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5-07 00:31:36
[JEONJU IFF 데일리] 사분면 위의 점으로서
영화 <브라질 대선의 기록> 리뷰
DIRECTOR. 산드라 코구트
CAST. 아드닐슨 페레이라, 에스텔라 마리아 드 올리비에라, 넬리 벨렘, 후테 사르디냐
SYNOPSIS. 2023년 1월 8일 의회·대법원 점거 사건과 대선을 앞둔 브라질의 격변의 몇 달을 담은 이 영화는 그 과정에 관련된 인물들을 통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두 개의 평행 세계를 탐구한다.

국제무대에서 신흥 세력으로 평가받았던 한 나라의 대통령 선거 현장이 있다. 결과는 49.1%와 50.9%. 낙선된 후보는 현직 당선된 몸이었지만 "부정 선거가 의심스럽다"는 주장을 선거 전부터 끈덕지게 폈다. 당선된 후보는 국기를 뒤집어쓰고 나온 반대파들에게서 "저 도둑놈 구속해라!" 소리를 들었다. 그가 되면 "우리 나라 베네수엘라 된다"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복지만 바라고 그를 뽑는다며 "포퓰리즘"이라고 욕을 먹었다. 그 후보의 지지자들은 "도둑놈" 소리가 나올 때마다 그 뒤에 "내 마음을 훔쳤다!"라는 멘트를 붙였고, 상대 후보가 당선되면 "독재 국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선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낙선 후보의 지지자들은 "부정 투표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주요 국가 기관을 습격하며 난동을 벌였다.
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지만 우리 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우리 나라 베네수엘라 된다" 같은 대사까지 겹쳤을 때는 실소가 조금 나왔지만. 우리 나라 정치인들이 왜 밑도 끝도 없이 우리와 지리적으로도 조건적으로도 비슷한 게 없는 베네수엘라를 들먹이나 했는데 저기서 배웠던 것일까 의문을 잠시 품었지만... 아무튼 정말 우리 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브라질 대선의 기록>이다. 영어 원제는 "지금 이 순간 이 나라의 하늘에는(At this moment, in this nation's sky)"이다. 이 두 제목은 둘 다 탁월한데, 대선 캠페인에서 시작해서 실제 선거가 완료되는 시점까지를 담고, 선거 불과 몇 달 후 낙선한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법원과 국회를 습격하는 장면까지를 보여준다. 당선된 룰라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 보우소나루의 당선을 위해 기도하던 지지자까지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1인칭 의견이 펼쳐지는 내용을 듣고 있노라면, 영화 속 보우소나루 지지자 페레이라의 말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 서로 너무 달라서, 같은 나라에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다. 역시나 익숙한 이야기다.

브라질 정치의 지형도를 잘 모르는 내 눈에도, 위험해 보이는 순간들이 여러 번 포착된다. 반대파가 "폭죽을 쏘는 척 총을 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다"고 긴장하고, 또 다른 이들은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 손을 맞잡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를 굳건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더니 정작 결과가 나오니 "군부가 쿠데타라도 벌여야 나라가 산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육군 본부 앞을 찾아가 조국의 운명이 당신들에게 달렸다며 쿠데타를 벌이라고 농성 비슷한 것을 한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광경이었으며, 우리 나라부터 남미까지 군부 쿠데타로 흘린 피가 얼마나 많은가 생각할 때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알고 보니 군인 출신인 보우소나루가 군부의 쿠데타를 옹호한 이력이 있었다.
이들이 지지한 후보 보우소나루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고, 현직 대통령이 1회 연임할 수 있는 브라질 선거법 특성상 상당히 유리한 자리에 있었다. 다만 상대 후보가 전설적인 사람, 바로 그 룰라였다. 지식채널e 같은 곳에서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 하는가"라는 명대사와 함께 성공적인 정책들로 놀라운 지지를 얻었던 그의 이야기를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는 퇴직하는 그 순간까지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고, 후임자와 관련해 여러 사법 스캔들에 얽매이긴 했으나 그 또한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위법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면서, '사법 쿠데타'의 피해였다는 평가가 더 앞서는 상황이다.

군을 투입해서라도 룰라를 구속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라는 그 지지자들의 요구는 의아한 구석이 있다. 비슷한 생각을 우리 나라 네이버 댓글들을 볼 때마다 했다. 구속은 헌법이 규정한 권리의 제한이므로, 헌법 37조 2항에 따라 법률 요건에 의해 최소한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 경우에도 본질적인 부분은 제한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 70조는 구속의 사유를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 인멸 혹은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기분 상해죄로 "구속하라!"를 외친다. 하도 구속 당한 사람이 많아서 별일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 묻고 싶었다. 구속하라고, 군을 투입해서라도 사회 질서를 유지하라고, 외치는 그 소리들이 무엇을 제한하라는 뜻인지를 생각해 보았나요. 그 제한이 과연 본인에게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린 자리에, 당신들이 원하는 가치들은 과연 당연히 지켜질 거라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도 안타까움이 인다. 그들 또한 혼란스럽다. 그들은 진심으로 부정 투표를 우려하고 있고, 이 문제가 '블랙박스'를 공개하면 해소될 일인데 왜 공개하지 않아서 의심을 사냐고 묻는다. 전자 투표기 안에 '블랙박스' 같은 건 없다는 말 앞에, "대체 우리가 같은 나라에 사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누구누구 당선되면 우리 나라 망한다'고 걱정하며 태극기 뒤집어쓰고 집회에 나가시는 어르신들 또한, 진심으로 나라를 우려하고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것들이 망가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상황은 두 집단 간의 대화가 너무 요원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전에는 같은 상황을 두고 해석이나 중요시하는 가치가 달랐다면, 그래서 성장 중시vs분배 중시, 자유 중시vs복지 중시 등 교과서적으로 요약이 가능했다면, 이제는 그냥 상황을 팩트로 인식하는 내용 자체가 달라져 버리니 합리적 대화를 이어가기 어렵다. 상대방의 말이 날조로 보이니까. 실제로 양쪽에서 하는 문장만 놓고 보면 비슷해 보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아졌나.
굳이 올해 전주에서 본 영화들을 하나하나 나열하지 않더라도, 전세계 정치 지형도를 봐도 이미 비슷한 상황에 처한 나라가 많아 보인다. 왜 우리는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갈라치기로 손쉽게 표를 거두려던 정치인들과 이들의 나팔수가 되어 버린 언론의 탓을 하고 싶은 동시에, 지극히 합리적이었던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나 자신을 보호하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계를 짓는 마음, 벽을 세우는 마음이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은 아닌지. 해결책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같은 마음이라면 경청은 불가능해 보이긴 한다.

이 영화는 일련의 과정을 시간이라는 가로 축으로, 또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세로 축으로 담아 좋은 사분면이 되어 준다. 도저히 남 일처럼 보이지만은 않는 브라질의 사분면을 바라보면서 생각해 보자. 나는 어떤 마음들에 더 공감이 가는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이 하늘 아래" 나는 어떤 사분면 위에 어떤 점으로 위치하고 있는가. 다른 지점의 점으로 이어지려면 우리에게선 어떤 선이 뻗어 나가야 하는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2025.04.29-05.09) 상영일정]
2025.05.04 13:00 CGV전주고사 3관 (상영코드 423)
2025.05.06 14:00 CGV전주고사 1관 (상영코드 621)
2025.05.08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상영코드 809)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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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완전한 기억이 마주한 그날의 진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2012) – 불완전한 기억과 ‘나’
줄이언 반스, 2011년 맨부커상 수상작
★★★
“야, 이 닭 대가리야!”
신입사원 시절 회식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다 선배 K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얼마나 화가나고 분통했던지 씩씩거리며 따져 들었다.
“내가 왜 닭 대가리요?, 그럼 선배는? 붕어 대가리처럼 생겨 가지고는…”
(물론 끝엣 말은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추가하는 말임을 알아주기 바란다.ㅋㅋ)
내 기억의 저장소에 등록된 ‘특별한’ 순간들
사실 내가 그때 화가 났던 것은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주 오래 전 일을 눈앞에서 보듯이 선명하게 읊조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경멸하듯 뭔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볼 때가 많다.
그러나, 아주 아주 가끔은 나에게도…
갑자기 반짝이는 번개 빛이 순간적으로 특정 지역을 훤히 드러내듯,
활짝 되살아 난 나의 기억이
과거의 특별 했던 그 순간의 의미를 떠오르게 해 줄 때가 있다.
‘하하, 나도 아직 죽지 않았단 말이지!’
그때마다 나는 나의 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을 그 ‘특별한’ 기억의 조각들이
어느 순간 적절한 타이밍에 되뇌임 되기 위해서 오랜 시간 사라지지 않고,
잘 보관되어 왔다는 점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 수많은 기억들 속에서,
그 선택된 기억의 조각은 나에게 의미 있는 특별한 삶의 순간이었겠지!
내 기억의 파편들, 그 진실은 어디까지일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이런 ‘특별한’ 기억에 관한 책/영화이다.
이제 책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①우리의 기억은 항상 올바른 것일까?
②우리의 기억은 올바른 것일까?
위 두가지 질문 중 어떤 것이 답하기 쉬운가?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대개 '항상'이라는 글자에 방점을 두고
'그렇지, 항상 올바르지는 않겠지, 한두번은 틀릴 수 있지 않겠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두번째 질문은 참으로 답하기 어렵다. 다시 두번째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의 기억은 올바른 것일까?
더군다나 40년이나 지난 어떤 일에 대한 것이라면?
이제 60대 중반에 들어선 주인공 토니는
옛날 고등학교와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아 들고선,
과거의 잊어버렸던 기억을 소환하기 시작한다.
# 주인공 토니는 ‘평균치’ 삶을 살고 있는 카메라 수선공으로 나온다.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다시 마주한 옛 연인 '베로니카'.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기억은 고등학교 역사수업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선생님이 던졌던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두 주인공의 답변은,
‘기억의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이 책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 (33p, 토니)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34p, 에이드리언)
얼핏 비슷해 보이는 두 사람의 엇갈린 답변은
이 소설의 결말을 예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책이 거의 끝나가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이를 알게 된다.
그래서 다들 책을 두 번 다시 읽게 된다고 한다.)
구분하자면 토니는 역사(=기억)란 ‘의도적인 거짓말’일 가능성에,
에이드리언은 ‘부정확한 확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 에이드리언(좌) 과 토니(우)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이렇게 ‘특별한’ 기억의 핵심 사건은 주인공 토니의 대학시절,
자신과 결별했던 연인 베로니카가 그의 절친 4인방 중 하나인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었다는 편지를 받아드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쉽게 말하자면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때, 토니는 이미 헤어진 사이라며 쿨하게 둘 사이의 관계를 축복하는
엽서를 보냈다고 기억하고 있다.
“이십일일자로 온 자네의 서신을 수령하면서,
본인은 모든 것을 유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명시하고자
상찬과 기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네, 벗이여.” (77p)
물론 그때 감정의 동요가 없진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감출 요량으로 엽서를 보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의 편지를 읽은 후에 내 본심을 감출 요량으로 보낸 엽서를 기억해 냈다.
모든 것이 다 좋아, 이 친구야 운운하며 평정을 가장했던 문장들을.
그것은 클리프턴 현수교 사진이 인쇄된 카드였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171p)
이 정도다.
여기까지 보면 토니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 옛날 한 순간의 추억은
그리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기억을 다시 떠올려낸 순서는 뒤죽박죽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편집되었을지라도
크게 사실을 호도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토니는 지나온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볼 때,
누군가에게 크게 해악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보통 사람들 수준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고 자부하고 싶기 때문이다.
“평균치, 학교를 떠난 후 나란 인간은 줄곧 그랬다. 대학에서, 직장에서 평균치. 우정과 사랑에서 평균치, 섹스에도 의심할 여지 없이 평균치였다.
(중략) 그러나 평균치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평균치가 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평균치 인생. 평균치 진실. 평균치 윤리관.” (174p)
물론 그러한 평가 조차도 나 자신을 위한 합리화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게 되고
고집불통이 되어 간다는 것을 인생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165p)
그렇기에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없다.
과거의 기억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불행하게도, 우려했던대로
잊어 버렸던 아니, 애써 잊고 싶었던 기억에 대한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 기억에서 사라졌던 장면들
그 당시 옛 연인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의 교제를 쿨하게 인정했었던 엽서에 대한 기억은
사실은 윤색되고 각색된 기억에 불과했던 것이다.
기록은 기억을 뛰어넘어 사실을 보여준다.
아래 편지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얼마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 왜곡이었던가?
“에이드리언에게, 아니,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베로니카, 개 같은 년. 잘 지냈나? 너도 이 편지를 읽도록) 내가 너희를 소개해 준 날을 저주하게 되길…
(중략) 각자의 인간관계에 독처럼 작용하는 고통이 평생 이어지길…
(중략) 너의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길 바라고 있어. 이유인즉 내가 시간이 대대손손 복수를 가한다는 걸 굳건히 믿는 인간이라 그래…
너도 이미 그 여자가 남자 잡아먹는 요물이라는 사실쯤은 알았겠지.
내가 너라면 ‘모친’에게 이런 사실들을 확인해 볼걸? 오래전에 그 여자가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중략) 에, 또, 허세 덩어리이기도 하니, 명심하라고… 그리고 기원컨대 너희의 관절과 성유를 바른 머리통에 산성비가 쏟아지기를 (토니)” (165p)
# 토니의 기억에 조차 남아 있지 않던 당시에 보낸 편지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내가 정말 이런 편지를 썼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두 사람에 대한 저주의 글을 보고 토니는 소스라치게 놀랄 뿐이다.
더군다나 40년이 지난 지금
그 편지가 불러일으켰던 후폭풍을 이제서야 마주하고서야
토니는 기억의 저편에 남아있는 진실과 그 결말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후회와 회한이 밀려온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고통스럽다.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를 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환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242p)
그 옛날 저주의 편지를 받아든 베로니카, 에이드리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 다음 이야기는 '스포일러'에 해당하여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기억의 왜곡, 그것은 스스로의 존엄을 보호하고자 하는 생존본능
이 책은 우리가 얼마나 기억에 대해 불완전한 존재인지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그 옛날의 기억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아래 그림에서 A기억 저장소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은
A'라는 기억으로 대체된 지 오래지만
우리는 그 대체과정을 살필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그 과정에는 나 자신의 존엄을 보호하고자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잠재된 윤리적 저항의식 보다는 강하게 작동하기에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의 작위적 기억의 편취에 대항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된 기억일수록 나 자신과 합의된 ‘합리화된’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그림 – 기억이 왜곡되어져 가는 과정
저자는 이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를 통해
‘깊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기억의 저편에 남아 있을 진실을 마주하자’는 식의
상투적인 교훈을 남기고자 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인간은 기억에 한해서는
우리 모두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환기시키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이던가?
자신만만해 하던 ‘내 기억’은 사실 짜집기된 나의 주장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상처가 깊을수록 그 기억의 왜곡도 심해진다.
혹 이러한 사실을 안다고 해서 우리가 100% 순도의 기억을 남길 방법은 없다.
자기 생존 방어 본능에 따라 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억은 왜곡되고 윤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억에 한한 우리 자신은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것 만큼이나
‘불완전한’ 과거를 확신하는 것에 겸손한 태도를 갖는 것이다.
어쩌면 20년전 K선배가 말했다고 하는 ‘닭 대가리’에 대한 나의 기억도
나 자신을 위로하고자 하는 자기방어적 편집된 기억일 수도 있겠다.
아무도 모르는 그날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 책 표지
#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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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마지막 주 영화 한줄평] <갈매기>, <우리, 둘>
7월의 마지막 주를 맞아 씨네랩 크리에이터가 말하는 영화 두 편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갈매기>와 <우리, 둘>의 한줄 리뷰, 함께 만나볼까요?
1. <갈매기>
* 조금 더 자세한 리뷰를 보고 싶다면?
RABBITGUMI님 리뷰 - http://www.cinelab.co.kr/youtube.html?y_id=323
우두미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22
고태호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14
영직남님 리뷰 - http://www.cinelab.co.kr/youtube.html?y_id=321
드플레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30
공상가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39
코댕이님 리뷰 - http://www.cinelab.co.kr/sns.html?in_id=509
* 낯설지만 신선한, 다큐멘터리 같은 날 것의 힘이 느껴지는 웰메이드 독립영화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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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 둘>
* 조금 더 자세한 리뷰를 보고 싶다면?
rewr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46
popofilm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49
드플레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48
이정원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42
* 그 어떤 로맨스보다 몽환적인, 독창적이면서도 독특한 활력을 지닌 레즈비언 로맨스 <우리,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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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살이 살인을 저지른 건 누구의 잘못?
어느 날 새벽, 경찰이 에디의 집에 들이닥쳐 그의 14살 아들 제이미를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 제이미는 억울하다 이야기한다. 그러나 CCTV 증거가 공개되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희생자는 동급생 케이티였다. 그녀가 제이미를 ‘인셀’이라 놀린 것이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제이미는 여성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지배하고 싶어 하는 모순된 심리를 지녔다. 그의 범죄는 이를 표출한 것이었다. 드라마는 롱테이크 기법을 통해 그의 가치관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부각한다. 3화의 심리 상담 장면에서 이게 잘 드러난다.
에디와 경찰 루크의 태도는 대조적이다. 에디는 아들의 무죄를 믿고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죄에 대한 인정이 결여되어 있다. 반면 루크는 진실을 밝히려 노력한다. 그리고 아들 애덤과의 대화를 통해 제이미가 당한 조롱의 의미를 파악한다. 사건 이후 루크는 아들과 식사를 하며 관계를 회복하려 한다. 한편 에디는 아들의 잘못을 외면한 채 도망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가족 내에서도 의견을 갈라지게 했다. 누나 클로이는 제이미의 유죄를 증언하기로 결심한다.
드라마는 단순한 범죄 스토리가 아니다. 학교와 사회의 무관심이 제이미의 왜곡된 가치관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학교는 학생들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교정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교육 환경은 제이미의 결핍을 보완하기에는 부족했다. 만약 그가 "14세가 성관계를 못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는 조언을 들었더라면, 또는 케이티가 같은 말을 들었다면 비극이 막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관심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소년의 시간’은 혐오가 형성되는 과정과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반응을 이끌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에디처럼 개인적인 일이라며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 대신 부모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만약 내 자식이 SNS를 통해 왜곡된 가치관을 습득한다면 어떨까. 나는 이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것인가? 드라마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무관심이 또 다른 비극을 낳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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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온 2025년을 위한 영화 대사 모음 zip.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바로 2025년 1월 1일이요!
아직 2024년을 떠나보낼 준비가 안된 사람들을 위해
다가온 2025년을 힘차게 보낼 수 있는 영화 대사들을 모아보았습니다.
그럼 저희는 용감하게, 씩씩하게 2025년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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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인 차별? 엿 먹으라 그래
6★/10★
아시아계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영화로, 전 세계에서 큰 수익을 낸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압권은 도입부다. 돈이 썩어 나는 아시아인이 호텔 안내 직원의 인종 차별적 모욕에 그 자리에서 호텔을 사 버리는 장면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욕을 되갚는 최고의 방법은 내가 너보다 경제력이 월등함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를 인종 차별적 모욕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영화는 이후에도 서로 다른 계급의 두 아시안 남녀의 사랑을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으로 담아낸다. 소모되다 사라져버리는 아시아인이 등장하지 않는, 무려 아시아인이 슈퍼 리치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도 적잖은 쾌감을 제공했다.
〈조이 라이드〉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아〉의 각본을 쓴 아델 림의 첫 연출작이다. 이번에도 아시아인이 주인공이고, 도입부부터 통쾌한 장면을 선보인다. 한 아시아계 부부가 주민 대다수가 백인인 마을로 이사를 온다. 그런 그들에게 한 백인 부부가 다가온다. 그들은 아시아계 부부의 딸 롤로와 자신의 딸이 함께 놀 수 있겠냐고 묻는다. 그때 백인 부부 뒤에서 숨어 있던 아이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백인 부부의 아시아계 입양아 오드리다. 롤로와 오드리는 곧바로 놀이터로 향하고, 롤로는 “칭챙총”거리는 백인 아이의 얼굴에 주먹을 꽂는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다. 오드리는 완벽한 모범생으로 성장해 촉망받는 변호사가 되었고, 롤로는 성적인 것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예술가를 지망하지만 실은 사고뭉치에 가까운 어른으로 성장했다. 물론 둘은 여전히 가까운 친구다. 그러던 중 오드리가 사업차 중국으로 가게 되어 롤로와 그녀의 사촌 데드아이가 통역을 핑계로 오드리와 동참한다. 중국에서는 오드리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이자 인기 배우인 캣도 합류한다.
넷은 오드리의 파트너 승진이 걸린 일생일대의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에 참석한다. 그런데 계약 당사자가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한다. 중국에서는 그 사람의 가족을 보고 상대를 파악한다며 며칠 후에 있을 파티에 그녀의 친모를 데려오라고 요구한 것. 오드리에게는 청천벽력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이 중국에서 입양되었다는 것과 생모의 사진 한 장 말고는 아무런 단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원급 승진이 걸린 일인데 포기할 수는 없다.
네 사람이 오드리의 생모를 찾아 떠나는 과정은 내내 아시아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관한 유쾌하고 도발적인 물음으로 가득하다. 더불어, 이들은 모두 섹스와 K-팝 등 자기 욕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자기 욕망의 방향을 아는 아시아 여성. 이들이 서로 복작거리며 만들어내는 기상천외한 웃음은 그 자체로도 즐길 만하지만 지금껏 할리우드에서 주변화되고, 제한된 채 고정된 역할만 수행해오던 아시아 여성의 이미지를 과격하게 비튼다는 점에서도 쾌감을 자아낸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출발점을 향한 오드리와 그 친구들의 여정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개성 강한 서로 다른 네 친구의 서사는 아시아 여성의 이미지를 하나로 환원하지 않고 다채롭게 만든다. 여러 모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코미디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물론, 영화의 형식 측면에서 본다면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아〉가 그랬듯, 〈조이 라이드〉 역시 장르 문법의 전형성에는 손대지 않기 때문이다. 〈조이 라이드〉는 자기 자신을 향한 여정이라는 코미디/버디 무비의 일반적 구조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오드리의 진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과 개별 주인공의 매력과 이들의 어우러짐에 대한 묘사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말이다. 오드리가 자신이 부정해왔던 아시아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조이 라이드〉는 가족주의, 아름다운 자연 등 서양이 동양을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재현해온 방식을 그대로 차용해 오드리의 정체성 탐색 과정을 채운다. 이 영화가 할리우드가 아시아/인을 재현해온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코미디 영화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서양이 상상적으로 구성해온 동양의 이미지 배치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하나의 영화에 너무 많은 기대를 투영할 필요는 없다. 〈조이 라이드〉에게 아시아/인과 할리우드가 맺어온 불평등한 관계 모두를 뒤집으라고 요구하는 건 과도하다는 소리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르 범주 내에서 아시아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즐길 만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균열은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는 좋은데 아시아/인 재현은 엉망이어서 양가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의 성공은 그 자체로 변화를 촉구한다. 들러리가 아닌, 행복과 고뇌를 동시에 느끼는 복합적 주체로서의 아시아인이 등장하는, ‘아시아인 차별? 엿 먹으라 그래!’라고 당차게 말하는 더 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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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벤더와 레드에서 핑크로
수학여행을 가든, 노래방을 가든, 길거리를 돌아다니든 나의 질풍노도와 함께 그녀들은 함께 했다. 어떤 날은 우리를 향해 s.e.s는 고백했다. ‘너를 사랑해, 나의 마음이, 너를 생각할수록.’ 그러다가 이에 질세라 다른 날은 핑클이 부탁했다. ‘언제나 날 지켜줄 너라고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해줘.’ 계속되는 사랑 고백에 수많은 사람들은 라벤더색 풍선(S.E.S)을 들고 목이 터지라 “에쓰이에! 에쓰이에!” 외쳐댔고, 또 반대편에서는 빨강 풍선(핑클)을 흔들며 격렬하게 소리 질렀다. “핑클 짱 핑클 짱.”
빨강펄색깔은 핑클의 상징이었다. 그녀들은 가요대상을 탄 걸그룹이었다.
최초의 걸그룹 S.E.S는 라벤더 물결이 가득한 연보라빛 풍선!
철부지 녀석 하나가 내게 물어왔다. “넌 도대체 에스이에스와 핑클 중에 누굴 좋아하는 것이냐?” 평소 핑클을 좋아하던 그 녀석은 나의 정체를 밝히라는 것이었다. “너는 아군이냐! 적군이냐!” 이 안타까운 녀석을 설득하기 위해선 삼국지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황건적의 난 이후 난세의 어려움 속에 이곳저곳에서 아름다운 꽃과 같이 피어나는 영웅들의 이야기. 그 개개인의 인물들의 매력에 빠지는 것이 바로 삼국지에 즐거움이거늘, 위, 촉, 오중에 어느 나라를 선택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당신은 충성스러움과 신의의 표본인 산상의 <조자룡>과 유비, 관우, 장비가 모두 덤벼도 거뜬하게 막아내는 무력과 달리 한 여인을 향한 로맨티시스트 <여포>, 도저히 승부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지략으로 판을 바꾸는 <제갈공명> 등. 각 나라마다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이 많은데, 어찌 위, 촉, 오중 하나를 고르란 말인가? 그럼에도 선택을 강요한다면 나는 SES에서는 유진을, 핑클에는 이진을 선택하겠다. 그러자 그 녀석은 고개를 저으며 피아 식별을 향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이후 내게는 수많은 걸그룹이 스쳐지나갔다. 대학 시절 함께한 소녀시대, 군생활을 도와준 2NE1, 그러나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에 위로와 기쁨을 허락해준 두 그룹만큼의 임팩트는 찾아오기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결혼을 했고 놀랍게도 그녀들도 결혼을 했다. 그리고 우리 가정에 아이가 생겼고, 자연스레 그녀들도 엄마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돌 보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방송에서 볼 수 있었고, 나 역시 그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그 시절 설렘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때로 라벤더 빛으로 때로 붉은 장미 빛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삼십대에 만난 <블랙핑크> 는 내 삶에 에너지와 즐거움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지내던 내게 또 강렬한 색이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블랙핑크> 다양한 걸그룹의 진화 속에서 한국의 팝 장르는 K-POP이라는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걸그룹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기가 있다는 뉴스들을 간혹 볼 때마다, 그 시절, 보라색, 빨간색 풍선을 흔들어 대던 때가 생각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결혼과 육아, 그리고 끝나지 않은 학업과 노동의 현장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잘 버티고 있다며 다독여야 했다.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 때도 있었고, 걸그룹은 멀고 먼 이야기로 지나가고 있었다. 연일 바쁜 삶 가운데 축 쳐진 볏단처럼 살아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헬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땀 흘리는 러닝머신 속에서 나의 속도를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Hit you with that ddu-du ddu-du du”
-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가사 중에서...헬스장을 갈 때마다, 이 곡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지겹고, 질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비트와 함께 멜로디는 허벅지와 종아리에 한 번 더 힘을 가했다. 그리고 멈추려 할 때 로제는 말했다. “두 번 생각해~” 그렇게 두 번 생각하고 있다 보면 제니는 내가 젤 좋아하는 부분을 부르고 있다. “Hit you with that ddu-du ddu-du du” 어느덧 이 노래는 삼십 대를 보내는 내게 다시 흥과 에너지를 가져다줬다. 그리고 헬스장에서 수영강으로 옮겨진 나의 무대에 블랙핑크는 때로 봄에는 휘파람으로 시원함을, 여름에는 마지막처럼으로 청량함을, 가을에는 뚜두 뚜두로 열심을, 겨울에는 불장난으로 한 번 더 뛸 수 있게 해 줬다.
자연스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를 블랙핑크의 팬으로서 즐겁게 시청할 수 있었다. 음식에 있어서 풍미를 증폭하고 개선케 하며, 밸런스를 가져다주고 균형을 맞추는 중요한 재료를 통해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만든 《소금. 산. 지방. 불》을 독창적인 색감과 영상미로 이끌어주었던 캐럴라인 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지수, 제니, 로제, 리사라는 사람의 탄생과 성장과정 그리고 블랙핑크가 되기까지의 장면들을 통해 그녀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특히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제니의 인터뷰와 솔직한 모습은 아빠미소를 갖게 만들었다. 팬으로서 본 다큐멘터리였기에 전반적인 대부분의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고, 특별히 그들의 프로듀서인 테디가 생각하는 블랙핑크와 노래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음에 즐거웠다.
<블랙핑크> 한명 한명의 인터뷰. 그것을 통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다큐멘터리다!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K팝을 단순히 십 대들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트로트처럼, 재즈처럼, 클래식처럼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이고, 나이와 출신과 종교와 직업을 떠나 좋아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길 바랬다. 그것을 블랙핑크를 통해서 설득시켜줄 수 있는 부분이 나왔으면 했다. 블랙핑크 다큐멘터리에 k-pop 장르의 접근성을 다뤄 달라는 것이 다소 방향성이 엇나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게 K-POP은 십 대도 이십 대도 삼십 대도 충분히 즐기고 누릴 수 있음을 요청한 것은, 지금 이 나이에 블랙핑크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대한 지지와 인정이 필요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시절처럼 신곡이 나올 그날을 매일 기다리고, 책받침과 스티커는 필요 없지만, 아무 생각 없이 뛰고 싶을 때, 청량한 햇살과 드라이브할 때, 덤벨을 하나 더 들어야 하는 그때...
그리고 내 마음속에 여전히 청춘과 젊음과 에너지를 느끼고 싶을때
나는 계속해서 블랙핑크를 찾을 것이다.
그 시절 내가 라벤더와 레드를 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는<레드>와 <라벤더>와 <블랙핑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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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나기] 끝장리뷰 | 우나기(뱀장어), UFO 상징 | 섹스에 대한 탐구 | 결말해석 | 두 명의 엄마
[우나기](1997)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섹스란 무엇인가
Chapter 2 뱀장어(우나기)와 UFO
00:00 우나기 재개봉
01:12 섹스란?
05:52 엄마 두 명
07:19 우나기 상징
10:23 UFO 상징
11:41 별점 및 한 줄 평
12:01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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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5]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가 지난 주 개봉했습니다.
흑백영화로 촬영된 영화는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시절 쓴 자산어보의 서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상상을 가미하여 만들어낸 영화입니다.
매우 아름답게 촬영이 되어서 하나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줍니다.
정약전은 기본적으로 평등주의적이고 평화주의적인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반면 창대는 성리학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진리라고 생각하고 그 길로 향하려 하죠.
서로 관계가 처음에는 좋지 않지만 정약전은 창대에게 책에 대해 알려주고 창대는 정약전에게 어류에 대한 정보를 알려줍니다. 서로 교환으로 시작한 이 관계는 점점 깊어지죠.
결국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에요.
배우들의 연기도 좋구요자세한 내용은 리뷰를 참고해주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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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 CCTV > 예고편
일명 `CCTV 살인사건`.
10년 전. 8명이 죽고 1명이 행방불명이 된 전대미문의 살인극.
바로 이 끔찍한 살인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를 유튜버가 찾아간다.
유튜브 채널의 획기적인 조회수와 구독자 증가를 가져올 생존자와의 인터뷰가 시작되자...
10년 동안 숨겨졌던 끔찍한 사실이 드러나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던 복수가 10년 만에 마무리 되는데...
죽음을 부르는 눈동자, CCTV의 공포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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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소림천하: 제국의 부활> 메인 예고편
황실의 불교 탄압으로 흔적도 없이 불타버린 소림사의 마지막 후예 ‘득보’.
그는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사기 행각으로 객잔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득보’의 객잔에 숨겨진 소림사 마지막 유산의 단서는 세력을 키우려는 권력가들의 야욕을 자극하고,
이를 갈취하려는 권력가들로 인해 ‘득보’는 살인 누명을 쓰고 하나뿐인 아들마저 잃는다.
복수를 결심한 ‘득보’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소림사 노승의 지도 아래 뼈를 깎는 고통으로 소림권을 수련하고,
그는 소림사의 후예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함께 자신을 모함한 사건의 배후에는 제국을 피로 물들일 음모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모든 악을 끝낼 결전의 시작!
전무후무의 소림 액션이 난세를 종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