사별한 부인이며 유대인이자 코카시안과 결혼한 푸에르토리코인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그에게 복합적인 감정선과 서사를 부여한다. 인종과 문화 등 다층적인 차별과 분노가 폭발하는 공간에서 발렌티나는 인종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위치하기 어려운 인물을 연기한다. 배신자 소리를 듣기까지 하는 아픔에도 이 이야기 속 유일한 ‘어른’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지점은 발렌티나가 1961년 원작에서 아니타 역할을 맡았던 리타 모레노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원작 속 아니타의 넘버였던 〈Somewhere〉를 사실상 원곡자인 발렌티나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이 넘버는 61년 작품의 아니타의 감정과는 다른, 한 노인이 끝내 안온한 삶을 바랐으나 여전히 이루지 못한 현실을 향한 회한의 노래이자, 분열로 극한 대립을 벌이는 현대 사회를 향한 기약을 알 수 없는, 하지만 이뤄야 하는 목표의식으로 변한다. 또한 여기서 그는 하나의 배역을 넘어 원작과의 가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영화의 테두리를 넘어 확장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니타는 제트파에게 마리아의 전언을 일러주려 발렌티나의 약국에 갔다가 성폭행을 당한다. 원작은 이 상황을 극화된 리듬과 안무를 부여해 단지 서사의 변곡점 역할로 넘어갔지만, 정황상 아니타가 강간을 당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독은 상황을 종결시키며 충동적인 청년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넘어간다. 폭력의 피해자인 아니타에게 누구도 사과와 위로는 없었다. 그리고 60년이 지나. 과거의 악몽이 그때의 아니타이자, 지금 발렌티나의 눈앞에 재현된다. 영화는 과거 리드미컬한 연출로 재현된 끔찍한 장면을 다시 보여주면서도 상황의 극화 없이 정확히 직시하는 연출로 기이하며 끔찍하게 느낄 수 있도록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에게 지금의 상황이 명백한 범죄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또한 원작과 달리 제트파와 함께 있던 백인 여성들이 성폭력의 현장에서 함께 아니타를 보호하기 위해 항의하고, 남성들에 의해 쫓겨나는 장면은 이 사건이 단순한 인종 혐오가 아닌 더 큰 차별적 관념에서 비롯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황을 발견한 발렌티나는 제트파를 제재하고 아니타를 내보낸 뒤 범죄를 저지른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노려보며 “너희들을 어릴 때부터 보아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장면은 결국 60년 전 어린 아니타가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때의 사건과 가해자들을 기억하며, 자신은 그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은 채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사실을 일갈하는 장면이다. 그는 60년 전 그 날에 갇힌 피해자에서, 이제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젊은 남성들을 단호히 ‘강간범’이라고 호명하며 여성폭력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를 대변하는 어른으로서 말이다.
그밖에도 영화는 원작의 애니바디(아이리스 메나스)를 피상적인 톰보이 캐릭터에서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로 설정해 제노포비아와 함께 성소수자 혐오로부터 집단 내에서 인정받는 서사를 부여한다. 처음에는 배제된 소수자에서 결국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애니바디는 모든 상황을 관찰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제트파가 마련한 권총이 치노(조쉬 안드레스 리베라)로 이어져 발생하는 결말에 비중을 두어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논쟁인 총기 규제 문제를 다루는 모습도 보인다. 허가받지 않은 자의 미숙한 총기 사용으로 노출되는 범죄의 양상은 작품 중후반에 꽤 자세히 다뤄진다.
관객은 공연과 영화의 차이를 알고,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감독이 만드는 뮤지컬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거기에 감독은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소수자성과 대립에 주목하며 기존의 작품 속에 감춰있던 이야기를 발굴했다. 사랑과 생존 중 더 중요한 것을 묻는 발렌티나의 질문에 토니는 사랑을 택한다. 그러나 존엄한 삶의 소중함은 사랑과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한 채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그러나 남겨진 자들의 몫은 존재하고, 삶은 여전히 지속한다. 서로 같은 달빛 아래 다른 마음으로 밤이 오기를 바랐던 이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모두가 각자의 길을 떠나는 원작의 마지막에 2021년의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 남겨진 자들의 삶을 위로하듯 새벽이 밝아 오는 맨해튼의 도시를 보여준다. 비극 안에서도 삶은 소중하고,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을 붙드는 한 빛은 찾아온다는 사실. 어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생 사십여 년 동안 한결같이 말하던 이 명제를 살아남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기에, 그는 여러 우려를 감수하고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넣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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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을 사랑한다면, 물속에 던져버려라
6★/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권위 있는 음악상을 받은 드니 뒤마르. 차근히 경력을 쌓은 그는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할 차세대 기수로 손꼽힌다. 그런데 드니는 수상 소감을 말할 때 굳이 객석에 자리하지 않은 아버지를 언급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프랑수아가 같은 지휘자, 그것도 업계 최고로 꼽히는 지휘자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드니는 미래가 창창한 지휘자이지만, ‘프랑수아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 수밖에 없는 지휘자이기도 하다.
시상식 다음 날. 드니의 아버지인 프랑수아 뒤마르가 자신이 지휘자로 일하는 악단으로 출근한다. 한 명, 두 명, 세 명… 프랑수아가 마주하는 모두가 웃는 얼굴로 드니의 수상을 축하한다. 프랑수아의 신경이 점차 날카로워진다. 그 자신 역시 명망 있는 지휘자인데, 사람들의 축하 인사가 프랑수아에게 이제는 ‘누군가의 아버지’로 밀려날 때가 되었다는 불안감을 주는 것이다.
그러던 중 프랑수아에게 전화 한 통이 온다. 모두가 꿈의 극장이라 부르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온 전화로, 그를 차기 지휘자로 모시겠다는 연락이다. 콧대 높은 아버지의 기분이 풀린다. 피할 수 없는 경쟁 관계에 놓인 부자는 그제야 서로의 성과에 박수 치며 웃는다. 그러나 그 전화는 잘못 걸려 온 전화였다. 라 스칼라의 제안은 프랑수아 '뒤마르'가 아닌 드니 '뒤마르'에게 갔어야 했던 실수였다. 관계자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드니는 고민에 빠진다. 의도치 않은 실수 탓이기는 해도, 결과적으로는 아들이 아버지가 평생 꿈꿔온 자리를 빼앗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부자 관계에 늘 흐르던 경쟁심이 깃든 긴장 관계 역시 진실을 밝히기를 어렵게 한다.
차일피일 진실을 밝히기를 미루는 드니와 날이 갈수록 라 스칼라를 향한 꿈에 부풀어 오르는 프랑수아. 영화는 둘의 갈등이 봉합되고 이들이 화합하는 과정을 담는다. 다소 지루하고 작위적인 전개와 결말이다. 부자 간 화해라는 보편의 메시지를 빌미 삼아 영화 전반에 흥미롭게 흩뿌려진 갈등을 너무도 손쉽게 봉합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니 고개를 돌려보자. 진실을 알게 된 프랑수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즉 그의 양육법 말이다. 프랑수아는 드니에게 어릴 적 휴양지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준다. 물을 두려워했던 프랑수아는 자신을 닮은 아들을 이해했고, 그런 아들에게 계속 물에 들어가 놀라고 말하는 아내에게서 드니를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드니의 어머니는 그런 드니를 물속에 던져버렸다. 드니는 두려움에 질려 허우적거렸고, 프랑수아는 아내의 ‘폭력적’ 양육법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얼마 후. 물속에 던져진 드니는 자신의 공포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고는 이내 즐거운 표정으로 물장구를 치며 놀기 시작한다. 프랑수아는 충격을 받는다. 드니의 두려움에 대한 공감이 오히려 지금껏 드니의 성장을 막아온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프랑수아는 중년에 접어든 아들 드니가 마주한 문제가 수십 년 전 휴양지에서 있었던 일과 본질적으로 똑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드니가 자신에게 진실을 알리기를 주저한 진짜 이유를 간파한 것이다. 드니는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과연 자신이 라 스칼라에 설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를 의심하기 때문에 진실을 빠르게 알리지 않았다. 아버지를 위한다는 선의로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고자 했던 것이다. 프랑수아는 수십 년 전의 깨달음을 발판 삼아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아들을 물속에 던져버린다. 드니는 수십 년 전에 물속에서 그러했듯, 이번에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증명해 보인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 프랑수아와 함께다.
때문에 〈마에스트로〉는 부자 관계에 관한 영화라기보다는 양육법에 관한 영화다. 시대를 거스르는 절대적인 양육법은 없다. 지난 시대였다면, 두려워하는 아이를 물속에 던져버리는 양육법은 자녀에게 공감하지 않는 부모의 폭력을 상징하는 일화로 읽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이에게 공감하는 양육과 과보호가 구분되지 않는 시대, 그리하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성장하지 못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는 아이를 물속에 던져버리는 양육법이 다시 필요할지도 모른다. 중년이 되어서도 자기 역량을 의심하며 회의하는 아들에게 후자의 양육법이 더 적합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를 물속에 던져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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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의 바다」넷플릭스가 작정하고 만든 한국 SF드라마?? | 고요의바다 스포일러 포함 | 넷플릭스 드라마 결말포함 리뷰 | 공유 | 배두나 | 이준 |
? 고요의 바다(The Silent Sea,2021, 넷플릭스 드라마) 예고편 리뷰(*스포일러 포함)
2021 크리스마스 이브 공개
-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고요의 바다" 정보
장르: SF, 미스터리, 스릴러
공개일: 2021년 12월 24일
공개 회차: 8부작
상영 길이: 351분(5시간 51분)
원작: 단편 영화 "고요의 바다"
제작: 정우성
연출: 최항용
극본: 박은교
제작사: 아티스트 스튜디오
유통사: 넷플릭스
출연: 배두나, 공유, 이준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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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상> 30초 예고편
끊임없이 착취가 벌어진 성희와 수영의 '삶'과 '몸'.
자본이 숨기려고 했던 노동과 지우려고 했던 존재들.
그들을 품고 있는 ‘사상’.
자본이 할퀴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배인 사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풍경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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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봄날> 메인 예고편
한때는 잘나가던 큰형님 '호성'(손현주).
8년 만에 출소해 보니 남보다 못한 동생 '종성'(박혁권)은 애물단지 취급이고,
결혼을 앞둔 맏딸 '은옥'(박소진)과 오랜만에 만난 아들 '동혁'(정지환)은
'호성'이 부끄럽기만 하다.
아는 인맥 다 끌어 모은 아버지 장례식에서
부조금을 밑천삼아 기상천외한 비즈니스를 계획하며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데…
그런데…! 하필이면 세력 다툼을 하는 두 조직이 이곳에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때마침 눈치라고는 1도 없는 '호성'의 친구 '양희'(정석용)가
술에 취해 오지랖을 부리는데...
일촉즉발! 수습불가!
과연 X버릇 남 못 준 '호성'에게 봄날이 찾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