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를 시작하지
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 가상의 해안가 도시 군천이다. 주인공인 춘자와 진숙은 해녀 동료들과 함께 평화로운 삶을 보내고 있다. 두 사람은 친구들과 해녀 일을 하면서 바다생물을 채취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두 해녀의 삶에 위기가 들이닥친다. 군천 앞바다에 공장이 생긴다는 소식이었다. 공장이 들어서자 생계에 위협이 생기는 해녀들. 바다생물이 폐수로 인해 더러워졌기 때문에 제품으로 판매하는 것이 쉽지 않다. 위기에 직면한 군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오랫동안 진숙과 알고 지냈던 아저씨 한 명이 있다. 이 아저씨가 진숙 부녀에게 밀수업을 제안한 것이다. 솔깃한 춘자. 하지만 진숙 부녀는 썩 내키지 않는다. 그건 단지 부녀의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다. 군천이라는 마을 자체가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밀수업 제안을 수락한다.
돈을 갈퀴에 긁어모으고 있다. 지역사회에 돈이 돌고 있다. 이제 진숙 부녀에게 생계는 더 이상 큰 문제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문제가 아예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불안한 엄 선장. 언제 어디서 경찰이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늘 그만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는 딸 진숙에게도 마찬가지. 아버지를 항상 잘 따랐기 때문에 가족의 의중이 정말 중요했다. 동상이몽이라고, 친구 춘자는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밀수업으로 돈을 버는 게 그렇게 썩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내심 밀수업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녀. 정말 마지막이라는 말에 속상하지만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마지막 밀수를 위해 출항을 나섰다. 그런데 사고가 벌어졌다. 늘 느릿느릿 출동하던 세관이 갑자기 등장했고, 해녀들이 모두 잡혔다. 과연 해녀들을 세관 찌른 인물은 누구일까? 군천 해녀들의 한판승부가 벌어진다!
최동훈이 아니라 류승완
2년 만에 돌아온 류승완 감독의 신작 <밀수>는 감독의 향을 맘껏 결부시킨 액션/스릴러물이다. 류승완은 이미 한국영화에서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왔다.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시작해 ‘한국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 것 같은’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이 <밀수>는 기존에 류승완 월드를 그대로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류승완이 그대로 유지해 온 ‘류승완 월드’는 고급스럽지 않은 척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영화는 이 기본적인 류승완 월드의 틀을 그대로 가져온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박력 넘치는 캐릭터 세팅과 이야기 구성을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의 힘을 강하게 신뢰한다. 가상의 도시 군천은 물론이고 당시 시대상에 의한 ‘밀수’라는 소재가 ‘왜 이 이야기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준다. 류승완이 판을 합리적인 판을 깔아놓고 그 연계를 튼튼히 해 감독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렸다.
하지만 ‘단지 류승완 영화’라는 점은 영화의 장점이면서 단점으로도 작동한다. 우선 영화에서 장점으로 뽑을만한 것은 이야기다. 영화의 이야기 구성에 누수가 없다.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 내적인 논리가 큰 흐름에서 잘 맞아떨어진다. 인물의 사용이 기능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반대로 인물의 서사를 영화 내적으로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에 대해 류승완 감독이 춘자/진숙 쪽에 분량을 많이 주는 수를 뒀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굉장히 내밀하다고 볼 수 있는 지점까지 대사로 넣었다는 점은 ‘과연 류승완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하는 구조다. 이 구조는 다른 등장인물에게도 수혜로 작용한다. 권상사/고마담/장돌이/이 계장이 두 사람과 대응한다는 점에서 캐릭터의 개성이 생긴다. 두 사람의 내적 동기도 이해하니 이야기 몰입에 효과적인 것이다.
심심한 컴백
또한 이 영화의 이야기는 그동안 류승완이 견지해 온 이야기의 박력을 품고 있다. 감독의 전작인 <베테랑>의 이야기는 왠지 과잉의 에너지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특히 장윤주, 오달수 배우가 맡은 역할이 그렇다. 작중에서 조태오가 맡았던 역할만 봐도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담당 배우나 황정민 배우의 연기는 연극적이다. 이 연기 톤은 영화 내적으로 시너지가 있다. 영화 후반부까지 액션/스릴러물의 장르적인 동력으로 작동하며 관객에게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이는 연기 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짝패>나 <피도 눈물도 없이>는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액션신으로 가득 찼던 작품이다. 전자 <짝패>는 이야기를 교차해서 꼬는 것이 아니라 액션으로 가득 채운 영화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여성 인물의 처절한 액션을 너절한 대사와 함께 표현한다.
이 <밀수>는 류승완의 장점을 그대로 구현한 듯 보인다. 영화 중후반부에 분기점 찍고 이야기의 톤에 박력이 들어간다.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액션신은 과연 충무로 키드가 어디 안 갔다는 걸 다시 상기시켜 준다. 또 후반에 특정 장소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관객에 따라서 신선하다고 느낄 여지가 충분하다. 영화의 단점은 ‘오히려 류승완스럽다’라는 점에 있다. 사실 이 작품의 단점은 전작 <모가디슈>와 <군함도> <베를린>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올드하다. 이야기 모든 것이 다 적당하다는 점은 무난한 선에서만 끝나지 않았던 류승완의 드라마 제작 능력을 알기에 아쉽게 느껴진다.
모든 것에 단점이 있다지만
특히 류승완의 이야기에서 인공성이 느껴진다는 점이 이 작품에서 유달리 도드라졌다. 이야기에서 영화의 강점이 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고민시 배우가 맡은 고마담이다. 이 인물은 감독의 역량이 그대로 투영된 캐릭터로 보인다(<베테랑>에서 장윤주 배우가 맡았던 역할의 연장선상인 부분이 어느 정도 있다). 이 감독의 캐릭터 투사는 인물의작위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인물이 한 가지 장점에 의존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 또 이를 대사로 직접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이야기의 인공성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춘자-진숙이 케미를 보여주며 빌런들을 해치우는 것이 영화가 선택한 장르적인 특성 중 하나다. 이 특성과 이 인물의 설정이 맞지 않아 중반부가 넘어가면 좀 지루하다고도 느낄 여지가 있다. 패턴이 전형적인 것이다. 또 박정민 배우가 맡은 장도리 역에 대해서는 역시 장르적인 특성을 위해 디테일을 희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후반부 이 인물에 대한 부분은 스릴러물로, 또 한 클리셰를 비틀기 위해 인공적으로 전개된 부분이다. 이 장도리 캐릭터와 관련된 부분은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진주인공의 엄청난 퍼포먼스가 이 인물의 작위성을 어느 정도 가려준 감이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사건관계가 하이라이트를 위해 전시되기만 한 건 아닌지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야기의 후반부를 영화의 장점으로 뽑을 관객분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글쓴이는 그 중간에 변곡점 찍는 신의 액션에 비해, 이야기의 밀도를 쌓아 올리는 방식에 비해 단점으로 느껴진다. 물론 이곳이어야 하는 근거는 있다. 이 과정이 매끄러웠나? 에 대한 것은 의문이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이곳에서 벌어지는 액션이 매끄러웠나? 역시 의문이다. 류승완이 액션을 그동안 잘 만들어왔고 심지어 그전 장면에서 장소성을 잘 살렸다는 점에서 필모그래피 초반의 류승완의 기시감이 잘 안 느껴지는 지점이다. 전체적으로는 물론 이 시퀀스의 액션이 좋긴 했지만 딱 두 요소에서 영화의 단점으로 느껴지는 장면이 있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엔딩신은 너무 갑작스럽게 결론을 냈다. 이런 요소들이 오히려 이 이야기가 ‘류승완스럽다’라고 느껴지게 만드는 부분이다. <모가디슈>에서 느껴졌던 아저씨스러움과 <베테랑>의 과잉, <군함도>의 조급함이 ‘이거 류승완이 만들었던 전작을 그대로 담습 하는 것 같네’라는 아쉬움을 낳은 것이다.
재미있나요라고 물으면 네
영화 재미있다. 무난하게 뽑힌 액션/스릴러물이다. 영화의 장단점을 따질 필요 없이 작품 자체가 ‘순수한 오락영화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가 아는 한국 상업영화에서 ‘잘 만들었다’ 싶으면 들어가는 것들 다 있다. 오해, 액션, 생기발랄한 캐릭터, 빌런의 명연기, 톡톡 튀는 감초들에 무난한 이야기까지 이 작품이 관객을 많이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는 점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의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