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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a2025-08-06 17:53:15

우리는 그 전설의 시작을 알지 못한다

영화 <발레리나> 후기



 

2023년 대서사의 막을 내린 <존윅> 시리즈는 이번 2025년 스핀오프로 다시 한 번 극장가를 찾아오게 되었다. 영화 <발레리나> 는 <존윅3: 파라벨룸> 과 <존윅4> 그 사이의 시간선에 위치하며 존윅과 같은 '루스카 로마' 출신의 킬러 '이브' 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스핀 오프가 유난히 매력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존윅 시리즈가 낯설지라도 정교하게 쌓여진 세계관을 맛보여줌으로써 본 시리즈에 관심을 갖게 하는 동시에 주인공 '이브'에게 집중하며 백스토리 없이 영화를 오롯이 관람할 수 있다. 동시에 시리즈의 팬덤은 2년 사이 다시금 찾아온 본편의 향수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매력을 영화 곳곳에서 느끼며 그 전설의 귀환을 다시 느낄 수 있다. 

 

존윅 시리즈의 첫 시작은 이미 오래전 은퇴한 전설적인 킬러의 역린을 건드리며 시작된다. 그가 복수를 다짐하기까지 영화는 구태여 사이드 스토리에 힘을 쏟지 않고 오로지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 액션을 통해 보여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잔인하게 죽임 당하는 연인도 각성을 위한 시간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로지 세련된 컨셉을 대사가 아닌 장면으로만 표현하며 그가 이 세계관 속 어떠한 존재감을 갖는지 그저 묵묵히 강조할 뿐이다. 존윅은 이미 아내와 사별한지 오래, 그저 조용히 삶을 이어나가고 있을 뿐이지만 아내가 남긴 유산 즉 그의 존재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건이 파괴되며 그는 다시금 현업에 복귀한다. 차와 강아지가 그 두 요소이다. 사실 복수를 다짐하는 은퇴 킬러는 할리우드 액션물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설정이다. 하지만 존윅의 경우 그 안을 깊이 살펴보면 세심하게 내제된 세계관 설정 속에 그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단순 보는 것이 아닌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존윅 세계관은 그 누구도 소리 내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룰이 존재한다. 공공연하게 킬러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원로회라는 절대 권력 아래 그들은 나름대로의 질서와 매너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규율의 장소가 불가피하고 이는 각 나라에 퍼져있는 콘티넨탈 호텔로 대변된다. 존윅은 이미 오래전 큰 대가를 치루고 은퇴한 킬러로 모두가 그의 존재를 알고 있다. 심지어 경찰관 까지도. 특히 <존윅> 에서 그가 집을 습격한 킬러들을 처리한 뒤 소음으로 출동한 경찰관과 대화를 나누는 시퀀스에서부터 해당 영화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다. 경찰관은 가볍게 그와 대화를 나누며 한 가지 질문을 건낸다. 평소 같으면 숨기기 급급해야 할 시퀀스겠지만 경찰관은 존윅에게 '다시 복귀하셨나요?' 라고 묻는다. 다시 말해 도입부부터 우리 도처에 킬러가 살고 있으며 해당 영화가 조명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사회임을 강조한다. 이때 일반인들은 철저히 배제 당한다. 관객이 보고 있는 모든 이들은 거의 킬러나 다름이 없다. 이는 이후 시리즈에서 재차 강조되며 관객들을 은근하게 킬러들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렇다면 <발레리나> 에서는 어떨까. 우리는 존윅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 4까지 이어지는 내용은 그가 다시 발들인 운명으로부터 빠져나가는 이야기이기에 영화에서 재차 강조되는 'Consequences' 즉 대가를 치루는 시간으로 보여진다. 그가 순간 내린 선택에 의한 결과를 말 그대로 '치루는' 역경의 내용이지만 이미 모두가 전설로 취급하는 이의 고행이기에 많은 팬들을 끌어들인 바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그가 어떻게 현재에 이르렀는지 알 수 없을 뿐더러 그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발레리나> 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다. 관객은 그 베테랑의 과거를 알지 못하기에 이번에는 한 아마추어가 베테랑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직접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아마추어는 존윅과는 어떻게 차이점을 가져가게 될까 역시 중요한 관람 포인트가 되어준다. 

 

오래전 컬트 집단에 의해 어머니와 언니, 아버지 마저 잃은 소녀 '이브'는 뉴욕 콘티넨탈 호텔의 매니저 '윈스턴'에 의해 거둬져 '루스카 로마'에 입성한다. <존윅3: 파라벨룸>에서도 확인 할 수 있듯 존윅 역시 '루스카 로마' 출신으로 이들은 모두 어머니라 불리는 존재에 의해 교육 받고 킬러로 거듭난다. <발레리나>는 이 '루스카 로마'를 한 번 더 조명하며 이들이 단순 킬러가 아닌 보호 대상을 지키는 사업을 운영하는 일명 '키키모라' 집단인 설정을 부여하고 소녀 '이브'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지켜나가지는 보여준다. 이때 다시 한 번 존윅과의 차이가 드러난다. 존윅은 시작부터 모든 것을 잃은 자로 등장한다. 시리즈가 거듭 될 수록 그의 재산은 점차 줄어들고 그에게는 보금자리 하나 조차 남지 않게 되며 콘티넨탈의 규칙을 어긴 뒤로 그에게 몸을 의탁할 만한 공간은 영원히 부재하게 된다. 또한 시리즈의 끝은 존윅이 비로소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이 아닌 자신이 결정한 선택들의 대가를 치루며 끝내 영원한 안식에 도달하는 이야기이지 결코 무언가를 다시 얻어내는 이야기로 볼 수 없다. 하지만 <발레리나>가 '키키모라'라는 설정을 초반부부터 보인만큼 이 이야기는 다름 아닌 운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니 운명에 빠져든 한 베테랑과 운명을 거부하는 한 아마추어의 만남이 이 스핀오프를 더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액션 장르의 한 획을 그은 시리즈인만큼 이번 <발레리나>에서 '이브'가 보여주는 액션 역시 매우 뛰어난데 이때 역시 존윅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명사수인 존윅이 속도전으로 몰아치는 적들을 처리할 때 아직까지는 지켜내기만 하여 몰아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이브가 다수의 적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바로 그 포인트이다. 물론 존윅 못지 않게 다양한 방법으로 적들을 상대하지만 아직 섬세하게 가공되진 않았으나 오히려 아마추어의 과감함으로 수류탄, 화염 방사기 등을 이용해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이브'의 액션 스타일이 존윅과는 또 다른 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역시 그녀가 보이는 복수의 집념은 <존윅>과 <존윅: 리로드>에서 보여준 그의 무시무시함과 닮아있기도 하다. 복수라는 소재가 늘 반복되는 클리셰일 수도 있으나 결국 가장 자주 사용되는 만큼 서사의 당위성과 연출의 에너지를 부여해주기에 관객은 이브가 126분 동안 모는 폭주기관차에 올라타게 된 셈인 것이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존윅 세계관을 가장 관통하는 말이자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주제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존윅은 네 편에 걸친 영화 내내 대가를 치룬다. 그로부터 도망치기도 맞서기도 하지만 한 가지 그는 결코 운명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온 몸으로 운명을 들이받아내는 사내임을 영화는 보인다. 이번 <발레리나> 속 이브는 어떠할까. 그녀 역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운명을 강요 받으나 그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베테랑이 지낸 책임의 무게, 그 세월을 보아온 만큼 이 아마추어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그 무게를 질까. 어쩌면 그녀는 가뿐하게 그 책임을 밟아버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전설의 시작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운명으로부터 도망치는 소녀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그 전설을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작성자 . m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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